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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연쇄살인범 파일 - 헤럴드 셰터 / 김진석 : 별점 3점

연쇄살인범 파일 - 6점
헤럴드 셰터 지음, 김진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연쇄살인의 정의에서 시작해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의 사례는 물론 그들의 최후와 미결 사건들, 그리고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다양한 서브컬처까지 담아낸,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연쇄살인 백과사전입니다.

과거 콜린 윌슨의 저서에서 접했던 내용을 가볍게 뛰어넘는 방대함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푸른수염 질 드레, 마리 드 브랭빌리에 등 역사적 인물에서 시작해 17~19세기를 거쳐 2000년대까지 거의 전 시대를 망라합니다. 슈퍼스타이자 원조 격인 잭 더 리퍼는 물론, 샘의 아들 버코위츠, 보스턴 교살자 드살보, 언덕의 교살자들 비안치와 부오노, 고속도로 살인자 보닌, 새크라멘토의 뱀파이어 데이비드 카펜터, 미친 짐승 안드레이 치카틸로, 캔디맨 딘 코얼, 밀워키의 식인종 제프리 다머, 달빛 광인 앨버트 피쉬, 살인 광대 존 웨인 게이시, 플레인필드의 시체도둑 에드 게인, 고릴라 살인자 넬슨, 소년 미치광이 제시 포메로이, 나이트 스토커 리처드 라미레즈, 붉은 거미 루시안 스타니악, 조디악 등 그 수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연쇄살인범들이 소개됩니다.

또한, 서구에 집중된 다른 저서들과 달리, 타 문화권 범죄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담긴 점도 마음에 듭니다. 20세기 최악의 연쇄살인범 유력 후보 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1992년부터 7년 동안 140명 이상 살해), 아이들을 100명 죽이는 것이 목표였고 결국 달성했다는 파키스탄의 자베드 이크발, 안데스 산맥의 괴물 페드로 로페스(110명을 살해했다고 자백), 미해결 상태인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괴물 사건, 중국의 매춘부 살인자 리 원시엔(홍콩에 떠내려온 잔혹한 피해자의 사체로 서방 세계에 정체가 알려짐) 등의 정보는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었거든요. 추후 증보판에는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다룬 범죄자들이 추가되면 더욱 완벽해질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과학적, 역사적인 고찰도 포함되어 있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깊이가 아주 깊거나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중세의 늑대인간 전설을 사이코패스와 연관 지은 것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사체의 상태를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이 짐승의 짓이라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죠. 또한, 거의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유년 시절을 겪었거나 머리에 외상을 입었다는 설명(물론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인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프로파일링 관련 이야기 등도 흥미로웠습니다.

연쇄살인범들이 체포된 계기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찰의 집요한 노력 외에도 범인의 실수나 순전한 우연이 작용한 경우가 많더군요. 대표적인 사례로, 릴링턴가의 괴물 존 레지널드 크리스티는 부엌 찬장에 시체 3구를 숨기고 벽지만 바른 뒤 이사를 갔다가 덜미를 잡혔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의 ‘제프리 다머’라 불리는 데니스 닐슨은 토막 낸 사체를 화장실에 버리고 물을 내리다가 건물 파이프가 막혀 발각되었다고 하네요.

너무 많은 주제를 담아내려다 보니 편집이 다소 혼란스럽고, 목차와 색인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검색이 어렵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또한, 특정 인물이 여러 주제에 중복되어 등장하는 문제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쪽 방면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소장할 만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충실한 각종 자료와 괜찮은 도판 등 여러모로 볼거리도 많은 편입니다. 너무 끔찍한 내용이 많아 남에게 권하기는 힘든 책이지만, 순수하게 자료적 가치로만 평가하면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집에 이 책을 두면 근처의 원귀들이 모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드는군요...

2015/01/23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브렌다 랠프 루이스 / 이경식 : 별점 2점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4점
브렌다 랠프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이런 류 연쇄살인범 관련 논픽션은 그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이 읽어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의 흥미, 그리고 창작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자료 및 아이디어 확보 측면에서 말이죠. 허나 세계적인 연쇄살인마가 흔한 것도 아닌만큼 몇권 읽으면 충분하기는 합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발표된 책이라면 미국 중심이기에 미국의 유명 살인마들 - 에드 게인테드 번디, 샘의 아들, 나이트 스토커 등등 - 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지도에 매핑했다는 제목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거든요. 미드 <넘버스>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학자 동생이 무작위로 보이는 범죄 행위가 실제로는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수학이론을 통해 밝혀내고 (범인이 범행 장소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무작위적으로 범행 장소가 바뀌지만 이러한 무작위는 외려 작위적인 수열을 형성하므로 그 시작점을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 범인이 어디 있을지 추론하던 에피소드였죠.

그러나... 지도 매핑은 그냥 범죄 행위를 지도에 그려놓은 것일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도가 실려있을 뿐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범죄행각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방식은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해요.
물론 이 책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가 별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낫고 그 외의 도판들, 예컨데 피해자 사진들이 조금 더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살인마 찰스 소브라즈, 트럭 운전사 연쇄 교살범 폴커 에케르트 등의 연쇄살인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졌기에 최근의 범죄, 배낭여행객 살인자 이반 밀라트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워싱턴의 저격수 존 앨런 무하메드와 리 보이드 말보, 베르사체 저격범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얼마전 보았던 영화 <툼스톤>의 원작 <무덤으로 향하다>의 범인들 모델로 생각되는 싸이코패스 컴비인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살인마 비태커와 노리스 이야기도 충격적이고 놀라왔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처럼 조금 더 생생하게 쓰여진 것과 체포와 수사 과정 및 범인들이 체포된 이후 사법거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던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던가, 사형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놀랍게도 해당 국가의 형법이 정해져 있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안데스의 괴물 페드로 로페즈) 등의 후일담까지 꼼꼼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반 밀라트 차에 탔던 영국인 여행자가 가방과 여권을 모두 버려두고 달아난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우 의외로 살아난 경우가 많거나, 최소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허나 장점보다는 제목에 낚인 듯한 기분도 크며 내용도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제 이런 책은 좀 많이 지겹습니다...

그나저나 외국 살인자들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별명이 있는데 참 기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면 장난스럽다고 엄청 공격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국가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2006/08/31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제프 린제이 / 최필원 : 별점 1점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2점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비채

마이애미,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살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덱스터는 양부였던 헨리의 충고에 따라 사회악적인 존재만 골라서 처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본 직업인 경찰 혈흔 분석가로서의 이중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덱스터와 유사한 연쇄살인범이 나타나 마이애미는 광란 상태에 빠지고 덱스터는 살인범과의 교감을 느끼면서도 의붓 여동생인 데보라의 소망에 따라 자신의 직감과 본능에 따라 살인범을 추적한다...

모던 스릴러 소설가이자 기획자라는 모중석씨가 선정한 스릴러 소설들을 출간하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4번째 작품입니다. 스릴러 소설은 별로 취향은 아니지만 평도 좋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그러나.. 읽어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실망!" 입니다.
일단, 대체 이 소설의 어디가 스릴러라는 것인지 저는 당쵀 알 수 없더군요. 살인범과의 몇가지의 단서를 놓고 벌이는 스릴 넘치는 두뇌게임이나 쫓고쫓기는 추격? 이 작품에서는 그런건 전혀 없습니다. 살인범의 추적은 덱스터가 같은 연쇄살인범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순전히 자신의 "본능"과 "직감"에 따를 뿐입니다. "단서" 이런건 전혀 없습니다. 단서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실제 수사에는 군더더기일 뿐이고요. 압권은 살인범이 덱스터를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서서히 접근해 온다는 설정. 장난쳐 지금? 주인공은 하는게 하나도 없잖아!
혹 잔인한 장면의 나열만으로 스릴을 줄 수 있다고 작가가 착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묘사였을 뿐입니다. 제임스 옐로이의 블랙 다알리아같은 숨이 콱콱 막히고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범죄소설 보고 연구나 좀 할 것이지... 작가가 본 건 헐리우드 영화들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의붓동생과의 관계나 직장 상사와의 관계 등 모든 다른 세부 설정들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아주 충실히 모방하고 있거든요. 아, 주인공 직업에 대한 설정이나 몇몇 장면들에서는 CSI도 좀 본 티를 내긴 하더군요.
그리고 덱스터의 심리묘사에 너무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도 실수로 보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그닥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돋보이게 할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아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져서 소설만 불필요하게 길어질 뿐이었습니다. 이놈은 왜이리 잡생각이 많은지 원...

