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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4

살의의 쐐기 - 에드 멕베인 / 박진세 : 별점 3.5점

살의의 쐐기 - 8점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87분서 형사실에 갑자기 찾아온 여자 버지니아. 그녀는 한 병의 니트로글리세린과 권총으로 형사실의 형사들을 제압했다. 스티브 카렐라 형사의 죽음이 목적이었다. 카렐라 형사가 남편을 체포하여 형무소로 보낸 탓에 남편이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로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그간 유명세는 많이 들어왔으나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웠었는데, 드디어 번역 출간되었네요.

읽어보니 역시나 명불허전! 스티브 카렐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총과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무장하고 87분서 형사실로 쳐들어온 연약한 여자 한 명에게 동료 형사들이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여자 한 명이 터프가이 형사들 모두를 제압한다는 이색적인 상황이 눈길을 사로잡는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형사들 한 명, 한 명의 심리와 작전 묘사도 대단합니다. 흡사 모두가 주인공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업무를 가장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쪽지를 작성한 뒤 밖으로 날려 보내는 마이어 마이어, 일부러 방의 온도를 올린 뒤 범인인 버지니아가 코트를 벗기를 유도하여 코트 주머니 속 권총을 확보하려는 코튼 호스, 전화와 방문자들에게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번스 반장 등 각자의 노력이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속에 펼쳐집니다.

또한 버지니아가 스티브 카렐라가 복귀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카렐라의 활약도 볼거리입니다. 자살로 보이지만 실은 밀실 살인이었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트릭이 상당히 그럴듯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대중적인 펄프픽션 작가로 알고 있던 에드 멕베인의 필력이 제대로 폭발하는(물론 좋은 번역 탓도 크겠지만) 문장들도 감동이었어요. 도시를 여자로 비유하는 장면은 코넬 울리치를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스티브 카렐라의 등 뒤에 총알을 꽂아넣지 않고 일부러 87분서로 쳐들어온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 단점은 큽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의 취급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걸 들고 직접 이동하여 경찰서를 찾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또 번스 반장을 비롯한 형사들 모두가 버지니아가 카렐라를 죽이면 상황이 종료될거라 생각한 이유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누가 봐도 폭탄을 터뜨려 다 죽이고 끝낼 상황이잖아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리고 싸구려 헐리우드 영화 느낌이 철철 나는, 과연 에드 멕베인이구나 싶었던 작위적인 부분도 단점입니다. 푸에트리코 미녀 안젤리카의 등장과 역할, 카렐라의 부인 테디가 등장하고 그녀로 인해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허나 단점은 모두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큰 재미와 줄거리를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서스펜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전개가 워낙에 빼어나서 읽는 동안에는 흠이라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이제서야 소개된 게 의아할 정도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제목과 명성만큼 멋진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애호가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신생 출판사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 직접 번역한 책인 듯한데 앞으로도 건승하세요!

2016/07/28

사기꾼 - 애드 멕베인 / 홍지로 : 별점 2점

사기꾼 - 4점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신원 미상의 표류 사체가 발견되었다. 검시 결과 그녀는 익사한게 아니라 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게 밝혀졌다. 87분서 형사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들, 그리고 여성들을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을 쫓기 시작하는데...

"여자는 외모가 전부요." - 첫 번째 피해자 메리 루이즈의 아버지 프로셱이 딸을 떠올리며 하는 말.

87분서 시리즈입니다. 1957년 작으로 "마약 밀매인" 바로 다음 작품. 전작에서 총상을 입은 스티브 카렐라가 완쾌하여 등장합니다.

"마약 밀매인"처럼 초기작이라 나름 기대했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무려 두 명이나 살해당하고, 한 명은 죽기 직전에 몰릴 뿐 아니라 심지어 카렐라의 아내 테디까지 납치당함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너무 멍청해서 수사랄 게 없는 탓입니다.

범인 크리스 도널더슨에게 시대를 앞서간 매력은 있습니다. 혼인 빙자 살인 사기범이지만 회계사를 자처할 정도의 인텔리이며, 누가 봐도 훤칠한 금발 꽃미남이라는 점에서요. 이러한 능력을 잘 이용해 여자들을 끌어들인 후, 재산을 가로채고 살해하는 방식도 단순 무식한 깡패들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문제는 하는 짓이 무식한 깡패보다도 못하다는 겁니다. 자신이 죽일 여자 손에 이니셜을 문신으로 새기는 버릇이 있는데, 그냥 대놓고 문신 가게에서 문신을 해버립니다. 덕분에 두 명의 피해자가 문신을 한 곳이 밝혀진 후, 인상착의도 대충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놈은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이래서야 죽어도 쌉니다.

경찰도 멍청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문신 시술소에 이놈이 또 나타나면 연락하라는 최소한의 요청도 하지 않거든요. 도시에 문신 시술소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범행이 거듭되면 그중 한 곳에 또 들릴 게 뻔하니 당연히 요청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덕분에 선량한 모범 시민인 문신 시술소 사장 찰리 챈은 범인이 다시 나타났을 때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심지어 곧 죽을 것 같은 피해자가 함께 있는데도요!
마침 자리에 있던 테디 덕에 경찰에 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카렐라가 퇴근한 후라 별 소용이 없습니다. 범인이 듣고 있는 와중에 찰리가 지혜를 짜내 남긴 "문신 도안"이 가게에 있다는 메시지도 전화를 대신 받은게 "일단 때리고 물어보는" 멍청한 하빌랜드라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즉, 카렐라에서 시작된 무능한 경찰력의 연쇄반응인 셈입ㄴ비다.

