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 -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고려원북스 |
한때 부유했지만 몰락한 전제군주 아버지,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머니, 알콜중독자 형, 암으로 단명한 여동생으로 구성된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사진관을 운영하며 가족을 일군 에릭에게 어느날 닥친 뉴스. 그것은 전날 아들 키이스가 베이비시터로 돌본 아이 에이미가 실종되었다는 뉴스였다.
토마스 H. 쿡의 장편 스릴러. 작가의 대표작 중 한편입니다.
제가 접했던 작가의 전작 <심문>, <밤의 기억들>과 비교해본다면 심리묘사 중심의 스릴러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작품만의 차별화되는 요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은 그야말로 '일상계 스릴러'라고 명명해도 될 정도로 현실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겠죠.유괴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에릭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그와 가족들이 관련된 소소한 일들 뿐이라는게 무지하게 현실적이었거든요.
작가의 묘사력 역시도 여전해서 자긍심없는 청소년인 키이스와 그러한 아들을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 에릭의 모습은 디테일이 정말 죽음입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로서 공감가는 점도 굉장히 많았고 말이죠. 또 극한의 상황에서 심리묘사는 정말 제대로 표현되어 있어요. 탈출구 없이 꽉 막힌, 작중에서 표현되듯 '불길 가득한 방 안에서 덫에 치인 느낌'이 정말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좀 쉽게 비유하자면 <도막묵시록 카이지>의 카이지의 심리를 소설로 쓰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일단 설정이 너무 뻔해요. 범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절친한 가족에게 닥친 의심을 벗기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죠.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현실 속에 널려있기도 하고요. 촌구석이지만 단란했던 가족, 커뮤니티가 하나의 사건으로 붕괴하는 과정의 치밀한 묘사 역시 <심플 플랜> 쪽이 더 나아보였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너무 많아요. 전제군주였던 에릭의 아버지가 사업 실패 전에 고려했던 계획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왜 그 계획을 중지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어머니 사고의 진상 및 그녀가 보험을 가입한 이유 역시 아버지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며, 에릭의 아내 메러디스가 불륜을 정말 저질렀는지, 아니면 형 워렌이 정말 소아성애자였고 제니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는 이야기만 벌려 놓았을 뿐 뭐 하나 속시원하게 밝히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대충대충 넘어가는게 현실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는 부분이었어요.
게다가 마지막이 정말 너무 아니더군요. 유괴사건이 밝혀지는게 키이스가 아버지 에릭과의 깨졌던 신뢰 관계를 어렵게 회복한 직후 피자 식당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담배꽁초를 통한다는 지나친 작위성부터 문제지만 피해자 집에 마지막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부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의 실수에 불과하다는 결말이라서 잘 짜여진 스릴러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유괴 피해 아동의 아버지 빈스가 저지르는 키이스 저격과 자살 역시도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딸이 어디갔는지 행방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총질부터 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는 안됐어요. 상식적이라면 키이스를 납치해서 진상을 알아낼 때 까지 고문하는게 답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을 한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은 역시나 대단하지만 그만한 알맹이와 가치가 있냐 하면 속시원히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어요.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라도 더 치밀하고 더 극적인 <심플 플랜> 쪽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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