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 드디어 이 블로그가 성인이 되었습니다. 19금 컨텐츠도 이제 소화할 수 있겠네요.
올해 읽은 책은 권수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1 (57)권, 기타 장르문학 5 (3)권, 역사서 5 (17)권, 디자인 or 스터디 4 (1),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15)권, 기타 도서 13 (24)권
모두 102 (117) 권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약 15% 정도 감소했네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덕분으로 외부 활동이 늘었고 대선, 월드컵 등 굵직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추리 / 호러 장르문학은 더 많이 읽었고, 그동안 자주 읽었던 역사서와 음식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급감한건 아무래도 짬이 나서 책을 읽는 시간에는 좀 더 흥미 위주의 책을 집어들게 된 탓이고요. 올해 추리 소설 1,100권째 리뷰를 달성하느라 좀 많이 달렸던 이유도 있을겁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2년 베스트 추리소설 :
<<디오게네스 변주곡>>
올해는 별점 3.5점을 받은 작품이 두 편 있었습니다. 이 책과 미쓰다 신조의 <<마가>>입니다. 두 작품 다 좋은 작품이지만, 단편집으로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숨어있는 X>>라는 두 편의 별점 4점 짜리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 중 최고의 단편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수록작인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입니다. 보기드문 별점 5점짜리 단편이지요. <<디오게네스 변주곡>> 수록작 2편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싫은 소설>> 수록작 <<싫은 여자친구>>는 별점 4점으로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네요.
2022년 워스트 추리소설 :
<<심야의 손님>>
별점 1점짜리 작품이 이렇게 많았던 해도 드물 것 같습니다. A.J 킨넬의 <<퍼펙트 맨>>,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 오쿠라 데루코의 <<심야의 손님>>, 모리스 르블랑의 <<수정 마개>>, 시로다리아 교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의 여섯 편이나 되니까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은 <<심야의 손님>>이었습니다. 단편집인데 수록작들은 별점 1점도 못되는 작품들 투성이거든요. 이렇게 뭐 하나 건질거 없는 망작은 정말이지 오랫만에 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2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변덕쟁이 로봇>>
2022년 베스트 역사 도서 :
<<기억의 의자>>
달랑 5권 읽긴 했지만 역사 관련 도서들은 언제나 평타 이상은 쳐 줬었죠. 별점 3.5점을 받은건 이 책이 유일했지만, 다른 책들도 별점 2.5점 이상이었고요. 올해도 워스트는 따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달랑 4권 읽기는 했지만, 그 중에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그 외 책들도 가장 낮은 점수가 별점 2점이니, 워스트는 역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혼밥 자작 감행>>
디자인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4권만 읽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별점 3점입니다! 평균 별점으로는 가장 높은 분야네요. 다 좋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삶을 구현한 듯한 쇼지 사다오의 에세이 <<혼밥 자작 감행>>을 베스트로 꼽아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범죄 관련 논픽션으로 완벽했던 결과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2022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그 남자의 시계>>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그 남자의 시계>>와 <<룸>>의 두 권입니다. 이 중 워스트는 <<그 남자의 시계>>입니다. 두 권 모두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지만, <<그 남자의 시계>>가 가격 측면에서는 더 비쌌으니 감점도 더 크게 받아야겠지요.
2022년 베스트 Movie :
<<탑건 : 매버릭>>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극장에서 두 번 봤습니다.
워스트는 딱히 꼽을게 없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BOX ~ 상자 속에 무언가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이 나름 정교한 이야기와 결합된 수작 모험물.
2022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C.M.B 박물관 사건목록 44>>
설득력없는 트릭의 향연. 시리즈가 끝난게 다행이다 싶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기타 :
<<혼자를 기르는 법>>
독특한 작화, 무거운 분위기, 가벼운 개그의 조합. 좋았습니다.
2022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망작.
2022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22/12/29
2022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나 "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
2020/10/0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에릭 앰블러 / 최용준 : 별점 2.5점
![]() |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
영국인 추리 소설 작가 레티머는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디미트리오스라는 범죄자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에게 강한 흥미가 생긴 나머지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 유럽을 횡단해 가며 이런저런 조사를 벌이는데...
에릭 앰블러가 발표했던 스파이 소설의 고전입니다. 이쪽 바닥에서는 일찌기 걸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지요.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 순위도 17위라는 고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파이 소설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범죄자를 쫓는 탐정 수사물로 보는게 맞습니다. 물론 래티머는 제대로 된 탐정은 아니고, 수사도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추억담같은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옛 동화나 민요를 수집하는 민속학자 활동에 가깝지요. 차이점이라면 디미트리오스는 정말로 사악한 범죄자이며, 이야기되는 추억담은 모두 범죄라는 정도고요.
읽으면서 아직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흔해빠진 스파이 소설이나 느와르, 하드보일드 물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움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빼어난 묘사들과 생생한 캐릭터들 덕분입니다. 유유부단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속물이자 샌님인 주인공 래티머부터 눈부실정도로 생생해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맹이는 없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은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전해 줄 정도입니다. 탐정 수사, 모험물 주인공이 이렇게 평범하고 소심하기도 힘든데, 거의 백여년전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해 내고 있는게 놀랍네요.
조역들도 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죄물, 특히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에서 자주 등장했던 쌍욕을 하는 범죄자, 보자마자 사람을 죽이는 킬러, 여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마초와 폭력배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악한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조차도 나름 신사적이며, 그를 등쳐 먹으려는 시시한 사기꾼 악당 피터슨조차 철학사를 옆에 끼고 사는 인물로 그려지는 등, 후대의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와는 캐릭터가 사뭇 달라요. 요즘 작품이라면 당연시되는 불필요한 정사 장면 묘사나 고어, 포르노에 가까운 혐오스러운 폭력 묘사 역시 찾아보기 힘들고요.
실제 등장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그치는 디미트리오스의 존재감도 발군입니다. 그야말로 '씬 스틸러' 로 돈과 권력을 탐하는 순수한 악당이지만, 기묘한 조직력과 행동력, 관찰력이 잘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가난뱅이 악당 시절, 이웃이었던 프레베자를 범죄에 끌어들이며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내가 당신을 고른 건, 비록 당신이 무르고 감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약삭빠르고 쉽게 흥분하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그날 당신 방에 갔을 때, 나는 당신이 커튼에 돈을 숨겨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커튼에 돈을 숨겨 놓거든. 낡은 수법이지. 하지만 당신은 초조한 눈으로 핸드백을 계속 주시했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어." 라는데,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프레베자는 자기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 말에 넘어가 버리고 말지요.
디미트리오스의 여러 악행을 1920~30년대 유럽에서 일어났던 실제 역사에 잘 녹여낸 전개도 그럴듯합니다. 예를 들자면, 디미트리오스는 1922년 터키와 그리스 전쟁으로 벌어진 스미르나 대학살 당시, 피난민들 움직임을 이용하여 그리스로 도주했고, 1924년에 터키 지도자 케말 퍄사 암살 음모에 가담했었으며, 1926년에 유고슬라비아가 오트란토 해협에 설치한 기뢰 위치가 기록된 지도를 빼돌려 프랑스에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식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약간 팩션 느낌도 전해 주고요.
래티머가 당시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이스탄불에서 스미르나, 아테네, 소피아, 제네바를 거쳐 파리로 향하는 여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합니다. 그런데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4,162Km에 달하는 거리더라고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렇게 긴 수사 여행을 떠나는 래티머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긴 하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 도드라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수사는 별 볼일 없고 - 영국인 작가가 밝혀낼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 디미트리오스의 악행과 범죄는 모두 관계자 증언만 있는 탓입니다. 증거라고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이전 디미트리오스를 협박했던 피서르가 살해된 후 디미트리오스로 위장된 경위를 설명하는 피터슨의 추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여러명이 함께 요트 여행을 간 뒤, 다른 승객이 내릴 때 피서르에게만 따로 이스탄불로 함께 가자고 유혹했다는 추리지요.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피서르를 살해하고 자기 옷을 입혀 바다에 버린 후, 자신은 피서르의 이름으로 투숙한 뒤 떠난 겁니다.
