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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매슈 설리번 / 유소영 : 별점 2.5점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6점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나무옆의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디아는 일하던 서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청년 조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이의 주머니에는 리디아가 열 살 때 단짝들과 함께 했던 생일 파티 사진이 들어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에게 남겨진 조이의 유품 속 책들을 오려낸 빈 공간이, 짝이 되는 다른 책을 맞추면 메시지를 표시하기 위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조이가 남긴 메시지를 통해 그녀의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 "망치 살인마" 사건의 진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우연찮게 e-book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디아가 과거 망치 살인마의 연쇄 살인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으며, 이를 억지로 잊고 살다가 조이가 자살하고 남긴 메시지 때문에 반 강제로 망치 살인마의 정체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망치 살인마가 리디아가 숨어있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었다는 현장 묘사, 그리고 수상쩍은 아버지 토마스의 행동을 결부시켜 아버지가 진범이 아닐까?라는 전개로 진행되었지만, 조이가 라지의 이복 동생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반전이 괜찮습니다. 조지가 사진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리디아가 아니라 이복형 라지가 같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망치 살인마는 아내의 불륜 상대를 가혹하게 응징한 파텔 씨라는게 드러나지요.
이는 파텔 씨가 엄청나게 호전적이고 무서운 성격이며 조지가 유품으로 남긴 정장(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입으려고 산 것), 조지와 라지 모두 잘 생겼으며 파텔 부인이 미인이었다는 묘사, 파텔 부인이 망치 살인마 사건 직후 인도의 고향으로 가서 9개월 후에 돌아왔다는 등의 여러가지 복선으로 잘 설명되고 있어서 나름 설득력도 높습니다. 아버지 토마스의 수상쩍은 행동 역시 피해자였던 오툴 부인과 불륜 관계였다는 설정으로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 파텔 부인이 더 이상 참지 않았다는 결말도 깔끔합니다. 또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지만 장황한 심리 묘사가 많지 않아서 읽기 수월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묘사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경쾌하고 깔끔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주인공이 서점 직원인 덕분에 등장하는 많은 책들도 반가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리디아가 서점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지배인에게 추천했던 책은 "백 년 동안의 고독", 리디아가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량들을 지칭할 때 쓰는 '책 개구리'라는 표현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속 멋쟁이 개구리 제레미 피셔에서 따온 것, 조이가 남긴 책 중 리디아가 추천해서 산 책은 "나사의 회전"과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 3부작 등인 식으로요.

그러나 잘 짜여진 범죄 스릴러,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정교하다고 보기는 힘든 탓입니다. 우선 당시 형사였던 모버그의 말대로 토마스는 유력한 용의자 No.1입니다. 리디아를 찾는다는 이유로 현장을 모두 들 쑤셔 놓았을 뿐 아니라 흉기까지 들고 설쳤으며, 피해자 중 오툴 부인에게만 그의 핏자욱을 남긴 등의 정황 증거부터 차고 넘치니까요. 알리바이도 없고, 무엇보다도 리디아가 숨어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살려주었다는 건 누가 뭐래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유죄 판결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단지 '리디아가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는 이유만으로 윗 선에서 압력이 가해져 토마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중지되었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어금니 아빠 이영학을 딸이 불쌍하다고 풀어준다는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게다가 조지가 리디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유품을 남긴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구태여 리디아를 찾아가 얼쩡거린 이유, 자살하면서 유품과 메시지를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지를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을텐데요. 작 중 리디아의 서점 동료인 플라스의 말대로 '웨이터에게 팁도 안 주는 짓거리' 같은 민폐에 불과합니다.
메시지도 이렇게 장황하게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종이에 힘들게 칼질을 해서 구멍을 뚫는 것 보다는, 요약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어머니가 나를 부정했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라고 써도 충분합니다. 암호 트릭 자체로는 그럴싸하지만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데 읽는 재미는 충분한 만큼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겠습니다.

2005/06/22

마지막 파티 - 윌리엄 캐츠 : 별점 2.5점

마지막 파티 윌리엄 캐츠 지음, 정태원 옮김/고려원(고려원미디어)

사만다는 꿈에 그리던 남자인 남편 마티를 만나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결혼 1년차의 주부. 그녀는 남편의 다가오는 생일을 맞아 기억에 남을 파티를 준비하려고 남편의 과거 학교 친구와 은사를 초대하려 하나, 그때부터 남편의 과거가 다 거짓이고 자신이 알고있는 남편 마티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 해마다 12월 5일에 벌어지는 "캘린더"살인마로 불리우는 인물에 의한 연쇄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스펜서 크로스 경감은 우연히 입수한 사만다의 신고 파일을 통해 마티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수사에 착수하는데...

고려원 미스터리에서 출간된 연쇄 살인마를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물.

