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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무증거 범죄 - 쯔진천 / 최정숙 : 별점 2점

무증거 범죄 - 4점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현장에 지문과 ‘날 잡아주세요’란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다른 어떤 허점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네 번째 특별조사팀마저 성과 없이 해산되자, 경찰은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 한순간의 실수로 불량배를 죽이게 된 청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증거를 없애줄 테니 범죄를 부인하라며 경찰 대처법을 가르쳐주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수정 인용)

중국 추리 소설찬호께이의 작품 3편 - "13 .67", "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 과 원샨의 "역향유괴" 만 읽어보았습니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대체로 평작 이상이었지만 원샨의 작품은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어떨까 싶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트릭이 존재하는 본격 추리물은 아니며, 범죄자와 탐정두뇌 싸움이 핵심인 범죄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제목의 '무증거 범죄'가 의미하는 완전범죄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전前 수사전문 요원이었던 뤄원이 깡패 소태보가 살해된 현장을 조작하는 과정의 디테일, 그리고 이 사건이 범죄논리학자 옌량에 의해 하나씩 단서가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볼 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만 위안이 넘는 큰 돈을 하트 모양으로 작게 접어서 사건 현장에 숨겨 놓는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어요. 이 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현장이 훼손되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아주 설득력 넘쳤습니다.
이 사건과 항저우 시에서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모를 남기고 벌어진 연쇄 살인극이 맞물리는 전개도 좋습니다. 뤄원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 현장에 남겨진 지문의 소유자를 찾기 위해, 그 지문의 소유자가 범인인 살인극을 조작하여 일으켰다는 동기였는데 대담한 아이디어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설득력 덕분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됩니다. 

옌량이 추리한, 뤄원이 주후이루와 궈위가 저지른 살인 은폐를 도와준 이유도 그럴듯합니다. 뤄윈이 소태보를 애초부터 살해할 목적이었지만, 선수를 빼앗긴 뒤 은폐를 도와주었다는 이유인데,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그게 사실이라는걸 암시하니까요. 좀 작위적이기는 해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외에 익숙치 않은 중국식 묘사들도 흥미로왔습니다. 제목의 '무증거 범죄(완전범죄)'를 비롯하여 상식적이다, 이론적이다라는 말을 '유물론자'라고 표현한다던가, 범인이 경찰 수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 걸 '역수사 능력' 이라고 표현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두뇌 싸움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옌랑과 경찰이 뤄원을 잡아 넣을 증거를 찾아내는데 결국 실패하는 탓이 가장 큽니다. 옌량의 활약이 없는건 아니지만, 두뇌 싸움의 결과는 일방적입니다. 게다가 고차방정식 운운하며, 증거가 없으니 범인부터 대입해서 시나리오를 짠다는 옌랑의 방법론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조작극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이는 뤄원이 "모든 이야기가 들어맞는다고 해서 내가 범인이라곤 할 순 없어. 자네의 시나리오는 아무한테나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범행 동기를 설명할 수 있지."라고 통렬하게 부정하지요. 옌랑은 마지막에는 감정에 호소해서 어떻게든 자백을 이끌어내는게 전부로, 한 마디로 뤄원한테 완패한 셈입니다. 이래서야 공정한 두뇌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죠.
또 뤄원이 연쇄 살인극을 벌이는 와중에, 과연 단 한 번도 경찰 수사 물망에 오르지 않을 정도의 완전범죄가 가능했을지?에 대한 설명도 많이 부족합니다. 뤄원이 대단한 전문가라는걸로 퉁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 공원에서의 범행은 목격자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긴, 이는 뤄원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범죄가 완전범죄가 된 것에 비하면 약과이기는 합니다. 우발적으로 급작스럽게 벌인 범행인데도 불구하고, 경찰 최고의 전문가가 사력을 다해 찾았지만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할 완전 범죄가 성립된걸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는게 가능할까요? 작 중에서 뤄원의 능력이 시종일관 대단한걸로 묘사되는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해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옌랑이 뤄원을 수상하다고 여긴 계기가 된 뤄원의 차에 대한 감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뤄원답지 않은 좋은 차는, 범행을 저지르고 용의선상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함이라고 추리하지만, 뤄원이 과거 출원했던 특허로 성공한 부자라고 설명되는 만큼, 좋은 집과 좋은 차는 그 재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심을 할 이유는 없어요. 또 그게 수상했다면 좋은 집에 사는 건 왜 트집을 잡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사소할 뿐, 가장 큰 문제는 책 뒤 해설에서도 실려 있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너무나 비슷한 구조라는 점입니다. 수학, 과학과 관련된 천재들의 두뇌 대결, 순전히 선의에 의해 사건 은폐에 가담한다는건 완전 판박이입니다.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던 두 청춘 남녀가 결국 파멸한다는 결말까지도 똑같고요. 작가 스스로도 영향을 받았다는걸 인정했다는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무언가 새로운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는 중국이라는 무대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리지널 만큼의 수작은 아닙니다. 그나마 캐릭터를 가져오려면 제대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옌량과 뤄원 모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갈릴레오 유가와 역인 옌량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범죄자와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으며, 뤄원은 아무리 아내와 딸 실종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잔챙이 범죄자들을 다섯 명이나 살해했기 때문에 동정심을 가질 여지가 없으니까요. "용의자 X의 헌신" 속 이시가미처럼 뤄원이 아내와 딸의 실종 이후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독자에게 잘 공감시키지 못하기도 했고요. 이건 작가가 놓쳤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죠. 어설프게 캐릭터를 베끼지 말고, 초반부에 옌량이 똥이 있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뒤 벌어지는 사고는 재미있었던 만큼, 이런 식으로 좀 어설픈 인물로 그려가는게 차별화되고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지만, "용의자 X의 헌신"에 비교하자면 한없이 부족하네요. 중국 추리 소설이 궁금하신게 아니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만 믿고 가야겠습니다.

2010/09/09

데스 노트 1~12 - 오바 츠쿠미 / 오바타 다케시 : 별점 3.5점

데스 노트 Death Note 12 - 6점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대원씨아이(만화)

'이름을 쓰면 죽는 노트'라는 참신한 설정, 그리고 키라 야가미 라이토와 세계 최고의 탐정 L의 불꽃튀는 두뇌 싸움으로 일세를 풍미한 작품이죠. L의 죽음 이후 만화는 보지 않았던 차에 최근 이런저런 만화를 뒤적이다가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L의 죽음 이후 보지 않은게 탁월한 선택이더군요. 마지막 최종보스 N과의 두뇌 싸움은 별볼일 없었고, 재미와 긴장감 모두 떨어진 탓입니다.무엇보다도 마지막 창고에서의 한판 승부에서 아무런 반전의 카드없이 최종 결전에 임한 라이토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노트 한 두 장 정도만 숨겨놓았더라도 완벽했을텐데, 왜 구태여 노트의 진위 여부에만 목숨을 걸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전에 사신까지 없애버렸던 라이토의 치밀함은 대관절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네요. L과의 승부에서는 '시계 속 장치'같은 참신한 최후의 수단이 있었는데, 그러한 변수 하나 없던 마지막 승부는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또한 L의 캐릭터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더욱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거의 에스퍼로 그려진 N도 호감이 가지 않는 등 모든 면에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져서 아쉬웠어요.

결말도 썩 개운치 않네요. 패배한 뒤 땅바닥에서 뒹굴며 루크에게 사정하는 라이토의 모습은 작가의 의도였다 하더라도 작품을 지켜본, 그리고 라이토에게 호감을 가졌던 팬으로서는 아주 실망스러웠거든요. 이보다는 L의 최후의 승부수와 함께 패배하던 영화 쪽 결말이 더 낫네요.

그래도 '데스노트, '사신' 등' 일견 유치해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여러가지 제한 조건과 다양한 변수를 통해 진지하고 그럴듯한 두뇌 싸움 스릴러를 만들어 낸 스토리, 그리고 일정 경지에 이른 작화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조금 더 압축해서 L과의 승부로 끝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L과의 승부까지는 5점, 그 이후는 2.5점으로 전체 평균 3.5점입니다.

2014/09/22

생존 Life 1~3 - 후쿠모토 노부유키 / 가와구치 가이지 : 별점 2.5점

생존 Life 1 - 6점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삼양출판사(만화)

딸은 14년 전에 실종되고,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마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알게된 다케다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목을 메려는 찰나, 실종된 그의 딸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고백"과 마찬가지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원작을 가와구치 가이지 (카와구치 카이지)가 그림을 그려 만든 합작 만화입니다. "제 3의 시효" 리뷰 댓글을 통해 marlowe님이 추천해 주셨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2권에서는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다케다의 모습이 그려지며, 3권에서는 범인과 공소시효를 둘러싼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집니다. 추적자 다케다의 모습에서는 가와구치 가이지 특유의 인간드라마를,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는 후쿠모토 노부유키 특유의 두뇌 배틀을 즐길 수 있으며, '공소시효'라는 것을 아주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는게 장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두뇌 배틀은 물론, 다케다의 남은 수명과 사건의 공소시효가 동일하다는 설정이 주는 긴장감은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끈기 있는 추적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해당 시기에 그곳을 여행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때 찍었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확인하여 딸이 등장한 사진을 찾아낸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추적 과정에서 심하게 운이 좋아 보이는 장면이 많다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위의 예를 든 사진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폐차장에서 십수 년 전에 폐차시킨 차를 찾아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가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는 작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고요.

뭐 작위적으로 보자면 마지막 두뇌 싸움이 더 심하긴 합니다. 차 트렁크에 메시지를 남길 시간이 있었더라면 더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도 있었을 테고, 또 평범하게 날짜와 요일, 시간을 적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평범한 사람은 알기도 힘들 주가를 적어 놓았을까요? 주가를 적어 놓더라도 날짜 정도는 같이 적는 게 상식이었을 테고요. '한방'의 임팩트는 있었지만 억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묵직한 묘사와 공소시효를 핵심 소재로 놓고 전개한 치밀한 전개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작가의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2/02/13

인외 서커스 - 고바야시 야스미 / 민경욱 : 별점 2.5점

인외 서커스 - 6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커스단 마술사 란도와 동료들은 급작스럽게 흡혈귀들의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흡혈귀들이 그들을 흡혈귀 사냥 조직 컨소시움이 위장한 서커스단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흡혈귀들은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아크로바틱 곡예사 기프티와 비스트리 남매, 화살 묘기를 부리는 궁사 슈티, 동물 조련사 레이라, 공중 그네 묘기를 펼치는 리지와 진 컴비, 오토바이 곡예사 쿠와이, 마술사 란도와 조수 아야미, 그리고 피에로 단장까지 10명의 단원들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그리즐리가 이끄는 다수의 흡혈귀들과 자기들의 기술을 이용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데...

