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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와 "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 시리즈 전체 보기

2023/08/19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타쓰미출판 편집부 / 수키 : 별점 3점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6점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클

제목 그대로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빵집들의 대표 빵과 특징적인 빵들을 모아 놓은 빵 사진 도감. 모두 264종의 빵이 소개됩니다.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울빵', 똑같은 빵이지만 지역별로 변주가 이루어진 빵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빵집과 대표 빵,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일본의 대표빵으로요.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크림 빵들은 크림이 정말 가득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빵을 쓰는 크림빵들도 테두리까지 크림이 발라져 있던데, 이런건 많이 부러웠습니다.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 (?) 등 빵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모리오카 시의 후쿠다 빵집에서는 50여가지의 크림을 가지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콧페빵에 발라 팔았는데, 어느날 따로 주문이 들어왔던 앙금과 버터를 실수로 함께 바른데서 탄생하게 유명한 '앙버터 빵' 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야키소바 빵의 유래도 비슷한데, 1950년대에 야키소바와 콧페빵을 동시에 팔던 도쿄의 한 빵집에서 손님이 '번거로우니까 안에 넣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레빵은 도쿄 메이카도(현 카토레이)의 2대 점주가 1927년 실용신안등록한 양식빵이 원조로 추정된다는데, 이는 일본 카레빵 협회(별 협회가 다있네요)의 공식의견이라는군요. 그리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비닐에 넣은 삼각 샌드위치의 원조는 1967년의 산케이입니다. 대각선 45도로 컷팅했던 이유는 단면이 가장 길게 보이고, 양쪽 끝은 예각으로 먹기 편하며, 가운데 내용물을 듬뿍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게 이유가 붙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컬럼버스의 달걀같은걸 수도 있겠지요.

일본의 3대 간식빵도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단팥빵, 잼빵, 크림빵인데 이 중 단팥빵과 원조인 긴자 기무라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긴자렌가 거리에 있던 점포 사진 등 도판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잼빵도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딸기가 귀해서 살구잼을 넣었고, 원형의 단팥빵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만든게 지금 모든 잼빵의 원형이 되었다는군요. 크림빵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자 부부가 슈크림을 먹고 그 맛에 감동하여 커스타드 크림을 빵에 넣은게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 메론빵의 원조는 쇼와시대 초기 고베 빵집 긴세이도의 빵이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당연히 먹어보고 싶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들 뿐더러 일본 여행을 간다해도 일본 전역에 걸친 빵집이 소개된 탓에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을 할애하여 '도쿄'에 위치한 빵집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니까요. 소개된 빵집 중 아다치구 기타센쥬에 있는 '마루기쿠 베이커리'가 가장 땡겼습니다. 쇼와시대 레트로 빵 백화점 느낌이라는 말에 꽂혔거든요. <<맛의 달인>>에서 처음 접했던 시베리아(카스텔라 사이에 앙금을 샌드한 과자빵),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단팥빵이 끌리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카레빵의 원조 카토레아의 카레빵도 놓칠 수 없고요.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긴자 기무라야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도 가 봐야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오이시이 빵>>에 나온 빵들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비교해보니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출판사도 다르고, 책 성격도 좀 다르지만 두 책을 합쳐서 정보를 좀 더 보강하고, 목차를 빵 종류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어도 통일하고요. (같은 빵을 쿠페 빵 / 콧페빵으로 각각 소개함)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도감답게 딱히 남는건 없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책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23/06/18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 야마자키 이사오 / 문기업 : 별점 3점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 6점
야마자키 이사오 지음, 문기업 옮김/라의눈

제목 그대로, 80~90년대 패미컴 게임 전체 소개 및 관련 정보까지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 저도 80년대 패미컴 유저라서 옛 추억 소환 차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초패미컴>>, <<초초패미컴>>과 비슷한 책인데, 가장 큰 차이점은 도판이 컬러라는 점입니다. 이 점 때문에라도 따로 구매할 가치가 있는 셈이지요.

담고 있는 정보가 많고 충실해서 패미컴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저같은 옛 유저라면 옛날 게임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갈 정도입니다. 패미컴의 탄생, 패미컴의 변종들, 다카하시 명인, 패미컴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잡지, 광고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소개되는 각종 정보들도 굉장히 재미있었고요.

제가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하나 꼽자면, 역시나 <<사라만다>>. 작은 사진으로라도 다시 보니 반가왔습니다. 추억 돋네요.


그리고 책을 보다가 몇가지 새롭게 느낀게 있는데, 첫 번째는 미디어 믹스 게임이 많았다는 겁니다. 특히 인기 만화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많더라고요. 쿠소게로 유명했던 <<터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바츠 & 테리>>와 같이 그렇게 대단한 히트를 치지 못했던 만화까지 게임화를 한 건 놀랐습니다. 심지어 게임 요소가 거의 없어 보이는 <<맛의 달인>>까지 게임화를 시도했던데 어떤 게임일지 궁금하네요. 유우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사무와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었다면 꽤 흥미로왔을것 같습니다. (아래의 짤막한 소개만 보면, 또 출시일을 보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두 번째는 인기 연예인들을 소재로 한 게임들도 제법 된다는 겁니다. 미디어믹스와 비슷하게, 유명세를 이용하여 팔아먹기 좋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주인공들은 당대 인기 아이돌들보다는, 예능인이나 다소 매니아 취향(?) 연예인이 많더군요. 인기 가수로는 아래와 같이 제가 좋아했던 TV Network 정도만 눈에 뜨일 뿐이었어요.

인기 연예인은 아니지만, 고르바초프가 주인공인 게임까지 있는데 히카루 겐지나 체커스와 같은 당대 아이돌 게임은 왜 없었던걸까요? 소속사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5,000엔에서 시작해서 거의 만엔 가까이 가는 게임들도 있는데,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 일본은 버블 시기였기에 평균 급여가 425만엔으로 높았더군요. 월급으로 따지면 35만 5천엔이지요. 그렇다면 월급의 1.5%정도 되는 돈입니다. 월급이 300백만원이라고 치면, 게임 하나가 4만원 정도니 한달에 한, 두개는 살만했겠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싼 가격은 아니에요. 당연히 한 번 구입하면 마르고 닳도록 할 수 밖에 없었겠죠. 게임을 처음 고를 때에도 꽤 신중했을테고요. 무언가를 저렴하고 쉽게 소비하고, 싫증이 나면 곧바로 없앨 수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데, 오히려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깊이 고민해서 구입하는 방식이 개인의 취향이 생기는데에는 더 좋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추억을 되짚을 수 있었고, 볼거리도 많은 책이지만 수록 도판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문제는 큽니다. 육안으로는 상세 화면을 거의 확인할 수 없을 정도에요. 중반 이후부터는 스마트폰의 '확대경' 앱을 설치해서 읽었습니다.
<<초패미컴>> 등과 다르게 게임에 대해 명백한 사실, 좋은 의도만 전달하고 있는데, 해당 게임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쿠소게, 망작으로 밝혀졌다면 명확하게 안내해 주는 식으로요. 

그래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버젼이 만들어진다면, 실제 게임 동작 화면과 사운드도 감상할 수 있는, 조금 더 나아가 실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는 복합적인 컨텐츠로 제작되는게 훨씬 좋을 것 같네요. 판권이나 저작권 등 여러가지 이슈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요.

2022/05/07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10)

남자의 면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고 츠치야마 시게루 화백의 먹부림 만화입니다. 면과 라쿠고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업맨 이케다 멘타로가 이런저런 면 요리들을 먹으며 겪는 일화들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소바와 우동, 냉면과 오키나와 소바, 나고야면 (기시면, 녹말소스 스파게티, 타이완 라면, 된장곰탕 우동), 라면, 야키소바 등 평범한 면들이 소개되며 에피소드들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마주칠 법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용도 모든 면은 다 맛있다! 류의 만만세 해피엔딩이 대부분이고요. 대기업 츠카모토 전기 회장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지만, "맛의 달인"처럼 면 요리로 모두가 하나된다는 결말입니다. 

약간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이 이케다 멘타로이기는 한데,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체는 면 요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케다 멘타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건 초반의 두, 세 개 정도이며, 다른 이야기들은 전부 그냥 면 요리를 먹으면서 이야기가 생겨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인 정신이 지나친 라면 가게를 '진검 승부' 하는 집이라며 마음에 들어해서 좋아하는 여직원을 데리고 갔지만, 즐겁게 먹는게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처럼요.

