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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5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 홍성욱 : 별점 2.5점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 6점
홍성욱 지음/책세상

제목 그대로 여러 가지 그림을 토대로 과학의 역사와 다양한 과학 이론을 알려주는 독특한 책입니다. 목차는 크게 세 부분 - "제 1부 근대 과학의 탄생, 제 2부 이성과 근대성, 제 3부 오래된 이야기와 현대 과학의 이미지"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까지의 시대순리녀, 목차별로 다양한 소주제가 포함되어 있고요.

그림을 활용하여 설명해 주는 덕분에, 딱딱한 내용임에도 이해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르키메데스의 준정다면체와 케플러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받아들여 플라톤의 다면체 다섯 개를 이용한 기하학적 원리를 여섯 개의 행성에 대입하는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주 좋았습니다(참고로, 케플러의 이론은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 이러한 수학적 조화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곤 하는군요).그림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나무"를 이용하여 진화론을 설명해주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본인의 그림 실력을 활용하여 자세한 달 그림을 남겼던 갈릴레오도 이후 서적에서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만 사용하였는데, 이유는 그가 메디치 궁정의 철학자가 된 뒤 예술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해석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학이 예술보다 더 신분이 높다"는건 갓 암흑시대를 벗어난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는 뜻이지요.
이 이야기를 갈릴레오가 관측한 달 그림이 로도비코 카르디 다 치콜리의 "성모 마리아" 그림에 활용되었다는 것과 엮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울퉁불퉁한 갈릴레오의 달 해석을 카톨릭 교회는 반대했지만, 달은 "타락의 결점"을 상징하므로 성모가 짓밟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해석되어 무사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정밀한 과학이 기존의 예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예술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술가들의 반격 역시 몇 가지 예로 설명됩니다. 백과전서의 권두화에 대한 항목, 예술가 블레이크가 "예술은 생명의 나무이고, 과학은 죽음의 나무이다"라고 과학을 비판했다는 항목 등으로요.
그런데 백과전서 권두화 이야기는 좀 과잉해석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저자의 의도와 그림이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의도인지 아니면 그냥 그림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죠. 권두화를 창작한 화가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서 만들었을 것 같지도 않고요.

그 외, 볼테르의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라부아지에의 아내 역시 만만찮은 능력으로 라부아지에를 충실히 내조했다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책의 특성상 도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대체로 우수한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림에서 필요한 부분을 "확대" 해서 삽입하여 설명해주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큰 그림을 접이식으로 수록하는 것보다 훨씬 읽기 편했으니까요. "아테네 학당" 등 유명한 그림들이 사용된 것도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하지만 목차의 세 번째 부분인 "오래된 이야기와 현대 과학의 이미지"는 내용과 분위기 모두 다른 부분과는 분리되어 있는 듯 해서 아쉬웠습니다. 유명한 그림도 등장하지 않고, 과학사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더 복잡한 이론에 치우친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프리온 이야기는 완전히 생뚱맞은 내용이라 굉장히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상술한 단점들로 조금 감점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재미있는 과학 도서는 분명하기에, 읽기 편한 과학사 중심의 과학 도서를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예술 두 분야가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현대의 미디어 아트 같은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2020/05/16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야마모토 요시타카 / 서의동 : 별점 4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8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과학기술이 주요 축의 하나였던 일본근대화 150여년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메이지 초기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뒤 전쟁을 거쳐 현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내에서의 과학 기술의 역할과 '총력전' 이라는 형태의 방식에 대해 7장, 4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조망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유익했던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었고, 잘 몰랐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요.

궁금했었던 의문이 해결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건 "일본은 고작 몇 년 정도 앞서 개항한 걸로 어떻게 20세기 초중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네요. 서구에서도 물리학에서 신학적 내용과 같은 불필요한 내용이 추방되고, 수학도 정리되어 세련되어 갔으며, 과학 연구와 연구자 양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학문의 습득이 쉽고 체계적이 된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인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빨랐어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테고, 50년만 늦었어도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한 뒤라 습득 장벽이 높아서 서구 물리학과 관련 학문을 쫓아가는건 굉장히 어려웠을거라는군요.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이었으니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19세기에는 여러가지 과학 분야의 연구가 실제 기술 개발에 적용되는 사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쳐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보면 '과학' 보다 그 결과물인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도 '기술'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보다 촛점을 맞추었고요. 한마디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인 셈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요. 덕분에 일본이 근대화에 빨리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농공상' 대신 학력에 의한 질서 형성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과학기술 수입의 핵심기관인 공부성이 주도한 방침 자체가, 재래의 직인층을 독려해 종래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게 아니었던 탓입니다. 사족 중 유능한 자를 기술관료로 육성한 뒤 서구 과학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게 핵심이었거든요. 그래서 상급학교에 진학한건 거의 사족의 자제였고, 메이지 시대 기술자의 태반이 사족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족은 직인, 상인의 일을 경멸했던 터라 이런 계급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술을 지배층만의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이들을 엘리트로 재래의 직인과 차별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거지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엘리트 의식을 함양시켰다고 합니다.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걸 당연히 여겼고요.
이 탓에 상급 기술자들은 엘리트 의식 과잉에 배타적 성격을 지니나, 반면 관료적이고 조직과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학제, 시스템을 식민지 시절 도입당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와 닿네요.

책에서 소개하는 근대화와 함께 한 과학기술 진흥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메이지 초기 해외 사절단 등을 통해 일본 지배층은 상공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며, 특히 과학이 기술에 직결되고 산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의 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막말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으로 지배층의 권위 실추와 새로운 사정,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에게 합리적이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궁리窮理학'이 대 유행하게 되고요. 이를 통해 서양과학기술 계몽서가 유행하는데, '궁리'라는 라쿠고까지 나왔다니 그 유행을 미루어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목의 '총력전' 이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주도 개혁에서 군부 독재에 의한 제국 주의가 심화되며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무척이나 상세해요. 전쟁에 대비하여 총력을 다해 이를 준비한다는 '총력전' 체제로 모든 산업, 경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일부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더군요. 군부 독재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흥미로왔고요. 또 이러한 '통제'는 좌, 우익 모두 찬성했다는데, 우익이야 그렇다쳐도 좌익은 좀 의외였습니다만 그 이유도 책에서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좌익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억제한다는 그 자체에 무조건 찬성한거라네요. 제목처럼 총력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내용도 잘 알려줍니다. 군부 주도의, 군사 목적의 발전이면 기술 개발이 빠질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덕분에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되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았다고 하고요. 전후 과학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가장 연구 환경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요.

또 총력전을 통해 결국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징병제 때문에 농촌의 인구와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의료 보험 등 복지에 대한 여러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총력전 이전,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희생도 잊으면 안 될 역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계화'가 생각했던대로 인간의 노동을 경감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근무가 도입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서 민중은 그만큼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운이 좋았던 덕분인데다가, 효과적인 교육제도가 형성된 등의 이유도 크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가 불가결의 요인이었던거죠. 제국주의가 되면서 이러한 수탈, 파괴는 식민지로 옮겨지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탈과 파괴, 희생의 직격탄을 맞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저린 역사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도 새롭습니다. 대표적인게 일본의 패배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 독재 시기에 총력전 체제에 의한 사회의 구조적 변경과 재편성이 이루어졌는데, 이 구조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자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일본은 '전시 체제'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수의 관료, 선택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세우고 이를 모든 사회에 강요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지요. 최근 드러나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일본의 재건에 나서는데, 이 역시 총력전 체제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일본은 운이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전쟁 당시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생산 설비가 비교적 온존되어 있었고, 전시하에서 급성장하고 축적된 기술과 기술자층이 많아서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으며, 은행과 군수 기업은 망하지 않은게 다시금 총력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네요. 식민지 시절 수탈과 희생을 발판삼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다시 고도 성장을 한 것이죠. 또 고도 성장의 핵심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시장의 급성장 덕분이었다니, 이 정도면 천운을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러한 고도 성장도 전전의 '총력전' 처럼 약자의 생활과 생명 경시를 동반한게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니,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에요. 이러한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의 거짓말,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기업편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언론 역시 이에 동조하여 거짓 기사를 써 낸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거가 겹쳐지기도 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를 보아도 "무슨무슨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켰지만, 그 과실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건 재벌과 권력자라는걸 부인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냥 좌시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바로 원자력이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모든걸 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서의 발상으로, 지금 시점에 맞는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감당할 여지는 많지 않으니까요. 결국 일본은 가격이 유지되는 시장인 군수 산업에 올인해서 전쟁 유발을 획책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 일본이 집중한게 바로 원자력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과거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을 과대 포장하여 원자력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르면 이미 전력 수요는 넘어서는 원전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원전 비즈니스를 위해 원자력 개발을 하고 원전을 지은 것에 불과한거죠. 국가 주도의 총력전이 지금은 원자력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원자력은 수백년 사용하면 수십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가 더 큰, 무한한 미래를 희생하여 당장의 현재를 사는 굉장한 낭비에 불과하다는걸 통렬하게 알려줍니다. 원전 자체가 불완전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원전에 큰 투자를 감행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일본식 총력전을 무력하게 만들어, 조만간 '일본 주식 회사'의 실패를 불러올거라고 하니 무서울 정도네요. 우리나라 모 회사가 어려워진게 국가에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원자력은 현재라고 하기 어렵고, 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예를 꼭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친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가 주도의 비즈니스 드라이브를 걸다가 나라가 망해가는건 그 누구도 원치 않으실거라 믿고요.

