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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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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이야기꾼 여자들 - 기타무라 가오루 / 정유리 : 별점 2.5점

이야기꾼 여자들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북하우스

"하늘을 나는 말"로 유명한 기타무라 가오루의 단편집. 모두 1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은 이 작품 외에 "시미가의 붕괴"뿐으로, 유명세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소개가 안되네요.

이야기를 해 주는 여자와 계절만 바뀔 뿐, 부유한 한량이 여러 여자들에게서 특이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동일한 형식을 지니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액자식 구성의 연작 단편이라 할 수 있는데 구성은 "천일야화"가, 내용은 모리 히로시의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가 떠오르더군요. 

담고 있는 장르의 폭도 넓습니다. 서늘한 느낌, 기묘한 맛 류의 전형적인 환상 문학 이야기들 중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추억담,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추리적 속성은 전무합니다. 

그래도 환상 문학 쪽 장르물은 마음에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환상 문학 단편에 작가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결합되어 있어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건 좋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초록 벌레"

초록색 벌레가 입에 들어왔는데 그 이후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 반전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내가 아니야"

너무나 바쁜 아내를 복제한 마네킹을 사랑하게 된 남편의 이야기. 흔히 있는 설정이지만 잔잔한 전개와 마지막 여자의 말은 기억에 남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 작품집을 샀는데, 알고 있던 메로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실려있더라는 내용입니다. 작품의 메로스는 친구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는군요. 환상 문학이 일상계와 결합한 좋은 결과물이라 생각되네요.

"걸을 수 있는 낙타"

중동 지역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산 기념품인 "유리병 그림" 속 낙타가 움직이더라는 이야기. 약간 스멀스멀한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어둠의 통조림"

여섯 명의 친한 주부가 모여 라벨을 벗긴 통조림을 추첨하는 행사를 갖는데 통조림이 일곱 개가 등장했다는 이야기. 괴통조림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다는 결말은 "환상특급" 느낌이 났습니다.

"선물"

아, 이, 우, 에...로 이어지는 선물을 해 주는 남자 동료에 대한 이야기. "에가오"의 선물은 지하철에 있는 마크에 그려진 웃는 얼굴(스마일 마크)이라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로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전개가 좋았습니다.

"바다 위의 보사노바"

장거리 페리 가수가 무례하고 매너없는 손님들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비결을 그린 작품. 내용은 그냥 그런데, 비결만큼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음악은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의 귀에도 들리기 때문, 즉 공기와 같은 것으로 들을 생각이 없어도 공존하고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한다고 하네요.

"마술"

마음에 들었던 남자들이 모두 마술도구인 "P"가 그려진 상자를 꺼내더라는 일상 속 기묘한 이야기. 결말이 조금 난데없어서 아쉽기는 하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mbarvalia"

자기와 똑같은 취향의 친구가 결혼을 하자, 자신이 결혼해야 할 남자가 그 남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남자의 애독서를 바꿔치기하여 혼자 즐긴다는 내용입니다. 일상계 불륜물이랄까요? 여튼 기묘한 사고방식이 꽤 괜찮았어요.

"스이코(水虎)"

제목의 스이코는 갓파를 뜻합니다. 이야기꾼 여자의 회사 동료가 갓파의 후예라는 내용인데 만화 등에서 흔하게 보아온 설정을 일상계스럽게 전개한 것이 독특했습니다.

2022/01/22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 정영희 : 별점 3점

혼밥 자작 감행 - 6점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일본의 만화가겸 에세이스트 쇼지 사다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에서 넌센스 만화의 제왕으로 접했던 작가지요. "만화의 시간"도 구입한지 2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니 중고가가 어마무시하게 형성되어 있더군요. 살짝 기뻤습니다.

하여튼, 별 기대없이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혼술과 혼밥에서 맛있게 먹기 위한 자기만의 디테일과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사랑하는 먹부림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마 소다츠가 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글들을 쓸 거라 확신이 들 정도에요. 설견주는 우아와 숭고의 세계이므로, '하아~ 쓰읍~' 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부산스럽게 고기를 구울 수도 없다던거나,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단연코 낫토 정식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그대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애정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고민과 연구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립하는 모습도 이와마 소다츠스러웠는데, 200억엔 짜리 레시피라는 '정어리 통조림 덮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한, 최고의 레시피라는데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정어리 통조림 뚜껑을 따고, 그 째로 가스 불 위에 올려 데웁니다. 덮밥용 그릇에 뜨거운 밥을 풀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흰자를 잘게 다져 5mm 두께로 덮고요. 잘게 다진 양파도 같은 식으로 덮은 뒤, 뜨거워진 정어리 캔을 뒤집어 밥 위에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줄기를 제거한 무순과 잘게 썬 우메보시를 뿌리면 완성이라는데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어지네요. 우메보시는 없으니 대신 레몬을 뿌리면 되겠지요? 참치 통조림으로 해도 괜찮을 듯 싶어요. 이외에 버터 간장밥이나 계란프라이 덮밥에 대한 작가만의 레시피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만 따라해봄직했던 무채 된장국, 두부 한 모 통째로 덮밥 레시피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이런 요리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에세이의 매력 포인트인 거지요.

라멘집 사장을 관찰하거나, 카레 국물 부족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돈가스 카레를 먹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꽤나 긴 분량의 고찰도 그러하고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기 망치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샬라핀 스테이크'라는 나름 전문성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의외의 모습도 볼거리였고요. "오니기리는 속 재료 주변을 밥이 감싸고 있어서 첫 입은 맨밥일 경우가 많아서 정말 싫다"는 글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도 좋았고, 직접 그려낸 일러스트들도 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래의 돈가스 카레의 종류에 대해 그려낸 그림처럼, 내용에도 딱 들어맞고 이해하기도 쉬운 일러스트들이었거든요.

물론 자신의 주장을 절대 옳다고 우기며 절대로 고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은 꼰대스럽기는 합니다. 내 주장이 절대 옳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또 사회적인 관계를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이 정도 경력, 나이가 있는 작가가 혼밥, 혼술과 자작을 추구한다는게 쉬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먹부림 에세이 중에서는 재미, 가치 모두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고집은 "맛의 달인" 원작자 카리야 테츠, 이자카야 술안주 류가 대부분인 소재와 유머스러운 분위기는 "고독한 미식가" 등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양 쪽의 장점만 잘 합쳐서 재미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술 한잔 인생 한입"처럼 만화로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전 4컷만화스러운 그림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었다면 꽤 잘 어울렸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저자도 지금은 만화가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인지되는 경향이 큰 것 같기는 합니다만...

2025/04/05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유감.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2점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센텐스

아서 코난 도일 경의 국내 미출간 단편집이라 하여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챗GPT를 통한 자동 번역이 어느 정도 보편화된 시대에, 이런 수준의 번역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래는 이 책의 "폴스타호의 선장"의 한 부분입니다.

앞으로는 비스킷 반 탱크, 소금에 절인 고기 세 통, 커피콩과 설탕의 매우 제한된 공급이 남아 있었다. 후방에는 통조림 연어, 수프, 하리코 양고기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사치품이 많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50명의 인원이 먹기에는 매우 한정된 양이었다.

창고에는 밀가루 두통이 있고 담금질한 담배만 많았다. 모두 합쳐서 18일이나 20일 동안 절반의 배급으로 선원들을 지탱할 수 있는 양이었다. 

...