하지만 역시나, 다른 요리, 먹부림 만화와 확실히 구분되는 무언가를 찾기 힘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편의 에피소드만 남기고 사라졌겠지요. 면 요리 만큼은 정말로 맛있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 넘쳐나는 먹부림 만화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식가 탐정 료지 1,2" 블랙 잭을 닮은 요리사 아지사와 료헤이가 등장하는 만화 '더 쉐프' 시리즈의 작가 카토 타다시의 작품입니다. 만화 도서관 Z에서 무료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뭐 볼게 없나 하고 뒤져보다가 제목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음식과 추리가 결합된, "절대미각 식탐정" 류의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아니더군요. 추리의 비중이 극히 낮습니다. 등장하는 탐정 소재 이야기 중 볼만했던건 부사장파와 전무파가 세력 다툼을 하는 회사에서 전무파의 핵심 인물인 개발부부장 뒷조사를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해서 PC를 열어보는 에피소드 뿐이거든요. 이를 통해 부장이 컬트 (사이비) 교단 핵심 관계자였다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북해도 출신 가출 소녀를 찾을 때, 사투리를 무심코 대답하게 만드는 작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는 탐정 업무로 볼 만했던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불륜 조사로 미행 후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정도이며, 그 외에는 아들 결혼 상대에 대한 상세 조사, 데릴 사위에 대한 탐문 조사 등이 전부입니다.

반면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인공 탐정 렌죠 료지부터가 일류 요리집 쥬가와의 주인 토가와의 아들로 요리에 굉장히 박식하고 능숙하다는 설정이니까요. 초반부는 그가 조사 및 탐문 과정에서 우연히 먹게 된 요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한 마디 했다가 결국 그 요리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는 전개가 많고요.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억지의 극치죠. 탐정이 이런 일을 해 줄 이유가 없잖아요?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았는지 뒤로 갈 수록, 탐정업 보다는 요리에 집중합니다. 요리 승부가 계속 펼쳐지는 식으로요. 문제는 흥미를 돋우는 효과는 있지만 작품의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욱 하는 성격으로 승부를 한다고 해도 한 두번이지, 세 편 연속 요리 승부는 지나쳤어요. 

아울러 렌죠 료지와 그의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는 "맛의 달인"과 흡사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렌죠 료지가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발끈하며 비판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목표가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는 등 캐릭터 설정도 "맛의 달인"과 거의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요리 만화 붐에 편승해서 이런저런 인기있는 소재를 가져다 썼지만 결과물은 영 신통치 않았던 망작입니다. 유일한 장점은 공짜로 봤다는 것 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9)

2022/04/08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5점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마요는 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십여년 만에 만난 삼촌 다케시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겠다며 수사에 나섰고, 마요도 삼촌과 힘을 합쳤다. 오래 전 사무라이 젠이라는 예명의 마술사로 활동하여 온갖 트릭과 심리전의 달인인 다케시 덕분에 결국 범인을 알아내는데 성공하는데....

일본 추리 문학계의 거물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입니다. 제목처럼 지명이 명확하지 않은 시골마을. 주인공 마요의 표현대로라면 '이름도 없는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본 적 없는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립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쉽게 읽힙니다.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배치해서 흥미를 배가시키는 솜씨도 여전하고요.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은 왜 흉기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수건같은 기묘한 도구를 사용했는지? 범인은 왜 이상하게 피해자 집을 어지렵혔는지?와 같은 핵심 수수께끼 외에도 장례식장에 나타났던 모리와키 아쓰미의 정체는 무엇인지? 가미오 에이치가 도쿄까지 가서 만났던 인물은 누구인지? 모모코의 남편은 왜 간사이에 파견 근무를 갔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마요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비밀은 무엇인지? 등 작 중에 스치듯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합치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한 답들도 모두 합리적으로 공개되고요. 최소한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끝까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맥거핀은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탐정역을 소화하는 '블랙 쇼맨' 가미오 다케시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현란한 트릭들도 볼거리입니다. 도청기나 몰래 카메라같은 장치의 효과적인 사용은 기본이고, 손재주를 이용해 경찰 스마트폰을 몰래 빼돌려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들을 경험과 마술 트릭에 기반한 심리전으로 현혹시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이 그럴듯하게 묘사되거든요. 특히 장치, 손재주에 비해 심리를 활용하는 부분이 꽤 설득력 있습니다. 마요를 처음 만났을 때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방법처럼요. 나중에 알고보니 고양이를 싫어하는 여자 아이는 없고, 그림도 일단 잘 그린다고 칭찬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칭찬이니 큰 문제는 안되며, 설령 그림을 못 그리더라도 누군가 칭찬하는걸 들었다고 할 생각으로요. "일반적으로 인간은 뭔가를 상상하며 이야기하려 할 때 시선이 오른쪽 위로 향하는 경향이 있어. 반대로 사실을 떠올릴 때는 왼쪽 위를 향하지. 대강 말하면 거짓말을 할 때는 오른쪽, 사실을 말할 때는 왼쪽이야."라는 주장도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이전에 수차례 가키타니 경위를 만나서 확인했다는 전제가 뒷받침 된 덕분에 꽤 일리있는 추론의 근거로 사용됩니다. "대화를 통한 정보수집의 철칙은 딱 하나다. 침묵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것. 10년지기처럼 대화를 즐겨."와 같이, 전문성이 느껴지는 대사들도 좋았습니다.

그가 수집한 정보들로 펼치는 추리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기름 라이터 오일 자국에 첫 수수께끼였던 '수건을 흉기로 쓴 이유'를 결합한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마요는 범인이 몸싸움을 하다가 오일이 샌 게 아니냐고 했었지만, 라이터의 오일은 왠만하면 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오일 자체를 가지고 왔던 것이고, 이유는 무언가를 불태우기 위해, 즉 방화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오일을 적시기 위해서 가져왔던 수건이 흉기가 되었던 거지요.

그러나 정교하거나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추리할 여지는 적습니다. 애초에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피해자 가미오 에이치 주변 인물들 조사를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와이더닛' 계열 범죄물이거든요. 문제는 동기가 이야기 속 당대 최고의 인기만화 "환라비"를 그린 만화가 구기야마와 관련되어 있다는게 예상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름없는 마을'과 반대로, 당대 최고의 만화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이름이 언급되는 탓이에요.

여기에 더해 가미오 에이치가 다가오는 중학교 동창회 겸 쓰쿠미 추모식에서 무언가를 공개하려고 했었고, 쓰쿠미는 생전에 구기야마와 아주 절친했다는 정보가 결합되면 답은 뻔합니다. 구기야마는 중학생 시절, 죽은 쓰쿠미와 함께 했지만 공개되면 안되는 추억이 있었던 것이지요. 즉, 구기야마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고고노에 리리카가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깨진 시점에서, 범인은 구기야마가 되는 셈입니다. 

작가도 이렇게 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는 없었는지 가시와기가 주도했던 '환라비 하우스'와 관련된 잇권 다툼을 내세우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퇴직한 중학교 교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요. 급작스럽게 동창회를 앞두고 범행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요.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고고노에 리리카가 범행 시각에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파헤쳐서, 그녀가 스기시타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드러낸 추리처럼요. 아무런 근거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고고노에 리리카의 상대가 같은 동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울러 다케시 캐릭터는 심하게 작위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첫 등장에서부터 고구레 경감과 다투기 시작하는데, 과장이 너무 심했어요. 전형적인 천재형 독불장군으로 새로운 맛도 없고요. 조카에게서도 돈을 우려내는 모습 등 안티 히어로적인 묘사도 만화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며, 마지막에 사건에 관련되었던 동창들 앞에서 다케시가 추리쇼를 펼치는 것도 오랜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는 즐길거리였지만 대체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엔터테이너로는 뛰어나다는걸 새삼 증명해 줍니다. 재미 외에 읽어볼 만한 뚜렷한 가치는 비록 없지만, 재미가 가장 중요한 법이기도 하고요.

2022/01/22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 정영희 : 별점 3점

혼밥 자작 감행 - 6점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일본의 만화가겸 에세이스트 쇼지 사다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에서 넌센스 만화의 제왕으로 접했던 작가지요. "만화의 시간"도 구입한지 2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니 중고가가 어마무시하게 형성되어 있더군요. 살짝 기뻤습니다.

