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만화가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만화가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6/08/23

책이라면 팔 만큼 - 코지마 아오: 별점 3점

헌책방을 중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화입니다. 2025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편 <1위>, 2026년 일본 만화대상 <1위>라는 수상 실적에 혹해서 충동구매하여 읽었습니다. '서점'이나 '헌책방'이 등장하는 작품들 대부분이 재미있었다는 이유도 컸고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습니다. 이런 소재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지스러운 신파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충분한 드라마를 갖추고 담백하면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서 좋았어요.

모든 에피소드가 실제 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커피에 별사탕"의 경우, 남편과 사별한 노부인이 남편이 좋아했던 컵과 커피, 꽃에 대해 이야기하자 헌책방 주인은 그것들이 데라다 도라히코의 시에 나오며, 그 시에 따르면 노부인이 '미인'이라는걸 알려줍니다. 책과 한 사람의 추억 연결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따스해서,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헌책방 '시월당'을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점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구성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월당 자체의 이야기보다 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지만 수집을 좋아하는 '조지 씨' 이야기처럼요.

물론 소재와 설정, 전개는 뻔하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전문가나 특정 직종을 테마로 하는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인 탓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신선함은 부족하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새롭지는 않아도 담백한 분위기와 책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추천작입니다. 다음 권에서는 실제 책과 사람들의 사연을 연결하는 매력 포인트를 더 잘 살려주면 좋겠네요.

2026/05/24

Chat GPT가 그린 토마와 가나 ("Q.E.D")

Chat GPT로 명탐정을 그려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Q.E.D"의 토마와 가나를 그려보았습니다. 만화라서 원래도 캐릭터는 구체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연재가 장기화되면서 작화가 충격적일 정도로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에피소드의, 무려 27년간 이어진 연재의 절정부라 할 수 있는 장면 특히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새롭게 그려보았습니다.

현재 시점인 고 3 졸업반 시기보다는 조금 더 어린,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쯤의 모습입니다. 15세에 MIT를 졸업하였지만 다시 일본 고등학교에 입학한, 또래보다는 성숙한 느낌의 토마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발랄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가나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고요.

이런 작화로 만화가 발표되었다면 애니메이션은 물론,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확장되는 인기 시리즈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실망했다고 말씀드렸던 장면도 다시 그려 소개해 드립니다. 토마가 가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2025/12/19

오무라이스 잼잼 15 - 조경규 : 별점 2점

이전 권 리뷰에서 더 구입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형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 가격이 2만원을 돌파했네요.

특유의 정감 있는 그림체와 따뜻한 분위기는 여전하고, 다양한 음식에 얽힌 이야기와 정보들은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따로 국밥은 6.25 때 밥이 미리 말아져 있는 국밥을 양반들이 체면 때문에 거부해서 생겨났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투움바 파스타는 미국 아웃백에서 만들어진 메뉴다라는 등 음식 유래들에 대한 설명이 특히 좋습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정통 알프레도 파스타에는 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와 버터만 들어간다는 등 처음 알게 된 정보들도 많고요. 

그리고 레시피도 꽤 볼 만 합니다. 무엇보다 초코파이 라테 레시피가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코파이를 전자레인지에 6초간 데운 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뿌리고 부숴서 먹는 디저트라는데, 이건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연유처럼 끈적이고 달콤한 삶" 편에서 연유의 유래와 함께 소개되는 홍콩의 '버터 돼지'(딱딱한 롤빵에 연유와 버터를 넣은 간식)를 한국 가정에서 만들려면 빵을 플레인 베이글로 대체하면 된다는 등의 꿀팁들도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전 권에서도 언급했듯 가족 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졌다는건 단점입니다. 더 이상 음식과 요리 만화가 아니라 가족 일상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가족끼리 어디 놀러가서 뭘 먹었다는 류의 에피소드 반복은 식상하다는 말도 사치라 느껴질 정도로 뻔하고요.

이미 웹툰으로 읽은 독자가 책을 구입할만한 요소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독자가 뽑은 오무라이스 잼잼 명대사라던가 팬아트 모음은 솔직히 페이지 낭비입니다. 맛집 탐방 및 소개 역시 인터넷 컨텐츠 대비한 장점을 찾기 어려웠어요. 이래서야 가격 인상에 걸맞는 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원래 이 시리즈의 장점이었던 음식 중심의 이야기와 정보성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데, 다음 권을 구입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라면 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네요.

2025/07/20

도쿄의 뮤지엄을 어슬렁거리다 - 오타가키 세이코 / 민성원 : 별점 2.5점

만화가 오타가키 세이코가 도쿄 시내뿐 아니라 요코하마, 하코네, 유가와라, 사이타마 등 도쿄 근교를 포함한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직접 방문한 뒤, 그 경험을 일러스트와 함께 풀어낸 에세이집입니다. 저자의 시선과 감상이 담긴 일러스트가 좋아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느낌을 전해 줍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곳을 소개해드리자면, 도쿄 국립박물관은 저도 첫 일본 여행 당시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반가왔습니다. 저는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기나 모자이크 타일 벽 같은 세세한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는 덕분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은 파울 클레를 비롯해 히가시야마 가이이 같은 일본 국민 화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장소일 것 같고요.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열렸던 동서양의 교류를 주제로 한 기획전 소개도 좋았습니다. 판화가 하세가와 기요시, 설치미술가 스가 기시오, 그리고 달리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당시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스미다구의 호쿠사이 미술관에서는 '가나가와오키의 큰 파도' 같은 대표작을 상설 전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애호가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도쿄 근교 하코네에 위치한 랄리크 미술관은 아르누보 유리공예의 대가 르네 랄리크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공간으로, 오리엔트 특급 열차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팬이라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질 만한 장소입니다.
사이타마 국립 현대 미술관의 의자 컬렉션도 흥미로운데, 전시된 의자에 직접 앉아볼 수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경험일 것입니다. 입장료가 단돈 200엔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가성비 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곳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뮤지엄 공간과 건축의 아름다움을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사쿠라 조소관은 '동양의 로댕'이라 불리는 아사쿠라 후미오가 설계한 공간으로, 붉은 마노를 갈아 벽에 바르고, 외벽에는 전복 껍질을 가루 내어 덧칠했다는 설명만으로도 그 정성과 고집이 전해집니다. 단게 겐조의 작품이라는 요코하마 미술관, 유서깊은 료칸을 개축했다는 유가와라 미술관, 구로카와 기쇼가 설계한 국립신미술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는 국립서양미술관 역시 건축물만 보아도 좋을 것 같고요. 특히 국립서양미술관은 일본의 유명했던 미술품 수집가 마쓰카타가 수집했던 컬렉션 중심인데 밀레, 마네, 모네, 고흐 등 유명 작가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있다니 빼 놓기 어렵지요. 이 정도 전시품에 입장료 500엔은 너무 싼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간단한 주위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어 도쿄 현대미술관이 있는 기요스미시라카와는 커피 애호가들에게도 잘 알려진 동네라고 합니다. 미술 감상과 함께 거리 산책, 카페 탐방까지 더해진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입니다.