"여러 시즌 동안 우리나라에 온 배 중에는 오래 된 폴스타호 만큼 많은 석유 돈을 벌어들인 것이 없었고, 너희 모두가 그 돈을 나눠가졌지. 다른 불우한 녀석들이 와이프를 편안하게 남겨두고 돌아오지 못하는 동안 너희들은 그 여유를 누렸다. 너희가 그것을 얻은 것에 대해 내게 감사해야 하며, 우리가 실패한 것에 대해 불평할 이유는 없다. ."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담금질한 담배'라니....  아래는 원문(저자 사후 70년이 지난, 저작권이 풀린 퍼블릭 도메인이라 무료입니다)을 찾아서 챗GPT에게 번역을 시킨 결과물입니다. 그냥 보아도 수준 차이가 확연하지요. 번역본이 임의로 원문을 줄인 것도 눈에 뜨이고요.

선수 쪽에는 비스킷 반 통, 소금에 절인 고기 세 통, 그리고 커피콩과 설탕은 아주 적은 양만 남아 있었다. 선미 쪽 창고와 보관함에는 통조림 연어, 수프, 해리컷 양고기 등 사치품에 가까운 식료품들이 제법 있었지만, 승무원 50명에게 돌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저장실에는 밀가루 두 통과, 담배는 무제한으로 비축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따져봤을 때, 모든 인원이 절반의 배급량으로 나눠 먹어도 18일, 길어야 20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양이었다.

...

“그동안 이 땅에 오는 배들 중에서 ‘올드 폴스타’호처럼 많은 기름 돈을 벌어들인 배는 없었고, 여러분 모두 그 덕을 봤잖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집에 아내를 안심시키고 떠났지만, 다른 불쌍한 놈들은 돌아와 보니 여자가 구빈원에나 들어가 있지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를 원망할 수 있다면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이번 전에 대담한 모험을 해서 성공했었고, 이번엔 실패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실패했다고 해서 울고불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 "

하여튼, 이따위 결과물을 돈 받고 팔려고 했다는게 황당하기만 합니다. 도저히 더 읽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기에 점수를 따로 주지는 않겠습니다만, 앞으로 이런 책은 사라져주면 좋겠네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북극성 호의 선장"은 다른 단편집에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단편은 무료 텍스트를 챗 GPT에 번역을 시키는게 훨씬 나을겁니다.

2019/12/14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키쿠즈키 토시유키 / 오광웅 : 별점 3점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6점
키쿠즈키 토시유키 지음, 오광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굉장히 특이한 주제를 깊숙이 파고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제목 그대로 세계의 전투 식량과 그 역사, 기타 관련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들의 현용 전투 식량에 대한 소개부터가 엄청난 수준입니다. 레이션 별 칼로리까지 소개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한 쇼핑몰에서 다양한 국가의 전투 식량을 구입할 수 있어서 특별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루의 3끼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등 이 책에서 제공하는 상세 정보를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는 확실합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전투 식량에는 치킨 누들, 즉 라면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전투 식량은 그 맛이 빼어나서 과연 프랑스답다, 스위스 전투 식량은 그냥 민간 시장용 시판물을 패키징한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국가들 전투 식량 중에서는 러시아 것이 가장 탐나네요. 

이러한 현용 전투 식량 소개 외에도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병영식의 역사 등 관련 자료도 풍부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부터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깡통 통조림을 생산했던 밴 캠프사와 언더우드사는 현재도 건재하며, 당시와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니 한 번 구해서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뒤로는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현대의 병영식이 소개되는데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병영식, 전투 식량의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일람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투 식량이 별 차이가 없는게 좀 의외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어느정도 전투 식량의 형태가 완성된 탓이겠지요?
그리고 병영식은 기본적인 주식 외에도 초콜릿이나 잼, 사탕류와 기타 국가별 특이한 음식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레이션을 구성하는 가열제와 액세서리 백으로 제공되는 각종 액세서리 및 커틀러리와 식기, 조리 도구 등 관련된 아이템들 소개도 빼 놓지 않습니다. 

전투 식량 속 단골 아이템을 꼽아서 언제부터 전투 식량에 포함되어 제공되었으며, 국가별로 어떤 차이를 보내는지를 알려주는 챕터도 흥미로우며, 맨 마지막에 '오래전 야전식을 재현하자!'는 취지로 소개하는 미국 독립전쟁, 남북전쟁과 구 일본 육군 야전식 레시피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딱히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요.

아울러 이 모든 내용이 방대한 도판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확실히 일본인들이 뭔가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드는건 잘하네요.

그러나 일본인이 쓴 책이라 일본 자위대,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 육군의 전투 식량과 병영식에 관련된 정보가 많다는 건 아쉽습니다. 자위대 전투 식량은 전 메뉴를 소개하고 있기까지 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도 대한민국 육군의 전투 식량도 소개되고 있다는게 위안거리겠지요.
그리고 전투 식량 소개와 역사 및 기타 정보가 이른바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제 3국이나 아프리카 등의 전투 식량 소개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저처럼 '잡학다식' 쪽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거든요. 전투 식량도 좀 사 먹어 봐야 겠군요. 러시아, 없다면 프랑스 것이라도요. 또 AK Trivia book 시리즈도 몇 권 더 구입해 보아야겠습니다.

2017/07/28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피터 노왁 / 이은진 : 별점 2.5점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6점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문학동네

제목 그대로 섹스 산업과 무기 산업, 그리고 패스트푸드 산업을 통해 현대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미시사 / 과학사 서적입니다.

섹스 산업이나 무기 연구를 통해 여러가지 과학이 발전하고, 그것이 실생활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통조림, 전자 레인지 등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을 모두 망라하여 소개한다는, 집대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또 통조림과 같이 전쟁을 통해 등장한 음식들은 알려진 것들이 많았지만 '패스트푸드' 산업을 놓고 설명하는 책은 전에 접한 적이 없어서 신선했어요. 대표적인게 맥도날드의 품질 관리 방법입니다. 비좁은 공간을 감안하였을 때 가장 주방을 잘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맥도날드는 잠수함 주방 설계 경력자를 고용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장소에 적용 가능한 표준화 작업, 튼튼하고 청소하기도 편한 주방을 설계하여 보급하게 됩니다. 또 감자 튀김의 전 매장 표준화를 위한 품질 관리 및 튀김 기름 온도를 측정하여 알려주는 센서 감지기 등 신기술의 도입, 물류와 유통 효율화 등 전 과정에 걸쳐 무기, 전쟁 관련 기술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알려줍니다. 맥 너겟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닭고기 품종과 뼈에서 고기 발라내는 기계의 도입이 중요했다고 하네요.
군을 위해 개발된 기술로 만들어진 오렌지 쥬스 냉동 농축액이 현재의 '미닛 메이드'를 만들었다던가, 분무 건조 기법으로 만들어진 초코 우유 분말 네스퀵,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의 유래 등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스팸에 대해 설명하면서, 스팸이 이미 현지화되어 일상적으로 먹는('무스비' 같이) 태평양 제도 원주민들이 비만과 그에 따른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현황도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었고요.

전쟁, 무기 산업에서 연구되던 기술이 장난감과 결합되는 이야기들 역시 인상적입니다. 움직이는 스프링 '슬링키', 고무 찰흙 '실리 퍼티' 등이 그것입니다. 당연히 비디오 게임도 전쟁 관련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세 가지 산업의 한 축인 포르노 산업 관련해서는 딱히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비디오 캠코더 시장은 포르노와 결합되어 발전했다는 등 내용도 뻔하고요. 이전에 읽었던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와 비교했을 때 딱히 나은 부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이아나가 폰섹스 중계기지로 이용되어 통신망 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되었다던가 자신의 누드 사진이 디지털 화상 작업에 이용되어 불멸의 명성을 얻은 레나 셰블롬 이야기, 추억의 스타 테라 패트릭 인터뷰 등은 볼만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무기를 연구하던 연구원 출신 라이언이 만들었다고 해서 무기 산업과 마텔을 결부시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워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아울러 내용이 분명 재미는 있는데 문체가 굉장히 딱딱해서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도판이 전무하다는 것은 정말 아쉬워요. 모든 소개된 제품은 사진으로 보강해서 설명해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확실한만큼 호불호는 많이 갈릴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호' 입니다. 이런 류의 서적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2009/08/13

미식견문록 - 요네하라 마리 : 별점 3점

미식견문록 - 6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마음산책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수필집입니다. 홍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구입하고 나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여러모로 꽤 유명한 작가인듯 싶네요.