남편의 과거에 대한 거짓을 깨닫고, 조사가 거듭될 수록 남편의 무서운 과거가 드러난다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죠. 이야기의 전개 역시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스릴러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고요. 내용도 수사과정에 많이 치우쳐져 있으며 범인과 진상 역시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편이라 추리적인 요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드러나는 진상과 연쇄살인과 연계된 스토리 구성은 제법 짜임새있고 흥미진진합니다. 작가가 독자를 사로잡는 포인트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사만다의 남편의 과거에 대한 추적과 살인마가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는 과정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부분이 특히 탁월하며 사건에도 12월 5일이라는 일종의 "시한 장치"가 있다는 설정이 아주 돋보였어요.
무엇보다도 후반부에 2번의 반전으로 진부함을 상쇄시켜 주고 있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좀 뻔한 이야기 전개에 의외성과 재미를 부여해 주는 요소로 잘 활용되고 있거든요. 특히 그야말로 의표를 찌르는 첫번째 반전이 아주 좋더군요. 두번째 반전은 사실 예측 가능한, 좀 뻔하고 안일한 설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지니까요.
그 외에도 남편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고민하는 사만다와 연쇄살인마의 심리묘사 디테일도 상당한 수준이라 이래저래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형적이고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으나 최소한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2015/01/23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브렌다 랠프 루이스 / 이경식 : 별점 2점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4점
브렌다 랠프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이런 류 연쇄살인범 관련 논픽션은 그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이 읽어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의 흥미, 그리고 창작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자료 및 아이디어 확보 측면에서 말이죠. 허나 세계적인 연쇄살인마가 흔한 것도 아닌만큼 몇권 읽으면 충분하기는 합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발표된 책이라면 미국 중심이기에 미국의 유명 살인마들 - 에드 게인테드 번디, 샘의 아들, 나이트 스토커 등등 - 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지도에 매핑했다는 제목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거든요. 미드 <넘버스>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학자 동생이 무작위로 보이는 범죄 행위가 실제로는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수학이론을 통해 밝혀내고 (범인이 범행 장소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무작위적으로 범행 장소가 바뀌지만 이러한 무작위는 외려 작위적인 수열을 형성하므로 그 시작점을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 범인이 어디 있을지 추론하던 에피소드였죠.

그러나... 지도 매핑은 그냥 범죄 행위를 지도에 그려놓은 것일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도가 실려있을 뿐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범죄행각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방식은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해요.
물론 이 책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가 별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낫고 그 외의 도판들, 예컨데 피해자 사진들이 조금 더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살인마 찰스 소브라즈, 트럭 운전사 연쇄 교살범 폴커 에케르트 등의 연쇄살인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졌기에 최근의 범죄, 배낭여행객 살인자 이반 밀라트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워싱턴의 저격수 존 앨런 무하메드와 리 보이드 말보, 베르사체 저격범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얼마전 보았던 영화 <툼스톤>의 원작 <무덤으로 향하다>의 범인들 모델로 생각되는 싸이코패스 컴비인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살인마 비태커와 노리스 이야기도 충격적이고 놀라왔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처럼 조금 더 생생하게 쓰여진 것과 체포와 수사 과정 및 범인들이 체포된 이후 사법거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던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던가, 사형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놀랍게도 해당 국가의 형법이 정해져 있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안데스의 괴물 페드로 로페즈) 등의 후일담까지 꼼꼼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반 밀라트 차에 탔던 영국인 여행자가 가방과 여권을 모두 버려두고 달아난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우 의외로 살아난 경우가 많거나, 최소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허나 장점보다는 제목에 낚인 듯한 기분도 크며 내용도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제 이런 책은 좀 많이 지겹습니다...

그나저나 외국 살인자들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별명이 있는데 참 기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면 장난스럽다고 엄청 공격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국가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2013/12/25

내 안의 살인마 - 짐 톰슨 / 박산호 : 별점 3점

내 안의 살인마 - 6점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텍사스 작은 마을의 신뢰받는 부 보안관 루 포드는 창녀 조이스와 얽힌 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정신적인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조이스를 그녀를 짝사랑하는 엘머 콘웨이와 엮어 살해했지만 조이스가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 채 발견되자 루는 걷잡을 수 없게 폭주하게 되는데....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지만, 운 좋게 그것을 숨겨온 주인공 루 포드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주를 벌이는 이야기를 1인칭으로 그린 범죄 -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1952년도에 발표된 고전이기도 합니다. 이 리스트가 없었더라면 아마 읽게 되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여튼 찾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작품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돌직구'입니다. 죽이고 싶고, 죽여야 하면 바로 죽입니다. 이렇게 시종일관 돌직구 스트라이크가 팍팍 꽂힙니다. 때문에 루 포드 캐릭터 묘사가 가장 중요한데 캐릭터 묘사, 즉 직구의 구위 역시 일품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굿 가이로 통하지만 실상은 잔인무도한 살인마 주인공이 이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된 작품도 드물지요. 1인칭 시점으로 여러 가지 살인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게 냉정하면서도 하나의 게임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정말로 오싹할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소시오패스 그 자체인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귀공자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가 살짝 연상되는데, 작품 발표 시기가 테드 번디 사건 20여 년 전이라는걸 보면 그야말로 이 분야의 선구자라 불러도 무방할 겁니다.

이러한 캐릭터를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그리는 묘사도 대단합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맘먹고 그려낸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인데, 1인칭 하드보일드 스타일 범죄물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등의 작품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의 범인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타당한 동기는 뒷전인 살인마니까요.

아울러 최초 범행에서 받은 뒤 우연찮게 사용한 20불의 존재가 동네의 껄렁한 불량아인 조니에게 이어지고, 교도소 안에서 살해한 조니가 사실 알리바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다른 희생양을 찾아 약혼녀를 살해하고, 협박범을 강도로 위장하여 살해하는 등의 모든 범행이 1인칭으로 그려져서 도서 추리물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것도 독특했어요. 마지막의 조이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사실상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죠.

그러나 불필요한 잔설정이 많은 것은 좀 아쉽더군요. 초반에 루 포드가 다국어를 하고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푸는 지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후 그러한 설정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 포드가 정신적 문제를 가지게 된 계기인 가정부와의 에피소드, 그의 죄를 뒤집어썼던 의붓형 마이크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사족이었습니다. 이왕지사 돌직구를 날리려면 그냥 나쁜 놈이다는 식으로 가는 게 더 좋았을 겁니다.

