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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2

귀공자 (2023) - 박훈정 : 별점 2.5점

코피노 마르코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 마르코를 뒤쫓는 의문의 남자, 자칭 "친구"에 의해 아버지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마르코는 우여곡절 끝에 의붓형을 만났지만, 의붓형 한이사는 마르코가 아버지에게 심장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수술이 시작되었지만 수술실에 '친구'가 나타나 마르코를 구해주는데...

박훈정 감독의 액션 영화입니다. 최근에는 미중년 액션물을 많이 보았는데, 생생한 젊은 남자가 펼치는 무쌍 액션물은 오랫만이네요. 그런데 이 젊은 남자, '친구'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마르코에게 자기는 "친구!"라며 살갑게 굴다가도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프로 해결사라는 모순적인 인물을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명품 정장을 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살육을 벌인다는 모순도 그럴듯하게 표현됩니다. 여기에는 '친구'역을 맡은 김선호의 연기와 매력이 한 몫 단단히 하고요. 그야말로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갑니다.

김강우가 연기한 한이사도 빌런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돈과 상속이 전부인 잔혹한 속물 재벌 2세라는 인물상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있거든요. 그리 깊이 있는 악역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뻔하지만, 장르 영화 속 빌런으로는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액션도 괜찮습니다. 합도 잘 맞고, 장면의 동선도 지루하지 않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잔혹한 분위기도 잘 살아 있어서 총격전, 맨손 격투, 자동차 추격 등 종류도 다양한데 뭐 하나 처지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친구'가 마르코를 쫓는 추격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죽이려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장난이 많이 포함된 애매함이 독특했어요. 이 과정에서 '친구'의 엄청난 신체 능력도 튀지 않게 선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각본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여러 설정을 적절히 잘 써먹는 것도 눈에 띕니다. '친구' 역시 코피노 출신이라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필리핀어로 정보를 주는 장면으로 잘 이어지는 식으로요. 덕분에 마르코를 이용해 돈 벌 생각만 있어 보였던 '친구'가 사실은 마르코의 편이었다는 결말도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핵심 설정이 너무 말이 안 된다는 문제는 큽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상속에서 지기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시켜야 한다는 상황은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그 심장 제공자가 반드시 사생아인 마르코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에요. 이 일을 위해 쓴 돈만 당장 천만 달러 규모이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수십 명입니다. 그 정도 비용과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마르코 한 명에게 매달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심장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유전적인 조건이나 특수한 의학적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 필요했어요.

액션은 앞서 말했듯 좋지만, 김선호가 연기한 '친구'의 무력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악당들은 수수깡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에게 맞설 수 있는 빌런이 한 명 정도는 나와주었어야 했습니다. '친구'가 나타나면 만사형통이라, 강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는 있지만 위기감은 약합니다.
여기서 마르코의 활용도 아쉽습니다. 초반에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복서로 등장해서 당연히 그의 복싱 실력이 후반부 어떤 식으로든 쓰일 것이라 기대하게 만드는데, 이야기 내내 마르코는 쫓기고, 얻어맞고, 도망치는 역할에 머뭅니다. 이럴 거라면 왜 굳이 복서라는 설정을 길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한이사가 '친구'를 그냥 보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친구'가 거래를 깨고 그들을 죽인 뒤 마르코를 구해주었을까요?

그래도 흥행에 실패할 정도의 망작은 아닙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의 짜임새를 중요하게 보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크겠지만, 최소한 김선호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액션도 좋고요. 속편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2010/04/06

저스티스 JUSTICE 1~3 - 짐 크루거 / 알렉스 로스 / 더그 브레이스웨이트 : 별점 3점

저스티스 JUSTICE 1권~3권 (묶음) - 6점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채색, 더그 브레이스웨이트 데생, 정지욱 옮김/시공사

DC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를 바탕으로 한 슈퍼히어로 코믹스. 기본 설정이 상당히 기발합니다.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힘을 모아서 더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오히려 이들의 이상향에는 기존 슈퍼 히어로들이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는 내용이거든요. 또한 내용면에서 의외로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가 있어서 반갑기도 했는데 예를 들자면 "그린 랜턴"을 죽이지 않고 머나먼 우주로 보내버린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을 들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 정말 명불허전이라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실사를 보는 듯한 치밀하고 완벽한 뎃셍과 컬러링으로 뻔한 슈퍼히어로 만화를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면 만화지 '그래픽 노블'이라고 꼭 홍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작품은 그야말로 컷 하나하나가 모두 아트!라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나서 '그래픽 노블'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어떻게 보면 이케가미 료이치 스타일, 즉 그림이 너무 좋아서 만화로서의 가치와 재미가 떨어져 보이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평가가 욕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그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그린 애로우나 아톰 같은 비인기 히어로들 등 거의 모든 JLA 세계관의 히어로들이 잠깐씩이나마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제가 기존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슈퍼 빌런들 - 브레이니악, 고릴라 그라드, 가이간타, 블랙만타, 치타 등등등 - 이 등장하기에 풍성한 느낌을 전해주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초기의 재미난 설정에 비해 지나치게 뻔한 전개, 슈퍼 빌런들이 선한 의도를 가진 것은 당연히 아니기에 음모를 꾸미다가 결국 슈퍼 히어로들에게 계획이 뽀록나서 한판 승부끝에 패배한다는 결말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림 하나만으로도 모든게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내용이야 어쨌건 그림만으로 흐뭇하니, 알렉스 로스의 다음 작품도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2018/07/14

블랙 팬서 (2018) - 라이언 쿠글러 : 별점 2.5점



이번에 해외 출장 가면서 비행기에서 감상한 영화입니다. 마블 시리즈는 나름 팬이라 자부하는데, 최근에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통 보기가 힘들군요.

하여튼, 이 작품이 MCU 세계관 작품 안에서도 단독 타이틀로는 독보적이라 할 만큼 흥행한 영화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보기 전에는 좀 의아했었어요. 대단히 유명한 히어로도 아니고, 공개된 장면 장면들이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끌리지는 않았던 탓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유를 알겠네요. 아프리카과 아프리칸은 작품 속 킬몽거의 주장대로 정복자도 될 수 있고, 티칠라의 선택대로 자애로운 조력자도 될 수 있는 위대하고 강한 대륙이며 민족이다라는 메시지를 한 껏 담아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인종이라면 안 보고는 못 배길 테지요.
빌런 킬몽거가 뻔한 악당이 아닌, 흑인의 해방이라는 큰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로 사명감과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충분히 왕위를 노릴 자격이 있다는 탄탄한 설정도 좋더라고요. 이렇게 소모되는게 아쉬울 정도로요.

하지만 슈퍼 히어로 무비로는 조금 약하기는 합니다. 기둥 줄거리가 목숨을 건 결투로 결정되는 왕위 다툼인 탓입니다. 그래서 슈퍼 히어로 무비보다는 신화나 역사 속 어떤 시대를 무대로 한 에픽 서사물 느낌이에요. 빌런 킬몽거도 정당한 왕위 후계자라는 점에서 그가 정말 빌런인지? 에 대한 의문도 강하게 들고요. 강한 자가 왕이 되고, 나라의 정책이 왕에 따라 결정되는건 당연한데 이를 거부한다? 거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반역자잖아요?
아울러 클라이막스의 블랙 팬서와 재규어의 슈트 액션도 육탄전 중심으로 역시나 슈퍼 히어로 액션물로는 아쉬웠습니다. 사실 "부산" 장면 말고는 전체적으로 액션은 기대 이하였어요. 이는 와칸다의 슈퍼 오버 테크놀로지에 대한 묘사가 부실한 것도 한 몫 합니다. 뻔한 상상력의 범위 내라서, 신화와 SF의 결합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 "토르" 시리즈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소재인 비브라늄에 대해 두루뭉실 넘어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 시간을 잘 끌어나가는, 꼭 흑인이 아니더라도 재미만큼은 보장되는 좋은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확실히 마블이 영화를 잘 만들기는 하네요. 하지만 다음 작품이 이어진다면 액션 장면 만큼은 연출이 보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8/22

시빌워 / 시크릿 인베이전 : 별점 4점 / 1.5점

Civil War 시빌 워 - 8점
마크 밀러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시크릿 인베이전 Secret Invasion - 4점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이규원 옮김/시공사

할인 판매가 떴길래 냉큼 구입해 읽은 시공 그래픽노벨 시리즈.