내용은 제목 그대로 "미식"에 대한 "견문록". 즉 음식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와 레시피, 그리고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 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신변잡기적인 글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다른 미식관련 문헌과 차이점이긴 하지만 큰 중심이 음식과 관련된 일화 소개라는 것은 똑같다고 할 수 있겠죠.

목차별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제1악장 Russian Rhapsody" 는 주로 러시아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극악의 구소련제 통조림 이야기라던가, "할바"라는 궁극의 누가 설탕 과자 이야기가 재미있더군요.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통조림 이야기는 정말 새로왔습니다. 얼마나 맛이 없었으면 농담의 소재로까지 쓰였을까 싶고, 왠지 먹어보고 싶어절 정도였으니까요. 흡사 악평이 가득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요? "할바"라는 설탕 과자 이야기 역시 어렸을때 단 한번 맛본 천상의 맛을 찾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방팔방 찾아다니며 다양한 레시피를 수집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싶었고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대부분 저자의 프라하-러시아 생활 경험담이 대부분이긴 한데 다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새로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당연하겠죠.

"제2악장 Andante Mangiabile" 는 소설이나 동화, 전설같은 친숙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었고 주목할만한 이야기는 "인도 핫케이크!". 저 역시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 "꼬마 깜둥이 삼보" 에 등장하는 핫케이크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 동화의 요지는 삼보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들이 나무 밑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전력질주하며 뱅뱅돌다가 녹아내려 버터가 된 것을 삼보의 엄마가 핫케이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인데 저자는 바로 이 핫케이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벌여 원래 이 동화의 배경은 "인도" 였다는 것. 때문에 버터와 핫케이크는 저자의 의도와 번역이 결합된, 일종의 잘못된 정보이고 원래대로라면 "기이"가 잔뜩 들어간 "난" 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짝짝짝. 이 정도라면 약간 허무하기도 하지만 집요하면서도 끈기있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외에도 모모타로의 기장경단이나 너구리 죽, 과자집 등 친숙하지만 잘 모르는 음식 이야기가 가득한 부분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네요. 너구리 죽은 그 맛이 정말 궁금합니다.

"제3악장 Largo"는 저자의 신변잡기적인 글이 실려있는 부분입니다. 가장 재미있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한 부분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굉장히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시통역할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리가초프 - 고르파초프 - 옐친 순으로 신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잘 먹었는데 신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잘 먹을 수록 확실히 "개혁파"에 가까왔다... 라는 이야기라던가, 앵글로색슨족,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은 것은 "맛없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세계 어느곳에 가도 불평없이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 기발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 외로는 자신이 먹었던, 혹은 접했던 음식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들이 실려 있는데 먹성 좋았던 미식가 삼촌이 유언삼아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인상적이더군요. "역 도시락은 팔각 도시락으로 해라..." ^^;; 정말이지 대단한 집안이에요...

어쨌건 수필집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후딱 읽을 수 있었고 재미도 있어서 만족스러운 도서였습니다. 저자의 시각이나 해석이 독특한 것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한국어판의 지저분해 보이고 내용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삽화, 디자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실 책을 찾으신다면 추천합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2016/10/29

서프라이즈 : 사건편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제작팀 : 별점 2점

서프라이즈 : 사건편 - 4점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MBC C&I(MBC프로덕션)

MBC의 "서프라이즈"는 최근 잘 보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저도 자주 보았던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제 절친 철호군의 애청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이 친구가 얼마나 좋아하냐 하면, 예전에 월드컵으로 "서프라이즈"가 결방하자 짜증을 낼 정도였죠. 아 철호야 보고싶다.... 하여튼, 그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던 이야기들이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한 권은 "사건편", 다른 한 권은 "인물편"입니다. "사건편"에서는 제목 그대로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던 기묘한 사건들 중 약 90여편을 소개해 주고요.

하지만 내용이 의외성이 있다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아틀란티스, 모아이, 마야, 일루미나티, 야마시타 골드, 사해 사본, 코덱스 기가스 등은 이런 저런 곳에서 하도 많이 언급해서, 이제 쉬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소재들이니까요. 게다가 400페이지 정도 분량에 무려 11개 주제, 90여편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탓에 깊게 파고들지도 못합니다. 한 이야기당 4페이지를 할당하기도 버거울 정도이니 당연합니다. 그나마도 소개되는 이야기들도 너무 각색해서 실제 역사가 왜곡되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이유가 병조림 때문이라는 (영국은 더욱 개선된 통조림을 장비)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TV에서 방영한 이야기를 가공한 것임에도 단 한장의 도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밀림 속 신비의 사원과 같은 고대 유적이나 그림, 주요 문화재와 같은 소재는 도판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주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이슬람의 신비의 명검 다마스쿠스 검은 칼 표면의 소용돌이 또는 물결무늬가 특징인데, 이 무늬가 강도와 탄력성을 부여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700도까지 가열한 후 280도에서 담금질을 하였다는 제조법 또한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다마스쿠스 검의 최신 분석 결과로는 탄소나노튜브가 검출되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오래전에 감상했던 "13번째 전사"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분한 이븐 파들란이 전투를 앞두고 준비하던 칼이 떠올랐습니다.

중세 집집마다 상비했던 명약 무미야는 사실 이집트 미라를 갈아서 만든 것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이라를 만들 때 쓴 "몰약" 성분 덕분이라는데 몰약은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성분이 무엇인지는 몰랐는데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동부아프리카 해안 자생 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살균, 정화 능력이 탁월하다네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에 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림 위에 다섯 줄의 평행선을 그리고 제자들의 손과 빵의 위치에 점을 찍은 후 거울에 반전시켜 40초 분량의 찬송곡이 나왔다는군요. 이거야말로 TV로 보았으면 그림, 음악이 실제로 나왔을터라 더욱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 외에도 나우루 공화국이 인광석을 바탕으로 엄청난 복지를 이루었지만 자원 고갈, 환경 오염 및 섬의 고도가 낮아져 가난과 공포에 휩싸인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라던가 하트셉수트의 사망 원인이 당뇨병, 온 몸에 퍼진 골암이었다는 이야기 등등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TV로 보는게 더욱 의미있는 내용들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책으로 읽을만큼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지도 않고요. 책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수십년 전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발간한 "세계진문기담"이나 "세계상식백과" 등과 비교해보아도 현격하게 처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궁금하신 주제가 있으시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2020/01/14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1)

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 6점
야마자키 마리 지음/애니북스

"테르마에 로마에"로 히트를 친 작가 야마자키 마리의 이탈리안 식도락 일상계 만화입니다. 크게 이탈리아 유학 당시, 결혼 후 이탈리아에서의 생활, 일본에서의 이야기로 구분되는데 '식도락' 측면에서는 결혼 후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유학 시절은 너무 가난해서 변변한 음식을 먹은게 별로 없고, 일본에서의 이야기야 특별한 음식이 나오지 않는 반면 이탈리아인 남편과 시부모가 등장하는 정통 이탈리아의 생활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재료라던가, 새로운 맛이 많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비싸고 귀한 특급 올리브 오일, 이탈리아의 연말연시 요리 등 여러가지 새로운 소재들에 작가 특유의 유머가 더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 등장한 흰 빵과 수프와 같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좋았고요.

