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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히틀러의 비밀 서재 - 티머시 W.라이백 / 박우정 : 별점 3.5점

히틀러의 비밀 서재 - 8점
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글항아리

히틀러가 남긴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의회 도서관, 공공 기록 보관소, 민간 보관소 등을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뒤져본 후, 히틀러가 관심을 가졌거나 혹은 영향을 끼쳤을 책들을 골라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이 수집가를 보존하며 수집가가 소멸된 뒤에는 그 삶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히틀러의 장서를 통해 히틀러라는 인물의 실체를 알려주려는 시도만큼은 무척 독특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게 이 리뷰를 쓰면서 제 책장을 쭉 훝어 보니, 정말 저라는 인물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는 책장이구나 싶더라고요. 요리 관련 서적 20%, 역사서 20%, 과학 관련 서적 10%, 장르문학 30%, 만화책 20% 정도의 구성인데 이 블로그 리뷰 비율과도 비슷하고 실제 제 관심사와도 같으니까요. 장서가 수집한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를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목차는 열개 항으로 나뉘며, 중요한 책도 열 권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책들은 그 외에도 많은데 이 중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분류하자면 크게 네 가지입니다.
우선 히틀러의 사상과 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거나, 최소한 그러한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첫 번째입니다. 오스보른의 "베를린", 직접 쓴 "나의 투쟁",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권터의 "독일 민족의 인종적 유형론", 그리고 그 스스로 자기 최면에 걸릴 수 있도록 한 스벤 헤딘의 "대륙 전쟁 속 미국" 등입니다.
두 번째는 히틀러라는 인물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혹은 히틀러에 대해 증언한 인물들이 관련된 책입니다. 히틀러의 정치 인생 초반에 그를 후원하고 이끌었던 유명 작가 에카르트의 "페르 귄트", 유명 영화인 레니 리펜슈탈이 선물한 "피히테 전집" 이 대표적입니다. "피히테 전집" 은 리펜슈탈과 히틀러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피히테라는 철학자가 히틀러에게 끼친 영향도 약간이나마 설명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분류와도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고요.
세 번째는 책 자체가 목적이나 수단이 되어 히틀러 주변에서 움직인 경우입니다. 히틀러가 싫어했다는 로젠베르크의 "20"과 이에 맞서 나치와 카톨릭을 결합시키려 했던 후달의 "민족사회주의의 기초"는 각각 책 소개와 함께 실제 히틀러 주변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일화가 함께 소개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총통이 실무, 그리고 공부를 위해 읽은 책입니다. "슐리펜", "프리드리히 대왕"과 같은 전기와 각종 전쟁사나 전술 및 각종 무기 관련 서적들 처럼요.
이러한 책들을 히틀러의 성장 과정 순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그가 점차 어떤 사상, 철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도 대략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역사서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항상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후대 역사가의 사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히틀러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반가왔습니다. 접근 방식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용감하고 전우애 넘치는, 독일 제국에 충심을 다 한 군인, 생사의 기로에서 짧은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은 노력가,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방대한 독서로 자신만의 이론과 세계를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누구와도 토론이 가능했던 천재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무기 관련 연감을 통독하여 후일 할더에게까지 한 방 먹였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독재자이고 살인자라고 해도 16,000권이 넘는 장서를 읽고, 중요한 내용은 기억하고 담아두었다가 써먹었다니 흉내도 내기 힘든 일이긴 하지요. 세계와 맞 상대할 수 있었던 제국을 십 년 이상 철권통치한 인물이 보통 인물일리야 없겠지만, 제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엄청난 노력가라는 점에서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성기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반신반인이더라고요. 물론 말도 안되는 민족주의에 우생학을 결합시켜 유대인을 학살한 잔혹한 독재자의 모습, 스스로를 유럽 대륙의 구원자로 생각한 과대망상 독재자의 모습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서법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책을 제대로 독파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특정 관념을 형성한 뒤, 책의 목차와 색인을 살펴 쓸만한 정보를 조금씩 모으는 방식입니다. 때로는 결론부터 읽기도 할 정도로 책의 내용을 깊숙히 이해하기보다는 필요한 정보만 집중적으로 습득하는 방식인데, 논문을 쓸 때의 방식과 비슷하네요. 스스로의 목표나 관념이 명확하다면 나름 효율적일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책의 목적, 그리고 광고 문구 - 1만 6000권 장서 중 단 열 권이 역사를 바꿨다 - 에 부합하는 내용인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소개되는 절반 가까이의 책들이 최상의 혈통인 아리아인의 혈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우생학적 관점, 이 때문에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반유대인주의 형성에 관련되어 있는 탓이 큽니다.
게다가 몇몇 책들은 히틀러가 소장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에요. 이래서야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책을 선정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인물을 구체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고요.
물론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허나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었어요. 더 다양한 책들로 다양한 분석을 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임스 쿠퍼의 "가죽 장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카를 마이의 "사막 횡단", 스벤 헤딘의 모험담 등 평소 즐겼다는 모험 소설들도 여러 권 언급되는데, 이런 책들을 좀 더 분석하는 게 더 취지에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아울러 서재에 각종 추리 소설도 꽂혀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과연 어떤 책이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최소한 제목 정도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이것도 추리 소설 홀대의 하나인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한 인물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 보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는 추천작입니다.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고 보기는 좀 어렵고, 신뢰성 측면에서도 다소 부족하지만 읽는 재미도 쏠쏠하니 히틀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5점 입니다.

덧붙이자면, 책장이 소유자에 대해 대략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요새는 사람들이 정말 책을 안 사고, 안 읽는 시대죠. 모든 컨텐츠 소비가 스마트 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수십년 뒤에는 "스마트 폰 로그로 분석한 누구누구" 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06/03/19

히틀러의 30일 1933년 1월 - 헨리 에슈비 터버 2세 / 윤길순 : 별점 3점

히틀러의 30일 - 6점
헨리 애슈비 터너 2세 지음, 윤길순 옮김/수린재
부제 "그는 어떻게 단 30일만에 권력을 잡았는가"

1933년 새해에 이미 나치당의 세력은 몰락이 시작되었고 공화국 자체의 기반도 꽤 탄탄하게 잡혀가던 와중, 하지만 30일만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총리에 임명한다. 과연 3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총리에 취임한 1933년 1월에 대한 자세하게 서술된 책입니다. 책 자체는 역사서답게 치밀한 보고서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 나가는 과정, 그리고 히틀러에 대해 과소평가했던 당시 정치"꾼" 들의 시각과 다양한 세력으로 이루어진 독일 정계의 암투와 음모, 책략, 거기에 당시 독일의 상황이 치밀하게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나치에게 모든 국민들이 열광했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서야 진실을 알았네요. 역시나 초반에는 그게 아니더군요. 추락하던 나치의 세력에 주목하여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들은 전 총리였던 파펜과 당시 총리였던 슐라이허,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아들 오스카르, 독일 국민당 당수였던 후겐베르크 등이 있는데 이들의 하나하나의 무능함과 경솔함이 눈에 뜨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잘못을 한 인물은 파펜과 슐라이허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무능과 실수로 권력을 잃게 된다는 것과 히틀러에 대해 과소평가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확실히 제일 윗놈들이 멍청하면 국민들이 힘든 것 역시 어디가나 똑같군요. 또한 어딜가나 정치"꾼"들은 다 똑같다는 것도 참 웃기는 일입니다.

사실 2차대전에 대한 여러 기록이나 역사서는 많이 읽어 보았고, 절대 권력자로서의 히틀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 독일의 분위기 및 여러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담겨 있어 그런 면에서 일단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딱딱한 역사서는 아니며 무척 재미있는 편이라 마음에 드네요. 확실히 정치권의 암투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상당히 마이너한 책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히틀러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정권을 잡는 과정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제발 꼭 읽어서 자기 자신과 당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한번정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5/02/23

히틀러의 성공시대 1,2 - 김태권 : 별점 3점

히틀러의 성공시대 1 - 6점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
히틀러의 성공시대 2 - 6점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

거의 1주일간 격조했습니다. 연휴 동안 블로그는 하지 못했네요. 다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독특한 시각으로 역사 만화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김태권 씨의 작품입니다. 연휴 기간 중 형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고요. 제목 그대로 "히틀러"의 성공시대, 그중에서도 정치인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그립니다. 1928년 총선에서 2.6%의 득표율에 그쳤던 나치당이 1930년에는 18.2%, 1932년에는 37.4%를 얻어 제1당이 되고, 결국 1933년 히틀러가 총리가 되는 과 정이죠.

이야기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며 히틀러를 비롯한 대권 경쟁자들과 괴벨스 등 나치당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합니다. 일종의 군웅극 느낌도 살짝 있지만, 영웅적인 인물은 없고 대부분 무능하거나 꼼수에 능한 이기적인 인물들인 탓에 블랙코미디에 가깝습니다. 특히 히틀러는 실제로는 별다른 능력도 없고, 장황한 연설과 상식을 벗어난 무지 외에는 특별한 장점이 없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저 극우 세력에게 필요한 ‘기관총 앞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존재였던 셈이죠. 당시 극우 논객 에카르트가 말하길, “머리가 좋을 필요는 없다. 정치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업이니까.”에 어울리는요.

