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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피터 노왁 / 이은진 : 별점 2.5점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6점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문학동네

제목 그대로 섹스 산업과 무기 산업, 그리고 패스트푸드 산업을 통해 현대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미시사 / 과학사 서적입니다.

섹스 산업이나 무기 연구를 통해 여러가지 과학이 발전하고, 그것이 실생활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통조림, 전자 레인지 등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을 모두 망라하여 소개한다는, 집대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또 통조림과 같이 전쟁을 통해 등장한 음식들은 알려진 것들이 많았지만 '패스트푸드' 산업을 놓고 설명하는 책은 전에 접한 적이 없어서 신선했어요. 대표적인게 맥도날드의 품질 관리 방법입니다. 비좁은 공간을 감안하였을 때 가장 주방을 잘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맥도날드는 잠수함 주방 설계 경력자를 고용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장소에 적용 가능한 표준화 작업, 튼튼하고 청소하기도 편한 주방을 설계하여 보급하게 됩니다. 또 감자 튀김의 전 매장 표준화를 위한 품질 관리 및 튀김 기름 온도를 측정하여 알려주는 센서 감지기 등 신기술의 도입, 물류와 유통 효율화 등 전 과정에 걸쳐 무기, 전쟁 관련 기술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알려줍니다. 맥 너겟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닭고기 품종과 뼈에서 고기 발라내는 기계의 도입이 중요했다고 하네요.
군을 위해 개발된 기술로 만들어진 오렌지 쥬스 냉동 농축액이 현재의 '미닛 메이드'를 만들었다던가, 분무 건조 기법으로 만들어진 초코 우유 분말 네스퀵,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의 유래 등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스팸에 대해 설명하면서, 스팸이 이미 현지화되어 일상적으로 먹는('무스비' 같이) 태평양 제도 원주민들이 비만과 그에 따른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현황도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었고요.

전쟁, 무기 산업에서 연구되던 기술이 장난감과 결합되는 이야기들 역시 인상적입니다. 움직이는 스프링 '슬링키', 고무 찰흙 '실리 퍼티' 등이 그것입니다. 당연히 비디오 게임도 전쟁 관련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세 가지 산업의 한 축인 포르노 산업 관련해서는 딱히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비디오 캠코더 시장은 포르노와 결합되어 발전했다는 등 내용도 뻔하고요. 이전에 읽었던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와 비교했을 때 딱히 나은 부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이아나가 폰섹스 중계기지로 이용되어 통신망 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되었다던가 자신의 누드 사진이 디지털 화상 작업에 이용되어 불멸의 명성을 얻은 레나 셰블롬 이야기, 추억의 스타 테라 패트릭 인터뷰 등은 볼만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무기를 연구하던 연구원 출신 라이언이 만들었다고 해서 무기 산업과 마텔을 결부시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워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아울러 내용이 분명 재미는 있는데 문체가 굉장히 딱딱해서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도판이 전무하다는 것은 정말 아쉬워요. 모든 소개된 제품은 사진으로 보강해서 설명해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확실한만큼 호불호는 많이 갈릴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호' 입니다. 이런 류의 서적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2017/06/11

후쿠오카 살인 - 김성종 : 별점 1점

후쿠오카 살인 - 2점
김성종 지음/뿔(웅진)

국내 추리문학의 거목인 김성종 선생님의 근간입니다만, 단언컨데 그 동안 읽은 책 중에서도 최악을 다툴만합니다. 감히 '작품' 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어려운 지경의 종이 무더기에요. 얼마전 "하카다 돈코츠 라멘즈"가 '나무야 미안해' 수준이라면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최악입니다.

지나와 봉수 부부, 세호와 서라 부부가 등장하고 그들이 각자 상대방 배우자들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시대착오적인 도입부 설정부터 가관입니다만, 유지나가 이세호를 시켜 서봉수를 죽이기 위한 일본 여행을 떠나는 본편이 시작되면서 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먹고살기 힘든 인쇄소 사장에 불과해 보였던 이세호의 정체가 사실은 국내 위조 조직에서도 거물인 범죄자로, 과거 살인을 포함한 수 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변장의 달인이자 범죄의 황제라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알고 보니 옆집 남자가 팡토마고르고 13이었다는 건데, 이렇게 설정을 변경하려면 최소한의 설득력은 보장해 줬어야 합니다. 뜬금없기가 과거 김삼 화백 만화를 수준이에요.

더 웃기는 것은 이세호가 개중 나은 편이라는 겁니다. 여성들 캐릭터는 모두 삼류 성인 만화에나 나옴직한 색정광들로 이해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그 중에서도 형사 구밀라 캐릭터는 최악 오브 더 최악이에요. 섹스 중독증이라는 설정부터가 유치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상황은 뭐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더블맨을 만나기 위해 먼저 위조업자 황사장과 관계를 갖고, 한국과 일본 양국 경찰에게 쫓기는 흉악범이 된 더블맨 이세호와 마지막에 관계를 갖는 식이니까요. 섹스 중독증에 걸린 이유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렸을 때의 성폭행 때문이라는데 요새 삼류 성인만화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을것 같군요. 게다가 이 조교로 육노예를 만든다는 싸구려 성인물 설정을 구밀라 한명 뿐 아니라 미치코라는 다른 여성에게도 써먹는 건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세호가 일본에서 위조지폐를 구태여 쓴 행위부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깟 잔돈푼이 뭐가 중요해서 청부살인을 앞두고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자신의 위조 기술을 괴신했다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서봉수가 유지나를 청부 살해하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유지나와 이세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유지나를 죽일 하등의 이유는 없어집니다. 이혼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유지나가 살해된 이후는 더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남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두 여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섹스나 하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잖아요. 경찰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서봉수가 문서라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도 최악입니다. 당연히 이세호의 불륜을 눈치채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둘러댔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주역을 보는 것도 참 오랫만이에요.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도다이, 미치코가 유지나를 죽이기 위해 아무런 연고 없는 부랑자를 동원하여 일종의 자살 테러를 하는 정도인데, 이 역시 미치코와 범인간의 관계를 작위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목처럼 일본 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녹여낸 것 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여행 코스도 꽤 그럴듯하고요. 허나 일본 여행 역시 결정적 문제가 있습니다. 작품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살해하는게 여러모로 더 쉽다? 무슨 근거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일본도 나름대로 유능한 경찰력을 보유한 선진국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 일본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무모한 행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 설정은 아무래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많이 가 봤다는 아는 척에 분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내는 등 작품과 상관없는 작가 개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 것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이 척박한 한국 추리 문학을 어떻게든 일으켰던 이 바닥의 거목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쓰레기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과거의 좋은 기억만 안고 가는게 훨씬 좋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쓰레기만큼은 주의하시고 피하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17/05/28

허즈번드 시크릿 - 리안 모리아티 / 김소정 : 별점 2점

허즈번드 시크릿 - 4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마시멜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딸 셋, 남편 존 폴과 행복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는 성공한 주부 세실리아는 어느 날 존 폴의 비밀 편지를 다락에서 발견했다.
레이첼은 30여년전 살해당한 딸 쟈니에 대한 회한으로 평생을 보내온 할머니로 쟈니의 죽음 이후 남편, 아들과 멀어진채 살아왔는데 아들 부부가 유일한 위안인 손자 제이컵과 함께 뉴욕으로 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테스는 남편 윌, 사촌 펠리시티와 함께 광고회사를 하는, 아들 한명이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어린 시절부터 펠리시티와 떨어진 적이 없는 단짝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남편과 펠리시티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들었다.

실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신의 영역이다. - 알렉산더 포프.

최근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인 책입니다.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세실리아가 존 폴이 남긴 비밀 편지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궁금해 하는 과정까지는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 정도 부분인데,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데 성공하고 있어요. 도입부의 판도라 상자 이야기와 엮이는 아이디어도 절묘하고요.
뒷 부분도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남편 존 폴이 과거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고백하는 편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 세실리아의 심리 묘사가 아주 준수한 덕분입니다. 특히 지역 공동체에서의 삶 때문에 피해자의 어머니인 레이첼과 얽히는 과정에서 세실리아의 긴장이 극으로 치닫는 장면이 아주 대박이었어요. 딸을 허무하게 잃은 레이첼의 심리 묘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편집증과 같은 심리 상태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딸의 죽음 때문에 남편,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나버렸다는 묘사도 발군이고요. 시드니라는 낯선 공간을 무대로 했다는 점, 부활절 풍광과 핫 크로스번같은 디테일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인, '아내가 어느날 남편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된다.'는 설정이 지나칠 정도로 흔해 빠진 탓이 큽니다. 때문에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차별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범인이 아니고 범인을 숨겨주고 있었다던가("레베카"), 아니면 남편이 아직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쇄살인마라던가 (스티븐 킹의 중편 "행복한 결혼 생활") 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섹스앤시티"나 "위기의 주부들"같은 미국 막장 드라마 설정을 가져온게 전부입니다! 등장하는 아줌마들 모두 머릿 속에 섹스 생각밖에 없어요! 기승전섹스, 생각의 단계가 이거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 고부간 갈등과 불륜이라는 한국 일일 드라마 소재도 좀 섞여있는 정도고요. 제 취향과는 완전히 달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또 레이첼이 쟈니의 죽음 이후 삶이 망가졌다는걸 세실리아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세실리아의 죄책감이 별로 부각되지 못합니다. 이래서야 세실리아 혼자만의 고민일 뿐이죠. 최소한 이전부터 친했다, 또는 잘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레이첼의 붕괴된 심리를 세실리아가 공유하는 전개였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없이 남편이 거의 30여년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엄청난 문제처럼 부각시키니까 솔직히 설득력도 좀 많이 떨어집니다. 공소시효도 한참 지났을 뿐더러 범행을 저질렀을 때 까지의 삶보다 그 이후, 특히 결혼하고 함께 지낸 삶이 더 길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최소한 진심을 믿어주고 잊어버리는게 현실적일 테니까요. 존 폴은 그만큼 참회하는 인생을 살아오기도 했고요.