다만 피서르가 자신이 협박하던 디미트리오스와 선뜻 단 둘이 항해를 떠났다는건 설명하기 어렵고, 역시나 증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또 래티머가 확인했던 사체가 사실은 디미트리오스가 아니라 피서르였다 한 들, 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프랑스 경찰이 뭘 할 수 있지도 못해서 딱히 디미트리오스에게 위협이 될 사건도 아닙니다. 피터슨이 협박하자 디미트리오스는 살인으로 입을 막으려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거든요.
그리고 피터슨이 디미트리오스에게서 백만 프랑을 울궈낸 뒤, 당연한 보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에요. 온갖 범죄를 저질러 왔던 악당인데, 협박범을 그냥 놔 둘리 없잖아요? 래티머도 위험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협박은 엄연한 범죄인데 래티머가 공범으로 함께 자리하는 전개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어요.
피터슨과 래티머를 궁지에 모는 데 성공한 디미트리오스가 래티머를 제압하지 못해 최후를 맞는 결말도 많이 시시했습니다. 래티머는 바닥 양탄자에 미끄러진 탓에 디미트리오스가 쏜 총알을 피할 수 있었고, 이어진 격투로 총을 빼앗는데 성공하는데, 이렇게 운과 우연에 의해 살아남는게 소시민 래티머에게 어울리기는 하지만 조금 더 정교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급스러움을 얻기 위해 도입한 장황하면서 옛스러운 묘사, 그리고 느릿느릿한 전개와 말투는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고급스러움의 반대급부로 지루함이 생겨난 셈이지요. 예를 들어 제목은 래티머가 디미트리오스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라는 상념에서 비롯된겁니다. 얼굴이 가면같다니! 멋지긴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걸작이었을테고, 지금 읽어도 멋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요소와 재미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감점합니다. '추리' 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 으로 출간한게 이해가 됩니다.
덧 1 : 해설이 아주 좋습니다. 서점에서 뒷부분 해설만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덧 2 : 원래 "디미트리오스의 관"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해설에 따르면 원래는 "가면"이 맞다고 하는군요. 미국 출간 당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관 보다는 가면 쪽이 작품에 더 적절합니다.
2019/04/28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 승영조,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3점
![]()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
거의 10년 전에 읽은 뒤 읽게 된 주석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5권째 책입니다. 이전에는 1~2, 3~4가 합본이었는데 어느 순간 분리되어 출간되더군요. 독서보다는 소장 목적으로 구입하였는데 다음에 읽자, 다음에 읽자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셜록 홈즈 전설의 시작인 장편 1, 2작 "주홍색 연구"와 "네 사람의 서명"이 본편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주석과 함께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는 구성은 전 권들과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주홍색 연구"는 전설의 시작으로 부끄러움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홈즈의 첫 등장 등 캐릭터 묘사부터 흥미를 자아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추리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장편은 단편보다는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성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놓친게 너무나 많았던 듯 하네요.
뭐니뭐니해도 제일 압권은 셜록 홈즈의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경찰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부를 부른 뒤, 그가 범인이라고 폭로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추리 소설 여명기의 작품이 지금도 능가하기 어려운 추리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탄복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추리쇼에 비하면 현재 시점에서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펼쳐지는 온갖 추리쇼는 잠자는 코고로 수준의 억지스럽고 과장된 연극에 불과합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범인 제퍼슨 호프가 드레버와 스탠거슨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2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고전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직 장편 추리소설 서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였다는 점, 그리고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기에 단점이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코넌 도일 경은 낭만적이고 웅장한 역사 서사극에도 능한 작가니, 이 부분도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모르몬 교도를 악습인 일부 다처제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무법자 집단으로 묘사한 건 판단하기 조금 애매하지만요. 그러고보면 모르몬 교도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그렸던 건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 밖에는 없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한 주석 역시 재미를 더합니다. 왓슨이 제대하면서 가져온 군용 리볼버가 무슨 권총인지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와 같은 흥미로운 여러가지 당대 소품에 대한 소개, 그리고 당시 물가 등 다양한 당대 정보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핫 한 잔이 4펜스로 이는 현재 구매력으로는 2,500원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역자 주석도 꼼꼼해서 더욱 만족스러웠어요.
그 밖에도 "주홍색 연구"가 셜록 홈즈가 실제로 욕설 (damned)을 한 묘사가 등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이야기 등 셜록키언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가득한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제퍼슨 호프가 대동맥류를 앓고 있으며 솔트레이크 산에서 오랜 노숙 탓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마르판 증후군에 걸렸거나 매독에 걸린거라는 설을 제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뭘 이런 것 까지 조사했나 싶긴 한데 읽다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저 역시 말단이지만 셜로키언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은 "주홍색 연구" 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개 토미의 후각에 의존한 추적 외에 별다른 추리라는게 보이지 않는 탓이 큽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제퍼슨 호프의 정체와 현재 뭘 하는지를 바로 알아내는 "주홍색 연구"에 비해, 의족 자국과 일반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발자욱과 독침이라는 흉기는 범인이 의족을 했으며 작은 야만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요. 또 배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능력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범인 스몰이 체포되지 않고 버틴 기간(?)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악당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의족을 했다는, "죤 실버"가 연상되는 묘사는 전형적이며, 사건에 얽히는 과정에서 그다지 뛰어난 지력을 발휘하지도 못해서 어떤 면으로도 셜록 홈즈의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숄토 소령에 대한 복수심은 납득이 가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제퍼슨 호프와는 다르게 스몰은 어차피 악당으로 죗값을 치뤄야 하기에 복수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또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 통가를 잔혹한 살인마로 묘사한 것도 지금은 누가 뭐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겠죠.
무엇보다도 왓슨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불호였어요. 의뢰인에게 첫 눈에 반하는 묘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의 사랑 고백까지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지루한 탓이 큽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초반부는 아주 흥미로와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남는 그 하나가 진실이다' 라는 셜록 홈즈를 대표하는 금언이 등장하고, 왓슨이 물려받은 낡은 시계를 조사한 후 왓슨의 형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은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아도 셜록 홈즈의 빼어난 추리력을 증명하는 명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세포이 반란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끌고 들어온 솜씨도 여전히 나쁘지 않고, 추적극을 전면에 배치하여 모험물로의 재미는 충분한 펀이기도 합니다. 주석들 역시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요. 셜록 홈즈가 뛰어난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는 과거 이야기라던가, 홈즈의 뛰어난 변장술이 등장하는 등 팬으로서 관심가질만한 흥미로운 설정도 몇 개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본 편 이야기는 영 별로이기에 결론내리자면 합쳐서 평균 별점 3점입니다. "주홍색 연구"는 4점도 충분하나 "네 사람의 서명"은 2점도 과하죠. 그래도 어린 시절 읽었던 감상과는 다르게 "주홍색 연구"가 빼어난 수작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시대를 초월한, 셜록 홈즈의 시작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네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다른 판본으로도 많이 출간되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홍색 연구"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12/31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3차, 열 세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6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3 (53)권, 기타 장르문학 8 (10)권, 역사서 18 (12)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4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7)권, 기타 도서 15 (21)권으로 모두 107 (10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과 거의 비슷하군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6년 베스트 추리소설 :
단평 :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그런데 별점 3점짜리는 "별도 없는 한밤에", "천사들의 탐정", "미스테리아 8호", "사냥개 탐정", "검은 수도사", "가면 무도회 1,2",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엠브리오 기담"의 여덟 편이나 됩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한편을 꼽기 위해서 우선 잡지인 "미스테리아 8호"를 뺐습니다. 호러 성향이 강한 "별도 없는 한밤에", "엠브리오 기담"과 역사 모험물 성격이 강한 "검은 수도사"도 빼면 네 편이 남네요.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이 중 추리적으로도 괜찮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워스트 추리소설 :
단평 :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2016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이라고 한탄했는데 올해는 26편입니다! 읽은 작품 중 반 가까이가 수준 이하였다는 이야기지요. 참으로 너무합니다. 최악인 별점 1.5점 이하도 무려 열 편이나 되고요.
하지만 최악 중의 최악인 별점 1점을 획득한 작품은 이 작품 뿐입니다. 최악인 이유는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닌 탓이에요. 그냥 청춘 연애물일 뿐이거든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구태여 추리물이라고 소개하여 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괘씸한 마케팅 때문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단평 : 시대를 뛰어넘다.
