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명숙 옮김/문학동네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분장사이자 조형예술가, 인체모형 전문가 스테판은 악몽에 시달리고, 신참 형사 빅 마르샬은 잔혹한 여성 살인 사건 수사를 맡게 되었다.
스테판은 악몽이 6일 뒤 벌어질 일을 예고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미래의 죽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스테판은 빅에게 자신이 예지한 정보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어날 죽음은 일어난다는걸 깨닫고 좌절하는데....
프랑스 작가의 스릴러.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입니다.
스테판, 빅 시점으로 병행 서술되는데, 스테판 시점은 현재와 미래의 꿈이 뒤섞여 있기는 한데, 많이 쓰였던 친숙한 이야기 구조라 이해하기는 쉬웠습니다. 예지 능력이 있거나, <<타임 리프>>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 나만이 없는 거리>> 등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주인공이 사건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으니까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정해진 죽음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은 <<데스티네이션>> 설정과 똑같고요.
그래도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스테판이 꾼 꿈들은 정보가 토막나 있는데,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구멍들이 메꿔지고 진상이 드러나는 과정은 괜찮았거든요. 정해진 운명을 비틀기 위한 스테판의 노력과, 이 덕분에 중요한 궤도가 어긋나서 범인을 잡게 된다는 전개도 좋았어요. 꿈에서 실패했던 메시지 전달을 결국 성공해서 관련된 단서와 증인이 남게 되기 때문인데, 이 시점에 대한 설정이 아주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또 이 시점 전까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정해진 궤도를 바꿀 수 없어서 무간지옥으로 빠지는 스테판의 좌절감에 대한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사서함에 남겨놓은 스테판의 메시지 뒷 면에, 몇 번 읽었는지 알 수 있는 X자가 빼곡히 뒤덥혀 있었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영화 <<트라이앵글>>에서 시체가 널려있던 클라이막스와 별로 다르지 않기는 합니다만, 소설로는 이런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잘 구현했더라고요.
범행도 일견 굉장히 뻔한, 잔혹한 연쇄 살인극의 반복으로 보이지만 나름 차별화되는 설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본인이 장애가 있어서, 장애를 우습게 보았던 사람들을 응징했다는 동기는 꽤 신선했어요. 또 범인이 일종의 통각 장애가 있어서, 피해자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본인도 고통을 느끼기 위해 범행 현장을 굉장히 덥게 꾸몄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휴대용 난로 등으로 뜨겁게 만든 범행 현장은,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사용된걸로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거지요.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아쉽게도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스테판이 하는 행동이 내용의 거의 전부인데,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하는 짓이라고는 사망할거라는 소녀 멜린다에게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 접근하는 행동같은 바보짓이 거의 전부에요. 누가 보아도 수상하고, 범인으로 몰려도 싼 행동만 반복할 뿐입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예지한 내용을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털어놓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럼 그가 예지를 했다는건 분명한 사실로 남았을테니까요. 무엇보다도 '로또번호' 예지 때문에, 그의 예지가 진실이라는건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겁니다. 사건이 일어날만한 시간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라이브 방송으로 알리바이를 공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예지몽을 꾸는게 이렇게까지 신경증적 발작을 일으킬 일이었는지도 의문이에요. 그것도 시작은 고작 포도주 병 위치가 바뀐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바보짓에 더해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묘사가 많아서 전혀 주인공같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주인공인 빅 역시 아내 셀린과의 싸움이라던가, 휴대폰이 고장나서 수시로 방전된다는 설정은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빅을 낙하산이라고 부르면서 홀대하는 반장과 동료들의 모습도 굉장히 불쾌했고요. 낙하산도 아니었을 뿐더러, 실제로 낙하산이었다 하더라도 팀원으로는 대접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도 시키지 말던가요.
추리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범인이 썩은 고기 등으로 현장에서 썩는 냄새를 피웠으며, 유명한 그림과 사진에서 모티브를 따 와서 범행을 저질렀고 현장에 숫자와 단서 등을 남겼다는건 이런 류의 연쇄 살인물의 기존 설정들을 답습하는데 그칩니다. 부자연스럽고 설명도 부족해요. 범행 동기, 현장에 남은 단서 등을 알아내어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내는 과정도 없고요. 범인을 알아내는건 마지막에 중요 단서인 DVD를 확보했기 때문이거든요. 범인의 정체 역시 뜬금없었습니다. 앞서 스테판과 뒤퓌트랑 병리해부학 박물관에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니까요.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일개 박물관 직원인 그가 어떻게 3명이나 되는 피해자들 집에 손쉽게 잠입해서 잔혹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족도 많습니다. 스테판 아내 실비의 불륜이 대표적입니다. 사건 해결 후, 죽음의 궤도는 벗어날 수 없었다는 <<데스티네이션>> 마무리도 마찬가지에요. 참신함도 없고,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없는 찜찜한 결말이었어요. 오히려 아류작이라는 느낌만 강하게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도 빅과 담배 관련 이야기들처럼 불필요한 디테일 묘사로 분량을 늘린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대중적인 장르 문학으로는 평균은 됩니다. 하지만 뻔한 설정, 부담스러운 분량, 찜찜한 묘사 등은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 요소들입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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