하여튼, 별 기대없이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혼술과 혼밥에서 맛있게 먹기 위한 자기만의 디테일과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사랑하는 먹부림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마 소다츠가 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글들을 쓸 거라 확신이 들 정도에요. 설견주는 우아와 숭고의 세계이므로, '하아~ 쓰읍~' 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부산스럽게 고기를 구울 수도 없다던거나,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단연코 낫토 정식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그대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애정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고민과 연구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립하는 모습도 이와마 소다츠스러웠는데, 200억엔 짜리 레시피라는 '정어리 통조림 덮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한, 최고의 레시피라는데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정어리 통조림 뚜껑을 따고, 그 째로 가스 불 위에 올려 데웁니다. 덮밥용 그릇에 뜨거운 밥을 풀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흰자를 잘게 다져 5mm 두께로 덮고요. 잘게 다진 양파도 같은 식으로 덮은 뒤, 뜨거워진 정어리 캔을 뒤집어 밥 위에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줄기를 제거한 무순과 잘게 썬 우메보시를 뿌리면 완성이라는데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어지네요. 우메보시는 없으니 대신 레몬을 뿌리면 되겠지요? 참치 통조림으로 해도 괜찮을 듯 싶어요. 이외에 버터 간장밥이나 계란프라이 덮밥에 대한 작가만의 레시피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만 따라해봄직했던 무채 된장국, 두부 한 모 통째로 덮밥 레시피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이런 요리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에세이의 매력 포인트인 거지요.

라멘집 사장을 관찰하거나, 카레 국물 부족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돈가스 카레를 먹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꽤나 긴 분량의 고찰도 그러하고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기 망치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샬라핀 스테이크'라는 나름 전문성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의외의 모습도 볼거리였고요. "오니기리는 속 재료 주변을 밥이 감싸고 있어서 첫 입은 맨밥일 경우가 많아서 정말 싫다"는 글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도 좋았고, 직접 그려낸 일러스트들도 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래의 돈가스 카레의 종류에 대해 그려낸 그림처럼, 내용에도 딱 들어맞고 이해하기도 쉬운 일러스트들이었거든요.

물론 자신의 주장을 절대 옳다고 우기며 절대로 고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은 꼰대스럽기는 합니다. 내 주장이 절대 옳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또 사회적인 관계를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이 정도 경력, 나이가 있는 작가가 혼밥, 혼술과 자작을 추구한다는게 쉬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먹부림 에세이 중에서는 재미, 가치 모두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고집은 "맛의 달인" 원작자 카리야 테츠, 이자카야 술안주 류가 대부분인 소재와 유머스러운 분위기는 "고독한 미식가" 등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양 쪽의 장점만 잘 합쳐서 재미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술 한잔 인생 한입"처럼 만화로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전 4컷만화스러운 그림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었다면 꽤 잘 어울렸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저자도 지금은 만화가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인지되는 경향이 큰 것 같기는 합니다만...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책입니다.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이지요.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다,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현재 영어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식으로요.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이고요.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합니다.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지요.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21/04/23

튀김의 발견 - 임두원 : 별점 2점

튀김의 발견 - 4점
임두원 지음/부키

국내 과학자가 쓴 튀김에 대한 인문학, 과학, 교양 서적입니다. 박찬일 셰프 등의 호평이 인상적이라 눈여겨보던 차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튀김의 역사와 대표적인 튀김 요리에 대한 소개로 시작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튀김 요리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로마 요리서 "요리에 대하여"입니다. 유명했던 전설의 미식가 아피시우스가 썼다고 알려진, 1세기 경 편찬되었을 걸로 추정되는 책이죠. 여기에 '알리테르 둘키아(또 다른 달콤한 요리)'라는 튀김 요리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밀가루와 우유로 만든 도우를 올리브유에 튀겨낸 뒤 꿀을 듬뿍 바르는 요리로, 지금의 프렌치 토스트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튀김의 핵심 재료였던 기름이 비쌌던 탓에 튀김이 대중화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3세기 이후부터 많은 튀김 요리가 등장한다고 하니, 거의 천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셈이죠. 그 뒤에는 대표적인 튀김 요리로 덴푸라, 돈카츠, 라면, 프라이드 치킨, 프렌치프라이, 피시앤칩스, 탕수육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다 재미있지만 특히 피시앤칩스에 대한 소개가 괜찮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스페인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이 때 스페인 전통 튀김 요리 '페스카도 프리토'가 전파된게 그 유래라고 하네요. 식초를 뿌리는게 중요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2부 격인 튀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튀김의 핵심인 '겉바속촉'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자면, 이는 '수분 배출이 유리한 구조' 와 '육즙의 유출을 막는' 두가지 기법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기름에 튀길 때 수분들이 기화하면서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가 팽창하여 부풀어 오르고,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튀김옷의 글루텐과 전분은 재료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수행하고요. 그래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요리가 탄생하는 겁니다!
돈카츠가 맛있는 이유는 겉바속촉을 강화했기 때문이에요. 돈카츠는 보호막용 밀가루옷, 튀김옷에 고소한 맛을 더하고 빵가루를 붙여주는 달걀옷, 마지막으로 바삭거리는 식감을 강화하는 빵가루 옷을 입혀 튀겨내니까요. 책에서 설명한대로 '묻고 더블로 가는' 조리법입니다.
튀김이 왜 맛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습니다. 고온에 의한 마이야르 반응, 그리고 캐러멜화 반응 때문이라네요. 겉바속촉에 마이야르와 캐러멜화 반응이라니, 이건 정말 반칙입니다. 이래서야 맛이 없을 수가 없겠죠. 

마지막 3부로 기름, 튀김옷, 튀김기의 종류가 설명되며 책은 마무리 됩니다. 항목별 분류와 차이점에 대한 소개가 아주 상세합니다. 튀김업 입문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모두 3부에 걸쳐 튀김에 대해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터치하고 있기는 한데, 광고에 낚인 기분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있었던 내용이 많았던 탓입니다. 대표적인 튀김 요리 소개가 그러합니다. 대부분 다른 요리 관련 서적에서 한 번 이상 접했던 요리들이거든요. 총 7종의 요리 중 3종이 일본 요리라는 것도 잘못된 배분이 아닌가 싶고요.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튀김 요리를 소개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분식집 튀김의 유래에 대해서 파헤쳐주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또 튀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설명은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에서, 글루텐 때문에 튀김옷을 많이 반죽하면 안되고, 차게 놔 두어야 한다는 건 "맛의 달인"에서, 프렌치 프라이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그 외의 다른 소재들도 다양한 많은 작품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목차와 설명에서 정리가 잘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쉽게 쓰여진 듯 하지만 읽다보면 뭔가 두서가 없다고나 할까요? 반대로 전문적인 부분은 너무 전문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만 읽는다면 나름의 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요리 관련 전문 서적을 많이 읽은 분이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21/01/10