그나마 개중에 가장 똑똑했던 인물은 브뤼닝 총리였던 것 같습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재선시키고 히틀러에 타격을 줄 수 있었지만, 슐라이허에 의해 실각하게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코믹하게) 등장하고 그들의 행보를 군웅극처럼 흥미롭게 그려낸 작가의 구성력은 대단했습니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다양한 도판들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 당시 독일의 황당한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겹쳐지는 지점이 있어 놀라웠습니다. 정치권의 편가르기, 무능하고 소신 없이 캐릭터로 승부하는 정치인들,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극단적 사고방식 등 많은 부분이 닮았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파시스트"의 전형적 책략이라는 점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보 통제 사회는 아니란 점에서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김태권 씨의 작화와 유머감각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만화’로서는 완성도가 높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차라리 정적인 그림 해설서처럼 구성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고, 여백이 지나치게 많아 낭비처럼 느껴지는 점도 있었습니다. 분량과 가격 부담을 고려하면 편집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그리고 덧글 등을 통해 확인해보니, 편향된 시각이 드러나는 콘텐츠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었고, 별점은 3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유권자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실감됩니다.

2023/06/17

설원의 독수리 - 마이클 모퍼고 / 보탬 : 별점 2점

설원의 독수리 - 4점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보탬 옮김/내인생의책

바니는 독일군 폭격으로 집을 잃고 어머니와 함께 이모가 살고 있는 콘월로 향하던 중, 기차 안에서 공습 감시원으로 활약했던 1차대전 참전 용사 아저씨를 만났다. 
기차가 독일군 공격을 피해 터널 안으로 숨어든 사이, 아저씨는 겁에 질린 바니를 달래기 위해 1차대전 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저씨의 친구 빌리는 전쟁 영웅으로 빅토리아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빌리가 마지막 전투에서 살려주었던 독일 병사가 아돌프 히틀러였다! 빌리는 자신이 구해주었던 고아 소녀 크리스틴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보냈으나, 나중에 자기가 히틀러를 살려주었다는걸 알고 죄책감때문에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고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저씨가 이야기를 마친 뒤, 어두운 터널 안에서 모자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난 뒤, 아저씨는 사라졌다. 기차 차장에게 물어보았으나 아저씨는 처음부터 없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바니는 나중에 이모로부터 아저씨가 빌리였고, 그는 멀베리 공습 때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전쟁 영웅 헨리 텐디의, '아돌프 히틀러를 살려준 병사'라는 유명한 실화를 각색해서 만든 작품. "나와 마빈 가든"처럼 아이의 토론 수업 교재입니다. 
전쟁에 대한 참상, 그리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트릴 수 있는지와 한 사람이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줍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아동용 소설이라 어른이 읽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인간 드라마로 보기에는 빌리의 고뇌 등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고. 드라마 부분도 약한 탓입니다. 빌리가 히틀러를 살려주었다는 과거는 주변과의 갈등을 일으키지 못해서 극적 긴장감도 부족하고요. 전쟁물로는 디테일이 떨어지며, 암살물로는 정교함과 치밀함이 턱도 없습니다. 아무리 전 전쟁 영웅이라도, 히틀러라는 인물 암살을 이렇게 쉽게 시도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빌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편의적인 발상이었어요. 이미 죽었다면, 아마 암살 시도가 실패했을 때 죽었겠죠. 폭격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5/28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크리스터 요르젠센 / 오태경 : 별점 2.5점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6점
크리스터 요르젠센 지음, 오태경 옮김/플래닛미디어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의 평전... 이라고 생각하고 오래전에 구입했던 책입니다. 왠지 손이 가지 않아 몇 년 동안 묵혀두었다가 읽어 보았는데, '평전'이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출생과 죽음까지, 일대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책의 2/3 이상은 롬멜이 지휘했던 주요 전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사서 (전사)인 셈이지요.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서 롬멜의 전략, 전술, 핵심 포인트와 승리, 패배 원인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게 장점입니다. 이전 "아틀라스 전차전" 등과는 다르게 전투 과정을 생동감넘치게, 일종의 대하 사극처럼 묘사하고 있어서 이해하기도 쉬웠고요. 이를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전투 상황, 투입 부대와 경로를 상세히 기입한 지도를 다수 수록한게 특히 마음에 듭니다. 실감 가득한 여러 스냅 사진들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롬멜과 해당 전선에서의 사진만 골라서 수록해 놓았는데, 책의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롬멜이 토브룩을 확보하기까지의 빛나는 승리와 결국 아프리카를 포기하기까지의 아프리카 전선 이야기가 굉장히 상세한데, 덕분에 대략적인 당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던게 개인적으로는 수확이었습니다. 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장비 등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전차대는 한 곳에 밀집대형으로 집중시키고, 사전에 슈튜카를 활용한 폭격을 활용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전술과 속도전, 그리고 88미리 대공포를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더군요. 말 그대로 '사막의 여우' 다왔달까요.

그리고 롬멜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롬멜이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했고, 본인의 능력도 컸지만 히틀러 덕분에 승승장구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큰 실망을 맛보고도, 복귀 후 히틀러와 만난 뒤 다시 충성심을 가졌다니 놀랍기만 할 뿐이에요. 히틀러가 확실히 뭔가 카리스마같은게 있긴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롬멜 만세! 시각으로 쓰여진건 단점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패퇴를 극복할 수 없었던 장비 부족이라면서, 상대적으로 몽고메리 장군의 승리를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 덕분이라고 폄하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롬멜이 부족한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어요. 트리폴리에 항구 토브룩까지 확보한 상황이었다면, 해상에서의 보급 문제는 변명에 가까와 보였고, 정말 보급품이 부족하니 최대한 빨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겠다!가 목표였다면, 그 전략이 실패했을 때의 대책도 있어야 했어요. 엘 알라메인에서 패한 뒤 그냥 쭉 밀려서 아프리카를 내 주고 만 건 너무 허무했습니다. 

아울러 북아프리카 전선 최후의 순간, 새로 부임된 장군과의 알력으로 전선에 최신예 티거 탱크를 집중시키지 못했던 것, 마지막까지 총통의 명령을 받들어서 귀중한 병력을 낭비했던 것은 엄연히 롬멜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원수' 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히틀러에게 책임을 다 뒤집어 씌우고 있더군요. 공정한 시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전선을 떠난 뒤, 대서양 방벽 건설을 진두지휘했다는 부분도 왜곡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롬멜만이 노르망디가 연합군 상륙 장소일 거라고 예측해서 최대한 방비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롬멜도 상륙 장소를 칼레로 예상했다는 기록이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륙 작전은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으니, 실패한 작전 지휘관임은 명백하고요.

또 앞서 전투 상황을 상세히 다룬 지도가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를 포괄하는 해당 지역의 큰 지도도 함께 수록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거 같아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전투가 벌어진 장소가 계속 바뀌는데, 이를 큰 흐름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큰 지도가 필요했거든요. 또 지도가 대체로 작다는 것도 조금 불만스럽네요. "아틀라스 전차전"이나 "세계 항공전사"가 전투 관련 지도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빼어납니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요.

롬멜과 2차대전에서의 독일군 전차부대 전략과 전투, 아프리카 전선에 대해 이 만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은 드물다는 장점은 크지만, 이렇게 문제도 없지 않기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05/09

2차 대전 잠수함 이야기들 - 10년 20일 / U-333 : 각 별점 3점

10년 20일 - 6점
칼 되니츠 지음/삼신각
U-333 - 6점
피터 크레머 지음, 최일 옮김/문학관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 U보트에 관련된 책 2권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한 권은 U보트, 독일 잠수함 전대의 사령관이자 훗날 해군 총 사령관, 그리고 히틀러의 뒤를 이은 3제국 최후의 총통으로 연합군에 항복한 칼 되니츠 제독의 회고록 “10년 20일”이고 다른 한 권은 U보트의 함장 피터 크레머의 “U-333”입니다.
같은 시기, 같은 분야의 전투에서 역량을 발휘한 두 명의 회고록으로 각각 나름의 재미도 충분하나 비교해서 읽는게 훨씬 재미있더군요.

일단 "10년 20일"은 되니츠 제독이 사령관이었던 것 만큼 스케일이 훨신 크더군요. 잠수함을 한척 단위의 전투가 아닌 여러 척으로 그룹을 묶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이른바 “늑대떼 전술”을 비롯, 각 바다를 쪼개서 지역별로 함정을 배치하며 활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젖소” 잠수함의 도입 등 전략적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이에 반해 피터 크레머 함장의 “U-333”은 스케일 보다는 실제 전투에서의 활동들, 수송선단의 추격  및 공격에서의 회피, 폭뢰공격으로 침몰해 가는 함정의 운영 등 실질적 전투 활동의 디테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히 자료적 가치도 높아서 두 책 모두, 전투 이외에도 잠수함의 성능이나 독일의 여러 공격 무기 (어뢰 및 대공포 등)와 연합군의 대잠무기, 잠수함 건조 방법 및 훈련 방법 등 잠수함 부대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동일하고요.

