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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테스카틀리포카 - 사토 기와무 / 최현영 : 별점 2점

테스카틀리포카 - 4점
사토 기와무 지음, 최현영 옮김/직선과곡선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로스 카사솔라스를 지휘하던 네 명의 카사솔라 형제는 신흥 세력 도고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셋째 발미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고 말았다. 겨우 멕시코를 탈출한 발미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은신하며 재기와 복수를 위한 자금 마련에 골몰하다가 일본인 심장외과의 스에나가와 만났다. 스에나가의 제안으로 발미로는 일본인 아이의 심장을 밀매하여 이식하는 새로운 비지니스를 시작했고, 이를 위해 일본으로 거처를 옮겨 자신만의 조직을 새롭게 꾸몄다.
한편, 멕시코 어머니와 일본인 야쿠자 사이에서 태어난 히지카타 코시모는 부모의 방임 하에 자라다가 부모를 모두 살해하고 소년원에 갔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발미로의 눈에 든 코시모는 발미로의 아들처럼 대우받으며, 그로부터 고대 아스테카의 역사와 주술에 대해 전수받았다.


일본인 작가가 멕시코 마약 조직과 일본인 장기 밀매 조직 범죄를 결합하여 선보인 범죄 스릴러.
마약 조직 범죄에 대한 부분은 특별한건 없습니다. 이 분야는 "개의 힘"이 압도적으로 꽉 잡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발미로가 도고 카르텔의 추적을 피해 지구를 반바퀴 돌아 자카르타에 몸을 숨기는 과정, 일본인 장기 밀매 브로커가 '심장 이식'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사업을 펼치는 과정, 일본에서 발미로가 자신만의 조직을 만드는 과정은 모두 설득력 높게 잘 설명됩니다. 다른 데에서 보기 힘든 내용이라 신선하다는 장점도 크고요. 특히 범죄 조직이 일종의 인권 단체의 탈을 뒤집어 쓰고, 모든게 선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직원을 앞세워 무호적 아이들을 모은 뒤, 아이들을 수용하는 비밀 시설에서 심장을 적출하여 도쿄 근처 항구에 정박한 거대 크루즈 내 비밀 수술실로 드론을 통해 옮긴다는건 스케일도 크면서 잘 짜여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아스테카 문명과 신들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입니다. 특히 '아스테카의 신들은 백인 문명에 잡아먹인 채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전 세계에 마약을 뿌려 복수하고 있다'는 발상은 새로왔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장대한 이야기의 90% 가까운 분량이 발미로(엘 코시네로)가 복수를 결심하며, 스에니가와 손을 잡고 일본에 범죄 조직을 재건하는 내용인데, 정작 스에나가의 배신으로 말미암은 발미로 조직의 몰락은 나머지 10% 내에서 서둘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스에나가가 배신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며, 앞서 온갖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키워낸 발미로의 킬러들이 스에나가 한 명에 의해 산소 결핍으로 모두 죽고만다는 내용도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심장 밀매 비지니스도 설득력있게 설명되고는 있으나 과연 이게 산업으로 성립할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그렇게 수요가 많을 시장이 아니니까요. 어느정도 수요가 있다 치더라도, 발미로가 마약 카르텔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으는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스테카의 제물로 바치던 심장과 비즈니스를 억지로 엮은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아스테카의 주술을 이야기에 엮은건 모두 별로였습니다. 이야기에 잘 녹아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탓입니다. 마약 카르텔의 보스가 아스테카 주술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지만, 머나먼 일본에서 태어난 소년이 이 주술에 감복해서 아스테카의 무기인 마쿠아우이틀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푹 빠진다는건 억지스럽기만 했어요. 
발비로가 믿는 '연기나는 검은 거울'은 '일식'을 의미하므로,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코시모가 '신'이 되어 홀로 남은 '전사' 발미로를 죽인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꽃 전쟁'에서는 심장을 제물로 바쳐야 하니 발미로는 코시모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코시모는 발미로가 죽을지 안 죽을지 운명에 맡긴다는 코시모만의 편의적인 설정부터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거든요. 주술을 엮으려면, "가다라의 돼지"의 아프리카 주술 수준 정도로 이야기에 포함시키는게 좋았습니다.
코시모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 마지막에 코시모가 어떻게 도주했는지 등 설명없이 대충 넘어가는 것도 너무 많아요. 마약 중독자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별점은 2점. 볼만한 부분도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전설없는 땅"처럼 잘 알지 못하는 이국에 대한 상세한 설정만 장황할 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8/30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별점 1.5점

선량한 차별주의자 - 4점
김지혜 지음/창비

딸아이 논술 교재. "결정장애"라는 흔하게 쓰는 말도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서두는 강렬합니다. 비하성 유머, 평상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차별이자 혐오성 표현이 될 수 있다는걸 새삼 느꼈습니다. 앞으로 더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대체로 내용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통계와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임금이 낮은건 여성들이 애초에 남성들보다 평균 임금이 낮은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게 구조적 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구조적 차별이라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요.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느끼는 일련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정의한 것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잣대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건 알겠습니다. 토익 듣기 평가는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이런 문제가 없는 보통 학생들을 '성적'을 기준으로 반을 가르는게 과연 부당할까요? 또 같은 학교라도 본교와 캠퍼스가 다른 대접을 받는게 이상한가요? 사회는 경쟁이고, 이 경쟁은 학생 때부터 존재합니다. 경쟁에서의 우열은 학생들이라면 성적으로 가를 수 밖에 없고요. 이전 "신입사원"이라는 만화에서 봤던 "학력 필터 이론"처럼, 누군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아무런 정보가 없다면 학력이 중요한 선택지가 되는건 당연합니다. 이런 능력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건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에요.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원인을 이해하지 않고 현상만 놓고 차별이라 주장하는건 잘못되었습니다. 예멘 난민을 거부했던 사례도 차별이라 하지만,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인 난민에 의한 성폭행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노키즈존도 단순히 인종으로 차별했던 '흑인은 입장 금지'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노키즈 존'은 실제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켰던 많은 사례들, 그리고 최근 인터넷에 회자되는 철없는 엄마들의 황당한 요구와 불만 제기 탓이니까요. 개념 자체가 다른걸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완전 잘못한 겁니다. 노키즈존이 생겨난 이유를 고민하고 글을 쓴게 맞는지 의심스럽네요.
퀴어 축제를 거리에서 하는걸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사진만 보아도 퀴어 축제에서의 참가자 모습은 일반 사회 통념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이 많습니다. 이런 축제를 거리에서 하도록 놔둘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들 지위를 낮추고 혐오 대상자로 만드는 행위를 벌이는걸 용납할 이유가 있을까요? 축제가 필요하면 자기들끼리 닫힌 공간에서 하면 됩니다. 풍기문란도 엄연한 죄니까요. 폭주족들이 달릴 권리가 있다며 사회 규범을 어기는 것과 다를게 없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말,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폭넓게 사용하는 것도 불만스러웠어요.

차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외에는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 뿐이라 점수를 줄 부분이 없었습니다. 차별받을 원인을 제공하는 쪽도 문제가 있는데, 차별하면 안된다는 주장만 하면 어쩌자는 걸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8/28

인공지능이 그린 "경성탐정록"

MS의 코파일럿을 이용하면, 인공지능 'DALL·E'가 생성하는 이미지를 무료로 하루에 몇 장씩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만들어보다가, 오래전 원안으로 참여했던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표지 일러스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아직 제대로 생성하지 못하지만, 분위기는 아주 그럴싸하네요. 앞으로 후속권이 나오면 인공지능에게 아예 표지를 맡겨봐야겠습니다.

2024/08/26

08.20 ~ 08.25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삼성 - 한화 원정 - 홈 5연전 (삼성전 1경기 폭염 취소)
성적 : 1승 4패

좋았던 점
  • 나름 부활한 선발야구. (시라카와 제외 전 선발 5이닝 이상 투구)

나빴던 점
  • 또 무너진 김택연 선수
  • 중심타선의 깊은 부진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는 최악의 한 주였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타선입니다. 선발진은 준수한 투구를 보여주었지만, 점수를 내지 못해 많은 경기를 놓쳤습니다. 중심타선(양의지, 양석환, 김재환 선수) 중 터져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부진했던 제러드 선수가 터졌던 수요일 단 한 경기만 잡아냈을 뿐입니다. 이길 뻔 했던 토요일 경기도 강승호 선수가 정말 오랫만에 타점을 기록했던 덕분이지 중심타선의 역할은 미미했었지요. 그나마도 김택연 선수의 블론으로 패배하고 말았고요.

하지만 김택연 선수 잘못은 아닙니다. 진작에 이기는 경기에만 썼어야 할 필승조를 동점, 혹은 박빙 상황에 마구 굴리다보니 결국 탈이나 버렸네요. 고졸 신인이 너무 많이 던졌어요. 솔직히 더 못 던진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병헌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해서 5강 가면 뭐하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승엽 감독 선임은 실패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선수들은 혹사시키고 있지만 성적도, 미래도 그닥인 상황이니까요. 김태형 감독도 선수들 여럿 잡았지만, 그래도 성적은 냈습니다. 지금처럼 중위권 사수하려면 운영이라도 건강해야죠. 이미 필승조 두 명이 부상으로 쉬다 왔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네요
국민 타자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타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홈런왕 출신이 왜 이리 쌕쌕이들만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는 NC와의 원정 3연전, 롯데와의 홈 2연전이 벌어질 예정입니다. 이번 주부터라도 제발 여유있게, 건강하게 게임을 진행하기만을 바랍니다. 5위만 해도 충분합니다. 선수들을 갈아넣을 필요는 없어요. 선발 투수들도 두루 기용하면서, 5할 승률만 맞춰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승엽 감독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이병헌 선수와 김택연 선수의 등판만 없길 바라며, 이번 주에도 허슬~ 두!!

2024/08/25

인계철선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점

인계철선 - 4점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막노동으로 몇 개월 째 생계를 꾸리던 잭 리처 앞에 그를 찾는 사립 탐정 코스텔로가 나타났다. 리처는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다른 사람인 척 했는데,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죄책감을 느끼고 의뢰인을 찾아나섰다. 알고보니 의뢰인'제이콥 부인'은 잭 리처의 군 시절 존경했던 상관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다. 가버 장군은 심장병으로 막 사망한 상태였다. 왜 리처를 찾으려 했는지 조사에 나선 둘은, 사건이 빅터 하비라는 월남전 실종 군인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한편,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사무실을 둔 사채업자 갈고리 하비는 체스터 스톤의 모든걸 빼앗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 마릴린을 납치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챈 뒤, 스톤의 재산을 서둘러 가로채 뉴욕을 뜰 생각이었다.