세실리아의 고민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이첼이 피해자 포지션으로 확실히 와 닿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특히 아들 롭은 내버려뒀으면서 손자 제이컵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며느리를 미워하는 모습은 완전 비호감이기 때문입니다. 카드로 만든 집 운운하며 가장 중요한 카드가 제이컵이라 그 카드가 빠지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손자이기는 하지만 부모가 직접 뉴욕으로 데려간다는데 뭘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니, 완전 우리나라 꼰대 시어머니 저리가라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심리묘사가 지나칠 정도죠. 이래서야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악역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쟈니의 죽음으로 인한 안쓰러움보다는 악당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지요.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지막 결말입니다. 남편의 죗값으로 내 딸이 불구가 되었다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장면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요. 저라면 레이첼에게 남편의 죄를 고백하고, 남편에게 보복하라고 했을 겁니다. 그 대신 레이첼도 목숨을 내 놓아야겠지요. 레이첼의 행동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건 존 폴이지 어리고 귀여운 폴리가 아니니까요.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결말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쟈니는 마르판 증후군이었고, 존 폴은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에필로그는 더 최악입니다. 쟈니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밀고 싶었으면 단서를 최대한 제공해 줬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테스와 윌 부부, 펠리시티 세 명의 삼각관계와 뒤이어 벌어지는 테스와 코너간의 일탈은 완전히 사족입니다. 테스가 불안증이 있고 펠리시티는 뚱뚱해서 둘만의 세계에 갖혀 살았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코너를 극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데 그런 것 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그렇잖아도 무지하게 긴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좀 잘라냈어야 합니다. 하긴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거 한개 뿐만이 아니죠. 지겹고도 지겨운 베를린 장벽 관련 잡담을 비롯해서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중반까지 독자를 몰입 시키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거보다는 우리나라의 범죄가 조금 들어간 막장 드라마들이("아내의 유혹"(?)) 더 재미있을 겁니다.

2004/11/09

병속의 미녀 - 정태원 엮음 : 별점 1.5점

병속의 미녀 - 4점 정원태/이성

다시 접한 정태원씨가 엮은 단편 앤솔러지. 헌책방에서 몇권 구입한 시리즈 중 마지막입니다. 목차는
  • 존 콜리어: 병속의 미녀 / 무서운 교배 / 잠자는 미녀
  • 클라이브 바커 : 수의의 고백 / 섹스와 죽음과 별빛 / 재클린 에스 / 마돈나
  • 아토다 다카시 : 여난 / 이상한 벌레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제가 "미스터리 에로티카"고, 책 소개도 에로틱한 미스터리 단편을 모아놓았다고 되어 있는데 선정 기준이 의심됩니다. 존 콜리어의 작품들은 그닥 에로틱하지도 않고 미스터리도 아니었고, 클라이브 바커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취향의 작품만 실려 있습니다. 그나마 아토다 다카시 작품들이 비교적 괜찮지만 너무 짧은, 그야말로 꽁트 길이밖에 안되는 소품이고요. 한 마디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요. 무언가 좀 부족하고 모호하달까요? 여튼 제 판단으로는 절대로(!) 미스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클라이브 바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었겠지만 저에게는 많이 아쉬운 단편집이었습니다. 그나마 "잠자는 미녀"와 "이상한 벌레"는 독특한 반전과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비교적 추천할만 하지만 나머지 작품은 별로 언급할 필요를 못 느끼겠네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병속의 미녀"
지니가 들어있다는 마법의 병을 산 남자가 지니를 이용하여 온갖 향락을 즐기다가 병에 자신이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 뻔한 동화의 뻔한 패러디죠...
 
"무서운 교배"
농부가 시체를 묻은 밭에서 기괴한 호박을 캐내는 이야기. 약간 섬찟하긴 한데, 무섭지도 않고 그냥 기묘하기만 했습니다.

"잠자는 미녀"
한 부자가 서커스에서 우연히 만난, 몇년째 잠을 자는 여인이라는 존재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동원하여 그녀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잠에서 결국 깨어나게 만들고요. 그러나 그녀가 깨어난 직후 바로 실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듯한 탄탄한 줄거리와 이색적인 반전이 마음에 듭니다.

"수의의 고백"
포르노 사업가의 속임수에 빠져 가족과 생활을 잃은 회계사가 복수를 꾀하다가 살해된 직후, 자신의 수의에 빙의하여 마지막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클라이브 바커 특유의 디테일한 묘사는 빛을 발하지만 얄팍한 줄거리와 허무한 결말로 그냥저냥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섹스와 죽음과 별빛"
클라이브 바커의 다른 단편집 "피의 책"에서 이미 읽은 작품입니다. 연기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는 일종의 좀비물입니다. 평작수준이라 보여집니다.

"재클린 에스"
이 단편집에서 가장 특이한 작품입니다. 섹스에 대한 치밀하고도 기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이한 초능력을 가진 마녀와 같은 여인 제클린 에스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도 엽기적인, 변태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제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마돈나"
위의 작품만큼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특이했습니다.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지하철"이 연상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와 "운명에 휩쓸린 평범한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보면 종교적으로, 하지만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뭐 이것도 그닥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여난"
평생 여자에게 눌려살던 한 소시민이 자살 직전에 군중들의 이목을 끌고 잠시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군중들은 바로 미인 여성 자살자에게 이목을 돌리게 된다는 이야기. 뭔가 공감이 가는 내용이더군요. 짧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상한 벌레"
20페이지도 안되는 꽁트입니다. 플라스틱을 갉아먹는 벌레를 발견한 사나이의 이야기입니다. 짧지만 성형수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까지 괜찮은 완벽한(!) 작품입니다. 역시 단편의 제왕 아토다 다카시다운 면모를 보인달까요?

2011/02/02

쩨쩨한 로맨스 (2010) - 김정훈 : 별점 3점

정배는 그림 실력에 비해 형편없는 스토리로 몇 년째 등단하지 못하는 성인 만화가로, 아버지의 유품을 지키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성인 만화 공모전에 도전하게 된다. 그래서 완성도를 높일 생각으로 스토리 작가를 선발하게 된다. 몇 번의 인터뷰를 거쳐 그가 선발한 것은 다림. 그녀는 별 볼일 없는 잡지 일을 전전하다 해고당한 여자로, 정배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계속 충돌하게 되는데...

성인 만화가와 백조 작가의 알콩달콩 로맨스를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티격태격하던 남녀가 공동의 작업을 하면서 사랑이 싹튼다는 설정은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비롯하여 많이 있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성인 만화'라는 공동 작업물의 설정이 독특한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여기서 오는 가장 독특한 재미는 무엇보다도 야한 대사가 감칠맛 나게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쥬메리미?", "섹스계의 호날두~!!!!" 등을 꼽고 싶네요.

그 외에도 성적인 판타지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여러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섹스의 전문가인 척하지만 전부 잡지 등에서 접했을 뿐, 실제로는 쑥맥인 다림의 섹스 이론이 펼쳐지는 장면처럼요.

그리고 설정에 어울리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작중 만화 "킬러본색" 캐릭터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적재적소에 삽입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도 괜찮았고, 정말 이야기 전개에 "딱 맞는" 효과를 보여주었으니까요.

단, "섹시 로맨틱 코미디" 치고는 화면 자체는 별로 야하지 않았다는 것과,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간 결말은 좀 안일했습니다. 너무 공식대로 흘러간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이건 뭐 불만까지는 아니고... 오히려 만화 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그린 내용이 더 문제였다 생각됩니다. 내용과 캐릭터의 상당 부분이 거액의 성인 만화 공모전이라는 설정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현실과는 괴리감이 많이 느껴졌거든요. 4개국 동시 출판되는 신인 성인 만화 공모전 상금이 10만 불이고, 인세가 30%라니... 이건 판타지의 영역이죠.