올해의 기타 장르문학에서는 별점 3.5점의 이 작품이 베스트입니다. 모두 10권도 읽지 않아 한권의 베스트를 꼽기는 좀 애매하지만요. 여튼 코난 도일 경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고전 명작 모험물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단평 : 바탕에 깔린 사상 문제.
도서출판 불새의 용기있는 행보에는 항상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역겨운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은연 중에 포장하여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단평 : 교양과 재미의 절묘한 결합.
이 책은 올해의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교양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놀라운 결과물이죠. 제가 꼭 흡연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2016년 워스트 역사 도서 :
단평 :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는 편인데 올해는 이 책이 뽑혔습니다. 단평대로 기대한 내용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었어요.
2016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올해 이 분야는 달랑 4권만 읽었기에 별도로 평하지는 않겠습니다. 내년에는 이 쪽 분야도 좀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2016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단평 : 실력자가 애정을 담아 쓴 미식 에세이의 진수.
이 책은 올해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유용한 좋은 에세이였어요.
2016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단평 : 발췌에 이은 레시피 소개에 그친, 날로 먹은 책
제목 그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음식, 요리를 발췌한 후 해당 레시피 소개가 전부인 책. 저자의 아이디어는 눈꼽만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도서 :
단평 : 이 책이 존재할 이유를 모르겠다.
올해 기타 도서는 전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를 꼽기는 쉽지 않네요. 별점 3점짜리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장서의 괴로움") 독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워스트는 확실합니다. 총 4편의 별점 1.5점짜리 망작들 중에서도 이 책이 선명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왜 책이 나왔는지 이유 자체를 모를 무의미한 결과물입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Comic :
단평 : 발간만으로도 감사한 완전판!
올해 별점 3점을 넘는 만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점수가 좋은 작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총 4권을 읽었고, 대체로 별점이 우수했던 "피너츠 완전판"을 올해의 작품으로 꼽아봅니다. 단평 그대로 발간된 것 만으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Comic :
단평 : 만화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올해 별점 1점짜리 망작은 본 작 외에 "스파이 vs 스파이", "산적 다이어리 2"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최소한 '만화' 이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만화가 아닙니다. 빵 소개서를 만화처럼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요. 최소한의 이야기와 재미도 없기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그외 영화, 만화 등은 대체로 부분별로 5편 이상 감상한 것이 없기에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과 똑같다는게 놀라운데 여튼 올해도 100권을 넘겼습니다.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가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출간작들의 수준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평균 이하의 작품들 수가 급증했다는 겁니다. "장서의 괴로움"에 나온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처럼 -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일 수는 있겠지만, 몇몇 망작들은 그야말로 읽는 시간조차 아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뭐 좋게 생각하면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는게 제 미미한 블로그의 존재 의미겠죠. 찾아주시는 분들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할 테니까요.
하여튼,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6/08/05
제라르 준장의 회상 - 아서 코난 도일 / 김상훈 : 별점 3.5점
![]() | 제라르 준장의 회상 - ![]()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
나폴레옹 휘하에서 싸웠던 제라르 준장의 소싯적 모험담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아버지 코난 도일 경의 작품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서 마이클 더다가 극찬했던 탓에 관심을 갖던 작품인데, 얼마 전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어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극찬받을 만하더군요!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던 덕분입니다. 준장의 생명을 건 모험들의 긴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여섯 명의 펜싱 사범과 결투를 벌였다는 식의 허세 끼 있으면서도,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여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매너를 보여주는 제라르 준장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얼마 전 읽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떠오르는데, 허세는 동급이더라도 유머 감각은 월등합니다. 그래서 모험담도 전반적으로 유쾌해요. 잘난 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한 친구인 셈이지요.
아울러 역사 모험물답게 나폴레옹, 네 원수, 탈레랑, 워털루 장군, 뮈라 원수 등 다양한 실존 인물들과 실제 전쟁이 벌어졌던 곳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군복을 비롯한 여러 세세한 디테일들과 전투 장면의 묘사 역시 큰 볼거리에요.
결론적으로 추천작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약간 시대는 다르지만 "스카라무슈"나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비교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후속작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세계"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일 경은 추리물뿐 아니라 모험물에도 확실히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군인의 이야기를 영국 작가가 이렇게나 실감나게 쓴 것도 정말이지 놀라와요. 영국 군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지 않은 것도 신기했습니다.
각 단편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라르 준장, 음울한 성으로 가다"
1807년 2월, 제라르 중위는 연대 본부에 출두하던 중 우연히 경기병 연대 순찰대를 만났다. 순찰대의 지휘관 뒤로크 소위는 아버지의 원수 슈트라우벤탈 남작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둘은 남작의 계략으로 성에 갇혀버리는데...
제라르 준장의 회고에서 시작되는 모험담의 첫 이야기입니다. 나이 지긋한 인물의 1인칭 방백에서, 본 이야기는 3인칭의 소설로 전환되는 구조인데 예전 "샘 호손의 사건부"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시리즈의 시작으로 나무랄 데 없습니다. 지하에 갇힌 후 탈출하는 과정, 그 와중에 남작을 중오하는 의붓딸의 도움, 그리고 남작과의 최후의 결투와 완벽한 해피엔딩 등 모험물로서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라르 준장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각인될 뿐 아니라, 사악한 남작의 캐릭터도 잘 살아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아작시오의 자객들을 처단하다"
1807년, 제라르 중위는 퐁텐블로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의 밀명을 받았다. 밤 10시에 황제와 함께 어떤 사내들을 상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코르시카에서 '아작시오 형제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는데, 그 단체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팩션적 요소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황제가 암살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핵심인데, 이미 결과(암살 실패)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재미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검술로는 상대도 안 되는 두 명의 자객과 대결하는게 모험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물론 나폴레옹을 위장한 일종의 가게무샤가 대신 죽었다는 약간의 반전, 그리고 제라르가 궁을 나갈 때 처음 들어올 때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즉 모든 걸 잊고 나가겠다고 하자 나폴레옹이 한 답변 — "그럴 수는 없을걸, 그때 자넨 중위였으니까 말이야. 이제 가서 푹 쉬게, 제라르 대위" — 등 재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을 잡다"
1810년, 부상으로 후방에 머무르던 제라르 대령은 연대 복귀를 위해 산을 넘다가 게릴라들에게 사로잡혔다. 잔혹한 게릴라 엘 쿠치요에게 사지가 찢길 뻔했던 제라르를 구해준 건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영국군 용기병대였다.
용기병대의 지휘관 바트와 친해진 제라르는 그와 카드 게임 '에카르테'를 벌여 당당하게 탈출할걸 계획하는데...
산적에게 습격받았다가 영국군에 사로잡히고, 마지막에는 웰링턴 장군까지 나오는 드라마틱한 구성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제라르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스페인 산적들의 묘사도 생동감 넘치며, 프랑스인이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카드 게임의 박진감 등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요. 에카르테를 프랑스 전체를 뒤져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될까라는 식의 귀여운 허세도 여전합니다.
마지막 웰링턴의 한마디도 인상적입니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웰링턴에게 제라르가 하는 말 — "내가 카드 게임에서 이겼다, 약속대로 자유를 달라, 자신은 킹을 잡고 있다" — 에 대한 답변으로 웰링턴이 "자넨 우리 킹에게 잡혔거든" 이라고 하는 장면은 영국적이면서도 재치 있더라고요.
모험물로도 재미있고, 팩션으로도 괜찮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왕, 제라르 준장을 잡다"
1810년, 다트무어 감옥에 수감된 제라르는 탈출을 감행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치밀한 탈출 — 창의 철봉을 뽑고, 벽돌을 빼낸 후 이중 벽을 철봉에 침대보로 만든 밧줄을 묶어 넘음 — 도 재미있지만, 탈출 후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우선 찰스 메러디스의 마차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외투를 훔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몰라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형무소 근처에 오고 말지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말한 방향과 반대로 향했지만, 영국 복싱 챔피언 브리스톨 버슬러를 만나 격투를 벌인 끝에 사로잡힌다는 좌충우돌 행각이 정말 흥미진진한 덕분이에요.