"시빌 워"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시의적절한 리얼리티 쇼 비판(?)에서 시작해 항상 궁금했던 초인들의 거침없는 자경활동에 대한 해결책으로 '초인 등록법안'이 발의되는 과정과, 그 법안에 대해 찬반으로 나뉜 초인들이 맞붙게 된다는 극적인 전개가 미려한 그림과 함께 박진감 있게 펼쳐져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도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라는 찬반 양측의 리더 아래, 찬성 측의 미스터 판타스틱, 행크 핌, 쉬 헐크, 센트리 등과 반대 측의 스파이더맨, 루크 케이지, 데어데블, 블랙 팬서, 골리앗 등 마블의 주요 캐릭터가 총망라되어 있어 팬으로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외에도 영 어벤져스, 타이그라, 비전, 팰콘 등 수많은 히어로들과 '썬더볼트'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 불스아이 등의 빌런까지 등장하니, 마블 팬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이벤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주요 이슈만 모아놓기는 했지만 스토리가 크게 튀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도 강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크릿 인베이전"은 아쉽기만 합니다. 거의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복제가 가능한 스크럴의 침입을 다루는데, 정작 스크럴의 계획이 무엇인지 애매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더군요. 일단 유전적으로 완벽히 복제가 가능하다면 능력도 동일하게 가져올 수 있으니 1:1 승부에서는 박빙이어야 정상인데, 그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했고 애당초 "보디 스내처"처럼 천천히 잠식하여 장악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별로 유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변신도 하지 않고 정체를 드러낸 채 전면전을 벌인다는 계획도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종족의 위기에서 지구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 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그 외에도 급작스러운 닉 퓨리의 등장이라든가, 마지막 마블 보이의 뜬금없는 상황 종결 장면, 와스프를 이용한다는 스크럴 반전 카드의 무가치함, 총질만 조금 했을 뿐인 노먼 오스본의 급부상과 권력 찬탈 등, 이 책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전체 이슈를 한 권으로 요약하는 데 실패했달까요.

게다가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데생과 펜 터치도 거칠고, 구도 자체가 문제가 많아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영 어벤져스와 이니셔티브, 코만도스 같은 신진 세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고요.

히어로와 빌런이 손을 잡고 거대 악과 맞서 싸운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던 만큼, 차라리 스크럴이 복제한 히어로들을 무찌르기 위해 빌런들이 들고일어난다는 설정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한마디로 토니 스타크의 추락, 노먼 오스본의 권력 찬탈이라는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한 것 외에는 건질 게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시빌 워"는 별점 4점, "시크릿 인베이전"은 별점 1.5점입니다. "시빌 워"만 추천드립니다.

2017/04/07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마크 밀러, 스티브 맥니븐 / 임태현 : 별점 2점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4점
마크 밀러 지음, 스티브 맥니븐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로건 아저씨, 정말 그들과 싸우러 가는 거에요?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오려는 거에요?

그럴까 해,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마블 코믹스 시리즈입니다. 평도 좋고 색다른 맛이 좋다는 작품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알려진대로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빌런들과 히어로들이 최종 결전을 벌인 이후, 빌런들이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버린은 최종 결전 직전 미스테리오의 환각에 빠져 동료 엑스맨들을 학살한 탓에, 클로를 봉인하고 '로건'이라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며 가족을 꾸린 뒤 늙어가는 상황이고요.

지주인 헐크 패밀리에게 지대를 내야 하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한 로건 앞에 호크아이가 나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크아이는 미대륙 횡단 여행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로건은 싸움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승낙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호크아이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컴비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와 빌런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지나며 숱한 모험을 통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함정이었습니다. 호크아이는 살해되고 말지요. 로건은 레드스컬을 제압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2부에서는 헐크 패밀리가 쳐들어와 가족을 학살한 것을 알게 된 로건이 클로를 꺼내 울버린으로 돌아온 뒤, 헐크 패밀리를 모두 죽이는 복수극이 펼쳐집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잔혹한 복수극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북두의 권"이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육탄전 중심이라는 점도 비슷했으니까요. 하드 고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작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작화는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마블 코믹스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화끈합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성공했지만, 가족이 죽어버려 복수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서부극 느낌도 전해줍니다. "웨스턴 리벤지"와 분위기만큼은 아주 똑같더라고요. 목장이 중심이 된 배경 및 다른 소품들, 등장인물들의 묘사도 이런 느낌을 뒷받침해 주고요.

그런데 이 책 한 권만으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미국 만화 특유의 문제점이기는 한데, 히어로들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헐크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패밀리는 왜 식인종 집단이 되었는지 등 기본 설정들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나 호크아이의 딸 이야기도 이야기에 제대로 녹아나지 못합니다. 솔직히 1부에 해당하는 호크아이와 함께한 모험 이야기는 일종의 추억팔이에 불과해요. 차라리 설명을 보강하고 2부 이야기에 치중하는게 이야기의 완성도는 더 높았을 겁니다.

파워 밸런스도 문제입니다. 1부의 최종 보스인 레드 스컬, 2부의 최종 보스인 헐크 브루스 배너 모두 울버린에게 너무 쉽게 제압되기 때문입니다. 2부의 헐크는 울버린을 산채로 잡아먹지만, 힐링 팩터로 부활한 울버린에게 내부부터 파괴되어 패배한다는 설정이라 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최종 보스답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헐크 패밀리와 헐크의 최후가 실망스러운건, 이렇게 허약한 놈들 때문에 울버린이 가족을 잃었다는게 어찌보면 황당하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다 쓸어버렸으면 됐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인 세게관과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를 제외하고는 좋은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종의 평행 우주를 다룬 외전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05/01/08

배트맨 : 어썰트 온 아캄 (Batman: Assault on Arkham. 2014) - 제이 올리바 : 별점 2점

아만다 월러는 킹 샤크, 킬러 프로스트, KGBeast, 데드샷, 캡틴 부메랑, 할리퀸, 블랙 스파이더 등의 빌런을 모든 뒤 목에다가 폭탄을 부착하고 리들러의 USB를 아캄 수용소에서 가져올 것을 명령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캄 수용소에 잠입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앞에 배트맨이 나타나고, 한바탕 격투가 벌어진다. 그러던 중 아만다 월러에게 개인적인 지령을 받은 킬러 프로스트는 리들러를 죽이려 하고, 리들러는 그 이유를 폭로한다. 리들러는 목의 폭탄을 해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폭탄을 해체한 특공대를 배트맨이 제압하려하나 이 소동으로 아캄 수용소가 개방되어 죄수들이 폭주하기 시작하고, 마침 탈출한 조커는 고담시를 날려버릴 핵폭탄을 동작시키는데....