1999년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초창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잭 리처가 조디와 만나 빅터 하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 그리고 갈고리 하비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탈출을 위해 제한된 상황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잭 리처와 정 반대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건 시리즈 후기작인 "10호실"과 유사합니다. 남자인 체스터가 아니라, 연약한 미모의 중년 여성 마릴린이 두뇌 싸움을 펼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요.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제법 됩니다. 잭 리처가 코스텔로의 위치를 알아낸 뒤, 사무실에서 의뢰인 제이콥 부인의 거처를 찾아내는 과정과 빅터 하비의 연로한 부모를 사기친 악당들의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장면처럼요. 
마지막에 헬기 사고 유해를 토대로 빅터 하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장면은 백미입니다. 유골들에 남은 흔적으로 죽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건 법의학 스릴러 못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가 긴급하게 수송했던 세 명의 정체에 대한 추리 - 두 명은 헌병이고 한 명은 범죄자였을 것이다 - 와, 범죄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 모두 그럴싸 했습니다. 상관을 살해하는 '조각내기' 수법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 왔지만, 이를 현실감있게 실제 범죄 소설에 녹여낸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건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 피해자의 영웅적인 죽음이 스캔들이 되므로 - 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하지만 후기작들에 비하면 재미는 사뭇 떨어집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고요. 갈고리 하비가 빅터 하비의 정체를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고 숨을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빅터 하비는 공식적으로는 동료를 살해하고 탈주한 탈영병 신세입니다. 당연히 빅터 하비라는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쳤을리가 없습니다. 빅터 하비는 그냥 행방불명 상태로 두고, 가지고 있는 거액을 활용하여 다른 신분을 사는게 당연합니다. 왜 빅터 하비의 신분과 그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체스터 스톤의 전재산을 강탈하려는 시도도 억지스럽습니다. 그에게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풀어 주식 가치를 떨어트리고, 그걸 빌미로 주식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 채권을 사서 채권자가 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뒤에 스톤 부부를 납치하고, 경찰을 두 명이나 살해하면서까지 체스터의 주식을 빼앗으려 한다는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채권만으로도 담보로 잡혀있는, 원래 계획했던 땅을 손에 넣는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채권은 회사 명의이니 자기 이름이 드러날 일도 없고요.
빌런 갈고리 하비가 사악한 인물이라는걸 긴 설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는 애초에 잭 리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일기토 장면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하비 일당은 달랑 세 명 뿐인데다가 특별한 훈련을 받은걸로 묘사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하비는 오른손까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일개 부대를 쓸어버리는 잭 리처의 다른 시리즈를 본 사람들한테는 이건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잭 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악에 대한 응징도 시시합니다. 쫓기는 공포라던가,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사이다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하비가 인질을 이용해서 주도권을 계속 잡다가, 마지막에 잭 리처가 기습해서 단 한 방으로 끝장내는게 전부거든요. 잭 리처도 중상을 입고 총까지 맞는 등,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고요. 
이런 나약함(?)을 포함해서,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한다던가, 가버 장군이 유산으로 남긴 집 때문에 정착과 취직을 고민한다던가 하는 잭 리처스럽지 않은 묘사가 많습니다. 이건 시리즈 팬으로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잭 리처 시리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잠깐 까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별점을 주자면 잭 리처 시리즈로는 1.5점이고, 그냥 범죄 스릴러로 본다면 2점입니다. 피해자 시점 전개에서의 서스펜스는 괜찮았고, 머리를 쓰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건 좋은데 잭 리처 시리즈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24/08/24

식탁 위의 중국사 - 장징 / 장은주 : 별점 2.5점

식탁 위의 중국사 - 6점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현대지성

제목만 보면 여러가지 중국 요리를 통해 중국사의 단편을 엿보게 해 주는 미시사 서적같은데, 읽어보니 생각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각대로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탄탄한 사료 기반 설명들 덕분입니다. 대표적인게 개고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국 요리에 대해서는 "다리 4개 달린 건 책상과 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 둘 달린 건 사람빼고 다 먹으며 하늘의 전투기, 땅위의 탱크, 바닷속의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로 온갖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개고기도 식용으로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오래 전에는 가장 많이 사육한 가축이자 춘추전국 시대에는 제사에 쓰였고, 심지어 유방의 부하 번쾌는 구도(개잡이)였을 정도로 널리 먹었지만 현재는 알려진 조리법이 극단적으로 적을 정도로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북방 유목민이 개를 좋아했는데, 북망 유목민 세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개고기 식용 습관이 쇠퇴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조시대 때부터 '개를 먹으면 벌이 내린다'는 동물관, 식습관이 등장했고 이후 당대, 송대에 지속적으로 쇠퇴하다가 유목민 왕조인 원대에는 심지어 개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마저 득세하여 개고기 식용 습관을 거의 끝장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대 기록에 따르면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네요.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식문화마저 변해버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돼지고기 인기가 떨어지고 양고기 인기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노족의 남하,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세력이 중원에 미친게 원인이니까요. 거란족은 평소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제사에도 사용할 정도라, 이 식문화가 중원에 전파된 것이지요.
원래 중국인들은 알곡을 먹었는데, 밀가루를 먹게된건 한대. 장건의 서역 방문으로 전래된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그럴싸 했습니다. 마르코폴로에 의해 국수 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스파게티가 되었다는 설과 왠지 비슷하네요. 물론 이 설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속설로 널리 퍼진건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인데 장건 서역방문설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 요리로 주요 세력이나 외교를 엿볼 수도 있고, 고대에 회가 많았던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당시 시대 상황을 요리로 알려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을 가열하려면 손이 많이 갔으며, 고대에는 그릇도 전부 도기라서 찌거나 조리는 조리법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기는 열 전도율이 낮아 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즉, 고대에는 '에너지'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겁니다(당연하지만요).

요리와 음식, 재료별 사료를 통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노나라 애공은 공자에게 복숭아, 기장법을 먹도록 권했다.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그 다음 복숭아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기장밥은 먹는게 아니라 복숭아털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기장은 오곡 중 가장 으뜸이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도 최상의 제물로 쓰입니다. 하지만 복숭아는 여섯 가지 나무 열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군자는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벗길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의 말주변을 잘 알 수 있는 고사네요. 그런데 기장 밥으로 복숭아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완탕과 교자의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교자피는 둥글고 완탕피는 사다리꼴입니다. 물교자는 삶아서 그대로 접시에 담아 먹지만, 완탕은 간을 한 국물에 넣어 먹고요. 완탕은 피에 간수를 넣지만 교자는 소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자는 소를 넣고 피를 붙이지만 완탕은 먼저 붙이고 비튼다는데, 이 마지막 차이점은 그림으로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완탕은 피에 소를 넣고 붙이는 방식은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의 만두 기원설은 속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교자는 당대 발굴된 것으로, 투루판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료들에 등장하는 '혼돈'은 완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대 문서에 나온 조리법을 보면 교자라고 하고요. 의외로 군교자(군만두)는 비교적 최근 음식입니다. 남송 중궤록에 언급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는 연골 부위로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급 요리가 된 건 질 좋은 육수로 걸쭉함을 더해 육수의 진한 맛이 연골에 스며들고 지느러미 사이에 배게하여 만들어낸 농후한 맛과 독특한 혀의 감촉 때문입니다. 젤라틴같은 매끄러움과 야들야들함에,삶아도 남아있는 연골 탄력을 통해 환상적 식감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의외로 역사는 4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전국에 퍼져 진미로 극찬받은건 청나라 중기로 겨우 3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요리법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는 요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건 북경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오리의 원형은 오래되어야 남송 시기이며, 재료인 진압이라는 품종 사육도 명대에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북경오리를 만든 원조집 편선방은 1869년 개점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경오리점 전취덕은 1901년 개업했고요. 흔하디 흔해서 오래되었을 것 같은 피단도 명 말기에나 등장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피단의 식용 역사는 고작 300여년 전에 그친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8/23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김지선 : 별점 1.5점

괴물이라 불린 남자 - 4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FBI 수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의 첫 사건은 데커가 주목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스타 출신 사형수 마스 사건이었다. 멜빈 마스는 20여년 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 당일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사형수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여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데커와 수사팀은 몽고메리가 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지만, 몽고메리는 사형 집행을 당했고 그의 아내도 폭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데커는 마스의 부모 사진이 없는 것, 마스가 전국구 스타가 된 뒤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마스의 부모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마스의 아버지 로이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건 배후에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챈다는 흔해빠진 스릴러.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이어지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 수사관으로 과잉 기억 증후군에 시달리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입니다.

멜빈 마스 시점에서의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 누군가 자기가 진범이라고 고백해서 살아났는데 그 누군가가 알고보니 진범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니 매 순간 순간이 긴장될 수 밖에 없지요. 20년이나 버려두었다가 사형 집행 당일이 되어서야 그를 구해준 '누군가'의 의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구해줄거면 더 빨리 구해주던가, 아니면 아예 죽게 내버려두는게 맞을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
마스의 어머니가 말기 뇌종양이어서, 남편이 그녀가 편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 뒤 살해당한 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괜찮습니다. 원래 아버지 로이는 소싯적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테러에 가담했다가, 보험삼아 테러 증거물을 훔치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스가 슈퍼스타가 되어 행적이 노출되자 다시 죽은척 몸을 숨기게 된 겁니다. 이는 마스의 부모님이 전국방송에 등장했던게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추리와도 연결되며,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아들의 출세가 발목을 잡고 만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 이야기 외 다른 모든 부분은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너무 엉망이라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사건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마스에게 누명을 씌운게 아버지 로이였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약 조직의 성노리개였던 여자를 사랑해서 탈출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조직 보스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그게 마스였다! 더러운 놈에게 복수를 직접 하지 못했으니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인데 황당하기가 그지 없어요. 이걸 추리해내는건 더더욱 말도 안되니, 추리물로 볼 여지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단서라고는 마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어를 잘했다던가, 집에 은제품이 있었다(조직의 물건을 훔쳐서 나온것)는 정도인데, 이걸로는 턱도 없지요.
마스에게 최면을 걸어 들은 '초차'라는 말을 근거로 로이가 죽은 척 몸을 숨겼다고 추리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초차'는 콜롬비아 칼리 지방의 방언으로는 '주머니쥐'이고 주머니쥐는 죽은척한다는 이유인데, 근거도 빈약하고 억지로 가져다붙인 느낌만 전해줍니다. '창녀'라는 명확한 일반 명사가 있는 단어에 전 세계에서 딱 한 지방에서만 쓰는 방언으로 해석한다는건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년만에 구해준 이유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아이는 구해달라'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지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과거 마스 사건에서 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사건 당일, 모텔 직원의 증언으로(나중에 위증일 수 있다는게 밝혀지지만) 마스가 집에 들러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는건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스가 사건을 저지를 동기는 제대로 증명되지 못합니다. 가정 불화가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는데,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의 계약금 일부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는게 그렇게 설득력있는 동기인가요? 누가 보아도 마스는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을 슈퍼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어머니 루신다의 혈흔이 마스의 차에 남아있다는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이전에 코피를 흘리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변호사만 잘 선임했어도 마스가 사형선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로이가 마스에게 누명을 씌우는게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야기도 치밀함,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데커가 NFL에서 뛰었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오래전 시합에서 마스와 겨루었다는 과거가 마스와 연결되어 사건이 시작되고, 결국 둘이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데커의 독특한 특기(?)인 과잉 기억 증후군이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립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만 팀원들이 하는 역할도 없어요. 심지어 동료 대븐포트는 비교적 초반에 납치되어 멤버에서 빠지는데,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에요. 다른 멤버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로 여겼던 마스의 변호사 올리버가 알고보니 과거 테러를 저질렀던 삼총사의 밀정이었다는 반전도 별로입니다. 올리버가 주장하던 마스를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삼총사 중 한 명인 매클렐런과 함께 찍은 사진같은 억지 증거는 불필요했습니다.
로이가 소싯적 손재주(?)가 좋아서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가담했지만, 70대가 된 현재에도 신출귀몰하며 FBI와 거물 킬러들을 엿먹이는 전문가가 된 경력도 불분명하고, 죽기 전 데커에게 지갑을 남겨 도서관증 --> 대출한 책 --> 금고 열쇠로 이끄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과거 삼총사가 저질렀던 테러 증거가 황당할 정도로 상세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뭐 하나 제대로 와 닿는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질낮은 흔해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마무리됩니다. 인기 요소는 잔뜩 집어 넣었지만 설득력도 낮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즈가 이 뒤로도 몇 편 더 이어지는 듯 한데, 더 읽을일은 없겠네요.

2024/08/21

자완: 확장판 (2023) - 애틀리 : 별점 2점


의적 비크람 라토레가 나타나 홀로 온갖 사회 병폐를 해결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 위기 의식을 느낀 사악한 무기상 칼리는 비크람 라토레의 정체가 여자교도소 소장 아자드라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진짜 비크람 라토레가 나타났다. 비크람 라토레는 과거 칼리와의 악연으로 죽다 살아난 인물로 아자드는 그의 아들이었다. 부자는 손을 잡고 칼리를 끝장내 버린다.

인도에서 대흥행했다는 액션 영화.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빈민을 위해 싸우는 의적 이야기는 흔한지만 몇가지 차별화되는 점이 있습니다. 의적이 정체가 여자 교도소장으로 수감자 중 에이스(?) 들을 뽑아서 함께 작전을 펼친다는 설정처럼요. 대단하지는 않지만 아자드의 범죄 계획이 나름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피카레스크물 느낌도 살짝 납니다. 의적이 자신을 쫓는 여수사관(나르마다)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는 설정도 재미나고요. 의외였던건 사회적인 요소가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아자드가 정체를 드러내며 '무지성적인 투표를 하지말고, 왜 이 사람에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범죄물이나 사회 고발물로 가치가 높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슈퍼스타 사룩 칸이 1인 2역을 맡은, 비크람 라토레와 아자드의 액션씬입니다. 격투씬의 합도 잘 맞아서 무척 찰지며, 무엇보다도 시가 연기를 내뿜는 비크람 라토레의 '후까시' 하나 만큼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건 상관없이, 슬로우 모션으로 점철되어 있고 장면장면이 화려해도 비상식적인게 많으나 이건 인도 영화의 특징이니 즐기면서 볼 만 합니다. 오히려 이런 비정상적인 화면들은 "죠죠" 시리즈를 인도에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그야말로 만화적이니까요.
아자드가 비크람 라토레를 자처하는 이유인 칼리에 대한 복수심도 설득력있게 그려졌고, 마지막 복수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제가도 흥겹고 신나고요.