또 몇몇 요리는 간단한 레시피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재미, 신선함에 실용적 가치까지 있다면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별점은 3점입니다. 시리즈로 계속 나오면 좋겠네요.

하나씨의 간단요리 3 - 4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출간된 지 2년이 훨씬 넘었는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군요. 사실 TV 드라마까지 나온 인기작이기는 해도 1, 2권은 제게는 그닥이었습니다. 작화도 마음에 들지 않고, 주인공 하나 씨의 대책없는 성격도 취향이 아니었거든요. 간단 요리라는 제목에 어울릴만큼 둥장하는 레시피도 간단하지만, 특별히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요.

3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하나 씨의 대책없는 귀차니즘은 더욱 업그레이드 되기까지 했습니다! 요리들도 전골, 볶음 국수, 샤브 샤브 등은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제법 많이 필요한 음식들인데, 이들이 연달아 등장하기 때문에 컨셉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래서야 '간단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요. 

그나마 취지에 부합하는 건 고등어 통조림 밥과 생고추냉이 아보카도 덮밥 정도인데 문제는 역시나 전혀 따라서 해 먹어 보고 싶지 않다는 점입니다. 연어 차밥 김가루는 제법 땡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재료를 쓰는 탓에 따라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제 편견을 깨기는 커녕 더 굳게 만들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만은 한데, 더 이상은 구입할 생각 없습니다.

우연한 산보 - 6점
다니구치 지로 만화,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미우(대원씨아이)

이 만화는 제목처럼 요리가 중심은 아니고 산보가 중심이기는 합니다. 1~3화 까지는 특별한 요리가 등장하지 않고요. 그러나 4화 이후부터는 산보 도중에 먹는 음식도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4화 히피 축제에서는 오신코, 5화 한밤중의 고야에서는 고야 참플, 제 6화 개와 연식 야구공에서는 스콘, 제 7화 하모니카 요코쵸에서는 카레와 맥주, 제 8화 메지로의 카키모치에서는 쇼유 라멘이 등장하지요.

그러나 "고독한 미식가" 처럼 음식 구성과 맛을 상세히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요리들의 묘사는 마음에 들었지만 이 정도로는 역시나 요리 만화라고 부르기는 무리였을까요? 산보와 함께 음식의 비중을 좀 더 높여주었더라면 주인공이 술을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고독한 미식가"와 다른 일상계 요리, 식도락 만화로 그려질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또 원작인 쿠스미 마사유키의 후기와 뒷 이야기가 너무 길게 수록된 것 역시 감점 요소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래저래 조금 애매한 결과물이네요.

2014/01/03

일본 근대의 풍경 - 유모토 고이치 : 별점 3.5점

일본 근대의 풍경 - 8점
유모토 고이치 지음, 연구공간 수유 + 너머 '동아시아 근대 세미나팀' 옮김/그린비

"근대 초창기에 여러 가지 문물들이 일본에 언제 도입되었는지, 어떠한 배경으로 도입되었는지 등을 항목별로 2~3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관련된 도판과 함께 소개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정치·경제
페리 내항 / 세관(운조쇼) / 견미사절단 / 견구사절단 / 요코스카 제철소 / 파리 만국박람회 사절 / 이민 / 화족(華族) / 관리 / 이와쿠라사절단 / 오키나와현 / 훈장 / 재판제도 / 지폐료 / 조폐료 / 국립은행 / 위식주위조례 / 시구개정 / 도미오카 제사장 / 기독교 / 징병 / 초지회사 / 원로원 / 자유민권운동 / 신문지조례 / 성냥 / 연설 / 가이코샤 / 세이난 전쟁 / 동상 / 야스쿠니 신사 / 집회조례 / 일본철도회사 / 계엄령 / 관보 / 조약개정 / 내각제도 / 보안조례 / 추밀원 / 대일본제국헌법 / 만세삼창 / 장사 / 아시오 광독사건 / 교육칙어 / 제1회 총선거 / 제국의회 / 구매조합 / 대본영 / 일청전쟁 / 사회주의 / 동맹파업 / 내지잡거 / 일영동맹 / 일러전쟁 / 철도국유법 / 대역사건 / 일영박람회 / 일한병합 / 공장법 / 천황붕어

2장 풍속·사물
가스등 / 간코바 / 고아원 / 구세군 / 권총 / 그림엽서의 유행 / 나체화 / 난로 / 남극탐험 / 냉장고 / 램프 / 무도회 / 미싱 / 박람회 / 백화점 / 비누 / 사진 / 선풍기 / 수도 / 시계 / 시계 2 / 안전 면도기 / 엘리베이터 / 연필 / 오포 / 온도계 / 유모차 / 일루미네이션 / 자유폐업 / 전등 / 제등행렬 / 철제다리미 / 축음기(레코드) / 클리닝 / 토끼의 유행 / 페인트 / 펜·만녀필 / 하이칼라

3장 레저·스포츠·예능
경마 / 노조키카라쿠리(요지경) / 당구 / 동물원 / 메리고라운드 / 보트 레이스 / 볼링 / 수족관 / 스케이트 / 신극 / 야구 / 양악 / 여배우 / 여배우 양성소 / 영화 / 예기의 만박 참가 / 예능인의 해외공연 / 옷페케페이부시 / 워터 슈트 / 테니스 / 파노라마 / 해수욕 / 환등 / 활인화

4장 복식
가방 / 구두 / 모자 / 서양식 머리 / 숄 / 안경 / 양복(남성용) / 양복(여성용) / 양산 / 이발

5장 음식
레모네이드 / 맥주 / 빙수 / 서양요리 / 소고기 전골 / 우유 / 커피 / 통조림 / 포도주

6장 미디어
명함 / 신문 / 인쇄 / 전신 / 전화

7장 교통
도로정비 / 비행기 / 비행선 / 승합마차 / 인력거 / 일전증기 / 자동차 / 자전거 / 전차 / 철도 / 철도마차

8장 직업
경찰 / 군대 / 군악 / 보험 / 부기 / 소방 / 우편 / 치과의학 / 호외팔이

9장 교육
고교생 / 국정교과서 / 대학생 / 도서관 / 박물관 / 박사학위 / 소학생 / 식물원 / 어진영 / 여학생 / 운동회 / 유도 / 유치원 / 중학생 / 체조 / 프랑스어학교 / 화족학교(학습원)

10장 토목·건축
근대공원 / 기상대 / 등대 / 로쿠메이칸 / 료운카쿠 / 벽돌 / 벽돌거리 / 비와호 수로 / 양육원 / 엔료칸 / 온실 / 철교 / 프랑스 기와 / 호텔

11장 위생
종두 / 콜레라 / 페스트

부록
일본의 역사 / 메이지 연표 / 메이지 시대 인물 / 메이지 시대 신문·잡지 / 찾아보기

목차만 보아도 굉장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게다가 번역도 깔끔하고 도판이 풍성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도판이 사진 없이 삽화와 그림들(특히 신문인 "마루마루 진문" 삽화의 비중이 높음)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저는 이렇게 특정 항목에 대한 것을 요약된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백과사전처럼 구성된 책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록입니다. 두꺼운 책의 상당 분량을(거의 1/4 정도?)일본 역사의 개요와 이 책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약력을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는데, 분량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 근대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가 일본 전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도 별로 없을 뿐더러, 등장하는 인물들의 약력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정 궁금하면 다른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지, 이러한 미시사 서적을 왜 찾아보겠습니까... 원저에도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 한국에 번역 출간하면서 덧붙인 것이라면 쓸데없는 삽질이라고 전해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정보가 많기에 추천합니다. 별점은 3.5점. 감점요인인 부록을 들어내고 해당 분량에 해당하는 가격을 내렸다면 만점을 줄 수도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2017/01/14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 윤덕노 : 별점 3점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 6점
윤덕노 지음/더난출판사

이런저런 음식관련 저서로 유명한 음식 컬럼니스트 윤덕노씨의 신작입니다. 제목 그대로 전쟁사와 관련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쟁과 관련된 음식이라면 제가 아는 것만 해도 통조림, 타르타르 스테이크, 햄버거, 양고기 전골, 만두, 크로와상, 스팸, 환타, 고기감자 조림 등 많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6장 52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양 덕분에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정 주제를 잡아서 역사와 정보를 잘 요약해 주고, 하나의 주제에서 여러 이야기를 함께 진행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글솜씨 역시 윤덕노씨 다왔고요.

