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비슷한 글을 올렸었는데, 결과는 동일합니다. 고작 6권 더 읽었을 뿐이니 당연합니다. 평이 좋았던 "백조와 박쥐"가 새롭게 순위권에 올라갈까 기대했는데 역부족이었네요.
- 용의자 X의 헌신
- 수상한 사람들
- 예지몽
- 백야행
- 명탐정의 규칙
- 명탐정의 저주
- 신참자
- 공허한 십자가
- 악의
-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 오사카 소년 탐정단
-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방과 후
- 녹나무의 파수꾼
- 사명과 영혼의 경계
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 | 뫼비우스의 띠 -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명숙 옮김/문학동네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분장사이자 조형예술가, 인체모형 전문가 스테판은 악몽에 시달리다가, 악몽이 6일 뒤 벌어질 일을 예고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미래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스테판은 여성 살인 사건 수사를 맡은 신참 형사 빅 마르샬에게 자신이 예지한 정보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어날 죽음은 일어난다는걸 깨닫고 좌절하는데....
프랑스 작가의 스릴러로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입니다. 스테판, 빅 시점으로 병행 서술되는게 특징입니다. 이 중 스테판 시점은 현재와 미래의 꿈이 뒤섞여 있는데, 많이 쓰였던 친숙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지 능력이 있거나, "타임 리프"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나만이 없는 거리" 등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주인공이 사건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으니까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원칙에 따라 정해진 죽음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도 "데스티네이션" 설정과 똑같고요.
뻔하기는 해도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스테판이 꾼 꿈들은 정보가 토막나 있는데,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구멍들이 메꿔지고 진상이 드러나는 과정은 괜찮았거든요. 정해진 운명을 비틀기 위한 스테판의 노력과, 이 덕분에 중요한 궤도가 어긋나서 범인을 잡게 된다는 전개도 좋습니다. 꿈에서 실패했던 메시지 전달을 결국 성공해서 관련된 단서와 증인이 남게 되기 때문인데, 이 시점에 대한 설정이 아주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또 이 시점 전까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정해진 궤도를 바꿀 수 없어서 무간지옥으로 빠지는 스테판의 좌절감에 대한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사서함에 남겨놓은 스테판의 메시지 뒷 면에, 몇 번 읽었는지 알 수 있는 X자가 빼곡히 뒤덥혀 있었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영화 "트라이앵글"에서 시체가 널려있던 클라이막스와 별로 다르지 않기는 합니다만, 소설로는 이런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잘 구현했더라고요.
범행도 일견 굉장히 뻔한, 잔혹한 연쇄 살인극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나름 차별화되는 설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본인이 장애가 있어서, 장애를 우습게 보았던 사람들을 응징했다는 동기는 꽤 신선했거든요. 또 범인이 일종의 통각 장애가 있어서, 피해자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본인도 고통을 느끼기 위해 범행 현장을 굉장히 덥게 꾸몄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휴대용 난로 등으로 뜨겁게 만든 범행 현장은,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사용된걸로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거지요.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스테판이 하는 행동이 내용의 거의 전부인데,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하는 짓이라고는 사망할거라는 소녀 멜린다에게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 접근하는 행동과 같은 바보짓이 거의 전부에요. 누가 보아도 수상하고, 범인으로 몰려도 싼 행동만 반복할 뿐입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예지한 내용을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털어놓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럼 그가 예지를 했다는건 분명한 사실로 남았을테니까요. 무엇보다도 '로또번호' 예지 때문에, 그의 예지가 진실이라는건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겁니다. 사건이 일어날만한 시간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라이브 방송으로 알리바이를 공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예지몽을 꾸는게 이렇게까지 신경증적 발작을 일으킬 일이었는지도 의문이에요. 그것도 시작은 고작 포도주 병 위치가 바뀐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바보짓에 더해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묘사가 많아서 전혀 주인공같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주인공인 빅 역시 아내 셀린과의 싸움이라던가, 휴대폰이 고장나서 수시로 방전된다는 설정은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빅을 낙하산이라고 부르면서 홀대하는 반장과 동료들의 모습도 굉장히 불쾌했고요. 낙하산도 아니었을 뿐더러, 실제로 낙하산이었다 하더라도 팀원으로는 대접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도 시키지 말던가요.
추리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범인이 썩은 고기 등으로 현장에서 썩는 냄새를 피웠으며, 유명한 그림과 사진에서 모티브를 따 와서 범행을 저질렀고 현장에 숫자와 단서 등을 남겼다는건 이런 류의 연쇄 살인물의 기존 설정들을 답습하는데 그칩니다. 부자연스럽고 설명도 부족해요. 범행 동기, 현장에 남은 단서 등을 알아내어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내는 과정도 없고요. 범인을 알아내는건 마지막에 중요 단서인 DVD를 확보했기 때문이거든요.