메레디스의 편지로 풀려난다는 반전도 아주 기막히며, 이 와중에 편지를 끝까지 읽지 않는 기사도 정신도 반짝반짝 빛납니다. 메레디스 부인과 나누는 농짓거리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마디로 탈출기로서도, 모험담으로서도 빼어난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밀플뢰르 원수와 맞서다"
1810년, 마세나 원수는 제라르 대령에게 탈주병 출신으로 엄청난 세력의 산적 집단을 만든 밀플뢰르 원수 타도 및 그가 사로잡은 부유한 백작 부인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과 산적의 근거지로 향하던 제라르는 도중에 영국군을 만났다. 다행히 지휘관이 친분이 있던 바트이며, 그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공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산적의 근거지인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마침 그 수도원에서 쫓겨났다는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패잔병을 가장하여 잠입할 것을 모의하는데...
일단 바트의 재등장은 반가웠고 수도원장의 정체가 밀플뢰르 원수였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원수에게 푹 빠져버렸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허나 중간에 제라르의 목숨을 노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등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국군을 사로잡은 방법과 똑같이 아침에 제라르를 유인하여 프랑스 군도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방심을 노렸다 치더라도 밀플뢰르 원수가 직접 나설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또 반가운 캐릭터였던 바트가 전사한다는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제라르보다는 밀플뢰르가 더욱 주인공에 가까운 일종의 안티 히어로물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네요. 결국 밀플뢰르가 승리하는 결말 역시 그러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국을 걸고 도박을 하다"
1812년, 프랑스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한 후 괴멸적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제라르 대령은 프랑스로 복귀하여 부대를 재건할 것을 명받았다.
독일을 가로질러 귀국하는 와중에 제라르는 항상 프랑스와 친밀했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고, 협력자를 통해 곳곳에 표시된 기묘한 "T"자 마크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프로이센 상류층의 비밀 결사 투겐트분트의 표식이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죽어가는 군위대 장교 아르노 후작을 만나 황제의 밀서를 건네받았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호프성의 작스-펠슈타인 대공에게 밀서를 전해 독일이 황제에게 거역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그리고 전 유럽이 나폴레옹에게 거역하는 상황의 한가운데 놓인 제라르의 모험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팩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실상 모험이랄 것은 대단치 않습니다. 대공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게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제라르가 팔로타 백작부인을 자칭한 대공비에게 서류를 뺏기는 과정, 궁지에 몰려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제라르의 실패만큼은 인상적이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훈장을 타다"
준장이 된 제라르는 전우 샤르팡티에 소령과 함께 나폴레옹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는 당면한 작전 내용과 밀서를 스페인 국왕인 자기 형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후, 친히 경로까지 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경로는 프로이센 군 등에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제라르는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여 명령을 완수하는데...
태사자가 홀로 북해성 밖의 원군을 청하는 것과 같은,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화끈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태사자처럼 제라르의 기지도 돋보입니다. 시장 저택에서 벌어지는 프랑스군 - 프로이센군 전투, 그리고 이후 프로이센 군에게 다시 점령된 상황에서 코사크 장교 부트킨 백작을 속여 탈출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황제의 의도는 그들이 사로잡히게 만들어 거짓 정보를 적에게 노출시키려 했다는 것, 그래서 황제는 사로잡힌 샤르팡티에게 레지옹도뇌르를 수여하고 제라르에게는 특별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는 결말까지도 완벽합니다. "저 친구는 우리 군에서 최악의 돌대가리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용감한 군인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 정말이지 정확합니다! 아무래도 제라르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머리는 타고났지만 좀 더 큰 그림은 볼 줄 모르는 인물인 것 같아요.
여튼 별점은 4점. 모험도 화끈하고 결말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라르 준장, 악마의 유혹을 받다"
나폴레옹 군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제라르 준장은 프랑스 군 내에서 최고의 용사로 알려진 다른 전우 2명과 함께 베르티에 원수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나폴레옹을 적군에 넘기자고 제안했다. 3명 모두 분노와 함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직후 황제가 나타나 그들을 시험했다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그의 후계자를 증명하는 서류와 4천만 프랑에 해당하는 증권을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랑의 지시를 받은 악당들에게 서류를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과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단편집의 아쉽지만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마지막답게 황제 나폴레옹의 최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단 한통의 편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는 도입부로부터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밝히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허나 무려 전우 2명이 죽었음에도 대단한 모험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성공하더라도 나폴레옹에게 내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좀 맥이 빠고요. 나폴레옹 2세는 결국 한 게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이 서류들이 그의 존재를 어떻게 한 건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6/07/09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 |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
숀가우 교구 알텐슈타트 성 로렌츠 성당의 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하던 지몬과 야콥 퀴슬은 성당 지하실에서 템플기사단장의 묘를 발견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암호 풀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고, 야콥 퀴슬은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지시로 도적단을 토벌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지몬과 베네딕타 사이를 질투하여 스스로 아우크스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손에 쥔 걸로 만족하는 법이 없지. 하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단다. 항상. -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한 마리아에게 산파 스승 슈테흘린이 하는 말.
"왜 항상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죽여." 나타니엘 수사를 죽이고 퀴슬이 하는 말. 나타니엘이 말이 좀 많기는 했습니다...
17세기 바바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역사 추리물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런데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된 유물에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보물이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장치가 핵심이라는 점에서요. 성당의 수장이 흑막이라는 점은 "천사와 악마"가 떠오르고, 성물을 찾는 조직과 핵심 성물이 십자가라는 설정은 "용오"의 한 에피소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우선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지몬과 베네딕타 커플의 암호 풀이, 퀴슬의 강도단 추적, 마리아의 수도사 추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내용이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 500페이지라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독일 바바리아를 무대로 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시대와 장소, 다양한 인물, 민초들의 삶 등 모든 요소에서 철저한 고증과 설득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여전합니다. 특히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야콥 퀴슬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지성과 힘을 겸비한 먼치킨 캐릭터로 여전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거든요. 특히 성 요한 예배당에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결전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도 더해져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도적단 두목 한스 셸러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정도지요.
지몬 프론비저도 미워할 수 없는 뺀질 캐릭터로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암호 풀이에서 보이는 대단한 활약은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헐리우드식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구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딸" 마리아의 존재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정에서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우연히 만난 수도사를 미행하다 붙잡히는 등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탓입니다.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를 질투하는 장면들도 불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베네딕타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묘사 등을 통해 마리아의 복제판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가 도적단의 일원이라는 반전은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안드레아스 신부의 여동생으로 설정해도 충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오히려 주된 흐름에 방해가 되었어요.
우연에 의존한 전개도 다소 거슬립니다. 마리아가 야코부스를 우연히 만나 미행하고, 다시 우연히 지몬과 베네딕타를 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만남이나 사건 진행도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곰팡이 슨 약초로 페니실린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까지 등장하는데 이건 많이 억지였어요.
또한 암호 풀이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해석도 흥미롭지만 독자가 함께 추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나 지명에 기반한 내용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은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역사 모험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5/06/03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 김혜인.고경옥.부윤아 : 별점 2.5점
|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엔트리 |
20세기 초반, 주로 1930년대 발표된 에도물 단편 모음집. 노무라 고도의 제니가타 헤이지, 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히사오 주란의 센바 아코주로 시리즈 단편이 각 세 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제니가타 헤이지 체포록"
- 금빛 여인
- 은비녀의 저주
- 일곱 명의 신부
- "한시치 체포록"
- 간페이의 죽음
- 봄눈 녹을 무렵
- 고양이 소동
- "아고주로 체포록"
- 버림받은 구보
- 유배선
- 고양이 눈의 남자
오래된 작품이고 마치부교나 요리키, 도신, 오캇피키 등 잘 모르는 일본 고어가 난무하는 등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본 에도 시대가 배경이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해결한다는 추리물이자 모험물 성격의 이야기들이니 재미가 있을 수 밖에요.
개성 강한 주인공들도 인상적입니다. 모두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니가타 헤이지는 주로 발로 뛰는 행동형 액션 히어로에 가까우며 한시치는 조용하지만 강한, 우직한 노송 같은 이미지고 아고주로는 난봉꾼에 되는대로 사는 호걸입니다. 이러한 재미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당대의 인기는 물론,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게 당연하다 싶네요.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조금 낡긴 했고 우리 정서에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독특한 추리물, 모험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성향은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도 그렇고, 예전에 읽었던 마노스케 이야기도 그렇고, 에도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네요.
