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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2점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4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기소설가 도조 겐야가 괴담 수집 취재를 위해 향한 가가구시촌은 신사를 맡은 '백'의 '가미구시가', 뱀 신을 모시는 '흑'의 '가가치가'라는 두 가문 세력으로 나뉘어진 곳이었다. 도조 겐야가 도착한 직후,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수행승 젠토쿠 도사가 교살당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가가치가 어른들이 잇달하 살해당했다. 사체는 모두 허수아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건들이 일종의 밀실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탓에 수사는 미궁에 빠졌지만, 도조 겐야는 추리쇼를 펄쳐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세상의 모든 일은 흑백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안 돼."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제 1작. 시리즈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읽고나서 14년만에 읽게 되네요. 
550페이지를 넘기는 대장편으로 일본의 괴담을 섬찟하게 그리면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이 일어나지만 이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리해서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잘 살린 작품이지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전개와 설정 모두 나무랄데 없습니다. 후속권이 계속 이어지는 인기 시리즈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일단 미쓰다 신조 작품답게 괴기 현상에 대한 묘사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렌자부로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렌타로가 사라졌던 사건이 특히 굉장했어요. 귀기어린 구구산의 분위기, 기묘한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당집과 지하실, 뒷 계단을 통해 나왔을 때 뒤를 쫓아온 괴이 등이 렌자부로의 시점으로 설명되는데, 한 편의 괴담으로도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오래전 벌어졌던. '신령 납치'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즈에 실종 사건은 '시즈에가 스스로 몸을 숨겼던게 아니었을까?'라는 추리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덮친 괴이한 연쇄 살인 사건까지 추리해 내는 도조 겐야의 추리도 볼거리입니다. 등장하는 괴담, 괴이 현상에 가까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수께끼 중 주요한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요가 지장갈림길에서 목격했던 사기리 생령의 정체는?
  • 누가 숨어있기 힘들었던 나루터에서 가쓰토라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 구니하루 찻잔에 독을 넣고, 잠깐 사이에 피해자를 허수아비처럼 꾸민 방법은?
  • 기누코를 살해하고 오솔길에서 사기리, 렌자부로, 도조 겐야 눈을 피해 달아난 방법은?
이에 대해서 도조 겐야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추리를 내 놓고, 실패를 반복하는데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놓는 추리들도 아예 말이 안되지 않고요. 예를 들어 맨 처음 '범인은 사기리 할머니의 시종인 구로코다!'라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구로코는 젠토쿠 도사 범행 당시 무신당 안에 있었고, 구니하루 범행 때에도 현장에 있었으며 맨 처음 장소를 이탈했기에 옆 방에 숨어들 수 있었고, 기누코 사건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터부시하는 허수아비님 속에 숨어 렌자부로의 눈을 피했으며, 이는 구로코가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가능했다는 등의 내 놓는 근거 역시 꽤 탄탄한 편입니다. 이는 구로코의 정체는 렌자부로의 형 렌지로라는 추리로 이어지고요. 이 역시 나름대로 근거를 잘 제시해줍니다.
구구의례라는 의식을 행하며 할머니가 조제했던 약을 먹은 사기리가 좌반신에 마비가 남고 잘 걷지 못하게 된걸 보고, 그녀가 뇌경색에 의한 시야협착 증세를 가지고 있어서 왼쪽을 돌아볼 때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추리, 그리고 범인이 사기리의 쌍둥이 언니 사기리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처음부터 사기리는 2명이 아닐까라는 단서를 계속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요. 애초에 도조 겐야의 취재 노트, 렌자부로의 수기와 함께 작품을 전개하는 축인 '사기리의 일기'가 주인공인 동생 사기리가 아니라 언니 사기리의 일기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모든게 허수아비 속에 숨어 있었던 사기리 시점이었던 거지요.
아울러 언니 사기리가 모든 범행을 허수아비 속에 숨어서 행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구구의례 뒤 허수아비님과 같은 산신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핵심 트릭이야말로 괴담과 추리가 잘 결합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외에도 젠토쿠 도사를 살해한 범행은 이모 사기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서 특별한 수수께끼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다른 범인이 있었다는게 드러나며 이 사건에서의 목격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잘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작답게 부족한 부분도 느껴집니다. 일단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상당히 지루합니다. 가미카쿠시 촌을 양분하고 있는 흑, 백 세력의 필두 가가치가, 가미구시가 양 가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족 관계를 엄청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문제는 이 설정은 미쓰다 신조 작품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뱀 신'을 모시면서 떠받드는 가가치가의 묘사는 "백사당", "사관장", "흉가" 등 다른 작품 속 가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행해지는 의식 역시도 비슷하고요. 
물론 이건 이 작품이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다소 부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불필요한 내용이 과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마을 이름의 유래 등을 통한 마을 마귀 신앙 설명처럼요. 사건과 별로 관계가 없는 부분을 모두 쳐 내었더라면, 200페이지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을겁니다. 

도조 겐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외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온 긴다이치 코스케와 별다를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화적으로 독특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렇게 무색무취한 것도 문제네요. 게다가 괴담을 무척 좋아한다는 설정은 관련된 설명이 늘어지게 만들 뿐이라 오히려 감점 요소였다 생각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사건은 풍성하고,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후더닛 측면으로는 볼만하나 본격 추리물에서 가장 중요한 트릭면에서는 아쉽습니다.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허수아비 속에 숨는 트릭인데, 이는 이미 도조 겐야로부터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렌자부로 등이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서 흐지부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극단적 상황에서 심리적 거부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던것 아니었을까요? 렌자부로와 마을 사람들 의견으로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설령 도죠 겐야는 그랬다쳐도, 경찰이 이를 쉽게 납득하고 넘어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사기리가 떠내려보낸 주물을 쌍둥이 언니가 몰래 다시 어깨에 얹은 이유라던가, 기타 등장하는 괴이와 괴담 모두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렌타로 실종 사건입니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갔을 때 사당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도조 겐야의 추리는 그럴싸 했지만, 누가 왜 렌타로를 납치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정리된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돋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같은 설정이라면 "백사장", "사관장"같은 후기작을 읽는게 더 낫습니다. 외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저주와 엮인 사건에 대한 추리 소설이라면 "흑사의 섬"도 나쁘지 않고요.