그런데 두 책 중 개인적으로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도자가 누구이건 맡은 바 명령에 충실하게, 설령 그 상황이 타개하기 어려울 지라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가며 아울러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독일 군인의 표상이랄까요? 처칠이 언급했듯이 되니츠에게 개전 초기 운영 가능한 U-보트가 100척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면 종전 직전에 실전 배치 되기 시작했던 최신예 잠수함 XX1, XX2, 발터 잠수함 등이 그에게 1년이라도 먼저 보급되었더라면.. 하는 가정이 성립될 만큼 - 물론 피터 크레머 함장의 회고처럼 이미 1944년 겨울부터는 잠수함 전대에 미래란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겠지만 - 매력적인 인물로 읽으면서 그에게 매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세계 전사에 기록될 만큼 유능한 희대의 명 제독인 듯 싶어요.
허나 세세한 재미를 따지자면 실제 전투상황이 강조되는 한편의 영화 같은 “U-333”쪽이 더 낫기도 합니다. 동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전까지 포로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운좋은” 함장 피터 크레머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과는 좀 떨어지는, 생명력이 좀 강한 함장이어서 그런지 (에이스들은 거의 죽거나 포로가 되어 버렸죠) 전투가 뭔가 격침을 시킨다던가 하는 호쾌한 맛은 떨어지지만 영화 “U보트”에서 볼 수 있었던 실제 연합군 대잠무기에 대한 공포,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며 벌어지는 긴장감, 잠수함 고장에 따른 위기 등이 잘 그려져 있거든요. 이런 부분은 영화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더군요. 아울러 뒷부분에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요약되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두 책 모두 3점. 약 820척의 U보트 중 718척이 침몰되었고 39,000명의 우수하고 잘 훈련된 승조원 들 중 32,000명이 목숨을 잃은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손실을 기록한 독일 잠수함 부대, 그리고 그 부대원들이 끝까지 희생을 다하며 충성한 해전사 희대의 명 제독 칼 되니츠와 실제 승조원으로 2차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활약한 U보트 함장 피터 크레머의 회고록이니 만큼 2차대전에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영화 “U보트”나 다시 한번 구해 봐야 겠네요.

그나저나, 개인적으로는 종전과 동시에 연합군에게 인수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침시킨 독일 잠수함 부대원 들 중 일부가 최신예 함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부대원, 기술자들과 더불어 히틀러의 비밀 자금과 함께 어딘가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라스트 바탈리온” 같은 이야기가 꿈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덧 : 되니츠도 인정했지만 히틀러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와 인물 장악력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되도록 떨어져 있어야 했다.. 고 까지 인용했을 정도거든요.

2004/02/03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20세기를 배후 조종한 세기의 첩보전들 : 별점 4점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8점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이창신 옮김/이마고
이 책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파이들과 그 정보전을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워낙 소재가 독특하고 제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목차와 내용을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제1부 기만작전: 사상 최대의 속임수”는 가공의 저항 자유 조직을 만들어 서방세계를 속인 소련과, 쿠바인을 스파이로 고용했던 CIA를 역이용하고 농락하는 쿠바와 같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속여 먹는 이야기입니다. 무적으로 느껴지는 CIA의 멍청하고 한심한 일면을 다루고 있어 상당히 통쾌하게(?) 읽었습니다.
“제2부 암호와 감청 전쟁: 보이지 않는 스파이들”은 주로 2차대전을 다루고 있는 편으로 에니그마와 일본 암호 해독 등 서로의 암호를 해독하여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에니그마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네요. (물론 “암호의 세계”라는 이 분야의 바이블 같은 책이 있습니다만…)
“제3부 반역작전: 내부의 적을 색출하라”는 제목 그대로 조직 내부의 스파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입수하게 되는 소련과 소련의 최 고위층 비밀 요원 “톱해트”의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흡사 영화 같습니다.
“제4부 두더지작전: 미로 속의 첩보 게임”은 역사속에 묻혀진, 그리고 역사의 희생양이 된 몇몇 스파이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사건이 인상적입니다. 스웨덴의 명문 출신이자 인도주의자였던 외교관 발렌베리가 어떻게 누명을 쓰고 죽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가슴 아프기도 하고요.
“제5부 실패한 작전: 첩보역사상의 대실수들”은 실패로 끝난 작전들이 나옵니다. 일본과 미국의 진주만을 둘러싼 암투라던가, 동유럽의 공산화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가 실패하는 CIA이야기도 있고 태평양의 한 섬을 둘러싼 미-일 간의 첩보 공방전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제6부 성공한 작전: 대규모 작전의 눈부신 성과들”은 성공한 유명한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의 “배신자” 워커일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잡혔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같은 곳에서 특집으로 낼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영국의 엘리트 5인방 스파이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7부 무의미한 작전: 첩보역사상 최대의 코미디”는 제목 그대로 무의미 했던 정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 뿌리기 위해 만든 반체제 우편물과 우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그 우표 (반은 해골, 반은 히틀러)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고가에 거래된다는 이야기까지,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재밌네요.
이렇게 역사적 정보전과 유명 스파이들을 다루고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책, 그 중에서도 2차대전 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미스터리물 같다는 점도 흥미로왔고요. 읽고나니 스파이와 정보전의 중요성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네요. 역사를 움직이는 “흑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역사서적으로의 가치와 재미를 모두 갖춘 보기드문 책입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나 유명한 (영화로도 나왔죠) “뻐꾸기 알” 이야기가 없는게 조금 의아하지만, 2편을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2021/12/12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 -상 : 별점 2.5점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사 -상 - 6점
이미지프레임 편집부 엮음/길찾기

기동전사 건담의 시작을 알린 1년 전쟁을 실재 있었다고 가정하고 진지하게 접근한 책입니다. 전사라면 전사겠지만, 기본적으로는 2차 창작물인 셈입니다. 예전에도 살짝 관심은 있었는데, "섬광의 하사웨이"를 보고 내친김에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미 절판 상태라 상, 하권 중 상권만 구할 수 있었기에, 상권만 읽어보고 리뷰를 남깁니다.

특징이라면 1년 전쟁에 관련된 설정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전쟁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상세한 전투 관련 분석이 돋보입니다. 전쟁 발발 정의 지구권과 콜로니 배치에서 시작되어, 전투의 추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 전쟁, 루움 전투, 공국군 지구 침공 작전, 오데사 작전 설명으로 이어지는 첫 챕터부터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연방군과 지온군 함대 구성 및 이동 방향, 전투의 향방 등을 여러 전쟁사 책들과 비슷한 도판들을 이용하여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전투에 대한 해석 뿐 아니라 콜로니와 미노프스키 물리학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같은 기본 설정에 대한 상세 설명은 물론 지온 공국 성립의 역사, 전쟁 시작 후 오데사 작전 까지의 이야기 및 모빌 슈츠와 각종 병기들, 지구 연방군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MS는 물론이고 전함과 육전용 장비들, 항공기 소개도 충실하고요. 이 중에서는 아울러 스페이스노이드의 주장, 지온 공국이 전쟁에 돌입하기까지의 공국과 연방군 정세 등 1년 전쟁 당시의 사회 환경과 이데올로기, 정세에 대한 분석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예컨데 2차 대전을 다룬 책이라고 친다면, 독일이 히틀러 집권 후 재무장을 하여 폴란드를 침공하고, 결국 프랑스까지 점령하는 과정을 지휘관들과 주요 전선에서 펼쳐진 작전들, 그리고 주요 전술과 주력 병기와 함께 소개하는 것은 물론 나치즘과 히틀러의 집권 과정, 영국과 프랑스 등 주변 주요 강대국의 정세를 이벤트별로 원인과 결과를 잘 알 수 있게 설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잘 알려진 설정이 대부분이라 새로운건 별로 없습니다. 이 책 출간 이후, 1년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던 "디 오리진"이 출간된 탓도 컸고요. 그래도 진지한 역사서처럼 쓰여진 결과물을 보니 색다른 느낌도 들고,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되어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 발표되었던 기획임을 짐작케하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은 눈에 거슬렸습니다. 대표적인게 디오라마로 이루어진 화보였습니다. 디오라마 자체가 나쁜건 아니지만 촬영과 편집 모두 책의 컨셉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었거든요. 밀리터리 풍의 화보도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고요. 이왕 이렇게 책을 만들 거였다면, 장난감같은 프라모델 사진이 아니라 더 진짜같은 사진과 그림이 필요했습니다. 책의 내용도 오래전 발표된 책 답게 이른바 '정사'에 포함된 내용만 담겨 있어서 MS IGLOO라던가, The Origin같이 후대 추가된 설정과 이야기가 없다는 것도 불만스럽습니다. 그 탓에 볼륨도 가격에 비하면 영 시원치 않은 편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도판과 편집만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재간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아틀라스 전차, 항공전사와 "2차대전 독일의 비밀무기"를 합치는 식으로요. 지금의 결과물은 재미는 있지만 딱히 하 권을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2008/09/04