수록 시리즈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니가타 헤이지는 루팡 3세의 숙적 이름으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열혈 청년이라 추리적으로 특기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쇼군에게 복수하기 위한 어약원 본초가의 음모에 이상한 종교 의식이 얽히고, 미녀들이 연이어 눈에 은비녀가 꽂힌 시체로 발견되고, 혼례를 치르던 신부 일곱 명이 납치된다는 이야기들이라 모험물적인 성격과 스케일은 가장 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 특히 제니가타의 정인 오시이가 엄청난 미녀로 묘사되고, 제니가타의 동전 던지기가 대단한 비술로 그려지는 등의 볼거리 역시 화려하고요.
추리적으로도 "은비녀의 저주"에서 처음 죽은 게이샤가 만자부로의 하오리에서 떨어진 히모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만자부로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 등 괜찮은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시치 체포록"은 단편집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 다행히 수록 작품이 겹치지 않는군요. 유명세에 걸맞게 완성도는 세 가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드라마가 잘 짜여져 있거든요.
이 중 개인적으로는 "봄눈 녹을 무렵"이 마음에 들더군요. 맹인 안마사 도쿠주가 안마를 거부한 이유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주 괜찮았기 때문이에요. 에도물에 딱 맞는 설정인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네요. 이 작품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 두 편은 평범합니다. 때문에 전체 평균 별점은 역시나 2.5점입니다.
마지막 아고주로 시리즈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일단 "우주해적 코브라"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호걸이자 해결사이며 약간 안티 히어로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일종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첫 번째 작품인 "버림받은 구보"는 시리즈의 도입부 성격이 강해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상자 메야스바코를 훔쳐내기 위한 담대한 심리 트릭이 돋보입니다.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상자를 훔친 뒤, 도둑을 쫓는 모습을 가장하여 도주한다는 것인데 시대와 딱 들어맞는 괜찮은 트릭이었습니다.
"유배선"은 "마리 셀레스트호" 사건에서 따온 듯한 에도 시대 유배선의 승무원들 실종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기발한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건이 에도물로 변주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방금 전까지 밥을 짓고 있었던" 상황을 트릭으로 이용한 점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이 트릭이 신겐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잘 짜여진 에도물로 리메이크한 솜씨도 발군이지만 실제 일본 역사 속 이야기를 트릭으로 잘 활용한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단연코 이 작품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덧붙이자면 아고주로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상가집에서 진상을 깨우치고, 편지를 어디서 받았는지에 대한 증언 하나만으로 실종자가 어디에 있는지 추리해 내는 방식은 셜록 홈즈의 방식과 똑같더군요.
"고양이 눈의 남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오징어를 이용한 트릭은 나쁘지는 않지만, 범인과 동기도 뻔하고 비약이 심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처지는 범작입니다.
2015/06/01
브랫 패러의 비밀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2.5점
| 브랫 패러의 비밀 - |
지방 명문가 애시비가의 맏아들 패트릭이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8년 후, 그의 쌍둥이 동생 '사이먼'의 성년식을 앞둔 어느 날 패트릭이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패트릭이 아닌 고아 출신의 브랫 패러였다. 그는 우연히 애시비가의 지인을 만난 뒤, 패트릭으로 행세하여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사기를 벌이려 했다. 사이먼과 꼭 닮은 외모에 더해 완벽한 교육으로 주변 모든 인물들에게 패트릭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하나 단 한명, 사이먼만 그가 패트릭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는데.....
"진리는 시간의 딸",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등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발표한 조세핀 테이 여사가 1949년 발표한 장편 소설.
그러나 예상 외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 특기할만한 부분이 없는 탓이 큽니다. 특히나 제일 중요한 패트릭 죽음의 진상은 처음 보자마자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비슷한 작품을 많이 읽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패트릭이 8년만에 나타난 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진짜 패트릭이라고 인정했지만 사이먼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자마자(가짜임을 알면서도) 안도했다는 이야기의 진상은 무엇이겠어요? 당연히 사이먼이 패트릭을 죽였다는 것 뿐이지요.
사이먼의 범죄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에요, 수색하는 척 하고 유언장을 가져다 놓은 것이 전부라서 허무합니다. 형과 쌍둥이였다는 설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했었어야 할텐데, 그다지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울러 설정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8년전 사건 발생 당시 수색이 부실했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역 유지의 귀한 아들이 사라졌는데 수색을 이렇게 대충 할 수 있을까요? 찾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는 브랫 패러가 모든 것을 눈치챈 후, 단박에 수색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찾아낸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들게 만듭니다. 물론 패트릭의 유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작중 언급되듯이 유서 자체가 자살을 "암시"할 뿐 자살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더 철저한 수색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줄거리 요약대로 누군가와 닮은 사기꾼이 상속 재산을 노린다는, 흔하게 접하는 내용을 가지고 이만큼의 재미를 뽑아낸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워요. "뉴요커"지의 평이 '"진짜인 척하는 가짜",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 중에서는 단연 최고이다.' 였다는데 충분히 수긍할만했습니다.
또 거장답구나 싶은 부분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묘사가 특히나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자면 브랫 패러의 시점으로 사이먼이라는 인물의 심정 변화를 알려주는 디테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페기 게이츠의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명마를 사 준 뒤에 보이는 사이먼의 심리 묘사 같은 것 말이죠. 이렇게 사소한 것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인물의 됨됨이를 쉽게 이해시키는 재주는 아무나 부릴 수 있는게 아니라 생각되네요. 전형적인 영국풍 묘사, 영국 작가의 시각이 담뿍 묻어나는 유머러스한 표현들도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 주고요. 예를 들자면 '그가 영국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를 미국 영화에서 얻은 것처럼 대령이라는 종족에 대한 이미지는 영국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는데, 잘못된 것은 둘 다 매한가지였다.' 같은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영국에 대해 대체로 유머러스하게,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돋보입니다.
아울러 애거서 여사님의 모험물스러운 -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부머랭 살인사건" -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결국 사랑도 이루고, 자신의 뿌리까지 찾는다는 고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다. 앞부분에 등장한 복선을 활용해 사이먼과 브랫 패러가 왜 닮았는지 설명해주는 꼼꼼함도 제법이고요.
결론내리자면 거장의 범작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아쉬운 탓이 큰데, 브랫 패러가 패트릭인 척 하는 사기를 치고 있어서 사이먼의 범행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가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점만큼은 정말 빼어났는데 마지막 몇페이지 정도에서만 효과적으로 사용될 뿐이라 좀 아까웠거든요.
비록 별점은 평범하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빠지는 작품이 아니고 이래저래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만큼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야기 중반에 굉장히 화제가 되는 사건인 "트렁크 토막 사체 사건"이 몇번이나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전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이것도 무슨 거장의 장치가 아닌가 싶어 읽는 내내 신경이 쓰였거든요. 저와 같은 독자를 낚고,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라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기는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나의 큰 줄기로 우직하게 몰고가는 느낌이 희석되어 외려 작품에는 감점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덧 2 : 몇번 영상화되었다고 하는데 80년대 TV 시리즈는 데일리모션에 전편이 올라와 있네요. 제 기대와는 캐스팅이 사뭇 다릅니다만...
2015/03/16
SF 명예의 전당 1 - 아이작 아시모프 외 / 박병곤 : 별점 3점
| SF 명예의 전당 1 -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박병곤 외 옮김/오멜라스(웅진) |
SFWA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가 생긴 후인 1964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회원들이 투표를 진행하여 가려 뽑은 작품들을 모은 앤솔러지입니다. 1965년 이전 작품 15편과 30위까지의 작품 일부를 더한 구성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4권 세트 e-book을 종이책 대비 엄청 저렴한 29,700원에 팔고 있어서 구입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SF라는 장르에는 e-book이 가장 적합한 콘텐츠 형태가 아닐까 싶네요.