일본요리 뒷담화 - 우오쓰카 진노스케 / 장누리 : 별점 2.5점

일본요리 뒷담화 - 6점
우오쓰카 진노스케 지음, 장누리 옮김/글항아리

제목이 꽤 강렬해서 관심이 갔던 책. 저자는 일본 최초 요리점 중 하나 우오쓰카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고물상을 운영하는 등 자신만의 삶을 산 괴짜 우오쓰카 진노스케입니다. <<격식 파괴 요리책 한 그릇 더!>>의 원작가로 더욱 친숙한 인물이지요. <<한 그릇 더!>>에서는 싸게, 쉽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책은 일본 식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뒷담화라기보다는 일본의 식문화에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를 '교육'이라는 큰 틀로 묶어 풀어내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건강하게 먹는 방법에 대한 교육, 제대로 된 일본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교육, 음식에 대해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하는 교육 등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읽기 쉬웠으며, 흥미로운 내용도 제법 많았던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치회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본 요리에 대해 알려진 상식들을 깨는 이야기들이 제일 좋았습니다. 원래 참치회는 굉장히 쌌고, 특히 대뱃살은 거의 버리는 재료였는데, 전후 사람들이 진한 맛을 추구하면서 대뱃살 인기가 폭발해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이미 1915년에도 대뱃살은 최고급 재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나 다이쇼 시대에는 보존, 유통 기술이 부족해서 지방이 많아 상하기 쉬운 대뱃살을 유통하기 어려웠을 뿐으로, 보존과 유통 기술이 발달하면서 원래도 맛있었던 대뱃살이 각광받게 된 것이라네요. 입맛이 변한게 아니라요.
고래 고기 이야기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맛의 달인>>에서도 일본 전통 식문화라고 강하게 주장했었는데, 고래 고기도 원래 잘 먹지 않았다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1939년 잡지에 실린 기사를 통해 1935년 남극 빙해 지역 포경 시작 전까지 대다수 일본인에게 고래고기 요리법이나 맛은 익숙하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래 된 일본 고유 풍습이 아니라는 거지요. 잡지 기사 하나만으로 근거를 삼는건 좀 애매한데, 과연 뭐가 맞는건지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군요. 이전에 썼던 글을 아예 고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옛 일본에서는 회를 찍어먹을 때 술을 졸여서 조미료로 썼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리자케'라는 조미료로 우메보시, 술, 가쓰오부시를 졸여서 만듭니다. 짭쪼름하면서도 시큼 달큼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싶군요. 맛술에 액젓, 식초를 조금 섞으면 비슷할까요?
마지막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토불이'는 원래 '인과응보'와 같은 뜻의 불교 용어라고 하네요! 이를 1907년 일본 육군의 이시즈카 사겐이 일본인은 일본 식자재를 일본 전통적인 방식으로 먹자며 제안한 사상의 슬로건으로 유명해진게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제목의 '뒷담화'에 가까운 쓴소리들도 일부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단란한 식탁'은 없는 시대이다, 지금의 현미는 다이쇼 이전 현미와 다르며 에도 시대 사람들은 백미에 치우친 극단적 편식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현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등이 그러합니다. 이 중 '장수한 사람들이 먹은 식품을 예로 들어 이런걸 먹어야 장수한다!'는 억지라는 주장은 굉장히 와 닿더군요. 10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라면, 아무래도 태어난 곳에서 줄곧 먹어온 음식은 한정적이었을게 뻔하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해요.
많지는 않지만 <<한 그릇 더!>>와 같은, 간단한 비법 레시피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이소'에서 1000원으로 구입 가능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은 <<한 그릇 더!>> 그 자체더라고요.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던건 아닙니다. 보존식을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낭비되는 재료 소모를 줄이자는 주장이 그러합니다. 전통을 지키고, 더 맛있고 영양가 있게 음식을 먹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이라 생각되었거든요. 이미 조리는 극도로 단순한 형태로 제한하는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빠르고 편한 조리가 더욱 각광받는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니까요. 이런 주장을 펼치느니, 차라리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를 전통 방식으로 조리하여 밀키트나 통조림, 레토르르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체를 스스로 차리는게 나을겁니다. 햇볕에 쬔 고기가 맛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팔면 되잖아요?
또 지금은 제철인 음식이 없는데, 제철 음식을 먹자는 주장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농작물 재배 방식이 발전되고, 해산물은 양식이 가능해진 덕분입니다. 반대로 이를 제철에만 먹는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해당 계절에 작황이 불량하면 그 해에는 특정 작물을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양식없이 조업으로만 해산물을 채취한다는건 더 말이 안되지요. 해산물 자원 씨가 마르고, 가격도 폭등할게 뻔합니다. 제철이 없어짐으로 음식과 재료에 고마와하는 마음이 희박해진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오히려 최대한 기술을 활용하여 먹거리를 제공하는게 먹는 것 만큼은 빈부격차를 최소화하는게 제대로 된 발전 방향이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일본 관점에서만 쓰여졌다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 레시피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파는건 별로 없어 보여서 재현은 어려워 보이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저자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 없고, 근거가 더 보강되어야 하며 일본 시각으로만 쓰여진 글들도 제법 많아서 감점합니다. 일본 요리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면, 딱히 권해드릴 책은 아닙니다.

2021/01/09

가스트로노미 - 나가오 켄지 / 김상애 : 별점 3점

가스트로노미 - 6점
나가오 켄지 지음, 김상애 옮김/비앤씨월드

제목인 가스트로노미는 '식을 즐기기 위한 광범위한 지식'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구르망은 미식가를 뜻하는 단어고요. 브리야 사바랭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며, 이러한 지성을 겸비한 (혹은 겸비했다고 여겨지는) 상류 계급만이 이 새로운 단어의 배후에 펼쳐지는 풍부한 세상을 이해하며 얻을 수 있다"고 했다네요. '상류 계급'이라는 말만 빼면 "맛의 달인"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원형인 셈이지요. 저 역시 이렇게 가스트로노미를 논하는 구르망이 되고 싶네요. 

하여튼, 이 책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현대 프랑스 요리를 알아야 한다는 대 전제 아래에서,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되짚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왕실과 귀족 문화 중심으로 토양을 다지며 발전해 오다가 17세기 라 바렌이 쓴 "프랑스 요리사"로 '오트 퀴진'(고급 요리)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기본 요리와 부이용, 허브 등을 조합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처음 도입되었지요. 요리가 조직화되고 간소화된 덕분입니다.
라 바렌 이후 요리사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라고 불렀고, 그 뒤 17세기부터 부르주아가 세력을 얻으면서 그들이 동경하던 귀족 문화 모방 유행에 따라 식탁 문화 역시 부르주아에게 전파, 보급되며 확장되었습니다.
18세기에 유명 요리사 므농, 라 샤펠 등에 의해 이런 문화들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다가 18세기 후반, 드디어 레스토랑이 출현했습니다. 귀족들이 누리던 식문화를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게 된 거지요. 화려한 인테리어와 조명, 정중한 접객과 서비스, 세련된 오트 퀴진이 조합된 레스토랑에 드나들던 상류층들로부터, 앞서 말한 '가스트로노미'가 탄생하였고요.
여기에 불을 붙인건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으로 귀족들이 몰락하자 고용 요리사, 파티시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부르주아들이 이권을 차지하여 사치스러운 오트 퀴진 레시토랑이 성황을 이루게 된 덕분입니다.

이후 정통 구르망을 자처하면서 고급스러운 식문화를 전파하고자 했던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가 가스트로노미에 대한 여러가지 기획, 식사회를 거치며 "식통 연감" 등을 발표하며 시작된 '미식 문화' '미식 저널러리즘'은 브리야 사바랭의 "미각의 생리학"이 성공하면서 뿌리내렸습니다. 이들에 의해 '구르망' 이 폭음폭식이 아닌 고상한 단어로 포장되게 되었고, 식 저널리즘은 19세기에는 여러 저널리스트 및 발자크나 뒤마와 같은 인기 작가들에 의해 대중화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현대의 "미슐랭 가이드"까지 이어졌고요. 이들에 의해 '가스트로노미'를 위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가스트로노미 역시 더욱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나폴레옹은 탈레랑을 이용해 외교에 요리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탈레랑의 큰 힘이 되어준건 '요리사의 왕' 앙토넹 카렘이었습니다. 카렘의 노력으로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카렘이 쓴 "19세기의 프랑스 요리예술"을 통해 그가 구축한 프랑스 요리 체계가 수많은 요리사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요리 왕국 프랑스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렘이 죽은 19세기에도 카렘의 제자 아돌프 뒤글레레와 줄 구페 등에 의해 카렘의 요리도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특히 뒤글레레의 제자격인 위르뱅 뒤부아는 러시아 외교관 오를로프 공의 메트르 도텔 (수석 요리인)으로 일하면서 러시아식 식사 제공법을 보급시켰습니다. 프랑스식은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식탁에 나열하는 반면, 러시아 식은 1인분씩 나눈 요리를 코스 순서에 따라 한 품목씩 제공하는 방식이었지요.

프랑스 요리사들의 활약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프랑스 요리의 우위는 전 유럽에서 이미 확고한 것이 되었으며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등장으로 현대 요리계에서 불멸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는 프랑스 요리가 정립되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따르면 에스코피에는 본인 능력도 있었지만 '아첨' 하는 능력이 빼어나 요리의 황제 자리를 차지했다고 되어있는데, 아첨도 능력이지요.
참고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유명 요리사들과 구르망들 - 타이방, 라 바렌, 앙투안 보빌리에, 브리야사바랭, 카렘, 에스코피에 - 이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등장하고 있어서, 비교해서 읽어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상세히 알려주며, 주요 요리사와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도판도 꽤 괜찮은 편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요리에 대한 '가스트로노미'를 과시하는데에는 더 없이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에 소개된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 이야기를 응용하여 김태권이 썼던 짤막한 글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에서 접해 보았는데, 이 책 쪽이 훨씬 상세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태권 씨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처럼 실려있는 단편 소설인 "바르드 알 딘 왕자의 타르트레트"도 재미있었습니다. 앙토넹 카렘이 정체불명의 흑인 여자가 만든 타르트레트를 맛보고 겪게 되었던 기묘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타르트레트 레시피는 대법관 캉바레세르, 파르마 공이 어린 시절 사랑했던 디아나와 함께 만들었던 것이었지요. 카렘이 흑인 여자를 시켜 만찬에 타르트레트를 내 보낸 덕분에 파르마 공은 디아나의 어린 딸을 만나 돌봐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는 특별할게 없지만, 1840년대에 이미 요리사가 이렇게 대중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타르트레트'는 소형 타르트를 의미한다는데, 살짝 소개되는 재료를 볼 때 별 맛은 없을 듯 하지만 이 당시에 이미 이런 디저트를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놀랍고요. 확실히 프랑스가 요리 강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20/04/11

탐식생활 - 이해림 : 별점 2.5점

탐식생활 - 6점
이해림/돌베개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에 대한 정보를 멋진 사진, 그리고 맛볼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가 누구인지 함께 소개하며 알려주는 책입니다. 구성이라던가 문체 등에서 '에스콰이어'나 '지큐' 같은 잡지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그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문체와 고급진 사진 때문이죠.

