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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붉은 손가락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년 가장 아키오는 어느날, 아내 야에코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서둘러 귀가했다. 그리고 정원에서 어린 소녀의 시체를 발견했다. 범인은 중학생인 아들 나오미였다. 다급히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아키오는 시체를 버렸지만 곧바로 들통났다. 거듭되는 수사에 큰 압박을 느낀 아키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범인으로 내세우는 폐륜을 저지르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 최근 가가 형사 시리즈를 주로 읽는 이유는 도서관 탓입니다. 회사 근처에 생겨 자주 이용하게 된 도서관이 소설류는 책장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자료는 빈약한데, 가가 형사 시리즈만 이상하게도 전권이 있더라고요. 사서분 취향이겠죠. 덕분에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 비교적 최신작으로 2007년도 고노미스 9위를 차지 했었습니다. 3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으로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깝습니다. 원래 단편으로 발표된 작품을 개작했다고 하는군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일본 현대 사회 문제점을 대변하는 마츠우라 집안에 대한 묘사입니다. 고부간의 갈등과 가사, 가정 교육 모두를 아내에게 맡기고 바람까지 피우는 무신경한 아버지, 시가에 애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머니, 왕따를 당한 뒤 극도의 이기적 성향을 보이는 아들, 거기에 치매에 걸린 할머니까지! 겉보기에만 정상일 뿐 썩을 대로 썩은, 더 이상 가정이라고 부를 수 없는 가정 묘사가 정말이지 아주 빼어나요.
아울러 콩가루 집안 묘사는 극도의 개인화를,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사는 문제는 노령화를, 그리고 어머니의 치매를 이용하여 아들의 범행을 덮으려 하나 정작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세대 간 단절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반전은 정말 대단합니다. 몇 년간 함께 산 가족이 어머니의 치매 여부도 모르다니!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막장 패륜 범죄 드라마가 더 그럴싸한 얼개와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네요.

이렇듯 현대 일본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발하고 있는 병폐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선이라는 점에서 더 무섭더군요.

그리고 아들 나오미 캐릭터가 상상 초월의 비호감이라 읽는 내내 짜증남과 동시에 소년범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확신이 또다시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놈이 커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 같지도 않거든요. 끽해야 여든살 아버지를 살해한 쉰살 (실제로는 49) 히키코모리처럼 살게 될 테니 차라리 감방 속에서 사회생활이라도 익히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놈이 마지막에 가가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나와 체포되는 장면은 아주 좋았습니다. 멱살이 아니라 쌍욕을 하면서 작살을 내 버렸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요.

여튼,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 단점도 명확합니다. 추리적으로 별로라는 겁니다. 그간의 가가 형사 시리즈는 트릭 측면에서, 아니면 와이더닛 계열로 추리적인 완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최초 범행을 근처 주택 거주자로 특정하고 용의자를 짚어낸 가가의 추리는 볼 만하고, 범인이 먼저 밝혀진 뒤 여러 가지 범인의 계획을 독자에게 먼저 알려주는 식으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띤 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던 반전도 대단하고요.

그러나 피해자가 확인한 e-mail을 추적했다면 진범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니 마츠우라의 계획은 그냥 약간의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전혀 드라마가 될 수 없죠. 또 어머니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인 "붉은 손가락" 역시 별 의미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본인 스스로 아들이 계속 자신을 범인으로 몰면 진상을 고백할 심산이었으니까요.

어머니가 치매가 아니었다는 것을 가가가 알게 된 것이 "눈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등, 극적 반전과 관련해서는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것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너무 무거워서 읽기 편한 작품도 아니고 추리적으로 별로라 감점합니다만 사회파 미스터리로 기본은 해 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긴 하니까요. 제 경우에는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가 얼마 전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요양원에 모시긴 했지만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은 정말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가가 형사에 대한 묘사도 꽤나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가가의 아버지를 지극히 생각하는 사촌동생 마츠미야가 등장해서 가가와 컴비를 이루어 수사를 펼치고, 가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꽤나 굵직한 개인사가 펼쳐지죠.

그런데 가가의 아버지가 가가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어머니는 찾아올 사람이 찾지 못해 홀로 죽어갔지만, 찾아올 사람이 있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는 건 그것 때문에 자식이 먹을 욕을 생각하지 않은 자기 욕심에 불과합니다. 아버지의 유언 대신이라면 저도 따르기야 하겠지만 이런 억지 외로움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안 되는데 마츠미야는 된다? 무슨 기준인건지 모르겠네요.

2023/07/29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우타노 쇼고 / 이연승 : 별점 2점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우타노 쇼고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 이런 류의 기획물은 그리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원작을 이야기와 별 관계없이 무리하게 집어넣는 등 억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상관없는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의자? 인간!>>
인기작가 스즈카는 창작 동반자였던 아키히로를 차버리고 부유한 간부급 공무원 하라구치와 결혼했다. 아키히로에게서 사람을 써서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5년 뒤, 아키히로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5년간 그가 어떻게 복수를 계획하여 실행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즈카의 소파 속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고, 스즈카가 문자를 보내자 정말로 소파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인간 의자>>에서 따 온 이야기. 의자 안에 남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을 따왔고, 비현실적인 인간 의자 제작과 안에 들어가는 과정,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원작에서 인간 의자가 변태의 집요함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여기서는 복수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즈카가 궁지에 몰리는 심리 묘사도 범인의 서간문으로만 이루어진 원작과의 차이점인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말로 이르는 빌드업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다만 진상, 그리고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아키히로는 의자에 여벌 휴대폰을 넣어놓고 전화를 걸면 진동이 오게 했을 뿐으로 실제로 안에 들어가 있던건 스즈카의 남편 하라구치였다, 그래서 아키히로가 의자 안에 있다고 굳게 믿은 가즈키가 의자를 난도질해서 하라구치는 죽고 말았다는건데 억지스럽고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키히로가 "나를 죽이세요"라는 메시지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스마트 폰 속 여자와 여행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괴담물 (?). 현대 문명의 이기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일종의 다른 세계(사후 세계?)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는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해서 죽여버린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인공지능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킨다는 설정도 꽤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설정을 빼면 <<어느날 갑자기>> 등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는 단순한 괴담에 불과합니다. 기승전결도 애매하고, 이야기에서 합리적인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탓입니다. 남자마저도 사후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결말도 어정쩡했고요. 보다 독특한 반전 정도는 나와주는게 좋았을거에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원작에 현대적인 설정을 덧붙였을 뿐, 새로움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D의 살인 사건>>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이지만 주로 흥신소 의뢰로 먹고 사는)인 '나'는 도쿄 뒷골목 거리에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친해진 초등학생 세이야와 함께였다. 피해자 노조미는 SM 플레이를 즐기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는데, 밀실에 가까왔고 접근 가능했던 인물들도 제한적이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세이야가 범인일 것이라 추리했다. 목격자 두명의 증언 - 범인이 입은 옷을 각각 주황색과 검은색이라고 다르게 말한 - 이 근거였다. 사건 당시 세이야가 입고있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티셔츠는 주황색과 검은색 양쪽 모두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 다소 변태적인 성행위 도중 살해당한 피해자, 밀실에 가까운 현장, 범인의 옷을 서로 다르게 말하는 목격자라는 소재를 따 와서 현대적으로 재 구성한 작품.
'나'의 추리는 좋았습니다. 옆 건물과 좁게 붙어있던 창문으로 초등학생은 충분히 침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었고, 목격자의 증언이 달랐던 이유라며 제시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세이야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건 솔직히 무리였습니다. 동기가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나'가 제시한,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진상은 더 억지에요. HR 기기 등 가상 현실을 활용하여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가 사망했다는건데, 가상으로 채찍질 같은 자극을 주는 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다손 쳐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는 없습니다. 안전 기준이라는게 있을테니까요. '비가시 광선' 때문에 옷이 두 가지 색깔로 보였다는 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요.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장비를 해체하고 숨겼다는 마사코의 행동도 말이 안됩니다. 그래봤자 SM플레이를 즐긴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거든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 '실수로' 죽었다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해당했다'는게 낫다고 여겼을 수는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 단순 변사가 살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게되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세이야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나'에게 아동 성 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씌운다는 마지막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배신감을 느꼈다는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뒤의 설득력없는 추리와 결말을 덧붙이지 말고, '나'의 추리로 이야기를 끝내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동기만 좀 합리적으로 만들어서요. 이 인물 구도에서 합리적인 동기를 만드는건 불가능해보입니다만.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여성과 결혼 후 실직해 기둥서방처럼 얹혀사는 타로는 그 탓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 고스케를 떠맡아 돌보게 되었다. 그게 끔찍하게 싫었던 타로는 란포의 소설 오세이 등장을 읽은 뒤, 고스케를 사고로 가장하여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소설처럼 고스케를 의류함에 넣고 질식사시킬 속셈이었다. 치매 탓에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키던 고스케가 했음직한 행동으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아내의 파리 출장에 맞춰 범행을 결의한 타로는 사전 조사차 직접 의류함 안에 들어갔다가 갇히고 말았다. 고스케가 별 생각없이 다른 물건들을 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타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서 아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직접 구조를 요청하겠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타로가 나이가 많은 탓에 평소에 스마트폰에 대해 무지했고,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설정이 핵심입니다. 아내 유코가 원래 자기 것이었던 타로의 폰을 원격잠금하고, 회선도 정지시켜 통화를 못 하게 막아서 죽게 만든다는 트릭이 사용되었거든요.
이렇게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데다가, 나름의 트릭까지 사용된 점 만큼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유코가 타로에게 품었던 살의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코가 진작부터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설명은 있는데, 이를 살의로 이어지게 만드는 설명은 좀 부족했어요.
치매 노인 탓에 의류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늙은 치매 노인이 의류함 뚜껑 위에 무언가 덮어놓았다고 뚜껑을 열지 못한다? 저는 잘 와 닿지 않더라고요. 뭔가 다른 이유 - 자물쇠를 잠갔다던가 - 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치매 노인이 평소에 무언가를 잠그는 (?) 행동을 많이 했다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졌다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작과도 유사하고, 현대적인 설정과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건 분명합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치매 노인 관련된 복수극은 오가와라 히로시의 <<냉혹한 간병인>>이 아직까지는 최고네요.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붉은 방에 모여 일탈을 즐기는 일곱 명의 남자들.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질러온 T역의 배우가 공포탄이 아닌 실탄에 맞은 사건이었다. 관객 중에 경찰이 있어서 곧바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모두 중요 참고인이 되었는데....


사건도 연극의 일부로 마지막 공연에서 선보인 특별 부록이었다는 이야기.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관 투입과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빨랐고, 이후의 과정이 모두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더 충격을 주려고 했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흥분했던 관객이 무대로 난입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연극으로 여긴 관객의 반응 등 볼만한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없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깔끔했을거에요. 이 결말 탓에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음울한 짐승의 환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육체만 생각하는 변태였지만, 스스로를 철저하게 통제하여 교육자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어느날 산책 중 이상형인 여자 유키를 알게되어, 그녀가 운영하는 북유럽풍 잡화점 락카우스의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두달 쯤 뒤, 내가 란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걸 알게 된 유키가 도움을 청해왔다. 오에 슌데이라는 발신자가 트위터 DM으로 그녀에게 버림받았었는데, 그녀를 다시 발견하여 복수한다는 글과 에도가와 란포의 귀한 초판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글을 연달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짐작가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유키는 20년 전 사귀었던 여자 후배 가야코 이야기를 꺼냈다....