그래도 섹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굉장히 충실하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생각됩니다.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로 순수하게 직구 승부하는 영화는 보기 드물잖아요? 적역을 소화한 두 배우의 연기와 깔끔한 각본, 독특한 연출도 좋았고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2022/04/02

아버지들의 죄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점

아버지들의 죄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일 해니포드는 매튜 스커더에게 딸 웬디가 살해당한 사건 조사를 의뢰했다. 3년 전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된 딸이 왜 죽음을 맞았는지를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매튜는 웬디와 웬디의 룸메이트였으며, 현장 근처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던 리처드의 과거를 파헤치는데....

1976년에 발표되었었던, 로렌스 블록매튜 스커더 시리즈 제 1작입니다. 대표작 "800만가지 죽는 방법"보다 무려 10년 전 이야기지요. 

시기가 이른 탓인지 낯선 설정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건 매튜 스커더가 술을 엄청나게 마신다는 점입니다. 술 때문에 어린 아이를 죽게 만들었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자책하는 느낌은 없어요. 제 3자 입장에서 건조하고 냉정하게, 흡사 의뢰받은 사건을 다룰 때 처럼 본인 사건도 다루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창녀 일레인이 아니라 바텐더 트리나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모습도 새로왔고요.

그런데 내용은 무려 19편의 후속 시리즈가 이어진 작품답지 않습니다. 별로 건질게 없거든요. 일종의 스포일러인 제목부터가 문제입니다. 작 중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모두 세 명 - 웬디의 의붓아버지 케일 해니포드와 이름도 모르는 웬디의 친아버지, 그리고 리처드의 아버지 마틴 밴터폴 목사 - 입니다. 이 중 웬디의 친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죽었는데, 유부남이었던 주제에 웬디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도망갔던 쓰레기지요. 그 탓에 웬디는 아빠뻘 유부남에게 끌리는 비정상적인 성적 기호를 갖게 되었고, 결국 중년 남자들과 관계한 뒤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딸을 창녀로 만든 죄를 지은 셈입니다. 마틴 밴터폴 목사는 한술 더 뜹니다. 본인 스스로 웬디와 관계를 맺은 뒤 이를 자책하다가 그녀를 죽이고, 본인 아들이 죄를 뒤집어 쓰고 죽게 만든 두말할 것 없는 죄인이니까요. 가정의 기둥이 되어야 할 친아버지들이 딸, 아들을 파멸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건, 베트남 전쟁의 패전과 오일 쇼크를 불러와 국민들을 고통받게 만들었던 미국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를 상징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나마 착한 사람이 웬디의 의붓아빠 케일 해니포드였다는게 조금 의외였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의붓아빠의 성폭행이 벌어지는게 다반사였는데 말이지요. 케일 해니포드는 다소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선을 넘지 않았고, 오히려 웬디가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한 조사를 의뢰하여 죄인을 처벌하게 만드는, '죄를 묻는 아버지' 쪽이라는게 새로왔습니다. 이 역시 시대상으로 보자면, 공산주의와도 손을 잡기 시작한 당시 분위기와 겹쳐지는 느낌이에요.

제목처럼 이야기도 간단명료해서 모든건 쉽고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이 역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읽을거리로 소구되기 위해서라 짐작되네요. 매튜 스커더의 수사 과정도 아주 단순해요. 수사라 해 봤자 관계자를 만나 증언을 얻는게 전부이며, 이 모든 과정은 일반인 이상, 경찰 이하라는 매튜 스커더 수준에 딱 맞는 정도라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플하게 끌고나간 탓일까요? 등장 인물 중 범인역을 수행할 인물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틴 벤터폴 목사가 범인이라는 결말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 그리고 그가 웬디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걸 추리해낼 만한 증거가 전무했던 탓입니다. 단지 목사가 봄에 웬디를 만났었다, 웬디를 사악한 마녀로 칭하며 섹스를 무기로 삼는걸 경계했다,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다는게 전부인데, 이를 통해 봄에 웬디의 유혹에 넘어간 뒤, 관계를 지속하다가 죽였다고 추리하는건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살인을 결심한 이유, 동기도 설명이 부족했고요. 

또 매튜 스커더가 강제로 목사가 자살하게 만든다는 결말은 전혀 그답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매튜 스커더 본인도 죄많은 존재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심판한다는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진실을 밝히고 사람들이 평가하도록 만들면 모를까요. 대체 누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입니까? 매튜 스커더에게는 어설픈 자경단 역할보다는 냉정한 관찰자가 더 어울립니다. "더티 해리"가 아니라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악에 대한 무조건적인 심판을 바랬다 하더라도, 아무리 봐도 무리수였습니다.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폐기되어 버린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매튜 스커더에 협박에 못이겨 목사가 자살을 택한 것도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매튜의 중상에 무너져버린 꼴인데,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아들이 살고 있는 방에 아버지 흔적이 남는건 당연하니까요.

그나마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매튜 스커더의 일종의 메소드 추리법(?) 정도만 인상적입니다. 그는 웬디와 리처드가 함께 살던 방에 잠입해서, 그들처럼 직접 체험해보고 느껴본 뒤 -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 방 저 방에 다니면서 의자에 앉았다가 벽에 기대기도 하면서, 그곳에 살았던 두 사람의 본질과 접해 보려고 애를 썼다." - 그들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웬디와 리처드가 섹스가 아닌, 사랑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완벽한 커플이었다는걸 알아내거든요. 돈도 없고, 대단한 과학 수사 도구도 방법도 없는 매튜 스커더에게 정말 딱 맞는 추리법이었어요. 후속작에서 이를 잘 계승했더라면 추리 소설사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어지지 못한게 조금 아쉽네요. 또 이런 수사 과정을 통해 리처드가 진범이 아니라는게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리처드는 동성애자인데다가, 웬디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동거하고 있었으니 구태여 죽여가면서 섹스를 강제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나기도 했고요. 시리즈의 팬으로 매튜 스커더의 시작을 알고 싶으신 분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6/02/10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조앤 플루크 / 박영인 : 별점 1.5점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2점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해문출판사

미네소타주 레이크 에덴에서 "쿠키단지"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노처녀 한나 스웬슨은 가게에 우유 배달을 하는 청년 론 라샬르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배달 트럭 안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한나의 제부 빌은 그녀에게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한나는 개인적으로 수사를 벌여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코지 미스터리의 대명사같은 한나 스웬슨 시리즈 1작입니다. 장기 시리즈로 이어진 인기작이지요.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들에 깊은 관심이 있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조금 찾아봤는데,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코지 미스터리는 섹스와 폭력의 비중이 낮고 유머러스하며, 작고 친밀한 커뮤니티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이 정의에 100% 부합합니다. 두 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만 시체만 발견될 뿐, 그 외의 폭력적인 묘사는 전무하며 섹스 관련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주인공 한나와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유쾌하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레이크 에덴은 경찰도 몇 명 없고 주민들 모두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야말로 코지 미스터리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습니다. "미스터리"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추리적으로 별 볼일 없는 탓입니다. 진범이 벤톤이 아니라 주디스라는 것 정도는 의외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 게 없고, 별것 아닌 단순한 사건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기를 썼을 뿐이거든요. 보이드 건이 대표적인데, 문제는 동기를 갖다 붙인건 억지스럽고 작위적으로만 보였다는 겁니다. 

경찰이 너무나 하는 게 없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론 라샬르가 시체로 발견된 시점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나요. 어차피 관계자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이 시점에서 론의 상사 맥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그의 시체도 바로 발견됐을 테고, 론의 죽음은 곁다리였을 뿐 범인의 핵심 목표는 맥스였다는 것도 쉽게 드러났을 거예요. 범인을 찾기 위해서는 동기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되새겨 보면, 맥스를 죽인 동기는 빚 문제라는게 명확하니 채권자들만 훑어도 사건은 해결할 수 있었을 테고요. 시대를 짐작하기 어려우나 최소 90년대 이후라면 맥스가 단지 서류 한 장으로 대출을 처리했으리라는 발상도 안이합니다.
한나가 사건 담당 경찰 빌의 처제라고는 하더라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건은 이래저래 경찰의 직무 유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물론 인기 시리즈다운 부분도 있긴 합니다. 한나와 주변 인물들, 한나의 어머니나 동생 안드레아, 빌, 조수 리사 등의 심리 묘사만큼은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여성 작가인 덕분인지 확실히 심리 묘사의 디테일은 뛰어납니다. 다양한 쿠키들에 대한 레시피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입문자 분들이 가볍게 읽기에 적당한 분위기와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네요.

하지만 이런 건 미스터리와 관계가 멀죠.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간 로맨스 소설에 가깝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더 읽을 일은 없을 겁니다. 참고로 제목과는 다르게 초콜릿칩 쿠키 역시 살인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감점 요소였습니다.