고바야시 야스미의 중편 액션 호러 스릴러입니다. "기억파단자"처럼 능력자들끼리의 배틀을 다룬 배틀물이라고 할 수 있데, 한 쪽이 굉장히 불리하다는게 특징입니다. 흡혈귀들은 뇌나 심장이 파괴되지 않으면 어떤 상처를 입어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컨소시움 군대 수십 명이 강력한 중화기로 무장하고도 흡혈귀 퀸 비 일당 세 명을 모두 쓰러트리지 못하는 묘사가 등장해서, 읽으면서도 서커스 단원들에게 과연 승산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원들이 각자의 능력을 펼쳐보이는 것에 더해, 그들에게 유리한 서커스 무대 장치 등을 활용하여 승리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그려진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쓸데없는 설정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 화끈하게 풀어나가는 전개도 매력적이었고요.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란도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슈티가 죽어가면서 쏜 화살에 흡혈귀 위젤이 맞고 죽은 것을 통해 흡혈귀들이 심장이나 뇌가 파괴되면 죽는다는걸 깨닫고, 자신이 직접 만든 탈출 마술 장치를 이용하여 그리즐리를 없애는데 성공하니까요. 잠깐 관에 갖혔던 그리즐리가 나오는 틈에, 귀로 화살을 쏴서 죽였던 거지요. 진짜 최종 보스 미티아 역시 이 마술 장치로 발을 붙잡은 뒤 공격해서 죽일 수 있었고요. 단순 무식한 배틀이 아니라, 마술 장치 등의 복선도 활용한, 잘 짜여진 두뇌 싸움이라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련사 레이라와 키리피시의 대결도 볼 만 합니다. 사자와 호랑이와 함께 공격하면서 키리피시의 눈길을 끌고, 그 틈에 코끼리 점보를 탄 단장이 뒤에서 키리피시를 밟아 없앨 수 있었다는건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상대방의 헛점을 이용하여 예상치 못했던 일격을 날렸다는 점, 그리고 코끼리 점보의 존재를 계속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공정한 두뇌 싸움의 좋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지와 진이 공중 곡예로 캐터피라를 날려버리고, 쿠와이가 이 틈에 오토바이를 추돌시켜 불을 붙인 싸움은 그리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기는 하고요. 오토바이 공격이 아니라 휘발유를 부어버리는게 진짜 핵심이었다는건 괜찮은 발상이었어요. 뛰어난 곡예사이지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기프티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는 피해자가 나오는 것도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문제는 다소 뜬금없던 두 개의 설정입니다. 첫 번째는 숲 속에 홀로 산다는 여행객 도쿠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의 활약으로 캐터피라와 토타스를 없앨 수 있었지만, '산 속에 혼자 사는 무림 고수 은거 노인' 캐릭터는 너무 진부한 설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토타스가 문으로 습격할걸 예측하여 문에 낚싯줄을 걸어 두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요. 토타스는 할아버지가 뭐 하는지 뻔히 보고 있던 상황이라서, 이렇게 쉽게 함정에 걸린다는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슈티가 흡혈귀 중 최강자인 미티아였다는게 밝혀지는 일종의 반전 부분입니다. 흡혈귀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리즐리 패거리에게 인간에게 패배했다는 망신을 주기 위해 이런 음모를 꾸몄다는 것부터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 동안 서커스에서 일해가며 안배한 계획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허술했을 뿐더러, 최초 계획대로 그리즐리 패거리에게 망신을 주는 선에서 끝냈어야 했습니다. 미티아 스스로 모레노와 위젤을 죽인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아요. 이렇게 죽일 거였다면 미티아가 직접 그리즐리 패거리를 찾아갔을 때 싹 죽이는게 나았겠지요. 슈티가 한 말 실수에서 란도가 슈티의 정체를 눈치챈다는 것 역시 조금 억지스러웠고요. 기프티가 흡혈귀가 되어 버렸다는 에필로그도 조금 애매했습니다. 이런 여지는 구태여 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적절한 분량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읽을거리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일본 배틀물 만화를 글로 옮겨 쓴 느낌인데, 만화 버젼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네요.

2011/07/16

헤드헌터 - 요 네스뵈 / 구세희 : 별점 3점

헤드헌터 - 6점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살림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은 사실 자신에게 찾아온 고객의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이 가진 귀한 그림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익이 시원치 않아 고민하던 그는 GPS회사 CEO로 영입대상인 클라스 그레베가 루벤스의 그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엇다. 곧바로 그림을 훔치기 위해 클라스 그레베의 집에 잠입한 로게르는 그림을 훔쳐내는데 성공했는데, 그의 귀에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보기 힘든 북유럽,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도서출판 살림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살림 출판사와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노르웨이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 형식이기에 북유럽이나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작가 이름과 무대만 바꾸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요.

물론 '전형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잘 먹히는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 편입니다. 그야말로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로게르 브론이 점점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 숨 쉴 틈 없이 진행되며, 사건의 진상이 중반부에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로게르 브론의 두뇌 싸움이 살벌하게 펼쳐져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거든요.

이러한 스릴러적 속성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구조는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전개 도중에 별것 아닌 것처럼 던져진 단서들이 모두 의미가 있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두뇌게임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결말도 무척 깔끔했습니다.

또 로게르 브론이라는 초엘리트 헤드헌터이자 미술품 절도범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잘 형상화한 점도 작품의 재미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시내 거리를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산업노동자들을 짓누른 서비스업의 승리, 주택 부족 현상을 덮어 버린 디자인의 승리 그리고 현실을 가린 허구의 승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홍대 거리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나는 내 시각대로 삶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 그러니까 파울로 코엘료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솜씨가 꽤 좋았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짜증만 안겨주는 그런 식 말이다."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헤드헌터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심문 기술, 미술품 절도 행각에서의 세세한 묘사는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반면 단점도 확실합니다. 클라스 그레베가 로게르를 옭아매는 이유가 영 현실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로게르가 변심했지만, 클라스 그레베의 능력이라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초·중반부 두 번의 위기(우베의 외딴 은신처와 도로에서의 교통사고)에서 로게르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마지막 반전에서 로게르가 클라스 그레베를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클라스 그레베가 전날 디아나를 찾아갔다는 점과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구조 자체가 너무 의도적으로 짜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앞서 정교하게 짜인 구조가 좋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완벽한 구성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몇몇 단서는 너무 노골적으로 배치되고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게르 브론이 그림 도둑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디아나의 불륜을 눈치채는 계기가 된 것 외에는 딱히 필요한 설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짜인 두뇌 싸움이 서스펜스 스릴러와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별점은 3점. 이번 휴가 때 챙겨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4/08/25

인계철선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점

인계철선 - 4점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막노동으로 몇 개월 째 생계를 꾸리던 잭 리처 앞에 그를 찾는 사립 탐정 코스텔로가 나타났다. 리처는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다른 사람인 척 했는데,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죄책감을 느끼고 의뢰인을 찾아 나섰다. 알고보니 의뢰인 '제이콥 부인'은 잭 리처가 군 시절 존경했던 상관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다. 가버 장군은 심장병으로 막 사망한 상태였다. 가버 장군이 최초 리처를 찾으려 했있고,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나선 둘은, 사건이 빅터 하비라는 월남전 실종 군인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한편,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사무실을 둔 사채업자 갈고리 하비는 체스터 스톤의 모든걸 빼앗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 마릴린을 납치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챈 뒤, 스톤의 재산을 서둘러 가로채 뉴욕을 뜰 생각이었다.


1999년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초창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잭 리처가 조디와 만나 빅터 하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 그리고 갈고리 하비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탈출을 위해 제한된 상황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잭 리처와 정 반대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건 시리즈 후기작인 "10호실"과 유사합니다. 남자인 체스터가 아니라, 연약한 미모의 중년 여성 마릴린이 두뇌 싸움을 펼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요.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제법 됩니다. 잭 리처가 코스텔로의 위치를 알아낸 뒤, 사무실에서 의뢰인 제이콥 부인의 거처를 찾아내는 과정과 빅터 하비의 연로한 부모를 사기친 악당들의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장면처럼요. 
마지막에 헬기 사고 유해를 토대로 빅터 하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장면은 백미입니다. 유골들에 남은 흔적으로 죽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건 법의학 스릴러 못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가 긴급하게 수송했던 세 명의 정체에 대한 추리 - 두 명은 헌병이고 한 명은 범죄자였을 것이다 - 와, 범죄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 모두 그럴싸 했습니다. 상관을 살해하는 '조각내기' 수법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 왔지만, 이를 현실감있게 실제 범죄 소설에 녹여낸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건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 피해자의 영웅적인 죽음이 스캔들이 되므로 - 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하지만 후기작들에 비하면 재미는 사뭇 떨어집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고요. 갈고리 하비가 빅터 하비의 정체를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고 숨을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빅터 하비는 공식적으로는 동료를 살해하고 탈주한 탈영병 신세입니다. 당연히 빅터 하비라는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쳤을리가 없습니다. 빅터 하비는 그냥 행방불명 상태로 두고, 가지고 있는 거액을 활용하여 다른 신분을 사는게 당연합니다. 왜 빅터 하비의 신분과 그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체스터 스톤의 전재산을 강탈하려는 시도도 억지스럽습니다. 그에게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풀어 주식 가치를 떨어트리고, 그걸 빌미로 주식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 채권을 사서 채권자가 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뒤에 스톤 부부를 납치하고, 경찰을 두 명이나 살해하면서까지 체스터의 주식을 빼앗으려 한다는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채권만으로도 담보로 잡혀있는, 원래 계획했던 땅을 손에 넣는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채권은 회사 명의이니 자기 이름이 드러날 일도 없고요.
빌런 갈고리 하비가 사악한 인물이라는걸 긴 설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는 애초에 잭 리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일기토 장면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하비 일당은 달랑 세 명 뿐인데다가 특별한 훈련을 받은걸로 묘사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하비는 오른손까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일개 부대를 쓸어버리는 잭 리처의 다른 시리즈를 본 사람들한테는 이건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잭 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악에 대한 응징도 시시합니다. 쫓기는 공포라던가,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사이다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하비가 인질을 이용해서 주도권을 계속 잡다가, 마지막에 잭 리처가 기습해서 단 한 방으로 끝장내는게 전부거든요. 잭 리처도 중상을 입고 총까지 맞는 등,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고요. 
이런 나약함(?)을 포함해서,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한다던가, 가버 장군이 유산으로 남긴 집 때문에 정착과 취직을 고민한다던가 하는 잭 리처스럽지 않은 묘사가 많습니다. 이건 시리즈 팬으로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잭 리처 시리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잠깐 까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별점을 주자면 잭 리처 시리즈로는 1.5점이고, 그냥 범죄 스릴러로 본다면 2점입니다. 피해자 시점 전개에서의 서스펜스는 괜찮았고, 머리를 쓰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건 좋은데 잭 리처 시리즈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07/01/14

묵공 (墨攻: Battle Of Wits, 2006) - 장지량


2007년도 들어 처음 본 영화같군요.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해 보았습니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영 땡기지가 않아서... 원작 만화를 보긴 했지만 만화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누구나 이야기하는 아스트랄(?)한 결말은 둘째치고라도 양성 사수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 사족이 심하다고 보여져서요. 그래서 가장 완성도 있던 에피소드인 양성 사수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결과물 역시 생각만큼의 스케일, 생각만큼의 이야기 구조를 지닌채 완결되었다고 보여지는군요. 묵가의 혁리와 조나라 장수 항엄중의 대결 구조가 이 스토리의 핵심인 만큼 그런대로 이야기 줄기는 잘 잡아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는 만화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겠지만, 영화는 만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평민출신 자단을 장군으로 발탁하는 이야기는 원작의 평범한 백성이 양성 사수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보다 설득력도 떨어질 뿐더러 평범한 백성이 전쟁과 평화에 대해 자각을 갖게 된다는 주제를 전혀 표현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억지로 끼워 맞춘 여성 캐릭터 일열은 만화에서의 혁리 캐릭터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 빼는 것이 나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캐릭터들을 배치시키는 것 보다는 차라리 원작처럼 정말로 쪼끄만 성에서 백성들과 똘똘뭉쳐 사수전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더 리얼할 것 같기도 하고요.