2024/10/06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3점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진상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조 겐야는 대학교 선배 아부쿠마가와 가라스로부터 하미 지역의 특별한 제의와 기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미에는 네 개의 마을에 각각 신사가 있고, 홍수나 가뭄 때마다 신사마다 돌아가며 지역 농사의 젖줄인 미쓰 천의 원류 진신 호에서 미즈치 신을 모시는 제의를 행해왔는데, 13년 전 제의에서 사요촌 미즈시 신사 신관 류지의 큰아들 류이치가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나, 터무니없이 무서운 어떤 것을 본듯한 형상이었다. 그 뒤 제의에서도 신관들은 기묘한걸 목격했다고 했다. 
이 소재를 탐방하기 위해 도조 겐야는 편집자 소후에와 함께 가뭄 탓에 행해지는 하미의 기우제에 참석했다. 그리고 제의 중 신남 역할을 맡은 류지의 둘째 아들 류조가 가슴에 미즈치 님의 신기 중 하나인 뿔에 찔려 죽은걸 목격했다. 그러나 현장인 집배는 완전한 밀실이었다. 겐야는 현장을 확인한 뒤, 자살이라고 추리했고 류지가 동의하여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미즈시 신사 외눈 광에 제물로 류지의 의붓손녀 사요코가 감금돠었다는걸 다른 신관들과 관계자들이 알게 되었다. 사요코를 풀어달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류지는 주술을 푸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다음 날 풀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날 밤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미즈치 신사의 다쓰키치로, 미쿠마리 신사의 다쓰조 신관이 차례로 살해당했고, 스이바 신사 류코 신관은 중상을 입었다. 류지는 소후에를 감금한 뒤 겐야를 협박하여 범인을 밝혀낼 것을 종용했고, 겐야는 관계자들 앞에서 범인은 류지의 의붓 손자 쇼이치라고 추리했다. 겐야가 내 놓은 범인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건 쇼이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리쇼 직후 류지마저 총격으로 살해당했고, 도조 겐야는 소후에를 구해내 스이바 신사 후계자 류마와 함께 마을 밖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류마에게 진짜 진범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때 네 개의 마을은 폭우로 범람한 미쓰 천에 모두 휩쓸리고 말았고, 도조 겐야는 경찰에 살해된 사람들과 범인들 모두 실종된 것으로 신고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자신감 있는 오만한 명탐정보다 도조 겐야 쪽이 마음에 드는 걸. 연쇄살인이 발생해 몇 명 죽고 난 다음에 겨우 사건을 해결해 놓고 실은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고 지껄이는 명탐정보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댁이 훨씬 더 믿음이 가." - 류마.

도조 겐야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제 10회 일본 본격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입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인데, 굉장히 흡입력있고 재미있는 내용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즈치 신을 모시는 제의와 사건, 트릭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게 아주 돋보였습니다. 제의는 공물을 담은 큰 통을 호수에 빠트리면서 진행되는데, 이 통 안에 '산제물'인 사람을 넣어 두었던게 밀실 트릭의 진상입니다. 13년 전 제의에서 처음 산제물을 바쳤는데, 이 때 통에 갇혔던 산제물 이치로가 물 속에서 튀어나와서 류이치는 깜짝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켰던겁니다. 이치로는 지하 수로로 빨려들어갔고요.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는 산제물은 사요코였는데, 그녀 역시 통을 호수에 빠트릴 때 빠져나와 류조를 찔러 죽였습니다. 통 안에 공기가 남아있어서 관계자들이 현장을 보고 떠날 때 까지 숨어있을 수 있었고요. 이 과정에서 집배가 한 번 더 흔들린 이유 - 떠오른 통에 부딪혀서 - 까지 설명되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겐야가 내 놓는 여러가지 추리도 볼 만 합니다. 우선 겐야는 범인에게 해당되는 일곱 개의 조건을 꺼내어 놓습니다.
  1. 미즈치님 제의에 산재물이 부활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2. 쓰루코 대신 사요코가 제물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3. 산재물이 통 안에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4. 사요코가 제물로 바쳐졌음을 알고 범행을 결심한 인물
  5. 류마의 잠수 장비가 어느 광 어느 궤짝에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인물
  6. 잠수 장비를 착용하고 활동할 수 있는 인물
  7. 호수에 드나드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인물.
이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추려낸 후, 하나씩 소거해가는 과정이 아주 그럴듯했어요. 이를 통해 범인이 쇼이치라는걸 드러내는 추리도 합리적이고요. 물론 이는 나중에 아닌걸로 밝혀지지만요.
미즈시 신사가 '산제물'을 바쳤다는걸 밝혀내는 추리도 돋보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신찬'은 누가 보아도 산제물인 여성을 형상화한 것인데, 류지가 이를 대충 고르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는 등의 단서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알려줍니다. 여러모로 '본격추리대상'을 탈만큼 추리적으로는 풍성합니다.
다만 도조 겐야의 추리는 일본어를 이용한게 많아서 한국 독자는 풀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산제물'을 추리해내는 추리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이런걸 원어로 보고 이해하며 추리에 동참할 수 있는 일본 독자들이 부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전쟁 당시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눈에 뜨였습니다. 류마가 해군 자살 특공대 후쿠류 출신이라는 설정인데, 류마의 입을 빌어 전쟁 당시 자살 특공대에 대해 개죽음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라던가, 자식이 죽어도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낙후된 촌락의 사고방식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사고방식과 빗대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아버지나 자식이 죽어도, 형이나 동생이 목숨을 잃어도 슬퍼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기뻐했던건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지요.
쇼이치가 어떻게 되는지 밝혀지지 않은 후일담은 다소 마음에 걸리지만, 자매가 행복을 찾았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몇 가지 있습니다. 사요코가 산제물로 통 안에 갖혔을 때 미즈치의 뿔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처럼요. '불안함을 느껴 호신의 의미로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데,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닙니다. 그렇게 아무나 가져갈 수 있게 두었다는 것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그것도 제의 전에 말이지요. 또 호수에서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요코가 범행을 저지른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물론 공기가 들어있는 통을 사용했다는 트릭이 활용되기는 했는데, 과연 얼마나 숨을 쉴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온 뒤 사건에 대해 증언하지 않고, 숨어서 신관 연쇄 살인 사건을 일으킨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자신을 산 제물로 삼으려고 했다는게 신관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라고 믿었다 한 들, 최우선 복수의 대상은 류지여야 합니다. 다른 신사의 신관들이 아니라요. 그리고 복수심에 불탔다 한들 신관들을 미즈치 님의 신기로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상식적이었다면 자신들의 편일 세이지, 류마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마을 밖 경찰서에 신고했어야 했어요.
류지가 산제물을 바치기로 결심한 뒤에도 외눈광을 유지한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의 때마다 산제물을 바친다면, 필요 없는 곳입니다. 미즈치 신을 모시는 곳이라서 쉽게 허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그렇다쳐도 첫 산제물을 바친게 13년 전이니,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습니다.
이미 13년 전에 통 뚜껑을 잘 닫지 않아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통 뚜껑이 열렸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던 점이고요.