그나마 이 사건이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테디가 범인을 미행하면서 종이 쪽지를 남겨 사람들에게 87분서로 전화를 걸게 만든 것, 그리고 눈물겨운 찰리 챈의 활약 때문입니다. 경찰은 그야말로 받아먹기만 했어요. 버트 클링이 신참 형사로 실수를 연발하는 멍청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색다르기는 한데 다른 형사들 모두 바보이니 특별할 게 없어 보입니다. 온갖 중요한 단서 (그중에서 핵심은 문신의 의미!)를 떠올렸지만 그걸 놓쳤다라고 작가가 스스로 친절히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스럽고요.

그래도 TV 속 광고 등 일상생활 속 모두가 사기이며, 그것은 모두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풍자에서 시작되는 혼인 빙자 사기 행각 및 브라운 형사가 쫓는 조무라기 커플의 시시한 사기극 등 사기 관련 이야기는 꽤 재미있기는 합니다. 5달러 지폐에 은총을 내린다면서 바꿔치기 한다던가, 우연을 가장하고 만난 후 일종의 야바위로 사기를 친다던가, 진짜 진주를 가짜로 바꿔치기 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은 정말로 이 범죄를 잘 알고 있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크리스 도널더슨의 혼인빙자 사기도 여자의 돈을 끌어내는 과정이 정말 그럴듯해서 감탄했고요. 중간중간 소소하게 등장하는 감칠맛 넘치는 대사들도 볼거리입니다. 브라운 형사의 조크 센스가 특히나 돋보이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87분서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는 묵직한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무라기 사기극은 여러모로 유머로 다루어지는 느낌이 더 강하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소소한 디테일들은 나쁘지 않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 덕분에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87분서답지 않아 감점할 수밖에 없네요. 묵직한 범죄물을 기대하신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에드 멕베인이 조금 쉬어가는 느낌으로 87분서 시리즈 설정을 가져다가 쓴 로맨스물 이라고 생각됩니다. 작중 카렐라와 테디의 뜨거운 (!) 사랑 이야기 비중을 봐도 그러해요. 메인 스토리부터가 판타지 동화잖아요. 여자들을 납치해가는 사악한 마법사가 있고, 이 마법사에게 공주까지 납치되어 가지만 공주의 기지로 위치를 알아낸 기사(혹은 왕자)가 마법사를 물리치고 공주와 잡혀간(아직 살아있는) 여자들을 구해낸다... 아울러 카렐라와 테디의 뜨거운 사랑과 대비되는 크리스의 프리실라에 대한 거짓된 사랑을 그림으로써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거장의 작전도 포함되어 있고요. 사악한 마법사의 거짓된 사랑이 추가된 것이지요.

2007/07/22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 김병선 (자유추리문고 50) : 별점 3점

드디어 어렵사리 구하게 된 자유추리문고의 "주정꾼 탐정" 입니다. 정말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네요.

작품의 작가 에반 헌터는 "87분서" 시리즈의 작가 "에드 멕베인"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거장이기는 하지만 워낙 다작인 탓에 실망스러웠던 것도 제법 있었죠. 특히 후반기 작품들은 많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당시 유행의 끝자락이던 초기 하드보일드 정서를 제대로 전해주는 것과 동시에 정통 본격 추리물스러운 점이 많아서 마음에 들더군요. 서정적인 문체와 묘사도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하드보일드계의 서정시인 로스 맥도널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정꾼 탐정인 주인공 커트 캐넌의 캐릭터가 무척 독특한데 알콜중독 룸펜 탐정으로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매튜 스커더의 형님뻘로 로렌스 블록이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아서 매튜 스커더를 창조한 것은 확실합니다 . 탐정 면허증도 없는 알콜중독자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유사한 수준을 넘어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매튜 스커더보다는 바람난 아내를 응징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커트 캐넌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아류가 원조를 뛰어넘기는 힘든 법이에요.

그러나 8편의 단편이 다 추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작품별 편차도 좀 있고, 작가의 히트작인 "87분서" 시리즈와 유사한 스토리,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단점이기는 합니다. 특히 몇몇 작품의 세부 묘사는 굉장히 비슷하더라고요. "대중소설" 작가인 에드 멕베인이기 때문인지 거의 모든 편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의 정사가 그려지는 등의 통속적 요소도 거슬리는 점이었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기다렸던 만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전해주기에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추리소설 황금기 막차(?)의 느낌은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8편의 단편 중 개인적인 추천작은 "다시 만남"으로 추리적인 요소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주정꾼 탐정" 으로서의 캐릭터가 가장 잘 살아있는 다른 추천작이라면 "나도 산타클로스"를 꼽겠습니다.

1. 떠나지 않는 유령 (Die Hard) 

커트 캐넌은 한 남자로부터 마약중독에 빠진 자기 아들을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남자가 자기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아마 커트 캐넌 시리즈 제 1작이겠죠? 뉴욕 뒷골목의 묘사와 인물 묘사가 일품이긴 한데 범인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약점이 있더군요.