또한 만화를 보신 분들이 기대하셨을 혁리와 항엄중의 두뇌싸움이라던가 수성 방법의 논리적인 부분 같은 것 역시 거의 건너뛰고 있고, 특히 주인공이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혁리의 영웅성만 강조될 뿐 민초들을 규합하는 부분이나 묵가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이 무지하게 떨어져서 영화 내내 전쟁을 부정하지만 결국 전쟁영웅에 머무르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전락해 버린 것이 제일 아쉽더군요. 마지막 부분에서 모략이 오가는 것은 좋았지만 외려 영화의 주제의식을 떨어트릴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실망했던 것은 영화의 스케일이었습니다. 조나라의 십만 대군이 쳐들어 오는 거대한 스케일은 한 5분 나오고 결국 조나라 결사대 천명만 남는 것이 주요 전개가 된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 스케일이 100분의 1로 주는 전개가 만화와는 다르게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 지기 때문에 뭔가 좀 스펙터클한것을 기대했지만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정말 예고편에 나온 것이 스펙터클의 전부인거 같아요.

어차피 어둠의 경로로 본 것이라 군말하기 어렵지만 솔직히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고 밖에는 말 못하겠네요. 두뇌싸움이나, 깊이있는 주제의식이나, 아니면 스케일이던가 하나의 꼭지만 확실히 보여 주었어도 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합작 영화답게 국내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관심거리였는데 안성기씨의 항엄중 역할은 실미도의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긴 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날 쏘고 가라" 그대로더군요) 그런대로 무난했다 보여집니다. 그리고 슈퍼 주니어라던가? 최시원이라는 친구가 연기한 양왕 아들 양적은 스티븐 시걸의 연기, 즉 표정이 어떤 장면에서도 절대 바뀌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지만 성우 더빙 덕인지 그런대로 볼만 했었습니다.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15/06/23

다섯 마리 아기 돼지 - 애거스 크리스티 / 원은주 : 별점 2.5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포와로를 찾아온 미모의 여성 칼라. 그녀는 16년 전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독살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의뢰하는데...

오랫만에 읽은 여사님 장편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10"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에디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디언지 선정 베스트에도 포함되어 있고, 판매량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작품이더군요. 여태 읽어보지 않은 미숙함을 탓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섯 마리 아기 돼지라는 마더 구즈 동요를 작품에 깊이 개입시켜 전개한다는 점입니다. 주요 증인 다섯 명을 동요 속 다섯 마리 아기 돼지와 캐릭터를 일체화시켜서요. 시장에 간 돼지는 돈을 밝히는 속물 필립 블레이크, 집에 머무른 돼지는 소심하고 영향력없는 메러디스 블레이크, 로스트비프를 먹은 돼지는 천박하고 화려한 레이디 디티셤(엘사 그리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돼지는 검소하지만 날카로운 세실리아 윌리엄스, "꿀꿀꿀" 운 돼지는 말괄량이 안젤라 워런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간 솜씨가 일품이며, 덕분에 작품이 적절한 분량으로 마무리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장편이 흔하디 흔한데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작품을 단 350페이지 내로 마무리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긴 장편들 대부분이 상세한 배경 설명과 묘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반해, 마더 구즈 동요를 활용하여 짧고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구체화시킨건 역시나 거장다와요. 트릭이 중심인 고전 황금기 걸작은 아무래도 트릭을 제외하고는 조금 얄팍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요.

추리적으로도 고전 황금기 작품답습니다. 16년 전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설정 탓에 포와로가 변호사와 경찰 등 사건 관계자는 물론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다섯 명을 찾아다니면서 증언을 듣는 등 발로 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안락의자 탐정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독자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받는 덕분에 포와로와 공정한 두뇌 싸움을 벌일 수 있지요. 당연히 저는 포와로에게 또 패배했습니다만... 고전 황금기 작품의 최대 매력인 두뇌 싸움은 항상 즐거운 법입니다. 진상과 동기 모두 합리적인 것은 물론이고요.

또 각자의 증언이 미묘하게 다르고, 여기서 진상을 찾아낸다는 설정과 전개를 가진 많은 유사 작품들  - 대표적으로 "라쇼몽" - 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된 방향으로 증인들이 증언하고 있고 딱 한 명만 거짓을 말한다는 차이점이 있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열 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으로 진상을 모두 설명하고 마무리 짓는 결말은 좀 당황스럽더군요. 너무 급작스러웠어요. 진상은 알겠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분명한 모순이 있습니다. 캐롤라인이 안젤라가 범인이라고 오해했다 하더라도, 엘사 그리어가 그림만 완성되면 내쫓길 것이라는걸 왜 변호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요? 증인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힐 수 있는 전략입니다. 짐을 싸서 내쫓을 것이라는 말은 블레이크 형제가 듣기도 했고요. 어차피 손해볼 건 없었는데 말이죠. 경찰 수사를 통해서도 엘사 그리어가 진범임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아끼는 동생은 물론 다섯 살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가 고아가 될 수도 있는데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써 봤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납득이 잘 되지 않네요.

또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마더 구즈 동요를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좋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친숙하지가 않다보니 잘 와 닿지 않기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실 이 책이 700번째 추리소설 리뷰 글입니다. 그래도 나름 기념할만한 리뷰 도서인데 여사님 작품 정도는 읽어 줘야 할 것 같아 의도적으로 고르기도 했습니다. 별 네개 이상의 걸작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고요. 허나 제가 납득되지 않는 모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021/10/16

오징어 게임 (2021) - 황동혁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다 보셨겠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대 흥행작. 얼마전 감상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설정은 서브 컬쳐, 장르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친숙합니다. 여러 사람이 갇힌 공간에서 거액이 걸린 게임을 펼친다는건 제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고 이름 붙인 장르물에 흔하게 있으니까요. 대표적인건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살해하는 운명 카드" 등이 있습니다. 김전일도 "게임관 살인사건"이라는 희대의 망작으로 이 장르에 뛰어들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한때 크게 유행했었지요. 내용, 설정도 게임에서 패할 경우 죽느냐, 거액의 빚을 떠 앉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 대체로 비슷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456명의 참가자라는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친숙한 게임을 게임에 사용했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마작"을 가지고 목숨을 건 배틀을 벌인다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면 죽는다는건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달고나에서 모양 뜯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게임이 초반 탈락자들을 다수 발생시키는데 유리했을 거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그리고 보통 이런 장르물은 게임을 벌이는 주최측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데, 이 작품은 경찰이 잠입해서 나름 배경과 진상에 대해, 그리고 게임을 이끄는 프론트맨의 정체를 밝혀내는 등의 활약을 펼치고, 진짜 마지막에서 흑막의 일단락을 드러내 주는데 나름 괜찮았습니다. 

또 캐릭터별 서사와 게임이 시작된 후, 한 번 사회로 돌아가는 설정이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 모두 지옥에서 살고 있으며,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걸 보여주어서 게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거든요. 동네 친구였던 상우가 최종 보스급 악역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잘 그려졌으며 장덕수, 한미녀 같은 조역들도 설정은 뻔했지만 좋은 연기력 덕분에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반면 두뇌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대부분 운과 체력에 의존하는 게임이었던 탓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첫 게임으로 패닉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게임 중 달고나 뽑기와 유리 다리 건너기는 명백히 운이 중요했고, 줄다리기는 당연히 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나마 두뇌가 개입할 여지가 있던건 구슬 따먹기가 전부였습니다. 상우가 알리를 등쳐먹는 걸로 잘 보여주고 있지요. 여기서는 기훈과 일남의 서사가 더 중요해서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마지막 기훈과 상우가 오징어 게임으로 펼치는 결승전에서 기훈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했던 천재 상우에게 두뇌로 한 방 먹이는 장면을 기대했는데, 처절한 아재들의 몸싸움이 전부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상우의 자살도 허무했고요. 

누군가를 이겨서 죽게 만들어야 살아남는 게임이라는 기본 원칙 그대로 전개와 결말을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 주최측 의도를 나름대로 농락하는 전개였다면 두뇌 싸움 느낌도 나고 좋았을텐데요. 예를 들어 '유리 다리 건너기'는 옷으로 끈을 만드는 식으로 협력이 충분히 가능했지요. "도박묵시록 카이지" 에서 카이지는 게임의 헛점을 잘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게끔 도와주었는데, 이런 점에서는 카이지의 초반부 몇 에피소드들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하긴, 카이지 초반부 몇 에피소드는 이쪽 장르에서는 길이 남을 희대의 걸작이라 단순 비교는 좀 어렵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도 너무 길었으며, 후속 시즌을 노리는 느낌이 강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주최측이 원하지 않는 한, 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할 방법은 애초에 없잖아요?

이렇게 아쉬움이 없는건 아니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런 류의 장르물로 볼 때 우수한 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만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대박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나라 장르물이 더 활발히 제작되고 확산되면 좋겠네요.

2007/03/08

파우스트 Vol.3 -2007 겨울 : 별점 2점

파우스트 2007.겨울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학산문화사(잡지)

경성탐정록으로 인연을 맺은 계간지입니다. 두께에 놀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3일에 걸쳐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과연 이 잡지가 팔리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잡지 전체의 작풍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모호했거든요. 호러와 판타지, 추리, SF가 뒤섞여 있는 쟝르문학 잡지이기는 한데 각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의 타겟과 작풍이 너무나도 달라서 이 두꺼운 분량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잡지를 소구하는 독자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맛은 별로고, 취향에 따른 일부 재료만 맛있는 잡탕찌게랄까요?