'그'라는 3인칭에서 '나'로, 다시 '그' 전환되는 시점이 급작스럽고 미묘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의도인지, 번역 오류인지 헛갈리네요.
여튼 변태인 '그'가 카메라를 설치해 유키를 협박하는 한편, 착한 단골로 위장하여 조력자 위치에 올라가지만 유키에게 정체가 드러나버리는 일련의 과정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키의 펜던트가 카메라였고, 그 때문에 '그'의 범행이 발각되는 결말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카메라를 몸에 달고다닐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알고보니 트랜스젠더라서 살해했다는 일종의 반전도 신선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크라잉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정도의 시기였다면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렇게 대단한 트릭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마니와 가즈키를 유혹하다가 가즈키는 '시짱'이라는 피규어를 사랑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나는 가즈키를 속여 집에 침입한 뒤 시짱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가즈키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신의 옷 주머니에 부서진 인형 머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라는 증강현실 게임 엔딩을 접한 나는 다시 가즈키를 골라 게임을 시도했다. 그런 나를 방해한건 남편 가즈키였다. 게임에 빠진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가즈키와 다툼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출소 후 70세 노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조용히 살게 된 나는우연찮게 노인 스나무라 다케오에게 교도소 주문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인은 혼자서 주문에 대해 조사한 뒤,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주문에 등장하는 단어는 모두 1990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이었고, 주문은 방송 채널 번호를 이용하는 암호문이었다. 암호문은 특정 지역을 의미했고, 노인은 그 곳에 무언가를 숨겼으며 그건 1990년에 일어났던 흉악한 강도사건의 절도품이라고 추리했다.
하지만 방문한 장소는 이미 신축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기괴한 사이버 애정극에서 시작해서 암호 해독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짤막한 쇼트쇼트 블랙 코미디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 수록작 중 유일하게 원작을 접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호 해독은 재미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구전되는 '행운을 불러오는 주문'이 90년대 당시 TV 프로그램의 명칭이었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이걸 어떻게 글자로 치환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노인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끈기있게 도전하여 풀어낼 수 있었다는 설정도 좋고요. 암호문을 풀어낸 뒤, 암호문이 가리키는 장소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추리역시 합리적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조사해서 밝혀내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겁니다. 특히 화자인 유리나가 겪은 게임 속 사건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암호 해독 이야기와 별로 관계는 없어요. 유리나가 감옥에 간 이유인 남편 살해 동기에 불과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펼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란포의 원작을 너무 의식한 것 같아요. '비인간적인 사랑'을 이렇게 무리하게 삽입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두 개로 분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만큼 두 이야기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보물이라 생각했던 증권이 버블 지나면서 파산한 회사라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을 뿐더러,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른 설정은 다 없애고, 나이 많은 노인과 함께 사는 손녀딸이 교도소 자원 봉사를 갔다가 주문을 들었다는 정도로 풀어나가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상한 설정과 앞과 뒤의 곁가지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살해해서 복역 후 출소한 유리나가 오갈데 없어서 나이 많은 노인과 결혼했다는 설정은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라도, 남편 살인범과 함께 살고 싶을까요? 젊은 여자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상황인지 궁금해집니다.

2021/11/27

주름 - 파코 로카 / 김현주 : 별점 3점

주름 - 6점
파코 로카 지음, 김현주 옮김/중앙books(중앙북스)

스페인 작가의 그래픽 노벨 단편집. 일본 잡지 IDEA 지난호에서 우연찮게 소갯글을 보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만화는 처음 읽어봤네요. 신선함, 완성도 모두 좋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왜 '만화' 라고 하지 않고 '그래픽 노벨'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미국 만화는 '코믹스', 일본 만화는 '망가', 프랑스 만화는 '방 드 베시네' 라고 부르는건 말이 됩니다. 하지만 특별한 원칙, 장르 구분 없이 좀 비싸고 있어보이는 만화를 '그래픽 노벨'이라고 칭하는 행태는 사라졌으면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주름" 

요양원에 들어간 전직 은행원이었던 노인 에밀리오가 치매로 최근 기억을 잃어가는걸 노인 시점에서, 그리고 그의 요양원 친구 시점으로 그리는 작품입니다.

치매에 대해 다룬 작품은 많이 보아 왔는데, 신파 위주의 서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처럼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게 특징입니다. 처음에 에밀리오가 '공'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장면은 큰 컷으로 그려 치매 증세에 대해 위중하게 묘사하지만, 그 뒤에는 옷을 입는 방법을 잊어 버리고, 현재의 자신을 잊고 과거 시점인걸로 착각하고, 방금 읽은 책과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는 식으로 증세가 심해지는데에도 불구하고 모든걸 자연스러운 일로 그려내고 있거든요. 이 과정에서 에밀리오는 잠깐 분노를 표시하기는 하나, 대체로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에밀리오 가족의 슬픔도 전혀 보이지 않고요. 하긴, 슬픔은 커녕 제대로 등장조차 하지 않지요. 유일한 친구인 불량 노인 미겔이 주동하여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일탈이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목적도 없었고, 얼마 가지도 못해 사고를 일으켜 실패하고 만, 너무나도 미약한 일탈이었습니다. 하기사, 중증 치매 환자인 노인이 운전하는 차로 뭐 얼마나 대단한걸 할 수 있었을리가 없겠지요. 요양원에서 만났던 미겔이 에밀리오를 돌봐준다는 엔딩도 현실적이면서 씁쓸했습니다. 나라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정열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던 스페인 작가가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이런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작화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땡땡' 시리즈가 리메이크된다면, 이런 그림으로 그려지면 참 좋겠습니다.

별다른 서사가 없거나, 서사를 드러내기에는 드라마가 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분량도 노인들의 유대 관계를 설명하기는 부족했고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등대" 

프랑코 독재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도망치던 공화국군의 젊은 군인 프란시스코를 구해준건 버려진 등대 등대지기 텔모였다. 둘은 함께 배를 만들어 환상의 섬 라퓨타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라퓨타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가상의 섬이라는걸 알게 된 프란시스코는 분노하는데, 그날 밤 프랑코 군이 등대로 쳐들어왔다...

늙은 텔모가 자신처럼 늙은 등대를 밝혀 프란시스코를 탈출시키고, 자기는 등대와 함께 무너져내린다는 결말은 많이 뻔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죽이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갔다는 등 전쟁으로 인해 벌어졌던 비극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나라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찬가지로 겪었으니 익숙할 수 밖에요. 단색톤의 작화는 정교하고 깔끔했지만, 이런 드라마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2/26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녹나무의 파수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토는 절도 사건으로 체포되었지만, 집안의 어르신이라는 치후네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치후네는 그 대신 레이토에게 '녹나무 파수꾼' 직을 제의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던 레이토는 녹나무 파수꾼을 맡게 되었다. 레이토는 파수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제약과 수수께끼 가득한 녹나무 기원 행사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지만, 치후네는 기원 행사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며 정보를 주지 않았다. 마침, 기원을 하러 온 아버지 사지 도시아키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하여 미행해 온 사지 유미와 만난걸 계기로, 레이토는 녹나무에 얽힌 수수께끼 풀이에 나서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장르물인지 아리송하네요. 사람의 염원을 담았다가, 그 사람의 혈육에게 전해 준다는 녹나무 설정은 분명 판타지입니다. 그런데 녹나무에 소원을 비는 '기념'이 무엇일까? 사지 도시아키가 만났던 불륜녀는 누구이며 그가 열심히 기념하는건 무엇 때문일까? 치후네 할머니가 녹나무 파수꾼 역할을 레이토에게 맡긴 이유와 그녀가 행해왔던 알 수 없던 행동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와 같은 다양한 수수께끼가 던져지고, 이를 추리하는 전개는 추리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거든요. 

제 견해로는, 이 작품은 판타지 설정이 가미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추리물로 완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우선,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단서 제공이 상당히 공정합니다. 녹나무 기념 행사가 무엇인지는 레이토가 과거 '기념' 기록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뒤 접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레이토는 기념 행사가 가족간 행사이며, 그믐과 보름에 한해 이루어진다는걸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기념은 가족 중 누군가가 그믐에 염원을 한 걸, 보름에 다른 가족 누군가가 전달받는 행사이며 녹나무는 일종의 '염원 기억 매체'라는걸 레이토가 추리할 수 있었고요.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좀 과했던 추리이기는 했습니다만, 충분히 말은 됩니다. 

또 치후네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건 이런저런 단서 제공과 복선이 많고 확실해서 그야말로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이었어요. 이를 약간 반전처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도 좋아요. 이런 부분은 확실히 추리 소설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줍니다. 그만큼 설득력과 흥미를 동시에 갖춘,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 가족을 증명하기 위해 호적 등본은 부실하다는 말과 유념을 받지 못할걸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오바 소치가 친아들이 아니라는걸 추리하는 등 세세한 추리들도 풍성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사지 도시아키가 기념했던게 무엇인지는 도시아키가 직접 알려주는 탓에 추리의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가 몰래 만났던 여자는 불륜녀가 아니라 이미 죽은 형이 염원하여 남긴 곡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구체화해 주던 피아니스트였다는 전개는 재미있었어요. 귀가 먼 작곡가가 머리 속에 작곡되어 있는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녹나무의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는 것도 나름 설득력 있었고요. 사지 도시아키가 처음으로 녹나무에서 형 기쿠오가 남긴 유념 속 음악을 받는 장면은 영상화된다면 꽤나 멋질 것 같더군요.

노인 치매에 대해,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해,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의 결말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족과 추억은 소중하다는걸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거든요. 또 작가가 이전에 "붉은 손가락"으로 치매에 대해 다룬 방식과는 다르게 이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 다카코에게 이미 죽은 기쿠오가 작곡한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을 펼치는 클라이막스로 극대화하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확실히 완숙해진 티가 났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녹나무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지 가족 이야기와 치후네 할머니에 대한 일상계 추리 영역은 하나로 잘 엮여 읽히지 않았던 구성부터가 그러합니다. 별개 에피소드로 보일 정도였어요. 

캐릭터 설정과 배분도 문제입니다. 우선 주인공 레이토의 기본 설정, 그리고 성장기로서의 전개는 너무 뻔합니다. 치후네와 본의아니게 오래 떨어져 있다가, 급작스럽게 녹나무 파수꾼 역할을 맡는다는 배경 설정이 필요했다는건 이해됩니다. 그러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으로, 도둑질까지 저지르던 말종이라는 스테레오 타입 설정을 가져가야 했을지는 의문이에요. 첫 등장에서는 반쯤 양아치였는데, 작중 시점으로도 얼마 지나지도 않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파수꾼으로 나오는 것도 영 와닿지 않았고요. 제대로 된 성장기로 기능하려면, 좀 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여주인공 포지션인 사지 도시아키의 딸 사지 유미의 존재도 애매합니다. 녹나무 기념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녀 없이 레이토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거든요. 오히려 아버지를 엿보는걸 넘어서 도청을 하려하고, 이를 위해 기념에 절대 개입하면 안되는 녹나무 파수꾼 레이토를 설득하여 한 편으로 만드는 과정은 여러모로 거북하기만 했습니다. 딸이 불륜으로 오해한건 가족 문제일 뿐, 파수꾼 레이토가 도시아키 기념을 엿들은건 명백한 사실이라 도시아키가 항의하면 레이토는 해고되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잖아요? 레이토와의 러브 라인도 딱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닥 전개에 필요해 보이지 않더군요. 차라리 유미없이 레이토 혼자 과거 기록 정리를 통해 녹나무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낸 뒤, 사지 도시아키와 대화를 통해 진상을 풀어내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신파성 드라마도 과한 편입니다. 일본 특유의 한 방(?) 전개도 지나쳐서 기쿠오 작곡 결과물을 들려주는 연주회는 괜찮았지만, 치후네 할머니 고문 은퇴 등이 결정되는 임원 회의와 여기서 레이토가 열변을 토하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야나기사와 호텔이 살아남는다는 결과는 작위적이었고요.

