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조선을 깨우다 1 - 김영철 지음/일리 |
책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영어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양선의 출현과 관련 사건을 거쳐 조일통상조약 뒤 미국과의 연합을 추진하면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과정, 개화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영어 학습이 이루어지는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영어 학교가 설립되고, 영어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까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조금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우선 조선에 처음으로 나타난 영어 사용자는 영국함선 프로비던스호 선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정조 때 부산 동래 용당포 앞 바다에 나타났고, 배가 항구에 머무는 8일 동안 일반인들과 지방 관리들이 배에 올라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함장 브로튼이 이에 대해 기록을 남겼고요.
그 뒤 통상 등을 목적으로 여러 외국 배가 계속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 중 중국어 통역이 함께 한 배들이 등장해서 서로의 대화가 어느정도 가능해지고, 관련 기록도 풍성해지게 됩니다. 이 중 암허스트호의 린제이가 남긴 보고서에는 조선 관리들에게 스위트 와인과 독주 (Spirits)를 대접했는데, 관리들이 모두 독주를 선호했고 상당한 양을 마셨는데 멀쩡했다는 기록이 재미있네요. 아, 자랑스러운 조선 남아들이여!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그리고, 당시에 '영어'가 핵심 용어가 된 이유도 인상적입니다. 외국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출간된 관련 서적 들 중 가장 유명했던 <<해국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미국이 부강하면서 공평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이미 이 때 형성된거나 다름이 없는 셈입니다. 덕분에 고종과 개화파 역시 미국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요.
여기에 더해 조일통상조약 후 본격적으로 타 국가와의 외교가 시작되었을 때, 중국의 이홍장은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수 있으니 서구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으라고 권고했고, 청나라의 일본 공사 허루장도 <<조선책략>>을 통해 미국과 연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호의를 가졌던 고종은 미국과의 수교를 서둘렀고, 조미조약으로 미국 공사의 조선 주재, 보빙사 파견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내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상승했습니다. 고종은 미군이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정도라니 말 다했지요. 그래서 결국 영어가 개화기 당시 조선에서 지배적 위치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영어 교육은 본격적으로 조약 체결을 하기 전, 정부 지원으로 중국에 유학생들이 파견된 것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괄목할 성장을 보였던건 역관 가문의 고영철이었고, 귀국 후 영어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고 하네요. 이맘때 쯤 언어천재 윤치호도 등장하고요.
조미조약 체결 이후에는 당연히 영어 구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져서 조선 최초의 영어 학습기관 '동문학'이 만들어졌습니다. 교습법은 영어로 된 교재만 사용하여, 원어민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직접교수법'이었다고 합니다. 원어민 선생들이 조선어를 할 수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그래도 덕분에 학생들의 영어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동문학 출신들은 조선 근대화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생도 남궁억이 남긴 기록에는 학생들이 가마를 타고 오고, 하인들이 요강과 학용품까지 들고 오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는데, 재미있네요. YMCA 야구단생각도 나고요.
조선 내의 학습 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김옥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영어를 배웠다는데, 김옥균은 영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는게 눈길을 끕니다. 확실히 난 사람은 난 사람이랄까.... 세계 정세를 보는 시각만큼은 뚜렸했었네요.
동문학에 이어 본격적인 조선의 왕립 영어학교 육영공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육영공원은 초반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였지만, 이미 벼슬이 있는 학생들이 태업해서 제대로 끝맺음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고관대작의 자제들인 탓이 가장 컸지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누리면서 포기하지 않으려는, 적폐들이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건 역시나 변함이 없군요. 이 육영공원 출신 적폐 무리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 이완용이라는 점은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만들고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이 앞다투어 설립한 사학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제중원 알렌의 영어 교실에서 시작하여,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이화학당, 정신, 배화 등이 설립되고, 운영된 과정을 알려주는데, 이 중 조선의 영어 학습열에 대한 아펜젤러의 판단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영어 공부 목적이 "출세" 라는걸 명확하게 알고 있더라고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당시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떻게든 출세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걸 느끼게 해 주네요.
이러한 영어 교육의 시작과 여러가지 교육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선 후기와 개화기 당시 있었던 주요 사건들과 영어를 배웠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중 개화기에 밀사로 활약했던 조선의 괴승 이동인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어요. 개화파로 일본에 자주 방문했고, 나중에 조선 정부의 밀사가 되었지만 돌연 실종되었다는데, 정말 혼돈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간 것 같거든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보빙사'로 조선 사람 최초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여러 시찰 행적들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민영익이 입었던 화려했던 관복에 대한 묘사 - 자색 비단의 길고 넓은 겉 옷, 백설처럼 하얀 바지, 황금으로 기이하게 아로새긴 넓적한 허리띠, 가슴과 배에는 자두 빛 바탕에 희게 수놓은 쌍학과 가장자리에는 여러가지 화려하게 빛나는 포목 - 가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이 이렇게나 화려했었나요? 새삼 놀랐네요. 하지만 보빙사였던 민영익이 나중에 망명 후 공금을 착복하여 상하이에서 호화생활을 누리다 천수를 다했다는 후일담은 씁쓸했습니다. 개인이 뭘 어쩔 수 없는 시대였다고는 해도, 일국을 대표했던 영관급 인물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싶은 아쉬움이 큽니다. 앞서의 이완용과 마찬가지로, 적폐는 확실히 처단했었어야 했어요.
이렇게 '영어'라는 소재로 조선 후기, 개화기 당시 근대사를 돌아보는 독특한 시각도 좋았고, 여러가지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언급된 내용들의 출처도 확실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비슷한 소재였던 <<외국어 전파담>>과는 다르게, 조선 근대사와 영어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이해도를 높이는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지나치게 '영어' 중심이라는건 약점이기도 합니다. 이 책만 읽으면 조선 후기와 개화기 당시 청나라, 일본, 러시아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외교를 했는지는 알 수가 없거든요. 우리나라에 미국보다 훨씬 큰 영향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장점이 훨씬 많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빨리 2권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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