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토머스 H 쿡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토머스 H 쿡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0/05/29

밤의 기억들 - 토머스 H 쿡 / 남명성 : 별점 4점

밤의 기억들 - 8점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시작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50년 전 일어났던 한 소녀의 살인사건을 재구성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범죄소설작가 폴 그레이브스가 사건의 현장이기도 한 부유한 별장지 리버우드에서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내용으로 "심문"의 토머스 H 쿡 작품입니다. 50년 전의 페이예 살인사건과 더불어 그레이브스의 소년 시절에 있었던 누나 그웬의 잔인한 살인사건이 회상 형식으로 겹쳐져 진행되는데, 46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문"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장편의 힘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네요.

먼저 50년 전 페이예 사건부터 살펴본다면, 범행이 실제로 가능했던 용의자는 한 줌도 안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용의자에게 타당한 동기를 부여하고 용의자별로 상세한 수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것이 대단합니다. 또한 트릭이 등장하고 단서들이 앞부분부터 교묘하게 배치되어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특히 사소한 단서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많아서 정말 쉴 틈 없는 짜임새를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주요 사건인 그레이브스 사건의 경우는 이야기 전개 상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주로 그레이브스가 페이예 사건을 수사하면서 떠올리는 심리 묘사를 통해 전개되죠. 이러한 전개는 본편의 수사 과정과 다른 심리 스릴러스러운 맛을 전하면서도 페이예 사건의 전개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건드리는 맛이 정말 탁월하더군요. 아울러 제대로 된 반전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에 반전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반전이 작품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고 있어서 결말 역시 아주 깔끔합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아쉽습니다. 일단 미국의 유서 깊은 가문의 별장지에서 벌어진 사건이 2차대전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의학 실험과 연관되어 있다는건 터무니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의학 실험에 비교하면, 꽃의 교잡 실험이라든가 의학에 관심이 있다는 수준에 그친 복선은 너무 미미했습니다. 워런 데이비스와 그로스먼이 나치 독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전혀 설명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페이예라는 소녀에게 이런 몹쓸 실험을 가해야 했을 타당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지역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워런 데이비스의 영향력이라면 뒤끝 없었을 희생양을 골라내는 것이 가능했을 텐데, 왜 딸의 친구이기도 한 이웃 소녀를 골랐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워런 데이비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표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한데, 조금만 더 설명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도 수사와 단서가 잘 결합된 수사물이면서도 여러 가지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소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문학적 성취를 이룬 듯한 미국의 오래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뛰어난 심리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전개는 "앵무새 죽이기"의 추리물 버전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리 추리 스릴러 장편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 아직 읽어보지 못하셨다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2013/05/21

붉은 낙엽 - 토머스 H.쿡 / 장은재 : 별점 2.5점

붉은 낙엽 - 6점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고려원북스

한때 부유했지만 몰락한 전제군주 아버지,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알코올중독자 형, 암으로 단명한 여동생으로 구성된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사진관을 운영하며 가족을 일군 에릭에게 어느 날 닥친 뉴스. 그것은 전날 아들 키이스가 베이비시터로 돌본 아이 에이미가 실종되었다는 뉴스였다.

