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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09/08/13

미식견문록 - 요네하라 마리 : 별점 3점

미식견문록 - 6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마음산책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수필집입니다. 홍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구입하고 나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여러모로 꽤 유명한 작가인듯 싶네요.

내용은 제목 그대로 "미식"에 대한 "견문록". 즉 음식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와 레시피, 그리고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 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신변잡기적인 글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다른 미식관련 문헌과 차이점이긴 하지만 큰 중심이 음식과 관련된 일화 소개라는 것은 똑같다고 할 수 있겠죠.

목차별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제1악장 Russian Rhapsody" 는 주로 러시아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극악의 구소련제 통조림 이야기라던가, "할바"라는 궁극의 누가 설탕 과자 이야기가 재미있더군요.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통조림 이야기는 정말 새로왔습니다.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농담의 소재로까지 쓰였을까 싶고, 왠지 먹어보고 싶어절 정도였으니까요. 흡사 악평이 가득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요?
"할바"라는 설탕 과자 이야기 역시 어렸을때 단 한번 맛본 천상의 맛을 찾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방팔방 찾아다니며 다양한 레시피를 수집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싶었고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대부분 저자의 프라하-러시아 생활 경험담이 대부분이긴 한데 다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새로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당연하겠죠.

"제2악장 Andante Mangiabile" 는 소설이나 동화, 전설같은 친숙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었고 주목할만한 이야기는 "인도 핫케이크!". 저 역시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 "꼬마 깜둥이 삼보" 에 등장하는 핫케이크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 동화의 요지는 삼보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들이 나무 밑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전력질주하며 뱅뱅돌다가 녹아내려 버터가 된 것을 삼보의 엄마가 핫케이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인데 저자는 바로 이 핫케이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벌여 원래 이 동화의 배경은 "인도" 였다는 것. 때문에 버터와 핫케이크는 저자의 의도와 번역이 결합된, 일종의 잘못된 정보이고 원래대로라면 "기이"가 잔뜩 들어간 "난" 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짝짝짝. 이 정도라면 약간 허무하기도 하지만 집요하면서도 끈기있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외에도 모모타로의 기장경단이나 너구리 죽, 과자집 등 친숙하지만 잘 모르는 음식 이야기가 가득한 부분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네요. 너구리 죽은 그 맛이 정말 궁금합니다.

"제3악장 Largo"는 저자의 신변잡기적인 글이 실려있는 부분입니다. 가장 재미있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한 부분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굉장히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시통역할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리가초프 - 고르파초프 - 옐친 순으로 신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잘 먹었는데 신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잘 먹을 수록 확실히 "개혁파"에 가까왔다... 라는 이야기라던가, 앵글로색슨족,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은 것은 "맛없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세계 어느곳에 가도 불평없이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 기발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 외로는 자신이 먹었던, 혹은 접했던 음식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들이 실려 있는데 먹성 좋았던 미식가 삼촌이 유언삼아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인상적이더군요. "역 도시락은 팔각 도시락으로 해라..." ^^;; 정말이지 대단한 집안이에요...

어쨌건 수필집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후딱 읽을 수 있었고 재미도 있어서 만족스러운 도서였습니다. 저자의 시각이나 해석이 독특한 것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한국어판의 지저분해 보이고 내용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삽화, 디자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실 책을 찾으신다면 추천합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2020/03/21

문학을 홀린 음식들 - 카라 니콜레티 / 정은지 : 별점 2.5점

문학을 홀린 음식들 - 6점
카라 니콜레티 지음,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정은지 옮김/뮤진트리

푸주한이자 전직 페이스트리 요리사이자,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인상적인 요리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경력에 딱 맞는 책이네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제법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비슷한 책만 해도 "죽이는 요리책",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가 있지요. 그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의 작품 속 요리에 대해 다루는 등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책들이 그동안 불만스러웠었습니다. 그냥 등장한 요리의 나열일 뿐, 그 요리가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레시피 소개와 재현에 치중할 뿐 그 요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추리 소설 속 주요 등장 요리들을 주제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졸저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제 원칙은 작품 속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요리라 하더라도,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주제로 삼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요리들에 대한 단순 레시피 뿐 아니라 그 요리에 대해 제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해당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책은 제가 추구한 방향과 어느정도 비슷합니다. 주제로 선정된 요리들이 작품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요. "오만과 편견"에서 "니콜스가 화이트 수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대로" 초대장을 발송하겠다고 한 뜻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저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 수프는 역사가 깊은 요리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미스터 다아시나 미스터 허스트 등 프랑스 요리에 정통한 까다로운 손님들을 초대하려면, 화이트 소스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했다는 뜻인 것이죠.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던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오블론스키가 굴을 탐식하는 장면을 그의 끝없는 성욕과 연결시키는 부분 등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핵심 소재라서 등장하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저도 딸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 등장하는 핫 케이크 반죽이 대표적입니다. "위대한 유산"의 유산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식 중 하나인 '동그란 돼지고기 파이'도 비중만 놓고 보면 충분히 소개해 줄 만 하고요.

아울러 해당 요리의 역사 등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요리사이기도 한 저자의 직업 덕분에, 저자 스스로 만들어 본 상세한 레시피들은 제 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제가 주제로 삼은 요리를 실제로 재현해 봤어야 하지만,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재료와 장비의 수급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 힘을 쏟지 못했거든요. 이 차이는 "오만과 편견" 속 화이트 수프 레시피를 당시 요리책에서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 본 결과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세기 레시피는 모두 끔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의 '화이트 갈릭 수프'를 제안하지요.
그 외에도 남부식 비스킷을 만드는데는 라프 라드가 꼭 필요하다는 팁 등의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곁들여진 일러스트들도 최고 수준이고요.

그러나 소개되는 모든 요리들이 그러한건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처럼,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기도 하고, 또 해당 작품을 읽었을 때의 저자의 경험에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는 등 개인적인 경험이 담뿍 담긴, 개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도 많습니다. 원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문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런 개인적인 글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 갈 수록 제 방향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아주 돋보였습니다. 이런 분과 손잡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에 대해 합작하면 참 좋겠다 싶네요.

2019/06/16

독서실력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지영 : 별점 3점

독서실력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지영 옮김/생각의집

일본의 유명 장서가이자가 독서가, 서평가 오카자키 다케시독서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제목만 보면 책을 읽는 일종의 요령을 알려주나 싶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평상시 가지고 있는 독서에 대한 생각 중심의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을 뿐입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독서 실력은 별게 아닙니다. 요령이라는게 있을리도 없어요. 그냥 많이, 즐기면서 읽으면 느는게 당연하니까요. '읽을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전에는 몰랐던 것이 갑자기 보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 읽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 나이 들어 다시 읽었을 때 확 와닿기도하는 것'이지요.

원래 저자의 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만 읽는 인생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맞게 쓰였다'라는 말머리부터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부두에서 책 읽는 여자" 속 모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멋있었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독서 실력은 별거 아니다'라는 등 독서에 대한 저자의 여러가지 생각이 상당히 공감됩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린다면, 우선 "책은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다. 책은 본디 불편한 것이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집중해야 하는 장소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기타 등등 필요한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책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동의합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건 거짓말이다. 마음이 있다면 얼마간이라도 읽을 수 있다." 는 독서를 하지 않고 핑계만 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고, 책을 왜 읽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답하는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도 굉장히 와 닿습니다. 읽는 걸 즐기고, 더 알아가는 걸 즐기기 위해서인데 저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하거든요. 같은 이유로 자기개발서적은 즉효성을 기대하는 안일한 생각에 불과하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어요. 

이러한 주장을 "즐기지 못하는 정신은 허약하다. 즐기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 문화는 미숙하다. 시나 문학을 즐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얕은 수준으로 현실 생활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도 멋집니다. 