결론과 후기를 통해 저자는 앞으로는 총력전 체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해봤자 국민 개인은 성장하지 않는다는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때문에 글로벌 교류를 통한 전쟁없으며 연대를 이루는 시민 사회의 성장, 이를 통한 실업없는 제로 성장 사회로 연착륙 하는게 맞는 방향이고, 여기에 과학적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최근의 코로나 사태가 시민 사회의 교류와 국가간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점이지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바뀔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제야 조금 와 닿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얻은게 많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만의 주장이 담겨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본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가장 중요한 동력인 식민지 수탈을 너무 짧게 짚고 넘어간 것도 적절치 못하고, 일본 원자력 산업도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요. 과연 공평한 논리와 시각인지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는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무척 반가왔으며, 현재의 일본과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09/06/13

셜록 홈즈의 과학 미스테리 - 콜린 브루스 / 이덕환 : 별점 2점

셜록 홈스의 과학 미스테리 - 4점
콜린 브루스 지음, 이덕환 옮김/까치글방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왓슨, 내가 이겼네"의 저자 콜린 브루스의 또다른 책입니다. 이 책 역시 셜록 홈즈 소설의 틀을 빌려온 추리소설, 셜록 홈즈의 파스티쉬 작품이면서, 어려운 물리학 등의 과학원리를 쉽게 설명해주는 과학 교양-교육 서적이기도 한 독특한 책입니다.

재미있던 이야기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 유명한 "챌린저 교수 (잃어버린 세계)" 가 사건의 의뢰인으로 등장하여 북해의 해저 탐사용 잠수정에서 발생한 원인불명의 사건(잠수정 안에서 잠수부들이 뜨거운 공기에 질식해 숨진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사라진 에너지"는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실제 사건의 진상보다는 파라핀 램프를 숨겨가지고 들어갔다는 추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은 좀 아쉽지만,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는 전개와 더불어 챌린저 교수의 등장 등 즐길거리가 굉장히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실험에 쓰이는 민감한 사진 필름을 손상시키는 장난을 해결하는 "과학실험의 방해공작"도 좋았어요. 독특한 방사선을 발하는 우라늄 광석에 대한 설정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있어도,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과학 설명이 충분히 추리에 부합하고 있으니까요.

"불충스러운 하인"은 왕실에서 발생한 한 마부의 자살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자살 시 총성을 일부만 듣고 일부는 듣지 못했다라는 증언의 모순을 파동이론으로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어려운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교양-교육 서적 최대의 미덕을 보여준다는 점이 아주 좋아요. 트릭 자체도 어디 써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고요. 

"황폐한 해변"은 양자역학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너무나 어렵고 지루했지만 실제 사건의 트릭, 즉 해변에서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아 살해당한 시체 주변에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는 트릭이 괜찮아서 그럭저럭 본전치기는 합니다. 힌트는 "파동", 즉 "파도"에 관련된 트릭입니다. 

이렇게 네 작품은 꽤 괜찮고 재미있는, 추리적인 이야기와 과학 설명이 제대로 결합되어 있는 좋은 작품인데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몇몇 작품은 상상 그 이상으로 지루했습니다.
위치와 속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시간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에 대한 너무 뻔하고 반복적인 설명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사건과는 별 상관 없는 시간 단위를 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쌍둥이의 유산 상속 이야기를 다루는 "상대적 질투"의 예를 들자면, 쌍둥이 중 누가 형인가? 를 따지는 이야기인데 여기서의 상대성 이론 설명은 정말 재미없습니다. 오히려 부가적으로 등장하는 쌍둥이라는 조건을 이용한 트릭이 상당히 절묘하게 삽입되는게 아깝기만 했습니다.

또 시대 배경하고는 너무 안맞는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상대성 이론에다가 E=MC제곱 까지 나와버리니 셜록 홈즈의 시대를 가뿐히 뛰어넘잖아요. 물론 "교육"이 주 목적인 교양도서이니만큼 디테일을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셜록 홈즈 팬으로서는 불만스러운 사항입니다. 원자폭탄에 대한 이야기도 설명은 재미있었지만 마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원폭이라니... 이거야말로 과학 설명때문에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왓슨, 내가 이겼네" 보다는 교양 - 교육 쪽으로 훨~씬 많이 치우친 책입니다. 몇몇 에피소드는 추리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미 측면에서는 함량미달이에요. 과학설명 역시 지루한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그다지 기대에 값하지 못하고요. "왓슨..."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절판 상태인 책을 어렵게, 정말 어렵게 구해본 것인데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별점은 2점.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010/11/16

셜록 홈스의 과학 - E.J 와그너 / 이한음 : 별점 4점

셜록 홈스의 과학 - 8점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다양한 과학 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를 인용하며 당시 과학 수사—즉,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 수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다양한 사건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홈즈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다만, 과학 수사 초창기에서 셜록 홈즈의 전성기, 즉 20세기 초반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그 이후의 발전상을 심도 있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참고도서로 보기에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 수사의 역사에 대해 이만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학 수사에 관심 있으시거나 다양한 사건 사례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분석해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망 시간의 추정, 부검 및 해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하녀가 실종된 후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받던 중,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실종된 하녀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밀한 부검을 통해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결과, 시신이 깨끗했던 이유가 피부의 진피층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강물이 차가워 시신이 3개월 동안 잘 보존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서 비롯된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앵무새의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해 범인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는데,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한 덕분이었습니다!

"옥에 티"

곤충과 범죄 수사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리가 잡은 범인"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 특히 비소 검출 기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얼룩끈"에서 뱀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해결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해 독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서를 실제 사건과 연결해 설명해 주니 더욱 흥미로웠거든요.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과 관련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비도크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가짜 경감 듀"로 유명한 크리픈 사건(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했던 사건)도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변장을 간파하고,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고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었습니다.

"범죄자의 초상"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기에는 문신이나 흉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이후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거쳐 지문 감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사건이 인상적이었어요. 1920년대 리옹에서 대낮에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 물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이랑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범인은? 놀랍게도 원숭이였습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네요.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먼지와 오물에 대한 법과학적 분석을 다룹니다.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 사건에서는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놀라운 사건은 자신을 흡혈귀라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황산에 녹여 증거를 없앴다고 확신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조약돌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조약돌은 피해자의 담석이었고,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기막힌 반전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화, 의학, 살인"

19세기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을 비롯해, 자위행위가 해롭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등장한 황당한 치료법들, 흡혈귀에 대한 미신,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보존된다는 믿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2013/11/19

한국의 CSI - 표창원, 유제설 : 별점 3점

한국의 CSI - 6점
표창원.유제설 지음/북라이프

미드 CSI로 잘 알려진, 과학수사 기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 목차는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1
Part1. 현장 감식, 모든 수사의 출발점
Part2. 지문, 감춰진 범죄자의 흔적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2
Part3. DNA, 살인자의 또 다른 얼굴
Part4. 혈흔 형태 분석, 범죄 상황의 생생한 증언
Part5. 미세 증거, 범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증거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3
Part6. 검시, 사체가 말하는 진실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4
Part7. 화재 감식, 화염으로도 감출 수 없는 범죄

가장 큰 특징은 항목별로 실제 사례를 등장시켜 이해를 돕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혈흔에 대한 설명에 실제 "도망자"로 유명한 샘 셰퍼드 사건을 등장시키는 식입니다. 사건에 얽힌 후일담이 상세하게 실려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샘 의사가 킬러라는 닉네임으로 프로레슬러 생활을 했는지는 몰랐네요.

내용들 모두 흥미로우나 개인적으로는 과학수사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4개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존배넷 램지 사건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송되었던 미국의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영구 미제 사건이기도 하지요. 초동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범인 비스무레한 인물도 드러났고, 최소한 부모가 누명을 벗었다는건 다행입니다. 

오제이 심슨 사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설명은 생략합니다만 변호인 측의 전략과 주장이 상당히 짜임새 있어서 놀랐습니다. 덧붙이자면 오제이 심슨이 범인인 줄 알았는데 그의 전처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김성재 사건

유명한 사건이죠. 외국 도서와는 다르게 국내 유명 사건이 소개되는 점은 확실히 좋네요. 워낙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지만 이 책에서는 변호인단의 논박과 증거들에 대한 변론이 디테일하게 소개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태까지는 고 김성재의 애인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인단 의견도 확실히 타당성이 있더군요. 그나저나 유력한 증거인 동물 마취제 성분의 독극물이 왜 크게 인정받지 못했는지는 조금 궁금합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워낙에 유명한 영구 미제 사건이죠. 아직 여러모로 의견이 분분한 사건으로 제 개인적인 평을 담을 필요는 없지만 확실히 변호인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경찰 말대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었다면 남편에게 가장 확실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네요. 변호인이 밝힌 용의자인 치정남은 살인을 저지를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요? 돈 때문에 협박한 거라면 남편한테 밝혀버리는 게 맞지... 여튼 이 사건 이후 여러모로 발전한 경찰과 국과수의 노력으로 만삭 아내 살인사건 같은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겠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관련 서적은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을만한, 딱딱할 수 있는 과학수사 이론을 흥미로운 실제 사례와 결합하여 소개하는 이상적인 구성을 갖춘 책이라 생각됩니다. 한국화된 사례들도 마음에 좋았고요. 이론보다는 조금 재미에 치우친 편이긴 한데 도판과 자료를 조금만 더 보강한다면 이쪽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와 겨루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09/08/08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석기용 : 별점 3점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6점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이마고

전쟁에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요지는 전쟁에서 혁신을 가져온 다양한 무기들은 결국 과학과 결합된 산물이었다는 것이고요. 

고대 전쟁에서 "전차"의 등장, 청동의 등장, 철기의 등장, 기병의 등장, 공성무기들의 등장 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로마를 끝으로 중세로 넘어가서 유명한 아쟁쿠르 전투에서의 영국의 장궁에서부터 철갑기사와 석궁, 그리스화약과 석유, 인쇄술 등을 다룬 뒤, 르네상스시대의 대포, 제국주의 시대의 해상 무역을 위한 다양한 기술들, 그리고 산업혁명과 나폴레옹 이후의 무기의 변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등장하는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과학기술과 무기의 결합, 베트남전의 무기들과 이후의 컴퓨터, 다양한 국가들의 무기 개발 시도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장은 전쟁에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것을 알면서도 협조하는 과학자들의 양심을 묻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들 - 예를 들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일본 관동군 731 부대라던가 나치의 생체실험 등 - 과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과학이 자연을 더 깊게 들여다 볼 수록 그것을 파괴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특히 과학이 국가가 하나가 된 이상.." 이라는 결론으로 끝맺습니다. 암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겠죠. 지금처럼 과학기술을 국가가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시기에 특정한 기술이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다는것은 불가능할테니까요. 앞으로 과학자들이 애국심과 인간으로서의 양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 나갈지는 지켜볼 수 밖에요.