2004/08/08

누구나 비밀은 있다 - 장현수 : 별점 1.5점


재즈바의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셋째 미영은 자유연애주의자이다. 자신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물망초 남자, 상일이 있지만 순진한 남자는 끌리지 않는다. 어느 날, 재즈바에 손님으로 온 수현을 보고 그 준수한 외모와 깔끔한 매너에 반하게 된다. 이 남자, 딱 내 타입이다! 제대로 걸렸다!

사랑? 섹스? 궁금한 건 뭐든지 책에서 배우는 학구파 대학원생 둘째 선영. 스물 일곱, 아직 처녀다. 사랑은 벼락처럼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 온다고 믿는 선영은 어느 날, 집으로 인사하러 온 동생의 애인 수현을 보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을 느낀다. 이 남자, 동생의 애인이지만 갖고 싶다!

결혼 전보다 오히려 섹스 횟수는 줄었고 남편은 가족하고는 동침하는 것이 아니라니 첫째 진영에게 사랑은 과거형일 뿐. 그런 진영에게 동생의 애인인 수현이 '귀여움'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진영도 자신에게 전해지는 이 남자의 시선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이 남자, 속 마음이 궁금하다!

진영, 선영, 미영 세 자매가 동시에 사랑하게 된 수현. 도대체 수현의 어떤 매력이 세 자매를 사로잡은 것일까? 세 자매와 한 남자의 아찔한 애정행각. 그 은밀한 비밀이 조심스럽게 밝혀진다


간만에 극장가서 본 영화입니다. 익히 알려진 정보대로 이병헌을 중심으로 세 자매의 은밀한 이야기가 뒤섞이는 코미디 성격이 강한 로맨틱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불쾌함이 느껴졌습니다. 화랑을 경영하며 오픈카를 타고다니며 패션감각이 뛰어난 바람둥이 이병헌과 재즈바 사장의 딸들로 넓은 2층집에서 살며 온갖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세 자매들의 설정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뭐..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해서 더 위화감을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야기도 세 자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형식인데, 첫번째 이야기인 미영의 이야기와 두번째 이야기 선영의 이야기까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세번째 이야기인 진영의 이야기는 전체 내용과 별로 잘 어울리지도 않고, 사족으로만 느껴져서 아쉽더군요. 추상미는 못 보던 사이에 굉장히 나이 들어 보여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이병헌의 플레이보이 전략과 감칠맛 나는 대사들, 세 자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에서 절묘하게 편집한 이야기 구조 등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촬영과 음악 등에서 완성도도 괜찮은 수준이지만 비현실적인 설정과 내용으로 공감할 수 없었던 영화입니다. 사실 주인공 이름들과 배우들만 빼면 대체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인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영국영화 리메이크라지만 이건 좀 심합니다. 리메이크할때는 각색을 안하나요? 그리고, 이병헌이 과연 이 영화에 적역이었을까요?

그래도 두번째 이야기 선영의 이야기만은 괜찮습니다. 최지우가 귀엽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야기도 가장 재미있고 몰입할 수 있었거든요. 편집도 가장 맛깔나게 잘 되어 있어서 추천합니다. 그나마 세 여배우가 좀 더 벗어주기만 했어도 돈이 좀 덜 아까왔을텐데......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5/05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익사체 - 가브리엘 마르케스 외 / 김훈 : 별점 2.5점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 - 6점
가브리엘 마르케스 외 지음, 김훈 옮김/푸른숲

플레이보이는 비록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잡지 중 하나입니다. 여성들의 누드 사진뿐 아니라 양질의 기사들, 특히 수록되었던 단편 소설들도 유명했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이 소개되었을 정도니까요.
이 책은 1954년부터 1993년까지 플레이보이지에 수록되었던 수백편의 단편들 가운데 최고의 작품만 가려 모았다는 책입니다. 모두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명성만큼이나 작가들의 이름도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아는 작가만해도 가브리엘 G 마르케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리처드 매드슨, 존 업다이크 4명이나 되며, 다른 작가들도 소개만 보면 대단하기 짝이 없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문학적인 측면이 강해서 어렵기도 했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 성립되지 않는 작품들도 많은 탓입니다. 표제작, 그리고 보르헤스의 "타인"이 대표적입니다.
또 미국 성인 잡지에 수록된 작품인 탓인지 남자와 여자의 사랑, 불륜, 섹스를 다룬 이야기들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비슷해서 지루했습니다. 로리 콜윈의 "정부", 필립 로스의 "이웃집 남자", 선 오페일런의 "마멀레이드 좀 주시겠어요?"가 그러합니다. 

물론 가려 뽑힌 작품들 답게 건질게 없지는 않아요. 몇 편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웃집 남자"는 이웃집 남자가 벌거벗은 몸을 자신의 아내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남자의 이야기인데, 남자 시점의 복잡한 심리를 수상한 아내의 행동 묘사와 결합시켜 흥미롭게 전개하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굿바이 콜럼버스"도 꼭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멀레이드 좀 주시겠어요?"는 신학생도인 남자가 한 여자와 만나 사랑에 빠진 후 신을 버리지만, 이후 권태기가 찾아오고 아내가 된 그녀와 술집에서 남과 같은 만남을 가진다는 다소 독특한 설정으로 재미를 전해 주고요.
마지막 수록작인 존 업다이크의 "혼란스러운 여행"은 제목 그대로 혼란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빼어난 묘사가 돋보였습니다.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드슨의 "매춘부 전성시대"는 점점 정도를 더해가는 매춘부들의 방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매춘부들이 사라지고 매춘남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는 극적 반전이 아주 감탄스러웠어요. 반전만큼은 확실히 명불허전입니다.
"안전한 사랑"은 안전 섹스에 대한 블랙 코미디로 결국 무좀 때문에 헤어지고 만다는 결말까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발표 당시 상당히 유명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에서는 폴 테로의 "하얀 거짓말"을 최고로 꼽습니다. 사기꾼을 응징하는 곤충학자의 행동이 적절한 공포, 서스펜스 분위기로 잘 그려진 수작으로, 한편의 좋은 범죄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냥 입어도 되는 옷까지 다림질하는 사소한 행동과, 그 뒤 셔츠 선물을 통해 진상을 이끌어내는 전개가 아주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수록작들도 대부분 한번 읽어볼 만은 합니다. 당시 미국 현대문학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제 별점은 2.5 점입니다. 지금은 절판 되었지만 혹시 한번 구해 보실 수 있으면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네요.

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1/21

분신사바 - 이종호 : 별점 2.5점

분신사바 - 6점 이종호 지음/황금가지

서울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Y시로 전학온 유진은 왕따때문에 고통받다가 자신과 더불어 "왕따패밀리"인 희선, 정섭과 같이 한밤중에 교실에서 "분신사바" 주문으로 귀신을 불러 자기들을 괴롭히는 4명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빈다. 한편 아이들의 담임인 한재훈은 새로 근무하게된 미모의 여성교사 은주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은주는 자신과 가까이 한 사람에게는 모두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이후 4명의 학생이 차례로 자살같지만 자살이 아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계속되는 괴이한 현상을 통해 유진과 은주는 각자 자기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무언가 사건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사끝에 아이들의 죽음에 30년전 마을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재훈은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차 마을은 두려움과 공포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며 드디어 폭주하게 되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호러소설가 이종호씨의 작품입니다. 원작에 대한 평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되는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의 한권으로 나오기도 했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깔끔한 편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떠올린 첫 단어는 아쉽게도... "진부함"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호러라는 쟝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이제 나오기 힘든걸까요?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과 장면으로 구성된 책으로 신선한 느낌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강하더군요.
이야기 배경에서 "여고"와 "왕따"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일종의 "한"을 다루고 있는 것은 기존 호러물(여고괴담 등)에서 많이 보여졌던 요소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왕따 학생이 귀신을 불러 저주를 걸다가 스스로 자멸해 나가는 설정 역시 너무나 흔하디 흔한 설정이죠. 다만 "분신사바"라는 주문으로 귀신을 부르는 방법이 약간 독특할 뿐이에요.
또 "Y시"라는 폐쇄적인 한 마을, 그리고 마을에서 30년전에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한 과거의 업보를 짊어지고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외딴 마을에서의 마을내 좀비들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폭주 이야기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 등에 를 연상케 하고요.

