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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2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제목만 보면 "맛의 달인"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책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가 저술한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맛의 달인"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의 꽁치는 모두 냉동이고 너무 일찍 잡아서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그냥 인공적으로 만든 단백질에 불과하다.. 같은 식으로요. 때문에 일부 글들은 뻔하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부분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자면 돈은 꽤나 번 것 같은데 다 먹어버려서 남은게 없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의 진짜 맛있는 두부는 한국인 할머니가 만든다는 등입니다. 도쿄대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고요. 

아울러 "맛의 달인" 원작자 다운 음식 관련한 프로페셔널한 에세이도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35만엔 짜리 "최고의 라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값비싼 중국산 화퇴와 자연산 닭의 칭탕에다가 최고의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국물을 내고 조미료는 당연히 천연 간장에 구슈의 다네가시마 흑돼지 최상급 로스를 숯불 화로에 구워 올린 라면이라고 합니다. 재료비, 교통비를 모두 감안한 가격이 35만엔이라고 하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다음으로는 5밀리 정도로 얇게 썬 가지를 넉넉히 참기름을 두룬 팬에 센불로 볶은 뒤 간장으로 마무리하는 가지 참기름 볶음입니다. "맛의 달인" 31권에 나오는, 제 기억으로는 가지 공포증이 있는 나카마츠 반장과 후쿠이 차장 아들에게 먹이던 요리였는데 만화로 볼 때보다도 더 집에서 해먹고 싶은 생각이 이 들게 만든게 의외였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그림보다 분위기, 식감, 느낌을 전달하는데 있어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더욱 많기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글을 읽으니 만두만들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작가의 가족처럼 피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겠지만요. 또 "맛의 달인" 12권에 등장한 중국식 파이 "로빙"이 원래 있거나 유명한 요리가 아니라 순전히 작가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맛의 달인"에서는 뭔가 대단한 중국 전통 가정요리처럼 묘사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에세이와 연관된 "맛의 달인"에 등장한 그림들이 충실히 실려있을 뿐 아니라 본문에 나온 음식이 맛의 달인 어느 권에 나오는지 부록이 실려있는 등 "맛의 달인" 팬에게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내용은 딱히 새로운 것은 없으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에세이집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1.05 추가 ----이전에 읽었었던 걸 모르고, 다시 리뷰를 작성했었습니다. 별점과 내용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개인 아카이브 차원에서 추가합니다.

"맛의 달인"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의 미식 관련 에세이집. 본문 내용은 "맛의 달인"과는 크게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달인"에 소개되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고, 삽화는 모두 "맛의 달인" 속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아예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 카리야 테츠의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우미하라'로 대표되는 "맛의 달인" 이라는 작품에서 특정 음식과 맛을 고집하는 '맛꼰대' 그대로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짙어요. 예를 들어 요새 꽁치,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등등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는 먹을게 못된다, 옛날 친환경으로 길렀던 재료들에 비하면 음식도 아니다라는 주장이 책 전체에 가득하거든요. 좀 더 전문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나 때는 말이야~"와 다를바 없는 꼰대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망이 컸습니다. 게다가 이 주장에 등장하는 브로일러 닭, 응고제 글루코노델타락톤을 사용한 두부가 맛이 없다는건 "맛의 달인"에서도 여러 번 써 먹은 주제라서 딱히 흥미로운 내용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맛의 달인"을 보는게 낫죠.

물론 전문가스러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버블 시대 방송국 지원으로 완벽한 라멘을 만든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함수 (칸스이 / 감수)를 넣지 않고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뒤 홍콩 전문가를 통해 면을 뽑고, 중국햄 화퇴와 닭으로 상탕을 낸 뒤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일본식 맛을 더하고, 숙성 간장으로 간을 한 뒤 고명으로는 흑돼지를 구워 만든 차슈를 얹어 만들었다네요. 재료는 모두 자연산, 최고급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 그릇 만드는 비용은 35만엔!이라고 하고요. 35만엔으로 왜 라면을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두부의 부자가 왜 "썩다"라는 의미의 한자를 썼는지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었습니다. 치즈 만드는 과정과 연결하여 '유부'라는 말에서 유자 대신 콩 자를 붙여 만든 말일 수도 있다는 설인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사시미의 어원도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고요. 레시피도 틈틈이 실려있는데 가지 참기름 볶음도 간단해서 해 먹어봄직 하고, 집에서 만두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하는 '로빙' 레시피도 볼 만 합니다. "맛의 달인" 12권에서도 등장했던 바로 그 요리인데,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언젠가 꼭 도전해 보겠습니다. 만드는 김에 "맛의 달인" 60권에 등장했던 중화식 파호떡도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죠.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극소수일 뿐더러, "맛의 달인"에 등장했었던 이야기가 많다는 약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맛의 달인" 팬을 위한 책이긴 한데, "맛의 달인" 팬이라면 딱히 읽어볼 필요가 없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지닌 책입니다. 2권까지 나왔던데 구입해 볼지 말지가 고민이네요. 어차피 절판되기는 했지만요.

2020/07/16

어른의 맛 - 히라마쓰 요코 / 조찬희 : 별점 3점

어른의 맛 - 6점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의 에세이집으로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가 자신의 식도락 생활을 하이쿠가 아니라 일반 수필, 산문 형태로 써 내려간다면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혼자의 맛"은 작가가 리얼 소다츠라는걸 증명하는 글이에요. 자신만의 음식 조합이라던가, 서서 마시는 선술집에서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는 방법, 혼자서 이자카야를 즐기는 법이 실려있는데 각 방법들 모두가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술집에서의 일화나 음식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글들도 소다츠가 바로 떠오르고요.

그러나 단순한 술꾼, 먹보 미식가의 글만도 아닙니다. 깊은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글들도 인상적입니다. "눈물나는 맛"이라는 제목의 글 구성이 특히나 마음에 듭니다. 글은 와사비 초밥과 고추가 들어간 김치 등 매운 요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다츠가 먹음직한 아귀 간, 가라스미, 슈토 등 다양한 진미를 열거하며 어른이 되어 알고 먹게 된 맛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이어나가지요. 그 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된 여러가지 맛이 소개됩니다. 찜통에 찐 무화과에 참깨 소스를 얹은 일품 요리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등장하는건 물론이고요. 또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때 재회의 기쁨도 크다며 곶감, 톳 등의 맛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입니다. 어른이 조용히 흐느끼게 되는 맛은 바로 그 맛인거지요. 음식에 대한 맛있는 묘사에 살짝의 감동까지 곁들여진 좋은 글이라 생각됩니다.

"깊은 산의 맛"에서 료칸 우쓰오장의 음식을 소개하는 글도 대단합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음식의 형태와 맛이 떠오를 정도로 잘 묘사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산촌의 맛을 표현하면서 '오독오독, 꾹, 섬벅, 바삭, 아삭아삭, 담백, 미끈미끈, 혹은 어떤 것은 쌉싸래하고 어떤 것은 은은히 달고 끈끈하고 아리다.'라고 설명하는 문장처럼요. 이 정도 글 솜씨면 오히려 사진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도 실려 있습니다. 시금치를 데쳐서 서벅서벅 잘라 물기를 쫙 빼고 으깬 두부와 함께 무친 일종의 나물이 그러합니다. 간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간 후추가 전부라는데 쉽게 따라해 볼 만 하지요. 맛도 좋을 듯 싶고요.
해삼 손질법은 집에서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억하면 좋겠더군요. 일본 전통 해삼 손질 방법인 '자부리'에 대한 소개인데, 뜨겁게 끓인 녹차에 채썬 해삼을 넣고 재빠르게 휘저어 살짝 데친 뒤 채반에 받치면 됩니다. 녹차 온도는 보통 80도 정도이고요. 이 뒤 유자 식초에 담가 손님에게 내면 됩니다. 이렇게 데치면 오독한 식감이 경쾌해지고 녹차가 해삼 특유의 알싸한 맛을 누그러뜨려 좋다는군요.