토마스 H. 쿡의 장편 스릴러. 작가의 대표작 중 한편입니다. 제가 접했던 작가의 전작 "심문", "밤의 기억들"과 비교해보면, 심리묘사 중심의 스릴러라는 점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만의 차별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은 그야말로 '일상계 스릴러'라고 명명해도 될 정도로 현실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입니다. 유괴 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에릭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그와 가족들이 관련된 소소한 일들 뿐이거든요. 무지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작가의 묘사력도 여전합니다. 자긍심 없는 청소년인 키이스와 그러한 아들을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 에릭의 모습은 디테일이 정말 뛰어납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로서 공감 가는 점도 굉장히 많았고요. 특히 극한의 상황에서의 심리 묘사는 정말 제대로였습니다. 탈출구 없이 꽉 막힌, 작중에서 표현되듯 '불길 가득한 방 안에서 덫에 치인 느낌'이 정말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좀 쉽게 비유하자면 "도막묵시록 카이지"의 카이지의 심리를 소설로 쓰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일단 설정이 너무 뻔해요. 범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절친한 가족에게 닥친 의심을 벗기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흔하니까요.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현실에 널려 있기도 하고요. 촌구석이지만 단란했던 가족, 커뮤니티가 하나의 사건으로 붕괴하는 과정의 치밀한 묘사 역시 "심플 플랜" 쪽이 더 낫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너무 많아요. 전제군주였던 에릭의 아버지가 사업 실패 전에 고려했던 계획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왜 그 계획을 중지했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머니 사고의 진상 및 그녀가 보험을 가입한 이유 역시 아버지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고요. 에릭의 아내 메러디스가 불륜을 정말 저질렀는지, 아니면 형 워렌이 정말 소아성애자였고 제니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는 이야기만 벌려 놓을 뿐입니다.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대충대충 넘어가는 게 현실적이라는건 동의합니다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짜증만 났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이 정말 너무 아니더군요. 유괴 사건이 밝혀지는 게 키이스가 아버지 에릭과의 깨졌던 신뢰 관계를 어렵게 회복한 직후, 피자 식당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담배꽁초를 통해서였다는 상황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결국 모든건 피해자 집에 마지막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부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의 실수에 불과하다는 결말도 잘 짜여진 스릴러로 보기 어렵게 만들고요. 유괴 피해 아동의 아버지 빈스가 저지르는 키이스 저격과 자살도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딸이 어디 갔는지 행방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총질부터 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는 안 됐어요. 상식적이라면 키이스를 납치해서 진상을 알아낼 때까지 고문하는 게 답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한 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은 역시나 대단하지만, 그만한 알맹이와 가치가 있냐 하면 속 시원히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라도 더 치밀하고 더 극적인 "심플 플랜" 쪽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0/03/25

심문 - 토마스 H 쿡 / 김시현 : 별점 2.5점

심문 - 6점
토머스 H. 쿡 지음, 김시현 옮김/시작

8세 소녀 캐시 레이크가 살해되고 근처에 살던 부랑자 제이 스몰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앞으로 12시간 뒤에는 결국 풀려날 예정으로 경찰청장 프랜시스와 부하 버크 반장은 마지막 실마리라도 잡아보기 위해 12시간 동안의 최후의 심문을 준비한다. 심문을 맡은 형사는 앞서 어려운 사건을 심문으로 해결해 온 노먼 코언과 잭 피어스 형사 컴비였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에드가상 수상작가 토마스 H 쿡의 장편입니다. 이야기는 12시간 동안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강력계 형사들의 심문과 수사,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교차된 묘사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각 등장인물별로 시간에 따라 세밀하게, 다양하게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는 일견 흥미롭지만 사실 교차없이 등장인물별 이야기만 따로 모아서 읽는다면 정말로 별게 없습니다. 단지 복잡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저만해도 다 읽고나서 심문실 부분만 따로 다시 읽어보았는데 훨씬 이야기가 명료하게 전개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또한 복잡한 이야기들 중 몇개의 이야기가 흘러가며 하나의 줄기로 합쳐지기는 하는데 벌려놓은 것에 비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스몰스가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으며 아이들 그림은 왜 그리는지, 버크반장의 아들 스코티는 뭘 파묻었는지, 스팃이 그 애를 쫓아가서 어떻게 했다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며 마지막 스몰스의 자살 역시 그 이유가 석연치 않거든요. 때문에 이야기는 복잡하게 벌려놓았음에도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추리적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죠. 복잡해지기만 했을 뿐 결국 심문 과정에서의 스몰스의 증언이 핵심적인 내용을 모두 전달해 주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약간의 트릭이 있긴 하지만 추리소설 초창기부터 반복되어 왔던 트릭의 일종이기에 (일종의 투명인간 트릭입니다) 그닥 새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애시당초 스몰스가 범인에 대해서 제대로 증언하지 못하는 이유가 등장하지 않아서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쓰레기 청소부 에디 이야기가 초반부부터 주구장창 많이 나와서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죠.

1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그럴듯한 상황 설정과 굉장히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함께 수사 과정도 합리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 묘사력은 작가의 내공의 깊이를 느끼게는 해 줍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추리소설적인 가치가 높아 보이지는 않아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한마디로, 평범하고 무난한 평작이라 생각되네요.