'베스트셀러가 존재하는 이유는 독서가 힘든 현대인들이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검증된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 때문이다, 따라서 베스트셀러는 상품이며 화제일 뿐이다'는 "베스트셀러 論"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베스트셀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래도 나중에 읽어서 재미있다는 베스트셀러 읽기 방법도 따라해보고는 싶네요. 재미와 가치를 떠나 책이 유행했던 당대의 트렌드와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좋은 방법이라는건 맞을테니까요. 80년대 일본 청춘 만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만화를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된다는 것도 제 생각과 똑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유도 같아요. 만화를 읽는 사람은 활자 책에도 손댈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만화도 안 읽는 사람이 책을 읽을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독서에 관련된 이야기 말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여러가지 자잘한 서평을 쓴다고 해서 책 추천을 받는건 난처하다는게 대표적인데 저 역시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와 닿습니다. 최소한 자기가 보고 싶은게 어떤건지는 상세하게 알려줘야 그나마 추천이 가능하다는데, 맞는 말입니다! 저한테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추천해 줘" 라고 물어본들 고전 본격물을 좋아하는지, 하드보일드를 좋아하는지, 현대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는지, 일본 쪽 작품이 취향인지 아니면 유럽 쪽 이야기가 취향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알려줘야 좋은 추천이 가능하겠지요. 정말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나 읽어야 하는 걸작이라면 자신있게 추천하겠지만, 그런 작품은 적으니까요. 저자의 말대로 서평가는 책을 추천하는 자동판매기가 아닙니다. 

독서에 대한 기묘한 발상들도 매력적입니다. 독서를 하면서 감정의 진폭으로 인해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는 것은 정신 쪽으로, 어떤 책이라도 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접해야 하고 감정의 진폭은 정신이 그 거리를 안배한다는 색다른 시각이 그러합니다. 책만이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체화 될 수 있다니 생각해 본 적도 없거든요. 독서가 걷기와 비슷하다는 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몰입 전 파장을 맞추기를 튜닝이라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고, 서평가로서 서평 쓰는 요령도 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이 역시 참고할 만 합니다. 저자는 800자 분량으로 그 책이 저자에게 어떤 책인지 평가하고, 줄거리, 읽을 만한 부분, 핵심 부분의 인용, 마무리 순으로 쓴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을 북돋아야 한다는데, 많이 반성이 됩니다.

언제나처럼 책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대부분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소개된 책으로만 한정한다면, 우선은 자신의 학력에 자신이 없다면?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 (국내 출간명)이 있습니다. 자서전으로 배움에는 그 어떤 한계도 없다는 내용이라는데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동화책 "코딱지"는 제 딸이 이런 책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긴 해서 아쉽게 패스하지만요.
국내 소개되지 않는 책 중에서는 이소다 가즈이치의 "소재 만다라, 책과 사투하는 사람들"은 정말 땡깁니다. 책에 미쳐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데 제 꿈이기도 한 삶이라 어떨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저자의 말대로 소재는 성채고, 저는 작은 왕국의 국왕이 될 수 있죠. 한 때(1980년대?) 시대의 총아였다는 가타오카 요시오의 여러 작품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옛 추억이 하나 떠올라 반가웠어요. 80년대 OVA 황금기에 발표되었던 "바비에 반해서"라는 애니메이션 원작이 가타오카 요시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꼭 한 명을 고른다면 선택한다는 작가 쇼노 준조의 작품들도 국내 소개된다면 한 권 정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공감되고 와 닿는 내용이 많기는 한데, 모든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버스 운전석 뒤에서 책을 읽는 게 최고로 좋다는 작가의 말입니다. 저는 멀미가 심해서 흉내도 못 내겠습니다.
저자가 일반 취미인 수준을 넘어선 광狂이라서 좀 무리한 주장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어요. 책을 쌓아놓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러하죠. 저도 마찬가지이긴하나 너무 과장하고 있어서 썩 공감이 가지는 않더군요. 순수하게 책을 읽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발상도 마찬가지고요. 재미야 있겠지만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독서인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같은 독서인 후배로서,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저만의 독서 철학과 독서 세계를 언젠가는 정립하여 꾸며보고 싶은 욕심도 드네요.

덧붙이자면, 책의 맨 뒤는 저자의 추천 책 여러 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국내 정식 출간작은 기타무라 가오루"하늘을 나는 말" 밖에는 없네요. 소개된 작가도 별로 없고요. 일본 작가의 책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팔릴 일이 없을 책 관련 에세이 등이 많기는 하지만 조금은 아쉽군요. 그래도 검색하다 찾은 구시다 마고이치의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고전과의 대화"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려 합니다.

2016/05/20

책장의 정석 - 나루케 마코토 / 최미혜 : 별점 2.5점

책장의 정석 - 6점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일본 유명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의 책장 관리법을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4개의 단락 - 책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과 책 관리법, 저자가 생각하는 책 선택법과 독서법,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웹에서 호평받는 서평 쓰는 법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저자는 1955년 생으로 1991년 일본 마이크로 소프트 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비즈니스 맨입니다. "honz"라는 서평 사이트의 개설자로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사고, 1년에 200권도 넘는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이기도 하고요. '시마 사장'이 떠오르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독서가답게 글도 잘 쓰고 나름의 철학도 분명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서관이 명확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자의 책장 관리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보기 편할 것', '20퍼센트의 여백이 있을 것'과 '승부수가 될 책만 둘 것', '다양성은 갖되 위화감을 없앨 것', '언제나 변화할 것' 입니다. 보기 편한 것과 여백은 그렇다 치고, 승부수가 될 책만 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일절 꽂지 않고 오로지 논픽션 중심으로만 책장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소설과 만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정보의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서 책장에 계속 남아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버리게 되는 탓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은 테마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저자의 테마는 '남들이 읽지 않는 재미있는 책' 이며, 테마는 약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면 좋다는군요.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변화하는 책장'이 바로 책장 관리의 핵심입니다. 우선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인 "신선한 책장" (장소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곳에, 책을 눕힌 채로 놓고 책등의 제목이 보이게 쌓는, 즉 서점의 '평대' 느낌)이 있습니다. "신선한 책장"에서 다 읽은 책은 "메인 책장"으로 옮깁니다. "메인 책장"에 넣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기준은 '1. 재미있는가 2. 새로운가 3. 정보가 많은가'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한 20퍼센트의 여백과 같은 공간 관리에 신경쓰며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메인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장이 꽉 차면 결국 책을 처분해야 하지만 나름 선별한 것이라 버리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관리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면 역사 관련 서적은 어떻게 하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역사는 정보가 새롭게 바뀔 여지가 아무래도 적잖아요? 이미 정해진 과학, 수학 쪽 논픽션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또 정말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1년에 1~2권만 건진다고 해도 수십년이면 엄청 많아질텐데 말이죠.

이러한 책장 관리법 외에 저자가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딱히 언급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독서법에서 포스트 잇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괜찮더군요. 요건 바로 따라해봐야 겠어요.