간간히 언급되는 음식 관련 정보도 볼만합니다. '로산진의 낫토 먹는 법'은 처음 알았네요. 일단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305번, 그 다음 간장 넣고 119번, 이렇게 총 424번을 섞으면 낫토가 가장 맛있다는 설인데 솔직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저자가 여러 낫토로 실험해 본 결과로는 횟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답니다. 어떤 낫토냐가 더 중요한 거지요.
물의 경도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이유를 고찰한 "물의 맛"도 흥미롭습니다. 연수는 수용성 성분을 잘 유출하고, 경수는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가교 결합이 이루어져 소재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수는 일본 요리에, 경수는 유럽 요리에 어울린다고 하네요. 유럽에 스튜나 스톡이 많은 이유입니다. 경수라서 미네랄 성분이 소재와 더욱 잘 결합해서 진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지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재미도 있으며, 음미할만한 글이 많은 좋은 에세이였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고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1/27

오로지 일본의 맛 - 마이클 부스 / 강혜정 : 별점 2점

오로지 일본의 맛 - 4점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글항아리

영국인 요리사 출신 작가가 쓰지 시즈오의 "일본 요리 : 단순함의 예술"에 깊이 매료된 탓에, 현재 일본 요리를 탐구하고자 3개월 동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다양한 문화를 맛보고 즐긴 경험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여행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목적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냥 일본 이곳저곳 여행기와 식도락이 결합된 뻔한 여행기에 불과합니다.
또 색다른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색적인 체험을 쓰기는 했는데, 서양인 시각에서만 신기하고 재미있을 만한 체험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일본에 이웃한 한국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와패니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저자가 지나치게 일본을 맹신하는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이 만든 튀김을 맛본 후, 엄청난 기술과 맛에 감탄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일본 튀김은 저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아지노모토사를 방문기를 통해 MSG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합성 조미료를 전도하고, 쓰키지 시장 방문 경험의 마지막을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고 마무리 하며, 생 와사비야 말로 슈퍼 푸드로 그 맛에 중독되었다고 묘사하는 식으로 직접 찾아서 경험하고 맛본 모든 요리와 재료에 대해 끝없는 칭찬과 홍보가 지겹게 반복됩니다. 이러한 맛에 대해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일본 내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내용도 없어요. 예를 들어 튀김이나 와사비, 가쓰오부시 등은 모두 "맛의 달인" 등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입니다. 튀김의 핵심 비결인 밀가루 대충 풀기, 와사비 농원의 생육 환경과 강판에 가는 법, 가쓰오부시 제조법 및 전용 대패 모두 말이죠. 쓰키지 어시장은 "어시장 3대째"라는 더 길고 방대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요. 이는 일본 요리가 건강식이며 장수에 도움이 된다며 오키나와 요리와 장수의 비결을 탐구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맛의 달인"에서 이미 등장했던 소재입니다. 그나마 오키나와의 새로운 소금 제조법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직접 '비스트로 스맙'을 찾아 가서 기무라 타쿠야 등을 만나고, 스모 연습장을 찾아가 챵코 나베를 직접 먹어 보는 식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은 좋아요. 그러나 이 역시 방송이나 다른 여러가지 컨텐츠에서 보았던 내용에 반복에 불과하고, 저자가 신기하게 생각한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새롭지 않습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요리사들, 연예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해서 게스트에게 먹이는 등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고래 고기처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도쿄를 벗어나서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많이 드러나는 편이에요. 허나 고래 고기는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언급되어 왔으니 색다를 것도 없고, 도쿄 이외의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국인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비판적 시각은 일부일 뿐, 결국 글은 가이세키 요리나 오사카 패스트푸드를 극찬하는 기승전'일본맛있쪄'로 마무리되니 온전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일본 최고의 회원제 레스토랑 미부에서의 놀라운 경험이 소개되는 마지막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일본 요리란 무엇인지, 그 진가를 제대로 체험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거든요. 맛을 떠나 일본 요리의 찬양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여행 목적이기도 했던 일본 요리의 비결은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 이라는 것도 로산진 이래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라 식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요리사다운 시각이 돋보이는 몇몇 디테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숯불구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비결이 재료를 작게 만드는 혁신 덕분이라는 착안이 대표적이에요. 서구에서 초밥이 진짜 이유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한 주장도 신선합니다. 설탕, 소금, 식초로 이루어진 초밥 양념이 빅맥의 기본 양념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또 저자의 재기발랄한 글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예를 들어 성게 맛에 대한 묘사도 제가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 해요. 인어들이 바닐라 맛만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는데, 정말로 멋드러진 발상입니다!

하지만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 정도의 단편적인 장점만으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 컸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느니 "맛의 달인" 을 다시 정독하는게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 더 나을 겁니다.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6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1/18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1.5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1권을 오래전 읽었었고, 바로 얼마전에도 읽었었습니다. 별점은 2점이고, 딱히 구입해서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게 감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2권 목차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구입해서 읽어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이미 절판되었지만 많이 팔렸는지 중고로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를 낚았던 목차부터 소개해드립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시드니에 살면서
제2장 | 세계 맛기행
제3장 | 맛의 나라 일본
제4장 | 유명가게를 찾아서
제5장 | 특별요리 강좌
제6장 | 못 다한 이야기
1장이야 그렇다쳐도, 2장은 카리야 테츠가 전 세계를 다니며 맛 본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장에서는 일본의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주고요. 4장은 유명 가게들에서 맛본 경험담이, 5장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하게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2장 "세계 맛기행"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 본 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요리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펼쳐질 뿐입니다. 미국 요리의 대표로 스테이크의 예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라곤 미국에서는 레어로 제대로 굽지 않더라, 웰던으로 구워져 나왔을 때 항의하면 제대로 갖다 주라, 일본에서는 항의해봤자 미안하다고만 하지 다시 주지 않더라는게 전부에요. 프랑스 3대 진미 이야기도 푸아그라와 캐비아는 그냥저냥이고 트뤼프는 최고라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른 설명 밖에는 없고요. 다른 모든 이야기가 다 이런 식입니다.
심지어 "유명 가게를 찾아서"는 제목과는 전혀 다릅니다. 진짜 유명 가게가 아니라 자기가 갔을 때 최고였던 가게를 소개하고 있거든요. 니기리즈시라면 '스키야바시 지로' 정도는 나와줄 줄 알았는데, 1975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도 모르는 초밥 가게가 나오는 식으로 말이죠.
"특별요리 강좌"는 기대대로 레시피가 소개되기는 하나 로스트 비프는 오븐이 없으니 도전하기 어렵고, 채 선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간장을 조금 친 뒤 잘 휘젓고 먹으라는 요리, 무를 국물 맛이 배도록 푹 끓인 뒤 튀겨 먹는 요리 등은 별로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게다가 에세이 전체적으로 1권에서도 눈꼴 사나왔던 꼰대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심한 말을 한 뒤 '너무 극단적인 말이 아니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에게 실례가 되든 다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고 뭐든지 말해버리는 정의의 악한이란 말이다'고 본인을 정당화하는데 참 꼴보기 싫습니다. 정의의 악한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꼰대 마인드라도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는건 아닙니다. 명품을 이해하지 못하며, 유명세에 좌지우지된다는건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영국의 전통있는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2층에는 여성 손님 입장이 아직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음식이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관습을 전통이라 자랑하는 듯한 인종에게 섬세한 감정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동의할 수 밖에는 없지요.
음식 전문가로서의 식견이나 경험을 살짝 보여주는 부분들도 간혹 등장합니다. 소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도쿄 토박이들이 소바 끝만 살짝 담구어 먹는 이유는 소바의 향과 맛에 소바 국물의 깊은 맛을 살짝 더해서 먹기 위함이라면서, 이 국물에 대해 "맛의 달인"에서도 등장했던 명점 '나미키 야부'의 인터뷰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여러모로 볼 만 했습니다.

