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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0

메이지 단두대(明治斷頭台) - 야마다 후타로 : 별점 3점

明治斷頭台 山田風太郞ベストコレクション (角川文庫) (文庫) - 6점
山田 風太郞/角川書店(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

아래 리뷰에는 트릭,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이지 단두대"는 일본 소설가 야마다 후타로가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쓴 단편집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메이지 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탐구합니다.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에서 당당히 1위로 선정되었기에 계속 궁금했던 작품인데, 이번 기회에 원서를 ChatGPT의 도움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호평에 걸맞는 장점들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장점은 실존 인물과 메이지 시대 풍광을 활용한 팩션적 재미입니다. 츠키지 호텔관, 에이타이바시 다리, 코덴마초 감옥 등 메이지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사건 속 배경으로 등장하고, 사회적 변화와 증기선같은 기술 발전이 트릭의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역 중 한 명으로 근대 경찰의 아버지 카와지 토시요시가 등장하고, 그 외에도 사이고 다카모리라던가 '마지막 사무라이' 키리노 토시아키, 일본 육군 창설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현실감과 역사적 몰입감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공의 이야기와 결합해 당시 시대적 풍광을 생생히 재현하며, 작품의 팩션적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두 번째 장점은 추리적 재미와 정교한 트릭의 사용입니다. "괴담 츠키지 호텔관"에서는 일본도 양 끝에 게다를 고정시키고, 게다 굽을 나선형 계단 난간에 걸쳐 위에서 미끄러트린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범인 나카사카 큐우치는 이를 이용해 자신은 옥상 전망대에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피해자를 공격해 살해했지요.
"미국에서 보내는 사랑"에서 범인은 인력거를 혼자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진상은 인력거 두 대를 묶어서 일종의 4륜 차량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이를 언덕 위에서 밀어서 굴러내려가게 한건데, 굉장히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다만 라소츠(나졸)들의 위증(?)과 마지막 현장에서 인력거가 묶여 있지 않았던 점(얇은 끈으로 묶여 풀렸다?) 등이 애매했던 점인데, 이는 라소츠들이 진범의 도우미였다는 마지막 단편을 통해 잘 설명되고요.
"에이타이바시의 교수형"에서는 밧줄과 배의 움직임을 이용해 자살로 위장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범인 테라니시 진주로는 피해자를 강 위 증기선으로 유괴한 뒤, 미리 에이타이바시에 설치해 두었던 밧줄 고리에 목을 밀어넣고, 반대쪽 끝을 자신이 잡아당겨 자살처럼 보이게 위장했습니다. 증기선을 타고 있어서 당시 상식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도 만들 수 있었고요. 앞서 설명드렸던 사회적 변화와 기술적 발전이 사용된 멋진 트릭입니다.
"자신의 목을 안고 있는 시체"에서는 범인이 아리사카 이헤이를 살해한 뒤, 그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몸과 처형된 죄수의 목을 붙여 위장한 사건입니다. 핵심은 '어떻게 죄수의 목을 빼돌렸는지?'인데, 이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라소츠의 속임수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앞서 모든 작품에서 라소츠가 한 몫했다는 걸 결정적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장점은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마지막 단편 "정의로운 정부는 존재할 수 있는가"에서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가 모든 사건의 흑막이었다'는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는 덕분입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악인들을 처단하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라소츠들의 협력을 얻었던 겁니다. 사실 사건 대부분에서 라소츠들의 부정부패와 속임수가 바탕이 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했는데, 알고 보니 과거 무사였던 라소츠들은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의 이상에 공감하며 범죄에 협력했고, 케이시로는 이들의 범죄를 묵인하며 자신의 계획을 이어갔던 것이었지요. 모든 걸 밝힌 케이시로가 스스로 단두대를 사용해 자살하는 장면도 충격적이며, 정의와 권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전해줍니다. 이후 체포하는 척했던 라소츠들이 에스메랄다를 탈옥시키며 막을 내리는데, 이 역시 괜찮은 결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작품의 배경인 일본 메이지 시대는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츠마와 조슈번의 갈등과 같은 역사적 맥락이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추리 소설로 기대했는데, 실제로 트릭이 활용된 본격 추리 단편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 "탄정대 대순찰"은 케이시로와 라소츠들, 탄정대와 단두대의 배경 설명에 치중되어 있고, 이어지는 "무녀 에스메랄다"는 에스메랄다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이거든요. 마지막 "정당한 정부는 가능한가"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는 자백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 추리보다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고요. 따라서 본격적인 추리 요소는 부족한 편입니다.

케이시로가 정의를 추구하며 폭주하는 이유, 라소츠들이 케이시로에게 충성을 바치며 목숨까지 거는 이유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합니다. 이는 작품 전체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소소한 악행을 저지르는 평균 이하 범죄자들인 라소츠들의 심경 변화가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필요했어요. 반대로 에스메랄다가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 상송 가문의 후예로, 일본에서는 '무녀'로 활약한다는 설정은 너무 과했고요. 만화적이라서 영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 팩션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바실리스크"같은 닌자 액션물(?) 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작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2024/09/14

가연물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가연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리드비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가쓰라 경부를 주인공으로 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추리 소설 동호회인 하우 미스터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가 최초의 경찰 수사 본격 추리물인데, 손대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뽑아냈던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치고는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경부 캐릭터도 진부한 스테레오 타입이고요. 
하지만 "목숨빚"만큼은 빼어납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낭떠러지 밑"
눈밭에서 조난당한 두 사람 중 한 명이 목을 무언가에 찔려 살해당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심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끝이 날카로운 말뚝 같은 걸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는 감식 결과를 보았을 때에는 흉기가 고드름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면, 낭떠러지에서 고드름이 떨어져 운 나쁜 피해자 목에 꽂힌 사고일거라 여겼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렇게 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목에 혈액이 응고되는 반응이 있었다는 감식 결과를 토대로, 이는 다른 사람의 혈액이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니 범인 미즈노의 혈액이 포함된(?) 흉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즉, 흉기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에 부상당해 튀어나온 미즈노의 팔 뼈였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흉기는 신선한 편이고, 이에 이르는 추리와 단서 제공 모두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경찰 수사물'에 잘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흉기가 뭐든 범인은 미즈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소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기 - '고드름'이 흉기였다고 주장해도 될테지요 - 때문입니다. 수사가 아니라 '추리'에 방점을 둔 느낌입니다.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라도 처음 시도하는 경찰 시도물이라서 다소 혼선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흉기 트릭도 신선하지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 아니면 실현 불가능했을 방법이니까요. 아울러 수사 기계같은 냉정한 가쓰라 경부의 묘사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다른 작품들 속 냉정한 수사 반장들 - 대표적으로는 "제 3의 시효" - 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탓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요?

여러모로 평범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졸음"
유력한 강도 치상 사건 용의자 다구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경찰은 다구마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교차로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이 다구마의 신호위반일 경우, 체포 영장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새벽 3시 일어난 다구마의 교통사고를 무려 네 명이나 목격했고, 그들은 모두 다구마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쓰라 경부는 다구마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즉 신호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처음에는 다구마가 교통사고를 빙자하여, 상대방 미즈우라와 신분을 바꿔 도망쳤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황당하면서도 뻔한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거짓 증언 부수기' 설정의 작품으로, 피해자나 가해자와 전혀 관계없는 목격자들이 우연히 똑같은 거짓 증언을 하게 된 과정의 설득력이 높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성실한 근무 태도로 언제 해고될지 모를 교통 정리원과 편의점 직원이 하필 사고 시점에 졸고 있었기 때문에, 의기투합해서 졸았다는걸 숨기려고 거짓 증언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전개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가쓰라 경부의 확신 - 네 명 모두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 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누가 봐도 다구마는 바로 체포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아니, 경찰 수사를 위해서는 증언이 없었더라도 체포 영장을 청구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난 사건의 목격 증인이 네 명이나 되고, 이들의 증언이 일치해서 불신을 품었다? 말도 안됩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또 응급실 의사와 게임 클랜의 리더인 대학생도 졸아서 위증에 동참했다는건 과했습니다. 이 둘은 빼고 교통 정리원 가마타와 편의점 직원 고가가 입을 맞추었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깔끔했을 거예요. 의사와 대학생은 사고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뿐더러, 거짓 증언에 똑같이 동참할만한 접점도 마땅치 않으니까요.

이런 단점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목숨 빚"
유명 관광지에서 절단된 사람의 팔이 발견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나머지 사체 부위들도 발견했다. 피해자의 신원은 노스에 하루요시로 밝혀졌다. 곧 피해자가 오래 전에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미아타무라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미야타무라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아타무라의 흉기에 대한 증언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가쓰라 경부는 납득하지 못하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명확한 상황에서 가쓰라 경부가 의문을 품는 과정의 설득력은 약합니다. 특히 '사체를 절단하는 커다란 수고에 비하면 사소한, 치아를 뽑거나 부숴서 신원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고 하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사체 전달은 옮기기 편해서라는 이유가 더 클 테니까요. 유명 관광지에 사체를 흩뿌린게 이상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했다거나, 길을 잘 몰라 실수하는 등 이유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범인이 확실하다면 수상하다고 생각할 까닭이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빚과 노모의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하루요시가 자살한 뒤, 이를 살인으로 위장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긴 미야타무라가 현장을 조작했다는게 충격적인 진상이 모든 문제를 덮어줍니다. 우리도 직면한 문제인 '부양하기 힘든 고령 인구의 증가, 중년의 노후 보장 없는 은퇴, 취직도 못하는 삼포세대 젊은이'라는 3대에 걸친 사회 현상을 정면으로, 그것도 제대로 된 추리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파 본격 추리 수사물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리고 앞서 억지스럽다고는 했지만, 가쓰라 경부가 수상하다고 여긴 상황들이 진상에 딱 들어맞는건 추리물다와서 좋았어요.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의 사체를 버린 이유는 빨리 발견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확인되어야 보험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사체의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 흉기에 대한 거짓말도 같은 이유입니다. 미야타무라는 '노스에 하루요시를 살해했다'는게 진실로 여겨지기를 바랬으니 이렇게 주장할 수 밖에요.
사체를 토막낸 이유가 하루요시의 사체에서 '목을 맨 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트릭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다만, 독자에게 하루요시 사체 중 목의 중간부 일부가 사라졌다라는걸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은건 조금 아쉬웠지만요.

그래도 여러모로 볼만했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연물"
월요일 심야부터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여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잠복수사 결과 몇 명의 용의자가 떠올랐지만, 잠복근무 시작 후 방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자 잠복 중인 형사가 범인에게 들킨 거 아니냐고 상관이 가쓰라 경부를 질책했다. 그러나 가쓰라 경부는 범인이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를 내놓았고, 어떤 목적으로 방화를 저질렀는지 동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인 오노하라가 버린 쓰레기에서 착화에 쓰인 잡지가 발견되는데...


후더닛보다는 와이더닛 물인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록작 중 가장 처지거든요. 범인의 동기가 하찮을 뿐더러, 납득하기도 어려운 탓입니다. 화재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돌발적인 화제를 막으려고 안전한 방화를 저질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범인은 그냥 수사를 통해 체포하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진짜인가"
이제사키 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권총을 가진 범인이 농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게 점장 아오토와 아르바이트 생 유노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가쓰라 경부는 아오토와의 통화로 유노가 범인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범인 시다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파르페를 사주려고 가게를 찾았는데,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에게 견과류가 들어 있는 파르페가 서비스되어 화가 난 뒤 다툼이 시작된걸로 보였다. 유노는 파르페에 대해 시다에게 설명하지 않은 직원이었다.

비교적 독특한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인질을 븥잡고 농성을 벌이는 사건은 웬만한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요. "스완"이 약간 비슷하지만, 결은 전혀 다르고요. 또 이런 작품에서 중요한 '인질범과의 협상'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오로지 가쓰라 경부의 추리에 의한 의외의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돋보였고,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전개, 가게 안 장난감 가게에서 타는 물총이 시다가 들고 있는 권총과 비슷하다는 단서 등 여러 가지 정보와 단서들 모두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사건은 아오토 점장의 자작극이었습니다. 치정 문제로 유노를 살해한 직후, 시다가 사무실로 들이닥쳐 범행이 들키자 시다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시다가 범인이고 자신은 피해자인 척 농성하는 연극을 시켰던 것이지요. 나중에 구출 직전 시다와 아들은 살해할 생각으로요.

그런데 조리 담당으로부터 사건 당시 오징어 먹물 파스타가 조리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추리해냈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오징어 먹물 파스타 조리 시간을 감안하여, 시다가 항의차 점장을 찾은 뒤, 한참(약 10분?) 지나서 도망치라는 큰 소리가 나왔다는건 그리 큰 단서나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짜증이 쌓여 한참 있다가 폭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살해 현장을 무마하기 위해 농성이라는 연극을 벌인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아 감점합니다. 