마지막 서평 쓰는 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만 서평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차이는 있지만 같이 서평, 독서 감상문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참고될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법 측면에서 '1) 책 제목은 반드시 겹화살괄호로 쓸 것 2) 어미는 통일 할 것 3)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너무 떨어뜨리지 말 것 4)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2번과 4번은 저도 항상 쓰면서 고민하는 부분이라 확실히 이해가 되더군요. 참고로, 1번도 따라해보려고 했는데 html 태그 오류가 잦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구성에 대한 설명도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총괄 1,2 - 에피소드 1,2 - 감상 - 저자 - 일러스트나 장정 - 대상 독자 - 정리의 순으로 적는다'는게 핵심입니다.
우선 총괄 1에서 그 책이 어떤 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분명하게 소개하고(이것만 따로 잘라 내도 서평으로 구성될 수 있는 참신한 핵심 내용), 총괄 2는 총괄 1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재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1이 '재미있다'라면 2는 '정말로 재미있다'라고 재 확인하는 것이지요. 에피소드 1에서는 재미를 구체적으로 쓰고, 2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고요, 감상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를, 다음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일러스트와 장정 등 글 이외의 요소 언급하며 예상되는 독자층에 대해 쓰고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정리와 총괄의 차이는 서평을 읽은 사람에게 책에 대해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인데 확실히 예비 독자들에게 꽤 유용하겠다 싶네요. 실제로 이렇게 쓴 서평 예문도 괜찮았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해서 쓴 것인데, 앞으로도 많이 써먹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앞서 말씀드렸듯 책장 정리에 대한 욕심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확실히 고수의 책장 관리와 독서법은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놀랍기도 했고요. 자신이 독서가라고 생각되신다면, 그리고 집에 쌓이는 책 정리에 고심하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이사가게 되면 책장에 여유를 좀 두고 자주 정리해서 안 읽게 된 책은 정리해야 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 국내에 소개된 책들만 따로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2016.05 기준).

  •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양자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글방
  • 크리스틴 바넷, 이경아 "제이콥, 안녕? 자폐증 천재 아들의 꿈을 되찾아 준 엄마의 희망 수업" 알에이치코리아
  • 다니엘 T 맥스, 강병철 "살인단백질 이야기 :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김영사
  • 오코우치 나오히코, 윤혜원 "얼음의 나이 :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 계단
  • 구메 구니타케, 정애영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 궁리출판편집부 "세계만물 그림사전" 궁리
  • 마크 레빈슨, 김동미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 21세기 북스
  • 빌 로스, 이지민 "철도, 역사를 바꾸다" 예경

2017/11/25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4점

오래된 디자인 - 8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부제는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입니다. 저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하시는 디자이너로 동문 선배님이시더군요. 알라딘 등을 통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에세이인데,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관점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글재주도 빼어나서 읽기도 편하고요. 읽기 편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이 책 맨 앞에 수록된 도올 김용옥의 서두만 읽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올의 글도 물론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그러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서두만 읽었을 때에는 본문도 이렇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을 정도인데 무척 다행이었어요.
또 단순한 생활 속 신변잡기 같은 글들 뿐 아니라 복잡하거나 사연있는 디자인이나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글들마저도 쉽게 읽히는건 정말이지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글이 좋은 예에요. 요강에서 시작하여 변기로 이르는 과정과 변기가 미술관에 놓인 사연을 통해 "다다이즘"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다다이즘은 "예술품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한 제도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 보다는 호랑이 요강이 더 정이 가고 좋다!라고 마무리되고요.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은 위한 삶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요약하니 좀 두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글을 한 번 읽어보시면 호랑이 요강과 샘의 차이가 무엇인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세한도를 디자인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에세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 그림인지는 관련된 서적을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편집 디자인" 관점으로 분석해서, 세한도는 "그리드"시스템, 모듈 관점에서 보아도 완벽하다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니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또 명품, 유명 디자이너가 손댄 것들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재활용 디자인 등도 중요하다고 서술한 관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유명 디자이너가 손 댄 것이 당연히 좋고 예쁘겠지만 단지 미학적,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는 관점보다 중요한건 삶과 생명 그 자체라는 논리로 디자이너가 만든 가죽으로 된 이케아 쇼핑백이 수백만원에 팔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저자는 다른 글들에서도 허울뿐인 허례 허식을 비판하면서 "사실 디자인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되고 싶어 할 지 모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디자인이란 조금 다듬어진 상식의 범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저 역시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정말이지 와 닿는 말이에요. 이런 글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선민의식은 제발이지 사라졌으면 하거든요.

그 외의 다른 글들 모두 대부분 하나하나 곱씹을 만한 좋은 글들입니다. 도판도 적절하고요. 몇몇 글들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소재와 글이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지 않은 글도 있습니다만 소수일 뿐으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입니다.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에세이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4/12

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 최경원 : 별점 3점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박하지만은 않다는걸 여러가지 문화재, 유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
설명을 위해 유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제품' 관점에서 분석하여, 해당 유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제품'인지를 알려준다는건데 꽤 그럴싸한 접근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재의 갤럭시나 아이폰을 먼 미래 박물관 같은데서 본다고 상상한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두 제품은 생긴 것만으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차이를 느끼려면 아이폰이 가져온 혁신을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이 아닐까 싶거든요. 확실히 디자인 전문가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답게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 유물도 있는데 이 중에서는 삼한 시대의 오리모양 토기의 형태에 주목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 토기들과 다르게 사실성,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수준높은 추상조형은 이를 소비하는 지배층의 인식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배경의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습니다. 굉장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삼한 시대 토기 역시 마찬가지고요.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은 실제 쓰임새(양력 등을 활용하여 보다 멀리 쏠 수 있도록) 때문에 발전된 형태라는 글도 흥미로왔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연구할 여지가 많은데 중간에 끝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왜 후대에 계승되어 더 발전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화살촉보다 분명한 장점 - 사거리 - 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상쇄할만큼 단점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까요? 아, 궁금합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린 스케치로 이루어진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알려주는 대부분의 글들 도판들이 특히 빼어난데, 아래의 용봉문 투조 금동장식 속 봉황 등의 조형이라던가, 통일신라 말 발걸이에 그려진 말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스케치가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을터라 무척 고마운 도판이었어요.
몇몇 유물의 경우는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의 제품들과의 비교도 시도하는데 이 역시 괜찮았어요. 답을 정해 놓고 끼워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한국형 비파형 청동검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작품으로 고조선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 국가였다는걸 증명해 준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신라의 누금세공 귀걸이도 저 큰걸 귀에 어떻게 걸지? 싶었었는데, 명주실을 꿰어 귀나 모자에 걸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찾아보니 기사도 있네요).

하지만 다소 억지섞인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쌍용총 속 벽화의 무인의 패션이 샤넬, 아르마니의 컨셉과 일치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무채색이라는 것 정도로는 논거가 부족합니다. 아래의 백제 허리띠처럼 실제로 꽤 감각적이고 멋드러진 형태라는걸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어요.
누구나 최고의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금동대향로가 소개되는건 노력의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의견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 증빙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커 보였습니다.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하거든요.

그래도 디자이너가 유뮬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책의 컨셉은 확실히 빼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집이자 리뷰집입니다.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고, "엔드하우스의 비극"'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으며,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다른 작품들도 함께 언급, 소개하는 부분들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의 정보들은 정말 그 깊이와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게 원인이고요.
즉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건데 아주 타당해 보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지요?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 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내기 어려운 솜씨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네요.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지요?