이렇게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괜찮았던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노련하고 경력있는 파수꾼 레이토가 기념하러 온 손님들 고민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해결해 주는 일상계 추리물로 그려내는게 더 좋았을 것 같지만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영상화 횟수를 보면 영상화될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사기 기쿠오가 남긴 멜로디가 과연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집니다.

2022/11/13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 니시자와 야스히코 / 김은모 : 별점 2점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 4점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소년 마모루 미키가미는 어느 순간 부모님과 떨어져 머나먼 어딘가에 있는 기숙학교에 재학하게 되었다. 그곳에 머무는 학생들은 그 외에 스텔라와 중립, 시인, 여왕님, 신하 (마모루가 붙인 별명)의 모두 6명이었다. 어느날 '교장 선생님'이 새로운 학생의 입학을 알리자 마모루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마모루는 '시인'에게 이유를 물었고, '시인'은 신입생이 오면 학교에 살고있는 무엇인가가 깨어나며, 과거 마모루가 전학왔을 때도 그랬다는 말을 해 주었다. 몇일 뒤, 신입생 루 베넷을 처음 만났을 때, 마모루를 포함한 학생들 모두는 세계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루 베넷은 입학한 첫날 사라져 버렸고, 그를 찾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사감'이 학교를 비운 사이, 신하, 시인 등 다른 학생들과 선생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고 마는데....

"일곱 번 죽은 남자"와 '탓쿠 & 타카치' 시리즈로 유명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예전에 소개해드렸던 "헌책방 스탭의 추천"에서 반전이 놀라운 작품으로 소개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숙학교에 모인 소년, 소녀들'이라는 주제는 일본 만화에서는 많이 보아왔는데, 이 상황에 대해 학생들이 하나씩 펼쳐놓는 추리가 초반부의 볼거리입니다. 맨 처음에 '중립'은 그들을 특수한 비밀 탐정으로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추리합니다. '여왕님'은 그들이 전생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아이들이라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고 추리하고요. 다른 기억을 떠올릴 때는 현재를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 오기 전 기억이 없다는게 이유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학교는 가상 현실 속 세계라는 '시인'의 추리였습니다. 기억 상실은 물론 '뒤틀림' 까지 설명가능했던 덕분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앨리스 살인게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시인이 자기 자신, 즉 케네스 더피도 가공의 인물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진상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반전도 놀랍습니다. 사실 학생들은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던 겁니다! 그들 모두 치매 탓에 12살 이후의 기억을 잃고, 12살에 갇혀 있던 상태였어요. 이는 '교장 선생님' 시워드 박사의 연구를 위해서였는데, 이 연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다수가 같은 착각을 하면, 그 착각이 객관적 사실로 변한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인들이 10~12살 아이들이라고 착각하는 환경을 만들었다는데 상당히 그럴싸했어요. 노인 모두가 자기들이 아이들이라고 믿고 생활하게 되었지만, 잘 모르는 신입생이 나타나면 노인을 억지로 어린 아이로 착각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뒤틀림'이 일어났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역자의 말대로 "벛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가 떠오르기도 하만, 주인공들도 진상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변주도 아주 좋네요.

반전까지 이르는 과정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싫어하는 코튼 부인의 저염 건강식 요리, 게이트 볼 정도 밖에 없는 야외 활동, 열 살에서 열두 살 먹은 아이들치고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고방식과 말투가 어른스럽고 실제 그 또래들보다 지력이 뛰어나다는 점 등 엄청나게 다양하고 방대한 단서를 통해 반전에 대한 단서를 사전에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서들은 온갖 세세한 데에 이르고 있어서 공정함 측면에서는 최고 점수를 줄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인 마모루가 영어를 금방 습득했던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작 중에서는 '머리가 좋다' 고 설명되지만, 사실은 12살 이후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익혔기 때문입니다. '전화 부스' 방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최첨단 전자 장치들과 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들이 '전화 부스'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를 걸 수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려 60년 뒤 제품들이라 최첨단으로 보였을 뿐이며, 전화도 미래의 물건이니 걸기 힘들었던게 당연하지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전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잠시 머물렸던 중계점이 있었다는 공통의 기억과 신문과 잡지는 물론 텔레비젼도 없는 시설, 사감 파킨스 씨 이름과 그가 내는 추리 퀴즈에 항상 등장하는 치매 노인 등 단서들은 그 외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 많은 단서들 중 가장 결정적인건 이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데니스 루드로가 '이 세계, 건물과 사람 모두 거짓이며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고 한 말일 테고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스텔라라는건 다소 뜬금없었지만, 학교 세계에 푹 빠져 소녀로 있고 싶었던 스텔라가 판타지를 깨트리려고 했던 다른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동기만큼은 중반에 소개되는 마모루의 종교관 - '자신의 판타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한다.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이 피를 흘려도 태연하다.' - 으로 거의 돌직구처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야말로 전개 과정에서 독자와 정정당당히 승부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데니스가 사라진 상황에 대한 시인의 추리 등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듭니다. 곳곳에 헛점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학교는 가상 현실이라는 '시인'의 추리처럼요.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최신의 첨단 기술로 60년 전 과거에 사로잡혀서 최신 폰으로는 전화도 걸지 못하는 노인의 추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역자는 '등장인물들도 속고 있으므로, 이 작품은 서술 트릭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반쯤은 의도적인 설정 오류 때문에 서술 트릭이 아니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반전을 숨기기 위한 색다른 추리를 위해 집어넣은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런 설정 오류는 가상 현실 외에도 텔레비젼과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게임 등에 대한 설명 등 곳곳에서 눈에 뜨입니다. 오래전 TV, 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고생했다는데 정작 이런 미래 기술(?)은 거리낌없이 도입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죠.

그래도 이 정도 오류는 반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을텐데, 살인 사건은 도무지 용납이 안됩니다. '신하' 살인 사건부터 보자면, 수업 도중에 스텔라가 급작스럽게 저지른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동안 스텔라의 판타지에 잘 맞춰주던 '신하'가 왜 갑자기 살해당할 정도로 스텔라 심기를 거슬렸을까요? 게다가 이 자리에는 '시인'도 함께 있었습니다. 즉, '시인'은 범인이 스텔라라는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시인'이 스텔라와 함께 있으라는 마모루의 말을 선선히 들었을리 없습니다. 당연히 마모루와 함께 있으려 했겠지요. 케네스 (신하) 만의 사정이 있었을거라는 '사감'의 말로 퉁치고 넘어갈 수는 없어요.

코튼 부인 살해도 억지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치매 노인을 아무리 우습게 봤어도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 앞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돼요. 전개를 보면 '학교'에서 일어났던 기존 사건들은 모두 '사감'이 숨기고 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코튼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려다가 충돌을 일으켜 총에 맞아 죽을 이유는 없어요. '신하'는 사고사로 착각했다쳐도, '시인'은 엄연히 칼에 찔려 죽었으니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었어야 합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사감'과 코튼 부인이 한패였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무합니다. 오히려 '교장 선생님'마저도 '사감'이 살인 사건을 은폐한걸 몰랐다고 묘사될 정도지요. 경찰이 나타나면 곧바로 진상이 드러날테니,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또 스텔라가 판타지를 지키기 위해서 뭔가 거슬렸던 신하를 죽이고, 범행을 목격한 시인을 죽인건 그렇다쳐도 그 뒤의 범행은 아예 설명이 불가합니다. 여왕님과 마모루를 설득해서 교장 선생님과 사감만 조용히 기다렸으면 만사 해결이었을텐데 말이지요. 자동차로 이동해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던 여왕님 살해야 그렇다쳐도, 중립을 실해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적인 반전과 반전을 위한 빌드업은 대단했지만, 살인 사건 쪽으로는 영 별로였고요 감점합니다. 작가의 장점 - 아이디어 - 과 단점 - 무리수 - 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25/04/20

사유리 - 오시키리 렌스케 : 별점 2점

[고화질] 사유리 (완전판) - 4점
오시키리 렌스케/대원씨아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누나와 남동생,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노리오의 가족은 그동안 꿈꿔왔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 남동생은 사라졌고, 할아버지도 급사하고 말았다. 누나와 어머니마저 자해, 자살하여 순식간에 노리오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게 되는데...

오시기리 렌스케의 하우스 호러. "하이스코어 걸"이라는 레트로 청춘 연애 코미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가는 "미스미소우"로 대표되는 호러물로도 유명하지요. 이 작품도 호러물이고요. 이런 작품이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북으로 출간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행복했던 7인 대가족이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온갖 괴현상을 겪으며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과정은 귀신들린 집(Haunted mantiion) 설정 그대로, 하우스 호러물의 전형대로 진행됩니다. 가족이 이사한 집은 '사유리'라는 소녀가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곳이라, 사유리가 행복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차례로 죽고, 자살하고, 사라지는 과정의 묘사는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일견 자연사처럼 보이는 평범한 죽음이 점차 진화해 나가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웠거든요. 누나가 혼자 혀를 물어 뜯는 묘사는 굉장했어요.

그리고 노리오와 치매에 걸렸던 할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 할머니 정신이 돌아오는 부분부터는 아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강단있고 행동력 강한 할머니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지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와~ 정말 '핵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귀신에게 지지않는 생명력을 갖추고, 오히려 복수를 위해 사유리를 죽인 사유리 가족을 모두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 모습은 광기어리면서도 통쾌했고요.

하지만 사유리가 자기를 죽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그들을 동정해서 약해진 탓에 노리오의 죽은 가족들에게 끌려가 성불하는 결말은 솔직히 영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럽잖아요. 애초에 자기를 죽인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할머니와 사유리의 제대로 된 대결이 펼쳐지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5명이나 죽인 악령을 그냥 놓아준다는게 앞서의 할머니 캐릭터와는 영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죽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영혼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전개를 특유의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로 풀어낸건 좋았는데, 결말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2018/05/18

악몽을 파는 가게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악몽을 파는 가게 1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작 단편집입니다.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는 "130"만 옛 작품을 연상케하는 자극과 속도감을 보여주며, 이외에는 대체로 자극이 부족합니다. 옛날 작품들이 불량 식품 같았다면, 이 책의 수록작들은 녹즙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래 언덕", "못된 꼬맹이"와 같이 기발한 발상과 섬찟함을 겸비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순문학스러운 느낌이더라도 "죽음" 은 이런 류의 단편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걸작임에는 분명하고요. 거장다운 깊은 연륜도 작품마다 가득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얌전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최소한의 의외성은 가져갔어야 하지만 좀 쉽게 쓴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별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0"

버려진 휴게소에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가 나타나 여러 사람들을 해치웠다. 그렇지만 몰래 숨어든 용감한 소년이 돋보기로 불을 붙여 괴물을 퇴치한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차의 등장과 묘사는 킹의 초기 크리쳐 단편 느낌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처음 버려진 휴게소로 탐험을 떠난 소년의 묘사,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와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속도감도 대단하고요.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운하며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를 비롯한 죽은 사람들 모두가 "선의" 때문에 죽었다는 약간의 풍자도 젊은 시절 킹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이한 결말로 이런 장점 모두가 희석됩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소년이 불 좀 붙였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죽어나간 여러 명의 어른들은 대체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원래 결말도 이러했다면 아무리 마약 중독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킹이 이 작품을 분실한 건 별로 아까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시 썼다면 결말 정도는 고쳤어야 해요. 이렇게 대충 마무리 지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흑인은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처럼 포장하는 등의 설정과 반전처럼 말이죠. 흑인은 잡아먹지 않아서 흑인 한 명이 살아남지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는 "새벽의 저주" 스러운 이야기였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프리미엄 하모니" 

부부는 조카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렸는데,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조금 덤덤하고 건조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개에서 킹이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그의 스타일로 썼다고 말하는데, 레이먼드 카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엄청나게 더운 날, 아내가 죽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견마저 차 안에서 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결말까지 소소하게 읽을만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순문학스럽고 의외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죽은 게 애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상상하기는 싫지만, 그게 뭐든요.