2024/08/23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김지선 : 별점 1.5점

괴물이라 불린 남자 - 4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FBI 수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의 첫 사건은 데커가 주목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스타 출신 사형수 마스 사건이었다. 멜빈 마스는 20여년 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 당일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사형수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여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데커와 수사팀은 몽고메리가 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지만, 몽고메리는 사형 집행을 당했고 그의 아내도 폭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데커는 마스의 부모 사진이 없는 것, 마스가 전국구 스타가 된 뒤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마스의 부모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마스의 아버지 로이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건 배후에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챈다는 흔해빠진 스릴러.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이어지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 수사관으로 과잉 기억 증후군에 시달리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입니다.

멜빈 마스 시점에서의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 누군가 자기가 진범이라고 고백해서 살아났는데 그 누군가가 알고보니 진범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니 매 순간 순간이 긴장될 수 밖에 없지요. 20년이나 버려두었다가 사형 집행 당일이 되어서야 그를 구해준 '누군가'의 의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구해줄거면 더 빨리 구해주던가, 아니면 아예 죽게 내버려두는게 맞을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
마스의 어머니가 말기 뇌종양이어서, 남편이 그녀가 편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 뒤 살해당한 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괜찮습니다. 원래 아버지 로이는 소싯적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테러에 가담했다가, 보험삼아 테러 증거물을 훔치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스가 슈퍼스타가 되어 행적이 노출되자 다시 죽은척 몸을 숨기게 된 겁니다. 이는 마스의 부모님이 전국방송에 등장했던게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추리와도 연결되며,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아들의 출세가 발목을 잡고 만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 이야기 외 다른 모든 부분은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너무 엉망이라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사건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마스에게 누명을 씌운게 아버지 로이였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약 조직의 성노리개였던 여자를 사랑해서 탈출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조직 보스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그게 마스였다! 더러운 놈에게 복수를 직접 하지 못했으니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인데 황당하기가 그지 없어요. 이걸 추리해내는건 더더욱 말도 안되니, 추리물로 볼 여지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단서라고는 마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어를 잘했다던가, 집에 은제품이 있었다(조직의 물건을 훔쳐서 나온것)는 정도인데, 이걸로는 턱도 없지요.
마스에게 최면을 걸어 들은 '초차'라는 말을 근거로 로이가 죽은 척 몸을 숨겼다고 추리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초차'는 콜롬비아 칼리 지방의 방언으로는 '주머니쥐'이고 주머니쥐는 죽은척한다는 이유인데, 근거도 빈약하고 억지로 가져다붙인 느낌만 전해줍니다. '창녀'라는 명확한 일반 명사가 있는 단어에 전 세계에서 딱 한 지방에서만 쓰는 방언으로 해석한다는건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년만에 구해준 이유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아이는 구해달라'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지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과거 마스 사건에서 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사건 당일, 모텔 직원의 증언으로(나중에 위증일 수 있다는게 밝혀지지만) 마스가 집에 들러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는건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스가 사건을 저지를 동기는 제대로 증명되지 못합니다. 가정 불화가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는데,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의 계약금 일부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는게 그렇게 설득력있는 동기인가요? 누가 보아도 마스는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을 슈퍼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어머니 루신다의 혈흔이 마스의 차에 남아있다는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이전에 코피를 흘리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변호사만 잘 선임했어도 마스가 사형선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로이가 마스에게 누명을 씌우는게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야기도 치밀함,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데커가 NFL에서 뛰었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오래전 시합에서 마스와 겨루었다는 과거가 마스와 연결되어 사건이 시작되고, 결국 둘이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데커의 독특한 특기(?)인 과잉 기억 증후군이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립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만 팀원들이 하는 역할도 없어요. 심지어 동료 대븐포트는 비교적 초반에 납치되어 멤버에서 빠지는데,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에요. 다른 멤버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로 여겼던 마스의 변호사 올리버가 알고보니 과거 테러를 저질렀던 삼총사의 밀정이었다는 반전도 별로입니다. 올리버가 주장하던 마스를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삼총사 중 한 명인 매클렐런과 함께 찍은 사진같은 억지 증거는 불필요했습니다.
로이가 소싯적 손재주(?)가 좋아서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가담했지만, 70대가 된 현재에도 신출귀몰하며 FBI와 거물 킬러들을 엿먹이는 전문가가 된 경력도 불분명하고, 죽기 전 데커에게 지갑을 남겨 도서관증 --> 대출한 책 --> 금고 열쇠로 이끄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과거 삼총사가 저질렀던 테러 증거가 황당할 정도로 상세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뭐 하나 제대로 와 닿는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질낮은 흔해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마무리됩니다. 인기 요소는 잔뜩 집어 넣었지만 설득력도 낮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즈가 이 뒤로도 몇 편 더 이어지는 듯 한데, 더 읽을일은 없겠네요.

2024/03/23

중간의 집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2점

중간의 집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러리의 지인인 변호사 빌의 매제 조가 살해당했다. 현장을 찾은 엘러리는 피해자가 뉴욕 상류층 사람인 조지프 켄트 김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볼은 조 윌슨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빌의 여동생 루시와 결혼했고, 본래 신분으로는 돈많은 과부 제시카 보든과 결혼했던 중혼자였다.
현장에서 조 윌슨의 아내 루시에 관련된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수집되었고, 김볼로 가입했던 100만 달러짜리 생명보험 수취인이 얼마전 루시로 변경된걸 근거로 경찰은 루시를 체포했다. 빌은 동생의 변호를 맡아 끝까지 분투했지만 루시는 유죄가 인정되어 2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하지만 엘러리는 현장을 목격했던 김볼의 의붓딸 안드레아의 결정적 증언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여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데 성공한다.


검은숲의 엘러리 퀸 전집 중 한 권. "도중의 집"이라는 제목의 자유추리문고 버젼도 이미 읽었지만,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엘러리 퀸 1기라 할 수 있는 국명 시리즈와 3기 라이츠빌 시리즈 사이에 위치한 2기 시기를 연 작품이라고 하는데, "스웨덴 성냥 미스터리"라는 제목을 붙여도 괜찮았을 거라는 언급이 작중에 등장할 정도로 '국명 시리즈'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후더닛'에 충실한 정통파 본격 추리 소설이며, '독자에의 도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명 시리즈'보다는 드라마의 변화 폭이 넓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반부는 아예 법정물로 간주해도 될 정도니까요. 법정물로의 수준도 높습니다. 특히 범인의 다분히 고의적이고 어설픈 행동들을 열거하며, 이는 루시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함이라는 빌의 마지막 변론은 굉장히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범인이 충분한 휘발유가 있었는데도 구태여 주유소를 방문해 베일을 쓴 얼굴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검사 역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만한 좋은 변론을 펼칩니다. '범죄자들은 아둔하며, 뛰어난 지능을 가진 범죄자들은 소설책에서나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럴듯했습니다.
거의 빌이 이길 뻔 했지만 흉기에 루시의 지문이 묻어 있있다는 증거를 뒤집는데 실패한다는 결말도 현실적이었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핀치의 만년필에 독특한 초록색 잉크가 들어있었다는 것, 범인이 립스틱을 이용하지 않고 구태여 코르크를 태워 필기구로 쓴 것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의 도전' 단계 전까지 독자들에게 정말로 공정하게 제공된다는건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이를 통해
  1. 범인은 남자다.
  2. 범인은 흡연자고, 아마도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
  3. 범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낼 내용이 새겨진 성냥갑을 가지고 있다.
  4. 범인은 김볼과 루시에게 적대적인 동기가 있다.
  5. 범인은 필기구를 소지하지 않았거나, 소유한 필기구를 사용하면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어 사용하기를 꺼렸다.
  6. 범인은 아마도 김볼 쪽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7. 범인은 앤드레아에게는 우호적이다.
  8. 범인은 오른손잡이다.
  9. 범인은 김볼이 보험 수익자를 변경한 사실을 알고 있다.
라는 추리를 끌어내고, 관계자들 중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런 후더닛 추리 외에도 '중간의 집'으로 명명된 집에 대해서 간단한 조사만으로 그 용도를 꿰뚫어 보는 추리도 볼만한 등, 확실히 '엘러리 퀸'이라는 명성에 값하는 점은 많았어요.

그러나 완성도는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였던, 앞서 안드레아가 목격했던 성냥부터가 그러합니다. 이를 토해 엘러리 퀸은 범인은 담배를 피운게 분명한데, 재와 꽁초와 같은 흔적이 없으니 파이프를 피웠다고 추리하지요. 하지만 애초에 엘러리 퀸 스스로가 범인은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파이프로 흡연이 가능했다는걸 초반에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냥 모두가 코르크를 태우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억지이자 반칙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의 아내 루시가 빌에게 선물하려고 산 문구 세트 칼을 만졌다는 완전한 우연이 재판에서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된 것, 핀치의 간단한 변장이 주유소 사장이 루시로 잘못 알아볼 정도였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했고요.

전개 면에서는 수수께끼가 모두 엔드레아의 위증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점이 큽니다. 앤드레아가 중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했던걸 모두 털어놓았더라면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거에요. 앤드레아가 입을 다문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고요.
엘러리 퀸 특유의 장황한 대사들은 여전히 짜증스러웠으며, 빌이 엔드레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무고한 동생이 20년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동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덕 중혼자의 의붓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설명도 대체로 부족합니다. 빌이 처음에 '중간의 집'에서 발견했던 앤드레아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숨겼던 이유는?(둘이 원래 알던 사이였는지?) 김볼이 빌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려고 마음먹은날 앤드레아까지 중간의 집에 부른 이유는? 대체 핀치는 그 날 그 시간에 김볼이 중간의 집에 혼자 있을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결국 끝까지 설명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대부분의 '국명 시리즈'보다는 낫지만, 전체적으로 그냥저냥합니다.

2023/11/26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 고미네 하지메 / 민경욱 : 별점 2점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 4점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설회사 대표 시바모토 겐지로의 딸 미유키가 임신 중절 수술 후유증으로 죽은 뒤, 아이 아빠 후보로 의심받던 야규는 친구 나이토의 도시락을 먹고 입원했다. 도시락에 비소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야규의 누나 미사코의 불륜 상대 가메이가 실종된 뒤, 야규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야규의 어머니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라고 주장했지만, 노무라 형사는 야규의 알리바이를 깨버리고 진상을 밝혀내었다. 모든 사건은 엔메이, 야규, 나이토, 아라키 네 명이 결성한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의도였다....

1973년 제 9회 란포상 수상작. 올해 일본 작품을 너무 많이 읽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란포상 수상작 완독 달성을 위해 읽게 되었네요.

야규가 가메이를 살해한 날, 수학 여행을 갔다는 알리바이 트릭은 괜찮았습니다. 배에서는 정확하게 학생들을 확인하지 않고 사람수만 센다는 맹점을 이용한 겁니다. 일행은 야규대신 다른 학교 학생을 대신 세도록 만들었고, 배 안에서는 "야규와 함께 있었다"라고 엔메이가 거짓으로 증언해서 함께 탄 것으로 위장했지요. 간단하지만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트릭이었습니다.
야규가 살인범인지, 어머니가 살인범인지를 놓고 벌이는 마지막의 취조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손으로 목을 졸랐다는 야규의 증언과 실제 사체의 교살 흔적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잘 풀어냈습니다. 가메이가 죽은 줄 알고 시체를 파묻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걸 알고 어머니가 확실하게 목을 졸랐던 거지요.

그런데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일단 사건을 저지르는 주체인 "아르키메데스 모임" 부터가 전혀 와 닿지가 않아요. 이들이 주변의 부정을 벌한다고 계획한 것들 모두 정의로움을 느낄 여지가 없는 탓입니다. 임신중절 수술로 미유키가 죽은 사건만 놓고 보아도 그러합니다.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멤버 중 한 명인 나이토의 아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를 어른에 대해 복수에 성공했다며 희희낙락하고, 이를 꾸짖는 어른에게 한 마디도 지지않고 맞선다? 어이가 없어요. 자괴감과 미안함에 몸부림치며 사죄해도 부족합니다. 나이토가 미유키가 죽은 뒤에도 아르키메데스 모임 멤버들과 우정을 이어나간건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아예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또 미유키를 임신시킨건 겐지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는 겐지로가 지은 건물이 일조권을 빼앗아 나이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복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토의 할머니의 사망이 일조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겐지로 역시 그냥 건물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분명 정당한 보상을 했다고 언급하고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뭘 잘못해서 딸을 잃기까지 했어야 했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미유키를 질투한 엔메이의 치정이 결합된 치졸한 행동이 원인이었습니다. 정의와는 별 관계도 없는 셈이지요.
 
야규가 저지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연히 불륜을 저지르는 가메이같은 인간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불륜은 야규의 누나가 함께 저지른 겁니다. 왜 남자만 단죄하겠다는 걸까요? 그리고 단죄가 목적이었다면 구태여 수학여행을 갔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다고 누나만 속여도 충분했으니까요. 즉, 이렇게까지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든건, 단지 혼을 내주려던게 아니라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며, 이는 파렴치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취지를 거스르기에 문제의 소지가 많습니다. 1급 살인 미수라는 점에서 처벌도 보다 강력해야 할 테고요.