전개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콘웨이는 처음부터 진범을 알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초반에 보안관 밥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는 것이나, 조니 파파스의 아버지 가게를 리모델링하는걸 돕는 식으로요. 그런데 왜 루 포드를 그냥 방치해서 사건을 키우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 변호사 빌리 보이 워커가 루 포드를 정신병원에서 꺼낸 것 때문에 불필요한 마지막 사건이 또 일어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이렇게 설정면의 오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는 어딘가의 연재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만듭니다(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문제는 있지만 강력한 소설로, 컨트롤은 별로지만 돌직구 하나로 타자를 제압하는 투수가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묵직한, 불쾌감 남는 묘사 탓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려우나 명성에 어울리는 가치는 충분하죠. 시대를 뛰어넘어 여러 차례 영화화 된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에 읽고 리뷰를 올리기에는 좀 너무하네요....

2008/07/19

GOTH - 오츠 이치 / 권일영 : 별점 2점

GOTH 고스 - 4점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오츠 이치의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ZOO"와 다른 점은 동일 캐릭터로 이루어진 연작 작품들 이라는 것으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네요.

쟝르는 "ZOO"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과 같은 호러 단편집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작품에 많이 도입했다는 점은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고 광고를 하고 있기도 했고 "ZOO"에서도 접했던 오츠 이치의 추리물은 꽤 완성도가 높았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곳곳에 적절하게 사용되는 편이고 정보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 본격물은 아니지만 추리물로서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6편 중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반 정도밖에는 안되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추리적인 요소만 놓고 봤을 때 작품들 중 베스트는 역시 "암흑계 Goth" 를 꼽겠습니다.

그러나 단편집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작품의 주인공인 "나"와 친구 "모리노 요루", 두명 모두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시종 설정이나 여러 묘사를 볼 때 역시나 오츠 이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솔직히 이상성격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 정도 설정이라면 거의 판타지나 다름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었거든요. 실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캐릭터들이 현실적으로 용납되는 사회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도 어느정도여야죠.... 부수적으로 특유의 적나라하며 잔인한 묘사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별점은 제 개인적 기준으로는 2점입니다. 본격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호러물로 보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는 적나라한 피떡 묘사만 난무하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거든요. 잔인한 묘사가 없이 추리 부분을 약간만 보강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추리 단편집으로 성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나저나, 작품을 2개나 읽었는데 이 작가가 왜 천재라고까지 불리우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장편을 읽어봐야 하나?
그리고 잔혹성으로 문제가 된 듯 한데, 최소한 19금 딱지는 붙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암흑계 GOTH
"나"는 의외로 공통의 취미를 가진 것을 알게되어 친해진 "모리노 요루"가 연쇄 엽기 살인마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된다. 유일한 단서는 모리노가 주웠던 연쇄살인마의 수첩. 수첩을 단서로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단편입니다. 연쇄 살인마가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추리 자체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지만 연쇄 엽기 살인마의 범행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잔인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2. 리스트 컷 사건 Wristcut
사람들의 손을 잘라가는 엽기 범죄가 일어나는데 "나"는 우연한 기회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주인공이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네요. 단서가 너무 적었거든요.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추리 자체는 말이 되긴 하는데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되고요.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약간의 섬뜩한 결론 빼고는 별로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2% 이상 부족한 작품.

3. 개 Dog
마을에 애완동물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는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여동생의 덕분에 애완동물들의 시체가 버려진 구덩이를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건의 전모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집에 속한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단편 중 하나인 "소녀의 기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결말은 보다 해피엔딩이긴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이 작품에서만 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추리라는 요소는 없어서 별로 건질건 없네요. "나"는 방관자일 뿐일텐데 말이죠....

4. 기억 Twins
모리노는 불면증에 걸린다. "나"는 그녀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목에 걸 끈"을 찾다가 그녀가 쌍둥이였고 그녀의 동생이 목을 메고 자살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사건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을 찾은 "나"는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게된다.
음.. "ZOO"의 "카자리와 요코"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한 설정이랄까요? 진상을 알게 되는 몇가지 단서와 추리는 좋았습니다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지만요.

5. 흙 Grave
사람을 생매장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범인. 그가 다음 타겟으로 납치한 것은 여고생 소녀였다. 그러나 납치 후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것을 알게된 그는 패닉에 빠지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찾아가게 된다.
시점이 주인공 "나" 에서 연쇄 살인범인 범인의 시점으로 이동한 단편입니다. 시점의 이동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범인의 심리묘사는 제법 그럴듯 했습니다. 또 "수첩"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는 추리의 과정들도 괜찮았고 마지막의 결말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우연에 기반한 설정이 좀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6. 목소리 Voice
엽기적으로 살해된 키타자와 히로코 사건이 발생한 이후, 히로코의 동생 나츠미에게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밝힌 고등학생이 나츠미에게 히로코 최후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전해준다. 테이프에 이끌려 나츠미 역시 마지막에 사지(死地)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마지막 작품으로 주인공과 키타자와 나츠미, 다시 주인공으로 세번 시점이 이동하는 작품입니다. 시점 이동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된 서술 트릭물이기 때문인데 좀 뻔한 트릭이라 사실 중간에 알아낼 수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끝나는 결말 덕분에 작품이 괜찮게 마무리 된 것 같긴 하네요.