전격전의 전설 - 칼 하인츠 프리저 / 진중근 : 별점 3점

전격전의 전설 - 6점
칼 하인츠 프리저 지음, 진중근 옮김/일조각

간만에 읽은 전쟁관련 책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술로 유명해진 전격전에 대해 다룹니다. 특히 전격전의 시작과 그 확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전 초기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는 이른바 서부전선의 "지헬슈니트 작전" 에 대해 각종 도표와 그래프, 지도 등으로 상세하게 소개하여 전격전이라는 전술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거의 600페이지나 되는 책 내용의 대부분을 이 작전 하나에 할애하였다는 점에서 상세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두께는 제법 되지만 전격전의 실체와 알려진 것과 사뭇 다른 서부전선의 양상,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장군들에 대한 묘사와 손에 잡힐 듯한 전장에서의 여러가지 이야기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군인 롬멜의 서부전선에서의 활약상을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한 책은 처음이네요. 프랑스 군에서도 드골 등 이름만 알고 있던 장군의 실제 활약이라던가, 프랑스 부대의 일부 활약상과 용맹성을 묘사하고 있는 등 균형을 잘 맞추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예전에 읽었던 이대영씨의 "알기 쉬운 세계 제 2차 대전사" 에서 후루룩 지나간 서부전선 이야기에 대한 실상을 알게되어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이 전쟁이 원래는 히틀러의 침략 야욕으로 불거진 전쟁이 아니라는 점(미리 선전포고를 받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과, 실제로 전술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몇 뛰어난 독일군 장군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 전술이었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군이 무능했다기보다는 병력과 병기에서 앞섰지만 프랑스군을 지배했던 구세대적 마인드에 의해 패배한 전쟁이었다는 점, 아울러 독일군 승리에는 정말로 많은 행운이 작용했다는 점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요.
지헬슈니트 작전과 1차 세계 대전때의 슐리펜 계획과의 자세한 비교 및 전격전이 확립된 서부전선의 결말과 그 역사적 의의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히틀러 때문에 실패한, 성공한 전쟁이 아닌 작전술의 승리였을 뿐이라는 결론- 등을 설명한 것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사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전격전의 실체를 파헤치는 학술서에 가깝기 때문에, 정말 두껍고도 무거운 엄청난 책이라 읽는데 고생했습니다. 양장본이라 무겁기도 했고요. 무게와 두께가 흉기에 가까운 것은 정말 이 책의 거의 유일한 단점이었습니다. (책 가격이 4만원에 육박하는 것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두께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가격이겠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2차 대전에 대해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번역도 딱딱하지만 정확한 편이고요.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3점 반을 주고 싶지만 조금 지루한 점과 두께는 아무래도 좀 걸리네요^^

2004/10/07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 아이라 레빈 / 김효설 : 별점 2.5점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 6점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시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밀 회합을 가진 조직, 그들은 나치 잔당으로 나치의 재건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직 "카메라덴베르크"의 멤버들로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과학자이자 의사 "멩겔레 박사"를 주축으로 한 조직이다. 그들의 사명은 앞으로 2년 반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 흩어져 있는 94명의 60대 중반 노인들을 살해하는 것.
우연히 베리 퀠러라는 청년에게 녹음된 이 대화는 일부 내용만 저명한 유대인이자 나치 사냥꾼 야콥 리베르만에게 전달되고 리베르만은 이 음모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사고-살해로 죽은 60대 중반 노인의 자료를 모아 독자적인 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이 없어 허위 신고로 판명되는 듯하여 조사를 중단하려는 마지막 순간에 리베르만은 우연찮게 피해자의 가족을 접하게 되며 충격적인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데... 

아이라 레빈의 장편소설. 충격적인 데뷰작이었다는 - 익히 알고 있던 명성 탓에 품었던 기대보다는 별로였지만 - "죽음의 키스"의 작가죠.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첩보 서스펜스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으로 2차 대전의 히틀러 최측근 중 하나인 "멩겔레 박사"가 악역으로 등장하여 나치 잔당을 척결하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유대인 "리베르만"과의 한판 승부를 국제적인 거대한 음모와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65세 가량의 공무원 및 비슷한 직업의 노인들을 살해한다는 음모가 일견 황당하지만, 멩겔레 박사의 치밀한 십수년에 걸친 치밀한 작전이라는 것이 설득력있고 스릴넘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본 발상이 상당히 기발한 편입니다. 아마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발한 발상이며 충격을 가져다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설정이 비슷한 스릴러 물이었던 "모레"를 먼저 읽었기에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꽤 그럴듯하거든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리베르만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나가는 과정이 전부 우연에 기대고 있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전화로 음모를 알게되고 "우연히" 피해자의 가족을 접하게 되어서 진상을 알게되는 식인데 별로 매끄럽지도 않고 쉽게쉽게 간 느낌이에요. 막판의 멩겔레와 리베르만의 대결도 조금 밋밋해 보인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죠. 고수들의 대결 치고는 너무 시시했거든요. 둘의 대결에는 자비에르와 매그니토의 대결과도 같은 뭔가 "아우라"가 있어야 했습니다...
또 30년 전에 쓰여졌다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클로닝"이라는 유전학적 기법에 대해 너무 과대 포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드네요. 물론 멩겔레 박사가 "쌍동이"라는 테마에 집착한 악마의 연구를 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이 소설에서처럼 완성도 높은 복제를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보여지거든요. 뭐 소설이 현실에 크게 기반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마지막의 "제 4제국"이 다가온다는 식의 엔딩은 석연치 않군요. "오멘"류의 엔딩을 집어 넣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임팩트도, 힘도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기는 했지만 비스무레한 설정의 후기작들을 먼저 접하고 읽은 탓에 저에게는 평작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죽음의 키스"나 "로즈메리의 아기"도 그랬고 이 작가는 항상 저에게 기대만큼의 재미는 가져다 주지 못하네요.
어마어마한 호화 캐스팅으로 무장한 영화 나 나중에 한번 봐야겠습니다.(링크를 따라가면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으니 조심을...) 쟝르 특성상 내용을 알고 보면 좀 재미가 떨어질려나요?

2013/08/14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구마 겐고 외 / 권은희 : 별점 2.5점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6점
구마 겐고 외 지음, 권은희 옮김/까치

건물 하나당 한 장 분량의 짤막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전편에 이어지는 건축물 관련 서적. 몰랐는데 아사히 신문 연재 컬럼이라고 하네요.

이 책의 장점은 아주 확실합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진이 굉장히 멋지다는 점이죠. 글들은 4명의 작가가 나누어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나 기묘함만을 설명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그 건축물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보는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일본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이 제법 있다는 정보는 솔깃했고요. 여행 갔을 때 좀 알고 돌아볼걸...

그러나 건축물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 전편보다 참신함과 재미가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정보 부족의 경우, 이 책을 사진과 함께 하는 일종의 건축물에 대한 감상 중심의 에세이로 규정한다면 단점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두 번째 단점은 심각합니다. 에펠탑이나 런던의 유리 달걀 같은 관광지화된 유명 유적에다가 가우디, 르 코르뷔지에, 반 데어 로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의 대표작들은 이런저런 다른 매체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것들로, 이 책의 제목인 "불가사의한"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아트북 같은 책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만 전편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에 든 건축물들을 몇 개 꼽아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카이딘 황릉

베트남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 바로 직전의 황제인 카이딘 황제의 능. 철근 콘크리트와 가우디 취향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지만 슬프고 품위가 없는 분위기라는 기묘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긴타이쿄

그야말로 우키요에의 풍경 그림 같은 독특한 다리.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번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르세 미술관

1970년대 초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1968년 5월 혁명 후 이의가 제기되어 보존이 결정되고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건물.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대한 이의제기가 관광 명소 만들기에 불과했다는 씁쓸한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이탈리아의 몬테마르티니 박물관

히틀러의 전체주의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는 미래파를 후원하는 등 디자인 선진국다운 미의식의 소산이 보였다죠. 그래서인지 다른 국가의 오래된 건물을 박물관화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오르세 미술관처럼 역사적 건물 안에 근현대 미술품을 전시한 의외성이 특징이나, 이 미술관은 고대 조각을 수용했다는 독특함이 돋보입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것이 영원한 디자인 대국다운 면모라고 하네요.

스트로베리힐 빌라

고딕 호러 오트란트 성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이 자신의 고딕 취미를 반영하여 건축한 자택. 당시 기준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잔뜩 집어넣으려 노력한 것 같은데 사진만 보면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느껴집니다. 시대가 많이 변한 탓이겠죠.

긴자 라이온

1934년에 개업한 맥주 마니아의 성지. 건축적인 의미보다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더군요. 사진만 보면 뭐... 그냥 강남 지하에 있는 맥주집 같긴 하지만요. 참고로 이 "긴자 라이온"은 대일본맥주의 직영 맥주홀로 1934년 개장하였으며, 연중무휴로 생맥주 한 잔은 25전이었다고 합니다.