아울러,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어느 정도 읽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작품의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쇼이치 시점의 이야기는 너무 길고 지루했습니다. 쇼이치를 통해 하미 지방에 미즈치 신 외에도 기묘한 어떤 것 - '팽것', 귀녀 등 - 이 있다는 설정을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이러한 이형 존재에 대한 서술은 다른 미쓰다 신조 작품과 거의 똑같았던 탓입니다. 추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거의 없고요. 그나마 진신 호에서 미쓰 천으로 이어지는 지하 수로는 여러 통로로 접근할 수 있다 정도만 추리에 도움을 주지만, 이 역시 류마가 조성한 무덤 - 이치로의 시체가 떠내려 온 - 과 이치로의 사체가 발견된 곳 등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게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쇼이치 부분을 빼고 도조 겐야 부분만 추려서 읽어도 충분히 말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쇼이치 가족의 어머니가 '가가구시촌의 사기리'였다는건 시리즈 제 1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과 연결되는데, 이 역시 천편일률적인 묘사로만 이어질 뿐 특별한 소재로 사용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있는건 분명하니까요. 도조 겐야 시리즈, 혹은 호러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6/04/03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 미쓰다 신조 / 신정명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조 겐야는 편집자 시노, 오가키와 함께 고라 지방 도쿠유 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네 가지 괴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행이 '하에다마 님' 숭배 신앙이 남아있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불가해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네 가지 괴담의 상황과 장소가 일치하는 네 건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도조 겐야가 나서는데...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최신 장편입니다(국내 기준).  
괴담과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하는 시리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라 지방에 전해지는 네 개의 괴담이 단순한 배경 설명이나 분위기 조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지는 네 개의 사건과 정확하게 대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네 개의 사건은 모두 일종의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격물적인 가치도 높고요. 특히 노조키 렌야 사건과 신관 사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노조키 렌야 사건은 멀쩡히 입구가 열려 있는 대숲 신사에서, 어디에도 결박된 흔적이 없는 노조키 렌야가 어째서 굶어 죽었는가라는 기묘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언뜻 보면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였지요.
그러나 범인은 낡은 법의를 노조키 렌야에게 입힌 뒤 그 법의에 긴 대나무 장대를 꿰고, 천으로 양손을 결박해 양팔이 벌어진 상태로 몸을 고정해 두었던 겁니다. 그 결과 노조키 렌야는 빽빽한 대숲 사이를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눈 앞의 출구도 어떻게 해도 걸려서 나갈 수 없었고요. 이는 현장에 남아 있던 대나무 장대와 사당을 부수려 했던 약한 타격 흔적, 대숲 입구에 남은 내려친 자국들로 증명됩니다.
닫힌 방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처럼 만든 점, 현장의 자연물 자체를 트릭의 일부로 끌어들였다는 점, 그리고 괴담과 동일한 '아사'라는 살해 방법을 택한 점 모두가 대단합니다. 별점 5점도 충분할 정도로요.

망루 오두막 전망널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던 신관이 추락사했는데, 호리이 씨가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고 사바오도 곧바로 망루를 찾은 탓에 범인이 도망칠 수 있었을 리 없었다는 신관 사건의 트릭도 돋보입니다.
범인은 먼저 신관을 살해한 뒤 망루 안의 옷장 위치를 바꾼 뒤, 벽과 옷장 사이에 시체가 가부좌 상태로 고정되게 끼워 놓았습니다. 이후 사후 경직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범인은 신관의 옷을 입고 신관인 척 망루로 올라가서 굳어 있는 시체에 다시 옷을 입혀 전망널로 밀어 놓고 사라집니다. 범인이 사라진 뒤 시간이 지나자 시체는 사후 경직이 풀려서 아래로 떨어졌던 겁니다.
전망널이라는 망루의 독특한 구조와 망루 내부의 기물들, 그리고 항상 명상하는 신관을 바라보는 목격자 호리이의 존재를 알리바이 조작에 활용한 멋진 시한장치 트릭입니다. 이 역시 별점 5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에요.

도조 겐야와 소후에 시노의 티격태격, 도조 겐야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 등의 요소도 팬으로서는 즐길거리였고 괴담도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충분히 섬뜩합니다. "하에다마 님"으로 짐작되는 존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근하게 공포를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괴담을 활용하여 현실의 사람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네 번째 괴담의 진상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다른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교하면 괴담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500여 페이지 분량 중 무려 120여 페이지가 괴담에만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 탓에 도조 겐야가 마을 안에서 직접 움직이며 활약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주요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가키누마 도루와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또한 몇몇 사건의 동기는 썩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신관이 오래전 마을의 범죄와 인신공양이라는 과거가 밝혀질까봐 노조키 렌야를 살해했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범죄자의 가족까지 오랫동안 낙인찍는 일본 특유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있는 동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이해하기는 무리라 생각되네요. 이보다는 사랑하는 손녀 스즈카제를 탐내고 있었다던가, 보다 직접적인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이 나았을 겁니다.
고라 지방 마을의 우두머리(?)인 5인방이 합병을 막기 위해 유리아게 촌에서 생활하는 닛쇼방적 사원을 위협했다는 이야기 역시, 목적과 동기가 다소 모호합니다. 사원 몇 명이 마을에 발길을 끊어봤자, 마을 합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을 것 같으니까요. 이 역시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 필요했을거에요.

스즈카제 양이 다루마 동굴에서 기지를 살해한 사건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스즈카제가 동굴 내부를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다는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동굴 내 도구를 이용해 원거리 살인을 성공했다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거든요. 기지가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있어야 성립한다는 점에서도 말이 안되고요.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앞선 두 사건이 워낙 뛰어나서 오히려 이 약점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오래전 마을이 상선을 침몰시켜 약탈했고, 어린 여자아이를 인신공양했다는 등의 고라 마을에 얽힌 괴담의 진상도 이전에 읽었던 미쓰다 신조 작품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게다가 정말로 '하에다마 님' 같은 괴이가 실존한다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괴담이 실존한다는 분위기가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한 개 마을이 깡그리 사라진다는건 억지였어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워낙 분명해서 충분히 읽어볼 만 합니다. 괴담은 섬찟하고, 추리는 현실적이면서도 참신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는 본격 미스터리의 쾌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 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 팬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2024/11/17

걷는 망자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걷는 망자"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단편집으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입니다. 괴이 민속학 연구실 '괴민연'을 배경으로 영능력 소녀 도쇼 아이와 도조 겐야의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각종 괴담의 진상을 추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섯 개의 단편은 각각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며 기묘한 괴담과 이를 해결하는 추리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던 길고 장황한 민속학적 설명이 전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게 괴이 현상과 그 진상에 대한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괴이 현상과 추리의 결합도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괴담을 이야기하는 영능력 소녀 아이와 이를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덴큐 마히토 컴비의 매력은 떨어집니다. 아이의 영능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덴큐 마히토는 도조 겐야의 조수격임에도 괴담을 무서워한다는 유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 탓입니다. 이 둘이 "사상학 탐정"슌이치로의 조부모가 된다는 '미쓰다 신조 월드' 설정도 억지스러워서 별로였습니다.