2024/02/02

흉인저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흉인저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와 겐자키는 나루시마의 의뢰로 폐허 놀이동산으로 유명한 드림 시티로 향했다. 드림 시티의 대표 후기 겐스케로부터 구 마다라메 기관에서 연구했던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나루시마는 용병들까지 고용하여 만전을 기했다. 드림 시티 안에 있는, 후기 겐스케가 거주하는 흉인저는 매달 종업원 한 명이 불려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입한 일행은 흉인저 안에서 후기를 제압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모두 갇힌 채 외팔이 살인마 거인을 만나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거인이 햇빛을 싫어하여 낮에는 비교적 안전하게 탈출을 고민할 수 있었다. 폐쇄된 문을 부수는건 거인이 밖으로 나가 더 큰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기에, 첫 날 살해당한 코치맨이 가지고 있던 열쇠를 어떻게든 회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탈출을 준비하던 중 생존한 일행 내부에 또다른 살인자가 있다는게 드러났다. 후기와 흉인저 고용인 사이가가 살해당한 탓이었다. 뒤이어 거인을 유인하여 열쇠를 회수하는 작전도 실패했고 나루시마마저 거인에게 살해당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하무라와 겐자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마다라메 기관이라는 연구 기관에서 비롯된 괴물, 괴인들이 핵심 소재인 '특수 설정'이 여전히 작품의 중심입니다. 이번에는 강화된 신체를 얻은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임에도 쉽게 읽힙니다. "13일의 금요일"과 유사한, 초강력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호러물로 기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주는 덕분입니다. 살인마를 피해 탈출하기 위한 작전과 쫓고 쫓기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 흥미진진하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후기를 살해한 범인이 고리키 미야코라는걸 밝히는 겐자키의 추리부터 깔끔했습니다. '거인이 거주구역을 오가는 철문을 연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거인은 외팔이라 머리 두 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를 잠깐 내려 놓았을 수는 있지만 후기의 머리는 먼지가 묻지 않고 깔끔했다' 등의 근거를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든 단서와 근거들은 독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고양이 장식 눈에 박혀있던 '알렉산드라이트'에 대한 말실수는 좀 오버스럽긴 했지만요.
사이가를 살해하고, 살해된 사이가의 머리를 머리 무덤으로 옮겨 놓은 사건은 불가능 범죄라 더 흥미롭습니다. 아침이 되기까지 사이가의 시체가 놓여있던 부구획에 드나든 건 거인밖에 없었습니다. 부구획은 하무라와 아울이, 주구획은 보스가 밤새 감시를 했었지요. 주구획 쪽에서 창문 너머로 목을 절단하기도 불가능했습니다. 밤이 되기 전 사이가의 목을 미리 잘라놓은게 아닐까?라는 것도 현장에 있던 중식도는 거인이 깨어난 뒤 나루시마가 후기의 방에서 가지고 나간 물건이었다는 점에서 부정되고요. 시신 주변에 고인 피가 굳은 상태로 보면 목이 절단되고 아홉 시간 가까이 지났기에 거인이 아침에 자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사이가의 목을 절단했을까요? 겐자키는 '목이 야간에 절단되었다'는걸 증명하는건 피가 굳은 상태 뿐이라는데 주목해서 거인과 같은 특수 능력을 갖춘 '생존자'가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자신의 피를 뿌려 굳혔다는 트릭을 밝혀냅니다. '생존자'는 경이적인 생명력과 치유력을 갖춘 덕분에, 피를 많이 흘리고도 멀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인이 아침에 거처로 돌아가면서 시신의 목을 절단했던겁니다. 이렇게 특수 설정이 트릭으로 활용된건, 정통 본격물로는 반칙이겠지만 이 작품에는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생각됩니다. 재미도 있었고요.
반드시 피해자 목을 절단한 뒤 '머리 무덤'에 버리는 거인의 버릇을 이용해서 열쇠를 회수한 마지막 장면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생존자' 우라이는 코치맨의 시체에서 열쇠를 회수한 뒤 열쇠를 입 안에 넣었고, 머리 무덤 안에 숨어있던 겐자키가 거인이 가져다 버린 우라이 머리에서 열쇠를 회수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머리 무덤'의 존재와 거인의 버릇이라는 특수 설정을 활용했다는건 두 번째 살인 사건 트릭과 유사한데, 이런게 이 작품의 묘미겠지요.
미스터리 애호회에 가입하려는 친구들에게 테스트를 하는 도입부도 "9마일은 너무 멀다"가 떠오르는 소소한 재미가 좋았으며, 그 외 안락의자 탐정에 대한 의견이나 탐정과 범인의 역할에 대한 담론 및 기타 추리들도 풍성한 편입니다.

그러나 '특수 설정'을 위한 여러 설명들이 유치하고 작위적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거인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케이라는 소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녀가 거인이며, 살육은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을 원숭이 괴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반전은 뻔하면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미쳐버린 케이를 후기가 그동안 어떻게 돌봐왔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생존자'는 거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얻었는데, 유사한 생명력과 치유력을 갖췄다는 것도 지극히 편의적인 설정이었으며, 우라이 고타가 무려 30년 전에 케이와 했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함께'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는 살인 (사이가 살해)을 저지른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작품의 핵심이라서, 이렇게 동기가 부실하다는건 추리물로는 큰 약점일 수 밖에 없어요.

작위적인 설정은 그 밖에도 넘쳐납니다.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고용하고, 이들 중 한 명을 매달 거인에게 산제물로 바친다는 설정은 이게 과연 21세기의 이야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마다라메 기관의 연구 성과를 노린다는 나루시마, 사고를 불러오는 명문가의 영애 겐자키 설정도 한결같이 만화스러웠고요. "13일의 금요일"이 떠오르는 거인 케이 설정 역시 뻔해서 고민한 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런 점들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고질적인, 당연한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2차 대전 때 생체 실험을 하다가 괴물을 만들었고, 전후 공습으로 폐허가 된 연구소 내에서 생존한 연구원이 괴물을 데리고 연구를 이어왔지만 괴물의 친구가 모든걸 끝내기 위해 찾아왔다는 정도로 끌어나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이가도 단순 고용인이 아니라, 연구소 내 연구원 중 한명이었다고 설명하면 동기가 설명되었을거고요. 너무 "경성크리처"스러웠을까요?
아울러 '흉인저''의 복잡한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장황한 것도 별로였습니다. 계속 앞 부분에 수록된 약도를 찾아 읽게끔 하는 상세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사건과 추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었던 탓입니다.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단점이 적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건 감안해야겠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최소한 "마안갑의 살인"보다는 좋았습니다.