중간중간 이야기가 엄청 건너뛴다던가, 누군가 죽는 심각한 상황에서 즐거운 대동단결 분위기로 급작스럽게 전환하는 등 연출과 전개가 다소 와 닿지 않는 부분은 있습니다. 방금 전에 의적단 멤버였던 락슈미가 죽어서 슬퍼하는데, 나르마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하니 다시 신나서 으쌰으쌰한다는건 정말 무슨 연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더운 여름,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내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으시는 분들은 액션씬만 골라서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4/08/19

08.12~08.18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롯데 - KT 홈 - 원정 6연전 (롯데전 1경기 우천취소)
성적 : 3승 2패

좋았던 점
  • 부활한 선발야구. (시-콱 둘이 합쳐 15와 2/3이닝 2실점!)
  • 환-환 중심타선 부활 시동 (둘이 합쳐 홈런 5개)

나빴던 점
  • 멀티 이닝에 무너진 김택연 선수
  • 발라조빅 선수 난조
  • 크적화 제러드 영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주에 발라조빅 선수 경기만 기대해 볼 만 하다고 썼었는데 왠걸? 발라조빅 선수는 초반에 무너졌지만 시-콱이 KT 두 경기를 잡아주는 호투를 선보이며 주간 위닝을 달성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선발진의 호투입니다. 목요일 최원준 선수도 4이닝 이상을 3실점하며 버텨주었고, 시라카와 선수의 8이닝 무실점, 곽빈 선수의 7과 2/3이닝 2실점 역투는 결정적이었습니다. 타선도 제러드 영 선수가 한 주 동안의 대폭발 이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허경민 선수의 부상 이탈과 양의지 선수 부상이라는 악재도 겹쳤지만, 양석환, 김재환 선수의 장타가 살아나면서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뽑아낼 수 있었네요.

하지만 김택연 선수에게 멀티 이닝을 맡기며 일요일 경기를 내주고 만 운영은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그날 경기에서 김택연 선수 역할은 8회말 1사 1, 3루 찬스를 막은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9회 초에 역전을 하지 못한 이상, 김택연 선수가 9회 말에도 등판할 이유는 없었어요. 9회말을 막아봤자 그 다음 이닝을 버텨줄 투수가 없으니까요. 이미 위닝을 달성한 상황이고, 세이브 상황도 아닌데 왜 무리수를 둔 걸까요? 전날에도 30개 가까운 공을 던졌는데요. 두산이 아니라 KBO의 보물인 김택연 선수는 제발 좀 아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삼성, 한화와의 원정, 홈 6연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위 자리를 굳히려는 삼성, 5강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한화 모두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날씨도 너무 덥고요. 폭염 취소나 우천 취소 1경기 정도를 기대해봅니다. 지는 경기에 무리하게 필승조를 갈아 넣지도 말고요. 홍건희, 이병현, 김택연 선수는 이기는 상황에만 투입하기를 바랍니다. 이 원칙을 지켜 2승 3패(1경기 취소)정도만 해서 4위 정도를 유지하기만 해 주어도 만족할 한 주가 될 겁니다.
부상만 없길 바라며, 이번 주에도 허슬~ 두!!

2024/08/18

던전밥 1~14 - 구이 료코 / 김완 : 별점 4.5점

[세트] 던전밥 1~14 세트 - 전14권 (완결) - 10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라이오스 파티는 "황금성" 던전을 탐험하다가 레드 드래곤을 만났다. 라이오스의 동생 파린의 마법으로 일행은 던전 탈출에 성공했지만, 파린은 드래곤에게 먹혀버렸다. 라이오스, 마르실, 칠책은 파린을 구하기 위해 곧바로 던전으로 다시 향했다. 던전은 죽더라도 영혼이 사체와 연결되어 소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일푼이라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물을 식량으로 삼기로 했다. 덕분에 10년 이상 던전에서 마물식을 연구한 드워프 센시가 일행으로 합류했고, 우여곡절 끝에 레드 드래곤을 해치우고 파린을 소생시켰다.
하지만 던전의 주인 '광란의 마법사'에 의해 파린은 마물이 되어버렸다. 소생시킬 때 마물 레드 드래곤의 사체를 쓴 탓이었다. 파린을 완전히 되찾으려면 '광란의 마법사'를 쓰러트리고 던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걸 깨달은 라이오스 일행은 목숨을 건 사투를 통해 '광란의 마법사'를 쓰러트렸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을 먹기 위해 이 모든걸 조종하는 악마 '날개달린 사자'가 남아있었고, 마르실이 새로운 던전의 주인이 되어버리고 마는데...


현대인이 이세계로 날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지식이나 신에게 받은 치트로 무쌍을 찍는다는 이세계물이 넘쳐나는 요즈음, 정말로 보기 드문 정통파(?) 본격 판타지 만화입니다. 1권을 읽고 리뷰를 올린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드디어 완결되었네요. 동생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명확한 목적도 있고, 단순히 등장하는 마물을 사냥해가며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익히는게 아니라 파티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과 머리를 써야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들이 이어지고, 퀘스트를 통해 동료와 능력을 얻어 결국 절대악을 쓰러트리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긴 호흡의 장대한 전개를 선보입니다. 결국 세상의 종말이 닥치지만, 라이오스와 날개달린 사자의 마지막 승부로 평화가 찾아오고 라이오스가 새로운 왕국의 왕이 된다는 결말도 나무랄데 없어요.

마물 요리라는 소재도 큰 재미 요소입니다. 현재의 식재료들과 거의 같거나 흡사한 마물 재료로 만드는 요리들이 잘 표현되어 있을 뿐더러, 맨드레이크를 캘 때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게 나쁜 독소(?)를 빼내어 맛이 더 좋아진다는 등의 세세한 설정도 볼거리입니다. 또 이 설정은 단순한 재미 요소로 끝나지 않습니다. 파티의 리더 라이오스가 그리 뛰어난 전사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건, 그가 마물 요리를 즐길만큼 마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냥 이세계에 현대 요리를 선보이는 정도에 그치는 다른 이세계 구루메 만화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개그 센스도 돋보입니다. 라이오스가 얼빠지거나 황당한 말을 하면 그걸 상식인(?) 마르실이나 칠첵이 받아치는 만담식 개그가 많은데,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게 그야말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이를 드러내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톨맨(인간)과 드워프 전사, 하프 엘프 마법사, 하프풋 열쇠공 (도둑?) 이라는 인종과 직업 설정은 정통 판타지그대로이지만, 성격과 개성이 확실해서 넘치는 생동감을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이를 잘 그려낸 섬세한 작화도 발군이고요.

물론 앞서 '광란의 마법사' 시슬을 날개달린 사자가 어쩌지 못하는 묘사는 뒤의 상황을 봤을 때 납득하기 어렵고(광란의 사자야 말로 진짜 악마였으니), 라이오스가 책에 서둘러 휘갈겨 쓴 문구로 날개달린 사자를 해치운다는 결말은 다소 뻔하고 작위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라이오스 파티 외 인물들 배분이 들쭉날쭉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엘프 부대 '카나리아'의 부대장과 함께 행동하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 카블루야 그렇다쳐도, 나마리는 오크족보다도 '광란의 마법사'나 '날개달린 사자'를 막기 위해 하는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거 및 현재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한게 좋은 예입니다. 반면 슈로는 부하들을 이끌고 파린과의 싸움에서 활약하지만, 동방에서의 그의 지위라던가 부하들의 정체 등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냥 '동방에서 왔다'로 퉁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어요. 물론 가이드북이나 후기 만화 등을 통해 약간의 정보를 더 얻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다 못해 없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4.5점! 이세계 전생물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판타지 장르계에 정통 RPG 판타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걸 보여준 걸작입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2024/08/17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4점
최희주 외 지음/나비클럽

구독 중인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기에 봄 호에 이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수록 단편들이 대체로 호러 성향을 띄는게 특징입니다. 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뻔한 설정과 전개를 답습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좀 더 신선한 발상과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딥페이크 업체 추적기
실제 있던 사건을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진, 동영상 딥페이크 제작을 요청하면 건당 돈을 받고 결과물을 보내주며, 심지어는 업체의 API를 연결하여 직접 생성할 수도 있는 현실을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취재를 통해 딥 페이크 범죄가 널리 확산 중인데도 불구하고, 법 규제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범죄는 여성들 피해가 많은데, 저도 딸 아이의 아빠로서 좀 더 강한 처벌이 시행되면 좋겠네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취재라는 점에 더해, 이전 호보다 더 논픽션에 가깝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탁묘
작가 효진은 고등학교 동창 애희와 동네에서 오랫만에 재회한 뒤, 가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날, 손을 다친 애희가 찾아와 자기와 남편 지욱에게 닥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번 호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작. 두 여자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공포물인데, 수상이 당연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빼어난 흡입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되살아난 지욱이 효진에 대한 집착만 남아 그녀를 덮치는 결말도 강렬했고요.
 
그러나 애희가 살해한 지욱을 윗층 할머니가 되살려냈다는건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고양이를 되살린 것, 고양이를 죽게 만든 택시 운전 기사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등의 다른 설정들도 마찬가지에요. 기묘한 집안 물건들 정도로 이런 능력이 가능하다고 하는건 무리입니다. 주술이건, 부적이건, 조금이라도 설명을 덧붙여 주는게 좋았을겁니다.
또 효진이 지욱과 불륜관계라는 뻔한 설정도 별로입니다. 게다가 효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건 반칙이에요. 특히 애희가 남편 불륜 상대와의 문자를 봤다고 했을 때, 놀라기는 커녕 제 3자처럼 "화양연화" 운운한건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수상자 인터뷰에서 밝혔던 창작 동기 - 층간소음 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복수심으로 윗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훔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를 잘 살린 것 같지는 않네요.

메리
의대 진학을 앞둔 '나'는 아르바이트로 삼촌의 스마트 축산 건축업을 돕기 위해 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가, 마을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인 정신지체자 '메리'의 아기가 죽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아기의 죽음을 알게 된 메리는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데...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의 결과로 빚어지는 복수극.
그러나 핵심인 '메리'의 복수심에 대한 빌드업보다는 '나'의 개인 심리 묘사에 치중한 탓에 복수극으로서의 맛은 다소 부족합니다. 도축 현장과 가축 축사 등이 어우러진 배경 묘사는 그럴듯하지만 지나치고요. 복수극이라면 그에 걸맞게 화끈하게 달려주는게 낫습니다. 괜한 문학적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어요.
메리의 복수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유사성이 짙다는 문제도 큽니다. 복수 장면도 독극물을 먹은 잔치 참석자들이 복통으로 몸부림치는걸 난도질로 끝장낸 상황인데, '나'가 창고에서 걸어나와 문을 나서는 중에 이 모든게 이루어진다는건 이상합니다. 최소한 사전에 독극물을 먹였다는 설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환상통
두 손이 잘려나간 환자가 자신의 손이 자기 목을 조르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 상황에서 20여년 전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딸아이 이름을 불렀다. 딸은 백화점 붕괴사고로 환자 눈 앞에서 죽고 말았었다. 

환상통과 거울 치료 등 의학적인 부분에서의 디테일은 볼만했던 작품.
하지만 죽어가는 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건 많이 뻔했고 이야기 전개에서 의외성도 별로 없습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이게 무슨 장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호러는 아닌데, 그렇다고 심리 스릴러도 아니고... 여튼 장르물로의 기대에는 전혀 값하지 못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수지
제주도의 물 빠진 저수지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한 구는 박서현의 남편 시신이었다. 남편은 같은 마을 동우 엄마와 불륜 관계였고, 박서현도 요가 수강생 은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 사건이 등장하고,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힘든게,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경찰 수사에 의해 모든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모든건 조현병 환자인 박서현의 망상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고, 박서현도 은우와 불륜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망상 때문에 은우와 남편을 살해했던 것이지요.
반전은 괜찮았지만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장화 홍련(영화)"와도 별로 다르지 않지요. 상황을 오해하고 있다가 블랙박스와 사진 등을 통해 현실이 드러나는건 영상물에 어울리지, 소설에는 잘 어울리는 작법이라 할 수도 없고요. 소설이라면 독자도 속일만한 디테일한 묘사가 많았어야 했습니다. 
또 이야기와는 별 관계없는 제주 무당(심방) 관련 설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본질만 흐립니다. 흥미롭기는 한데 작품에 잘 녹아들지는 못해요. 박서현이 귀신에 홀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제주 무당 관련하여 작가가 '내가 이렇게까지 자료조사를 했다!'는걸 과시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만 드는 탓에, 차라리 이 설정을 뺐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스트 하이커
휴직 중인 경찰 수연은 동료 태현을 쫓아 찾아온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길을 잃었다. 태현은 아내 살해 용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라진 상태였다.