물론 "Y시"를 떠나서는 불행한 죽음을 맞게되어 "Y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저주같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점차 공포를 더해가고 과거의 비밀이 겹쳐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는 괜찮아요. 현재와 과거를 잘 접목하면서도 혼란스럽지도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니까요.
하지만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은주가 춘희로 돌변하여 살인귀로 변신하는 장면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섹스에 칼부림 난도질까지 등장하는 식으로 강도가 점점 더 세지면서 사람이 죽어나가야 진정한 공포물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저는 잔잔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평생 쫓아다니는 저주가 더 공포스럽지 않았나 생각되거든요. 또 30년동안 환생과 빙의를 하며 유지해 온 복수의 한이 풀리는 것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호러물식 엔딩같이 너무 쉽고 작위적이었다고 보입니다. 허무하기도 하고요. 거기에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나올 필요도 없었던 안일한 끝맺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세련된 문체와 깔끔한 장면묘사로 이루어져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네요. 이러한 점은 작가가 PD출신인 덕이라 생각됩니다. 장면묘사에 대해 상당히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영화적인 서술방식으로 구체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읽기가 무척 편하고 즐거웠던 것도 좋았어요.
또 첫 머리의 상당히 영화적이지만 충격적이었던 "분신사바하는 펜을 잡은 또 다른 손!"에 대한 묘사, 여타 호러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씌운 후 불에 태워 질식사 시킨다는 굉장히 참신한 살인방법, 그리고 무당 춘희와 딸 인숙의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의사소통 방법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공포와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한마디로! 한번 손에 잡으니 한번에 읽게 되는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소설 그대로 콘티를 짜서 찍었어도 보통 이상은 해 줬을 것 같은데 영화가 너무나 평이 안좋고 어설픈 장면이 많아 우스개로까지 전락해버린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감독도 호러계에선 나름 유명한 안병기 감독이라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 너무나 무참한 평들을 보고 참는 중이죠.^^ 저자가 PD출신인데 직접 감독을 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S :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는 기획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종이를 좀 가벼운걸 썼으면 책 두께가 2/3으로 줄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살짝쿵 생깁니다.^^

2007/03/08

파우스트 Vol.3 -2007 겨울 : 별점 2점

파우스트 2007.겨울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학산문화사(잡지)

경성탐정록으로 인연을 맺은 계간지입니다. 두께에 놀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3일에 걸쳐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과연 이 잡지가 팔리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잡지 전체의 작풍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모호했거든요. 호러와 판타지, 추리, SF가 뒤섞여 있는 쟝르문학 잡지이기는 한데 각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의 타겟과 작풍이 너무나도 달라서 이 두꺼운 분량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잡지를 소구하는 독자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맛은 별로고, 취향에 따른 일부 재료만 맛있는 잡탕찌게랄까요?

아울러 작품들의 문체나 설정만 놓고 보면 대상 연령층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데 작품들 대부분이 잔혹한 폭력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보인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작품들이 "젊은 감성" 이라는 카피를 달고 나오긴 했지만 예전의 기쿠치 히데유키류의 엽기 에로 폭력물(?)의 문체만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기본적인 설정이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 결과물 그 자체로는 결국 똑같아 보였거든요. 작가의 의도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의 고민이 아쉽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제 취향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별점은 2점. 경성탐정록을 제외하고 베스트를 꼽자면, 강병융의 "킬킬킬"과 세이로인 류스이의 "성공학 캬라 교수"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작품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인데 일본 작품들은 정말로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장르 문학이라 하더라도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추리면 추리, 판타지면 판타지, 호러면 호러 식으로 특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거기에 더해 페이지도 좀 줄이고, 가격도 좀 더 줄인다면 지금보다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고요. 미스터리 관련 대담을 미루어 볼때 향후의 잡지의 발전 방향이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개인적으로 기대해 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마법소녀가 등장해서 다른 마법사와 싸움을 벌이는 격투 액션물.. 로 보입니다. 재미있긴 한데 왜 소설로 쓰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들도 일러스트로 묘사하고 내용의 대부분이 액션 장면인데 만화 등으로 구현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주 약간의 두뇌싸움이 등장하지만 비쥬얼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두뇌 게임이라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 제로자키 키시시키의 인간 노크 - 니시오 이신
이것 역시 니시오 이신 작품입니다. "제로자키 일족"이라는 살인 집단과 그들에 대항하는 조직의 짤막한 사투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만 "리스카"의 경우 처럼 이 작품도 만화쪽이 훨씬 어울렸을리라 생각합니다.

3. 그녀 집으로 오세요 - 이종호
한국 호러 소설의 중견 작가인 이종호씨의 신작입니다. "분신사바"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 기대했는데 이 작품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주요 설정을 "펫 세메터리"에서 가져온 것은 그렇다쳐도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진부하기 이를데 없었거든요.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 때문에 다음편에서 좀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4. 킬킬킬 - 강병융
취업난을 가지고 기발하게 써 내려간 단편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철수"와 "영희"라는 것 부터 기발하고, 여러가지 설정 등이 읽으면서도 참 재치있게 쓴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반전은 좀 더 복선을 깔아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으며, 마지막 엔딩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데? 라는 의문밖에는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5. 무지개빛 다이어트 코카콜라 레몬 - 사토 유야
여러가지 설정을 가져다 붙이면서 뭐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정신병자입니다.... 내용도 왠지 모르게 뻔했고요. 이외의 평은 생략합니다.

6. ECCO - 타키모토 타츠히코
다중인격 (일지도 모르는) 소녀의 다른 인격 (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교감을 나누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로 소외감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잔잔하면서도 전해 줄 이야기는 다 전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슨 이야기인지는 당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긴 하네요.

7. 이상한 사람들 - 와타나베 코지
짤막한 콩트. 한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완성도는 높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이야기라는 것이 아쉽군요.

8. W*rld meets W*rld - 모토나가 마사키
설정, 묘사, 스토리 모든 것이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입니다.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만화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호질 - 이선웅
파우스트 소설상 우수상 당선작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히 깔끔하고 재미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평처럼 너무 서둘러 끝낸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말부가 매끄럽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심령 수사관이 하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것도 좀 황당했고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나게 읽었기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10. 성공학 캬라 교수 - 세이로인 류스이
젊은 감각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죠.^^ 그야말로 파격적인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만화가 내용과 밀결합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고요. 하지만 이게 과연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1. 코마츠키 마키코 - 마이조 오타로
한 천재(?) 가 등장하는 소설로 다중인격(?) 같은 무언가를 밀도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 기타 칼럼 / 대담 / 만화

2015/11/12

수수께끼 그녀 X - 우에시바 리이치 : 별점 3점

수수께끼 그녀 X 12 - 6점 우에시바 리이치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가면 속의 수수께끼", "꿈의 사도"의 작가 우에시바 리이치의 만화. 전 12권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2014년 11월에 완결되었으니 비교적 최신작이죠. 우연찮게 읽기 시작했는데 꽤나 재미있어서 한 번에 읽어버렸네요.

1화는 이전 작들과 비슷했습니다. 타액을 이용하여 감정과 몸 상태를 공유한다는 등의 기묘한 설정, 너는 누구와 첫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충격 발언이 연이어 그려지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뒤로 갈수록 평범한 학원 러브 코미디로 변모해 버립니다! 둘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에 아이돌 가수의 난입, 학교 축제 등과 같은 대형 에피소드가 끼어드는 전형적인 스타일로요. 물론 작가가 작가이니만큼 아주 평범하지만은 않습니다. 에피소드별로 여전히 일상 속 비일상스러운 기묘함이 계속 감돌거든요. 서로 타액을 공유한다는 설정이 계속 사용되는 식으로요.
게다가 타액을 공유한다는 설정의 러브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두 커플이 끝까지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플라토닉한 러브스토리라니! 12권으로 깔끔하게 완결하면서 우라베의 입을 빌어 두 사람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준 결말도 아주 좋았고요.

또 히로인 우라베 미코토의 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완벽한 외모에 운동신경 발군으로 온갖 체육 활동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슈퍼우먼인데다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관계자)에게만 따뜻한 나만의 여신이지요. 개인적 견해로 남성 판타지 궁극 히로인의 양대 산맥 - "오렌지로드"의 아유카와 마도카,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 - 중 아유카와 마도카의 적통 계승자로서 21세기에도 죽지 않는 생생한 매력을 뽐냅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슈퍼우먼은 아니지만 말이죠. 하긴 우라베 미코토도 항상 가위를 팬티 옆에 끼워 가지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자르고 파괴하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는 만화 같은 설정이 있으려니 동급이려나?

그리고 무색무취, 유유부단의 대명사 카스카 쿄우스케보다 남자답고 확실한 츠바키 아키라도 꽤 호감이 갑니다. 전형적인 하렘 루트를 타지 않고 우라베 일직선, 그러면서도 지킬 것은 멋진 녀석이거든요. 학교 동급생들 앞에서 "코이즈미 마이 러브"를 외치는 단순 일직선 바보와는 다르게 우라베가 입을 댔던 음료수를 마신 뒤 생긴 변화를 눈치채고 달려가 사과하는 섬세함도 돋보이고요.

그 외의 다른 캐릭터들, 안경 로리 거유 오카와 우에노, 스와노 등에게도 이야기를 할애해가며 조연으로의 역할을 주는 디테일도 좋았어요. 특히 오카와 우에노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로 있음직해 보이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이에 더해 화풍도 청춘 러브 코미디 스타일로 서서히 바뀐 덕분에 여성 캐릭터들의 작화가 아주 매력적이라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전작들에서는 좀 어리거나 빈약(빈유)했던 캐릭터들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여성을 예쁘게 그리는 건 만화가로서 상당히 중요한데 그야말로 포텐이 제대로 터진 느낌입니다. 청춘 러브 코미디답게 전작 스타일의 집요한 디테일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등 작가의 스타일 자체가 변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나, 저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 더 중요한 성격의 작품이라 생각하기에 "호"입니다.