2017/07/08

좀비 - 조이스 캐롤 오츠 / 공경희 : 별점 2.5점

좀비 - 6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Q_는 얼마전 저지른 흑인 소년 성추행 건으로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유명 교수의 아들로, 변태적인 싸이코로 진화한 뒤 '전두엽 절제 수술'로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일종의 성노예 좀비를 만들 꿈을 꾸는데...

명성이 자자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입니다. 스티븐 킹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현대를 대표하는 공포, 호러 소설 중 한편으로 극찬했었기에 평소 관심을 두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달라서 의외네요.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는 크리처 호러를 생각했는데 작품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같은, 변태 싸이코 살인마범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서 봄직한, 무의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내 안의 살인마"의 주인공 루 포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즉 그냥 '죽이고 싶으면' 죽입니다. 즉, 무계획적이고 돌직구같은 범행이지요. 그러나 Q_의 범죄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점이 독특했어요. 

들은 바 대로 묘사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다람쥐'를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디테일이 지나쳐서 쉽게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세한 디테일 - Q_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기타 여러가지 설정들 - 을 적재적소에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드러나고 부각되게 만드는 솜씨도 훌륭해요. 

아울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좀비'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본인에게 별다른 매력도 없는 싸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설득력이 높습니다. 물론 대학을 수차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것으로 보이는) Q_가 전두엽 절제 수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다는건 다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미친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야겠지요. 최소한 '최면술' 따위나 실제 좀비 전설의 원전인 '부두교 주술'보다는 과학적이긴 하고요.
26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읽기 쉬웠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범죄극에 딱 맞는 적절한 분량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살인마"도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주인공 Q_ (쿠엔틴인데 1인칭 시점에서는 항상 Q_로 묘사됩니다)가 상상 이상의 변태이며, 범죄도 혐오스럽기 그지 없는 탓입니다. 하드고어적인 내용만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별로 다를게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Q_의 동성애 취향, 그리고 기껏 전두엽 절제술로 만든 좀비를 만들어 성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목표도 너무 싸구려 성인물같아서 역겨웠고요. 

엽기적인 변태 싸이코가 등장하더라도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처럼 별다르게 범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전개라면 모를까, 이렇게 살아있을 가치가 전무한 주인공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마무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Q_가 자신이 관리하는 하숙집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거장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또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2014/09/17

낮비 1~6 - 후루야 미노루 : 별점 2.5점

너무나 외롭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무것도 없는 하루하루에 불만인 주인공 오카다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 동료 안도에게 말을 걸고,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안도가 짝사랑하는 유카와의 만남, 그리고 유카를 죽이려는 연쇄살인마이자 고교 동창 모리타의 등장...

후루야 미노루의 우울 + 심각 계열 작품으로 전작인 "시가테라"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루저에 가까운 주인공에게 미모의 여자친구가 먼저 대시한다는 판타지, 고교 동창인 사이코패스와 주변 인물들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상한 상황에 처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거의 판박이거든요. 왕따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고요.

그러나 "시가테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가테라"의 주인공 오기노는 왕따 피해자라서 핵심 사건에서 주변에만 있기 힘든 탓에 이런저런 일에 계속 휩쓸리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커플인 오카다와 유카의 연애담과 비일상적인 연쇄살인마 모리타의 살인 행각이 분리되어 교차 전개(물론 나중에 합쳐지지만)된다는 점입니다. 오기노 캐릭터의 평범한 부분과 피해자 부분을 둘로 나눈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오카다와 유카 커플, 그리고 안도가 등장하여 양념을 쳐주는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고집하는 상남자 안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개그 센스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요. 안도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이 나와도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에 반해 모리타의 폭주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환상을 확실히 깨준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하고 있으며, 막판까지 사이코 범죄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맛도 있지만 너무나 몰상식한 연쇄살인마로 묘사되기에 과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가테라" 정도로—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꼴통이 살인마더라, 중퇴당한 고교 동창은 야쿠자가 되었더라—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아니면 차라리 모리타가 오카다와 유카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고 끝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무계획으로 막 나가는 모리타가 유일하게 목표하고 계획한 것이 바로 둘의 살해인데, 다른 우발적인 살인은 잘도 저지르면서 정작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풍자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모리타가 학생 때 자신이 비정상임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체포로 이어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갑자기 '모리타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뜬금없기도 했고요.

그래도 "시가테라"보다는 마무리가 깔끔할 뿐더러 나름 해피엔딩—어쨌든 오카다 커플은 목숨을 건지고, 안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성이 생기고, 모리타는 체포되니 만큼—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되는 구성도 괜찮았고요. 두 작품의 장점만 하나로 합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카다와 유카의 미래에 행복만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09/07/15

하숙인 (the Lodger) (2009) - 데이빗 온다치 : 별점 3점

하숙인 - 6점
알프레드 몰리나, 데이빗 온다치/소니픽쳐스

별채에 하숙을 운영하는 엘렌에게 말콤이라는 하숙인이 나타난다. 그리고 시내에서는 7년전과 동일한 잔혹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7년전에 범인을 체포했던 매닝형사는 범인이 아닌 사람을 사형대로 보냈다는 것 등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다시 수사를 책임진 매닝은 범인이 영국의 전설적 연쇄살인마 "잭더리퍼"의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외려 그런 그의 수사를 통해 경찰 수뇌진은 매닝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한편 엘렌은 하숙인이 연쇄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여러가지 증거를 잡지만 하숙인에게 마음이 끌려 주저하게 되는데...