"청춘 미스터리"의 효시라는 소개 역시 제가 보았을 때는 지나친 과찬입니다. 작품 속 청춘은 자기 확신에 가득찬 몰염치하고 비겁한 놈들입니다. 아르키메데스 모임은 극 중 노무라 형사의 말대로 그냥 야쿠자 조직과 다를게 없어요. 게다가 고등학생들이 기성 세대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묘사는 진부했고, 특히 전공투와 연합 적군파를 긍정하는 듯한 발언 등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주인공으로 청춘(고등학교 2학년생)이 등장할 뿐 청춘과는 거리가 멉니다. 차라리 평범한 학생이 누나의 불륜남을 응징하려고 하다가 사건이 벌어지는 식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모를까, 고등학교 범죄 조직의 범죄극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알리바이 트릭은 일견 괜찮아 보였지만, 부두에서 기차 등을 타고 거의 3시간에 걸쳐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목격자가 나타나서 트릭은 실패하고 말지요. 
그 외 사건에서 작위적인 부분들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야규의 누나 미사코가 자살한걸 의문스럽게 묘사한게 대표적입니다. 미유키가 죽기 전 아르키메데스라는 말을 남긴다던가, 야규 목격자는 신문 투서를 통해 알아낸다는 등도 마찬가지고요. 엔메이 등 다른 아르키메데스 멤버들이 왜 위증으로 처벌받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형사에게 거짓 증언을 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작품이 발표된 40년 전에는 나름 신선하고 가치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함량 미달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3/12

부자연스러운 죽음 -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 별점 3점

부자연스러운 죽음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아래 리뷰에는 동기, 진범 등을 밝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경과 파커 경위는 한 의사로부터 3년 전, 부유했던 도슨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던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사망 원인이 불명확했던 탓에 의사의 주장으로 부검도 진행되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도슨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을 메리 위태커 양을 모함했다며 의사를 따돌렸다. 결국 의사는 병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피터 경은 노처녀 클림슨 양을 투입했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졌던 햄프셔 주 리햄튼 시에 방을 구한 뒤,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여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피터 경은 사건 직전에 해고되었다는 도슨 부인의 하녀 고우트베드 자매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그녀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지만 자매 중 동생인 버사 고우트베드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들과 관련되어 있던 포레스트 부인에게서도 별다른 혐의를 찾아낼 수 없었고, 위태커 양은 절친 핀들레이터 양을 통해 버사 고우트베드가 살해되었을 당시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슨 부인은 불치병인 암을 앓고 있어서 곧 죽을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앞당길 이유가 없었고, 죽였다 해도 범행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버사 고우트베드 양 살해 방법도 밝혀낼 수 없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도로시 세이어즈피터 윔지경 장편(이하 피터 경)입니다. 사실 저는 피터 경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릭 면에서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도 별로 없었고, 피터 경의 잘난척도 도가 지나쳐서 호감을 갖지 못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스테리아 35호"에서, 샌드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쓰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 추리소설과 요리'라는 글에서 샌드위치를 다루어볼까 하던 차여서, 과연 어떻게 샌드위치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로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트릭도 여러가지가 사용되고 있고, 피터 경의 추리도 눈부시며, 동기도 공들여 만들어져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아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암에 걸려서 살 날이 머지 않았을 도슨 부인을 왜 위태커 양이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설명하자면,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 유산의 유일한 상속자로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도슨 부인을 서둘러 살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슨 부인이 사실은 위태커 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지 않았다는게 밝혀지며 이는 부정됩니다. 오히려 변호사와 위태커 양이 유언장을 쓰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면 재수가 없어질까봐 극렬하게 거부했고요. 하지만 알고보니 명확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1926년 1월부터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어서, 유언장 없이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메리 위태커가 전부 물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래서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에게 유언장을 쓰게 만드는데 실패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부인을 1925년 안에 살해했어야 했던 거지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동기였습니다.

독극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범행의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간호사였던 위태커 양이 피하주사로 '공기'를 주사하여, 일종의 공기 탄환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켰던 거지요. 많이 알려져 있어서 지금은 조금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는 굉장히 참신한 트릭이었을 겁니다. 메리 위태커가 런던에서 이런저런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포레스트 부인으로 변장하여 살고 있었다는 트릭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포레스트 부인이 공범인 절친 핀들레이터 양이라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과감한 아이디어더라고요. 이는 메리 위태커의 사진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메리 위태커는 일종의 동성애적인 관계에만 몰두했다 등의 복선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확실히 유명 작가는 저 같은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요. 

마지막에 핀들레이터 양을 살해한 뒤, 도슨 부인의 먼 친척인 할렐루야 목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계획도 정교합니다. 특히 이 부분은 '흑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증오심을 잘 활용한게 눈에 뜨입니다. 범행 현장에서 여러 남자가 덮친듯한 현장 발자욱이 모두 동일인의 것이라는걸 알아내고 계획을 파헤쳐버린,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한 피터 경과 파커 경위의 추리도 괜찮고요. 일종의 데이트 폭력 범죄로만 여겨졌던 버사 고우트베드 사건을 명확한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게 '샌드위치'라는 것도 제 기대를 충족시킨 부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 전개에 큰 역할을 한 요리라는걸 부정하기 힘들 정도에요. 이건 앞서 말씀드렸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로 다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리 위태커는 버사 고우트베드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도슨 부인을 속여 유언장을 쓰게 만들려 했던 과거가 폭로될 수는 있었겠지만, 이건 죄가 아닙니다. 어차피 도슨 부인은 공식적인 부검을 통해 자연사로 확인되었고, 시체가 재발굴되어 검시되더라도 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오히려 포레스트 부인이라는 존재가 드러났고, 결국 위증을 하게 만들었던 절친 핀들레이터까지 살해해서 사건을 키워버렸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범행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법률에 대해 상담했던 변호사 트리그를 살해하려 했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을 벌렸다가, 트리그를 죽이지도 못해서 위기에 빠진 셈입니다. 트리그가 겁을 먹고 사건에 대해 입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진작에 꼬리가 잡힐 뻔 했었지요.

그리고 메리 위태커가 포레스트 부인이라는걸 알아내는 마지막 장면을 클림슨 양의 탐문 수사를 통해서도 알려주는 부분은 전개에서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냥 피터 경과 경찰들이 진작에 입수했던 포레스트 부인의 지문과 메리 위태커의 지문이 같다는걸 알게 되는 장면만으로 반전의 맛은 충분했어요. 정체만 알아내면 메리 위태커를 핀들레이터 살인범으로 체포하는건 어렵지 않았으니 전개에도 무리가 없었고요. 여성의 능력도 남성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했던 장치라 여겨지는데,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습니다. 피터 경 시리즈를 많이 읽었을 여성들에 대한 서비스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그동안의 제 편견을 모두 깨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피터 웜지 경 시리즈를 싫어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3/15

메그레 - 조르주 심농 / 성귀수 : 별점 3점

매그레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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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매그레의 집에 처조카이자 파리 경찰청 형사로 일하는 필리프가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실수로 자신이 감시하던 경찰청 주변의 카페 주인 페피토 팔레스트리노가 살해당하는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즉시 파리로 향해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온 매그레는 일부 옛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조카를 구하기 위해 독자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메그레 시리즈 공식적인 마지막 장편입니다. 은퇴한 메그레 반장이 누명을 쓴 조카를 구하기 위해 범죄자 제르맹 카조와 대결한다는 내용이지요.

정밀한 과학 수사가 발달하기 전, 범죄자들이 여러 명 범행을 공모하고 서로의 알리바이를 위증한다면 어떻게 체포할 수 있었을까요? 오래 전 부터 궁금했던 주제인데, 이 작품 속 제르맹 카조가 딱 그러합니다. 그는 A를 죽이기 위해 B를 고용하고, B가 위험해지면 C가 B를 죽이게 하는 식으로 조직을 관리하거든요. 자기 손에 절대 피를 묻히지 않고요. 어쩌다 경찰이 A, B, C를 모두 심문하더라도 괜찮도록, 사전에 확실하게 말을 맞추어서 위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카조를 체포할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없을 때 마음 먹고 위증을 하면, 그걸 밝혀내는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요. 

메그레도 궁지에 몰립니다. 은퇴한 상태라 체포도 못하고, 고문이나 가혹 행위를 가할 수도 없는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풍부한 드라마가 생겨납니다. 특히 딸같은 창부 페르낭드를 대하는 모습은 좀 이색적이었습니다. 좌충우돌하다가 카조와 마지막 정면 승부를 벌여 자백을 끌어내는 1:1 대결은 클라이막스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화기를 들어올려 카조가 자백하는걸 경찰이 들을 수 있도록 조작한 간단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이 트릭을 숨기기 위한 노력 등으로 긴장감을 끌어내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어요. 카조가 반쯤은 자랑스럽게 자백을 하게 만드는, 오스프가 살해되었을거라는 결정적 추리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는 다르게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에 큰 헛점이 존재합니다. 카조가 이렇게 완벽하게 수하와 범행을 조종할 수 있었다면, 구태여 오스프라는 목격자를 내세워서 현직 경찰인 메그레의 조카를 범인으로 몰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런 쓰잘데 없는 조작으로, 메그레가 직접 나서서 사건에 뛰어들게 했을 뿐 아니라, 컨트롤이 힘든 약쟁이 오스프를 처리해야 하는 부담마저 짊어지게 되었으니까요. 이들의 위증이 너무 뻔뻔했던 탓에 검사까지 격분하여 메그레 수사에 전면 협조한다는 묘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다면 경찰에 오스프와 일당들이 체포되지도 않았을겁니다. 또 메그레가 짜증내는 묘사가 많은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나이든 꼰대 느낌이 너무 강해서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낄 여지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하고, 트릭도 나름 사용된 점은 마음에 듭니다. 큰 헛점은 감점 요소이지만, 이 정도면 제법 무난한, 대미를 장식하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2020/12/06

Q.E.D Iff 증명종료 11-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Iff 증명종료 11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의 두 번째 시즌도 10권을 돌파했네요. 이번 권에는 강력 사건만 두 편 연이어 등장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부분이 많고, 생각할 거리도 전해주는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평균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뢰할 수 없는 증인" 

4년 전, 토마는 정원사 래디쉬와 알게 됐다. 토마는 해고된 래디쉬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래디쉬는 토마의 돈도 훔쳐 사라져 버렸다.
8개월 뒤, 어니언과 마약 판매를 놓고 대립하던 콘 시럽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총, 발자국 등 증거에 따르면 범인은 어니언이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으로 유명한 래디쉬가 어니언의 알리바이를 보장한 탓에 검사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다행히 토마의 도움으로 어니언은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이 때 래디쉬도 토마의 돈을 훔친 혐의로 3년형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4년 뒤 지금, 어니언의 부하 갈릭 오일은 출소한 래디쉬에게 '복수'라며 토마의 연구를 훔치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기 작품입니다. 어니언의 알리바이는 사건이 발생한 8시 20분에 래디쉬 등 지인들과 농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래디쉬는 그 시간은 마침 3쿼터가 한창이라서 어니언이 자리를 비웠다면 바로 알아챘을거라고 증언했고요.
알리바이를 만든 트릭은 생중계가 아니라 녹화 중계를 봤다는 겁니다. 음식을 주문한 뒤, 래디쉬에게 배달 음식 대응을 시키고 그 때마다 수분간 중계를 일시 정지하는걸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원래대로였다면 3쿼터가 한창 진행될 8시 20분에 '하프 타임'이 걸리도록 만든 거지요. 어니언이 범행을 저지르고 돌아오는데에는 하프타임 15분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범행 후 3쿼터를 함께 볼 수 있었고요.
대단치는 않지만, 현실적입니다. 트릭 외에도 토마가 래디쉬를 구속되게 만든 이유 - 래디쉬는 도벽이 있었고, 콘의 마약도 훔쳤었으며 법정에서 위증을 한 것 보다는 단순 절도가 형량이 낮기 때문 등등 - 라던가, 토마가 함정을 파서 배후인 갈릭 오일을 체포하는 이야기 등의 곁가지들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복선 회수를 잘 해서 이야기 완성도는 제법 괜찮아요.