2018/01/27

오로지 일본의 맛 - 마이클 부스 / 강혜정 : 별점 2점

오로지 일본의 맛 - 4점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글항아리

영국인 요리사 출신 작가가 쓰지 시즈오의 "일본 요리 : 단순함의 예술"에 깊이 매료된 탓에, 현재 일본 요리를 탐구하고자 3개월 동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다양한 문화를 맛보고 즐긴 경험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여행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목적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냥 일본 이곳저곳 여행기와 식도락이 결합된 뻔한 여행기에 불과합니다.
또 색다른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색적인 체험을 쓰기는 했는데, 서양인 시각에서만 신기하고 재미있을 만한 체험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일본에 이웃한 한국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와패니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저자가 지나치게 일본을 맹신하는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이 만든 튀김을 맛본 후, 엄청난 기술과 맛에 감탄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일본 튀김은 저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아지노모토사를 방문기를 통해 MSG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합성 조미료를 전도하고, 쓰키지 시장 방문 경험의 마지막을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고 마무리 하며, 생 와사비야 말로 슈퍼 푸드로 그 맛에 중독되었다고 묘사하는 식으로 직접 찾아서 경험하고 맛본 모든 요리와 재료에 대해 끝없는 칭찬과 홍보가 지겹게 반복됩니다. 이러한 맛에 대해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일본 내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내용도 없어요. 예를 들어 튀김이나 와사비, 가쓰오부시 등은 모두 "맛의 달인" 등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입니다. 튀김의 핵심 비결인 밀가루 대충 풀기, 와사비 농원의 생육 환경과 강판에 가는 법, 가쓰오부시 제조법 및 전용 대패 모두 말이죠. 쓰키지 어시장은 "어시장 3대째"라는 더 길고 방대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요. 이는 일본 요리가 건강식이며 장수에 도움이 된다며 오키나와 요리와 장수의 비결을 탐구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맛의 달인"에서 이미 등장했던 소재입니다. 그나마 오키나와의 새로운 소금 제조법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직접 '비스트로 스맙'을 찾아 가서 기무라 타쿠야 등을 만나고, 스모 연습장을 찾아가 챵코 나베를 직접 먹어 보는 식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은 좋아요. 그러나 이 역시 방송이나 다른 여러가지 컨텐츠에서 보았던 내용에 반복에 불과하고, 저자가 신기하게 생각한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새롭지 않습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요리사들, 연예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해서 게스트에게 먹이는 등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고래 고기처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도쿄를 벗어나서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많이 드러나는 편이에요. 허나 고래 고기는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언급되어 왔으니 색다를 것도 없고, 도쿄 이외의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국인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비판적 시각은 일부일 뿐, 결국 글은 가이세키 요리나 오사카 패스트푸드를 극찬하는 기승전'일본맛있쪄'로 마무리되니 온전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일본 최고의 회원제 레스토랑 미부에서의 놀라운 경험이 소개되는 마지막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일본 요리란 무엇인지, 그 진가를 제대로 체험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거든요. 맛을 떠나 일본 요리의 찬양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여행 목적이기도 했던 일본 요리의 비결은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 이라는 것도 로산진 이래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라 식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요리사다운 시각이 돋보이는 몇몇 디테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숯불구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비결이 재료를 작게 만드는 혁신 덕분이라는 착안이 대표적이에요. 서구에서 초밥이 진짜 이유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한 주장도 신선합니다. 설탕, 소금, 식초로 이루어진 초밥 양념이 빅맥의 기본 양념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또 저자의 재기발랄한 글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예를 들어 성게 맛에 대한 묘사도 제가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 해요. 인어들이 바닐라 맛만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는데, 정말로 멋드러진 발상입니다!

하지만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 정도의 단편적인 장점만으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 컸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느니 "맛의 달인" 을 다시 정독하는게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 더 나을 겁니다.

2018/10/14

중국집 - 조영권, 이윤희 : 별점 3점

중국집 - 6점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CABOOKS(CA북스)

경력 26년의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가 조율 등 업무를 위해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며 해당 지역 유명 중국집을 탐방한 글과 사진, 그리고 글을 바탕으로 한 만화와 함께 엮은 맛집 탐방기입니다.

전국 출장을 다니며, 업무가 끝난 후 극심한 허기를 느끼고 식사를 하는 한편 한편의 구성은 "고독한 미식가"와 비슷하지만 차이점도 큽니다. 저자 조영권씨의 피아노 조율 업무가 중국집 식사와 같은 비중으로 설명된다는 점, 아무 식당이나 찾아가는게 아니라 '중국집' 만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특히 피아노 조율에 대한 디테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전문가, 장인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 류의 다른 작품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심오하면서도 복잡하고, 저자만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간단한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도와 투시 모두가 꼼꼼한 만화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이야기의 핵심인 중국집 탐방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덕분에 볼륨도 풍성하고, 밑반찬이 뭐가 깔리는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와 레시피에 대한 상세한 소개에 더해진 저자 나름의 요리별 분석과 맛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힙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짜장면의 역사와 물짜장을 비롯한 다양한 짜장면들의 소개,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의 유래는 중국집에서 배달이 시작되었던 70년대에 탕수육 배달할 때 시간이 지나면 바삭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튀김과 소스를 별도로 배달하며 생겨난 것으로 원래는 소스와 함께 볶아나오는게 맞다, 충청도 물쫄면을 소개하며 인천에서 시작된 쫄면이 경부선을 타고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라는 추측 등 오랜 맛집 블로거다운 식견이 느껴지는 글들도 재미 요소고요.

하지만 '혼밥' 이기 때문에 특별한 요리없이 대부분 볶음밥, 짜장면, 짬뽕과 만두 정도만 먹는건 조금 아쉬웠어요. 많이 먹어도 면 요리에 만두 한 종류 곁들이는 정도거든요. 이왕 지방까지 내려가 먹는 거라면 좀 더 다양하게 이것저것 먹어 보아도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무리 볶음밥만으로 그 중국집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래서야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또 책의 디자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으나 저자의 글을 만화로 옮긴 내용은 사진이 전무한 편집은 영 별로였어요. 인천 신성루의 자춘결을 먹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으로 뭔가 맛있어 보이는 요리인데 그림만으로는 그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아 안타까왔습니다. 그 외에도 '인발루' 소개에서 첫 페이지 글이 두번째에도 다시 나오는 오류와 가로형 사진이 세로로 편집된 부분은 눈에 거슬렸던 부분입니다. 혹 재판을 찍는다면 수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피아노 조율의 세계와 중국집의 식사 메뉴 탐방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두가지 세계를 하나로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독보적인 부분도 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맛집 소개글이나 미식 블로그를 자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6/03/15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차양현 외 : 별점 2.5점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6점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성안북스

딴지영진공 팟캐스트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했는데 있기에 집어왔지요. 왜 있나 했더니 제 형님께서 저자 중 한명이시더군요.
하여튼, 총 8개의 테마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 테마에 해당하는 영화들에 대해 다양한 저자들의 전문가 수준의 에세이가 실려 있고요. 일종의 영화 평론 에세이집이지요.
수록된 글들은 딴지일보 명성에 걸맞게 모두 기본은 해 줍니다. 저자들 모두가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들인 덕도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비조의 O.S.T에 대한 글들, 짱가의 영화와 심리학을 엮은 글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헤비조의 글은 글로만 읽어도 음악이 듣고 싶게 만드는 대단한 내공의 글솜씨에 해당 분야 전문성이 잘 결합되어 있어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허나 재미라면 무언가에 대해 엄청나게 씹어대는 글들도 빼놓을 수 없겠죠. 수다도 뒷담화가 재미있듯 이런 류의 글들은 기본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theme 2. 거장"입니다. 이 시대의 거장 서세원과 심형래를 다룬 글로, 거의 막장에 가까운 두 사람의 영화 인생과 몰락을 구 딴지일보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작품들도 친숙해서 더 좋았습니다. 서세원의 "납자루떼"를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텐데, 그 중 한 명이 저랍니다! 기억나는 대사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 젊은이여 엠비씨를 보라~!"였다는… (시시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theme 5. 방화"에서 "대한민국 방화 걸乞작선"이라는 주제로 "천사몽"과 "맨데이트"를 처절하게 뭉개는 글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실제로 감상은 안 했지만 익히 명성만 들어왔는데, 글만 읽어도 가관이더군요. "주글래 살래"나 "클레멘타인" 같은 전설급 작품들이 언급되지 않은 건 의외였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몇몇 글은 현 정권과 엮어 까려는 의도가 지나쳐 조금 짜증났습니다.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는 글 정도까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글들은 억지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혹성탈출: 반란의 서막"에서 주전론자 코바를 극우에 빗대며 현 정권의 실책을 이야기한다던가, "겨울왕국"의 엘사 인기를 은둔형 외톨이와 연결하며 일베와 엮는 과정, "괴물"을 세월호와 엮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현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풍자와 억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이야기는 방송 당시 사고가 일어난 시점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글로 옮길 거라면 보다 상세한 설명이 덧붙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전문가들의 영화 관련 에세이라는 점에서, 특히 헤비조의 O.S.T 관련 글만큼은 추천할 만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게다가 이 책을 구해 읽을 정도라면 방송도 들었을 확률이 높은데, 방송 외의 가치는 잘 모르겠습니다.