2. 죽은 사람의 꿈 (Dead Men Don't Dream)

소꼽친구 찰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커트 캐넌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그 지역 건달들에게 상납금을 내지 않아 찰리가 살해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건달 소탕에 나선다. 

하드보일드 액션물로 커트 캐넌이 동네 건달들과 한판 벌이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마이크 해머스러운 느낌으로 추리적으로 특기할 것은 없네요.

3. 프레디는 그곳에 (Now Die in It)

지인 루디가 처제 베티의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줄 것을 의뢰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베티가 살해당한 뒤 사건 수사에 나서게 되는데...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룸펜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수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루 아처 시리즈 단편과 꽤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 착한이와 죽은이 (Good and Dead) 

룸펜 친구 조이가 살해당한 뒤 커트는 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서 살해당한 것이라는 중국인 칭크의 말을 듣고 관련 인물 조사에 나선다. 

한여름 더위의 묘사가 탁월합니다. 역시 "경관혐오"의 작가 답다는 느낌이 물씬 나더군요. 추리적으로는 별다를게 없고 관련 사건의 연결고리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 단점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지만 묘사가 정말 좋아서 읽는 재미 만큼은 끝내줬습니다.

5. 나의 죽음 (The Death of Me) 

커트 캐넌은 신문에서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커트 캐넌이 드디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시즌의 이야기로 내용은 갱들의 세력 다툼이 대부분이라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팜므파탈, 갱, 킬러 등 하드보일드 액션물의 모든 요소가 등장해서 스케일이나 캐릭터에서 영화적인 느낌을 많이 전해주기는 하는데 뭔가 좀 어수선했고요. 아무래도 단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네요.

6. 나도 산타클로스 (Deadier Than the Mail) 

커트 캐넌은 유년시절 친구 키트 오드닐의 부탁으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복지수표 도난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영문 원제가 너무 범인을 뚜렷이 암시하고 있으며 범행이 우발적이고 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추리적으로 문제점은 많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묘사가 마음에 들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맹점을 찌르는 맛이 좋아서 추천하고 싶네요.

7. 다시 만남 (Return) 

커트 캐넌에게 헤어진 옛 아내 토니가 다시 찾아와 새출발 할 것을 약속하고 그에 고무된 커트 캐넌은 부랑자 룸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탐정일을 제대로 시작할 것을 결심한다. 

커트 캐넌 시리즈의 핵심 인물인 전처 토니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정통 하드보일드적인 냄새도 나면서도 여러가지 곁가지 설정들이 양념처럼 재미를 더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커트 캐넌의 심리 묘사가 특출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범인의 공작이 너무 얄팍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예를 들자면 저같으면 확실한 알리바이 공작을 하고 있었겠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8. 거리에 내리는 주먹비 (The Beating) 

룸펜들을 노리는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고 결국 한명이 살해당하게 된다.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는 커트 캐넌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밤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여름 묘사가 발군인 단편으로 진상이 밝혀지기까지의 조사과정이 허술할 뿐더러 단서없이 함정수사(?)로 범인을 잡는 결말이라 조금 시시했어요. 커트 캐넌과 부랑자 이웃간의 애정이랄까... 하는 감정만큼은 독특하긴 했으나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생각됩니다.

2014/03/18

노상강도 - 에드 멕베인 / 박진세 : 안타깝지만 별점 2점

노상강도 - 4점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여성을 노린 연쇄 노상강도 범인이 범행 후 정중한 자기 소개 — "클리퍼드가 감사를 전합니다. 마담" — 로 유명해졌다. 87분서는 검거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한편 순찰경관 버트 클링은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벨의 부탁으로 그의 처제 지니 페이지를 도와주려 하나 실패했고, 그 뒤 지니는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노상강도 사건과의 연관성이 의심되어 총력 수사가 진행되는데...

"경관혐오" 바로 다음에 발표된 87분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작중에서는 내내 신혼여행 중으로 묘사됩니다. 때문에 주역으로는 순찰경관 버트 클링이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경관혐오"에서 총에 맞아 입원했었지요. 내용은 줄거리 요약에 있는 대로 노상강도 사건을 축으로, 지니 페이지 살인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이 중 노상강도 사건은 윌리스 등 형사들의 수사과정이 꽤나 자세하게 묘사되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끄나풀이 등장하고, 불법 도박장에 잠입하고, 심지어 여성 경관을 이용한 함정 수사까지 펼치는 등 수사 방법도 다양하게 선보입니다. 결국 범인을 잡게 된 단서가 함정수사를 통해 입수한 종이 성냥이었다는 식으로 체포까지의 과정도 아주 깔끔한 편이고요. 한 마디로, '발로 뛰는 수사로 확보한 단서를 토대로 한 범인 체포'라는 수사물의 왕도격 전개를 보여줍니다. 범인이 가명이 아니라 정말로 "클리퍼드"라는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경찰 수사가 너무 미진한 게 아니었나 싶기는 하지만요.
유도 고수 윌리스나 폭력 형사 하빌랜드와 같은 형사들의 독특한 캐릭터도 돋보이고, 마이어 마이어가 끝까지 미는 농담 — 고양이 절도 사건과 그 진상인 Instant pussy — 까지 깨알같은 재미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이야기인 지니 페이지 살인 사건은 영...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에드 멕베인의 또다른 필명인 에반 헌터 명의의 주정꾼 탐정 커트 캐넌 시리즈 중 한 편인 "프레디는 그곳에 (Now Die in It)"와 완벽하게 똑같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을 제외하면 친구가 처제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의뢰하고, 처제가 살해당하고, 처제의 남자를 찾아나서고, 결정적 단서는 받았던 메모였다는 전개와 내용 모두 동일합니다. 시기상으로도 이 "노상강도"가 3년 뒤 발표된 것이니 표절, 혹은 확대 재생산된 작품이 맞는 것이죠. 심지어는 왜 탐정–경찰에게 처제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의뢰하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단점까지 같아요.