총평하자면, "걷는 망자"는 개별 단편마다 흥미로운 설정과 논리적 추리를 선보이지만, 일부 이야기는 완성도가 아쉽고 설정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담, 민속적 분위기와 참신한 트릭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 트릭 등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걷는 망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망자길'에서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남자 구지라다니 쇼지를 목격했던 도쇼 아이의 경험담에서 시작됩니다. 쇼지는 산책 후 귀가했지만 곧바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수사하며 요시코라는 여성과의 밀회에 주목하지만, 아이가 목격한 쇼지의 존재와 가정부의 증언이 요시코를 범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사건의 진상은 덴큐 마히토의 추리를 통해 밝혀지는데, 범인은 요시코가 맞았습니다. 그러나 쇼지의 머리를 잘라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 '망자길'을 통해 귀가한 척한 요시코의 동생 무쓰코 덕분에 알리바이가 생겨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망자'라는 괴이와 알리바이 트릭을 논리적으로 엮은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무쓰코의 키와 마을 여성들의 특이한 풍습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치밀하게 연결된 점도 인상적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어린 시절 가즈히라가 목격한 '가슴은 크지만 머리가 없고 닭 같은 다리를 가진 여자'라는 괴이에서 출발한 사건은, 가즈히라의 친구 다케루의 집에서 이 괴이를 목격한 가정부 다도코로 스에가 습격당하며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덴큐 마히토는 머리 없는 여자가 다케루의 변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물구나무를 섰기 때문에 가슴이 크고 다리 관절이 반대로 보였던 것이지요. 다케루는 이 괴이를 통해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려 했습니다. 스에 습격 사건에서는 사당 장지문 둘레에 금줄을 둘렀다는 일종의 원격 조작 장치 트릭이 사용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3.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소인'이 살고 있어서 집이 작았으며, 더 작아진 이유는 '소인'에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괴이 현상의 진상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소인이 피해자 아이들 배를 갈랐다는 진상 역시 마찬가지고요.
폐쇄적인 마을과 몰락한 지배 가문이라는 배경 설정은 식상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식 발음을 이용한 트릭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영역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괴담 연구회 회원들이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여관방을 봉인까지 해 가며 철통같이 지켰지만, 다카코 회장이 습격당하고 말았다는 괴이 사건이 등장합니다.
진상은 여관 주인의 동생이 여관을 방문한 여대생을 공격해서 괴이 현상을 가장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힙니다. 핵심 밀실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2층에서 자던 마사요를 옮긴 뒤 그 밑의 다다미를 들어올려 1층에 있던 다카코의 목을 졸랐다는 건데, 모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걸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건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서 있는 쿠치바온나

이 단편에서는 민속학자(도조 겐야 선생)이 고갯길에서 입이 초생달처럼 찢어진 여성 '쿠치바온나'와 만났던 것, 그리고 마을 장례 행렬을 미행하다가 우연찮게 관에서 시신이 빠져나오는걸 보았다는 두 가지 괴이현상을 다룹니다.
쿠치바온나는 밤길에서 남성을 만난 젊은 여성이 긴 머리를 입에 물고 변장한 모습이었으며, 관에서 빠져나온 시신은 마을 사람들이 학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폐쇄적인 마을이었다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덕분에 연극을 벌인 이유도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두 괴이 현상이 마을의 이상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3/29

산마처럼 비웃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2.5점

산마처럼 비웃는 것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고키 가문의 넷째 노부요시는 미뤄두었던 성인식을 위해 고향 구마도로 귀향했다. 그러나 노부요시는 산속 사당을 순례하던 중 길을 잃고 흉산 부름산에 들어서고 말았다. 노부요시는 부름산의 유일한 민가인 가스미 가문의 다쓰이치 일가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다쓰이치 가족은 노부요시만 남긴 채 밀실인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들을 찾아나선 노부요시는 과거 광부와 사기꾼들이 살해되었다는 금광터 여섯 무덤굴에서 망자의 비명을 듣고 도망치다가 정체불명의 사악한 존재까지 목격한 뒤, 마음에 병이 들고 말았다.

도조 겐야는 노부요시의 병든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구마도로 향했다. 지역 유지인 리키하라와 부름산에 오른 겐야는 다쓰이치의 집에서 얼굴이 불타고, 구전 동요의 지장 형태를 한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다쓰지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쓰지 아들 고지의 시신이 흑색지장 사당에서 역시 동요에 나오는 처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후 리키하라도 실종되었고, 겐야는 다니후지 형사와 함께 여섯 무덤굴에서 토막난 리키하라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쓰지의 장례가 열리던 날, 가설 극장에 불이 나 경찰의 주의가 분산된 사이, 가스미가에 남은 다쓰지의 아버지 단고로, 아내 시마코, 첩 슌기쿠도 동요 속 방식으로 모두 살해당하는데....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찾아 읽는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입니다. 네 번째 출간작으로, 반 년 전에 읽었던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바로 전작입니다. 2008년 일본 현지 출간 당시에 각종 랭킹 상위권을 휩쓸었었지요.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만큼 대담한 추리와 충격적인 진상이 돋보입니다.

진상은 다쓰이치 씨 가족과 다쓰지 씨 가족이 실은 동일 인물들이었다는 겁니다. 다쓰이치의 딸 유리는 소년 다쓰하루가 변장한 것이었고요. 이들은 마을에 들어온 유랑극단 ‘태평극단’으로 모습을 바꾸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노부요시가 유리에게서 느낀 섬뜩함은, 결국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로 위장한 데서 비롯된 어색함 때문이었습니다. 부스스한 단발머리는 연극 "거미줄 활시위"에 등장하는 단발머리 시동의 가발로, 그것 자체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고요. 고지와 히라히토가 닮은 이유 또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다쓰지의 얼굴을 훼손한 이유 역시 이 진상을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얼굴이 온전하게 발견되면, 다쓰이치와 다쓰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금세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쓰지 일가가 변장을 택한 동기도 납득할 만합니다. 작년 백중 무렵, 다쓰하루가 부름산에서 금이 섞인 암석을 발견했고, 이를 다쓰지 혹은 고지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은 가즈토리 가문 소유였고, 가즈토리 리키하라의 사위 마사오는 본격적으로 금을 채굴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고 있었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금을 빼앗기고 채광 기회도 잃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다쓰지 일가는 다쓰이치 가족으로 변장하여 몰래 금을 캐기 시작했던 겁니다.