덧: 살인마를 다룬 영화를 분석하는 글에서 "조디악"을 소설 원작이라고 설명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실존했던 조디악 킬러에 대한 영화죠.

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는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입니다. 그 탓에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분입니다.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하더군요.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이고요.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입니다.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2020/07/16

어른의 맛 - 히라마쓰 요코 / 조찬희 : 별점 3점

어른의 맛 - 6점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의 에세이집으로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가 자신의 식도락 생활을 하이쿠가 아니라 일반 수필, 산문 형태로 써 내려간다면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혼자의 맛"은 작가가 리얼 소다츠라는걸 증명하는 글이에요. 자신만의 음식 조합이라던가, 서서 마시는 선술집에서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는 방법, 혼자서 이자카야를 즐기는 법이 실려있는데 각 방법들 모두가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술집에서의 일화나 음식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글들도 소다츠가 바로 떠오르고요.

그러나 단순한 술꾼, 먹보 미식가의 글만도 아닙니다. 깊은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글들도 인상적입니다. "눈물나는 맛"이라는 제목의 글 구성이 특히나 마음에 듭니다. 글은 와사비 초밥과 고추가 들어간 김치 등 매운 요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다츠가 먹음직한 아귀 간, 가라스미, 슈토 등 다양한 진미를 열거하며 어른이 되어 알고 먹게 된 맛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이어나가지요. 그 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된 여러가지 맛이 소개됩니다. 찜통에 찐 무화과에 참깨 소스를 얹은 일품 요리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등장하는건 물론이고요. 또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때 재회의 기쁨도 크다며 곶감, 톳 등의 맛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입니다. 어른이 조용히 흐느끼게 되는 맛은 바로 그 맛인거지요. 음식에 대한 맛있는 묘사에 살짝의 감동까지 곁들여진 좋은 글이라 생각됩니다.

"깊은 산의 맛"에서 료칸 우쓰오장의 음식을 소개하는 글도 대단합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음식의 형태와 맛이 떠오를 정도로 잘 묘사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산촌의 맛을 표현하면서 '오독오독, 꾹, 섬벅, 바삭, 아삭아삭, 담백, 미끈미끈, 혹은 어떤 것은 쌉싸래하고 어떤 것은 은은히 달고 끈끈하고 아리다.'라고 설명하는 문장처럼요. 이 정도 글 솜씨면 오히려 사진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도 실려 있습니다. 시금치를 데쳐서 서벅서벅 잘라 물기를 쫙 빼고 으깬 두부와 함께 무친 일종의 나물이 그러합니다. 간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간 후추가 전부라는데 쉽게 따라해 볼 만 하지요. 맛도 좋을 듯 싶고요.
해삼 손질법은 집에서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억하면 좋겠더군요. 일본 전통 해삼 손질 방법인 '자부리'에 대한 소개인데, 뜨겁게 끓인 녹차에 채썬 해삼을 넣고 재빠르게 휘저어 살짝 데친 뒤 채반에 받치면 됩니다. 녹차 온도는 보통 80도 정도이고요. 이 뒤 유자 식초에 담가 손님에게 내면 됩니다. 이렇게 데치면 오독한 식감이 경쾌해지고 녹차가 해삼 특유의 알싸한 맛을 누그러뜨려 좋다는군요.

간간히 언급되는 음식 관련 정보도 볼만합니다. '로산진의 낫토 먹는 법'은 처음 알았네요. 일단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305번, 그 다음 간장 넣고 119번, 이렇게 총 424번을 섞으면 낫토가 가장 맛있다는 설인데 솔직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저자가 여러 낫토로 실험해 본 결과로는 횟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답니다. 어떤 낫토냐가 더 중요한 거지요.
물의 경도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이유를 고찰한 "물의 맛"도 흥미롭습니다. 연수는 수용성 성분을 잘 유출하고, 경수는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가교 결합이 이루어져 소재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수는 일본 요리에, 경수는 유럽 요리에 어울린다고 하네요. 유럽에 스튜나 스톡이 많은 이유입니다. 경수라서 미네랄 성분이 소재와 더욱 잘 결합해서 진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지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재미도 있으며, 음미할만한 글이 많은 좋은 에세이였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고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8/29

끝내주는 책 - 김지현 외 : 별점 3점

끝내주는 책 - 6점 알라딘 도서팀 엮음/알라딘

알라딘 창사 16주년 기념 무료 e-book입니다. 국내 장르 문학계에서는 유명한 편집자, 작가, 번역자 분들이 각자 고른, 제목 그대로 "끝내주는" 장르문학 한 권씩에 대해 소개하는 에세이 모음집으로 모두 19분이 19권의 책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장르문학 애호가이긴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저자분들을 모두 알진 못합니다. 아는 분은 도진기, 이영도, 이우혁, 듀나, 좌백, 진산 작가님과 출판사 대표님인 김홍민(북스피어), 안태민(불새) 8명 뿐입니다. 절반도 안 되네요. 엘릭시르, 황금가지 편집장님과 "미스테리아" 편집장님, 피니스아프리카에 대표님도 잘 아는 출판사와 잡지라 친숙하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이 분들까지 쳐도 12명이니 많이 부족하네요.
여튼, 이러한 도서 관계자분들은 과연 어떻게 책을 소개할까? 라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장르소설 전문 리뷰어를 자청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다른 분들은 과연 장르문학 소개를 어떻게 접근할지가 아주 궁금했거든요. 물론 무료라는 이유도 컸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참 대단한 글들이었습니다! 소개된 책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들게끔 하는 측면에서 말이죠.
제가 읽고 리뷰를 남기기도 한 "GOTH", "LA 컨피덴셜", "살의의 쐐기"와 비교해서, 제 리뷰에 무엇이 부족한지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표피적으로만 접근하고, 좋은 점도 제 취향 중심으로 짤막하게 쓸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제 리뷰만 읽고 딱히 읽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기는 힘들죠. 허나 이 책에 소개된 글들은 단지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 나열뿐만이 아니라, 왜 좋았는지에 대한 감상, 기타 정보와 글을 쓴 저자의 독서 당시 일상이 결합되어 자세하게 쓰여져 있는 등 하나의 완성된 에세이로 봐도 무방한 좋은 글들입니다. 스포일러는 전혀 없으면서도 딱 궁금한 부분까지만 이야기해주면서 읽는 사람을 감질나게, 안달나게 만드는 솜씨들도 제법이었고 말이죠.

일종의 에세이라 각 글들을 요약하기는 힘들기에 딱히 소개하진 않겠습니다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영웅문"을 소개한 임지호의 글이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 무협소설에 몰두했던 제 자신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영웅문"을 소개하며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 참 맛깔나더군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중 「바쇼 한 명의 문제」라는 단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정형시 하이쿠의 전신인 하이카이는 원래 서민들의 심심풀이 정도였는데 마쓰오 바쇼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탐정 소설에서도 이러한 천재성이 두드러진 작가가 나타나면 탐정 소설 또한 예술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란포는 탐정 소설계를 통틀어 바쇼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라는 부분인데 "영웅문"이 바로 바쇼 같은 책이라는 거죠. 참 그럴듯하지 않나요? "영웅문"은 충분히 이러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걸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고요.

김준혁이 "어스시의 마법사"를 소개하며 인용하는 명대사 역시 책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데 일조합니다. 대마법사 오지언의 말인 듯합니다. “주문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게로구나. 너는 우물에서 너무 많은 물을 퍼 올렸다. 기다리렴. 어른이 된다는 건 참는 것이지, 힘을 다스리는 이가 된다는 건 아홉 배나 더 인내한다는 것이고.”