물론 자신의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 사례가 다른 거장들에게 없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님 등 유사한 전례는 제법 되니까요. 어차피 본인의 작품을 본인이 표절한 것이니만큼 비난하기도 뭐하고요. 허나 최소한 책 소개에서는 언급해주었어야 합니다. 읽다보니 완벽하게 똑같은데, 이래서야 돈을 주고 구입한 독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뒷통수 맞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만, 버트 클링 순경의 재담과 클레어 타운센드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 그리고 시적인 몇몇 묘사는 좋습니다. 초기작다운 순수한 하드보일드 스타일 전개도 인상적이고요. "주정꾼 탐정"을 먼저 읽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고득점이었을 겁니다.  "주정꾼 탐정"을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버트 클링이 이 사건 이후 특진되어 87분서에 형사로 배속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후 작품에 등장하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2004/04/17

장화신은 고양이 - 에드 멕베인 : 별점 1점

별볼일 없는 형사 변호사 메슈 호프는 칼튼 버너비 메컴의 변호를 맡는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혼자 편집실에서 일하던 아내 플루던스 메컴의 살인 용의로 체포된 인물로 마당에 파 묻은 피 묻은 옷과 흉기라는 결정적 증거와 함께 이웃 사람의 증언 때문에 궁지에 몰린 상태.
호프는 플루던스의 직장과 원한 관계를 조사하며 플루던스가 죽기 직전까지 편집하고 있었던 필름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하고 그 필름의 정체와 소재 파악에 집중한다. 
결국 플루던스가 제작한 영화는 “장화신은 고양이”라는 포르노 영화로 이 영화에 관련된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멕베인의 “호프 변호사 (Matthew Hope)” 시리즈. 시리즈의 일곱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제는 아마도 .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다 번역 출간 된 듯 한데 평소 구하지 못하다가 우연찮게 이 작품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싸구려 펄프픽션"! 이었습니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의 묘사나 “포르노 필름”이라는 선정적인 동기,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매춘부들 등 범죄물에서 흥행이 됨직한 소재만 모아다가 만든 이야기에요. 그나마도 무언가 괜찮은 플롯, 트릭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소재만 모아 놓았을 뿐이라 한번 읽고 끝날 수준의 싸구려 잡문에 불과합니다. 말초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몇몇 묘사들은 잠깐 잠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단지 그뿐인이고요.. 포르노 영화가 수백만달러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제껴두더라도 제목이 “장화신은 고양이”라니 이것 참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네요.
게다가 "호프 변호사" 시리즈지만 실제로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포르노 영화 스탭으로 “보물단지”가 될 지 모르는 필름을 찾는 티크와 모즈라는 떨거지입니다. 아 제작자라는 헨리라는 놈도 있구나. 여튼 포르노 필름을 찾는다는 곁가지 이야기가 오히려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하게 묘사되며, 호프 변호사는 주인공에 걸맞는 활약을 커녕 이혼한 아내와 딸과 관련된 가정사에 고민하는 모습만 주로 보여주는데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아울러 호프 변호사의 사생활을 이용하여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큰 이야기로 포장하는 방식은 "87분서"와 유사하지만 노골적으로 시리즈 물임을 선전하는 것 같아서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87분서도 두 작품밖에 읽어 보지 못했지만 나름 추리와 하드보일드 요소가 잘 조화된 작품들이었는데 이 작품은 흥행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많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미국 쪽 하드보일드 계보는 안 맞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14/02/28

조각맞추기 - 에드 멕베인 / 홍지로 : 별점 2.5점

조각맞추기 - 6점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브라운 형사는 두 명의 남자가 시체로 발견된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은 폭격을 맞은 듯 했다. 브라운 형사는 뭔가 중요한 것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라 여겼으나, 찾아낸건 시체가 쥐고 있던 사진 조각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브라운-카렐라를 찾아온 보험조사원을 통해 사진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 사진은, 전부 모으면 6년전 75만달러가 탈취당한 은행강도들이 돈을 숨긴 곳을 표시한 곳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도였다. 브라운은 사건 해결을 위해 나머지 사진 조각을 찾아나섰지만, 사진의 소유자들은 차례대로 시체로 발견되는데...