2017/12/25

죽이는 요리책 - 케이트 화이트 엮음 / 김연우 : 별점 2점

죽이는 요리책 - 4점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라의눈

MWA (미국 추리 작가 협회) 에서 소속 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시피를 추천받아 모아 놓은 요리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 속 요리"라는 주제로 글을 조금 쓰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겨 구입했습니다.
구입 전부터 "요리"와 "추리 소설" 에 관련된 글들은 아니고 단순한 레시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별로 큰 기대도 없었고요. 

역시나, 책은 유명 작가들이 짤막한 레시피 소갯글과 함께 레시피를 실어 놓은게 전부라 딱히 언급할 내용이 많지는 않네요.
오히려 책의 성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의뢰를 받았다면 최소한 제 작품, 자기 작품에 등장했던 인상적인 레시피를 소개했을 겁니다. 루이즈 페니의 "마담 브누아의 투르티에" 처럼 말이지요. 루이즈 페니는 자신의 작품 속 묘사와 함께 투르티에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 불과하긴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작품 속에는 등장하는 소재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특기 요리" 라던가, "내 시리즈 탐정이 즐겨 먹음직한 요리"라면서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레시피들이 실려 있는 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울러 "MWA" 소속이지만 지명도가 떨어지는 작가들이 많다는 점도 책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전부 110명의 작가가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제가 이름을 들어보았거나 한 권이라도 책을 읽어본 작가는 15명이 채 안 됩니다. 제가 그래도 추리 소설을 꽤 읽은 편인데 이 정도라면, 아마 일반 독자분들은 한두 명(리 차일드나 제임스 패터슨, 길리언 플린 정도?) 알 정도겠지요. 유명 작가의 레시피라면 팬심으로라도 구해 볼지 모르겠는데 이름을 알 만한 작가조차 적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모로 흥행하기 힘든 책이겠구나 싶습니다. 

또 레시피들의 거의 대부분이 "오븐"을 필요로 해서 집에서 해 먹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도 많고요. 토머스 H. 쿡의 "채식주의자 칠리 프롤로그" 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데 "초리조" 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존 매커보이의 "파산자의 굴라시" 처럼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레시피도 제법 되니까요. 파산자의 굴라시는 제일 먼저 간 쇠고기를 양파, 피망과 함께 냄비에 볶은 후 마늘 소금으로 간합니다. 국수를 알 덴테 직전까지 삶아 쇠고기, 채소를 볶은 냄비에 넣고 토마토 소스도 넣은 후 뚜껑을 연 채 약한 불에 15분 정도 끓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케첩을 넣어 잘 섞으면 완성입니다. 맛있어 보이죠?
또 "베이커 가의 음식 사냥개"라는 제목으로 홈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소개한다던가, "당신의 정원에 있는 예쁜 독"이라는 제목으로 일상 속 독초를 소개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실린 몇 가지 팁들은 무척 반가웠습니다. 책도 만듦새는 아주 좋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유명 작가가 되면 몇 줄의 레시피 소개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수록 작가 중 누군가의 굉장한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25,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2007/01/19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2007년판 - 독자 투표를 통한 진정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순위

2005년 판에 이어 1년 건너뛰고 포스팅합니다.

국내판, 즉 일본 창작물 1위는 생전 처음 보는 호러 전문 작가의 단편집인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고, 해외 1위는 로리 린 드라몬드라는 여성 작가의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로 한다"라는 중단편집으로 이번 시즌에는 단편집이 많네요. 작년부터의 유행이었다는데 단편 팬인 저같은 독자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기도 합니다.