컵 누들 뮤지엄이나 에비스 맥주 기념관 같은 공간들도 저자 특유의 호기심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요코하마에 위치한 컵 누들 뮤지엄은 음식에 대한 책을 발간한 경험이 있는 제 입장에서 더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 없네요. 마침 관련 책도 읽어본 적이 있고요. 에비스 맥주 기념관도 첫 일본 여행 당시 방문했던 곳인데, 또 가 보고 싶어집니다.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처럼 기차역 안에 위치한 미술관도 새로운 발견처럼 다가왔고요.

이렇게 저자의 시선을 따라 읽다 보면, 책 속의 여러 미술관을 메모해 두고 언젠가 직접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단 책의 상당수가 기획전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이미 끝났을 전시에 대한 내용은 독자 입장에서 실용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상설 전시나 소장품 중심의 소개가 더 많았더라면, 아니면 뮤지엄 주변의 관광 정보가 더 곁들여지는게 보다 활용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박물관들을 지역별로 묶어서 지도와 함께 코스를 소개하는 방식이었더라면 여행자에게 훨씬 더 유익했을 텐데, 저자 주관적인 구성으로 묶여 있는 탓에 실용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흥미도를 찾기 어려운는 뮤지엄들이 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담배와 소금 박물관, 도라상 기념관 등은 개성은 있으나, 일부 독자에게는 굳이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공간일 수 밖에 없지요. 또 모든 주석을 책 뒷부분 미주 형식으로 처리한 것도 읽는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본문 하단에 각주를 바로 넣는 방식이었으면 훨씬 읽기 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 또는 근교 여행을 계획 중인 분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된 뮤지엄 중 한두 곳을 골라 직접 둘러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어슬렁거림을 실제 여행으로 확장해 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여, 혹시 도쿄에 여행간다면 하루 정도 뮤지엄 둘러보는 코스가 무엇이 좋을지, 제 기억에 남은 뮤지엄 중심으로 ChatGPT에게 물어보았는데 아래 코스를 추천하네요. 우에노 미술관 트리오 코스는 다음 여행에 참고해야겠습니다.1~2년 안에 꼭 가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코스 1: 우에노(Ueno) 미술관 트리오

도쿄 국립 박물관 (Tokyo National Museum) → 국립서양미술관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 도쿄도 현대미술관 (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장점: 모두 우에노 공원 내 도보권. 이동 시간 최소화, 하루에 세 곳 방문 가능

코스 흐름: 도쿄 국립 박물관 (추천 관람 2h) – 일본·아시아 전통·불교미술과 국보 컬렉션이 압도적 → 도보 5분 → 국립서양미술관 (추천 관람 1.5h) – 피카소, 고흐, 폴록 등 서양미술 정수 → 도보 5분 → 도쿄도 현대미술관 (추천 관람 1.5h) – 국제전시와 현대미술 대규모 기획전

총 소요 시간: 관람 5h + 이동 10분 + 휴식/점심 포함 약 6시간 → 오전 9시 시작 시 오후 3~4시 일정 종료 가능

코스 2: 도쿄 북·서쪽 모던 아트 여정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MOMAT) → 아오야마 네즈 미술관, 또는 스미다구 호쿠사이 미술관

장점: 일본 근대·현대 미술 → 전통 장식 미술 순으로 다양한 감상 가능

코스 흐름: MOMAT (Takebashi 역) – 2~3시간 → 이동: 지하철 도자이선 → 오모테산도역 환승 → 긴자선 → 아오야마 네즈 미술관 (1520분) 관람 1.52시간 또는 지하철 이동 → 스미다구 호쿠사이 미술관 (약 20~30분 이동, 1–1.5시간 관람) 

총 소요: 관람 3.55h + 이동 4060분 → 여유 있게 오후 일정 종료 가능

2025/06/29

복면 작가는 두 사람 있다 (覆面作家は二人いる) - 기타무라 카오루 : 별점 2점

"하늘을 나는 말" 등 만담가 '엔시 씨와 나'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일상계 추리물의 창시자 기타무라 가오루(카오루)의 또다른 시리즈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필명이 복면 작가인 이중인격 아가씨 니이즈마 치아키와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 컴비가 여러가지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지요. 국내에는 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는데, 작가의 팬인 탓에 원서를 번역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특징이라면 기타무라 카오루 작품답지 않은 가볍고 만화적인 설정입니다. 엄청난 가문의 영애로 미모와 추리력, 거기에 집 밖을 나서면 성격이 야성적으로 변하는 이중 인격 탐정 니이즈마 치아키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설정은 아주 많이 별로였습니다. 다른건 다 그렇다쳐도,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성격이 변한다는건 납득하기 힘드네요. 설득력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며, 작품에서 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니까요. 그냥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귀한 집 아가씨라는 설정의 안락의자 탐정물로 만드는게 훨씬 더 나았을 겁니다.
추리적으로도 평범합니다. 사소한 정보와 단서에서 진상을 끌어내는 전개 솜씨는 여전하나, 동기면에서 설득력을 가져가고 있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국내에 정식 소개되더라도 시리즈를 더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미노 미즈호의 만화가 조금 유명한 듯 한데(제 기억에 해적판으로 오래전에 소개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만화로 소개되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트릭, 진상 및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면작가의 크리스마스

잡지 '추리세계'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는 신인 작가 ‘니이즈마 치아키’를 만나러 갔다. 치아키는 엄청난 집의 아가씨로 귀족적인 외모에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문을 나서는 순간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해버리는 특징이 있었다.
그 무렵, 근처 여고 기숙사에서 한 여학생이 살해당한다. 단서는 딱 하나, 피해자가 선물받았지만 사라져버린 ‘토끼 오르골’이었다. 치아키는 오르골 포장이 뜯어져 있었는지에 주목한 뒤, 범인을 밝혀낸다.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 쌍둥이 형이자 경찰인 오카베 유스케, 그리고 복면작가 치아키 등 주요 등장인물과 치아키의 기묘한 특징이 소개되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어요. 료스케와 치아키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어떤 여성이 가지고 있던 검은 트렁크 안에서 채찍이 나온 이유에 대한 추리는 좋은 일상계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며, 기숙사 살인 사건에서는 핵심 단서인 '오르골의 포장이 뜯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자 째 사라진 이유는?'를 통한 치아키의 추리 결과 - '포장된 선물이 방 안에 흩어져 있었다면, 산타클로스가 범인이라는걸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 -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이 여고 기숙사는 산타가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주는 전통이 있었고, 산타가 범행을 저지를 때 선물이 흩어져 그걸 주워 담다가 피해자의 개인적인 선물까지 가져갔다는 것이지요. 사소한 단서에서 진상을 끌어내는 과정은 설득력 높고, 모든 정보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소개되어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범행 동기가 너무 사소했다는 문제는 있지만 일종의 사고같은 밤행이기도 하니,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잠자는 복면작가

오카베 료스케는 치아키에게 원고료를 주기 위해 수족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인근에서 유괴당한 아이 수사를 하고 있던 오카베의 쌍동이 형 유스케가 있었고, 서로의 오해가 겹쳐 치아키가 범인으로 의심받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고, 이후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치아키는 유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낸다.

초반, 치아키가 잠복 중이던 유스케를 료스케로 착각하고 '돈 내놔'라고 이야기해서 유괴범으로 오인된다는 전개는 제법 웃겼습니다. 치아키는 원고료를 달라는 말이었는데, 유스케는 몸값으로 오해했던 거지요.
유괴범이 유괴당한 유우코의 언니였다는 진상, 그리고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 생긴 의붓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는 동기도 괜찮았어요. 이에 대한 정보 제공도 충실하고요. 

