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04/11/03
"외로운 늑대" 백종호 선수 은퇴!
영화의 실제 모델이시라는 은행원 레슬러 백종호선수가 은퇴하시는군요. 링네임이 "외로운 늑대"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55세라는 나이도 놀랍지만(릭 플레어?) 사진에서 보이듯 카리스마와 몸은 장난이 아니십니다.... 은행강도가 들어와도 특기시라는 드롭킥으로 한방에 날려버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왕표 관장님께 배우셨다는 새로운 필살기도 궁금해 지는군요.
언젠가 박철순 선수의 은퇴식을 TV에서 지켜볼때 "저렇게 은퇴한다면 정말 야구선수도 할 만 하겠다"라고 했었습니다. 당시 잘나가던 김종필 총재까지 참석했던 큰 행사였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은퇴식은 본인의 영광을 대변하는 만큼 화려함보다는 그 형식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보여지네요. 비록 백종호 선수의 은퇴식은 현재 한국 레슬링계의 현실을 볼때 상대적으로 초라하겠지만 본인에게는 정말 멋진, 그 누구의 은퇴식 부럽지 않은 장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정말 멋진 인생 보내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명예로운 은퇴 축하드리며 111전 55승56패의 성적이니 은퇴전을 꼭 승리로 장식하셔서 승률 50%를 채우셨으면 합니다.
파이팅!!!!
2010/08/28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 김성기 : 별점 3점
|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김성기 옮김/노블마인 |
캐리어 출신이나 경찰 내부 암투때문에 일반 한직인 신주쿠서 방범과 형사로 전락한 사메지마는 독불장군같은 행동으로 '신주쿠 상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중 신주쿠에서 순경들이 연쇄적으로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메지마는 자신이 쫓던 총기 밀조업자 '기즈'가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오사와 아리마사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며 일본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계보에도 그 이름을 뚜렷이 남기고 있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작품인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의 기념할만한 제 1작.
하지만 솔직한 감상은 독자의 열광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 자체가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별다른 복선 하나 없이 그야말로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단순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직선 전력 질주는 매력적이기는 합니다. 그만큼 사메지마라는 외로운 늑대의 처절하고도 고독하고도 화끈한, 그러면서도 결국 끝을 보고야 마는 전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니까요. 또한 기즈 추적- 총기 행방 확인 - 가즈오 추적 - 진범추적 - 진범의 현장 급습 이라는 단계로 이어지는 수사과정도 단순하지만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흥미를 배가시키며, '신주쿠'와 경찰 조직, 수사에 대한 상세하고도 방대한 묘사 역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추리물'이라기보다는 '하드보일드 모험물'에 가깝기 때문에 전형적인 '하드보일드'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아요. 추리의 과정은 없이, 미션 클리어 이후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엔터키 어드벤처 스타일이니까요. 이런저런 분위기가 흡사 미키 스필레인의 마이크 해머 시리즈같은 느낌도 듭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좀 싸구려 미국식 펄프픽션의 일본판이랄까요.
그래도 재미하나만큼은 명불허전! 한번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흡입력 하나는 확실한 작품이라 별점은 3점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물로 접하는게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네요.
2010/03/30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 민경욱 : 별점 2.5점
|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사라진 이틀"과 "제3의 시효"로 접해보았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종신 검시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검시관 구라이시가 주축이 되는 연작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 단편별로 주인공은 모두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라이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제 3자로 머물죠.
그런데 작품은 그간 들어왔던 호평에 비하면 단점이 많더군요. 일단 뛰어난 감식관이자 한마리 외로운 늑대, 인망도 있지만 적도 많아서 야쿠자스럽다는 구라이시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만 설정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노골적이라 거슬렸습니다.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추리적으로도 무리수를 너무 많이 두었고요. 단편들 대부분이 "누가 보아도 XX한 상황을 구라이시가 아주 사소한 단서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인데 사실 억지가 심하더라고요.
