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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시효경찰 (2005) : 별점 2점


소부 경찰서 시효과에 근무하는 주인공 키리야마 슈이치로.
그는 취미가 없는 탓에 주위 사람들에게 핀잔을 들은 뒤, 시효과에 있는 시효 만료 사건들을 수사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로 결심한다.

일본의 금요 나이트 드라마 "시효경찰"입니다. 오다기리 죠와 아소 구미코 주연의 작품으로 총 9화의 짧은 양이라 쉽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에피소드별로 짧게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1편은 키리야마 슈이치로가 시효 만료 사건을 취미로 삼기로 결심하고 처음으로 다루는 사건인 "요리학교 이사장 살인사건"으로 현재 가정 요리의 카리스마라 불리우는 요리 연구가가 용의자인 사건입니다. 출산한 아이의 성장에 대한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죠.
2편은 올림픽 대표를 노리던 미녀 자매의 언니를 살해하고 당시 코치가 자살한 사건. 결정적 증거가 밝혀지는 상황이 꽤 드라마틱 합니다.
3편은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던 한 회사의 핵심 사원의 전철 추락 사망 사건. 심리 트릭이 돋보였습니다.
4편은 범죄 드라마의 서스펜스의 여제라 불리우던 여배우의 절벽 추락 사망 사건.
5편은 15년전 남성다움을 앞세워 초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록 가수 혼고 타케시가 "왕게임" 도중 키스를 하다가 사망한 "죽음의 키스 사건". 트릭이 너무 억지스러워서 실망스러웠지만 반전이 있는 설정은 효과적이더군요.
6편은 남편을 죽이고 도망쳐 시효가 얼마 안 남은 "성형수술 살인범"을 잡는 이야기. 트릭은 전무하지만 개그캐릭터 쥬몬지 하야테의 순정(?)을 앞세운 드라마가 강한 에피소드였습니다.
7편은 "헤이세이 3억엔 사건"
8편은 대학에 합격한 직후에 한 여고생이 살해당한 사건. 별다른 트릭이 있다기 보다는 개그가 난무하던 에피소드였습니다.
9편은 최종화로 천재 작곡가 살인사건을 다룬 에피소드.

뭐 이렇게 짧게 요약해 놓고 본다면 분명히 추리 드라마이기는 한데 15년이나 지나 시효가 만료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에 굉장한 트릭 같은 것이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굉장한 트릭이 있었다 할 지라도 15년이 지났기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못할테니.... 그래서인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결정적 요소도 어떻게 보면 다른 각도에서 쳐다본 맹점을 잘 파헤치는 것이라 물리적인 트릭 보다는 사건의 전개와 동기에 주력하는 모습이었으며 결론 자체를 범인의 증언에 100% 의존하고 있기에 정통 추리물 보다는 드라마에 충실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가 한개 정도는 등장함으로서 추리 매니아의 욕구를 어느정도는 충족시켜 주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오바스러운 연기가 많아서 몰입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주인공 탐정역인 키리야마 슈이치로 정도만 제대로 묘사되고 있지 거의 대부분의 주변 캐릭터들이 개그만을 노린 듯 과장되게 표현되고 있어서 짜증나더군요. 일본 드라마의 단점이라 생각했던 요소인데 만화 원작이 분명하다 생각될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는 정도가 너무 과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훨씬 낫다고 생각되더군요. 이 작품은 그야말로 "레인보우 로망스" 수준의 연기와 설정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거든요. 

나름대로는 설정이나 전개, 내용면에서 "춤추는 대수사선"을 많이 참고한 듯 한데 재미면에서는 많이 미치지 못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또한 정통 추리물의 팬이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제 기대에 미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쉽게쉽게 스쳐지나가면서 보기에는 좋다고나 할까... 그 이상은 절대 아닌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홈페이지는 꽤 잘 만든 편이니 한번 둘러 보세요. 보시고 관심이 생기신다면 가볍게 한번 즐겨 보실만 할 것 같네요. 

2008/12/25

심야식당 - 아베 야로 / 미우 : 별점 3점

심야식당 - 6점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평이 하도 좋아서 구입해서 읽게된 만화입니다.

단편 옴니버스물이며 쟝르는 드라마는 드라마인데 제목 그대로 "심야식당"을 무대로 각 에피소드마다 한가지 주제의 음식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라마인데 음식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는 전에 읽었던 "고독의 구루메"와 좀 유사한 성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만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각 에피소드가 단지 드라마인 것이 아니라 멜로드라마, 최루성 드라마에 호러와 코미디, 그리고 일일 아침 연속극 같은 이야기까지 굉장히 방대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것이겠죠. 음식을 매개체로 해서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주인공으로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들 역시 썩 재미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다시 읽게되는 담백한 매력이 있으며 아베 야로의 여백이 넘치고 부드러운 그림 역시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담백하고 짤막하다는 것이 문제였는지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결말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들이라 너무 뻔한 전개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야말로 "드라마" 인데 "일일드라마" 같은 얄팍함이 좀 눈에 거슬렸달까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배틀물이 되어가는 최근의 음식만화들과 비교해 본다면 분명 좋은 작품이긴 한데 다음권을 구입해 읽게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베스트 에피소드를 뽑아보자면 전형적인 이야기의 극치지만 시종일관 따뜻한 전개와 해피엔딩이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카츠돈" 이었습니다. 시합이 끝날때마다 "카츠돈"을 먹는 밑바닥 프로복서의 사랑 이야기인데 전형적이지만 설득력이 팍팍 넘치기도 하고, 마지막에 "오야코돈"으로 메뉴를 바꾸는 부분 역시 예상대로였지만 잘 마무리 지은 것 같아요.

2004/01/30

롱 바케이션~!

이 드라마는 일본 전통 신부복을 입은 여자가 거리를 달려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 여자는 30살의 모델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도 신랑이 오지 않자 본인이 직접 신랑이 살고있는 맨션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 하지만 약혼자는 룸메이트인 음악 교실 선생 세나(키무라 타쿠야 분)만 남겨두고 이미 짐을 싸서 나가버린 상태. 어이없는 약혼자의 배신으로 결혼도 못하고 맨션과 저금한 돈을 모두 포함한 결혼 자금까지 털린 미나미는 참으로 넉살 좋게 세나(키무라 타쿠야 분)의 집에 얹혀 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세나도 미나미의 뻔뻔하지만 밉지 않은 태도와 딱한 사정에 동거를 허락하게 되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둘은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 생활 속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허풍을 떤 사실도 들키고 서로의 성격 차이로 여러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둘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 와중에 세나가 짝사랑하는 료코와 미나미의 남동생 신지, 미나미의 모델시절 팬이었다는 프로 카메라맨 스기사키상이 등장하고 서로의 사랑이 교차하게 됩니다.

하루에 한두편씩 띄엄띄엄 보다가 드디어 다 보게 된 드라마입니다.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죠^^ (트렌디 드라마가 뭔가 하고 찾아보니 “감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하고 도시인들의 삶과 사랑을 가볍게 풀어낸 드라마” 라고 하더군요.)

내용은 위의 줄거리처럼 7살이나 연상이며 조금은 대책없고 주책없는 연상녀 미나미의 밉지않은 매력과 조금 얼빠지며 순진한, 연애에 쑥맥인 세나라는 연상녀 : 연하남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사랑 이야기입니다. 데뷰 초기의 히로스에 료코와 마츠 다카코도 조연으로 출연하고(재미있는건 히로스에 료코의 극중 이름이 “다카코”이고 마츠 다카코 극중 이름이 “료코”죠)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뻔한 내용이지만 상당히 발랄하고 유쾌한 대사들과 상황 설정 (특히 휴대폰이 없던 시대의 아날로그 연애의 맛이란!) 등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주제가 “LaLaLa Lovesong”의 매력도 역시 빼 놓을 수 없겠죠.
미나미가 홀로 서기를 하는 것 처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세나와 결혼하는 것으로 안정을 찾는다는 어거지같은 해피 엔딩은 조금 불만이지만 뭐 드라마니까....^^

하지만 무려 8년전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번쯤 볼만한 드라마였다고 생각됩니다.

PS : 그나저나…. 미나미에게 청혼하고 자기 아들까지 소개시켜줬다가 딱지맞은 스기사키상이 저는 제일 불쌍합니다. 끝까지 매너를 지키며 행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중년의 퇴장 모습까지 보여주네요….ㅠ.ㅠ

2010/09/03

백야행 1~3 - 히가시노 게이고 / 정태원 : 별점 3점

백야행 3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이 작품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명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한편입니다. TV드라마 - 영화에 이어 소설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역주행 한 셈이네요.

그런데 드라마와 너무나 다르고, 오히려 망작이라 생각했던 영화가 차라리 더 비슷하다는데 놀랐습니다. 유키호 - 료지의 관계가 마지막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러브라인도 특별하게 그려지지 않는 점, 료지는 노예와 다름없는 냉혹한 살인자 이미지이고 유키호도 팜므파탈이자 악녀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 료지 1인칭에 가까웠던 드라마에 비해 시종일관 제 3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조한 묘사 모두가요. 공소시효가 부각되지 않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범죄 스릴러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잘 결합했던 드라마와 비교한다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에 불과했으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원래 작품 안에 러브라인의 구축과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 좀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이러한 말랑말랑함을 이전에는 싫어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외려 너무 걷어낸 느낌도 드네요. 마지막에 좀 임팩트있게 감정을 한번 터트릴 것 같았는데 말이죠.