2013/09/19

전쟁의 재발견 - 김도균 : 별점 2점

전쟁의 재발견 - 4점
김도균 지음/추수밭(청림출판)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전쟁을 몇 개의 테마로 묶어서 엮은 전쟁-미시사 서적.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세계사를 뒤흔든 천재적 조직술_ 군대의 재발견
전장에서 꽃피운 사랑―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 ‘신성대’
수천 년 이어온 베트남 저항정신의 상징―고대 베트남의 여성 전사, 쯩 자매
오스만튀르크의 전성기를 구가한 ‘병정개미’―술탄의 친위대 예니체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를 향한 열망―미국 최초의 흑인 부대, 54연대
독일군의 밤잠을 설치게 한 ‘밤의 마녀들’―소련 여성 폭격기 연대
붉은 꼬리의 검은 조종사들―아주 특별한 흑인 비행대대, 터스키기 비행대
소련의 보이지 않는 사단―히틀러도 감쪽같이 속은 소련군의 동원 제도
일본의 피를 이어받아 미군을 위해 싸우다―일본계 2세로 편성된 미군의 442연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소련의 죄수 부대, 형벌 대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도 울고 가다―미국의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전사는 죽어서도 전사다―전사자의 여로
힘들고 지친 병사들의 로망, 핀업걸―전장의 엔터테인먼트

2장. 인류의 문명을 비약시킨 천재적 기술_ 무기의 재발견
세계 대변혁을 일으킨 작은 금속 조각―중세 봉건시대를 연 등자
스멀스멀 피어오른 노란 안개의 정체―영혼 없는 한 과학자의 비극과 독가스
대량 살상을 부른 속도에 대한 열정―보병을 참호 속으로 밀어 넣은 기관총
독일군의 오금을 저리게 한 철갑 괴물―지상전의 왕자, 전차의 탄생
‘크기’가 승패를 가른다―대함거포주의의 산물, 드레드노트
소리 없이 다가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다―해전의 필살 병기, 어뢰
전쟁을 가장 비인도적으로 만든 주인공―숨은 살인자, 지뢰
무인 폭격기, 미사일의 공포―나치 독일의 보복 병기, V-1과 V-2
빗나간 열정이 만든 인류 최대 재앙―현대판 ‘다모클레스의 칼’, 원자폭탄
군견 칩스가 훈장을 빼앗긴 사연―주인을 사랑한 군견의 죄
금강산도 식후경?―군 사기와 직결된 전투 식량의 역사
전장에서는 죽음에도 순서가 있다―야전 의료 시스템의 역사
‘뽕’ 맞은 전사들―전쟁의 우울한 이면, 약물

3장. 극한의 상황에서 꽃피운 천재적 리더십_ 전투의 재발견
한니발, 세계 최강 로마군을 전멸시키다―포위 섬멸전의 교과서, 칸나에전투
포위한 군대가 포위당하다―카이사르의 알레시아 공방전
‘신의 도리깨’, 유럽을 내리치다―유럽인의 황색 공포, 레그니차전투
십자가와 코란, 역사적인 첫 대결을 펼치다―레판토 해전
영국군 역사상 가장 졸렬한 전쟁―무능하기 그지없는 지휘관과 발라클라바전투
아메리카 원주민 최후의 저항―완벽한 승리와 치졸한 복수, 리틀빅혼전투
역사상 가장 값비싼 따귀 한 대―일파만파의 교훈, 타넨베르크전투
외로운 섬을 지켜낸 영국인 ‘최고의 시간’―‘나치 팽창’의 마지막 방어선, 영국전투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승리하다―명절의 허를 찌른 베트남전 구정 공세

4장. 인간을 극한으로 몰고 간 천재적 심리술_ 군가의 재발견
켈트인의 아련한 독립의 꿈―〈스코틀랜드 더 브레이브〉
레드 코트, 줄루 전사들의 창을 꺾다―〈할렉의 사나이들〉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국가―〈라 마르세예즈〉
한 급진주의자의 죽음이 부른 거대한 전쟁―〈존 브라운의 시신〉
파리를 핏빛으로 물들인 코뮌의 슬픈 봄―〈체리가 익을 무렵〉
피어보지도 못한 칠레 민중의 혁명가요―〈벤세레모스〉
영광과 피투성이는 한 끗 차이―〈라이저 위에 피〉
그림자 전사들의 연가―〈발라드 오브 그린베레〉

이렇게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1장, 2장, 4장이 괜찮았어요.

1장에서는 술탄의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의 흥망성쇠를 그린 이야기는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이,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흑인 부대였던 54연대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글로리 - 영광의 깃발"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소련의 형벌부대나 월남전의 미군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등이 인상적이었고요.

2장을 통해 고대 바이킹 전사 베르세르크의 종교 의식에 광대 버섯을 먹인 순록의 오줌이 사용되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광대 버섯의 암페타민이 축적되어 환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데, 중독자들이 들으면 꽤나 솔깃할 정보로 보입니다.

4장은 "군가"라는 주제부터 굉장히 이색적인데, 해당 군가가 발표된 시기와 이유를 상세하게 그리는 시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노예해방론자인 광신자 브라운의 이야기를 다룬 "존 브라운의 시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최후를 그린 "벤세레모스" 등이 그중 마음에 들었고요. "군가"로 보기 힘든 노래가 함께 실려 있다는 점, 그리고 웨일즈의 군가를 다루면서 줄루 전쟁 이야기로 이어지는 "할렉의 사나이들"과 같이 군가와 실제 내용의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약간의 단점은 있지만, 독특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양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유명 전쟁사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3장과 부실한 도판은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도판은 그렇잖아도 부실한데 한 장짜리 이미지를 4장으로 약간의 톤을 조절하여 복사하여 실어놓은 기이한 편집으로 실려 있어서 더 짜증났어요. 딱히 보기 좋은 것도 아니고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 그야말로 삽질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4장 하나만큼은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주제이지만, 전반적으로 자료적인 가치는 낮습니다. 내용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요약되어 있으며, 도판이 부실한 탓입니다. 진지한 전쟁사를 원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짤막하게 심심풀이로 읽을거리로 적당한 책입니다.

2020/02/23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 이상원.장혜경 : 별점 2.5점

그때, 맥주가 있었다 - 6점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지음, 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

유럽의 기나긴 역사에서 맥주가 중요한 대목을 장식했던 이야기들을 선별하여 소개해 주는 독특한 미시사, 음식사, 문화사 서적입니다. 역사 속 맥주가 관련된 특정한 사건을 수 페이지 정도 소개한 뒤, 해당 사건과 관련된 현대의 맥주를 마지막에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된 스물 네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취지에 걸맞는 내용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히 맥주 때문에 역사의 흐름이 바뀐 이야기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어떤 한 장면에서 맥주가 멋지게 등장하거나 활용된 정도를 기대한 정도이지요. 그러나 절반 이상의 이야기가 그렇지 못합니다. 단순히 유럽의 특정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 때는 아마 맥주를 마셨을거다' 정도에 그치는 탓입니다. 

물론 추정 자체는 꽤 그럴싸 합니다. 문제는 사료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조금 맥주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야기들은 단지 등장인물들이 맥주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했거나, 맥주 회사가 관련되어 있는 정도에 그치고요. 예를 들자면 난센의 북극 탐험은 단지 링그네스 양조장에서 탐험 비용을 후원했을 뿐입니다. 히틀러가 맥주집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실각시키고 제국 정부를 수립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역사를 맥주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건 억지고요. 옥스퍼드 대학 문인들이 펍에서 열리는 문학 클럽에 참석하다가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 등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장소가 펍일 뿐입니다. 딱히 맥주와 관련이 있지는 않아요.
바이마르 공화국의 외무 장관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이야기나 체코 대통령 하벨의 이야기는, 그 둘이 술집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는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맥주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시기적으로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 현대까지, 장소로는 유럽 전역을 무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 폭은 상당히 넓고 방대합니다. 덕분에 재미있는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적지는 않은 편이에요. 