아캄 유니버스 세계관이라는데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딱히 제가 알던 배트맨 세계관과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존의 DC 애니메이션과는 굉장히 다르더군요! 배트맨이 아니라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것부터가 특이했는데 초반부터 KGBeast라는 빌런 목이 달아나고 할리 퀸이 누드로 데드샷 앞에 등장하여 원나잇을 하는 등 일본의 성인향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한마디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는 그동안의 DC 애니메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실하다는 뜻이죠...
아만다 월러가 범죄자들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구성하여 아캄 정신병원에 잠입시키는 목적이 처음에는 리들러의 지팡이 속 USB 를 가져오는 것이었죠. 그런데 중간에 급작스럽게 리들러를 죽이는 것으로 작전이 변경되는데 이유에 대한 설명이 전무합니다. USB가 뭔지는 결국 나오지도 않고요. (맥거핀?) 그렇다면 처음부터 수어사이드 스쿼드에게 리들러를 죽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꾸몄을까요?
게다가 그 뒤에는 아만다 - 리들러 관련 내용은 사라지고 조커의 핵폭탄, 그리고 조커와 배트맨, 데드샷의 사투가 펼쳐질 뿐입니다. 최초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투입된 작전과의 개연성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어요. 전혀 다른 이야기 두편이 이어진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에는 배트맨이 들어가는데 정작 주인공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더로 등장하는 데드샷이라는 것도 뜬금없었습니다. 데드샷을 키워주기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힘을 많이 실어 주고 있는데 영문을 잘 모르겠네요. DC의 퍼니셔로 키우려는 생각인가? 그러기에는 캐릭터의 매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는데 말이죠.

물론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액션은 잘 구현되어 있으며 (영화화 소식으로 기대했던 캡틴 부메랑은 완전 찌질이에 불과해서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만), 마지막 아캄 수용소가 개방되며 수많은 유명 빌런 - 베인, 포이즌 아이비 등등 - 들이 뛰쳐나와 경찰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등 볼거리는 많은 편입니다. 배트맨의 활약도 그런대로 적절하며, 성인 취향의 장면들도 잘 녹아들어 있고요. 디자인, 작화도 취향은 아니지만 괜찮았습니다. 이런 쪽으로의 변신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달까요.

그래도 이런 스토리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죠. 별점은 2점입니다. 저는 브루스 팀이 손 댄 시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복고적인 인물이라서 말이죠. 그래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먼저 접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2026/06/21

참교육 (2026) - 홍종표 : 별점 2.5점

교권 침해와 학교 현장의 여러 문제를 교권보호국이 해결한다는 내용의, 요새 한창 인기인 10부작 TV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제목 그대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교권 침해에 대한 참교육입니다. 교권 침해 사례들 대부분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라는 점도 몰입을 돕습니다. 실제로 저렇게 처벌받는다면 좋겠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한 화에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구성도 좋아요.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전개도 빠릅니다. 

참교육의 대부분은 나화진의 무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시험지를 빼돌리던 교사를 응징하는 에피소드나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는 에피소드 등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작전들도 펼쳐지는데 이 역시 꽤 볼 만 합니다.

캐스팅도 좋습니다. 특히 나화진 역의 김무열이 돋보입니다. 강한데다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봉근대 사무관도 인상적입니다. 언더커버 작전과 정보 수집에서 활약하는데, 교권보호국이 단순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거든요. 

다만 뒤로 갈수록 사건 해결 방식이 비슷해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결국 핵심은 나화진의 무력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 탓입니다. 참교육도 개인 정보를 확보한 뒤, 그걸 활용하여 피해를 주는 식으로 선을 넘는 부분은 좀 불편했어요. 아무리 대상이 학폭을 저지른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이건 또 다른 가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인 빌런인 조규철도 애매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봤자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국가 기관을 상대로 위협이 될 수는 없어요. 조직이나 무력도 별 볼일 없고요. 여러모로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은 약합니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 캐스팅은 대체로 좋지만, 학생 역할의 조연 배우들은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으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너무 많더군요. 특히 6화의 촉법소년 중학생들은 거의 30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어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래도 빠른 호흡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속 시원한 킬링 타임 액션물로는 괜찮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1/03

오징어게임 2 (2024) - 황동혁 : 별점 2점

전작의 성공을 기반으로 돌아온 작품. 전체 7부작입니다. 새해를 맞아 하루만에 모두 감상해버렸네요.

장점은 등장하는 전통 게임들이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5인 6각’ 게임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참가자들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짝짓기 게임’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이기심과 잔인함을 되새기게 만들고요. 특히 박용식 모자가 찢어지는 장면이나 래퍼 타노스 팀의 분열은 이러한 주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장면이라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다른 장면으로, 오영일(이병헌 분)이 방에 먼저 들어와 있던 참가자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의 잔인함을 부각시키며 이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데스게임’임을 새삼 각인시켜줍니다.
그 외 게임과 참가자들 이야기도 소소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성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과정에서의 딱지남과의 러시안 룰렛 장면도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고요.

그러나 성기훈의 계획이 전혀 치밀하지 않다는 단점은 너무 큽니다. 밖에서 오랜 시간 준비하고 큰 돈을 들여왔음에도, 다시 게임에 참가한 뒤에는 별다른 계획 없이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할 뿐이니까요. 그나마 준비했던, 고용한 용병들의 게임장 난입이라는 계획도 쓸만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임장을 찾지도 못했지만, 난입이 성공했더라도 병력 차이로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임 측의 저격수들까지 고려하면 더욱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요. 저격수의 존재나 병력 규모를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 세운 계획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해요.

이러한 무계획은 성기훈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최악의 결말로 이어집니다. 성기훈은 초반에는 참가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게임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5:5로 갈린 이후에는, 밤에 습격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면서도 희생자들을 방치합니다. 게임 주최측을 습격하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는데, 앞서의 행동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어요.
기훈의 반란 계획에 동참하는 다른 참가자들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살아남기만 하면 수억 원의 돈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던 성기훈의 말에 따라 돈을 포기하고 사지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캐릭터의 매력 또한 시즌 1에 비하면 떨어집니다. 특히 빌런 캐릭터의 부재가 아쉽습니다. 시즌 1의 장덕수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없어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줄어들었습니다. 래퍼 타노스는 배우부터 비호감이었을 뿐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가 짜증을 유발해서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연기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소규모라도 조직(?)을 이끌만한 인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임정대(송영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빚이 많을 뿐, 완력이나 지력,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서 빌런 우두머리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박수무당 역시 과장된 설정과 연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이렇게 과장된 인물들이 드라마에 꼭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코인 투자 실패자들이 많은건 세태를 반영했겠지만, 너무 많아서 뻔하다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설득력과 캐릭터의 매력 측면에서 부족했습니다. 다음 시즌은 모쪼록 짧게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2025/10/17

크레이븐 더 헌터 (2024) - J.C.챈더 : 별점 1.5점

소니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영화 시리즈 중 한 편(이자 시리즈를 끝장내버린)입니다. 좋았던 부분부터 얘기하자면, 우선 캐스팅이 훌륭합니다. 에런 테일러존슨이 연기한 크레이븐은 만화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고,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러셀 크로우가 맡은 아버지 니콜라이의 무게감과 프레드 해킨저의 카멜레온도 찌질하면서 비겁해 보이는 연기도 좋았고요. 알렉산드로 니볼라의 라이노 역시 분장과 효과는 별로였지만, 배우 덕분에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액션도 몇몇 장면은 꽤 볼 만했습니다. 납치된 동생의 뒤를 쫓는 추격씬, 튀르키예 수도원에서 동생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잠입 액션, 마지막 정글에서 사냥꾼들과 초반에 벌인 결전은 나름 박진감이 느껴졌습니다. 크레이븐이 동물적인 본능을 활용해 싸우는 장면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전해주었고요.

하지만 완성도는 낮습니다. 엉성한 각본 탓이 큽니다. 이야기 전개를 화면에서 계속 설명해 주지만,  정작 캐릭터의 내면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요. 크레이븐(세르게이)와 아버지와의 갈등 구도는 진부했고, 어린 동생을 버린 크레이븐의 과거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감정이입이 어렵습니다. 칼립소가 뜬금없이 등장해 조력자가 되는 과정도 억지스럽고요. 