히치콕 감독의 1944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원작은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좋은점 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의 정해진 길을 잘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범인이 과연 누굴까? 라는 긴장감과 더불어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기를 잘 그려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상당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시각적으로 잔인한 묘사가 많은 요사이 영화들에 비해서 살해 장면들은 그다지 잔인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지만 섬뜩한 앵글과 효과로 분위기를 잡아가는 것도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 이런게 히치콕 스타일이야! 마지막으로 반전 영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2번의 반전이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예상대로 흘러가는 반전이고 반전 두개 중 한개는 확실히 수비범위 안이긴 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반전이라 마음에 듭니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라 이야기에 아주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첫번째 반전에서 엘렌의 마지막 대사는 정말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또 아주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는게 단점도 많이 있습니다. 일단 "잭더리퍼"까지 끌어들인 각본이 좀 혼란스럽습니다. 그냥 잔인한 연쇄살인마라고 하면 돼지 구태여 이런 도시괴담스러운 이야기를 꼭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거든요. 범인을 특정하거나 잡는것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특색있는 살인마 캐릭터를 위한 곁가지 이야기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야기의 중요한 축의 하나인 매닝형사가 궁지에 몰리는 과정도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등 뒤로 가면 갈수록 극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쉽네요. 반전은 괜찮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빈약해진달까요? 마지막 타겟이 매닝형사 딸로 설정된건 그야말로 코미디고요.

무엇보다도 감독이 10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인데 흡사 대학을 갓 졸업한 영화학도가 만든 작품이라 생각될 정도로 불필요한 기교가 난무합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쓰잘데 없는 줌인트랙아웃이나 스텝프린팅, 필름 빨리 감기 등 기교의 과잉으로 외려 영화가 더 정신없어졌어요. 앞서 말한 좋은 점 중 하나인 "살해 장면" 정도로만 기교를 부렸다면 딱 좋았을텐데 말이죠. 촬영감독이 "쏘우" 시리즈 감독이라는데 좀...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주말 한때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절한 수준의 서스펜스와 재미는 전해주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야말로 기대한 만큼의, 딱 그 수준에 맞춰진 영화였어요. 요새같은 장마철 비오는날 보면 딱 어울릴 것 같네요.

2019/10/20

기억 파단자 - 고바야시 야스미 / 주자덕 : 별점 1.5점

기억 파단자 - 4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낯선 방에서 깨어난 니키치는 머리맡에 놓여 있는 한 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그리고 노트를 통해 자신이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타인의 기억을 개조하는 초능력을 가진 살인마와 대면하게 되는데……. 의지할 수 있는 건 노트와 잃어버린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발달한 뛰어난 추리력과 판단력을 가진 두뇌뿐이다. 니키치는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출판사 책 소개 인용)

"앨리스 죽이기" 등으로 접했었던 공학 박사 학위를 지닌 공대생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장편 스릴러입니다. '기억 파탄'이 아니라 '기억 파단 (記憶破断)' 이라는 제목과 책 소갯글 그대로, '기억의 단절'을 핵심 소재로 다룹니다. 기억을 이어 나갈 수 없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환자 니키치와 타인과 접촉하여 연속된 기억 속에 기억을 추가하여 기억 그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초능력자 키라와 한 판 승부에서 단기 기억 상실증은 기억파단 그 자체이고, 기억 속에 다른 기억을 집어 넣어 왜곡하는 것 역시 연속된 기억을 파괴하는 행위니까요.

니키치는 자신이 기록한 노트로만 이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대응하며, 이 노트를 통해 키라와 맞서 싸우는데 이를 위해 등장하는 설정들이 상당히 괜찮습니다. 노트의 사용법과 생활 방법 등에 대한 디테일이 꽤 그럴싸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기억을 온전하게 노트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반전 요소로 써먹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반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후 키라의 범죄 행위가 담긴 USB 메모리를 '서랍에 넣어 놓았다'는 노트 메모를 통해 알게 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데 애초에 이 메모 자체가 거짓이었습니다. 키라에게 헛수고를 하게 만들고 실제로 교코를 통해 USB를 안전하게 빼돌리려는 계획이었거든요. 이렇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억' 그 자체가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는 병 때문에 쉽게 왜곡할 수 있다는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기 때문에 기억을 조작하는 키라의 초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아이디어도 괜찮았어요. 본인이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사고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는데, 새로운 기억이 생겨난건 분명 누군가의 조작이라는 논리인데 설득력있지요. 이걸 이렇게 써먹나 싶어 감탄스럽기도 했고요.