수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영원히 떠도는 - 제목 그대로 '고스트 하이커'가 되어 '부랑'을 하는 - 내용의 작품. 
솔직히 장르가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진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수연이 결혼한 태현에게 집착한 나머지, 태현의 아내는 자살했고 태현은 부랑자가 되었다던가, 수연이 베로나 실종 사건에서 알랭이 수상하다는걸 리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던가 하는건 모두 수연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애매한 사건들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 보다는 중간에 수연이 죽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복선을 삽입한 뒤, 수연이 유령이라는걸 드러내는 전개가 더 좋았을거에요. 정교한 맛도 살리면서 말이지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애매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한국 미스터리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2 : 욕망과 갈등의 논리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에 대해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연재물. 이번에는 '사연'과 '한'이라는 한국 미스터리만의 특별한 주제에 대해 "아홉 꼬리의 전설"과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라는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저 두 작품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가까와서 별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저 두 작품이 한국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품도 아니니까요. 보다 보편 타당한 고전을 예로 들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이런 류의 비평과 해석이라면, 연대순으로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을 당시 주요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통사적으로 설명하는게 더 와 닿았을것 같네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외 비평, 인터뷰, 추리 퀴즈 등은 점수를 주기 애매해서 생략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내용들도 아닙니다.

2024/08/16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 김남주 : 별점 2점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 4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스팅스는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휴가를 얻은 뒤, 오랜 친구 존 캐번디시의 초대로 스타일스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가족의 돈주머니를 틀어쥐고 있는 존의 어머니는 젊은 앨프리드 잉글소프와 갓 재혼한 상태로, 앨프리드는 존과 로렌스 형제 및 다른 가족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존의 어머니 잉글소프 부인이 밀실에서 스트리크닌 중독으로 사망했다. 헤이스팅스는 마침 그곳에 머물던 옛 지인이자 뛰어난 탐정 푸아로에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은 요청했고, 평소 잉글소프 부인에게 도움을 받던 푸아로는 흔쾌히 승락하여 사건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앨프리드 잉글소프의 범행이 명백해 보였지만, 그는 알리바이를 증명하며 혐의를 벗었고 오히려 존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푸아로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어 진범을 밝히고 사건을 해결한다.

"가장 간단한 설명이 언제나 사실에 가장 가까운 법이지."
"모든 살인범은 누군가의 오랜 친구일세. 감정과 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네."

기념비적인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데뷰작. 놀랍게도 저는 이 작품을 처음 읽어봅니다. 대표작으로 꼽히지도 않고, 푸아로도 별로 좋아하는 탐정이 아닌 탓입니다.

데뷰작이지만 거장의 편린은 엿보입니다. 잉글소프 부인의 '급작스러운 유언장 변경'과 '말다툼과 고민'이라는 상황의 시간차를 통해, '더운 날씨에도 방 난로에 불을 피운 이유'는 '방금 만든 유언장을 태우기 위해서'였다는걸 밝혀내는 추리가 특히 백미입니다. 고작 30분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우표를 찾다가 남편의 비밀을 알아챘기 때문이며, 이 편지 때문에 메리 캐번디시 부인과 신시아의 수사한 행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설명도 합리적입니다. 추리를 위한 모든 보는 독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물론 독자들이 알아채기 어렵도록 잘 숨기는 솜씨, 그리고 이야기를 진해하며 다양한 인물들에게 수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끌고가는 솜씨도 탁월합니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앨프리드 잉글소프가 체포되기 직전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진상도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습니다. 푸아로는 앨프리드 잉글소프가 마을 약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서명을 하여 스트리크닌을 샀고, 아내와 격렬한 말다툼을 한 날 아내를 죽일 정도로 멍청한 바보가 아니라며 그의 체포를 막습니다. 하지만 앨프리드 잉글소프는 체포되어 기소되는걸 노리고 있었습니다. 기소되면 알리바이를 증명할 생각으로요. 왜냐하면 한 번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인물은 똑같은 범죄로 기소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이용하여 영원한 안전망을 구축할 생각이었거든요. 이야기 하나는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던 아이디어입니다.
잉글소프 부인을 극도로 걱정하는, 진짜 친구였던것 같은 하워드 부인과 잉글소프가 내연의 관계를 맺은 공범이었다는 진상도 놀라왔습니다. 특히 이 캐릭터 구성은 여사의 대표작이기도 한 "나일강의 죽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자기 애인을 빼앗아 결혼한 친구를 원망하는 듯 했지만, 알고보니 애인과 공범으로 친구를 죽이고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했다는게 똑같거든요. 다만 남들이 바라본 원망의 대상이 결혼한 친구이냐, 그 남편이냐의 차이일 뿐이죠.

그러나 데뷰작답게 부실한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잉글소프 부인이 치사량의 스트리크닌을 먹게 된 건, 스트리크닌이 들어있는 강장제를 먹던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던 범인들은 강장제에 브룸화물을 넣어 스트리크닌이 침전되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치사량 - 한 병 전체 분량- 을 한 번에 복용하게 된 겁니다. 이 트릭 자체는 기발한데 문제는 독자들이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면제를 복용할 경우, 스트리크닌의 효과가 지연된다는 것 역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합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다른 방법 - 캡슐을 썼다던가 - 을 고민할 수 밖에 없어요. 
결정적 증거인 잉글소프의 편지도 억지스럽습니다. 계획이 어긋나서 쓴 편지를 잉글소프 부인이 갑자기 보게 되었고, 그 편지를 잉글소프가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했던 과정도 억지지만, 기껏 찾은 편지를 바로 없애버리지 않고 점화용 심지로 만들어 숨겼다는건 설득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몸수색이 두려워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영장도 없이 아무나 몸수색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시대였던걸까요?

"완전공략"에서는 '본격 추리소설'의 원형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스토리인 소설'이라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가치일 뿐, 지금 시점에서는 빛나는 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사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무리에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15

익스트랙션 2 (2024) - 샘 하그레이브 : 별점 2.5점

넷플릭스로 감상한 영화. 너무 더워서 도무지 뭘 생각할 여지가 없네요.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를 고르던 차에 보게 되었습니다.

1편은 보다가 지루해져서 포기했었는데, 다행이 이번 2편은 재미있었습니다. 액션이 화끈한 덕분입니다. 특히 조지아 감옥에 잠입한 뒤 처제와 아이들을 구해 탈출하는 과정의 액션은 대단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시작되는 실내 잠입 액션, 탈출 후 자동차 추격, 그리고 기차를 타고 추격하는 헬기와 맞서는 대공중 액션, 마지막에는 오스트리아를 무대로 한 시가전에 빌딩 안에서의 건물을 할용한 액션까지 그야말로 모든 장르의 액션을 보여줍니다.
액션 장면에서의 합도 아주 괜찮았고, 다른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참신한 장면도 눈에 띄였습니다. 헬스 기구 활용이라던가, 빌딩 꼭대기에서 파트너 닉을 구하는 장면같은게 그러했어요.

그러나 단점도 눈에 뜨입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보스 결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특수부대 출신 인간 흉기와 단순한 조지아 범죄 조직 두목이 1:1로 맞상대가 될 리가 없잖아요? 총상이라는 핸디캡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스토리입니다. 특히 타일러의 조카 산드로의 딜레마는 아주 좋은 소재인데 잘 살리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웠어요. 산드로 입장에서 타일러는 어머니와 자기, 여동생을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구해주었지만, 아버지는 죽인 원수입니다. 산드로가 백부에게 연락해 복수를 하게 만드는건 충분히 있음직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그 뒤 전개는 맥이 많이 빠집니다.
보스 주라브가 산드로의 연락을 받고 타일러 일행이 오스트리아에 있는걸 알고난 뒤, 조직원들을 몽땅 투입하여 시가전을 벌이는 상황도 설명이 부족해요. 이럴거라면 건물에 폭탄을 설치해서 날려버리는게 낫지요. 부하들을 소모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에서 정교한 전개를 기대한건 아닙니다. 더위를 잊게 하는 킬링 타임용 영화로는 나쁘지 않았기에 만족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8/14

주식 투자는 어려워~

본인에게는 피눈물나겠지만,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가져와 봅니다.

주식 투자 멘탈, 마지막 퍼즐은 '상상력' [이환주의 개미지옥] 

저도 주식 투자를 소액이지만 하고 있는데, 그렇게 큰 이익을 보고 있지는 못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기도 힘든 탓에 이른바 '감' 투자를 많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업이 주식과 관련된 경제 전문 기자라면 당연히 괜찮은 수익을 거둘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특히 마지막 문장이 심금을 울립니다.

"하지만 이미 내 계좌는 다른 종목에 처물려서 파란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옥시덴탈페트롤리움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다."

언젠가는 오르겠지요. 모두들 성투하시기 바랍니다.

2024/08/12

08.06~08.11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LG - SSG 홈 - 원정 6연전
성적 : 5승 2패

좋았던 점
  • KBO 투수들에게 해로운 캐나다인 제러드 영! 놀라운 타격 퍼포먼스
  • 김태연 선수의 멀티 이닝 완벽 마무리

나빴던 점
  • 발라조빅 선수를 제외하고 모두 무너진 선발진
  • 급격한 양의지 선수의 타격 난조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콱-시-발이 나서는 LG전을 잡아야 한다는게 저의 지난주 주장이었는데, 다행히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를 거두었습니다. 곽빈 선수는 좋지 못했지만 발라조빅 선수는 KBO 적응한 듯한 쾌투를 선보였고, 타격도 모처럼 활발했습니다. 시라카와 선수 경기는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불펜진 소모도 덜었으니 만족하고요.
놀라왔던건 땜빵 선발이 끼어 있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SSG전도 2승 1패의 위닝 시리즈를 거둔 겁니다. 특히 4선발 최원준 선수, 땜방 최승용 선수 모두 3이닝도 버티지 못했는데 강력한 타선의 힘으로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반대로 유일하게 기대했던 곽빈 선수 경기는 곽빈 선수가 2이닝만에 6실점하며 무너지는 바람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는데 확실히 야구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4승 2패라는, 주간 위닝을 거둔건 좋네요. 2위권과도 아직 해볼만한 승차이고요. 지난 몇 주간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힘빠진 타선이 제러드 영 선수의 영입과 함께 살아난 덕분이 가장 큽니다. 11경기만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타율 0.467(45타수 21안타) 6홈런 19타점 13득점, 출루율 0.545 장타율 0.978 OPS(출루율+장타율) 1.523의 가공할 활약을 보여주는데, 타선에서 뭔가 기대가 되는 타자를 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수빈 선수의 가을 수빈 모드(입추가 지났으니)와 돌아온 안경민 선수도 좋았고 하위 타선의 김기연, 이유찬, 전민재 선수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해 주었습니다. 확실히 투수전보다는 타격전이 재미가 있어요. 게다가 우리 팀이 5점 이상 점수차를 뒤집고 역전해서 이기면 재미가 없을리가 없지요! 
계투진도 몇몇 선수가 심하게 무너진걸 빼면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권휘 선수가 보여준 쾌투, 홈런은 맞았지만 긴 이닝을 버텨준 박치국 선수 등이 좋았습니다. 일요일 경기에서 이교훈 선수가 홈런만 맞지 않았다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뭐 그런 날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양의지 선수가 더위를 먹었는지 주말 경기 9타수 무안타라는 충격적 부진으로 패배에 일조했고, 곽빈 선수도 두 경기 연속으로 조기 강판당했습니다. 곽빈 선수는 한 경기 정도 휴식을 주면 좋겠는데 팀에 여유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번 주는 롯데, KT와의 홈, 원정 6연전이 펼쳐집니다. 크게 이동하지 않으므로 체력 비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선발진이 관건이네요. 롯데전 발라조빅 선수 정도만 기대해 봄직 하며, KT전은 의문 투성이입니다. 계투진도 지난 주 많은 등판으로 여유가 없고요. 타선도 쉬어갈 때가 되었기에 성적은 기대가 되지 않네요. 예상 성적은 2승 4패입니다. 사실상 상위권 도약의 호흡기를 떼는 한 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5위는 사수할 수 있을테니 무리하지말고 리빌딩 기조로 팀을 운영하였으면 합니다. 계투진부터 새로운 투수들을 투입해보고, 홍성호 선수 등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식으로요. 젊은 필승조와 야수 선수 한, 두 명만 더 발견한다면, 그리고 외국인 선수들만 잘 계약한다면 내년에는 승부를 걸 수 있을 겁니다.