물론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소설로 놓고 본다면 나쁜 작품은 아닙니다. 좋은 작품이죠. 신용카드 사기나 송금사기, 게임 위조 등의 전문적인 분야가 섬세한 디테일로 펼쳐지기 때문에 각각의 에피소드만 가지고도 하나의 괜찮은 범죄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거든요. 드라마에서도 등장한 나미에의 송금사기 사건같은 경우는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으니까요. 단 이러한 사기나 범죄가 이야기의 중심과 상관없는 겉도는 이야기였다는 것은 문제이긴 합니다만... 또한 80년대 일본 분위기를 가득 담고있다는 것도 저같은 80년대 키드에게는 매력적인 부분이더라고요. PC초창기의 모습이라던가 '인베이더', '마리오'의 붐 같은 것들은 묘한 향수를 자아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여러모로 TV 드라마에 비하면 아쉽습니다. 흡사 "쇼생크 탈출" 영화를 본 뒤 원작인 스티븐 킹의 "사계"를 읽고 든 느낌이에요. 반쯤은 속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을 전부 파악할 수 있던 것은 좋았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먼저 감상했다면 원작은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06/07/09

퀴즈 [QUIZ] (2000)

영어강사인 다카노 마이는 어느날 한통의 메일을 받는다.

제목: 퀴즈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
힌트: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쇼가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학교나 친구들에게도 연락해보지만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고 그 후 또 한 통의, 정체불명의 메일이 도착한다.

‘아들을 데리고 있다. 경찰에게는 알려선 안 된다.
퀴즈: 경찰에게 알리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힌트: 도레미파솔라…시(시는 일본어로 죽음) 죽음?!!!


다카노 마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경시청의 유괴 전담반인 SIT의 키리코 카오루가 사건 수사 지휘본부에 투입된다. 수사 지휘자인 오자와 형사과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범인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다카노가에 잠입에 성공한 형사 시라스나와의 협력 수사로 범인의 퀴즈를 하나씩 해독해 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2000년에 방영되었던 일본 드라마입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극의 흡입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요. 이틀만에 다 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유괴범이 "퀴즈"를 보내고 경찰과 두뇌게임을 펼친다는 전개는 비스무레한 작품이 많아서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퀴즈 자체, 즉 일종의 퍼즐을 시청자가 몰입하면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하며 적절하게 사용한다는게 다른 복잡한 심리 스릴러 극과 차별화됩니다. 퍼즐 풀이의 재미로 상당한 몰입감도 전해주고요. 스토리도 단순한 유괴극으로 끝나지 않고 2중, 3중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복선 역시 많아서 정교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극의 긴박감도 일품이고요.
범인이 6억엔을 요구하여 도주하는 장면은 정말 머리를 많이 썼구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진 트릭이었으며, 이 도주극에서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의 또다른 함정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에 결말부분의 반전이 유명하던데 저도 놀랐습니다!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물론 이 반전 역시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전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드라마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거든요. 각본진의 노고가 느껴질 정도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제작진이 "케이조쿠"의 제작진 그대로라고 하는데 케이조쿠에서 인상깊었던 몽환적인 화면이나 순간순간의 교묘한 이미지 편집, 절묘한 음악과 화면의 조화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여러 장면들, 그리고 드라마의 미술적 감각은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하지가 않은 수준입니다. 이미지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비쥬얼 적으로는 만족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 드라마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인 배우들의 오버가 이 작품에서는 심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습니다.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설정은 분명 만화적이고 심리가 극도로 불안하여 환영을 본다는 설정은 불필요하다 생각되지만, 자이젠 나오미라는 배우는 그 만화적인 설정을 커버해 줄 정도의 연기력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남자 주인공격인 시라스나가 굉장히 현실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또한 트릭의 개그형사 야베역의 배우가 맡은 오자와 형사반장의 연기 역시 그간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 주는 멋진 연기와 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감 있는 연기와 더불어 심각한 극의 전개가 설정과 오버가 가득한 그간 일본 드라마의 편견을 많이 불식시켜 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의 조연도 친숙한 얼굴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만화적인 설정, 즉 키리코 카오루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너무나 불필요했기에 아쉬움이 남으며, 다카노가를 비롯한 주변 가족들의 일상 및 심리상태 묘사도 좀 오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11부작에서 요런 부분을 줄였으면 한 6부작 정도로 충분히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진범을 사주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에, 또 이 인물로 인해 반전의 충격이 많이 희석되는 것, 그리고 좀 억지에 가까운 해피엔딩은 각본진이 좀 몸을 사린 것 같았습니다. 지나치게 공포-충격요법을 전달하기 위해 군더더기 -클로즈업만 되면 눈알을 굴리는 연기를 하는 등- 가 좀 많았던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아무래도 디테일에서 좀 작위적인 연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괴당한 다카노 쇼 역의 아역배우의 연기는 솔직히 독서낭독회 수준이라서.... (뭐 7살짜리 아역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겠지만요)

뭔가 후속편을 부르는 듯한 여운도 살짝 남기는데 후속편이 없는 것으로 보면 드라마의 인기는 별로였나 보네요. 그래도 몰입력 하나는 대단한, 그리고 여름에 보면 더더욱 좋을 것 같은 서늘한 맛을 잘 전해주는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비록 방영한지는 6년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한 느낌을 주지 않는 내용과 비쥬얼로 포장되어 있으니 휴가철에 하루이틀 몰아서 보면 딱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제가인 "Toy Soldier"도 마티카의 원곡을 번안해서 부르는데 극의 내용(?) 이나 이미지와 잘 부합하고 있고 오랫만에 들으니 더욱 반가왔습니다. 

2006/01/03

타이거 & 드래곤

야쿠자 조직 유성회의 조원 야마자키는 보스의 채무 400만엔을 받아내기 위해 만담가 돈베이를 찾아갔다가 만담의 매력에 푹 빠져 만담가가 되기를 결심한다. 보스는 야쿠자에서 발을 빼는 것은 허락하지만 채무는 해결하고 끝내야 한다고 이야기하여 어쩔 수 없이 만담 수업료를 내고 그 수업료로 보스의 빚을 해결하게 하는 방식으로 돈베이의 제자가 된 야마자키는 "고토라"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낮에는 만담가, 밤에는 야쿠자라는 생활을 하며 엄청나게 소질 없지만 하나씩 만담을 자신의 것으로 해 나간다.

한편 돈베이의 둘째 아들 류지는 천재 만담가였지만 여러 이유로 파문당하고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드래곤 소다"라는 샵을 오픈하여 일하지만 너무나 뒤떨어지는 디자인 감각으로 가게는 파리만 날린다. 사실 이 가게를 열기위해 돈베이가 고토라의 조직에게서 돈을 빌렸던 것. 점차 만담과 스승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고토라는 류지가 만담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설득하려 하는데...

시간이 요새 많이 남아서 일본어 공부한다는 핑계와 함께 일본 드라마를 제법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 방영한지는 꽤 된 것 같지만 이 드라마가 최근 본 드라마 중에서 제일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타이거 & 드래곤". 제목의 의미는 주인공 야마자키 토라지 (고토라)의 "타이거"와 또 다른 주인공인 류지의 "드래곤"을 합쳐 지은 제목이죠.

드라마는 옴니버스물로 고토라가 새로운 만담을 배우게 되면서 실제로 그 만담과 유사한 에피소드가 그의 주위에 벌어지지만 결말은 당장 보여주지 않고, 고토라가 마지막 만담장("요세"라고 하더군요) 에서 실제로 그 에피소드를 자기 식 (야쿠자 식?)으로 적절하게 각색하여 만담으로 들려주며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는 방법으로 전개되는데 만담의 세계 자체를 드라마 내용에 절묘하게 조합시켜 보여주는 것에는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또한 만담 부분에서 에도시대를 왔다 갔다 한다던가 등장인물들이 만담의 주인공 역들을 소화하는 등 여러가지 재미난 장치들로 만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이요, 재미를 더해주는데에도 한 몫 단단히 해 주고 있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판소리나 창 등을 통해 실제 이야기와 고전을 짬뽕하여 각색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꽤나 어려울 것 같은 방법이지만 정말이지 기발한 센스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쿠도 칸구로라는 각본가의 작품인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본 것이 없지만 한번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개가 참 마음에 드네요. 전체적으로 우직하게 흘러가며 웃기는 부분은 확실히 웃겨주고 울릴 때는 확실히 울려주는 것도 좋고요. 딱 분위기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물론 일본 드라마를 볼때마다 약점으로 생각되는 단점을 전부 지니고 있긴 합니다. 인물의 캐릭터 성을 과도할 정도로 부각시켜 이야기의 현실성을 엄청나게 떨어트리고 짜증을 유발하며,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않아서 흡사 만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솔직히 류지의 형인 돈키치 같은 인물은 등장할 때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 단점이 없을 수는 없겠죠. 개인적으로는 수박 겉핥기 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 만담의 세계를 접했다는 것이 제일 좋았던 것 같네요. 주인공인 고토라라는 캐릭터도 정말 마음에 들었고 "에르메스땅" 이토 미사키의 코믹한 모습 역시 즐거움이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그다지 길지도 않으니 한번쯤 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럼 여러분도 "타이가 타이가 지렛타이가~!!!"

2023/07/23

N - 미치오 슈스케 / 이규원 : 별점 2.5점 (2점에 가까운)

N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뀐다!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된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

수록작들 대부분이 정통 추리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건이 많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등장한다 해도 전형적인 범죄물이나 추리물과는 거리가 먼 탓입니다. 예를 들어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은 살인, 사체 은닉과 같은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범죄와는 별 관계없는 인간 드라마입니다. 살인범이 체포되지도 않고요.