크레이븐의 능력도 차별화는 되지만 전혀 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힘과 속도 모두 특별한 맛이 없어요. 그래서 액션의 스케일도 작습니다. 지구적인 위기가 닥치는 다른 슈피 히어로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요. 심지어 메인 빌런 라이노의 최후는 들소 떼에 깔려 죽을 정도로 허무하고 시시했습니다.
파워 밸런스도 맞지 않았습니다. 라이노가 주 빌런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포리너가 더 강해 보였으니까요. 그런 포리너가 칼립소의 활 한 방에 죽는 장면도 어이가 없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캐스팅과 몇몇 액션 장면은 괜찮지만, 캐릭터 매력을 살리지 못한 각본과 힘 없는 연출이 발목을 잡은 졸작입니다.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잘 알겠더군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10/04/07

슈퍼맨 / 배트맨 : 공공의 적 (Superman and Batman Public Enemies / 2009) - 샘 리우 : 별점은 2.5점

"Justice" 감상 후 탄력받아 보게된 DC유니버스 애니메이션. 제목그대로 두명의 히어로가 "공공의 적 (Public Enemy)"가 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유는 렉스 루더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히어로들을 범법자로 규정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기발한 설정에 걸맞게 내용도 아주 풍성합니다. 렉스 루더가 슈퍼맨에게 10억불의 현상금을 건 뒤, 현상금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여러 슈퍼 히어로들과 슈퍼 빌런들이 슈퍼맨과 배트맨을 덮치게 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정말 많은 슈퍼 히어로들과 슈퍼 빌런들이 등장하거든요. 캡틴 아톰, 메이저 포스, 카타나, 파워걸, 블랙 라이트닝, 솔로몬 그룬디, 고릴라 그로드, 스타파이어, 메탈로, 토이맨, 호크맨, 캡틴 콜드, 캡틴 마블, 몽굴, 가이간타.... 등등 끝없이 등장해서 팬이라면 아주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단점도 많은 작품입니다. 일단 실망스러운 작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전형적인 미국식 캐릭터나 브루스 팀 스타일의 간략화된 그림이 취향인 탓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의 캐릭터의 디자인과 작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이상하게 따라한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두 주인공의 디자인부터 어색하지만 파워걸의 지나친 거유와 같은 묘사는 분명 오버였어요. 칼라도 자극적인 원색이 많아 거슬렸고요.

그리고 괜찮았던 스토리도 마지막에 완전 막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역시나 감점 요소입니다. 지구에 혜성이 돌진해 오는데 그 상황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렉스 루더도 설득력을 잃은 초딩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탓에 이야기에 몰입하는게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갑자기 대통령이 강화복을 입고 슈퍼맨과 배트맨을 맞상대 한다니! 이게 대체 누구 머리속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는 괴리감인데 분명 인간인 배트맨이 거의 초인급으로 그려지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배트맨이 여러 초인들과 대등하게 싸워나가는 모습은 기존의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다 싶었어요. 그외에 슈퍼맨과 배트맨의 러브러브 훈훈 묘사 역시 왜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등장해서 짜증날 정도였고요. 요 묘사는 완전히 노리고 만든 것 같긴 한데 제게는 외려 거부감만 안겨주었습니다...

두 히어로의 유명한 심볼마크를 중심으로 그래픽적으로 디자인한 오프닝 화면이 너무 멋지기에 기대가 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실망스러웠던 작화와 일부 묘사 때문에 그냥저냥한 평범한 수준의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2/04

대포와 스탬프 1~9 - 하야미 라센진 : 별점 2.5점

[고화질세트] 대포와 스탬프 (총9권/완결) - 6점 하야미 라센진/미우(대원씨아이)

밀덕 만화가 하야미 라센진의 (현재까지는) 최장 장편. 2017년에 1권이 국내 첫 소개되고, 6년만에 완결을 보았네요.
다음권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개별 단편 하나 하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단팥죽을 좋아하고 엄청난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마르티나 중위, 저명한 SF 작가 키릴 대위, 엄청난 전투력의 소유자인 불사신 보이코 상사, 형무소 출신으로 밤 생활에 능통한 아네티카, 이재에 밝아 보이지만 항상 실패하는 만치코프 등 개성있는 중대원들 묘사도 좋고요.
2차대전 시기를 모티브로 하는 각종 등장 장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묘사는 작가의 덕력의 깊고 넓음을 짐작케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감상을 말하자면, 장편으로는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제국군과 공화국군, 공국군이 서로 싸우는 치열한 전쟁과 병참 부대 인물들 에피소드가 잘 어우러지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긴 이야기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서너편 되는데, 전개에 있어서 무리수를 두거나 설명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여기에 더해 빌런 카라이브라힘이 벌이는 여러 악행들은 최악이었습니다. 전쟁과 딱히 관련도 없을 뿐더러, 뭔가 있어보이지만 실상 뭔가 일을 벌일 때 마다 실패하고 정체가 드러나서 도저히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악당으로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카라이브라힘의 오른팔인 암살자 소년 유스프는 이야기의 비현실성을 더해주는데 그치고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초, 중반까지는 전투 장면도 한없이 유쾌하게 개그 분위기로 끌고가다가 마지막에 전쟁은 비극이라는 결말을 맞는데, 이를 잘 그려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작가의 작화부터가 비극에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부족한 전개 능력이 발목을 잡았어요. 비극을 그리기 위한 묘사가 죽음밖에 없는 탓이 큽니다. 마지막 권은 그야말로 정점을 찍습니다. 불사신 보이코, 도둑고양이 아네티카 등 중대 핵심 멤버들, 라드반스카 중장, 토이치로브스키, 수도사 등 중간중간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거든요. 이 죽음들도 전우 (마르티나)와 함께 했던 보이코 상사 말고는 모두 허무한 개죽음에 가깝다는건 - 대표적인게 보드카 아케조코 스페셜 공장 때문에 죽어버린 아네티카 - 수년을 함께했던 독자들이 반길만한 요소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런 개죽음이야말로 비참한 전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일 수는 있습니다만... 최소한의 드라마는 그려주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살아남아 주었으면 했던 아네티카 대신, 얌체 캐릭터 만치코프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게 정말 별로였습니다.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키릴 대위는 시력을 잃고, 마르티나는 팔을 잃고 맺어졌던 둘이 헤어지는 듯한 묘사도 별로였어요. 어렵게 맺어진 연인이 헤어지는 것도 전쟁이 불러온 비극인데 이를 왜 자세히 그려내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떤 궁지에 몰려도 상대를 죽이고 탈주했던 핵심 빌런 카라이브라힘이 도주하다 맞은 총으로 죽어버리는 것도 허무했습니다. 출하 요청을 받아 급하게 마무리한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2차대전과 밀리터리물을 좋아한다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데, 전체적으로는 다소 미묘했습니다. 이 작가는 짧은 호흡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그려낸 작품이 훨씬 잘 어울린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 역시 초중반부까지의 유쾌한 전쟁물로 끌고갔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2025/06/13