1권을 먼저 읽었는데,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스름 Twilight - 존 캠벨
- 전설의 밤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무기 상점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투기장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 허들링 플레이스 Huddling Place - 클리포드 D. 시맥
- 최초의 접촉 Fir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남자와 여자의 소산 Born of Man and Woman - 리처드 매디슨
- 커밍 어트랙션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작고 검은 가방 The Little Black Bag - 시릴 콘블루스
- 성 아퀸을 찾아서 The Quest for Saint Aquin - 앤소니 바우처
-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차가운 방정식 The Cold Equations - 톰 고드윈
대충 봐도 SF계의 대가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작품의 수준도 당연히 높습니다. SF 작가들이 직접 선정한 고전 명작이니만큼, 작품의 수준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SF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 작품집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건 아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불필요하게 어렵게 쓴, 혹은 번역된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역장", "정신인자", "윤충류" 등이 대표적입니다. 교황을 '로마 주교이자 사도 전승 카톨릭 성교회의 수장,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는 — 그러니까 교황은 —'이라고 장황하게 소개하는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배경이 되는 기본 설정 소개도 인색한 편입니다. "Coming Attraction" 같은 경우, 핵전쟁 이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역사 SF인데, 단편적인 정보만 설명되는 탓에 전체적인 그림은 미루어 짐작만 가능할 뿐입니다.
SF가 장르적 특수성이 강해서 작가가 '독자가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작가의 잘난 척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중성은 떨어지고 읽기만 어려워지는 듯 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냉전 시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나 기계 문명과 신성을 빗대어 설명하는, 지금 읽기에는 낡은 소재가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먼 미래의 지구는 어떤 이유로든 멸망했고, 영원히 동작하는 기계가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는 "Twilight", 앞서 말씀드린 "Coming Attraction", 가상 역사 SF이자 기계 문명과 신성을 이야기하는 "The Quest for Saint Aquin" 등이 그러합니다. "Nightfall", "The Cold Equations"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익히 접했던 작품들이 제법 된다는 것도 아쉽고요. 물론 이 책의 취지가 시대를 초월한 걸작들을 모아놓은 것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그러나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작품도 많습니다. 그중 제 개인적인 베스트 작품을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The Weapon Shop"
"우주선 비글호" 시리즈로도 유명한 밴 보그트의 작품입니다. 독재 정권에 이용해왔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충성만 하던 서민이 우연한 계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빗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가진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는게 정말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SF 뿐 아니라 정치 풍자극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일종의 먼치킨 같은 역할을 하는 "무기상점"이라는 아이디어도 참신하게 느껴졌고요. 시대를 초월한 걸작입니다.
"Arena"
외계의 두 종족 간 전면전이 벌어질 찰나, 지구인 주인공이 기묘한 장소로 소환됩니다. 그 이유는 전면전이 벌어지면 두 종족 모두 멸망하게 되므로, 신이 한 종족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두 종족의 대표 전사를 소환해 생명을 건 전투를 벌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롤러 형태의 외계인과 1:1로 생명과 인류의 존망을 걸고 벌이는 전투라는 설정 자체가 매력적인데, 거장 프레더릭 브라운의 명성에 어울리는 전개도 압권입니다. 소환된 장소의 다양한 환경을 이용하는 과정과 마지막 승부에 활용되는 복선까지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SF가 꼭 심오하게 인류의 미래, 신의 존재와 같은 주제를 다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미를 위해 쓰더라도 이만큼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요. 별점을 준다면 5점입니다.
"First Contact"
게 성운에서 우연히 조우한 지구인과 외계인 비행선. 서로 마음을 열어가면서도 결국 생명을 걸고 양쪽이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는 묘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러나 다행히 놀라운 아이디어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정보를 공평하게 가지고 귀환하게 되지요.
외계인을 만났을 때의 딜레마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에 이르는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하게 쓰여졌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약간은 냉전 시대의 소산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시대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The Little Black Bag"
미래에서 온 마법의 의사 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 있는데, 한 작품에 쓰이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게 많습니다. 다만 미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바보"가 된다는 설정은 불필요해 보였어요. 그냥 미래에서 의사 가방이 보내지고, 그것이 사용되다가 살인 사건이 벌어져 동작이 취소된다는 정도만 등장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작가의 욕심, 의욕이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뛰어나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완벽합니다.
"Surface Tension"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밤 이야기"가 연상되는 식민화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호시노 유키노부 작품보다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식민화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기는 한데, 그 별에 가장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작품의 무대가 된 행성에서는 미생물 — 윤충류! — 로 인류가 탄생하게 되거든요. 이후 이러한 미생물 인류가 이른바 "외계"로 나가기 위해 나름의 "우주선"을 만들고,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는 내용은 인류의 우주 진출과 비교되며,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여러모로 잘 짜여진 SF 모험물입니다.
다른 작품에는 불만과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은 충분합니다. SF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도 최소한 "Arena"만큼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책 서두에 소개되어 있는, SFWA에서 가장 표를 많이 받은 15위까지의 작품은 알려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그런데 영문으로만 소개되어 있는건 이해가 안 되네요. 책에는 한글 제목으로 실어놓았는데 말이죠. 또 3위인 "Flowers for Algernon"은 영문 제목이 잘못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들을 어떻게 1, 2권으로 나누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세심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 1.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2. "A Martian Odyssey" - 스탠리 와인봄
- 3. "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 4. "Microcosmic God" - 테오도어 스터전
- (동률) "Firs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6. "A Rose for Ecclesiastes" - 로저 젤라즈니
- 7. "The Roads Must Roll" - 로버트 하인라인
- (동률) "Mimsy Were the Borogoves" - 루이스 패짓
- (동률)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동률) "The Cold Equations" - 롬 고드윈
- 11.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12.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13.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동률) "Twilight" - 존 캠벨
- 15.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2014/05/06
사형집행인의 딸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 사형집행인의 딸 -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
18세기 독일을 무대로, 사형집행인이 마녀로 위심받아 화형당할 위기인 산파 마르타의 생명을 구한 뒤 마르타가 죽였다고 의심되는 고아들 사망 원인과 아이들 어깨에 있는 기이한 문양의 정체, 그리고 나병진료소를 파괴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힌다는 역사 추리 소설입니다. 상세한 시대 묘사, 독특한 직업의 탐정이 등장하는 역사 추리 소설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역사 추리 소설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추리, 역사에 관련된 소재를 모두 좋아하며 그냥 독서가 아니라 뭔가 배우는 느낌이 드는게 좋거든요.
이러한 현학적인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필수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 충분히 값합니다.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 및 조력자인 젊은 의사 지몬 프론비저 등 등장인물들은 물론 군인들, 짐마차꾼들과 같은 다양한 직업과 숀가우라는 도시 및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마녀 심문 (고문) 절차 등의 행정적 설정과 같은 모든 요소가 현실감있게 제대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이 중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야콥 퀴슬입니다. 전직 군인으로 고문에도 능한 사람 죽이는 명수가 실제로는 의사보다도 뛰어난 학식을 지닌 진짜배기 르네상스맨이라는 설정인데, 아주 독특하고 신선했습니다. 수많은 역사추리물을 읽어봤고, 실존 유명인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업 - 고대 로마의 포도주 상인, 로마 장군, 수도사, 18세기 영국의 해결사, 터키 환관, 중국 판관 등 - 의 탐정들을 봤지만 사형집행인은 처음 접해보거든요. 단지 직업의 기발함으로 승부하는건 아닙니다. 디테일 역시 장난이 아니에요. 작가 올리퍼 푀치가 실제로 바바리아 주의 사형집행인 집안인 퀴슬가(家)의 후손이기에 가능했던 아이디어와 묘사라 생각됩니다. 덕분에 야콥 퀴슬이 지나치게 먼치킨으로 미화되었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다른 역사 추리소설과 동일한 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추리 소설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복선이 정교하거나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거든요.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고요. 그냥 특정 단계를 클리어하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식의 전개가 대부분입니다. 비교적 초반부터 진짜 범인인 군인들이 드러나는 등 수수께끼 풀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작위적이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도 비교적 많고, 악마가 고아들의 은신처를 때맞춰 발견한 경위나 흑막의 정체 등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녀의 표식이라는 것이 아이들끼리의 장난이었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단서가 애들 장난이라니!