아울러 작품들의 문체나 설정만 놓고 보면 대상 연령층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데 작품들 대부분이 잔혹한 폭력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보인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작품들이 "젊은 감성" 이라는 카피를 달고 나오긴 했지만 예전의 기쿠치 히데유키류의 엽기 에로 폭력물(?)의 문체만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기본적인 설정이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 결과물 그 자체로는 결국 똑같아 보였거든요. 작가의 의도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의 고민이 아쉽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제 취향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별점은 2점. 경성탐정록을 제외하고 베스트를 꼽자면, 강병융의 "킬킬킬"과 세이로인 류스이의 "성공학 캬라 교수"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작품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인데 일본 작품들은 정말로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장르 문학이라 하더라도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추리면 추리, 판타지면 판타지, 호러면 호러 식으로 특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거기에 더해 페이지도 좀 줄이고, 가격도 좀 더 줄인다면 지금보다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고요. 미스터리 관련 대담을 미루어 볼때 향후의 잡지의 발전 방향이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개인적으로 기대해 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마법소녀가 등장해서 다른 마법사와 싸움을 벌이는 격투 액션물.. 로 보입니다. 재미있긴 한데 왜 소설로 쓰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들도 일러스트로 묘사하고 내용의 대부분이 액션 장면인데 만화 등으로 구현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주 약간의 두뇌싸움이 등장하지만 비쥬얼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두뇌 게임이라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 제로자키 키시시키의 인간 노크 - 니시오 이신
이것 역시 니시오 이신 작품입니다. "제로자키 일족"이라는 살인 집단과 그들에 대항하는 조직의 짤막한 사투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만 "리스카"의 경우 처럼 이 작품도 만화쪽이 훨씬 어울렸을리라 생각합니다.

3. 그녀 집으로 오세요 - 이종호
한국 호러 소설의 중견 작가인 이종호씨의 신작입니다. "분신사바"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 기대했는데 이 작품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주요 설정을 "펫 세메터리"에서 가져온 것은 그렇다쳐도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진부하기 이를데 없었거든요.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 때문에 다음편에서 좀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4. 킬킬킬 - 강병융
취업난을 가지고 기발하게 써 내려간 단편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철수"와 "영희"라는 것 부터 기발하고, 여러가지 설정 등이 읽으면서도 참 재치있게 쓴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반전은 좀 더 복선을 깔아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으며, 마지막 엔딩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데? 라는 의문밖에는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5. 무지개빛 다이어트 코카콜라 레몬 - 사토 유야
여러가지 설정을 가져다 붙이면서 뭐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정신병자입니다.... 내용도 왠지 모르게 뻔했고요. 이외의 평은 생략합니다.

6. ECCO - 타키모토 타츠히코
다중인격 (일지도 모르는) 소녀의 다른 인격 (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교감을 나누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로 소외감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잔잔하면서도 전해 줄 이야기는 다 전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슨 이야기인지는 당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긴 하네요.

7. 이상한 사람들 - 와타나베 코지
짤막한 콩트. 한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완성도는 높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이야기라는 것이 아쉽군요.

8. W*rld meets W*rld - 모토나가 마사키
설정, 묘사, 스토리 모든 것이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입니다.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만화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호질 - 이선웅
파우스트 소설상 우수상 당선작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히 깔끔하고 재미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평처럼 너무 서둘러 끝낸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말부가 매끄럽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심령 수사관이 하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것도 좀 황당했고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나게 읽었기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10. 성공학 캬라 교수 - 세이로인 류스이
젊은 감각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죠.^^ 그야말로 파격적인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만화가 내용과 밀결합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고요. 하지만 이게 과연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1. 코마츠키 마키코 - 마이조 오타로
한 천재(?) 가 등장하는 소설로 다중인격(?) 같은 무언가를 밀도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 기타 칼럼 / 대담 / 만화

2022/01/07

샘 호손 박사의 두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2점

샘 호손 박사의 두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GCBooks(GC북스)

안녕하세요. 2022년 첫 리뷰네요. 먼저 새해 인사 드립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노스몬트에서 일하는 시골 의사 샘 호손이 명탐정으로 등장해서, 온갖 불가능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 스타일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입니다. 1권에 이어 2권도 읽게 되었네요. 

수록작은 무려 열 다섯 편이며,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던가, 대도시 보스턴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전편보다는 별로입니다. 모두 일종의 밀실 상황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알고보니 밀실이 아닌 상황이 많은 탓입니다. 대략 네 작품은 명백하게 밀실이 아니었어요. 트릭도 무려 여섯 작품에서 변장이 사용되고 있고요. 그리고 절반이 넘는 무려 여덟 작품에서 불가능 범죄를 만들 이유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버리는 억지를 보여주는데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범행 동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설득력이 없어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몇몇 작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술한 이유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범인을 모두 알려주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입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무려 열 다섯 편의 리뷰를 상세하게 올리니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 다음부터는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추려서 올리는걸 고려해야 겠습니다.

"치유하는 천막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어린 아들을 치료사로 내세워 시골 환자들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기꾼 조지 예스터의 공연을 찾아갔다가 그와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자기 환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 뒤 나가려고 잠깐 뒤를 돈 순간, 조지 예스터가 가슴을 칼로 깊게 찔려 살해당했다. 천막 안에는 예스터와 샘 호손밖에 없었고, 잠깐 사이에 샘 호손의 눈을 피해 현장에서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다...

짧은 순간에 범인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 소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인데, 범인인 매지가 동상으로 변장하고 있었다는게 트릭이라서 굉장히 허무했습니다. 동상과 사람이 몸에 페인트 칠을 한 건 명백히 달랐을 텐데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정말 동상처럼 보이게끔 하는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동상이 그녀를 모델로 만든거라는 일종의 복선도 제공되기는 하고요. 때문에 짧은 시간, 제한된 조건에서라면 먹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지 혼자 거대한 동상을 천막 밖으로 잠깐 치워 놓았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등신대 금속 조각상이라면 무게가 아무리 적어도 백 킬로그램은 되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동상으로 변장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샘 호손(아니면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트릭을 사용했다? 말도 안됩니다. 샘 호손,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날 조지밖에 없는 천막으로 찾아와 다툴 거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걸 예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설령 다툼을 예상했더라도, 천막 안이 아니라 천막 밖에서 다퉜을 수도 있고요. 

즉, 살해하려면 그냥 천막에 숨어있다가 죽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동상의 존재를 은근슬쩍 묻고 지나가는 전개가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독자와의 두뇌 싸움을 펼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속여넘기려는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또 트릭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학 시절 사진을 훔쳐내기 위해 매클로플린 교수를 습격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예스터의 공연에 찾아가기로 한 건 매지가 샘 호손과 함께 있었을 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사진을 회수했으면 됩니다.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를 필요 없이요. 매지가 토비 예스터의 엄마였었다는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는 상황 말고는 건질게 없었던 졸작이었습니다.

"속삭이는 집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유령사냥꾼 태디어스 슬론과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비밀의 방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브라이어 가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둘은 한 밤중에 당장 나가라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뒤, 누군가 저택에 들어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나도 남자가 나오지 않아서 둘은 비밀문을 열어보는데, 남자는 죽어 있었고 방 안에는 다른 사람, 다른 출구도 없었다. 샘 호손은 피해자가 최소 15시간 전에 살해당했다는걸 알아챘는데, 수사를 이어가던 샘 호손의 차가 누군가가 설치한 조잡한 폭탄에 의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비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건, 그 방에 다른 비밀 출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출구만 찾으면 될 일이라, 이걸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도 너무 뻔합니다. 상황을 아는건 초반에 샘의 치료를 받는 빌리밖에는 없으니까요. 빌리는 어린 시절 유령 집에서 자주 놀았으며 치료를 받을 때 샘과 슬론이 그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시체가 들고 있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있었는데 빌리가 샘 호손의 치료를 받은 이유는 쇠스랑에 발을 관통당했다는 것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상한 불가능 상황으로 만드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방이었다면, 그 안에 시체를 숨겨놓고 가만히 있었으면 될 일이잖아요? 구태여 샘과 슬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사건을 키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건을 기획한 빌리의 모친이 사후경직을 통한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하다는걸 몰라서 벌인 것이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은 아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나마 샘 호손의 애차 피어스 랜스 어바웃이 7년만에 불에 타 버리고, 새로운 차를 구입한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보스턴 공원의 수수께끼" 

샘 호손이 의학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보스턴애 도착한 날, 보스턴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쿠라레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되었으며, 이전에도 3명이나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했었다. 하지만 공원은 숨어서 총을 쏘거나, 대롱을 부는게 불가능했다. 심지어 세 번째 사건 때부터는 공원에 형사가 가득했고, 네 번째 피해자는 죽을 때 까지 경찰이 예의 주시하며 미행행하기까지 했었다. 범인은 어떻게 독이 묻은 화살을 피해자들에게 쏠 수 있었을까?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에 의해 사건이 벌어진다는 일종의 '투명 인간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범인이 기차 차장이나 레스토랑 웨이터 등이었다는 류의 트릭으로 이 작품에서는 호텔 도어맨이 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호텔 도어맨이라 눈에 뜨이지 않았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건 마음에 듭니다. 핵심은 샘 호손이 쿠라레에 대해 조사하여 밝혀낸대로, 공원 안이 아니라 공원 입구, 즉 호텔 근처에서 화살에 맞았다는 겁니다. 쿠라레는 즉효성이지만 맞고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서 피해자들은 공원 안에 들어가서 이동하다가 죽었던 거지요. 도어맨은 호루라기를 부는게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라서 호루라기를 부는 척 하고 불특정 다수인 공원 이용자에게 독화살을 쏘았고요. 

노스몬트가 이닌 대도시 보스턴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것도 처음에는 그냥 재미 요소라 생각했는데, 트릭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큰 공원, 그리고 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큰 호텔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시골 소도시 노스몬트보다는 큰, 보스턴같은 대도시를 무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범인의 동기가 애매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을 무대로 한 작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된 건 작위적이기는 했습니다. 샘 호손이 스스로 미끼기 되는 장면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잡화점의 수수께끼" 

노스몬트에 미모의 중년 여성 매기 머피가 이사와서 맥스 하크너 잡화점 옆에 부동산을 열었다. 그녀는 자주 잡화점에서 여성 인권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에 마을 남자들이 싫어했지만, 워낙 미인이라 내색은 크게 하지 않았다. 존 클레이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날, 맥스의 잡화점에서 일했던 프랭크가 샘 호손을 찾아와 자신이 맥스의 아내 어밀리아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털어 놓았고, 그 직후 맥스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잡화점 안에는 시체와 함께 기절했다는 매기 머피밖에 없었는데, 잡화점 문과 창문은 안쪽에서 모두 잠겨 있었다...