그래도 장점은 극히 드물고, 자의식 강한 꼰대의 자기 주장, 경험만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8/02

2020년 8월의 신라호텔 팔선 디너 코스

온 가족이 오랫만에 모여, 좋은 식사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의미있는 자리라 아버님께 의견을 여쭈었는데, 중국 요리를 선택하시더군요. 그래서 신라호텔 팔선에 디너 코스를 예약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선택한 코스는 아래의 '여의' 코스였습니다. 코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았더니, 불교 용어이기도 하고 '마음 먹은대로 된다' 는 뜻인데, 왜 이런 단어를 썼는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네요.
1. 제철 정선 전채
장어와 문어, 찌고 튀긴 듯 크리스피한 삼겹살과 버섯의 구성입니다. 단짠단짠인데 맛이 강하지 않고, 한 입에 먹기 좋아서 그야말로 전채라는 느낌이 드는 메뉴였어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2. 캐비아 망태버섯 제비집.
제비집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식감이 재미있더라고요. 맛은 담백,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망태버섯과 캐비아의 존재감은 무척 약합니다. 맛에 있어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였어요. 제가 둔감한 탓이겠지만요.
3. 홍소소스 청새리 상어 지느러미 찜.
이거 진짜배기 상어 지느러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도 어느정도 있고,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은 신기한 식감에 소스도 부담없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4. 고법 불도장
도가니, 전복, 오골계 등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불도장. 그러나 고명들보다도 묵직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은근하게 간을 맞춘 국물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코스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5. 어향소스 길품 전복과 오룡해삼
코스의 마지막 요리인데 전복의 크기는 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소스맛도 특출나지 않고 전복의 맛도 크기에 비하면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어향 소스는 어향 가지로 아주 친숙하며, 오룡 해삼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신선함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리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6. 식사.
저는 짬뽕을 선택했습니다. 짜장, 짬뽕, 기스면, 볶음밥, 중국식 냉면 등이 가능합니다. 고명, 건더기 등 전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료 외에는 일반 중식당 짬뽕과 구분되는 맛은 아니었어요.
7. 디저트
멜론 반통, 그리고 가운데 씨를 파낸 곳에 감으로 만든 소스를 채워 넣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대단한 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손이 간 그런 디저트를 기대했거든요.
이렇게 코스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가격에 비하면 맛이 만족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네요. 제가 이 코스를 또 먹을 일은 아마도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가족 모임이라는 자리에는 아주 잘 어울렸으며, 어른들께서 좋아하셨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서비스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고, 룸 상태나 이런저런 디테일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혹시라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코스 요리를 먹어볼 생각입니다.

2026/05/23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4) 최선을 다해 못 만들다.

추리소설과 장르문학의 세계에는 맛있는 음식과 요리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사건의 무대가 되는 저택의 만찬, 탐정이 즐겨 먹는 단골 메뉴,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음료와 간식까지, 음식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인상적으로 쓰이지요. 그런데 의외로 맛없는 음식도 꽤 많이 등장합니다.

대개는 그냥 못 만든 음식입니다.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가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이보다 더 맛없을 수 없는 카레라이스를 먹었다”고 하는 것처럼요. 정성 없이 대충 만들어져 아무런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음식들입니다. 현실에서도 한 번쯤은 만나 봤을 법한,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들이지요.

하지만 작중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의 처지를 보여 주는 경우입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렸던 메그레 경감 시리즈인 "생폴리앵에 지다"의 죄네가 먹는 소시지 빵이 대표적이지요. 그 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죄네의 궁상스러운 삶을 상징하는 소품이었습니다.

마거릿 애커우드의 귀족 영애 시리즈 중 한 권인 "야간 열차 살인 사건"에 등장하는 하숙집 요리도 비슷합니다. 귀족 영애 프란실르의 의뢰로 용의자가 살고 있는 하숙집에 잠입한 탐정 버트가 마주하는 식사인데, 하숙집이 얼마나 엉망이고 주인이 얼마나 비양심적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지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닦은 적 없어 보이는 식탁,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는 더러운 식기, 그리고 형편없는 식사까지. 그런데도 나름대로 코스 요리라는 점이 놀랍기만 합니다. 수프는 거의 꿀꿀이죽 수준이고, 말고기로 의심되는 육즙과 지방이 엉겨 있는 납작한 구운 고기와 총알만큼 딱딱한 감자, 밀가루와 기름 범벅인 구스베리 푸딩, 마지막은 찻잎 세 개로 우려 낸 뜨거운 물 순서입니다. 식사 후 버트가 침대에 누워 1차 대전 전장이 더 편했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런 음식들은 말하자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맛없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것이 인물의 처지와 공간의 수준을 보여 주는 데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례도 있습니다. 단순히 못 만든 음식이 아니라,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방식으로 맛없는 음식 말입니다. 바로 아즈마 나오미의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3작 "사라진 소년"에 등장하는 라면집 "현화원"의 라면입니다.

이 라면은 악명이 대단합니다. 택시 운전사가 “그 라면집 정말 별로예요! 손님 앞에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어쨌든 정말 맛이 없어요!”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주인공이 그래도 가겠다고 하자 원통하다는 듯 입술까지 깨문다는 묘사에서는, 단순한 평판을 넘어 거의 개인적인 원한 같은 감정마저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주문한 냉라면을 한 입 먹고 내린 평가도 압권입니다. 가게 주인의 배짱에 감탄하면서, 이런 라면을 먹이고도 돈을 받는다니 어지간히 대담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지요. 식욕이 지평선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표현까지 나오니, 얼마나 맛이 없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삿포로 스스키노를 무대로 한 작품인데도 삿포로 라면의 대명사인 미소 라멘이 아니라 다른 라면처럼 보인다는 점도 묘하게 눈길을 끕니다. 아무리 엉망인 육수라도 어느 정도 맛을 보장하는 미소 라멘이 아닌데다가, 심지어 맛까지 없다니 황당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라면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형편없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 못 만든 라면”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싸구려 하숙집 음식이나 휴게소 카레라이스가 무성의함의 산물이라면, "현화원"의 라면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주인공은 현화원 주인의 도움으로 실종된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에 잠입하는 데 성공하고, 나름대로 실마리를 잡지만 결국 놓쳐 버립니다. 낙심한 채 새벽 거리를 헤매다가 현화원을 다시 찾는데, 여기서 비로소 "현화원" 아저씨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는 밤 10시까지 가게를 열어 놓고도 새벽 6시부터 다시 라면 준비를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육수도 돼지뼈 국물과 닭뼈 국물을 섞는 블렌드를 쓰고, 가게만의 비밀 재료까지 있다고 강조하지요. “어쨌든 라면은 국물 맛으로 승부가 나니까, 시판되는 육수를 사용하면서 프로라고 말할 순 없지.”라는 말까지 합니다. 심지어 지방의 단맛을 살리는 게 아주 어렵다며 직접 만든 차슈를 주인공에게 잘라 먹여 주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것 역시 맛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웃지 않을 수가 없지만, 아저씨의 장인정신과 도전정신에는 오히려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 정도면 안자이 미즈마루의 “최선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에 대응하는 “최선을 다해 못 만든 라면”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 역시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역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좌절감을 드러내거나, 기묘한 유머를 만들어 내거나, 싸구려 하숙집의 수준을 보여 주는 보조적인 장치에 가깝지요. 제가 아는 한, 이야기의 핵심에 가까울 정도로 중요한 맛없는 음식은 "전쟁터의 요리사들"에 나오는 분말 달걀 스크램블드에그가 거의 유일합니다. 말 그대로 군대 배급품인 분말 달걀로 만든 스크램블드에그로 봉지를 뜯어 거대한 볼에 가루를 쏟아 넣고, 물을 더해 주걱으로 섞은 뒤 뜨거운 트레이에 부어 만드는 음식이지요. 문제는 그 맛과 질감입니다. 스펀지를 씹는 느낌인데다 기름 냄새 비슷한 악취가 나고, 배에 유난히 가스가 찬다고 합니다. 전쟁터라면 웬만한 음식은 다 감사히 먹게 될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도 먹고 싶지 않을 정도라니 대체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 단지 맛없기만 했다면 이야기의 주역까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 요리가 핵심이 되는 이유는, 보급된 분말 달걀 수십 상자가 창고에서 사라진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목적은 보급 담당 장교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었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인물은 병사들 중 누군가가 그것을 먹지 않기 위해 훔쳐 갔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만큼 맛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또 그 추리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보면 맛없는 음식도 충분히 이야기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읽다 보면 의외로 꽤 흥미롭기도 하고요. 전에 소개드렸던 '반전을 차린 식사' 속 요리들도 마찬가지지요.