맥주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부터 살펴보자면, 30년 전쟁 당시, 목마른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가 농부로부터 맥주를 대접받은 후 커다란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답례로 선사하고,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일화는 명백히 맥주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료로 증명되지는 않은 전설급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전설 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계속 맥주를 만들어 왔으며, 지금의 크로스티츠 양조장은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양조 시설 중 한 곳으로 대표작인 '파인헤르베스 필스너'는 라벨에 구스타브 아돌프의 초상화를 담아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400년 이상 된 전설 속 맥주라니 마케팅으로는 더할 나위 없네요.
1836년, 유럽 대륙 첫 철도 운송 화물이 뉘른베르크 레데러 양조장에서 퓌르트로 보낸 맥주 두 통이었다는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레데러는 현재도 독일 리데베르거 그룹의 계열사로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를 계속 출시하고 있답니다.
파스퇴르가 맥주 양조 분야에서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맥주가 중심입니다. 영국 위트브레드 양조장과 협력하여 최적의 열처리 온도가 섭씨 50~55도라는걸 알아내는 등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맥주에 관한 연구"라는 유럽 맥주 양조인의 경전과도 같은 책을 출간했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그의 맥주 실험의 가장 큰 수혜자는 프랑스가 아니라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양조장이라는게 재미있네요. 결국 칼스버그에서 파스퇴르의 꿈이었던 미생물없는 라거 맥주 효모 배양에 성공했다니 진짜 후계자인 셈입니다.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오줌싸게 소년 동상의 모델은 브라반트 공국의 수장인 어린 고드프리 3세로, 당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어린 나이로 출정했을 때 반란군을 향해 오줌을 싼 게 유래라는 설이 대표적입니다. 이 때, 유모가 맥주를 마시고 수유를 했거나 아니면 실제로 맥주를 마셔서 요의를 느꼈을 거라고 설명하는건 좀 억지스러웠지만, 나름 재미있었어요. 함께 알려주는 브라반트 공국의 중심지 브뤼셀의 전통있는 맥주 '램빅'도 아주 입맛을, 아니 흥미를 돋구고요.
스웨덴의 미식가 전쟁 영웅 요한 아우구스트 산델스 역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었던 인물입니다. 1808년,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에서 벌였던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입니다. 다만 소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맥주 관련된 일화는 없습니다. 러시아 군 보급품을 털었을 때, 맥주도 함께 털었을거라고 추정하는게 전부죠. 그래도 지금 '산델스'라는 이름의 맥주가 산델스가 활약했던 핀란드 양조장 올비에서 양조되어 판매된다니 한 번 마셔보고 싶네요.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는 재미가 덜하지만, 1935년 투르 드 프랑스 경주에서 맥주 탓에 벌어진 순위 변경이라던가, 이탈리아 경제 성장기에 함께 발전한 페로니 맥주의 마케팅 전략, 아일랜드가 무섭게 성장하다가 리먼 사태 등으로 휘청일 당시, 카우언 총리의 기네스 맥주 사랑 등은 기억에 남네요. 특히 폴란드의 맥주 애호가 정당 이야기는 온갖 정당이 창궐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연상케 해서 제일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획 의도대로 완벽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알게된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고, 저자들의 글 솜씨도 유쾌하기 때문이죠. 맥주 한 잔 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맥주 리스트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파는 맥주는 한 개 씩 구입해서 마셔볼 예정입니다.

  1. 생 푀이엥 트리플 St-Feuillien Triple 벨기에 
  2. 칸티용 괴즈 100% 램빅 바이오 Cantillon Gueuze 100% Lambic Bio 브뤼셀 (벨기에)
  3. 아인베커 우어 보크 둔켈 Einbecker Ur-Bock Dunkel 아인베크 (독일) 
  4. 린데만스 파로 Lindemans Faro 블렌제비트 (벨기에)
  5. 우어 크로스티처 파인헤르베스 필스너 Ur-Krostitzer Feinherbes Pilsner 크로스티츠 (독일)
  6. 발티카 No.6 포터 Baltika No.6 Porter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7. A. 르꼬끄 포터 A. Le Coq Porter 타르투 (에스토니아)
  8. 올비 산델스 Olvi Sandels 이살미 (핀란드)
  9.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 Lederer Premium Pils 뉘른베르크 (독일)
  10. 위트브레드 베스트 비터 Whitbread Best Bitter 웨일스의 마고 (영국)
  11. 칼스버그 Carlsberg 코펜하겐 (덴마크)
  12. 링그네스 임페리얼 폴라리스 Ringnes Imperial Polaris 오슬로 (노르웨이)
  13. 그랭 도르주 뀌베 1898 Grain d'Orge Cubee 1898 릴 (프랑스)
  14. 레벤브로이 오리지널 Lowenbrau Original 뮌헨 (독일)
  15.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 Berliner Kindl Weisse 베를린 (독일)
  16. 크로넨버그 1664 Kronenbourg 1664 오베르네 (프랑스)
  17. 그래비타스 Gravitas 브릴 (영국)
  18.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 Spitfire Premium Kentish Ale 파버샴 (영국)
  19. 페로니 나스트라즈로 Peroni Nastro Azzurro 로마 (이탈리아)
  20. 크라코노시 스베틀리 레작 Krakonos Svetly Lezak 트루트노프 (체코)
  21. 지비에츠 Zywiec 지비에츠 (폴란드)
  22. 사라예브스코 피보 Sarajevsko Pivo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23. 기네스 드래프트 Guineness Draught 더블린 (아일랜드)
  24. 하이네켄 Heineken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24/12/15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 에드워드 브룩-히칭 / 최세희 : 별점 2점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 4점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최세희 옮김/갈라파고스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희귀하고 기묘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 사람의 실제 피부로 만들어진 책같이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책들이 가득합니다. 도판이 특히 빼어난 편으로 눈도 즐겁고,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중세와 근대 서양 서적이 중심을 이루지만, 중국의 갑골문과 잉카의 매듭책 키푸 같은 다른 문화권에서 유래된 책들도 포함되어 흥미를 더합니다. 후반부에 소개된 초소형 책들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고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책 "가장무도회"는 책 속의 암호를 풀면 보석 장식의 황금 산토끼가 묻힌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출간 후 3년 뒤 정답자가 나왔고, 황금 산토끼 역시 정말 존재했다는게 밝혀졌지요. 게다가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니, 아주 환상적인 판매 전략이었다 생각됩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크 맥그레이디가 저급하고 선정적인 소설의 인기를 풍자하기 위해 기획한 로맨틱 코미디 소설 "낯선 남자는 나체로 왔다"는 끝없이 섹스 장면만 이어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출판 사기' 섹션은 더욱 흥미로왔습니다. 하워드 휴즈의 자서전을 가짜로 써 수십만 달러 계약을 따냈던 클리퍼드 어빙의 사기 사건이나, 히틀러의 일기를 무려 60권이나 날조한 독일의 콘라드 쿠야우 사건처럼 단순한 출판을 넘어 범죄적 성격을 띤 사례들을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의 구성과 흐름에서 두서가 없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소장하거나 조사한 기묘한 책들을 나름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책의 형태나 제작 방식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습니다.
또 대부분 흥미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서 역사적 맥락이나 책의 의미를 깊이 다루는 내용도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책과 같은 사례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히 기묘한 소재로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분량도 과도하게 할애되어 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희귀한 책을 화려한 도판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소개하지만, 두서없는 구성과 얕은 깊이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비슷한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2019/01/26

위작의 기술 - 노아 차니 / 오숙은 : 별점 4점

위작의 기술 - 8점
노아 차니 지음, 오숙은 옮김/학고재

역사적인 위조와 사기에 대한 논픽션입니다. 유명한 사건 위주로 나열했던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은 위작을 만들고 위조하는 이유를 몇 가지 -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위조를 다룬 "천재성", 작품을 감정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에피소드들이 수록된 "자존심", 미술계와 전문가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위조가 시작된 이야기들을 다룬 "복수", 위조 경력이 밝혀진 후 오히려 부와 명성을 누린 사람들을 다룬 "명성", 순수하게 범죄 목적이었던 사건들인 "범죄", 여러 기회주의자들에게 이용된 딱한 위조꾼이 등장하는 "기회주의", 가장 강력한 동기인 돈에 얽힌 사건들인 "돈", 단순히 미술계가 아닌 정말로 큰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 "권력" 순 - 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당연히 위작을 만드는 방법, 출처를 위조하는 방법 등 위작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를 읽었다면 친숙한 여러가지 방법, 기술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림을 그린다면 상당히 유용할 정보도 많아요. 과거 사용된 카본블랙 잉크는 숯검정에 기름이나 풀, 고무질같은 고착제를 섞어 간단히 만들 수 있다던가, 유명한 위조꾼 헵번이 추천하는 거장의 작품을 베끼기 위한 이상적인 '위조꾼의 팔레트(연백, 옐로 오커, 크롬 옐로, 로 시에나, 레드 오커, 번트 시에나, 버밀리언, 로 엄버, 번트 엄버, 테르 베르데, 순수 울트라 마린, 아이보리 블랙의 12가지)' 같은게 그러합니다.

재미있는 실제 사건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바스키아가 죽기 전 친하게 지내던 마약상 집 철문에 그림을 그리고 얼마 후 죽었는데, 마약상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증받으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스키아 유산 관리 위원회에서는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바스키아의 죽음에 한 몫 했을 마약상에게 큰 돈을 쥐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 컸을거라고 하네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죽은 바스키아를 위해서는 공식 작품으로 인정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한 작품이라도 더 알려지는게 작가에게는 좋은 일일테니까요.
미술계 이외의 유명한 위조, 위작에 대한 소개도 충실해서 하워드 휴즈 자서전 위조나 가짜 히틀러 일기나 토리노의 성 수의 등 다양한 위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콜럼버스 전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증거인 "빈란트 지도"가 위조임이 판명되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다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위조하여 괴링에게 팔아넘긴 반 메헤렌 이야기 같이 다른 유사한 책들에 등장했던 유명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반 메헤렌이 재판에 회부된 후 오히려 괴링을 속였다는걸 실제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증명했으며, 덕분에 '나치 협력자'에서 '괴링에게 사기 친 남자'라는 평판을 얻어 대중의 영웅이 되었다던가, 괴링이 처형 직전에 이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등의 후일담이 실려있는 식으로 디테일이 압도적이라는 차이는 분명합니다. 특히나 사건들에 관련된 도판은 정말이지 다른 유사 도서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강력한 장점이고요.