부상만 없길 바라며, 이번 주에도 허슬~ 두!!

2024/08/11

Q.E.D iff 증명종료 25

Q.E.D Iff 증명종료 25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은 지난 권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수준 이하였습니다. 두 편 평균 별점은 겨우 2점이나 될까.... 퐁당퐁당도 이제는 힘에 부치나봅니다. 다음 권에서는 과연 만회가 가능할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전 참고하세요.

"제 4의 게이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려는 미국 스타트업 10S의 CEO 리오는 회사에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여러가지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는 도난당했고, 그녀마저 습격당해 입원하고 말았다.

리오가 카메라를 조작해 진짜 스파이에게 다른 스파이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범인을 밝혀나가는 추리 과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단순히 10명 임직원의 투표 결과를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이 투표는 '스파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했을거다!'라는걸 전제로 하고 있는데, 증거로 삼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합니다. 애초에 리오의 안경에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었기에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고요. 양자 컴퓨터에 대한 설명도 재미는 있지만 이를 양자 게이트 운운하며 본편 사건과 엮는건 무리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간단한 답"
205X년, 부유층 대상 양로원 세컨드 파라다이스에서 입주자가 사망했다. 변호사 미즈하라 가나는 양로원으로부터 보험 회사와의 교섭을 요청받았다. 지인 토마와 현장 조사에 나선 가나는 입주자가 살해당했을거라는 증거를 잡았다.
결국 밝혀진 범인은 '세계 균형 협회' 엔지니어 토도 아키라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26년 전 과격한 노인 배척 사상을 TV에서 떠들던 인물들이었고, 토도는 이들의 영향으로 할머니를 잃었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차별과 박해를 행한 자들이 본인들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시스템을 활용하여 복수에 나섰다...

이전에도 등장했었던 평행 우주, 요새 말로는 멀티버스 세계관 작품. 
이 세계관에서는 여러가지 첨단 기술이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회제도 재구축'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대단한 기술로 보이지는 않아요. 단지 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사람들을 모두 기록한 데이터 베이스에 불과하거든요. 
그래도 이 데이터 베이스에 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들을 모두 기록한 뒤, 그들이 그 차별 대상자가 되는 상황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노인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을 정도에요. 추리적으로도 범행 현장이 이상하다는걸 알아채고,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수상한 장소를 알아내는 등의 과정은 볼만했고요.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사회제도 재구축 시스템은 '노인 혐오'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남성이나 여성 혐오 발언을 한 사람이 그 반대 성별이 된다던가, 인종 차별을 한 사람이 해당 인종이 되는건 불가능하니까요. 추리적으로도 범인은 사진을 통해 손쉽게 드러나고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10

열린 어둠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5점

열린 어둠 - 6점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모모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원제는 "夜よ鼠たちのために (밤이여, 쥐들을 위해)".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 출간된 나름 고전(?)으로 일본에서도 꽤 오래 절판 상태였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14년 판에서 '복각(재출간) 희망! 환상의 명작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2014년에 복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래와 같이 극찬하는 인터뷰와 글을 남겼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스터리의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하면, 역시 마지막의 반전,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편에서 그걸 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놀라운 반전 구조를 그립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전개를 실현한 작품들입니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이 포지티브로 바뀌는 것처럼, 결말에서 흑백이 뒤바뀝니다. 모든 작품에서 완전히 속아버릴 수 밖에 없어요. 전후 미스터리 단편집 중에서, 저는 이 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표제작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성격상,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단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an・an」 1990년 11월 23일호, 아야츠지 유키토 「나의, 한 권. 멋진 반전의 구조. 전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 아야츠지: 렌조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연애소설 『연문』이 유명합니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시 먼저, 『회귀천 정사』, 『은밀한 상복』 등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고분사 문고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이여, 쥐들을 위해』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실업지일본사에서 신서판으로 나왔고, 신초문고와 하루키 문고로 차례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절판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서술 트릭 계열 단편집의 최고봉인데......아깝네요. (「작가의 독서도 제150회: 아야츠지 유키토」에서)

읽어보니 이 정도 극찬을 받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호평은 이해가 됩니다. 서정성과 트릭이 잘 결합되어 있던 작가 최전성기 시절("회귀천 정사" 시절)답게,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사용된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유괴극, 복수극, 서술 트릭 반전극, 느와르 등 수록작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과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묘사도 다른 후기작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요.
모든 수록작이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더운 여름, 한 번 읽어볼만하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얼굴"
화가 마사키 유스케는 아내 게이코가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택 침실에서 유스케가 살해해 뒷마당에 파묻었다. 호텔 사건의 여자가 게이코라면, 유스케가 집에서 죽인 여자는 누구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유스케는 죽인 여자의 얼굴을 그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스케는 호텔 사건에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발견된 여자를 게이코로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진상은 유스케의 범행을 목격한 동생 신지가 자신을 협박하던 꽃뱀 여자를 함께 처치해 버렸던 겁니다. 마침 몸매가 비슷해서 속일 수 있었지요. 이 때 집 안에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을 이용해서 '순간 이동' 트릭을 선보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안부를 물으면 당연히 외부에서 전화를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유스케가 살해한 아내의 사체가 이동한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사건에 대한 유스케의 심리묘사도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서스펜스가 제법이었어요.
하지만 단편이라서 설명이 부족하며, 작위적으로 전개한 부분은 눈에 거슬립니다. 우선 신지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건 너무 뻔했습니다. 신지를 협박하던 꽃뱀 여자가 유스케 집까지 찾아와 지문을 남긴건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 신지의 장난도 이유를 알기 어럽습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7인 1역"과 유사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나'는 금수저 출신으로 형사일을 견디다 못해 2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강 선배에게 편지를 썼다.
1년 전, 전일항공 부사장 야마후지 다케히코의 외아들 가즈히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전화기에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담을 뛰어넘어 아이를 유괴했다. 경찰은 몸값을 확보하고 도주하던 범인을 미행하다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값을 받은 범인은 아이를 무사히 풀어주었고, 이후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난 범인 오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괴범에게 동정심을 느낀 '나'는 당시 일부러 범인이 도주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강 선배라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범인이 '내일'이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정하지 못했던 상황을 통해, 범인이 두 명이며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다는걸 추리해 내는건 아주 좋았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이를 유괴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아들을 유괴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는 발상도 재미있었어요. 실행범은 자기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요구사항을 자기가 유괴한 사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인데,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강 선배가 오카다를 살해했을거라는 결말도 합리적입니다. 오카다가 체포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 경찰이 체포하기 전 정보를 흘려 유인한 뒤 살해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유괴가 이렇게 겹쳐서 강 선배가 피해자이자 범인이 된다는건 다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나'가 강 선배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범인 눈빛을 떠올린 덕에 진상을 깨달았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가 집 안에 있는 신이치가 사실은 유괴당한 가즈히코라는걸 눈치챈건 앞선 복선으로 설명되지만, 독자는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괴 피해자가 몸값 마련을 위해 유괴범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던만큼, 이를 확장한 장편으로 묵직하게 썼다면 "킹의 몸값"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다주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만으로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화석의 열쇠"
하반신 마비 소녀 지즈가 목이 졸려 죽을 뻔 했다. 피해자 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출입구는 현관문밖에 없는데 열쇠는 관리인 사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지즈가 엄마를 집에 들이기 위해 자물쇠 바꾸는 청년을 속여 헌 자물쇠를 달게 했고, 엄마와 아빠 모두 지즈가 부담되어 살해하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정보 제공은 공정합니다. 지즈가 자물쇠 바꾸는 청년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초콜릿 부탁을 한 것, 관리인 사와가 엄청나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등 상황에 대한 공유는 확실하니까요. '열쇠 화석'이라는 말도 단서로서는 좋았습니다. 사와가 이 모든걸 깨닫는 전개는 일상계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 둘이 동시에 딸을 살해할 생각을 한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빠져나갈 생각을 할까요? 신파적인 결말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의뢰"
신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쓰치야 마사하루라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아내 동향 조사 의뢰를 위해서였다. 아내 사야코는 하릴없이 이곳 저곳에서 시간만 보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미행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나에게 오히려 남편 쓰치야의 행적 조사를 부탁했다. 알고보니 나를 이용해서 몰래 불륜 행각을 저지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쓰치야에게 들켜버렸고, 쓰치야는 자기 행적 조사를 거짓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하기 위한 쓰치야의 행적은 애인 유리의 맨션 주소와 연락처로 받으려 했는데, 그 뒤 유리가 살해되었다...

쓰치야는 유리의 다른 애인으로, '나'와 유리의 관계를 알고 유리를 살해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조사를 맡긴건 유리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

나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냉소적인 심리묘사가 대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딱히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묘사로 '나'의 별로인 모습만 드러나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다는게 문제입니다. 쓰치야 부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무능력했고, 유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쓰치야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다는걸 알아 버렸지만,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불우했던 나는 교정을 받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수를 결심했다. 
병원 원장 요코즈미 다다오는 '나'의 협박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선 뒤 살해당했다. 경찰은 백만엔이라는 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나'의 원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원장 사위이자 내과 부장 이시즈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나'인 쓰무라의 아내는 불치병 뇌종양이었고, 병원의 과실로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백만엔이라는 돈을 건네려고 했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알고보니 이하라의 아내 후미요에 대한 오진을 숨기려고 원장과 내과 부장이 그녀가 백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쓰무라와 이하라의 정체가 독자가 알고 있던 것과 정 반대라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잘 짜여진 서술 트릭물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단 둘의 흉터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이겠다!는 의도가 보여 좀 별로였고, 어린 시절 쥐를 죽였던 원한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라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억지스럽더라도 죽일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는 억지에요. 그래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잘 설명되는 편이라 다행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중생활"
마키코는 열 여섯살 많은 슈헤이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자신을 버리려하는 슈헤이에게 증오를 느꼈다.

정부인줄 알았던 마키코가 진짜 아내이고, 반대로 나이많은 시즈코가 정부이자 불륜녀라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 반전을 결말 부분까지 잘 숨기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서술 트릭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키코가 남편 슈헤이와 불륜녀 시즈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처럼 자살한다는 반전, 그리고 이를 위해 데쓰오와 시즈코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방법도 잘 짜여져 있어서 범죄물로도 우수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마키코가 정부 데쓰오를 범행에 끌어들인건 억지스럽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살해당한 모양새이니, 마지막 순간치고는 영 폼이 나지 않으니까요. 데쓰오 없이도 현장 상황 - 슈헤이가 받아온 수면제가 들어있는, 슈헤이가 즐겨 마시던 와인 - 과 스토브 지문으로 슈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는건 가능했을것 같거든요. 시즈코마저 옭아매기 위해 데쓰오를 이용했다고보면 말은 돼지만, 이 역시 나이든 시즈코와 데쓰오가 불륜 관계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실행 가능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인간 관계를 쌓아올리는게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역"
인기 배우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와의 이혼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남자 다카쓰 신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료코가 슌의 불륜을 알고 있었으며,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걸 알게된 뒤 료코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카쓰 신야를 이용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서였다. 오사카에서 다카쓰를 자신인 척 연기시킨 뒤, 자신은 변장하고 도쿄로 가서 살해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료코는 없었고, 오사카로 돌아간 뒤 자신의 방에 죽어있는 기누에를 발견했다. 이 모든건 료코와 다카쓰의 음모였었다.


