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아 망해라 - 윤효정 지음, 박광희 엮음/다산초당(다산북스) |
19세기 말~20세기 초 조선의 현실에 대해 당대 문신이었던 윤효정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쓴 "풍운한말비사"를 편역한 책. 잠깐 찾아보니 고영근을 시켜 우범선을 살해하게 만든 인물이더군요. 이전에 읽었던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에 나오는 이야기죠.
장점부터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디테일! '한말'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대한 세밀한 설명이 정말 압권입니다. 여러 인물과 주요 사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물론 세간의 소문, 가십까지 집대성하고 있거든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착취 방법 '마다리'(돈을 뜯어낼 만한 부자에게 어떤 직책에 임명되었다고 전하며 막대한 금액을 요구하면, 부자가 돈이 없어 직책을 '마다'한다는 청원을 넣으며 원래 요청 금액의 일부만 바치는 행동), 위선자 홍영식의 해룡 털가죽 이야기 등이 있겠죠. 하여간 아첨꾼들과 탐관오리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어요.
중반 이후부터는 흥선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주요 사건들이 소개되는데,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임오군란, 아관파천, 갑신정변, 청일전쟁 등 주요 사건 및 관련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당시 인물의 시각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고종 및 순종 등 왕가와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꽤 괜찮은 편이고, 민비(명성황후)에 대한 냉소적이며, 김옥균을 대역죄인으로 보는 견해는 역시 어쩔 수 없는 당대 선비구나 싶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이겠지만 동학운동, 을미사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는 등 주요 인물과 사건을 많이 생략했다는 점, 그리고 내용의 많은 부분이 소문에 기대고 있어 의미 있는 미시사 서적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원제인 "풍운한말비사"에 비해 자극적이면서도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편역본 제목도 불만입니다.
또한,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명기하는 것은 최근 편역된 책이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역사책으로서의 기본이 안 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생생한 당대 인물의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원제 그대로 풍운한말비사를 느끼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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