안태민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도 기억에 남네요. 마지막 글이기도 할 뿐더러 국내에서 어렵고도 어려운 SF 전문 출판사의 대표로서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신의 추억과 작품과 엮어 잘 소개하고 있거든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중 명대사인 ‘탄스타플’, 즉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말해주는 부분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소개된 책들 중 8권은 이런저런 경로로 읽었으니 11권을 읽지 않았는데, 지금 가장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듀나의 단편집들과 나카타 에이이치의 "기치조지의 아사히나 군",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입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모두 찾아봐야 될 테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이렇게 장르문학에 대한 소개가 맛깔나게 된 에세이집은 따로 찾아보기 힘든데, 알라딘에서 멋진 기획을 선보여 준 것 같습니다. 무료이니 만큼 장르문학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씩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5/26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점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4점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레드리버

제목 그대로 결투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유럽 중심으로 결투사를 개관하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발전되었고, 왜 사라졌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 저자는 근대와 현대의 결투는 '명예 회복을 위한 도전이자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전쟁에서의 일기토,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로 볼 수 없다고 하고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투가 이렇게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중세, 근대까지 왕과 귀족의 법을 따르는 '결투 재판'이 주류를 이루게 된 원인이라는 설명은 와 닿았습니다.
결투 재판은 판결의 신뢰성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반면, 기사도가 확산되는 바람에 명예 결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과정 설명도 그럴싸 했습니다. 기사들은 사회적인 명예가 존재 기반의 하나였으니, 명예 훼손은 그들의 존재를 뒤흔드는 큰 위협이었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명예 결투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건, 명예 결투의 시작이 이탈리아라는 설입니다. 보통 이런 '귀족'의 '결투'는 프랑스를 떠올리기 쉬운데, 왕의 권위가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네요. 왕이 재판을 하는게 당연하고, 또 그래야 권위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충분히 납득할 만 했어요. 심지어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결투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일화는 놀라왔습니다. "삼총사"에서 달타냥이 하루에 세 번의 결투 약속을 잡을 정도로 결투가 일반화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배 계급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리슐리외는 눈의 가시였던 총사대 핵심 멤버들을 모두 사형대로 보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왜 그러지 않았는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결국 기사도와 관련이 깊은 결투를 아예 막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유럽 대륙 전체에 결투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심지어 북유럽을 넘어 그린란드까지요. 그런데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결투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대결로 승부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욕당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를 비웃는 노래를 불렀고, 혹시라도 가사를 잊어버리면 친구들이 그 대목을 대신 불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결투 신청을 받은 자가 위트 넘치는 통렬한 가사로 반격했고요. 한 마디로 래퍼들의 디스 프리스타일 랩 배틀인 셈입니다! 

뒤이어 결투가 사라지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왕들이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왕정 군주들은 앞서 설명드린대로 결투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으며, 이후 계몽 군주들은 생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결투를 금지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신사도'가 유행하고 신사들이 품위를 중시하면서 결투를 야만적으로 여긴 탓도 있지만, 왕권이 약화된 대신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며 근대적인 재판 시스템이 갖추어진 덕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의 득세로 장교들이 과거의 귀족처럼 특권을 인정받고, 명예를 중시하는 계급이 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 결투가 만연하였다고 하네요. 확실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회가 무식해지는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런 결투의 전통은 현대에도 약간의 스포츠 형태로 바뀐 '멘주어'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결론으로 결투의 역사 서술은 마무리됩니다.

이런 결투의 역사적인 큰 흐름 설명은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차가 통사적으로, 연대순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의 결투 설명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일화 중심으로 소개되는 등 글의 형식도 통일되지 못했고요. 여러 저자의 글을 모은 탓으로 여겨지는데, 누군가 통일성있게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할만한데, 더 큰 문제는 결투와 스포츠를 엮는 후반부입니다. 스포츠는 재미, 오락일 뿐입니다. 오락으로서의 스포츠는 고대에서부터 존재했고요. 그런데 두 개가 어떻게 엮인단 말일까요? "헝거 게임"처럼 나라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시합을 벌인다면야 모를까, 현대의 스포츠를 결투라고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언급한다면 칼싸움에서 발전한 펜싱 정도? 하지만 펜싱도 전쟁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탄생한 무술일 뿐입니다. 결투라고 보는건 무리에요. 
게다가 앞서 저자는 '심판'의 의미가 없다면 결투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절대로 결투가 될 수 없어요. '결투와 스포츠는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특성을 공유하는 표리일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라면서 넘어가는데, 미적,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모든게 다 표리일체의 관계가 되는걸까요? 어림도 없지요. 심지어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해서 결투가 사라졌다!는 주장은 앞서의 본인들의 설명, 즉 근대화와 사회 분위기, 제도의 변화로 결투가 사라졌다는 설명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치의 올림픽을 이용한 국민 통합(?)과 고양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는 결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책 부제가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인데, 저자들 스스로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가 아니라고 했고, 축구가 결투일리는 없으니 이 부제는 애초에 이 책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에요. 이 정도면 사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는 완전히 분량 낭비였습니다. 별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4/19

미술관에 간 과학자 - 미우라 가요 / 지종익 : 별점 3점

미술관에 간 과학자 - 6점
미우라 가요 지음, 지종익 옮김/아트북스

과학자가 쓴 미술 작품 해설(?) 책은 전에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 역시 유명 작품을 저자의 전문 분야로 분석하는 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는건 맞습니다. 다만 그게 화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더라고요.

심리학으로 그림을 분석한 책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사진 등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장면의 묘사가, 실제 눈을 통해 지각할 수는 없다는건 놀라왔어요. '초점'이 빛나간걸 확인할 수 없다는 것처럼요. 상식적으로 바라보는 사물에 초점이 맞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인데,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과 날짜 등에 따라 다른 색의 변화를 그려낸 아래의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이걸 눈으로 확인하는건 무척 어렵다는군요. 인간의 눈은 조명이나 그림자를 배제하고 원래의 색으로 보게끔 만들어져 있는 탓입니다. 즉, 모네는 '뇌'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입니다! 여태까지 빛의 변화를 인상파 작가들처럼 느끼지 못했던 저의 둔감한 센스를 탓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당연한거라니, 위안이 됩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신기했습니다. 프랙탈 차원 값은 1에서 2까지로 2로 갈 수록 복잡해지는데, 폴록의 초기작은 인간이 가장 기분 좋음을 느끼는 1.45 정도였다가 말년으로 갈 수록 수치가 상승해서 1950년 작품은 최대치라 할 수 있는 1.9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굉장히 고민하고 연구하여 그렸다는건데 어떻게 연구해야 저런걸 물감을 뿌려 완성할 수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네요. 이를 통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 아닌 이유도 알 수 있었고요. 연구와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그림에서 안정, 불안감을 느끼는 요인 - 광원이 왼쪽에 있는게 안정적임 - 이라던가 그림속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방향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에 따른 감상자의 생각들, 광택이 나는 장식품을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에 따른 '투명시' 설명 등 그림의 여러 요소들을 이용한 연구들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예시 작품들이 흔히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것들이 많아 좋았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복수의 정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콜라주해서 얻었다는걸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를 통해 알려주는게 대표적이에요. 호크니는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 콜라주 작품도 발표했는지 몰랐네요.