하여튼 저는 킹의 작품을 읽고 싶지 킹이 쓴 카버 스타일 카피를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식사를 하는 60세 노인이 우연히 일으킨 차 사고로 트럭 운전사에게 구타당하다가, 아버지가 운전사를 칼로 찔러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치매에 걸렸건, 나이가 들었건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라는 주제 만큼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저도 끝까지 딸 아이를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작품은 아니에요. 무언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변죽을 울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이야기가 바로 절정으로 치닫고 끝나버려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껏 고급차를 쓸고 닦아 광 내어 어렵게 시동을 걸지만 도착한 장소는 집 앞 편의점이랄까요? 그냥저냥한 평범 이하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모래 언덕"

아흔살이 넘은 하비 비처 판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앤서니 웨이런드를 불렀다. 그리고 유언장에 적혀 있는, 한 섬을 영구 야생지로 공표하는 사항을 두고 그 섬에 얽힌 오랜 비밀을 이야기 해 주는데...

짧은 분량, 섬뜩한 느낌, 여기에 반전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기묘한 맛', '쇼트쇼트' 계열의 작품입니다.

우선 아주 짧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리고 섬의 모래 사장에 곧 죽을 사람 이름이 쓰여진다는 아이디어에서, 특히 비행기 추락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는 묘사의 섬뜩함이 대단해서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하고요. 마지막 조건도 유언장 작성을 서두른 이유에 대한 반전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특히 결말은 아주 좋은 수준으로 킹 역시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자찬할 정도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기묘한 맛', '쇼트쇼트' 류 장르의 걸작만 모아 놓은 앤솔러지가 있다면 충분히 목록을 장식할만 한 교과서같은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느 못된 꼬맹이"

사형수 헬러스가 국선 변호인이었던 브래들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아이에게 총알 여섯발을 쏜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가 상황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인 설정에 더해, 이러한 공포가 직접 닥쳤을 때 벌어지는 무간지옥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끔찍했고, 손에서 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또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뻔한 설정을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는 약간의 변주만으로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해주는건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저 역시 악마같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굉징히 와 닿은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그런데 헬러스에게 이 악마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문제입니다. 그냥 아픈 것,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브래들리에게 이 꼬마가 나타날 이유는 또 없잖아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장할 약간의 양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잘 나가다가 결말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 감점합니다.

"죽음"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은 한 소녀를 죽이고 은화를 빼앗은 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보안관 바클레이는 그의 무죄를 확신하나 형은 집행되고, 이후 유일한 증거인 은화가 교수형당한 트러스데일의 분비물에서 발견되었다...

일종의 '딜레마' 를 다룬 심리 드라마인데 한마디로 걸작입니다.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은화가 분비물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네요. 수감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똥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삼킨 거라는 진상도 기발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바클레이의 딜레마를 그리는 심리 묘사와 무엇보다도 어차피 교수형 당할거, 왜 자백을 하지 않았냐는 묵직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단편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5점. 수록작 중 최고로 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트러스데일 시점의 번외편이 나와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납골당"

정글 속 납골당으로 떠난 일행이 하나씩 죽어가는 과정을 술 먹은 사람의 독백으로 들려주는 특이한 작품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의 묘사는 킹 답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 행진하는 죽음의 윤회 이야기인지? 아니면 술 주정뱅이의 주정에 불과한지? 킹 본인은 산문적 해설을 제거한 형식만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해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말하고 있는 술주정뱅이도 무슨 벌어졌는지는 모르는 듯 하고, 이게 더 현실적이기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일반 독자에게 잘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소갯글처럼 학교 작문 시간에 발표했음직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습작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덕성"

가난한 부부에게 아내 노라가 간병하는 부유한 신부 위니로부터 이십만 달러의 유혹이 다가왔다. 죄를 짓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달라는 유혹에 굴복한 채드와 노라 부부는, 노라가 변장하여 어린아이를 때리는걸 채드가 촬영하여 돈을 받고 말았다. 이후 채드의 작가로서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장나 버리는데...

일단 재미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일단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아쉽습니다. 얼척없는 도덕심보다는 돈이 더 이유를 가진다는 건 당연한 현실인데 이를 뭐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를 때린 정도로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위니를 통해 종교적인 시점에서 나쁜 짓, 회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소싯적 피를 팔고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을 매춘부라고 생각했다는 창작 비화가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를 유괴하는 등 더 강력하고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는 범행으로 묘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사후세계"

대장암으로 죽은 빌은 기묘한 공간에서 해리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과거 공장 문을 잠갔다가 화재로 146명의 여직원을 죽게 한 죄로 끝나지 않는 상담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로, 빌에게 환생과 사라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라 말해 주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게 다섯번 째이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빌은 동생의 손가락을 잘랐던 실수 , 어렸을 때의 시계 절도, 성폭행 등의 실수 중 하나라도 막기를 바라며 환생을 선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묘사와 설정, 그리고 동양적인 일종의 "윤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단, 묘사와 설정에 비하면 결말은 좀 평이한 편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르"

구식 영문학과 교수 웨슬리는 농구팀 감독인 애인 엘런과 헤어진 후 반쯤은 복수심에 킨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킨들은 시판되지 않는 핑크빛 제품으로, '우르' 라는 일종의 평행우주로 접속하여 작품을 찾아 제공하는 능력이 있는 기기였다. 웨슬리 스미스는 헤밍웨이의 미발표작 등을 검색하는데...

아마존 킨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소설인데, 한마디로 말해 광고를 위해 쓰여진 수준 이하의 졸작입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핑크빛 킨들을 통해 다른 평행 세계에서 유명 작가들이 발표한, 이쪽 세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반 이상까지 장황하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유명세를 위한 표절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내일 뉴스" 와 같은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설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느낌이라 영 별로입니다.
"내일 뉴스"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뉴스를 어떤 식으로든 미리 알고, 그렇게 알게 된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쎄고 쎈 유사 작품 대비 특별한 부분도 없는 탓에 별다른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킹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지극히 극단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특이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는, 킨들 광고에 불과한 평균 이하의 범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11/25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 오사키 고즈에 / 서혜영 : 별점 3점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 6점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다산책방

세후도 서점 사건메모 시리즈 제 1작으로 출간된 서점을 주무대로 한 일상계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입니다.

일단 작가가 실제 서점근무를 오래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서점과 책에 관련된 이야기의 디테일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것, 그리고 실제 존재하는 책들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제가 이런 디테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탐정역은 고참 서점직원인 교코와 아르바이트생 다에의 2인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코가 서점 근무 경력을 잘 살려 여러가지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실제 추리는 다에가 담당하는 구조로 둘의 협력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내용도 5편의 작품 대부분이 일상계 작품이라는 테마를 잘 살리고 서점의 디테일과 결합한 소품과 같은 귀여운 이야기들이라 읽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때 읽으면 좋을 치유계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또 책의 특성상 맨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제 서점 직원들의 좌담회가 실려있는 것도 무척 좋더군요. 아이디어도 좋지만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일상성이 강조되고 서점이라는 공간이 강조된 나머지 추리물로서 성립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재미 하나는 빠지는 책이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물을 처음 접하기 시작하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기에는 정말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책도 너무 이쁘게 잘 나왔어요! 작품을 만화화한 구제 반코의 작품(아래 이미지 참고)도 꼭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손님과 서점 직원과의 해프닝이 이야기의 주 소재들인데 이렇게 대형 서점에서 직원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일본의 출판 시장이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근처에 세후도 서점처럼 인간냄새 나면서도 친절한 직원들로 가득한 서점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단골이 되고 싶습니다...

1. 판다는 속삭인다

한 손님이 교코에게 자신이 아는 경증 치매노인이 원하는 책 3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노인은 치매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책을 요청했는데, 교코와 세후도 서점 직원들은 그 수수께끼를 결국 풀지 못해서 다른 책을 권해주었다. 그 뒤, 니시오카라는 손님은 그 책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다시금 암호같은 말로 책을 찾아달라고 하는데... 

일종의 암호트릭물입니다. 노인이 말하는 엉뚱한 대사가 가르키는 대상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서점 근무 경력을 드러내는 굉장히 효과적인 트릭이었으며, 이 책들이 나타내는 메시지 역시 굉장히 잘 짜여져 있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트릭이 거창하거나 웅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2. 사냥터에서, 그대가 손을 흔드네 

기타가와는 어머니 사와마츠씨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어머니의 단골이었던 세후도 서점을 찾았다. 마침 사와마츠씨가 실종전에 구입한 것은 한권의 만화책이었다... 

한권의 만화책으로 20년 전의 기억과 자취를 떠올린다는 내용인데 작중에 만요슈와 겐지이야기를 잘 녹여내어 부드럽게 접근하는 작가의 솜씨는 놀랍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보기는좀 힘들더군요. 여성취향이 물씬 나는 미스터리가 믹스된 드라마 단편입니다.

3. 배달 빨간 모자 

세후도 서점 근처 상점가에 있는 미용실 노엘에서 손님의 몰래 카메라 사진이 발견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진이 세후도 서점이 공급하는 정기 구독 잡지 안에 들어있었던 탓에, 노엘 점장의 친구인 미남 이발소 바버 K의 점장 "킹"이 세후도 서점을 찾아와 관련된 내용을 문의했다. 마침 당시 구독 잡지를 배달하던 세후도 서점의 아르바이트생인 미소녀 히로미 양이 배달을 나갔다가 사고가 나 다치게 되는 사건이 겹치는데... 

사소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정통(!) 일상계추리물입니다. 대단한 트릭은 없지만 몇가지 단서를 토대로 추리를 펼쳐나가는 교코와 다에 컴비의 활약이 빛을 발하는 수작이죠. 결국 히로미양의 이야기가 모든 단서를 제공한다는 결정적인 약점은 있지만 단편적인 단서를 이야기와 잘 엮어놓고 있기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이른바 "배달 빨간 모자" 캐릭터인 히로미양도 귀엽고요. 추리도 괜찮고 나름의 액션과 긴장감도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 만화로도 꼭 보고 싶어지네요.

4. 여섯번째 메시지 

가와다 나호코가 자신이 입원 중에 읽을 책을 골라준 점원을 찾아 세후도 서점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책을 추천한 점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굉장히 간단한 소품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책들이 이야기의 주 소재로 쓰이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등장하는 작품은 총 5권으로 하야시 간지의 "하늘 여행", 가와이의 "산책 - 시골 꽃", 이케다 아키코의 "다얀의 스케치 교실", 아사다 지로의 "다미코", 마지막으로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연관성 없는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누가 어떻게 추천했는지를 간단한 추리로 풀어냅니다.