범죄자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는 온갖 만화에서 써먹은 소재이니 별반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고 경찰과 범죄자의 이중생활 역시 뻔한 이야기고.... 잔인하면서도 완벽한 연쇄살인범을 "착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설정빼고는 건질게 별로 없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연쇄살인마가 경찰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중생활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더라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최소한 웃기기는 했을텐데.
요새 이래저래 안좋은 일이 생겨 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 이 작품이 좀 집중포화를 맞은 듯도 하지만 두번다시 손에 잡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뒷 커버에는 "리얼리티의 힘!" 이라는 카피가 나와있는데 이 소설의 어디가 리얼하다는 건지 대관절 알 수가 없네요. 보름달에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게 리얼하다니... 보름달이 뜰때 주인공이 늑대인간으로 변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인하는 것이 리얼하다고 표현한 건가?

PS : 원제가 "Darkly Dreaming Dexter" 니 줄이면 "3D"군요. 전혀 상관없지만 더들리 보이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PS2 (2006.10.11) : 블로그를 둘러보다 보니 영상화가 끝난 모양이군요. 의외로 TV Series인 듯 합니다. 뭐 워낙 영상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보니 의외성은 없고 외려 보고싶어지네요.

2005/09/30

FBI 심리 분석관 (Whoever Fights Mosters)- 로버트 K 레슬러, 톰 샤흐트만 / 황보석 : 별점 3점

FBI 심리분석관 - 6점
로버트 K. 레슬러 & 톰 샤흐트만 지음, 황보석 옮김/미래사
실제로 FBI에서 범죄 심리학 전문의 심리 분석관으로 20여년을 일한 로버트 K 레슬러의 기록물. 20여년간 여러 연쇄 살인범들의 수사에 참가하고 프로파일링 및 그들의 심리분석을 토대로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과정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물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연쇄 살인범인 테드 번디나 보스턴 교살자 드 살보, 세크라멘토 흡혈귀 트렌튼 체이스, 맨슨 일당 등 저명한 살인범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라던가 실제 연쇄 살인 기록, 사건개요, 당시 작성된 프로파일링 내용과 범인에 대한 비교 및 묘사, 상세한 수사 활동 및 반성과 앞으로의 과제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사하게 연쇄 살인범의 심리와 사회상을 분석한 표창원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과 비교해 본다면 아무래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저같은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의 연쇄살인"이 더 낫긴 하겠지만 범죄에 대한 과학적이고 상세한 접근은 이 책이 보다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전문 분석관이 직접 저술했기 때문이고 범인과의 인터뷰까지 상세하게 분석해 놓았기 때문이죠.
저자가 "양들의 침묵"과 "천재 정신과 의사의 살인광고" 라는 두권의 책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전문가라는 내용도 들어 있는데 책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만 보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 하다고 생각되네요. 실제로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을 인터뷰하는 과정의 묘사나 신문광고를 통한 희생자 낚기 등은 충분히 저자의 실제 수사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이디어로 보이거든요.

다만 FBI 조직 발전사 같은 부수적인 설명과 저자 개인의 사건에 대한 평가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서 약간 지루한 부분이 있고 책의 목차도 시기별이나 수사상의 발전에 따른 구분이 아닌 약간 모호한 상태로 구분되어 있어서 조금 혼란스럽더군요. 조금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구성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약간 아쉽습니다. 

어쨌건 저는 꽤 관심가는 분야의 내용인지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지루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범죄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볼 책인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6/03/27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 찰리 돈리 / 안은주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는 변호사인 아버지 프랭크 무어의 급작스러운 사망 후, 아버지의 고객이었던 장기 복역수의 가석방 절차를 인계받아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도적'이라는 별명으로 40년 전 유명했던 연쇄 살인범 토머스 미첼이었다. 그러나 토머스 미첼이 죽였다는 피해자의 시신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찰리 돈리의 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작품은 현재 시점의 로리와 과거 시점의 앤절라 미첼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앤절라 미첼 시점에서 ‘도적(The Thief)’이라 불린 연쇄 살인범의 정체를 쫓는 과정이 더 볼만 합니다. 앤절라가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하는 흐름이, 앤절라의 자폐로 인한 강박적인 심리묘사와 함께 펼쳐져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덕분입니다. 앤절라가 헛다리 - 남편 회사의 새 고용인이 범인이다, 친구 남편이 범인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 를 짚어 나가다가 범인이 남편 토머스라는걸 깨닫는 장면까지의 빌드업도 좋습니다.

로리의 아버지 프랭크와 토머스 미첼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토머스 미첼이 60년 형을 선고받은 결정적 이유는 아내 앤절라 미첼의 실종 때문이었습니다. 도적이 저지른 연쇄 살인은 시체를 찾지 못해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했거든요. 선고 후 토머스는 아내를 찾아 달라며 프랭크를 개인적으로 고용했습니다. 자신이 죽이지 않은 앤절라의 생존이 확인되면 자신은 풀려날 수 있으니까요.
프랭크도 처음에는 의뢰인인 토머스를 믿고 앤절라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랭크는 토머스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것, 그리고 앤절라는 토머스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프랭크는 앤절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를 입양함과 동시에 토머스를 속여 가며 가석방을 늦춰 왔던겁니다.
이는 현재 시점의 화자인 로리가 바로 토머스와 앤절라의 딸이었다는 그럴싸한 반전으로 이어지며,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게 만들고요.

하지만 절대로!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연쇄 살인마와 맞서 싸우는, 다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한 흔해빠진 양산형 범죄 스릴러에 불과한 탓입니다.
특히 주요 화자인 로리와 앤절라의 자폐 성향이나 강박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 묘사는 과할 뿐더러, 최근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보이는 캐릭터 유형을 그대로 반복하여 식상합니다. 친절하고 다정해 보였던 남편이 사실은 연쇄 살인마였다는 설정 역시 뻔하고요.

수사 과정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토머스가 증거를 완벽하게 지웠다고 해도 거의 십 년 동안 여성들을 수십 명이나 살해했는데 경찰과 검찰이 아무런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설정, 그리고 토머스를 체포하는 근거가 되었던 실종 여성의 신분증과 목걸이는 분명한 물증인데 이걸 단순한 정황 증거처럼 취급했던 재판 과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토머스의 후반부 행동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는 40년 동안 복역한 뒤 가석방되자마자 곧바로 앤절라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캐서린과 그레타를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무리한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작품 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토머스가 시한부라든가 하는 설정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설명은 없어요.
범행 과정 역시 허술합니다. 그레타를 살해하면서 방명록에 서명을 남기는 등 명확한 증거를 남기는데, 이런 방식은 40년 전 이야기라면 모를까 2020년대에서는 빠져나가기 힘들 겁니다. CCTV도 있을테고요.
마지막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진상을 눈치챈 로리가 토머스의 집을 혼자 찾아가는 행동부터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토머스가 언제나처럼 희생자를 매단 교수대를 만들어 변태적인 놀이를 즐기다가, 숨어 있던 로리의 기습을 받고 죽는 결말은 허무함의 극치였고요.

불필요한 묘사도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 주인공들의 심리적 문제를 강조하는 묘사는 과할 정도로 반복되고, 캐스트너 인형 복원이나 플로이즈 다크로드 맥주 같은 이상한 취미와 집착도 이야기 전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카밀 버드 관련 설정은 차라리 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고, 로리의 연인인 레인의 존재 역시 작품 전개에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앤절라가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범죄 전문가라는 로리가 이를 지나치게 늦게 눈치챈다는 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답답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범죄 스릴러에 불과합니다. 흥미로운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지탱할 만큼의 독특함은 없어요.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1/02/13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레너드 카수토 / 김재성 : 별점 4.5점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10점
레너드 카수토 지음, 김재성 옮김/뮤진트리

부제는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사"입니다. 말 그대로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흐름을 미국의 역사적 변곡점, 흐름과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는 문학사 서적이지요.