그러나 잡지 기사처럼 단순히 특정 가게나 재료, 요리의 홍보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크게 네 개의 주제로 48개의 재료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름 새로운 정보에 대해 많이 알려줄 뿐 아니라, "만화 고기 스테이크" 처럼 만화 속 고기의 종류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 재미난 항목도 있는 덕분입니다. 조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나, 완벽한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한 방법 같은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좋았고요.
이러한 새로운 정보 중에서는 저지 우유에 대한 소개가 제일 반가왔습니다. 우유의 맛을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이 홀스타인보다 높으며, 실제로 영국에서는 왕실에 납품된다니 그 맛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우유의 밀크홀 1937에서 구입 가능하고 가격도 일반 우유의 3배 정도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구입해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는, 양파가 이 땅에 들어온지는 고작 100여년, 지금과 같은 불고기는 첫 등장이 1960년 대인데 지금은 우리나라 요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재료와 요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재료와 요리가 얼마나 파급력, 전파력이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외에도 과메기 제조법의 역사 등 재미난 정보가 많습니다.

레시피 정보로는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이 기억에 남네요. 쌀을 씻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쌀을 보관하고 밥을 지어야 맛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쌀을 과하게 박박 문지르지 말고, 손끝을 세워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쌀을 씻는다, 이때 물은 쌀이 푹 잠길 정도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혼탁한 물을 자주 따라 내면서 조금씩 보충하는 식으로 씻는다, 맑은 물이 나오면 쌀에서 나온 여분의 전분이 충분히 제거되었다는 뜻. 불리는 시간은 보통 30분이지만, 30분을 기준으로 잡고 쌀의 상태에 따라 가감한다. 1시간을 넘길 필요는 없다'로 이어지는데,일본 드라마 "협반"에서 알려주었던 방법과 비슷하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특히 쌀을 도정하면, 빠르게 산화하고 변질되어 2주 이상 그 맛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쌀을 쌓아 두던 그 옛날 부잣집들보다 “쌀 한 되(1.8리터) 팔아 오라.”라고 하던 가난한 집들의 쌀 구입법을 따라야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정보였어요.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특별한 요리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만화 고기 스테이크 외에는 곰탕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군요. 곰탕 최적의 온도에 대한 고찰, 밥을 미리 말아 넣는 토렴의 과학적 원리(찬 밥에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이면 전분은 다시 말랑말랑진다)와 적절한 염도에 대한 이야기가 잘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곰탕이 먹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책답게, 재료에 대한 고민도 빠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의 달인"에서 지로가 공장식 '브로일러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처럼 말이지요. 이 책에서도 닭고기와 달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맛있는 달걀은 결국 신선도와 사료 문제라고 하니, 달걀은 비싼 달걀을 10구짜리를 사서 먹는게 가장 맛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는 단지 '맛'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가격 차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한 집의 가장으로서, 단지 맛 만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픕니다만, 앞으로는 마트에서 저렴한 특가 상품과 친환경 등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상품 중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 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어떤 이야기는 특정 업소에 대한 광고에 가깝다는건 감점 요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 요리 관련된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정보를 고급진 사진, 편집과 함께 즐기실 수 있는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1/23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카레라이스의 모험 - 6점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눌와

카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저자가 카레의 정체를 탐구하고, 뒤이어 일본식 카레와 카레라이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사적입니다.

읽으면서 "맛의 달인" 24권의 '카레 승부' 편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카레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도까지 가서 카레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영국으로 찾아가 카레 가루의 원형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 구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의 형성 과정을 깊숙히 파고든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 스리랑카는 카레에 몰디브 피쉬라는 가다랑어 종류 건어물을 사용한다, 카레의 맛이 부족하면 한방약을 털어서 섞어 먹으면 좋다는 등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뒤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맛의 달인" 24권이 출간된건 1990년이며, 이 책이 언제 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카레 서적을 발표하며 '카레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저자이니, 이 책에 등장했던 전개와 이야기들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당연히 책이기 때문에 "맛의 달인" 보다 카레에 대한 정보 제공은 훨씬 자세하며 정보의 폭도 넓고 깊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도 돋보이고요. 일본에서 시판되는 카레를 조리해서 인도인에게 먹여본다는 도입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인도인들도 꽤 맛있어 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인도의 여러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요리를 '카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맛의 달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카레'의 어원은 타밀어에서 무언가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에서 왔거나, 힌디어로 향이 강하고 맛있는걸 뜻하는 '터카리'라는 말에서 왔거나, 아니면 옛 인도 북부의 요리 이름인 카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재미있었습니다. '캥거루' 어원에 대한 전설처럼, 영국 지배 시기에 영국 관리가 인도인들에게 먹는 요리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맛있다고 한 '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던 설은 거짓말이라는 디테일까지 완벽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시기의 이야기라면 18세기 이후 이야기인데, 커리가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건 1598년이기 때문이라네요.
그 외에도 인도인들도 카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던가 - 등장하는 요리사인 쟈인 씨는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요리는 모두 카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 매운 맛의 기본은 특별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추와 후추가 중심이며 인도에서 카레를 만들 때 양파를 카라멜라이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카레의 정체에 대한 탐구 뒤 펼쳐지는 일본식 카레의 형성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화권에 완전히 이질적인 요리가 도입되어 국민 요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의 달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우선 소개되는건 일본 카레의 기원입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카레 조리법인 "서양요리지남" 속 카레는 개구리! 카레였으며, 야채로 파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식 카레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양파, 감자, 당근이 생소한 채소였기 때문입니다. 1879년 간행된 "서양과채조리법" 속 파는 “오니언”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다른 책에는 “아니언”이라는 표기도 있었으며 “뿌리를 식용으로 하며, 겉의 껍질을 벗기고 잘 씻는다”라고 주석이 달린걸 보면 파 역시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재료가 아니었을테고요. 이러한 개구리 카레 스타일의 카레 요리법이 1900년대 초반까지 퍼지게 되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카레 가루를 넣은 소스로 고기를 익힌 요리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인도식과는 다르게 카레 가루를 쓰고,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었다는게 특징이지요.
지금과 유사한 카레 요리법인 걸쭉한 카레 루에 고기와 함께 양파,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볶고 끓여 만드는 방식은 다이쇼 시대 이후 확립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레시피로 카레를 조리하여 배식한게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역사와 함께 저자는 카레가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우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가를 개조하던 와중에 육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 요리인 규나베가 널리 퍼진 뒤, 카레가 일본인에게 서양 요리의 입문격 요리로 알려지고요. 이유는 이미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고기도 규나베처럼 작게 썰어 넣어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그 뒤 '1. 레스토랑, 식당 등의 메뉴에 등장한다. -> 2. 잡지, 서적(현재라면 TV)과 같은 미디어에서 요리법 또는 '요즘 이런 요리가 유행'이라는 말 등이 소개된다. -> 3.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된다.' 라는 외부 요리 수용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초기의 소스형에서 스튜형으로 조리법도 바뀌고요. 소스형 카레는 주재료가 고기지만, 가정 요리로는 요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도록 고기는 적게, 그리고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는 식의 음식으로 발상을 전환한게 그 이유입니다.
그 결과가 본래의 서양 요리와는 다른 일본풍의 양식 '카레라이스'인 것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 가루 제조와 카레 루의 판매, 인스턴트화 등을 거친게 현재의 일본 국민 요리 카레라이스입니다.

이렇게 일본 카레라이스에 대해서만 연구한 결과물이라는건 아쉽지만, 카레가 아니라 그 어떤 요리라도 다른 문화권에 흡수될 때에는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레왕께서 추천한 참고 도서인 "카레의 지구사"도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2020/01/19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2)

유럽 맛 여행 - 4점
나가라 료코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제목 그대로, 독일에 남편과 함께 유학 생활 중인 젊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유럽을 여행하며 맛 본 음식들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냥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무엇을 먹었다가 내용의 전부에요. 일상계 수준을 벗어난, 거의 식단 일기에 가까운 그런 내용이에요. 때문에 그 어떤 드라마적인 재미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맛본 요리, 음식들에 대한 맛 이외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고요.

