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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2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 화바이룽/ 김소희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에 사랑은 추억이나 순간, 아니면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어느 날 남편 밍런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통보했다. 밍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의심한 나는 친한 팡 언니에게 부탁해 밍런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이혼은 성립되었다. 

그 뒤 밍런이 사람을 죽여 체포된 뒤 구속되었고, 밍런의 동기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던 나에게 독방에서 자살한 밍런의 이메일이 전달되며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대만 작가 화바이룽의 장편소설입니다. 범죄물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남편 밍런을 교도소에서 면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뒤, 이야기는 사건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밍런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아내의 불륜 의심, 사설 조사, 살인, 구속, 자살, 마지막 진상까지 빠르게 이어지는데 이러한 전개가 만들어 내는 흡입력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밍런이 왜 이혼을 요구했는지, 왜 개명했는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왜 끝내 자살했는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이어지는 묘사도 좋습니다. 갑자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의 혼란과 분노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덕분이에요. 사건은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설득력이 넘칩니다. 그만큼 생생하고 생활감 있는 묘사가 빼어납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범행의 세부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밍런의 작업실은 보안이 엄격한 곳입니다. 그래서 피해자 뤄지가 그곳에 쉽게 들어갔다는 설명은 의심스럽고, 밍런이 자백한 그대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작업실에 있던 두 개의 옷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밍런은 옷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작업실에는 옷장이 두 개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잠겨 있었는데 역시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는 밍런이 작업실에서 재스민이라고 부르는 러브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진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옷장은 밍런이 재스민과 관련 물품을 숨긴 공간이었고요. 이를 알아챈 뤄지는 밍런을 협박하다가 고압 전기에 감전되어 살해당합니다. 이 죽음 역시 앞에서 밍런이 형과 함께 감전 장치를 만들었다는 복선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꽤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뤄지가 밍런의 비밀을 알게 된 이유도 재미있는데, 아내가 의뢰한 불륜 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그 조사 때문에 밍런의 은밀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비밀은 협박으로 이어지고, 결국 살인까지 부르고요. 처음의 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마지막 비극과 진상에 맞물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윤회식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작품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에서 홍보하는 대로 '추리소설'로 보면 아쉽습니다. 복선은 있지만 독자가 단서를 모아 진상을 맞히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갈 뿐이며, 중요한 진실은 밍런의 자백(이메일)로 밝혀지니까요. 

밍런의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러브돌에 깊이 빠졌을까요? 주인공 '나'의 1인칭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밍런 시점의 고민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둠 속에 머물고 싶었다는 식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더구나 이미 이혼도 했고, 러브돌과의 관계가 불법도 아닌데 왜 살인까지 해야 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허술한 부분도 보입니다. 작업실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은 좋은 복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뤄지가 경비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업실에 들어갔다고 밝혀집니다. 이렇게 되면 보안이 엄격하다는 설정의 힘이 약해집니다. 치밀한 장치로 보기도 어렵고요. 또 이 경비원 친구의 존재도 문제입니다. 밍런은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뤄지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하지만 뤄지가 작업실에 들어가는 것을 도운 경비원 친구가 입을 열면 밍런의 비밀은 다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밍런의 자살 이유도 애매해집니다. 비밀을 완전히 묻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흥미진진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남편의 이혼 통보에서 시작해 불륜 조사, 살인, 자살, 진상 공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빠릅니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좋고, 생활감 있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추리물로는 아쉽지만 범죄 드라마로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2/20

꽃다발은 독 - 오리가미 교야 / 이현주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세는 어린 시절 과외 선생이었던 마카베의 협박범을 잡기 위해 기타미 탐정 사무소를 찾았다. 소장 대리인 기타미는 기세의 중학교 선배였다. 마카베가 의뢰를 망설여서 기세는 직접 사건을 의뢰했고, 조사를 통해 협박은 마카베가 저질렀다는 4년 전 강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게 드러났다. 마카베는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마카베는 모든 걸 잃고 학교마저 그만둔 채 지금에 이르렀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은 일본의 범죄 스릴러입니다. 분량이 비교적 간결한 편이라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마카베에게 익명의 협박장이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협박은 4년 전 그가 저질렀다는 강간 사건과 관련되었고, 협박범은 당시 피해자로 추정되지요. 그러나 마카베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기세도 그가 누명을 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기타미의 조사 과정을 통해 독자들도 ‘마카베는 억울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요. 이렇게 '원죄(엔자이)'를 다루는 부분은 살짝 사회파 느낌도 전해줍니다.
그러나 뒤이은 전개는 마카베가 정말 결백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심을 싹트게 하여 흥미롭습니다. 마카베의 모친도 그의 무죄를 믿지 않고, 마카베 가족이 왜 합의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 - DNA 검출 -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앞서 기세를 통해 소개된 마카베라는 인물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라서, 독자로서는 놀라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더 놀랍습니다. 앞서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사건을 뒤집어 버리는 덕분입니다. 우선, 4년 전 사건은 피해자였던 나가노 가나미의 자작극이었습니다. 마카베에게 푹 빠진 나머지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목적이었지요. 그리고 그녀는 결국 성공해서 마카베와 결혼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박장은 이 사실을 알게 된 가나미의 아버지 나가노가 마카베를 돕기 위해서 보냈던 겁니다. 이렇게 독자가 자연스럽게 믿어온 전제가 뒤집히는 순간의 파괴력은 상당합니다. 이 반전이 결혼식 직전의 마카베에게 진상을 알릴지 말지에 대한 딜레마로 이어지는 결말도 충분히 흥미롭고요. 

그리고 반전은 협박장이 두 종류 - 강경한 경고와 정중한 문체 - 였다는 단서로 뒷받침되는데 이 역시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기타미와 기세는 강경한 경고는 마카베에게 보냈고, 가나미가 받아볼 수 있는 협박장은 정중한 문체로 보냈다고 추리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나가노는 처음에 가나미에게 강경한 경고가 전달되도록 협박장을 보냈습니다. 부부의 이름으로 동거 중이라면 자연스럽게 아내가 우편함을 확인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는 딸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경고가 효과를 보지 못해서, 마카베에게 정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겁니다. 이렇게 등장인물은 물론 독자까지 공정하게 제공한 단서로 속여 넘기는데 성공했다는게 아주 좋았어요.
가나미가 마카베를 옭아매기 위해 벌였던 몇 가지 장치 - 당시 마카베가 연인과 시간을 보냈던 러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DNA를 손에 넣었다는 등 - 도 설득력있게 설명되고요.

진상을 드러내기 위해 기타미가 벌이는 조사의 상세함도 최고 수준입니다. 주로 탐문과 관계자 면담이 중심이지만, 기타미는 피해자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마카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보를 캐 내기까지 하는데 이는 법대생 기세의 입을 빌어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선이라고 설명되거든요. 그야말로 일반 '탐정'이 조사할 수 있는 한계를 그려낸 느낌이에요.
개인이 받은 '협박장'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다룬 점도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들었고요. 이 역시 일개 탐정이 해결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죄일테니까요.

그러나 마카베가 받는 협박의 원인이 4년 전 사건일 수밖에 없는 탓에 협박범이 그 사건의 피해자나 관계자일 거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가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 중반부는 다소 지루합니다.  
아울러 중학생 시절부터 탐정으로 활약해 왔다는 기타미의 설정은 이야기의 현실성을 저해합니다. 굳이 필요했던 설정은 아니었어요. 기세와 기타미의 1인칭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불필요해 보였고요. 

그래도 반전을 중심에 둔 일상계 범죄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 합니다.

2026/01/02

법의 체면 - 도진기 : 별점 2점

안녕하세요, 2026년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 처음으로 리뷰를 올리는 작품은, 척박한 한국 본격 추리물 시장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신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과 "완전범죄" 두 편은 좋습니다. 법을 잘 아는 작가가 법에 대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진기 작가만 쓸 수 있을 법한 작품이에요. "완전범죄"는 본격물을 방불케 하는 추리가 펼쳐지기도 하고요.
"애니"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SF인데, 이 역시 설정만큼은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국"과 "행복한 남자" 두 편은 한마디로 망작이었고, 앞서의 세 편 역시 전개와 묘사 등 소설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빼어난 설정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작가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점수를 줄 만한 흥미로운 지점은 분명 있는데, 아쉽게도 단점이 더 많습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

호연정 변호사에게 변상일이 찾아와 자신의 장물 취득 사건 3심 변호를 의뢰했다. 변상일의 유죄가 확실했지만, 시한부 인생이라는 변상일의 청에 못 이겨 호연정은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러나 상고 기각 확정 후, 변상일이 강원도 홍천에서 일어났던 ‘청테이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변상일의 쪽지문이었다.

호연정 변호사 시리즈 단편입니다. 변상일의 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장물 취득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청테이프 살인사건 발생 일자와 같아서, 변상일이 진범이라는게 확실하지만 풀어줄 수 없는 딜레마를 다룹니다. ‘법의 체면’이라는 제목 그대로이지요. 법관들은 체면 때문에 이전 판결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딜레마는 굉장히 흥미롭고, 변상일이 과거 음주운전 사고로 딸과 아내를 잃었는데, 음주운전 가해자 장봉호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탓에 장봉호와 법에 복수하려고 결심했다는 서사도 설득력 있습니다.

하지만 초반 변상일의 범행 과정을 1인칭의 단순 강도 살인 사건처럼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독자는 변상일이 진범이 아니라고 오해하게 되니까요. 전개에 필요했던 부분도 아니니 빼야 합니다. 마지막 변상일의 자살도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잘 풀어냈지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쉽습니다.

당신의 천국

국회의원 최명환에게 상담 차 장애가 있는 박성혜라는 젊은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명환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막장 드라마를 쓰다가 시민단체로 고발당하고 취조당한 끝에 자살 시도로 몸을 망쳤다는 박성혜의 1인칭 고백입니다.

그러나 장황한 고백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낮고 시시합니다. 박성혜가 최명환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무슨 논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최명환을 살해하는 방법도 생수통에 독을 풀었다는 것인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자가 생수통에 어떻게 약을 풀었는지, 청산가리는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묘사도 문제입니다. 28살 여성의 한 서린 독백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건질 만한 점이라면 박성혜가 ‘신시아’라는 필명으로 썼다는 막장 드라마의 내용뿐인 막장 범죄물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완전범죄

석지연은 동거하던 직원 방미래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사인은 의심할 바 없는 뇌출혈이었고, 방미래가 술에 취한 줄 알아 방치했다는 변명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의사 출신 김 검사는 피해자가 거액의 질병 사망 보험에 가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하는데...

