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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삼체 - 류츠신 / 이현아 : 별점 2.5점

삼체 - 6점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단숨

나노 공학자 왕먀오는 경찰에게서 오래전 흠모해왔던 여성과학자 양둥의 자살과 소식과 함께 그녀가 속했던 단체 '과학의 경계' 조사를 부탁받는다.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이후 갑자가 왕먀오 눈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이 보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왕먀오는 알 수 없는 현상을 밝히기 위해 온라인 게임 '삼체'에 접속하여 플레이하는 한 편 양둥의 어머니 예원제를 찾아가 과거 중국이 만들었던 '홍안'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중국산 SF.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중국산 추리물 두편 -<<13 .67="">>, <<기억나지 않음, 형사>> -이 괜찮았던 기억도 한몫했고요.

이야기는 크게는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번째는 양둥을 비롯한 '과학의 경계'에 소속된 세계 석학들의 잇단 자살 사건, 그리고 눈 앞에 기묘한 카운트다운이 펼쳐진 나노 기술 과학자 왕먀오가 경찰 스창등과 함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온라인 게임 <<삼체 (theree body)>> 플레이가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두번째는 여성 과학자 예원제를 주인공으로, 그녀가 문화대혁명 기간 박해를 받다가 우연히 '홍안' 시스템에 근무하게 된 후 외계와 교신에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지막 세번째 부분에서는 모든 수수께끼가 밝혀지고, 이후 삼체인들의 지구 침공 계획이 상세하게 드러나며 마무리됩니다.

작품 전체에 걸쳐 탄탄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놀라운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묘사와 깊이가 실로 대단합니다. 특히 수학적으로 꽤 오래된 문제라는 '삼체 문제'를 활용한, 세 개의 태양이 불타는 센타우루스성 알파 삼중성계의 삼체 문명을 그려낸 묘사와 이 삼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에서 각종 해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돋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가지를 꼽으라면 진시황의 3천만 군사를 이용하여 컴퓨터를 만드는 장면을 꼽고 싶네요. 컴퓨터를 인력으로 대체하는 아이디어인데 그야말로 대국적인 발상과 과학이 잘 결합된 어마무시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상만해도 웅장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압도적이었어요. 영상화가 기대될 정도로 말이죠.
그 외의 디테일들도 실제 과학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예원제가 우연히 태양이 전파 증폭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삼체인과 통신이 가능했다는 핵심 설정 역시 이런저런 과학적 이론을 곁들여 그럴듯하게 설명해주고 있거든요. 마지막에 큰 활약을 하는 나노 소재 '비도'도 마찬가지고요.

또 중국산 SF답게 중국적인 설정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예원제가 겪은 문화 대혁명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홍위병이 예저타이를 핍박하는 과정의 묘사부터 섬찟합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학을 철학과 사상으로 포장하려는 헛된 노력도 눈물겹고요.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빅뱅이론이 신의 존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단순한 중국적인 배경 설명에 그치지 않고, 문화대혁명의 병폐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예원제가 삼체인을 불러들이게 된 핵심 이유인 '인간에 대한 실망감' 이라는 것에 굉장한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울러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위해 1960년대 이미 전파를 송출하는 안테나를 설치했다는 배경 설정도 그럴싸했습니다. 정말 그랬음직하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홍위병, 문화 대혁명에 대한 비판이 엄청나다는 것은 좀 신기하네요. 그만큼 엄청난 과오이자 실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중국 내에서 이렇게까지 비판적인 작품이 나올 정도인지 좀 의문이거든요.

삼체인과 지구인의 관계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삼체 반군이 '인류 사회는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자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광기를 억제할 수 없기에 주께서 강림해야 한다. 주께서 사악한 인류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전 인류 멸망이 소망인 강림파와 어떻게든 삼체의 움직임을 밝혀내어 삼체인을 구원하려 하는 구원파로 나뉜다는 설정부터 괜찮아요. 사실 강림파 쪽아이디어는 제법 많이 보아 왔지만 (기생수의 히로가와도 비슷한 인물이죠), 구원파쪽은 확실히 신선했거든요. '주'라고 불리울 정도로 전능한 존재가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컬한데, 그들이 벌레로 부르는 미약한 존재들이 '주'가 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니 이래저래 재미있는 관계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체인이 지구의 과학을 무너트리려고 획책한다는 발상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들의 기술력으로도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400여년 걸리는데, 그 사이에 지구인이 맞서 싸울 수 있는 과학력을 보유할 수도 있으니 그걸 원천봉쇄하자는 생각은 충분히 합리적이죠. 그것을 위해 '지자'를 만들고, 이런저런 작전으로 과학자들이 자살하게 만드는 등의 과정도 특유의 묘사력을 발휘하여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고요.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과 묘사를 뺀다면 과연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일단 앞서 말씀드린 세가지 항목이 잘 엮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삼체인이 '지자'를 만들어 지구 침공에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겉돕니다. 앞부분은 현재의 지구를 기준으로 벌어지는 수수께끼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갑자기 외계인 기준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현재의 왕먀오, 과거의 예원제 이야기를 가지고 현재의 수수께끼를 밝혀내는 이야기를 1부로, 2부는 삼체인 시점으로 지구 침공 작전을 다룬 이야기로, 3부는 400여년 후 지구에서 두 세력이 자웅을 겨루는 방식의 3부작 구성이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제목과도 잘 어울리잖아요. '삼체 삼부작'.

또 현란한 설정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이야기가 진부하다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핵심 내용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불과하니까요. 조금 깊숙히 들어간다 해도 외계인과 통신하며 지구 문명 멸망을 바란 삼체 반군을 처단하고, 400년 후 도착할 삼체인과 맞서 싸우기 위한 결의를 다진다가 전부입니다. 이게 애니메이션이라면 도입부에 불과하죠. 앞서 말씀드렸듯 3부작의 1부에 해당할 뿐이에요.
외계인이 생존을 위해 지구를 침략한다는 내용도 쎄고 쎘습니다. 그들 행성이 모종의 이유로 절멸의 위기를 맞는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 작품에서 '삼체'를 가지고 조금 더 과학적으로 그럴듯하게 그려내었을 뿐 설정 외의 새로운 점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삼체인에 대한 설정도 극단적으로 생존만을 위해 모든 것을 억압하고 말살했다는 점에서 진부합니다. 젠트라디와 별로 다를것도 없더라고요. 이래서야 지구에 침공하더라도 민메이 어택에 쓸려나갈지도 모르겠어요.

삼체 게임을 통해 설명되는 알고리즘 역시 현란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른바 '구원파'가 삼체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개의 태양 움직임 예측을 어떻게든 밝혀내기 위한 게임이라는 설정인데 지구보다 과학이 훨씬 발전한 삼체인에게 지구인이 무언가 해결 방법을 내 놓는다는 것은 모순이죠. 같은 물리적 세계관을 지녔다는 설정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순관계를 그려낸 설정이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중이 컸어요.

결론내리자면 재미있고 괜찮은, 신선한 SF라는건 맞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자국의 아픈 역사와 하드 SF를 결합한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를 과대 포장한 느낌도 지우기는 힘드네요. 중국이 무대가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이 무대였다면, 아니면 일본을 무대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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