각 단편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가해 본다면,
<붉은 명함>
검시담당 조사관 대리 이치노세가 자신과 불륜관계였던 유카리의 사체를 검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치노세가 불륜관계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 서스펜스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정보도 공정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도 탄탄하고요.
<눈앞의 밀실>
현민 신문 기자 아이자키가 기사를 위해 오오시다 반장 자택 앞에서 잠복하다가 살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
<화분의 여자>
"눈앞의 밀실"처럼 불륜관계인 남녀의 음독 사체를 검시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향토 역사가를 자처하는 우에다 마사쓰구가 시체로 발견되는 두 가지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전별>
형사부장 고마쓰자키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에게 엽서를 보내온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구라이시와 상담한다는 이야기. 중간에 짤막한 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크게 비중은 없어서 한 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잔잔한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사건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괜찮더군요. 별점은 3.5점.
<목소리>
실무수습생으로 지검에 온 사이다 리오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작품. 발단과 전개는 독특한 맛이 있지만 결국 자살이기에 사건성이 높지 않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떨어져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심리 드라마도 아니고 범죄물도 아니고 반전물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중의 조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무대가 형사들의 단골 Bar입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막 해결한 사건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던 형사 사쿠라가 구라이시가 사건에 대한 반론을 재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이유를 캐내려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혈액형과 DNA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핵심인데, 내용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구라이시가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확실한 단점입니다. 구라이시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지나쳤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실책>
전직 여경이었던 하루에의 자살 사체를 검시하게 된 구라이시가 다른 모든 이의 판단을 뒤엎고 살인이라 결론내린다는 내용으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구라이시의 실책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한 의도가 너무 뻔해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7년 매미>
구라이시가 발탁한 조사관대리 나가시마를 축으로 17년마다 벌어지는 불량배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억지가 심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동기와 범인 모두가 말이죠... 나가시마와 구라이시의 인연이 잘 녹아들어 있다는 것과 구라이시의 최후를 암시하는 결말은 인상적이지만 역시나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2/23
1030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 | 1030 - ![]()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
단서들을 모아나가던 리처 부대는 군수회사 뉴에이지의 보안부서 책임자 라메이슨이 범인이라는걸 알아냈다. 신무기 미사일 리틀 윙을 불량품으로 처리한 뒤, 폐기한 것으로 속이고 외국 테러리스트에 팔아넘기려던 라메이슨의 행각을 눈치챈 스완이 가까운 곳에 있던 옛 부대원들을 불러모아 공격을 대비했지만, 오히려 라메이슨에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 라메이슨이 경찰일 때 동료였던 보안관 커티스 모니가 스완 일행을 속인 뒤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오도넬과 딕슨도 잡혔지만, 리처는 반격해서 라메이슨 일당을 철저하게 박살낸 뒤 미사일을 구입한 테러리스트도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울어 봐야 소용없소. 눈물 따위에 마음이 약해질 만한 사내는 다른 곳에 가서 찾으시오."
"네 삶의 마지막을 즐겨라. 와인 한 병을 사고 DVD를 빌려라. 하지만 박스로 사지는 마라. 네게 남은 시간은 이틀 정도니까. 그것도 길어 봐야."
잭 리처 시리즈 11번째 작품. 원재는 "Bad Luck & Trouble"입니다. "불운과 문제"라고 직역하기에는 폼이 없어서 바꾼 듯 한데, 바꾼 제목도 나쁘지 않네요.
기존 시리즈처럼 한 마리 외로운 늑대 잭 리처의 활약을 다루지 않습니다. 죽은 전우들을 위해 옛 전우들을 모아 복수를 진행한다는 복수극이거든요. 부대가 뭉쳤기에 복수극도 군사 작전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전직 엘리트 군인들, 복수극, 군사 작전이라는 키워드만 놓고 보면 "크리시" 시리즈가 떠오르네요. "익스펜더블"과도 비슷하고요.