현실에서도 우리는 맛없는 음식 이야기를 종종 재미삼아 나눕니다. 누구네 식당의 형편없는 반찬이 어떻다, 어디서 먹은 음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 은근히 오래 가니까요. 게다가 작가들의 현란한 묘사까지 더해지면, 이상하게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깁니다. 지금은 미식과 탐식이 유행하는 시대이지만, 언젠가는 괴식이나 맛없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장르문학 속에서는, 맛없는 음식 역시 이미 자기만의 자리를 꽤 단단히 차지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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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카레라이스의 모험 - 6점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눌와

카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저자가 카레의 정체를 탐구하고, 뒤이어 일본식 카레와 카레라이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사적입니다.

읽으면서 "맛의 달인" 24권의 '카레 승부' 편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카레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도까지 가서 카레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영국으로 찾아가 카레 가루의 원형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 구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의 형성 과정을 깊숙히 파고든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 스리랑카는 카레에 몰디브 피쉬라는 가다랑어 종류 건어물을 사용한다, 카레의 맛이 부족하면 한방약을 털어서 섞어 먹으면 좋다는 등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뒤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맛의 달인" 24권이 출간된건 1990년이며, 이 책이 언제 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카레 서적을 발표하며 '카레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저자이니, 이 책에 등장했던 전개와 이야기들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당연히 책이기 때문에 "맛의 달인" 보다 카레에 대한 정보 제공은 훨씬 자세하며 정보의 폭도 넓고 깊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도 돋보이고요. 일본에서 시판되는 카레를 조리해서 인도인에게 먹여본다는 도입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인도인들도 꽤 맛있어 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인도의 여러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요리를 '카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맛의 달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카레'의 어원은 타밀어에서 무언가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에서 왔거나, 힌디어로 향이 강하고 맛있는걸 뜻하는 '터카리'라는 말에서 왔거나, 아니면 옛 인도 북부의 요리 이름인 카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재미있었습니다. '캥거루' 어원에 대한 전설처럼, 영국 지배 시기에 영국 관리가 인도인들에게 먹는 요리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맛있다고 한 '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던 설은 거짓말이라는 디테일까지 완벽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시기의 이야기라면 18세기 이후 이야기인데, 커리가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건 1598년이기 때문이라네요.
그 외에도 인도인들도 카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던가 - 등장하는 요리사인 쟈인 씨는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요리는 모두 카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 매운 맛의 기본은 특별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추와 후추가 중심이며 인도에서 카레를 만들 때 양파를 카라멜라이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카레의 정체에 대한 탐구 뒤 펼쳐지는 일본식 카레의 형성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화권에 완전히 이질적인 요리가 도입되어 국민 요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의 달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우선 소개되는건 일본 카레의 기원입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카레 조리법인 "서양요리지남" 속 카레는 개구리! 카레였으며, 야채로 파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식 카레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양파, 감자, 당근이 생소한 채소였기 때문입니다. 1879년 간행된 "서양과채조리법" 속 파는 “오니언”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다른 책에는 “아니언”이라는 표기도 있었으며 “뿌리를 식용으로 하며, 겉의 껍질을 벗기고 잘 씻는다”라고 주석이 달린걸 보면 파 역시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재료가 아니었을테고요. 이러한 개구리 카레 스타일의 카레 요리법이 1900년대 초반까지 퍼지게 되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카레 가루를 넣은 소스로 고기를 익힌 요리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인도식과는 다르게 카레 가루를 쓰고,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었다는게 특징이지요.
지금과 유사한 카레 요리법인 걸쭉한 카레 루에 고기와 함께 양파,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볶고 끓여 만드는 방식은 다이쇼 시대 이후 확립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레시피로 카레를 조리하여 배식한게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역사와 함께 저자는 카레가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우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가를 개조하던 와중에 육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 요리인 규나베가 널리 퍼진 뒤, 카레가 일본인에게 서양 요리의 입문격 요리로 알려지고요. 이유는 이미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고기도 규나베처럼 작게 썰어 넣어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그 뒤 '1. 레스토랑, 식당 등의 메뉴에 등장한다. -> 2. 잡지, 서적(현재라면 TV)과 같은 미디어에서 요리법 또는 '요즘 이런 요리가 유행'이라는 말 등이 소개된다. -> 3.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된다.' 라는 외부 요리 수용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초기의 소스형에서 스튜형으로 조리법도 바뀌고요. 소스형 카레는 주재료가 고기지만, 가정 요리로는 요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도록 고기는 적게, 그리고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는 식의 음식으로 발상을 전환한게 그 이유입니다.
그 결과가 본래의 서양 요리와는 다른 일본풍의 양식 '카레라이스'인 것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 가루 제조와 카레 루의 판매, 인스턴트화 등을 거친게 현재의 일본 국민 요리 카레라이스입니다.

이렇게 일본 카레라이스에 대해서만 연구한 결과물이라는건 아쉽지만, 카레가 아니라 그 어떤 요리라도 다른 문화권에 흡수될 때에는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레왕께서 추천한 참고 도서인 "카레의 지구사"도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2023/10/15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을 즐기자! '기묘한 맛'의 신구 단편 모음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천. 대부분 국내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원조이자 대표작인 "특별 요리"를 추천하지 않았는데, 국내 출간되지 않은 마지막 작품 대신 "특별 요리"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8/15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황교익 : 별점 2.5점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6점
황교익 지음/따비

한국 음식 컬럼니스트로 유명한 황교익씨의 컬럼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여러 가지 한국 음식을 되돌아보고 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로 이것저것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블로그에서 익히 보아왔던 독설들이 가득해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더군요. 저자의 주장도 좀 센 편이고요. 또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진상품 마케팅에 대한 것입니다. 진상품은 수탈의 역사이니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게 못 되며, 조상이 당한 수탈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근대적 시민의식이 없다는 비판입니다. 수탈이건 뭐건 지금은 마케팅 키워드일 뿐인데 그리 큰 의미를 두는게 맞을까요? 이런 논리면 성 같은 문화재도 다 부역으로 만든 것으로 수탈의 역사이니 자랑할 게 아닙니다. 또 진상품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충분한 증거는 됩니다. 가치가 폄하될 이유는 없어요.
또 815콜라가 실패한 이유를 코카콜라의 혼란 마케팅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도 해태콜라와 815콜라를 다 먹어본 세대인데,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확연히 맛이 없었습니다. 맛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마케팅을 해도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게 이쪽 시장의 진리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죠. 그렇게나 엄청나게 마케팅해댔던 뉴코크, 체리코크가 지금 없어진 것처럼요. 그 외에 찜닭은 맛이 없다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고요.