다쓰이치 가족이 사라진 밀실 트릭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꼬마 유리가 혼자 남아, 두 문의 안쪽에 직접 빗장을 걸고 노부요시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목욕통을 가리는 칸막이 뒤나 침구 속에 몸을 숨겼고, 노부요시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 의아해하는 사이 2층으로 올라가 노부요시가 자던 방에 다시 숨은 것이지요.

이외에도 노부요시가 성인식 도중 겪었던 괴이 현상들에 대해, 겐야의 추리로 합리적인 설명이 덧붙여진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야생 여우나 염주 비둘기의 울음이었고, 소름끼치는 절규는 발정기의 야생 여우들이 서로를 부르거나 다른 짐승들과 대치하면서 낸 소리였습니다. ‘산녀’는 실제로 존재하는 노파였으며, 나병에 걸려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게라의 길’이라는 외길을 이용해 이동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나무 위의 시뻘건 불덩이는 날다람쥐였고, ‘어어이’라고 부르는 소리는 형들이 노부요시를 찾으러 산에 들어왔을 때 외친 것이었습니다. 

이런 추리를 위한 단서들은 모두 작품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단서를 흘려두고, 이를 추리를 통해 조합하여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정통 본격 추리물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다쓰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시신 훼손에 사용한 '두꺼비 기름'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하는 점은 추리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이 아이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물은 다쓰지, 고지, 시마코, 슌기쿠, 다쓰하루, 노부요시 단 여섯 명뿐입니다. 이 중 다쓰지 일가는 모두 살해되었고, 어린아이 다쓰하루가 범인일 수는 없기에 남는 사람은 노부요시뿐입니다. 

다쓰이치 가족의 정체를 밝혀내는 단서로, 소노코의 혼례 시간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활용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노부요시가 소지한 물건 중 상대가 알지 못했던 건 혼례 시간 변경을 알리는 편지뿐이었고, 그걸 읽고 이들이 갑작스레 자리를 떠났다는 걸 통해 정체를 유추해낸 것입니다. 이유는 '태평극단'이 혼례 축하 공연을 하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구전 동요를 따라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점이 특징인데, 억지스러운 느낌 없이 공포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이 동요가 ‘금광’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이어서, 사건의 핵심 동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성도 훌륭했습니다.

다만, 도조 겐야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은 전개가 조금 처지는 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 진상인 ‘다쓰지 일가의 변장’ 설정의 설득력 부족입니다. 아무리 가즈토리 가문과 가스미 가문 사이가 멀어졌다고는 해도, 어릴 적 친구였던 리키하라가 다쓰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무리입니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이라는 설정이 있다 하더라도, 가족 단위의 변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고요. 가족 모두가 변장을 했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금광을 몰래 캐기로 했다면 다쓰지와 고지만 변장했어도 충분했으니까요. 아니면 다쓰지만 변장해서 머무르고, 필요할 때만 가족을 불렀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조 겐야는 처음에는 마사오를, 그 다음에는 수행자 단부로 변장한 다쓰이치, 다쓰지의 동생 다쓰조를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이들의 동기는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었습니다. 마사오는 금광을 캐는걸 주장해 왔었기에 이를 반대했던 장인과 몰래 금광을 캐던 다쓰지 일가를 없앨 수 있었고(딸 유리의 실종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었을 것 같고요), 다쓰조는 이미 금광 때문에 여섯 명이나 살해했었으니까요.

반면, 진범인 노부요시의 동기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성인식을 실패한 건 전적으로 자신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며, 다쓰이치 일가가 장난을 쳤다고는 해도, 이로 인해 여섯 명이나 살해한다는 건 지나치게 과장된 반응입니다. 그럴 거였다면,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혔던 형들을 먼저 노렸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또한 금맥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 묘사하다가, 결국 사냥용 총에 사금을 넣어 쏴서 벌인 사기극이었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부분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금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런 사기를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사소하지만 다쓰이치 가족이 나타난건 작년 백중 무렵, 태평극단이 나타난건 작년 여름께라는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한건 국내 독자에게는 이해가 힘든 부분이라 아쉬웠고요. 이런건 번역할 때 통일시켜 주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시리즈 특유의, 일본 촌락에 전승되는 괴담이 실제 사건과 얽히며 전개되는 플롯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추리물로서도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몇 가지 단점이 커서 감점합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최고작은 아직까지는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입니다.

2012/06/18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미스터리 편집자 미쓰다 신조가 공포소설 투고를 의뢰받은 뒤, 집필을 위해 우연히 발견한 폐가에 가까운 서양식 저택에 기거하면서 소설과 현실이 뒤섞이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의 작품으로 미쓰다 신조의 장편 데뷰작입니다. 작가는 최근 도조 겐야 시리즈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지요. 도조 겐야 시리즈는 한 권밖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본격물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호감을 느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정통 호러 소설"이었습니다. 별로 호러물은 좋아하지 않는데,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참혹한 사건이 반복되는 흉가라는 아이디어가 괜찮더군요. 뭔가 스물스물하면서 섬찟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고요. 괴물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상황" 자체가 섬찟한데, 이를 정말 잘 살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작가 미쓰다 신조라던가, 작품 발표 시기에 진짜 그가 편집자로 일하며 발표했던 여러 서적들이 소개된다던가, 지명들이 실존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현실이 굉장히 깊게 개입하여 논픽션 느낌을 주는, '메타 소설' 계열의 작품이라는 특징도 이러한 섬찟한 상황에 한몫 단단히 합니다. 덕분에 흉가가 실제 있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요새 말로는 페이크 다큐 스타일인 것이지요.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유명한 추리, 호러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그 방식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냥 방대한 장르문학에 대한 지식을 독자들에게 광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작품에 연결시켜 녹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쓰다 신조가 "세계 미스터리 투어 13"의 도쿄편 관련 사진 촬영을 위해 아사쿠사 일대를 배회하면서 에도가와 란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작가 미쓰다 신조와 그가 이사 온 저택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작품 "모두 꺼리는 집"과 뒤섞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도 볼만했는데, 이러한 전개는 "메두사"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액자소설은 많이 있긴 하나 이렇게 실제 현실과 작품이 하나로 귀결되는 작품은 흔한 것은 아니죠.