어쨌건 재미있는 책인데 약간의 단점은 있습니다. 특정 과학자들이 전쟁에 협력하는 모습을 비중있게 그린 나머지, 그 과학자들의 업적을 조금 간과하는 부분처럼요. 대표적인 예가 라부와지에겠죠. 이 책만 읽으면 프랑스 화약 개선 등의 작업을 진행한 화학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화학식의 도입, 질량 보존의 법칙 발견 ...등 프랑스 화약 개선따위는 먼지에 지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지요. 핵폭탄 관련 글의 분량도 과했고요. 

그래도 주석만 40여페이지가 될 정도의 치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가 실시간으로 전쟁을 보도하는 듯한 현장감 있는 묘사로 글을 써내려갔기에 단순한 역사서를 뛰어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루이 14세가 파랑색과 흰색이 조합된 멋진 군복을 원했기 때문에 직조술과 근대적인 천공 카드 시스템의 효시가 태동했다라는 이야기같은 각 무기들과 전쟁 이면에 맞추어진 다양한 일화들과 프랑스의 대포가 처음으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전투인 몬테산조반니 요새 함락작전같은 몰랐던 전쟁 소사 (小史) 들의 설명 역시 흥미진진했고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는 제일 진지했던 독서인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두께가 만만치않아 휴대하면서 읽기에 좀 무리가 따르기는 했지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기에 추천합니다.

2017/03/25

삼체 - 류츠신 / 이현아 : 별점 2.5점

삼체 - 6점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단숨

나노 공학자 왕먀오는 경찰에게서 오래전 흠모해왔던 여성과학자 양둥이 자살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녀가 속했던 단체 '과학의 경계' 조사를 부탁받았다.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이후 갑자가 왕먀오 눈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왕먀오는 이 현상을 밝히기 위해 온라인 게임 '삼체'에 접속하여 플레이하는 한 편, 양둥의 어머니 예원제로부터 과거 중국이 만들었던 '홍안' 시스템에 대해 듣게 되는데..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중국산 SF입니다. SF는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중국산 장르문학 추리물 두 편 -"13 .67", "기억나지 않음, 형사" -이 괜찮았던 기억도 한 몫 했고요.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양둥을 비롯한 '과학의 경계'에 소속된 세계 석학들의 잇단 자살 사건, 그리고 눈 앞에 기묘한 카운트다운이 펼쳐진 나노 기술 과학자 왕먀오가 경찰 스창등과 함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온라인 게임 "삼체 (theree body)" 플레이가 상세하게 설명되지요.
두 번째는 여성 과학자 예원제를 주인공으로, 그녀가 문화대혁명 기간 박해를 받다가 우연히 '홍안' 시스템에 근무하게 된 후 외계와 교신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 모든 수수께끼가 밝혀지고, 이후 삼체인들의 지구 침공 계획이 상세하게 드러나며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들 모두 탄탄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놀라운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으며, 묘사와 깊이가 실로 대단합니다. 특히 수학적으로 꽤 오래된 문제라는 '삼체 문제'를 활용한, 세 개의 태양이 불타는 센타우루스성 알파 삼중성계의 삼체 문명을 그려낸 묘사와, 이 삼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에서 각종 해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돋보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진시황의 3천만 군사를 이용하여 컴퓨터를 만드는 장면을 꼽고 싶네요. 컴퓨터를 인력으로 대체하는 아이디어인데 그야말로 대국적인 발상과 과학이 잘 결합된 어마무시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상만해도 웅장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압도적이었어요. 영상화가 기대될 정도로 말이죠.
그 외의 디테일들도 실제 과학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예원제가 우연히 태양이 전파 증폭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삼체인과 통신이 가능했다는 핵심 설정 역시 이런저런 과학적 이론을 곁들여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며, 마지막에 큰 활약을 하는 나노 소재 '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중국산 SF답게 중국적인 설정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예원제가 겪은 문화 대혁명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홍위병이 예저타이를 핍박하는 과정의 묘사부터 섬찟합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학을 철학과 사상으로 포장하려는 헛된 노력도 눈물겹고요(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빅뱅이론이 신의 존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특이한 배경 설명에 그치지 않고, 문화대혁명의 병폐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예원제가 삼체인을 불러들이게 된 핵심 이유인 '인간에 대한 실망감' 이라는 것에 굉장한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울러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위해 1960년대 이미 전파를 송출하는 안테나를 설치했다는 배경 설정도 그럴싸했습니다. 정말 그랬음직하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홍위병, 문화 대혁명에 대한 비판이 엄청나다는 것은 좀 신기하네요. 그만큼 엄청난 과오이자 실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중국 내에서 이렇게까지 비판적인 작품이 나올 정도인지 좀 의문이거든요.

삼체인과 지구인의 관계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삼체 반군이 '인류 사회는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자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광기를 억제할 수 없기에 주께서 강림해야 한다. 주께서 사악한 인류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전 인류 멸망이 소망인 강림파와 어떻게든 삼체의 움직임을 밝혀내어 삼체인을 구원하려 하는 구원파로 나뉜다는 설정도 괜찮아요. 사실 강림파 쪽 아이디어는 제법 많이 보아 왔지만(기생수의 히로가와도 비슷한 인물이죠), 구원파쪽은 확실히 신선했어요. '주'라고 불리울 정도로 전능한 존재가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컬한데, 그들이 벌레로 부르는 미약한 존재들이 '주'가 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니 이래저래 재미있는 관계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체인이 지구의 과학을 무너트리려고 획책한다는 발상도 나쁘지 않아요. 그들의 기술력으로도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400여년 걸리는데, 그 사이에 지구인이 맞서 싸울 수 있는 과학력을 보유할 수도 있으니 그걸 원천봉쇄하자는 생각은 충분히 합리적이지요. 그것을 위해 '지자'를 만들고, 이런저런 작전으로 과학자들이 자살하게 만드는 등의 과정도 특유의 묘사력을 발휘하여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고요.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과 묘사를 뺀다면 좀 별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잘 엮여져 있지 않은 탓이 큽니다. 특히 마지막, 삼체인이 '지자'를 만들어 지구 침공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겉돕니다. 앞부분에서 현재의 지구를 기준으로, 벌어지는 수수께끼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갑자기 외계인 기준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니까요. 차라리 현재의 왕먀오, 과거의 예원제 이야기를 가지고 현재의 수수께끼를 밝혀내는 이야기를 1부로, 2부는 삼체인 시점으로 지구 침공 작전을 다룬 이야기로, 3부는 400여년 후 지구에서 두 세력이 자웅을 겨루는 방식의 3부작 구성이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제목과도 잘 어울리잖아요. '삼체 삼부작'.

또 현란한 설정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이야기가 진부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핵심 내용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깊숙히 들어가도 '외계인과 통신하며 지구 문명 멸망을 바란 삼체 반군을 처단하고, 400년 후 도착할 삼체인과 맞서 싸우기 위한 결의를 다진다'가 전부입니다. 이게 애니메이션이라면 도입부에 불과하지요. 앞서 말씀드렸듯 3부작의 1부에 해당할 뿐이에요.
외계인이 생존을 위해 지구를 침략한다는 내용도 쎄고 쎘습니다. 그들 행성이 모종의 이유로 절멸의 위기를 맞는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 작품에서 '삼체'를 가지고 조금 더 과학적으로 그럴듯하게 그려내었을 뿐 설정 외의 새로운 점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삼체인에 대한 설정도 극단적으로 생존만을 위해 모든 것을 억압하고 말살했다는 점에서 진부합니다. 젠트라디와 별로 다를것도 없더라고요. 이래서야 지구에 침공하더라도 민메이 어택에 쓸려나갈지도 모르겠어요.

삼체 게임을 통해 설명되는 알고리즘 역시 현란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른바 '구원파'가 삼체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개의 태양 움직임 예측을 어떻게든 밝혀내기 위한 게임이라는 설정인데, 지구보다 과학이 훨씬 발전한 삼체인에게 지구인이 무언가 해결 방법을 내 놓는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같은 물리적 세계관을 지녔다는 설정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순관계를 그려낸 설정이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중이 컸어요.

물론 재미있고 괜찮은, 신선한 SF라는건 맞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자국의 아픈 역사와 하드 SF를 결합한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를 과대 포장한 느낌도 지우기는 힘드네요. 중국이 무대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이 무대였다면, 아니면 일본을 무대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10/22

소년 생활 대백과 - 현태준 : 별점 2점

소년 생활 대백과 - 4점
현태준 지음/휴머니스트

그간 격조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장 바쁜 요즈음이네요. 주말만 글을 올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뽈랄라 대행진"으로 유명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콜렉터인 현태준 씨가 쓴, 한국 프라모델과 완구를 시대별로 망라한 책입니다. 제품 명칭, 스케일, 가격, 출시년도, 주요 특징과 주로 어떤 제품을 베꼈는지가 중심인 간략한 제품 소개가 곁들여진 구성으로, 특히 한국 프라모델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보집을 보는 듯한 재미가 큽니다. 시대를 연상케 하는 패키지와 광고 문구들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덕분입니다. 일본식 발음, 오타, 그리고 반공 분위기가 팽배하던 70년대에 소련기를 출시하면서 "적기를 식별하자"라는 슬로건으로 반공 분위기 속에서도 제품 출시에 문제가 없도록 했던 마케팅 정책 등이 그러합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조립식'이라는 단어도 반가웠고요. 