과실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완전범죄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이자, 법정에서의 공방이 벌어지는 법정물 단편입니다.
작 중, 김 검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동기. 단지 직원 방미래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인 사장 석지연이 그녀를 살해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보내면 그만입니다.
  2. 범행 방법. 마침 그 시간에 뇌출혈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김 검사는 첫 번째는 거액의 보험으로, 두 번째는 평소 피해자에게 뇌출혈 전조 증상이 있다는 점을 눈치챈 범인이 보험 가입을 유도했고, 뇌출혈이 일어났을 때 방치했다는 답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방미래의 연인 류소이의 증언 등을 통해 법정에서 전조 증상은 2개월 전 부터 있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이러한 본격 추리적인 재미에 더해 법적인 딜레마 부분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의사 출신인 김 검사는 방미래의 의료 기록을 보고 그녀가 뇌출혈을 일으켰을 때 거의 즉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석지연이 방미래를 방치했던건 방미래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녀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본격물적인 요소와 법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딜레마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나 황 판사가 의사인 아내를 통해 방미래의 사인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극심한 혐오로 이를 숨긴 채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결말은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립니다. 아쉽기만 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애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던 동한은 금사원 박사의 연구에 피험자로 응모했다. 하룻밤에 한 사람의 한 평생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는 ‘영생’ 실험이었다.

설정은 정말 멋집니다. 한 평생의 꿈을 꾸게 하면 결국 그것이 영생에 가깝다는 발상은 정말 혹할 만 하니까요. 친구 수민에게 사 주었던 전기 충격기로 뇌에 삽입된 칩을 제거한다는 결말도 작가의 작품치고는 보기 드물게 깔끔합니다.

하지만 연구로 만들어진 ‘꿈’에 자아가 생겨 본체를 지배하려 한다는 전개는 뻔합니다. 설명도 충분하지 않아 와 닿지 않고요. 애니와의 사투 역시 박진감은 넘치지만,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탓에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설정과 마무리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되어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다른 작품들도 이 정도로만 정리되었다면 훨씬 좋을텐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행복한 남자

꽃뱀에게 당한 한 남자의 약 반년에 걸친 일기 형식을 빌린 독백으로 내용도 뻔하지만, 그나마의 설득력조차 낮습니다. 문체가 30대 남자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식이고, 과장되고 낡은 표현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맞는 결말 역시 식상하며 전혀 현대적이지 못합니다.

낡은 설정을 낡게 풀어낸,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탓에 2025년에 읽을 이유가 없는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5/12/27

어차피 곧 죽을 텐데 - 고사카 마구로 / 송태욱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탐정 나나쿠마 스바루와 조수 야쿠인 리쓰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들만 모인 '하루살이 회' 정기 모임 초대를 받아 모임 회장 자야마 교이치의 외딴 별장으로 향했다. 미스터리 애호가인 회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회원인 자야마, 지로마루, 롯폰마쓰, 가모, 하시모토, 하루나와 함께 즐거운 저녁을 보낸 다음 날, 홀 벽에 걸린 하루나의 그림이 훼손되었고 가모가 사망했다. 의사인 자야마와 지로마루의 검안으로 병사로 추정되었지만, 야쿠인은 타살일 수 있다 여기고 나나쿠마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나쿠마마저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제 2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의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입니다. 작가의 데뷰작이기도 하고요. 밀리의 서재에 업데이트 되어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징이라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통 본격 미스터리의 ‘클로즈드 서클’ 형식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외딴 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기묘한 참석자들, 밀실이라는 공간적 설정 등은 전형적이지만,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자연사(병사)로 보이도록 꾸며서 과학 수사나 경찰의 개입이 일시적으로 미치지 않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작중 표현 그대로 ‘어정쩡한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아요. 

나나쿠마 사건은 별게 없지만, 가모 사건은 정통 본격물다운 트릭이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사체 발견 당시, 인슐린을 이용한 저혈당성 쇼크 살인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는 나나쿠마의 조사로 곧바로 반박됩니다. 가모가 부착하고 있던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쿠라코는 나나쿠마가 죽은 뒤, 데이터는 가모 것이 아니라 나나쿠마의 것이었다고 추리합니다. 그녀의 측정기가 가모와 동일 기종이었거든요. 가모는 나나쿠마에 의해 인슐린 쇼크로 살해당했고, 이를 나나쿠마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조작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는 추리이지요. 밀실은 데이터를 보여주려고 가모의 짐을 뒤질 때(측정기를 찾기 위해서) 몰래 가지고 있던 가모 방 열쇠를 가방 안에 있었던 양 꺼내 들었던 것이고요. 현실적이라서 그럴싸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두 살인 사건 모두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을 왜 살해했나"라는 기묘한 상황에 더해, 사실은 가모와 나나쿠마가 모두 죽은 척 했었고 이는 대충인 검안과 사체 이동 등에서 드러난다는 등 진상 부분에서도 본격물적인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나쿠마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였고 야쿠인은 그녀의 손자라는 점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술 트릭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사쿠라코의 추리를 한 번 더 꼬아서 만든 반전과 진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가모 게이타 사건의 진상이 이상합니다. 나나쿠마가 살해한게 아니라 야쿠인이 인슐린을 투약해 죽이려 했던게 진상인데, 그렇다면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충돌합니다. 혈당이 실제로 떨어졌다면 데이터가 변했어야 하고, 변하지 않았다면 야쿠인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으니까요. 의대생 출신이라는 설정까지 고려하면 당연합니다. 자신의 인슐린 투약이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병사로 믿고, 다음 날 나나쿠마 살해까지 저지른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밀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쿠인이 가모에게 인슐린을 투약한 뒤, 가모가 스스로 방을 잠갔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사에 이상함을 느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방을 잠글 이유가 있을까요? 인슐린이 가짜라는걸 나나쿠마가 미리 알려주어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건 알았더라도, 문을 잠그면 밀실이 되는데 혹시라도 죽으면 자연사로 보일 수 있으니 잠그지 않는게 당연합니다.

가모 사건 때 하루나의 그림을 훼손한 부분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나나쿠마가 그림을 본 상황에서, 그리고 모델인 사쿠라코가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림만 훼손한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나쿠마를 어차피 살해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가모와 나나쿠마를 '병사'처럼 보이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림을 훼손하는 실질적인 범행을 저지른 건 자칫 경찰 수사의 꼬투리가 될 수도 있으니 하면 안되는 짓이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지로마루가 손녀의 죽음 진상을 밝히기 위해 꾸민 연극이었다는 설정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자야마의 ‘하루살이 회’는 실재했던 것일까요? 자야마는 수년 전부터 블로그 활동을 해 왔던 인물인데, 그 모든 게 연극이었다는 설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큰 연극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작 가모의 방에 CCTV를 장치해 야쿠인의 범행을 찍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무엇을 위한 연극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전개나 등장인물들의 설정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나나쿠마 1인칭이 섞이는 묘사는 전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나나쿠마와 사쿠라코의 말투도 의도된 유머일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무례하게 느껴졌고 몰입을 방해합니다. 마지막에 하루나가 야쿠인을 독살하는 듯한 묘사 역시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동기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림을 훼손했기 때문에? 하루나 본인 스스로 습작에 불과해 미련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이유가 될 수 없지요.

정통 본격물을 현대 무대의 클로즈드 서클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고, 몇몇 볼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한참 모자랍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수상작은 기대에 미쳤던게 없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앞으로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5/12/20

세계문학단편선 39 윌키 콜린스 (꿈 속의 여인 외 9편) - 윌키 콜린스 / 박산호 : 별점 1.5점

근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초창기 거장 중 한 명인 윌키 콜린스의 단편집입니다. 저자의 단편은 이전에 몇 편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던 기억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감성 그대로의, 낡고 지루한 내용이 가득한 탓입니다. 이야기는 모두 예상대로이며 신선함이나 새로움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거장의 편린이 엿보이는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쌍둥이 자매"는 첫 눈에 반한 여성 제인과 결혼하게 된 스트릿필드가 결혼식 날, 자신이 반했던 여자는 제인이 아니라 그녀의 쌍둥이 동생 클라라는걸 깨닫는다는 상황 설정이 기가 막힙니다.

"페루지노 포츠 씨의 인생길"은 영국 신사임을 자처하는 속물 포츠 씨가 거구의 이탈리아 여성에게 속박당하는 수난의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합니다. 이른바 영국식 유머 소설 느낌인데, 포츠 씨 일기라는 형태의 1인칭 시점으로 화끈하고 깨는 맛을 더해주는게 좋습니다. 이런 작품도 잘 쓰는 작가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아주 기묘한 침대"는 10여년 전에 읽었던 단편인데 여전히 재미있었어요. 침대가 서서히 내려오는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고요.

제미나이로 그려본 아주 기묘한 침대가 놓여진 방

하지만 예전보다는 장황함이 지나치게 느껴졌는데, 빅토리아 시대 원전에 충실한 번역 탓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덕분에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언급하며 방을 꼼꼼히 살핀게 '나'가 생명을 구한 이유가 되었다는걸 알게 되었지만, 예전만큼 '걸작'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기는 합니다.

"죽은 자의 손"에서의, 경마 시즌이라 빈 방이 없던 탓에 여관 주인의 '말없고 조용한 동숙인'이라는 말에 속아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아서 홀리데이의 상황만큼은 기발합니다. 시체를 바라보다가 시체가 움직인걸 알아챈 순간의 묘사 - 이제 거길 보자 침대 옆으로 축 늘어진 길고 흰 손이 보였다. 그 손은 시체의 머리 쪽과 발치를 가린 두 장의 커튼이 만나는 곳에 꼼짝도 않고 늘어져 있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은 모든 것을 감춘 채 길고 흰 손만 보여 주었다. - 도 일품이고요.

하지만 이외 작품들은 모두 지루하며, 눈여겨 볼 부분도 거의 없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고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볼거리이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입니다. "얼어붙은 땅"에서 연적과 표류하게 된 리처드처럼요. 그는 목숨걸고 연적 프랭크를 옛 연인에게 데려다 주고 죽고 맙니다. 순애보도 아니고, 그에게는 일종의 '임무'였기 때문이라는데, 참 낡아빠진 발상이지요.

좋았다고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도 일부 상황 설정이 재미있을 뿐, 낡고 고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자의 손"이 대표적이에요. 시체와 함께 있는 두려운 상황을 한껏 고조시켜 가다가, 죽은게 아니라 살아있었는 사람이었고 그는 아서 홀리데이의 의붓형일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결말입니다. 이런 식의 작위적인 전개가 대부분의 작품에 가득하다는 문제도 크고요.

기대했던 범죄, 추리 계열 작품도 없다시피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5/08/29

네버 라이 - 프리다 맥파든 / 이민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샤와 남편 이선은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던 교외의 외딴 저택에 고립되었다. 눈보라 탓이었다. 저택은 원래 2년 전 실종된 유명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소유였다. 머무는 동안 트리샤는 누군가 숨어 있다고 의심했지만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신 에이드리언이 환자 상담을 몰래 녹음해 보관한 비밀방을 발견했다.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던 트리샤는 또 다른 숨겨진 지하실을 찾아냈는데, 그 안에 부패한 사체가 놓여 있었다... 