그러나 문제도 많습니다. 우선 트릭을 수사기관이 눈치채지 못했다는걸 제일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녹화 중계를 봤다는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요? 미국은 PVR 기능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수사관은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어요. 또 녹화 중계를 봤다면, 구태여 pause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시간을 늦춰서 시작하면 되니까요. 녹화 중계라기 보다는 타임 쉬프트 기능 -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타임 머신' 이라고 불렀던, 외부 저장장치에 라이브 방송을 저장해서 돌려보는 기능 - 을 썼다는게 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영수증에는 보통 접수 시간이 출력됩니다. 증거로 래디쉬 서명이 있는 사건 당일 영수증이 이미 확보되어 있었지요. 이 시간을 확인하면 실제 중계 시간과 래디쉬가 인지하고 있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증명 가능했을거에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래디쉬가 정직한 남자라도, 그의 증언만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교도소에 3번이나 갔다 온 어니언의 친구 증언을 사법부가 그렇게까지 신뢰하리라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아울러 갈릭이 토마 노트를 훔쳐 팔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토마가 쓴 노트를 카메라로 찍었지만 이를 공항에서 회수한다는 결말도 어설펐고요. 아예 의미가 없지야 않겠지만, 이미 메일로 어딘가에 보냈을게 뻔한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 이름도 대충 생각한 티가 물씬 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작은 된다고 할 수 있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물에 빠진 새" 

202X년, 일본은 AI 재판관을 도입했다. 그 뒤 20년이 흐른 204X년, AI 관리관인 미즈노 규사쿠가 아내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아내가 호스트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둘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는 혐의가 인정되어 미즈노는 AI 재판관으로부터 장기 징역을 선고 받았다. 미즈노는 항고하고, 변호사 견습인 미즈하라 가나가 이를 돕던 중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년 전에 수상한 사람이 AI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미즈노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건이 벌어진 날 급히 집으로 가라고 전화해서 집에 갔다가 시체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미즈노는 가나에게 'MIT를 중학교 때 졸업한 천재'에게 AI에 정말 문제가 있는지, 자신이 숨겨놓은 코드를 보여주고 확인받아 줄 것을 부탁하는데....

204X년의 일본에서 변호사 견습생 가나와 천재 프로그래머 토마가 활약하는 일종의 평행 우주 세계관으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AI가 재판하는 시대는 곧 다가올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실제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생각해 본 적은 없네요. 이 작품은 그런 상황을 가정하여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Q.E.D 시리즈 장점이기도 한 일종의 '학습 만화' 인 셈이지요.
제목인 '물에 빠진 새'부터가 AI 재판관의 특징을 잘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가 물에 빠진걸 상상하죠. 그러나 AI는 '새'를 갈매기 등으로 해석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가장 있음직한 일'로 해석하기 때문이에요. 즉, '융통성' 이라는게 발휘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AI는 불법적인 조사를 인정하지 않고, 증거에 합리적 의문이 있으면 무죄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어서 결론적으로, 검찰의 기소가 성공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이럴 경우 강력범이 풀려날 가능성이 생긴다는 문제는 있지만 무고한 피해자는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여러가지 유착과 오판을 사전 차단한다는 장점이 더욱 커 보이네요.

그러나 당연히 AI 재판관이라도 문제를 일으킬 여지는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버그' 가 원인입니다. 검찰은 이를 이용하여 미즈노가 실형을 선고받게 만들지만, 토마가 모든걸 밝혀냅니다. 이를 위한 토마의 추리쇼가 법정에서 재판관, 검사와 대결을 통해 펼쳐지기 때문에 '법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추리적인 부분의 완성도도 제법 높아요. 사건 현장은 부부 침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버그를 알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사건 현장을 일부러 '부부 침실'과 '두 사람의 방'이라고 나누어 부르고, 위치도 '길'과 '복도' 왼쪽이라고 말할 때마다 다르게 불렀습니다. 그러면 버그 탓에 AI는 원래 같은 공간을 나누어 생각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방'에는 침대가 있는데 사건 현장인 '부부 침실'에는 침대가 없어서 제3자가 숨어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 결과 미즈노가 범인이라는 판결이 내려진거고요. 꽤 그럴싸하죠?
이러한 추리쇼가 펼쳐지는 와중에, AI가 사건 현장이라며 침대와 다른 가구가 없는 썰렁한 방 이미지를 화면에 띄워주는 장면은 극적 효과가 대단했습니다. 이런게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이라 생각되네요. 

트릭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기발한 장치 트릭이 하나 등장합니다. 미즈노를 옭아맨 현장 증거를 만들어 내었던 트릭입니다. 아래와 같이 문 손잡이 뒤에 나이프를 테이프로 붙여서 문을 여는 미즈노의 지문이 묻게 만든 겁니다. 부자연스러운 지문의 끊어진 형태는 스카치 테이프 자국이고요.


그러나 트릭은 억지스럽습니다. 이런 손잡이는 손 끝으로 잡는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감싸 잡는게 당연하니까요. 미즈노가 문을 열 때 이상함을 느낄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살인 현장을 목격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미즈노 아내의 불륜과 비밀 번호를 사전에 알고 있었고, 얼굴 인식은 사진으로 돌파할 수 있는 등장 인물은 미즈노의 회사 동료 유자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범행을 저지른 동기와 행동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버그를 팔았지만 이를 미즈노가 눈치챌걸 두려워해서 말살시키려고 했다는데, 버그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잖아요? 유자와가 코드가 기록된 노트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게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로 보이지는 않았고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AI가 오류를 일으킨 원인을 납득하기 힘들어요. 만화에서도 평면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법정에서는 구두로만 사건 현장을 설명 AI에게 별다른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검찰이 구두로만 설명했다면 AI가 아니었더라도 해석에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수수께끼를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였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204X라는 근미래인데, 다른 200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묘사들도 고민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204X년에 숫자 암호키와 얼굴 인식으로 집에 출입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지문이 결정적 증거가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이럴 바에야 AI가 재판하는 가상극 형태로 꾸미는게 어떨까 싶네요. 시즌 1 27권 수록작인 "입증책임"처럼 모의 재판 형식으로 말이죠.

그래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11/28

형사의 눈빛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2점

형사의 눈빛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야쿠마루 가쿠가 쓴 단편집으로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한 편 한 편이 완결되는 이야기이지만, 긴 이야기가 포함된 연작 구성이라는 점입니다. 긴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나츠메 노부히코가 형사가 된 계기가 된, 나츠메 딸의 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편별로 사건이 조금씩 설명되며 마지막 수록작인 "형사의 눈물"에서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이지요. 나츠메 노부히코는 범죄 아동을 담당하는 법무부 직원이었지만, 30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고 6년간 파출소에서 일한 뒤 형사가 된 집념의 사나이죠. 추리력도 만만치 않고요. 작품 내내 '인간미'를 느끼게 만든다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사건들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범인들의 자백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추리할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나츠메 형사가 펼치는 약간의 추리는 볼거리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 추리가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건 별로 없다는 거지요. 오히려 이렇게 추리력을 드러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전개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입니다.
설정과 동기가 극단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던가, 아동 대상 잔혹 범죄가 등장하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절반에 가깝거든요. 흥미를 잡아 끄는 설정에 능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했던 작가의 전작들이 떠오른데 전작들보다도 못해요. 설정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분량이 덕없이 부족한 단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무라이스" 

방화로 히데아키가 죽었다. 그러나 사실혼 배우자인 케이코의 아들 유우마는 덤덤했다. 친아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연립 주택 근처에서 벌어졌던 연쇄 방화 사건 범인 소행으로 의심되었지만, 나츠메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의외의 진상을 추리해내는데...

케이코가 진범이며, 원래는 아들 유우마가 목표였다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정부의 육체에 빠져 재혼에 걸림돌이 된 아들을 살해하려 한 거지요.

그러나 반전을 드러내는 추리는 모두 억지스럽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오므라이스가 단서가 된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나츠메 형사는 케이코가 히데아키가 집을 비운다는걸 이미 알고 있어서 수면제가 든 오무라이스를 유우마 용으로 한 개만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히데아키가 애인 시즈카에게 만나자는 보낸 문자 메시지를 케이코가 봤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케이코에게 그날 늦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모를까요. 즉, 히데아키가 집을 비울거라는걸 알았다는건 순전한 상상입니다.
또 유우마는 히데아키를 싫어해서 그가 있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녁을 한 명분만 준비한게 이치에 맞지요. 아들 유우마가 어머니의 살의를 눈치채었을거라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수면제 오므라이스가 자기 몫이었다는걸 유우마가 확신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케이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한 환자 야스오카 씨 손에 서툰 주사자국이 많았던게 단서가 된다는 묘사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입구(?) 역할을 하는 주사 바늘은 고정시키고, 링겔액만 바꾸는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마지막에 케이코가 흔들려 진상을 고백하는 장면도 영 설득력이 없었어요. 끝까지 버텨 정상참작을 받는게 현실적이니까요. "일년 반만 기다려"처럼요. 아울러 젊은 새 애인의 육체에 빠진 탓이라는 일본 AV스러운 동기도 그저 그랬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리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빨간 줄" 

코이데 신이치는 일하던 이자카야에서 막 해고되었다. 11년 전 삼촌을 살해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 함께 사는 조카 하루나의 친구 요코세의 아빠가 살해되는데...

범인은 신이치의 누나 나오코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던 요코세를 구해주려다가 살인을 저질렀던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추리는 약합니다. 별다른 단서가 없는 탓입니다. 누나 나오코가 요코세의 집에서 벌어진 사망 소식을 듣고, 피해자가 요코세가 아니라 그 아빠임을 확신하고 반문한게 증거다? 턱도 없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나오코가 자수해서 범행이 드러나서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11년 전 사건도 누나가 진범이었고, 신이치가 위증했다는 반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증거도 없고, 작위적이에요. 모든 남자가 아동 성범죄자에 아내와 딸을 구타하는 인간 말종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물론 누나 나오코를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신이치의 위증을 나츠메 형사가 곧바로 밝혀내는 장면은 괜찮았습니다. 신이치가 인형 뽑기에서 뽑았다는 인형이 결정적 증거가 되지요. 신이치가 말했던 시간에는 기계 안에 없는 인형이었거든요. 인형 뽑기 경품 교체 시간은 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로, 꼼꼼한 수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심장"

마츠시타 마사유키는 7개월 전, 아들 토모키를 사고로 잃었다. 그 뒤 아내 사에코를 질책하다가 이혼 서류를 남겨 놓고 그 길로 출근하던 회사를 지나치고 노숙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속한 노숙인 무리의 리더 쇼우가 살해당하는데...

쇼우에게는 오래 전 괴롭히던 학우를 죽였던 과거가 있었는데, 얼마전 TV에 나왔을 때 피해자 가족에게 발견되어 타겟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범인은 같은 노숙자인 나카 씨였고요.

그런데 그닥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흉기인 술병에 나카 씨 지문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힛츠미'라는 요리를 나카 씨가 모르는걸 보고, 나카 씨로 변장한 가짜라는걸 알아채는 "절대미각 식탐정"스러운 추리만이 볼거리였습니다. 이 추리는 사건 해결에 딱히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요. 

여러모로 추리물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존심"

수사 1과 형사 나가미 와타루는 나츠메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연립주택 살인 사건 해결에 나섰다. 둘은 피해자 사쿠라이 아야노가 다녔던 직장에서 몇 가지를 알아냈다. 그녀가 직장을 옮긴건 전 남자 친구가 괴롭혔기 때문이며, 지금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며 번민했다는데....

수사 과정에서 두 형사는 피해자 친구라는 아가씨 미우를 만납니다. 남자같은 화물 운송업을 하고, 복싱 도장까지 다니는 남자같은 아가씨였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범인은 그녀였습니다. 미우는 성정체성 장애로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야노와도 '남자로서' 진지하게 사귀었고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어서, '바람을 피우던' 아야노를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살해한거지요. 설정은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추리는 역시나 억지스럽습니다. 나츠메 형사는 미우가 '남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한걸 보고 그녀가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있다는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여자 치고는 남자같다는 의미의 말을 들어서 흥분한거라면서요. 그러나 그냥 끼워맞춘 이야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싫다던가, 남자 자체를 싫어했다던가, 남자같다는 말을 듣고 불쾌할 이유는 수도없이 많은데, 하필이면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을 추리한다는건 이상하지요. 게다가 권투 스파링을 통해 그녀가 마음만큼은 남자라는걸 알아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만화에나 나옴직한 발상이에요.

'카이'라는 피해자 애인 이름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아요. 미우라는 이름을 뒤집어 우미 (海), 그리고 카이로 이어졌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 역시 미우가 범인임을 밝혀낸 다음 끼워맞춘거라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아버지의 휴일" 

요시자와 아츠로는 아내 아키코가 7년 전 병으로 죽은 뒤, 아들 류타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날, 그는 귀가하다가 류타가 수상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류타가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한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집에서 발견되었다. 요시자와는 친구 나츠메와 상담한 뒤, 나츠메와 함께 류타를 미행하는데...

결국 경찰에 의해 류타는 체포됩니다. 류타는 진짜로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해 있던 거지요. 류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약간의 반전은 있습니다. 이는 집에 단서를 보란 듯이 놔 두었으며, 공중 전화로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는 정황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중 전화 신고는 시간과 장소만 특정되면 별다른 추리가 필요한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운, 나츠메 형사가 왜 형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연작 단편의 가교 역할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딸 에미가 연쇄 테러 사건으로 식물인간이 된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이 어떻든 미래의 가능성을 믿으라면서"며 자기 딸 에미도 지금 누워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거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나츠메의 말은 울림을 남기고요.

하지만 별점은 1.5점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군요.