딱 한 가지 문제라면 타액을 공유하는 설정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우라베와 츠바키 둘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설정으로 아, 여긴 원래 그런 세계구나... 싶은 정도로 넘어가기는 하는데 좀 대충대충인 감이 없잖아 있어요. 카자미다이 고교 축제에서 상영된 영화 "수수께끼의 그녀 Y"처럼 이유를 대략이라도 밝혀주고 끝을 내는 게 어땠을까 - 영화 속 설정은 이 모든 건 주인공의 착각으로 사실 지구는 멸망한 것이었다는 것 -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청춘 러브 코미디라는 정말이지 흔하디 흔한 장르에서 약간의 독특한 설정만으로 이만큼의 변주를 끌어낸 점은 정말이지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앞서 말했듯 근본적으로 "플라토닉"한 이야기라는 발상의 전환도 놀랍고 말이죠. 특히나 우라베 미코토의 존재만으로도 러브 코미디 계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할 자격은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되는지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되었더군요. 이 역시 차분히 감상해봐야겠습니다.

2024/12/15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 에드워드 브룩-히칭 / 최세희 : 별점 2점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 4점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최세희 옮김/갈라파고스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희귀하고 기묘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 사람의 실제 피부로 만들어진 책같이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책들이 가득합니다. 도판이 특히 빼어난 편으로 눈도 즐겁고,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중세와 근대 서양 서적이 중심을 이루지만, 중국의 갑골문과 잉카의 매듭책 키푸 같은 다른 문화권에서 유래된 책들도 포함되어 흥미를 더합니다. 후반부에 소개된 초소형 책들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고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책 "가장무도회"는 책 속의 암호를 풀면 보석 장식의 황금 산토끼가 묻힌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출간 후 3년 뒤 정답자가 나왔고, 황금 산토끼 역시 정말 존재했다는게 밝혀졌지요. 게다가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니, 아주 환상적인 판매 전략이었다 생각됩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크 맥그레이디가 저급하고 선정적인 소설의 인기를 풍자하기 위해 기획한 로맨틱 코미디 소설 "낯선 남자는 나체로 왔다"는 끝없이 섹스 장면만 이어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출판 사기' 섹션은 더욱 흥미로왔습니다. 하워드 휴즈의 자서전을 가짜로 써 수십만 달러 계약을 따냈던 클리퍼드 어빙의 사기 사건이나, 히틀러의 일기를 무려 60권이나 날조한 독일의 콘라드 쿠야우 사건처럼 단순한 출판을 넘어 범죄적 성격을 띤 사례들을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의 구성과 흐름에서 두서가 없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소장하거나 조사한 기묘한 책들을 나름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책의 형태나 제작 방식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습니다.
또 대부분 흥미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서 역사적 맥락이나 책의 의미를 깊이 다루는 내용도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책과 같은 사례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히 기묘한 소재로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분량도 과도하게 할애되어 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희귀한 책을 화려한 도판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소개하지만, 두서없는 구성과 얕은 깊이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비슷한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2023/10/21

해변의 카프카 상/하 - 무라카미 하루키 / 김춘미 : 별점 4점

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죠. 1990년대 이후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완독한건 처음이네요. 1Q85는 2권까지는 읽었는데 완독에는 실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징과 은유, 그리고 정확하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모험 소설같은 재미를 가져다 주는 덕분이지요.

많은 분들이 각자 다른 줄거리와 해석을 내 놓고 있는데, 저는 다른 분들처럼 이 책에 대해 저만의 해석을 내 놓을 정도로 깊이있게 읽지 못했기에 뭔가 설명드리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따로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제 해석과 상상의 결과물을 짤막하게 정리해봅니다.
제 생각에는 다무라 카프카는 사에키 씨의 첫사랑 그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죽은 뒤 사에키 씨는 소년의 환생(?)을 위해 문을 열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그 댓가(?)로 소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결국 둘이 다시 만났지만 다무라가 문 안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사에키 씨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즉,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결말인 셈입니다. '문' 안의 세계에서 세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문 안에서 통제할 수 있었던 나카타 노인을 이용하여 '문'을 열고 닫으며, 사에키 씨에게 끝맺음을 알리는 등의 과업을 시켰고요.

'문' 안에서의 의지는 누구의 것인지, '문' 안의 세계를 위협하는 '피리부는 남자'는 누구인지 등은 아직도 모르갰습니다. 다무라 카프카의 아버지인건 분명한데, 왜 '죠니 워커'가 되어서 나카타 노인에게 살해당하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거든요. 마지막에 문 안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던 괴이한 생명체와 같은 존재라면, '문' 밖으로 나와 사에키 씨를 만나 다무라를 낳았지만 '문'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같은 존재인 거지요. 차이라면 자식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게 아니라, 자식을 이용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려 했던 것 같고요. 이건 다 제 상상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잘 모를 이야기를 이렇게 뭔가 있는 듯,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내는건 분명 놀라운 재능입니다. 감탄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은 읽다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전부 '어떻게든 되겠지'하면서 일을 저지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특히 호시노 군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양아치 출신 트럭 운전사였지만 나카타 노인과 함께 했던 짧은 모험을 통해 그는 인간적으로, 정서적으로 분명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대공 소나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식입니다.

다만 '사랑의 완성' 이라던가 '관계의 끝맺음'을 '섹스'라는 형태로만 풀어낸건 아쉬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도 그랬었지만, 이 작품은 어머니일 수 있는 사에키 씨와 다무라 카프카가 관계를 갖는 묘사가 등장하는 등 그 수준이 한층 더 과했습니다. 좀 변태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제 딸에게 권해주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상 속 비일상적인 상황과 다무라 카프카, 나카타 노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개성, 각 장면마다 빚어지는 상세한 묘사들은 대단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0/01/04

인간 동물원 - 츠츠이 야스다카 / 양억관 : 별점 1점

인간 동물원 - 2점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양억관 옮김/북스토리

국내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SF 문학계의 귀재 츠츠이 야스타카의 조금은 오래된 SF-블랙코미디 단편집. 절판된 도서를 우연찮게 구해 읽게 되었네요. 

읽고난 감상은 솔직히 "너무나 별로"였습니다. 신년 새해 첫 리뷰가 이 도서라는 것이 기분나쁠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총 14편의 단편 대부분이 섹스에 관련된 불유쾌한 농담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도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대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극단적이라 공감하기도 어려웠고요. 좀 더 세련되게 전개할 수도 있었던 작품들도 많은데 실망스럽기 그지 없네요. "파프리카"의 안좋았던 부분만 극단적으로 확대된, 자기 마음대로 써내려간 일종의 정신적 배설물로 보입니다.

그나마 괜찮았던 단편이라면 단지와 아파트 주민들간의 이기주의와 싸움을 다룬 "우월감"과 도시의 공해와 공무원들의 횡포를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근대도시" 정도? 
하지만 모든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1점밖에는 못 주겠네요. 다른 작품집도 좀 읽어봐야겠지만 이 작품집은 도저히 작가의 명성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쓰레기였습니다.

2015/10/28

애프터 다크 - 무라카미 하루키 / 권영주 : 별점 2점

애프터 다크 - 4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한밤중 데니스에서 책을 읽던 아사이 마리는 밤샘 밴드 연습을 준비하는 다카하시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과거 언니 에리와 더블 데이트할 때 만났던 인물인데, 그를 통해 마리는 전 프로레슬러 가오루가 매니저로 있는 러브 호텔의 중국인 매춘부 폭행 사건을 도와주게 되었다. 중국인 매춘부를 폭행한 것은 프로그래머 시라카와로 그는 근처 사무실에서 새벽 근무 중이었다. 한편, 아사이 마리의 언니 아사이 에리는 2개월 동안 끝없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4년작. 장편이라고는 하는데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이라고 해야겠지요. 길이도 적당하지만 읽기 편해서 집어들고 한번에 읽을 수 있었네요. 빼어난 세부 디테일 묘사와 청춘들의 잘 알 수 없는 고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라는 장점도 여전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실험적인 묘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일종의 방백처럼 독자가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하는 아시이 에리의 침실과 TV에 대한 묘사가 그러해요.