2년 전, 유명 정신과의사 에이드리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차량 타이어를 훼손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은 환자 EJ의 협박이 시작됐고, 그녀는 연인인 컴퓨터 전문가 루크의 도움으로 영상을 삭제하려 했지만 EJ는 이 장면마저 촬영해 협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에이드리언은 EJ 살해를 결심하는데...

프리다 맥파든이 쓴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장편 소설입니다. 최근 너무 일본 작품만 읽은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편식은 좋지 않으니까요.

이 작품은 2년 전 정신과 의사 에이드리언 헤일의 시점과 2년 후 현재 트리샤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되다가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전개 방식 자체는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의 환자 PL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PL이라는 이름은 패트리샤에서 비롯된 것이고, 트리샤는 (패)트리샤였던 겁니다.

PL은 원래 약혼자와 친구들과 캠핑을 갔다가 의문의 연쇄살인마에게 습격당해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혼자와 친구의 불륜을 알게 된 뒤 두 사람을 살해하고, 이후 살인마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꾸며온 것이 진상이었습니다. 에이드리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찾아온 PL과의 상담 과정에서 이 사실을 간파했고, 자신을 협박하던 EJ를 제거하기 위해 트리샤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진 트리샤는 오히려 에이드리언을 살해하고 시체를 감췄지요. 

한편, 에이드리언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에이드리언이 아니라 EJ였는데, 이는 에이드리언이 EJ를 감금해서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루크가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를 보고도 에이드리언이 아니라고 확신한 이유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시체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런 디테일은 확실히 여성 작가스러워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진상, 반전에 이르는 과정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트리샤는 에이드리언을 살해한 범인인데, 마지막 반전이 드러날 때 까지 트리샤 시점 전개에서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심약한 임산부로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3인칭도 아니고 1인칭 시점이며, 다중인격도 아닌데요. 이건 반칙입니다.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과 묘사도 많습니다. 트리샤가 굳이 비밀리에 테이프를 듣는게 대표적입니다. 트리샤는 EJ를 죽인건 에이드리언이고 루크가 범인이 아니라는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둘의 상담 테이프를 들을 이유는 없어요.
트리샤가 이선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걸 알고, 그런 그에게 자기 범행을 고백한 뒤 부부가 함께 입을 막기 위해 루크를 살해하고 사체를 파묻는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선의 범행은 지금 와서는 제대로 증명할 수도 없고, 그나마 증거라는 테이프도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트리샤의 범행은 잔혹함과 규모에서 이선의 범행과는 수준이 달라요. 아무리 부창부수라지만 이선이 선뜻 트리샤의 손을 잡는다는건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설명도 부족합니다. 트리샤가 에이드리언을 왜 살해했을까요? 트리샤는 EJ를 납치하는 자기가 CCTV같은데 찍혔을지도 모른다며 에이드리언을 살해했는데,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에이드리언을 죽인다고 CCTV 데이터가 사라지는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EJ의 사체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억지입니다. 사체가 발견되면 가장 문제가 될 건 에이드리언이니, 그녀가 알아서 잘 숨겼다고 믿는게 당연합니다. 되려 시체만 하나 더 늘렸고, 유명인사 에이드리언의 실종을 초래하여 경찰이 수사에 나서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수사 당시 경찰이 저택 비밀 공간들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건 순전히 운이었고요. 
저택에 누군가 침입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선이 지나치게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 루크가 저택에 침입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환자를 돈으로만 대했고, 특별히 좋은 치료를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환자를 살해하기 까지 한 에이드리언 헤일은 죽어도 쌉니다. 트리샤, 이선 급으로 나쁜 악당이니까요. 그러나 엄청나게 순수했고, 진심으로 에이드리언을 사랑했을 뿐인 루크를 마지막에 부부에게 개죽음당하게 만든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행복한 생활과 트리샤가 이선마저 죽일 수 있다는 에필로그보다는 루크의 죽음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거라는 식으로 그리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반전은 흥미롭지만 반전을 반들기 위한 의도적인 가짜 서술 트릭물이라서 감점합니다. 억지와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5/05/02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이노우에 마기 / 이연승 : 별점 2점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4점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론 사업 벤처기업 탈랄리아 직원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 형의 사고사를 방조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다카기는 최첨단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의 3세대 모델인 SVR-3가 채택된 지하도시 WANOKUNI 개막식에 참석하는데, 마침 그날 지진이 일어났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붕괴와 침수가 계속되는 지하 5층에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 생존자가 헬렌 켈러처럼 시각, 청각, 언어 모두에 장애가 있는 나카가와 히로미라는 점이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뿐으로, 다카기는 동료들과 함께 유일하게 지하에 접근할 수 있는 드론 아리아드네를 원격 조종해 생존자 수색과 구조에 나서는데....

일본 작가 이노우에 마기가 쓴 재난 구조 SF 소설입니다. 구조라는 테마에 첨단기술과 장애인이라는 소재를 결합한 매우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존 재난소설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탈출극 추천'이라는 리스트에서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 과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드론'을 활용하여 헬렌 켈러와 똑같이 시력, 청력 및 대화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지하 도시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론'은 '촉각'과 '후각' 만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해서 아리아드네는 향수를 내뿜어 도착을 알리고, 점자 카드가 포함된 구호 물품을 투척하며, 장착된 하네스(유도용 와이어)를 잡게하여 경로를 안내합니다. 또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한 SF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구조 과정의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작품의 배경인 지하도시 WANOKUNI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에너지 보존과 탄소 배출 감소, 지진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하 건설의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드론을 활용한 물류 시스템, 개인 맞춤형 서비스, 광덕트를 통한 자연광 유입 등 매력적인 기술들이 상세하게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통신망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드론 조종이 가능했던 원리, 드론의 무선 충전 방식 등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구조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WANOKUNI가 정치적인 이유로 활성 단층 위에 건설되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재난 구조 소설답게 구조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들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진으로 인해 구조용 드론이 추락하고, 지하 4층 스파 구역에서 발생하는 누전, 폭주하는 지게차들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들, 그리고 다카기가 폭로 유튜버의 드론에 맞아 아리아드네의 통제권을 놓치는 장면까지, 하나하나의 위기들이 정교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울러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히로미가 조명 스위치를 작동시키거나, 쥐떼를 감지하고, 돌진하는 지게차를 스스로 피하는 등, 의아한 행동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정말 시각을 잃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 수수께끼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상 - 히로미가 사실은 도시에 추락했던 다른 장애인 미도리를 업고 있었고, 모든 기이한 행동들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반전 - 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요. 아울러 이 진상은 광덕트 붕괴와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진 이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낭의 열기 등 여러 복선들과도 절묘하게 맞물려 있어서 정교함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재난 생존물로서 치명적인 약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구조 대상자인 히로미가 아니라 드론 조종자인 다카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물의 긴박감을 그리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카기는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원거리에서 드론을 조작하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래서야 일종의 1인칭 슈팅게임과 별다를게 없지요.

또한, 서사의 일부 전개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예컨대, WANOKUNI 입주식 날 하필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듯 합니다.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진이 발생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구조 활동 중에 온갖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다카기, 그리고 계속해서 민폐를 끼치는 니라사와의 모습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동생을 계속 잃어버리는 니라사와의 행동은 짜증을 유발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애인을 구조하는 독특한 설정과 드론 기술의 활용,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반전은 매력적이지만, 긴박감을 살리지 못한 시점 선택과 작위적인 전개는 아쉽습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11/09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아사쿠라 아키나리 / 남소현 : 별점 3.5점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8점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남소현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서는 트릭과 진범이 누구인지가 모두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타노, 시마, 쿠가, 하카마다, 야시로, 모리쿠보의 명문대 졸업을 앞둔 취준생 6명은 가장 잘 나가는 신생기업 스피라링크스 최종 전형까지 살아남았다. 한 달 동안 6명은 마지막 관문인 그룹 토론을 준비하여 모두 함께 합격하자며 친해졌는데, 그룹 토론은 그들 중 딱 한 명만 투표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토론장에서 여섯 명은 각각이 수신인인 수상한 봉투를 발견했고, 그 안에 각자의 과거 치부가 증거와 함께 들어있다는게 밝혀졌다. 이를 통해 투표는 순식간에 요동쳐서 원래 앞서가던 쿠가 등이 봉투 속 내용물로 뒤쳐지고, 하타노가 1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봉투를 가져다 놓은게 하타노라는게 드러나 결국 시마가 1위로 스피라링크스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후, 하타노는 지병으로 사망했고 시마는 유품을 건네받았다. 유품은 시마가 진범이라는 일종의 고발이었다. 범인이 아니었던 시마는 충격을 받고, 과거 그룹 토론 멤버들과 다시 연락하여 사건에 대해 재조사에 나섰다. 이는 하타노가 끝까지 숨겼던 자신의 치부가 담겨있던 봉투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두려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들의 극심한 경쟁을 사회파 범죄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 신입사원 공채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니 사회파 소설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지요. 얼마전 올렸던 추리 소설 추천 리스트에 있었는데 번역되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일단 독자를 흡입시키는 전개가 아주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1부는 화자 하타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그가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인으로 몰려 추락하는 상황이 긴장감있게 그려집니다. 또 그룹 토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매우 흥미로우며, 특히 입사가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눈부십니다. 단순한 그룹 토론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이와 함께, 치열한 입사 경쟁이라는 현실도 강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2부에서의 입사에 성공한 시마의 시점으로 그녀의 조사를 통해 하타노의 결백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도 무척 흥미롭고요.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캐릭터의 진실을 탐구하는 재미를 더합니다. 

작품 속 여섯 명의 취준생 캐릭터들도 처음에는 능력있고 선한 사람들로만 보였지만 이후 그룹 토론과 시마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약점(?)이 하나, 둘 씩 독자에게 제공되면서 마지막에 복합적인 인물들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그동안 보아왔던 평면적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함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작 중 언급된대로 '달은 지구에서는 표면밖에 보이지 않지만, '뒷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걸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누가 비밀을 폭로하는 봉투를 준비했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본격 추리물처럼 단서를 제공하고 범인을 빵 터트리는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단서로 '하타노가 음주를 하던 사진에서 '스미노프 보드카'가 술이라는걸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 범인이다'는걸 독자에게도 알려주고, 이를 통해 술을 못하는 쿠가가 범인이라는걸 드러내는건 본격 추리물 못지 않았습니다. 하타노가 유언처럼 남긴 파일의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수신인이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가 아니라 '범인과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뜻이었다는 착안도 괜찮았고요. 하타노가 파일에 걸어놓은 암호도 범인이 쿠가이므로 '페어'였었죠.