또 야콥 퀴슬이 중요한 정보를 항상 한박자 늦게 알아챈다는 전개도 너무 반복되어 식상하며, 결말부에서 법원서기가 모든걸 알고있었다!고 밝히는 장면은 정말로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마르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동기가 죄다 사라져버린 탓입니다. 흑막을 알고 있었다면 깔끔하게 사건을 정리하는건 일도 아니었을텐데, 사건을 키운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잖아요? 한명 죽인다고 나병진료소나 군인들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고, 파괴와 살인이 계속되면 수습이 더욱 어려워질 것은 당연할텐데 말이지요. 이런 점은 작가의 데뷰작이라는게 이유라 생각됩니다. 너무 쉽게 써 내려 갔어요.
아울러 야콥 퀴슬 외의 다른 캐릭터들이 주인공만큼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젊은 의사 지몬은 처음에는 힘의 야콥 - 지혜의 지몬으로 역할이 분배되나 싶었는데 내용에서는 야콥이 훨씬 뛰어난 학식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기에 별 쓸모가 없습니다. 위기와 문제만 일으키는 민폐 캐릭터에요. 그나마 활약이라면 은신처에서 클라라와 조피를 구해낸 정도밖에 없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 역시 지몬과 야콥을 엮어주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고요. 미인에다가 나름 여러가지 능력을 갖춘 것으로 소개되지만, 정작 사건에 있어서는 후반부에서 군인들에게 납치당하는 식으로 민폐 역할에만 소비될 뿐입니다. 이래서야 제목이 왜 "사형집행인의 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사형집행인"이거나 "사형집행인과 사윗감"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해서 흥미롭고 쑥쑥 읽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독특함은 물론 마녀사냥이라는 당대의 소재를 잘 녹여낸 줄거리는 매력적이고 산파를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시간제한이 존재하여 긴박함을 더하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역사추리물이 아니라 역사모험물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싶더군요. 악인은 모두 응분의 벌을 받고 주인공 일행은 모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다는 완벽한 권선징악 서사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고 적나라한 고문과 처형 묘사가 관건인데, 이것만 조금 순화한다면 어린이용 모험소설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알렉산드르 뒤마나 쥘 베르느의 역사모험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2/12/09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최애순 : 별점 4점
|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최애순 지음/소명출판 |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탐정소설에 대한 8편의 논문을 모은 한국문학사 서적.
8편의 논문은 각각 '탐정'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론, 소파 방정환의 소년 모험소설, 채만식의 탐정소설 "염마", 김내성의 "백가면", 주요 번역 작품 소개, 번역 작품 중 독보적인 인기였던 모리스 르블랑과 루팡(뤼뺑) 시리즈의 번역 역사, 최서해의 번안 탐정소설 "사랑의 원수"(원작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김내성 "마인"의 관계 연구,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범죄와 팜므파탈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한데,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 외로 꽤나 인기 있었던 근대 조선의 '탐정' 소설들과 왜 정통 본격물이 유행하지 않고 통속적인 연애 소설과 결합되어 진화하였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쓰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이때 조선에 본격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더라면 제가 좋아하는 고전 본격물이 다수 소개되었을 테고, 국내 추리 창작 환경도 많이 변했을 텐데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또 저자가 실제 확인한 자료를 통해 소개하는 다양한 창작 및 번역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에 대한 소개는 마치 작품을 직접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아울러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존재했음에도, 현재 우리가 직접 읽을 수 있는 작품이 한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라는 현실도 아프게 다가왔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파 방정환과 김내성의 아동 모험물을 다양한 텍스트와 비교 분석한 내용,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마인"을 비교하여 "마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 그리고 한국형 팜므파탈을 당시 빈번했던 본부 살인 사건과 연계하여 소개하는 연구 등이 추리 애호가로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연구야말로 한국 추리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겠죠.
아무래도 모든 분께 추천드리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이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분께는 자료적인 의미에서라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의 하나로서 별점은 4점입니다. 꼭 창작이나 자료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6.25 전후 한국 추리소설사를 조망하는 후속권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2009/03/18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 제임스 굿윈 / 한은경 : 별점 3점
|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비채 |
술탄 마흐무트 2세 치하의 19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던 시기의 이스탄불에서 제국의 근대적 군대 신위병 장교 4명이 실종되었다. 군대 총사령관 세라스케르는 환관 야심을 불러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야심은 이외에도 궁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수사도 맡는 등, 쉴틈없는 나날을 보냈다.
'19세기 초-중반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환관 탐정이 활약하는 팩션'이라는 책 소개를 믿고 구입한 책입니다. 제가 추리 소설은 물론 역사물도 좋아하기도 하고, 역사 추리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이 책의 장점으로는, 제일 먼저 19세기 초-중반의 이스탄불의 세밀한 묘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 한권만 읽어도 당시 이스탄불 거리의 정경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당시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정치적 상황같은 국제 정세, 술탄과 귀족들, 거리나 지명과 같은 단순한 정보 이외에도 요리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지는 등 그 깊이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모든건 작가가 원래 오스만 제국에 대한 역사 연구를 계속해 온 학자출신인 덕분입니다.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질만큼 제국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추리 소설 역사에 없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환관탐정" 야심의 캐릭터 역시 독특한 맛이 넘칩니다. 성실하고 똑똑하며 요리 역시 뛰어나지만, 환관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환관탐정...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의 화끈한 친구인 망한 나라 폴란드의 전권대사 팔레브스키 역시 멋졌습니다. 이 친구가 주인공인 스핀오프격 외전이 나와도 재미있겠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잘 몰랐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황제의 모후 발리데 술탄이라는 인물 같은 경우겠지요. 프랑스 출신의 미녀로 노예시장을 거쳐 술탄을 낳아, 결국 황태후의 자리에 이르르게 된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친구이기도 한 여인이라니.. 이 여자 이야기만으로도 소설이 한권이겠어요!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소설이라는 측면 이외의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술탄의 근대적 개혁 칙령 발표 직전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술탄의 모후인 발리데의 보석 도난 사건, 그리고 하렘에서 일어난 궁녀 교살 사건이라는 사건이 계속 벌어져서 사건 자체는 풍성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연관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야심의 추리에 의해 해결되는 것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야심은 충실한 수사관이긴 하지만 그가 수집하여 독자와 공유하는 정보는 대부분 쓰잘데 없는 것들이고, 중요한 정보들은 너무나 작위적인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사건의 흑막인 마지막 반전 부분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범인이자 흑막은 사건 자체를 일으키면 안되는 상황이거든요. 은밀하고 조용하게 거사를 진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어처구니 사건을 벌인다니.... 설득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요. 그리고 거사가 실패하는 결말 역시 별로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흑막자체가 너무나 어설펐다!" 라고나 할까요....
결론적으로, 전에 읽었던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과 유사합니다. 역사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역사물, 아니 "역사 모험물"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요. 야심부터가 이 작품에서 3번이나 죽을 뻔하고, 스스로도 격투로 사람을 잡고, 죽이고,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등 많은 모험이 담겨 있는데, 이럴 거라면 차라리 "역사모험물"이라고 하는게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저 자신도 추리적인 부분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래도 지루한 역사물로 끝나지 않고 많은 모험과 더불어 나름 추리적 요소가 담겨있는건 사실입니다. 당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매력을 아주아주 재미있게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점도 분명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저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이국적인 매력에 푹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2008/08/11
813의 비밀 - 모리스 르블랑 / 성귀수 : 별점 2점
| 813의 비밀 -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
대부호 케셀바흐의 호텔방에 뤼뺑이 침입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케셀바흐가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한 정보였다. 뤼뺑은 케셀바흐의 비밀금고에서 관련 문서를 입수한 뒤 철수했는데, 다음날 케셀바흐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청의 르노르망은 살인은 뤼뺑이 행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추리를 펼쳐 살인범 L.M에 대한 단서를 잡지만 주요 증인들이 연이어 살해당했고, 르노르망도 범인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한편 세르닌 공작으로 자칭한 뤼뺑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유럽의 판도를 뒤바꿀 비밀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L.M의 음모에 빠져 샹떼-팰리스에 수감되는데...