추리가 없었더라도 실제 누가 책을 추천했는지를 찾아내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을 터라 추리물로 보기는 좀 힘들지만... 그래도 여성분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감성적이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다얀의 스케치 교실"은 저도 사고 싶어지는데 이거 큰일이네요...^^

5. 디스플레이 리플레이 

출판사가 주최하는 디스플레이 콘테스트에 세후도 서점도 응모하기로 했다. 디스플레이 주체는 아르바이트생 유키로 교코가 담당하는 인기만화 "트로피컬"의 디스플레이라 교코도 적극 협조했다. 그리하여 디스플레이는 멋지게 완성되지만 어느날 그 디스플레이가 심하게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인기 만화와 그 작품의 표절 논란이라는 소재의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모두 공감하기 힘든,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일단 추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실질적 증거나 단서를 토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이야기 자체도 별로 잘 짜여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요. 여러모로 아쉬움이 큽니다.

2016/12/05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점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4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arte(아르테)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사진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로 홈런을 날린 작가 미카미 엔의 또다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유명 휴양지 에노시마에 위치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니시우라 사진관"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손녀 마유가 이런저런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제목에서처럼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점입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책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것 처럼요. 별다르지는 않지만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수께끼들이 등장한다는 일상계 느낌의 전개와 소소하면서도 훈훈한 분위기도 "비블리아 고서당"스럽고요.

그러나 설정과 분위기만 비슷할 뿐 "비블리아 고서당" 수준에는 여러모로 미치지는 못합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내세울게 없는 탓입니다. 2장과 3장은 범인(?)이 너무 뻔하며, 4장은 설정이 극히 작위적이라 전혀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입부인 1장이 그나마 괜찮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하입니다.

탐정역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가쓰라기 마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오리코씨의 안 좋은 부분인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을 극대화한 것에 더해, 대학 시절의 민폐 행각을 부각시킨 탓에 영 호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사진에 있어서도 대학 시절 전공했던 정도라 딱히 대단한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추리 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루이가 아직 사진관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마유가 깨닫고, 이후 루이와 다시 만나는 마무리는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권을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마지막으로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1장

가쓰라기 마유는 에노시마에 위치한 니시우라 사진관을 찾았다. 폐암으로 사망한, 100년 동안 영업했던 사진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외할머니 니시우라 후지코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리를 시작한 마유는 '미수령 사진' 이라고 적힌 양철 상자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마도리 마사카즈 님'이라고 적힌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과 필름 3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은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었다.

마침 사진을 맡긴 마도리 마사카즈가 방문했고, 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소중한 사진에 얽힌 수수께끼를 밝혀달라고 마유에게 부탁하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에 얽힌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 수수께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한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다! 라는 것으로 괴담 등에서 많이 변주되었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괴담이 아닌지라 나름 합리적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번째 사진은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가필, 두번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할아버지, 세번째는 아버지가 약간 분장한 것이고 네번째 사진 속 모델 마도리 마사카즈는 할아버지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특히 '에어브러시'라는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합성보다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간, 사진이라는 설정을 활용한 아이디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는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높기도 하고요.

물론 에어브러시로 그렇게까지 똑같게 사람을 그릴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시작으로 아주 괜찮았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장

마유가 4년전 사진을 그만둔 계기는 소꼽친구로 인기 아이돌이었던 "루이"의 개인적 비밀(특정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었다가, 그 사진이 유출되어 루이의 인생을 망쳐버린 과거 탓이었다.

그런데 마도리 마사카즈와 사진관을 정리하던 마유는 당시 사건에 연류된 선배 고사카가 비교적 최근에 찍은 루이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고사카를 다시 만난 마유는 고사카와의 대화를 통해 마유는 사진 유출의 진상과 이후 루이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데...

루이의 사진을 누가 유출시켰는지? 에 대한 것이 핵심 수수께끼인데 사실 별 내용은 없습니다.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은 것을 전문 카메라맨이 된 아키호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즉 사진을 잘 모르는 다른 서클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유출했다는 진상을 몇 년 간이나 알지 못하고 끙끙대었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합숙을 하느라 통신이 불가했다는건 알리바이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마유가 서클 사람들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해서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 이입도 하기 어려웠어요. 아무리 비공개 SNS라도 사진을 올린건 마유의 실수라는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또 루이에 대한 설정도 딱히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꼽친구, 엄청난 미남, 성공한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루이가 추락하게 된, 사이비 종교의 신자로 교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해당 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더라도 루이는 분명 피해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더라도, 세간의 비난을 받고 은퇴할만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작중에서 본인이 계속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마침 사진은 좋은 계기가 된 것에 불과해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마유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지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뭔가 있어보이는 마유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할 뿐더러, 과거사가 만화와 같은 설정으로 가득차 있어 전혀 와 닿지 않은 작품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3장

기념품 가게 주인 겐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그는 지금의 아내 요코에게 청혼할 때 필요한 자금이 없어서 삼촌 오사무와 함께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은덩이를 훔쳤었다. 잠깐 빌려간다는 의미로 차용증을 써서 남겼었는데, 겐지는 마유에게 들키기 전 차용증을 빼돌릴 결심을 한다...

은은 과거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일했던 오사무 삼촌이 현상 과정에서 나오는 폐약에서 추출한 것, 캐비닛이 일종의 미니 암실?이어서 그것이 열렸다면 증거가 남는다는 설정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사진관이라는 무대에 잘 맞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후 이야기 전개는 영 별로입니다. 캐비닛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겐지인데 뭐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을지 잘 모르겠어요. 상세한 설명 없이 그냥 경찰을 부르는 게 빠른 방법이잖아요? 겐지가 은덩이를 훔친 것으로도 모자라 차용증까지 훔치려 한 것은 엄연한 범죄라 정상참작의 여지도 전혀 없고요.

그리고 캐비닛 속의 필름이 감광되었다 하더라도 열은 것이 겐지라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지 캐비닛이 열렸다는 증거 정도밖에는 안되죠.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괜찮았던 소재를 억지스러운 전개로 망친 느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4장

마유는 정리 중 발견한 마도리 부자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마도리 가문의 별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마유는 아키타카의 아버지 료헤이가 아들을 대하는 매몰찬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견한 여러 가지 이상한 점 — 겐지가 전해준 아키타카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별장과 본가를 아키타카의 사진이 온통 장식하고 있다, 부자의 사진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있다 등 — 을 토대로 아키타카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닫는데...

역시나 핵심 트릭은 사진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료헤이와 아키타카가 찍은 사진은 아주 오래전 료헤이가 찍은 사진에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합성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합성'은 사진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뻔한 조작이라 트릭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려우며, 이렇게 복잡한 공작을 할 필요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조작까지 해서 사진을 전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는 것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버지가 얼굴을 바꾼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너무나 미워했던 전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탓이 컸다던가... 하는 식의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물론 그랬다면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 블랙잭이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후처 얼굴을 어머니 얼굴로 바꾸어 놓는 에피소드와 똑같은 내용이기는 했겠지만요.

아키타카가 아버지에게 강하게, 논리적으로 반항하는 결말 정도만 깔끔할 뿐, 여러모로 부족함과 억지가 많이 느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11/13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기타쿠니 고지 / 문승준 : 별점 2점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4점
기타쿠니 고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변호사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도시타는 가난한 동네 변호사로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의뢰 해결이 주 업무라 법정 다툼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정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보다는 일본 추리 소설 시장에서 나름대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계 추리 단편집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다른 전문가 - 서점 점원, 헌책방 주인, 요리사, 화과자 장인, 시계 수리 전문가, 사진가, 바리스타, 라쿠고가, 복화술사, 호텔리어, 심지어 스님까지 - 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각자의 직종과 관련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의뢰를 받기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설정한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법률 전문가스러운 느낌이 별로 들지 않거든요. 도시타는 화자이자 커뮤니케이션 담당일 뿐, 탐정 역할은 도시타의 동생 리쓰가 담당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리쓰 캐릭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일단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시타' 에 관련된 말을 하는 루틴이 있고, 현재 상황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를 떠오르게 만드네요. 결은 좀 달리하지만 엄청나게 머리가 좋다는 설정마저도 똑같고요. 그러나 우영우만큼 호감가게 묘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문가 일상계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독특함에 목숨을 건 나머지 이상한 만화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요. 또 추리한 결과를 형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없는데, 여기에 무뚝뚝하고 무례한 행동에 더해져 굉장히 비호감이었어요. 다른 캐릭터들도 글래머 소꼽친구 간호사 사키, 여자를 밝히는 스님 마루메, 전 야쿠자 출신이자 현 카페 주인인 이모부 등 비현실적이거나,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괜찮았다면 나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수록된 네 편의 단편들 모두 그렇게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이야기 전개가 리쓰 캐릭터처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았던 탓입니다. 입 안에 넣은 치과 치료용 충전물이 라디오처럼 동작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따뜻한 인간 드라마 중심의 전형적인 일상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문가 일상계로 보기에는 전문성, 일상성 모두 떨어지며 추리적으로도 그닥이라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꼽자면 일본에서도 변호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도? 딱히 영상화 되었다는 소식도 없고, 후속권도 출간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금새 절판된걸로 보면 다른 분들의 평가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되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울러 '고양이'는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므로 집사분들께서는 낚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1화 "못된 며느리와 낙서 소동" 

고토에 아줌마는 도시타에게 며느리 험담 끝에 며느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토에 아줌마가 돌아간 후, 리쓰는 그녀의 섬망성 기억 상실을 눈치챘다. 형제는 사태 수습을 위해 며느리 에가와 씨를 만나러 갔다가 ,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던 낙서 소동에 휘말리는데...

진상은 알고보니 고토에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해 며느리 에가와가 마당에 자생하는 디기탈리스 잎을 떼어 말린 뒤 몰래 먹였다는 겁니다. 고토에 할머니는 디기탈리스 잎의 부작용으로 치매와 비슷한 용태를 보인거지요. 

그런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디기탈리스가 심장병에 효과가 있지만 독성 또한 강하다는건 정보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자동 완성으로 '디기탈리스 중독'이 함께 뜰 정도로요. 이걸 약재로만 알고 먹였다? 설득력이 약합니다. 자기 험담만 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살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이를 효심으로 포장하는 마무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도시타가 제대로 된 변호사였다면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하는게 맞았어요. 추리를 하기 위한 정보 제공도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차라리 낙서 소동 쪽이 추리적으로는 조금 더 낫습니다. 다른 낙서들과는 그림이 달랐고, 키가 작은 사람이 그렸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하지만 진상은 앞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초등학교 3학년생이 새가 부딛힐까봐 '버드 스트라이크'를 리카 씨네 가게 쇼윈도에 그렸다는게 전혀 와 닿지 않은 탓입니다. 쇼윈도가 그 가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1층 건물 쇼윈도에 새가 날다가 부딛힐일이 그렇게 많을리 없으잖아요. 애초에 범인 신지의 집 창문에 새가 부딛혀 죽은 것부터가 작위적이지요. 이를 리쓰가 맨션의 깨진 창문만 보고 바로 알아챘다는 추리도 비현실적이고요.