손으로 꼼꼼하게 그린 따뜻한 그림은 마음에 들지만, '만화' 보다는 인스타그램 요리 일기에 가깝습니다. 이야기가 없기에 만화로는 낙제점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꾼의 식사"

'지비에'라고 불리우는 사냥한 동물들의 고기를 요리해 먹는 만화로 이전에 읽었던 "산적 다이어리"와 유사합니다. 다만 "산적 다이어리"는 '사냥'이 주였던 반면, 이 만화는 '요리'가 주라는 차이가 있지요. 주인공 아키노는 대부분의 경우 직접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사냥을 도와주는 등으로 야생 동물 고기를 얻거나, 함정을 만든거에 걸려든걸 나누거나 하는 식으로 재료를 얻거든요. 이렇게 얻은 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사슴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먹기 힘든 오소리 등이 재료라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는데, "산적 다이어리"와 마찬가지로 맛은 대부분 호평이라 좋은 참고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소리 고기가 맛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의심스럽고요. 그래도 냄새가 심하고 엄청 고생해서 손질해야 하는 등 (사슴 내장의 경우는 여덟번도 넘게 데치는 등), 어려움도 비교적 공정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산적 다이어리"보다는 낫네요.

깔끔한 작화,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냥꾼이자 야생 동물 손질, 요리의 달인 이쿠지노 캐릭터도 상당히 인상적이며, 아키노가 덫 사냥, 사냥감 해체, 몰이꾼 등을 거쳐 사냥꾼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도 나쁘지 않고요.

사냥이라는 주제 자체가 우리의 실생활과는 분리되어 있어서 현실감은 없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과 식욕과 나 1 - 6점
시나노가와 히데오 지음, 김동수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27세 여사원 히비노 아유미가 주말마다 산행을 떠나 산에서 온갖 요리를 해 먹는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유행인 캠핑에 요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만화인 셈이지요. 등산과 요리 중 한 가지만 좋아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머리를 잘 썼네요.

등산 쪽 정보도 충실히 제공하고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요리 쪽에 관심이 갔는데, 처음에는 주먹밥과 라면에서 시작해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오버스러운 온갖 요리가 등장하는게 포인트입니다. 심지어 일종의 수비드 조리법을 활용한 "로스트 비프"까지 등장하니까요.
산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도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뎃셍력이 부족해보이는 작화는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좀 더 꼼꼼한 그림체였다면 내용이 훨씬 잘 살아났을텐데 아쉽습니다. 등산 상황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집에서 따라 해 먹음직한 요리가 별로 없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도 평작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1/18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1.5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1권을 오래전 읽었었고, 바로 얼마전에도 읽었었습니다. 별점은 2점이고, 딱히 구입해서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게 감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2권 목차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구입해서 읽어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이미 절판되었지만 많이 팔렸는지 중고로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를 낚았던 목차부터 소개해드립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시드니에 살면서
제2장 | 세계 맛기행
제3장 | 맛의 나라 일본
제4장 | 유명가게를 찾아서
제5장 | 특별요리 강좌
제6장 | 못 다한 이야기
1장이야 그렇다쳐도, 2장은 카리야 테츠가 전 세계를 다니며 맛 본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장에서는 일본의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주고요. 4장은 유명 가게들에서 맛본 경험담이, 5장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하게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2장 "세계 맛기행"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 본 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요리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펼쳐질 뿐입니다. 미국 요리의 대표로 스테이크의 예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라곤 미국에서는 레어로 제대로 굽지 않더라, 웰던으로 구워져 나왔을 때 항의하면 제대로 갖다 주라, 일본에서는 항의해봤자 미안하다고만 하지 다시 주지 않더라는게 전부에요. 프랑스 3대 진미 이야기도 푸아그라와 캐비아는 그냥저냥이고 트뤼프는 최고라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른 설명 밖에는 없고요. 다른 모든 이야기가 다 이런 식입니다.
심지어 "유명 가게를 찾아서"는 제목과는 전혀 다릅니다. 진짜 유명 가게가 아니라 자기가 갔을 때 최고였던 가게를 소개하고 있거든요. 니기리즈시라면 '스키야바시 지로' 정도는 나와줄 줄 알았는데, 1975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도 모르는 초밥 가게가 나오는 식으로 말이죠.
"특별요리 강좌"는 기대대로 레시피가 소개되기는 하나 로스트 비프는 오븐이 없으니 도전하기 어렵고, 채 선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간장을 조금 친 뒤 잘 휘젓고 먹으라는 요리, 무를 국물 맛이 배도록 푹 끓인 뒤 튀겨 먹는 요리 등은 별로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게다가 에세이 전체적으로 1권에서도 눈꼴 사나왔던 꼰대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심한 말을 한 뒤 '너무 극단적인 말이 아니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에게 실례가 되든 다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고 뭐든지 말해버리는 정의의 악한이란 말이다'고 본인을 정당화하는데 참 꼴보기 싫습니다. 정의의 악한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꼰대 마인드라도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는건 아닙니다. 명품을 이해하지 못하며, 유명세에 좌지우지된다는건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영국의 전통있는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2층에는 여성 손님 입장이 아직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음식이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관습을 전통이라 자랑하는 듯한 인종에게 섬세한 감정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동의할 수 밖에는 없지요.
음식 전문가로서의 식견이나 경험을 살짝 보여주는 부분들도 간혹 등장합니다. 소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도쿄 토박이들이 소바 끝만 살짝 담구어 먹는 이유는 소바의 향과 맛에 소바 국물의 깊은 맛을 살짝 더해서 먹기 위함이라면서, 이 국물에 대해 "맛의 달인"에서도 등장했던 명점 '나미키 야부'의 인터뷰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여러모로 볼 만 했습니다.

그래도 장점은 극히 드물고, 자의식 강한 꼰대의 자기 주장, 경험만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1/05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2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제목만 보면 "맛의 달인"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책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가 저술한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맛의 달인"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의 꽁치는 모두 냉동이고 너무 일찍 잡아서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그냥 인공적으로 만든 단백질에 불과하다.. 같은 식으로요. 때문에 일부 글들은 뻔하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부분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자면 돈은 꽤나 번 것 같은데 다 먹어버려서 남은게 없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의 진짜 맛있는 두부는 한국인 할머니가 만든다는 등입니다. 도쿄대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고요. 

아울러 "맛의 달인" 원작자 다운 음식 관련한 프로페셔널한 에세이도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35만엔 짜리 "최고의 라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값비싼 중국산 화퇴와 자연산 닭의 칭탕에다가 최고의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국물을 내고 조미료는 당연히 천연 간장에 구슈의 다네가시마 흑돼지 최상급 로스를 숯불 화로에 구워 올린 라면이라고 합니다. 재료비, 교통비를 모두 감안한 가격이 35만엔이라고 하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다음으로는 5밀리 정도로 얇게 썬 가지를 넉넉히 참기름을 두룬 팬에 센불로 볶은 뒤 간장으로 마무리하는 가지 참기름 볶음입니다. "맛의 달인" 31권에 나오는, 제 기억으로는 가지 공포증이 있는 나카마츠 반장과 후쿠이 차장 아들에게 먹이던 요리였는데 만화로 볼 때보다도 더 집에서 해먹고 싶은 생각이 이 들게 만든게 의외였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그림보다 분위기, 식감, 느낌을 전달하는데 있어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더욱 많기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글을 읽으니 만두만들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작가의 가족처럼 피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겠지만요. 또 "맛의 달인" 12권에 등장한 중국식 파이 "로빙"이 원래 있거나 유명한 요리가 아니라 순전히 작가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맛의 달인"에서는 뭔가 대단한 중국 전통 가정요리처럼 묘사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에세이와 연관된 "맛의 달인"에 등장한 그림들이 충실히 실려있을 뿐 아니라 본문에 나온 음식이 맛의 달인 어느 권에 나오는지 부록이 실려있는 등 "맛의 달인" 팬에게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내용은 딱히 새로운 것은 없으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에세이집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1.05 추가 ----이전에 읽었었던 걸 모르고, 다시 리뷰를 작성했었습니다. 별점과 내용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개인 아카이브 차원에서 추가합니다.

"맛의 달인"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의 미식 관련 에세이집. 본문 내용은 "맛의 달인"과는 크게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달인"에 소개되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고, 삽화는 모두 "맛의 달인" 속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아예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 카리야 테츠의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우미하라'로 대표되는 "맛의 달인" 이라는 작품에서 특정 음식과 맛을 고집하는 '맛꼰대' 그대로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짙어요. 예를 들어 요새 꽁치,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등등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는 먹을게 못된다, 옛날 친환경으로 길렀던 재료들에 비하면 음식도 아니다라는 주장이 책 전체에 가득하거든요. 좀 더 전문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나 때는 말이야~"와 다를바 없는 꼰대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망이 컸습니다. 게다가 이 주장에 등장하는 브로일러 닭, 응고제 글루코노델타락톤을 사용한 두부가 맛이 없다는건 "맛의 달인"에서도 여러 번 써 먹은 주제라서 딱히 흥미로운 내용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맛의 달인"을 보는게 낫죠.