"흉터" 

고등학교 상담 교사 타나베 쿠미코는 결석, 자해를 반복해 온 유카가 걱정이었다. 결국 유카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입원하는데, 다음날 학교로 나츠메 형사가 찾아 왔다. 학교 학생이 상해 치사 사건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 치사 사건 피해자인 사와무라는 유카의 몹쓸 사진을 찍고 협박해 왔습니다. 유카는 지하철에서 무고한 사람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사기에 가담했지만 그 때마다 죄책감에 자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이 범행의 피해자로 모든 걸 잃은 이와사키 씨가 진상을 알게 되어 상해 치사 사건을 일으켰던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건 유카와 이와사키 씨가 한 자백으로 설명됩니다. 계속 반복되듯, 나츠메 형사가 특별히 추리력을 발휘할 부분이 없어요. 이래서야 추리물은 아닌 셈이지요. 나츠메가 형사가 된 건 딸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었다... 는 심리 묘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형사의 눈물"

츠카모토 세이지와 쿄코 부부는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세이지는 자기가 괴롭혔던 오오타를 만났다. 오오타는 세이지가 어린 아이를 망치로 때리는걸 목격했다며 협박하기 시작하는데....

작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나츠메 형사 딸이 식물인간이 된 사건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불량 학생이었던 세이지는 나츠메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듣지만, 오히려 짜증과 증오가 일어나 그 딸을 테러했던 겁니다. 오오타는 이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했고요.
하지만 사진에 함께 찍혀 있었던 여성 목격자가 쿄코라는 진상은 조금 의외였어요. 그녀는 세이지를 좋아해서 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오타가 일으킨 모방 범죄로 여동생 야스코를 잃고 만 거지요. 이를 통해 오오타에게 협박당해 농락당하다가, 야스코를 죽인건 오오타라는걸 알고 그를 살해한게 오오타 사건의 진상입니다. 

자기가 신고만 했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쿄코가 놓인 기구한 상황만큼은 인상적입니다. 빠져나가기 힘든 생지옥 상황은 야쿠마루 가쿠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쾌했습니다. 세이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탓입니다. 세이지가 현재 시점에서 개과천선한 괜찮은 청년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가 과거 오오타를 괴롭혀서 히키코모리로 만들었고, 에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행을 저지른건 사실입니다. 이런 놈이 최소한 죗값을 치루지 않고 행복하게 살 자격 따위는 없어요. 오오타를 만나 협박당하는 정도는 형벌로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자수할 생각 없이 살해할 결심을 한다는건 쓰레기라는걸 재차 인증한 셈입니다.
물론 오오타 역시 죽어 마땅한 범죄자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오오타가 범죄를 저지른건 세이지 탓이 큽니다. 세이지가 저지른 테러를 모방한 범죄니까요. 그런데 오오타와는 다르게 세이지는 나쁜 녀석이 아니고, 그냥 궁지에 몰렸던 것에 불과하다고 전개하니, 영 와 닿지 않아요. 가혹한 왕따 가해자들 시점으로 그들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묘사한 "콜드 게임"만큼 불쾌한 묘사였습니다.
오오타를 죽인 진범인 쿄코 역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신고하지 않아서 여동생이 죽은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두 부부가 각각 살인과 과거 폭행으로 형을 받는다면, 남겨진 딸은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무책임한 모습에서 일말의 연민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이지는 어린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계획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동기도 보복 목적에 가깝고요. 이는 비난 동기 살인 미수에 해당되며, 가중 처벌 요소가 많습니다. 18년 이상에서 무기 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어요. 그나마 나츠메 형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던가, 초범이며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등의 감경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15년 이상은 선고받을 중범죄죠. 쿄코는 피해자가 친족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귀책 사유가 있어서 참작 요소가 많기는 하나 최소 3년은 복역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역하고 나와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정상적으로 딸을 양육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모두 살인자인 셈인데,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일겁니다. "편지"에서처럼, 살인자 가족이 피해를 받고 사는건 당연하고요.

전개도 우연, 억지가 많이 겹쳐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침 세이지가 오오타를 살해 결심한 날, 쿄코가 오오타를 살해했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애초에 오오타가 쿄코를 농락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세이지를 찾아가 협박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얻을게 없으니까요. 과거 세이지가 범행을 저지르던 순간과 목격자를 적절하게 사진에 담았다는 설정도 작위적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쿄코가 놓인 생지옥 상황만큼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좋은 부분이 없네요. 아니,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츠메 형사가 세이지를 사살하는 결말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20/09/01

익명의 전화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1.5점

익명의 전화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담당도 아니었던 아라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쫓겨난 아사쿠라는 그 뒤 가족과도 등을 돌렸다. 그러나 딸 아즈사가 유괴당한 뒤, 유괴범을 홀로 잡으려다가 유괴범들의 목적이 3년 전 사건의 진실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 몰입감을 주는 전개로 다수의 인기 작품을 발표한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도입부만큼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3년 전, 마약에 취해 사고를 일으켜 유치원생을 포함한 7명을 사망케 한 아라이 사건의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라이 사건을 몰래 수사하다가 경찰 조직에 의해 인생을 망친 경찰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경찰을 만나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 떳떳해지자고 설득하는게 순서일겁니다. 그런데 대뜸 유괴부터 한다? 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유괴범들이 나오미와 아사쿠라가 몸값을 들고 뺑뺑이 돌게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몸값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요구하면 되니까요. 경찰인 치하루가 유괴범 중 한 명이었으니, 뺑뺑이를 통해 경찰 신고 여부를 파악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이 과정에서 아사쿠라가 유괴범으로 몰리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겨서 조사만 불편해지고,1억이라는 돈을 낭비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1억은 마약상에게 준거라 동정의 여지도 없고요. 

뺑뺑이 과정도 복잡하게 서술하여 치밀해 보이지만 나오미가 범인이 준, 거는게 불가능한 핸드폰을 가지고 범인에게 휘둘리는 장면에서 메모를 적어 역무원이나 건물 경비원에게 줄 생각은 왜 못했는지 등의 단점만 눈에 띕니다. 유괴극이니 반드시 몸값 전달하는 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등장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아사쿠라가 이미 남과 같은 자신에게 처음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 나오미가 경찰에 신고하려는걸 막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에요.

이후 아사쿠라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더 가관입니다. 현직 경찰 시절에 몇일에 걸쳐 조사해도 밝혀내지 못했던 진상을,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세로 하룻밤만에 알아낸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기꾼 범죄자 키시타니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현역 경찰 신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수사력과는 비교하기 어렵지요.
조사 방법도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어 경찰의 움직임을 떠 본다던가, 급작스럽게 카라키를 불러낸 뒤 먼 곳에서 쌍안경 관찰로 의중을 파악한다던가, 일부러 아라이의 공범이었던 이와키가 속한 조직에게 잡혀간다는 식으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계획과는 무관한 즉흥적인 발상 투성이입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도 맞으면서 버티는 '몸빵' 밖에는 없고요.

진상을 알아낸 것도 아라이의 공범인 전직 경찰 이와키를 찾아내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인데,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사고는 도주하던 아라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일어났으며, 아라이는 유력 정치인 니시자와를 협박하던 범인이었기 때문이라는게 겁니다. 니시자와는 매춘부 아케미와 마약을 하다가 아케미가 죽게되자 아는 경찰을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켰는데,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던 거지요. 그래서 니시자와와 연결되었던 경찰이 무리해서 협박범을 잡으려다가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니시자와의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일곱 명이나 죽은, 그것도 희생자 중에 어린 유치원생이 포함된 사건을 덮는다는게 21세기에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총소리를 들은 증인이 분명히 있었고, 당시 수사를 하던 아사쿠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는데 말이죠. 게다가 생존한 유치원 버스 운전사 미카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 이 정도면 거의 국가에서 움직여 조작한 수준입니다. 주택가에서 차량 추격 중 총질을 한다는 헐리우드 영화스러운 발상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또 이 진상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어색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서던 카라키가 나오미에게 위증을 강요하는 대화는 다 녹음되었고, 카라키가 아사쿠라를 협박하는 영상까지 찍혀 완벽하게 외통수에 몰리게 되기는 하지만 , 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사고를 덮었는데 고작 이 정도 사건을 덮지 못한다는건 설득력이 약한 탓입니다. 아사쿠라가 이와키로부터 확보한 증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최소한 니시자와와 아케미가 함께 마약을 하고 정사를 나누던 비디오 테이프는 확보했어야 했습니다. 지문이 묻은 마약 봉투와 영수증 따위는 증거가 될 수 없어요. 봉투와 영수증의 지문이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잖아요? 솔직히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습니다.
설령 증거가 된다고 한 들, 니시자와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이지 그가 아케미 사건, 그리고 아라이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섰던 장인 마사타카가 아사쿠라의 호소에 개심해서 자수한다는 끝맺음은 최악 중 최악이고요.

그 외에도, 유괴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 유괴 아동의 어머니인 나오미가 태연하게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전개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괴와 상관없는 제3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조력자로 등장하는 토다의 존재도 불필요했습니다. 나오미가 아사쿠라의 진심을 알게되는 계기가 된 증언을 한 게 전부니까요. 이는 치하루가 해도 되는 역할입니다. 토다의 과거도 뻔하디 뻔하고요. 단순한 분량 늘리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재미와 설득력, 현실성 등 뭐 하나 갖추지 못하고 흔해빠진 설정들로만 이루어진 졸작입니다.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1/19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 한성례 : 별점 2.5점

유령 열차 - 6점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펄프 픽션의 제왕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집입니다.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은 제법 많이 접해 왔습니다. 리뷰를 올린 작품은 "마리오네트의 덫",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시리즈인 "공포서클", 그리고 단편집 "네이비 블루 스토리"와 몇몇 앤솔러지 뿐이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서울 문화사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 작품들은 다 읽었으며, 그 외에도 SF라고 할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딸" 등을 읽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수준 이하였습니다. 도저히 유명 작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오네트의 덫"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 리뷰에도 썼듯이 3류 소설의 교과서같은 책이었지요. 그래서 작가의 그 어떤 다른 작품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약 8년여, 설 연휴 때 읽을만한 가벼운 작품을 찾다가 이 작품이 얻어걸렸네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읽은지도 오래 되어 나쁜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했지만, 그나마 단편들은 읽을만 했던 기억 때문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이라는 괜찮은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곳에 따라 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기도 했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노 경부와 대학생 유키코 컴비가 꽤나 유쾌해서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바로 이 단편집이 이 컴비가 활약하는 데뷰작이자 작가의 데뷰 단편집이기도 했거든요.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당당히 실려 있기도 하고요. "마리오네트의 덫"의 순위가 더 높은걸 보면 영 신뢰가 안 가는 리스트이기는 하지만요.

하여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다행히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록작 대부분이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상황들이 기발한 덕이 큽니다. 범행 동기 등 세세한 부분의 설득력도 높은 편이며, 트릭도 반전도 제법이에요.
무엇보다도 두 커플의 캐릭터가 아주 좋습니다. 부인과 사별한 중년 경감 우노와 젊은 여대생 유코 커플을 조합했다는 점도 이색적인데,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게 톡톡튀고 발랄한 유코의 묘사가 괜찮습니다. 상당히 개방된 연애관과 성의식은 시대를 앞서간 감이 있네요.

그러나 수준 이하의 졸작도 수록되어 있는 등 작품의 편차가 크다는건 아쉽습니다. 여러모로 단점도 많이 띄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령 열차"

8명의 승객이 운행하는 기차에서 사라진 깜쪽같이 사라졌다는 불가능 범죄를 그린 단편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독신 경감 우노 교이치와 여대생 유키코 컴비의 기념할만한, 그리고 아카가와 지로에게도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죠.

그러나 사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위증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그리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에요. 달랑 세 명의 마을 주민(이와유다니 역 역장, 기차 기관사, 차장)이 승객들이 분명히 탔다고 증언했을 뿐이라서 이 세 명이 입을 맞춘다면 탑승, 혹은 운행 과정에서의 승객 소실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도 8명의 사람들이 승객으로 위장하여 탑승한 뒤, 기차 뒤에 매달아 놓았던 대차를 타고 탈출한게 진상이고요.

8명의 승객이 여관에서 독버섯을 먹고 죽었으며, 쇠락해가는 마을 관광이 치명상을 입을까 두려워 한 마을 유지들이 합심하여 시체를 숨긴 뒤 공작을 벌였다는 동기는 나름 그럴듯합니다. 식사 문제를 우노와 유코의 입으로 드러내는 등 약간의 복선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손님이 사고사로 죽은걸, 기차를 탔다가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걸로 무마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시체를 태운 뒤 기차 사고같은걸 일으키는게 현실적이잖아요.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입을 맞춘 뒤, 등산을 갔다는 등으로 둘러대던가요.
또 승객 소실은 번거로운 연극 없이, 그냥 세 명(아니, 여관 주인인 고지마까지 네 명)만 함께 증언해도 성립했을텐데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을 대역으로 동원한 것도 이상합니다. 아울러 수수께끼의 영역에서 이와무라 미와를 살해하고, 유코마저 납치하는 실제 범죄가 우노 경감앞에서 벌어진 뒤에는 범인들이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결말은 많이 아쉽습니다.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유괴범의 배신"

닛타가 '봉투에 들어 있지도 않고, 접혀 있지도 않은' 협박장을 들고 있었던 이유에 대한 추리는 괜찮습니다. 배달온걸 본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협박장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있었다는 추리인데 상당히 그럴듯해요. 유괴 사건은 조작이며, 닛타가 자신의 과거를 협박하던 니시오를 죽이려는게 목적이었다는 진상은 바로 이 추리에서 출발하는데, 추리와 동기와 진상이 잘 어우러집니다.