"87분서 시리즈" 중 24번째 작품. 원제는 "jigsaw"로 1970년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6년전 은행 강도단 네 명이 은행을 털기 전 가족과 지인에게 남긴 사진의 행방을 쫓는 것인데, 작품의 묘사와 전개가 기존에 읽었었던 "87분서" 초기작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특히 적나라한 묘사가 그러합니다. 이전에는 잔인함은 있어도 끔찍함은 없었는데, 이 작품은 잔인하고 끔찍할 뿐 아니라 지저분하기까지 하거든요. 작품 전개에 잘 맞고 현실감을 부여해주는 장치이지만, 빈민가나 게토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범죄들에 대한 묘사나 퇴물 청녀 도로테아 맥널리를 찾아갈 때의 묘사는 과연 여기가 사람사는 도시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끔찍하기만 한 것 만은 아닙니다. 경쾌한 유머가 곁들여져 있고, 특히 흑인인 아서 브라운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저렴한 묘사와 아서 브라운의 재담을 결합함과 동시에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까지 드러내는 전개는 확실히 거장, 그랜드 마스터다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조지아 출신 아가씨를 협박하는 장면은 백미였어요. "편견이란 멋진 것이다. 남부인 최악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과정!". 8장의 사진 조각에 얽힌 인간군상들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요.

또 강도 일당들이 말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항공 사진을 조각내어 정보를 공유한다는 작위성에 대한 설명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범죄자들이 경찰과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즉 "오락성"을 집어 넣기 위해서라니 정말 천재적인 발상아닙니까? 설득력없는 설정을 작가가 이렇게까지 포장해서 내놓는 작품은 본적이 없는데 심지어 그럴싸하기까지 하다니!!! 이 설명 덕분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경찰을 이용하려고 한 어빙 크러치의 매력도 확 살아나니 일거양득입니다! 뭐 다 "오락성"을 위한거니까요.

아울러 실제 소재인 사진 퍼즐을 책 속에 담아내어 전개하는 것도 독특한데, 의외로 괜찮아서 놀랐습니다. 다 모이지 않으면 장소를 알 수 없다는 설정을 효과적으로 전해주기도 하고요.

허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아무리 "오락성"이 중요한 요소라 하더라도 정도를 지켰어야죠. 예를 들면, 필요한건 누가 사진을 가지고 있느냐는건데, 편리하게도 명단이 존재하고 그 명단을 경찰이 너무 쉽게 손에 넣는 것은 안일한 전개였습니다.

그리고 어빙도 어설픈 알리바이를 바탕으로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사진을 모을거였다면, 구태여 경찰에 의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래 어빙이 확보했던 사진 두장이 핵심이고, 거기에 도로테아와 제럴딘의 사진만 있으면 돈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삽질이기도 하니까요. 왜 경찰을 찾아가기 전에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왜 제럴딘과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는지, 제럴딘 이전에 칸에게서 왜 사진을 사려 하지 않았는지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경쾌하게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 소설적 완성도는 정교하지 않은, 그야말로 킬링타임용 펄프 픽션의 전형입니다. 에드 멕베인의 최고작은 50~60년대 작품들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 작품 역시 한 증거가 아닐까 싶군요("Long Time No See (1977)"). 출간 자체는 고마운 일이지만 이렇게 순서를 뒤죽박죽 섞지 말고 모쪼록 초기작부터 순서대로,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2010/04/04

웃는 경관 - 펠 바르, 마이 슈발 / 양원달 : 별점 3점

웃는 경관 - 6점
펠 바르. 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반전시위등으로 시끄러운 스톡홀름의 비 내리는 밤, 시체가 가득 실린 버스가 발견되었다. 살인과 주임 마르틴 베크는 시체 더미 속에서 부하 오케 스텐스토름 형사를 찾아냈다. 그는 오른손에 자기 권총을 꽉 움켜쥐고 2층 버스 뒤쪽 창가에 앉아 죽어 있었다. 부하의 책상 서랍을 살펴보던 베크는 약혼녀의 누드 사진을 보게 되는데...

국내에는 낯선 스웨덴 추리소설로 부부작가인 펠 바르 - 마이 슈발의 작품입니다. 명작으로 이름높은 작품인데 뒤늦게 읽게 되었네요.

소문대로 "87분서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스톡홀름이라는 지명만 브룩클린으로 바꾸면 그냥 87분서 시리즈로 봐도 무방할 정도에요. 특별한 추리 없이 평범한 형사들 각각의 꾸준하고 디테일한 수사가 펼쳐지며, 각자의 수사 내용이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흘러가는 전개 모두가 경찰 수사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눈여겨 볼 점이 많지 않다는 것 역시 비슷합니다. 어마어마한 강력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범죄 자체가 뭐 애시당초 완전 범죄하고는 거리가 먼 충동적 범죄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펄프 픽션의 느낌이 강한 에드 멕베인 작품에 비해 심리묘사와 디테일이 잘 살아 있고 불필요한 묘사가 덜하기에 조금 더 고급스럽다는 점입니다. 또한 87분서의 주역 카렐라 형사가 단순 명쾌하고 호방한, 교과서적인 강력계 형사라면 이 작품의 마르틴 베크 형사과 주임은 어둡고 개인적인 문제도 안고 있으며, 딱히 행복하거나 사려깊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도 큰 차이점이겠죠. 물론 이건 북유럽쪽 추리 소설 주인공의 전형적 캐릭터 같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87분서"에 비하면 이야기도 좀 더 자잘하게 분절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형사들의 수도 더욱 많고 수사하는 내용도 전부 다르지만, 이야기별로 세밀하게 잘 쪼개어 전개하는 솜씨는 확실히 인상적입니다. 형사들 각자가 쫓는 내용들도 모두 다르지만 수사 과정은 설득력이 충분하고요. 정말 한 수사팀의 수사 과정 일체를 보는 느낌이었달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전형적인 남성드라마인 "87분서 시리즈"에 북유럽과 여성의 터치를 입힌 작품입니다. 과연 소문만큼의 명작인지는 잘 모르겠고, 마쵸적인 드라마의 팬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하드보일드 경찰 수사물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추천하고 싶네요. 같은 스웨덴 작가의 추리소설인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보다는 좀 더 경찰 수사물에 가깝다는 점에서도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3/11/25