물론 전문가스러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버블 시대 방송국 지원으로 완벽한 라멘을 만든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함수 (칸스이 / 감수)를 넣지 않고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뒤 홍콩 전문가를 통해 면을 뽑고, 중국햄 화퇴와 닭으로 상탕을 낸 뒤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일본식 맛을 더하고, 숙성 간장으로 간을 한 뒤 고명으로는 흑돼지를 구워 만든 차슈를 얹어 만들었다네요. 재료는 모두 자연산, 최고급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 그릇 만드는 비용은 35만엔!이라고 하고요. 35만엔으로 왜 라면을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두부의 부자가 왜 "썩다"라는 의미의 한자를 썼는지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었습니다. 치즈 만드는 과정과 연결하여 '유부'라는 말에서 유자 대신 콩 자를 붙여 만든 말일 수도 있다는 설인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사시미의 어원도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고요. 레시피도 틈틈이 실려있는데 가지 참기름 볶음도 간단해서 해 먹어봄직 하고, 집에서 만두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하는 '로빙' 레시피도 볼 만 합니다. "맛의 달인" 12권에서도 등장했던 바로 그 요리인데,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언젠가 꼭 도전해 보겠습니다. 만드는 김에 "맛의 달인" 60권에 등장했던 중화식 파호떡도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죠.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극소수일 뿐더러, "맛의 달인"에 등장했었던 이야기가 많다는 약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맛의 달인" 팬을 위한 책이긴 한데, "맛의 달인" 팬이라면 딱히 읽어볼 필요가 없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지닌 책입니다. 2권까지 나왔던데 구입해 볼지 말지가 고민이네요. 어차피 절판되기는 했지만요.

2019/11/03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윤덕노 : 별점 2.5점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6점
윤덕노 지음/깊은나무

음식 관련 저서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작가인 윤덕노의 2017년 발표작입니다. 전작들은 특정 요리, 음식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많았었는데, 이 책은 부제인 "같은 재료 다른 요리 한중일 음식 문화사" 처럼 특정 재료나 요리가 '한중일' 3개국에서 어떻게 다르게 조리해서 먹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고찰하여 설명해준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두 여섯 개의 파트, 2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전복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 모두에서 최고의 귀한 재료로 인정받은 거의 유일한 재료라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위해 전복 200개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조선에서도 영조를 비롯하여 세종과 문종 등 왕들의 수라 단골 손님이었고요.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쓰일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군요. 전쟁을 떠나는 무사들이 신에게 바치는 세 가지 음식 - 얇게 편 전복, 말린 밤, 다시마 - 일 정도로 말이지요. 

밥을 지을 때 생길 수 밖에 없는 누룽지 역시 한중일 3개국에서 흔히 먹은 식재료입니다. 이 중 한국의 숭늉은 소화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숭늉이라는 말이 한자어 숙냉 (熟冷)에서 비롯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일종의 부산물로 생각하고 음식 재료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누룽지탕'이라는 요리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주로 과자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중국인들의 요리에 대한 집념이 새삼 느껴집니다.

조기는 한국과 중국에서는 자주 먹는 생선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어'라고 부르는데 황금이 들어온다는 의미가 되어서 맛 이외에도 행운을 바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많이 쓰인다네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묵 재료로나 쓰는 잡어라니 좀 신기합니다. 온갖 해산물에 대해 최고의 맛을 끌어내도록 처리하여 만든다는 '에도마에' 전통이 왜 조기에는 해당되지 않았을지 의문이에요.

그 외에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귀한 채소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신라시대부터 재배해서 풍부했던 탓이라는 설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외래종 산물은 중국을 통해 전해지는게 일반적인데 인도에서 신라로 바로 전해진 뒤, 다시 중국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을 다양한 사료로 증명하고 있거든요.

재료들 관련 이야기말고 조리된 음식을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점심과 딤섬과 같은 식문화 자체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요. 이 중 송편과 월병, 츠키미당고의 관계가 재미있었습니다. 추석, 즉 보름을 기념하는 음식답게 월병과 츠키미당고는 모두 동그랗고 이름에도 달이 들어가는데 송편만 이질적이지요. 둥그렇지도 않고 이름도 소나무를 의미하니까요. 이건 송편은 추석 고유의 명절 음식이 아니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또 솔잎으로 찌는 이유는 향 때문이 아니라 보관성을 높이기 때문이라네요.

합격을 기원하며 선물하는 엿, 찹쌀떡 이야기에서 이런 습관의 유래는 당나라부터였다는 설도 인상적입니다. 과거 제도는 수나라 때 부터 있었으니 그 이후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며 당나라 때로 확인된다는 거지요. 당시 합격 기원 음식은 돼지족발이었다고 하고요. 이유는 장원급제한 사람을 알리는 대자보는 붉은 글씨로 제목을 써서 주제 (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쭈티'입니다. 그런데 이게 돼지족발 발음과 같다는군요. 재미있죠? 그러나 중국에서도 지금은 찹쌀떡의 일종인 장원떡을 먹는다는군요. 합격죽도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맛의 달인"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글에서 많이 본 이야기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런 류의 책을 열 권이 넘게 썼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짜장면이나 다꾸앙, 스키야키와 승기악탕 등의 이야기는 그만큼 많이 보아왔던 내용들이에요.
3개국은 무리였는지 한일, 한중과의 관계만 쓰여있는 소재들도 더러 있습니다. 신선로와 스키야키, 어묵과 오뎅, 한국식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그러합니다. 어쩔 수는 없겠지만 약간은 반칙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이럴 바에야 주제를 줄여서 더 깊게 접근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누룽지'는 자포니카 종으로 밥을 하는 나라에서만 생기는 부산물이니 만큼, 그런 쌀로 밥을 만들게 된 이유라던가 전파 경로 등을 함께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게 더 깊이있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또 무리수를 둔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건 아귀가 우리나라, 중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나름 고급 음식 재료로 꼽힌 이유입니다. 적당히,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이론인데,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아요? 차라리 많이 잡히지 않아서 귀하게 대접받았다면 모를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윤덕노의 다른 저작들처럼 부족한 도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조금 읽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이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재미와 함께 나름 현학적인 욕심도 만족시키는 괜찮은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한중일 요리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8/31

스시도감 - 보즈콘냐쿠 / 방영옥 : 별점 2.5점

스시도감 - 6점
보즈콘냐쿠 지음, 방영옥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321개에 달하는 스시 (초밥)를 재료별로 고퀄리티의 사진과 각종 정보와 함께 저자의 평을 곁들여 한 페이지, 또는 반 페이지로 구성하고 있는 도감입니다.

재료에 대해 간략하지만 필수적인 정보(제철,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등)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최고가", "고가", "보통", "저가" 로 구분하여 명확한 값어치를 알려주는 등 유용한 정보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재미 요소는 만화나 각종 컨텐츠에서 접해보기만 했지 실제로 보거나 먹어본 적은 없는 신기한 재료와 초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맛의 달인" 에서 이사무가 먹고 눈물을 흘렸던 청새치 초밥, 역시나 "맛의 달인" 에서 생선을 착각해서 망신당할 뻔한 오오하라 사장을 구해주는 에피소드에 등장한 자바리(구에)로 만든 초밥 등등 이름만 친숙한 재료가 가득합니다.
이런 것도 초밥으로 먹나? 싶은 재료도 눈에 뜨입니다. 회로도 먹기 힘든 다금바리, 군대에서 가장 저렴한 반찬으로 등장했던 임연수어처럼요.

이렇게 많은 초밥 중 맛보고 싶은 걸 몇 개 꼽아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자가 천년에 한 번 맛볼 수 있는 진미라는 황적퉁돔(센넨다이) 초밥
  • 결점이 없는게 결점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한 편인 청황돔(고로다이) 초밥
  •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맛있다는 쥐노래미 (아이나메) 초밥
  • 태평양의 최고급 새우로 초밥 1개 가격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서 어시장에서도 '살면서 한 번쯤 초밥으로 먹어보고 싶다'는 포도 새우

를 우선 꼽고 싶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골 초밥집에 들러서 "오늘은 포도 새우 하나 쥐어 주세요"라고 말할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분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책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을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유용하게 찾아보라고 소프트 양장 실 제본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책 소갯글을 보면, 초밥을 먹으면서 한 장씩 내용을 찾아보고 감탄하며 정보와 함께 진짜 맛을 음미하도록 하는게 주 용도로 보이거든요. 아니면 초밥집에 비치해 놓던가요. 하지만 휴대하기에는 조금 크고 무겁다는건 아쉽습니다. 차라리 문고본 사이즈였다던가 이 책의 정보를 바탕으로 초밥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조금 범위를 확장하면 해산물 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AI를 활용해서 사진만 찍으면 정보를 제공해 준다던가, 예산을 입력하면 근처 어떤 제철 초밥을 어디서 몇 개 정도 먹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던가 하는 식의 서비스를 붙이면 충분히 수익이 나지 않을까요?