또 협박장이 들어있던 우편함 속 신문 투입 날짜를 통해 협박장이 집 안에서 넣어진걸 알아챈다던가, 이 협박장의 '딸'이 마사코가 아니라 니시오의 딸 마치코였고, 니시오가 닛타로부터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자주 빌려가는 이유는 책 속에 넣어둔 현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는 세세한 추리들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닛타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과거로부터 면죄부를 얻기 위해 마사코마저 살해했다는 전개는 너무 극단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훗날 막장 3류 드라마의 제왕이 된 아카가와 지로의 편린이 여기서도 엿보이네요.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얼어붙은 태양"

한 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휴양지에서 얼어죽은 이로누마의 시체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트릭이랄건 없습니다. 범인의 의외성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로누마를 냉동고로 유인해 가두어 죽게 만든건 다케나카 부인의 어린 세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냉동고를 대충 관리하여 책임을 지는게 두려웠던 관리인 노인이 사체 유기를 도운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과 범인의 의외성 외에는 건질만한 내용이 없다는 겁니다. 협박의 대상이 다케나카 부인이 아니라 오다 여사였다는 의외의 진상은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요. 또 관계자들과 며칠간 휴양지에서 만났을 뿐인 우노 경감과 유코가 어째서 그들을 도와 이로누마 죽음의 진상을 감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케나카 부인이 선의의 피해자이고, 오다 여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도 경감이 할 일은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조금만 크면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유코와 우노 경감 컴비의 알콩달콩 시츄에이션은 즐거웠습니다. 거사(?)를 치루려 할 때마다 방해받는 상황 묘사도 아주 코믹해서 즐거웠고요. 추리적으로는 별로라도 두 컴비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역시, 이 시리즈는 유쾌하고 해피 엔딩이어야 제 맛인거 같아요. 별점은 2점입니다.

"비옷을 입은 시체"

앞서 총평에서 언급했었던, 다른 앤솔러지에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단편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그런데 "비옷을 입은 시체"라는 제목은 영 별로네요. 이전에 읽었던 "곳에 따라 비"라는 제목이 더 근사했어요.

여튼,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비가 오지 않는데도 비옷 등을 차려입었기 때문에 동일범에 의한 연쇄 살인이라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모두 개별적인 범행이었다는 기본 아이디어가 좋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이 비옷을 입은 이유도 설득력있고요.

젊고 싱그러운, 그리고 현재와 하나도 다를게 없는 대학 축제가 배경인데, 휴대전화가 없어서 집으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는 고전적인 설정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로왔던 점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키스를 경범죄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옛 시절의 모습이고요. 이런게 고전의 맛이 아닌가 싶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좋은 단편입니다.

"선인촌 마을 축제"

유코의 졸업 축하 여행을 떠난 둘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나오키 형사의 초대로 그의 고향이라는 선인촌 마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너무나 착한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지만, 촌장의 부인이 우노를 유혹하고 수상한 남자가 자기 형이 이 마을에서 수상한 죽음을 맞았다고 말한 뒤 이리에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추리 소설은 아니고, 모험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지와 같은 시골 마을, 그곳을 우연히 연락도 없이 방문한 손님들, 너무나 착해서 손님들이 원하는걸 다 들어주는 주민들, 손님들과 함께 보낸다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축제.... 이 정도 단서가 주어지면, 손님들을 제물로 1년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미쳐 날뛰는 광란의 축제가 벌어진다는건 보나마나지요. 공포 영화의 서브 장르인 포크 호러(Folk Horror)와 똑같으니까요. 집단적인 종교의식이나 미신때문에 외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영화들이요.

둘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과정도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던 처녀가 도와줘서 탈출하는거야 떡밥이 있었다 쳐도, 마지막 순간에 방송국 헬기 사다리를 잡고 도주에 성공한다는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경찰인 나오키 형사도 마을 출신으로 공범이었다는 점은 독특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차라리 수록되지 않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2019/12/10

Q.E.D. iff 2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2 - 4점
MOTOHIRO KATOU/학산문화사

C.M.B 도 좋지만, 저는 Q.E.D 를 훨씬 좋아하는 편입니다. Q.E.D의 season 2라고 할 수 있는 iff 시리즈도 이제 e-book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2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추리적으로 대단치 않고, 이야기도 여러모로 헛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편 모두 내용에 비하면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요.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 수학적인 정보의 제공도 그리 대단치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음 권은 조금 더 분발해주면 좋겠네요.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토마와 가나의 동급생 유바리 미츠키의 오빠 유우키는 인기없는 만담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담아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희극 각본을 썼다. 이를 1인극으로 공연한 뒤 연예계를 은퇴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선배 개그맨 스즈카와 매니저 아카시의 농간으로 각본을 빼앗기고, 주역 자리에서 밀려나 고생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마는데...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계약 관계를 둘러싼 비즈니스 물입니다. 토마의 계략으로 아카시는 유우키가 스즈카의 회사에 고용되었다는 계약서를 작성한게 반격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즈카의 회사는 모회사인 이시즈치 흥업과는 무관하지만, 유우키가 쓰러진 뒤 벌어진 인터넷 상에서의 코멘트와 크라우드 펀딩이 이시즈치 흥업 소속 연예인들이 얽히게 되어서 약점을 잡히게 되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더라고요.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 문제가 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건 처음에 스즈카 산타가 유우키의 대본을 훔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잘한 트릭 뿐이지만 개그에 가까운, 그야말로 개그맨이 생각해 낼 법한 트릭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Q.E.D 특유의 학습만화스러운 재미도 전무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이렇게 길게 끌고갈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살인의 모양"

지중해 몰타 섬에서 수학자 알프 레츠의 아내 카밀라가 열쇠로 잠겨진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강도 소행으로 결론내렸지만, 반발한 알프는 무려 4개월 동안 개인적인 조사를 이어갔다. 유력한 용의자는 알프의 친구 데릭과 그의 아내 플라니로, 이유는 카밀라가 데릭에게 추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타섬을 무대로 로키까지 등장하는 제법 긴 이야기인데, 핵심 트릭은 단순합니다. 호텔 방의 디자인을 이용하여 깨진 유리창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에 불과하거든요. 물론 간단한 트릭이 현실성 높은건 당연하니 단점은 아닙니다.
또 알프가 데릭을 범인으로 옭아매기 위해 세운 계획 역시 상당히 합리적이에요. 호텔의 열쇠는 모두 똑같이 생겨서 충분히 바꿔칠 수 있었고, 플라니의 알리바이가 없어서 이를 데릭이 함께 위증한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경찰이 강도의 범행으로 단정지었기 때문에, 플라니의 위증을 증명할 증인을 찾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는거죠. 그 와중에 토마가 나타나 진상을 파헤쳐버렸고요.

범인의 계획대로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못한 탓에 범행이 드러난다는건 꽤 신선한 발상인데, 문제는 너무 쉽게 마무리되는 결말입니다. 알프가 진범이며, 그 증거는 달의 방 창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깨진 것이다라는 토마의 추리가 과연 데릭이 진범이라는 알프의 작전과 비교했을 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유리창은 언제든 깨질 수 있지만, 플라니와 데릭이 위증을 한건 엄연한 사실이잖아요?

게다가 알프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낸건 데릭 부부 둘 중 누가 체포되어도 상관없게 된 것이라는 알프의 말 때문이라는데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게 누구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되었다면 충분히 할 법한 말 가지고 말꼬리를 잡은 거에 불과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말의 비약이 심해서 감점합니다.

2018/11/15

쥐덫 - 애거서 크리스티 / 김남주 : 별점 2.5점

쥐덫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황금가지의 정식 한국어 판으로 다시 읽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대표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무려 14년 전에 해문 출판사 버젼으로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 다시 읽은 김에 짤막하게 리뷰 남깁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무려 9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니 완성도가 낮은 작품도 존재한다는 단점이지요. 예전에는 다 좋아 보였는데, 14년 동안 너무 많은 작품을 읽어온 탓이겠지요. 예를 들어 "관리인 사건"은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해서 좋은 단편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조니 웨이벌리 사건"의 경우는 증거가 너무 빈약하고요. "사랑의 탐정"은 범인들의 위증에만 기대고 있는 최악의 작품입니다.
여사님 리뷰의 바이블인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에서의 별점도 2점에 불과하며, 이유는 메인인 "쥐덫"의 트릭은 재탕한 것이고 추리 소설로 알맹이가 너무 없으며, 다른 단편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기 때문이라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마냥 폄하하기만은 힘듭니다. "쥐덫"은 아무리 트릭을 재탕했다 하더라도 폐쇄된 공간, 제한된 등장인물들끼리 빚어내는 긴장감은 일품입니다. 어차피 트릭도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 바꿔치기에 불과해 재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줄자 살인 사건"은 트릭에 기댄 추리 퀴즈 같은 작품이지만 짤막한 분량 안에 사건의 동기까지 집어넣은 솜씨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피해자 스펜로 부인이 처음에 꽃집을 시작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한 페이지도 안되는 과거사를 살짝 언급한 후, 스펜로 부인이 하녀일을 할 때 사라진 에메랄드를 연결하는 식이거든요. 하녀 외에 여주인의 몸종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당대의 상식이 잘 공유되지 못한 건 안타깝지만요.
그 외에도 "완벽한 하녀 사건"과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네 마리 검은 새'"는 이런 트릭을 사용한 작품의 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최소한 "퀸 수사국" 같은 정말이지 추리 퀴즈에 불과한 이야기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푸아로, 미스 마플에 할리 퀸까지 등장하는 종합 선물세트라는 점도 돋보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소설의 팬이자 크리스티 여사님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시라면 이미 읽어 보셨겠지만요.

2018/02/24

검찰측 증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강영길 : 별점 2.5점

이 바닥에서 전설급 명성을 자랑하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이하 "공략")에서의 별점은 무려 5점입니다! 이 정도면 달려가서 구입해야 하는 걸작이지요. 이미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리뷰도 올리지 않았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소장한 책은 '동서 추리 문고' 출간본으로 "공략" 에 소개된 수록작은 일치하는데, 뒷부분에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가 추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권 값으로 두 권을 읽는 셈이니 이득이죠?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 은 별도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정통 추리물' 이 아닌 심령 소재 오컬트 호러물이 많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심령 현상을 '영혼' 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주요 인물로 '정신 의학자' 가 등장한다는 점도 독특했고요. 그런데 정신 의학자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영 와 닿지 않더군요. 종교인이 등장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호러물인데 "공략"에서 언급되는 '지극히 연극적인 전개' 가 가득하다는 여사님 작풍도 한껏 느껴집니다. 표제작부터 그러해요. 레너드 볼이 결정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되는 이유는 아내 로메인이 벌인 연극이 결정적 역할을 하니까요. 그 외에도 "라디오" 에서는 핵심 트릭이, "푸른 항아리의 비밀" 에서는 이야기 전체에 연극이 활용되며 "붉은 신호등" 이나 "네 번째 남자", "마지막 강령술""SOS"는 설정과 내용이 한 편의 연극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읽기에는 별로 무섭지 않으며, 낡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호러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은 분명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거죠. 솔직히 읽고나서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검찰측 증인" 

부유한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레너드 볼은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시각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유일한 알리바이는 아내 로메인에 의해 부정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호사 메이헌은 로메인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데...