하지만 유괴 당일 언니가 쿠키를 따로 가져갔다는 등의 정보는 너무 과했습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쉽게 드러나 버렸어요. '불에 태워버린다' 등의 이상한 협박과 특수 효과(?)를 이용한 불타는 소리같은 정보는 아예 쓸데가 없었고요.

무엇보다도 아이들 장난이라지만, 유괴라는 중대한 범죄를 가볍게 마무리하는 결말은 영 별로였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면 작가는 두 명 있다

료스케의 선배 사콘의 언니가 일하는 가게에서 연쇄 CD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스케는 치아키가 집 밖에 나오면 성격이 변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처럼 쌍둥이 두 명일 거라고 추리했다. CD 도난 사건과 치아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료스케는 치아키를 데리고 사콘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치아키가 사실은 두 명이 아닐까?'라는 추리는 료스케가 치아키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오면서 손쉽게 드러납니다. 수수께끼라고 할 수도 없어요. CD를 훔친 방법은 범인들이 사전에 걸리지 않는 '동선 확인'을 했다는게 진상이라서 영 실망스러웠고요. 이를 위해 스티커만 몰래 빼돌렸다는 등의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는 하나 딱히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가장 처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5/06/27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하여 - 오가와 사토시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소설가의 평범한 일상을 풀어낸 작품집입니다. 소설가 생활을 시작한 뒤,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가 되기까지를 아우르는 여섯 편의 연작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가와 사토시 특유의 독특한 발상들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이와 동시에 소설이란 무엇인지,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작가적 성찰도 좋았고요. 

이야기마다 밀도나 완성도의 편차가 존재하며, 일부 수록작에서는 특유의 발상이 부족해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프롤로그

독서광 대학원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원 그래프로 표현하시오'라는 입사지원서 항목을 높고 고민하다가, 여자친구 미리의 조언으로 입사 지원서에 자신의 인생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구직을 위한 동기와 목적이 이야기로서 부족하다고 느낀 탓에 자신의 인생을 소설처럼 바꾸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진짜 소설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가가 되기 위해 미리와 이별한 나는 6년 후 소설가가 되었고 미리는 결혼했다.

연작 단편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입사 지원서의 항목 하나를 두고 주인공과 여자친구가 나누는 진지한 토론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여자친구 미리의 조언입니다. '입사 지원서에는 진실을 쓸 필요가 없고, 구직 활동 자체가 하나의 소설과 같으니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말로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생각도 되고요. 결국 주인공이 가짜 인생을 그럴듯하게 써 내려가려고 노력하다가 진짜 소설가가 되고 만다는 결말도 횡당하지만 좋았습니다.

작가 오가와 사토시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일상을 다루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성이 잘 살아 있는 단편입니다. 미리와의 건조하면서 담백한 관계와 헤어짐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도 하고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3월 10일

대지진 3년 후인 3월 11일, 고등학교 동창 네 명이 모여 술을 마셨다. 다들 지진이 일어난 날에는 무엇을 했는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바로 전날인 3월 10일에 뭘 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이걸 계기로, 나는 인생의 대부분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3월 10일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나는 예전에 썼던 핸드폰까지 찾아내어 조사했다. 바로 기억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당시 문자를 통해 홍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릴 적 기억을 세세한 것까지 떠올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날 나는 아카네와 사귀기 위해 영화 초대권을 이용한 수작을 부렸었다는걸 알아냈고, 지금 아카네는 이별을 고했다.

4년 전의 평범한 하루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일상 속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마치 추리 소설처럼 긴장감 있게 전개됩니다. 사소한 단서들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듯 과거를 되짚는 흐름이 꽤 흥미롭고, 일상계 추리물로도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주인공이 약속에 늦잠을 자고는 부끄러워 그 이유를 '숙취'라고 꾸며낸 뒤,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이 자신도 그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거짓이 반복되며 진실처럼 굳어지는 과정은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연결한 구성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공이 아카네와 가까워지기 위해 인용한 질베르트의 이야기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전체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활용되는 점이 돋보였거든요. 처음엔 지나쳤던 대사나 행동들이 나중에 의미를 드러내며, 이야기 전체에 짜임새를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인공의 친구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을 왜곡했던 경험을 고백하면서,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주관적인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단한 사건 없어도 일상을 이렇게 깊이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소설가의 본보기

'나'의 친구 니시가키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인물로, 마음에 들었던 여성 에리카와 가까워지기 위해 작가인 나를 이용하여 결국 결혼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결혼 후 니시가키는 나에게 에리카가 소설가가 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에리카는 오라 리딩이라는 점술에 빠져 소설가가 되려고 했고, 니시가키는 그것이 사기라는걸 나와 함께 밝히기로 했다. 처음에는 니시가키가 점술가를 직접 찾아가 사기 행각을 증명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가 직접 소설 속 인물을 빌려 점술가에게 접근해서 어느 정도 거짓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 역시 점술가의 말에서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소설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나는 겁니까? 내 경험을 말하면 지금까지 소설의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디어는 퍼즐 조각 같은 것이어서 늘 내 마음속에 몇가지씩 존재한다.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추면 비로서 소설의 아이디어가 된다. 작품을 구상하는 기간의 태반은 딱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억지로 겹쳐놓고 겹친 부분을 잘라내거나 공백 부분을 채워넣으면서 모양새를 다듬어 가는데 시간을 쏟는다. 이기고 치대는 사이에 점점 아이디어의 형태를 갖춰 간다.'

점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실적인 의심과 믿음, 그리고 창작의 과정을 교차시키는 구성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오라 리딩이라는 점술이 어떻게 사람을 현혹하는지, 콜드 리딩이라는 간단한 사기 수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재미의 핵심이었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보며 교묘하게 말을 끌어가는 방식은 실제 사례로도 있을 법해서 몰입감 있게 읽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소설은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떠오르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끼워 맞춰 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은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로서 겪는 고유의 고민과 구상의 실제적인 측면이 잘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야기 자체는 결국 에리카가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않기로 하면서 비교적 평이하게 마무리됩니다. 앞선 단편들에 비해 기묘한 전개나 파격적인 발상은 덜해서, 그런 부분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하여

나는 남이 내 일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타인에게도 참견하지 않는 반면 고등학교 동창 가타기리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대로 거리낌 없이 타인의 일에 개입해왔다. 나는 그를 경멸했지만, 완전히 미워하지는 않았고 종종 괜찮은 행동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졸업 후 가타기리는 사기성 있는 투자로 동창들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았고 2년 뒤 잠깐 만나 목욕탕을 함께 간게 전부였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잘 나가는 줄 알았던 가타기리는 다시 나를 찾아와 악성 댓글 대응법을 물어보았다. 알고보니 그는 폰지 사기를 벌이던 중이었고, 결국 모든게 밝혀져 파산하고 말았다.

가타기리는 실제로 돈을 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빌린 돈으로 배당금을 주며 허상만 유지해왔다. 나는 그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그만의 ‘황금률’ 실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가짜 황금을 좇는 점에서는 가타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재능 없음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서 발길을 멈추고 마는 굼뜬 성격,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완고함, 강박적으로 타인과 똑같은 걸 하기 싫어하는 비뚤어진 심사.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간으로서의 결손, 일종의 우매함이 필요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술술 풀리고 갈등이라곤 없는 인생에 창작은 필요 없다.