아인 1~17 - 사쿠라이 가몬 : 별점 2.5점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꽤 독특한 밀리터리 액션물입니다. 주인공 나가이 케이와 아인 테러리스트 사토 간의 대립이 핵심인데, 사토가 군사 전략과 물리적 전투 능력 모두에 특화된 사이코패스라서 경찰 특공대, 자위대 군대와 교전을 벌이는 연출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고증에 충실하게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작품 속 '아인' 설정도 독특합니다. 아인은 단순한 불사의 존재가 아니고, 죽기 전까지는 보통 인간과 똑같기 때문에 마취제나 산소 결핍, 냉동 등으로 제압 가능합니다. 하지만 죽고 나면 놀랍도록 신속하게 부활하며, 이 부활은 원래의 신체 상태를 완벽히 복원함과 동시에 어떠한 물리적 장벽도 무시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고요. 이 설정은 이야기 전개에 잘 활용되어 극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빌런 사토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지만, 단순히 광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투가이며, 리더십마저 갖춘 인물로, 작전의 구상과 실행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절단된 손을 튀겨 프라이드 치킨으로 위장하여 보안 업체로 보낸 뒤, 자신의 몸을 분쇄기에 갈아서 회사 내부에서 부활하는 침투 장면은 아인의 기묘한 설정 중 하나 - 몸이 조각나면 가장 큰 조각 기준으로 부활한다 - 를 활용하여 극대화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공군 기지를 장악한 뒤 군용기를 직접 조종하여 정부 기관을 테러하는 장면도 사토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략에 있어서 독보적인 창의성, 그리고 아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요.
주인공 나가이 케이 역시 기존 소년 만화 주인공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이타심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그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이 사토와의 대립 구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둘의 대결은 단순히 강함의 여부가 아니라 심리전과 전략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케이와 사토의 대결 구도로 집중된 전개와 결말도 깔끔합니다. 인기에 영합해 불필요한 외전을 덧붙이거나 결말을 늘이지 않고, 처음 구상된 틀 안에서 완결을 짓는 모습은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라 마음에 드네요.

"기생수"처럼 사회 풍자적 메시지가 곳곳에 녹아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체 실험에 활용하여 거액을 번 제약 회사가 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계속 근무하게 만드는 모습, 아인 차별법안을 만든 국회의원이 실제로는 아인이었다는 반전 등은 작품이 단순한 SF나 액션에 머물지 않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아인이 아니지만 테러에 가담한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한 무차별적인 메시지 전달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인이 조종할 수 있는 그림자형 존재 'IBM'은 표지에서도 적극 노출하는 등의 비중에 비하면 활용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사토의 테러 장면 몇 군데 외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종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년만화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밀리터리 액션물인 작품 분위기와도 사뭇 차이를 보이고요. 

케이와 사토의 마지막 대결도 기대에 비해 밋밋합니다. 단순히 몸통 박치기(?)로 함께 물에 빠진 뒤 기절한 사토를 체포하는 식의 마무리는, 치열한 두뇌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이 결말보다는 사토의 잘라진 손을 놓고 벌이는 테러리스트와 케이 측의 대결이 훨씬 볼만했습니다.

이외에도 '플러드 발생', '일반인의 부활' 등 작품 내 여러 떡밥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고, 케이의 친구 카이토가 지나치게 무리하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 점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의 존재라는 콘셉트를 잘 활용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빌런 사토의 존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치밀한 전개는 탁월합니다. 다만 일부 설정과 떡밥 설명이 부족하고 마지막 대결의 맥빠진 마무리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이었던 이유는 충분히 잘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22/04/14

큐브릭 게임 - 데릭 테일러 켄트 / 최필원 : 별점 1.5점

큐브릭 게임 - 4점 데릭 테일러 켄트 지음, 최필원 옮김/책세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UCLA의 괴짜 영화학도 숀은 큐브릭 매니아라는 이유로 지도교수 마스카로에게 '큐브릭 게임'을 풀어낼 적임자로 지목되었다. 숀은 스탠리 큐브릭이 직접 남긴 수수께끼를 차례대로 풀어나가야 하는 게임에 친구 윌슨, 새미와 함께 뛰어들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게임에 위험한 세력이 연루되어 있다는걸 깨닫는데....

스탠리 큐브릭이 생전에 남긴 메시지로 큐브릭의 영화를 분석해 퀴즈를 풀어낸다는 내용의 모험 미스터리입니다. 

누군가 남긴 퍼즐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진상과 우승 상품, 그리고 여러모로 크게 성장하는 주인공의 성장기와 결합되었다는 점에서는 "웨스팅 게임"이 떠오릅니다. 여러 팀이 서로 경쟁을 벌인다는 점도 유사하니까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거장의 유명 작품들 속 단서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단서를 풀어가는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는건 "다빈치 코드"와 똑같고요.

이렇게 인기 있을만한 설정과 큐브릭이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결합된 탓에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큐브릭에 푹 빠진 영화 매니아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거장이 남긴 메시지를 더듬어간다! 그럴듯하잖아요. 실제로 초, 중반부까지는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큐브릭의 영화들이 담고 있는 다양한 상징들, 특히 "샤이닝"과 아폴로 11호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고요.

하지만 이야기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상해져 버립니다. 정확하게는 게임의 목적과는 상관도 없는, 스탠리 큐브릭이 달 착륙 영상을 찍어서 조작했다는게 폭로되는걸 막기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조직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이 조직 구성원들인 마스카로와 일당들이 프리메이슨 내 '기사단' 소속으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건 대체 뭔가 싶더군요. 시대와 장소를 100년이상 착각한 듯한 설정도 비현실적이며 우습기 짝이 없고, 숀을 이용하여 게임의 정답을 알아낼 속셈이었다가 중간부터는 노골적으로 숀을 위협하는 행동도 설명이 안되는 탓입니다. 직접 나서지 않고 끝까지 같은 편인척 하다가 뒤통수를 치는게 훨씬 사실적이며 당연한 행동 아닐까요? 핵심 빌런이 하는 짓 치고는 너무 조잡했어요. 

릭의 부하로 게임을 만들었으며, 게임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루크와 리치가 마스카로를 살해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운 전개였습니다. 숀과 같이 마실 수도 있었던 와인에 독을 탔다는 발상도 어처구니 없었지만서도, 사람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었다면 왜 이중 스파이인 척 마스카로와 협조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빌런을 없애기 위한 지극히 편의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아보였습니다.

아울러 스탠리 큐브릭의 메시지를 모두 해독하면 '꿈에서 그 답을 얻게 된다'는 결말은 비현실적인걸 넘어서는 황당한 결말이었습니다. 작가의 큐브릭 신격화가 도를 넘은 느낌이에요. 정도껏 했어야죠.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판타지를 만들어버리면, 모처럼 큐브릭, UCLA 등 현실적 소재와 배경으로 이야기를 채워넣은 보람도 없고요. 이보다는 그냥 큐브릭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영화에 푹 빠진 영화 애호가 후배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꾸며낸 게임이었다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등장하는 퍼즐과 퀴즈들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단서들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꽤나 공들여 만들어졌다는건 분명합니다. 게임 도중에 말콤 맥도웰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실제 헐리우드 거물이 직접 등장하기도 하는 등 약간 팩션스러운, 논픽션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대부분 말장난, 그리고 영화 화면 내 이미지와 상징에 주목하고 있어서 동참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광팬 정도만 재미있다고 여길 정도로 말이지요. 수수께끼도 지나치게 꼬아놓아서 억지스러웠고요. 도판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별로 도움은 안 되는 수준이었어요. 차라리 음악을 활용하는게 훨씬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2001"의 가짜 OST 의 곡목 순서대로 그 곡이 사용된 영화 장면을 이어붙여 편집하면 무언가 답이 나온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실제로 숀이 이렇게 영화를 편집하기도 했었는데, 별다른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 티켓 판매 목적으로 쓰여진 작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흔해빠진 하이틴 모험 미스터리물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5/12/05

귀멸의 칼날 1~23권 - 고토게 코요하루 : 별점 2.5점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인기 애니메이션 원작 만화입니다.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딸 아이가 친구 영향으로 빠져들었길래 어떤 만환가 싶어 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인기가 있을만 하더군요. 가장 눈에 띄는 미덕은 장편 서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고 완전히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인기 때문에 전개를 비틀거나 후반부에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고, 주요 인물 모두에게 적당한 마무리를 주면서 이야기가 긴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길이도 적당한 편이고요.
덕분에 지나친 파워 인플레도 없고, 세계관 최강인 빌런 보스 무잔을 없애기 위한 귀살대의 처절한 노력도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귀살대 전원이 공격해도 정면승부로 이기는건 불가능했고, 온갖 독약을 때려 넣어야 겨우 이길 수 있었다는 전개는 아주 좋았어요. 

