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 -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신의 목장을 운영하는 다니엘 로크는 영국 경마 위원회 3인방의 하나인 옥토버 백작의 의뢰를 받았다. 의뢰 내용은 마부로 위장하여 잠입한 뒤, 부정이 의심되는 경마 사기 사건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경마와 경마장 관련 사건 전문 작가 딕 프란시스의 대표 장편. 주간문춘 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리스트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고, 국내 출간된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왜 빼먹었는지 모르겠군요.
일단 제가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주인공의 활약이 스파이 소설 같다는게 특이했습니다. 책 뒤의 해설에서 언급된 대로 007 스타일이랄까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대적인 세력에 고용되어 비밀을 파헤친다는 기둥 줄거리에 더하여 변장 및 위장, 주인공의 특기(말에 대한 전문 지식 및 던지기(?))가 중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일종의 경마 사기의 진상을 밝혀내는 내용이라서 국제적인 음모를 다루는 정통 스파이 소설들보다는 스케일이 작은 편이지만, 이는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를 작가의 전문 지식으로 잘 묘사하여 강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이 큽니다. 정말이지 이 책의 마굿간과 마부에 대한 묘사는, 달리 경쟁작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납니다.
또 핵심 트릭인 경마 사기 사건의 트릭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로크의 수사도 아주 그럴싸하게 묘사됩니다. 부정이 의심되는, 그러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던 11마리 말의 공통점을 경기장, 잠시라도 소유했던 소유자 등으로 좁혀 나가고, 약물이 아닌 조건반사를 이용한 트릭이라는 것을 개피리라는 소품으로 알아내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추리적인 만족도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주인공 다니엘 로크의 설정이 가장 거슬립니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모두 반한다는 매력적인 외모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어요. 여자들이 반해서 로크의 수사에 방해만 일으킬 뿐이라, 평범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는 작위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탓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격투도 드라마틱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로크가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인데, 헨버 일당이 사건을 키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러한 부분은 좀 B급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결론 내리자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헐리우드 모험 영화 같은 흥미진진함이 읽는 내내 유지되는 흔치 않은 결과물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니엘 로크가 영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정보원 역할을 수락하면서 끝나는데,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