표제작.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소설가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작가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재능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칠 일에 괜히 발을 멈추는 둔한 성격,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완고함, 타인과 똑같은 것을 하길 극도로 꺼리는 비뚤어진 심사—이런 결손이야말로 소설을 쓰기 위한 조건이라는 설명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갈등 없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인생에는 애초에 창작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고요.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건 학창 시절,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친구와도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완전히 연락이 끊기는 현실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친구들이 제법 있어 더욱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더는 서로의 삶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반면, 가타기리의 사기가 그저 흔한 폰지 사기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기발한 반전이나 의외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터라, 전개가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결말 부분—즉, 소설가인 ‘나’가 가타기리와 마찬가지로 ‘가짜 황금’을 좇는 사람이라는 식의 연결도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타기리의 행동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요. 이런 범죄 행위와, 자기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소설로 표현하는 창작 행위를 단순히 동일선상에 놓는게 과연 타당할까요? 이를 비교하려면 이보다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연결 고리 - 예를 들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글이나 아이디어를 도용한 적이 있었다는 식으로 - 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즉, 이 작품 설정보다는 바로 이어지는 "가짜"의 바바 이야기가 비교 대상이 되었어야 합니다.

황금률 등 이런저런 설정을 도입하고, 비교적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특유의 기발하고 기묘한 발상보다는 현실에 많이 매몰되어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가짜

나는 교토에서 귀가하던 신칸센에서 만화가 바바 류지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났던건 1년 전 설 연휴 즈음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술자리였다. 동창 가토가 그를 데려왔다. 바바는 "일본 고등학교 옛날 이야기"라는 만화를 준비 중이었고, 이는 동창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억담을 수집하는 형식이라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창 도도로키는 바바가 짝퉁 시계를 차고 다닌다며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바바의 만화는 물론 인생 자체가 전부 남의 이야기와 재능을 빌린 표절이었다. 만화조차도 실제로는 그의 아내가 그린 것이었다.

끝없이 표절을 반복하는 바바라는 인물도 인상적이지만, 바바가 표절하게 만든 '나'의 기발한 발상들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나'가 이야기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범인 맞추기 방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독자에게 놀라움을 안겨야 하므로, 언뜻 보아서는 동기가 없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이 유력한 범인 후보이다. 마찬가지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요소는 모두 고려한다. 미스터리 소설에 시력을 잃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실은 눈이 보일 가능성을 고려한다던가, 범행 현장 창문 유리가 깨져 있다면 범인은 외부에서 침입하지도 않았고, 외부로 도망가지도 않았다. 유리가 깨진 건 침입, 도망과는 관계없는 이유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범행 시에 깨져버린 안경 파편을 감추기 위해서라던가' 등 재미있는 발상이 가득하거든요. 이 정도 이야기를 들으면 표절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와 함께 창작이라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는 듯한 내용 전개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바바가 워낙에 독특한 인물이니만큼, 이 인물에 대해 보다 깊숙하게 파고든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재미면에서는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여러가지 독특한 아이디어가 가득한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수상 에세이

나는 신용카드 도용과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가 된 상황에서 자기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소설가로서의 자기를 되돌아보며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글입니다. 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해답같은 내용이 등장하거든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는 소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감동. 우리는 매일 지금까지 물렸던 것을 접한다. 크든 작든 그것들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여전히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지요. 이를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첫 문장에 대한 감상을 통해 펼쳐보이는데 여기서는 확실히 작가만의 색다른 발상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얼음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얼음이 항상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인터넷이 처음 연결된 날의 기억에 의존하여 얼음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는데, 이런 발상은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그러나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만 별점을 주기는 어렵네요.

2025/06/01

텍사스홀덤 1,2 - 원사운드 : 별점 2점


예전에 어딘가에서 연재되던걸 감상했었는데, 완결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구입했습니다. 예전 연재작은 흑백이었는데, 웹툰 시대에 맞게 풀 컬러로 리뉴얼되었네요.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포커 게임 '텍사스홀덤'을 진지하게 스포츠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단순한 도박 만화가 아니라, 마치 스포츠 만화를 읽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등장인물인 비비안이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대사가 단지 허세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아주 탄탄했어요. 초반부 기수와 찰리의 대결, 그리고 마지막 포커 대회에서 펼쳐지는 나노노코와 기수의 결승전은 긴장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롭게 표현되어 있고요.

텍사스 홀덤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프로게이머 출신 갑영이 연봉제로 포커 플레이어들과 계약하여 대회에 출전시키고, 이 중 프로게이머 출신 기수는 프로 시절 보여준 경기를 근거로 스카웃한다는 설정, 온라인 포커 게임을 위한 봇을 만드는 설정이 그러한데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왜 프로게이머가 포커를 잘 하는지 살짝 알 수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품이 단 2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장점도 큽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주인공 기수의 성장은 뚜렷하게 그려져 성장기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기수와 비비안의 관계를 적절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한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작화입니다. 원사운드 특유의, 하지만 극화에 맞게 6등신 이상으로 그려진 인물들 대부분은 헤어스타일을 제외하면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합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개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요.

또한, 작품 내에 등장하는 텍사스 홀덤 관련 정보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들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정보들이 독자가 포커에 대해 실제로 잘 알게 만드는 학습 효과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지루한 설명이 많지만 학습 효과는 떨어지는, 어정쩡한 구성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추천할만한 요소는 있습니다만, 단점도 확실해서 감점합니다. 스토리 만화보다는 차라리 텍사스 홀덤을 제대로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 방향을 잡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25/02/08

오랑캐의 역사 - 김기협 : 별점 3점

오랑캐의 역사 - 6점
김기협 지음/돌베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주변부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역사서입니다.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를 대립적인 관계로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 유목 사회가 농경 사회와 공생하며 '그림자 제국'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농경 사회는 생산성이 높아 경제력을 확보하기 용이했고, 덕분에 대규모 정치 조직인 ‘국가’ 형태를 갖추기 쉬웠습니다. 반면, 유목 사회는 느슨한 연합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게 되면 농경 사회의 잉여 생산물을 수탈하거나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즉, 농경 사회의 제국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구조였으며, 저자는 이를 ‘그림자 제국’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개념을 통해 한반도가 독립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설명됩니다. 농사에 유리한 한반도 남부에 국가가 형성되었고, 북부와 만주는 유목 세력의 땅이라 중국과 단절되었지요. 하지만 이 지역에 강력한 유목 세력이 융성했을 때, 한반도 남부 국가는 지속적인 압박과 수탈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구려, 원나라, 청나라 시기가 그러한 예입니다. 재미있지요? 최근 이세계 전생 후 영지, 국가를 성장시키는 내용의 소설과 만화가 많은데,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목민 켄타우로스 부족에게 전생한 주인공이 기술과 병법, 종교 도입으로 오랑캐 정복 왕조를 만든다는 이야기로요.

중국이 대항해 시대의 유럽과 달리 해양 진출이 적었던 이유도 설명됩니다. 중국은 이미 내륙에서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럽처럼 바다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네요. 이는 대외 관계와 교역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들었으며, 유럽이 적극적으로 신대륙을 탐험한 것과 달리, 중국은 상대적으로 대외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청나라 이후 유럽에 비해 문명이 뒤쳐지는 결과를 초래했고요.