다만 도판이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렵고, 어떤 내용은 정보와 내용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설명도 제법 되고요. '인간의 눈에는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있다. 이중 빨간색을 지각하는 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전형적인 빨강에 해당하는 파장 760나노미터가량의 빛에 대한 시세포의 반응은 거의 0에 가깝다. 빨강은 눈길을 사로잡는 색이지만 눈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색이라는 것이다. 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의 절정은 656나노미터 정도로, 우리에게는 황색으로 보인다. 즉,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의 세 시세포는 청, 녹, 적이라는 빛의 삼원색에 반응하는 수용기가 아니다. 어떤 색으로 보일지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반응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보일 리 없는 빨간색이 어떤 색보다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는 글처럼요. 빨간색이 왜 선명하게 보인다는건지, 저는 이 글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글 자체가 친절하게, 쉽게 쓰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목차 구성도 불만스럽습니다. 앞서 광원 등의 위치로 심리적 안정감과 시간의 흐름이 정해진다는 설명은, 글을 반대로 읽는 일본이나 아랍권에서의 예를 비교해주면서 설명해 주는게 당연히 좋았을거에요. 하지만 일본의 예는 한참 뒤에 따로 소개되어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워낙 좋은 내용이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서구권, 그리고 일부 일본 작품만 연구에 활용되었는데, 우리 작품도 이런 시각으로 연구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10/02

샤라쿠 살인사건 - 다카하시 가츠히코 / 안소현 : 별점 4점

샤라쿠 살인사건 - 8점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안소현 옮김/두드림

우키요에 연구의 일본 최고 권위자인 니시지마 교수의 제자 츠다 료헤이는 우연히 구입한 한 화집에서 수수께끼의 화가 샤라쿠의 정체가 드러난 결정적 단서를 입수하고 조사에 착수한다. 한편 니시지마 교수의 제자였다가 파문당한 뒤, 교수의 라이벌 사가 아츠시를 돕는 옛 선배 고쿠후 역시 사가 아츠시의 죽음 이후 조우한 츠다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여 츠다는 샤라쿠가 아키타 난화의 화가 치카마츠 쇼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게 된다. 그러나 이후 니시지마 교수가 살해된 채 발견되며, 독자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던 고쿠후 역시 뺑소니 차에 치여 숨을 거두는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츠다는 이 모든 것의 뒤에 존재한 음모를 깨닫게 된다.


책 커버에서 "주간문춘 선정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8위"라고도 선전하고 있고,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도 선정되기도 한 유명한 작품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기도 하죠. 원채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라 번역 자체가 무척 반가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미술적인 취향만 놓고 본다면 샤라쿠의 인물화보다는 호쿠사이의 풍경화를 훨~씬 좋아하긴 하지만 이전에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 " 이라는 책을 살 정도로 우키요에에 대해서도 나름 관심이 있었기에, 진작에 사서 읽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벤트를 통해 응모해 놓은 상태라 뒤늦게 구입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벤트는 다 떨어졌다는 이야기죠...) 

읽기 전에는 샤라쿠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두가지의 큰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샤라쿠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치밀하게 전개되는 역사추리물적인 부분이고 또 하나는 샤라쿠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그것에 대한 해결 과정을 그린 부분입니다.

이 중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결정적 요소이기도 한 수수께끼의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가 누구인가? 에 대한 의문, 그리고 주인공이 찾은 작은 단서에서 시작하여 샤라쿠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은 초중반부까지 전개되는데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샤라쿠가 아키타 난화의 화가였을 것이다라는 가설은 상당한 수준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요. 우키요에를 다년간 연구한 저자의 경력이 말해주듯 작품에서 펼쳐지는 저자의 우키요에에 대한 엄청난 내공과 상세한 해설 역시 인상적입니다. 우키요에와 샤라쿠 관련해서는 참고서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동봉된 칼라 엽서 형태의 많은 도판 역시 충실해서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요.

또한 중반부 이후부터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과정 역시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고 동기도 잘 부여되어 있으며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때문에 추리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합격점을 충분히 주고도 남음이 있네요. 정말 모든 것이 치밀하게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때문에 400페이지가 넘는 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당대 우키요에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 샤라쿠가 활동했던 시기를 중심으로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머리가 휙휙 돌아갈 지경인데 이 모든 인물들이 우리나라에는 친숙하지 않은 인물들이라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도 국내 정서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키요에에 대한 자세하고 디테일한 설명은 샤라쿠의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의 이야기인 초중반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후의 살인사건 이야기가 밀결합되어 있다기 보다는 전혀 다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욕심을 버리고 좀 들어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제대로 된 수준의 추리소설을 썼을 때의 내공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역작으로 평점은 별 4점입니다. 몰랐는데 오래전에 읽었던 단편집 "붉은 기억" 의 작가라 왠지 모를 친숙함도 느껴졌고 그때도 글 하나는 잘 쓴다.. 라고 생각되었던 만큼 역시 기대에 값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정서에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겠죠. 한번 읽어서는 제대로 된 이해가 어려운 만큼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줍니다.

2016/07/01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강명관 : 별점 2점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4점
강명관 지음/휴머니스트

안경, 망원경, 우리거울, 자명종, 양금의 다섯 가지 물건에 대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언론을 통한 책 소개도 마음에 들었고, 조선 미시사 서적 분야에서는 유명하신 강명관 교수의 책이기도 해서 집어들었습니다. 

책은 저 다섯 가지 물건이 조선에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당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사료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다섯 가지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안경은 임진왜란 전후로 처음 수입되었으며, 조선시대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숙종이다("승정원일기"기준), 안경을 쓰고는 어른 앞에 나설 수 없는 법도가 생겼다는 등의 정보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는 덕분입니다. 이익이 안경을 만들어 자신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구라파' 사람들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조선의 천재라 할 수 있는 홍대용의 여러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망원경, 거울, 자명종, 양금 항목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며, 그 중에서 북경 천주교당을 방문해서 처음 본 파이프 오르간의 동작 원리를 곧바로 이해하고, 바로 조선의 음악을 연주해서 들려주었다는 에피소드는 통쾌함마저 느껴졌습니다(보아라! 이것이 조선 남아다!). 1640년 이민철(백강 이경여의 서자)이 10세 (혹은 9세)에 자명종의 이치를 깨우치고 대나무못과 기름종이로 자명종의 모형을 제작했다는 일화에서는 입이 떡 벌어졌고요. 지금으로 따지면 이쑤시개와 마분지로 자명종 모형을 만든 셈인데 참으로 대단합니다.

조선에서 이러한 문물에 대해 어떻게 분석했고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이후 어떤 조선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실생활에 도움이 된 안경 외에 실용화가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고가의 사치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경화세족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더러 유학에서 이야기하는 완물상지의 도덕적 경계에 걸려 진지한 탐구를 하지 않은 것, 농업 외 생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현실, 중국에 의해 재정립된 서양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망원경은 천문 관측과 전쟁에 도움이 되지만, 조선에서는 천문 관측, 전쟁에 따른 수요가 없었기에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이지요. 시계 역시도 농사가 주 산업인 조선에서 시간을 분초단위로 알 필요가 없었던 탓이 컸습니다. 농사 지으려면 절기만 알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료 중심의 나열이라 읽기 힘들고,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거든요. 예를 들면 '누구누구의 글을 보면 이 물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누구누구의 무슨 글을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꼬리를 물고 글의 유래를 찾아 나가는 식의 내용이 많습니다. 좀 더 요약해서 읽기 쉽게 정리했어야 했는데 나열 형식으로 이어 쓰고 있어서 분량도 많고 지루했습니다. 실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라도 많았더라면 조금 재미있었겠지만, 실생활에 영향을 준 물건이 거의 없다보니 그렇게 쓰기도 힘들었을 테고요.

또 앞에 290여페이지에 걸쳐 다섯 물건에 대한 상세한 유래를 풀어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20여 페이지 남짓한 맺음말에 전부 요약되어 있다는 단점도 큽니다. 보고자료로 따지면 별첨이 앞에 있고 보고 핵심이 맨 뒤에 있는 느낌이에요. 앞부분의 사료적 가치가 빼어난건 분명하지만, 웬만한 일반 독자는 맺음말만 읽어도 내용 이해는 충분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저자의 방대한 자료 조사에 따른 결과물은 분명 경이롭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은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맺음말 정도만 읽어보셔도 충분할 것입니다.