간단하게 정리해본다면, 하드보일드의 통로 역할을 한 작품으로 소개된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입니다. 가족과 신앙이 도덕적 삶의 기초이고 중심이었던 19세기 모델에서 산업화, 도시화로 급변한 20세기 초 지극히 미국적인 범죄 행위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 뒤, 전통적 가족 모델이 서서히 해체되는 시기에 등장한 작품이 대쉴 해밋"몰타의 매"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신뢰의 결핍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기업화와 함께 찾아온 사회 경제적 변화 때문이지요. 당시 석유 회사에서 시작된 '트러스트' 체제 등장으로 가족 메타포가 기업 세계로 편입되었고, 기업 관행이 모든걸 지배했던 세계입니다. 그 결과, 전통적 가족 관계는 붕괴하고 이기적 개인들이 가족 유대 관계와 의무에서 벗어나 공감따위는 저버리고 돈만 쫓아 날뛰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하지만 돈과 신뢰가 위험한 세상에서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고, 샘 스페이드가 매로 상징되는 '투기'를 거부하는 모습은 1929년 주식 시장 폭락을 반영하며, 매 조각상이 가짜라는건 투기 역시 환상이라는걸 의미합니다. 광란의 투기 경제에 대한 해밋의 비판적 시각을 잘 알 수 있지요. 또 주목할만한건 '진짜 남자'에 대한 해석입니다. 대쉴 해밋은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건 정당한 보수를 받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스페이드는 직업을 잃을 어떤 모험도 하지 않고요. 반대로 부자들은 무르고 기괴하게 여성적입니다. 돈 많은 악당들을 여성화하여 폄하한 겁니다.

그리고 대공황 시대를 잘 드러내는 작품은 제임스 M 케인의 "밀드레드 피어스"입니다. 하드보일드와 감상주의가 결합된 작품이지요. 밀드레드는 감상주의에 빠져 완벽한 가족을 꿈꾸지만 현실은 시궁창, 딸과의 관계가 파괴된 후 술에서 위안을 찾는 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결말로 가정사는 더 이상 여성 공동체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다는걸 알려줍니다.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으로 급작스럽게 모든게 변한 탓입니다. 뉴딜은 현대 복지 국가라는 개념으로 가족이 수행했던 보호 관리 역할을 정부가 맡아 수행했기 때문에 공감과 감성은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여성은 뒤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성 중심 하드보일드 소설은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여성은 배제되고, 남성 관료주의가 가정과 사회의 도덕적 중심이라는 자리를 차지했고요.

대공황 이후 가족은 위협받고, 남성은 남성상의 기본 토대인 가족 부양자로서의 정체성이 몰락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 탄생한게 완벽한 남자 필립 말로입니다. 위협받던 남성상과 파편화된 가족을 구하는 영웅으로, 배트맨과 슈퍼맨 탄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말로는 무너진 의뢰인이나 관계자들 가족 복원에 최선을 다하는, 감상적이고 선한 영웅이거든요. 이는 구시대 하드보일드 태동기의 냉혹한 회의주의와는 정 반대 모습이에요. 가정이 중심이 되며, 사회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1950년대에 접어들면, 말로는 더 깊숙이 사건에 개입하고, 더 정서적으로 엮이게 됩니다. 대표적인게 "기나긴 이별"로 말로는 일이 아니라 일의 수혜자에게도 충성합니다. 이거야말로 감성적인 부분이지요. 이렇게 1950년대에 과도한 남성상을 지닌 폭력적인 마초가 부드럽고 감상적인 영웅으로 변한건 냉전 시기, 강한 미국과 안정된 가정이라는걸 유지하려는 분위기 탓으로 설명됩니다. 가장 끔찍했던건 사회 질서의 붕괴를 뜻하는 여성의 일탈이었고요. 그 덕분에 이 때 진정한 의미의 '요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순위를 매기자면, 일하고 능력있는 여성도 나쁘지만, 동성애자는 전통적 가족의 대립항이라 훨씬 더 나빴고, 무엇보다도 잠재적 어머니 역할을 고의로 방기하는 여성 동성애자는 최악 중 최악으로 인식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짐 톰슨은 풍요 속 공포와 우려를 표현했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고향에서 뿌리를 잃은 도덕적 불안을 작품에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두 작가 작품 속 주인공들 모두 피해자들에 대한 감상주의적 공감이 최대의 능력으로 묘사되며, 감상주의를 중산층에서 분리해서 상류층에 국한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감상주의가 위험하다는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특기할 만 합니다.

1960년대 들어서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더욱 친절해지고, 범인들은 더욱 사악하고 반사회적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탐정들은 가정을 중시하는 감상주의자에 심지어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페미니스트이기도 할 정도로요. 이 시기, 로스 맥도널드는 무너지는 가족 관계를 그렸는데, 모자간 결합의 단절을 통해 부모들의 책임 회피와 피해자는 아이들이라는걸 나타내었습니다. 이는 반항하는 자녀와 무력한 부모라는 1960년대 세대간 갈등을 극명하게 투영한다고 할 수 있지요. 젊은이들의 신뢰를 받고 파괴된 가족을 복원해주는건, 연민, 공동체적 결속과 공감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폭력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 사립 탐정이고요. 이렇게 친절하고 가정적인 사립 탐정 속성의 변화는 여성 탐정들을 등장시킵니다. 반면 더욱 사악하고 반사회적이 된 범인들은 결국 연쇄 살인범으로 진화하였습니다. "레드 드래곤"이 연쇄 살인범 소설의 교과서적 캐릭터와 기본 플롯을 제공한 뒤, 포화상태를 넘어서 공급 과잉상태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20세기 후반 미국 정부의 정신질환 정책과의 관계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가 공감을 일으키는 대상에서 괴물로 변한 뒤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으며, 연쇄 살인범은 이 대상화 작업에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이렇게 현대 연쇄 살인범 소설까지 큰 흐름을 일람하고 있으며, 흑인 범죄 소설과 같은 특이점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미국 근대사와 범죄 소설의 흐름이 절묘하게 일치하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대표작에 대한 소개도 상세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문제라면 저는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었던 존 D 맥도널드의 작품이나 탐정 스펜서 시리즈에 대한 호평이었습니다. 이래서야 책에서 소개하는, 제가 읽지 못한 다른 작품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할 수 밖에 없지요. 60년대 이후 범죄 소설의 흐름에 대한 소개는 별로 자세하지 않다는 점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쪽 장르에 대한 문학사이자 비평서로서 재미와 가치 모두를 충족시키는 좋은 책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와 범죄 소설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리뷰를 쓰기 어려웠어요.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했던게 문제였습니다. 약간은 공부하듯 분석하고 정리해야 내용 요약이 가능한 내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리뷰로 이 책을 잘 소개하지 못한건 다 제 공부가 부족한 탓입니다....