그래도 새롭게 알게 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이천쌀이 유명한 것은 진상품이었기 때문인데 진상된 이유가 맛 때문이 아니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이천 토종쌀 중 자채벼라는 품종이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수확되는데, 조선 왕가가 처음 수확된 쌀로 제사지내기 위해 종묘에 바친게 이천 진상미의 근원이라거든요. 일종의 보졸레누보 같은 거랄까요? 지금은 재배되지 않는다고 하니 약간 아쉽네요.
그리고 설하멱이라는 조선시대 음식이 불고기의 원형일 수 있는데, 레시피는 고기를 두드려 연하게 한 뒤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굽다가 구우면서 물에 담그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겉이 타지 않게 하면서 속까지 익히려는 의도인데, 중국, 중앙아시아의 샤슬릭과 비슷한 것으로 설하멱이 샤슬릭의 음차어일 수도 있다는 발상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한국의 닭은 외래종이 대부분으로 이 닭고기는 구이나 튀김에 맞아 백숙이나 탕 등을 하면 맛이 많이 빌 수 있다는 것도 그럴듯했고요.

무엇보다도 항상 궁금했었던, 한국 달걀이 갈색인 이유를 처음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원래 산란계는 백색과 갈색이 있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갈색 산란계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90년대 업자들이 갈색 달걀을 토종닭 달걀인 듯 홍보한 탓이고요. 생산성이 떨어지면 토종닭이라고 속여 파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백색 산란계가 사료 효율도 좋고 질병에도 강하다 하니 조금 안타까운 현실이군요. 우리의 토종 음식 집착이 이런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인 현상을 낳은 것도 씁쓸합니다. 여튼, 이제부터 같은 값이면 흰 달걀을 사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꿀꿀이죽, 유엔탕이 존슨탕이 된 것은 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 때문이라는 것, 광고로도 유명한 수미감자가 현재 한국 감자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삶으면 찐득해지는 점질감자라 식감이 떨어진다는 것(어쩐지 옛날보다 삶은 감자가 맛이 없더라니!) 같은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대중음식으로 누구나 대충 요리해 먹는 음식일 뿐인데 외국물 먹은 요리사들에 의해 허영심이나 채우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는 수긍할 만한 주장도 좋았습니다. 파스타는 "맛의 달인"에서는 전채일 뿐이라 묘사되고, 얼마 전 읽었던 야마자키 마리의 만화에서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으로 나오는데 정말 포지셔닝이 오버스럽기는 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너무 강한 주장 탓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는데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분명한 만큼 한국 음식에 관심 많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3/29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점

딜리셔스 - 8점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까치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관점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과학, 식문화사, 인문학 서적.

이 책에 따르면 동물들의 거주지가 제한되는건, 동물들의 미각 수용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입맛에 맞는 먹이가 있는 장소를 떠나기 힘들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리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도 불로 조리한 음식이 더 맛있어졌기 때문이고요.
음식 조리는 음식 소화 시간도 단축시켰습니다. 침팬지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를 먹이를 씹는데 씁니다. 하지만 인류 조상들은 이 시간을 대폭 줄였고(현재는 평균 하루의 4.7%를 씹는데 소모),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조리가 문명을 발달시킨 한 요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집착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조사한 결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호하는 음식 - 1위는 꿀 - 을 구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거든요.
이런 집착은 북아메리아에서는 거대 동물(매머드 등)의 멸종도 불러왔습니다. 불법이지만 코끼리 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나게 맛있다니까요. 특히 코끼리는 발 요리가 최고라고 합니다. 당연히 매머드도 맛있었을테고, 그래서 크로비스인들도 멸종할 때까지 매머드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것이지요.
맛있는 동물만 사냥하는건 지금도 수렵인들을 통해 증명됩니다. 현실적으로는 찾아서 죽이기 쉽고, 가공하기 쉽고 많은 열량을 제공하는 동물을 잡아 먹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연구 결과 사냥꾼들은 맛있는 동물들을 발견하면 무조건 추격한다고 합니다. 사냥하기 쉬운 동물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맛없는 동물들은 아예 사냥 대상에서 배제되고요.

향미에 대한 추구는 향신료의 사용도 불러왔습니다. 처음에는 항균제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쾌락적 경험을 불러오는 효과 때문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는 고추의 캡사이신을 조금씩 늘려 제공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매운 맛이 가장 맛있다고 골랐다는 연구 결과로도 증명됩니다. 통각을 자극하는 맛은 실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험을 피할 때의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발효도 항균제 효과와 같은 이치로 생겨났을 겁니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요. 같은 이치로 염장, 훈제, 건조도 발명되었고요.
참고로 이 부분에서 아예 고기를 물에 담궈놓는 일종의 습식 숙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말 한마리를 호숫물에 담궜던 실험이 소개되는데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진공 포장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장기 보존되었다는데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일종의 발효같은 과정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숙성 연성 치즈가 만들어진 것도 맛에 대한 추구때문이라는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노동과 근면을 장려하고, 재료는 모자람이 없었지만 먹는건 제한적이었던(고기를 먹지 못햇던) 수도사들이 심혈을 기율여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치즈를 제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게 숙성 연성 치즈 제조의 원인이라는데 참 그럴듯했어요. 이 이론은 숙성 연성 치즈의 맛은 고기와 흡사하다는걸로 증명될 수 있고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요리에 대한 추구가 문명 발전과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걸 알려주는데, 목차 구성이 다소 정리가 불충분한 느낌이 드는건 아쉬웠습니다. 주제에 맞게끔 통사적으로 구성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도판과 등장 레시피 소개도 부실합니다. 

그래도 맛에 대한 집착이 진화를 이루어냈고, 식문화의 발달을 만들었다는걸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맛에 대한 집착이 많은걸 이루어낸건 분명한 만큼, 맛에는 다소 엄격해져도 될 것 같군요.

2020/01/12

중국요리 백과사전 - 신디킴, 임선영 : 별점 2.5점

중국요리 백과사전 - 6점
신디킴.임선영 지음/상상출판

부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으로, 중국요리의 정석이라고 하는 8대 요리 - 루차이 (산둥요리), 촨차이 (쓰촨요리), 웨차이 (광둥요리), 쑤차이 (장쑤요리), 저차이 (저장요리), 민차이 (푸젠요리), 샹차이 (후난요리), 후이차이 (후이저우요리) -와 기타 지역별으로 대 분류를 나눈 뒤, 각 분류별 주요 요리를 3~4페이지씩 할애하여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90개가 넘는 요리에 여러가지 기타 정보가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각 요리별 소개는 말씀드린대로 3~4 페이지 분량에 불과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로 그 맛과 유래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어서 불필요한 설명도 별로 없고요.
또 8대 요리에 대한 설명이 요리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루차이, 즉 산둥 요리의 핵심은 육수로 "군인의 창, 요리사의 탕"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쓰촨의 매운 맛은 화자오와 고추가 조화된 '마라'의 맛이며, 광둥 요리는 제철 음식과 식재료의 궁합을 중하게 생각한다. 장쑤 화이양 요리에서는 칼을 절묘하게 쓰는 요리가 많다. 저장 요리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식입니다.