밀실물처럼 소개되지만 환풍기 날개 사이로 총을 집어넣어 쏘았다는게 진상이라서, 이게 밀실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현장에서 발견된 맥스의 총은 더블 배럴이라 환풍기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없었지만, 밖에 있었던 존 클레인 노인의 총은 싱글 배럴이라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있었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니고요. 부실한 현장 조사에 더해 흉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생겨난 실수일 뿐입니다.존 클레이 노인의 범행 동기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범인이 살인 때문에 놀라서 죽었다는 등 내용도 전반적으로 억지스럽습니다. 

복잡하고 억지스러운 장치 트릭보다야 현실적인 발상입니다만,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법원 가고일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조스트로 살인 사건의 배심원을 맡게 되었다. 피고 애런 플레이버는 조스트로의 고용인으로, 그는 실수로 총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조스트로 부인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베일리 판사가 마시던 물 잔 속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당했다. 판사가 죽기 전 '가고일'이라는 말을 남겨서 범원 가고일 상을 조사해보니, 베일리 판사가 메이틀랜드 판사와 함께 밀주 밀매점에 투자했다는 문서가 들어있었다. 샘 호손은 이런 저런 단서들을 확인한 뒤, 사건 현장을 재현해서 추리쇼를 펼쳐보이는데...

애런 플레이버가 자살하려고 조스트로 부인에게서 건네받은 청산가리를 잔에 부어 놓았는데, 판사가 착각해서 먹고 죽은 거라는 진상부터가 말도 안됩니다.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직접 입에 털어 넣었어야죠. 

독약을 애런이 손에 넣은 방법에 대한 설명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재판 중에 조스트로 부인이 껌을 계속 씹고 있었다는 증언을 통해, 그녀가 껌으로 독약병을 증인석에 붙여 놓았다고 추리하는건 일견 그럴싸했지만 이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추리에요. 아무리 20세기 초반이라고 해도, 재판을 받는 피고가 흉기를 손쉽게 손에 넣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했을리가 없잖아요. 가능했다해도 총이나 칼을 손에 넣는게 나았을거에요. 

억지스러운 설정, 부실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최악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수록장 중 최악입니다.

"청교도 풍차의 수수께끼" 

'청교도 풍차'라 불리우는 네덜란드 풍차가 보존되어 있던 부지에 청교도 기념 병원이 신설되었다. 노스몬트 최초의 흑인 의사 링컨의 근무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오고 있었던 중, 부지를 병원에 기증했던 랜디 콜린스가 풍차에서 몸에 불이 붙어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사건 당시 "루시퍼"라는 말을 겨우 남겼었고, 의식을 회복하여 풍차 안에 악마의 불덩이가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샘 호손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아이작 밴 도런이 풍차 안으로 걸어 들어간 뒤, 풍차와 함께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링컨 존스는 검시 결과 밴 도런의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첫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자 랜디 콜린스가 풍선을 이용하여 풍차 날개 4개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풍선이 터져 화상을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성냥을 부르는 명칭으로,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고 악마 어쩌구로 말을 바꾼거지요. 

두 번째 사건은 랜디에게 휘발유를 팔았던 주유소 주인 밴 도런이 진상을 눈치채고 협박해서, 랜디가 그에게 풍차 윗쪽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알려주었던 겁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확인해보라면서요. 그리고 이 말을 따른 밴 도런은 풍차 윗 쪽으로 날려보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버린 탓에 처참하게 죽었고요. 다리는 위에서 떨어질 때 부러졌던 것이었지요. 

랜디의 동기는 인종차별을 하기 위했던 것으로, 인종차별이 뒤의 범죄들과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매끄럽습니다. 사회파 느낌도 살짝 나서 괜찮았고요. 첫 번째 사건은 일종의 실수라 특별할 건 없지만, 두 번째 사건에 사용된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부분들은 문제가 많아요. 제일 먼저, 풍차를 십자가 형태로 불태우기 위해 풍선을 이용하려 했다는 발상이 억지스러웠어요. 이게 사건의 핵심인 탓에 이야기 전개도 다소 헐거운 편입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풍차 윗쪽을 확인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손전등도 있는 시대인데다가, 이렇게 한다고 불이 그렇게 쉽게 붙었을지도 의문이며, 설령 불이 붙었다 해도 밴 도런이 죽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아울러 랜디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걸 보다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건 공정해 보이지 않았어요. 단서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티가 물씬 나서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은 나쁘지 않았는데 관련된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낮아서 감점합니다. 체스터튼 소설같은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는데,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강빵 하우스보트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근처 체스터 호수는 마을 주민들의 여름 휴양지였다. 샘 호손은 여름 휴가를 왔던 미란다 그레이와 사랑에 빠졌다. 미란다의 삼촌인 제이슨, 기티 그레이 부부와 그 이웃 별장의 레이, 그레텔 하우저 부부와도 친해졌는데 어느날, 샘과 미란다 눈 앞에서 하우저 부부의 화려한 하우스 보트를 타고 놀던 두 부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메리 셀레스트호 괴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만, 특별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보트에는 레이 하우저와 키티 그레이만 타고 있었고, 그레텔 하우저와 제이슨 그레이는 이미 살해당해서 별장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레이와 키티는 보트를 출발시킨 후, 별장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 나왔고, 보트는 폭파시키려고 다이너마이트를 셋팅했는데 그게 불발했던거지요. 보트를 조사해서 다이너마이트를 찾아내면, 배 주인인 레이 하우저가 범인이라는게 뻔하니 후더닛 물로 볼 수도 없고요. 

설령 레이 하우저의 계획대로 폭파되었더라도 문제에요. 그는 배가 폭파된 후 그레텔과 제이슨의 시체를 떠내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익사하지 않았다는건 부검으로 밝혀졌을테니까요. 함께 배를 타고 있던 네 명 중 두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익사가 아니라면, 다른 두 명이 범인이라는건 당연하잖아요? 

아울러 이렇게 무거운 강력 범죄 이야기로 끌고가지 않고, 두 부부가 장난으로 이 일을 벌였다는 일상계 물이었다 한 들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샘 호손과 미란다 눈에 보이지 않게 배 반대쪽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간게 전부인 탓입니다. 즉,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 범죄가 아니었어요. 차라리 장난에 가깝죠.

부실 수사와 부실한 계획이 합쳐진 망작입니다. 샘 호손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는게 독특했을 뿐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분홍색 우체국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간호사 에이프릴과 노스몬트 우체국을 방문했다. 개장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장 베라는 우체국을 분홍색으로 칠해놓았다. 분홍색 페인트가 값이 쌌던 덕분으로, 한 쪽 벽에 마저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흄 백스터를 불렀다. 흄이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을 때, 은행장 앤슨 워터스가 주식 대공황을 알리며 1만 달러어치 무기명 채권의 특별 배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봉투가 사라지고 마는데....

샘 호손이 미란다와 파국을 맞지만, 렌즈 보안관이 베라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애정 전선이 크게 움직이는 에피소드.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어요. 샘 호손이 봉투 행방에 대해 우체국 현장에서 펼쳐보이는 여러가지 추리들도 그럴싸했지만,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흄 백스터가 주워서, 벽에 붙인채 페인트 칠을 해 버렸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거든요. 페인트가 마르면 바로 들통날테니 그날 밤 봉투를 회수하러 올 것이라는 마무리 추리까지 깔끔했고요.

물론 당장 봉투를 찾지 못했더라도,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렌즈 보안관의 무능이 드러나기는 합니다. 제일 수상한건 흄 백스터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 수준이 워낙에 별로라 이 정도면 충분히 선녀급이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팔각형 방의 수수께끼" 

렌즈 보안관은 베라와 에덴 하우스의 팔각형 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팔각형 방은 거대한 서재로, 네 귀퉁이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거울이 달린 수납장을 설치하여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방문이 열리지 않아서 잠긴 문을 부수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눈에 뜨이는 건 문 손잡이에 묶여 있던 끈 한 줄이었다. 끈으로 빗장을 잠글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끈은 너무 짧았고, 방문은 끈 한 올 통과할 틈이 없었다.

문 손잡이에 끈이 묶여 있었으니 이를 밀실물로 보기는 애매합니다. 이 끈으로 밀실을 만든게 당연하니까요. 진상도 예상 그대로입니다. 범인은 문 바로 맞은편 창문 걸쇠에 끈을 묶고, 이걸 빗장에도 묶은 뒤 창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문을 부술 때 끈이 당겨져 창문 걸쇠가 잠긴 것이지요. 

이렇게해서 창문이 잘 잠겼을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끈 조각이 남은 탓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대로 잠긴걸 확인하지 않아서 밀실로 착각했을 뿐, 실제로는 밀실이 아니었다는 문제도 크고요.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만드느니, 문을 열어두고 한 패에게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꾸미는게 상식적입니다.

물론 범인인 조시의 아내 엘렌이 창문을 부수는걸 반대했던 장면같은 복선이라던가, 언제나 이야기를 듣는 화자가 아니라 범인이었던 엘렌이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거라는 나름의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그녀가 남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모든걸 잃었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부실했고, 상황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집시 야영지의 수수께끼" 

청교도 기념 병원을 찾은 샘 호손이 병원 경영의 전권을 맡은 에이블 프레이터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 집시 에도 몬타나가 들어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 뒤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집시들은 무리의 지도자 루돌프의 저주 탓이라 여겼지만, 부검 결과 몬타나는 심장에 총을 맞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러나 몬타나의 가슴과 등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렌즈 보안관은 저주의 원인이 된 몬타나의 부인 테레즈를 구금하려 했지만 집시 스티브의 공격으로 실패했고, 철저한 수사를 위해 집시 무리를 하룻밤 동안 감시했는데 집시들은 스무 대의 마차, 말과 함께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불가능 범죄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범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슴과 등에 상처가 없었다면 누군가 가슴을 연 뒤 심장에 총을 쏜 것이고, 부검 자리에는 샘 호손과 에이블 프레이터밖에 없었으니 범인은 에이블인게 당연하지요. 집시들이 머물던 해스킨스 농장의 상속 문제라는 동기도 이야기에서 거의 곧바로 드러나고요. 애초에 왜 가슴을 열기 전에 총을 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구태여 기묘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집시들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린 두 번째 트릭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말과 마차모양 판지를 세워놓아 눈을 속인 뒤, 판지를 태우고 사람들만 몰래 빠져나갔다는건데, 보안관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속아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저 판지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을지 의문인 등 세세한 점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주업자 자동차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밀주업자 래리 스피어스의 동료들에게 납치되었다. 총에 맞았다는 래리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래리는 중상이 아니었다. 동료 중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며 아픈 척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래리는 토니 배럴과의 거래 완료 때까지는 샘 호손을 풀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났을 때, 실수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차에 탔던 토니 배럴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래리 스피어스가 다친 척 위장해서 토니 배럴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뒤 살해했던 겁니다. 집 밖으로 나가 차에 탔던 건 래리가 매수한 토니의 부하 스쿠프였고요. 스쿠프는 래리가 뚱보로 변장할 때 썼던 완충재를 몸에 두르고, 수염을 붙인 뒤 웅얼거리며 토니인 척 나가서 차에 탔습니다. 그리고 변장을 풀고 바로 운전석으로 넘어가 차를 몰고 떠나려고 했던 거지요. 잘 됐더라면 완전 범죄가 됐을텐데, 하필이면 총격전이 벌어진 탓에 스쿠프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불가해한 실종 사건이 생겨났던 겁니다. 이렇게 불가능 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래리가 술통 값을 낼 수 없는데 술통이 필요했다는 동기도 설득력 있었고, 토니 배럴의 차가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던가 (방탄을 위해서), 스쿠프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등의 복선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갱들과 목숨을 걸고 담판을 지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샘 호손의 모습도 독특했고요.