일단 국내판 목록을 살펴보면 오랫만에 돌아온 신쥬쿠 상어가 눈에 띄고 오츠 이치와 노리즈키 린타로의 쥬브나일 쟝르라 하는 아동용 "미스터리 랜드"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온 책 두권,  "총과 쵸콜렛"과 "괴도 그리핀 절체 절명"이라는 책이 관심이 가네요. 아동용 괴도물이라고 하는데 쉽고 유쾌하게 읽을 거리가 요새 땡기기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판매 순위로는 교코쿠 나츠히코, 이사카 고타로, 오사와 아리마사,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모리 히로시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교코쿠와 이사카, 미야베, 모리 히로시는 작품 자체는 별로인지 언급이 별로 없군요.
해외판에서는 2위를 차지한 제프리 디버의 첫 단편집 "크리스마스 프레젠트"와 아담 파우어라는 작가의 스릴러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하다라는 장편이 굉장히 기대가 되며 신쥬쿠 상어처럼 간만에 보는 해리 보슈 시리즈 신작 "천사와 죄의 거리"도 반갑네요. 또 데이비드 알렉산더라는 단편집 붐에 힘입어 새롭게 발굴된 작가의 단편집 "교수인 1다스"라는 책 역시 구해보고 싶고요.

기존 시즌과 같이 작가들 인터뷰 역시 풍성한데 이번에는 신쥬쿠 상어의 오사와 아리마사 인터뷰가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인 평이 이번에 발표한 신쥬쿠 상어 시리즈 "랑화"를 굉장히 높이 쳐 주고 있는데 확실히 괜찮긴 한가 보더군요. 신쥬쿠 상어 자체는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만...
또 다른 시즌과는 달리 내년의 20주년 기념을 위한 복면 좌담회, 과거 18년 동안의 베스트를 뽑는 게스트들의 좌담회가 특히 좋았습니다. 해당 목록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내년의 20주년 기념호는 꼭 사봐야 겠더군요. 독자 투표를 통해 20주년 기념호에서 독자가 선정한 진정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는다니 말입니다.

마지막의 "바가미스 (바보미스)" 베스트는 역시나 폭소! 얼마전 읽었던 황당 개그만화 아사리 요시토오의 "소녀탐정 가네다 하지메의 사건부"가 만화부분 베스트로 당당히 선정되어 있기에 다른 책들도 얼마나 황당한지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여간 역시 추리 강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풍성하고 알찬 기획서라 생각됩니다. "국내판"이라는 챕터가 따로 존재하며 그 안에 포함되는 작품의 수가 어마어마 하다는 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고요. 우리나라도 빨리 추리 강국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다시금 생깁니다.

국내판 :

1. 신쥬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3. 망량의 상자 - 교코쿠 나츠히코
4. 백야행 - 히가시노 게이코
5. 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카오루
6.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카오루
7.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8. 동기 - 요코야마 히데오
9. 베를린 비행지령 - 사사키 조 (국내 미출간)
10. 쌍두의 악마 - 아리스가와 아리스 / 화이트 아웃 - 신보 유이치

해외판 :

1. 양들의 침묵 - 토마스 해리스
2.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3. 본 콜렉터 - 제프리 디버
4. 무죄추정 - 스콧 터로우
5. 밤의 기억 - 토머스 H 쿡
6. A Dance at the Slaughterhouse - 로렌스 블록 (국내 미출간)
7. A Cool Breeze on the Underground - 돈 윈슬로우 (국내 미출간)
8. 블랙 아이스 - 마이클 코넬리
9. 블랙 달리아 - 제임스 엘로이
10. 소년시대 - 로버트 매캐먼 / eleven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국내 미출간)

2019/08/18

라스트 차일드 - 존 하트 / 박산호 : 별점 3점

라스트 차일드 - 6점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년 전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인 앨리사가 실종된 이후 조니의 가족은 풍비박산났다. 앨리사 실종을 남편 탓이라 여긴 엄마 캐서린 때문에 아빠는 집을 나가버렸고, 마을의 실력자인 켄은 그 틈을 노려 엄마를 마약 중독자로 만든 뒤 엄마와 조니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조니는 이런 고난을 피하기 위해 책에서 읽은 인디언 주술에 의지하며 홀로 군 전체를 돌며 앨리사 찾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조니 앞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하는데 그는 죽기 전 "내가 그녀를 찾았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앨리사라고 생각한 조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비스의 집으로 숨어드는데...