그러나 사실 이 반전 외에 딱히 건질게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니키치 관련 주요 설정은 명백히 영화 "메멘토"에서 설정을 따 온 것이니까요. 노트의 메모가 중요하며, 또 자신의 '글씨체'로 기록한 메모만이 중요하는 점과 사진을 주요 기적 보조재로 사용하는 점이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억은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박이에요. 나쁜 기억 대신 자신이나 타인이 왜곡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부분의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단기 기억 상실증은 "메멘토" 등을 통해 구축된 설정과 세계관이 반영되어 나름 설득력이 높은데 반해 키라의 초능력은 너무 허황됩니다. 접촉을 통해 기억을 조작한다는 설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구멍이 많아요. 누군가 모르는 사람의 접촉을 쉽게 허용한다는건 상식적이지 않으니까요. 왜곡된 기억이 많아지면 당연히 일어날 여러가지 모순을 정신 붕괴를 일으킨다며 대충 퉁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지요. 잘못된 기억이 주입된다면 그 이유를 따져 볼 사람이 없을리 없잖아요? 특정 기억에 대한 반대 기억이 명확한 경우, 예를 들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다' 가 '그 때 다른 누구와 무언가를 했다' 라는 분명한 기억과 겹칠 경우 더욱 그러할테고요. 기억 조작이라는건 전후관계와 디테일을 모두 고려해야 성공할 수 있을텐데 그런 부분은 이런 식으로 모두 대충입니다. 최소한 독자가 흥미를 가질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어요.
범행도 어이가 없습니다. 이 정도의 능력자가 편의점이나 털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을 폭행하고, 여자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수준 이하의 범죄만 저지른다는게 말이 될까요? 심지어 기억 조작도 어설퍼요. 지하철에서의 성추행같은 경우는 피해자와 정의감에 불타 나섰던 사람 2명의 증인의 기억만 조작해서 빠져나가는데, 실제로 니키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이 기묘한 상황을 눈치챕니다. 이렇게 백주대낮에 대중 앞에서 벌이는 범죄 행각들이 많다면, 아무리 CCTV의 사각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결국 꼬리를 잡혔을 겁니다.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립니다. 살인마를 쫓고 있는 상황에서, 또 살인마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니키치가 기억을 잃더라도 굉장히 필요한 정보만 잘 떠올리고 기억한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침 딱 좋은 위치와 장소에서 노트 속 필요한 페이지를 읽게 되는 식이거든요. 기억을 잃는 시간도 정해져 있어 보이지 않고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 친구가 기억 상실증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에요. 억지로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이런저런 설정들도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니키치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묘사가 밋밋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살인마 키라는 그냥 나쁜 놈, 니키치는 성격 묘사없이 그냥 키라와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는 이분법적인 구분만 있을 뿐 별다른 묘사는 없어서 평면적이고 만화적이기 때문입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한데,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 창조는 잘 하지만 캐릭터를 묘사하는 능력은 없는 듯 합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조력자 도쿠 할아버지나 화법 교실 강사 교코도 다 어디서 본 듯한, 평면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다를게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일부 매력적인 설정과 돋보이는 아이디어가 없지는 않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단기 기억 상실증 관련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이 그러합니다. 작가의 팬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관심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2019/01/19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5점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6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엽기적인 살인 범죄가 잇달아 일어났다. 사건 담당 형사 고테가와는 과거 성범죄 등을 일으켰던 우범자 수사 중 알게 된 우범자 도마 가쓰오와 그의 보호 관찰관 우도 사유리와 친분이 생겼지만 우도 사유리의 아들 마사토가 세번째 피해자로 발견되었다. 피해자들의 성이 아-에-이.. 순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급기야는 우범자 명단을 내 놓으라며 경찰서까지 습격했다. 시민의 습격을 막던 고테가와는 시민들이 도마 가쓰오를 노린다는 우도 사유리의 전화를 받고, 그를 구하려 반장 와타세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를 나서는데...

저자인 나카야마 시치리는 2010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을 받으면서 데뷰한 작가입니다. 이력을 봤더니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쏟아내었더군요. 하지만 잘 모르는 작가이고 제목도 전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던 차에, 어디선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리뷰를 얼핏 보고 출장 중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괜찮은 부분이 많네요. 우선 엽기적인 범죄극에 형법 39조에 대한 비판이 곁들여져 사회파스러운 느낌을 주는게 좋습니다. 저 역시도 최근 일어나는 흉폭한 범죄에 대해 더 강하게 단죄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심신 미약이었다던가,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형을 경감해준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짐승은 짐승답게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병자들이 회복해서 사회에 복귀하는걸 막자는건 아니지만, 그들의 회복을 지원하고 기다려주는건 죗값을 치룬 다음이어야 합니다.
이 작품은 절대로 회복되지 않고 다시 살인마로 돌변하는 정신 이상자와 그들의 끔찍한 범행 묘사를 통해 이에 대한 메시지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줍니다. 참고로 제목의 "개구리 남자"는 범인이 개구리를 잔혹하게 가지고 노는 어린 아이처럼 사람을 죽이고 다녀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만큼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범행이 이어집니다.