그래도 드라마들은 괜찮은 편이고 재미도 있습니다. 인간 드라마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일상계 추리물 (이름 없는 독과 꽃), 성장기 + 청춘물 + 인간 드라마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가족 드라마 + 일상계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등 선보이는 장르의 폭도 넓습니다.
정통 추리물이 아닐 뿐, 추리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특히 <<이름 없는 독과 꽃>>은 작가 명성에 걸맞는, 괜찮은 일상계 추리물이에요. 학교 무대의 가벼운 일상계라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 느낌이 살짝 들더군요. 결말은 전혀 달랐지만요.

그러나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뀐다는 광고는 과장 광고였습니다. 세계관과 무대, 등장 인물들이 겹치는 연작 단편 소설일 뿐이에요. 읽는 순서에 따라 대단히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뀔 일은 없습니다. 작가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작품이 그걸 잘 반영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기는 힘드네요. 소설이라는 매체에 적합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읽은 순서대로에요.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고등학교 야구부원 신야는 보결이지만 매일 새벽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형 히데오는 고시엔 진출을 눈 앞에 둔 결승전 직전 무리한 포크볼 연습으로 팔꿈치를 다쳤고, 그 이후 자살했다. 신야는 형에게 악질 DM을 보낸 누군가가 보란듯 형처럼 자기를 망가트릴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죽어 버려"라고 말하는 회색 앵무 리쿠짱과 주인인 소녀 나가미 지나미를 알게되었다. 지나미가 죽고 싶어 한다는걸 눈치챈 신야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한 원양어선 선원 니시키모 씨에게 반 강제로 끌려가서 함께 빛줄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꽃을 보게 되었다.


학원물이자 성장기인 작품. 거대한 꽃을 보았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속 마음을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곤충 연구원인 나는 버블 붕괴로 전 재산을 잃은 연인 다사카에게 폭행을 당해왔다. 마침내 살해당하기 직전, 갑자기 나타난 니시키모라는 남자가 다사카를 막는 와중에 먼저 다사카를 죽이고 말았다. 니시키모는 원래 자신이 다사카를 죽이려 했다며, 사체 은닉을 도와준 뒤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이 뒤를 쫓는 상황에서 다섯 줄기 박명광선이 만드는 거대한 꽃을 보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 뒤 나는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니시키모는 원래 빈집털이였으며, 다사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알게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나를 구해주었던 동네 소꼽친구였고, 주폭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를 떠올려 나를 구해주었던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나왔던 니시키모의 과거와 정체가 드러나는 작품. '나'와 니시키모의 오랜 인연이 함께 소개됩니다.
범죄물이기는 하지만, 주폭에 희생당한 가족의 생존자에 대한 슬픈 드라마라고 하는게 맞겠지요.
 
하지만 너무 생각대로 뻔하게 흘러간다는건 아쉽습니다. 자기를 한 번 도와준 정체모를 남자에게 푹 빠지고 마는 전문직 여성이라니, 너무너무 뻔하잖아요..... 조폭과 사랑에 빠지는 여의사가 나오는 20여년도 더 지난 신파 멜로물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일일 드라마도 이것보다는 의외성이 있을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아일랜드에서 호스피스로 일하는 가즈마는 일러스트레이터 홀리의 터미널케어(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를 맡았다. 홀리의 착한 딸 올리아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기 위해 가즈마에게 시 글래스를 찾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올리아나와 홀리의 언니 스텔라 모두 시 글래스를 찾았다. 그러나 두 개의 시 글래스 중 한 개는 가즈마가 만들어서 놓아둔 것, 또 하나는 원래 스텔라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시한부 인생, 소원을 비는 아이템 등은 <<마지막 잎새>>와 비슷합니다. 착하디 착한 사람들만 나온다는 것도요. 착하기 그지없는 올리아나에 대한 묘사가 특히 빼어났습니다.
지금 읽기는 다소 낡은 소재이지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이런 서정적인 작품도 쓸 수 있는 작가라는걸 새삼 깨닫게 해 주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이름 없는 독과 꽃>>
중학교 교사 요시오카 리카는 펫 탐정일을 시작한 남편 요시오카 세이치와 파트너 에조에 마사미와 함께 외딴 섬에 개를 찾으러 갔다가 3학년 학생 이이누마 가즈마를 발견했다. 가즈마는 섬을 찾은 이유는 독 미나리를 캐기 위해서였다. 리카는 가즈마가 어머니의 사고사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허튼 짓을 막기 위해 뒤를 쫓는다.

독미나리를 왜 캤는지?에 대해 조사해나가는 일상계 추리물. 추리 자체는 대단한게 없는데, 중학교 선생과 학생이 얽혔을만한 작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세이치가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너무 깹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급전개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울러, 책 뒤 해설에서는 결말에서 사고사한건 펫 탐정들이 찾은 개로 착각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개가 죽었다면 에조에가 리카에게 자책하며 꾸준히 돈을 보낼 이유가 없거든요. 더 결정적인 증거는 '상황을 모두 전해 들은 세이치의 부모도' 나를 벌하지 않았다는 묘사입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남편 요시오카 세이치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저는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읽는 순서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전대미문의 체험판 소설이라고 광고하는건 무리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중학교 영어 교사를 하다가 은퇴한 '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어 회화 실력 부족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잔돈을 구걸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빼어난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매개체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 어머니가 죽기 전 말했던 무언가에 대해 들었다. 소녀는 '무언가'를 발견해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소녀 몰래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귀국 후 조사하다가 알게된 건 소녀의 죽음이었다. 소녀는 상자 속에 무언가가 없어졌다며 패닉에 빠져 뛰쳐나갔다가 버스에 치였다고 했다.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에서 착하디 착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소녀 올리아나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 이유도 "아이소어호리브르...."라고 말한걸 "I saw a horrible"이라고 이해했던 영어 교사 -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 성실한 영어교사 니이마 선생 - 의 무식한 착각 탓이라니 더 입맛이 씁니다. 올리아나는 사실대로 "I saw a holy-blue" 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남의 소중한 상자를 몰래 열어본 행동은 용서가 안되고, 아무리 일본인이라고 해도 - 그것도 영어 교사가 - '리' 발음과 '러' 발음을 헛갈린다는 것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정말 나비가 들어있있는지, 니이마 선생은 보지 못했는데, 올리아나의 믿음에 의한 환각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해서 답답했습니다.

본인이 만든 감동을 본인 스스로 무너트리는 이런 작품을 왜 썼는지도 모르겠고,. 이 작품만 읽으면 내용 이해가 힘들다는 점에서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도시에서 50년 만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자키 부부가 살해당한 현장에서 사라진 개를 찾기 위해 여형사는 펫탐정 에조에를 고용했다. 꼬박 이틀에 걸친 수색 끝에 에조에는 사라진 개 부차티를 찾아냈다. 하지만 개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알고보니 살해범은 이웃집의 히키코모리 청년 게이스케가 수상하다고 했던 부부의 아들 다카야였다. 여형사는 게이스케의 어머니로 아들이 유죄라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개를 찾아 나섰었다....

<<이름 없는 독과 꽃>>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여형사가 아들을 의심한 나머지 증거를 인멸하려고 개를 찾아 나섰다는 동기가 밝혀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자책하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이런 부분에서 다 큰 어른이지만 의외로 성장기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이스케와 다카야 증언과 상황이 뒤바뀌는 일종의 반전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헐겁습니다. 다카야가 했던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는걸 에조에가 초반에 눈치채지 못한 이유부터 석연치 않아요. 개와 함께 했던 유년 시절 경험으로 개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자인데다가, 펫 탐정일을 하면서 쌓아온 경력도 있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마지막 장면을 보면 거짓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초반에 무의미하게 반대 방향을 돌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범인이건, 개를 없앤다고 증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겁니다. 범인이 체포된 이유도 개와는 무관했고요. 평범 이하의 범작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수록작의 시간대별 순서는 아래와 같은데, 이대로 읽는게 가장 좋아보입니다.
  •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이름 없는 독과 꽃>>
  •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제가 4를 가장 먼저 읽은 이유는, 에이스였던 형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에서 <<Touch>>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2022/07/09

사명과 영혼의 경계 - 히가시노 게이고 / 송태욱 : 별점 3점

사명과 영혼의 경계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키는 아빠 겐스케가 대동맥류 수술을 받다가 죽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의사가 될 결심을 했다. 데이도 대학 의대를 졸업한 그녀는 아빠를 수술했던 니시조노 교수 팀에 소속되었고, 이후 엄마 유리에와 니시조노 교수가 재혼한다는 사실과 아빠가 경찰이었을 당시 추격하다가 교통 사고로 사망한 소년이 니시조노 교수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 죽음에 더 큰 의심을 품게 되었다.
한편 데이도 대학 병원의 간호사 노조미와 교제하고 있는 전자 기술자 나오이 조지는 노조미로부터 병원에서 아리마 자동차의 사장 시마바라 소이치로가 곧 수술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모종의 계획을 시작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의학 드라마이자 범죄 스릴러물. 의학 드라마는 유키와 니시조노 교수 사이의 이야기에서 주로 등장합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종합병원'같은 의학 빙자 연애물같은건 아니에요. 유키가 겐스케가 죽은게 정말 의료 사고였는지, 아니면 니시조노 교수가 유키의 엄마 유리에와 불륜 관계라서 아빠를 실수로 위장해 죽인건지, 아니면 아들의 복수였는지에 대해 추적하면서 독자를 고민에 빠트리기 때문이지요. 동기가 많은 탓에 진상도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 여러가지 동기를 쌓아나가는 솜씨는 확실히 잘 나가는 작가다왔습니다.