그러나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보기에는 풍성하지만, 결국 정리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에리의 잠은 깰 것인지, 마리와 다카하시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배경으로 눈 속에서 데아트를 할 것인지, 시라카와는 중국인 조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등 뭐 하나 설명되는게 없어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정도면 열린 결말도 뭐도 아니고 작가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책 소갯글을 보면 어둠의 감촉, 고독의 질감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만큼 이미지 묘사에 주력했을 뿐입니다. 이야기만 놓고보면 성공적인 결과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거면 마리와 다카하시의 청소년 이상 성인 미만 청춘의 하룻밤 만남 이야기를 깔끔하게 그리는 것이 훨씬 쉽고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가 스스로도 한밤중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있는 소녀에게 말을 거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구상했다는 말 그대로 말이죠. 섹스 없는, 그냥 이야기만 있지만 묘하게 감정을 사로잡는 그런 이야기로요.
특히나 "상실의 시대"(저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마지막 묘사 스타일로 마지막 둘의 이별을 그렸으면 정말 좋았을 거에요. 과연 마리는 맛있는 계란말이를 먹으러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설레면서도 두근거리는 여운을 남기는 식으로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분위기 묘사는 최고지만 독자에게는 아주 불친절한 작품이었다 생각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전방위적인 호평이 쏟아진 작품이라고는 하는데, 저는 이해하기 쉽고 보다 친절한 작품이 좋습니다.

덧 1 : 도서출판 비채의 추리소설 레이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로 출간되었는데, 이게 추리소설이라는 의미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데, 제 분류로는 "기타"입니다.

덧 2 : 매 장면마다 배경 음악이 소개되는 것이 특이한데, 잊기 전에 적어봅니다.

11:56 데니스

퍼시 페이스 고 어웨이 리틀걸

다카하시가 등장하여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 허밍

버트 배커랙 에이프릴 풀

12:25 데니스

마틴 데니 악단 모어

01:18. 작은 바

벤 웹스터 마이 아이디얼

듀크 엘링턴 소피스티케이티드 레이디

01:56 스카이락

펫 숍 보이스 젤러시

홀 앤 오츠 아이 캔트 고 포 댓

02:43 시라카와의 사무실

이보 포고렐리치 영국 모음곡

03:58 시라카와의 사무실

브라이언 아사와가 부르는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칸타타

집으로 가던 중 들른 세븐일레븐에서는 서던 올 스타스 신곡

04:52 연습실

소니 롤린스 소니문 포 투 (다카하시 밴드 연주)

05:10 세븐일레븐

스가 시카오 폭탄 주스

2023/04/01

돌원숭이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1.5점

돌원숭이(THE STONE MONKEY)(개정합본판) - 4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불법 밀항을 주선하는 스네이크헤드 중 고스트는 가장 악랄한 인물로 수많은 사건을 저질러 왔었다. 그를 잡기 위해 인터폴 적색 수배령이 내려졌고, 이민귀화국 INS와 연방 FBI, 뉴욕주 수사관 합동 작전이 시작되었다. 자문역으로 참여한 링컨 라임 덕분에 미국 해양 경비대는 밀항선을 발견했으나, 고스트는 배를 밀항선 승객, 선원들과 함께 폭파시키고 탈출했다. 
링컨은 자기가 배의 위치를 알아낸 탓에 승객과 선원들이 희생되었다고 자책하며 고스트 체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신출귀몰한 고스트는 운 좋게 탈출한 승객들까지 죽이려 암약했고, 그 와중에 링컨과 친구가 된 유능한 중국인 공안 경찰 소니 리마저 희생되고 말았다. 하지만 소니는 죽기 직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링컨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남겼는데.... 

링컨 라임 시리즈 네번째 작품. 설정은 다른 시리즈들과 동일합니다. 악질이지만 유능한 범죄자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중국인 불법 밀항 브로커 고스트가 링컨 라임과 대결합니다. 제목의 '돌 원숭이' 부터가 손오공을 뜻할 정도로 중국 관련한 소재와 설정이 듬뿍 담겨있는게 특징이에요. 링컨 라임과 중국 공안 소니 리가 바이주를 마시며 바둑 대결을 벌이는 장면처럼요. 차이나타운에서의 중국인 범죄자 이야기의 클리셰들과는 다르게 중국 문화 혁명, 반체제 인사 등 사회적인 이야기가 가미되어 있는건 나름 진보한 측면이라 생각되고요.

하지만 이런 이국적인 설정 외에는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전개가 굉장히 억지스러웠습니다. 불법 밀항 브로커 정도가 링컨 라임의 상대가 될 수 없기에, 무리하게 스케일을 키운 탓이지요. 예를들어 미국이 아무리 치안이 허술하다 하더라도, 대놓고 살인을 저지르고 - 푸저우통의 회장 지미 마 살해, 고스트를 배신하고 달아났던 제리 탕 살해, 백주대낮에 우씨 일가를 습격하려던 사건, 고스트의 거처였던 고급 아파트에서 창지예치와의 총격전 - 버젓이 도망갈 수 있다는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차이나타운 내에서야 그랬다쳐도, 백주대낮의 거리나 고급 아파트에서 손쉽게 탈출한다는건 말도 안돼죠. 
고스트의 정체가 존 성 박사였다는 반전도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고스트는 처음에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존 성 박사를 살해한 뒤, 혼다 차를 훔쳐 트렁크에 시체를 넣고 차를 숨기고 난 다음, 의도적으로 죽을 뻔 한 척 하다가 경찰에게 구조된 후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말인데..... 고스트는 뉴욕 한복판에 은신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차로 숨어드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거라고 수사팀도 이야기하고요. 몰래 뉴욕으로 숨어들어 은신처로 향하면 됐을걸 왜 경찰과 엮여서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감수한단 말입니까? 죽을 뻔 하면서까지 말이지요. 망명이 허용될 정도로 유명한 반체제 인사였다면 누군가 알아채는건 시간 문제였을테고요. 경찰 보호를 받고 난 뒤로도 다른 밀항 승객들과 혹시라도 만나게 되었다면 바로 정체가 탄로났을겁니다. 
고스트가 마지막에 창씨 가족 거처로 향하는 색스와 동행하며 창씨 가족과 경찰을 죽이고 섹스를 납치할 계획을 짜는 것도 어이가 없었어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고스트가 가짜 존 성 박사였다는게 바로 드러났을테니까요. 얼굴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 체포 시 마지막 결말에서처럼 '콴시'에 따른 석방도 기대하기 어려웠을겁니다. 미국인 경찰을 죽인 외국인 범죄자를 풀어준다는건 가당치도 않습니다. 
마지막 결말도 뜬금없었습니다. 고스트가 푸젠성 정치부와 결탁하여 반체제 인사를 밀항을 위장하여 살해해 왔다는 진상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설득력도 있고요. 하지만 미국 해안까지는 온 다음에 살해해서 없애려고 했다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어차피 죽일거였다면 그런 수고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어요. 식량과 연료를 소비할 필요도 없고요. 그냥 항구에서 승객들을 모두 살해하고 시체만 처리했다면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드래곤 호'의 양심적인 선장과 승무원들을 속이려고? 미국 해안에서 죽였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을까요? 배를 폭발시킨 뒤, 곧바로 승객들을 죽이려 나선 것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혼자 탈출한 뒤, 조용히 죽이면 됐을텐데 미국 경찰이 쫙 깔린 해안가에서부터 총질을 한다는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죠. 실제로 제리 탕의 배신으로 위험에 처했었으니까요.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추리적인 부분도 아멜리아 색스의 조사에 따른 링컨 라임의 추리라는 기본 뼈대는 지키고 있기는 합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가지고 고스트의 위치를 좁혀나가기는건 볼만하고요. 그러나 결정적 상황은 모두 운과 우연에 의해 발생합니다. 링컨 라임이 활약한건 밀항선의 위치를 추리해 낸 것과, 우씨 일가 부인이 패혈증을 앓고 있을거라고 추리하고 그 행적을 밝혀낸 것 두 가지 정도 뿐입니다. 고스트의 은신처만 해도 어떤 아파트인지까지는 좁혔지만 결국 은신처가 드러난건 창지예치와의 총격전 덕분이었죠. 고스트가 존 성 박사였다는걸 알게된 것도 소니 리가 죽어가면서 돌원숭이 목걸이 흔적을 부여잡았던 덕분이었고요. 소니 리가 이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면, 링컨 라임이 창씨 가족의 거처를 알아냈다 한들 아멜리아 색스의 납치와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캐릭터들도 별로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별로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메인 빌런 고스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중국인 캐릭터들 모두가 뻔하고 평면적이에요. 소니 리는 외국 독자가 보기에는 독특하다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전형적인 홍콩 영화 속 마초 형사를 따온 캐릭터로 느껴졌습니다. 이른바 '킬링 포인트'를 쌓아가며 죽음으로 이르는 전개도 뻔했고요. 거기에 더해 중국의 격언을 들먹이는 모습은 '찰리 챈'을 연상케 했습니다. 
나름 풍수에 주목하는 등의 활약은 있지만, 이 역시 억지로 끝나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풍수 전문가를 찾다가 고스트와 마주치는건 우연이라고 해도 너무 과했거든요. 애초에 이 시점에 고스트가 풍수 전문가를 찾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 문화 혁명에서부터 비롯된 고스트의 악행, 창씨 가족의 갈등이라던가, 우씨 일가의 이야기 등은 이야기 전개에도 불필요했을 뿐더러, 불법 이민과 가족에 대한 흔해빠진 담론을 반복할 뿐이라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뭔가 사회파스러운 느낌을 주고자 했던 것 같은데 작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어려운, 평균 이하의 헐리우드 양산형 범죄 스릴러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렇게 하면 깜짝 놀라겠지?" 라는 생각으로 의외의 범인을 드러내는데 촛점을 맞춘 나머지, 다른 부분의 설득력이 헐거워진게 아닌가 싶네요. 앞으로 이 시리즈도 그만 읽어야겠습니다.