20세기 초반 당시의 유럽 현황, 실제 있었던 역사 속에서 뤼뺑은 배후의 큰손으로 흡사 진나라의 여불위를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거대 음모를 가능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황제의 편지"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기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 내내 뤼뺑과 박빙의 대결을 펼치는 정체불명의 악당 L.M 이 다른 라이벌인 홈즈와 가니마르와는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뤼뺑의 다양한 변장과 이중생활, 사생활(특히 딸까지 등장합니다!) 등이 디테일한 심리묘사 등을 통해 보여지는 것과 유럽을 대상으로 한 뤼뺑의 두뇌게임은 매력적이지만 길이에 비한다면 알맹이는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야기는 분명 재미있지만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모험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단지 모험물로만 본다면 괜찮기도 하지만 추리 애호가로서 평가했기에 별점이 좀 낮군요. 어쨌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2006/08/02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 폴 C 도허티 / 한기찬 : 별점 2점
의사 텔라몬은 과거 미에자의 숲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동문수학했던 사이지만 전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의사로 살아가는 인물. 이집트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마케도니아로 돌아온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 협박받은 뒤 헬레스폰토스에서 전군을 소집하여 페르시아로 출정을 앞둔 알렉산드로스를 돕기 위해 떠난다. 한편 다리우스왕과 그리스인인 로도스의 멤논은 알렉산드로스를 저지하기 위한 갖가지 계략을 짜내고 그 계략의 중심에는 알렉산드로스 진영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첩자 나이팟이 있었다.
텔라몬이 알렉산드로스와 합류한 직후 길안내를 맡기로 했던 일당들이 살해당하고 그들이 작성한 지도마저 상자안에서 불타버린 재로 발견되며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는 등 알 수 없는 죽음이 꼬리를 물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출진을 감행하는데...
폴 C 도허티라는 작가의 역사 추리소설. 조사해 보니 이 작품 이외에도 "누가 파라오를 죽였는가"라는 역사 추리물이 출판되었는데 이 작품도 그렇고 제가 처음 접하는 것을 보니 두권 모두 그다지 인기를 끈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나라에서 역사 추리물이 별 인기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단점이 확실히 눈에 들어오기에 이해는 갑니다.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역사 추리물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 직전의 병영 분위기와 주변 정세, 실존 인물들이기도 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디테일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 묘사의 수준이 생생해서 실제 눈으로 보고 쓴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당시로서는 무적의 전법을 보여주던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여러 묘사와 실존인물들인 다양한 인물들 묘사는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또 이러한 알렉산드로스 관련 "역사물"을 "역사 추리물"로 바꾸기 위해 가공인물인 텔라몬이라는 의사이자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물을 탐정역으로 내세워 밀실 살인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고 입구를 보초가 지키고 있는 천막) 과 순간 소실 (나무로 된 상자안의 지도가 재로 변하지만 상자는 그을리지 않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이까지 등장시켜서 추리적으로도 꽤 풍성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적 부분에서의 단점이 너무 확연합니다. 일단 텔라몬의 관찰력에 의한 결과가 독자들에게 공평하게 전달되지는 않아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살인 사건도 여러번 일어나지만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살인 행위"의 트릭을 밝히는 것 보다 우선되는 내용도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많이 떨어트립니다. 사건에 비하면 트릭도 허술하고요.
무엇보다도 진범, 즉 스파이 나이팟의 정체가 명쾌한 설명 없이 순전히 자백에 의존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게 치명적이네요. 나름 추리물이라서 나이팟에 대한 단서를 앞부분에서 던져주긴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대해 박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서라서 반칙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어설프게 추리적 요소를 도입하다 외려 실패한 역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비슷한 그리스 시대를 무대로 한 "탐정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할 수 있을텐데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고 모험물에 가깝지만 내용 전개 등에서 추리물적인 가치가 더 높은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쪽이 제 취향이었습니다.
2004/10/23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사나이 - 켄 폴레트 : 별점 2.5점
|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온사나이 - 켄 폴레트/서지원 |
1914년, 영국 귀족원 의원 월든 백작에게 윈스턴 처칠이 갑자기 찾아왔다. 처칠은 군비를 확충 중인 독일의 위협에 대비해 러시아와의 동맹을 수립해야 한다는 밀명을 내렸고, 이에 백작은 처조카이자 러시아 짜르의 조카이자 해군 제독인 알렉스와의 회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편 회담 정보를 입수한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펠릭스는 알렉스를 암살하기 위해 영국으로 출발했다. 무고한 러시아 민중의 전쟁 참여를 막기 위함이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첩보물 "바늘구멍"의 원작자 켄 폴레트의 역사 첩보 스릴러입니다. 1차대전 직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여 무정부주의자의 암살 계획을 그리고 있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답게 바늘구멍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적대국의 스파이이자 악당인 주인공이 주변 여성(?)의 도움으로 수차례의 도주 끝에 임무에 성공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세에 지장을 주지는 못한다는 - 바늘구멍은 최후의 순간에 실패하고 죽어버리긴 했지만 - 설정이 거의 판박이라고 해도 무방하거든요.
그래도 실존인물과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는 전개(특히나 처칠의 악역스러운 묘사!)로 팩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차이점은 있습니다. 이는 영국 귀족에 대한 상세한 세부 묘사(파티나 체면을 위한 여러 의식 등)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암살, 모험물로도 빼어납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 직접 제작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암살 계획 및 발각된 펠릭스의 수차례에 걸친 탈주극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타락하고 아무 생각 없는, 자신밖에 모르는 영국과 러시아 귀족들보다는 무정부주의자의 편을 들고 싶어지는 전개가 인상적이에요. 펠릭스는 악역처럼 묘사되고는 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일종의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니까요. 때문에 집념의 암살 계획은 성공하지만 아무 소득없이 끝나버린다는 결말은 굉장히 슬펐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에 집착한 듯한 불필요한 성적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월든 백작의 딸 샬롯의 지나친 정치 참여 의식도 전혀 설득력이 느껴지지 못했고요. 마지막으로 펠릭스와 리디아, 그리고 샬롯과의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극적 장치이긴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비슷한 소재였던 쥘 베르느의 "황제의 밀사" 쪽이 저는 훨씬 마음에 드네요. "황제의 밀사"나 다시 구해서 읽어 봐야 겠습니다.
2003/12/15
셰르부르의 저주 - 랜달 개릿 / 강수백 : 별점 3점
| 셰르부르의 저주 - |
예전 그리폰 북스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던 "귀족탐정 다아시경"시리즈의 재간본입니다.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왔네요. 제가 좋아하는 단편 추리물+SF라서 주저없이 구입한 책입니다.
제목이기도 한 "셰르브루의 저주"를 포함해서 "두눈은 보았다", "새파란 시체","상상력의 문제", "전쟁 마술" 총 5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추리소설로서의 성격보다 대체역사 SF 의 성격이 강한만큼, 영불제국과 폴란드제국이라는 배경 설정부터,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수사관 다아시경과 그의 파트너 법정 마술사 마스터 숀 오 로클란같은 독특한 인물 설정같은것들이 재미있습니다.
특히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시대의 특성을 잘 살린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하는데요, 예를 들면 시체에서 얻어낸 단서를 가지고 물질 재구성 마법으로 그 형태를 밝혀 낸다던가, 시체에 방부처리 주문을 건다던가 하는 사소한 부분에서 부터 "두눈은 보았다"에 나오는 상황 재현 마법까지 여러가지의 마법을 작가가 적재적소에 표현해 놓은것이 돋보입니다.
또한 주인공 다아시경도 상당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서 시리즈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셜록 홈즈 스타일의 인물인데, 현명하고 냉철한 수사관으로 추리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거든요. 물론 다른 등장인물들의 묘사도 탄탄하고 설정 역시 재미있고요.
하지만 정통 추리에 가까운 이야기는 "상상력의 문제"정도이고 나머지 중단편은 마법이 중심이 된다던가, 아니면 폴란드제국과의 신경전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라 추리물로 보기에는 조금 약합니다.
"두눈은 보았다"는 반전이 있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고 "셰르부르의 저주"는 첩보 모험물 성격이 더 강하네요. "새파란 시체"도 추리물로서 손색없지만 주 트릭이 "마법"에 기인하고 있어서 약간 변칙인 듯 하고요. 마지막 단편 "전쟁마술"은 제목 그대로 마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설정이 독특하고 주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후속 시리즈가 나와도 계속 읽어보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