의학 드라마로서의 가치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야기 핵심이 의사로서의 '사명'인 탓입니다. '사명'은 유키의 아빠 겐스케의 입을 빌어 "인간은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개를 통해 니시조노 교수는 그의 사명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게 밝혀지게 됩니다. 어차피 겐스케 죽음의 진상은 유키가 절대로 알아낼 수 없었을 터라,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전개와 결말 모두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끔 잘 그려지고 있어요.
이를 의학 드라마라면 반드시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줄 '위험한 수술의 성공' 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조지의 테러로 수술의 성공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온갖 노력을 짜내어 시마바라의 수술을 이어가는 과정은 왠만한 모험 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과 스릴을 가져다 주는 덕분입니다. 이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 의사가 사람을 일부러 죽일리 없다는 설득력도 갖추면서요.

그리고 시마바라가 수술받을 때를 노려 병원을 정전시키는 조지의 계획이 펼쳐지는 부분이 범죄 스릴러물 부분인데, 여기서는 탁월한 장르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실력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조지의 계획이 아주 그럴듯 했던 덕이지요. 처음에는 단순히 심폐 소생기 전원만 건드리는 수준으로 보였지만, 나중에 조지가 일으켰던, 혹은 행했던 소소한 사건들 모두 - 대표적인 예는 처음에 기묘한 협박장을 보냈던 이유입니다. 자신의 계획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가 목적이었지요. -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계획 역시 굉장히 스케일 크고 잘 짜여진 것이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나나오 형사가 협박범의 진짜 목적은 시마바라 소이치로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벌여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추리적인 부분들도 볼만했습니다. 나나오 형사는 범인의 동기를 밝혀내기 위해 아리마 자동차의 과거 과실을 조사했고, 단순히 과실 피해자가 아니라 과실로 인해 수술 골든타임을 놓쳤던 다른 피해자의 애인이었던 조지가 드러나게 되거든요. 과실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용의 선상에 오르지도 않았었는데,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유키가 조지의 얼굴을 살짝 보고 기억하고 있었다가 이를 나나오 형사가 가지고 있던 사진을 우연찮게 보고 떠올린다는 작위적인 요소는 조금 거슬리기는 했습니다만, 이 정도는 봐 줄만 하지요.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조지가 본인 이름으로 숙박했던 호텔을 경찰이 덮쳤음에도 현장에 없었다는 식의 두뇌 게임도 볼만 했습니다. 경찰에게 정체가 발각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본명으로 추가 예약을 해 놓았을 뿐, 조지의 은신처는 따로 있었다는 공격을, 범인이 호텔 예약 시 특별한 '층'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통해 그 호텔은 저층에서는 데이도 대학 병원이 보이지 않으니 이건 위장이다! 라고 나나오 형사가 받아치는 식인데 재미있었어요.
조지가 전자 기술 전문가로서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장치들도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고요.

그러나 조지의 계획도 생각해보면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조지가 노조미를 유혹해서 사귀게 된 것은 언젠가 데이도 대학 병원에서 시마바라 소이치로가 수술을 받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 처럼요. 그리고 노조미가 수술실에 들여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속셈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간호사를 유혹하려면 시간이 없잖아요. 또 수술 중 정전을 일으키는 테러를 일으킬 수 있었다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쓰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폭탄 등을 설치할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시간이 필요한 계획을 세우다 보니, 결국 노조미가 감정에 호소하자 복수를 포기하고 말았으니까요. 여러모로 구멍이 많은 계획이었어요.
의학 드라마 부분에서 니시조노 교수가 유키의 엄마 유리에와 재혼을 앞두고 있다던가, 니시조노 교수 아들 사건과 같은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유키와 니시조노 교수간 갈등이 약해질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이런 설정에 대한 분량도 필요 이상으로 길다고 느껴졌고요. 마지막에 조지와 노조미의 감동적인 엔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범죄 스릴러 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명성에 값하며, 의학 드라마로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가져다 준다 생각됩니다.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드라마도 한 번 보고 싶네요.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데 어떻게 구현했으려나....

2025/10/11

정체 (2024) - 후지이 미치히토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가족 살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카부라기는 자해 후 병원 이송 중 탈옥에 성공했다. 형사 마타누키는 카부라기를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카부라기는 계속 도주하다가 결국 '아오바 요양원'에서 발견되었다. 카부라기는 출동한 경찰들에 포위되자 요양원 동료 마이를 인질로 삼았다. 피해자 유족 요시코로부터 증언을 얻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형수가 탈옥한 뒤 수백일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소메이 타메히토의 소설이 원작이네요.

이야기의 중심은 사형수 카부라기의 도주극입니다. 카부라기가 이송 중 구급차에서 도주한 뒤, 일본 각지를 전전하며 체포의 위기를 피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합니다. 변장과 마스크를 이용해 사람들 속에 섞여드는 모습도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요. 또 도주 과정에서 카부라기가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도 큰 울림을 줍니다.
드라마적으로도 잘 구성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도 안정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의 도주극은 진범을 밝혀내는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중반 이후에 또다른 일가족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체포되면서 카부라기가 누명을 썼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반전도 없어서 관객 입장에서는 맥이 빠집니다. 요시코의 증언만으로 누명을 벗는다는 점도 시시했고요. 
때문에 초반의 스릴러적 긴장감은 뒤로 갈 수록 느슨해지고, 드라마적 색채가 강해집니다. 이는 요시코의 행방을 알아내고 증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부라기의 노력이 그리 잘 묘사되지 못한 탓도 큽니다. 솔직히 마지막 증언 요구 장면은 '강요'로 보여서 영 별로였어요.

카부라기가 마지막 체포되는 모습은 앞서의 도주극과는 다르게 허술합니다. 오사카 공사장이나 사야카의 집에서 도주 후 변장할 때는 관객도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요양원에서는 마이가 잠깐 찍어 올린 SNS로 덜미가 잡힐 정도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탓입니다. 주연 요코하마 류세이 문제도 커요. 정체를 숨기고 도주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잘 생겼으니까요. 보다 평범한 외모의 배우를 기용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또 카부라기를 돕는 주변 인물들의 동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마이는 자기 부친도 누명을 썼다는 이유라도 있지, 오사카 공사장에서 만났던 카즈야(점프)는 카부라기를 경찰에 신고했었고, 사야카는 그냥 카부라기 얼굴에 반했을 뿐인데 왜 끝까지 믿고 따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성장했다는 장면은 완전히 사족이었고요. 이들보다는 상부의 명령에 의심을 품은 채 카부라기를 추적하는 마타누키 형사의 내적 갈등을 더 잘 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촬영과 연기 모두 뛰어난, 잘 만든 영화이지만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는 다소 부족합니다. 기대와 달리 드라마적인 무게가 강했어요.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모를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2009/05/07

난파선 메리디어 호 - 하몬드 이네스 / 이태주 : 별점 3점

난파선 메리디어 호 - 6점
하몬드 이네스 지음, 이태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태풍이 몰아치던 밤, 조난 사업을 막 시작한 존 샌스는 난파선 메리디어호의 구난을 위해 어렵게 탑승했지만 난파에 휩쓸렸다. 메리디어 호에 남아있던 유일한 승무원인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폭풍우를 뚫고 어렵게 생환한 그는, 메리디어호와 관련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 의심받는 기디언 패치 선장을 도와 다시 한 번 좌초된 메리디어호로의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는데...

영국 작가 하몬드 이네스의 유명 고전 해양 모험 활극입니다. 이번 황금연휴 기간 동안 읽었습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존 샌스가 난파선 메리디어 호 구조를 위해 탑승했다가 퇴선하지 못하고 조난당한 뒤, 배에 남아있던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메리디어호를 움직여 폭풍우를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되는게 1부입니다. 2부는 메리디어 호의 난파에 대한 법정 공방이고요.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기디언 패치를 도와 존 샌스가 다시 메리디어호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3부로 마무리됩니다.

배만 해도 거대한 화물선 메리디어호를 비롯하여 요트, 보트 등 엔진, 돛, 인력(노?)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고, 조난의 종류 역시 난파선, 무인도 등 폭풍우 속 가혹한 바다를 무대로 생각나는 모든 곳을 건드리니 그야말로 해상 조난물로는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는데, 이에 걸맞게 바다와 항해, 폭풍우와 해난 사고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상세하며 박진감도 넘쳐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상세한 묘사는 특히 압권입니다. 저자가 정말 뱃사람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요. 그 중에서도 지독할 정도의 폭풍우 묘사는 정말이지 읽다가 멀미가 날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른바 메리디어호에 관련된 음모 역시 설득력 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워낙 바다에 대한 묘사가 많은 탓에 좀 묻히기는 하지만, 한정된 지면 안에서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잘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쉽고, 이 음모에 따른 주인공들의 절박한 행동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특히 우직하고 말없으면서도 신념에 목숨을 거는 기디언 패치 선장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장의 전형을 제시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묵하면서도 멋진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바다 사나이 간지 가이~ 였습니다. 중간중간에 샌스에게 떼를 쓰는 장면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드라마는 좀 약한 편입니다. 법정 장면이 주로 펼쳐지는 2부를 제외한 1부와 3부는 패치 선장과 샌스, 2명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갈 정도로 인물 관계에서 발생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거든요. 나머지는 전부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투뿐이니까요. 드라마적으로, 추리적으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법정 장면에서도 이른바 "음모"라는 것이 단순하게 주인공들에 의해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보다 긴박감 넘치게 음모를 숨겨가며 법정 드라마 식으로 처리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울러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면서, 끝내 메리디어 호의 조난 위치를 숨기고 샌스에게 난파된 메리디어 호로 데려가 줄 것을 요구했던 패치 선장의 행동이 드라마의 큰 키인데 여러 명이 목숨을 걸만한 비밀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살인은 무거운 범죄이지만, 12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대형 해난사고에 비하면 비약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추리적 요소는 없어서 조금 감점합니다. 음모도 설득력 있고 주인공들의 행동도 타당하긴 한데 세련됨이 좀 떨어졌달까요? 그래도 해양 모험 활극이라는 주제와 권선징악적인 전개 등에서 알리스테어 맥클린 - 그 중에서도 꼽자면 "황금의 랑데뷰" - 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경쾌하고 잘 쓰여진 작품으로 모험 활극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동서추리문고 치고는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가격도 착하니까요.