70년대 생으로 80년대 모형 라이프를 보냈던 세대라서, 직접 만들어보았던 여러 제품들이 소개되는 것도 무척 반가웠던 점입니다. 몇몇 제품만 꼽아보자면, 우선 아카데미의 연발 루가총은 확실히 만든 기억이 납니다. 정교하고 재미있어서 두어 번 만들었던 것 같아요. "내 맘대로 인디언" 시리즈는 너무 좋아했던 시리즈입니다. 쉽게 만들 수 있고, 결과물도 예쁘고 완성도도 높아서 자주 만들었었습니다. 정말 추억 돋습니다. 건담 시리즈는 그냥 그랬지만,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어딘가 샵에서 전시된 건담 마크 2 조립 완성품을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손가락이 움직이다니! "변신 혹성 전자 로보트 (다이덴진)", "발디오스", 그리고 "가리안 시리즈" 모두 기억에 생생하고요. 보물섬 시리즈는 어린 마음에도 큰 녀석은 너무 비싸서 그림의 떡이었지만, "보물섬 3호 감시전망대"는 확실히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품 소개 외에도 제일과학의 창시자 김병휘 사장 관련 기사처럼 흥미로운 토막 기사도 꽤 괜찮습니다. 중앙매스컴에 근무하던 평범한 광고인이 소년중앙에 실릴 아카데미 광고를 계기로 모형에 흥미를 느껴, 모형점 개업 → 모형 개발 및 판매 → 법적 고초(일본 모형 수입 문제) → 사업 철수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담겨 있습니다. 취미를 살려 일가를 이뤘다는 점은 부럽지만, 동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차라리 "라면 요리왕"의 후지모토처럼 부업으로 계속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하지만 이런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용도 외의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좀 부족합니다. 모든 프라모델을 총망라하고 있지는 않으며, 당대 유행과 실제 역사와의 연결 같은 미시사적 시각도 많이 부족합니다.
소련기 출시 시기의 광고 카피, 인기 만화·영화와의 연계 흐름도 짤막하게 언급되긴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그나마 비중 있게 다루는 저작권 무시, 복제 행태는 이미 다른 컨텐츠를 통해 수없이 접해본 것들이라 신선하지 않았으며, 국내 프라모델 역사 측면에서도 제일과학 외에는 주요 메이커들에 대한 소개가 부족합니다. 아카데미, 아이디어 과학, 에이스 과학, 뽀빠이 과학 등 업체들의 흥망성쇠나 관계자 인터뷰가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특히 명가 아카데미 과학에 대한 소개가 단 한 페이지라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최초 모형 동호회였던 걸리버모형회, 애독했던 "취미가" 기사도 구색 맞추기 수준이어서 아쉬웠고요.

역사적 흐름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모델" 자체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부족했습니다. 대부분 패키지만 보여주고 러너나 실제 작례 소개는 드문 탓입니다.

한마디로 국산 프라모델 카탈로그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쁘진 않고 저 역시 충분히 즐겼지만, 미시사적 시각이나 모델 중심 구성 모두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35,0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스럽고요. 오래전 읽었던 "클로버 문고의 향수"처럼 오래된 컨텐츠를 시대순으로 조망하려는 의도는 비슷하지만, 깊이와 디테일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0/11/23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로이스 그레시 외 / 유나영 : 별점 2점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4점
로이스 그레시,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유나영 옮김/한승

이전에 읽었던 "셜록 홈스의 과학"이 아주 좋았기에 읽게 된 시리즈 책입니다. 

"셜록 홈스의 과학"이 셜록 홈스를 등장시켜 과학 수사를 설명했듯이, 이 책도 '007 - 제임스 본드'와 그 작품을 통해 첩보·스파이의 역사와 발전사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시리즈로 묶였을 뿐, 책의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아차 싶었습니다. 본드카, 총기와 폭발물, 핵전쟁, 첩보 장비 등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구들과 악당들, 그리고 악당들의 음모를 약간의 과학적 상식을 섞어 분석하는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나 밀도 높은 분석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007 -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충실한 해설서에 가깝습니다.

물론 덕분에 "007"이라는 시리즈, 특히 영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본드 소설과 영화에 등장했던 화려한 장비나 다양한 본드카에 대한 설명은 읽는 재미가 넘쳤고요. 과학적 분석도 몇몇 이야기는 꽤 흥미로왔어요. 세균전과 화학전에 대한 짤막한 설명, 실제로 제작되었던 007용 도구(특히 '자이로콥터'!)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마지막 부록으로 포함된 '마티니의 과학 -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부분도 인상적이었고요.(관련 기사: 여기)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007 - 제임스 본드"라는 하나의 장르물에 대한 팬 사이트 해설 모음집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007"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거에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도판 하나 제대로 실려 있지 않은 것도 불만스럽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6/06/29

이 사람을 보라 - 마이클 무어콕 / 최용준 : 별점 2점

이 사람을 보라 - 4점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어렸을 때부터 기묘한 관심병과 자기 비하로 점철된 찌질한 인생을 살아온 칼 글로거는, 서점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여행자 지원 제안은 거절했지만, 오랜 시절 알아온 연인같은 섹스 파트너 모니카의 변절 후 즉흥적으로 시간 여행에 자원하여 예수가 십자가 형을 받기 1년 전으로 향하는데...

걸작으로 소문난 작품이죠. 이런 저련 소개 자료를 통해 관심이 가던 차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카톨릭 -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이건 직전에 읽었던 "양심의 문제"와 비슷합니다. 허나 "양심의 문제"가 카톨릭 세계관의 확고부동함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어떻게보면 신성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정 반대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과학적 설정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고요. 시간 여행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등 과학적 설정은 작품의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난 듯 싶습니다. 외계인이 인류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예수는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한 관심병자 찌질이였다'는 내용이 충격적으로 다가올리 없지요. 작품이 발표된 1969년 당시였더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때만큼 종교적 신념이 굳건하지도 않으며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딱히 대단한 이야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칼 글로거가 예수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기에 의외성을 찾기도 힘들었고요.

아울러 후대 전해진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건 오류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을 구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성경 그대로야 하기 때문에 참수되도록 방치하고, 수제자들은 이름을 보고 뽑고, 제자 중 유다를 시켜 자기 자신을 고발케 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한데 이는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이기도 하고요. 외려 그가 역사를 바꾸었더라면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칼이 정상인은 아니며 이 행동을 통해 그가 신이 아니라 가짜 흉내내기에 불과했다는 주제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번지수가 좀 틀렸습니다.
그나마도 완벽하게 성서 그대로도 아니에요. 특히 가장 어려울 부활을 대충 넘어간 것은 아쉽습니다. 그의 시체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 시체가 도난당해 사라졌기에 생긴 소문이라고 설명되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후대에 그렇게 받아들였을 과학적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고전 걸작답게 의외성을 포기한다면 생각할거리가 많긴 합니다. 예수의 신성을 모욕했다기 보다는, 그도 그냥 인간이었을 것이다는 의견에 시간 여행을 접목한 새로운 견해로 볼 수 있으니까요. 칼의 전 연인 모니카의 다음과 같은 대사처럼요. "과학 의식이 훨씬 더 우월한데 그걸 제치고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종교는 지식의 그럴싸한 대체물이야. 하지만 이제 그런 대체물이 더는 필요가 없어. 칼, 과학은 사고 체계와 윤리를 형성할 수 있는 굳건한 바탕을 제공해준다고. 과학은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들이 쉽사리 알 수 있어 이제 더는 천국에서 내려주는 당근이나 지옥에서 휘갈기는 채찍 따위는 필요 없단 말이야." 말 그대로 과학이 종교를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는 해석인데, 작품 설정과 연계해 보면 나름 새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과학이 세상을 지배했던 60년대의 분위기도 잘 알 수 있고요.

작가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우울증과 자기 혐오에 사로잡힌 무능력한 관심병자 칼 글로거에 대한 장황한 서사와 묘사가 압도적이에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천박한 양 극단을 오가는 묘사는 확실히 영국 작품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시간 여행 후 칼 글로거가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과 칼 글로거의 일대기를 병행하여 전개하는데, 중간중간 심리 묘사와 대사를 적절히 끼워넣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는 정신지체아였고 마리아는 창녀와 다를바 없는 여자였는 식의 약간의 반전도 나쁘지 않았으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를 It's a lie, It's a lie, It's a lie로 풀어낸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현대의 랩으로 응용해도 라임이 딱딱 맞아 떨어지죠. "잇츠어라이, 잇츠어라이, 옐로이옐로이, 사박타니..."

결론내리자면 장, 단점이 명확한 작품입니다. 물론 단점의 가장 큰 요인은 늦게 소개된 탓이라 마냥 감점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심의 문제"보다 나은건 분명하고요. 허나 개인적으로는 "도라에몽"보다 나은 점을 모르겠더군요. 역사적 가치와 의의가 더 큰 고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SF 팬이시라면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10/07/28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 아이작 아시모프 / 김선형 : 별점 3.5점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 6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오멜라스(웅진)

SF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여러 에세이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죠.

1, 2부에는 과학소설 및 창작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에세이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적절한 유머를 갖추면서도 아시모프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이 잘 녹아있어서 정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솔직히 작가의 소설보다도 재미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SF) 소설의 창작 비법'에 대한 에세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예로 들며 설득력있게 풀어가는 플롯에 대한 이야기

플롯은 곧 소설이 아니다. 플롯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드려면?
1. 아주 자세하고 복잡한 플롯을 만들어서 이야기 구축 작어에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도록 한다.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도록 하는 것.
2. 극단적으로 플롯 자체를 폐기하고 작은 에피소드만 줄줄 늘어놓는 것.
3. 명쾌한 플롯의 제작
a. 플롯을 사용하여 유머나 풍자를 도입한다.
b.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통찰하는 방법으로 플롯을 사용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창조'가 중요함
c. 어떤 사상을 개진하는 수단으로 플롯을 이용한다. 인생관이나 세계관 등.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89.6
라던가 훌륭한 SF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친절한 설명
1. 경력을 쌓기 위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 작문법 등의 학습 / 거장의 작품에 대한 꼼꼼한 독서 등
2. 과학지식을 쌓아야 한다.
3. 글을 쓰면서 배워야 한다.
4.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79.3
등 거장의 비법을 알려주는 보석과도 같은 에세이가 듬뿍 실려있습니다.

또한 과학 / SF 소설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데 인상적인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나는 퇴고하지 않고 초고를 최대한 빨리 쓴다. 그 뒤 다시 읽어보며 오자, 잘못된 문법 등을 고친다. 다음에는 두번째 원고를 다시 써나가면서 떠오르는대로 부분적으로 글을 수정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냐고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두 번씩이나 타이핑을 한단 말이야? 처음부터 안 틀리고 타이핑하면 되잖아"
거장들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일반인하고는 참으로 다른 사고방식이죠?