유럽 중심 사관을 비판하는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 부르며 로마 제국과 구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은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동로마 제국은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유지한 채 수백 년간 존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분리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평가도 눈길을 끌며, 특히 ‘중세 암흑 시대’라는 개념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와 닿았습니다. 문명의 발전은 중세 시대에도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이슬람 문명을 통해 지속되었으며, 단지 ‘유럽’만이 그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지요.

이러한 저자의 주장들은 풍부한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시되어 설득력도 높은데, 문제는 주장이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오랑캐와 유목민, 그림자 제국 등의 개념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유럽 중심주의 비판으로 넘어가고, 다시 이슬람 문명의 성취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전체적인 구성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글도 어려운 편이고요.

더 큰 문제는 도판의 부족입니다. 시대별, 지역별로 각 세력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면서도 당시의 지도가 거의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유목 세력의 이동 경로, 교역로, 세력권 등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지 않다 보니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읽으면서 지도를 수시로 참고할 수 밖에 없었는데, 2만원을 훌쩍 넘는 책 가격을 생각해보면 주요 지도는 도판으로 반드시 추가되었어야 했습니다. 

저자의 독창적인 역사 해석과 다양한 시각은 흥미롭지만, 이러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글 맵에서 연도를 입력하면 해당 세계 지도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찾아보았는데, 광고가 많거나 느리거나 조작이 불편한 등 문제가 많았거든요...

2025/01/18

쿠이 료코 낙서집 데이드림 아워 - 쿠이 료코 / 김민재 : 별점 3점

쿠이 료코 낙서집 데이드림 아워 - 6점
쿠이 료코 지음, 김민재 옮김/㈜소미미디어

만화 “던전밥”의 작가로 잘 알려진 쿠이 료코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그린 다양한 일러스트와 짧은 만화를 모은 화집. 4개의 챕터를 통해 총 257점의 일러스트와 57페이지 분량의 만화를 선보입니다.

이 화집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의 압도적인 드로잉 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손 가는 대로 그린 듯한 그림들조차도 모두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골격과 근육을 바탕으로, 그리고 치밀한 설정을 토대로 완성된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낙서 모음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더군요.

“던전밥” 팬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디테일들도 돋보입니다. 라이오스 일행 외의 등장인물들이 '체인질링'으로 다른 종족으로 변화했을 때의 모습이나 현대 의상을 입었을 때의 모습 같은 그림들이 그러합니다.
또 이런 그림들에서도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설정의 깊이를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아래의 종족별 마스크 쓰는 방법에 대한 일러스트가 대표적입니다. 귀가 큰 엘프와 드워프는 귀부터 꼼꼼하게 시작하고, 아무 생각없는 이즈츠미는 대충 쓰다가 엉망이 되고, 코볼트는 마스크 형태부터 다르지요.

만화들도 풍성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라이오스와 파린이 상단과 동행하며 여행한 일화를 다룬 짧은 만화, 등장인물이 총 출동하는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 이벤트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네요. 오코노미야키를 햄버거처럼 만들어 먹는 라이오스의 모습도 재미있었고요. 갓 태어난 파린을 본 뒤 라이오스가 마을 동물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은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새롭고 신선한 만화가 많습니다.

“던전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그림들도 흥미롭습니다. 작가가 먹고 싶은 요리들을 그린 일러스트는 “던전밥” 특유의, 요리와 재치가 결합된 유쾌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용의 학교는 산 위에” 관련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 등, 작가의 팬이라면 더욱 즐길 거리가 많아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라이오스 파티보다는 카나리아 부대 소속 엘프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나, 마물과 마물 요리 관련 그림이 거의 없다는 점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책 가격도 다소는 높은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이 료코의 팬이라면 소장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던전밥”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4/06

파노라마 섬 기담 - 에도가와 란포 / 박용만 : 별점 2점

에도가와 란포 파노라마 섬 기담 - 4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용만 옮김, 이성규 감수/시간의물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그리는게 취미인 인기없는 작가 히토미 히로스케는 어느날, 친구로부터 대학 동창인 거부 고모다 겐자부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모다와 히토미는 쌍둥이처럼 닮았었기에, 히토미는 자신이 고모다가 될 계획을 꾸몄다.
계획이 성공해서 고모다가 된 히토미는 고모다가의 돈을 이용하여 공상하던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가 히토미의 정체를 눈치챘고, 히토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굳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 중 한 편. 1926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중편 분량으로 히토미가 고모다가 되기 위해 벌이는 작전을 그린 전반부, 고모다의 재산으로 꿈꿔오던 유토피아를 만든 뒤 그곳을 아내 치요코와 둘러보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꽤 재미있습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변장,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의 존재를 없앤 방법, 원래 있었던 고모다의 시체를 파낸 뒤 옆의 다른 묘에 묻어 은닉한 방법 등 모두 비교적 현실적이면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간질 발작으로 사망한 뒤 다시 살아난 사례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높고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고모다의 시체를 파내는 장면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렇잖아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솜씨는 역시다 싶더군요.
다만 아무런 조명도 없는 칠흙같은 밤에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꺼낸 뒤 옆의 무덤에 파묻어 깜쪽같이 위장한다는건 실제로는 무척 어려웠을겁니다.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반면 후반부의 유토피아(아마도 '파노라마 섬')를 치에코와 둘러보는 장황한 묘사는 별로였습니다. 상상력만큼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림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설득력도 낮습니다. 아무리 눈의 착각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넓이 자체를 혼돈할 만큼의 조작을 자연 환경에서 구현했다는건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게다가 이 공간을 많은 사람들까지 고용하여 채웠다는건 더욱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숙식 및 기본 생활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탓입니다. 차라리 제목처럼 거대 파노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는게 말이 되었을겁니다.
치에코를 살해한 뒤 기둥에 숨겼는데, 이를 탐정 기타미 고고로(아마도 아케치 고고로?)에게 들킨 뒤 자살한다는 결말도 급작스러웠으며, 기타미 고고로가 고모다의 정체가 히토미라는걸 눈치챈건 히토미가 과거 습작처럼 투고했던 습작 때문이었다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쌍둥이처럼 닮았다는건 대학 동창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테니, 이런 증거를 내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전반부만 따로 떼 보면 2.5점, 전체 통합해서는 2점입니다. 발표 당시 시점으로 본다면 볼만한 가치가 충분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할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이상한 공간들을 수없이 접한 시대니까요.

2024/03/18

중고 만화, 정말로 돈이 되나?

예전에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돈이 되는 중고책의 대표로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가 해당된다고 했었는데, 그런걸 증명하는 듯한 쇼핑몰을 발견했습니다. 안양에 위치한 헌책방 글모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인데, 도서 분류에 "희귀"라는 카테고리에 고가의 중고 만화들이 다수 업로드되어 있네요. 알라딘 중고 서적에서는 취급하지 않았을 해적판도 엄연한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국내 작가 작품보다는 일본 번역본이 많다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그런데 고가인 희귀본들 중 납득이 안되는 책들이 꽤 많더군요. '한 놈만 걸려라' 마인드로 중고책에 황당한 가격을 붙여 팔던 알라딘 셀러보다는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갖춘 전문 사업자가 분류하여 가격을 책정했다는 점에서 보다 믿을만은 하겠지만, 정말로 저 가격에 팔리는걸까요? 몇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령 하숙생 1~5" : 1,340,000원!
아로 히로시의 "유우 앤 미이"의 해적판. 지금은 잊혀졌지만, 80년대 잠깐이나마 '파천황 캐릭터 개그'를 대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연재 당시 거의 실시간으로 접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해적판으로 출간되었는지는 몰랐네요. 굉장히 좋아했고, 즐거웠던 추억이 있는 작품이지만 정식 출간본도 아닌 책에 이 가격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은 '만화도서관 Z'에서 원본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 말이지요. 전 8권인데 왜 5권까지인지도 모르겠고요.