덧붙여, 영화에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소재라 생각되어 잠깐 조사해보았더니 역시나더군요. "The Wreck of the Mary Deare (1959)"로 게리 쿠퍼와 찰턴 헤스톤을 투톱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이름값에 비해 평점은 별로네요. 대충 보니 원작보다 권선징악적 이야기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각색한 게 실수로 보입니다. 선장 캐릭터를 더 강화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2008/08/27

The Lost Room (2006) : 별점 2.5점

형사 조는 딸과 함께 살아가는 이혼남으로 우연히 한 모텔 열쇠를 입수하게 된다. 그 열쇠는 어떤 문이건 모텔 방으로 연결하며, 그 모텔 방에서 어디서든 갈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의 열쇠.
그러나 열쇠를 노린 위즐이라는 악당 때문에 딸이 모텔 방에서 실종되며, 그는 딸을 되찾기 위해 모텔 방과 열쇠, 그리고 모텔 방에서 나온 신비한 "물건" 들에 얽힌 사건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추천을 받아 보게된 미국 드라마입니다. 2년 전 드라마네요. 미국 드라마 치고는 상당히 분량이 짧아서 보기는 편했지만 추천에 비한다면 썩 잘 된 드라마로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정체불명의 모텔방과 여러가지 물건들의 설정은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도라에몽의 "어디서나 문"같은 판타지적인 물리관을 현실세계, 그것도 진지한 세계에 결합시킨 독특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고 시작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죠. 아이를 잃고 누명때문에 경찰에게까지 쫓기게 되는 주인공은 전형적인 "수렁에 빠진 주인공" 류의 이야기였지만 여기까지도 괜찮았습니다. 그만큼 재미있고 효과적인 설정이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재미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원래 경찰이었던 동료 루버가 물건을 접한 후 이상한 종교(?)에 빠지는 과정이나 골동품상 칼이 어떻게 되는지 등 세세한 부분에서 너무 대충 넘어가는 등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연에 의한 전개도 너무 많고요. 게다가 가장 궁금했던 물건들, 그리고 소유자에 대한 진상도 결국 밝혀지지 않아서 실망스럽네요. 예를 들자면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형에게 누명이 씌워진 이유나 배경, 음모는 무시한채 석호필이 형이랑 탈옥하고 드라마가 끝나버린 상황같다고나 할까요?

이야기의 결말도 약간 애매하게 끝내는 등 이후 시리즈를 예상한 듯 한데 속편(요새말로는 두번째 시즌이랄까요) 소식이 없는 것은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오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저같이 실망한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군요. 속편이 나온다면 대충 넘어갔던 부분이나 진정한 물건과 소유자의 정체 등이 밝혀지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올지, 나온다 해도 보게될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야말로 용두사미같은 작품. 별점은 2점 반 주겠습니다.

2009/01/19

심야식당 2 - 아베 야로 / 미우 : 별점 3점

심야식당 2 - 6점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1권을 읽고 올린 리뷰에서는 2권은 건드리지도 않을 것처럼 썼는데, 서점에 가니 사게 되더군요. 확실히 제 취향이긴 해요. 부드럽고 담백한 그림과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가 어우러진 짤막한 단편 모음이니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지요.

읽고난 느낌이라면 일단, 이번 2권은 매 이야기마다 요리와 그 요리에 관계된 에피소드를 펼쳐나간다는 점에서는 1권과 똑같지만, 인간관계에 따른 드라마가 많다는 점이 좀 다르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작가가 연재를 계속하며 "인간관계" 라는 부분의 디테일을 잡아내는데 주력하기로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권과 2권의 차이를 쉽게 이야기하자면 1권은 "일일드라마" 느낌, 2권은 "휴먼다큐"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2권은 드라마가 많아서인지 1권에 비하면 좀 속이 들여다보이는, 뻔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많은 쟝르를 포괄했던 1권에 비해, 전체적으로 이야기들이 비슷비슷하고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쉽게 간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도 어차피 내용적인 부분에서의 기대보다는 아베 야로의 여유가 넘치는 그림때문에 구입한 책이기에 만족합니다. 그림만으로도 별점 3점 값어치는 하는 만화니까요.

마지막으로 2권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개인적으로 뽑는다면, 교통경찰을 정년 퇴임한 타키자와와 과거 폭주족 출신의 여성 블랙루즈의 에리가 다시 만나는, "황혼유성군"의 한 에피소드같지만 훨씬 따뜻하고 여유가 넘치면서도 유머러스한 "바삭바삭한 베이컨"을 꼽겠습니다. 2권은 전체적으로 에피소드들 수준과 내용이 비슷하기에 뽑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요.^^

2019/05/25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최형국 : 별점 2점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4점
최형국 지음/인물과사상사

무예사, 전쟁사 전문가인 저자가 각종 드라마와 영화 속 무인과 무기, 전술 등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분석한 미시사, 무예사, 전쟁사 서적입니다.

책의 핵심인 오류 분석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조선 시대의 기본 무기는 환도이며 이를 보관할 때에는 띠돈을 활용하여 벽이나 기둥에 걸어놓았다는 첫 단락부터 새롭더라고요. 저 역시 각종 사극에서 양날검을 좌대에 가로로 올려놓는 거치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일본도 거치 방식이라는군요. 잠깐 훝어보고 구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이 도입부였습니다.

그 외에도 잘 몰랐던, 착각해왔던 내용이 많은데, 몇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조총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조총을 재장전 동작 없이 연발 사격하는 장면은 당연히 말도 안되며, 조총 사격 시 화승에 불을 붙인 후 기다렸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도 엉터리라는군요. 조총은 조준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면 불이 붙은 화승이 바로 위 쪽 화약접시 속으로 들어가 불을 붙여 탄환을 발사하는 구조였으니까요.
조선 시대 화포가 불을 뿜을 때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는 장면도 역시나 고증 오류입니다. 당시 포탄은 폭발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가 접해왔던 대장끼리의 일기토가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를 알려주는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KBS "정도전"에서 이성계와 최영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진을 예로 들며,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이 서로 총을 들고 1:1로 대치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하는 식인데 엄청 와 닿더라고요.
이런 내용 중 최고는 기병 전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을 타고 전선으로 달려온 후 말에서 내려 칼을 뽑고 적을 향해 돌격하는 드라마를 예로 들며, 기갑부대 병사들이 탱크를 타고 전선으로 돌진한 뒤 탱크에서 내려 소총을 들고 백병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는데 아주 그럴듯하죠?

이러한 분석과 함께 실제 고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아주 상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투구, 갑옷, 군장은 물론 기본 무장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어요. 분명 다른 책에서도 본 내용이지만 투구 끈을 매는 방법이라던가 군장 속 내용물과 같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덕분입니다. 주요 무기에 대한 소개도 상세하긴 마찬가지에요. 활과 칼의 패용 방법이라던가 화살 깃의 수가 몇개인지 등 그 범위와 항목도 다양하며 깊이 역시 상당한 편입니다. 심지어는 각종 전술까지 소개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도판도 저자의 서술에 적합하도록 잘 짜여져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활 쏘는 방식이 양궁 방식이라던가, 사극 속 말 안장은 모두 현대화된 서양 안장이라는 등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의 분량이 많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실제로 고증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 제시도 아주 확실한 편은 아니고요. 그냥 재미삼아 보는 글이라면 나쁘지 않은데 역사서로 보기에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이야기에서 천편일률적인 저자의 글 솜씨도 문제입니다. 사극의 문제를 지적하는 톤 자체가 일관되어 지루한데 이왕지사 고증 오류 가득한 사극 드라마를 비난할 거라면 훨씬 신랄하고 맛깔나게 풀어내는게 재미 면에서는 훨씬 나았을거에요. 지금 문체와 문장은 이도저도 아닌 듯 하여 실망스러웠습니다. 책 보다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풀어낸다면 훨씬 매력적인 컨텐츠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

2014/06/17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드디어 최신권까지 따라잡았습니다! 