하세쿠라 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완전 범죄물로는 볼만합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세큐라 슌의 대타가 다카쓰 신야가 아니라, 료코와 기누에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주위에 같은 여자들이 엮이게 된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베이 시티에서 죽다"
동거녀와 믿었던 아우에게 배신당한 조직원이 출소 후, 둘이 함께 도망친 항구 도시로 찾아가 모두 죽여버린다는 느와르.. 묘사도 멋있고 배신의 진상 - 없던 죄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 원래 내가 지은 죄였다는 - 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맛은 거의 없고, 내용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냥 서정적인 '사나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어 쓴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열린 어둠"
불량 학생들만 다니는 사립 세이에이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미즈키 마사는 '마더'라는 별명으로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날 퇴학당한 폭주족 블랙호크스 멤버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긴급한 도움 요청을 해 왔다. 리더 다카기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노리코와 함께 현장에 온 마사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노리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고 한 시간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카기의 죽음이 학교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카자와는 동성애자였다.

불량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학생과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열혈 신입 교사가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청춘 미스터리'의 영향이 가득 느껴집니다.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가 원인이라는 점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편이고요. 요새 이런 설정이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듯한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카기가 폐소 공포증이라는게 핵심 단서인데 - 아카자와 선생의 차는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있었다 -, 이는 여러가지 단서로 독자에게도 공유됩니다. 노리코가 아침에 다카기의 방에서 쫓겨난 건 창문을 닫으려고 해서, 다카기가 초고층 맨션에서 뛰쳐나온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다카기가 폭주족이 된 건 차를 타기 싫어서였다는 식으로요. 
미즈키 마사가 학생들 앞에서 추리쇼를 펼쳐 진상을 밝히는 전개도 정통 본격 추리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다카기가 스즈타에게 아카자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현장을 조작했기에, 스즈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려고 다카기를 살해하고 노리코에게 혐의를 씌웠다는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후더닛 물로는 괜찮았지만,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좋다고 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09

폭포의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폭포의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청미래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연작 단편집. "절벽의 밤"에 이은, '안 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수록작들은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제 1장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에서 벌어진 여고생 히리카 실종 사건은 마지막 제 4장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4장에서 히리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3장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3장에서 지기는 자신을 학대하던 아들 다카시를 살해한 뒤,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것처럼 경찰을 속인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집 바닥에 사체를 숨겼지만요. 하지만 집 바닥에 사체를 묻으려다가 오히려 히리카의 사체를 발견했던겁니다. 다카시가 히리카를 살해하고 은닉했던 것이지요. 지기는 히리카의 사체를 요메가 숲에 암매장하였습니다. 다카시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척 했던 건 경찰을 속이려는게 아니라, 히리카의 사체를 찾게 만들어서 히리카 부모에게 진상을 알려주려던 마음이었고요. 

다만 2장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독립적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1장에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모모카가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 목적보다는 2장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신을 4장에서 활약시켜 경찰에게 히리카 사건 진상을 알게 하도록 만든 목적이 더 큽니다. 전개에 필수적인 징검다리 역할인 셈이지요.
 
이렇게 사건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고오리 시와 묘진 폭포, 가쿠레이 산과 등산로, 무쿠로 다리, 고코 강, 요메가 숲 등 시의 주요 장소들을 무대로 사건이 일어나고, 묘진 폭포에 소원을 비는 행위가 진상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사건들이지만 수사를 맡은건 모두 구마지마 형사라는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벽의 밤"과 같은 시리즈답게 '사진'을 이용하여 진상을 드러내는 장치도 삽입되어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1장에서는 시점과 상황을 속이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3장은 일부러 시간 제한이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를 남기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4장은 다카시의 폭주와 히리카 실종 시점의 일치, 히리카 핸드폰이 잠깐 켜졌던 이유 등에 대한 진상이 설득력있게 밝혀지고요.

각 단편별로 조금 더 내용과 의견을 덧붙이자면,
1장은 제일 처집니다. 모모카가 언니 히리카의 행방을 우연히 발견한 부계정 SNS를 통해 추리해내는건 볼만 합니다만 그 외 전개는 다소 식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장 관리인 오쓰키가 냉동고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오쓰키 어머니는 실종된게 아니라 아버지가 살해했다는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흥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렇다면 이를 눈치챈 모모카에게 위험이 닥치는 서스펜스라도 잘 표현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좋지 못합니다. 오쓰키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아버지가 죽여 은닉한 모친의 사체를 모모카가 발견했다고 그녀를 바로 살해할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외 단서들 - 오쓰키가 만든 눈인형, 모모카가 입고있던 옷 사진 - 도 평면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없으면 진상을 완전히 알아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큽니다. "절벽의 밤"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장난같이 여겨지는 장치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오쓰키를 뻔하더라도 전형적인 단순한 '산장 살인마'로 그리고, 사진의 역할은 배제하는게 서스펜스 스릴러로는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장은 신의 삼촌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게 어린 시절 물놀이 사고에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트라우마라는게 드러나는 일상계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다소 무서운 진상 - 삼촌이 자살하고 말았다는 - 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주요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더라면 더 완성도 높은 단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은 지기 씨가 아들을 살해했다며 자수했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나고, 이는 지기 씨 부부가 의도했던(?) 완전 범죄였다는 범죄물입니다. 경찰과 범죄자의 두뇌 배틀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기 씨가 '딱 한 가지 했다는 거짓말'을 형사 구마지마가 알아채고, 이를 통해 다카시의 사체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도 지기 씨의 계획이었다는 전개이니까요. 이야기는 흥미롭고 결말도 깔끔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결없이 단독으로 읽어도 기승전결이 완벽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딱 한 가지, 정황 증거와 자백까지 있는데 시체가 없다고 용의자를 풀어주는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4장은 1장의 히리카 사건, 3장의 다카시 사건이 한데 이어져 대단원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앞에서 설명드린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추리없이 지기 씨의 아내 지에코의 회상으로만 진상이 밝혀져서, 흥미롭지만 추리적인 맛과 정교함이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신이 지에코를 구한 뒤, 히리카 사건의 핵심 열쇠가 되는 핸드폰을 가져다 주는 결말은 앞서의 복선 - 빌린 물건은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줘야 한다 - 로 설명되는 등 정교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건 좋아요. 하지만 신과 지에코가 엮이는 과정은 작위적이고, 목소리를 잃은 신이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문이 트였다는건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별로 고민한 느낌을 주지 못해요.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 보다는 구마지마 형사의 추리와 활약으로 해결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이 폭포에 빈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그 대신 모모카, 히리카 자매가 모두 죽었다는 결말도 안타까왔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적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평이하지만 "절벽의 밤"보다는 좋았어요. "절벽의 밤"은 '사진'을 사용한 실험이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이야기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덕분입니다. 시리즈 1작은 평균 이하, 2작은 평균 수준은 돼니 3작은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4/08/07

키스 더 걸 (1997) - 게리 플레더 : 별점 1.5점

알렉스 크로스의 조카 나오미가 납치되었다. 범인은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있는 여성들을 연달아 납치하는 '카사노바'였다. 알렉스 크로스는 '카사노바'를 잡기 위해 관할이 아닌 노스캐롤라나 더램으로 향해 수사팀에 합류했다. '카사노바'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한 여의사 케이트의 도움이 수사에 큰 힘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1997년도 영화.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한 편을 영화하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군요. 리뷰도 올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처음 보는 작품처럼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의 제임스 패터슨 작품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입니다. "양들의 침묵" 이후 대 유행했던 천재 연쇄 살인마와 수사관의 대결이 뻔하게 펼쳐집니다.
그래도 몇 가지 차이점을 두어 변주를 꽤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 '카사노바'가 연쇄 '살인마'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여 여성을 납치하는 연쇄 '납치마'라는 점입니다. 이게 꽤 중요합니다. 납치한 여성들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경찰이 알아내지 못해서, 알렉스 크로스를 비롯한 경찰이 용의자를 추격할 때 쉽게 총격을 가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혹여 죽기라도 하면, 납치된 여성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서부(LA)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쇄 살인마 '젠틀맨'과 '카사노바'는 동일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명이라는 진상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헐겁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FBI에게 알리지 않고 케이트와 루돌프 검거에 나서 그를 놓친다던가, '카사노바'의 은신처에 대한 단서를 얻은 뒤 둘이서만 찾아나서는 것처럼 알렉스 크로스와 케이트 컴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비합리적인 전개도 많습니다. 루돌프가 범인이라는걸 케이트가 확신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루돌프는 범인의 지인이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카사노바가 은신처를 손에 넣은 방법도 모르겠고요.
'카사노바'가 생각보다 별로 뛰어난 범죄자가 아니며(증거를 계속 남김), 하는 짓도 뻔하기 그지없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덕분에 대결 구도는 초반부를 지나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합니다. 액션이 별볼일없는데 두뇌 싸움도 없으니, 영화가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요.
경찰이 '카사노바'였다는 반전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범죄도시 3"에서도 써먹을 정도로 널리 퍼진 설정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앞서 별다른 비중도 없던 인물이 갑자기 범인이라고 등장하는건 뜬금없었습니다.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성을 결여한 결과랄까요.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모건 프리먼은 알렉스 크로스와 별로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포르쉐를 타고다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사이자 형사인 인물에는 좀 더 섹시(?)한 배우가 나았을 겁니다. 애슐리 쥬드가 연기한 케이트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요. 영화에서는 거의 부녀 관계처럼 보이더라고요.

건질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케이트에게 투여된 약물의 출처를 조사하여 LA의 의사 루돌프가 수상하다는걸 알아내는 장면, 마지막에 경찰 서명과 카사노바 서명을 비교하여 정체를 알아채는 장면은 추리적으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역시 저는 제임스 패터슨과는 안 맞는 듯 합니다.

2024/08/05

07.30~08.04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기아 - 키움 원정 - 홈 5연전 (1게임 폭취)
성적 : 3승 2패

좋았던 점
  • 드디어 정상 가동한 콱-시-발 (17과 2/3이닝 5실점, 3선발승)
  • 대폭발 타선,KBO 신기록 수립 (1게임 최다 득점 30점, 최다 점수차 24점)
  • 새 얼굴 제러드 영(두제영)의 성공적 데뷰

나빴던 점
  • 부상 많은 투수진, 그리고 무너진 중간 계투진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주에 1위팀 기아를 만나 폭망하며 호흡기를 뗄 것으로 예상했는데 야구 모르네요. 기아 상대로 3연승하여 스윕승을 거두었습니다.
1,2,3선발인 콱-시-발의 호투가 있었던 덕이 가장 큽니다. 첫 두 경기는 타선도 도합 40점 이상!을 내며 화답해 주었고요. 갑작스럽게 타선이 터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새 외국인 타자 제러드 영과 선발 포수로 투입되었던 김기연 선수가 각각 상, 하위 타순에서 제 몫을 해 주었던게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러드 영 선수는 선구안도 좋고, 장타도 곧잘 뽑아내는게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네요.
세 번째 경기는 1득점밖에 하지 못했지만, 발라조빅 선수의 6과 2/3이닝 무실점이라는 놀라운 호투와 김택연 선수의 1과 2/3이닝 마무리로 경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부터 도입된 ABS존은 확실히 하이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는 투수들에게 유리한 듯 합니다. 하이 패스트볼과 커브와 같은 낙차 큰 변화구가 조합된 투수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키움전은 아쉬웠습니다. 상대 선발이 후라도 - 헤이수스라는 리그 탑을 다투는 외국인 투수 두 명이었기에 열세는 각오했지만, 금요일 최원준 선수는 후반기 호투를 이어가며 후라도 선수와 대등하게 맞서주었는데 9회말 1사 1, 3루에 3루 주자가 조수행 선수였던 최고의 찬스에서 제러드 영 선수가 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이 찬스를 놓친 후에는 필승조가 부상으로 빠져있는 두산이 연장 승부를 이겨내기는 어렵지요. 이기고 싶었다면, 한 점을 짜내는  스퀴즈 같은 작전을 써 보는게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이건 결과론일 뿐이니 감독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토요일 경기는 워낙에 박살이 나서 뭐 할 말이 없고요.