또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억지로 결합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화 "협상 상대는 요통으로 고생하는 전과자" 

도시타 형제는 연립 재건축을 앞두고, 퇴거를 거부하는 임차인을 설득하는 의뢰를 받았다. 리쓰는 찾아간 임차인 아라키 데쓰조의 집 안에서 '사취'가 나는걸 느꼈고, 여러가지 주변 정보들을 조합하여 그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걸 추리해 내는데...

길고양이를 돌본다는걸 훔쳐온 쓰레기 봉투 속 내용물을 통해 추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취는 길고양이가 물어온 쥐의 시체였다는 진상까지의 전개와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퇴거를 불응했던 이유가 유치원에 드는 햇볕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는 않았고요.

전반적으로 잔잔한 일상 드라마 느낌을 가득 전해주는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3화 "만화가 지망생과 사라진 유언장" 

도시타는 이모네 카페 단골인 만화가 지망생 레논 씨의 사건 을 수임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형이 레논 씨가 유언장을 숨겼다고 주장해서 법정에서 다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논 씨는 도시타에게도 유언장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형이 어머니가 유언장을 남겼다는 말을 녹음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수록작 중 유일하게 변호사가 활약할만했던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유언장은 어디에 숨겼나?' 라서 변호사가 나설만한 부분은 없지만, 레논 씨가 왜 유언장을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해석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레논 씨가 어머니 장례식 초야 직후, 카페를 방문한 뒤 책꽂이 위에 있는 책을 떨어 트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카페의 만화책 중 한 권 안에 유언장을 숨겼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대해 사소해보였던 레논 씨의 질문이 중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유언장 내용이 유산을 형이 아니라 레논 씨에게 전부 남긴다는 거라서 유언장을 숨기고 형과 유산을 반으로 나누려 했다는 동기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보같아도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리고 이런 동기였다면 유언장을 숨기는게 아니라 태워버리는 식으로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유언장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전개를 보면 더더욱요. 이는 유언장이 없을 경우 법률적으로 레논 씨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4화 "한심한 피고인과 소음 트러블" 

도시타는 마약용 주사기를 수백개 구입하려다 경찰에게 상처를 입힌 에비스 씨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으려고 도시타는 노력했지만, 에비스 씨는 거부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리쓰가 급작스럽게 증인 요청을 하여 판결은 연기되었다. 그 사이 도시타는 소꼽친구 사키의 소개로 이웃이 내는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도모코 씨를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도시타 형제는 아무런 소음도 들을 수 없었다....

도시타가 국선 변호사로 선임되어 법정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왜 에비스 씨가 징역형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추리해낸 뒤, 진상을 파악하여 그의 갱생을 돕는다는 감동적인 (?)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도모코 씨 이야기도 마찬가지에요. 소음 공해는 단순한 소재였고, 도모코 씨 남편이 정리 해고를 앞두고 회사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근무하는 상황의 극복이 핵심이거든요.

드라마 모두 좋은 이야기에요. 문제는 추리적인 부분입니다. 에비스 씨 시간의 경우, 오래전 이혼한 아내가 키우던 아들이 칼에 찔린 뒤, 부모는 수혈이 안 되는 탓에 행인들로부터 피를 뽑으려고 주사기를 구입했다는 동기부터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딱히 추리를 할 부분도 없고요. 도모코 씨가 치과 진료를 받은 이후, 이빨에 채운 충전물이 우연히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 일종의 광석 라디오처럼 동작했다는 진상도 황당하기 그지없더군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겁니다. 설령 실제 일어나더라도 입 안에서 소리가 나는걸 모른다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이야기였는데, 아쉬움이나 여운을 남기기는 커녕 더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만 굳게 만들어 주네요.

2021/04/24

삼귀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삼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괴담듣는 아가씨 오치카가 주인공인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대충 읽다보니 순서를 건너 뛰었네요.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살짝 안 읽은 이야기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괴담 이야기 한 개가 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원래도 연재물이기도 하고요. 

별로 무섭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접해 보았던 설정이 많았다는건 전작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나름의 변형이나 상세한 설정, 묘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단, 새로운 등장인물과 함께 시리즈의 큰 변화를 암시하는 마무리는 여러모로 불길합니다. 다음 권에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해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미망의 여관" 

고모리, 오사키, 요노 세 마을은 매년 봄, 마을에서 모시는 신인 아카리님을 깨우는 초롱 축제를 열어왔다. 하지만 영주님이 세살짜리 딸을 잃었다는 이유로 축제를 금지하자, 농사를 위해 축제를 멈출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누시의 손님으로 마을에 머물고 있던 화가 이와이 세키조의 제안을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나누시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유폐시켰던 별채를 초롱으로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이와이 세키조의 진짜 계획은 따로 있었다. 그는 죽은 자신의 어린 아들과 아내에 대한 회한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초롱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날, 별채에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롱처럼 밝혀지자 저승과의 문이 열리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별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든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식의 전개가 대부분이고요. 고전 "원숭이 손",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도 기본 설정은 동일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덕분에 단순한 아류작들과는 수준을 달리 합니다.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드려는 이와이 세키조의 계획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실제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대소동, 그리고 돌아온 망자들을 극락으로 돌려보내는 마무리까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회한, 애정과 연민이 절절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들도 감동적이었고요. '집착하지말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와이의 계획이 '여러 지방에서 지내는 제사를 조사해봤는데,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열심이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는건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사는 망자를 잘 먹여서 돌려보내는게 목적이니 그럴듯한 착안인건 맞아요. 그런데 이건 죽은 사람, 망자들이 잘 돌아온다는 뜻이잖아요? 이전에 죽은 사람의 그림을 아무리 열심히 그려봤자,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는다는 이야기와는 정반대인거지요. 이 말 때문에 3개의 마을을 동원해가면서, 마을 축제급으로 애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아카리 님의 신통력이 뭔가 작용했다는 식으로 조금 설득력을 갖추어 주었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아쉽습니다. 작품에서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망자들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이에요. 망자들에게 저승으로 가는 통행증을 주는걸로 만사해결되는 결말도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 만큼은 확실했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식객 히다루가미" 

후사고로는 십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에도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귀 히다루가미에게 씌워진 뒤, 히다루가미에게 먹을걸 주기 위해 과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히다루가미는 중요한 손님을 끌어들이는 능력으로 후사고로가 도시락 장사로 성공하도록 도왔고, 후사고로는 '다루미야'라는 도시락 가게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과식으로 히다루가미가 살이 찐 탓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다루미야는 여름에는 가게를 접고 휴식 기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십년 뒤, 다시 후사고로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히다루가미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들었던 스님의 독경 탓이었으리라...

열심히 일하면 도깨비도 도와줘서 복이 온다는 전래 동화같은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괴담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후사고로가 도시락 가게 다루미야의 주인인 덕분에, 여러가지 요리들이 등장해서 즐거웠습니다. 이야기도 뻔하지만, 히다루가미가 살이 쪄서 집이 무너질뻔하는 등 위기를 불러와서 '다이어트'를 위해 가게를 쉰다는 설정은 조금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좀 극단적이다 싶기는 했습니다만, 한번 뭔가를 한다면 극단적으로 하는게 에도 마인드?라는 생각도 드네요. 소품같지만 여러 볼거리가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삼귀" 

구리야마 번의 에도 가로였던 무라이 세이자에몬이 오치카를 찾았다. 대략 이십여년전, 그가 겪었던 괴상했던 일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죗값으로 깊은 산 속 호라가모리 마을 산지를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살기 힘든 호라가모리 마을은 위, 아래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마을에서 수습하기 어려운 환자를 솎아낼 때, 다른 마을 손을 빌릴 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오니'가 나타나 솎아내기를 맡게 되었다. 동료 산지기 스가의 아내와 아이가 솎아내기를 당한 뒤, 무라이와 스가는 오니를 쫓게 되는데...

무라이가 산지기가 되기 전 서두는 장황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구리야마 번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은 특히 과했고요. 다행히 진짜 괴담인 호라가모리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윗 마을과 아랫 마을로 나뉜 이유가 섬뜩하더군요. 기근이 닥친 마을에서 아이들을 잡아 먹기로 했는데, 자기 아이는 잡아 먹을 수 없어서 나무 상자에 넣고 교환했다는 중국 괴담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죽음을 도맡는 '처형인'이 있는게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단지 입을 줄이는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끈질기게 가혹한 삶을 이어나간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오니의 정체가 설명되지 않은건 아쉬웠습니다. 단지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산의 분노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습니다. 오니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윗 마을에 환자가 생기면 아랫 마을 촌장이 가서 죽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졌을겁니다. 오니는 아무런 댓가 없이 촌장들의 죄책감만 줄여준 셈으로, 오니는 그나마 마을이 유지되도록 도운, 유익한 지박령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형편좋은 요물이 있을리 없지요. 마을 사람들의 원념이 모인 결정체였다던가 같은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무라이와 스가가 오니를 추격하다가 마지막에 오니가 빈 껍데기라는걸 알게 되는 정도에 그칩니다. 무라이가 '이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까'라고 생각하는건 그냥 멋드러질 뿐, 설명되는건 없어요. 오니가 뭔가 이유라도 외치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도 - 사라졌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죠.

호라가모리 마을 묘사가 탁월하고, 윗 마을과 아랫 마을에 얽힌 비밀에 대한 진상은 흥미로왔지만 오니의 정체 등 상세 설정이 개운하게 설명되지 않는 단점은 큽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쿠라님" 

흑백의 방에 찾아온 손님은 향료가게 비젠야 미녀 3자매의 막내 오우메였다. 그녀는 오치카에게 자기 가게에서 모시는 수호신 오쿠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오쿠라님은 가게의 안녕을 돕고, 화재와 같은 재앙에서 가게를 지키며 가게 여주인과 딸들이 모두 미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신이었다. 그러나 큰 재앙에서 가게를 지킨 뒤에는 딸 들 중에서 한 명이 오쿠라님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그 말대로 오우메가 15세가 되었을 때, 큰 화재에서 비젠야가 무사한 뒤 오우메의 언니 오기쿠가 새로운 오쿠라님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집의 수호신이 사실은 신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 주는 요물이었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그래도 설득력있게 수호신을 그려낸 묘사도 좋고, '수호신'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젠야의 오쿠라님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요. 집을 지켜준건 분명하니까요. 이를 위해 오쿠라님이 딸 중 한 명이라는 진상도 으스스했는데, 생각해보면 딸 중의 한 명을 무조건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대에 걸쳐 큰 재앙이 닥쳤을 때 바치는 정도라면 꽤 합리적인 거래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설정 변주 외에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말도 뻔했고요. 이 이야기를 해 준 오우에는 사실 '생령'이 찾아온 거라는 진상도 별로였습니다. 비젠야의 마지막 데릴사위가 딸을 잃는건 참을 수 없다며 스스로 오쿠라님의 가호를 끊어버린 결과도 영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행동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비호를 잃자 그간의 재난들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와 비젠야가 삽시간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는데,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비젠야에서는 전승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이런 점에서 오쿠라님 괴담보다는 미시마야의 둘째 도미지로와 세책점 후계자 간이치를 비중있게 등장시키기 위한 발판 역할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문제는 새 등장인물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특히 한량으로 재미삼아 괴담에 관심을 가지는 도미지로는 최악입니다. 괴담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로 접근할건 아닌데 말이죠. 그나마 간이치가 과자 종류를 맞출 때 추리력을 살짝 선보이는건 인상적이었지만, 오우메와 비젠야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인물들과는 반대로 반대로 이전에 오치카 상대역으로 보였던 아오노 리이치로가 결혼과 귀향이라는 이유로 퇴장하는 결말도 급작스러워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

2014/12/29

대한민국 치킨전 - 정은정 : 별점 2.5점

대한민국 치킨전 - 6점
정은정 지음/따비

한국 치킨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산업적인 부분까지 다루는 치킨 관련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부 치킨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나
  • 2부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 3부 치킨은 무엇으로 사는가
  • 4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1
  • 5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2

개인적으로 음식 관련 서적이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해서 읽게 되었는데,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치킨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기 보다는, 치킨을 소재로 한 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탓입니다.