2015/05/18

어이없게도 국수 - 강종희 : 별점 2점

어이없게도 국수 - 4점
강종희 지음/비아북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임원까지 될 정도로 잘나가는 워킹맘이었다가 집에 눌러 앉은 저자가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들에 대해 한토막씩 써 내려간 음식 관련 수필집.

요리사도 아니고 음식 전문가도 아닌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국수별로 짤막하게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라던가 관련된 자신만의 일화를 써 내려간 글들이에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음식 관련 내용 대신에 조경규 일화가 중심인 만화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국수 삽화도 조경규씨가 그렸네요. 인연이라면 인연이랄까. 몇몇 글들은 - 대표적으로는 짜장면, 구포 국수, 니신 소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관련된 시까지 인용하는 등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데, 비중으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과 국수를 엮은 구성이나 저자의 글솜씨가 나쁘지는 않아 재미있게 읽히며, 무엇보다도 누구나 떠올릴법한 평범한 국수들이기에 해당 국수에 대해 저만의 경험과 추억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아주 좋았어요. 마침 생각나는대로 저만의 국수 일대기를 몇개 적어본다면,

  1. 시원한 국물하면 - 안양 관양동 바지락 칼국수.
  2. 더운 여름은 냉면이 최고지. 딸아이가 좋아하는 - 산본 투데이몰 지하 "후원" 물냉면과 육수.
  3. 아버지 학생 시절부터도 유명했다는, 하지만 별 맛은 없더라 - 부산 보수동 완탕.
  4. 밤에 아내와 야식으로 먹는 시원한 국물에 계란 하나 깨넣은 라면.
  5. 아내가 딸아이를 위해 만드는 -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6. 돈내고 먹는거보다 뛰어난, 회사 식당 진리 메뉴 - 해장에는 얼큰 백짬뽕.
  7. 예전 회사 앞 중국집에서 점심마다 먹었더랬지 - 사천탕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꽤 재미난 주제이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그냥 바쁜 직장 생활 관련 이야기라면 모를까, 어린 시절이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같이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워킹맘의 비애가 저한테 와 닿을리 없는건 당연하지요. 직장 생활 이야기도 잡지사 기자나 마케터라는 전문성이 필요한 특이한 업종에서 근무했던 탓에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없었고요.

또 국수들에 대해 설명들도 거의 대부분이 유명 서적에 의존하고 있어서 새롭거나 인상적이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진주냉면 이야기처럼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정보나, 접해보지 못한 서적을 바탕으로 한 글들도 몇편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인 경험 위주의 일기, 신변잡기류의 글들이라서 저자의 명성이나 경력에 많이 기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가 굴짬뽕을 먹은 경험에 대한 수필을 각각 썼을 때 일반 대중 독자들이 어떤 글을 선택할지도 자명하잖아요? 글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빼어난 글로 보이지도 않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벼운 읽을거리, 소일거리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수 관련, 아니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 같은 다른 음식 관련 수필과 비교해 볼 때 국수 관련 컨텐츠면 무엇이든 찾아보는 매니아가 아니라면 구태여 선택할만한 가치나 재미는 없습니다.

덧 : "구포 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소개되고 있더군요! 아버님 고향이자 현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곳인데 전혀 몰랐네요. 다음에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2006/08/10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 - 전봉관 : 별점 4점

경성기담 - 8점
전봉관 지음/살림

 조선말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에 있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괴사건들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역사와 추리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서는 흥미가 안갈래야 안갈 수 없는 책이었는데 마침 형이 구입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쌩유!)

책은 크게 2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1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미스터리 살인사건"이고 두번째가 "2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입니다. 두가지 주제 모두 흥미롭고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지지만 역시 저같은 미스터리 팬에게는 첫번째 주제가 더 와 닿더군요.

1부에는 총 4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대낮 경성거리에서 발견된 아이 머리를 둘러싼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사건"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은 안동에서 피살되어 발견된 일본인 순사 가와카미와 용의자로 붙잡힌 조선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 사건은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으로 부산의 조선인 하녀 마리아가 주인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고 네번째 사건은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으로 지금도 유명한 사교집단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단순히 흥미거리위주로 수록된 사건들이라기 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역학관계를 논할만한 주제가 많아 의미 있는 선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의 용의자인 조선 청년들의 억울함과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다카하시 부인에 대한 수사와 처우, 처벌이 너무나 달라서 한번쯤 비교해 보며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거든요. 특히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이끌어낸 순사 살해사건의 경우는 그 수사의 방법이 너무 원시적이고 황당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쩐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의자 동생의 증언인 "형이 목을 졸라 죽이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봤지만 그 다음은 졸려서 잤기때문에 모른다"라는 증언은 폭소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 남아들은 형이 살인해도 졸리면 잔다는 이야긴지 원...

또한"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문둥이가 아기 간을 먹으면 낫는다"라는 토속적인 주술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어서 역시 인상적이었고 법의학자로 경성제대 교수까지 등장하는 등 당시 수사 방식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사건의 엽기성과 내용에서 최근 유명한 "프랑스 영아 유기 사건"을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이 주술적 믿음을 소재로 퇴마록의 이우혁씨가 쓴 괜찮은 단편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1부의 마지막 사건인 백백교 사건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접해서 크게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역사적" 측면에서 선정한 것이겠죠? 이만한 대형 사건은 정말 드물테니 말이죠. 뭐 뻔한 내용이지만 그런대로 도판과 자세한 재판과정의 수록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2부는 "스캔들"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내용적으로나 사건 측면으로나 1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임팩트가 떨어지긴 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부 6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인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제자 정조유린 사건"은 3.1 운동때 민족대표 중 한명이었던 교육자 박희도의 여제자 성추행(?)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번째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는 순종의 장인으로 매국노였던 윤택영 후작의 어마어마한 빚과 그 최후를 상세하게 그리고 있고요. 세번째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싸움"은 역시나 매국노였던 이인용 남작 부부의 재산을 둘러싼 의미없는, 허무한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도피행각"으로 조선 제일의 테너로 불렸다는 음악가 안기영 교수가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이야기, 다섯번째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으로 당시 국내 제일의 신여성이었던 박인덕의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 여섯번째는"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로 최영숙이라는 스웨덴 유학생의 비참한 최후를 서술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매국노들 대부분이 가산을 탕진하여 외려 총독부에 구걸(?)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두편의 이야기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 이야기와 "이인용 남작 부부싸움" 이야기였습니다. 친일파들이 다 떵떵거리면서 한자리 차지하고 살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 당대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통쾌한(!) 이야기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도 신났고요. 특히 저자의 덧붙인 코멘트, 요사이 매국노들의 후손이 땅 반환 소송을 한다는데 과연 그들에게 남은 재산이 있었는지 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그 외의 남녀간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는 요사이 연예면에 나올만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져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여성과 전형적 조선 남자와의 결혼이 "돈"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사건"은 읽다보니 요사이 모 아나운서 결혼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마지막 이야기인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는 당시 조선에서의 여자의 존재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으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5개국어에 능통한 수재 여성이 국내에서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콩나물 장사나 하다가 혼혈아를 낙태한 것 때문에 외려 탕녀 취급이나 받다니....저자가 하인스워드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과 같이 지금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네요.

기획만으로도 무척 특이한 역사-인문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는 책이었습니다. 현재 30대 중반의 나이로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의 글 답게 고루한 역사관을 논하는 것이 아닌, 요사이의 시사적인 문제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재미난 내용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거든요.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한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도 많았고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구상중인 일제 강점기 배경의 추리 소설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기쁨 두배였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단 가격이 12,000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문제네요.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가치도 있지만 사진도 거의 없고 그다지 많은 분량의 이야기도 아닌데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한 8000원 정도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날 까지 팍팍 밀어줄만 한 책인데 가격이 좀 많이 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