그러나 이전 유사한 책에서 느꼈던 문제점도 똑같은데, 가장 큰 문제는 실제 '전쟁'과는 무관하거나, 너무 억지로 가져다 붙인 항목들이 제법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군대의 보급 작전, 전쟁터에서의 굶주림을 가지고 특정 요리를 대입하는 식이에요. 그리고 어디서 사료를 가지고 왔는지 모를 이야기들도 상당히 많아서 자료적으로 조금 애매한 부분도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재미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식문화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몇개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독일군 각성제 초콜릿 쇼카콜라"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 폭격기 조종사들에게 각성제용으로 지급한 커피, 초콜릿, 콜라를 합친 식품입니다. 카페인이 풍부한 식품 세 개를 합쳐 놓은 덕분에 졸음을 날려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쇼카콜라'로 초콜릿에 커피와 콜라의 성분이 넣었는데, 각각 카카오는 60%, 커피 2.6%, 콜라 열매 1.6%의 비율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그렇게 독해 보이지는 않는데, 한번 먹어보고는 싶네요. 특수 작전 투입 병사에만 지급되어 일반병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종전 무렵에는 최후의 결사항전을 벌이기 전 마지막으로 지급되어 되려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는군요.

"전장에 날아든 요리책" 

"위대한 장군과 훌륭한 요리는 전쟁터에서 만들어진다." - "C-레이션 요리책" 첫 머리말.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게 보내진 요리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C-레이션으로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주는데, 같이 보내진 타바스코 핫 소스의 제조회사 사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는군요. 식품회사 메킬레니의 회장 메킬레니 역시 2차대전 참전용사라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타바스코 핫 소스에 대한 짤막한 역사도 함께 소개되는데 이 역시 인상적이에요. 남북전쟁의 부산물로 처음 출시되었다고 하며, 이후 다양한 전장에서 활약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지휘관의 호들갑과 미숫가루 파동" 

지금 생각해도 미숫가루는 정말 전쟁에 유용하다 싶을 양식입니다. 일단 불과 물 모두 필요가 없고 많은 양을 옮기기도 용이하니까요. 그런데 이 미숫가루의 역사가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몰랐습니다. 근거는 조선시대 "동문선"입니다. 이 책에 화랑들이 미숫가루를 먹었다는 시가 실려있다고 하네요. 사료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영웅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광해군에게 맛있는 요리를 바쳐 권력을 잡았다는 '사삼 각로' 좌의정 한효순과 '잡채 상서' 호조판서 이충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사삼 각로', 즉 더덕을 맛있게 요리한 한효순의 더덕 요리 레시피도 실려있는데, 더덕으로 만든 강정인 '밀병'이라고 합니다. 이를 서산 어리굴젓의 유래 중 하나로 추정될 정도로 음식 솜씨가 각별히 뛰어났던 한효순 집안의 손맛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요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도 '한'씨 가문의 피를 이은 덕분이려나요? 

하지만 임진왜란 때 용장이기도 했던 한효순이 광해군 때의 처신으로 손가락질을 받았고, 결국 인조반정 이후 삭탈관직을 당하는 등 수난을 당했다니 이 또한 인생무상입니다.

"케이준은 원래 요리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메뉴에서 흔히 보아왔던 '케이준 Cajun'이라는 음식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지금과 같은 조리 용어가 아니라, 본래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프랑스계 이민자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군요. 프랑스와 인디언 연합군이 영국에게 패한 후 프랑스계 이민자 후손들이 대거 남부 루이지애나 지방으로 추방된 이후, 루이지애나 지방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늪지대 해산물의 갯냄새를 없애기 위해 강한 향신료를 듬뿍 넣은 것이 요리의 시초라고 하고요.

"거북선과 과메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식량을 어떻게 조달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둔전제를 통한 농사, 소금을 만들어 곡식과 교환하여 식량을 마련한 것에 더해 어업, 그 중에서도 청어를 잡아 군량 및 곡식과 교환했다고 합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틀에 걸쳐 40만 마리의 청어를 내다 팔았다고 하니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접시 위의 초밥 두 개" 

초밥이 보통 한 접시에 대략 10개 나오는 이유, 회전초밥의 작은 접시 위에 같은 초밥 2개가 올려져 있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패전 후 배급제로 초밥을 팔 수 없게 된 초밥 요리사들이 손님이 가져온 쌀을 초밥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1인당 쌀 한 홉으로 초밥 10개까지만 교환할 수 있는 제한 조건 탓에 이렇게 된 것이죠. 이 때 생선 역시 모자라서 10개를 모두 다른 생선으로 만들 수 없었던 탓에, 같은 종류의 초밥 2개를 내기 시작했고요.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무려 스물 네 편이나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못하자 두석구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하고요.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반전 덕분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던 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하고요.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하고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인데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하여튼, 전체 평균해서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모든 수록작 중 세네 편 정도가 중간 수준, 세 편 정도가 중간 이상, 한 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해 보입니다.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12/03/12

워 사이언티스트 - 토머스.J.크로웰 / 이경아 : 별점 3점

워 사이언티스트 - 6점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이경아 옮김/플래닛미디어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전쟁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다룬 미시사 서적. 기원전부터 현대에 걸친 기간 동안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25개의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하늘이 내린 무기 - 칼리니쿠스의 액화
  • 투석기, 갈고랑쇠, 살인 광선 - 아르키메데스의 기이한 전쟁 무기
  • 최초의 생물학 무기 - 한니발의 독사 항아리
  • 하늘을 날며 춤추는 화약 - 위백양의 진천뢰
  • 신에 맞선 행위 - 제갈량이 개량한 연발 석궁
  • 르네상스 시대의 만물 수선공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관총
  • 결집된 화력 - 마랭 르 부르주아의 부싯돌식 방아쇠
  • 천재의 노력 - 데이비드 부시넬의 잠수함
  • 매우 부도덕한 행위 - 윌리엄 콩그리브의 로켓
  • 안전하고 영양 많은 - 니콜라 아페르의 통조림 식품
  • 권총 - 새뮤얼 콜트와 서부를 이긴 리볼버
  • 죽음의 상인 -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 군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 리처드 개틀링의 기관총
  • 느리지만 효과적인 -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 석류를 닮은 - 수류탄을 완성한 윌리엄 밀스
  • 화학을 악용하다 -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 불타는 관 -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군용기
  • 캐터필러 이동 요새 - 랜슬롯 드 몰의 탱크
  • 전염병 지역 -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 과학자들
  • 세계의 파괴자 -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 구조 임무 -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 이고르 시코르스키
  • 반향을 기다리며 -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
  • 달을 향하여 - 베르너 폰 브라운의 V-2 로켓
  • 가장 도덕적인 무기 - 새뮤얼 코언의 중성자탄
  • 총알 잡기 - 스테파니 크월렉의 방탄 섬유

이런 류의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워낙 잘 알려진 무기들 - 예컨대 다빈치의 무기들이나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원자폭탄 등 - 도 포함되어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존재하나, 무기보다는 발명자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면서 다른 유사 도서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신상과 개인사, 말년과 후일담까지 소개해주는 꼼꼼함도 좋았어요.

