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 마스카와 도시히데 지음, 김범수 옮김/동아시아 |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이 쓴 책. 제목만 보고 비밀 병기를 만든 과학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평화가 가장 중요하며,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더군요.
무기 개발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아베가 주도하는 일본 개헌 노력에 대한 비판, 일본의 원자력 문제와 앞으로의 정치와 세계 평화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으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진보적인 석학답게 전쟁 때 핵무기 등 무기 개발에 힘쏟고, 전쟁 이후에 연구 자금이나 돈 때문에 노력하는 과학자들, 아베의 안보법 개헌 노력,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으며, 그 외 노조 활동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에 피력하고 있는 주장 등은 꽤 좋았습니다. 나름 새겨들을만한 부분도 있고요. 아베가 헌법 9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폭주, 안하무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속 시원하기까지 했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의견들이 우리나라 시점으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더군요. 평화가 중요하다는건 물론 맞는 말입니다. 허나 세계 유일의 휴전 중 분단 국가로, 군사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젊은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군 입대를 해야 하는 나라 상황에서는 사치스러운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군사력 확대는 외부 진출과 동의어인. 외적의 공격을 받기 어려운 섬나라 시각과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어요.
또 과학자들의 무기 연구에 대한 반대도 억지스럽습니다. 결국 저자 역시 군수 산업과 민간 시장, 양쪽 모두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듀얼 유스'라고 부르며, 복잡한 문제라서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게 맞는 말이지요. 특정 산업이 특정 분야에 해가 된다고 무조건 막는게 말이나 됩니까.
무엇보다도 "세계에 전쟁 반대 호소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유일하게 피폭 경험을 한 나라인 일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은 가소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피폭은 과거 전쟁을 일으켜 주변 국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항복하지 않고 버텼던 원인에 대한 결과입니다. 피폭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피해자 코즈프레하면서 평화를 논한다? 저자가 싫어하는 아베 등 자민당 정치인들과 다를게 없지요. 피폭 원인에 대한 반성이 없기에 저자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고요.
또 본인 주장에 대한 근거들도 빈약합니다. 대체로 본인 경험이라던가, 지엽적인 이슈 수준에 머무는 탓입니다. 탄탄한 평화를 위한 전쟁 불가론의 근거가 고작 해외 파병된 자위대원의 전사라니, 납득하기 어렵지요. 풍부한 자금이 뛰어난 과학자를 낳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연구자는 가난해야한던가, 요새 젊은이들은 열정이 부족하다, 정치에 관심도 없다는 언급 등 꼰대스러운 의견들도 과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일본인 시점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인 주장과 속 시원한 언급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너무 달랐고, 기본적인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절대로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덧붙여, '듀얼 유스' 설명을 하며 수십 년 전 일본의 빌딩가에서 TV 전파가 건물에 반사돼 화면이 흔들리는 고스트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를 막고자 어떤 페인트회사에 일하던 과학자가 ‘페라이트ferrite’라는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세라믹이 들어간 도료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페라이트에는 강력한 자력이 있어서 페라이트가 포함된 도료를 빌딩 벽면에 바르면 전파를 흡수해서 고스트 현상을 막을 수 있었고요. 그러나 10년 뒤 그 도료가 미군 스텔스 전투기에 사용되었다는 예를 들어주는데, 신기했습니다. 듀얼 유스에 딱 들어맞는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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