또 괜찮은 서술 트릭물이기도 합니다. 시마의 인터뷰와 하타노, 시마 1인칭 시점으로만 다른 인물들을 묘사하여 야시로가 선뜻 장애인 석에 앉았고, 쿠가가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하카마다가 야구를 하던 어린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며 혼을 냈다는걸 드러내며 그들을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하고 얄팍한 인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야시로와 쿠가는 장애가 있는 시마를 배려했던거고 하카마다도 할머니가 공에 맞을 뻔 해서 아이들을 혼냈고 나중에는 잘 타일렀다는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독자를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진상을 드러내는건 전형적인 서술 트릭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깜빡 속았네요.

취준생들이 겪는 압박과 고통, 힘든 취업 과정에 대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읽다가 얼마전 제가 근무하는 부서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합격 소식을 듣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기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취준생 들의 심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신입 공채에 대해서도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사측 입장이 아니라 취준생들도 거짓말쟁이라는걸 밝히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고요. 물론 사측 문제가 더 커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타노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의 유품으로 시마의 진상 추적이 시작되는 2부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 시험의 정당성에 의심을 품고 일부러 사건을 일으켰다는 동기가 불공정한 탓이 큽니다. 쿠가의 뛰어난 친구가 스피라링크스 2차에서 떨어졌는데 쿠가 본인은 최종 전형까지 합격한게 불만이라는 동기는 처음에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뛰어난 친구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동기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동기 자체의 설득력도 없어요. 쿠가의 말 그대로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철없는 아이의 장난과 다를바 없는 사건이라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아붙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겁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를 망치고 싶었다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최후의 1인이 되든 상관없이 그룹 토론이 엉망이었다는것만 스피라링크스 인사팀이 확인하면 되었으니까요. 각자의 치부를 담은 봉투 안에 작은 협박문을 넣어서 알리바이를 조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리쿠보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사진이 이상하다는걸 들먹이면서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여 하타노가 범인일 수 있다는 식으로 끌고간 까닭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술자리에서 술을 못하는 시마에게 술을 강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쿠가가 시마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큰 잘못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 자리에 하타노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또 시마가 확인한 그룹 토론 당시 동영상을 통해 모리쿠보와 야시로가 협박당했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이 당시에는 모두 취직이 급했으니 비밀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은 통했을겁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나 모두 사회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이 시절 협박당했다는걸 드러내지 않은건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하타노의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협박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하타노가 범인으로 몰리는걸 방조한 잘못이 있기도 하고요. 모리쿠보는 시마를 의심했고, 쿠가는 진범이었으니 그렇다쳐도 최소한 야시로는 시마를 만났을 때 그 사실을 충분히 밝혔어야 했습니다. 이 점은 이들 모두 알고보면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반전을 약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시마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는 좀 작위적이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시마의 장애가 1부에서 아예 설명되지 않은 것도 탐탁치 않고요. 약간은 노리고 속인 느낌이 드니까요.

신입 공채에 대한 비판도 다소 과장되어 있습니다. 스피라링크스의 인사부장이 말한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서류 전형과 면접, 여러가지 시험 등을 통해 나름 공정하게 사원을 선발하는게 당연합니다. 6명의 최종 입사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그룹 토론해서 1명을 뽑아라? 이건 말도 안되요. 갑자기 성장한 회사라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는 변명이 실제로 통할리 만무합니다. 작가가 직장 생활은 해 보지 않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건 분명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입 사원 공채를 소재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는데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지만 않았어도 별점 4점 이상은 충분했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보통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는 믿지 않는 편인데,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추천은 믿음이 생기네요. 다른 작품도 번역이 되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당연하게도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곧 개봉이라는데, 서술 트릭 쪽을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궁금합니다. 



2024/11/08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猫の舌に釘をうて) - 츠즈키 미치오 : 별점 2점

猫の舌に釘をうて (德間文庫) - 4점
쓰즈키 미치오/德間書店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참고하세요.

3류 추리 작가 아와지는 사랑하던 유키코와 결혼한 쓰카모토에게 살의를 품었다. 정말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단골 카페 손님 고토의 커피잔에 유키코에게 받은 감기약을 몰래 타는 정도로 살의를 달래려 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신 고토는 정말로 죽고 말았다.
아와지는 자신이 범인인데다가, 유키코의 감기약에 독이 들어있었기에 누가 독을 넣어 유키코를 죽이려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탐정 역할을 자처한다. 이를 진범이 알게되면 아와지를 살해할 수 있어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행동이었다.
아와지는 경찰과도 협력하며 수수께끼의 남자 고토의 뒤를 캐면서 사건을 수사해나갔으나, 유키코마저 자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런 리스트, 이런 리스트 등에 작품이 선정될 정도로 꽤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츠즈키 미치오의 장편 소설. 이 리스트에서는 무려 59위에 선정될 정도로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샤라쿠 살인사건"보다도 순위가 높네요. 원서를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번역에 ChatGPT의 도움을 크게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원서인 탓에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 주 한 주는 이 책만 읽었네요.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답게 재미있는 구석이 제법 있습니다.

우선 아와지가 연습삼아 죽이려 했던 고토가 실제로 죽어버리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유키코가 살해당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와지가 쓰는 수기와 그의 실제 행동을 번갈아 보여주는 독특한 전개 방식도 독자들에게 큰 몰입감을 주고요. 아와지가 '범인이자 탐정이며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설정도 좋아요.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키거든요. 
그리고 도입부의 설정이 결말에서 동일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일종의 수미쌍관식 구성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진상은,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했지만 고토의 죽음과는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토를 죽인 진범은 협박을 당하던 고토의 동생 쓰카모토였고, 아와지는 진범을 밝혀내는 탐정 역할이자, 이 진실을 덮으려는 쓰카모토 일당에게 살해될 수 있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지요. 이렇게 이야기는 치밀하게 얽힙니다. "신데렐라의 함정"도 떠올랐는데, 유명세는 "신데렐라의 함정" 쪽이 더 크지만, 설정을 더 정교하게 다듬은건 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대부분의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특히 유키코 사건의 진상 규명은 돋보이는데, 유키코를 끔찍이 아끼던 아와지가 그녀가 외설적인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는건 확실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고토와 쓰카모토가 형제라는 설정, 오노기와 고바야카와가 형제라는 사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독자에게 설명됩니다.

더불어 아와지의 입을 빌려 츠즈키 미치오와 그의 작품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를 작품 속에 삽입한 재치도 눈에 띕니다. 아와지가 욕을 하면서도 가지고 있던 츠즈키 미치오의 책이 그의 범행 기록을 담은 일지를 숨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반전 역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어요.

이 책이 발표된 1961년 당시의 도쿄를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눈에 띕니다. 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도시 문화, 히로뽕 중독에 대한 설명, 그 와중에 현재를 떠올리게 하는 지명과 거리 분위기 등 당시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묘사되어 있거든요. 이는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 줍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 아주 높은 평가를 하기는 무리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와지 본인이 언급했듯, 범행 동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한 이유는그녀가 고바야카와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유키코가 여러 남자와 만났다는 묘사가 이미 존재하는 탓입니다. 고바야카와와의 관계만을 살인 동기로 삼는 것은 비합리적이에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수기에서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건 반칙이고요.
또한 아와지가 고토를 살인 리허설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순간에, 그가 진짜로 살해당했다는건 지나칠 정도로 우연이 겹친 상황이라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기와 실제 사건을 뒤섞은 전개도 문제입니다. 아와지 1인칭 시점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가 유키코를 살해한 진범이라는걸 독자에게 속이기 위한 목적은 달성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탓입니다. 아와지가 범인일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오노기가 갑자기 탐정으로 등장해 진상을 밝히는 부분,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짤막한 분량의 결말도 급작스럽고 뜬금없었습니다. 그나마 아와지 집도 몇 번 찾아오곤 했던 무라코시 경부보가 사건을 해결하는게 차라리 나았을거에요.

마지막에 아와지가 정말로 피해자가 되어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결말도 이상합니다. 고토와 유키코를 살해한게 아와지라는게 드러난 이상, 쓰카모토가 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정통 추리 소설과 치정 범죄극을 섞은 결과물은 재미로만 본다면 꽤 괜찮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과 설득력, 그리고 결말 부분에 문제가 있어 감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설령 소개된다고 해도 특별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8/17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4점
최희주 외 지음/나비클럽

구독 중인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기에 봄 호에 이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수록 단편들이 대체로 호러 성향을 띄는게 특징입니다. 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뻔한 설정과 전개를 답습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좀 더 신선한 발상과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딥페이크 업체 추적기
실제 있던 사건을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진, 동영상 딥페이크 제작을 요청하면 건당 돈을 받고 결과물을 보내주며, 심지어는 업체의 API를 연결하여 직접 생성할 수도 있는 현실을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취재를 통해 딥 페이크 범죄가 널리 확산 중인데도 불구하고, 법 규제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범죄는 여성들 피해가 많은데, 저도 딸 아이의 아빠로서 좀 더 강한 처벌이 시행되면 좋겠네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취재라는 점에 더해, 이전 호보다 더 논픽션에 가깝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탁묘
작가 효진은 고등학교 동창 애희와 동네에서 오랫만에 재회한 뒤, 가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날, 손을 다친 애희가 찾아와 자기와 남편 지욱에게 닥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번 호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작. 두 여자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공포물인데, 수상이 당연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빼어난 흡입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되살아난 지욱이 효진에 대한 집착만 남아 그녀를 덮치는 결말도 강렬했고요.
 
그러나 애희가 살해한 지욱을 윗층 할머니가 되살려냈다는건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고양이를 되살린 것, 고양이를 죽게 만든 택시 운전 기사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등의 다른 설정들도 마찬가지에요. 기묘한 집안 물건들 정도로 이런 능력이 가능하다고 하는건 무리입니다. 주술이건, 부적이건, 조금이라도 설명을 덧붙여 주는게 좋았을겁니다.
또 효진이 지욱과 불륜관계라는 뻔한 설정도 별로입니다. 게다가 효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건 반칙이에요. 특히 애희가 남편 불륜 상대와의 문자를 봤다고 했을 때, 놀라기는 커녕 제 3자처럼 "화양연화" 운운한건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수상자 인터뷰에서 밝혔던 창작 동기 - 층간소음 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복수심으로 윗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훔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를 잘 살린 것 같지는 않네요.

메리
의대 진학을 앞둔 '나'는 아르바이트로 삼촌의 스마트 축산 건축업을 돕기 위해 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가, 마을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인 정신지체자 '메리'의 아기가 죽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아기의 죽음을 알게 된 메리는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데...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의 결과로 빚어지는 복수극.
그러나 핵심인 '메리'의 복수심에 대한 빌드업보다는 '나'의 개인 심리 묘사에 치중한 탓에 복수극으로서의 맛은 다소 부족합니다. 도축 현장과 가축 축사 등이 어우러진 배경 묘사는 그럴듯하지만 지나치고요. 복수극이라면 그에 걸맞게 화끈하게 달려주는게 낫습니다. 괜한 문학적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어요.
메리의 복수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유사성이 짙다는 문제도 큽니다. 복수 장면도 독극물을 먹은 잔치 참석자들이 복통으로 몸부림치는걸 난도질로 끝장낸 상황인데, '나'가 창고에서 걸어나와 문을 나서는 중에 이 모든게 이루어진다는건 이상합니다. 최소한 사전에 독극물을 먹였다는 설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환상통
두 손이 잘려나간 환자가 자신의 손이 자기 목을 조르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 상황에서 20여년 전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딸아이 이름을 불렀다. 딸은 백화점 붕괴사고로 환자 눈 앞에서 죽고 말았었다. 

