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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학생가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2.5점

학생가의 살인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헤이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지 않고 몰락해가는 학원가 카페 '푸른 나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회사에서 소모품은 되기 싫으며, 자신의 길을 찾고 싶다는 바램을 가진채.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 동료 마쓰키가 살해된채 발견된다. 그는 이 거리를 탈출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던 인물. 그리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고헤이의 연인 히로미마저 피살된다.
고헤이는 히로미의 동생 에쓰코와 손잡고 형사 고즈키와 경쟁하듯 사건 진상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하나 그들을 비웃듯 학생가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에 시체가 매달린다. 피해자는 장애아들을 위한 학교 '수국학원'의 원장 호리에였다. 수국학원은 생전 히로미가 봉사활동을 하던 곳이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소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으로 1988년 발표된 초기작입니다. 초기작임에도 흥행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히거든요.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요.
세세한 인물과 배경 설정도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특히 인공 지능 관련 신기술을 핵심 소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돋보입니다. 공대 출신이라는 배경을 잘 활용한 흥미로운 소재였어요. 국내에서는 '알파고' 덕분에 화제가 된지 얼마되지 않는 소재인데 무려 30년 전에 도입해서 이만큼 낡아보이지 않게 풀어낸 점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버블 시기, 대학만 졸업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상황이 그려지는 것도 아련하게 시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러한 시대와 겹쳐진 문란하면서도 대책없는 청춘들의 행동은 80년대 하루키스러웠어요.

추리적으로도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만큼은 괜찮습니다.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되며 이 단서들을 바탕으로 의외의 진상 - 모든 범행은 5년전 히로미가 피아노 콩쿨에서 연주를 하지 못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모여 진상을 드러낸다는 점과 결말만큼은 유명 고전 본격물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각 사건별로는 뚜렷한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 사건인 마쓰키 사건은 트릭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라 시시합니다. 사건 해결도 피해자가 4년 전 센트럴 전자 주식회사에 근무했던 당시 접촉했던 인물을 찾아낸 경찰의 활약 덕분이고요.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추리적인 재미는 없습니다.

두번째 히로미 사건에는 밀실 트릭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언급되지만 허술합니다. 죽은 히로미가 6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되는데 엘리베이터가 출발한 이후 3층에 잠깐 멈췄다가 6층으로 가서 내려오지 않았고, 계단으로는 고스케가 이동하고 있어서 범인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상황입니다만... 여러모로 완벽한 밀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작중 에쓰코의 언급대로 3층, 또는 6층에 거주하는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고, 옥상으로 도망친 후 후일을 도모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계단을 올라가면서 층별 복도를 과연 그렇게까지 유심히 볼까?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죠.
칼에 찔린 히로미가 엘리베이터로 도망쳐 6층을 누른 뒤 사망했다는 트릭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루미놀 검사 등의 현장 검증으로 경찰이 첫 범행 장소를 알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불가이며, 구태여 꽃다발을 끝까지 들고 있던 이유 등 애매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또 첫번째 , 두번째 사건을 연결하는 잡지인 <<사이언스 논픽션>>도 거슬립니다. 잡지 안에 각서가 들어있다는 것을 이하라가 알아챈 이유도 석연치 않고 (죽기전에 마쓰키가 실토했을까요?), 각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아 답답하거든요. 이하라가 히로미에게서 회수하는데 성공했다면 마지막에 고스케를 죽이려고 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증거가 없어진 것이니까요. 반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면 잡지 속에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그것도 이상하고요.

마지막 사건이자 세번째 사건인 호리에 원장 사건은 사건들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트릭없이 우연이 개입되어 미궁에 빠졌을 뿐이니까요. 만약 서점 주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준코의 범행은 여기서 드러났을 것입니다. 솔직히 사건의 동기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며 작위적인 전개도 도가 지나칩니다. 과연 이하라가 히로미를 살해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히로미 살해는 아무리 준코가 안배했다 하더라도 우연이 지나치게 많이 겹쳐있습니다. 히로미가 도주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되면 준코는 대체 어쩔 셈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흥행작가다운 재미는 보장합니다. 킬링타임용으로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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