차주는 라이벌 LG, 그리고 SSG와 홈, 원정 6연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LG전은 콱-시-발로 이어지는 1,2,3 선발진이 투입되는 만큼 기대를 걸 만 합니다. 전대미문의 폭취(폭염취소) 덕분에 선발 투수들은 모두 6일씩 푹 쉰 상태이기도 하고요. 이동 거리도 길지 않았던만큼,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해 오래 던져줄거라 믿습니다. 선발진이 버텨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중간 계투진에 구멍이 난 상황이라 이겨내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SSG 원정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직전에 스윕패를 당했을 정도로 상성도 좋지 않은데다가, 최준호 선수의 부상으로 대체 선발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상 성적은 3승 3패입니다. 이전 주에도 이야기했었지만, 올 시즌은 최대 기대치가 4위인 듯 하니 무리하지말고 리빌딩 기조로 팀을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제러드 영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며 젊은 타자들 한, 두 명만 더 성장시키고, 투수진도 재정비하여 내년 시즌 우승을 목표로 길게 보고 달렸으면 합니다. 트레이드 시한이 지났지만, 우완 강속구 투수들 쇼케이스를 통해 스토브리그에 팀 재편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요. 저는 올 시즌은 30점 낸 경기를 직접 본 걸로 만족합니다.

부상만 없길 바라며, 이번 주에도 허슬~ 두!!

2024/08/04

저지먼트 - 고바야시 유카 / 이영미 : 별점 1.5점

저지먼트 - 4점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예문아카이브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XX년, 급증해가던 범죄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이나 가학 행위를 똑같이 형벌로 집행할 권리를 피해자 측에 주는 '복수법'이 제정되었다. 단, 복수법을 선택한 경우 피해자 측이 직접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도리타니 아야노는 복수법 집행자를 보호하고, 집행 현장을 감찰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복수 감찰관'으로, 복수 현장을 지켜보면서 복수법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되는데...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으로 일본 신인 작가 고바야시 유카의 데뷔작입니다.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 별로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법률, 그리고 화자가 이 법률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만화 '이키가미'와 비슷한데,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키가미'에서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데 반해,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탓입니다. 과연 이런 복수가 정당한지, 그리고 복수 때문에 선량한 집행자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묻는데, 등장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라서 별로 고민할 게 없거든요.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조선, 평택 아동 암매장 사건의 원영이 부모같은 인간 말종들을 단죄하는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이렌'에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장면도 같은 이유로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를 아끼는 어머니가 있어서 자식의 복수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워낙에 지은 죄가 커서 적반하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 가족이 판사에게 복수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서 불합리하기도 하고요.

억지 설정도 많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저지먼트'에서 복수자 하야토가 죽는 게 대표적입니다. 여동생을 아사시킨 부모에게 복수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여동생을 학대의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자신에게 벌을 가해 굶어 죽는다는 건데, 공공기관에서 소년이 죽어가는 걸 방치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소년의 죽음이 복수법 반대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수법 반대에 활용하려면, 집행 대상인 범죄자가 사실은 무고한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건 좋습니다. '사이렌'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도 피해자에 대해 잘 몰랐었다라든가, '앵커'에서 엔도는 피해자 리오와 결혼할 생각을 접었던 상태였다든가, '페이크'에서 피해자의 엄마가 피해자를 학대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런 반전이 일종의 조사와 추리로 밝혀진다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특히 어머니를 살해한 딸 엘레나를 어머니가 복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딸 엘레나는 가스라이팅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어머니가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켰다는 '보더'는 추리적으로, 그리고 결말의 의외성 측면에서 제일 괜찮았습니다. 물론 엘레나의 행동이 친구 나쓰키의 편지 하나로 밝혀진다는 점에서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으며, 할머니의 가스라이팅도 복선은 잘 짜여져 있지만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과대평가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화자 아야노를 내세워 어설픈 휴머니즘 드라마로 만들기보다는, 복수의 쾌감이 느껴지는 하드고어 복수 포르노로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야노 대신 처절한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인물을 등장시켜서요.

2024/08/03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 조동섭 : 별점 2점

빅 픽처 - 4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밝은세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사진가를 꿈꿨지만, 월가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변호사로 살아가는 벤은 아내 베스가 이웃집 사진가 게리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베스와의 결혼 생활이 끝장날 위기에 처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게리를 살해하고 말았다. 벤은 범죄를 숨기기 위해 자기는 요트 사고로 죽은척 꾸몄다. 그리고 게리가 되어 머나먼 몬태나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몇 년 전 크게 성공했던 베스트셀러 범죄 스릴러 드라마. 벤이 요트 사고로 죽은척 위장한 뒤,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 게리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중간 부분은 범죄물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설명하고 안배함으로써 설득력도 높은 덕분입니다. 핵심인 요트에 설치한 수제 폭탄에 대한 설명은 대충이지만, 그 외 과정은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분 위장물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 장르를 대표할만하다 싶을 정도에요.

그러나 그 외 내용은 허술합니다. 특히 게리가 된 벤이 몬태나로 이주한 뒤 부터는 최악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사진가로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는 과정은 모두 운과 우연이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전국구적 명성을 얻는것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얼마전 트럼프 암살 시도 당시 사진으로 유명해진 미국 사진가도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정도이지, 무슨 대단한 스타가 된건 아닙니다. 성공과 실패는 단지 운에 의해 좌우되며, 행복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걸 알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유명해진 벤 앞에 전처 베스가 나타나고, 루디 워렌이 벤의 정체를 알아내서 협박을 하는 등의 후반부는 급하게 마무리지은 티가 물씬 납니다. 자동차 사고로 죽은 루디가 벤으로 오인되었다는건 비현실적이고요. 작가 편의적인 결말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앞서 신분 위장에서의 치밀함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힘듭니다.

게리를 살해한 결정적 동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도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무너진 결혼 생활부터가 말이 안돼요.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던 베스가 전업 주부가 되고 나서는 소설을 쓰지 않게된걸 벤 탓을 한다는 것 부터가 이상했습니다. 벤이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던 조언을 따른건 본인 선택이었으니까요. 작가의 길을 포기한 것도 역시 본인 선택이고요. 그런데 벤 탓을 하며 가정의 화목을 깨고 불륜까지 저지른 주제에 벤에게 적반하장식으로 이혼을 통보한다? 저는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이혼 통보 시점에 벤은 베스와 게리의 불륜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혼 소송에서 유리했을거에요. 그런데 벤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 역시 이해 안됐습니다. 심지어 벤은 변호사로 베스를 탈탈 털어서 끝장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차라리 벤이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조금 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4/08/02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4). - 아야츠지 유키토