이번 권에는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한 개를 빼고는 모두 일상계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약간 쉬어가는 느낌도 듭니다. 덕분에 편안한 맛도 나쁘지 않았고요. 반면 추리적인 정교함이나 짜임새는 부족했고, C.M.B에서 기대해봄직한 박물학적인 지식 공유는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도 충분히 볼만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타츠키가 완벽하게 공기화되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타츠키가 "Q.E.D"의 토마에게 첫눈에 반해서 가나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한, 어떻게해도 구제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신라와 정신연령 등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마우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탓에 신라하고는 커플로 엮기도 어려우니까요. "Q.E.D"는 그래도 커플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가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등장하는데 "C.M.B"는 점점 꼬마 천재 추리극에 머무는 듯 하여 아쉽습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뜻밖의 보물"

항상 뭔가 사건을 가져오곤 하는 동급생 친구(네코아리였나요?)의 부탁으로, 그의 사촌이 거금을 빌려가 짓고 있는 펜션에 숨어 있다는 보물을 찾는 이야기.

사촌이 펜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보물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던 아가씨가 그 시골 마을로 귀향했기 때문입니다. 보물의 존재보다는 이러한 사촌의 사업 동기를 밝혀내는걸 좀 더 추리적으로 꾸미는게 좋았을 겁니다. 보물은 그냥 핑계일 뿐, 없어도 바뀔 게 없으니까 말이죠.

또 보물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는 맥락상 부동산 아저씨는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목욕탕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맥을 끊어야 했을 테고, 그러면 언젠가 밝혀졌을 텐데 괜히 이야기만 복잡해졌어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드라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으며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 역시 마지막 버섯 이야기가 잠깐 등장하는 것 말고는 없어서 감점합니다.

"백 스토리"

"활피가죽"으로 장인이 만든 가방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맞추는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

온갖 지식에는 통달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신라가 패배한다는 드라마가 제법 괜찮은 소품입니다. 그동안 건방진 꼬마 아이라는 인상이었기에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네요.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서 어른들의 결말(가방 판매)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가죽 무두질 방법과 단테의 신곡에 대한 정보 제공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적으로는 눈여겨볼 부분이 전무하지만 깔끔한 완성도는 인상적으로, 이번 권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아침, 8시 13분"

아침 출근길마다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 여성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

기묘한 상황 설정과 여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트릭은 나쁘지 않으나, 용의자가 명백한 실종 사건을 연극으로 꾸며서 진상을 밝혀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이었어요. 게다가 신라에게 의지해서 작전을 꾸미다니 이래서야 경찰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종된 여성의 이름으로 장난친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이번 권 최악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향목"

향도를 배우는 남성이 유령을 목격한 사건의 진상.

간단한 장난에 가까운 일상계 소품으로 두 개의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유령 목격담과 향목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죠.
두 가지 모두 괜찮았습니다. 유령 목격담은 인간 심리를 잘 활용한 드라마인데, 최초 목격담은 거짓이었다는걸 제대로 설명해 주면서 두 번째 목격담의 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향목의 정체도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과 함께 의외의 진상을 밝혀주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이렇게 사용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딱 한 가지, 두 번째 유령 목격담이 과연 잘 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조금 들기는 하나,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이야기였어요.

2024/11/20

이자카야 신칸센 (2021) - 별점 2.5점

"이자카야 신칸센"은 2021년부터 방영된 일본 드라마로, 보험회사 직원 타카미야 스스무가 출장 후 신칸센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현지의 음식과 술을 테이크아웃하여 기차 안에서 즐기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제츠메시 로드"와 마찬가지로 티빙을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향토 요리를 소개하며, 신칸센이 마치 이동하는 이자카야로 변신하는 독특한 설정이 특징으로 신칸센 안에서 현지 음식을 즐긴다는 발상은 기존의 음식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며, 신칸센과 음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합니다. 또한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술, 향토 요리를 상세히 소개하여 음식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짧은 러닝타임도 강점입니다. 약 23분 내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간단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드라마라는게 거의 없으며 매 에피소드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청자에 따라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라고는 원하는 음식과 술을 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긴다거나 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 '이자카야 신칸센'을 주인공 타카야마 스스무에게 전수해준 선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정도만 신선했을 따름입니다.
신칸센 내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배경의 변화가 적어 시각적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신칸센으로 오가는 지역 역시 우츠노미야 역, 신아오모리 역, 센다이 역 등 비슷한 장소가 반복해서 등장해 단조롭습니다.
음식과 술 역시 촬영도 좋고, 거의 다 맛있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구해 먹기 힘든게 대부분이라는 점도 좀 아쉬웠습니다. 맛 설명도 부족한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카야 신칸센"의 설정만큼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로 현지화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선술집 KTX"라는 이름으로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의 여정을 다룬다면 어떨까요? KTX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각 역별로 구성된 음식, 술, 디저트를 즐기는 내용으로요. 부산역에서 출발해 테이크아웃할 메뉴를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합이 떠오릅니다.

  • 술: 부산역에서 프리미엄 막걸리 '복순도가'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산역 매장에서만 파는 상품이 있으니, 술 좋아하는 분이라면 놓치면 안됩니다.
  • 음식: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삼진어묵 매장이 부산역 근처에 있지요. 바삭한 어묵 고로케, 쫄깃한 치즈 어묵, 고소한 맛의 야채 어묵이 특히 추천할 만합니다.
  • 디저트: 부산의 유명 빵집인 '비엔씨 도넛 부산역점'에서 판매하는 파이 만주가 유명합니다.

다른 지역은 제가 내려보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구성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11/24

죽음의 사냥개 - 애거서 크리스티 / 정성희 : 별점 2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해문출판사
드디어!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 전권을 완독했습니다.
이 작품집은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코난 도일경처럼 말년에 심령현상에 심취했던 여사의 취향을 반영하듯 대부분 심령 호러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차와 쟝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음의 사냥개 - 심령 호러 (?)
  2. 집시 - 심령 호러(?)
  3. 등불 - 심령 호러
  4.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 심령 서스펜스 (?)
  5. 목련꽃 - 심리 드라마
  6. 개 다음에 - 드라마
  7. 이중 범죄 - 추리
  8. 말벌 둥지 - 추리
  9.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 심리 서스펜스
  10. 이중단서 - 추리
  11. 성역 - 추리
그런데 호러와 서스펜스를 표방한 대부분의 작품이 21세기 독자의 시각으로는 심심한 편입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해주지도 않으면서, 공포의 실체조차 두리뭉실 표현하는 점은 역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고요. 한마디로 말해 썰렁했어요.
포함되어 있는 4편의 추리물 역시 단편집 전체의 성격을 반영하듯 전체적으로 시시한건 마찬가지입니다. 포와로가 활약하는 "이중범죄"와 "말벌 둥지", "이중단서" 3편 모두 대단한 사건다운 사건없는 영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촌극 느낌이고, 마플양의 "성역" 역시 추리물적인 성격도 적을 뿐더러 마플양 작품 같지도 않거든요.
트릭적으로 본다면 그나마 "이중범죄" 쪽이 제일 본격적인 추리물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닥 신선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으며 "이중 단서"는 로사코프 백작부인이 처음 등장하여 포와로와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만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전체적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으로 보기에는 기대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차라리 심령 미스터리 쪽으로 가려면 더 화끈하고 더 무섭게 가는 것이 좋았을텐데 말이죠. 단편집을 완독했다는 성취감은 크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아보기는 어렵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죽음의 사냥개"
한 수녀의 고대로부터 전해진 일종의 초능력과 그 비밀을 둘러싼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정직하게 흘러가다가 끝나버려서 별다른 반전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네요.

"집시"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는 집시에 대한 이야기. 내용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갑작스러운 마지막 해피엔딩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등불"
저택에 살고있는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과 새로 이사온 가족의 이야기. 결국 새로 이사온 가족의 아이가 죽은 다음 유령이 2명이 된다..는 어떻게 보면 섬뜩한 이야기로 그나마 제일 무서웠던 작품입니다. (물론 현대 독자의 시각으로는 많이 썰렁합니다만)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꽤 유명한 작품이지요. 유산 때문에 의붓아들 아서 카마이클 경에게 고양이를 대입시키는 묘한 최면을 거는 계모의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자체는 상당히 참신하고 결말 또한 제법 설득력 있지만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목련꽃"
일종의 심리 드라마입니다. 한 여자가 남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지만, 남편 때문에 배신했던 다른 남자에게 찾아가 남편의 죄를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오려 합니다. 그리고 서류를 받던 그 순간, 자신이 남편에게도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내용입니다. 
상당히 공감가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개 다음에"
애견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져가는 한 여성이 개의 자살과도 같은 죽음 직후에 새로운 인생을 되찾게 된다는 드라마인데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심리 묘사는 탁월하지만 글쎄요....

"이중 범죄"
포와로 단편입니다. 포와로가 헤이스팅스와 같이 버스 여행 중 만난 아가씨의 귀중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소품이지요. 사건이 소박한 만큼 내용도 그다지 멋진 트릭이나 전개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본격적인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멍청한 (?) 헤이스팅스를 잘 드러내는 부분만 재미있었지만요...

"말벌 둥지"
케이블 TV에서 이미 영상 버젼으로 감상한 작품으로 어떤 단편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한 남자의 자살-살인을 병행하려는 계획을 포와로가 미연에 방지하는 내용으로 영상 버젼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이 무미건조하게, 평이하게 흘러갑니다.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의상 디자이너들이 한 벨벳 인형에게 어느날 문득 공포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냥 그뿐입니다. "사랑받고 싶었다"라는 결론은 허무할 뿐이고요.

"이중 단서"
포와로가 보석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용의자도 4명뿐이고, 트릭도 러시아어와 영어의 알파벳을 이용한 트릭이라 대단치 않습니다. 그나마 포와로 작품에서 라이벌로 등장하는 백작부인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만 점수를 줄 만 합니다.