환상통과 거울 치료 등 의학적인 부분에서의 디테일은 볼만했던 작품.
하지만 죽어가는 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건 많이 뻔했고 이야기 전개에서 의외성도 별로 없습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이게 무슨 장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호러는 아닌데, 그렇다고 심리 스릴러도 아니고... 여튼 장르물로의 기대에는 전혀 값하지 못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수지
제주도의 물 빠진 저수지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한 구는 박서현의 남편 시신이었다. 남편은 같은 마을 동우 엄마와 불륜 관계였고, 박서현도 요가 수강생 은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 사건이 등장하고,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힘든게,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경찰 수사에 의해 모든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모든건 조현병 환자인 박서현의 망상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고, 박서현도 은우와 불륜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망상 때문에 은우와 남편을 살해했던 것이지요.
반전은 괜찮았지만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장화 홍련(영화)"와도 별로 다르지 않지요. 상황을 오해하고 있다가 블랙박스와 사진 등을 통해 현실이 드러나는건 영상물에 어울리지, 소설에는 잘 어울리는 작법이라 할 수도 없고요. 소설이라면 독자도 속일만한 디테일한 묘사가 많았어야 했습니다. 
또 이야기와는 별 관계없는 제주 무당(심방) 관련 설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본질만 흐립니다. 흥미롭기는 한데 작품에 잘 녹아들지는 못해요. 박서현이 귀신에 홀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제주 무당 관련하여 작가가 '내가 이렇게까지 자료조사를 했다!'는걸 과시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만 드는 탓에, 차라리 이 설정을 뺐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스트 하이커
휴직 중인 경찰 수연은 동료 태현을 쫓아 찾아온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길을 잃었다. 태현은 아내 살해 용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라진 상태였다.

수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영원히 떠도는 - 제목 그대로 '고스트 하이커'가 되어 '부랑'을 하는 - 내용의 작품. 
솔직히 장르가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진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수연이 결혼한 태현에게 집착한 나머지, 태현의 아내는 자살했고 태현은 부랑자가 되었다던가, 수연이 베로나 실종 사건에서 알랭이 수상하다는걸 리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던가 하는건 모두 수연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애매한 사건들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 보다는 중간에 수연이 죽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복선을 삽입한 뒤, 수연이 유령이라는걸 드러내는 전개가 더 좋았을거에요. 정교한 맛도 살리면서 말이지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애매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한국 미스터리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2 : 욕망과 갈등의 논리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에 대해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연재물. 이번에는 '사연'과 '한'이라는 한국 미스터리만의 특별한 주제에 대해 "아홉 꼬리의 전설"과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라는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저 두 작품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가까와서 별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저 두 작품이 한국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품도 아니니까요. 보다 보편 타당한 고전을 예로 들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이런 류의 비평과 해석이라면, 연대순으로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을 당시 주요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통사적으로 설명하는게 더 와 닿았을것 같네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외 비평, 인터뷰, 추리 퀴즈 등은 점수를 주기 애매해서 생략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내용들도 아닙니다.

2024/06/15

살인의 쌍곡선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2.5점

살인의 쌍곡선 - 6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야카와 혼자서 운영하는 도호쿠의 외딴 호텔 '관설장'에 회사원인 예비 부부 교코와 가쓰로, 역시 회사원인 야베,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아야코, 범죄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이가라시, 택시 운전사 다지마가 초대되었다. 누군가 설상차를 망가트리고 전화선을 끊어서 고립된 상태에서, 야베를 시작으로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범행 현장에는 복수가 이루어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원에 사선을 그은 기묘한 부호가 그려진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하야카와, 교코, 아야코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운 좋게 전화가 연결되어 경찰과 취재 기자들이 곧바로 찾아왔지만, 관설장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으로 유명한, '여정 미스터리'의 거장 니시무라 교타로의 초기 장편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은 명성에 걸맞는 여정 미스터리, 기차 시간표 트릭이 활용되었었던 반면, 이 작품은 비교적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고립된 공간에서 한 명씩 차례대로 살해당한다는 점, 그 때마다 볼링핀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는 설정은 거의 똑같거든요.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쥬했다는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와 같은 질낮은 졸작은 아닙니다.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은 덕분입니다. 특히 '고립된 호텔에서 범인은 투숙객들을 전부 죽이고 어떻게 도망쳤는지?'에 대한 트릭이 일품이었습니다. 설명드리자면, 범인 하야카와 형제는 쌍둥이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호텔 지배인으로 변장하고 투숙객들을 살해했지요. 그리고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외부에 흘려 경찰과 기자들이 출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기자로, 처음에는 경찰과 다른 기자들과 함께 호텔로 달려왔지만 호텔 앞에서 은근슬쩍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남아있던 범인이 기자인 척 했던 겁니다. 지금 읽어도 그럴싸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앞서 작가가 '쌍둥이를 활용한 트릭을 사용했다'고 직접 밝히고, 본문에서도 쌍둥이 고시바 형제가 강도 행각을 벌이지만 경찰이 체포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호텔 연쇄 살인 사건과 겹쳐 진행시켜 트릭을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도 괜찮았습니다. 작가가 활용한 쌍둥이 트릭 이야기는 하야카와 형제 탈출 트릭이 아니라 고시바 형제 사건에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시바 형제의 강도 행각과 형제를 뒤쫓는 경찰과의 밀땅도 재미있었고요. 
참고로, 이 트릭은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에 사용되었던 트릭과 같습니다. 당시 모 드라마와 표절 시비가 있었던 듯 한데, 애초에 특별히 오리지널임을 내세울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이네요....

여기에 더해, 아야코가 범인임을 의심하게 만든 초대장 필적과 유서 - 초대장은 이가라시가 필적 감정을 한다며 모두에게 쓰게했고, 유서는 첫 날 일종의 내기 결과에 따른 자필 문장이었을 뿐 -를 확보한 방법, 다지마가 스키를 부쉈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 등도 괜찮았습니다. 아야코 범인설을 보도하여 하야카와가 기자를 사직하게 만든 결말-진짜 기자가 아닌 가짜였으니-까지 안배한건 보통 솜씨가 아니에요.

하지만 추리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호텔에 갇혀 살해당하는 피해자들의 심리가 그려지지 않아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교코는 약혼자가 눈 앞에서 살해당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각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제대로 그려져있지 못합니다. 깔끔하고 담백한건 좋지만, 이 작품은 너무 과했습니다.
범인 하야카와 형제가 이런 거창한 범행을 벌인 동기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만원 전철에서 쓰러진 어머니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는게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무려 6명(정확하게는 7명이지만요)을 살해할 정도의 동기인지는 설명해 주었어야 합니다. "상복의 랑데뷰"처럼요. "상복의 랑데뷰"는 짤막하게나마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알려주고, 그 뒤 이어지는 복수극 과정에서도 1인칭 심리 묘사를 삽입하여 복수와 범행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었지요. 이 작품도 그런 묘사가 반드시 나와 주었어야 했습니다.

고시바 형제가 벌인 강도 행각도 소소한 부분들은 억지스러웠습니다. 괜히 얼굴을 드러내고 범행을 저지를 필요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서 형제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게 밝혀졌으니까요. 쌍둥이라서 당장 체포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체포는 시간문제에 불과했습니다.
고시바 형제도 복수 대상이어서 강도짓을 제안하고 체포되게 만든다는 전개도 억지스러웠으며, 고시바 형제 사건에 휘말린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하야카와의 가면을 벗기는 마무리도 작위적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데없지만, 완성도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다른 졸작들에 비하면 눈이 부실 정도의 좋은 작품입니다. 명성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네요. 분량도 짧은 편이니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4/05/05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이장주 : 별점 2점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4점
이장주 지음/사람의무늬

제목 그대로 우리 역사 속 수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수학사 서적. 조선 이후 역사 속 유명 수학자를 소개하는 1부와 삼국시대부터 수학을 통해 이루어진 여러가지 성취를 알려주는 2부 구성입니다. 이를 통해 서양 중심의 수학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옛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는걸 알려줍니다.

1부는 세종대왕이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수학 서적을 펴내거나 수학 관련 활동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관 등 중인 계층이 수학을 공부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종이 공자의 말을 빌어 수학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학적인 사고가 위대한 사상과 발명의 큰 축이자 기초이니, 위대한 발명가가 수학자이기도 했다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이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구한말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시기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수학 교육과 보급에 노력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지요. 확실히 당대 조선 제일의 천재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나 봅니다.
2부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과 여러가지 문헌을 통해 우리 수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려주며, 문헌에 소개된 문제들을 현대적으로 풀어 소개해줍니다. 덕분에 함께 따라 푸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죠.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신라 포석정의 주사위 주령구에요. 6개의 사각형 면과 8개의 육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로, 굴려서 나온 벌칙을 따라 해야 한다는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두 종류 이상의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꼭짓점에 모인 면의 배치가 서로 같은 준정다면체'로 각 면의 넓이가 모두 동일하다고 합니다! 주사위는 모든 면의 확률이 공평해야 하지만, 애써 14개의 면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텐데 이를 적용한 주사위를 놀이기구로 썼다는건 신라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 겁니다. 지금도 이를 손으로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조선 시대 수학 서적을 통해, 당시에 어떻게 방정식과 제곱근을 푸는지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치에 맞게 풀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충실합니다. 청소년용 도서답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2부에서 문체가 들쭉날쭉한건 아쉬웠습니다. 3인칭으로 '소개'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1인칭으로 강의하듯 문체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거슬렸어요. 계속 출간되려면 교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역사 속 수학을 바라보기에는 내용 구성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신라 이야기 약간 외에는 전부 조선의 이야기라면 '우리 역사 속'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애매하잖아요? 그나마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역사 속 수학 소개보다는 수학 문제 풀이의 비중이 높아지고요.