2013/08/22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 슈테판 하르보르트 / 김희상 : 별점 3점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 6점
슈테판 하르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알마

독일 여성 살인범에 대한 논픽션으로, 여러 여성 살인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녀들이 저지른 범죄에서부터 재판 과정과 그 결과, 범죄를 저지른 이유까지 모두 분석하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건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침묵, 그리고 살인"에서 다루고 있는, 아이 아홉 명을 낳자마자 죽인 수잔네 헤흐트 사건입니다. 아홉 명이나 죽일 때까지 주위 사람들이 몰랐다는(또는 모른 척했다는) 내용도 충격적이나, 분석한 살인의 동기 또한 충격적이에요. 가장 큰 동기는 원치 않은 첫째의 임신이었습니다. 임신을 꼭꼭 담아두고 삭히다가 어른들이 알아차리고 나서야 수습되었으며, 이런 경험은 자신이 실패한 것의 책임을 늘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주변 환경을 탓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됩니다.
왜 피임을 하지 않았으며 왜 낙태를 하지 않았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위의 이유로 무작정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기다렸다고 해석하네요. 만약 원했던 도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죽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배 속에 품고 산 아이에게 어떻게 모성애가 없을 수가 있냐는 당연한 의문에는, 모성애는 출산 이후 만들어지는 것이 크다고 답합니다. 출산 후의 기쁨과 아이 키우기의 고통이라는 부정적 효과 중, 부정적 효과는 원치 않는 아기를 낳았을 때 생기며 자기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미숙한 인격에 살가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여성에게 원치 않는 아기는 처분과 처치의 대상일 뿐이라고 하네요.
몇 년 전 서래마을 냉동실에서 발견된 영아 사체를 둘러싼 사건이 떠오르기도 해서 더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여성 살인범의 전형이라는 "블루베리 마리", 간호사 연쇄살인을 다룬 "죽음의 천사" 등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3점. 분석이 많고 조금 지루하다는 단점으로 감점하였으나, 이런 류의 논픽션을 좋아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단, 동기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는 부분은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네요.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인지가 더 관심거리인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제게는 "호" 쪽이었습니다만...

그나저나 독일은 유달리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 듯한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0/05/30

콜드 문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2.5점

콜드 문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뉴욕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 시계, 기묘한 시와 함께 자신을 '시계공'이라고 서명한 범인을 찾기 위해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나섰다. 한편 색스는 이 사건 외에도 자살로 위장한 사업가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경찰 118번 지구대가 범행에 연루되어 있다는게 드러났으나, 당장은 내사과 투입이 어려워 부시장 월러스와 경정 매릴린 플레허티의 합의로 색스 혼자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이었다.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과 그의 수족인 여성 경찰 아멜리아 색스 컴비의 활약이 그려지는 제프리 디버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에서 해외편 6위에 당당하게 위치해 있는 탓에, 평소 궁금하게 여기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흡입력, 재미입니다. 거의 550여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인데 쉽게 읽힙니다. 시계공 던컨의 범죄 행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유행했던 "싸이코 연쇄 살인마와 천재 경찰의 대결"을 비튼 아이디어도 좋아요. 반전도 괜찮으며, 철저한 증거 위주의 수사로 수집한 증거를 통해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그것들이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마음에 듭니다.
새 캐릭터인 동작학 전문가 캐스린 댄스의 심문 과정에 대한 묘사도 그럴듯합니다. 거의 인간 거짓말 탐지기 수준으로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럴듯하게 묘사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다른 링컨 라임 주변인물 묘사도 시트콤스러운게 유쾌했고요. 아멜리아 색스가 아버지의 추문, 경찰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결말도 전형적이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잘 되고 나쁜 사람은 파멸하는 이야기가 감정이입이 잘 되더라고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지난 30년간 작품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만하냐면,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모두 주요 관계자의 증언에 따를 뿐입니다. 빈센트 체포 후 빈센트의 증언으로 다음 피해자 대상이 좁혀지고, 이는 베이커의 작전이었지만 베이커 체포 후 던컨 본인도 체포되어 연쇄 살인극이 아니라는게 그의 입으로 밝혀지고, 던컨이 풀려난 뒤 그의 다음 목표가 델파이 메커니즘이라는 것도 빈센트와 이전 시계점 증언으로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이래서야 링컨 라임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링컨 라임이 없어도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지나친 반전과 어처구니없는 진상도 문제입니다. 초, 중반까지는 연쇄 살인극을 꾸미는 시계공 던컨과 조수격인 성범죄자 빈센트가 몇 명의 여성 희생자를 집요하게 노리는 묘사가 이어지죠. 그러나 빈센트는 그냥 미끼였고, 던컨의 진짜 목표는 118번 수사대 비리와 연류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로 색스를 연쇄 살인범의 범행으로 위장해서 죽인다는 반전, 베이커 뒤에 흑막으로 부시장 월러스가 있었다는 반전, 시계공 던컨의 진짜 목적은 세슘 시계를 조작해서 이전부터 탐낸걸로 묘사된 '델파이 메커니즘'을 훔치려는 것, 인줄 알았지만 진짜 중의 진짜는 뉴욕 도시 개발 공사에서 뉴욕시와 국방부 등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사람을 다량으로 살상하는 테러였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렇게 반전이 너무 많다보니 가면 갈 수록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9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반전물' 들을 보고, "내가 진짜 반전이 뭔지 보여주겠다!"라는 결심을 하고 쓴 느낌인데, 지나쳤어요. 과유불급이랄까요....

게다가 '시계공의 목적은 무차별 대량 살상 테러였다!' 라는 진상도 너무 별로입니다. 작 중에서는 사람은 죽이지 않고, 이전에 사람을 죽였다고 언급헸던 범행의 대상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 안티 히어로 모습을 보여주던 천재 범죄자 시계공이 왜 무작위로 사람을 살상하는 테러를 선뜻 받아들이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계공의 캐릭터도 이상해져 버렸고요.
마지막 범행, 즉 테러를 위해 연쇄 살인 시도를 가장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입니다. 자물쇠를 따고 숨어드는게 쉽다면, 루시 릭터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을 때 집에 침입해서 필요한 서류를 찍어가지고 오면 되는거잖아요? 꽃가게 조앤의 화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구태여 엄청난 숫자의 뉴욕 경찰이 동원될만한 살인극을 가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인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시계공의 범행이 가짜이고 해프닝에 불과했다는걸 구태여 드러낼 이유는 없어요. 테러를 위해서라면 그냥 연쇄살인극을 위장하는게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요? 구태여 아는 사람을 늘릴 이유도 없고, 베이커에게 복수하겠다는 가짜 동기 등 시계공의 모든게 가짜라는게 드러나는 것도 시간 문제인데 말이지요.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여 아멜리아 색스를 연쇄 살인범에 의한 것으로 가장하여 살해하려는 의도였다고 중간에 설명되지만, 이는 시계공이 베이커의 범행은 실패하게끔 총을 조작했다는 이야기 전개를 보면 역시나 합리적이지 않아요. 차라리 링컨 라임과의 대결을 위해 도전한다는걸 보다 명확하게 표현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만, 비리 경찰 베이커와 아멜리아 색스의 아버지 이야기를 빼고 350~400 페이지 정도로 이야기를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2006/10/18

고독의 노랫소리 - 텐도 아라타 / 양억관 : 별점 2점

고독의 노랫소리
텐도 아라타 지음/문학동네

젊은 여성을 노린 잔혹한 여성 연쇄 살인 사건과 편의점을 노린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편의점 강도 사건 담당자 아사야마 후키는 강도 피해자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자 인디 가수 준페이를 알게 된 후, 둘은 서로에게 묘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후키의 옆집에 살고 있던 교코가 실종되자 후키는 준페이가 강도를 당할때 편의점에 있었던 손님과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하여 스스로를 미끼로 한 수사에 나서는데...

이 바닥에서는 희귀본인 전설적 작품 "영원의 아이"의 저자 텐도 아라타의 초기작으로 1993년 작품입니다. 평이 좋아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양들의 침묵"을 벤치마킹'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있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여형사와 싸이코 연쇄살인범, 그리고 여형사의 조력자와도 같은 스스로의 세계에 갖혀있는 고독한 인물이라는 캐릭터 설정부터가 판박이에요. 거기에 연쇄 살인의 엽기성과 잔혹성만 더해졌을 뿐이에요. 그 외에도 고학력 살인범이 미모의 여성만 사냥하는 이야기 전개는 "천재 정신과 의사의 살인광고"와 비슷하며, 살인의 이유가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더하기 모친의 비정상적인 가정 형성에 따른 정신붕괴... 라는 것도 너무 뻔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모로 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류작에 불과합니다.