유명한 작품이기는 한데 "공략" 에서 몇몇 작품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레너드 볼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로메인의 노력이 너무 어설픈 탓입니다. 당시 시대에서는 위증죄는 큰 죄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로메인의 위증은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 미수에 가까운 중죄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텐데, 왜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재판에 편지만 증거로 제시될 뿐, 정작 법정에 로메인을 옭아매었다는 노파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일사부재리' 원칙과 배심원 제도의 맹점 등 현대 재판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주제 의식과 아이디어 만큼은 현 시점에도 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레너드 볼이 진범이라는 마지막 로메인의 외침 하나만으로도 읽어볼 만 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붉은 신호등" 

절친 잭 트렌트의 부인 클레어를 연모하는 더못 웨스트는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인 백부 앨링턴 경에게 그 사실을 들킨 후 언쟁을 벌였다. 그러나 직후 앨링턴 경이 살해되자 웨스트는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에 빠지는데...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진다는 서스펜스 단편입니다. 약간 윌리엄 아이리쉬 느낌도 나는데 서스펜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웨스트의 짝사랑, 그리고 제목의 '붉은 신호등' 이라는 웨스트가 지닌 일종의 예지 능력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는게 차이점입니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벗어나는 (경찰이 덥쳤을 때 하인인 척 연기) 장면이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잘 살리지는 못했으며, 클레어가 아니라 잭 트렌트가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앨링턴 경이 웨스트를 압박하는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뒤에 영국의 이혼법 등 몇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이국의 독자가 지금 읽기에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웨스트의 예지 능력 역시 설명이 부족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설정으로 윌리엄 아이리쉬가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네번째 남자" 

유명한 변호사, 의사, 종교인이 우연히 밤 기차에 동승했다. 그들 중 의사 캠벨 클라크 박사가 한 집에 사는 여러 사람들처럼 몸 하나에도 여러 개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과거 '펠리시 볼' 이라 불렸던 처녀의 다중인격 사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번째 승객 라울 르타르도는 자신이 알았던 펠리스 볼과 아네트 라블이라는 소녀에 대해 말해주는데...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일종의 심령 호러물. 다른 수록작들은 모두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에 대한 진상도 흥미로울 뿐더러, 펠리시가 자신의 몸에 침입한 타인을 격퇴한 결말이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딱 한가지, 이러한 펠리시의 격퇴를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점은 좀 아쉽습니다. 이미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자살했다는게 밝혀진 후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라울의 회상이 끝난 다음에 나오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울러 다중인격을 여러 '영혼' 이 한 몸에 깃든 탓이라는 설명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요.

하지만 지금 읽어도 서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멋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SOS"

정신 의학의 권위자 모티머 클리블랜드는 우연한 사고로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딘스머스 씨 가족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딘스머스 가족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이를 눈치챈 클리블랜드는 자신의 침실에서 SOS 신호를 발견했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딘스머스를 비롯한 가족들의 묘사, 주변 인가에서 수 km 이상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설정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내용은 꽤 깔끔한 추리물입니다. 무엇이 이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추리하는 일종의 와이더닛 물이죠. 그런데 추리를 위한 단서들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진상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사님의 비소 사랑도 눈에 뜨이네요.

딱 한가지, 탐정역을 정신과 의사에게 시켜가며 딘스머스 가족의 별장에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분위기를 끌고가는 묘사가 잘 살아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이 부분만 공포스럽게 묘사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여사님과 고딕 호러는 잘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그 외에는 단점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죽을 뻔한 의붓딸 샬럿과 가족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합니다. 유산 상속만 되면 영원히 연을 끊고 살겠지만 그 전에 진짜 지옥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소가 아니라 도끼가 등장할지도?

"유언장의 행방 (라디오)" 

리지웨이 부인의 돈을 노리는 조카 찰스가 라디오로 쇼크사를 일으키는 계획을 실행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신 패트릭 고모부를 가장한게 찰스라는게 너무나 뻔해서 부인이 죽을 때 까지 긴장감은 전무합니다. 솔직히 이대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유언장이 사라졌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덕분에 흔해빠진 범죄물에서 약간 오 헨리 느낌의 블랙 코미디로 작품이 확 살아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자의 비밀"

회사원 잭 하팅턴 (24)의 인생 유일한 목적은 골프의 핸디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골프장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매일 출근 전 1시간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는 매일 아침 7시 25분에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유령과 감응한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유명 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정신과 의사 배빙턴이 영혼의 치료자로 자칭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뭔가 쎄~한 느낌이 들더군요. 심지어 영매의 존재를 믿기까지 하니까요. 이래서야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안 들기 어렵지요. 그런데 결국 이 모든게 잘 짜여진 사기극이라는 진상으로 넘어가서 잘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이걸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른 탓에 오히려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모양새가 된 셈이지요.

물론 단편인 탓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 래빙턴 박사가 실제로 유명한 의사라며 등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잭이 백부의 컬렉션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죠.

그래도 옥의 티 수준일 뿐,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집시"

집시 여인을 만나 경고를 받은 후 사망한 친구 사건에 대해 파헤치고자 집시 여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로 일종의 예지 능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붉은 신호등"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예감이 아니라 핏줄로 전해지는 신비한 능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합리성을 떠나 최소한 설명을 해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탓이 큽니다. 집시 여인을 공포스럽게 조성하는 식으로 캐릭터 공포물처럼 시작하여 공포 분위기를 한껏 잡아나가지만, 불안에 떨던 주인공이 약혼녀 레이첼을 만나자마자 행복함에 휩싸인다는 결말이 뜬금없기 그지 없거든요. '두번 다시 보기 힘들겠다' 는 말 뜻이 주인공이 아니라 집시 여인의 죽음을 뜻했다는 일종의 반전은 신선했으나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램프"

오래 전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집으로 이사 온 3대 가족의 손자 조프리가 병으로 죽고, 소년의 유령과 함께 떠난다는 이야기로 이 단편집에 많이 수록된 영혼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이에요. 아이의 눈에만 유령의 실체가 보인다는 설정도 그러하고요.
그런데 별로 무섭지도 않고, 결말도 시시합니다. 전개에 기복이 없고 묘하게 담백한 탓으로 하나 뿐인 손자가 죽었는데도 불쌍한 소년 유령과 함께 떠난 것에 만족하는 할아버지 윈버 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냥저냥 잔잔한 평균 이하 소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카마이클 경의 이상한 사건"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학박사인 에드워드 카스테아스는 친구 세틀 박사의 부탁으로 아서 카마이클 경의 저택을 방문했다. 준남작 아서 카마이클이 갑자기 백치가 되어버린 증상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회색 고양이와 관련된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진상은 카마이클 부인이 의붓 아들과 키우던 고양이와 몸을 맞바꾸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그녀는 동양의 피가 흐르는 마녀로 흑마술이나 최면술, 혹은 또 다른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는 설정이고요. 

만화 등에서는 흔히 보아온 것이지만, 이를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작품화하여 발표했다는 선구자적인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선구자적 부분 외에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대부분이 지닌 '설명이 부족하다' 는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탓이 가장 큽니다. 어떻게 정신을 바꾸었는지? 에 대한 설명도 없고, 청산가리로 살해된 고양이의 몸 속에 들어간 아서 카마이클의 정신이 어떻게 다시 본인의 몸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에드워드 카스테아스 1인칭이며, 그가 실제 목격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는 설정으로 부족한 설명을 메꾸고 있지만, 독자는 카스테아스의 비망록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도를 논하기도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날개의 부름" 

부호 사이러스 헤이머가 장애가 있는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듣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꿈을 꾸지만, 속박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한다는 이야기.

장애인 악사가 신의 사자인 "목양신" 이라는 등 판타지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부" 가 현실적인 속박으로, 모든걸 내려 놓아야 "승천" 할 수 있다는 약간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크로스오버인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포나 서스펜스는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공략" 에서 코즈믹 호러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덕분에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해 버렸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강령술" 

라울은 결혼을 앞둔 영매 시몬의 마지막 강령술 의식에 참석했다. 그것은 이미 죽은 딸 아메리를 구체화한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마담 엑스를 위한 강령술이었다. 

영매가 불러낸 구체화한 영혼(엑토플라즘?)에 손대면 영매가 죽는다는 설정이 전부입니다. 구체화한 영혼이 진짜가 되었을 때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이야기가 너무 알맹이가 없지요. "공략"은 논리를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라 무서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논리' 자체가 딱히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이 논리를 관철하는 이유는 작품 내내 강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의외성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반전,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공략" 신뢰도 감소 2연타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사냥개"

1차 대전 중 벨기에의 한 수도원에서 벽에 검은 사냥개 모양의 화약 흔적만 남긴 채 독일군 부대가 날아가 버렸다. "나" 는 이 사건에 관련된 수녀 마리 앤젤리크를 찾아냈는데, 그녀는 한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고대 문명 및 그 문명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다룬 이색작입니다. 수녀가 제 2 그리스도, 수정궁의 지도자 운운하는 신성 모독을 서슴치 않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는 물씬 풍기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내용에서 제대로 설명되는게 거의 없어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수녀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로즈 의사가 어디까지 알아내어 음모를 꾸몄는지 등 뭐 하나 드러나지 않거든요.
"공략"에서는 논리가 부족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작품이라고 설명되는데, 논리가 부족한게 아니라 미완성으로 보일 뿐입니다. "공략" 신뢰도 하락 3 콤보 되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2/18

에르큘 포아로의 모험 (포와로 수사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천두병 : 별점 2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을 읽고 충동적으로 읽기 시작한 여사님의 포와로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공략" 에서 언급한 수많은 걸작들보다 이 책을 먼저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가입한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읽은 탓에 기억도 없고 리뷰도 남아있지 않아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문제는 "동서 추리 문고" 판본인데 원서 대비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등 여러 작품이 빠져있고, "요리사를 찾아라" 라는 다른 단편집 수록작이 실려 있으며, 뒤에는 장편 "구름 속의 죽음"이 합본되어 있는 엉망진창 구성이라는 겁니다.

하여튼,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느껴집니다. 첫 번째는 "연극" 이라는 요소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공략" 에서 언급한 걸작들처럼 작품 전체가 한 편의 연극으로 다의적인 내용을 품도록 쓰여진 건 아닙니다. 단지 작 중 벌어지는 사건을 한 편의 연극처럼 재구성하여 보여주거나, 사건 해결을 위한 연극을 꾸미는 식 정도로만 쓰입니다. 즉 작품 속 연극을 독자가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바라보는 정도에 그칩니다. 연극이라는 요소의 외연 확장 없이 단순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덕분에 작품들이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모로 초기작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공략"에서 언급한 대로, 홈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내용의 수준도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좀 유치합니다. "공략" 에서 말하는대로 트릭의 완성도가 낮은 탓도 크며, 전개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수상하게 묘사하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도 눈에 많이 뜨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여사님 작품 치고는 높은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고전의 향취가 강하며 짤막하게 읽기 쉽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고전 본격 추리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입문자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전승 무도회 사건" 

크론쇼 백작이 전승무도회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10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와 교제 중이던 여배우 코코도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전통적인 홈즈와 왓슨 구도로 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 단편입니다. 사건을 의뢰할 뿐 아니라 해결에 도움을 주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인 재프 경감은 레스트레이드 경감 포지션이라 할 수 있고요.

하지만 고전적인 설정에 비하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핵심 트릭이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탓입니다. 작중 묘사만으로는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된다고 할 수 없어요. 전개와 설정도 작위적입니다. 코코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아무리 프로 배우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하는건 위험 부담이 컸을텐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지요. 또 전개에서 자신만이 진상을 안다며 정보를 툭툭 던지는 포와로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홈즈가 연상되어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공략" 에서 설명되었던 여사님의 특기, 즉 "연극을 글로 옮긴" 작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 하나는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추리쇼가 연극이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작위적이기만 할 뿐, 완성도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본격적인 여사님 스타일로 진화하기 직전의 습작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데이빗 서쳇 주연의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작품입니다.

"머스든 저택의 비극"

시골 장원에서 사망한 노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공략" 에서 베스트로 꼽았던 작품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입 속에서 총을 발사하여 총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핵심 트릭부터가 기대 이하에요. 검시한 의사가 내출혈로 오진했을 뿐이라서, 의사가 실력만 있었어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안을 빼고 총을 쏜 후 의안을 다시 집어 넣은" 식으로 총상을 위장했던 "엉클 애브너" 작품 트릭 정도라면 모를까요.
전개도 블랙 대위의 우연한 방문이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지나친 연극조 분위기도 감점 요소입니다.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야말로 '연극'이 펼쳐지는데 지금 읽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유치했어요. 발표 당시에 읽었더라면 고딕 호러 느낌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영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을 "공략" 에서 높이 평가한 이유는 딱 한가지, 푸아로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살인자의 냉혹함을 부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 베스트로 꼽기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게다가 "공략" 에서 지적한 장점인 '뛰어난 단편소설만이 지니는, 최소한의 글자 수로 최대한의 충격을 선사하는 순발력의 미학' 을 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포와로의 수다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백만 달러 공채"

일종의 밀실이라 할 수 있는 항해 중인 여객선에서 백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도난당했다. 항구에서 완벽에 가까운 수색이 이루어지지만 발견되지 않았고, 채권은 여봐란 듯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밀실에서의 소실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트릭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채권의 실체는 아무도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채권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대담한 발상이 인상적인 덕분입니다.
일종의 연극 무대와 소품처럼 설명하는 묘사는 단편집 수록작 전체에 공통적인 연극적인 구성을 답습하고 있는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 만큼은 적절한 수준이에요. 여객선이라는 공간이 연극 무대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는 단점은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클럽의 킹" 

미모의 발레리나를 협박하던 매니저가 살해당했다. 발레리나는 도주 끝에 한 가정집에 구조되는데...