이러한 에세이 이후 마지막 3부는 중, 단편 15편이 실려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아시모프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점은 좀 들쭉날쭉하기는 하지만요.

이외의 국내 작가들의 서평과 이글루스 회원이시기도 한 잠본이님의 무지막지할 정도로 자세한 연표 역시 마음에 꼭 드는 부분이었어요. 아이작 아시모프가 '베이커 스트리트 일레귤러즈' 멤버였다는 것이라던가 AIDS로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잠본이님의 방대한 지식에도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도 좋아하는데 추리 소설 이야기가 없다는 것 뿐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에세이 부분만으로는 4점 주어도 충분하지만, 전체 평점 2.7점의 3부 중-단편 소설 부분 때문에 약간 감점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에세이 쪽이 탁월하기에 과학 / SF 소설 뿐 아니라 모든 장르문학 작가와 독자들이 한번쯤 읽을만한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나저나, "흑거미 클럽"의 다른 에피소드는 물론 다른 추리소설들이 좀 보고싶은데 과연 출간될 수 있을련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추리쪽은, 특히 장편은 별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칼"

작가가 되고 싶은 로봇 칼을 위해 주인 노스롭이 기술자를 불러 여러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여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칼이 쓴 작품을 읽고 위기 의식을 느낀 노스롭은 다시 기술자에게 칼을 초기화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액자 소설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칼이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단계별로 칼이 쓴 작품이 소개되고 있거든요. 마지막에 작가가 된 칼이 쓴 작품 "완벽한 정장차림"은 "조지와 아자즐"이라는 아시모프의 시리즈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3원칙'보다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소망이 더 우위에 있다는 주제를 놓고 보자면, 아시모프 스스로 로봇 3원칙과 자기 자신에 대한 풍자와 비평을 담은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쇼트쇼트 단편. 좌우 역전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담고 있지만 반전은 말장난 유머입니다. 깔끔해서 볼만하네요. 책 뒤 잠본이님 해설을 통해 포워드 박사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 웃깁니다. 포워드 박사는 이 작품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별점은 2.5점.

"낙심"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다룬 단편입니다. 컴퓨터가 '자신이 정의롭다는 독선'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도출할 수 없다는 내용이지요. 풍자가 세련되고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환각" 

15살 샘 체이스는 중성자별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려는 에너지 플래닛에 배속된다. 그리고 기이한 환각현상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작은 곤충(?)들이 연결되어 거대한 집단 지성을 이룬다는 설정과 텔레파시를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기계에 대한 맹복적인 신뢰가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저연령을 타겟으로 한 것 같기에 납득할 만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불안정성"

빅뱅의 시작에 대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쇼트쇼트입니다. 그냥저냥 평범한 소품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2.5점.

"신이 되려 한 알렉산더" 

컴퓨터 천재 알렉산더가 뛰어난 컴퓨터 부세팔러스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주식 및 각종 사회 현상을 예측한다는 아이디어는 새로울게 없지만, 부세팔러스의 능력이 너무 막강하여 과거에 없었던 '변수'가 된 바람에 마지막에 다운된다는 결말은 신선했어요. 부세팔러스가 알렉산더를 대치하려는 야망을 품는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은데, 그럼 너무 뻔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협곡에서" 

화성 협곡에 사는 화자가 보낸 편지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일상계 SF라고 할 수 있겠죠. 화성 협곡이 장래 화성 개발의 미래가 될 거라는 내용은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되어 향후 개발 과정에 대한 높은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었어요. 드라마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지구여 안녕"

정착지라 불리우는 우주 식민지 주민이 지구에 던지는 경고, 즉 정착지 자체가 머나먼 우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시스템의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너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송가"

화성에서의 하이퍼스페이스 실험을 원하는 지구정부가 반대파 화성 거주민을 설득시키기 위해 프랑스 국가를 이용한다는 황당한 내용이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유머러스한 작품입니다. 

화성 거주민이 프랑스 출신이 많다던가, 프랑스 국가가 승리의 이념을 담고있다던가 하는 식인데 결말은 '라 마르세예즈'를 이용한 말장난 '마르스 세이 예스!'로 끝나긴 하지만 위트가 넘쳐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5점.

"페그후트와 법정" 

미국 속담을 이용한 말장난 유머로 작품이라기 보다는 짧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만담선집에 수록된 작품이네요. 영어에 능통하다면 즐길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왠지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류 불허" 

컴퓨터 - 워드프로세서가 작가의 글쓰는 법을 터득하여 창작 기계로 거듭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칼"과 동일한 소재이지요. 

그런데 전개가 평이합니다. 기계가 학습을 통해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케케묵은 설정의 변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결말도 무덤덤했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키드" 

산아제한이 있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시모프 작품 답게 산아제한의 해결책으로 로봇형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결말에는 서늘한 반전까지 등장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SF작가로서의 아시모프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가 공존하는 작품이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공간의 나라들 : 현대의 우화" 

적대국가의 사람들로 짜여진 지구의 에너지원 핵심 조작 설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교훈적인 우화입니다. 그런데 너무 교훈적이라 재미도 없고 작품으로 보기도 민망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칩퍼의 미소" 

타인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는 특수계층 칩퍼에 대한 짤막한 스릴러입니다. 두 칩퍼 중 더욱 뛰어난 능력자를 골라야 하는 테스트가 이야기의 핵심인데,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는 않더군요. 회사의 지위보다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의 여성과 사귀게 된다면 별로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스캐너즈" 정도의 피튀기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설득력을 좀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골드" 

컴퓨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자칭 작가라는 러보리언이 컴퓨드라마 제작자 윌라드를 찾았다. 자신의 작품 "하나에 셋"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나에 셋"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컴퓨드라마 제작이 펼쳐지는데...

휴고상 중편 부문 수상작. 컴퓨드라마는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완벽한 풀3D 애니메이션 제작을 의미하는 듯 한데, 시간을 앞서간 아시모프의 빛나는 발상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상을 탈만한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번역자 해설에 따르면 세속적 하류 문화로 취급받는 장르 문학을 불멸로 만들기 위한 갈망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아시모프 정도 되는 지위의 작가가 이러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좀 억지스러워 보였습니다. 제가 SF팬이 아니라서 그러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05/31

과학을 훔친 29가지 이야기 - 하인리히 찬클 / 박소연 : 별점 3점

과학을 훔친 29가지 이야기 - 6점 하인리히 찬클 지음, 박소연 옮김/말글빛냄

"과학의 사기꾼"의 저자 하인리히 창클의 최신작으로 이번에는 과학사에 유명한 허위 논문과 이론, 장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책이죠. 아무래도 반 이상이 악의없는 장난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이 유쾌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정말 이런 것이 먹혔을까?싶은 터무니없는 것들에 대한 학계의 진지한 반응이 더욱 웃기네요. 물론 장난치고는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기도 했습니다만.

몇가지 이야기, 특히 필트다운인과 카티프의 거인 이야기는 책의 주제와 좀 동떨어지긴 했지만 이외의 내용도 대체로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과학과 유머, 개그에 모두 관심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몇가지 인상적인 “장난”을 소개해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파이pi” 전쟁 - 원주율에 대한 공격"

파이는 누구나 3.14…. 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을 성경에 나오는데로 “3”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는 이론이죠. 성경 열왕기에 ‘그릇의 지름이 10엘레면 30엘레의 끈으로 둘러쌀 수 있다’라는게 근거라고 하네요.

"인텔리전트 디자인? - 창조설에 대한 풍자"

파이 이야기에도 등장한 성경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또다른 장난입니다. 창조론에 대한 현대적 형태를 “인텔리전트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패러디해서 “인텔리전트 폴링”, 즉 중력이 신의 의지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발전된 것이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FSM, 즉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라고 하네요. 아울러 이 FSM도 지금 종파가 분열 중이라니 양덕들의 패러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궁금해집니다. 

* 덧붙이자면, FSM의 아멘과 같은 기도 용어는? Ramen입니다!

"위험한 화학물질 - 디하이드로젠모노옥사이드와 에탄올의 정체"

유명한 농담일 수도 있는 ‘디하이드로젠모노옥사이드’, 즉 DHMO 소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음료수에 이것이 들어갔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의 정체는?... 물이라고 하네요. 

똑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 지저분한 분수에 "주의! 이 분수의 물에는 하이드로제늄이 다량 함유되어 있음!"이라는 표지판을 걸었더니 사람들 출입이 딱 끊겼다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하이드로제늄은?... 수소이고요. 

마지막 "에탄올" 역시 독일에서 맥주에 에탄올이 들어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어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에탄올은?... 맥주에 포함되어 있는 알코올입니다. 만우절 농담치고는 너무 학술적이죠?

"모두가 열망하는 프로그램 - 출판을 위해 발명된 글 생성기"

MIT 공대생들이 만든 SCIgem, 그러니까 학술 논문 생성기에 대한 이야기에요.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을 통해 뭔가 있어보이는 논문을 만들어준다는 프로그램인데 굉장히 유용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도입이 시급해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한국 SF의 명작인 “창작기계”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네요.

"유명한 코 동물 - 비행류의 삶과 죽음"

"비행류"는 저도 오래 전에 과학잡지(아마도 Newton?)에서 읽었었지요. 거꾸로 서서 코로 걷는다는 환상의 동물! 이런 류의 책에서는 빠지지 않는 사례인가봐요. 제가 처음 접했을 때는 초등학생이었을땐데 그때는 진짜 있는 생명체인줄 알았더랬죠.^^

2012/09/07

우리역사 과학기행 - 문중양 : 별점 2점

우리역사 과학기행 - 4점
문중양 지음/동아시아

우리 역사 속 과학 문화에 대해 서술한 과학 역사서. 이전에 읽었던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과 비슷하죠.

그러나 천문이라든가 기타 측정, 지도와 같은 문화적인 기술 쪽에 내용이 치우쳐져 있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무기 쪽에 관심이 컸었는데, 몇 개 실려 있는 무기도 너무 흔하디 흔해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거북선, 신기전과 화차 정도라 실망스러웠고요. 덧붙이자면 도판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내용이 실려 있기에 아예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첨성대가 천문대이기는 한데 그냥 사다리 + 평상 (?) 정도의 역할만 한, 그야말로 "대"일 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각종 측량, 역법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너무 커서 좋은 점수는 못 주겠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책보다는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을 몇 개 더 챙겨보는 게 저에게는 더 나을 것 같습니다.