25개의 병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칼리니쿠스의 액화", 즉 그리스의 불에 대한 이야기와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윌리엄 밀스의 수류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다른 문서 등을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비밀무기와 그 제조법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런 비밀은 보통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딱 한 가지, 공기와 접하면 자연발화하는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그렇다면 과학을 넘어 마법의 영역이겠죠?) 따로 불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공격하는 쪽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방법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해결사"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그리고 새뮤얼 콜트는 이른바 "육혈포" 발명 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수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뢰의 발명자 로버트 화이트헤드가 특허권을 팔지 않고 발명의 비밀을 독점하였으며, 그의 발명을 모방한 경쟁자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다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비밀 설계도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손녀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 함장 폰 트라프와 결혼하여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사망한 뒤, 폰 트라프가 견습 수녀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후일담(?)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류탄 이야기에서는 수류탄 자체보다는 "척탄병"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습니다. 손으로 폭탄을 던진다는 한자어 그 자체에 충실한 명칭이라니...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 스토크시티의 가공할 드로잉 능력을 갖춘 인간 기중기 로리 델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전쟁 때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척탄병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야구선수들이 더 적당할려나요?

이렇듯 재미있는 기획이고, 세세한 정리와 소개는 정말이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이언티스트로 포장하여 소개한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은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대의 예가 특히 많은데, 제갈량이나 한니발 같은 경우겠죠.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등장한 발명품들이 전쟁의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기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입니다. 많기는 한데 정작 중요한 무기 도판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석궁(쇠뇌), 화승총, 로켓, 수류탄 등 기본적인 도판 몇 장이 구조나 원리를 더욱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무기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무기 중 제대로 된 도판이 등장하는 무기는 부시넬의 잠수함, 개틀링의 기관총, 화이트헤드의 어뢰,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도판만 조금 더 충실했더라도 별점은 1점 정도 더 높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전쟁이나 병기 관련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16/04/20

맛없어? - 고이즈미 다케오 / 박현석 : 별점 2점

맛없어? - 4점 고이즈미 다케오 지음, 박현석 옮김/사과나무

'저명한 발효학자이자 음식 탐험가인 저자가 직접 겪은 맛없는 음식들에 대해 ‘맛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과학적, 인문학적으로 분석해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라는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목차는 아래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장 세상의 모든 맛없는 음식
  • 2장 여행자를 위한 식사
  • 3장 날아라! 미각인 비행물체
  • 4장 요리하는 마음

이 중 소갯글처럼 저자가 생경한 음식에 도전하는, 이른바 '음식 탐험'을 벌이는 이야기는 1장에 담겨 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묘한 음식에 도전하는 저자의 정신력이 놀라웠던 덕분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청어 통조림 수르스트뢰밍이 가장 정상적인 음식일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등장하는 요리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장 압권은 애벌레 요리였습니다. 벌레 요리는 예전에 읽었던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에도 등장했는데, 그쪽은 작가 일행이 돈 때문에 억지로 먹는 설정이었고 이 책의 저자 고이즈미 다케오는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정도로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지요. '노린재 유충을 볶아 간장을 한두 방울 쳐서 먹는 순간, 이빨 사이에서 ‘톡’ 하고 터지며 끈적한 내용물이 흘러나왔고, 첫맛은 달았지만 곧 노린재 성충의 고약한 냄새가 밀려왔다'는 것 처럼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생생한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산적 다이어리"에서 호평했던 까마귀 고기에 대한 적나라한 평도 흥미로웠습니다. 불단의 향 같은 지독한 냄새 때문에 먹기 어렵다고 하네요. 이런걸 보면 아무래도 "산적 다이어리"의 주인공 오카모토는 웬만하면 다 맛있게 먹는 미각 음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홍어를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꼽은 것도 기억에 남고요.

하지만 2장부터는 평범한 식당에서 파는 음식 중 맛없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되며 처음의 흥미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물론 저자의 배경에 걸맞은 과학적 분석이 곁들여지기는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짜고 딱딱했던 대구 토막은 냉동 과정에서 소금을 뿌려 탈수된 탓, 돼지고기 조각이 서로 달라붙은 것은 단백질 구조 변화 때문, 싸고 맛없던 야키니쿠 정식 소고기는 거세하지 않은 씨수소의 냄새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식이지요.

허나 이러한 전문성을 제외하면 평범한 맛집 블로그의 '맛없던 식사' 리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맛없는 이유를 밝힌다 한들 이야기 자체에 드라마틱한 흐름을 더하지도 못하고요. 주인에게 항의하거나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내는 등의 전개는 전혀 없는 탓입니다. 요리에 대한 마음가짐을 강조한 4장 역시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1장은 흥미진진했지만 이후에는 평범한 맛집 블로거의 포스트와 다르지 않아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괴식만 찾아 먹는 이야기로 이어졌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2016/10/30

서프라이즈 : 인물편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 : 별점 1.5점

서프라이즈 : 인물편 - 4점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MBC C&I(MBC프로덕션)

MBC의 방송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던 인물들이 소개되는 책입니다. 그런데 직전에 읽은 "사건편"보다도 더 재미없고 자료적 가치도 없습니다. 두 권이 세트 느낌이라 한꺼번에 읽기는 했지만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네요.

그나마 기대에 최소한이나마 값했던 이야기는 피타고라스 이야기 뿐입니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라는 개념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발견한 제자 히파수스를 죽였고, 무리수를 아르곤이라고 명명한 뒤 외부로 누설되는 것을 강력히 금지했다. 그러나 무리수의 개념은 얼마후 피타고라스의 발견으로 공식 발표되었고, 오히려 거기서 확장된 개념 - 예를 들어 정오각형의 한 변과 대각선의 비는 1:1.618이라는 황금분할의 비율이다! - 이었다는건데 꽤나 그럴듯했습니다. 뭔가 수학 관련 추리소설 소재로도 쓸만해 보였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체로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식상한 이야기, 별로 미스터리하지 않은 가쉽과 스캔들, 기묘하고 흥미롭더라도 진위 여부는 의심스러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별 관련 없는 것들을 정말로 중요했던 단서나 진상처럼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전개 방식은 정말 짜증납니다. 대표적인게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진 이유는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 휴전하고 모든 대군을 프랑스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며, 이는 나폴레옹을 증오한 오스만 황제의 어머니 에메 뒤비크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억지도 정도껏 해야지요... 하긴, "사건편"에서의, 워털루 전쟁 패전 원인은 통조림 대신 병조림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아인슈타인을 유혹한 화가의 아내 마르가리타는 사실 소련의 스파이였으며, 그녀에게 아인슈타인이 연구 기밀을 제공한 덕분에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소련의 핵개발은 이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진게 아니라는건 잘 알려져 있으니까요.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개중 나은 편이기는 합니다. 예로는 에디트 피아프와 결혼했던 21살 연하의 테오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에디트가 결혼하고 1년만에 사망하자 테오는 임종 사진 보도에 대한 독점권을 팔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결혼은 돈이 목적이었다고 비난했고요. 허나 테오가 7년 뒤 사망한 후,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에디트 피아프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 빚을 테오가 대신 갚아 주었다는 것이지요.
장국영 자살 사건을 소개하며 그는 타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제기하는 부분도 추리소설 같아서 재미있었습니다. 등장하는 의혹들은 제법 그럴듯한데, 과연 진상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이런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가쉽에 가깝다는 문제는 큽니다.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연예가 중계"에 가까운 내용들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건편"보다도 가치가 낮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의 유사 사이트 검색보다 나은 점 역시 전무하고요. 가격까지 비싸니 구태여 찾아 읽지 마시기 바립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방영 당시 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일본의 여왕벌 히가 가즈코 이야기가 빠진게 의외였습니다. 검증된 사실일 뿐더러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 책에 딱 맞는 소재인데 왜 빠졌을까요?