물론 기대했던 미시사적인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부에서 치킨이 대한민국의 소울푸드가 된 과정 및 현재 치킨의 의미를 자세히 짚어주고 있으니까요. 개신교의 영향, 그리고 미국 문화의 수입에 따라 축제 음식이 자연스럽게 일상식으로 전환되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치킨의 계보 역시 자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몰랐는데, 치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후라이드 치킨도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겪었더라고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세대 후라이드 치킨은 엠보 치킨. 보드람, 치킨뱅이, 둘둘치킨, 림스치킨 등에서 파는 것으로, 작은 닭을 '한방 염지'나 '야채 염지'라고 불리는 염지액에 담근 뒤 파우더를 얇게 입혀 압력 튀김기에서 튀겨낸 방식입니다. 물반죽 없는 건식 치킨이죠. 최근의 또봉이 통닭 역시 이 계열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2세대 후라이드는 민무늬 치킨으로, 물반죽 단계에서 바로 튀김기에 들어가는 방식이며, 시장 통닭이 대표적이라고 하네요. 양념을 묻히기 쉬운 것이 장점입니다.
3세대는 크리스피 치킨으로, 튀김가루를 묻히고 코팅 효과를 주기 위해 베터믹스(물반죽코팅)에 담갔다가 다시 튀김가루를 묻혀 튀기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소개되는 1부 외에는 사회·문화 비평서에 가깝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현대사와 자본가-노동자의 관계를 치킨 시장에 빗대어 풀어낸 내용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랜차이즈 치킨 사업과 양계 산업에 대한 서술입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대한 부분은 "프랜차이즈" 사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거의 폭로 수준으로 적혀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폭로나 비평 외에도 치킨 사업 자체를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쪽에 관심 있는 창업자나 개발자 분들께는 꼭 한 번 읽어보셔야 할 정도로요. 치킨이 정말 돈이 안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예전 통큰치킨 사태 때 공개되었던 원가 구조는 지금도 유효한 듯합니다. 한 마리 팔아봤자 2,000원 정도 남는 수준이라니, 하루 50마리를 팔아도 임대료 내기 빠듯해 보이네요.

또한 "하림"이라는 대기업의 지배하에 있는 양계 산업의 현실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책에 따르면 거의 착취에 가까운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기업형으로 닭을 길러야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점에 공급하는 염지닭의 공급가를 4,000~5,000원 선으로 유지할 수 있고, 지금 우리가 먹는 치킨값(만원대 후반)이 형성될 수 있다는건 씁쓸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유우코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다가 맛있는 닭요리를 먹고 정신을 차리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거기서 공장제 닭의 문제를 제기하며 방목해서 키운 닭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런 닭은 맛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마리에 4~5만 원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겠죠. 어떤 방향이 옳은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꽤 재미있고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기는 했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는 점, 그리고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치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치킨 계보로 넘어가고, 이어서 프랜차이즈 사업 이야기, 다시 마케팅 관점에서의 CF와 스포츠 연계 이야기, 마지막에는 양계 산업 이야기로 끝나버리니 역사면 역사, 이론이면 이론,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차라리 프랜차이즈와 양계 산업의 비양심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쥬 형태였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단지 현황 지적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예전에 보았던 MBC의 "닭큐멘터리 치킨"이 떠올랐는데, 방송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치킨집 창업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6/12

Q.E.D Iff 증명종료 6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6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만 읽던 와중에 확인해 보니, 본가인 Q.E.D도 2부격인 iff가 어느새 9권까지 나왔네요. 

이번 권은 한 편의 일상계와 한 편의 강력 범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Q.E.D 전통의 구성이지요. 보통 한 권에 4편 정도의 이야기를 수록하여 빠르게 진행하는 CMB와는 다르게, 한 개의 이야기를 보다 긴 호흡으로 디테일하게 전달해 주는게 QED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두 편 모두 이렇게 길게 늘일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디테일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지루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특히 첫 번째 이야기인 "지구에 떨어졌다 말하는 남자"가 심합니다. 미국에서 마약 조직간 항쟁에 휩싸인 와타루의 이야기와 자신이 '외계인' 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먼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던 탓입니다. 사이먼이 토마와 3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웜홀을 통해 지구로 이동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어요. 이보다 낫기는 했지만 "추락" 역시 여러모로 썩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에나리와 그 일당이 대학에 진학해서 여전히 탐정 동호회 놀이를 하고 있다는 등 오랜 팬으로서 반길 요소가 없지는 않았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분발해 주면 좋겠네요.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지구에 떨어졌다 말하는 남자"

1986년, 모리타 리사는 미국에서 도미니코를 만나 결혼하지만, 이혼 후 양육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다.
10년 후, 리사의 아들 와타루는 가난한 환경 때문에 마약 판매 조직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4년 뒤인 14살 때 마약 조직간 항쟁에 휘말려 총상을 입고 버려졌다.
현재, 대학에서 미스터리 연구회를 만든 에나리와 홈즈, 멀더는 수수께끼를 찾다가 멀더의 할머니에게 찾아온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발의 남자 사이먼이 스스로 우주인이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족은 사이먼이 의절한 고모인 리사의 아들 와타루라고 생각하고 모발을 습득하여 DNA 검사를 진행하는데...

서두에 나오는 미국에서의 잔혹한 갱단간 싸움이 멀더 모리타의 가족과 관련된 일상계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핵심 수수께끼는 사이먼의 정체입니다. 우선, 사이먼이 와타루라면 외계인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산이 탐난다면 더더욱 본인이 와타루라는걸 밝히는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왜 외계인이라고 주장할까요? 별다른 사기를 치거나, 할머니 돈을 훔쳐 달아나는 것도 아니니 그 정체는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DNA 검사 결과를 통해 할머니와 사이먼은 조손 祖孫 관계라는게 드러나서 사이먼은 와타루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리사와 와타루는 모두 사망했다는게 확인되었다고 통보되어 사이먼의 정체는 미궁에 빠지고 말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이먼은 와타루가 맞습니다. 토마의 추리에 따르면 리사와 와타루가 죽었다고 알려진건 갱단 조직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묵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별로 와 닿지도 않네요. 비슷한 주제로 만화를 거의 90여권 가까이 (CMB 포함) 발표하다 보니, 일본 내에서의 이야기로는 이제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일본 일상계 안에 가져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상이 와타루가 '외계인'을 자칭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딸과 의절하고 원조를 거절하여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게 만든 할머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게 목적이었다면, '외계인' 이라는 수상쩍은 주장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체에 대한 의심만 불러오니까요. 수상쩍은 남자를 집에 들인 것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부탁 때문이지, 외계인이라는 사이먼의 주장은 문제만 일으켰을 뿐이에요. 

또 에나리와 그 일당(?) 들, 토마와 가나의 활약도 거의 없고 주어진 정보에 따른 안락의자 탐정 역할만 마지막에 수행하기 때문에 이야기도 딱히 재미있지 않았어요. 현학적인 재미를 전해주는 부분도 '외계인' 사이먼과 웜홀 등에 대해 논하는게 전부로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없어서 영 별로였습니다.

이 보다는 차라리 백화점에서 사이먼이 미행을 따돌리고 사라진 방법이라던가, 열쇠가 없는데 집에 들어온 방법에 대한 일상계다운 추리가 더 볼 만 했습니다. 특히 가족 중 유일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한 '리사'를 위해, 그녀가 열쇠를 숨겨두던 곳에 열쇠를 여전히 두고 있었다는 건, 트릭으로서도 괜찮지만 가족 간의 정을 드러내는데 꽤 효과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래도 긴 이야기에서 건질게 이 정도라면 많이 부족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평균 이하의 지루한 이야기였습니다.

"추락"

TV 인기 드라마 프로듀서인 에코다 와타루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옥상에서 탈출하려다가 떨어져 죽은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한 가지 의문을 남겼다. 왜 그는 직접 탈출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일까?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문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잠겨서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던 상황을 풀어낸 트릭은 괜찮았습니다. 경비가 위에서부터 문을 잠그고 순찰하면서 내려온다는 시간차를 이용한 것이지요.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 트릭 외에는 모든 부분, 진상과 동기, 진범의 정체 등 모든게 다 엉망이었습니다. 일단 사건부터 보면, 범인이 똑똑해보이지만 문제가 너무 많아요. 에코다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의문이 남게 되니까요. 특히 탈출하기 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건 바보같은 경찰도 바로 눈치챌 정도로 이상했으며, 토마의 현장 조사를 통해 에코다 와타루가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옥상 난간의 콘크리트 조각의 위치는 왼손 쪽이라는게 밝혀지는 것도 범인이 들인 공에 비하면 많이 어설펐습니다.

에코다를 아래쪽 창문으로 들어오라고 유도했다는 상황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아요. 조금 기다린다고 얼어 죽을 날씨도 아닌데 건물 옥상에서 아래 층 창문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한다? 저는 죽어도 못합니다. 차라리 창문으로 들어오라는 범인에게 경비를 불러달라고 하는게 현실적이잖아요? 

수갑으로 묶여있던 여배우 츠루미 안나가 진범이라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1층에 있던 각본가 온다가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다는걸 증명했다는게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는데, 온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건 증명되지 않았으니까요.
Q.E.D에서 자주 써 먹는 인기 소재인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상황' 에서 증언만으로 진범을 찾아내는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온다와 신인 여배우 츠무기, 미술 책임자 가즈야가 입을 맞추면 츠루미의 이상한 계획보다는 더 그럴싸한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때문에 온다보다는 1층에 아르바이트를 왔던 가나가 있었다고 설명하는게 더 바람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나의 범행 동기도 설득력이 낮아요. 에코다가 미성년 매춘을 했다는걸 알고, 그의 스캔들 때문에 중요한 배역을 놓칠까봐 살해했다는데 그가 죽었다고 스캔들이 표면화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프로듀서의 사망이 스캔들로 해고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문제가 덜하리라는 보장 역시 없고요. 에코다가 스캔들로 해고될 경우, 각본가가 미는 배우 츠무기에게 배역을 빼앗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에코다가 사망한 경우도 마찬가지니 구태여 모험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어느정도 성과가 있는 여배우라고 묘사되는 안나가 직접 범행을 저지른다?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무리봐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억지투성이 이야기였습니다. 이 실망감을 다음 권에서는 보란 듯이 만회해주면 좋겠네요.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20/11/01

비틀거리는 소 - 아이바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점

비틀거리는 소 - 6점
아이바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가와 신이치 형사는 미해결 사건인 나카노 역 앞 선술집 강도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는 외국인이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니라, 두 명의 피해자를 노린 계획 살인 사건이라는걸 알아냈다. 그리고 범인이 도주할 때 사용했던 차량 소유주를 알아내고, 소유주 아베 사나에의 정부인 가시와기 노부토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시와기 노부토모는 유통 재벌 옥스 마트의 후계자로, 수사에 대한 여러가지 압력이 들어왔다. 그래도 다가와 형사는 상사 미야타 과장의 지지를 받아 노부토모를 체포하기 위한 증거를 모아 나가는데....