하지만 이런 변주가 좋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리즈의 또다른 매력인 잭 리처의 추리력이 발휘될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스완의 문진을 가지고 베런슨의 거짓말을 꿰뚫어 본다던가, 프란츠가 도움을 요청한게 아니었다는걸 깨닫는 장면처럼 소소한 추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프란츠가 남긴 문서가 '근무일' 기준이었다는 것도 꽤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외에는 추리는 커녕 리처의 무능함만 도드라질 뿐입니다. 특히 '왜 전 엘리트 헌병대원 4명이 허접한 녀석들에게 잡혀 죽었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대로 풀어내지 않는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급 전문가들이라 웬만한 적들이 진압하는게 힘들다면 답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유일하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산체스가 배신했거나, 누군가 믿었던 사람이 뒷통수를 쳤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후더닛' 말고 '와이더닛'으로 접근했어야 했던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일당들에게 당한게 아닐까 헛다리짚는건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6,500백만불을 카지노에서 따려면, 작중 설명되는대로 엄청난 조직과 돈이 필요했을겁니다. 쉽게 덮기도 힘들었을테고요. 상식선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를 조사까지 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보안관 모니가 라메이슨의 옛 동료였고, 프란츠 일행은 모니에게 체포된 뒤 살해당했다는 반전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무려 4명의 전 엘리트 군인들이 보안관 1명에게 제압당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모니가 총을 들고 있었긴 했지만, 잭 리처 본인도 그간의 시리즈는 물론 이 작품 내에서도 권총에 맞서는 장면은 수도 없이 보여주었는데 말이지요. 반격 시 최소한 한 명이 죽더라도 남은 세 명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처와 니글리는 LA의 교통 체증으로 모니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커티스 모니가 오도넬과 딕슨을 먼저 제압한 뒤, 리처와 니글리를 태연히 기다렸다가 잡아간다는 생각없이 현장을 뜰 정도로 바보였다는 것도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악당들의 매력도 현저히 처집니다. 기본적인 능력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라메이슨 일당이 아무리 전직 경찰로 10년 이상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 흉기에 가까운 전투집단 군인들과 대등한 싸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본거지에서 맥없이 쓸려나가고 6,500만불까지 빼앗기는걸 보면 10년 동안 경력은 뭘로 쌓았나 싶고요. 리처와 니글리의 습격은 충분히 예상하고 대기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모니의 도움으로 뒷통수를 치는 것 외에는 너무 무력한지라 황당할 정도였습니다. 어느정도 실력자였어야 좋은 대결 구도가 성립했을텐데 이래서야 최소한의 긴장감조차 불러오기 힘듭니다. 악당들이 알아서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모니가 오로스코의 메모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라메이슨의 부하가 리처 일행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습격하지 않았다면 진상과 정체가 드러나는데 더 오래 걸렸을겁니다.
설명도 부족합니다. 라메이슨 일당이 이미 6,500만불을 받았는데 뉴웨이브라는 회사에 남아 근무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리틀 윙을 빼돌린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돈을 받은 이후인데 그게 문제가 될까요? 최소한 라메이슨 혼자만이라도 몸을 빼는게 당연했어요.