이렇게 이야기 완성도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트릭의 설득력이지요. 과연 저 정도의 변장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속아넘어갔을까?는 잘 설명되지 못하거든요. 이번 권은 변장을 전가의 보도로 쓰고 있는 트릭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깡통 거위의 수수께끼" 

잠겨져 있던 비행기 조종석에 있던 조종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핵심은 조종석 안에 범인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샘 호손의 눈을 피해 숨어있다가 몰래 문 밖으로 나갔던 거지요. 밀실이라고 볼 수는 없는 셈입니다. 왜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되지 못하고요. 

그래도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비행기 곡예단 동료를 자기처럼 변장시켜 공연을 했다는 트릭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평작 수준은 될 듯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꾼 오두막의 수수께끼" 

샘의 아버지 해리 호손이 아내와 함께 노스몬트에 방문했다. 그는 편지 왕래로 친해진 대지주 라이더 색스턴으로부터 사냥 초대를 받고, 샘도 함께 사냥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슴 사냥을 하던 중 혼자 사냥꾼 오두막에 있었던 라이더 색스턴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두막으로 들어온 발자욱은 색스턴 것 뿐이었고, 흉기는 저택 안의 무기 컬렉션에 있던 곤봉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건 오래된 깃털 뿐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발자욱없이 곤봉을 가지고 들어와 색스턴을 죽였을까?

범인은 사냥꾼 오두막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한 호스 자국 위로 이동하여 발자욱을 남기지 않았던 겁니다. 호스의 폭은 3cm에 불과했지만, 이 위를 '자전거'로 지나갔던 거지요. 상황을 잘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색스턴이 오두막으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호스를 연결했다가 떼는 장면이 상당히 오래 묘사되고 있어서, 작가가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잘 전해주고요. 자전거를 닭장 안에 두었었기 때문에 현장에 닭털을 흘렸고, 이 탓에 트릭이 들통나는 과정도 괜찮았어요.

왜 불가능 상황을 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건 아쉽지만, 트릭만큼은 정말 괜찮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건초 더미 속 시체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수의사 밥 위더스가 농부 펠릭스 베넷의 아내 세라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한 후, 펠릭스의 권유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가석방 중 펠릭스의 신세를 지다가 사고를 쳐서 펠릭스가 다시 교도소로 돌려 보냈던 로슨이 만기 출소했다며 나타나 펠릭스를 협박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곰 사냥을 위해 렌즈 보안관을 비롯한 여러 명이 농장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펠릭스가 샘 호손에게 전화 한 통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중에 그는 방수포로 덮은 건초 더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보안관은 펠릭스가 건초 더미를 쌓고 방수포를 치는걸 자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방수포 안에 시체를 넣는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데...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해결했다는 사건. 범인은 펠릭스 농장의 소작농 핼 패리였습니다. 그는 펠릭스의 상징과도 같은 큰 밀짚모자를 쓰고 건초 더미 뒤에 있던 펠릭스를 죽인 뒤, 자기가 펠릭스인 척 시체를 건초 더미에 넣고 그 위에 방수포를 쳤던 겁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변장 트릭이 사용되어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만 독립적으로 놓고 보면 괜찮은 본격 추리물인건 분명합니다. 일단 다른 작품들보다는 변장의 설득력이 높거든요. 밀짚 모자에 대해서, 그리고 펠릭스와 핼 패리의 키가 비슷했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이지요. 유력한 용의자 로슨의 콧수염에 대한 언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몰래 시체를 숲에다 가져다 버릴 생각이었는데, 곰이 나타나는 바람에 기묘한 불가능 범죄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도 합리적이었어요.

곰이 시체를 뒤지는 전개는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노스몬트라는 시골 마을이라는 무대 특성 상 그렇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의 등대 수수께끼"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산타의 등대'를 우연히 방문하여 해리와 리사 남매와 친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 등대 꼭대기 전망대에 있던 해리가 칼에 찔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침 리사와 함께 있던 샘 호손 바로 앞에 시체가 떨어졌는데, 둘을 지나치지 않고 범인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샘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수감 중인 남매의 아버지 로널드를 찾아갔다. 로널드는 등대에서 밀주 밀수를 했으며, 해산물 레스토랑 주인인 폴 레인과 거래를 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샘 호손은 처음에는 산타의 등대를 관광차 방문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었다고 추리했습니다. 난쟁이 킬러가 아이로 변장했다면서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헛점이 많은 추리였어요. 가족 요금이 더 싼데 아이들만 등대에 들여보낸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부터가 근거로는 터무니없이 빈약했으니까요. 아이들끼리 친하고 잘 노는데다가, 아이들을 돌봐줄 해리와 리사가 있는데 부모가 뭐하러 함께 들어간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이들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시설인데 아이들이 몇 명 들어가서 몇 명 나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수십명도 아니고, 고작 4~5명을 확인하지 못했을리가 없잖아요. 이 정도면 아이들 이름까지 외울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리사가 범인으로, 그녀는 오빠를 죽인 뒤 등대 전망대에 낚싯줄로 묶어 고정했던 거라는 진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난쟁이 킬러보다야 나을 뿐,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딱히 좋아보이는 트릭도 아닐 뿐더러, 샘 호손이 있을 때 시체를 떨어트린건 납득하기 어려웠거든요. 자기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한 들, 살인범이 등대로 들어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딱히 유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오빠를 일어서 떨어트리고 사고로 위장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게 오빠라서 죽였다는 동기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지만,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2016/01/19

아자젤 - 아이작 아시모프 / 최용준 : 별점 2점

아자젤 - 4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집인데 SF 장르물은 아닙니다. 악마가 등장하기 때문에 일종의 판타지, 환상 동화류입니다. 모두 13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아시모프의 지인 조지가 주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거나 문제점을 해결해 주기 위해 2cm 악마 '아자젤'을 불러 원하는 것을 이루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불행이 닥친다는 내용이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악마에게 소원을 빈 뒤 수렁에 빠지는 류의 설정부터가 흔하기 때문에, 악마와의 거래에서 밀리지 않는 치밀한 두뇌 싸움이 펼쳐져야 했습니다. 허나 이 작품에서 조지가 아자젤에게 부탁하는 소원들은 일부러 문제가 생기게끔 안배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추상적이거나 문제의 본질과는 떨어져 있는 탓입니다. 겨울 동안 신세를 지기 위해, 눈을 싫어해서 겨울에 별장을 폐쇄하는 지인이 “눈 위에서는 가벼워지도록” 부탁한다는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같은 식으로요. 그래서 억지스럽고 지루합니다.

그나마 세련된 부탁도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거라는게 뻔해서 이야기의 의외성도 높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여자에게 인기 없는 지인에게 인기가 생기도록 만들었지만, 무시무시한 여자가 그에게 반하고, 그녀의 무시무시한 가족들의 협박으로 결혼하게 된다는 "승자에게"가 대표적입니다.
그냥 의외성이 없다면 모를까, 그다지 웃기지 않은 성인 대상 농담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에서 왕따당하는 친구 아들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상대에게서 회피하도록’ 부탁하는 "봄날에 벌이는 싸움"에서는 미녀를 얻는 데는 성공하나 자신에게 접근하는 여자를 평생 안을 수 없게 되었지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대녀를 위해 그 조각상을 ‘단단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어 달라고 한 "갈라테아"에서는 조각상이 ‘단단해지지 않아’ 문제가 생기고요.

물론 볼만한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능 없는 농구 선수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골을 무조건 성공하도록 아자젤에게 부탁한다는 "2센티미터짜리 악마", 1년 시한부 인생이 예상되는 지인이 ‘지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를 입지 않도록’ 부탁한다는 "천지간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네"는 꽤 의외성이 있었으니까요.

유머러스한 분위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야말로 민폐 덩어리이자 쓸데없이 자존감만 높은 조지와 아시모프의 티격태격하는 말싸움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주로 조지의 입을 빌어 묘사되는데 “그건 선생의 부족하디 부족한 지능 덕인 듯합니다.” “좋은 클럽이라면 선생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과 이야기하는 건 끈적끈적한 당밀 속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습니다. 노력에 비해 그 대가가 너무 적어요.” 등인데, 아시모프의 자학 개그라 할 수 있겠네요.

허나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에 비하면 재미라든가 독특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여 비슷한 설정이라면, 감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쓴 "계약은 충실하게"가 더 낫네요. 소원도 의외성이 있고 결말 역시 그러하다는 점에서 말이죠.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4/16

라이징 임팩트 1~17 - 스즈키 나카바 : 별점 1.5점

라이징 임팩트 17 - 4점
스즈키 나카바 지음, 정선희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완결된지 10년도 더 넘게 지났지만, 최근에 골프에 관심을 둔 친구가 많아져서 이런 저런 작품을 읽다가 만나게 된 작품입니다.

그런데 골프 만화는 아닙니다. 전형적인 왕도형 배틀 판타지 만화입니다. 초등학생이 4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샷을 날리고, 수십미터짜리 버디 퍼팅과 칩인 어프로치를 당연하게 성공시키고, "기프트"라고도 불리우는 각자의 필살기("라이징 임팩트", "샤이닝 로드"…)를 가지고 있고, 주인공이 아무리봐도 초등학생 같지 않은 라이벌들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들과 한팀이 된 이후 다른 라이벌 팀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 팀과의 싸움이 끝난 뒤 진정한 라이벌 팀이 나타나고… 하는 식의 전형적인 배틀 판타지 액션 소년 만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만화에서 골프는 단지 소재일 뿐입니다. 골프 시합은 성투사들과의 전투, 라이징 임팩트는 페가수스 유성권으로 바꿔도 이야기는 가능하겠지요.

그래도 배틀 판타지로는 왕도형이라 기본적인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점프"에서 단행본 17권 분량까지 연재되었다는게 증거이고요. 다양한 홀의 구성과 환경에 맞춰 서로의 필살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꽤 그럴듯한 덕분입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두뇌 싸움을 보는 맛도 약간 느껴지고요. 또 천연계 주인공 가웨인 캐릭터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별다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지만요.