이렇게 재미와 현학적인 지적 욕구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입니다. 동서고금의 유명 위작, 위조 사건에 대해 통사적으로 훝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 위작가들과 위조품에 대한 일람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로 밝혀진 이야기는 후일담까지 충실하다는 점에서 위작, 위조에 대해 관심있으신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기도 하고요. 번역과 도판, 만들어진 책의 완성도도 최고 수준이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약간 감점한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타 도서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이야기가 제법 있고, 분류도 아주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인데(자존심이고 뭐고 솔직히 돈이 가장 중요한 목적일 테니까요)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2012/01/12

퍼스트 어벤져 - 조 존스톤 : 별점 2점

작년에 개봉했던 마블 히어로 영화입니다. 감상 직후 작성했던 리뷰가 날아가 버린 줄 알고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백업본을 찾아내어 늦게나마 올려봅니다. 줄거리 요약은 필요 없으시겠죠?

이 영화의 두 시간여 러닝타임은 크게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허약하지만 애국심은 넘치는 크리스 에반스가 신기술의 힘으로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과정을 그리는 초반부, 군 홍보 모델에서 벗어나 전쟁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중반부, 그리고 레드스컬과의 최후 결전을 다룬 후반부로요.

이 중 초반부는 제법 괜찮습니다. 허약하지만 애국심이 투철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크리스 에반스의 캐릭터를 여러 에피소드로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유머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반부 이후의 전개는 심각할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레드스컬의 세계 폭격 계획으로 대표되는 지구의 위기가 전혀 실감 나지 않아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에요. 또한, 캡틴의 친구 버키와 덤덤 더간으로 대표되는 용감한 미군 병사들만 있으면 캡틴이 필요 없을 정도로 히드라 군단의 전력이 형편없다는 점도 몰입을 방해했고요. 대단해 보였던 코스믹 큐브와 그에 관련된 신무기들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고, 그런 신무기를 보유하고도 미군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는 히드라 군단을 보고 있으면, 레드스컬이 대체 무엇을 믿고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세계 정복을 꿈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토리가 별로여도 액션이 멋지다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장르이기에 위와 같은 단점이 반드시 결정적인 결함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레드스컬이 명배우가 연기했든 말든, 액션만 멋지면 되는 것이죠. 그러나 기대했던 캡틴의 활약이 부족했기 때문에 액션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병사 수준의 느낌이랄까요? 특유의 방패 던지기 장면 몇 개만 볼 만했을 뿐, 조금 힘이 세고 높이, 멀리 뛸 뿐이라서 과거 홍콩 영화 "동방독응" 같은 작품과 비교해도 더 나은 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캡틴의 액션이 십수 년 전 홍금보, 원표가 보여줬던 액션과 별반 다를게 없다면, 이 영화의 가치가 대체 무엇일까요?

게다가 마지막 레드스컬과 캡틴의 1:1 결투는 정말이지... 휴고 위빙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소모될 캐릭터는 절대 아닌데 말이죠.

밀리터리물과 슈퍼히어로물을 결합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전쟁 장면도 부족했고 액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도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 3점, 중반부 1.5점, 후반부 1점의 평균입니다)

많은 분들의 평가대로, 이 영화는 단순히 거대한 "어벤져스" 예고편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조 존스턴 감독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물인 "로케티어"를 연출한 감독이라 나름 기대했는데,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이 부진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다행히 흥행에는 성공한 듯하지만, "어벤져스"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스토리로 속편이 나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04/11/23

그들의 조국 (Father land) - 로버트 해리스 : 별점 3점


그들의 조국 - 6점 로버트 해리스/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1964년 독일이 유럽에 천년제국을 건설한 시대, 총통 히틀러의 75회째 생일을 1주일 앞두고 베를린 외곽 하벨 호수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에 대해 사법경찰 살인 담당 수사관 사비에르 마르크가 조사를 착수한다. 
시체의 정체는 폴란드 총독부의 고위 관료이자 SS 여단장 출신인 요제프 뷜러 박사로 밝혀지고 그의 수첩에 적혀있던 인물 중 빌헬름 스튜칼트 (내무성 장관 출신) 역시 살해되며 또다른 인물인 마틴 루터 (외무성 차관 출신)는 실종된다. 

 잇달은 과거 고위 관료들의 죽음과 실종 뒤에 모종의 흑막이 있음을 눈치챈 마르크는 살로트 맥과이어라는 미국 여기자와 함께 그들의 과거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스튜칼트의 아파트 비밀금고에서 발견된 스위스 비밀은행 금고의 열쇠로 그 비밀을 알아내려 애쓴다. 
결국 어떤 비밀에 관련된 서류를 가지고 루터가 미국으로 망명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나 루터는 마르크의 눈 앞에서 저격당하고 마르크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데... 

2차대전 관련 저술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Fatherland" 입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전하고 난 뒤 20여년이 지난 1960년대를 다룬 일종의 대체 역사물이죠.  
영국은 일종의 독일 속국이 되고, 처칠과 여왕은 캐나다로 망명가고, 러시아는 남부지방을 잃었지만 계속 동부전선을 유지하여 국지전을 벌이며 미국의 대통령 조셉 케네디는 독일과 일종의 "동맹"(데탕트)을 맺은 1964년이 무대입니다. 
실제 역사물을 보는 듯한 1960년대 승전국 나찌 독일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정말 대단하네요. 여객기는 보잉과 융커스 제트기가 함께 쓰이며 경찰도 군인편제로 제편된 군국주의 전체주의 국가. 비밀경찰 게쉬타포가 은밀히 지배하며 절친한 친구가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비인간적인 독재국가.

하지만 일반적인 대체 역사물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실존인물들과 2차대전 당시의 유태인 학살, 그리고 당시 주독대사였던 조셉 케네디 (존의 아버지죠)의 언행 등에서 유추하여 상상한, 거대한 국제적 음모가 등장하는 전형적 추리 스릴러의 포맷으로 진행됩니다. 특히나 수사 방법에 있어서 경찰 조직 자체가 재편되어 재구성된 사회에서 어떻게 수사를 진행하는 지 꽤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부정축재에 대한 묘사의 상상력도 눈여겨 볼 만 했고요. 
읽고나니 일전에 소개해드렸던 러시아 형사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의 러시아와 흡사함도 느껴지네요.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하는 여러 인물들 및 설정, 특히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겉도는 주인공 (형사라는 직업까지 같은)에 대한 점은 정말 비슷하니까요. (아울러 번역이 좀 엉망인 점도 비슷...) 하지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이나 후속작에 대한 여운을 계속 남기는 렌코 시리즈와는 달리 한편으로 완결된 구조라는 점은 큰 차이점이겠죠. 

불만이 있다면 흥행을 염두에 둔 듯한 미국인 여기자와의 로맨스는 사족인 듯 싶다는 점, 그리고 거대한 음모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인 서류를 너무 쉽게 찾아내는 등 디테일한 수사 과정에서 쉽게 지나간 듯한 부분이 눈에 띄는 점입니다. 아울러 번역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역시 크고요. 

그래도 사소한 불만을 감안하더라도 상상력으로보나 완성도로 보나 대체역사 추리물이라는 흔치 않은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이 작품에 비한다면 아카가와 지로의 "프로메테우스의 딸"이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그야말로 쓰레기죠. 아 이들은 SF던가?) 별점은 3점입니다. 

 조사해 보니 TV용 영화로 제작되어 국내에 "어둠속의 미스테리"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네요. 하하하! (다른건 몰라도 룻거 하우어는 정말 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9/05/08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Vol.20 : 별점 4점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8점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이신 김내성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호입니다.

월간일때 몇번 뒤적이긴 했지만 이전에는 쟝르문학 전문이라도 SF 성향이 좀 강해서 별로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데 이번호는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기획된 특집호더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로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서 반드시 구입할 예정이였지만 형이 먼저 구입했길래 낼름 빌려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김내성 선생님 특집은 총 4편의 단편 및 라디오 방송 대본, 그리고 김내성 선생님의 아들인 카이스트 교수 김세헌의 짤막한 추모담, 김내성 선생님의 일생을 총 망라한 연표, 재일한국인 리켄지의 김내성 선생님의 데뷰 당시 및 해방 후 한국 문단의 분위기를 통해 선생님의 장르문학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역사성 짙은 에세이인 "데뷰시절의 김내성", 마지막으로 전봉관의 경성 스케치 시리즈라 할 수 있는 특집 에세이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만큼만 해도 팬으로서 굉장히 충실한 기분이 들 정도의 많은 분량 (220여 페이지) 이니 정말 대단하죠. 페이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계간지의 위력일까요?