'딤섬'을 소개하며 그 종류 - 빠오, 자오, 까오, 펀, 퇀, 쑤 등 - 를 알려주는 것처럼 음식의 종류는 물론, 중국 4대 민물고기는 '황하의 잉어, 송강의 농어, 흥개호의 대백어, 송화강의 쏘가리'이며 저장 요리의 3대 보물은 '룽징차, 사오싱 황주, 진화햄'이라는 등 재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샤오롱빠오는 워낙에 존엄하기에 초간장에 적신 생강채를 만두에 가져가는게 원칙이라는 식문화 관련 내용 등 관련되어 소개되는 정보가 실로 깊고 범위 또한 넓으며,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배추의 탄생이 천여년 전 중국 장강 이남에서 즐겨 먹던 채소 숭차이가 북방에 전해졌는데, 추운 날씨에서 잘 자라지 않자 북방에서도 잘 자라는 순무 우징과 교배시킨게 유래라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전세계에 퍼진 화교의 요리가 주로 푸젠과 광둥 요리인 이유도 그럴듯 했어요. 중원지역 한족들이 청나라의 침략 때문에 푸젠 지방으로 피난을 간 뒤,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개방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간게 계기라고 하네요. 나가사키 짬뽕을 만들어 낸 천핑순도 푸젠 사람이었죠.

오래된 문헌과 자료에만 의지하는게 아니라 최신 정보에 기반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쓰촨요리 푸치페이펜이 '2017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올해의 애피타이저 상을 수상하였는데, 영문이름은 Mr and Mrs Smith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치는 부부, 페이펜은 허파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허파가 아니라 여러가지 소 내장을 재료로 쓴다는군요. 데친 뒤 썰어낸 소 내장을 고추기름, 화자오, 깨, 참기름, 간장 등으로 양념하는 요리라는데 차가운 곱창볶음 비슷해 보입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상세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맛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레시피가 수록된 것도 마음에 듭니다. 불과 웍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 하는 요리들이 많아서 집에서 해 먹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건 아쉽지만요. 이 중에서는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레시피들이 인상적입니다. 대표적인게 궈바오러우에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찹쌀 탕수육'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찹쌀은 중요하지 않고, Double Cooked Pork Slices라는 영어 이름처럼 두 번 나누어 튀기는게 핵심이라는군요. 1차로 고기를 약불에 오래 튀겨 익히고, 2차로 센 불에 빠르게 퀴겨 색을 입히는게 비결이라나요.

이렇게 많은 요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먹고 싶었던걸 한 가지 꼽으라면 당나귀 고기 화덕 빵 샌드위치인 뤼러우훠사오를 꼽겠습니다. '천상에는 용 고기, 지상에는 당나귀 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당나귀 고기를 육식 중 최고로 꼽는다니 그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고기를 12시간 정도 끓여내는 동안 맛을 살리기 위해 제가 질색하는 중국 향신료도 거의 쓰지 않는다니 왠지 제 입맛에 딱 맞을 것 같고요. 당 현종이 제위 전 허베이성 허지엔에 들어 이 음식을 먹고 갔다는 등 유서까지 깊으니 호기심이 무척 동합니다.

또 이미 접했었던 요리가 소개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동파육, 궁바오지딩, 마파두부, 샤오롱빠오, 훠궈, 탄탄멘 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체인점으로 접했던 '꺼우부리빠오주 (구불리 만두)', 남경 출장 때 접했었던 차가운 오리 요리 '옌수이야', 옛날 구로동 중국인 거리에서 처음 먹어보았던 맵디 매웠던 닭볶음 '라즈지' 등은 나름대로 추억도 떠오르고, 그 맛도 떠올라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흐뭇했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여럿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선정되어 소개되는 요리들이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저자가 알고 있는 요리라서 소개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해당 지역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인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북경 오리는 물론 거지닭, 불도장, 빠바오판, 딤섬, 동파육, 띠산센, 마라롱샤, 마라탕, 마파두부 등 몇몇 요리들은 그 유명세가 익히 국내에도 알려져 소개가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요리들은 왜 그게 대표 요리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길 냉면이 여기 수록될 정도의 중국요리라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연길 냉면이 중국 10대 면 요리에 선정되었다는게 이유라면, 다른 10대 면 요리는 왜 다 소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도 불명확하고요. 심지어 마카오 에그타르트가 소개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또 중국 발음과 중국어 한자를 그대로 쓴 표기 방식은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발음이야 그렇다쳐도 원래 이름을 간체가 아닌 일반 한자체로 표시해주었다면 그래도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초보자 수준의 짐작에 그칠 뿐이라 답답했거든요. 레시피도 가지된장볶음 장체즈 항목에서처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다', '오늘 당장 해 먹어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확한 분량과 그 방법을 소개하지 않은 건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실제로 소개 자체가 간단해 보여서 양념 분량만 정확하게 알려주었더라면 도전해 보았을텐데 말이죠. 그 밖에도, 대분류별로 분량이 일정치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도판도 좋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자료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여서 감점합니다. 재판이 나온다면 분류와 요리 선정에 있어서 학술적인 근거가 좀 더 뒷받침된다면 좋겠습니다.

2026/06/0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6) 맥주가 맛있는 순간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닿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보리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고, 이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보리와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물에 젖은 빵이 발효된 것을 먹어 본 것이 맥주의 시작이었다고 하지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문학으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중요한 음료였습니다. 음식을 대표하는 상형문자가 ‘맥주’와 ‘빵’이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피라미드를 맥주와 마늘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시원한 맥주와 강장제 역할을 하는 마늘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고대 이집트에 냉장고가 있었을 리는 없지만, 더위 속에서 마시는 맥주가 각별하다는 사실만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듯합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린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드니까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 중 한 편인 "맥주 별장의 모험"에서 주인공 닷쿠 일행은 바로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그들은 불의의 사고로 무더위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별장에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대량의 맥주를 발견하지요. 당연히 일행은 유혹을 참지 못합니다. 긴급 피난이라는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코올의 이뇨 작용까지 더해지면 탈수 증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젊은 닷쿠 일행에게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텅 빈 별장 1층에 싱글 침대 하나만 놓여 있는 기묘한 상황에 대해 저마다 추리를 꺼내 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작가의 단편 "맥주집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닷쿠 일행이 빈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마시며 그 이유를 추리하는 이야기거든요. 만화 단행본 표지에서도 닷쿠 일행은 맥주를 들고 있는데, 이쯤 되면 참 맥주를 좋아하는 일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작품 속 닷쿠 일행이 마신 것은 냉장고 속 캔맥주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캔맥주보다 병맥주 쪽이 조금 더 시원한 인상을 줍니다.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 병뚜껑이 열릴 때 나는 소리, 잔에 따를 때 올라오는 거품이 캔맥주보다 조금 더 선명한 장면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즐겼던 맥주도 Remmers 병맥주였습니다. "독사"에서 그 상표명이 직접 언급되지요.

병맥주 하면 역시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병을 꺼내, “퐁”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고, 살짝 얼음이 낀 잔에 거품이 올라오도록 따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데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에는 바로 이 습관을 이용한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노 쿄코는 냉장고 속 맥주를 냉동실에 얼려 둔 잔에 따라 마시는 남편의 습관을 이용해 남편을 원격으로 독살하고, 자살로 위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미리 잔에 청산가리를 발라 두었던 겁니다.