그래도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3/16

전기인간의 공포 - 요미사카 유지 / 주자덕 : 별점 2.5점

전기인간의 공포 - 4점
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아카토리 미하루는 민속학 리포트를 위해 고향 토오미 시를 찾았다. 도시괴담 '전기인간'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모교인 나사카 초등학교에서 용무원으로 일했던 다케미네 노인의 도움으로 전쟁 전 방공호까지 둘러본 뒤, 전기인간 도시괴담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던 호텔에서 죽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미하루의 연하 섹스 파트너였던 고등학생 토오루는 홀로 사건 조사에 나섰다. 미하루가 남긴 리포트와 유품으로 토오미 시로 찾아간 그는 다케미네 노인까지 욕실에서 급사했다는걸 알아내었다 토오루는 노인의 집에서 열쇠를 훔쳐 방공호 안 잠겨진 방까지 침입했지만 4개월 뒤, 나사카 초등학교 6학년인 니라사와와 켄자키에 의해 방공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일련의 사건 뒤, 비디오 게임지 "프레스타"의 작가 사쿠마는 편집장의 부탁으로 전기인간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쓰기로 수락했다. 사쿠마는 후배 작가 요미사카 유지와 함께 토오미 시 방공호 수색에 나섰고, 그곳에서 요미사카 유지는 미하루, 다카미네, 토오루 사건에 대한 기상천외한 추리를 내 놓는데....


'전기인간'이라는 도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을 그린 작품.
괴담 자체에 대해 탐구하는 부분과 의외로 본격적인 추리를 펼치는 부분으로 나뉘는데 두 부분 모두 괜찮았습니다. 제목이 유치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괴담 탐구는 주로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펼쳐지는데, '전기인간' 괴담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속성들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괴이는 죽습니다. 육체를 가지지 않는 괴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괴이는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라는 이론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전기인간'은 실제로 있었고, '도시괴담'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도시괴담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게 진상이거든요. 이렇게 괴담 분석을 통해 사건의 동기를 밝혀내는건 추리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피해자들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국한된다는건 신선했습니다. 교수는 이 정도 이야기라면 전기인간은 당연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초에 기사를 가져왔던 선배 기자 루카와 역시 "만약 호러 분위기로 쓸 거라면 진짜로 자신이 무서워야 합니다. 쓰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호러는 형편없습니다. 그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말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규칙은 존중해야 합니다."라며 그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요. 그래서 두 명은 죽지 않았던 겁니다. 사쿠마는 딱히 믿지는 않지만, 전기인간이 실존한다는 기사를 써야 하니 살려두었고요. 피해자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건 경찰은 알 수 없고, 1인칭 심리 묘사를 읽은 독자만 알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소설 속 경찰보다 독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셈이니까요.

추리 부분도 정통 추리, 범죄 소설 느낌을 전해줍니다.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추리 소설가 요미사카 유지가 등장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세 명이 죽은 사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추리였습니다. 범인은 다카미네 노인으로 그는 구 일본군 관계자였습니다. 연구했던 전기 병기를 숨기고 있었고요. 그래서 비밀을 지키려고 조사에 나선 미하루를 살해했던 겁니다. 전기 병기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요. 호텔 방은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와서 미하루가 문을 열어주면 아무도 모르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자동 잠금 장치가 되어 있으니 살해 후에는 그냥 나가면 되고요. 미하루에게는 뭔가 알려줄게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들어가는데는 문제가 없었을테지요. 
이후 노인이 욕실에서 사망한건 진짜 사고였고, 그래서 토오루의 죽음 이후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겁니다. 범인이 죽어버렸으니까요. 토오루는 노인이 방공호의 잠긴 문에 숨겨 놓았던 전기 장치에 감전되어 죽었습니다. 문이 빡빡하게 잘 열리지 않아서 한 손은 손잡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은 문 틀에 대고 버티는 과정에서감전된 것이지요. 
이렇게 '전기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범행이 가능했다는걸 설명하는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말은 되니까요.

물론 증거가 하나도 없을 뿐더러, 토오루의 죽음에 대한 추리만큼은 확실히 비현실적입니다. 아무리 노인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라 하더라도, 사람을 감전시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유지되고 있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 경찰의 수사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하루의 죽음은 단순 변사로 처리하여 수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토오루의 죽음은 철저한 현장 조사가 수반되었을겁니다. 만약 장치가 있었다면 여기서 드러났어야 합니다.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던 "네 명의 의인"은 20세기 초엽이 무대로 그렇다쳐도, 현대 배경의 작품에서는 숨기기 어려웠을거에요.

어차피 이 추리는 작품 안에서도 단순한 아이디어 피력 정도로만 받아들여져서 별 문제는 없는데, 진짜 문제는 전기인간이 실제로 있다는 진상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전기인간을 볼 수 있는 초등학생 니라사와가 전기인간과 휴대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이 모든게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설명되는데 여러모로 별로였어요. 미궁에 빠진 괴사건에서 범인이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 범행을 고백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전개에 있어 정리도 다소 부족했습니다. 교수의 말은 반복적이고, 니라사와와 켄자키의 관계와 묘사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탓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년에 출간되었던 "전기인간"의 리커버 버젼인데, 리커버 버젼이 나올 정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2023/11/03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 / 아웃핏 - 다윈 쿡 / 임태현 : 별점 5점!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 - 10점
다윈 쿡 지음,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 글/시공사(만화)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아웃핏 - 10점
다윈 쿡 지음,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 글/시공사(만화)

"헌터"
범죄자 파커는 자신의 뒤통수를 친 동료 말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에 왔다. 파커는 추적 끝에 말을 죽인 뒤, 말의 조직 두목 브론슨에게 4만 5천달러를 요구했다. 말이 조직에 상납했던 돈으로 원래 파커의 몫이었다. 파커는 브론슨 조직원들의 추적을 뿌리치고 돈을 손에 넣은 뒤 동부로 항했다.

"아웃핏"
성형수술 후 마이애미에 머물던 파커는 브론슨이 아직도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걸 알고 복수를 결심했다. 동료들을 이용해 브론슨 조직의 사업장을 터는 것과 동시에, 파커 스스로 브론슨의 저택에 침입하여 그를 사살했다.

시공 그래픽 노블 레이블로 출간된 리처드 스타크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악당 파커 시리즈 만화. 제가 좋아하는 브루스 팀 그림체와 흡사한 작풍을 지닌 다윈 쿡이 작화를 맡았습니다.
이런 책이 출간된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통파 범죄 스릴러 느와르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내다니! 감탄만 나왔습니다. 거의 아무런 대사 없이 자신을 배신한 아내 린을 찾는 "헌터"의 초반 약 20여페이지부터 시작해서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읽었네요. 그냥 그림만 봐도 '느와르'라는 느낌을 팍팍 전해줍니다.
재미의 핵심인 파커 캐릭터 묘사도 출중합니다. 잔혹한 범죄자로 완력도 강하며 사람 죽이는걸 예사로 알지만, 범죄는 공들여 설계하고 실행하는 두뇌파이기도 한 양면적인 모습을 잘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직하고 어두운 심리 묘사도 좋았으며, 파커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전개 부분도 독특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과거와 현재, 다른 시점과 상황을 화풍으로 구분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요.

범죄 계획들에 대한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특히 "아웃핏"에서 브론슨 사업장 털이 작전이 대박이었어요. 비밀 도박장, 사설 경마, 마약 밀매, 소액 도박 등 다양한 사업장을 여러가지 작전으로 터는 과정을 상세하면서도 상황별로 모두 다른 그림체와 편집을 통해 일종의 잡지 기사처럼 구성하여 보여주는데 재미도 있고, 작화와 디자인 모두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등장하는 파커의 범죄 계획은 모두 잘 짜여져 있다는 점에서 피카레스크 범죄극의 달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진면목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보다가 알았는데, 범죄극은 확실히 이미지가 있는게 더 낫더군요. 이해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걸작이라고 해도 무방한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5점입니다. 후속권도 읽고 싶은데 절판 상태네요. 어떻게든 구해봐야겠습니다.

2023/05/04

프리즌 트릭 - 엔도 다케후미 / 김소영 : 별점 1.5점

프리즌 트릭 - 4점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수형자 미야자키가 사라지고, 창고에서 약품으로 얼굴과 손가락이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건 초기에는 미야자키가 수형자 이시즈카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벽에 붙은 메모 등의 단서 탓이었다. 그러나 다케다 관리관을 비롯한 여러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미야자키였고, 도주한 이시즈카는 다른 누군가가 신원을 도용한 가짜였다는게 밝혀졌다.
그 뒤 교도관 노다, 아즈미노 시장이 차례로 살해되고 나서야 가짜 이시즈카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미야자키가 음주운전으로 죽게 했던 료코의 남편 무라카미 고스케였다. 무라카미는 독자적인 수사를 이어가던 보험회사 직원 시게노가 경찰의 실수로 총상을 입은 사건 뒤, 수기를 보내 사건의 진상을 공개했다. 그는 복수를 위해 미야자키를 죽였고, 여기에는 친구 도다 가즈요시의 도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가장 큰 특징은 현대의 교도소라는 폐쇄 공간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그려냈다는 겁니다. '수형자 (죄수) 중 한 명이 살해당한채 발견되고, 한 명이 사라졌다. 사라진 수형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라진 수형자가 빠져나간 통로는 있는데, 살해된 수형자가 범행 현장까지 오는 통로는 막혀있었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상황에 비한다면, 트릭은 그닥입니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트릭의 핵심은 '바꿔치기'입니다. 도다 가즈요시가 교도소에 잠입한 후 무라카미와 미야자키에게 창고에서 잡무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고위 교도관으로 변장해서요. 그리고 둘은 창고에서 미야자키를 살해했습니다. 일단 시체를 숨긴 뒤, 도다는 미야자키로 변장해서 점검에 임했습니다. 미야자키가 방을 옮기는 '전방일' 이라서 다른 수형자들은 미야자키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걸 몰랐기에 저녁 점검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요. 그 뒤 도다와 무라카미는 각자 자력으로 탈옥했습니다. 이 때 무라카미가 미야자키가 탈옥할 때 빠져나왔을만한 통로를 뚫어 놓았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해서 앞서의 불가능 범죄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외부에서의 침입과 탈옥이 쉬운 공간이라는게 핵심입니다. 곧 있으면 풀려날 경범죄자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정이죠. 하지만 이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교도소를 이런 장소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교도소'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는, 독특한 장소가 무대였기에 가능했던 트릭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습니다.
범행이 범인 무라카미 1인칭으로 묘사된 것도 공정하지 못합니다. 무라카미는 미야자키를 교도관으로 변장한 도다와 함께 살해했습니다. 도다가 미야자키와 변장했고요. 그런데 그런 설명없이 무라카미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함께 작업을 끝내고 나온 것으로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피해자가 방을 이동하는 전방일을 범행의 D-Day로 잡았다는건 꽤 비중있게 설명되고,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작업 후 토할것 같았다는 묘사 -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 - 는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아울러 검시에 따른 사망 추정 시간 폭이 넓었던 것도 불가능 범죄로 보이는데 일조했는데 (명확하게 저녁 점검 전 살해당한게 드러났더라면 트릭은 더 빨리 간파되었을테니), 바로 발견된 사체의 검시 결과가 이렇게 편차가 심할 수 있을까요? 별다른 외부 요인 (예를 들어 불에 태운다던가)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과학 수사를 너무 얕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교도소에서 범행을 저지른 이유부터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작 중에서도 '미야자키가 몇 년 씩이나 교도소에서 썩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교도소에서 죽일 이유는 없다'고 언급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이유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무라카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완전범죄롤 노릴 수도 없었습니다. 피해자 미야자키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수감된 수형자였으니, 상식적으로 피해자의 친인척, 지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잖아요? 도주한 수형자 - 가짜 이시즈카 - 가 범인일텐데, 그 수형자는 누군가가 신분을 도용한 가짜였으니 수형자 얼굴을 미야자키가 일으켰던 사고 피해자 주변인물과 대조해보면 됩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던 무라카미가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트릭을 사용할 이유도 많이 부족해집니다. 저녁 점검을 넘긴 뒤 밤에 몰래 탈옥하기 위한 목적 정도? 그런데 묘사된걸 보면 탈옥은 너무나 쉽습니다. 이럴바에야 밤에 몰래 미야자키를 죽이고 달아나는 것과 다를게 없어요. 구태여 도다가 참여할 이유도 없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목적? 도망친 수형자가 범인인게 뻔한데 알리바이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면서 범행을 기다린 필요도 없었습니다. 백주대낮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으니까요.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행을 결심한 무라카미의 조력자 도다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는 마지막 반전도 뜬금없습니다. 완벽한걸 부수는데 쾌감을 느끼는 정신병자라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 무라카미의 아내를 죽였다는 설정은 뭐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도다는 왜 무라카미의 범행 - 복수 - 을 도왔을까요? 범인이 자기라는걸 모르는건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무라카미를 그대로 놔 두면 이 사실이 어떻게든 폭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를 죽이는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입니다. 이런 복잡한 범행을 저질러가며 본인 스스로도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이유는 없어요. 범행에 사용했던 독물 브론 화합물로 무라카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도 쉬웠을겁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트릭이 사용되었으니 나름 점수를 줄 수는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전개입니다. 일단, 시점 변화와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잘 정리하지 못하고 이야기에 녹여내지도 못합니다. 대부분 쓸데없는 에피소드로 느껴집니다. 전직 기자였던 도이 화재 직원 시게노 다카유키가 신문기자 아사이 유리를 만난 뒤 미야자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한다던가, 시게노가 과거 기자시절 다카하시 의원의 비리를 폭로해서 다카하시 의원의 큰 딸이 자살했다던가, 다케다 관리관의 아이가 PTSD를 앓고 있다던가 등등은 모두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화룡점정은 음주운전으로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던 수형자 나카지마 이야기입니다. 정말 아무런! 쓸모도! 관계도! 없었던 이야기거든요. 음주운전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어 사회파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 의도였던 것 같은데 너무 과했습니다. 없으니만 못했어요.
시게노가 다카하시 의원 비리를 폭로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아즈미 토마토 팜 취재는 무라카미 료코 사건과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이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건 전혀 없습니다. 시게노가 사건과 얽힌것도 우연이고요. 게다가 시게노가 시장 살인 사건의 누명을 뒤집어 쓴 뒤, 홀로 조사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는다는건 너무 억지라서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작가도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란포상 수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졸작입니다.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22/10/30