킹의 몸값 - 에드 맥베인 / 홍지로 : 별점 3.5점

킹의 몸값 - 8점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구두 회사의 중역 더글러스 킹의 집 거실에서 비밀 중역 회의가 한창이다. 중역들은 더글러스 킹을 포섭하여 회사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더글러스 킹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나름대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아무도 몰래 준비한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난다. 아이가 유괴된 것이다.

하지만 남의 아이다. 남의 아이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부를 허물어뜨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아이의 목숨을 외면하고 부를 유지할 것인가. 어릴 적 가난의 상처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출세지향주의자가 된 그이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87분서 형사들이 유괴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일단 몸값을 주어야 아이의 목숨을 보장받는다. 선택은 오로지 더글러스 킹의 몫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난 후 비슷한 유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몇 년 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인터넷 서점 제공 책 소개 인용>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장편.

유괴 소재 작품은 그동안 몇권 읽어보았습니다. 유괴 자체가 작전인 정통파 추리물을 비롯하여 피해자 시점, 유괴범 시점, 용의자 시점으로 그린 작품 등 종류도 다양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간 읽었던 작품과 확실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위한 몸값 지불' 이 핵심 설정이라는 점에서요.

물론 그 아이가 생판 남이 아니고, 킹이라는 인물은 충분한 재력이 있기에 몸값을 턱하니 지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값을 지불하면 그동안 이루어왔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극한 상황에 처한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작중의 킹은 성공을 위해 걸림돌은 남김없이 쳐내버리는 인물로 묘사되기에 그는 몸값을 내지 못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수사하는 형사(스티브 카렐라) 등 주변 인물이 그에게 살인자와 같다는 맹비난을 퍼붓습니다(당연하지요). 심지어 아들을 유괴당한 운전기사는 간절히 애걸하며 무릎을 꿇기까지 하고요.
이 모든 과정이 설득력 넘치면서도, 숨쉴틈없이 이어지며 그 와중에도 킹과 회사가 관련된 위기 상황까지도 깨알같이 전개됩니다. 즉, 돈을 낼 수도 없고 안낼 수도 없는 개미지옥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정말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이 처절한 묘사 덕분에 읽는 내내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를 뒷받침하는 박진감넘치는 전개는 역시나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킹 이야기와 정 반대의 다른 축으로 전개되는 유괴범인 사이, 에디, 캐시 트리오의 이야기도 나름 괜찮아서 재미를 더합니다. 리더이자 사악한 사이, 똘마니 에디, 박애주의자 캐시(?)로 이루어진 트리오는 전형적이고 진부하지만, 캐시가 사이를 견제하고 사이는 캐시를 강하게 억누르고 에디가 완충제 역할을 하는 식으로 절묘하게 조화되면서 긴장감을 불러오는 덕분입니다. 캐시를 초반부터 잘 묘사한 덕에 사건이 해결되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높아졌고요. 또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에디의 라디오 관련 지식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작전을 벌인다는 점, 특히 마지막 몸값 확보 작전에 써먹는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싸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허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이 작품이 87분서 시리즈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형사들은 하는게 하나도 없는 탓이에요. 감식과의 활약이 일부 그려지는 정도이며, 오히려 시리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카렐라는 앞서 설명했던대로 몸값을 내지 않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는 등, 본인의 위치를 망각한 주제넘은 행동만 일삼습니다. 킹도 분명 피해자인데 수사관이 하라는 수사는 하지 않고 누구를 비난한다는 걸까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징계감으로 보여요. 게다가 몸값을 전달하는 차량에 동승했는데도 불구하고, 결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킹이 언제나처럼 '직접 나서서' 유괴범을 때려잡는다니 끝까지 하는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말만 많고 활약은 없는 떠벌이 찌질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억지스럽게 87분서원들의 이야기를 넣고 늘려서 시리즈의 하나로 만들 바에야, 차라리 하나의 다른 작품이 되는게 낫지 싶습니다. 아이디어가 아까워요.

결말도 좀 별로였습니다. 사이의 총질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킹이 그를 때려잡는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의 작위적인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디와 캐시가 탈출을 위한 차를 어디서 구했는지, 사이가 돈을 받은 뒤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허술하게 느껴졌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열한 배신자 피터 캐머런을 킹이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알려주는 후일담이 없는게 가장 섭섭했네요. 이런 녀석을 짓밟아버리는 결말이 있었더라면 안일한 해피엔딩이라도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는데...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단점이 명확하다고 평하긴 했으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87분서의 활약을 없애고(이게 마이너스 1점), 심리묘사 중심으로 마지막을 깔끔하게 처리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는데 좀 아쉽네요. 그래도 장점이 워낙 탁월하고 읽는 재미도 확실한 수작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가 쓴대로 단점을 최소화하여 킹의 입장 중심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전개했다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을 구해봐야겠군요.