허나 단점도 있습니다. 흉가 자체의 존재를 그려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대체 왜 흉가가 되었는지 결국 밝히지 않고 끝내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7에 얽힌 주기는 무엇이며, 혼자 살아남은 소년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 궁금했던 떡밥도 하나도 회수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귀신에 씌인 것 같은데 그냥 그뿐이라는 결말은 "알고 보니 꿈이었다"와 별다를 게 없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의 대 활극(?) 묘사는 긴장감이 넘치기는 하나 앞선 흉가 그 자체에 관련된 오싹함과는 거리가 있고, 통속적인 작품이 된 것 같아 아쉽고요.

그래도 복잡한 구성임에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 그리고 장르 자체의 속성에 충실한 좋은 작품입니다. 데뷰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역시나 떡잎부터 다른 법이네요.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재미도 특출나니 호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괜찮은 선택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계절도 이제 슬슬 여름이니까요!

그나저나... 작중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말이라며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도 소설로 쓰지 않는 한 평가할 수 없다."라는 글귀가 등장하는데 정말 와 닿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하루에 10분이라도 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2020/08/29

흑사의 섬 - 오노 후유미 / 추지나 : 별점 3점

흑사의 섬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시키부는 오랜 고객인 논픽션 작가 카츠라기의 행방을 쫓아 그녀의 고향인 '야차도'라는 섬을 찾았다. 그녀가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탄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으며, 마을에는 카츠라기의 원래 성인 하세가와라는 집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방해라는걸 알아낸 시키부는 혼자만의 조사와 조력자인 마을 의사 야스다를 통해 시호가 참혹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시호가 '마두야차'의 심판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유는 그녀가 마을 영주인 진료 가문의 후계자 히데아키를 살해한 범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섬 특유의 종교와 풍습에 시호가 죽었다면 그녀와 동행한 나가사키 마리라는 여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마지막 남은 후계자라면 시호를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마두야차와 진료 가문의 '슈고'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계속 더해지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현재의 '슈고'인 진료 아사히에 의해 모든 진상이 빍혀지는데...

"시귀"와 이런저런 괴담 단편집으로 호러, 공포 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던 오노 후유미의 본격 추리물입니다. 

외떨어지고 고립된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과 그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토대로 풀어낸 본격 추리물은 일찌기 많이 접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떠오르네요. "이누가미 일족" 등이 그러하니까요. 가문의 저주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가문의 상속자들을 죽게 만드는 "바스커빌 가의 개"도 마찬가지고요. 그만큼 고전적인 설정인데, 지금도 도조 겐야 시리즈, 민속 탐정 야쿠모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인기 설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기간에 걸친 전통 관습의 과정이 핵심 트릭(의도한 건 아니지만)의 하나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됩니다. 전설을 직접적인 트릭으로 이용한게 아니라 일종의 심리 트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고요.

마을만의 신앙과 전설, 관습, 그리고 트릭을 조금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우선 마을에서는 '마두야차'님을 신으로 모십니다. 마두야차는 죄 지은 자를 심판하며, 마을을 지배하는 진료 가문은 오래전 야차산에 사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한 행자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귀신인 '마두님'은 아직도 진료 가에 붙잡혀 있어서, 진료 가문에서는 대대로 후계자가 아닌 셋째 아들이나 딸에게 마두님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인 '슈고'를 맡게 해 왔습니다. 슈고는 어렸을 때 정해지고, 한 번 슈고가 되면 그만둘 때 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게 관례입니다. 심지어 슈고로 있는 동안은 호적이 없어서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없는 사람인거에요. 그렇게 이십여년 정도 슈고를 맡다가 성인이 되면, 다음 대 슈고에게 자리를 넘긴 뒤 신관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관습을 이용하여 전 대 슈고이자 현재 진료 신사의 신관인 모리에가 슈고였을 때인 19년 전 나가사키 마리의 어머니 히로코를 깜쪽같이 살해했습니다. 섬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목격했는데, 모리에는 슈고였던 탓에 집에 갇혀 있어서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잘 몰랐던 덕분이었지요. 모리에는 사건의 진상을 감추기 위해 히로코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시호의 아버지 노부오도 잔인하게 토막 살해했습니다.
이는 섬의 마두 신앙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노부오의 잔혹한 시체를 보고 이를 마두야차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끝난 일로 치부하여 그냥 덮어버리고 말거든요. 단지 신사에 심판을 의미하는 화살촉 한 대만 놓아두면 끝이었던 거지요. 

그 뒤 현재에 이르러, 모리에는 진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히데아키를 살해했습니다. 히데아키가 없으면 분가인 자신의 집이 종가를 잇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인 나가사키 마리가 종가를 잇게 될 수 있다는걸 알고난 뒤, 그녀마저 죽이고 완전범죄를 위해 19년 전 사건처럼 참혹하게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역시나 관례대로, 나가사키 마리가 히데아키를 죽여서 심판받았다 생각하고 대충 사건을 수습해 버렸고요.
이렇게 '슈고' 라는 관습을 활용해서 섬 사람이지만 낯선 사람이었다는 상황을 만든 트릭(우연이었지만), 그리고 마두 신앙을 활용하여 살인이라는 큰 범죄를 대충 수습하게 만든 일종의 심리 트릭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동기가 확실해서 범인을 특정하기 쉬운데, 비교적 초반에 발견된 시체가 카츠라기 시호라는게 증명되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시호와 동행했지만 사라진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후예라는걸 알게된 후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진료 가문의 부를 노리는 종가의 범행이라면 카츠라기 시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와 함께 이런저런 용의자들도 부상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일종의 '바꿔치기' 트릭도 잘 사용되어서 추리적으로 큰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진상은 카츠라기 시호와 나가사키 마리가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나갈 때 서로의 신분을 바꾸었던 겁니다. 여관에서 '나가사키 마리'를 찾는 전화를 받고 나가 살해된 건 섬에서는 시호였던 여자 마리였고, 섬에서 마리였던 시키부의 지인 '카츠라기 시호'는 당연히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도주했고요. 그리고 이 때문에 폐가가 된 시호의 옛 집에서 채취한 지문은 시체와 일치했습니다.
바꿔치기는 현재의 슈고이자 해결자 역할을 맡고 있는 아사히의 추리와도 연결됩니다. 섬 사람들은 모두 시호와 마리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둘 다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으니까요. 그러나 범인은 시호와 마리를 구분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시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요. 이에 아사히는 범인은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떠난 뒤 태어났거나, 아니면 두 사람과 엇갈려 섬을 나갔다 돌아온 이로 한정된다고 추리합니다. 이런 섬 사람은 없으니, 범인은 당시 슈고였던 모리에일 수 밖에 없고요. 진료 가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리의 현재 신상을 캐 내어 후쿠오카에서 얼굴을 확인까지 했으니, 충분히 착각할 만 했습니다.