전투 작화도 괜찮습니다. 귀살대 대원들의 특기 호흡마다 성격이 뚜렷하고, 오니의 능력도 각기 달라 보는 맛이 충분합니다. 오니 디자인도 과하지 않은 편이고요.

주인공 탄지로는 평면적이지만 네즈코, 이누시치, 젠이츠가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설정과, 악역들 역시 단순한 악인으로 처리하지 않고 각기 다른 사연을 부여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이들을 중심로 한 짧은 개그나 SD 컷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엄청난 인기를 얻을만한 작품인가?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신선함이 없다시피한 탓입니다. 동족(부하)을 늘릴 수 있는 빌런 보스의 유일한 약점은 햇빛이라는 기본 소재부터 흡혈귀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오니가 되었지만 다른 방법(잠)으로 인육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고 낮에도 활동할 수 있는 네즈코 역시 "블레이드"의 데이 워커 설정과 똑같고요.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니가 된 악역들의 개인적인 상처나 사연도 뻔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한 연출은 "오니키리마루"를 떠오르게 하고, 주인공 파티의 구성과 성장 단계가 단계별로 등장하는 강적과 함께 표현되는 방식은 "타이의 대모험"이나 "바람의 검심" 같은 왕도 점프식 전개의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엄청난 인기는 원작보다는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덕이 컸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완결까지의 흐름이 깔끔하고, 기본기가 탄탄하며, 왕도 만화의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장점은 확실하기는 합니다. 원작도 나름의 가치는 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만 시대를 넘어서서 회자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2025/05/30

판사 이한영 - 이해날, 문성호 / 전돌돌 : 별점 2점


드라마도 제작될 정도로 인기있는 웹 소설의 웹툰화 작품입니다. 기본 설정은 뻔한 회귀물+복수극이지만, 주인공 직업이 '판사'라는 특이한 차별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정 배경 작품 중에서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가 주인공인건 처음 접해 보네요. 그 덕분에 법정물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한영이 회귀 후, 과거 판결 결과와 사건 진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면서 승승장구한다는 전개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데, 이게 꽤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선희는 전 연인 박혁준에게 스토킹당하다가 사망했는데 마침 박혁준이 보험금 수령자이기도 해서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하지요. 하지만 이한영은 박혁준과 불륜 관계였던 피해자의 사촌 김가영이 진범이라는걸 여러가지 주변 증거를 통해 밝혀냅니다. 살인 미수 누명을 쓴 서민훈 사건은, 서민훈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유성그룹의 음모라는걸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 등으로 증명하고요. 이처럼 추리물에 가까운 구성과 연출이 돋보이는 사건들이 제법 많아서 단순한 법정극 이상의 재미를 줍니다. 이한영의 판결은 대기업 회장이나 강신진 판사같은 빌런에게 무려 '사형선고'를 내릴 정도로  '사이다' 판결이라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고요.

아울러 판사가 재판을 통해 얼마나 판결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부분은, 최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접대 판사’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더 흥미로왔습니다.

이한영의 복수 서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강신진과 장태진을 무너뜨리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박철우 검사, 로펌 에스로펌 소속의 유세희, 기자 송나연 등 각각의 역할이 분명한 조력자들의 도움이 잘 그려진 덕분입니다.

하지만 복수가 구체화되어 갈 수록 긴장감과 개연성은 퇴색되어 버립니다. 대부분 사건들이 녹화나 녹취 파일 한두 개나 주요 인물의 배신으로 쉽게, 뻔하게 증명되는 탓이 큽니다.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 이런 증거와 증언 한, 두개에 무너진다는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또한 강신진과 장태진 같은 인물들이 직접 범죄에 가담하고, 치명적인 증거를 남긴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검사, 경찰도 아닌 판사가 드러난 증거 외의 것에 간섭한다는 설정부터가 말도 안되지요.
이한영이 에스로펌의 후계 구도에 간섭하고, 장유린 판사와 손을 잡는 등의 불필요한 서사도 거슬렸습니다. 에스로펌을 몰락시키겠다는 의도와 후계 구도에 간섭해서 유세희를 밀어주는 행동은 아무리 봐도 앞 뒤가 안 맞더라고요.
만화적인 과장도 지나칩니다. 법정 장면은 과장되고 고증이 부족하며, 석정호나 박철우 검사의 전투력 묘사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두서없습니다. 강력한 빌런이자 라이벌로 보였던 김윤혁은 일관되게 찌질함만 보여주다가 별다른 활약없이 퇴장해 버리고, 에스로펌의 유선철은 조력자로 나설 듯 하다가 갑자기 흑화하는데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러브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한영과 유세희, 송나영, 윤슬혜 간 관계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김진아 검사는 뜬금없이 박철우와 엮이는 식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 티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의 구성력과 법정 내외의 갈등 구조,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성과 논리 전개가 약화되면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앞부분에 여러 가지 사건을 배치해서 흥미를 자아내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흥미를 잃게 만드는 흔한  법정 드라마와 비슷했어요.

2024/08/25

인계철선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점

인계철선 - 4점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막노동으로 몇 개월 째 생계를 꾸리던 잭 리처 앞에 그를 찾는 사립 탐정 코스텔로가 나타났다. 리처는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다른 사람인 척 했는데,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죄책감을 느끼고 의뢰인을 찾아 나섰다. 알고보니 의뢰인 '제이콥 부인'은 잭 리처가 군 시절 존경했던 상관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다. 가버 장군은 심장병으로 막 사망한 상태였다. 가버 장군이 최초 리처를 찾으려 했있고,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나선 둘은, 사건이 빅터 하비라는 월남전 실종 군인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한편,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사무실을 둔 사채업자 갈고리 하비는 체스터 스톤의 모든걸 빼앗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 마릴린을 납치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챈 뒤, 스톤의 재산을 서둘러 가로채 뉴욕을 뜰 생각이었다.