그러나 갈수록 너무 뻔해지는게 심상치 않았는데, 카멜롯과 그렐 킹덤과의 최종 결전에서 "자 이제 승부를 시작해볼까!"라는 말과 함께 바로 10년 후로 넘어가 후일담이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은 좀 황당했습니다. 편집부의 압력 ("당장 집어쳐!")이 느껴지더군요. 그나마 후일담으로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정리해준게 다행이에요.

여튼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전형적인 소년 만화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제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했어요. 킬링타임용으로 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네요.

덧붙이자면 주인공은 가웨인에 라이벌은 란슬롯, 끝판왕은 트리스탄, 다니는 학교는 카멜롯인 등 아더왕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 오기는 했으나 그냥 그뿐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끝판왕은 모드레드에 모르가나 정도는 나와줬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일본이 무대인 만화에 왜 억지로 이런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2008/06/10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 - 데이비드 리스 / 서현정 : 별점 3점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 - 6점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대교북스캔(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

암스테르담의 상인 미후엘 리엔조는 한번의 파산으로 동생 다니엘에게 얹혀 사는 신세지만, 전부터 알고 지냈던 네덜란드 여인 게이트라위드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커피 거래를 조작하자는 제안으로, 리엔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3000길더나 되는 돈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악연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암스테르담 유대인 조직 마아마드의 실력자 파리도의 견제 등으로 서서히 게이트라위드의 배후세력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고,. 결국 최후의 거래를 통해 파리도와 단판 승부를 벌일 결심을 굳힌 미후엘은 금기시 되어 있는 마지막 작전을 펼치는데...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의 주인공인 유다의 사자 벤자민 위버가 등장하는 추리물인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위버의 조부뻘인 미후엘 리엔조가 등장하는, 추리적 요소는 별로 없는 역사 기업 소설입니다.
추리적 요소라면 커피를 대상으로 한 작전세력(?)의 진정한 흑막이 누군이냐에 대한 것인데, 작중에서 계속적으로 음모의 주체로 등장하는 미후엘의 라이벌 파리도가 결과적으로는 흑막이었고, 회고록 형태로 삽입된 고리대금업자 알페론다의 기록을 통해 배후의 암투가 상세히 드러나는 탓에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또 마지막 선물시장에서의 바람 장사 작전은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 맥이 빠집니다. 과정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잘 표현되어 있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작전 자체가 워낙에 시시하고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아심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여 국면을 전환시키는 약간의 반전은 있지만, 사기와도 같은 책략이라 엄청난 음모, 그리고 두뇌싸움의 결말 치고는 뒷맛이 씁쓸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주아주 재미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습니다. 거래에 대한 불꽃 튀는 두뇌 게임과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 복잡한 음모가 아주 잘 묘사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당시 암스테르담과 유대인 사회에 대한 치밀한 고증 및 묘사는 역시나 최고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워낙 재미 측면에서 뛰어나기에 역사관련 팩션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한줄로 감상을 평하자면 "유대인하고는 절대로 거래하지 마라."

2013/03/03

본컬렉터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2.5점

본컬렉터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시가 UN 평화회의 개최로 축제 분위기에 젖어있던 중, 순찰 경관 아멜리아 1색스는 공터에서 살점이 모두 발라진 채 뼈만 남겨진 손을 발견했다. 주위에1는 살인범이 자신을 쫓으라는 듯 남겨둔 증거물들이 남아있었다. 전직 뉴욕시경 과학수사 국장 링컨 라임은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로 3년 동안의 침대 생활에 지쳐 안락사를 꿈꾸고 있었는데, 옛 동료가 내민 사건 현장 보고서에 탐정 기질이 발동하여 사건 의뢰를 수락했다. 링컨은 아멜리아를 파트너로 삼아 '본 컬렉터'와의 두뇌 싸움을 시작하는데...

링컨 라임 시리즈의 기념할만한 제 1작. 덴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를 먼저 감상했었기에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으나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 리스트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우선 전신마비의 천재 범죄학자 링컨 라임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전신마비를 저주하며 죽음을 갈망한다는 설정도 좋고, "방이 너무 추워지면 콧물이 흐른다. 이건 마비 환자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일이다." 같은 묘사 덕분입니다. 또한 범죄학자로서의 전문가적 지식이 빛나는 범인과의 두뇌 게임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범인이 고의로 남겨놓는 단서와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이 치밀하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범인의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하나씩 단서를 모아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마지막 보스전에 돌입한다는 점은 흡사 게임과 같은 재미가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지만, 서스펜스가 느껴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보스전에서 링컨 라임과 본 컬렉터의 한판 승부의 결말, 즉 링컨 라임의 스킬은 단 한개 뿐이지만 그것을 아주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역전 한판승을 거둔다는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많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사건의 전개와 동기가 너무 작위적입니다. 특히나 본 컬렉터가 희한한 단서를 남겨놓았다 하더라도, 경찰이 링컨 라임에게 사건 조사를 의뢰한다는건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부터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미션도 왠만하면 클리어하기가 불가능했을터라 레벨 보정(?)은 어떻게 가늠했는지 알 수가 없고요. 이래서야 정말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설정일 뿐이죠.

본 컬렉터에 대한 중요 복선도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리 와닿지 않습니다. 정체는 너무 뜬금없었고요. 이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앞선 단서에서 정체를 유추해 낼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한 탓입니다. 그나마 딱 하나 등장하는 정보, 슈나이더 - 테일러는 말장난에 불과해 보였거든요. 애시당초 왜 뼈를 모으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 외에도 꽤나 매력적인 링컨 라임에 비해 현장 감식가로는 초보자이지만 정의감과 행동력이 빛난다는 아멜리아 색스 캐릭터는 평범하고 진부하다는 것도 약점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로 평균 이상의 재미는 있으나 아주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행동의 제약이 있는 천재가 초보자라 할 수 있는 여성과 컴비를 이루어 연쇄 살인범을 쫓는다는 설정부터가 "양들의 침묵"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니까요. "양들의 침묵"을 읽었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2024/07/07

이브의 대관람차 - 유우야 토시오 / 김진환 : 별점 1.5점

이브의 대관람차 - 4점
유우야 토시오 지음, 김진환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직 경찰관 나카야마 히데오는 이혼 후 전처가 키우던 딸 린과 오랫만에 만났다. 화제가 되고 있는 대관람차인 '드림아이' 탑승권이 당첨되어 함께 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드림아이는 '난장이'라는 괴한에게 통제권을 탈취당했고, 탑승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난장이는 나카야마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경찰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나카야마는 드림아이 테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카이자키와 연락을 시작했다. 사실 나카야마와 카이자키는 경찰학교 동기이자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으로 멀어진 사이였다.
곤돌라가 연이어 떨어지고, 범인의 8엔억 요구 등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지면 결국 드림아이 통제권을 회수하여 남은 승객들을 구출하고 범인을 체포했다. 범인은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 때문에 이 테러 사건을 계획했었다....


일본 신인 작가의 데뷰작품. 버티고 레이블에서 일본 작품으로 소개되는 첫 번째 작품이라 호기심을 자아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천재적(?)인 범인이 장교하게 설계한 범죄에 맞서, 탐정역의 주인공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걸고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두뇌 배틀 장르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르물이 성공하려면, 범인의 도전적인 계획과 이를 막기 위한 주인공의 두뇌 싸움이 탄탄하게 연결돼야 합니다. 또한 범인의 동기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과정도 타당성 있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범인이 그런 행동을 취한 이유도 제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영화 "스피드"를 보자면 범인은 버스 속도계와 연동된 폭탄으로 거액을 요구합니다. 구출 시도는 CCTV로 감시하며 대응하고요. 범인의 정체는 FBI 수사로 나름 그럴듯하게 밝혀집니다. 동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런 요소들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드림아이의 장악과 곤돌라를 떨어트린 범행부터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드림아이의 제어권을 아르바이트생이 훔친 카드키 입력만으로 빼앗을 수 있는 점부터 이상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복수의 관리자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곤돌라를 어떻게 떨어트렸는지, 통신망에 어떻게 장애를 일으켰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범인 중 한 명인 타키구치가 공대생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범인들의 몸값 요구도 매우 이상합니다. 후카가 죽은건 제국부동산 비자금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범인 카나모리가 체포되지 않은건, 제국부동산으로부터 돈을 받은 카이자키가 증거 인멸을 하며 그를 보호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범인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진범이 카나모리라는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설명이 없고요. 만약  이들 모두를 알고 있다면, 대관람차로 다른 피해자들을 불러모을 까닭도 없습니다. 핵심 원흉과 범인에게는 손도 대지 않고 단순 방관자들에게만 지옥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또 범인들이 제국부동산의 비자금을 폭로할 이유, 비자금 관리자 미야우치를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야우치는 후카 사건과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인물이었으니까요. 범인들은 그냥 무작정 살인을 저질렀다는건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비자금 위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조부모와 언니가 동생의 죽음으로 이런 거대한 테러를 벌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고, 조부모가 언니를 끌어들인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죽은 손녀를 위한 복수로 산 손녀를 살인범으로 만든다는게 말이 될리가 없잖아요?

카이자키가 후카 사건에서 정액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남겼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증거를 인멸하려면 시신을 불태워버렸어야죠. 어설픈 처리로 시간만 낭비한데다가, 제국 부동산 비자금을 맡았던 카츠라기가 누명을 쓰고 죽게 만들었고, 카츠라기가 나카야마에게 했던 증언으로 꼬리마저 밟히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허술함은 작 중 냉정하고 뱀같이 묘사되는 카이자키 분위기와도 맞지 않습니다.
후카 살인 사건의 진범이 카나모리라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 아무런 단서를 제공해주지 않는 탓입니다. 너무 뜬금없어서 황당할 지경이었어요.

다른 설정과 전개도 이해가 되지 않는게 많습니다. 나카야마가 카츠라기의 증언을 숨기고 경찰을 떠나고 이혼까지 했다는 과거가 대표적입니다. 나카야마가 의심을 받아서 그만 두었나?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약간 수상하다는 것만 묘사될 뿐입니다. 별도의 조사나 수사도 받지 않았고요. 내사를 받은건 후카 사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카이지키를 범인이라고 고발해서 경찰 내 공공의 적이 되었나? 아닙니다. 카이자키는 용의선상에 오른 적도 없습니다. 나카야마가 당시 카이자키를 봤을 때 몸이 젖어 있었다(긴 시간 동안 증거를 인멸하느라)는 정도로는 고발도 불가능했을테고요. 
관할 내 친했던 소녀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에 가책을 느껴 경찰을 그만 두었다는 정도가 말이 되는 설명인데, 이 정도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이혼까지 하는건 말이 안되지요. 카이자키가 지속적으로 나카야마를 범인으로 몰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요.
나카야마가 사건을 미리 예지한다던가, 편집증같이 계획을 짜는데 몰입한다는 등의 설정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름이 '나카야마 히데오'라는게 좀 재미있었던 정도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에서 따왔겠지요?