"노만 1~3" : 620,000원
데즈카 오사무 작품. 책 상태가 미개봉 소장품이라 가격이 올라간 측면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이미 e-book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반 독자는 저 가격을 주고 살 이유가 없는 셈이지요. 저 금액으로 구입하는게 누구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캔디 캔디"는 이 애장판 외에도 여러 버젼이 '희귀' 카테고리에 등록되어 상당한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이 4권짜리 애장판은 저도 소장하고 있는거라 가격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서점 안에서만 "캔디 캔디"를 5~6 질은 보았는데 정말 '희귀'가 맞는걸까요? 우리나라의 "캔디캔디" 대부분이 이 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이 가격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8권 : 150,000원
완결까지 전 시리즈를 갖춘 것도 아닌데 150,000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한, 두 권 정도만 빠진 셋트를 가지고 있는 수집가를 위한 듯 한데, 과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 외에도 대체로 이런 식이라 가격 책정이 무슨 기준인지 정말 알고 싶어졌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사이트 한 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대지옥전진광대왕"은 얼마에 팔릴지 물어보고 싶어지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가까운 시일에 한 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2023/09/13

테라사와 부이치 별세

관련 기사

데뷰작이자 대표작인 <<우주해적 코브라>> 시리즈를 비롯하여 <<미드나이트 아이 고쿠>>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만화가 테라사와 부이치님이 2023년 9월 8일, 향년 68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다이나막 콩콩 코믹스에서 출간되었던 해적판 <<우주해적 코브라>>에 푹 빠져서 사 모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저물어 가네요. 
작가 생전에 <<우주해적 코브라>> 영화가 더 진행되지 못하고 사장된게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3/06/22

오아시스 식당 - 아베 야로 외 / 정문주 : 별점 2.5점

오아시스 식당 - 6점
아베 야로 외 지음, 정문주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문필가, 편집자이자 만화가라는 사코 후미오가 심야식당의 작가 아베 야로와 함께 맛집을 돌아다닌걸 기록한 에세이 모음. 모두 20곳의 식당이 소개되며, 아베 야로와 사코 후미오의 짤막한 만화, 둘의 이런저런 요리를 주제로 한 대담이 함께 수록된 구성입니다.
자기 주장이 약하고 순전히 가게의 맛과 멋을 찬양하는 착한 글들이라는건 심야식당과 일맥상통합니다. 누군가의 쉼터같은 오아시스 식당을 소개하는데 험한 말을 쓸 수야 없었겠지요.

소개된 가게도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전부 대중 식당으로 2~3대가 이어 운영하는 노포가 많다는 겁니다. 일본 양식에서 밥을 함께 담아내는 방식을 처음 고안했다는 유명식당 연와정 - 현재 3대째 - 에서 시작해서, 원조 돈가스 카레격인 '가와킨 덮밥'을 만든 가게의 후계자 - 4대째 - 가게처럼요.
이런 유명 노포들 외에 본인들이 직접 검증한 동네 맛집 소개도 충실하다는게 두 번째 특징입니다. 그래서 현재 사는 곳인 도쿄, 그리고 근처 가나가와 맛집 소개가 12곳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런 류의 책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고치 맛집도 6군데나 등장합니다. 둘 다 고치 출신인 덕분이지요. 고치 명물 가다랑어 다타키는 다른 작품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베라야키같은 그 지역 사람만 아는 명물 소개는 신선했어요. 얇은 밀가루 반죽에 가쓰오부시, 파래, 파, 덴푸라를 올리고 반죽과 계란을 풀어 덮고 뒤집은 뒤 소스를 발라 먹는 요리라네요.
세 번째 특징은 왠지 모르게 친숙한 식당이 많다는겁니다. 우선은 심야 식당과 관련된 가게가 있습니다. 고엔지의 중화 고토부키로, 가게 명물 부추달걀볶음은 심야식당의 메뉴로도 등장했었지요. 녹말 소스를 끼얹은게 특징입니다.
그 외에도 호놀룰루 식당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칼럼에 등장했고, 대낮부터 술을 판다는 노가타 식당은 <<고독한 미식가>>의 한 에피소드가 바로 떠올랐어요.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성인영화계의 스타였다는 주인이 운영하는 주점 데라코아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등장해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요. 가본적은 없지만 다 친숙한 느낌입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도키와장 멤버들이 단골이었던 라면가게 마쓰바! 제가 좋아하는 <<만화의 길>>에도 여러차례 등장했었지요. 언젠가 방문해서 라멘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주다'도 판다니 라면에 한 잔 곁들여야 할테고요. 


물론 맛은 큰 기대하지 않습니다. 글을 보니 전문가가 아닌, 2대의 부인이 조리를 하고있다니까요. 그야말로 가정식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게 더 <<만화의 길>> 스타일 - 고생스럽지만 잔 정이 넘치던 그 시기 - 이라고 생각됩니다.

밥집 탐방이다보니 요리를 따라하기는 힘든데, 한번 해봄직한 요리도 몇 가지 있어요. 요코하마 사이타마야 식당의 커피 소주가 그러합니다. 얼음이 든 큰 유리잔에 1/3 정도 소주를 붓고 그 위에 옛날 느낌 커피 (커피 우유 느낌이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다방 커피나 맥심?)를 부어 만든다고 합니다. 요새 하이볼 등이 MZ에게 유행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맥심 소주볼' 이라고 팔면 어떨까 싶네요. 술과 커피를 섞어 마시면 건강에 굉장히 안 좋다고 하기는 합니다만....
가와킨 덮밥도 밥 위에 채 썬 양배추, 돈가스를 올리고 닭고기 카레를 끼얹었다니, 맛은 다를지언정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렇게 갈 수 없는 곳을 남의 눈과 입과 귀로 접한 셈으로, 푸근하고 정감어려 좋았으며 재미있는 내용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갈 수 없는 곳들이며, 유통기한이 있을 수 있다는건 아쉽네요.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뒤로 갈 수록 식상해진다는 문제도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5/07

우타카타 다이얼로그 1~3 - 이나이 카오루 / 유유리 : 별점 4점

우타카타 다이얼로그 3 - 8점
이나이 카오루 지음, 유유리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카타노는 드러그 스토어 와카바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타가와를 좋아한다.