1999년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초창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잭 리처가 조디와 만나 빅터 하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 그리고 갈고리 하비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탈출을 위해 제한된 상황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잭 리처와 정 반대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건 시리즈 후기작인 "10호실"과 유사합니다. 남자인 체스터가 아니라, 연약한 미모의 중년 여성 마릴린이 두뇌 싸움을 펼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요.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제법 됩니다. 잭 리처가 코스텔로의 위치를 알아낸 뒤, 사무실에서 의뢰인 제이콥 부인의 거처를 찾아내는 과정과 빅터 하비의 연로한 부모를 사기친 악당들의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장면처럼요. 
마지막에 헬기 사고 유해를 토대로 빅터 하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장면은 백미입니다. 유골들에 남은 흔적으로 죽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건 법의학 스릴러 못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가 긴급하게 수송했던 세 명의 정체에 대한 추리 - 두 명은 헌병이고 한 명은 범죄자였을 것이다 - 와, 범죄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 모두 그럴싸 했습니다. 상관을 살해하는 '조각내기' 수법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 왔지만, 이를 현실감있게 실제 범죄 소설에 녹여낸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건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 피해자의 영웅적인 죽음이 스캔들이 되므로 - 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하지만 후기작들에 비하면 재미는 사뭇 떨어집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고요. 갈고리 하비가 빅터 하비의 정체를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고 숨을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빅터 하비는 공식적으로는 동료를 살해하고 탈주한 탈영병 신세입니다. 당연히 빅터 하비라는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쳤을리가 없습니다. 빅터 하비는 그냥 행방불명 상태로 두고, 가지고 있는 거액을 활용하여 다른 신분을 사는게 당연합니다. 왜 빅터 하비의 신분과 그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체스터 스톤의 전재산을 강탈하려는 시도도 억지스럽습니다. 그에게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풀어 주식 가치를 떨어트리고, 그걸 빌미로 주식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 채권을 사서 채권자가 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뒤에 스톤 부부를 납치하고, 경찰을 두 명이나 살해하면서까지 체스터의 주식을 빼앗으려 한다는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채권만으로도 담보로 잡혀있는, 원래 계획했던 땅을 손에 넣는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채권은 회사 명의이니 자기 이름이 드러날 일도 없고요.
빌런 갈고리 하비가 사악한 인물이라는걸 긴 설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는 애초에 잭 리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일기토 장면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하비 일당은 달랑 세 명 뿐인데다가 특별한 훈련을 받은걸로 묘사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하비는 오른손까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일개 부대를 쓸어버리는 잭 리처의 다른 시리즈를 본 사람들한테는 이건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잭 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악에 대한 응징도 시시합니다. 쫓기는 공포라던가,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사이다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하비가 인질을 이용해서 주도권을 계속 잡다가, 마지막에 잭 리처가 기습해서 단 한 방으로 끝장내는게 전부거든요. 잭 리처도 중상을 입고 총까지 맞는 등,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고요. 
이런 나약함(?)을 포함해서,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한다던가, 가버 장군이 유산으로 남긴 집 때문에 정착과 취직을 고민한다던가 하는 잭 리처스럽지 않은 묘사가 많습니다. 이건 시리즈 팬으로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잭 리처 시리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잠깐 까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별점을 주자면 잭 리처 시리즈로는 1.5점이고, 그냥 범죄 스릴러로 본다면 2점입니다. 피해자 시점 전개에서의 서스펜스는 괜찮았고, 머리를 쓰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건 좋은데 잭 리처 시리즈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26/05/31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5) 사람먹는 장르 문학

추리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에는 식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식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먹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사람이 평범한 먹잇감으로 취급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좀비물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식육 열차", 그러니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 속 빌런인 푸주한 마호가니가 깊은 밤 지하철 승객들을 도살해 인육으로 만드는 이유는 직접 먹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미지의 절대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이’가 아니라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전에 소개드렸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계보를 잇는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인육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끔찍하지만, 장르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먹이로 삼는 경우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다시 재료의 정체를 숨기고 먹느냐, 대놓고 먹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대표작은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작품 속 “소일렌트 그린”은 인구 폭발과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사라져가는 미래 세계에 등장한 먹거리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지만 그 정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대사 “Soylent Green is people!”로 밝혀집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 대놓고 사람을 먹는 작품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서바이버 타입"을 끝판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먹어버린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킹답게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묘하게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두 번째는 범죄 목적으로 식인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증거 인멸을 위한 식인일 것입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은 한 남자가 거처를 떠나지 않은 채, 함께 살던 동거녀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든 사건을 다룹니다.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작 패기라는 적절한 운동, 그리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두 개의 양념병’뿐이었다는 내용이지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호러 "오메가의 성찬"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시체를 ‘먹어서’ 폐기하는 괴인이 등장하니까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 목적과 식인이라는 혐오 소재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범죄 목적은 복수입니다. “원수의 간을 씹어 먹는다”는 옛말처럼, 식인은 복수심의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카니발리즘 소론"에 등장하는 식인이 바로 이런 목적에 가깝습니다. 다만 시각은 조금 독특합니다. 범인이 동거녀를 죽이고 먹은 이유가, 그녀를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니까요.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발상입니다.

세 번째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속설이 구전되어 왔고, 실제 사건도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경성 죽첨정 단두여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간질병의 특효약이 아이의 뇌수라는 속설을 믿은 범인이,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의 사체에서 뇌수를 긁어낸 사건이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혁의 단편 "손가락"은 ‘문둥이가 아이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여자친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낙태한 태아의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극한에 이른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치료라기보다는 병적인 해소에 가깝지만, 몸과 질병, 치유에 대한 왜곡된 믿음이 식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식인을 특별한 의미 없이, 캐릭터 형성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식인만큼 ‘광기’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사실 한니발의 식인 행위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이 평범한 인간의 윤리와 감각을 초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저는 아직도 “내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가야 하거든”이라는 한니발의 대사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잔혹하게, 동시에 절대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문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식인이 캐릭터의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장르 문학 속 식인은 여러 목적과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먹이, 미식, 생존, 증거 인멸, 복수, 의학적 속설, 캐릭터의 광기까지.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더 새로운 설정이나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처럼, 제 분류로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도입된 작품이 발표되는 걸 보면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도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인육을 먹었다는 살인마 부부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네요. 과연 실화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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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0

킹은 죽었다 - 엘러리 퀸 / 이희재 : 별점 1.5점

킹은 죽었다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퀸 부자는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했다. 그들은 군수 산업계의 거물 킹 케인 벤디고의 부하들이었고, 케인의 동생 아벨이 형의 살해 협박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방법은 마땅치 않았지만 '워싱턴'의 지시도 있어서, 퀸 부자는 아벨과 함께 킹이 지배하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고, 킹은 그 섬의 독재자였다. 

엘러리의 조사로 킹에게 보내진 협박장은 킹의 둘째 동생 유다의 짓이라는게 드러났다. 유다는 발각된 뒤에도 반드시 형을 예정된 시각에 죽이겠다고 말했기에, 퀸 부자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 일하는 킹과 자기 방에 갖혀 있는 유다를 각각 범행 시각까지 직접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자정 12:00, 자기 방에서 유다는 빈 총을 밀실을 겨냥해 쏘았고, 곧이어 킹이 밀실 안에서 총에 맞은채 발견되고 마는데...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 소개되었던 작품이지요. 여름 더위를 잊어볼까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놓아버린 '국명 시리즈'와는 다르게, 그래도 읽을만했던 '라이츠빌 시리즈' 와 이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불가능 범죄 상황이 정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던 탓입니다. 밖에서 빈 총을 쐈는데, 밀실 안의 사람이 총에 맞는다니!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만화라 해도 설득력이 없어보일 설정들입니다. 군수 산업계의 거물로 전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킹 케인 벤디고와 그가 머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 있다는 어마어마한 제국에 대한 묘사는 황당함이 지나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일개 군수업자가 순양함과 잠수함 여러 척을 포함하여 육,해, 공군을 갖추고 있고, 비밀 섬은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최소 몇 천~ 몇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 같다니까요. 후대 007 시리즈의 악당들 비밀 기지 정도는 애저녁에 능가합니다. 킹이 알고보니 남미 혁명과 2차 대전을 일으키게끔 획책했다는 뒷부분 설명도 어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작품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긴 것도 문제에요.

게다가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어쨌건 킹이 밀실에서 살해당할 뻔한 트릭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007의 닥터 노 같은 빌런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썼나 싶어 조사해보니 오히려 "닥터 노" 보다도 빨리 발표되었던데, 영문을 알 수가 없군요.