물론 싸이코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작품이야 널렸을 뿐더러, 93년도 발표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양들의 침묵"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은 됩니다. 그래서 '범인을 어떻게 잡느냐'의 과정만이라도 잘 풀어냈다면 괜찮았을 거에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서스펜스보다는 3명의 주요 등장인물, 즉 형사인 후키와 조력자인 준페이, 범인 마쓰다 3인을 1인칭으로 한 심리묘사에 주력하고 있어서 서스펜스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솔직히 너무 겉멋을 부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따져보더라도,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데 취하는 행동은 거의 없고 외려 준페이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활약으로 두개의 사건이 해결된다는 것이라 허무하기 그지 없고, 등장인물을 모두 1인칭으로 표현하는 등의 세밀한 묘사 방식도 불필요할정도로 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모두 심리적인 상처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설정은 당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고요. 이러한 과거의 심리적인 상처가 너무나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문제이지요.

물론 유명 작가의 유명한 작품답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은 있습니다. 각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시점으로 시각을 계속 바꾸어나가며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솜씨 하나만큼은 일품이며 마지막 3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까지의 서스펜스는 발군이거든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이 너무 크네요. 제 취향이라고 하기에도 힘들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양들의 침묵"을 읽으셨다면 구태여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2012/04/11

마리오네트의 덫 - 아카가와 지로 / 이용택 : 별점 1점

마리오네트의 덫 - 2점
아카가와 지로 지음, 이용택 옮김/리버스맵

프랑스어 전공 대학원생 우에다 슈이치는 지도교수의 소개로 외딴 곳에 위치한 미네기시 집안의 대저택에서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일하던 중 슈이치는 우연히 미네기시 집안의 막내딸 마사코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연쇄살인범이었다... 

마사코의 연쇄살인극이 펼쳐지는 동안 슈이치의 약혼녀 미나코는 슈이치를 구해내기 위해 미네기시 집안 마약 밀매의 본거지인 요양소로 잠입하는데...

아카가와 지로의 초기 대표작 중 한 편인 범죄 스릴러. 요새 아카가와 지로 출판 러시에 힘입어 정발되었네요. 사실 명성에 비하면 그리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쓰는 작가는 아닌, 일본의 "시드니 셀던" 정도의 작가로 알고 있어서 별로 챙겨 읽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읽고 난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마약왕의 외딴 대저택을 무대로 미모의 세 자매(흑묘관인가?)가 등장하고, 자매 중 큰 딸은 색녀이고 막내는 광기 어린 연쇄살인마라는, 현실성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설정을 바탕으로 치밀하지도 않은 즉흥적인 연쇄살인을 모래성처럼 쌓아 올린데다가, 중간중간에는 정사 신 같은 자극적인 묘사를 끼워 넣은 싸구려 3류 소설입니다. 십여 페이지에 한 번씩은 자극적인 장면이 등장하니 3류 소설의 교과서라 해도 되겠어요. 물론 자극적인 장면을 등장시킨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나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냥 자극과 흥행이 될 만한 요소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 본다면 애초부터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로 부를 수 있으나 이야기 자체가 허점투성이라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전무합니다. 슈이치가 마사코를 조종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예이겠죠. 그 외의 설정과 여러 사건들은 솔직히 성인 만화라고 해도 유치할 수준이고요.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는 하나, 반전 역시도 설득력이 전무한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문제점은 동일합니다.

어떻게 보면 제 기대 수준을 거의 맞추긴 했습니다. 그만큼 애초에 기대치가 낮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제 기대치보다도 형편없었다는 건 좀 문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혹 궁금하신 분들께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남으셔도 세상에는 훨씬 유익한 것이 많으니 이 책만큼은 관심 두지 않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왜 이 작가가 일본에서(나마) 인기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더 깊어지네요.

2007/08/19

조디악 (Zodiac / 2007) - 데이빗 핀처 : 별점 4점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친애하는 편집장께, 살인자가 보내는 바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는 1968년 12월 20일 허만 호숫가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연인, 1969년 7월 4일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에서 난사 당해 연인 중 남자만 살아남았던 사건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가 편지에 적힌 단서들은 사건을 조사한 사람 혹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신문사의 업무는 일대 마비가 된다.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이후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경찰을 조롱하는 살인범은 처음이기 때문. 범인은 함께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협박한다. 경찰은 범인이 자신의 별명을 ‘조디악’이라고 밝히자 그를 ‘조디악 킬러’라고 명명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뒤이은 살인 사건으로 사건은 커져만 가고, 모방범죄가 전국에서 속출하지만 유력 용의자는 거리를 활보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조디악의 존재가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크로니클의 만평가 출신인 그레이스미스는 범인의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입니다. 영화는 실제 70년대 유명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의 이야기를 다쓰고 있습니다.

실제 존재했던, 그리고 아직 체포하지 못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이 영화는 실존 인물들을 전부 등장시켜서 더욱 사실감을 높이고 있다는 부분이 차이점입니다. 실존 인물이자 조디악 킬러에 관한 책을 쓴 원 만평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개인적으로 조디악 킬러에 대해 조사해 나가고 결국 단서를 잡아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부각시키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한편의 수사-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아무래도 실제 인물과 그가 쓴 책을 기초해서인지 사실감도 일품이었고요. 보다보면 추리소설 "호그 연속 살인" 에서 봄직한 범인의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데이빗 핀처에게서 기대해 봄직했던 잔인한 묘사는 그렇게 많지 않고, 거칠고 생생한 느낌의 촬영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논픽션을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정제되고 차분한 연출 역시 볼거리였습니다. 음악도 좋았고요.

단,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자세하게 짚고 넘어가기 때문에 영화가 제법 길다는 점, 그리고 초-중반부의 중요 인물이었던 기자 폴 에이버리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야기의 중심축이 급격하게 그레이스미스로 넘어가는 부분 등이 약간 거슬리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의 간만에 보는 모습이 반가왔기 때문에 폴 에이버리가 꽤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어쨌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큼 잘 만든 영화라 생각이 되네요. 마지막 마무리 부분, 즉 "진범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은 미결사건 답게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지만 영화를 보면 한명을 지목할 수 있고, 또 그가 유력한 용의자임에는 분명해 보이기에 한편의 완결된 수사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05/09/07

한국의 연쇄살인 - 표창원 : 별점 3점

한국의 연쇄살인 - 6점
표창원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요새 이 책이 많이 포스팅되더군요. 저도 관심가는 분야라 눈여겨 보긴 했는데 형이 구입했길래 냉큼 읽어봤습니다.
실제 범죄 전문 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가 저술한 책으로 책 안에 단순한 범죄 사실에 대한 나열만이 아닌, 경기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 같은 여러 정보와 분석이 가득해서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거기에 연쇄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제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들이라 더욱 흥미로왔던 것 같습니다. 해당 사례별 외국의 연쇄살인범과의 비교를 통한 분석도 재미있었고요. (물론 꼭 들어맞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지만요)

한국 연쇄살인의 시초에서부터 접근해서 최근의 유영철 사건까지 10년 주기의 연도별로 챕터를 구분하여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당시의 기사와 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분석, 작성되어 자료적인 가치가 굉장히 높은 책이라 더욱 마음에 듭니다. 관련 도판도 주로 기사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꽤 충실한 편이고요.
거기에 분석을 통해 나름 해결책 같은 것도 제시한 것도 학자로서 좋은 태도로 여겨집니다. 국내 연쇄살인의 케이스는 외국과 달리 성범죄쪽 보다는 못가진자의 한(恨)을 토대로 한 범죄가 많고 어린 시절의 학대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회적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강합니다. 아울러 분석에 따라 경찰 수사의 문제도 많이 지적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한가지 아쉬운점은 외국처럼 범인에 대한 인터뷰를 좀 해줬었으면 한데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 현실상 무리였을까요? 이미 형 집행된 인물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유영철 같은 최근 사건의 범인은 가능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읽고나니 사형제도는 절대 없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죄도 죄 나름이니 만큼...