주인공인 시키부도 꽤 인상적입니다. 보통 폐쇄된 마을 공동체가 꺼리는 조사를 하는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공격당하는 탓에 어떻게든 도망다니면서 기회를 엿 봐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었죠. 그러나 시키부는 마을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여관 주인 오에가 자신의 짐을 손댄걸 알고, 일부러 수첩을 비닐 봉투에 넣은 뒤 현금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며 협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분명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장담하면서요.
옛 하세가와 집에서 담배를 피다가, 가츠라기 시호가 버린 듯한 캐빈 꽁초를 줍는 장면처럼 탐정 역할도 충실하며, 범인은 이 섬 신앙을 잘 알고 있지만 섬 사람은 아닐 거라는 등 추리력도 쓸만합니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면 마두님에게 심판받을 걸 두려워하는 섬 사람이 범행을 저지를리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그럴싸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한 몸은 충분히 지킬법한 능력과 기본 이상의 추리력은 갖춘 능력자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인 만큼 고전들처럼 마을 사람들도 섣불리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겠지만,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시키부의 캐릭터가 명확한 탓도 있을겁니다.

황량한 섬도 실제하는 듯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핵심 트릭으로 사용되는 마두야차 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시키부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고 주술과 음양 오행에 박식한 나머지 섬에서 모시는 신인 '마두야차 (마두관음상에 뿔이 난 형태)'가 '해치'라는걸 깨닫는다는건 무리수로 보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키부 시점에서 이런저런 상세한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잘 전해줍니다. 한 마디로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인 섬과 마두야차 신앙, 그리소 슈고 등 진료 가문과 관련된 풍습 모두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물론 오노 후유미가 공들여 설정을 잘 쌓아올려 놓은 덕분에 읽다보면 실제로 있음직하다는 설득력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는 중반까지고, 아쉽게도 어린 소녀인 슈고 아사히가 후리소데 차림으로 나타나 모리에를 직접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마지막 장면 탓에 심혈을 기울였던 설득력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건 정말이지 만화에서나 쓰임직한 장면이었어요.
물론 마두, 해치의 심판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노력은 가상합니다. 진료 가문의 행자가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하고 가둔게 아니라, 귀신이 진료 가문의 핏줄이라서 슈고는 그러한 핏줄을 타고난 후예를 가두어 놓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사히가 슈고 입장에서 추리를 들려주는 정도로 충분했으니까요. 아니면 감히 해치를 사칭한 모리에에게 천벌을 내린건 슈고로서의 임무였다고 하던가요. 또 이렇게 마두를 사칭한 자에게 천벌을 내린 거라면, 대체 19년전 사건은 왜 가만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서?
슈고 전통의 진상 역시 그다지 의외성없고 만화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진료 가문에서 아사하기 살인귀의 핏줄을 타고 났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묘사도 없어서 그나마의 설득력도 존재하지 않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부러진 용골"이라던가, "인어 공주", "앨리스 죽이기" 등 처럼 판타지 속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철가면" 이야기를 응용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 외 야스다가 나가사키 가문의 아들이었다는 등의 자잘한 설정은 나오지 않는게 좋았습니다. 너무 관련된 인물이 많이 엮여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용의자를 늘리려는 의도였다는건 알겠는데, 지나쳤어요.

그래도 오노 후유미가 본격 추리물 작가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건 여실히 보여준다는건 분명합니다. 남편 아야츠지 유키토도 긴장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손에 땀을 쥐고 읽을만한 서스펜스와 치밀한 두뇌 게임 모두를 갖춘 만큼, 더운 여름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8/23

백사당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백사당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겸 편집자 미쓰다 신조는 다쓰미 미노부라는 남자의 괴이한 체험을 들은 뒤, 그가 쓴 원고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그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 둘 씩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젊은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는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미쓰다 신조는 이 현상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쓰미 미노부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교토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도 괴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실종된 다마가와는 돌아온 뒤 눈 앞에서 자살하는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직전 "사관장"에 이어 읽은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3부작 마지막 작품입니다. 읽고 나니 "사관장"을 읽고 든, 미완성같다는 느낌이 맞았더라고요. "사관장"은 이야기의 도입부이자 전편이고, 이 "백사당"으로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하나의 긴 장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백사당"을 통해 "사관장" 속 중요한 수수께끼들의 진상이 밝혀지거든요. 일본에서는 '작가 시리즈 3부작 전편 (사관장)'과 '작가 시리즈 3부작 후편 (백사당)'으로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만 읽게 되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만해도 깜빡 그럴 뻔 했습니다.

하여튼, 작품은 미쓰다 신조가 겪은 괴기 체험에 기반을 둔 '작가 시리즈'답게 공포의 마물 '마모우돈'이 실제한다는걸 전제로 하고 있긴 한데, 놀라운건 이야기 속 일어났던 괴이한 현상이 모두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된다는 점입니다. 작 중 친구 소후에 고스케의 말에 따라서 - "초자연 현상은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건 확실하게 일어났다고 인정되는 현상만 상대하는" - 요. 덕분에 그야말로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정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 지론에 의하면, 결국 "사관장"에서의 수수께끼는 백사당에서의 아버지 실종과 새어머니 실종, 두 개의 사건만 확실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두 사건에 대해서만 합리적인 해석이 될 수 있도록 파고듭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인 할머니 탕관 의식 도중 실종된 아버지 사건에 대한 탐정역인 아스카 신이치로의 추리는, 아버지는 새어머니 도미 씨에게 살해당했고 그 시체는 관 속에 숨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도미 씨가 백사당에 들어올 수 있었던건,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요.
우선 도미 씨는 탕관을 도와주겠다며 백사당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탕관 후 이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탕관구를 통해 죽은 할머니의 시신을 분해해 버리고 관 속에 대신 아버지의 시신을 넣었습니다. 그 뒤 백사당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백사당 안으로 들어올 때 몰래 탈출했다는 추리입니다.
백사당이 밀실이기는 하지만, 탕관을 하기 위해 설치된 탕관구라는 특이한 구멍의 존재와 요철 모양으로 입구 옆에 공간이 있는 구조라는 점을 잘 활용한 멋진 트릭이었어요.