그러나 선생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는 항상 느껴왔던 아쉬움이 남네요. 아울러 추리물도 좋지만 한편 정도는 "비밀의 문" 에 실려있는 류의 변격물 취향 작품을 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려있는 작품을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제일 앞에 실려있는 "탐정소설가의 살인"은 일단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충분합니다. 실제 연극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탐정소설가 "유불란"이 직접 극본을 쓴 뒤, 사건 주요 인물들을 주연으로 연극으로 상영하여 진상을 폭로한다는 설정도 충분히 재미있고요. 그러나 공들인 설정에 비해서 트릭이 조잡하고 결말이 너무나 유치할 뿐 아니라 유불란 탐정이 한마디로 ㅂㅅ으로 등장하기에 도저히 좋은 평을 해 줄 수가 없더군요.
두번째 작품인 "타원형의 거울"은 너무 많이 소개된 작품이라 좀 식상하죠. 물론 선생님의 기념비적인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 빼긴 좀 어려웠겠지만 지도를 새로 그린 것 이외에는 새로운 점이 전혀 없어 지루했습니다.
네번째로 실려있는 "히틀러의 비밀"은 셜록 홈즈 시리즈 "여섯개의 나폴레옹 흉상"을 라디오극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창작의 여지는 거의 없이 번안에 머물고 있어 평가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약간의 창작이 들어간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 등의 요소는 추리물로 보기 힘들정도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한마디로 완성도가 낮습니다.
그나마 세번째 작품인 "연문기담"이 올드미스의 결혼을 위한 독특한 연애-사기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연애편지의 진위에 대한 추리적 요소가 살짝 삽입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트릭이라 하기에는 어렵지만 경쾌한 작품에 양념역할은 톡톡히 해 주거든요. 오헨리 필도 살짝 나는 것이 그간 알고 있던 김내성 선생님 작품과 분위기가 달라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답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의 수준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작품이고, 사실 이번 특집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 만큼이나 실속있는 내용이 가득하고, 추리소설과 추리소설가를 핵심으로 하는 당대 경성에 대한 자료들이라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특집임에 분명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전봉관의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가 제일 좋았던 것 같지만, 그 외의 글들 모두가 유익했다 생각되네요.

이번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김내성 선생님 특집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 중에서 눈여겨 본 것을 꼽아보자면, 먼저 코넬 울리치의 단편 "세시 정각"이 있습니다. 바람난 아내를 징벌하기 위해 아내가 잠깐 집을 비운 틈에 시한폭탄을 장치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서스펜스의 대가 다운 긴박한 상황의 연출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말부분이 너무 진부한 편이라 평작 수준에 머물고 말았네요. 이런 류의 단편은 워낙에 많이 있기도 하죠.
문영의 단편 무협소설인 "혈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적도인 "혈도"에 대한 강호의 소문과 그 소문의 원인을 다룬 짤막한 단편인데 의외의 요소가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문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시장논리가 처음으로 도입된 무협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스테레오 타입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절망과 고독밖에 없는 무림 최고의 살수 - 이 아닌가 싶긴 한데, 셜록 홈즈 스타일 추리소설 창작가로서 할 말은 아니겠죠..^^;;
그 외에는 원사운드의 만화가 괜찮더군요. 신간소개 위주의 짤막한 만화로 그야말로 쉽게쉽게 막 그린거 같은데도 요점을 잘 짚고 있어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인체모형의 밤"은 덕분에 구입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별 4점은 충분히 줄만한 가치가 있는 특집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정도는 눈이 잘 가지 않는 연재물이나 기획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연 다음호를 사게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그나마 잘 나가는 듯 했던 판타스틱이 계간지 전환되었다니 (그리고 지금 보니 절판상태...;;)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추리 문학 전문 잡지의 꿈 역시 저~ 멀리 사라져 가는것 같네요. 1935년 김내성 선생님의 "타원형 거울"에 등장하는 추리잡지 "괴인"이 1만부가 팔리는데, 70여년 뒤의 대한민국은 1만부는 커녕 3천부도 소화하기 힘든 수준의 시장이 되어버렸으니 선생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2016/10/03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 시마다 소지 / 김동주 : 별점 2점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김동주 옮김, toi8.스즈키 쿠미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배우 레오나가 받은 기묘한 펜레터에 흥미를 갖게 된 미타라이는 이시오카와 함께 펜레터에 쓰여진 하코네의 호텔을 찾았다. 목적은 본관 1층 매직룸의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919년, 하코네에 나타났던 "러시아 유령 군함"에 대한 사진과 함께 관련된 괴담을 들었다. 미타라이는 사건이 미국의 안나 앤더슨, 그리고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와 관련되었다는걸 알아냈고, 이후 몇 가지 조사와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시마다 소지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기나긴 연휴를 버티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에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국명 시리즈"류의 작품이라 여겼는데 읽어보니 "아나스타샤 황녀"를 소재로 한 작품이더군요.

자신을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던 미국인 안나 앤더슨은 유명하지요. 안나 앤더슨과 그녀의 미국 정착을 도운 남편 마나한의 비참하고 불행한 말년 - 집은 개와 고양이 배설물로 엉망인데다가 죽을 때까지 이런저런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렸다 - 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안나 앤더슨의 주장과 수수께끼는 이미 많은 매체와 콘텐츠를 통해 상세하게 검증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안나 앤더슨의 주장의 진위는 이미 판명난 지 오래라 이미 쉬어버린 떡밥이기도 합니다. 거의 10년 전 DNA 검사를 통해, 그녀가 로마노프 황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안나 앤더슨이 진짜 아나스타샤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아직 안나 앤더슨 주장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던 2001년 작품이니 이건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잘 알려진 역사 속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재미의 핵심이고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 경쟁, 유사작과 차별화되는 이 작품만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안나 앤더슨 주장 중 가장 큰 맹점인 "왜 러시아어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점입니다. 작중 미타라이의 입을 통해 설명되는 이론으로 '두개골 부상 당시 뇌손상을 입어 특정 언어에 대한 회화 능력을 잃고 극심한 정신병이 생겼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뇌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만큼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안나 앤더슨이 앓았던 정신병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되고요.
하지만 미타라이가 소설 속에서 강하게 주장한 "뇌의 모국어 담당 영역이 손상되고 외국어 담당 영역이 무사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는 것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전례가 없는 뇌손상이 가능했을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요. 뭐, 소설 속 재미있는 가설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네요.

이것뿐만이 아니라 아나스타샤가 어떻게 러시아에서 탈출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신선했습니다. 바로 제목인 "러시아 유령 군함"입니다. 소설 속에서 1919년 하코네 호수에 나타난 러시아 군함을 의미하죠. 정체는 당시 존재했던 도르니에의 거대 비행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물에서 뜨고 내릴 수 있고,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등 나름 조건에 부합합니다. 게다가 날개, 프로펠러만 뺀다면 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것도 맞고요. 여러모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탈출 시 제공된 로마노프 황제의 금괴를 이용했다는 설명도 그럴듯 했고요.

그러나 전개상의 헛점과 억지가 상당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아나스타샤가 감금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어떻게 탈출하였는지는 정작 설명되지 않는 게 대표적입니다 구라모치와 독일로 향한 후 베를린에서 갑자기 착란을 일으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 역시 엉터리고요. 히틀러가 환영했다는데 자살 소동을 벌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러한 설정 구멍 전부를 정신 이상을 내세워 해결하려 한 건 여러모로 모양이 빠지고요.

또 아나스타샤와 황제 가족에게 닥친 잔인했던 능욕의 현장 묘사는 불필요했으며, 이후 아나스타샤가 성폭행으로 잉태한 아들이 일본에서 아나스타샤와 사랑에 빠졌던 일본군인 구라모치에게 입양되어 '네무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작중 설정대로라면 네무리가 로마노프 가문의 정통 후예임은 분명한 만큼, 당연히 일본 정부에서 관리했어야 하잖아요? 홀로 남은 러시아 황녀가 일본군인 구라모치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왜 미타라이 시리즈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미타라이가 다국어에 능통한 데다가 뇌과학 전문가, 그리고 직접 로마노프 왕가 유골 발굴까지 참여했다는 등 설정 비약이 너무 심하고, 이시오카 역시 정말 하는 게 없으니까요. 이럴 바에야 일본인은 일본 현지 후지야 호텔의 러시아 유령 군함 괴담과 사진을 미국 저널리스트 제레미에게 연결시키는 정도의 역할 정도만 수행하고, 제레미가 모든 것을 밝혀내는 전개의 스탠드 얼론물로 그려내는게 더욱 깔끔하고 보기도 좋았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시리즈에 욕심을 낸 탓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요약하자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 속 미스터리를 기발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은 인상적이기는 합니다. 설득력이 아주 높다거나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배울 게 많거든요. 그러나 단점이 너마누다ㅗ 명확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역사 속 미스터리를 다룬 "진리는 시간의 딸"이나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실제 사건을 변주한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등 쟁쟁한 미스터리 실화소설 경쟁작에 비하면 완성도도 턱없이 부족하며,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이야기라 지금 읽기에는 시효가 다 되었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긴 하였으나 이러한 이유들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