외침과 기도 - 시자키 유 / 김은모 : 별점 2.5점

외침과 기도 - 6점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북홀릭(bookholic)

7개 국어에 능통한 사이키가 해외 동향을 분석하는 잡지사에서 일하며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로 구성된 연작 단편집. 시자키 유의 데뷰작으로 근래 찾아보았던 추리소설 랭킹에서 추천하길래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몰랐었는데, 작품이 발표되었던 2010년에 이런저런 상 - '주간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2위, 201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2위 등 - 을 휩쓸었군요.

읽어보니 과연!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독특함도 잘 살아있고 완성도도 높습니다. 특히 이국에 대한 서정적인 묘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굉장히 고급진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추리적으로는 편차가 있는 편이라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몇몇 작품 (개인적으로는 <<얼어붙은 루시>>)의 수준은 높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각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막을 달리는 뱃길>>
사이키는 사하라 사막 한 복판에서 소금을 채굴하는 대상 일행에 합류했다가 일행이 하나씩 살해당하는 사건에 휘말렸다. 사막에서 소금길을 나아갈 뿐인, 몇 안되는 일행을 살해할 이유는 무엇일까?

사이키의 모험과 여행, 그리고 삶에 대해서모험 소설과 추리 소설을 결합한 형태로 풀어주는 작품.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동기 측면에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대장이 급작스럽게 사고로 죽은 뒤, 달랑 세 명 - 사이키까지는 네 명 - 밖에 없는 일행을 죽일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금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였다면 차례로 죽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첫 범행인 켄부를 죽일 때 다 죽이면 됐으니까요. 만약 대장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서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범인을 지목하고 일행의 동의를 얻어 처단하는게 깔끔했습니다. 모두가 공범이었을 수는 있지만, 그랬다면 마찬가지로 한 번에 다 죽이는게 합당했고요. 그렇다고 완전 범죄를 노리기에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 범인인게 뻔하니 그것도 아니고.....
그런데 여기서 '사막의 대상' 이라는 환경에 꼭 들어맞는 타당한 이유가 등장합니다. 죽은 대장만이 사막에 난 길의 경로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범인 바르보예는 자기가 모르는 소금 채굴 마을로 향하는 길의 이정표를 만들기 위해서 일행들을 죽였고요. 시차를 두고 차례대로 죽였던건, 시체를 죽은 자리에 두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바르보예는 전체 길의 일부만 모른다는게 앞서 소개되는 등,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대장이 아꼈던 어린 낙타 메챠보가 모든 길을 알고 있었다는 반전도 깔끔했어요.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막과 대상 일행에 대한 묘사도 빼어나고요.

사이키가 왜 대상 일행에 합류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애매했고, 사이키가 메챠보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조금 작위적이었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08년,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5회 미스터리즈! 신인상'을 수상했던 이력이 이해가 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덧붙이자면, GPS를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낡은 소재일 수는 있겠습니다.

<<하얀 거인>>
사쿠라는 대학 친구 사이키, 요스케와 함께 1년 전 연인과 이별했던 마드리드 근처 레엔쿠엔트로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게되었다. 1년 전, 연인 아야코는 마을의 하얀 풍차 안에 들어간 뒤 사라져 버렸었다....

사쿠라는 풍차 주인이 아야코를 살해하고, 풍차의 돌절구를 이용하여 그녀를 분해(!)했다고 추리하지만 진상은 그냥 아야코가 사쿠라 눈 앞에서 떠났던게 전부입니다. 온통 하얀 옷, 그리고 모자까지 하얀 색이었던 탓에 사쿠라는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요. 풍차가 하얀색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솔직히 트릭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다.
'사쿠라'는 별명으로, 화자의 정체는 스페인인 세레소였다는 서술 트릭 역시 그렇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습니다. 일단 정보가 부족하며, 사쿠라의 정체가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탓입니다. 딱히 반전이라고 볼 수도 없었고요.

이야기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아야코의 귀국은 레엔쿠엔트로 마을에서 급작스럽게 결정된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가 세레소에게 호감이 있었다면, 당연히 사유와 연락처를 진작에 알려줬을거에요. 눈 앞에서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의도였다는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이 작품에서처럼 세월이 지난 뒤 다른 유학생들을 통해 찾는다는건, 다른 목적이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적으로도 그닥일 뿐더러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고 공감하기 어려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얼어붙은 루시>>
사이키는 러시아 정교회의 우라디미르 사제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수도원에 방문했다. 죽은지 250년이 지났지만, 썩지 않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리자베타 수녀의 성인 인정 절차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확인한 유해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우라디미르 사제가 사흘 동안 유해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한 부탁을 수도원장에게 허락받은 뒤, 사이키는 '성인'이라는게 무엇인지 수도원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일반적인 3인칭 시점과 리자베타 수녀를 신성시하는 스코냐 수녀 시점을 오가는 전개는 복잡하기만 할 뿐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스코냐가 수도원장을 살해했다는걸 추리할 수 있도록 잘 짜여진 구성이더군요. 읽으면서 실로 감탄했습니다. 스코냐가 수도원장, 우라디미르 사제와 사이키간 대화를 어딘가에 숨어서 듣는 묘사는, 이후 스코냐가 사이키에게 실수로 그 사실을 드러낸 뒤 스코냐가 리자베타 수녀의 유해인 척 했다는 사이키의 추리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는 숨을데가 없었거든요.
수도원장이 기도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살해당했고, 스코냐가 리자베타 수녀의 유해인 척 수도원장의 유해를 관에 넣어 두었다는 추리도 기가 막혔습니다.

이 사건이 스코냐 수녀의 그릇된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 합니다. 스코냐 수녀가 수도원장을 살해한건, 시성 (성인인증)을 받기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수도원장은 앞서 시성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단지 성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성을 요청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수도원장은 '살아있는 성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앙심이 깊어서, 리자베타 수녀의 유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는 추리는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에 사이키가 스코냐에게 물었던, '그렇다면 리자베타 수녀의 유해는 그럼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답도 인상적이었어요. 리자베타 수녀는 부활했기 때문에 유해가 사라졌다는데.... 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가지 이해가 안되었던건, 수도원장은 시성을 위해 스코냐가 리자베타의 유해 대역을 소화하는걸 묵인했던게 분명합니다. 이는 시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수도원장의 말과는 배치됩니다. 스코냐가 우리디미르 사제와 사이키가 조사를 나왔을 때 급작스럽게 대역을 소화했다는 묘사도 없고요. 다른 수녀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입을 다문건지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이야기였다는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했고요.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외침>>
사이키는 의료 봉사를 하는 영국인 의사 애슐리 카슨과 함께 아마존 오지의 데뮤니 촌락으로 향했다. 잡지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을은 에볼라 바이러스와 비슷한 전염병으로 거의 절멸의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살아있는 사람 중 감염되지 않은건 장로, 전사 아리밀리, 통역 역할을 하는 다니 정도였다. 그러나 외부로 도움을 청하려다 실패하고 돌아온 사이키는 그나마의 생존자들도 누군가 살해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누가 곧 죽을 사람들을 일부러 살해했을까?

아마존 오지에서의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에 대한 묘사는 빼어나며, 사이키와 애슐리가 서로가 범인이라며 펼치는 추리 대결이 특히 볼만했던 작품입니다. 에볼라는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니 편하게 죽게 도와주었을거다, 그들은 보균자가 될 수 있으니 화를 없애기 위해 먼저 제거했을거라는 동기에 대한 각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사이키가 챙겼던 비옷 등 앞서 소개되었던 정보를 토대로 펼치는 추리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정작 진상은 황당했습니다. 범인은 전사 아리밀리였어요. 동기는 데무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다는건 굉장히 중요했고, 데무니 마을만이 유일한 세계였기에 마지막 생존자는 세계의 마지막 역사에 남는, 최고의 영예라는 원주민의 세계관 때문이었고요. 이는 다니 등 다른 원주민들의 언행을 통해 살짝 드러나기는 하나, 추리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일반 상식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다른 세계관으로 동기를 해석해야 한다면, 반칙인 셈이라 추리 소설로는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기도>>
찾아가기도 힘든 밀림 속, 높이 10m되는 바위산에 천연 동굴을 파 낸 '고아.도아', 우리말로 '기도의 동굴' 이라는 곳이 있다. 동굴 안 쪽 벽에는 모두 이런저런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뒷 쪽 출구는 바다로 인접한 낭떠러지에 위치했다. 이런 동굴이 '기도의 동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나'는 친구 모리노가 낸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런 저런 조사에 나서는데...