2014/06/24

아이스 - 에드 멕베인 / 이동윤 : 별점 2점

아이스 - 4점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무용수 샐리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흉기는 조무라기 마약상 로페즈를 살해한 것과 같은 권총임이 밝혀졌다. 카렐라와 동료들은 두 피해자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들 앞에서 차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87분서 시리즈'로, 1983년에 발표된 시리즈의 36번째 작품입니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출간되었던 전작 시리즈와는 달리 검은숲에서 독립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조무라기 마약상이자 양아치인 로페즈, 대히트 뮤지컬 "팻백"의 댄서 샐리 앤더슨, 보석판매상 에덜먼이 동일한 권총으로 살해당했는데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왜 차례로 희생되었는지를 밝혀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잔인한 폭력배 엔터니 수사와 팻레이드 에마 커플이 마약 거래로 한몫 잡으려 끼어들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본 사건과 무관한 사건들 에서 주로 미끼로 활동하는 여자 형사 아일린의 활약, 버트 클링 형사의 어려운 가정사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준은 평균 이하였습니다. 책 뒤 소개에서 ‘중기 걸작’이라 칭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정의 설득력이 거의 없으며, 추리적 요소도 거의 부재한 탓입니다. 로페즈와 샐리가 과거 동거했다는 설정은 처음 등장 시의 묘사만 봐도 상상하기 힘들고, 결국 경찰 수사로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가 추리를 해볼 여지조차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샐리가 성공한 후에도 로페즈와 섹스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했다는 설정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진짜 흑막인 티모시의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마이애미에서 한 꼬마의 생명을 구하고, 그 대가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코카인을 구매해 큰돈을 번다는 황당한 시작부터 엉망입니다. 부유한 의대생이 코카인에 거금을 투자해 돈을 불리려 했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고요. 이런게 진상인 작품의 완성도가 높게 느껴지기는 어렵지요. 에마에 의해 난자당하는 티모시의 최후 역시 예상 가능한 전개였고요.

여형사 아일린 버크가 맡은 개별 사건들, 버트 클링 형사가 이혼 후 다시 아일린과 관계를 맺는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되어 있는 점도 의아합니다. 카렐라 형사와 테디의 발렌타인 이벤트처럼 본 사건과 큰 연관이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분량이 늘어나며 지루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펄프 픽션의 제왕다운 흡입력은 유지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잔혹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는 전개는 몰입감을 줍니다. 아일린이 맡은 세탁소 팬티 도둑이나 간호사 강간범 사건도 그 자체로는 흥미롭고요. "아이스"라는 단어의 중의적인 의미나, 티모시가 권총의 소유주를 속여 핵심 혐의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는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특히 권총의 실소유자를 피해자로 위장하여 자신이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많이 본 이야기이지만("헤드헌터" 등)잘 써먹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원조인지 여부는 조금 궁금해집니다. 탄도분석이나 탄조흔 검사의 시작 시점을 알면 원조 여부를 추정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또한 "노상강도"에서 사랑에 빠진 클레어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잘나가는 모델과 결혼했지만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이혼하게 되었다는 버트 클링의 파란만장한 연애사 역시 팬으로서는 흥미로운 요소였습니다. 주변 여성들을 모두 자기 곁으로 끌어들이는 옴므파탈로서의 클링의 모습이 빛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본편 줄거리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팬심으로 점수를 조금 더했지만, 팬서비스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묘사가 가득한 뻔한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시리즈 최고작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역시 초기작 외에는 건질 것이 많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2003/12/15

잃어버린 시간 - Long time no see - 에드 멕베인 / 모윤신 : 별점 2점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입니다. 카렐라 형사의 쌍동이 자식이 10살정도 되었을때 이야기니 제가 읽은 "경관 혐오"에서 거의 10여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이군요. 찾아보니 1977년도 작품이군요. 중후기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는 불쌍한 흑인 장님거지 지미 해리스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이사벨,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거지 헤스터 까지 장님들이 연쇄적으로 무자비하게 살해되고 카렐라 형사는 집요한 수사끝에 지미 해리스가 군대에 있을때 받았던 정신과 치료에서 힌트를 얻어 범인을 검거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장님이나 어린애를 살해하지 않는다. 새를 목 조르거나 나비의 날개를 잡아당기는 이런 일은 사람들이 좀처럼 하지 않으니까..." 
본문에 나오는 이 말대로 일단 이 작품은 불쌍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장님들의 연쇄살인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흥미를 끕니다.
<경관혐오> 단 한편밖에 읽을 기회는 없었지만 카렐라 형사를 주인공으로 우직하고 집요한 수사방법도 볼 만 하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사건이 조금 포커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납니다. 결정적 단서가 되는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 기록에서 유추해낸 사건의 진상이 너무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게다가 300여 페이지나 되는 소설에서 사건의 해결은 후반 50페이지에 집중되어 있고 초반의 사건들이나 수사의 설정들은 뒤로 가면 다 무익하고 허무해지는 구조 탓도 큽니다. 물론 초반부도 나름대로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앞부분의 서술되었던 복선들과 연관되는 사건의 진상!같은 치밀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게 아쉽네요. 이런 스타일에 맛들이면 독자들은 이 작가 책은 뒷부분만 읽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킬링타임용 하드보일드 소설로는 괜찮은것 같습니다. 소장가치는... 저도 헌책을 싸게 사서 아깝지는 않습니다만... 글쎄요. 번역도 문제가 있으니 그닥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시간 : 모윤신 옮김. 화평사