다만 이 방법은 보기에는 시원해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맥주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맥주에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적정 온도가 있는데, 얼린 잔은 그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버리는 탓입니다. 또 잔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 때문에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제대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요. 가장 시원해 보이는 방식이 반드시 가장 맛있는 방식은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고 더위 속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만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테미스의 검"에 등장하는 사코미즈처럼, 2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맥주를 마신다면 어떨까요. 그 맥주가 맛없을 리 없습니다. 그는 탄산이 주는 청량감을 두고 “마치 목에도 미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느끼며, 맥주를 “액체 모양을 띤 황금”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와닿습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의 지붕 공사 장면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앤디는 간수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동료들에게 맥주를 요구합니다. 그 덕분에 죄수들은 햇볕이 내리쬐는 지붕 위에 앉아, 차갑게 식힌 Stroh’s Bohemian 맥주를 한 병씩 나누어 마시지요. 특별히 고급 맥주는 아니지만,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교도소 안에서 잠시 자유를 맛봅니다. 죄수가 아니라 하루 일을 마친 평범한 노동자처럼요.

물론 차갑지 않아도 특별한 분위기가 함께한다면 맥주는 충분히 맛있을 수 있습니다. M. C. 비턴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해미시 순경은 일부러 맥주를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마시곤 합니다. 미국 영화 속 탐정들이 책상 서랍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장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 자신도 옛 하드보일드 탐정과 닮아진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고 하지요. 이쯤 되면 맛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한 셈입니다.

스티븐 킹의 "여름 천둥"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모든 것이 오염과 후유증으로 죽어 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로빈슨은 버려진 개 간달프와 함께 살아가고, 근처 고급 주택가에 홀로 남은 팀린과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결국 방사능 후유증이 심해져 죽음을 앞두게 된 팀린은 자살할 준비를 마친 뒤 로빈슨을 부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미지근한 Budweiser를 나누어 마십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주의 제왕”이라면서요. 차갑지도 않고, 세상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마시는 맥주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의 Budweiser는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맛보다는 마지막으로 나누는 시간, 그리고 맥주라는 너무나 평범한 물건이 만들어 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만약 간달프가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의 파트너 조처럼 Budweiser를 좋아하는 개였다면, 그 자리가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사실 이 자리는 Budweiser보다 벨기에 맥주 Duvel이 더 어울렸을겁니다. 시원해야 제맛인 라거 계열의 Budweiser와 달리, 에일 계열 맥주는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왔을 때 본연의 맛이 살아나는데 그 중에서도 Duvel이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향과 맛을 즐기기 좋은 맥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Budweiser도 겨우 구했던 로빈슨과 팀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요.

이처럼 맥주의 맛은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더위, 갈증, 자유, 고독, 동경, 마지막 순간의 체념 같은 것들이 맥주의 맛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맥주는 차가워서 맛있고, 어떤 맥주는 오래 기다린 끝에 마셔서 맛있습니다. 또 어떤 맥주는 맛 자체보다 그 순간의 분위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시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날의 갈증이든, 하루 끝의 여유든, 이야기 속 인물이 느낀 자유든, 맥주는 그런 장면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방법인 ‘세 번 따르기’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네로 울프도 좋아하는 Remmers 병맥주를 전용 금도금 병따개로 딴 뒤, 정확하게 거품을 맞춰 따라 마시곤 했다고 하니, 미식가에게 검증된 방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맥주에 잘 어울리는 잔까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세 번 따르기

1.
맥주병을 높이 들고 처음에는 천천히, 이어서 조금 세게 따라 거품을 만든다.

2.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맥주와 거품의 비율이 1:1 정도가 되면, 병을 잔 가장자리로 가져가 천천히 따른다. 이때 거품이 잔보다 1cm 정도 높게 올라올 때까지 따른다.

3.
거품이 잔보다 1.5~2cm 정도 높아질 때까지 맥주를 조심스럽게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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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11/19

백미진수 - 단 카즈오 / 심정명 : 별점 4점

백미진수 - 8점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한빛비즈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일본 현대 문단의 원로로 다자이 오사무와 친구이기도 했던, 단 카즈오의 4계절 음식을 다룬 에세이집입니다. 저자가 음식을 정말로 좋아하고, 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재에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단의 실력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으니 애초에 재미가 없기는 힘들겠죠? 짙은 애정이 묻어나는 재미있고 좋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묘사 역시 빼어납니다.

"바깥 껍질을 벗긴 멍게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오이와 함께 식초로 무쳐 먹으면 후두부를 콕 찌르는 것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와 맛이 난다. 잊고 있던 여름. 잊고 있던 유카타를 입은 여인. 잊고 있던 여인의 색정. 문득 입에서 후두부 언저리에 걸쳐 이런 것들을 까닭도 없이 상기시키는 듯한 희한한 느낌이다.", 예레반이라는 도시의 코냑을 설명하며 "내게 천상의 여인이 아니라 지그시 다가오는 지상의 여인 같은 맛이었다."처럼 공감각적이면서도 소재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그려낸 묘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요리를 즐겼다는 말에 어울릴만큼 인상적인 레시피도 몇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몇가지 참고삼아 정리해 봅니다.

"금병매"에 적혀있는 족발 삶는 방법.

'돼지 발의 털을 깨끗이 밉니다. 그리고 긴 땔나무를 하나만 아궁이에 넣고, 기름과 간장을 큰 그릇에 가득 채운 뒤 향신료인 회향과 팔각을 더해 잘 섞은 다음 뚜껑을 꼭 닫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좋은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서 다섯 가지 맛이 고루 갖춰지는데, 그러면 이것을 깨끗한 큰 접시에 담아 생강과 마늘을 넣은 작은 접시와 함께 찬합에 넣어...'

본인 스스로 본고장의 맛 (클램차우더?)과 비슷하다는 바지락 차우더.

우선 냄비에 물을 두세 컵 정도 넣어 끓인 뒤 바지락을 집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바로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힌다. 베이컨은 가능하면 뜨거운 물에 데쳐 작게 조각내고 양파는 잘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약한 불로 살살 볶는다. 이 때 마늘을 조금 넣고 볶는 편이 더 맛있다.

양파가 반투명한 색이 되면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볶다가 밀가루, 베이컨, 양파가 흐물흐물 이겨지면 바지락 맛국물을 붓고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성껏 섞는다. 다 풀렸다면 약한 불에서 잘 저으면서 우유를 두 통쯤 부으시라. 적당히 걸쭉하다 싶을 때까지 우유나 바지락 맛국물을 보태면서 끓인 다음 소금 간을 하면 수프는 완성이다.

이제 건더기 차례다. 바지락을 껍데기에서 분리해 조금 남은 맛굴물 속에다 헹궈 모래를 제거한다. 바지락은 기호에 따라 잘게 써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셀러리도 잘게 썬다. 그 외에 감자를 작게 깍둑썰기 해서 오 분 정도 소금물에 삶아 꺼내놓는다. 그다음 미리 만들어둔 걸쭉한 수프를 불에 올리고 셀러리와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기 시작할 즈음 바지락을 더해주면 끝이다.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고 너무 되다 싶으면 우유로 묽히고 부드러움이 부족하다 싶으면 버터를 더 녹인다.

중국의 동남참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우선 동남참게를 잘 씻은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실로 묶는다. 따로 자잘한 톱밥을 준비해 이 톱밥 속에 다진 생강, 다진 파, 후추 등을 섞어둔다. 여기에 고급술과 식초를 따라 흠뻑 스며들게 한다. 이제 동남참게의 표면을 톱밥으로 빈틈없이 감싸고, 그 위에다 잘 반죽한 점토를 동그랗게 둘러싸서 굽는다. 점토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재빨리 점토와 톱밥을 치우고 아직 뜨거운 게살을 입맛에 맞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맛의 달인에서 완벽한 찜요리 대결에 나옴직한 독특한 조리법이네요. 뭔가 걸식계도 떠오르고요. 