최근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대부분 완성도가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최근 평이 가장 좋은 듯한 작품을 골라보았습니다. 사실 미국산 장편 범죄 스릴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런데 다행히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꽤나 긴 분량이지만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만한 요소가 많은 덕분입니다. 조니와 엄마 캐서린에게 닥친 불행과 사건 수사 현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만 지나면 곧바로 온갖 사건이 이어지기도 하고요. 데이비드 윌슨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죽는데 죽기 전 조니에게 실종된 아이를 보았다고 말한 사건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흑인 레위 프리맨틀의 등장, 또다른 소녀의 실종, 조니가 몰래 유력한 용의자 자비스의 집에 잠입하다가 죽을 뻔 하는 등 강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거든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죽는 사람만 해도 무고한 목격자였던 데이비드 윌슨과 연쇄 어린이 납치 살해범인 자비스와 미첨, 조니 가족을 괴롭히던 켄 홀웨이, 순수한 신의 사자 레위 프리맨틀까지 무려 다섯 명에 이를 정도이며 전개도 그만큼 긴박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분도 명확하며,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깔끔하며 권선징악을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를 무대로 현대적이고 성인 대상의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의 모험"을 그려낸 듯한 묘사들도 인상적입니다. 인디언 신앙을 추종하여 독수리 깃털 등의 부적을 손수 만드는 조니는 곧바로 톰 소여를 떠오르게 합니다. 동생을 찾기 위해 미지의 장소인 허쉬 아버로 떠나는 모험에 유일한 친구 잭과 함께 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조니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디테일도 좋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처해 있지만 그걸 이겨내는 소년의 심리 묘사는 정말로 발군이에요.

그러나 범죄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작위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강한 탓입니다. 데이비드 윌슨이 조니 앞에서 유력한 증언을 남기고 죽은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실종된 소녀의 시체를 발견했다가 살해당하는 피해자가 실종된 소녀의 오빠를 죽기 직전에 만난다? 지나친 우연입니다.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에게 죽을 뻔 했을 때 납치되었던 소녀 티파니가 마침 탈출해서 자비스를 쏴 죽인다는 상황도 완벽한 우연과 행운이며, 조니가 잭과 함께 허쉬 아버로 향했다가 레위 프리맨틀을 만난 것도 우연입니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레위가 켄을 죽이고, 잭이 레위의 말을 듣고 앨리사 실종 사건의 전말을 조니에게 털어놓는 결말도 이루어지지 않았을테지요.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건, 잭이 레위의 "No crows"라는 말을 듣고 앨리사 시체가 숨겨진 '노스 크로제 광산'을 떠올리는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스 크로제'를 약자로 '노. 크로즈'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원어민이라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차라리 "No crows"에서 '크로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게 더 와 닿았을 것 같네요.

또 경찰이 한심할 정도로 하는게 없습니다.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가 죽은 것, 탈옥수 레위 프리맨틀을 발견한 것, 앨리사 실종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것 모두 조니의 활약 덕분입니다. 경찰이 유일하게 추리력을 발휘하는 건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의 공범이 '경찰' 이라고 착각한걸 토대로 '경비원'인 미첨이 범인이라는걸 알아채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경찰인 크로스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앨리사를 차로 치어 죽인 아들을 위해 시체를 유기한 앨리사 실종 사건의 협력자이자 데이비드 윌슨 살인범이기까지 합니다! 그가 시체만 유기하지 않았어도 조니의 아버지도 죽지는 않았을테고 가족도 풍지박산은 나지 않았을테니 조니 시점에서는 모든 사건의 원흉입니다. 심지어 조니의 유일한 친구인 아들 잭을 협박해서 조니에게 진상을 말 못하게 하고, 궁지에 몰린 잭이 아버지 살인 미수까지 범하게 만드니 작품 최고의 악질입니다. 이래서야 경찰은 없는게 더 나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레위 프리맨틀이 켄을 죽인게 일종의 기적처럼 묘사되며, 이 모든게 조니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근저에 깔려있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구태여 넣을 필요없는 완벽한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풍은 다르지만 토머스 H 쿡의 작품들이 떠오를 만큼 재미와 문장력을 모두 갖춘 좋은 작품이기는 합니다. 추리적으로 별 볼일 없기 때문에 약간 감점하지만, 이 정도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되네요.

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든 도트문더는 정직하게 게임을 해서 240달러 정도를 땄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했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부탁했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이었다.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하는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답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했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앨런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겨 왔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데...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났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두는데...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했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파티를 가지게 된 렉시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