2014/12/24

오무라이스 잼잼 5 - 조경규 : 별점 2.5점

4권 리뷰를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출간되어 구입한 따끈따끈한 신간! 4권 구입 당시에는 혹시나 가격 할인이 있을까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구입했는데, 5권은 도서정가제 덕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 나오자마자 구입했습니다. 4권에서의 좋았던 기분이 계속 유지된 탓도 크고요.

음식과 요리만큼은 국내 최고가 아닐까 싶은 빼어난 작화와 더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와 매력도 여전합니다. "등교길의 소시지빵"처럼 별다른 내용없이 처음부터 그냥 소시지빵 이야기만 나오는 단순 돌직구 이야기도 있지만, 제가 사랑하는 의식의 흐름이 톡톡튀는 매력적인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제비 4개요~"가 대표적입니다. 아이들과 디즈니 만화를 보다가 모든 캐릭터들의 손가락이 4개라는 것을 알게 되는게 시작입니다. 살펴보니, 다른 캐릭터들(톰과 제리, 둘리 등등등)도 손가락이 4개였고요. 이유는 손가락 하나라도 줄이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금전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나도 음식 그림을 좀 쉽게 그리고 싶다로 이어지고,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대충 빚어 그리면 되는 수제비다! 라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이 에피소드는 뒤에 이어지는 서비스 페이지도 물수제비에 대해 다루는 식으로, 전체적으로 뜬금없음이 가득해서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동춘 서커스를 찾아가 저글링 박의 공연을 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요리사나 식당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요리 중 하나라는 북경오리를 소개하며 전개하는 "저글링 박 vs 오리구이", 그리고 "맥스와 나 그리고 캔스파게티"도 기억에 남습니다. "매드맥스 2"는 저도 인상적으로 감상했던 작품인데, 작가가 이야기한 개사료 통조림 먹는 장면은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네요. 하지만 중학생 때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작중에서처럼 남자의 로망으로 생각해 왔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로망이라면 비밀기지로 통하는 책꽂이가 있는 서재입니다. 언젠가 이사할 때는 아쉬우나마 비밀기지가 아니라 비밀 공간(?)이라도 확보해 놓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식빵은 오토 프레데릭 로웨더 씨가 만들었다" 역시 걸작 에피소드입니다. E.T를 딸아이와 감상하다가 E.T의 생김새에 대해 논하면서 김창완의 노래로 이어지고, 노래에서 식빵으로, 그리고 식빵을 썰어서 포장해서 판매하는 기계를 만든 오토 프레데릭 로웨더의 일생 이야기로 넘어가다니, 뜬금없기 그지없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뿐더러, 오토 씨의 이야기와 E.T를 보던 저자의 딸 은영이의 감상이 겹쳐지는 엔딩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었어요.

그 외에도 다양한 패러디들도 역시나 반가웠습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안 요리사 셰프 보얄디가 미국에 이민 올 때의 컷은 대부 2에서의 한 장면이죠. (아래 이미지!)

커피 우유 이야기에서의 엄지와 오혜성 역시 아주 적절한 투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여전합니다. 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입했지만,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할 만한 가치는 여전히 부족하거든요. 물론 책으로 만들면서 편집이 조금 바뀐 부분, 책만의 서비스로 실린 만화와 기사들, 몇몇 레시피들은 꽤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뚜기 스프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인 업체 탐방 스프 연구원의 하루, 앞서 말씀드린 물수제비의 모든 것을 다룬 이야기 등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요. 그리고 가족 만화가 조금이나마 재미있어졌다는 것, 아이들 사진이 조금 덜 실린 것도 이전 권에 비하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저자의 가족 관련 만화가 대부분이기에, 이런 점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죠. 덧붙이자면 저는 초판 특전으로 디저트 달력을 받기는 했으나, 딱히 필요하거나 관심이 가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책 값을 깎아주는 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아울러 단점은 아닌데, 인터넷에서 최근에 감상했던 작품이 다수 실려 있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목차로 따지면 중간 정도에 위치한 "맥스와 나 그리고 캔스파게티"부터 뒤의 이야기는 모두 기억에 생생해서,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어요. 찾아보니 거의 올해 1월부터의 연재분이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4권처럼 나오고 한참 있다가 구입할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웹툰으로 언제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조금 애매합니다. 특히나 아직 기억이 휘발되지 않은 경우 더더욱 그러하지요. 저는 구입에 큰 후회가 없고, 이런 구루메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권해드고는 있습니다만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본인의 선택일걸로 생각됩니다.

2023/02/25

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 삶의 지혜 - 아나 마리아 스파냐 / 정윤희 : 별점 2점

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 삶의 지혜 - 4점
아나 마리아 스파냐 지음, 정윤희 옮김, 브라이언 크로닌 그림/위너스북

표지와 앞 부분 몇 페이지 소개에 혹해서 구입한 책. 크게 4개의 챕터로 나누어서, 세상에 종말이 왔을 때 익혀두면 유용한 기술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한 페이지의 짤막한 소갯글로요.

하지만 수박 겉핥기 수준에 그치는 내용은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지혜인 "가축 돌보기"의 핵심이 "가축에게 깨끗한 물을 주고 말끔한 우리를 제공하고 스트레스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 처럼 말이죠. 새 소리 듣기, 통조림 만들기, 붕대 만들기 등등은 한 두페이지 이상의 내용 보강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대단한 디테일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임시 거처 만들기와 길 찾기, 말과 노새에게 마구 씌우는 법 등 비교적 상세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지혜는 나름 괜찮으나 이런 내용은 극히 드뭅니다.

100가지 지혜의 선정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서, 예를 들어 핵전쟁 이후라면 방사능을 피하는 방법같은게 주로 소개되는 식으로 챕터를 구분하여 핵심 지혜를 선정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그냥 작가 머릿 속에 떠오른 대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거든요. 우선순위가 한참 낮아보이는 매 길들이기라던가, 활강하기, 맥주 만들기, 잉크 만들기 등은 물론, 뒷부분의 라틴어 이름 익히기, 베란다에 앉아 있기, 신나게 웃기, 방콕하기 등은 아예 기가 찰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100가지 지혜에 곁들여져 있는 일러스트만큼은 무척이나 우수합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높은 퀄리티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색감과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샘플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멋지지 않나요?



덕분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용도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2/12/22

심야식당ⅹ단츄 - 단츄, 아베 야로 / 강동욱 : 별점 3점

심야식당ⅹ단츄 - 6점
단츄.아베 야로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심야식당"에 실려 있는 요리의 재현 및 바리에이션을 소개하는 책. 레시피는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을 뿐이며, 멋진 사진과 함께 그 요리에 대한 평가와 트리비아, 간단한 레시피 응용이 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일종의 팬 서비스 기획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 기획물로 보기에는 꽤 괜찮은 책이더군요. 여러 가지 트리비아와 재미있는 정보가 곳곳에 가득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자면 빨간 비엔나가 빨간색인 이유(때깔을 좋게 만들기 위해), 봉지 야키소바가 3인분인 이유(주 타겟으로 3~4인 가족을 상정했는데 4라는 숫자는 불길해서), 문어 먹물 스파게티가 없는 이유(맛이 없어서) 등이 있겠죠.