"성역"
미스 마플이 깜짝 찬조 출연하는 작품인데 추리적 요소는 거의 전무합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내용 자체는 도난 당한 보석에 관한 이야기로 소품이기도 하고요. 단서도 의뢰인이 다 찾은 것으로 마플양은 경찰을 부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어드바이저 정도의 역할 뿐입니다. 마플양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처져보치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2020/03/28

마츠모토 세이쵸 드라마 스페셜 : 지방지를 사는 여자 - 작가 스기모토 류지의 추리 : 별점 1.5점

松本清張ドラマスペシャル 地方紙を買う女~作家・杉本隆治の推理!!

마츠모토 세이쵸의 단편을 TV 특집극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1, 2부 구성으로 합쳐서 약 100분 분량 정도 됩니다. 마츠모토 세이쵸도 좋아하고, 원작도 좋아했지만 존재를 몰랐다가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되어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주연이 "후루하타 닌자부로" 타무라 마사카즈인데다가, 범인, 악역, 비운의 히로인, 팜므 파탈 등으로 100분 내내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상대역은 오랫만에 본 히로스에 료코라 더욱 반가왔습니다.

원작과 동일한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도쿄에 사는 여성이 추리 소설가 스기모토 류지의 지방지 연재 소설을 마음에 들어해서 구독을 신청하자 이 사실을 작가는 기뻐하지만, 한창 재미있을 무렵 구독을 끊는 행동에 모순을 느낀 작가가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는 부분인데, 지금 보아도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이후 드라마만의 독자적인 설정과 전개는 모두 지루합니다. 정확하게는 류지와 조수 후지코의 간단한 탐문으로 요시코가 범인이라는걸 눈치챈 다음부터요. 위기를 느낀 요시코가 귀여운 척, 교태를 부리며 류지를 유혹하는 둘의 밀땅이 지나치게 길며, 이 과정에서 아무런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탓이 큽니다. 요시코가 류지를 죽여서 입을 막는건, 그녀와 류지의 관계를 온갖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서 불가능하니까요. 심지어 류지는 수사 내용 공유를 위해 찾아온 경찰 2명 앞에서, 요시코가 함께 여행가자며 보낸 편지를 읽고 '나를 죽일 생각이야'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요시코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정황 증거 뿐으로, 경찰도 진작에 포기하고 자살로 처리한 사건일 정도인데 왜 요시코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범인인을 밝히고 자수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청산가리를 들켜서라는 이유는, 들키는 상황이 작위적이라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리고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는 분명 '지방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었을테고, 이를 손에 넣기 위해 직접 지방지 구독을 신청한다는 설정은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에 지방 뉴스를 보기 위해 핑계를 대 가며 지방지를 도쿄로 정기 구독 한다는 발상은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잖아요? 정기 구독 신청도 온라인으로 하면 될 테고요. 저만 해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신문' 을 실제로 손에 잡아 본게 최근 몇 년 동안 드뭅니다. 1950년 대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건 너무 안일한 발상이었습니다.
안일하고 편의적인 발상은 그 밖에도 차고 넘칩니다. 류지의 조수 후지코는, 원작에서는 정사를 가장하기 위한 역할 정도에 불과하나 드라마에서는 비중을 엄청 키웠죠. 그러나 안 좋은 클리셰는 몽땅 모아놓은 - 덤벙대고, 시끄럽고, 참견쟁이에다가 오버도 지나친 등 - 짜증나는 캐릭터이며, 등장하는 이유 자체를 잘 모를 정도로 하는 일도 없습니다. 요시코의 남편인 장관 비서 하야오 등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 특히 하야오가 압력을 넣어 류지가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게 만드려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이게 경찰인지 야쿠자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나마 타무라 마사카즈의 추리소설 작가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히로스에 료코도 류지를 유혹하는 장면까지는 그럴싸했고요. 위 사진처럼 두 배우의 합은 잘 맞는 편입니다. 배우들 이름값에 걸맞게 연출과 촬영도 괜찮고 음악도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하지만 좋은 점은 이게 전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타무라 마사카즈에 대한 개인적 호감, 히로스에 요소를 다시 만난 반가움 외에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습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싹 들어내고 원작이 발표되었던, 지방지가 나름의 가치가 있었던 시기를 무대로 한 시간 남짓한 분량으로 줄였더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1년 반만 기다려"도 그렇고, 왜 좋은 원작을 멋대로 손대고 늘려서 영상화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네요.

2025/02/01

스토브리그 (2019~2020) - 정동윤 : 별점 2점

SBS에서 2019 ~ 2020년 총 16화로 방영했던 드라마. 호평은 익히 들어왔었지만 본방 때 놓쳤었는데,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길래 설 연휴 기간 동안 감상하였습니다.

야구를 좋아해서 그간 많은 스포츠 소재 영상물을 보아 왔었지만, '단장'을 주인공으로, 실제 리그 개막 후가 아닌 개막 전 '스토브 리그' 기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은 "머니 볼" 이후 처음입니다. 이런 작품이 국내 제작 방영되었다는게, 그리고 심지어 시청률도 좋았다는게 놀라왔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인기를 끌 만 하더군요. 드라마적인 재미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특히 초반부 임동규, 중반부 고세혁이라는 중간 보스를 거쳐 후반부 권경민으로 이루어지는 빌런들과의 대결이 흥미롭습니다. 세 명의 캐릭터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슈퍼스타 임동규, 스카우트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으며 이 때문에 해고된 고세혁이 백승수에게 앙심을 품는건 충분한 설득력을 가져다 줍니다. 무엇보다도 구단주 대행이자 사장이 되는 권경민이 정말 최고입니다. 재벌 조카지만 본인 가족은 무능하다는 컴플렉스, 이 탓에 재송 그룹 안에서 기를 제대로 펴지 못하지만 백승수한테는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안 좋은 쪽으로 열의를 불태우는 복잡한 인물을 정말 잘 그려낸 덕분이에요. 이는 찰진 대사들, 그리고 배우 오정세의 찰떡같은 연기도 한 몫 단단히 해 주고 있고요.

또 전개 과정에서 주축 선수의 병역 기피, 약물, 승부 조작, 이면 계약에 원정 도박까지, 음주 운전을 제외하고는 실제 프로 야구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을 요소요소에 삽입하여 재미를 더해줍니다.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트레이드를 비롯하여 외국인 선수 영입, 연봉 협상, 신인 지명, 2차 드래프트, 자율 훈련 관련 이슈 등 야구 팬으로서도 즐길거리가 많았고요. 한국 드라마의 병폐라 할 수 있는 러브 라인, 신파도 없어서 마음에 드네요.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후반부의 비현실적이고 억지스러운 전개가 많아지는게 대표적입니다. 각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드라마적인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둔 무리수도 눈에 거슬립니다. 30대로 보이는 여성 운영팀장과 재벌 가문 3세 직원이라는 설정처럼요. 외국인 선수를 찾으러 간 출장에서 고용했던 현지 코디네이터가 알고보니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었던 유명 선수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칭 스태프를 비롯하여 구단 내 직원들도 대부분 꼴찌 의식에 젖어 설렁설렁 일하는데, 이 역시 과장이 심했습니다. 팀 성적은 코칭 스태프, 조금 넓게 보면 운영팀과 전력 분석팀까지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홍보와 마케팅 팀은 자기 일을 해야죠. 

야구적으로 바라보아도 허술합니다. 특히 감독 및 코치진의 유임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비용 문제라는 언급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4연속 꼴찌를 한 데다가 신인 육성 및 팀 장악에도 실패한 감독을 3년이나 재계약을 준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덕아웃에서 서로 싸우는 추태를 부린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들도 마찬가지에요. 바로 경질을 못했더라도, 2군으로 내리는게 당연했습니다. 사람이 좋아서였다면 그런 캐릭터를 확고히 했어야 하는데, 후반에 감독이 백승수 단장의 뒷통수를 치는 말도 안되는 트레이드에 동의하면서 캐릭터를 망치고 맙니다.

4년 연속 꼴찌팀이 20승 투수 한 명 영입했다고 우승 경쟁을 한다던가(심지어 주축 타자가 반 시즌을 날렸는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스카우터의 현장 개입, 에이전트를 배제한 선수 계약, 트레이닝 파트와 배팅볼 투수, 심지어 불펜 포수가 성적 향상에 핵심 요소로 묘사(중요하다는걸 부인하지는 않지만, 과했습니다)되는 등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그래도 인기를 끌만한 재미는 있었기에 만족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3/02

청춘 FC (2015~2016) : 별점 3점

"그것이 알고 싶다"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TV를 잘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본방 사수했던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이 "청춘 FC"입니다. 본방이 종료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설 연휴에 특집으로 그들의 현재를 다룬 에필로그를 시청한 기념으로 포스팅합니다. 많이 늦긴 했네요.

축구보다는 야구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축구 미생들의 완생을 돕는다"는 취지에 걸맞는 나름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적절한 유머, 감동과 함께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또 뭔가 부족했던 선수들이 선수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확실하게 그려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니까요. 제가 얼마나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반성도 되었고요.

아울러 캐릭터들도 걸출합니다.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충분히 드라마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안정환의 재발견이 아주 놀라웠어요. 독설, 조크를 적절히 조합하여 구사하는 예능감은 물론, 실력과 리더십 모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를 주고, 팀원들을 독려한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그렇게 쉬운건 아닌데, 방송에서 확실한 성과를 보여준다는게 대단했습니다. 그가 축구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 덕도 컸겠지만 그래도 실력을 보여준 건 확실합니다.