그리고 커티스 모니의 부하 브란트는 리처를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모니와 라메이슨 일당이 모두 살해당했다면, 브란트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을거에요. 리틀윙 거래는 뉴웨이브 회사와는 관계가 없기에 ,잭 리처가 뉴웨이브를 공격해서 불을 지른 범죄 행위는 당연히 수사가 되었어야 했고요. 라메이슨 일당의 부하들 모두가 리틀 윙 거래에 관여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그들 모두를 살해한 것 역시 엄연한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브란트가 수사에 나서지 않는건 물론이고, 중반 이후 사라져서 등장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복수극도 시시했습니다. 헬기에 숨어있다가 라메이슨 일당을 밖으로 떨구는게 전부인 탓입니다. 이전에 리처가 라메이슨에게 "너는 곧 우리를 만나게 될 거다. 그럼 함께 헬리콥터를 타자. 네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엔 한 가지 크게 달라질 게 있다. 내 친구들은 반항했을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하지만 년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뛰어내리게 해달라고 애걸복결할 거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눈물 콧물 있는 대로 짜낼거다. 내 그것만은 틀림없이 약속하마."말했기에 보다 처절한 복수를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어요. 예정된 위험한 테러보다 복수를 먼저 선택한 리처의 모습도 당연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졌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보다 살짝 높은 2점입니다. 스케일은 크지만 리처 시리즈의 매력은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2022/01/30
고쿠 1~6 - 테라사와 부이치 : 별점 2점
![]() | [고화질세트] 고쿠 (총6권/완결) - 테라사와 부이치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걸작 "우주해적 코브라"로 스페이스 판타지의 신기원을 연 작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또다른 대표작입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1987년에는 비교적 먼 미래로 느껴졌을, 2014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액션 스릴러로, 우리나라에는 e-book으로만 소개되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 후린지 고쿠입니다. 맨 몸에 쟈켓을 입고 목에 넥타이를 메는 다소 충격적인 패션 센스를 가진 남자지요.
고쿠는 첫 번째 사건에서 악당의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실명하는데, 누군가 그 왼쪽 눈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장착된 '의안'을 설치해 줍니다. 그 의안은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물론, 인공위성까지도 연결하여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고쿠는 이른바 '신의 눈'이라고도 하는 이 의안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누군가가 전해 준 또다른 장비 여의봉(?)을 무기로 악당들과 싸워나갑니다.
여러 면에서 작가의 출세작 "코브라"가 떠오릅니다. 미인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기본 전개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로 엄청난 마초인데다가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유머 넘치는 대사를 내뱉는 고쿠 캐릭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갖추고 있는 피지컬만으로도 세계관 최강자인데다가, 강력한 무기 '싸이코 건' 까지 소유한 코브라와는 다르게 고쿠는 비교적 평범한 인간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이도 전능하다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왼쪽 눈의 의안 덕분에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의안으로 왠만한 적들은 쉽게 무력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단순한 자가복제 아류작은 아닙니다. '신의 눈'이라는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모든 단말에 접속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소한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것입니다. 인공 위성으로부터 현재의 GPS, 카 네비게이션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추격에 활용하는 장면 등은 미래를 보고 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인공 위성과 각종 단말을 조작하여, 악당 하크류 겐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을 건물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장면은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선보여준 명장면이었고요.
정보를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에도 잘 어울렸어요. Private Eye가 Midnight Eye를 갖게 되니, 금상첨화인 셈이지요.
탐정물답게 놀라운 진상과 반전을 갖춘 이야기들도 꽤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류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중화제를 투약하지 않으면 미치광이 살인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여동생 요시코는 고쿠에게 류를 죽여달라고 의뢰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류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복제인간으로 창조된지 고작 30일에 불과했던 생명체였습니다. 젠조는 자기 몸에 보호막을 설치하기 위해 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수정체를 만든 건 여동생인줄 알았던 요시코였고요. "차이나타운"이 떠오르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막장 관계를 인공수정, 급속 성장, 기억 이식 등 미래 기술에 녹여낸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슈퍼 스타 시노즈카 레이라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며 죽이려고 하는 지하 록의 여왕 야마가미 리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꽤나 놀라운 진상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4권(일본 기준)으로 끝나버린 이유도 분명합니다. 뒷 부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선녀" 편에서 귀신 '천동녀'의 정체는 쿠키 일족의 정신을 넣은 인공두뇌로 구현된, 일종 에너지 덩어리였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사라만다 설정과 똑같죠.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오토바이 레이서 보니의 문신 속에 마이크로 필름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우주해적 코브라"와 유사했고요. 유령 유전자 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카산드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실험 덕분에 생물 진화의 최종 단계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건 바로 악마였다는건 재미있는 발상입니다만 이는 "코브라"에서 화성의 최종 병기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악마가 고작 금괴를 노린다던가, 그 최후가 녹아버린 뜨거운 금을 뒤집어 쓰는 것에 불과했다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 완성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요.