동굴은 감옥이었다는게 '나'의 답이었습니다. 고위층을 유배했고, 그들을 출구를 통해 자살하게끔 유도했다, 동굴 안 조각들은 그들이 새긴 절망과 저주였다는겁니다.
그러나 '나'가 동티모르에서 폭동에 휩싸인 뒤, 측두엽성 기억상실에 빠진 사이키라는게 밝혀지고, 이 답은 사이키 자신의 처지를 빗댄거라는게 드러납니다. 사이키가 멀쩡했을 때, 그는 동굴은 말 그대로 기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었거든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 배의 무사 귀환을 바라기 위한 장소로 바다가 보이는 출구를 만들었고, 동굴 안에 이런저런 기도 목적의 그림을 새겼다고 추리했었으니까요.
정답은 없지만 이러한 '기도의 동굴' 명칭에 대한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현재 사이키 상태와 연결되어 다른 답이 나온다는 구성도 좋았고요.

그런데 기억상실 설정은 다소 뜬금없는 편입니다. 전체 단편집 맥락과 잘 맞지도 않았고요. 다른 단편들은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의 사건으로 삶과 생존, 인생과 사랑 등에 대해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지만, 이 이야기는 여행과는 무관하며, 내용도 자아성찰에 가까운 탓입니다. 차라리 여행지에서 물리적인 감금 상태에 놓였다고 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설정에서 빚어지는 다소 모호한 1인칭 시점 묘사도 그닥이었고요.
책 소개를 보니 '세계 속에 넘치는 이야기들, 그 신비하면서도 미스터리한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바람은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전체 에피소드를 하나로 아우르는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데 무슨 말인지 당쵀 모르겠네요.

하여튼, 별점은 2.5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치고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2022/01/28

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3점

노조키메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괴이 현상의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을 수집하던 미쓰다 신조는 '노조키메'라는 괴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후, 우연히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오래전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던 노트를 입수했다. 그리고 노트 속 내용이 이미 수집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고 이름 붙였던 괴담과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 일어났던 일이라는걸 깨달았다.

두 편의 이야기를 묶어 "종말 저택의 흉사"라고 이름 붙이고 발표한 후, 미쓰다 신조는 괴이 현상에 나름의 추리를 덧붙이는데....

미쓰다 신조호러 추리물입니다. 

미쓰다 신조가 입수한 두 개의 괴담을 엮어 선보이고, 괴담에 대한 진상을 추리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은 "괴담의 테이프"와 유사합니다.

첫 번째 괴담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이야기를 전해 준 시게루의 대학생 시절 체험담입니다. 당시 시게루는 사이코, 카즈요, 유타로와 함께 여름 방학 동안 산골 마을 별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관리인이었던 미노베는 절대 가면 안되는 산책길이 있고, 순례자가 나타나면 자기에게 꼭 알리라는 당부와 경고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례자 모녀를 만나서 산길을 걸었다는 카즈요의 제안으로 네 명은 가면 안되는 길을 걷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언가에 씌워졌고요.

미쓰다 신조 특유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폐허가 된 마을 묘사, 그리고 이 곳에서 '괴이'에 씌워진 뒤 모든 틈새에서 시선을 느끼게 되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합니다. 방 안에 처박혀 모든 틈새를 막고, 눈까지 막아버린 카즈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귀가한 뒤, 찬장 안에서 시선을 느끼고 그 문을 열자 비좁은 찬장 안에 몸을 웅크려 시게루를 응시하고 있던 이와노보리 카즈요의 모습을 봤다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쳐다보는 느낌'을 이만큼 글로 잘 표현한 작품은 또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유타로와 사이코는 지나치게 씌워졌던 탓에 죽고, 영험한 기도사의 기도로 시게루와 카즈요는 살아남았다는 결말은 설명이 부족하고 급작스러웠습니다. 물론 괴담은 이렇게 설명이 부족한게 더 현실적이기는 하겠지요. 미쓰다 신조 스스로가 작 중에서 괴담과 기담에 완결을 원하는건 뭘 모르는 행동이며, 오히려 이야기 도중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게 더 무섭다고도 하니까요. 카즈요가 시게루를 몰래 엿보는 버릇이 생겨 둘의 관계가 끝장났다는 후일담도 오싹하기는 했던만큼, 이 정도면 괜찮은 호러, 괴담 단편으로는 충분했던 수작이었다 생각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 저택의 흉사"는 전편 괴담의 프리퀄입니다. 이 작품에서 폐허가 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엿보는 괴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 아이자와 소이치가 비명횡사해 버린 친우 사야오토시 소이치의 고향 마을 토노무라에 명복을 빈다는 핑계로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야오토시 가문은 마을에서 배척받는 존재였고, 그 이유는 조상 중 한 명이 순례자 모녀를 참살했던 뒤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문은 저주를 풀기 위해, 원령에 씌워지는 '시즈메'라는 역할을 하는 소녀를 데려오기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시즈메들도 역할을 하다가 미쳐버려 여러 사건을 일으켰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역할을 할 소녀가 없어서 이미 4년 전에 명맥이 끊겼습니다.
마침 아이자와 소이치가 도착했을 때 사야오토시 가문은 할머니 코노에의 죽음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를 엿본 소이치 앞에, 사야오토시 가족을 엿보는 꼬마 여자 아이가 소이치에게만 보이는 등 여러가지 괴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야오토시 가문 당주 기이치, 아내 노리코, 조린 주지, 그리고 그 외 사야오토시 일족 모두가 차례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이치는 홀로 살아남아 원래 참살당했던 모녀 공양 목적의 순령당 옆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사당 문을 열어본 뒤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재미, 공포보다는 지루함을 더 많이 느낀 작품입니다. 전편 괴담은 분량도 짧고, 일행의 모험(?)과 공포 체험이 1회성에 그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토노무라 마을에서 겪는 괴이 체험이 계속 1인칭 시점으로 반복되는 탓에 금새 식상해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괴이 체험도 실체가 있는 공포라기 보다는 착각과 기분 탓에 불과한게 많아서 섬찟함을 전해주기는 부족했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쏘아보는 시선을 느꼈다"는건, 솔직히 이런 시골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가면 누구나 겪을 당연한 경험이잖아요? 

묘사도 너무 장황합니다. 소이치가 직접 '노트'에 적었다는 일종의 수기가 이렇게 길고 상세한 묘사로 쓰여졌을리 없다는 점에서는 현실성도 떨어지고요. 더 큰 문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지나칠 정도로 민폐를 끼치고 다녀서 영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고뭉치에요. 이를 호기심, 용기라고 포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 체험은 모두 본인 탓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고, 그만큼 캐릭터가 비호감이라 몰입하기도 힘들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대학생 호러물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철부지 대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달까요? 문제는 대학생 호러물에서는 이 철부지들은 초반에 끔살당해 나름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혼자 살아남는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고구마스러운 답답함은 다행히 마지막 종장에서 해결됩니다. 미쓰다 신조가 부조리한 존재인 '노조키메'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석한, 나름대로 시원한 동치미스러운 결과를 내어 놓는 덕분입니다. 이 결과를 내 놓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물과 다를게 없고, 심지어 그가 수기에서 숨겨져 있는, 알아내야 하는 항목 8개를 목록으로 소개하는 부분은 '독자에의 도전'과 유사합니다!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이자와와 대화 중 사야오토시가 '어떤 사람이 조린 주지라고 이야기하는걸 주저한 이유
  2. 조린 주지에게 환대받으면서도 아이자와는 그가 자기를 쫓아내고 싶어한다고 느꼈던 이유
  3. 사야오토시 가에 시즈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노조키메가 나타나서 앙화가 내린다는걸 알면서도 4년간 방치한 이유
  4. 열 살 무렵의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자기 아이 쇼이치를 겹쳐보고 토키코가 어두운 얼굴을 한 이유
  5. 순령당에 신찬을 바치는 역할이 노리코가 아니라 토키코에게 인계된 이유
  6. 토키코가 맡은 일을 할 때 무섭고 괴롭다고 한 이유
  7. 노조키메가 된 순례자 모녀 공양 목적으로 세워진게 순령당인데, 그렇다면 순령당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옆에 사당이 새로 지어진 이유와 사당에 모셔진게 무엇인지?
  8. 사야오토시가의 종말 저택이 지사이 저택이라고도 불린 이유

독자도 똑같은 수기를 읽었으니, 정보 제공도 공정하다는 점에서 완벽한 본격 추리물인 셈이지요. 괴담, 호러와 본격 추리의 조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추리는, 사야오토시 가에서는 시즈메 대신에 '지사이'를 이용했다는 겁니다. 4년 전 순례자 모녀가 찾아왔을 때 딸은 시즈메 역할에 부적합했지만, 주술에 정통했던 조린 주지가 딸을 '지사이', 즉 액맞이 역할로 삼은 것이지요. 딸은 병약한 모친을 순령당에서 모시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고, 순령당 옆에 새로 세운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이 주술을 강화하기 위해 조린 주지는 의식주를 챙겨주는 것 외에, 소녀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도록 했었고요.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가 죽고 말자 사야오토시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척 꾸몄습니다. 처음에는 연기에 능했던 코노에가 어머니 역할을 맡았고, 코노에가 증손자의 사고사로 몸져 누운 뒤로는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토키코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소녀가 사야오토시 가문을 멸족시켰고, 손님이었던 아이자와만 살려준게 진상이었습니다. 

이 추리는 모두 합리적이며, 덕분에 여러가지 괴현상들도 모두 설명 가능해집니다. 소녀가 아이자와 눈에만 보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척 했기 때문입니다. 코노에 화장 시 시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였던건, 아래 쪽에 죽은 순례자 모친을 함께 화장했기 때문이고요. 사고가 일어날 수 없었던 벌목 현장에서 기이치가 사고로 죽었던건, 소녀가 마을 지리와 상황에 정통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표지가 스포일러인 셈이군요.... 

아울러 코노에 할머니가 과거 극단 출신으로 연기에 능했다는 등의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단서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등, 한 편의 잘 짜인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습니다. 아이자와의 부인이 이 소녀였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괴담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비록 지루했지만 종장에서의 놀라운 추리가 단점을 상쇄해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