범인의 정체 역시 뜬금없었습니다. 앞서 스테판과 뒤퓌트랑 병리해부학 박물관에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니까요.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일개 박물관 직원인 그가 어떻게 3명이나 되는 피해자들 집에 손쉽게 잠입해서 잔혹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족도 많습니다. 스테판 아내 실비의 불륜이 대표적입니다. 사건 해결 후, 죽음의 궤도는 벗어날 수 없었다는 "데스티네이션" 마무리도 마찬가지에요. 참신함도 없고,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없는 찜찜한 결말이었어요. 오히려 아류작이라는 느낌만 강하게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도 빅과 담배 관련 이야기들처럼 불필요한 디테일 묘사로 분량을 늘린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대중적인 장르 문학으로는 평균은 됩니다. 하지만 뻔한 설정, 부담스러운 분량, 찜찜한 묘사 탓에 쉽게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 미스터리 심리학 -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세상에 알려진 각종 기현상을 파헤치는 내용의 교양서적입니다. 마술의 비법을 밝히고 사기꾼들의 수법을 폭로하는 책들과 유사한데, 저도 전에 "신비의 사기꾼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한게 특징이며,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상당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또한, 각종 기현상을 꼭지별로 나누어 역사부터 소개하는 자세한 설명이 좋았으며, 심리학자 등이 전문적 능력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항상 기본 이상의 만족도를 주는 것 같습니다.
실려 있는 모든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매나 점술가의 콜드 리딩을 설명하는 첫 번째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를 칭찬하며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결국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러 실험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었어요. 이건 단순한 콜드 리딩이 아니라 사기의 기법이기도 하니까요!
이왕이면 동양의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주팔자는 일종의 DB 개념으로 봐야 할까요?)
그 외에도 영화 제목으로까지 사용된 영혼의 무게, 강령술과 테이블 움직임, 위저보드에 대한 해석, 영혼과 유령에 대한 과학적 접근, "오렌지로드" 팬들에게는 익숙한 예지몽의 허구성, 독심술과 최면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사기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도 했고요.
문체는 좋았지만, 이론적인 설명이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워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뒤로 갈수록 주제 면에서 흥미와 몰입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성녀의 구제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
마시바 요시타카가 자택에서 살해되었다. 사인은 아비산 중독.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그의 아내 아야네는 사망 시각 전후에 홋카이도에 있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아야네의 범행을 확신한 우쓰미는 유가와에게 해결을 요청한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작년 말에 출간되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장편이긴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보다는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 같은 단편집의 성격이 강합니다. 별다른 복잡한 전개나 구성 없이 '트릭'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죠. 특히나 초반부터 용의자는 아야네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후더닛 물이 아니라, '어떻게 범행했나?'에 초점을 맞춘 와이더닛 물로, 이야기는 트릭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하게 '트릭'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편 수준의 이야기를 억지로 장편화하면서, 단편으로서 지닐 수 있었던 장점은 퇴색하고 단점이 더욱 두드러진 것 같아 아쉽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유가와도 지적한 '비현실적인 트릭'입니다. 단편이라면 충분히 성립하고 독자도 수긍할 만한 괜찮은 트릭이지만, 장편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같은 집에 사는 남편이 정수기 물을 마시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집이 굉장히 넓다는 묘사가 나오고, 아내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니 남편이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습니다. 또한, 치밀한 트릭이 필요했을 당위성도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단편을 장편으로 억지로 늘린 듯한 전개도 단점입니다. 단편에서는 유가와가 곧바로 배제해버리는 가설들의 수사와 재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고, 구사나기와 우쓰미의 수사도 계속된 탐문과 진술의 반복일 뿐, 이야기의 흐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사건의 핵심 중 하나인 마시바의 전 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중반 이후에야 등장하는 것도 이야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습니다.
아야네를 범인으로 특정하여 전개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도서 추리물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더 적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장점인 고전 미스터리 황금기의 미덕, 즉 천재라 불리는 물리학자 유가와와의 두뇌게임을 독자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또한, 샴페인 잔과 주전자의 지문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보여주는 추리적인 요소도 탁월했습니다.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구사나기의 말랑말랑한 심리 묘사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장편이었던 "용의자 X의 헌신"도 트릭이나 동기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긴 했지만, 유가와의 라이벌이 등장해 펼쳐지는 불꽃 튀는 두뇌게임, 그리고 시리즈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유가와의 학창 시절 묘사 등이 어우러져 장편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장편으로 보기에는 다소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 예지몽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