2015/12/02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김홍민 : 별점 2.5점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4점
김홍민 지음/어크로스

필명인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출판사 북스피어 사장 김홍민 씨가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한 글과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출간한 책입니다. 

저는 마포 김사장 뉴스레터는 물론, 블로그도 RSS로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때문에 그간의 재기발랄한 글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뻤습니다. 다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약적인 예산 하에서 지혜를 짜내 자신이 출간한 책을 홍보하려는 노력과 제목이기도 한 그의 철학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가 더해진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1부가 그러한 이야기 중심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와 손톱"의 봉인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
  2. 뒷날개를 활용한 등장인물 소개 (이건 정말 필요한 책에는 아주 최고일 듯 싶어요)
  3. 과학 소설 전문 출판사 '불새' 관련 기가 막히는 이야기: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를 읽고 출판사를 차린 뒤 과학소설을 내놓는다. 일곱 권의 책을 내고 문을 닫는다. 많은 이의 성원으로 재고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불새 대표가 뭘 했느냐. 이런 빌어먹을, 다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부분만큼은 원 글의 감동을 살리고자 거의 그대로 인용합니다)

또 작가, 출판인을 꿈꾸고 있는지라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실전에 기반한 에피소드들인 2장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다짜고짜 투고는 옳지 않다(출판사 절차를 따를 것), 공모전에 대한 팁 — 장면 전환에 전화를 이용하지 말라, 진부한 비유는 피하라, 평범한 보통 명사는 제목에 쓰지 말라, 불필요한 묘사로 시작하지 마라, 뻔한 기관 국정원 등을 주요 소재로 삼지 마라, 영화처럼 서술하지 마라(주인공의 시선과 행동만을 쫓아 전개했을 때의 문제), 짧은 장을 반복해서 만들지 마라 등 -,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왜 4의 배수인지와 판권 페이지 관련 이야기 등은 재미도 있고 유익했으니까요.

허나 몇 가지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긴 했어요. 미야베 미유키"에도물" 출간 논란이 대표적이죠. 일단, 북스피어가 키워놓은 시장을 날로 먹으려고 한 비채는 엄연히 상도의를 어긴 것이며, 도덕적인 면에서 비난받아야 함은 마땅하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선인세는 엄연히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입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경쟁으로 내 작품값, 내 몸값이 올라가고, 출판사에서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건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에요. 즉, 좋은 작품을 썼고, 그것이 좋은 가격을 인정받고, 높은 판매를 보장받았다. 이게 전부입니다. 선인세 경쟁으로 한국 출판사가 글로벌 호구가 되었다! 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마포 김사장 말대로 적정 금액이 암묵적으로 있다면 그건 담합이죠. 왜 유통사가 콘텐츠 창작자의 창작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한답니까? 선인세가 높아서 독자가 피해를 본다는 게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는다면(멀쩡한 책의 분책이나 동일 판형, 페이지 단행본 대비 가격 상승, 사재기를 통한 판매 부수 조작 등) 유통사들 간의 분쟁일 뿐, 독자와 작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뒤가 켕기는 건 출판사지 독자가 아니에요.
통일된 디자인과 판형으로 시리즈를 모으지 못한다는 문제는 있지만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도 "아이스" 한 권만 피니스 아프리카에 말고 검은숲에서 출간되었고, 가가 형사 시리즈"신참자"만 출판사가 다른 등 이 바닥에 워낙 비일비재한 일이라 문제도 아닙니다. "경성 탐정록"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음에도 1, 2부 판형부터가 다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한국 추리소설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필요한가?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는데? 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도 섭섭했습니다.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은 투자 대비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라면 최소한의 애정은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꾸준히 각종 공모전을 개최하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황금가지와 너무 비교되는 마인드에요. 이래서야 그냥 장사꾼이지요. 미야베 미유키 작품만 영원히 팔 건가요?

이렇듯 마음에 안 들거나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부분, 1, 2부의 이야기는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인, 그리고 출판사를 지지하는 팬층이 두텁다는 것은 알겠고, 그렇게 두터운 팬층을 만든 마포 김사장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북스피어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비록 이전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는 했지만(거절의 이유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경성 탐정록" 장편을 여기서 내 주면 참 좋겠다 싶긴 하네요. 마포 김사장의 재기발랄한 마케팅이라면 뭔가 될지도?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결산"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

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든 도트문더는 정직하게 게임을 해서 240달러 정도를 땄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했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부탁했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이었다.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하는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답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했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앨런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겨 왔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데...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났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두는데...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했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파티를 가지게 된 렉시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