2016/06/27

양심의 문제 - 제임스 블리시 / 안태민 : 별점 1.5점

양심의 문제 - 4점
제임스 블리시 지음, 안태민 옮김/불새

과학자 4명이 외계 행성 리티아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파견 기간 마지막에 리티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 투표를 했고,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리티아를 처리하려 했지만 그들 중 예수회 소속 성직자인 루이스-산체스 신부가 리티아의 근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데...

국내 유일의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네 번째 작품입니다. 1959년 휴고상 장편부문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명성도 익히 들었던 작품인데다가 "SF 명예의 전당 1"에 수록된 "표면 장력"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허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재미를 떠나서 이야기의 핵심인 '외계 행성 리티아의 원주민들은 거대 파충류로 지성을 갖춘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공동체는 완벽한 수준 (전쟁, 범죄는 커녕 "갈등"을 뜻하는 말 조차 없다)이다.' 라는 루이스-산체스 신부의 주장을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었던 탓입니다. 철저하게 지구의 카톨릭 종교관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외계 행성을 왜 카톨릭 신앙 체제로 해석해야 하나요? 과학은 과학으로 해석해야죠. 구태여 종교를 끌어들여 이상한 결론을 내리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외계인들의 고도 문명을 보고 고작 하는 생각이 사탄이 만들었네, 이 행성이 교회를 부정하게 만들겠네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차라리 호전적인 클리버가 주장하는 군수 공장 계획이 훨씬 논리적이에요. 세부 진행에 디테일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과학적으로 설명은 되니까요.

후반부는 더 별로입니다. 리티아인 슈트카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의 아들 에그트베르치가 지구에서 성장한 후,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는 주역이 된다는 내용인데 진부할 뿐더러 딱히 와 닿지도 않으니까요. 마지막에 에그트베르치가 리티아로 돌아가려 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종교적인데 굉장히 불쾌합니다. 에그트베르치가 지구에서는 위험 인물이었지만 리티아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부터 잘못된 것 아닌가요? 설령 그렇다치더라도 리티아인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감염되어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 역시 지나친 확대 해석입니다. 오히려 지구의 안 좋은 것을 배운 에크트베르치가, 리타이를 멋대로 개조하려는 지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억지로 부정하는 것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혹 리티아인들이 지구와 적대적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지워버린다는 결말은 더 끔찍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버금가는 맹목적인 광신도들의 마인드와 다를게 없어요. 리티아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이 신부의 엑소시즘 기도문이라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고요.

하긴 이 모든 것이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종교적 이유로 타 국가를 침략하여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던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과 똑같거든요. 리티아를 지워버리는 행동도 제국주의 시대 종교, 혹은 기타 이유로 학살을 자행했던 과거와 명확히 겹치고요.
그런데 이러한 과거를 SF로 바꾸어 당당하게 써내려간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침략이나 정복이 아니라 진지한 수도사 시점의 이야기를 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미션"이 되는건 아니죠. 루이스-산체스는 철저하게 제국주의 세계관에 기반한 인물이니까요.
제목의 "양심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양심이 이러한 제국주의와 종교에 기반하고 있다면 양심부터가 왜곡된 것이 아닌지 한번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명성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리타아에 대한 설정만큼은 압도적이에요. 리티아의 수도 코레데시치 스파아트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시작되는 설명은 리티아인들의 행태와 문화, 기술과 과학 지식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인데 창의적인데다가 설득력있게 쓰여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티아인들의 출생에서 성장까지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이해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역시 익히 알고 있었던 대로 수준 이하고요. 퀄리티에 비하면 가격도 터무니 없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엄청난 미주가 붙어있는데 각주 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무지 팔 수 없어 보이는 이런 작품을 출판한 용기가 가상하여 아무리 잘 봐주고 싶어도, 양심상 제 점수는 이게 전부입니다.

덧붙이자면 카톨릭, 혹은 기독교 단체를 통해 판매했더라면 조금이나마 성적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과학으로 포장한 종교관 홍보물이라는 점에서는 과거 라엘리안에서 발표했던 일련의 소설들과 비슷하니까요.

2010/08/26

데드트릭 1,2 - 카린펜 (華倫変) : 별점 3점


나나모토서에 근무하는 순사장 이치모리 잇페이, 과학수사 연구소 수사관 도쿠가와 도쿠코, 그리고 변태 명탐정인 경시청 수사1과 경부 하다케야마 미치아키가 나나모토서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범죄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하는 정통파 수사 추리만화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고 원서로 구해봤죠.

슥 한번 훝어봤을때는 작화나 전개가 왠지 어설픈 부분이 많이 보여서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을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범한 추리만화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추리강국 일본의 힘이겠죠?
범인이 앞부분에서 살짝 드러나는 도서 추리물 형태임에도 진상트릭은 끝까지 숨겨놓고 수사가 중심이 되는 본격 추리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제법이지만 독자가 추리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단서를 수사과정과 맞물려 제공하는 전개방식 역시 정통 본격 추리물에 걸맞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과학수사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 역시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작화, 컷 구성 등 만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점 (주역인 도쿠코조차 전개에 사실 큰 필요가 없습니다), 1권에 비해 2권은 완성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우나 기대 이상의 신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카린펜 (華倫変 かりんぺん)은 에로망가 출신 작가로 5권의 작품만 남기고 2003년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출간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 작품이라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 "연속자궁 강탈 살인사건"
나나모토 고교 여고생과 양호 교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사체 모두 자궁이 적출된 상태였다. 경찰은 나나모토 고교에서 발견된 육망성 표식 등을 근거로 '악마 숭배' 의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왕따이자 저주와 주술 등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2학년생 츠지모토 가즈야였다.

제목 그대로 '자궁 적출'이라는 잭 더 리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쇄살인극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연쇄살인극이 단지 악마 숭배나 잔혹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진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용의자에게 사건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공정하게 독자를 속인다는 점에서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 성향을 잘 따른다고 할 수 있고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를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의 가설 중 하나를 채용한 진상이라던가, 탐정역인 하다케야마가 진범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진상을 풀어낸다는 결말은 형사 콜롬보를 연상케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증거를 제시하라는 범인 앞에서 범인의 통화 녹음을 듣고 주변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한 뒤,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동전을 찾아내는 등의 과학에 기반한 철저한 수사도 볼거리였고요.

과연 자궁 적출이라는 행위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 등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등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 작화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2권 : "도쿠코의 범죄"
연휴에 도쿠코에게 친구 미에가 찾아온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린 도쿠코는 자신의 옷이 피에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 물든 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4일 후 다카이라는 청년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도쿠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도쿠코 옷과 칼의 피가 피해자의 것이었고 그녀의 모발이 피해자 방에서 발견된 것!
도쿠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모리는 하다케야마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쿠코가 범인일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미에가 범인임을 확실히 알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에 교통사고로 체포되었는데, 체포장소에서 범행장소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범인일리 없다'알리바이 트릭을 어떻게 깰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그러나 이 트릭은 특별한 조작이 있던건 아니었고,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철벽의 알리바이가 생겼다라는 설정이라 좀 별로였습니다.
오히려 도쿠코가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철저한 과학 수사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모발의 상태와 헤어 스프레이의 성분조사를 통한 오류 증명 -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은 두종류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기에 같은날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 , '곤약'은 위에서의 소화시간이 길기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는 것, 이문(耳紋)의 채집을 통해 범인 미에가 현장에 있었다는걸 증명하는 것 모두가 철저한 과학 수사에 기반합니다. 이런 류의 다른 컨텐츠들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요.

설정과 내용에 비하면 지나치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알리바이가 핵심이고, 범인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평작은 충분히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대로 된 편집자가 붙어서 보강했더라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이치모리군의 도전장"
이치모리가 자신이 신참때 해결한 사건을 도쿠코에게 풀어보라고 소개하는 이야기. 
밀실에서 소녀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은 경비원 뿐이었고, 처음에 아이 어머니와 조사할 때 방은 비어있었다. 다시 조사할 때 시체를 발견하였으나 경비원은 항상 아이 어머니와 함께였다. 범인은 경비원인데 어떻게 살해했나? 라는 문제였다. 
단서는 처음 시체 발견 시에는 모포가 뒹굴고 있었으나, 구급차를 부르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포가 사라졌다는 것 뿐.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추리소설담이 펼쳐지는 소품으로 쩌리 이치모리가 낸 문제답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작중 토쿠코가 이야기하듯 흔해빠진 거울 트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장황한 이야기가 나름 재미를 줍니다. 특히나 본격물은 프로레슬링, 사회파는 아마레슬링이라고 비유하는게 기억에 남네요. 아마레슬링이 각본없는 진정한 승부지만 작위적인 프로레슬링이 훨씬 재미있다는 논리죠. '바보같지만 재미있어!'랄까요.

또 사건의 동기와 이후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이치모리의 모습에서 최근 추리만화를 풍자하는 느낌이 풍기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3/18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브리짓 허스 / 조윤경 : 별점 4.5점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8점
브리짓 허스 지음, 조윤경 옮김/동아엠앤비

법의학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과학사 서적입니다. 통사처럼 '법의학'의 흐름을 일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별다른 과학적인 수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로, 비소가 특별한 검사법이 없어서 널리 쓰이던 1751년에 영국 여성이 아버지 독살 혐의로 기소되면서 과학 수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사건 소개입니다. 비소는 가열하면 마늘 향을 내뿜는데 용의자 메리의 약갑 속 물질을 가열하니 마늘 냄새가 났다는,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그야말로 과학 수사의 한 걸음을 내딛은 방법이 등장합니다. 이 증거로 메리는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1806년 로제 교수가 '로제 검사법' 이라는 비소 검출법을 고안해 냅니다.