2006/12/16

월관의 살인 상/하 - 아야츠지 유키토 / 사사키 노리코 : 별점 2.5점

월관의 살인 -하 - 6점
사사키 노리코 지음/삼양출판사(만화)

기차를 혐오하는 어머니 때문에 기차를 단 한번도 타보지 못한 여고생 소라미는 어머니의 사후, 자신에게 외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외할아버지의 초대로 "월관"에 찾아가게 된다. 월관으로 가는 특별 열차를 탄 소라미는 그 열차의 동승객들이 전부 철도 매니아, 즉 철광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놀라며, 이윽고 열차가 출발한 뒤, 철도 매니아만 노리는 연쇄 살인범에 의해 살인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관 시리즈의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와 독특한 일상속 개그를 선보이는 만화가 사사키 노리코의 공동 창작물.
하지만 이 책만 놓고 본다면 아야츠지 유키토 스러운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사사키 노리코의 개그 만화를 봤다라는 인상이 더욱 강할 정도로 만화적 재 창조가 원작을 압도하기 때문인데 굉장히 조화롭지 못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전해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사키 노리코의 재 해석이 더욱 빛났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사사키 노리코의 굉장히 세밀한 특정 직업군들 (수의대생, 간호사, 프랑스 레스토랑 직원 등)에 대한 묘사가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예전에 봤던 "아이러브 트레인" 이라는 철도 매니아 만화가 생각날 정도로 철도 매니아 (철덕)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이게 철도 매니아 만화인지 추리 만화인지 헛갈리기 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사키 노리코의 재해석은 단점도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나름 괜찮은 설정과 복선이 깔려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추리 만화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떨어집니다. 아야츠지 유키토 특유의 폐쇄적인 공간, 그리고 공간의 특수성을 이용한 살인극이 이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지는데 다른 요소들, 특히 개그적인 부분에 많이 묻히고 있는 탓입니다. 
사사키 노리코의 담담하면서도 일상적인 연출 탓에 사람이 많이 죽는데도 불구하고 극의 긴박감이나 위기감이 정말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역시 추리 만화로서는 감점 요인이겠죠.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개그물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요....

사사키 노리코의 팬이라면 어떠한 이야기도 자신만의 세계로 만드는 그녀의 능력에 경탄하며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야츠지 유키토나 추리물의 팬이라면 뭔가 이질적이고 기대하지 못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거에요. 추리적으로는 분명 아쉽긴 하거든요. 저는 두 작가 모두의 팬이기에 어느 정도 만족했지만, 취향을 좀 많이 탈 듯한 느낌이 드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사키 노리코의 팬이 훨씬 두터운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대박나서 이러한 창작물이 많이 나오면 그걸로 좋은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산 것은 초회 한정판인데 굉장히 싼티나는 보드게임이 부록으로 들어 있더군요. 절대 해 볼 것 같지는 않지만 뭐 부록은 부록이니까...

2009/08/12

기세이혼센 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별점 1점

 기세이혼센 (紀勢本線) 신구(新宮)역 근처에서 한 여성의 피살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21세의 하라구치 유키. 치명상은 가슴을 날카로운 흉기로 참혹하게 찔린 것이었으며 이마에 X자로 상흔이 남아있었던 상태. 사건 해결을 위해 신구 경찰서에 설치된 수사본부에 도쿄 경시청 수사 1 과 소속의 토츠가와(十津川)경감과 가메이(龜井)형사가 찾아오고 이 사건이 도쿄 세타가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도쿄에서의 피해자도 영어이니셜이 Y. H에다가 21세, 거기에 칼에 찔리고 이마에 자 형태의 상흔이 남아 있는 것이 동일했던 것. 반신반의하던 경찰앞에 구시모토 역에서 동일한 조건의 여성 피살체가 발견되며 사건은 점차 커져만 가는데....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입니다. "침대특급살인사건""히다다까야마에서 사라진 여인""일본살인여행" 에 이어 네번째네요.

이 작품도 역시나 일종의 여정 미스터리로서 간사이 쪽 열차 노선인 기세이혼센 (紀勢本線) 의 여러 역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잠깐 조사해봤더니 굉장히 긴 철도더군요.
그러나 내용은 굉장히 보잘것 없고 밀도가 떨어지는 졸작이었습니다. 복잡하기만 할 뿐 알맹이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볼만한 요소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총 7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범인마저 토츠가와 경감에게 사살되는 등,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치고는 나름 피바다 계열로 사건 자체는 풍성합니다. 그러나 등장하는 사건들이 "연쇄살인"의 살인범과 그 "연쇄살인"을 추종해서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살인범과 그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살인범.. 이라는 식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뜬금없는 탓입니다. 
그나마 부가적인 연계 사건들을 잘 정리해서 전개했더라면 모를까, 이 작품에서는 연계 사건들은 왜 등장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겉돕니다. 사건들은 단지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만, 그리고 이야기를 벌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원래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유일한 역할마저도 중반 정도 되면 모두 해결되어서 이야기에서 아예 퇴장해 버립니다. 독자로서는 이 연계 사건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심 사건인 연쇄 살인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로운가? 라는 것도 역시 아니올시다 입니다. 일단 21세의 영문 이니셜이 Y.H이며 눈 밑에 점이 있는 직장 여성을 노리는 연쇄 살인이라는 설정 자체는 뭐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사의 포커스는 누가 봐도 어떻게 해당 인물을 범인이 골라낼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경찰들, 특히 나름 명탐정이라는 토츠가와 경감 조차도 이 점을 착안하지 못하고 거의 막판에 가서야 추리하여 결국 범인을 특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전에는 그냥 탐문, 탐문, 탐문밖에는 없습니다... 
또 이러한 착안점에서 범인을 특정한 다음에는 추리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전개는 너무 쉽게 간거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고요. 범인의 정체와 동기도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아빠진 진부한 설정이었어요.
한마디로 경찰이 조금만 더 머리를 써서 조사했더라면 진작에 해결되었을 사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추리의 영역이 아니라 기본적인 "초동수사"의 문제지요. 이 정도면 직무유기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게다가 너무 우연과 감에 의지하는 전개가 많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결국 범인의 최종 목표지점을 특정하는 것도 - "가까운 기세이혼센(紀勢本線) 중 K로 시작되는 곳" - 그냥 토츠가와는 "감"으로 "난키 시라하마"라 짐작하고 그곳에서 결국 범인을 잡게 됩니다. "K"로 시작되는 곳이라는 단서도 토츠가와의 "감" 앞에는 무력할 뿐이죠. 뒷부분에 "난키(南紀)라고 해도 좋을 고장이름을 기난(紀南)이라고 했다"는 식으로 빠져가나기는 하는데 이건 솔직히 반칙이죠. "서울의 옛 이름이 한성이었기 때문에 서울도 H로 시작하는 도시다!"라고 주장하는거하고 똑같잖아요...

마지막으로 항상 이야기하지만 "여정 미스터리"라는 소재에 어거지로 엮어볼려고 "기세이혼센" 과 "난키" 지방을 중심으로 다루는 설정 자체도 문제가 많아요. "삼단벽" 같은 해당 지방의 명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건과는 별 상관없는, 단지 특이한 지방의 특이한 풍광일 뿐 실제로 사건은 이게 도쿄나 오사카라도 아무런 상관없거든요. 이래서야 "부산 살인사건"이라고 하고 해운대만 잠깐 나와준다던가, "제주도 살인사건"이라고 한 뒤 용두암만 잠깐 나와주는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죠. 아무래도 작가의 여정 미스터리라는 쟝르에 대한 집착이 외려 화를 부른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관광가이드도 아니고... 시라하마 지방에서 돈이라도 받았나?

어떻게 된게 이 작가 작품은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가 없어지네요. 앞으로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는 "천사의 상흔"이나 일본 미스터리 문학상을 수상한 "종착역 살인사건" 정도의 작품이 아니면 찾아읽을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별점은 1점. 그만큼이나 최근 읽은 작품 중 최악이었습니다. 엔간한 졸작은 수작으로 보일만큼 추리와 설정, 내용 모두 별로였어요.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10/03/22

차일드 44 - 톰 롭 스미스 / 박산호 : 나에게는 별점 3점

차일드 44 - 6점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노블마인

스탈린 치하 러시아 비밀경찰인 MGA (KGB의 전신)의 유능한 요원인 레오는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출신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인물. 그러나 자신의 임무와 가족에 대한 깊은 갈등 끝에 부하 바실리의 음모로 민병대로 좌천된다. 그러나 좌천된 후 알게된 한 아동 살인사건일 계기로 사건의 연쇄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뒤, 아내 라이사와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소설을 알게된 것은 추리소설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2009 올해의 추리소설> 투표 때문이었습니다.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때문에 제가 이런류의 리스트에 굉장히 잘 혹하는지라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1위를 차지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2009년도에 읽었다 하더라도 저는 이 작품에 투표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일단 설정부터 제가 좋아하는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해서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음모가 있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체제때문에 파국에 휩싸인다는 것과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구 소련 독재치하의 국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이 사건과 더불어 숙청 등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 정말 비슷해요. 우리나라도 유신독재 - 전두환 독재 시절이 있었던 만큼 별로 신선한 설정도 아니고요.