2017/11/05

화석의 기억 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2.5점 (국내 미출간)

도쿄에 사는 미나기 류이치는 어린 시절 살던 시골 마을(정확하게는 '붉은 숲'이라는)에서 "누시"라는 큰 곰(?)에 의해 어머니 후유코를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TV 뉴스를 통해 누시가 다시 나타났다는걸 짐작하고 복수를 결심했다.
교제하던 유키에와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협박하여 300만엔이라는 자금을 마련하여 시골 마을로 향한 류이치는 대학 조교 혼조 테츠야를 만났다. 그는 백악기(7,000만년전) 지층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 화석을 발굴하고 있었다.
이후 이 '오파츠'가 교수에 의해 부정당한 테츠야는 홀로 조사를 떠나는데....

국내에는 "nervous breakdown" , 그리고 "초공속 가루비온"의 캐릭터 디자이너로만 알려진 타가미 요시히사의 1980년대 작품입니다. 정확하게는 1985~87년까지 연재되었는데, 대표작이라고 하는 "카루이자와 신드롬" 연재 종료 직후(1982~85) 시기이니 작가 인생 최전성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대표작 "grey"와도 년도가 겹치네요. 굉장히 진지한 SF물이면서도 크리쳐 물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물 성격도 포함된 복잡한 장르물입니다.

위의 줄거리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오파츠가 등장하는 부분까지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누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7,00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 정체는 특히나 궁금증을 자아내니까요. "별의 계승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요.

뒤이어 모든 것은 타임머신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전개와 여기서 불거지는 '타임 패러독스'도 볼만합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찾아 헤메는, 그리고 타임 머신으로 밝혀지는 "용고"의 정체는 원래 지구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져 만들어낸 외계로의 도망 우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엔진 (용고)의 폭주로 시공을 뛰어넘어 1987년 붉은 숲에 떨어졌고, 이 "용고"가 계속 시공간을 뒤튼 탓에 7,000만년전과 연결되어 있게 된 겁니다. 누시는 7,000만년 전 숲에 살던 공룡이었고, 7,000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마찬가지 이유로 과거로 점프한 현대 인류의 것인거지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타임 패러독스는 도라에몽에서도 익히 보아 온 것입니다. 작 중에서도 용고는 노비타의 책상 서랍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진지한 SF 스토리에 약간의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덕에 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고"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단서가 오래전 한 할머니가 남긴 일기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시가 12간지의 움직임을 보이는, 일종의 시계 같은 장소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한 가운데임을 추리하는 식이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이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류이치가 깨닫는 것, '조금씩의 차이가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려내기에는 너무 서둘러 마무리된 탓입니다. 관련자들을 타임 머신이 부른 이유 - 동일한 역사 반복을 위해 - 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요. 설득력을 갖추려면 또다시 시공을 점프한 후, 류이치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 현 시점(1987년)에 "용고"가 없는 평안한 인생을 손에 넣는다는 결말 정도는 보여줬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현세의 기차에서 내리는 류이치가 어머니 후유코와 포옹하는 것이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톤 오션의 결말이나 영화 "프리퀀시"의 클라이막스처럼 말이죠. 뭐 그만큼의 설득력은 조금이나마 쌓아 올렸어야 하겠지만... 여튼 지금의 결말은 역사가 단순 반복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작가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 흥미로운 본편 전개에 비하면, 곁들여지는 사이드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누시의 정체가 공룡이라는 것도 너무 빨리 밝혀져서 몰입을 저해하고, 누시보다 주인공들 혈족에 전해지는 "용고"를 찾아내려는 음모 이야기는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이 부분의 핵심인 기업, 친족 간의 파벌 싸움이 이야기에 잘 녹아나지도 않았고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나 별로에요. 여중생 섹스 파트너와의 성관계 비디오를 그 아버지에게 팔아 넘겨 자금을 마련하는 쓰레기인데다가, 어머니인 후유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 등장 인물들과 정사를 갖는 등 전반적으로 쿨함을 강조하기에는 도가 지나칠 뿐더러 너무 자극적으로 접근하려 한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꽤나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지루한 전개에 더해 작가 특유의 허무한 결말이 더해진 결과물입니다. 본 편 이야기에 집중하여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2016/06/29

이 사람을 보라 - 마이클 무어콕 / 최용준 : 별점 2점

이 사람을 보라 - 4점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어렸을 때부터 기묘한 관심병과 자기 비하로 점철된 찌질한 인생을 살아온 칼 글로거는, 서점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여행자 지원 제안은 거절했지만, 오랜 시절 알아온 연인같은 섹스 파트너 모니카의 변절 후 즉흥적으로 시간 여행에 자원하여 예수가 십자가 형을 받기 1년 전으로 향하는데...

걸작으로 소문난 작품이죠. 이런 저련 소개 자료를 통해 관심이 가던 차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카톨릭 -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이건 직전에 읽었던 "양심의 문제"와 비슷합니다. 허나 "양심의 문제"가 카톨릭 세계관의 확고부동함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어떻게보면 신성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정 반대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과학적 설정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고요. 시간 여행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등 과학적 설정은 작품의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난 듯 싶습니다. 외계인이 인류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예수는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한 관심병자 찌질이였다'는 내용이 충격적으로 다가올리 없지요. 작품이 발표된 1969년 당시였더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때만큼 종교적 신념이 굳건하지도 않으며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딱히 대단한 이야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칼 글로거가 예수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기에 의외성을 찾기도 힘들었고요.

아울러 후대 전해진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건 오류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을 구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성경 그대로야 하기 때문에 참수되도록 방치하고, 수제자들은 이름을 보고 뽑고, 제자 중 유다를 시켜 자기 자신을 고발케 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한데 이는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이기도 하고요. 외려 그가 역사를 바꾸었더라면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칼이 정상인은 아니며 이 행동을 통해 그가 신이 아니라 가짜 흉내내기에 불과했다는 주제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번지수가 좀 틀렸습니다.
그나마도 완벽하게 성서 그대로도 아니에요. 특히 가장 어려울 부활을 대충 넘어간 것은 아쉽습니다. 그의 시체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 시체가 도난당해 사라졌기에 생긴 소문이라고 설명되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후대에 그렇게 받아들였을 과학적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고전 걸작답게 의외성을 포기한다면 생각할거리가 많긴 합니다. 예수의 신성을 모욕했다기 보다는, 그도 그냥 인간이었을 것이다는 의견에 시간 여행을 접목한 새로운 견해로 볼 수 있으니까요. 칼의 전 연인 모니카의 다음과 같은 대사처럼요. "과학 의식이 훨씬 더 우월한데 그걸 제치고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종교는 지식의 그럴싸한 대체물이야. 하지만 이제 그런 대체물이 더는 필요가 없어. 칼, 과학은 사고 체계와 윤리를 형성할 수 있는 굳건한 바탕을 제공해준다고. 과학은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들이 쉽사리 알 수 있어 이제 더는 천국에서 내려주는 당근이나 지옥에서 휘갈기는 채찍 따위는 필요 없단 말이야." 말 그대로 과학이 종교를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는 해석인데, 작품 설정과 연계해 보면 나름 새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과학이 세상을 지배했던 60년대의 분위기도 잘 알 수 있고요.

작가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우울증과 자기 혐오에 사로잡힌 무능력한 관심병자 칼 글로거에 대한 장황한 서사와 묘사가 압도적이에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천박한 양 극단을 오가는 묘사는 확실히 영국 작품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시간 여행 후 칼 글로거가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과 칼 글로거의 일대기를 병행하여 전개하는데, 중간중간 심리 묘사와 대사를 적절히 끼워넣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는 정신지체아였고 마리아는 창녀와 다를바 없는 여자였는 식의 약간의 반전도 나쁘지 않았으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를 It's a lie, It's a lie, It's a lie로 풀어낸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현대의 랩으로 응용해도 라임이 딱딱 맞아 떨어지죠. "잇츠어라이, 잇츠어라이, 옐로이옐로이, 사박타니..."

결론내리자면 장, 단점이 명확한 작품입니다. 물론 단점의 가장 큰 요인은 늦게 소개된 탓이라 마냥 감점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심의 문제"보다 나은건 분명하고요. 허나 개인적으로는 "도라에몽"보다 나은 점을 모르겠더군요. 역사적 가치와 의의가 더 큰 고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SF 팬이시라면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