게다가 레시피의 응용 방법도 아주 볼만합니다. 이 중에서 꼭 해먹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햄커틀릿 카레 덮밥, 메추리알 알조림, 돼지김치볶음 야키우동(이건 응용해서 소면을 넣은 돼지 두루치기로 만들어도 되겠더라고요), 냉동만두 맛있게 먹는 비법, 참치 통조림 덮밥입니다. 가정식 요리를 추구하는 "심야식당"의 요리답게 집에서 재현이 가능한 요리들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되네요.

요리책으로 보기에는 부실하지만, 내용은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심야식당" 팬 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2008/11/24

보험과 범죄 - 쯔키타리 카즈키요 / 황남일, 이홍미, 이미영 : 별점 3점

보험과 범죄 - 6점
쯔키타리 카즈키요/두남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한 책. 보험 범죄 사례를 역사별, 유형별로 소개해 줍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사례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 몇개도 감초처럼 추가되어 있어서 얄팍하게나마 보험 범죄라는 것에 대한 시각을 많이 넓혀줍니다. 특히나 1762년 영국의 "이네스 사건" 부터 보험이 태동한 초기부터 이미 현재까지 계속되어오는 다양한 범죄들이 있어 왔다는 것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역시 인간은 무서워요...
이 책에서는 보험 범죄를 생명 보험 범죄와 상해 보험 범죄로 크게 구분짓고 있는데, 생명 보험 범죄는 역시 바이블과도 같은 보험금 살인, 즉 보험금 수취인인 범인이 피보험자를 제 3자의 살인으로 보이게끔 위장한 범죄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고나 타살로 위장한 자살, 그리고 사망사고의 날조, 기타 사기에 의한 보험사고를 다루고 있고, 상해 보험 범죄는 자기 상해, 그리고 사고의 날조로 나누어 다룹니다.
이렇게 구분되어 실린 사례가 무려 100여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비정한 범죄에서 부터 시체도굴까지 다양한 사례가 등장해서 읽는 동안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습니다. 분량도 짧아서 읽기도 편했고요.
이 중에서 1982년에 일어난 "하천부지 아들 살해사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해 왔던 범인이 새로운 결혼 상대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새로운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살해한 사건-과 1932년의 이른바 "철인 마로이 사건" - 백수건달 마로이의 단골 술집 주인 토니 마리노가 마로이에게 생명보험을 가입시키고 살해하려 했으나, 부동액, 다량의 메틸알콜, 썩은 통조림을 먹이거나 추운 겨울에 바깥에 술을 먹이고 방치하는 등 여러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로이가 그때마다 끈질기게 살아난 사건 (결국 죽었지만) -. 그리고 미국인 칼라일이 자신의 습관성 어깨탈구를 이용하여 상해 보험을 청구한 1950년의 "칼라일 사건"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살 귀부인 마르타 마레크나 가짜의사 홈즈 사건과 같은 유명 범죄도 실려 있는 등 풍성한 사례만으로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초반부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보험 회사에 대한 상세한, 그러나 지금은 좀 낡아버린 법적인 내용을 길게 다루고 있어서 흥미가 떨어지며, 번역자가 2명에 감수까지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역시 80년대스럽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래도 보험 범죄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제 값을 하는 책이긴 합니다. 저야 헌책방에서 구입했으니 더욱 만족스럽고요. 추천하기엔 좀 미묘하지만 혹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5/20

늑대를 요리하는 법 - M.F.K 피셔 / 김정민 : 별점 3.5점

늑대를 요리하는 법 - 8점
M.F.K 피셔 지음, 김정민 옮김/다른목소리

미국에서 태어난 M.F.K 피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가 쓴 음식과 삶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1942년 발표된 고전으로 제목의 "늑대"는 위기 상황'을 의미하는 "문가에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문구에서 따 왔습니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의미하지요.

제목 그대로 미국 대공황기 등 여러 힘든 시기를 보낸 저자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됩니다. 그 중에서도 물자, 재료가 부족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 먹는지에 대한 방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생선, 고기, 빵, 수프 등 생각할 수 있는 주요 재료별로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 우선은 눈물 겨울 정도의 절약 비법이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입니다. 건초 통을 감싸고 그 안에 음식을 넣은 뒤 통의 뚜껑을 덮는 방법인데, 발효(?) 열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또 당시 통화 기준이기는 해도 50 센트로 차리는 극빈 요리에 도둑질, 야생에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한 "나는 자연인이다" 스타일 요리, 심지어 음식 뿐만이 아니라 대체 커피라던가 술값 아끼는 비법으로 가짜 보드카 제조법까지 등장합니다. 가짜 보드카는 물 1쿼트, 글리세린이나 설탕 1 작은술, 레몬 1개의 껍질, 오렌지 1/2개의 껍질을 20분 동안 아주 약한 불에서 끓인 뒤 알코올 1쿼트를 더한 후 바로 뚜껑을 덮고 식힌 뒤 걸러서 만든다고 하는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진짜 위기 상황, 즉 "등화관제" 상황에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가스가 전기보다 빨리 끊긴다는 등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려 동물들을 위한 절약 방법도 관심 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되고요.

하지만 그냥 안 먹고,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는, 궁상맞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리 레시피도 많습니다. 단순한 미국 가정 레시피가 아니라 유럽, 심지어 간장과 누룽지 등 중국에서 비롯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를 가르쳐 주는 식이라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파리식 양파 수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을 주며 언제나 위로가 되고 마음에 남는 소박한 수프라는 미네스트로네 레시피는 꼭 따라해 보고 싶더군요. 집이나 시장에서 가장 흔하고 싼 재료로 만드는 게 최고라니 더할 나위 없죠. 가끔 집에서 궁상을 떨며 혼술을 즐기는 이와마 소다츠가 떠오르는 메뉴들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선반에 채운 통조림들을 결합해서 먹는 레시피들 처럼요.

이러한 레시피, 조리법 외에도 커피 찌꺼기를 바늘 겨레 안에 넣으면 바늘이 녹슬지 않는다, 핸드로션 대신 버터 포장지를 손에 문지르고 나서 버리라는 등의 생활 꿀팁도 많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시대 착오적인 내용들, 그리고 말을 타다가 생긴 타박상은 말 바로 옆 축축한 잔디를 상처 부위에 고정한다는 말도 안되는 민간 요법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저자의 여러가지 철학을 강하게 피력하는 장면들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도 사람이기 때문에 맛, 질감, 자극 면에서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며" 먹게 해야 한다는 교육 이론이 와 닿았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잘 먹는다" 는 중국 속담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는 현명하지 못하다!" 고 일갈하는 장면은 "맛의 달인" 의 지로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있고 한 번 읽어보면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흰 빵을 증오하는 저자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 직접 빵을 구워 먹기 까지 해야 하는지 등 내용 모두를 동의하기는 어려우며,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낡았고 번역 문제겠지만 문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문제들, 무엇보다도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하나도 없다는 큰 문제는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5점인데,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이 아깝지 않았을 거에요. 요리, 음식 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현대를 무대로 "좀비를 요리하는 법"과 같은 개정판이 나와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이 책 발표 시점에서 저자 나이가 34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잔소리 섞인, "옛날에는 이랬지" 스타일의 글들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할머니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요. 대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한 건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또 아래와 같은 평균 이상의 미모도 놀랍고요.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볼 저자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