물론 예능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 사연 있는 선수들에 대한 드라마가 강조되고, 제석이나 용섭이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들의 비중이 크며, 억지로 유명인과 유명 선수를 끼워 맞춘다든가 하는 부분이 그러하지요. 프로 구단과의 시합도 지나친데, 이 부분은 축구 팬 분들이 많이 지적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에필로그를 보니 결국 잘 안 된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미생이 완생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데, 참 씁쓸하네요. 대부분 각자의 길을 명확히 찾았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간은 아닌 듯해 다행이긴 하지만요.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와 감동, 드라마, 거기에 "현실"까지 모두 있는 괜찮은 예능이었습니다. 앞으로 뭘 하든 청춘 FC 팀원들이 더 높이 비상하기를 팬으로서 응원합니다. 퐈이팅!

아울러 방송만 보면 정말 사력을 다해 노력하던데 2부 리그 입단도 힘들다니 정말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 새삼 느껴지더군요. 정말이지 공부가 제일 쉬운 게 확실한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제 딸아이가 좀 크면 같이 감상하고 싶어지네요.

2005/06/15

베스트 미스터리 2000 1, 2 -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 / 정태원 역 : 별점 3.5점

베스트 미스터리 2000 - 1 - 8점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태동출판사
베스트 미스터리 2000 - 2 - 8점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태동출판사

소문만 듣던 책인데 인터넷 서점에 마침 재고가 있길래 냉큼 구입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의 단편선이니 구입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목과 서론을 보니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직접 선정한 2000년도판 베스트 단편선 쯤 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한국 추리 작가 협회가 매년 출간하는 베스트 추리소설 모음집과 유사해 보입니다. 

워낙 일본이 추리 강국이라 저변과 시장이 넓은 덕분이겠지요? 수록된 작품의 양이 상당합니다. 두 권으로 나누어져 출판되었는데 1권에는 11편, 2권에는 9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들 수준도 우수합니다. 재미도 있고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통 추리물을 비롯해서 형사물, 공포스릴러, 환상단편, 인간 드라마, 심리 서스펜스에서 패러디까지 각종 쟝르를 넘나들며, 전개와 설정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라고요.
작가군도 풍성합니다. 사노 요, 노리츠키 린타로, 이마무라 아야, 모리 히로시, 니카이도 레이토 등 유명 작가들은 물론 끝부분 작가 소개에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라고 표시된 작가도 상당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렇듯 작가진만 보더라도 정말로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엄선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 줍니다. 

전체적으로 우수하지만, 개인적으로 1권의 베스트는 사기극 "영원표묘", 정통추리물에 가까운 "사용중"과 "일곱통의 편지"이며 2권의 베스트는 정통 추리 "흉소면", "까마귀의 계시"였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 수준은 충분합니다.

번역이 약간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 조금 더 작은 판형으로 예쁘게 장정하였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렇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추리 강국으로서의 일본의 진수를 최소한의 노력으로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수고롭더라도 구해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후 2000년만 아니라 다른 년도의 베스트 단편 모음집도 소개되면 좋겠네요. 자세한 각 단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1. 잠들 수 없는 밤을 위하여 - 오리하라 이치 : 

 잡지의 "고민 상담실"의 투고와 신문기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으로 소품에 가깝습니다.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깝지만 마지막의 여운이 인상적이었어요.

2. 거짓말쟁이의 다리 - 사노 요 : 

 형사수사물. 두 형사의 대화로 주거침입- 강간미수 사건의 뒤에 감추어진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는 전개로 잘 짜여져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마지막 반전은 약간 억지스럽습니다.

3. 배반의 푸가 - 스즈키 기이치로 : 

영안차 운전수라는 독특한 직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 여자의 집착을 서늘하게 그린 소품. 약간 로얄드 달 느낌이 드는 기묘한 작품인데, 조금 더 압축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4. 영원표묘 - 구로카와 히로유키 : 

미술상을 무대로 한 독특한 사기극으로 만화 "갤러리 페이크"같은 느낌을 전해줍니다.
초반에 제공되는 명확한 단서를 통해 결말까지 이끌어내는 추리극적인 성격이 강하면서도, 독자까지 속이는 세련된 전개와 트릭이 돋보입니다. 작가가 미대 출신의 전문가라 그런지 이야기에서 보이는 미술품에 대한 묘사도 괜찮았고요.

5. 지난날의 사랑 - 오사카 쓰요시 :

사립탐정이 여배우의 의뢰로 애인의 불륜 뒷조사를 한다는 내용으로, 별다른 추리적인 요소는 없지만 이야기 전개는 깔끔하고 무난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기에는 지나치게 심심한게 아닌가 싶지만요.

6. 얼음설탕 - 후지모토 유키 : 

한 주부가 과거에 사라졌던 애인과 우연히 재회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여성 버젼의 스텐리 엘린 단편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심리 묘사가 탁월하며 반전도 인상적입니다.

7. 야수의 기억 - 고바야시 야스미 : 

호러 스릴러의 성격을 띈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의 소유자로 다른 인격일 때의 파괴적인 행동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잘 묘사하며, 추리적인 부분도 확실한 편이고 반전도 좋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속이기 위해서 전개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건 감점 요인이네요.

8. 은폐꾼 - 가스미 야스시 : 

사회적 파탄을 불러올 수 있는 불상사를 국가 차원에서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단체가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설정과 전개가 스티븐 킹의 "금연 주식회사"와 유사하지요. 기발한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후반 전개는 좀 뻔해서 아쉽습니다.

9. 사용중 - 노리츠키 린타로 : 

한 추리작가가 살해되었는데, 그가 생각한 추리 소설의 전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입니다. 스텐리 엘린의 작품을 인용해가며 전개되는데, 밀실 트릭에 대한 생각은 노리츠키 린타로가 직접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더욱 재미있더군요.
결정적 약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짧은 분량으로 스릴과 서스펜스를 충분히 전해주는, 단편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10. 일곱통의 편지 - 아사기 마다라 : 

동거하던 남자의 어머니와 왕래한 편지로 이면에 숨겨진 살인사건이 밝혀지는 작품으로 전개도 독특하지만 추리적으로도 일품입니다.

11. 먼 창 - 이마무라 아야 :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이 불구가 된 사고로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소녀의 이야기로 "환상특급"에 나올법한 이야기네요. 소녀의 일기로만 전개되는 구성도 독특하고요. 재미도 있고 후반부의 아버지의 일기에서 밝혀지는 진상도 좋습니다. 다만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는건 단점이에요.

2권 

시효를 기다리는 여자 - 니이츠 키요미 : 

15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시효가 끝나기 직전 진범의 심리와 사건의 진상을 묘사한 작품. 독자를 속이는 소설만의 효과로서 이루어진 트릭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반전과 결말은 수긍하기 조금 어렵더군요.

부하 - 곤노 빈 : 

부하를 믿고 신뢰한 경부보가 방화범을 잡는다는 내용의, 인간 드라마와 추리물이 잘 섞여 있는 소품입니다.

흉소면 - 기타모리 코 :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처럼 대학의 민속학자가 한 고택의 오래된 가면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물입니다. 트릭과 전개도 깔끔하지만, 무엇보다도 단편에서 소홀히 취급되기 쉬운 범인의 동기까지 설득력있게 등장하는게 마음에 듭니다.

독점 인터뷰 - 노자와 히사시 : 

유괴 살인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 독점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작품입니다. 사소한 단서로 진상이 밝혀지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구성은 취향이 아니라서 별로였지만,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힌 드라마가 잘 살아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석탑의 지붕 양식 - 모리 히로시 : 

사이카와와 모에 커플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하지만 둘이 탐정으로 등장하는건 아닙니다. 모에와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서 사이카와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이야기거든요. 결국 정답은 집사가 맞춰버린다는 "흑거미 클럽"과 유사한 결말도 독특하고요.
그러나 고대 인도의 수수께끼의 석탑 지붕 양식에 관한 수수께끼라는 설정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개중 설득력 있는 것"이라는 결말은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명성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아가씨 출범 - 와카다케 나나미 : 

메이지시대를 무대로 천방지축 아가씨의 탈출 계획을 막는 하녀의 기지가 발휘되는 소품입니다. 일본어를 이용한 트릭이 하나 등장하지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에요. 유쾌한 분위기는 즐거웠지만요.

까마귀의 계시 - 우타노 쇼고 : 

동네 쓰레기를 마당에 모아놓는 정신병에 걸린 여인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사건 자체가 백만분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우연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만 뺀다면,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전개도 깔끔하고 흥미롭게 진행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생환자 - 츠부라야 나츠키 : 

산악 경비대 대장을 주인공으로, 산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프로 등산인의 추락사를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소재와 설정이 독특하며 등산에 대해 전문가적인 지식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별로 평가할 건덕지가 없었어요.

가스케의 세기의 대결 -니카이도 레이토 : 

사람들이 식사 대신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장소인 "독서 레스토랑"을 무대로 주인공 가스케가 건방진 싸구려 평론가 고토쿠를 추리소설 품평 내기를 통해 혼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서 레스토랑과 추리소설 품평 내기라는 설정도 참신하고, 등장하는 방대한 추리 작품에 대한 지식도 상세한데다가 무엇보다 유쾌한 꽁트 분위기가 즐거웠던 작품입니다. 작가가 평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엿보이는 점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전개는 로얄드 달의 "맛"에서의 포도주 맞추기 게임과 거의 유사해서 신선함은 떨어집니다. 트릭도 추리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문제가 많고요. 여러모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