후반부 에피소드들에서는 '신의 눈'의 능력도 잘 선보이지도 못합니다. 모든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본 설정만 답습할 뿐입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에게 자신의 경고를 날린다던가, 공장에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든다던가 하는 초반부 에피소드들같은 새로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악당들과 육탄 액션을 펼친다는 설정도 별로였고요.
또 한국어판 e-book은 에피소드별 제목이 제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등 편집이 그닥이며, 마지막 권에 '지금 밝혀지는 고쿠의 비밀'이라는 저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데 정작 수록되어 있지 않은 등 문제가 많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던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유튜브를 뒤지면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수작인 초반부 에피소드를 영상화한 만큼 애니메이션만 찾아서 보시는게 낫습니다.
2024/03/02
출입통제구역 - 리 차일드 / 정세윤 : 별점 2점
![]() | 출입통제구역 - ![]() 리 차일드 지음, 정세윤 옮김/오픈하우스 |
그런데 조직원들을 없앤게 알바니아 조직이라고 오해한 우크라이나 조직의 보스 그레고리는 복수를 명령했고, 두 조직은 서서히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리처는 메그의 보스 트롤렌코의 거처를 찾아 나섰다. 그에게 메그의 치료비 손해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롤렌코는 우크라이나 조직이 가짜 뉴스 배포를 위해 보호하고 있었다. 결국 리처는 두 조직 모두를 몰살시켜 버리고 말았다.
잭 리처 시리즈 24번째 작품. 원제는 "Blue Moon"입니다.
이전 "악의 사슬"에서 "피의 수확"이 떠오른다고 언급했었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잭 리처 버전의 "피의 수확"입니다. 한 도시를 두 세력(우크라이나 - 알바니아)이 양분하고 있는데. 초반에 잭 리처가 저지른 살인을 서로 상대 조직에서 저지른 일이라 여겨 서로를 공격하고, 서로 잭 리처를 잡으려다가 각개격파당하고 내분까지 일으켜 자멸한다는 점에서 아주 흡사했습니다.
또 제가 보았던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잭 리처 본인의 무력이 가장 엄청납니다. 맨손은 물론 다양한 총기를 활용하여 수십 명의 악당 조직원 상대로 무쌍을 찍습니다. 조직원들 모두가 죽어 마땅한 놈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속에 자비란 없습니다. 그냥 전부 죽입니다. 전체 킬 수로는 아마 시리즈에서도 탑일거에요. 아래처럼 딱 한 번 자비를 베풀긴(?) 했지만, 거의 죽은 상태의 상대에게 그냥 손을 더 대지 않았을 뿐이지요.
"숨을 쉬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 그게 나에게는 승자의 관용이오. 보통은 놈들을 죽이고, 가족들을 죽이고, 조상의 무덤에 오줌을 싸지."
리처가 '외로운 늑대'가 아니라 전 해병대, 기갑부대원들과 한팀이 되어 행동을 펼치는 전개도 독특합니다. 약간 "1030"과 비슷한데, "1030"보다 팀원의 활약이 오히려 많습니다. 상식적으로는 공격이 불가능했던 트롤렌코의 은신처 입구를 돌파하기 위해 조직원들과 체형이 비슷했던 반트레스카가 사로잡힌 조직원으로 변장하여 적들을 끌어내는게 핵심이거든요. 이외의 활약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요.
잭 리처의 말주변도 확실히 선보여 줍니다. 본편의 히로인 애비에게 "함께 가자"는 권유를 할 정도 상당히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잭 리처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인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잭 리처가 일부러 두 조직을 와해하려 했던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점에서 치밀한 작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게다가 악당들이 제발로 찾아와 죽어주니 작전이 필요할 이유도 없고요.
우크라이나인의 보스 그레고리가 사무실에 탈출구를 마련해두었다는 추리는 급작스러웠어요. 아무런 단서도 없었고요. 이치에 맞게끔 나름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솔직히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좀 더 탄탄한 복선, 단서를 제공해주었어야 했습니다.