단순히 음식 이야기 이외의 다른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터운 작가의 인맥을 활용한 이야기들, 또 전쟁 당시에는 중국에서 보도반원 생활을 했고, 그 외 해외 여행 경험 등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기에 담고 있는 소재의 폭도 넓어요. 여기에 본인의 유쾌하면서 대책없고 화끈한 성격이 더해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 에피소드는 중국 신징 근처 러시아인 부락에서 러시아인 바우스 부부와 1년 정도 함께 살 때의 잼 만들기 에피소드입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잼 만들기를 하는데 부부가 다른 곳으로 가게되어 단 가즈오가 잼 젓기를 맡았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 까지 젓기만 해서 결과물이 잼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결말입니다. 러시아인과 보드카, 그리고 단 가즈오가 만나서 제대로 시너지를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즐겁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유용한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최근 읽은 음식, 요리 관련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로 꼽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음식과 요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이자면 "술안주라는 놈만큼 반가운 게 없다. 정말 술꾼에게만 주어진 하늘의 은혜 같다.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신의 가호를 많이 받는다니, 술꾼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은가."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대단한 애주가라는게 눈에 띄는데, 이러한 점과 대책없고 유쾌한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로산진이 우미하라(가이바라)라면, 단 가즈오는 이와마 소다츠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만에 준 4점이라는 높은 점수는 제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광팬인 탓도 클 듯 합니다.

2020/04/11

탐식생활 - 이해림 : 별점 2.5점

탐식생활 - 6점
이해림/돌베개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에 대한 정보를 멋진 사진, 그리고 맛볼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가 누구인지 함께 소개하며 알려주는 책입니다. 구성이라던가 문체 등에서 '에스콰이어'나 '지큐' 같은 잡지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그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문체와 고급진 사진 때문이죠.

그러나 잡지 기사처럼 단순히 특정 가게나 재료, 요리의 홍보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크게 네 개의 주제로 48개의 재료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름 새로운 정보에 대해 많이 알려줄 뿐 아니라, "만화 고기 스테이크" 처럼 만화 속 고기의 종류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 재미난 항목도 있는 덕분입니다. 조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나, 완벽한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한 방법 같은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좋았고요.
이러한 새로운 정보 중에서는 저지 우유에 대한 소개가 제일 반가왔습니다. 우유의 맛을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이 홀스타인보다 높으며, 실제로 영국에서는 왕실에 납품된다니 그 맛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우유의 밀크홀 1937에서 구입 가능하고 가격도 일반 우유의 3배 정도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구입해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는, 양파가 이 땅에 들어온지는 고작 100여년, 지금과 같은 불고기는 첫 등장이 1960년 대인데 지금은 우리나라 요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재료와 요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재료와 요리가 얼마나 파급력, 전파력이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외에도 과메기 제조법의 역사 등 재미난 정보가 많습니다.

레시피 정보로는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이 기억에 남네요. 쌀을 씻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쌀을 보관하고 밥을 지어야 맛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쌀을 과하게 박박 문지르지 말고, 손끝을 세워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쌀을 씻는다, 이때 물은 쌀이 푹 잠길 정도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혼탁한 물을 자주 따라 내면서 조금씩 보충하는 식으로 씻는다, 맑은 물이 나오면 쌀에서 나온 여분의 전분이 충분히 제거되었다는 뜻. 불리는 시간은 보통 30분이지만, 30분을 기준으로 잡고 쌀의 상태에 따라 가감한다. 1시간을 넘길 필요는 없다'로 이어지는데,일본 드라마 "협반"에서 알려주었던 방법과 비슷하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특히 쌀을 도정하면, 빠르게 산화하고 변질되어 2주 이상 그 맛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쌀을 쌓아 두던 그 옛날 부잣집들보다 “쌀 한 되(1.8리터) 팔아 오라.”라고 하던 가난한 집들의 쌀 구입법을 따라야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정보였어요.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특별한 요리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만화 고기 스테이크 외에는 곰탕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군요. 곰탕 최적의 온도에 대한 고찰, 밥을 미리 말아 넣는 토렴의 과학적 원리(찬 밥에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이면 전분은 다시 말랑말랑진다)와 적절한 염도에 대한 이야기가 잘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곰탕이 먹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책답게, 재료에 대한 고민도 빠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의 달인"에서 지로가 공장식 '브로일러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처럼 말이지요. 이 책에서도 닭고기와 달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맛있는 달걀은 결국 신선도와 사료 문제라고 하니, 달걀은 비싼 달걀을 10구짜리를 사서 먹는게 가장 맛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는 단지 '맛'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가격 차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한 집의 가장으로서, 단지 맛 만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픕니다만, 앞으로는 마트에서 저렴한 특가 상품과 친환경 등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상품 중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 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어떤 이야기는 특정 업소에 대한 광고에 가깝다는건 감점 요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 요리 관련된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정보를 고급진 사진, 편집과 함께 즐기실 수 있는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8/17

나도 먹어봤다. 신라호텔 애플 망고 빙수

휴가철도 지나가네요.
지난 휴가 때 아이 병원 때문에 서울로 나갔다가, 갈 데도 없고 해서 신라 호텔에서 브런치 겸 애플 망고 빙수를 먹어 보았습니다. 몇일 전 일이지만 기념삼아 기록을 남깁니다.

식전 빵은 무난 했습니다. 한 번 리필이 된다는데 하지는 않았습니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딸 아이를 위해서 주문한 파스타,
아내와 저를 위해서 주문한 클럽 샌드위치. 전부 무난한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애플 망고 빙수! 6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놀랍지만, 확실히 맛은 있었습니다. 특히 저와 우리 딸은 망고의 끈끈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망고를 잘 먹지 않는데, 그런 우리 부녀 입맛에도 맞을 정도로 망고가 정말 맛있더군요. 식감도 쫀쫀하고, 단 맛도 풍부하며 시원해서 정말 여름에 딱이었습니다. 빙수는 팥과 망고 셔벗을 별도로 얹어 먹을 수 있는데, 역시나 맛있었고요.
그런데 맛 보다는 유행하는 여름 행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가 나올 때 대기가 무려 70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대기를 할 만한 맛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말이지요.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저는 한 번 먹어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면 또 방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히 또 먹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하지 않는군요.

2024/01/12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점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4점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클

일본의 대형 제과사의 시판 제품이 아닌, 현지 밀착형 아이스크림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도감. 사진 중심이며 동일 제품의 다양한 변주를 함께 묶어 소개하는 구성 등 모든 점에서 같은 시리즈인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이하 "빵 대백과")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빵 대백과"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소개되는 아이스크림들에 대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게 가장 큽니다. 빵은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맛이 궁금한 빵들이 많았는데 여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은 대체로 맛이 예상이 되었던 탓도 큽니다. 예를 들어 아래 나가사키의 카스텔라와 아이스크림을 결합한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겠지만, 그 맛은 충분히 짐작이 되거든요. 저렴한 카스텔라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비스무레하게 만들 수도 있을테고요.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아이스모나카는 '싸만코'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빙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맛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건 아래의 철 아이스 정도입니다만, 그리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또 "빵 대백과"는 삼각 샌드위치를 대각선 45도로 컷팅한 이유 등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와 같은 역사와 정보도 여러가지 알려주었던 반면, 이 책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 소개에 그칩니다. 기대했던 정보는 말차가 들어간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원조가 아래 스이교쿠엔의 '그린소프트'라는 것 정도 뿐이었습니다

소개되는 가게와 아이스크림들이 일본 지방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든 곳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빵 대백과"처럼 도쿄 중심의 가게도 몇 군데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도감임에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정보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휴양지 오키나와라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싶은데, 언젠가 가게되면 아래의 히가시 식당, 후지야는 꼭 들려볼 생각입니다. 마리야 유업 제품도 먹어보고요.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