게다가 추리적으로는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존하는 러시아의 연쇄살인범 안드레이 치카노프 사건에서 따왔다는 살인범 캐릭터와 범죄행각은 디테일하긴 한데 수사 과정은 그야말로 탐문과 증언 몇개일 뿐이거든요. 범행 장소를 통해 범인이 기차를 자주 이용한다는 것을 유추해내고,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기차를 자주 이용하는 직업이 몇개 없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기차역을 통해 용의자를 추리해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뻔할 뻔자였고 말이죠. 아울러 범인의 동기가 납득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이라는 것 역시 추리적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다 생각됩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설득력이 떨어져서 가장 중요한 악역인 바실리가 레오를 미워하는 이유가 뭔지부터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으며, 여러가지 위기가 레오와 라이사에게 닥칠때마다 정말 "운"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너무 쉽게 간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야기 서두를 통하여 독자가 살인범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도 추리소설로는 큰 약점이 아닐까 생각되며 후반부의 아주 약간의 반전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굉장히 흥미진진한 레오와 라이사의 모험 등 독자를 몰입시키는 재미와 함께 레닌그라드 기근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탈린 독재시대와 그 직후의 시대상에 대한 디테일 등 건질거리는 분명 있습니다. "범죄가 없는 이상적인 나라"를 표방하는 구소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는 딜레마에 대한 고찰은 굉장히 이색적이고요. 그러나 이러한 특이성 이외에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에 불과했다 여겨지네요. 차라리 실제 안드레이 치카노프를 다룬 논픽션으로 작업되는 것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컨텐츠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보니 추리 / 호러관련 독서 400번째 포스트군요! 참 많이도 읽긴 읽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촐하게 집에가서 맥주나 한잔 할 생각인데, 500권을 돌파하는 그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마한 자축연이라도 마련해야겠어요.^^

2022/06/24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잇폰기 도루 / 김은모 : 별점 2점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4점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서가 없어서 수사가 난항을 겪던 와중에 진범 '백신'이 다이요 신문의 기자 잇폰기 도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인간은 바이러스이며 자신은 백신이라며 잇폰기 도루와 다이요 신문 지면을 빌린 토론을 제안했다. 잇폰기 도루는 범인의 체포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토론에 응했고, 적자로 치닫던 다이요 신문의 경영도 급속도로 회복했다. 그리고 백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발표된 뒤, 잇폰기에게 에바라 요이치로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에 배달되었던 예고장을 들고....

신인작가 잇폰기 도루의 작품입니다. 제 27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에서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우수상 수상작이었다고 하네요. 드라마로까지 제작될 정도니 꽤 인기를 끈 듯 합니다. 정통 본격물 애호가로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의 권위를 잘 알고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문사 내의 조직 체계와 구성,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 신문사의 경영 상황 등 신문에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가 61년 생으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데뷰했다는데, 분명 신문사에서 일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전성기 정통 사회파 추리물이 연상될 정도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대조'를 통해 양 쪽 모두를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사용한게 독특했어요. 신문이 수행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역할과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의 대조, 백신의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주장과 그걸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광기와 추악함 설명과 함께 에바라 요이치로 시점에서 에바라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대조시키는 식입니다. 아울러 연쇄살인범이 신문 기자와 신문 지면을 통해 토론을 벌인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로왔으며, 살인범 에바라가 잇폰기 도루에게 집착한 이유가 아들 요이치로의 친부였기 때문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요소를 잘 살렸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개의 핵심인 '토론' 부터가 문제니까요. 비슷한 주장이 반복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인 내용까지 인용해가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은 하지만, 길게 묘사될 내용은 아니었어요. 신문에 실렸을거라 생각되는 글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백신의 성명을 기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식의 기사 형태가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전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왜 토론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부터 부족합니다. 에바라가 잇폰기에게 구태여 연락을 해서 요이치로의 친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이 부분을 뺀다 하더라도 전개에 별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바라가 과거 아동 학대의 피해자로 잘 성장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암에 걸린 아내의 사망으로 갑자기 분노가 폭발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여러 등장 인물들이 모두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불필요한 일종의 맥거핀일 뿐입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기대해 볼 만한 정통 본격물적인 요소도 기대 이하입니다. 진범이 에바라였다는 반전 자체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잇폰기에게 보낼 편지를 아들 요이치로가 봤다고 착각한 나머지,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식으로 둘러댔지만 자기가 받은 예고장과 실제 보낸 예고장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은게 발목을 잡는다는 상황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예고장을 언제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게 문제에요. 이 탓에 독자들은 공정하게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래서야 정통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지요. 

불특정 다수라 생각했던 피해자들의 연결고리가 '상수리 나무집'이라는 아동 보호 센터에 맡겨진 아이가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과 취재한 기자들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들 신상부터 파악하는게 수사와 취재의 기본이 아닐까요? 물론 저 단서만 가지고 진범 에바라를 찾아내는건 힘들었겠지만, 최소한 동기만큼은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에바라가 게가사와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행했던 여러가지 공작은 눈여겨볼만 했지만, 교수의 알리바이가 없었던건 어떻게보면 '운'의 영역이고, 신문사에서 협박 전화를 걸었던게 발각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벽하게 누명을 씌웠는데, 잇폰기 도루의 추리만 듣고 경찰도 에바라가 범인이라고 여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범행 현장에 남겨졌던 담배 꽁초의 DNA는 게가사와 교수의 것이었고, 게가사와 교수 연구실에서 백신이 편지를 보낼 때 썼던 봉랍과 스탬프가 발견되었으며 그 외 여러가지 증거들 모두가 게가사와 교수가 범인임을 가리키니까요. 백신의 편지보다 훨씬 명확한 증거잖아요?

또 사회파 추리물같았던 부분도 변죽만 올리고 끝나서 아쉽습니다. 특히 적자를 보던 다이요 신문이 살인범과의 토론으로 돈을 벌어서 기사회생한다는 딜레마를 잘 끝맺지 못한 탓이 커요. 괜히 다이요 신문 관계자가 범인이 아닐까하는 분위기만 살짝 풍기는게 전부거든요. 이런 사회파스러운 내용과 정통 본격물스러운 내용이 잘 결합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분리된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아예 사회파다운 이야기로 풀어내던가, 아니면 보다 본격적인 요소를 도입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양 쪽 모두에서 기대 이하인 이도저도 못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2008/07/19

GOTH - 오츠 이치 / 권일영 : 별점 2점

GOTH 고스 - 4점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오츠 이치의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ZOO"와 다른 점은 동일 캐릭터로 이루어진 연작 작품들 이라는 것으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네요.

쟝르는 "ZOO"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과 같은 호러 단편집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작품에 많이 도입했다는 점은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고 광고를 하고 있기도 했고 "ZOO"에서도 접했던 오츠 이치의 추리물은 꽤 완성도가 높았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곳곳에 적절하게 사용되는 편이고 정보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 본격물은 아니지만 추리물로서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6편 중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반 정도밖에는 안되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추리적인 요소만 놓고 봤을 때 작품들 중 베스트는 역시 "암흑계 Goth" 를 꼽겠습니다.