트롤렌코의 위치 파악은 그나마 추리와 조사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금 낫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난공불락의 19층에 있던 경비원들이 케이지를 열고 나온다는 설정은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누가 들어와도 버틸 수 있는데 왜 밖의 일을 신경쓰겠습니까? 그레고리 조직이 괴멸해서 외부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한들, 그들이 머무는 곳은 조직의 가짜 뉴스 관리 업무의 핵심입니다. 당연히 온갖 통신망이 연결되어 있고, 당연히 밖의 뉴스는 바로 알 수 있어요. 밖에서 별로 대단한 뉴스가 펼쳐지지 않는 한, 공격은 비공식적이며 빠르게 해결될거란건 짐작 가능합니다. 트롤렌코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돈도 천만 달러가 넘으니 다른 조직이나 인력을 고용할 수도 있고요.
설득력없는 설정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애비는 물론 반코, 호건과 반트레스카처럼 만난지 며칠 되지도 않는 지인들이 목숨을 걸고 리처를 도와 총격전에 뛰어든다는 것 처럼요.
러시아 정부가 가짜 뉴스를 뿌리기 위해 트롤렌코를 이용하고 있다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트롤렌코 이야기는 아예 빼고, 두 조직간의 암투를 조금 더 극적으로 그리는게 좋았을겁니다. 지금은 마지막 결전에서 악당들이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다가 차례대로 총에 맞아 죽으며 마무리되는데, 이보다는 더 박진감있게 풀어냈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역시나 1.5점에 더 가까운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적당합니다.
2022/11/27
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 이나경 : 별점 2.5점
![]() | 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arte(아르테) |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명사가 유럽 어딘가의 독재자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던건 아니고, 심심풀이로 벌인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자의 부하들은 체포한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이 여전히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명예를 걱정한 그는 국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도주하여, 과거 추억이 어려있던 도싯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출간된 전설적인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러 미스터리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국내에는 상당히 늦은 2019년에 출간되었지요.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최첨단 IT 소재물이라고 착각해 왔었습니다. Log mail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알고보니 Rogue Male 이더라고요! 외톨이 수컷, 일본식 표현으로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와 비슷하겠지요? 일종의 사냥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흉폭함과 야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게 딱 들어 맞는 제목입니다.
명성답게 서스펜스, 긴장감은 발군입니다. 외국에서 망신창이 상태로 이름모를 낚시꾼, 그리고 영국 배의 일등 항해사 베이너의 도움을 얻어 귀국한 뒤, 도싯 지방의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에 위치한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부부로부터 사이드카가 달린 자전거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은신처 위치가 좁혀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은신처처럼 만들어 위장하고, 결국 외국 비밀 요원 퀴브-스미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좁은 공간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과정 모두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잘 안배된 설정들도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대표적인게 주인공이 고문을 받아 '눈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입니다. 이 상처 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게 되어 원래 계획이었던 시골 마을에 몰래 숨어드는게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글라스로 가려도 누구나 눈에 이상이 있다는걸 눈치채버리고 말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비밀요원 중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영국 경찰들에게도 쫓기게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의 눈 이상이 전국에 알려졌을 뿐더러, 외국 정보요원들 뿐만 아니라 영국 경찰들도 주인공을 체포하려 해서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의 실력과 의지, 인내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조력자 - 특히 미녀 - 를 만나 도움을 얻는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전무합니다. 처음 탈출할 때 외국인 낚시꾼과 일등 항해사 베이너가 선선히 도와주는 장면같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쪽입니다. 낚시꾼은 독재 반대파일 수 있으며, 베이너의 경우는 주인공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라는 설정 덕에 도와주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식으로 합리적인 설명도 덧붙여져 있으니까요.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으로 주인공의 은신처를 알아낸 퀴브-스미스 대령은 라이벌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 놀라왔던건 만만치 않았던 영국 경찰의 수사력 묘사였습니다. 