마물에 의한 기억상실 정도로 치부되었던 도도야마 산에서의 체험도 알고보니 추리적으로도 잘 짜여져있으며, 정교한 극적 반전이 등장해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단서는 이전에 등장했던, 도도야마 산을 올랐던 사람들 이야기들입니다. 혼자서 산을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두 명이 방문하면 둘 다 무사하거나, 한 명만 무사하거나, 둘 다 죽었으며 세 명 이상이 올라가면 대부분 죽었다는게 그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이를 통해 두 명 이상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게 아닐까라는 추리가 이어집니다.
"사관장"에서는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가기로 결심했었는데, 할머니 장례로 흐지부지되는 듯한 묘사가 나왔었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모두 도도야마 산에 올라갔던 겁니다! 그 중 한 명이 경찰 서장의 아들인 전학생 미쓰다 신조였고, 미쓰다 신조는 도도야마 산 정상 신당에서 다쓰미 미노부를 만났는데 둘이 정신적으로 뒤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에요. 무언가 습격한게 아니라 둘이 급작스럽게 만난걸 계기로 정신이 바뀐 채 기억을 잃은 겁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엮이게 되었으며, 미쓰다 신조가 무언가에 쫓기는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미쓰다 신조가 다우군 다우초를 제 발로 찾아 햐쿠미가 은거방 격자 안에 갇히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진상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관장"에서 친구가 된 전학생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이를 서술 트릭처럼 활용한 전개도 돋보입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늙어 보이는 다쓰미 미노부가 사실은 미쓰다 신조들과 동년배라는 것 역시 서술 트릭의 일종으로 마지막 진상이자 반전의 순간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일조합니다. 다쓰미는 마모우돈에게 정기를 빼앗긴 탓에 폭삭 늙어버렸다는 설정인데, 이 설정은 작품 속 또 다른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6년전 아이들 실종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모우돈이 정기를 빼앗으며 나라에서부터 다쓰미가 사는 교토까지 이동하면서 벌어진 일이거든요. 마모우돈은 아이들의 정기 덕분에 아름다운 여자로 탈바꿈 하게 되었고요.

전편에서 설명이 부족했거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내용도 많습니다. 다쓰미 미노부가 겪었던 할머니의 학대는, 말 그대로 '첩의 아이'에게 명문가 대가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이전 리뷰에서 설명드렸었는데, 이 작품에서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햐쿠미가 당주들은 모두 여성 편력이 심하고, 여성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대로 햐쿠미가 당주들에게는 여성들의 저주가 씌워졌다는군요. '나'인 다쓰미 미노부(햐쿠미가에서 다쓰미가의 양자로 보내져 성이 바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던거지요.
아울러 스나가와가 살았던 집 폐허에서 만난 무언가는 스나가와의 할아버지의 원령인건 당연한데, '왜 원령이 나타나서 햐쿠미가를 원망하는지'는 전편에서는 설명되지 않았죠. 이 작품에서 원령의 존재는 앞서 설명드린 도도야마 산 체험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갔다가 이상해졌는데, 마침 스나가와는 함께 올라가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스나가와가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마을 사람들이 스나가와를 죽였지요. 그 뒤 스나가와의 부모는 자살하고 할아버지도 굶어죽은 시체로 발견되어 원한이 남게 된 것이고요. 스나가와가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한이 사무칠만한 비참한 죽음인건 분명합니다.

이외에 이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이 현상에 대한 묘사들도 좋습니다. 다쓰미의 "사관장"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인데, 특히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가 자살하는 순간 입에서 쏟아낸 방언, 기묘하게 남긴 메시지는 섬찟할 뿐 아니라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동일 인물이라는걸 드러난다는 복선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가 마모우돈을 만난 순간 두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스륵 스륵 스륵...' 의 표현도 섬찟하며, "사관장" 초반 할머니가 강제로 곰팡이 슨 만주를 먹이는 장면과 겹치는 스나가와 할아버지 원령의 전병 대접과 원한의 토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눅눅한가...')

그런데 정작 추리와 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다쓰미 미노부와 미쓰다 신조가 할머니 묘를 파서 관을 확인해 본 결과, 관 속의 뼈는 그냥 할머니 뼈였습니다. 즉, 도미 씨의 살의를 눈치챈 아버지 나오호 씨가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들어오는 틈을 타 도망갔다는게 진상이라 좀 허무했어요. 다미 할멈이 다쓰미 미노부를 위해 꾸민 일로 당주 나오호씨가 도망치는 큰 소동이 일어나면, 체면을 중시하는 도미 씨가 아들을 본가에서 내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다쓰미 미노부를 아꼈던 다미 할멈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라 합리적이기는 한데, 추리적으로 재미는 없습니다.
또 이 진상이 사실이라면, 도미 씨와 하룻밤 밤 백사당에 갇혀 있었을 때 무사했던게 설명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수수께끼에 대한 추리는 명백히 문제가 있습니다. 아스카 신이치로는 도미 씨 장례식에서 탕관을 하던 다쓰미를 습격한건 단순한 환청과 환각이었으며, 다음날 아침 백사당을 찾은 다미 할멈은 쓰러진 다쓰미를 보고 충격을 받아 죽었다고 추리합니다. 이를 발견한 두 명 숙부와 고모는 도미 씨 시체를 탕관구를 통해 없애고 다미 할멈의 시체를 도미 씨 관에다 넣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나'가 멀쩡한만큼, 다미 할멈은 고령으로 인해 백사당에서 자연사한걸로 이야기하면 되는데, 이렇게까지 무리한 트릭을 감수해가며 고모와 숙부들이 다미 할멈의 죽음을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앞서 첫 번째 수수께끼의 진상이 단순 도망이라면, 이러한 트릭을 고모와 숙부들이 급조해서 떠올릴 이유도 없고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은 미쓰다 신조 및 친구들의 말로가 조금 불분명하다는겁니다. 단순 실종으로 퉁치고 끝내는건,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햐쿠미가가 백마리 뱀에서 가려 뽑은 뱀신을 모신다던가, 그 외 이런저런 스쳐지나가는 괴담들같이 뭔가 있어보였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던 묘사도 많습니다. 아버지 나오호 씨가 마지막 순간, 미쓰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등장해서 살짝 폼을 잡다가 바로 정기를 빨려 리타이어 해 버리는 장면도 단지 나오호 씨의 말로에 대해 알려주는 것 외의 역할은 없는 불필요한 이야기였고요.
마모우돈이 다쓰미 미노부의 몸을 한 미쓰다 신조와는 잘 지내면서, 미쓰다 신조의 몸을 한 다쓰미 미노부는 햐쿠미가에 감금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전의 사건들을 보면 미쓰다 신조를 납치하는건 일도 아닌데, 왜 이리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지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추리를 펼쳐보이는 탐정 역인 미쓰다 신조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의 캐릭터는 특별한 매력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모든 탐정들이 괴상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평범해서 작품에 많이 묻혀요. 탐정은 아니지만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친구 소후에 고스케도 등장하기 때문에 비중과 존재감도 흐릿한 편이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도조 겐야 시리즈로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작과 합쳐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어마무시한 분량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백사당에 관련된 거의 모든 수수께끼는 완벽하게 풀린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더운 여름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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