하여튼 별점은 2.5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릴만한 그런 책은 아닙니다만 초밥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2018/08/04

공정드래곤즈 1~3 - 쿠와바라 타쿠 : 별점 2점

[고화질] 공정 드래곤즈 03 - 4점
쿠와바라 타쿠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입니다. 백종원 씨를 비롯, 여러 셰프들이 스타덤에 오른지 오래이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는 온갖 예능들도 넘쳐나고 있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마저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요리 만화는 등장한지 오래되긴 했습니다. 빵이나 카레, 중화요리, 초밥, 도시락, 와인, 술 등 요리사가 주인공이며 특정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만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주로 주인공의 직업과 소재가 특이한 배틀물 - 고전 "맛의 달인"의 '완벽과 최고'의 대결처럼 - 에 머무른 작품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식과 요리를 소소한 일상, 인간 드라마와 결합시키거나, 평범한 음식을 실존하는 평범한 식당에서 평범하게 먹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전개하는 '음식을 소재로 한 소소한 일상계'입니다. 앞서는 "심야 식당", 그리고 뒤에는 "고독한 미식가"가 대표적인 예이며, 이외에도 영상화 된 작품만 해도 "하나 씨의 간단 요리", "와카코와 술", "라멘 너무 좋아 코이즈미 씨", "음식의 군사" 등 수도 없을 정도로 그 인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두 번째로 현재 음식 만화에서 작지만 확실한 인기를 몰고 온 분야는, 판타지 세계관과 음식 소재를 결합한 '이세계 미식물'입니다. 쿠이 료코가 "던전 밥" 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장르는 "던전밥"처럼 이세계의 몬스터를 재료로 친숙한 음식을 만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이세계 주점 노부" 등 처럼 현대(그 중에서도 일본) 요리를 그러한 음식을 잘 모르는 이세계 주민에게 소개한다던가, 아예 현대 일본인이 이세계로 이동하여 자신의 요리 실력으로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 "이세계에서 카페를 개점했습니다" 등으로 아이디어가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가 아니라 현대 요리사가 전국시대로 타임 슬립한다는 "노부나가의 셰프" 와 같은 이야기도 유사 장르로 포함시킬 수 있을테고요.

서론이 좀 길었는데, 이 만화는 이러한 '이세계 미식물' 장르에 속한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도 원조 "던전 밥" 의 특징을 많이 따릅니다. 용을 사냥하는 용 사냥꾼들이 용을 재료로 이런저런 친숙한 음식들을 만든다는 점에서요. 이세계 전문직 종사자의 평범한 식단을 테마로 했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음식 만화'의 한 범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아류작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포룡선 퀸자자호를 타고 용을 사냥하는 사람들과 사냥 과정에 대한 디테일 - 용이라고 불리우긴 하지만 크툴루 신화 속 크리쳐가 연상되는 "용", 고전적인 비행선인데 용을 잡기 위한 다양한 장비(작살총, 봄랜스, 창과 이런저런 와이어, 후크들, 오토자이로)를 갖춘 퀸자자호, 포룡 과정에서 하늘에 떠 있는 퀸자자호 내부에서의 식사와 빨래와 같은 생활 묘사 등등등 - 이 펜터치 중심의 고전적이면서도 빼어난 작화로 그려져 있어서 큰 재미를 선사해 주는 덕분입니다.

그런데 1권은 용 사냥꾼이 용을 사냥하고 그 부산물을 조리해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2, 3 권부터는 세계관이 긴 호흡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나가더군요. 단편으로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2권은 용의 거래로 먹고 사는 마을 '퀀 시'에 기항한 퀸자자호가 마을에서 깨어나 폭주하는 용을 사냥하는 이야기에 승무원 지로의 짤막한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지며, 3권은 사냥 중 지상으로 떨어진 타키타가 지상의 사냥꾼에게 구조된 후, 자신을 따르게 된 새끼 용을 무리에게 돌려보내 준다는, 한 권에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구성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변화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세계 미식물' 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일상계 이세계 사냥 판타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야기도 딱히 새롭거나 재미있지도 못합니다. 전형적인 설정의 전형적인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그나마 용잡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어우러지는 2권은 조금 낫지만, 3권은 전형적인 나우시카류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고기에 푹 빠진 미카는 "던전밥"의 라이오스와 유사한 등, 퀸 자자호의 승무원들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캐릭터라는 점이 더해져 식상해도 너무나 식상할 따름입니다.
용 고기가 무슨 색깔이며 구울 때는 어떻고, 날로 먹으면 어떤지 등 기본적인 특성조차 소개되지 않고 이런저런 요리를 선보인다던가, 뒤로 가면 갈 수록 특별한 요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전개를 보면 판타지 구루메 만화를 그려달라는 편집부의 요구를 따르는 척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그려나가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뭐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테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3권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읽기는 했는데, 다음 권을 읽게 될 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러고보면 저와 같은 이세계 미식물 팬을 위해서 지브리에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를 활용하여 비슷한 컨텐츠를 내 놓으면 좋을 것 같네요. 나우시카 세계관에서 오무를 가지고 만드는 요리 등이 등장하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요? 서둘러라 지브리!

2018/06/16

집에서 차 한잔 할까? - 미야케 타카오 / 최우영 : 별점 2.5점

집에서 차 한잔 할까? - 6점
미야케 타카오, 최우영/스트로베리

일본의 중국 정부 공인 차 전문가인 저자가 일본차, 중국차, 홍차, 허브차, 커피의 5가지 종류 차에 대해 한 페이지에 한 가지씩, 모두 100가지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입니다.

100 가지나 되는 이야기가 수록된 만큼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일본차와 중국차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 책은 처음 접해봅니다. 물론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이 책으로 많은 걸 알게 되었네요. 그 중 제 기억에 남은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중국의 차 중 "황차" 는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채취하고, 볶고, 비비고, 건조시키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종이로 싸서 가볍게 찌는 '민황' 이라는 작업이 추가되어 깊이가 있는 독특한 향이 생긴다고 합니다. 종이 위에 찻 잎을 얹어놓고 불 위에서 가볍게 굽는 작업이 등장했던 "맛의 달인"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우미하라 (가이바라) 는 중국차 애호가였던 걸까요? 왠지 안 어울립니다. 

여러 명차도 잔뜩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우롱차 중 최고라는 '봉황단총' 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꿀 향기가 나는 우롱차인 '동방미인' 도 마찬가지로 땡기고요. 이 차는 꿀을 첨가한 게 아니라 어린 잎을 해충에게 먹힌 차나무가 해충의 천적을 부르기 위해 천적이 좋아하는 물질을 분비해서 꿀 향기가 난다는데, 자연의 신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 맛있는 차가 어떤 것이며 어디서 구입하면 되는지, 차를 맛있게 우려내려면 어떻게 하는지, 여러 도구들은 어떻게 쓰며 간단한 다도에서의 매너는 무엇인지 등 실제 차를 마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냥 뜨거운 우유를 넣는 밀크티가 아니라 우유로 끓여 만드는 "차이"에 대한 소개가 개중 백미였어요. 나중에 한 번 꼭 만들어 마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러한 정보들과 함께 매 이야기마다 수록되어 있는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림도 잘 그렸지만 내용을 재미있게 압축해서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목 그대로 "집에서 차를 먹는" 방법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 가장 크게 실망했어요. 차에 대한 역사와 그 유래 등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최소한 항목을 일본차, 중국차, 홍차와 같은 식으로 나누려면 "왜 일본은 차를 쪄서 만들고, 왜 중국은 덖어서 만들고, 왜 영국과 유럽은 홍차를 더 좋아하는지?" 는 알려줬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100개의 이야기를 한 페이지 정도로 요약, 소개하기 때문에 재미보다는 참고서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일러스트로 보강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한 내용이 많았어요. 홍차나 커피의 경우, 다른 전문 서적이나 자료가 굉장히 많아서 이렇게 소개할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차라리 중국차와 일본차에 집중해서 이야기마다 보다 상세하게 소개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Ceylon을 실론이 아니라 세이롱이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고, "본 차이나"를 백색 점토 대신 소의 뼈를 사용하여 만들었다는 소개는 오해의 여지가 커 보이는 등 번역 문제도 조금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차를 즐겨 마신다면 도움이 될 내용이 수록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도구를 하나씩 장만해서 집에서 제대로 차를 우려내는게 개인적인 꿈 중 하나인데, 그날이 올 때까지는 두고두고 소장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