도싯 시골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있던 주인공에게 거의 한끝발 차이로 육박해 올 정도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맞부닥치는 바람에 정면에서 도주극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상대방들의 추적을 통해 원래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묘사들도 몰입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몇가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재자 암살 시도가 그러한데요, 주인공은 일관되게 단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퀴브 -스미스에 의해 은신처에 산채로 감금당한 뒤에 갑자기 약혼했던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튀어나옵니다. 이럴거라면 처음부터 당당히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쏘려고 했다가 잡혔는데, 이게 왜 외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외국 정보부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서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주인공은 상당한 고위층으로 보이기에, 당연히 좋은 협박거리(?)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경찰 추적이 근처에 이른 탓에 가짜 은신처를 만든 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은 과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경찰 바로 옆에 숨는 묘기를 부릴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은신처를 감추려다가 본인이 위기에 처하는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잖아요. 또 그렇게 잘 숨을 수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은신처에서 숨어 있는게 더 나았을테고요. 게다가 이 시도는 퀴브 -스미스에 의해 숨겨두었던 사이드카가 드러나, 은신처 바로 근처까지 퀴브 -스미스가 찾아왔을 때의 행동과는 반대라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퀴브 -스미스가 근처 농장을 다 뒤져서 오솔길이 은신처라는걸 알아냈다고 추리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앞서 경찰이 나타났을 때 처럼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고 위장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도주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했었고요. 하지만 은신처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방법을 택했다가 산채로 감금당하고 마는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을 은신처에 가둔 퀴브 - 스미스가 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회유하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도 이상합니다.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를 영 모르겠더라고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한 목적은 전혀 와 닿지도 않아요. 별로 대단한 서류가 아니라는건 주인공과 퀴브 -스미스의 대화로 이미 드러날 정도이고, 주인공 서명 정도를 위조하는게 그리 어려울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탓입니다.
주인공이 영국 정부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21세기의 한국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불명예가 예상된다는데, 도대체 무슨 불명예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실 내가 아는 영국인 중에 그가 가져온 망할 문서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거부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집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퀴브-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이 아쉬웠습니다. 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노포와 비슷한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퀴브 스미스가 환기구를 막았던 자루를 빼다가 주인공이 쏜 화살에 맞고 죽는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환기구로 고개를 내민다는건 영 석연치 않으니까요. 물론 직전에 주인공이 서명을 하겠다며 퀴브-스미스를 구워 삶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총이 없다는걸 퀴브-스미스가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내용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퀴브-스미스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주인공과 자웅을 겨룬 라이벌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장점도 아주 명확하고요. 그러나 지금 시점의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낡은 느낌도 들어 감점합니다.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2번이나 - 그 중 한 편은 흑백 고전 영화 시대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이고, 또 다른 한편은 명배우 피터 오툴 주연 - 영화화 되었더군요. 곧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으로 다시 영상화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합니다.
2005/07/18
끝없는 추적 (追いつめる) - 이쿠시마 지로 / 이경재 : 별점 3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작가 이쿠시마 지로의 작품입니다. 나오키 상까지 수상했었네요.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풍기지만 하드보일드 추리물은 아닙니다. 캐릭터나 전개 방식이 니시무라 쥬꼬나 오사와 아리마사가 연상되는, 구태여 장르 구분을 하자면 "하드보일드 풍 모험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의 시다 시로오의 수사 방식은 "혐의자를 협박하거나 때린다 >> 혐의자가 진실을 말한다 >> 진실을 추적해서 다른 혐의자를 잡는다 >> 다시 혐의자를 협박하거나 때린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인간 관계 속에 진실이 숨어있는 하드보일드 추리물과는 다르게 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추리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건 자체도 단순하고, 일개 개인과 거대 조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별로 숨길 것도 없고요.
주인공이 복수심으로 혈혈단신 외로운 늑대로 싸워나간다는 점에서는 과거 사무라이 활극이 연상되며, 그래서 더욱 더 모험소설처럼 보이는 것 같네요.