그리고 의사가 검시관이 되는 과정,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까사뉴가 1881년 리옹에 '법의학 연구소'에 합류하여 부검에 참여하고 여러 제자를 양성하여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특히 유명한 '크리펜 사건' 은 대중에게 라까사뉴와 같은 법의 병리학자의 존재 및 그 유용함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병리학자 스필스베리가 크리펜 자택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가 크리펜의 실종된 아내라고 판단한게 사형 선고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참고로, 최근 조사 결과로는 이 사체는 '남자의 사체' 였다고 합니다. 스필스베리의 추리대로 독살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총으로 쏘고 사체를 절단하여 유기하는 건 일반적인 독살범 행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었고요. 하지만 코라 크리펜은 결국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크리펜의 범행은 성공했지만 우연에 의해 정의의 철퇴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여튼 이러한 최근 조사로 스필스베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또 다른 유명 연쇄 살인 사건인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 당시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조사하여 증언한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이라는 유사 사건이 있어서인지 더 기억에 남네요. 의사인 주제에 100년전 사기꾼보다도 유치하게 현장을 조작하다니,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5년 노먼 쏜 재판에서의 논란으로 스필스베리의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대중도 병리학자의 결점과 오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유럽보다 늦은 1918년 법의관 제도가 시작되는데 법의관들의 활약으로 여러 건의 사건이 해결됩니다. 부검이 아니라 정말 탐정 뺨치는 추리로 범인을 밝혀낸 사건도 있습니다. 하숙집에서 노부인이 시체로 발견되어 자연사인줄 알았는데, 현장에 도착한 법의관이 '가정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다는 뜻인데, 그럼 열쇠는 어디 있는걸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이어간 끝에 열쇠를 소지한 범인을 잡는다는 결말인데, 당장 추리 소설에 응용해도 좋은 멋진 추리였어요.

이러한 법의관 제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학적인 수사 방법도 상세합니다. 지금은 일반 상식이 된 범죄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한 수사는 1세대 법과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홈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에드몽 로카르를 비롯, 오스트리아의 한스 그로스, 프랑스의 빅토르 발타자르, 미국의 벤자민 모건 밴스 등 여러 선구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된 사건이 연대별로 흥미롭게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과거에는 분석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정보로 현대에는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었는지를 병렬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를 돕고요.

뒤이어 각종 분석 방법들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챕터별 구성은 대동소이합니다. 해당 분석법의 역사와 주요 인물, 그리고 해당 분석법이 활용된 주요 사건이 소개되는 식이죠. '지문'의 경우, 뎁퍼드가 살인 사건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지문"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딱히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로 잘 알려진 에일린 워노스 사건 소개는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문'을 숨겨야 했던 사건도 재미있습니다. 시체를 자신이 죽은걸로 위장하려고 기도한 사건인데 황당한건 시신의 신원만 위장했지 정작 범인 자신의 신원은 위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다른 사건 사례를 통해 지문의 결함이 있다는 점도 알려주며 마무리됩니다.
이와 함께 베르틸롱(베르티용) 측정법도 함께 실려 있는데, "지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베르틸롱 측정법의 심각한 문제인 "쌍둥이는 구분할 수 없다"의 실제 사례는 흥미로왔습니다.

총기 분석에서는 유명한 '사코와 반체티 사건' 에서 최근 분석 결과 사코는 진범이었을 수 있다는 결론.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발렌타인 데이의 학살' 관련 수사가 재미있었어요.

혈흔 분석 챕터에서는 "도망자"의 모델 샘 셰퍼드 의사 부인 살인 사건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혈흔 분석을 통해 재판 결과가 뒤바뀌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사 결과와 결론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 그리고 결론이 아주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학(희생자가 살해될 요소가 무엇인지? 를 분석하여 동기, 용의자를 알아내는 기법)'을 토대로 메릴린이 희생자가 될 확률은 오로지 불안정한 결혼 생활 뿐이었다고 단언합니다. 현장이 조작된 증거도 상세하게 실려 있고요.

시신 분석 사건에서는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의 살인 청부업자가 피해자의 시신을 수 년간 냉동한 후 유기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실제 범행은 수년 전이지만 3~4 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체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은 흡사 미드 "CSI"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유골 분석은 다른 챕터에 비하면 사례의 재미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아나스타샤 사건'으로 법의인류학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마지막은 프로파일링과 DNA 분석이라는 최신 수사 기법으로 마무리됩니다. 프로파일링은 익히 수많은 책을 통해 접했던 내용의 요약이지만, FBI 행동 과학부의 수사관들이 활약한 사건들은 흥미진진합니다. 사건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활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DNA 분석은 이를 통해 해결한 사건보다도 증거가 왜곡된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DNA가 악수 등으로 쉽게 옮겨질 수 있기 때문으로 이를 통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물론, '바이트 마크' 와 같이 오류가 있는 증거가 채택되어 발생한 문제 등이 함께 소개되는데 참 무섭더군요. 요새도 증거 조작이나 오인식, 각종 오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는데, 항상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법의학, 법과학에 대한 통사적인 이해는 물론, 실제 사건과 연계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도 전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으며, 도판들도 적절한 수준으로 삽입되어 있는 등 전체적인 책의 완성도도 빼어납니다. 한마디로 재미와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보기드문 좋은 책이에요.
분량 상 개략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각 분야별로 상세하게 설명한 다른 책들을 통해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제법 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5/08/09

매미 돌아오다 - 사쿠라다 도모야 / 구수영 : 별점 3.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격 단편의 고수라는 작가의 단편집, 제74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했으며, 제2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까지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누린 책입니다. 

"매미 돌아오다"부터 "서브사하라의 파리"까지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곤충을 관찰하며 다니는 에리사와 센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단편별로 특정 곤충이 주요 소재가 되는 일상계 추리 연작물입니다. 곤충과 생물학, 생태학과 같은 과학 지식이 추리와 결합된게 특징으로, 사건의 단서 배치나 해결 방식도 정교합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가 제시되고요. 

"반딧불이 계획"이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과학 지식과 결합된 추리의 완성도가 뛰어나며 결말의 반전도 좋기 때문입니다 . "염낭거미"는 현실적인 일상계 미스터리로 완성도가 높고, "매미 돌아오다"는 매미라는 소재와 함께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전개가 인상적이고요. "저 너머의 딱정벌레"와 "서브사하라의 파리"도 나쁘지는 않은데, 앞선 세 작품보다는 전개나 결말이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관왕을 괜히 탄건 아니네요. 곤충과 과학, 일상 추리를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매미 돌아오다

헤치마는 16년 전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했던 산골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쓰루미야 교수와 에리사와 신에게 16년전 과거 자신이 목격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6년 전 목격한 유령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풀어내는 전형적인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당시 헤치마가 보았던 유령은 사실 실종된 소녀 오에 미키의 친구였습니다. 미키는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신의 연못’에서 수영을 한 뒤 실종되었고, 이를 부추겼던 친구가 죄책감 때문에 여성 출입이 금지된 신사에 몰래 들어갔던 겁니다. 자기를 대신 벌해달라고 하기 위해서요. 헤치마가 본 건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신사에서 노숙 중이던 자원봉사자 이와쿠라가 사정을 눈치채고 그녀를 숨겨주고, 도망치게 해 준 덕분에 일종의 유령처럼 기억에 남게 되었던 것이지요.
쓰루미야 교수의 글을 통해 그녀가 '유령' 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에리사와의 추리가 맞았음이 확인되며 인상 깊은 마무리로 이어집니다..

핵심 인물들이 16년이 지난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다시 모인다는 설정은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장소에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능력을 지닌 에리사와가 우연히 함께 있었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죽은 이를 기리는 ‘매미 공양’이라는 마을 풍습과 매미를 먹기 위해 숲을 찾은 쓰루미야 교수의 행위, 그리고 그날이 오에 미키의 17주기라는 상황이 잘 맞물려 있어서 설득력을 높여주는 덕분입니다.

일상계답게 트릭이나 수수께끼 풀이가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추리는 합리적이고 과거 사건과 현재의 연결이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미라는 소재도 적절히 사용되고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미스터리를 선호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염낭거미

중학생 다이라 마치코는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다. 사고는 어머니가 집에서 쓰러져 구급차가 출동한 직후에 일어났다. 그런데 마치코가 하교 후 곧장 집에 왔다면,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도 20분 넘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사고가 난 방향도 이상했다. 마치코가 그쪽으로 달려갈 이유가 없었다. 마치코가 어머니를 쓰러트리고 도주하다가 사고가 났던 것일까?

주어진 상황만 놓고 본다면, 마치코가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죄책감에 도망치다 사고를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상은 그 반대입니다. 어머니가 남자를 집에 들이고 있어서, 마치코는 하교 후 집에 곧장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뒤 어머니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본 마치코는, 어머니와 함께 있던 남자가 범인인게 분명하기에 그 남자의 차를 막기 위해 도로로 뛰어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겁니다.

마치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건처럼 느껴지는 설득력 있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일상 속 사건을 다룬 본격 추리물로서 손색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구급차가 도로 공사 때문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등 단서들은 모두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기도 하고요. 

다만, 제목에 등장하는 ‘염낭거미’와 작품 중에 언급되는 ‘고추잠자리’는 이야기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연작 설정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가져온 느낌이에요. 에리사와가 사건 해결자로 등장하는 설정도 다소 작위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연작 중 한 편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그래도 본격물 스타일의 구성은 좋은 만큼,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합니다.


저 너머의 딱정벌레

에리사와는 지인 마루에가 운영하는 펜션에 초대받아 방문했다. 그곳에서 아랍인 투숙객 와그디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바로 다음 날 아침 와그디가 절벽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에리사와는 와그디의 신앙과 유품을 단서로 진상을 추리해낸다.

와그디는 태양신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하기 위해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스카라베 장식 속에 숨겨진 나침반을 지니고 있었고요. 그런데 발견된 유품의 나침반은 고장 나 있었습니다. 와그디가 나침반을 몸에서 뗀 건 단 두 번, 목욕을 할 때와 낮에 급류타기를 했을 때 뿐입니다. 그런데 나침반이 고장 난 시점은 기도 전이었습니다. 즉, 범인은 급류타기 담당 직원인 가키모토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지요. 가키모토는 와그디에 대한 인종적 편견으로 장난을 쳤는데, 이를 알고 분노한 와그디가 다툼 끝에 가키모토를 죽인 줄 알고 자살을 선택한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그리 특별한 트릭은 없지만 추리 전개는 잘 짜여져 있습니다. 가키모토의 편견을 아르바이트생 사에키의 입을 통해 드러내며, 독자가 사에키를 진범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흐름도 나쁘지 않고요.