'현대 사회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궁극의 사회파 미스터리!'라며 마쓰모토 세이초를 소환하는 소갯글에 흥미가 끌렸었습니다. 그런데 엘릭시르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좋은 책을 선사해주신 엘릭시르 담당자분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미스터리 사전"에 따르면,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 제도의 모순이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사건, 트릭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한 미스터리 작품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의에 동의할 수는 없어요. '미스터리' 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만 그리는건 적절하지 않지요. 제가 읽어왔던 다른 걸작 사회파 미스터리물 모두 사회 문제는 사건과 엮어 은근하게 드러납니다. "화차"에서의 사채와 개인 파산, "도끼"에서의 실업 문제, "제로의 촛점"에서의 전후 양공주 문제, "천사의 나이프"의 소년 범죄 문제, "붉은 손가락"의 치매 노인 문제 등이 그러합니다.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이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걸맞게, 사건에 녹여져 있는 거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사회 문제 따로, 사건 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사건, 이야기에 잘 녹여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이래서야 '사회파'일 수는 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옥스 마트가 지역 상권, 공동체를 집어 삼키는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다가와 형사가 지방으로 탐문 수사를 가서 유령 상가를 보고 느끼는 감정들, 쓰루타 기자가 쓴 기사 등을 통해 자세히 그려집니다. 띠지에서도 소개될 정도로요.
그러나 옥스 마트가 무슨 로비를 해서 지방 도시에 출점을 했건, 임대 매장이 매상 부진에 시달리건 말건, 모두 곁가지 이야기에요. 선술집 살인 사건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옥스 마트 관계자를 악역으로 설정하는 역할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역 상점가가 무너진걸 옥스 마트 탓으로 돌리는 시선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 된다면? 어차피 모두 사양 산업입니다. 옥스 마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이유는 없어요. 

차라리 식품 안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조금 더 와 닿기는 했습니다. '싸고 좋은 음식은 없다'는 주장으로, 남의 이야기같지 않아서 공감이 갔습니다. 이를 위해 '걸레'라고 부르는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하지만 사건과 별 상관이 없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이유로 사회 문제를 작품안에서 드러내는 역할인 쓰루타 기자 역시 선술집 살인 사건만 놓고 본다면 불필요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등장시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녀가 잘 나가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매체에서 옥스 마트를 공격하는 기사를 쓴 원인이 되었다는 가정사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으며, 캐릭터도 전형적이라 별다른 매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사건 이야기는 재미있느냐? 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선술집 강도 사건이 미궁에 빠진건 초동 수사가 잘못된 탓이거든요.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는게 아니에요. 약간의 수사만으로 강도가 아니라 수의사와 산업 폐기물 처리 업자를 노린 계획 살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수의사와 산업 폐기물 처리 업자를 '소'와 연결하면 '광우병'과 관련된 범죄라는건 쉽게 떠올릴 수 있고요(제목이 스포일러이기도 합니다). 이를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는 것 처럼 포장하는건 무리입니다. 

또 이 모든건 탐문 수사로 단서가 드러나기에 추리의 여지도 없고, 범인이 가시와키 노부토모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거대 유통 기업 총수 아들이 직접 2명이나 죽이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그것도 개인적인 약점이 아니라 회사에 닥칠 위기를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마트 후계자 쯤 되는 인물인데 말이지요. 입을 막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돈으로 회유하려는 시도부터 먼저 해 보았어야죠. 회사의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하는 다키자와라는 인물도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나설 이유도 없고요. 범행 수법도 어설픕니다. 심지어 도주할 때 자기 차를 썼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요. 초동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미비해서 잘 빠져나갔을 뿐으로 피해자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다던가, 경찰에서 처음부터 다가와 형사같이 접근했더라면 2년 전에 이미 구속되었을 겁니다.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 '역수'로 칼을 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백을 이끌어내는 장면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딱히 볼만한 부분이 없었어요. 마지막에 미야타 과장이 옥스 마트와 결탁하여, 사건을 치정 살인 사건으로 축소, 은폐하는 모습도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했다 생각되네요.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다가와에게 수사를 맡기지 않았으면 되잖아요? 이를 묵인하면서 뒤로 진상을 폭로하려는 다가와 형사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수사 과정에 대한 묘사 만큼은 좋았거든요. 특히 끈기있는 탐문 수사가 장기라는 다가와 신이치 형사의 수사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프렌치 경감'을 연상케하는, 우직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덕분입니다. 수사 대상과 인간적인 친분을 먼저 쌓고, 항상 메모를 한다는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광우병이 연결 고리라는걸 너무 늦게 파악하는 등 추리력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요.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도 재미가 없지는 않아요. 한번 정도는 곱씹어볼만한 좋은 이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사회파 미스터리'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좀 더 미스터리에 밀결합하여 전개했어야 했습니다. 술집 강도 사건 수사는 이 작품 분량의 절반이면 충분했을거에요. 피해자 아카마 유아, 니시노 마모루와 '소', 그리고 범인 가시와키 노부토모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은 실제로 그 정도 분량에 그치니까요.
또 광우병은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등장하는데, 딱히 문제로 제기되지도 않습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부산물을 불법적으로 섞어서 식품을 제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언급은 등장하지 않거든요. 

결론적으로, '사회파 + 미스터리'가 아니라 '사회파 | 미스터리'인 셈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다가와 신이치 형사는 마음에 들은 만큼,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2016/01/08

테두리 없는 거울 - 츠지무라 미즈키 / 박현미 : 별점 2점

테두리 없는 거울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arte(아르테)

'감성 호러'라는 마케팅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읽게 된 작품. 대체 호러가 어떻게 감성적일 수 있을까 아주 궁금했거든요.

허나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습니다. 소녀 취향 감성은 넘쳐나지만 호러의 비중은 지나치게 낮은 탓입니다. 전혀 무섭지 않아요. 때문에 볼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호러 소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도 "계단의 하나코" 외에는 범죄물이나 일상계에 가까와서 호러로 보기 어렵고요.

또 수록작 5편 중 2편이나 내용 파악이 어렵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대부분 같은 의견이더군요) =.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답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계단의 하나코"

  • 첫 번째.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 산다.
  • 두 번째.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 세 번째.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다.
  • 네 번째. 하나코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 다섯 번째. 하나코가 상자를 줘도 받으면 안 된다.
  • 여섯 번째. 하나코에게 부탁할 때는 하나코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일곱 번째. 하나코가 내리는 벌은 계단에 갇히는 무한 계단의 형벌.

학교의 왕따 사유리 자살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로 일본 괴담의 메이저 중 메이저인 하나코가 등장합니다. 화장실이 아니라 계단에서 나타나는 하나코를 그리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굳이 '하나코'였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네요.

하여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하나코에 얽힌 일곱 가지 불가사의를 엮어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아이카와의 후배 지사코로 변장한 하나코가 나타난 후,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아이카와가 간절히 계단을 청소한 덕분(핏자욱을 지우기 위해)이며,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데 다행히 아이카와는 지사코가 선물한 케잌과 사탕을 먹지 않아서 운 좋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결국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에 걸려서 무한 계단 지옥에 갇히게 되지요. 이러한 과정의 긴박감은 일품입니다. 아이카와의 심리 묘사 역시 발군이고요. 마더 구즈 동요에 맞추어 살인극이 벌어지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라면 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부분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코는 부탁을 들어 주는 역할도 있는 듯한데 여기서는 벌만 내린다는 점입니다. 좀 의아했어요.
아이카와 앞에 하나코가 나타난 게 사유리의 죽기 직전 부탁이 아니라 아이카와의 간절한 소망때문이라면, 사유리의 죽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복수자 역할을 수행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죽기 직전 사유리가 계단에서 "살려줘!"라고 외쳤다는 묘사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아이카와의 범행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독자 상상에 기대는 부분과 사유리를 왕따시킨 학교 아이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결말도 답답하고 찜찜했습니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네를 타는 다리"

애니메이션 하이디의 그네 속도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왕따 이야기와 분신사바를 엮는 과정과 '큐피트님'이라는 유령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인기없던 미노리가 인기 있는 가오리 그룹에 들기 위해 분신사바 놀이를 하다가 유령을 화나게 했다... 그런데 그 유령 때문에 미노리가 죽었다? 유령의 정체도 모호하고, 아카네의 상상이 미노리와 겹치는 마지막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려면 최소한 유령의 정체, 혹은 죽음의 이유는 명확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아빠, 시체가 있어요"

쓰쓰지와 엄마, 아빠가 치매가 있는 시골 할머니 집 청소를 나섰다가 집안 곳곳에서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시체가 왜 나왔으며 시간이 지나면 쓰쓰지를 제외한 사람들은 왜 모른 척을 하는지, 연달아 시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에필로그는 누구의 제사 장면인지 등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대체로 제 감상과 동일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잠깐 고민해 본 결과로는, 앞서 청소 시작 전 아버지가 5월 내내 청소해야 된다는 말을 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의 일력은 5월 5일이라는 것이 핵심인 듯 합니다. 즉, 에필로그는 사실 청소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것이지요. 앞서 2주에 걸쳐 시체를 치우고 집배원까지 죽인 뒤, 방문 간병인이 오게 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한 달은 걸렸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앞서 묘사된 청소와 시체 은닉은 모두 쓰쓰지의 상상이 아닐까요? 집에서 발견한 것은 시체가 아니라 쓰쓰지의 오래된 나쁜 기억, 예를 들자면 과거 이 집에서 죽은 것으로 묘사된 주민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당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매주 어머니, 아버지가 시체에 대해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설명이 되고요. 아니면 히로후미의 수건이 놓여져 있는 제사상을 볼 때 히로후미가 죽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가족 모두가 관계되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진상은 도무지 알 길이 없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블랙코미디스러운 전개는 그럴듯했지만 내용도 모를 글에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테두리 없는 거울"

표제작입니다. 거울에서 본 미래(아이)가 악몽으로 구체화되고, 이 미래를 죽이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저주를 다중인격 범죄와 엮은 작품이지요.

사건의 원인과 동기,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약간 추리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좋았고요. 가나코 시점에서 다카하타 도야 - 다카하타 유이치로를 뒤섞는 심리 묘사는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보아도 무방하고요. 트릭이 약간 반칙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8월의 천재지변"

신지는 병약한 친구 교스케와 더불어 왕따를 당하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공의 친구 "유짱"을 창조하여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 밝혀지고,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 때 "유짱"이 나타나났다...

거짓말이 현실이 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가 핵심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 비밀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지가 유짱의 정체가 사실은 매미가 아닐까 고민하는 과정, 교스케가 진료소에서 친구를 사귀었다는 복선과 함께 밝혀지는 마지막 결말도 아주 괜찮았어요.

하지만 이 작가 스타일일까요? 결국 유짱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 불명확한 게 옥의 티입니다.. 초등학교에서의 왕따가 주요 동기로 계속 등장하는 것도 지루한 요소였고요.

그래도 평작 이상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떠올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름을 무대로 초등학생들이 등장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건 설정이 반대라는 점입니다. 유짱이 매미의 화신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알고보니 실존 인물이라는 결말이거든요. "해바라기..."는 죽은 친구가 거미로 환생하는데 알고 보니 주인공의 환상이었다는 것이니 완벽하게 반대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