만화 원작으로 유명한 마사토끼는 콘티 느낌의 자필 만화로도 유명하지요. 자기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주요 소재는 말장난 중심의 개그, 기묘한 경험담과 생각들, 그리고 재미있었던 만화들의 소개입니다.
이 중 만화 소개를 가장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이유는 마사토끼의 말주변과 생각이 범상치 않고, 워낙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기에, 낚여서 구입했지만 실망한 작품들도 많아요. 대표적으로는 <<이 삶을 다시 한번>>과 같은 도다 세이지의 만화, <<시오타 선생과 아마이 양>>등이 있지요. <<산괴담>>도 별로였었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아래와 같이 워낙에 강력 추천하길래 속는 셈 치고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대박이다! 간만에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한 만화가 나왔네!" 가 맞더군요. 완전 제 취향이었어요.
고등학생 카타노와 우타가와의 귀여운 밀땅을 담담하게, 평범하게, 지극히 일상적으로 그리는데 둘의 대화와 비교적 평범한 행동들 - 쇼핑, 노래방, 사진 촬영, 화장 등 - 만으로도 에피소드가 이루어지는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아래와 같이 우타가와의 별 거 아닌 말에 과하게 반응하는 카타노를 보는 재미가 큽니다. 작화도 치밀하고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도가 높고요.


평범하지만 둘의 캐릭터도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불량은 아닌데 금발에 기묘한 패션으로 오해를 사는 카타노도 그렇지만, 냉정해 보이는데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튀어버리는 우타가와야말로 '찐'입니다. 개인기로 '흐미'를 할 줄 아는 여고생이라니,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데, 요리 관련 소재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었어요. 패밀리 레스토랑 드링크 바에서 제공하는 공짜 음료수를 섞어 만드는 우타가와 블렌드, 구운 떡에 간장 버터를 바르고 김을 말아서 밥 위에 올려먹는 우타가와 찹쌀떡 덮밥, 오무라이스를 만들려다 실패하고 만든 날달걀 밥 플러스 간장 버터 등..... 이에 대한 묘사들도 발군입니다.


군고구마가 사라진 이유를 일상계 추리물처럼 풀어낸 에피소드도 있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고요.

3권으로 마무리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별다른 위기 없이 둘이 서로 사귀게 되는 걸로 끝인데, 정말 딱 좋은 분량과 결말이었어요. 1권에서 고교 데뷰하고 3권에서는 입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는, 1권에 1년씩 시간이 흐르는 것도 최근 만화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마음에 들었던 점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극적 긴장감은 찾아볼 수 않지만, 일상계 개그만화로는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일상계 추리물 느낌의 에피소드들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런 감성으로 일상계 추리물을 그려주어도 참 좋겠다 싶네요.

2023/04/30

낮의 목욕탕과 술 - 구스미 마사유키 / 양억관 : 별점 2점

낮의 목욕탕과 술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지식여행

<<고독한 미식가>> 원작으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을 먹는 10군데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와 장단점은 같은데, 장점은 <<술 한장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를 연상케하는 인생관이 글에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그야말로 소다츠스러운 생각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생각이지만 소다츠라면 그야말로 격렬한 동의를 보일 법한 발상이에요.
맛깔나게 잘 쓴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유가 아주 찰집니다. 한낮에 타는 완행 열차를 '어른용 원숭이 열차 (아마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유원지 코끼리 열차겠죠?)'에 비유하고, 목욕탕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건 '낯선 땅의 야만스러운 공기 속에 나 몰라라 하는 이방인이 되어 몸을 던져 넣는 스릴이 느껴진다'는 식이에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오래된 목욕탕 안젠탕을 블루스에 비유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폐자재를 때는 목욕탕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현재와 맞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갈 데 없는 괴로움, 끝도 없이 찢어지는 마음을 우스꽝스럽게 절규하는 블루스가 느껴진다는건데 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 비유가 직접 작사한 가사가 어우러지는데, 이 부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음식의 군사>>에서 오뎅 먹는걸 제갈량의 진법에 비유하는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니까요.
벚나무들을 스쳐갈 때 차량 전체가 벚꽃색으로 물든다는 등 묘사력도 좋고, 특히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찰집니다. 이건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장점, 비유와 묘사력, 그리고 소다츠스러운 감성이 잘 살아있는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아, 맛있어.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지혜 따위 필요 없다. 옳고 그른지 따질 것도 없어. 작전도 포기. 내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꼰대 아저씨 주제에,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 신제품으로 변신한 내가 전면적으로 맥주를 맞이한다.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물론 임금님은 나다. 어리석은 임금. 벌거벗은 채 왕관 하나 달랑 쓰고 당나귀 귀를 쫑긋 세워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벛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지극히 소다츠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더해 "술꾼이란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라도 돌진한다."는 말까지 더하면 그냥 소다츠에요. 

목욕에 대한 찬양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년 만에 목욕을 하게 된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빛이 있었다. 악마가 사라진 세계가 수증기 속에 펼쳐진다. 성스러운 탕 안에서 벌거벗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묘사는 목욕을 부활과 천지창조에 비유한건데, 이거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네요.
만화가답게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일본식 목욕탕이 옛날 신사 스타일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는 목욕이 종교와 가까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목욕탕에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식들도 있습니다. 긴자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요. 작가가 전설의 만화잡지 <<가로>>에서 데뷰 후 겪었던 편집장 나가이 씨와의 에피소드 - 돈이 없으니 맛있는걸 대접할 수 없다. 그래서 목욕탕으로 먼저 데리고 가서, 싸구려 술집의 맥주를 몇 배 더 맛있게 마시게 하려고 했다 - 도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겠지요. 물론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면 죽어버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가이 씨는 영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씁쓸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 책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여전합니다. 지극히 꼰대스러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데,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건 목욕탕 손님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 예를 들어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지 모르게 좀스럽다' -설명을 덧붙여 조롱거리처럼 삼는건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남을 폄하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움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음악 파트너 구리 짱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로 비유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 짱이 이 글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글을 서슴없이 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본인도 바보로 비하하지만, 자신을 비하한다고 남을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음식 측면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욕'에 더 집중하는 탓입니다. 꼬치구이 가게 <<만페이>>의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소프트 햄버그스테이크만 처음 들은 메뉴라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어육 소시지를 다져 만든 햄버그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한번 쓱 읽기는 괜찮은 에세이이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만한 글은 아닙니다. 이와마 소다츠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아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4/15

다 덤벼! 1~8 - 고바야시 마코토 : 별점 3점

[중고] 다 덤벼 8 - 6점
고바야시 마코토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프로 레슬러 삼사랑 (산시로)은 미국 원정을 마치고 일본에 복귀한다. 그러나 몸담고 있던 단체가 망해버렸고, 동료들도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삼사랑은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으로 일하며 생활에 안정을 찾지만, 어느날 과거 동료였던 오두가 찾아온다. 자신이 출범시키는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 '드림팀'에 함께 참전하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오두의 처참한 패배 뒤 옛 동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삼사랑은 다시 프로 레슬링의 세계로 뛰어들고, 오두를 망가트리고 레슬링 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옛 후배이자 현재의 격투킹 적성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지금은 거의 잊혀진 만화가 고바야시 마코토의 작품. 이 작품이 처음 발간된 90년대 중, 후반에는 국내에서도 이런 저런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스타일과 디테일 모두를 갖춘 작화 실력과 조금은 어설프고 황당한 개그로 즐겁게 볼 수 있는 만화들이었죠. 그 중 최고 인기작은 고양이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그린 <<What's Michael>>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만화가 더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게 이 작품, <<다 덤벼!>>와 버블 경제 시절 긴자 호스테스의 일상과 사랑을 그렸던 - 심지어 순애물! - <<미스 헬로우>> 였어요. 