그러나 단편집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작품의 주인공인 "나"와 친구 "모리노 요루", 두명 모두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시종 설정이나 여러 묘사를 볼 때 역시나 오츠 이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솔직히 이상성격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 정도 설정이라면 거의 판타지나 다름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었거든요. 실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캐릭터들이 현실적으로 용납되는 사회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도 어느정도여야죠.... 부수적으로 특유의 적나라하며 잔인한 묘사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별점은 제 개인적 기준으로는 2점입니다. 본격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호러물로 보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는 적나라한 피떡 묘사만 난무하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거든요. 잔인한 묘사가 없이 추리 부분을 약간만 보강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추리 단편집으로 성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나저나, 작품을 2개나 읽었는데 이 작가가 왜 천재라고까지 불리우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장편을 읽어봐야 하나?
그리고 잔혹성으로 문제가 된 듯 한데, 최소한 19금 딱지는 붙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암흑계 GOTH
"나"는 의외로 공통의 취미를 가진 것을 알게되어 친해진 "모리노 요루"가 연쇄 엽기 살인마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된다. 유일한 단서는 모리노가 주웠던 연쇄살인마의 수첩. 수첩을 단서로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단편입니다. 연쇄 살인마가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추리 자체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지만 연쇄 엽기 살인마의 범행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잔인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2. 리스트 컷 사건 Wristcut
사람들의 손을 잘라가는 엽기 범죄가 일어나는데 "나"는 우연한 기회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주인공이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네요. 단서가 너무 적었거든요.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추리 자체는 말이 되긴 하는데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되고요.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약간의 섬뜩한 결론 빼고는 별로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2% 이상 부족한 작품.

3. 개 Dog
마을에 애완동물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는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여동생의 덕분에 애완동물들의 시체가 버려진 구덩이를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건의 전모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집에 속한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단편 중 하나인 "소녀의 기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결말은 보다 해피엔딩이긴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이 작품에서만 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추리라는 요소는 없어서 별로 건질건 없네요. "나"는 방관자일 뿐일텐데 말이죠....

4. 기억 Twins
모리노는 불면증에 걸린다. "나"는 그녀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목에 걸 끈"을 찾다가 그녀가 쌍둥이였고 그녀의 동생이 목을 메고 자살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사건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을 찾은 "나"는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게된다.
음.. "ZOO"의 "카자리와 요코"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한 설정이랄까요? 진상을 알게 되는 몇가지 단서와 추리는 좋았습니다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지만요.

5. 흙 Grave
사람을 생매장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범인. 그가 다음 타겟으로 납치한 것은 여고생 소녀였다. 그러나 납치 후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것을 알게된 그는 패닉에 빠지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찾아가게 된다.
시점이 주인공 "나" 에서 연쇄 살인범인 범인의 시점으로 이동한 단편입니다. 시점의 이동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범인의 심리묘사는 제법 그럴듯 했습니다. 또 "수첩"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는 추리의 과정들도 괜찮았고 마지막의 결말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우연에 기반한 설정이 좀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6. 목소리 Voice
엽기적으로 살해된 키타자와 히로코 사건이 발생한 이후, 히로코의 동생 나츠미에게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밝힌 고등학생이 나츠미에게 히로코 최후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전해준다. 테이프에 이끌려 나츠미 역시 마지막에 사지(死地)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마지막 작품으로 주인공과 키타자와 나츠미, 다시 주인공으로 세번 시점이 이동하는 작품입니다. 시점 이동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된 서술 트릭물이기 때문인데 좀 뻔한 트릭이라 사실 중간에 알아낼 수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끝나는 결말 덕분에 작품이 괜찮게 마무리 된 것 같긴 하네요.

2022/10/15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5점

이별의 수법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탓에 빈둥거리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무라 아키라. 위험한 구석이라곤 없는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 폐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던 왕년의 스타 배우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얄궂게도 그녀는 하무라 아키라에게 20년 전 가출한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하무라는 실종 직후 딸의 행방을 좇았던 탐정을 찾아가지만, 그 탐정 또한 20년 전에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의뢰인의 6촌 조카는 교살당했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가정부의 행방마저 묘연하다. 왕년의 배우를 둘러싼,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잦은 살인과 실종 사건들. 20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들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탐정은 왜 사라졌을까? 하무라 아키라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래된 비밀과 마주한다. (출판사 제공 소개)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 작품이 살인곰 서점 시리즈 중에서는 첫 작품입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리즈 연착륙을 노리고 단편집부터 발간했던게 이유였다는데, 독자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처사입니다.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답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별 것 아닌 의뢰로 보였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며 그 와중에 거친 (?) 액션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속 이야기가 많았던 다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는 다르게 정통, 본토 (?) 하드보일드 냄새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과거 유명 여배우이자 유력 정치인의 접대부 (?)였던 의뢰인, 의뢰 대상인 실종된 여배우의 딸은 유력 정치인의 손녀 + 강간 피해자 + 연쇄 살인범, 딸이 저지른 연쇄 살인의 끝은 어머니 살해라는 내용이니까요. 스케일은 본토 못지 않아요. 제목부터가 <<기나긴 이별>>스러웠는데, 알맹이도 만만치 않았던거지요.

다행히 이런 스케일 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는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가 조사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잘 묘사된 덕입니다. 전개도 매끄러우며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 과정도 아주 현실적이에요. 경찰이 아닌 일반인 탐정이 가능했을 조사의 최고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남다른 하무라의 눈썰미와 추리력은 여전하고, 사소한 단서들로 진상이 드러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 외에 함께 진행되는 사건들의 완성도도 높아요.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계기가 되었던, 백골 발견 사건처럼요. 살아있는 줄 알았던 아내 에이코가 알고 보니 변장한 남편이었고 백골이 에이코였다는 트릭인데 꽤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탐정 이와고 사건의 진상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장편 속에서 지나가는 사건으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했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무라 아키라 2기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막을 여는 작품답게 백곰 탐정사 설립 유래도 등장하고,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등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이런저런 리스트에서 베스트 10 안에 포함된건 -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0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 등 - 당연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전개 중간중간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걸리는 탓입니다. 우선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부터가 억지입니다. 과거 시오리가 사라졌던건 후부키가 시오리의 살인 행각을 알고난 뒤 시오리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후부키는 시오리가 죽었고,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가 사체를 처리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 주변에 시오리를 닮은 누군가 (알고보니 진짜였지만)가 출몰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20년 전에 시오리를 처리했다는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는 건재했으니까요. 그냥 야마모토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어요!
야마모토가 시오리와 관계를 가진 탓에 미안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랬다면 의뢰는 비서를 찾아달라는걸로 족합니다.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면, 탐정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연쇄 살인이 드러날지도 모르잖아요. 20년 전 처럼 시오리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실제로 하무라는 시오리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녀가 사라진 이유 등 모든 진상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스러운 의뢰였습니다.

시오리의 연쇄 살인도 하무라의 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급작스러울 뿐더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시오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녀의 캐릭터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탓입니다.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과거 언급이 전부인데, 이 아픈 기억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범행에 대한 묘사도 전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야마모토의 여동생 유코는 그녀가 시오리를 도발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는데,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는 대체 왜 죽인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부키가 시오리의 최종 목표였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럴거라면 과거에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를 살해했을 때 같이 죽이려 했어야지요. 또 시오리가 입원 중이었던 병원을 몰래 빠져나온지도 3주 정도 지났다고 설명되는데, 왜 주위만 맴돌고 진작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뚱뚱한 시오리가 후부키를 덥치고, 그걸 막는 하무라와의 사투는 지나칠정도로 전형적이면서 크리쳐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매니저 야마모토의 복수 - 성폭행을 저질러 시오리를 연쇄 살인마로 만든 안자이에 대한 - 도 뜬금없었고, 20년 전 1990년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순 실종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이모 할머니 사건이야 그렇다쳐도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던 하나 사건, 유코 사건은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을텐데 그 경과는 대충 넘어갑니다.

또 곁가지 사건 중 친구인 줄 알았던 악녀 마미가 얽힌 사건은 비중은 제일 큰 반면 내용은 별게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벤트를 가장한 불법 카지노 운영 방식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기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무라를 속여넘긴 프로 범죄자이자 일종의 생활밀착형 사이코패스 마미 묘사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계속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의 확장형이기도 한데, 이후 시리즈가 생활밀착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만큼은 분명합니다.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읽는 동안에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나쁜 토끼>>의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생활밀착형 하드보일드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