복잡한 인간 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공략" 에서 언급했던 여사님 작풍의 특징의 편린이 엿보입니다. 브릿지를 하는데 킹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솜씨도 그럴듯 하고요. 우리나라 버젼이라면, "도둑 잡기" 를 하는데 조커가 없었다 정도의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사건 자체가 범인과 공범들의 연극이라서, 이 쯤 되니 연극 사랑이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동기 및 설정도 작위적이기 짝이 없고요. 무엇보다도 이 정도 상황이라면 경찰이 충분히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 

당대 유명했을 투탄카멘의 저주를 추리물로 변주한 작품입니다.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우연한 사고를 발단으로 원격 조종 살인 등 연쇄 살인을 일으키면서 진짜 의도했던 살인을 그 사이에 감춘다는, "ABC 살인사건"의 원형같은 아이디어가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역시나 과장된 추리쇼 연극이 동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연극 없이도 범인을 잡아내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보석 도난 사건"

석유 부호의 아내가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를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작위적이고 유치합니다. 이유는 이 책 전체를 지배하는 연극조 구성 때문입니다. 불쌍한 프랑스 하녀의 자리비움 시연도 그렇고, 포와로가 카드에 대해 묻는 척 하며 지문을 입수하는 전개, 그리고 진범이 두 명의 유명한 보석 도둑으로 변장한 상태였다는 점 모두가 그러합니다. 현장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도 연극 무대 느낌이 물씬 나고요. 

이야기라도 설득력있게 묘사되었면 모르겠지만 트릭을 알아내는 장면부터 작위적이고,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 용의자도 특정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트릭마저도 유치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게다가 남편과 보험을 연결시켜 용의자를 흐리게 하는 묘사도 노골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야말로 초기작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상속권" 

고전 추리 걸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단편입니다. 한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 저주를 이용한 냉혹한 살인이라는 설정은 브라운 신부 단편이 떠오르고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가 살인자를 덮치는 장면은 셜록 홈즈 시리즈(그 중에서도 "얼룩끈")가 떠오르죠.

그런데 전설이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에서처럼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저주나 전설은 지금 시작되었으니까 가능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은 후대의 사람이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과거에 실제로 저주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도 마지막 포와로의 대사 하나로 평범 이하의 소품에서 작품의 가치가 확 뛰어오릅니다. 저주의 발단이 된 아내의 외도와 자식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의심이 후대에 구현되어 가문과 재산이 넘어갔다는 점에서는 살짝 오싹하기도 하네요. 의처증으로 아내와 아들을 죽인 미치광이에게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사를 찾아라"

홈즈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요리사가 사라진 사건이 상류층에게 있는 강력 사건보다 못할게 없다는 가정 주부의 의뢰에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실종된 요리사와 거액을 지닌 채 도주한 은행원을 연결시키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그런데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낡은 트렁크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며, 부인이 의뢰를 취소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는 겁니다.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면 구태여 의뢰를 취소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웨스턴 스타"

사라진 보석 "웨스턴 스타"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로 지나친 억측이 가득한 작위적인 작품이라는, 이 대부분의 단편집 수록작들이 갖춘 단점을 아주 정확하게 갖춘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이며, 핵심 트릭이 연극이라는 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네요. 

그나마 앞서 다른 작품에서 말씀드렸듯 연극적이라도 설득력있게만 전개되었다면 조금 괜찮았겠지만 이 작품 속 연극은 각본이 너무 부실합니다. '수수께끼의 중국인' 이라니! 변장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한마디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구름 속의 죽음" 

이전에 리뷰를 남겼던 작품이죠.

** 그리고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다른 "포와로 사건집" 수록작들 리뷰를 덧붙입니다. 별도로 구해 읽었습니다만,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베일을 쓴 여인", "사라진 광산", "초콜릿 상자" 는 아직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으면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납치된 총리" 

영국 총리가 실종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세계 정세를 소재로 꽤나 거대한 음모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바꿔치기 트릭이 등장하는데 지극히 억지스럽거든요. 조작이 너무 쉽다는 맹점도 있고요. 총리가 저격당하는 등의 사고가 있었는데 조치도 너무 대충인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냥꾼 별장의 모험" 

헤이스팅스가 현장에서 발로 뛰고, 포와로는 간단한 정보만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전형적인 홈즈, 왓슨 컴비 단편이 떠오릅니다. 설정부터가 "바스커빌 가의 개"와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완성도는 홈즈 시리즈에 미치지 못합니다. 진범이 원래 배우 출신으로, 1인 2역 연기를 했다는 것인데 경찰의 수준(더불어 헤이스팅스까지)이 의심되는 유치한 트릭에다가, 정점에 달한 연극 사랑도 너무한 수준입니다. 범인들이 구태여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고전 향취 물씬 풍기는 도입부와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데이븐하임 씨 실종 사건" 

저명한 은행가의 실종 사건 해결을 걸고 재프 경감과 내기를 한다는 이야기로, 재프 경감의 끈기있는 수사보다 자신의 추리가 더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눈 같은걸 쓰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게 더 낫다"는 말로 대표되는, 자존감이 극히 높은 자부심 덩어리 포와로 캐릭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전개도 일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인 "입술 비뚤어진 사나이" 와 별다르지 않은 진상은 대단치 않고, 트릭도 변장 트릭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크지만 전개하면서 드러내는 정보들을 통해 이를 설득력있게 꾸며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가장 완벽하게 실종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고요.

데이븐하임 씨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잘 알려져있는데 지나치게 변장을 맹신해서 설득력이 낮아진건 아쉽지만 가벼운 소품으로 읽을만은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유언장 사건" 

돌아가신 큰아버지와 거액의 유산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바이올렛 마쉬양의 의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내용과 다른, 뒤에 쓰여진 유언장을 찾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인데,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모호한 말에서 찾아내야 하는게 유언장이라는걸 짚어내는 첫 과정부터 애매하고, 유언장을 찾아내는 과정의 설득력도 지극히 낮은 탓입니다. 불에 가져다 대어야 보이는 잉크라는 단서는 아무데도 없다는 점에서는 추리가 아니라 초능력의 영역이 아닐까 싶고요. 게다가 헤이스팅스도 지적했지만, 둘만의 승부에 포와로가 끼어든 자체도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단점만 도드라지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이탈리아 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사냥꾼 별장의 모험" 과 같은 개념, 트릭의 작품입니다. 목격자가 범인으로 위증을 했다는게 진상이니까요.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변장보다는 그래도 공들인 연출이 들어가 있으며, 진상을 알게 만드는 "수플레" 라는 단서도 나름 공정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언급만 빼고 말이죠(커피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라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이 미리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이런 사실도 간과하고 엉터리 알리바이 공작을 꾸민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발표 시점에는 신고 전화의 출처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던걸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쁘지도 않지만 단점도 명확한 평작입니다.

2014/04/21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파계 재판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신극배우였던 무라타는 내연녀와 그의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는 남편을 살해한 내연녀 야스코를 위해 시체 유기를 도왔다는 혐의는 인정했지만,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했다. 검사는 무라타의 유죄를 확신했으나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의 활약으로 서서히 흐름이 바뀌고, 결국 무라타의 비밀까지 밝혀지는데...

누명을 뒤집어 쓴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결백을 밝히고 진범을 밝혀내는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의 활약이 그려지는 법정 미스터리입니다. 일본 추리작가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한 편이지요. 작가가 후기에서 언급하기로는, 이전 가미즈 교스케 단편을 확장했다고 합니다. 도서출판 검은숲에서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두 번째로 출간되었는데,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 이어 국내 정식 출간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네요.

장점이라면, 재미 하나는 확실하다는 겁니다. 두 건의 살인사건 자체가 흥미롭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한순간에 드러나는 진범과 그 진상이 매우 인상적인 덕분입니다. 작가가 사법고시 준비 수준으로 조사했다는 법정 묘사는 허언이 아닐 정도로 상세하고요. 증인이 한 명씩 등장해 검사와 변호사가 벌이는 치열한 공방도 매우 긴박감 넘치게 그려집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한 법정극을 넘어서는 사회파적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부락민 출신이라 평생 차별에 시달렸다는 설정을 통해, 일본 사회에 내재한 차별 구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인 "파계"는 시마자키 도손의 차별을 그린 동명 작품에서 따왔으며, 부제 역시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입니다. 검사가 제시하는 무라타의 과거 범죄들이 실은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정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극단에서의 횡령은 출신을 이용한 협박 때문이었고, 동거녀와의 결별 역시 출신 성분을 알게 된 그녀의 선택 때문이었다는 식으거든요. 특히 그 동거녀가 법정에서 결혼하겠다고 증언하는 장면과, 무라타가 이를 일축하며 "내 돈 때문이지!"라고 외치는 순간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전개 방식도 독특합니다. 전부 법정 안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화자인 요네다가 법정출입기자로서 재판 과정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별도 취재나 외부 조사가 동반되는데, 그런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 덕분에 엽기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전작들에서 보이던 과장된 묘사 없이 매우 절제되고 날카로운 문체가 돋보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추리적인 요소의 한계입니다. 요네다의 시점만으로 모든 정보가 전달되기 때문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는 탓이에요. 법정 미스터리 특성상 상대가 어떤 증언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이는 이야기 구조를 제한적으로 만듭니다. 또한 정보의 일부가 작위적으로 보인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혈액형에 대한 증언이 위증으로 밝혀지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증인이 정직하게 말했더라면 오히려 사건이 더 애매해졌을거에요. 또한 사라진 천만 엔의 행방에 대해 검사나 경찰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60년대 초반 기준으로도 막대한 액수이며, 자금의 출처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진범 규명의 단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쓰가와 히로모토와 야스코의 관계 역시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특히 쓰가와가 야스코의 시신을 어떻게 유기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첫 번째 유기에는 무라타의 자가용이 개입되었기에 개연성이 있었지만, 두 번째 범행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또한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더라도 이 작품은 무라타의 재판에서만 끝을 맺습니다. 화자인 요네다를 내세운 만큼 쓰가와 재판 결과까지 다루는 에필로그가 있었더라면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텐데 아쉽습니다. 

배우 이토 교지나 여배우 호시 아키코 같은 인물들도 단순한 미스디렉션으로 사용하기엔 등장 비중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요. 무라타의 무죄를 확신하고 자비까지 들여 조사에 나선 햐쿠타니 변호사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도 의문입니다. 상황상 무라타가 범인처럼 보이니까요. 이후 시리즈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캐릭터 설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카기 아키미쓰의 법정 미스터리는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작가 역시 변호사보다는 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극적 긴장감과 사회파적 메시지를 고루 갖춘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사법고시 수준의 공부를 했다는 열정이 느껴졌고,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의미와 재미를 함께 갖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책의 디자인은 나쁘지 않지만, 표지 일러스트 때문에 책 하단에 오물이 묻은 것처럼 보입니다. 구입 당시에는 띠지로 가려져 있었지만, 이런 디테일은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2/03/09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3점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어느 봄날 오후 4시, 로버트 블레어는 이제 그만 퇴근할까 생각 중이었다.

40줄에 접어든 독신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는 어느 날 퇴근 직전에 사건 의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매리언 샤프였다. 의뢰 내용은 샤프 모녀가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유괴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녀 베티 케인의 디테일한 증언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인 18세기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현대물로 재창조한 독특한 픽션입니다(현대물이라고 해도 작품이 쓰여진 1948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요.). 이런 저런 리스트에서 고전 걸작으로 선정되었던 유명한 작품으로,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실제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진리는 시간의 딸"과 비슷합니다.

이런 저런 리스트에 선정될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갖추고 있습니다. 추리물, 법정물로서의 가치는 낮을지라도, 중요한 증언(첫 진술의 허점, 베티의 유혹에 대한 증언, 파트타임 도우미의 위증)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충분한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 보기 드문 짜증나는(!) 영국인 심리 묘사와 캐릭터 설정, 재치 있으면서도 지적인 영국식 대사, 자존심 강한 영국 신사 스타일의 해피엔딩 등, 고전 영국 본격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길 거리가 한가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눈 색깔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독특한 (짙은 청색 눈: 성적으로 문란 (매리언 샤프), 연푸른색 눈: 말주변 좋은 거짓말쟁이 (핼럼 경위))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아, 이 얼마나 영국적인가요!

그러나 비록 억지스러운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팩션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진리는 시간의 딸"에 비하면, 이 작품의 추리적 완성도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유는 유괴 사건의 핵심인 베티 케인의 주장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관만 슬쩍 본 저택 내부의 배치나 가방에 대한 증언이 너무 상세하고 정확해서, 단순히 때려맞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사건에서도 증언이 핵심 요소였고, 작중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베티 케인의 카메라 같은 기억력, 당시 영국 저택들의 유사한 구조, 가구, 장비 등)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사건이 뉴스화된 이후에는 채드윅이나 그의 부인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불륜이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작중 설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그녀의 증언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고, 초반 몇 발자국만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게 과연 사건성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인인 코펜하겐의 호텔 주인이 등장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기는 하나, 결국 운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이런 전개 때문에 추리적인 서사는 보잘것없고, 법정 드라마적인 요소만 살아 있는 묘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영국식 관용어구의 사용이 지나쳐 "버터를 입에 물어도 녹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순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번역자가 영국적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한 의도였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단점이 명확하지만, 실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여 창작한 픽션이라는 점과,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만큼은 뛰어납니다. 

저와 같은 고전 영국 본격 미스터리 팬들이나, 조셉린 테이, 프랜시스 아일즈,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