이렇게 비록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지만 "재미"라는 기본 요소에 굉장히 충실하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거대 조직 하마우찌 구미의 치밀한 묘사를 비롯하여 협박과 공갈, 폭력 및 각종 상납 등 여러 범죄에 대한 디테일이 워낙 뛰어나서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속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대단하거든요. 작가가 나가사키 출신이라는데, 항구 도시 묘사는 본인 체험에서 우러나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이러한 재미에는 하드보일드에 걸맞게 외롭고 고독하면서도 터프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갖춘 쿨가이 시다 시로오의 매력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산토리 위스키를 찾는 장면 같은 디테일에서 시다의 고집이 잘 드러나 보여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속에 작게나마 나름 반전이 있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한마디로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현대의 일본식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의 원조격, 할아버지 뻘로 한번쯤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허무하긴 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는데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듯 해서 조사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후 10여편의 시다 시로오 시리즈로 이어졌네요. 1972년에 영화화 되었는데 구하기는 어렵겠지만 영화도 궁금합니다.
2011/08/06
파이 바닥의 달콤함 - 앨런 브래들리 / 성문영 : 별점 2.5점
| 파이 바닥의 달콤함 -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라비아 들루스는 우표광인 아버지 들루스 대령, 그리고 사이가 나쁜 언니 둘과 함께 벅쇼 저택에 사는 11세 소녀이다. 유일한 취미이자 관심사는 화학 뿐인 그녀 앞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전날 밤 그녀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인 수수께끼의 사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흥미진진한 사건, 그녀는 직접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 문학동네 덕분에 읽게 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리뷰에 앞서 문학동네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영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조숙한 11세 화학 천재 소녀 플라비아 들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세 자매의 막내로, 큰언니는 음악 (피아노), 둘째 언니는 (문학)이라는 예술적 특기가 있는 반면, 자신만의 실험실을 갖추고 다양한 독약을 만들어 낼 정도의 화학 천재라는 설정의 플라비아를 생동감 넘치게 잘 그려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왠지 "오 나의 여신님"의 스쿨드가 떠올랐어요. 사건 수사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막무가내 행동파의 모습은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과도 닮아 있고요. '소녀이자 화학 천재, 그리고 외로운 하드보일드 늑대!' 이러한 기묘한 조합에 성공했다는건 확실히 대단한 성취입니다. 그러니 시리즈로 계속 발표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제 취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른인 척, 아는 척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플라비아는 그런 캐릭터의 대표격이라 도저히 호감을 가질 수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작은 악마 같더라고요. 만나면 꿀밤을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요.
또한, 모험물로서는 괜찮은 수준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부분이 있고, 사건의 설득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추리적으로는 주요 사건이 결국 당사자들의 고백에 의존하는 것과 용의자가 너무 적어 딱히 언급할 게 없습니다. 본페니가 도요새를 파이 속에 숨겨온 이유와 왜 들루스 대령에게 우표를 팔려고 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당시 사건에 관련된 인물을 들루스 대령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만 제공하면 보브 스탠리의 정체도 쉽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계획된 범죄라고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실 죽일 필요도 없었죠. 본페니가 나가는 걸 봤다면 여관에 투숙한 뒤 짐을 뒤지면 됐을 테니까요. 여기에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희귀 우표 "얼스터 보복자"는 설정이 너무 황당해서 유머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과거에 벌어졌던 트와이닝 선생 자살 사건의 트릭은 괜찮았지만, 단서가 잡힌 과정이 플라비아가 되는 대로 행동하다가 얻어걸린 우연이었기에 역시나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재미는 있지만 빠져들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아동 취향이고, 아이들이 읽기에는 무거워 보여서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궁금하네요. 저보다는 조금 어린 청소년~20대 독자들 취향의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웨스팅게임"과 비슷합니다. 재미도 있고, 소녀 캐릭터도 잘 살아 있으며, 완벽한 해피엔딩까지 삼위일체를 이루었지만, 진지한 추리의 맛이 부족하고 너무 어린 취향이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