그러나 여러모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무엇보다도 가키모토가 스카라베 안에 나침반이 들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아요. 경찰조차 몰랐던 정보인데 말이지요. 또 나침반을 고장 내는 방법이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인종적 편견으로 실행하기에는 손도 많이가고 어리석은 장난이라 생각되고요. 스카라베가 쇠똥구리라면서 이야기 속에 곤충을 끌어들이는 방식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 중 가장 처집니다.

반딧불이 계획

과학잡지 아피에의 편집장 사이토는 5년 전 연락이 끊긴 기고자 가이코에 대한 편지를 받고 홋카이도로 향했다. 가이코를 따르던 학생 밧타의 도움으로, 사이토는 가이코가 그곳에서 '반딧불이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실종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반딧불이 계획'은 논에서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던 마을 풍경을 되살리는 계획이었다. 사이토는 가이코 집에서 숨겨진 네거티브 필름을 찾아 인화했고, 사진에서 최근 사망한 도토 이과대학 오사카베 교수를 확인했다.

에리사와 신 대신 사이토의 취재(?) 및 추리가 펼쳐집니다. 사이토는 남겨진 단서들을 통해 오사카베 교수가 유전자 조작으로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물고기를 만들었다는걸 알아냅니다. 이 사실이 가이코에게 발각되었고, 교수는 책임감과 압박 끝에 자살을 택했으며 가이코는 교수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상은 달랐습니다. 교수는 자살 직전 가이코를 살해했고, 그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위령비 아래에 시신을 묻었고요. 죽기 전 유언처럼 “유령비에 묻어 달라”고 했던건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이토도 이 진상을 추리해냈지만 앞서의 이야기를 꾸며낸건 가이코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밧타를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밧타 역시 빼어난 추리력으로 진상을 깨닫고 이 사실을 사이토에게 알리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밧타가 어린 시절의 에리사와 센이였다는게 밝혀지며 또다른 놀라움을 독자에게 안겨주고요.

놀라운 진상과 반전이 이어지는 추리적인 구조도 좋지만, 과학적인 소재도 이야기에 잘 녹아들고 있다는게 아주 인상적입니다. 원래 교수가 만든 물고기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을 외부에서 받아들여야 빛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논으로 흘러든 물고기들은 빛을 냈지요. 이건 논에 루시페린을 지닌 생물이 살고 있었고, 물고기가 그것을 섭취해 빛을 내게 되었다는 뜻이며, 가이코가 추진한 ‘반딧불이 계획’이 성공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학 설정과 플롯이 정교하게 연결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작물로서의 설정과 생물학적, 과학적 소재에 추리가 잘 결합된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영상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물고기가 빛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고 싶네요.

서브사하라의 파리

대학 동창인 의사 에구치와 오랜만에 만난 에리사와는, 에구치가 체체 파리 번데기를 일본으로 반입한 이유를 추리해내는데... 

체체 파리 수면병은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는 풍토병입니다. 문제는 전염병이 아니라 감염된 파리를 통해서만 퍼집니다. 그래서 체체 파리가 서식하지 않는 선진국은 치료법 개발에 관심조차 갖지 않지요. 그런데 에구치가 사랑했던 아야나가 수면병에 걸려 죽자, 에구치는 이에 분노해서 체체 파리의 번데기를 일본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체체 파리의 번데기, 유충에는 수면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 없습니다. 성충이 감염자의 피를 빨아야만 기생충을 얻어서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기발한 트릭은 에구치가 수면병에 걸린 상태로 귀국했다는 겁니다. 에구치는 번데기를 부화시킨 후, 자신의 피를 빨게하여 일본에 수면병을 퍼뜨리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지요. 

이렇게 생물학을 이용한 테러 계획은 설득력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에리사와에 계획을 접는 결말은 다소 허무했습니다. 제 아무리 테러를 벌였다 한들, 겨울이 있는 일본에서 수면병이 고착화되는건 불가능했다는 점 등 계획도 상세하게 뜯어보면 어설픈 점이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강한 동기와 설정은 좋았지만, 마무리는 약했습니다.

2009/11/06

블랙아웃 (Black Out) - 이세형 그림 / 하오 글... 쓴소리 리뷰 : 별점 2점

블랙아웃 - 4점
이세형 그림, 하오 글/중앙books(중앙북스)

20대 여대생이 엽기적으로 살해되고, 현장으로 출동한 과학수사팀은 발견된 몇 안되는 단서를 토대로 용의자를 좁히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가 증명되거나 결정적 단서가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지게 되는데...

"누가 울새를 죽였나" 이후 오랫만에 읽어본 국산 추리만화입니다. 대산초어님 리뷰에서 저를 언급하시기도 해서 서둘러 읽어 보았습니다.^^ 추리만화는 왠만하면 빼놓지 않으려 하는데 이 만화는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대산초어님 아니었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를 뻔 했으니 먼저 감사드려야겠네요.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공들여 자료조사를 한 티가 많이 나는 수사과정의 묘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을 정도로 디테일해서 작가 스스로 후기에서 지적한 일부 만화적 과장 및 의도적인 수정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이러한 자료조사에 기반한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좋은 점을 찾기는 좀 어렵더군요.

문제점으로 제일 먼저 들고싶은 것은 캐릭터들입니다. 과거 천재 연쇄살인범과의 모종의 인연으로 이상한 환영을 보는 주인공 오진우 형사가 대표적인데, 왜 이러한 배경 설정이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그냥 평범한 과학수사팀 형사로 표현하면 어땠을까 싶은데 작품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불필요한 설정 때문에 이야기만 괜히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속편이나 외전을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설정이 계속 이어질정도로 매력적인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외의 캐릭터들은 너무나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별로 언급할 필요도 없고요.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너무 뻔했어요...)

두번째 문제점은 과도한 화면 효과입니다. 원래 웹툰이라고 하는데 웹툰의 특징 중 하나인 올컬러를 잘 살려 인쇄한 책 자체는 좋지만 지나칠정도로 포토샵 효과 등이 난무해서 제대로 이어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중요한 장면에서만 컬러나 효과가 강조되었어야 할텐데 이렇게나 대중없이 쓰이니 작품은 일관되게 강약중간약 없이 강강강...으로 전개됩니다. 나중에는 눈이 아플 정도였어요.

마지막 문제점으로는 기대와는 다르게 추리적인 부분에서 실망감이 컸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최초의 엽기적인 여대생 살인사건 자체는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이후의 전개가 너무나 기대와는 다르거든요. 별다른 두뇌게임이나 추리는 존재하지도 않고 애초의 범행 동기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해당 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어버린다는 결말은 첫 범행의 당위성마저 희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이럴거면 아예 처음에 년놈을 다 죽이고 자살하지 왜 이리저리 빙빙 돌렸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이러한 불친절한 전개속에 주인공이라는 녀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컷만 낭비하고 있으니 재미가 있을리도 없겠죠. 이러한 막장 전개에 비하면 범인의 정체가 역시나 식상한 설정속에 초중반에 예상가능하다는 것은 추리만화로서는 치명적이지만 이 작품에 한해서는 별 문제도 아닌것 같기까지 합니다...

아울러 과학수사 스릴러라는 모토와는 어울리지 않게 과학수사적인 요소는 초반의 검시와 프로파일링같은 현학적인 잔재미를 주는 것 이외에는 사건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른 추리만화에서도 쉽게 보여짐직한 "혈흔"과 실제 용의자를 만나서 증언의 모순점을 찾아내는 단순 탐문 수사가 사건해결의 주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두가지 단서는 적절하게 잘 쓰이고 추리만화로서 어느정도 가치를 빛내주기는 하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물론 척박한 국내 추리 환경에서 이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점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일개 추리 애호가로서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 망정 단순히 문제점만 지적하기는 미안한 상황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캐릭터와 그림은 그렇다치더라도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점은 너무나 확실하기에 차기작에서는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쓴소리 가득한 리뷰를 마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7/05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정재승 : 별점 3.5점

일상과 과학 이론을 연결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학에 관련된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수학은 물론, 작가의 전공 분야인 물리학에다가 심리학, 건축학 등 많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예시와 쉬운 설명을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게 해 준다는 특징도 있고요. 토스트를 떨어트렸을 때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떨어지는건 토스트가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운터에 줄을 섰을 때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이유는 1/n이므로 어떤 줄을 선택하든 다른 줄 중 하나가 먼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으로 머피의 범칙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건 재수의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지프의 법칙과 파레토의 법칙을 통해 실제 우리 생활에 멱법칙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인간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는데 꽤 그럴듯했어요. '진부하다는건 남들도 많이 썼다는 뜻인데, 남들이 많이 썼다는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는 제가 일하는 바닥(?) 격언과도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추리 애호가로서는 O.J.심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피해자 측이 평소 O.J. 심슨이 아내를 때리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자, 심슨의 변호사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 남편에 의해 살해된 경우는 0.1퍼센트도 안된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심슨이 아내를 때린건 아내를 살해했을 가능성과 별 관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심슨 사건에서는 실제로 아내가 죽었습니다. 매 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평소 그녀를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은 80%가 넘고요. 전형적인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건축과 인간 심리를 연결하여 파헤친 쇼핑의 과학이라던가, 소음과 뇌파에 대한 이야기들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천장이 높은 건물에서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이론도 기억해 둘 만 하겠더라고요. 천장이 끝없이 높게 만들어진 오래전 교회 건축물에서 영적 체험이 잦은 이유도 비슷한 이유가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내용 모두가 이해하기 쉬웠던건 아니었으며,  몬티홀 문제,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정교한 자연의 패턴(카오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이야기 등은 다른 책들에서 많이 다뤄진 내용들이라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걸까?"와 똑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프랙털 음악으로 히트곡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QR코드를 활용하여 직접 샘플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장기간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 해외에 번역 출간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