「돈돈 다리, 떨어지다」의 「문제편」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속으로 살짝 일어난 화를 누르며 U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책장에서 꺼내온 우메즈 가즈오의 만화(『오로치』의 SUNDAY COMICS판, 네 번째 권이다)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아, 다 읽으셨어요?"
내 시선을 느낀 U군은 책을 덮으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우메즈 가즈오는 몇 번을 읽어도 대단하죠. 저는요, 그를 인생의 스승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환하게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우메즈 가즈오가 대단한 것은 나도 전적으로 인정하는 바지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생의 스승"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그의 천진난만함(이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이 이때의 나에게는 왠지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스승"의 책을 정중히 옆에 놓으며 "자, 아야츠지 씨"라고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떻습니까? 설마 벌써, 풀어버리셨나요?"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제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그렇네요."
U군은 손목시계를 보더니,
"30분 정도 남았군요. 그 정도면 괜찮으세요?"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세 번째 세븐스타 담배 포장을 뜯었다. 불을 붙이면서, 지금 느끼는 이 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피해자인 악동의 이름이 "유키토"라는 것 때문인가? 그것도 완전히 관계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 상대는 열 살이나 어린 학생이다. 악의가 있을 리는 없고, 어설픈 농담이라 웃으며 관대하게 넘겨야 한다.
불만을 제기하자면 오히려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다. "린타로"와 "타케마루"는 그렇다 치고, 이 M** 마을 주민들의 이름은 대체 무엇인가. "포",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캠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끔찍하다. "반 다이스케"는 반 다인의 패러디인가? "아사노 요우지"에 "사이토 사카에"——웃기지 않는다. 전혀 웃기지 않는다. 미스터리 매니아의 유치함이라면 듣기 좋겠지만, 읽는 내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이런 이름짓기는 정말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 인물들, 읽다 보면 전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별은 가능하지만, 아무리 '범인 맞추기' 단편이라 해도,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조금 더 제대로 된 묘사를 해주었으면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A, B, C……로 표기하는 것이 깔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동안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결국 나는 이렇게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려지지 않았다!"——맞아, 바로 이것이다.
목구멍까지 나왔던 그 말(인간이 그려지지 않았다고)을 간신히 삼키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커피라도 마시며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열 살이나 어린 아마추어 학생이다. 여기서는 선배답게 그 부분은 눈감아주고, 어쨌든 이 '문제'에 도전해야 한다.
"자, 그럼."
두 잔의 커피를 테이블에 내놓고, 나는 「문제편」의 원고를 다시 한번 대충 넘겼다. "잘 먹겠습니다"라며 컵에 손을 뻗으면서, U군은 내 표정을 힐끔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작이라고 할 만하군. 꽤 어려운 문제야."
라고 말했다. 사실 나의 진심이었다. 사건의 상황은 이른바 '준밀실'이다. 20미터의 공간으로 격리된 '열린 밀실'에서의 불가능 범죄. 설정과 이야기에서 뭔가 장치가 있을 것 같은 냄새가 풍기지만, 초점은 역시 이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20미터의 거리를 극복했는가. 그 트릭을 간파하면 자연스럽게 범인의 정체도 알 수 있는, 그런 타입의 '문제'다. 과연……?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생각한 후, 나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부터 파고들어갔다.
"'당했다', '밀쳐졌다', '사……사아……'라는 유키토의 말은, 글 중에 나와 있듯이 '다잉 메시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겠지?"
"네,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지막 '사아'는 범인이 누구인지 말하려던 것이라는 거네."
"글쎄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실지……"
U군은 얼버무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얄미운 얼굴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사'가 머리에 오는 등장인물은, 이 중에서는 사키와 사카에군. 사카에는 성도 사이토지. 설마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겠지만.——흠. 달려온 사카에의 목소리를 듣고 '사이토 씨'라고 대답하려 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군."
"그렇죠. 하지만, 다잉 메시지라는 건 대부분 보조적인 단서일 뿐이잖아요. 아야츠지 씨의 작품에서도, 항상 그렇지 않나요?"
"뭐, 그렇다고 하면 그렇지. 그럼, 이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리고 나는 일단 정석적인 '소거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알리바이 등 데이터를 통해 범위를 좁혀나가는 거야. 먼저, M** 마을 사람들부터——"
범행 시각인 오후 2시 40분에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의 네 사람이다. 이 중 카는 중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니까, 당연히 제외된다. 출산을 앞둔 올츠이는 체력적으로 생각해도 다리까지 왕복해야 하는 범행은 무리겠지.
엘러리는 어떤가. 가령 어떤 트릭을 써서 다리 건너편의 유키토를 죽였다고 해도, 그 후 25분 이내——즉 포가 그를 광장에서 본 3시 5분까지——마을로 돌아오려면, 어떻게든 [옆길 B]를 내려와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①의 루트를 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파이프 바위에 있던 린타로는 그 시간에 통나무 다리를 건넌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엘러리도 범행은 불가능했다는 결론이다.
남은 사람은 아가사뿐이지만, 그녀의 경우 엘러리와 달리 3시 40분까지의 알리바이가 없으므로, ②의 루트를 통해 돌아왔다고 해도 시간적인 모순은 없다. 그러나 한쪽 팔이 없는 그녀가 범행이 가능했는지 생각해보면, 올츠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려야 한다. 어떤 트릭을 썼다 해도, 상대는 20미터의 계곡이니까.
결국 여기서는 네 사람 모두 제외된다. 포가 말하는 X는, 그들 중에는 없는 것이다.
한숨을 쉬며, U군의 반응을 본다. 그는 또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나서 손목시계를 보고,
"10분 남짓 남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역시 얄미운 얼굴이라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다음은 캠프의 네 사람."
가능한 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나는 소거법을 계속했다.
요우지와 사키는, 오후 2시 40분 시점의 알리바이는 없지만, 다이스케가 돌아온 2시 50분에는 분명히 캠프에 있었다. 범행 후, 10분 안에 다리에서 돌아올 수는 없다. 다이스케가 다시 돌아온 루트도 20분 걸렸으니까. 예를 들어 [옆길 A]로 꺾어 [지류 B]를 따라 올라왔다면,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제외해야겠군.
당연히 다이스케에게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2시 40분에 범행을 저지른 후 되돌아갔다면, 아무리 서둘러도 2시 50분에 캠프에 도착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남는 사람은 사카에인가. 사카에가 빈사 상태의 유키토를 발견하는 장면 — 여기에는 시간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즉, 그는 시간적인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이스케가 산등성이 길을 되돌아간 것과 엇갈리면서 [옆길 A]에서 산등성이로 올라와 다리까지 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디. 그렇게 범행을 끝낸 후, 강으로 내려갔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겠지.
물론 사카에가 강가에서 유키토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 몇 개 있던것 같기는 하다. 때문에 정말로 사카에가 범인이라면, U군이 '페어 플레이의 룰은 엄격히 지켰습니다'라고 호언장담한건 이상하다. 그 부분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걸까.
자, 어쨌건 문제는 그 다음이야—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제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알리바이로는 사카에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유키토를 절벽에서 떨어뜨렸을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황당한 트릭이 떠올랐다.
“흠. 굳이 계곡을 건너 유키토 곁까지 갈 필요는 없었겠군.”
“어떻게요?”
“사카에의 배낭에는 이때 낚싯대가 들어 있었어. 여기에 튼튼한 긴 낚싯줄을 달고, 그 끝에 예를 들면, 야구공 정도의 크기의 돌을 묶어서 말이야...”
“휘둘러서, 다리 건너편의 유키토를 맞췄다고요?”
“그런 거야. 무리일까.”
U군은 복잡한 표정으로 “하아”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
“이런 건 어떨까.”
극약을 먹는다는 심정이 되어, 나는 거기서 새로 떠오른 트릭을 말했다.
“남아 있던 한 줄의 로프를 따라 뱀을 보내는 거야. 놀란 유키토는... 아니, 이건 안 되겠군. 유키토는 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이런 건 어떻지. 들쥐의 목에 긴 끈을 묶어 로프를 따라가게 하는 거야. 그리고 구해줄 테니까 그 끈을 잡으라고 명령하는 거지. 멍청한 유키토가 그 말을 믿고 따랐을 때, 힘껏 끈을 당긴다. 균형을 잃은 유키토는...”
점점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애당초 이런 물리적인 트릭을 고안하는 게 별로 능숙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시는군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는 나를 보고, U군은 조금 유쾌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틀렸어요. 실행 가능 여부를 떠나서, 그것만으로는 ‘밀쳐져 떨어졌다’는 것이 되지 않으니까요. 유키토는 어디까지나, X의 손에 의해 ‘밀쳐 떨어져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전한 유키토의 죽기 직전의 대사에 ‘거짓’은 없고, 본문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명기되어 있습니다.”
“흐음.”
“유키토는 X의 손에 의해 밀쳐져 떨어졌다. 이것은 즉, 범행이 일어난 2시 40분 시점에서, X는 확실히 돈돈다리 북쪽 돌출 부분에 있었고, 자신의 손으로 유키토를 거기서 밀쳐 떨어뜨린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슬슬 시간 초과네요.”
라는 무정한 선언을 듣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U군은 왼팔을 들어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한 뒤, “그럼, 이걸로”라고 말하며 ‘해답편’ 원고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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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답편
○반 다이스케, 아사노 요우지, 아사노 사키, 사이토 사카에 네 명은 시간적 혹은 물리적으로 생각해도 명백히 범행이 불가능하다. 또한, 본문에서 알리바이가 명기된 린타로와 타케마루는 X가 아니다.
○따라서 X는 M** 마을의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 중에 있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카는 범행 불능. 한 팔이 없는 아가사는 범행 불능. 출산을 앞둔 올츠이는 범행 불능.
○이상으로 X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엘러리 뿐이다.
○엘러리는 다이스케가 도망친 후 돈돈 다리를 건너가 유키토를 공격해 계곡 아래로 떨어뜨렸다. 범행 후 다리를 건너 고개 길로 돌아가, [옆길 B]를 내려가 [지류 A]의 나무 다리를 건너는 루트로, 오후 3시 5분에 마을 광장에 돌아왔다.
○동기는 복수. 전날, 아들 카가 '금단의 계곡'에 갔다가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잔혹한 소년 유키토의 짓이었다. 사키의 바지에 묻은 빨간 손자국은 그때의 피에 의한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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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야?"
순간적으로 아연한 후, 나는 물었다. U군은 씨익 웃으며 "네, 끝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잠깐만, 그건 아니지 않나."
나는 본의 아니게 큰 소리를 냈다. U군은 태연하게,
"왜죠?"
라고 되물었다.
"왜긴 왜야, 이건 전혀 해결이 안 됐잖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역시 조금 불친절했나."
"불친절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테이블에 몸을 기울여 따졌다.
"첫째로 말이지, 다리가 부서진 후 남은 로프는, 작은 초등학생인 유키토의 몸무게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구. 지문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어. 그런 로프를, 어떻게 어른인 엘러리가 건널 수 있었던 거야? 거리는 20미터나 된다고.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강하고, 로프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어. 가령 엘러리가 난쟁이고, 또 줄타기의 명인이었다 하더라도, 이 로프를 건너는 건 무리였다고 생각하는데."
"음, 확실히. 그런데요…"
"그리고, 범행 후는 ①의 루트를 통해 마을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린타로에게 들켰을 거라고. 린타로는 엘러리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쓰여 있었잖아. 그건 거짓말이었던 건가."
"그건 아야츠지 씨의 오해입니다."
U군은 단호히 말했다.
"사실, 린타로는 엘러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증거로, 도중에 타케마루가 두 번이나 심하게 짖었다고 했죠. 타케마루는 자기들 앞을 지나가는 수상한 자를 알아차린 거예요. 그래서 짖은 겁니다."
"그럼, 역시 범인 이외의 등장인물의 말에 '거짓'이 있는 거잖아."
"아니에요. 왜냐면, 린타로는 이렇게 증언했잖아요. '그 다리를 건넌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엘러리를 보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하?"
대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U군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혹시 그와 나는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가 다른 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했다.
"부서진 돈돈다리를 엘러리가 건널 수 있었는가, 라는 문제인데요."
U군은 진지한 얼굴로 계속했다.
"엘러리는 난쟁이도 아니고 줄타기 명인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남아 있던 로프 한 줄로 계곡을 건널 수 있었던 겁니다. 아주 쉽게요."
"그런…"
나는 산소를 찾는 물고기처럼 입을 벌렸다.
"설마, M** 마을이 닌자의 숨은 마을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런건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설령 닌자라 하더라도, 미군의 특수 공작 부대라 하더라도, 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도전'에 주석을 단 대로, 그런 도구는 여기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라고 말했지만, 이어지는 말을 생각해내지 못해, 나는 불안하게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하듯이, U군도 자신의 담배(같은 세븐스타)를 물었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는 말했다.
"엘러리는 난쟁이도 줄타기 명인도 닌자도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유키토의 다잉 메시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을 멈추고, 나는 테이블 구석에 던져진 '문제편' 원고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이 상황에서, 유키토를 자신의 손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것 같은 묘기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해요. 따라서 당연한 논리적 결론으로…"
"…설마"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겨우 하나의 단어(설마)가 떠올랐다. 나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설마 그 '사…'라는 게, '사루(원숭이)'를 말하려고 한 건가?"
"정답입니다."
U군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타케마루가 격하게 짖은 거예요. 옛날부터 개와 사이가 나쁜 동물이라고 하면 정해져 있잖아요. 타케마루와 엘러리는 문자 그대로 견원지간이었던 거죠."
잠시 멍해져서 중얼거리듯 "원숭이, 원숭이…"라고 중얼거리는 나를, U군은 여전히 순진한 미소로 응시하며,
"처음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으로 돌아가 쓴 것'이라고.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이라고 하면 당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이죠?"
"—사기다. 불공평해."
겨우 기운을 짜내어, 나는 항의했다. 그러나 U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M** 마을에 사는 일본 원숭이들을 '인간'이라고는,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같은 표현도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자'라는 한자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인간이 아닌 생물일 가능성을 암시하기 위해 '자'라고 굳이 히라가나로 표기했습니다.
애초에, 아야츠지 씨, 일본 본토의 산속에 포라든가 엘러리라든가 하는 이름의 인간들이 사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덧붙이자면, M** 마을의 M**는 'monkey'를, H** 대학의 H**는 'human'을 각각 암시한 이름입니다."
"원숭이를 '남자'나 '여자'라고 썼잖아."
"남자 = 인간 중, 수컷으로서의 성기관·성기능을 가진 쪽. 넓은 의미로는, 동물의 수컷도 지칭.
여자 = 인간 중, 암컷으로서의 성기관·성기능을 가진 쪽. 넓은 의미로는, 동물의 암컷도 지칭.
출처는 산세이도의 '신명해 국어사전'입니다. '코지엔'이나 '다이지린'이어도 상관없어요."
"젊은 여자들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원숭이가 그런 걸 할 리 없잖아."
"그건 물론 그루밍을 말하는 거예요. 원숭이의 털 손질. 아시죠."
"—더럽다. 비겁해."
"더럽다니요. 나이 많은 포우가 참나무 열매를 깨물고 있거나, 아이들이 벌거벗고 뛰어놀고 있는 등, 그들이 원숭이라는 복선을 몇 가지 깔아놓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조금 흥분한 나머지, 어조를 강하게 했다.
"하지만 말이야, 원래 원숭이가 말을 할 리가 없잖아. '규칙'이라든지 'X'라든지 '복수'라든지......"
그러자, U君은 "어머 어머"라는 듯 얇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전부 어디까지나 원숭이의 세계에서의 일이니까요. 인간과 대화를 나누진 않잖아요? 대사도 전부 캠프의 인간들과 구별하기 위해 이중 괄호로 묶여 있죠. 게다가 고금을 통해 소설 속에서는, 고양이부터 도룡뇽까지, 생각하는 동물도 있고 나름의 문화를 가진 동물도 있어요. 인간의 말을 이해하거나, 인간적인 감성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그러고 보니, 최근의 미스터리에서도 있었죠. 은퇴한 경찰견의 일인칭으로 쓰인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 씨의 '퍼펙트 블루'."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
"그런가요?"
나는 점점 더 흥분하며,
"이건 '범인 맞히기'가 아니야."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U君은 간단히 "네, 맞아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건 '범인 맞히기'가 아니라 '범원숭이 맞히기'죠. 그래서 그런 언어의 엄밀성을 중시해서, 작품 속에서도 아야츠지 씨와의 대화에서도, 나는 한 마디도 '범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X 같은 진부한 미지수 기호를 끄집어낸 건 고육지책이었어요. '문제편'의 체크, 해 보실래요?"
"........"
"꽤나 고심했어요, 그 부분은. 아야츠지 씨라면 분명 그 고심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불쾌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며 소파에 기대앉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래서 아마추어 학생은 곤란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독을 품으며, 심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대로 침묵하고 있자,
"저기, 텔레비전 켜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U君이 말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러게."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위치를 켜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이상하게 밝고 씩씩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U君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쩐지 지금 막, 시계의 바늘이 오전 0시를 지난 모양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이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익숙한 연예인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축하해, 축하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화면의 한쪽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 마리의 동물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저도 모르게 "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원숭이잖아."
어째서 U君이 굳이 오늘 밤을 선택해서 나를 찾아왔는지. 하필이면 섣달그믐의 이런 늦은 시간에, 추운 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그것도 연출("복선"이라고 그는 말할지도 모르겠지만)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이 '범원숭이 맞히기'를 다 읽을 즈음에 딱 새해가 밝는, 그런 타이밍을 그는 노렸다. 그래서 그렇게,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던 것인가.
1992년, 원숭이해의 시작――.
어깨에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 사라져가는 듯한 기분을 나는 맛보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느끼던 화가 몹시 하찮게 느껴지고, 동시에 그런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져서......
나는 U君 쪽을 보았다. 하지만, 소파에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검은 배낭도 가죽 장갑도, 크림색에 초록색 줄무늬가 들어간 헬멧도, 거기에는 없었다. "돈돈다리, 무너졌다"라고 표지에 크게 적힌 원고만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확실히 익숙한 얼굴. 잘 아는 이름. 무엇인지 무척 그립고, 그렇지만 조금 얄밉고, 그 천진난만함이 때로는 이상하게 짜증스럽고......
'아, 그렇구나'라고 나는 그제야 생각해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그건...... 아니, 이제 그만두자. 이 이상은 적지 않기로 하겠다.
남겨진 '돈돈다리, 무너졌다'의 원고에 살짝 손을 뻗으며, 다음에 그가 찾아오는 건 언제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