기대했던 밀실 트릭 역시 별볼일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총은 밀실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상황인데, 정작 트릭은 "총을 잘 숨겨 두었었다!"가 전부거든요. 즉, 엘러리 퀸과 퀸 경감의 수색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다 말고도 충신으로 보였던 아벨, 그리고 킹의 아내 칼라 모두가 공범이었다는 진상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총을 숨겼던 장치가 술병이라는 것도 유다가 섬 곳곳에 술병을 숨겨두었다는걸 사전에 잔뜩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숨기고 있고요. 이 술병이 유일하게 밀실 밖으로 나간 물건이었다는 것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합니다. 즉, '공정함'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탐정의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워낙 커서 좋은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킹과 유다, 아벨 형제의 고향이었던 라이츠빌에서의 여러 증언을 수집하여 알아내는 동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수영을 잘해서 동생 아벨을 구해주었다는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곁다리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앞 부분에서 킹이 수영을 못한다는걸 크게 강조한 탓에 독자들도 뭔가 이상하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술병'처럼 정교하게 존재를 숨기는데 실패한 셈이지요. 그리고 킹이 과거 거짓말을 했다 한들, 그게 아벨의 살의에 불을 붙인 이유가 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유다처럼 킹이 악당이라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게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두 형제와 칼라가 손을 잡은 이유 역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가 킹을 두려워했다는 묘사는 있지만, 살인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아벨과 유다, 칼라가 다시 킹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고(이는 퀸 경감에 의해 바로 들통납니다), 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떠난 뒤 섬을 날려버리는게 결말은 제가 읽어왔던 작품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엉망입니다. 이렇게 쉽게 자살로 위장해 죽일 수 있었는데, 왜 퀸 부자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묘한 밀실극을 펼쳤을까요? 일부러 자기들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결말 탓에 밀실 트릭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유다가 범행 예고 시각에 자기 방에서 빈 총을 쏘고, 그 시간에 킹이 아내 칼라에게 총을 맞는 장면의 묘사만큼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다를 감시하는 엘러리의 시점에서, 유다의 행동이 굉장히 광기어리게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에서 정신분열자인 둘째 형이 벽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워낙 많았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고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대해 봄직했던 트릭마저도 시원치 않았으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2025/05/09

야당(2025) - 황병국 : 별점 2.5점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마약 수사의 뒷거래
모든 것은 야당으로부터 시작된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강수(강하늘)는 검사 구관희(유해진)로부터 감형을 조건으로 야당을 제안받는다. 강수는 관희의 야당이 돼 마약 수사를 뒤흔들기 시작하고, 출세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관희는 굵직한 실적을 올려 탄탄대로의 승진을 거듭한다.

한편,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수사 과정에서 강수의 야당질로 번번이 허탕을 치고, 끈질긴 집념으로 강수와 관희의 관계를 파고든다.

마약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강수,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관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상재.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얽히기 시작하는데… (공식 시놉시스)

올해 개봉해서 간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범죄 스릴러극입니다. 연휴에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흥행 성적이 이해가 되더군요. 시종일관 관객을 몰입시키는 전개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덕분입니다. 특히 이강수와 오상재 복수극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유튜브 생중계가 일품이에요. 굉장히 대담하면서도, 구관희와 조훈의 추악한 거래를 전국민에게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니까요. 생중계를 눈치챈 구관희 일당이 다급하게 블라인드를 내리는 장면은 완벽한 마무리였다 생각되고요. 이 생중계를 마지막 순간까지 감춘 구성은,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으로서의 효과를 극대화 해 줍니다. 

등장인물 설정도 좋습니다. '야당'이라는, 전혀 몰랐던 직업(?)을 주요 소재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 더해, 검사가 절대악이자 최종 빌런으로 대통령 선거의 흐름까지 뒤흔든다는 설정이 최근 현실과 맞닿아 있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구관희 검사에 대한 약간이지만 나름 복잡한 설정도 잘 그려져 있고, 강하늘과 유해진의 연기도 이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우선 이강수라는 인물의 설정이 다소 납득이 어렵습니다. ‘야당’이라는 직업 특성상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그가, 마약사범들과 경찰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져요. 아무리 구관희 검사라는 뒷배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언제 비명횡사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고, 이런 경솔한 면모는 이후 등장하는 치밀한 복수극과도 어울리지 않아서 인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대선후보 아들로 구관희를 설득해 강수, 상재, 수진의 인생을 망치고 복수심을 품게 만든 조훈은 더 최악이에요. 요즘 시대에, 대선후보 아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고 막나간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마약으로 인생을 망친 수진은 뻔한 설정이라 진부했고요.

이강수와 오상재가 꾸미는 작전도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조훈의 마약 투약 장면이 담긴 영상을 USB에 담아 야당 의원에게 전달하려다 실패하는 설정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메일이나 클라우드 같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 있는데 굳이 USB를 사용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거든요. 이건 오상재가 체포되는데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듀폰 라이터를 이용한 도청 장치 역시 마찬가지에요. 라이터가 영화 속에서 너무 자주 비춰져서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폐인이 되었던 이강수가 마약을 끊고, 체력을 키워 복수에 나서는 과정은 설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수위 높은 장면들도 다소 과합니다. 마약 복용 후 벌어지는 난교 장면이나 과도한 살인 묘사는 굳이 이 정도까지 노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장면을 빼고 수위를 조절해 15세 관람가로 개봉했다면 흥행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겁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인물 설정의 허술함과 작위적인 장치들, 과도한 수위는 몰입을 저해하지만 재미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킬링타임용 범죄극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14/02/06

Justice League: War (2014) - 제이 올리바 : 별점 1.5점

이상한 상자를 도시 곳곳에 설치하는 괴수가 등장한다. 그 상자는 일종의 공간이동 장치. 장치를 이용하여 다크사이드가 자신의 부하 괴수들과 함께 지구를 침공하며 슈퍼맨, 배트맨, 그린랜턴, 플래시, 원더우먼, 샤잠, 사이보그는 힘을 합쳐 이들과 맞서 싸우게 되는데...

간만에 구해본 DC Comics 애니메이션입니다. 브루스 팀의 Retro 배트맨 TAS의 광팬이지만,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 쪽으로 스타일이 변하길래 관심을 끊었었는데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상세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시길.

특징이라면 일종의 저스티스 리그 리부팅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히어로들이 이 작품을 계기로 뭉친다는 이야기니까요. 리부팅답게 캐릭터 설정도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면 원더우먼은 캐릭터 자체가 이전 작품들과 굉장히 다른, 그야말로 그리스 신화 속 여전사로 묘사됩니다. 그린랜턴 할 조단은 스파이더맨과 맞먹는 떠벌이고, 샤잠은 기존에 봤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변신 전 아이의 성격을 유지한 채 몸만 커진 원거리 전격마법 전용 히어로이며, 슈퍼맨과 배트맨의 복장도 변경되었습니다. "틴 타이탄스"에서나 보았던 쩌리 히어로 사이보그가 탄생과정이 그려지는 주역 히어로라는 것도 이채로웠고요.

그러나 약간의 독특함 말고는 건질 건 별로 없었습니다. 이유는 내용이 너무 간단해서 액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탓입니다. 악당이 없으면 영웅들이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로요. 정확하게 시간을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액션이 전체의 2/3 이상 되는 느낌이에요. 
덕분에 시종일관 화끈하긴 하지만, 영웅들이 모이는 것에 대한 개연성, 악당의 침략 이유 등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전개 과정에서 딱히 위기라는 게 있지도 않고요. 액션도 단순히 몸으로 부딪치는 것들이 전부라 보다 보면 지칠 정도였습니다. 지루하기도 하고요. 한 번쯤 패배해서 전열을 재정비한다던가 그런 것도 없어요. 슈퍼맨이 납치당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관객에게 긴장감보다는 "어떻게 탈출해서 악당을 혼내줄까?" 라는 생각만 들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저스티스 리그 멤버 중에서도 최강인데 당연하잖아요?

아울러 모든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격퇴하는 빌런 다크사이드가 강하기는 하지만 별다른 매력이 없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생긴 것과 능력에 비하면 양 눈을 너무 쉽게 잃는 등 액션 템포의 강약 조절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미국식, 일본식 그 어느 쪽도 아닌 듯한 작화도 그닥이었고 말이죠.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 짧고 화끈하다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브루스 팀이 복귀해서 Retro 스타일의 묵직한 작품을 다시 뽑아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