괜찮은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대관람차를 탈취한다는 설정은 꽤 기발했고, 놀이공원을 찾은 손님들이 관객이 되어 피해자들을 바라보게 한 이유가 동기와 연결되는 - 후카를 방조한 피해자들 - 건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범인 난쟁이가 드림아이 곤돌라 중 하나에 탑승했다는걸 밝혀내는건 좋았어요. 곤돌라 승객들은 핸드폰을 버리게 한 탓에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시계탑 시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쟁이가 정해진 시간보다 전화를 늦게 걸어서 위치가 탄로나게 됩니다. 경찰이 시계탑 시계를 늦춰 놓있기 때문입니다. 범인 시계가 망가진 이유도 복선으로 제시해 주고 있고요.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인기있을만한 소재만 잔뜩 끌어와서 어설프게 조립한 치기어린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7/08/15

사라진 남자 (Charlie Muffin)- B 프리맨틀 / 박종원 (일신추리문고31) : 별점 3.5점

찰리 머핀은 영국 정보부의 베테랑 요원이지만 정보부장의 교체 등 인물들이 물갈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소외되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활약으로 붙잡은 소련 KGB의 1급 스파이 베렌코프의 석방을 놓고 궁지에 몰린 KGB 장군 카레닌은 망명의사를 은밀히 피력했고, 그러한 신호를 감지한 CIA와 영국 정보부는 공동 작전을 개시하여 그를 서방세계로 망명시키려 했다. 그러나 담당 정보부원들이 모두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보부는 찰리 머핀을 작전의 중심 인물로 기용하며, 찰리 머핀은 일생일대의 대 작전에 나서는데...

B 프리맨틀은 일본에서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있기도 한 유명작가인데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적은 탓도 크지만요.

줄거리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파이 첩보물입니다. 그러나 이 바닥의 고전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라던가 "르윈터의 망명"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조국에 대한 충섬심은 배재한체 두뇌게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죠. 또한 일반적인 스파이들과는 다른 찰리 머핀이라는 캐릭터도 무척 인상적이에요. 잔머리에 강하면서도 프로로서의 자부심도 높고 약간 비열한 면모도 보이는, 그간 다른 첩보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였거든요. 이러한 그의 모습이 작품의 재미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요.

내용은 베테랑 요원 찰리 머핀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활약과 두뇌싸움이 중심인데 007같은 단순한 히어로물은 아니며 정보부의 비정함, 서로가 속고 속이는 잔인한 게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긴박한 전개가 무척 일품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스파이 첩보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지금 구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구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시리즈물이던데 이후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특히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가 땡기네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리즈물이 계속될 만한 결말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좀 궁금하거든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하한테 잘 해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2010/05/23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 박지현 : 별점 3점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6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독특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 추리물이면서도, 뒷 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시간까지 철저히 계산된 계획에 따라 밀실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 되는 상황을 일정 시간, 즉 10시간 동안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 있는 동안' 탐정역인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을 펼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첫 번째의 이유, 즉 '밀실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고 애쓰는 대결 구도가 이루어집니다.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이 흔하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자주 접하지 못한 설정이라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추리 배틀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요. 특히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대등한 수준이라 서로 주고받는 심리전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주로 유카가 먼저 논리적인 펀치를 날리는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밖에서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지 등,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걸맞은 단계별 논리를 선보입니다. 앞부분에 제공되는 단서들, 예컨대 위스키 병이나 니이야마의 시력 등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 독자도 추리에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된 점도 좋았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사토끼"의 만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발언과 추리가 촉발시키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서스펜스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기'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쉽게 설명하자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려고 그 선수를 죽인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설정은 작가 미쓰하라 유리가 책 뒤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연과 운에 의존하는 전개가 많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니이야마가 약에 의해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며,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역시 운에 의지한 억지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작 중에서 이런 우연을 작가가 스스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작가가 책 뒤에서 설명한 대로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겁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었다면 소설로서의 재미가 크게 줄어들었겠지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 재미있게 몰입해 읽을 수 있었으며, 번역도 훌륭하고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통해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게 좋았어요. 앞으로 작품 한두 개만으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겠습니다.

2025/06/15

처단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자신이 조회를 요청했던 차량의 주인을 추적하던 중, 미국 법무부 요원들과 접촉하게 된다. 리처는 차량의 주인이 10년 전 자신이 처단했던 자비에르 퀸이라고 확신하지만, 법무부는 그 차량이 벡이라는 마약상의 것이며, 벡의 저택에 잠입시킨 수사관 테레사가 실종되었다고 설명했다. 리처는 퀸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직감하고 법무부와 손을 잡았다. 리처는 벡의 아들 리처드가 유괴당하는 것을 막는 척하며 작전을 수행해 벡의 집에 잠입하는데 성공했고, 점차 벡의 신임을 얻어가며 내부 조직원들을 하나씩 제거해갔다. 그 과정에서 벡이 사실은 퀸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으며, 퀸이 실세라는 사실을 알아 냈다. 

결국 정체가 드러난 리처를 퀸 일당이 공격했지만, 리처는 이들을 물리치고, 악당들의 무기 밀매 사실을 파악한 뒤 실종되었던 테레사까지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리처와 퀸의 최후 대면에서, 퀸이 벡을 인간 방패로 삼는 바람에 아버지를 구하려 나선 리처드의 개입으로 오히려 잭 리처는 궁지에 몰렸고,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이안류가 몰아치는 저택 앞바다로 몸을 던지고 마는데...

"처단"은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으로, 원제는 Persuader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시리즈인 잭 리처 시즌 3의 원작이고요. 드라마 원작이 되었다는게 수긍이 될 정도로 분량도 많고, 내용과 상황도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10년 전 잭 리처의 부하들을 죽였던 전직 장교 사건과 현재의 무기 밀매 조직 사건이 엮이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잭 리처가 악당 조직에 잠입하여 온갖 액션을 수행하는 덕분입니다. 

또한 시리즈 다른 작품들보다 추리적인 장면이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벡의 가정부는 잠입 요원으로 퀸 일당에게 정체를 들켜 살해당했습니다. 리처는 법무부 요원 더피에게 문의했지만, 다른 요원은 파견한 적이 없다고 했고요. 리처는 벡이 지나치게 많은 총기를 보유하고 있고, 총기 지식이 상당하다는 점을 근거로 그가 마약상이 아니라 무기 밀매업자일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이는 가정부는 법무부가 아니라 재무부 ATF(주류·담배·화기 및 폭발물 단속국)에서 보낸 요원이었다는 추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벡 저택 통신이 금요일 저녁에 완전히 차단되었던 상황에 대한 추리도 인상적입니다. 리처는 일반적으로는 통신이 원활한 시간대에 모든 휴대폰, 유선전화, 인터넷이 동시에 끊겼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각했고, 자신이 처리한 벡의 경호원들이 사라진 것을 숨기기 위해 더피가 일부러 통신망을 차단한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퀸 일당이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고급 케이터링 서비스를 불렀다는 것도 사소하지만 괜찮았습니다. 리처는 이들이 파티를 열 예정이고, 양고기 메뉴를 통해 손님들이 중동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걸 유추하거든요.
10년 전 사건에서 고로프스키가 군 감시 하에 있던 무기 설계도를 빼돌렸던 방법도 흥미로왔습니다. 리처는 그가 들고 있던 봉투는 주목을 끌기 위한 미끼이고, 실제 설계도는 신문에 숨겼을 것이라 추리하지요. 양키스 팬이 스포츠 면을 그냥 넘길리 없다는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해서요. 도미니크가 퀸에게 살해당한 후, 리처는 퀸이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가 중요한 물건들을 챙길 것이라 예측하고 미리 그를 기다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이처럼 단순하지만 논리적인 접근은 그동안 시리즈 작품에서는 강렬한 힘과 폭력에 밀려 간과되어 왔던 리처의 지적 능력을 한껏 드러내고, 적의 심리를 꿰뚫고 예측하는 능력이 힘과 폭력과 균형 있게 어우러지게 만들어서 매력을 더해줍니다.

물론,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인 특유의 강렬한 힘, 폭력,  액션은 여전히 중심축을 잡고 있습니다. 총격전, 잠입, 암살, 맨몸 격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악당들을 제압해가는 과정은 펄프 픽션 장르의 미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서는 잭 리처보다도 더 덩치가 큰 괴물 같은 상대 ‘폴리’와의 맨몸 격투가 압권입니다. 단순히 큰 덩치가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과 힘의 싸움이 실제처럼 묘사되어서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 드라마로 만든다면 클라이막스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아서 찾아보았는데, 실제로는 약간 실망스럽네요. 

등장하는 다양한 무기들도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M500 퍼스웨이더와 브레네케 매그넘 탄환은 시멘트 벽에 사람 크기의 구멍을 낼 수 있다고 하며, 실제로 적을 두 조각 내는걸로 묘사되는데, 이런 휴대용 총기가 실존한다는게 놀랍네요.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벡과 퀸의 관계가 다소 불명확합니다. 전체 분위기를 보면 벡은 아들 리처드가 유괴되어 학대받았던 탓에 퀸에게 종속된 듯 보이지만, 리처드는 학교를 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고 벡도 듀크 등 개인 부하를 두고 있는 등 충분한 반격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저항 없이 퀸에게 휘둘리고, 아내가 농락당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다는 설정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설정들도 비현실적인게 많아요. 벡의 저택부터 그러합니다. 출입구가 단 하나뿐이고, 도망칠 길이 막힌 구조인데, 이런 공간을 고의로 설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단지 긴장감을 위해 배경을 비현실적으로 만든 느낌이 강합니다. 가족간의 애정이 거의 언급되지 않다가, 마지막에 리처드가 아버지를 구하겠다며 잭 리처를 공격하는 장면도 급작스럽고요.  

결말 부분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잭 리처가 퀸에게 일부러 반격 기회를 준 후, 바다로 스스로 몸을 던지고 기적적으로 생존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꽤 두뇌 싸움을 펼쳐보였기 때문에, 한 수 더 치밀한 계획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빌런 퀸의 최후 역시 싱겁습니다. 폴리와 싸운 직후에 거센 바다에서 겨우 생환한 탓에 리처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퀸은 단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 안에서 리처에게 단숨에 제압당해서 죽고 맙니다. 이 정도 거물급 악역에게는 조금 더 극적인 종말이 주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잭 리처와 더피가 관계를 맺는 설정도 굳이 필요했을까 싶습니다. 시리즈 전통처럼 여성 캐릭터와의 로맨스를 넣은 셈이겠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화끈한 액션과 시리즈 특유의 묘미는 여전하지만, 설정의 허술함과 후반부 정리의 아쉬움은 약간의 흠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