<<다 덤벼!>>는 일본에서는 꽤나 인기 있었다는 <<1,2,3 산시로>>의 후속작입니다. 연재 기간, 권수를 보면 <<1,2,3 산시로>>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고, 오히려 후속작인 이 작품과 <<격투 탐정단>>은 버젓이 소개된 상황이 조금은 웃깁니다. <<1,2,3 산시로>>가 80년대 초반 만화라 소개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던 탓이겠지요? 80년대를 풍미했던 다카하시 루미코의 대표작들 - <<시끌별 녀석들>> 등 - 이 국내에 정식 소개된 당시에 처참히 실패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나마 <<메종일각>>은 <<도레미 하우스>>라는 다소 괴이쩍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완전판으로 출간되었지만, 역시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요. 시대가 너무 많이 흐른 탓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꽤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현재의 UFC 같은 이종 격투기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대체로 프로레슬링 경기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타격기, 관절기가 모두 실전처럼 사용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적성과 대결하는 최종 클라이막스는 현재의 이종 격투기와 별로 다를게 없기 때문이에요. 레슬러들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프로 유도'라는 단체의 리더 유정기와 적성의 대립도 치밀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리얼 이종 격투기라 할 수 있겠지요.
또 전개를 통해 ''프로 레슬링이야말로 최강의 격투기, 프로 레슬러 삼사랑은 지상 최강의 사나이"라는게 - 사실 여부를 떠나서 -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브록 레스너가 UFC에서 - 약물 여부를 떠나 - 유의미한 활약을 했던게 충분히 그랬음직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를 뒷받침하는ㅡ 완숙의 경지에 달한 고바야시 마코토의 작화도 좋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들은 프로 레슬링 만화 중에서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을 다툴 만큼 멋져요. 


데스 매치, 시멘트(프로레슬링에서 승패가 정해진 연출된 시합이 아닌 실전 시합) 등의 전문 용어와 삼사랑의 피니쉬 '브레인 바스터 (위 이미지)' 등 - 일본식 표현이지만 - 관련 기술명도 비교적 (저먼 수플렉스를 더맨 수플렉스라고 표시하는 등 오류는 있습니다)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존 유명 프로 레슬러들의 카메오 등장이라던가 작가 특유의 썰렁한 개그들도 볼거리입니다.
밑바닥에서 출발한 주인공이 한단계, 한단계씩 위로 나아가며 적을 쓰러트리고 결국 최종보스까지 물리치는 전형적인 왕도식 전개도 확실한 재미 요소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일본 이름의 한국식 독음을 비롯, 좌우반전 등의 문제가 있는 오래전 출간작이기는 하지만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한 번 찾아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알라딘 중고가가 마지막 권 (8권)은 무려 5만원이 넘는 가격에 등록된게 있는데 당연히 그 정도 가치가 있는건 아닙니다.....

2023/04/13

도라에몽 이야기 - 무기와라 신타로 / 이은주 : 별점 1.5점

도라에몽 이야기 - 4점
무기와라 신타로 지음, 이은주 옮김/대원씨아이(만화)

'후지코 후지오'는 만화 소년 후지모토 히로시가 절친 아비코 모토오와 함께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필명입니다. 이 둘의 데뷰와 파란만장한 연재 생활, 그리고 성공은 <<만화의 길>>과 그 후속작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후지모토 히로시가 아비코 모토오와의 합작을 중단하고, 후지코 F 후지오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그의 어시스트로 일했던 무기와라 신타로가 그린 추억담입니다.

무기와라 신타로는 어린 시절부터 도라에몽과 후지코 후지오를 동경하여 만화가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후지코 후지오 상'이라는 만화상에 입선한 뒤, 대학을 중퇴하고 후지코 프로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입사합니다. 그 뒤 여러가지 만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치프 어시스턴트까지 올라가는데, 후지모토는 병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진행 중이던 유작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는 후지코 프로의 전력을 모아 완성하고요. 나머지 원고가 유품에서 발견된 덕분이었죠.
이런 이야기를 치프 어시스턴트답게 도라에몽 작화 그대로 그려낸 만화가 100여 페이지, 그리고 십여 페이지 남짓한 사진 자료가 수록된 구성입니다.

<<만화의 길>>을 재미있게 읽어서 구입했는데, 솔직히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만화가 후지모토 히로시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제자가 그렸기 때문입니다. 무기와라 신타로와 후지모토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모두 미담 뿐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신타로의 원고를 꼼꼼하게 보고 평가를 해 주었다던가, 다양한 세계를 보고 자극을 받으라며 LD로 영화 감상회를 열어준다던가 연극 공연도 데려다 주었다는 등으로요. 후지모토 선생님은 굉장해! 일색인데다가 딱히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별 재미가 없었어요.
도라에몽의 세로 줄무늬는 톤이 아니라 펜선이고, 도라에몽의 세계가 만화가 후지모토의 세계와 어느정도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 - 진구네 집 검은 다이얼 전화가 버튼식 무선 전화로 바뀐 이유는 후지모토 집 전화가 바뀐 덕분 - 는 재미있었지만 극히 일부에 그칩니다. 제가 기대했었던건 솔직히 이런 이야기였는데, 분량이 너무 적었어요. 제목에 낚인 기분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대단한건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라에몽의 팬이더라도 딱히 권해드릴 만한 만화는 아니었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가격도 비싼 편이니까요,

2023/04/02

유럽의 시간들 - 루시 나이즐리 / 김보은 : 별점 2점

유럽의 시간들 - 4점
루시 나이즐리 지음, 김보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부제는 '스물일곱 뉴요커 루시의 그림 여행 일기.' 얼마전 읽고나서 별점 4점을 주었던 <<맛있는 인생>>의 작가 루시 나이즐리의 유럽 여행기입니다. <<맛있는 인생>>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여행기는 보통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낢부럽지 않은 네팔 여행기>>처럼요. 그래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러웠습니다. '만화'로 보기 힘든 책이었던 탓이 큽니다. 기승전결이 없는 개인 일상을 기록했기 때문이에요. 부제처럼 '그림 일기' 인 셈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여행기가 개인 일상입니다. 하지만 '만화'라면 여행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냈어야 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고요. 그러나 그런 에피소드는 단발성 컷에 그치고, 솔직히 별 재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스웨덴 남자 헨리크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 연애 등에서 촉발된 스물일곱 나이로 떠올렸음직한 고민들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할까, 애는 낳을 수 있을까, 평범한 삶은 무엇일까 등등등.... 하지만 루시 나이의 두배 가까이를 산 제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고민들이라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책 속에 답이 나옵니다. 작 중에 나오는 와인 축제 주최자 데니스는 말합니다. 스물 일곱은 '허락받은 나이'라고요. 경험하고, 실패하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나이. 게다가 루시는 유럽 만화 축제에서 초대할 정도로 성공한 만화가라는 확고부동한 직업이 있습니다. 본인이 노력한다면 그쪽 일을 찾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거에요. 그래서 솔직히 뭘 고민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야기는 루시가 나이에 따른 인생의 단계가 있다는걸 깨닫고 끝나는데, 깨달음도 '계획' 보다는 '변화'에 방점을 찍은게 아직 어리다 싶었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겠다.... 는 느낌이었거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별로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