전개도 탄탄하고 세련된 편입니다. 대표적인게 도마 가쓰오와 이름이 비슷한 나쓰오라는 소년의 과거 일화를 조금씩 소개해주면서 도마 가쓰오가 범인이 아닐까? 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과정입니다.
물론 나쓰오가 저지른 미카 살인 사건은 이미 앞부분에서 도마 가쓰오의 범행으로 소개된 '교살'이 아니라서 나쓰오는 도마 가쓰오가 아니라는게 밝혀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미카 사건 직후, 시민의 한노 경찰서 습격이 몰아치기 때문에 고테가와가 도마 가쓰오의 집에서 그가 범인일 수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 뒤 도마 가쓰오와 생명을 건 사투로 이어지는 과정은 위화감없이 진행됩니다. 경찰서 습격 장면 묘사는 그만큼 임팩트가 넘쳐서 독자가 딴 생각을 하기는 힘든 덕분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비록 본격물 수준의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건 아니지만 범죄 스릴러물로서의 완성도는 충분합니다. 특히 도마 가쓰오가 범인이었다고 마무리되는게 아니라 이 뒤에도 무려 두 번이나 반전!이 더 있다는게 돋보입니다. 단지 깜짝 반전이 아니라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습니다.
첫 번째 반전은 우도 사유리가 진범이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네 번째 피해자 에토 가즈요시가 남긴 물어 뜯은 듯한 상처, 그녀가 과거 범행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는 묘사, 보험금 등 받을 수 있는 돈과 그녀의 주택 대출금이 일치한다는 등 여러가지 복선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나쓰오였다는 진상은 살짝 서술 트릭 느낌도 들고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상을 입은 채 우도 사유리와 맞서 싸우는 고테가와에 대한 묘사는 "검은 집"의 절정부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마지막 반전인 오마에자키 교수가 흑막이었다는 결말도 좋습니다. 이 쪽은 증거보다는 형법 39조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가 와 닿은 덕입니다. 우도 사유리와 같은 단순히 "돈" 이라는 측면 보다는 훨씬 그럴듯했고, 사회파 소설다운 느낌을 전해주어서 괜찮더라고요. 결국 풀려나게 된 도마 가쓰오가 자신이 "개구리 남자" 임을 자각하고 아-이-우-에-오 순으로 오마에자키 교수를 죽이러 가겠다고 결심하는 마지막 에필로그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의 에필로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경찰서 습격 이후의 묘사가 장황하고 강약조절에 실패하고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경찰서 습격에서 이미 한바탕 클라이막스를 거치고, 다시 도마 가쓰오와 고테가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이어진 후, 또 다시 우도 사유리와 어둠 속에서 결전을 벌이는 식으로 강-강-강으로 이어지는 탓입니다. 덕분에 가장 중요한 우도 사유리와의 결전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합니다. 목숨도 한 번 걸어야지 세 번이나 연속으로 걸면 값이 싸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오마에자키 교수의 동기도 앞서 말씀드렸듯 설득력은 높지만 그가 우도 사유리를 다시 범죄로 인도했다는 이야기는 영 와 닿지 않아요. 사람의 정신과 기억을 마음대로 복사하고, 집어넣을 수 있다는건 너무 허황된 이야기였어요. 설령 그녀의 악마성을 깨워 아들 살해까지 유도했다 하더라도, 에토 가즈요시를 살해한 이유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도마 가쓰오가 범인으로 드러날 판인데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잖아요? 사유리가 오마에자키 교수가 지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지 않은 이유 역시 불분명하고 말이죠. 싸이코 연쇄 살인마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도 석연치는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서스펜스 넘치는 전개에 더해 몇 번의 반전까지 제공한다는 점과 형법에 대한 비판 정신만큼은 괜찮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서스펜스가 지나쳐 표류해 버리는 후반부는 아쉽지만 추리, 스릴러물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한 수준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2/08/14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마이클 코넬리 / 조영학 : 별점 2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4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는 운 좋게 거물 부동산 업자 루이스가 한 여성을 잔인하게 폭행했다는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미키 할러는 루이스가 무죄라는걸 확신하여 변호에 임했지만, 어느 순간 루이스가 유죄일 뿐 아니라 과거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루이스에 의해 조사원 라울이 살해당했고 유력한 증거마저 빼앗겼을 뿐 아니라, 라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루이스는 이런 미키 할러를 협박하여 자신의 변호에 힘을 쏟게 만드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입니다.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었고요. 작가가 생각했던 멋진 트릭과 설정을 아낌없이 쏟아붓기 때문에 시리즈의 경우는 첫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경우가 많기도 하고, 이전에 읽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대한 기억도 좋아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완독했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일단 미키 할러 캐릭터부터가 별로에요. 정의로운 변호사와 악덕 변호사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로 그려져 있거든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드리자면, 미키 할러는 의뢰인들이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만드는데 빼어난 능력을 발휘하는걸로 묘사됩니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고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으로, 나 역시 무죄냐 유죄냐를 다루지 않는다" 면서요. 이 과정에서 "돈이 없으면 죄를 짓지 말라"며 엄청난 돈 욕심도 부립니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의뢰를 받아들일 때 그가 무죄임을 확신하고 변론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던대로 법의 헛점을 찾아내어 의뢰인을 빼내면 그만이지요.
같은 이유로 루이스가 연쇄 살인범이고, 미키 할러가 과거 사법 거래를 유도해 징역을 선고받게 만든 지저스 사건의 진범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저스는 돈이 없었고, 루이스는 돈이 많으니까요. 피고만 풀려나게 해 주고 돈만 벌면 되지요.
게다가 앞서 여러 명의 마약 사범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데에는 일말의 주저도,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으면서 루이스에 대해서만 정의감을 불태우는 것도 앞 뒤가 맞지 않았어요. 이를 미키의 부친 말을 인용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식으로 포장하고는 있는데 이 정도로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물론 루이스가 라울을 살해했기 때문에 복수심을 갖는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미키 할러가 불필요한 정의감을 불태워 루이스의 뒷조사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즉,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 것이지요.
그 외 다른 캐릭터들도 별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변태 연쇄 살인마 루이스에 대한 설정이라던가 미키 할러와 전처이자 검사 매기와의 관계 등도 진부했습니다. 특히나 루이스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 숱하게 등장해왔던 두뇌파 연쇄 살인마들과 흡사했을 뿐더러, 다소 뜬금없이 살인마라는게 밝혀져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설득력있게 그려냈어야 했습니다.

이야기도 작위적인 전개가 많아서 잘 짜여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알아차리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미키 할러는 옛 의뢰인 지저스 사건의 피해자 마사 렌테리아와 루이스 사건의 피해자가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는걸 알아채고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확신합니다. 허나 두 피해자가 그렇게 닮았다는 것 부터가 비상식적이고 작위적이에요. 루이스가 미키 할러의 총을 훔쳐 라울을 살해할 때 사용했다는건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왕 격입니다. 총은 루이스가 미키를 옭아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만약 미키 할러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루이스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미키 할러를 협박할 생각이었을까요?
미키 할러의 작전도 치밀하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법정에서 밀고자의 입을 빌어 루이스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드러내는 정도인데, 그 밀고자의 증언이 허술하다는건 이미 법정에서 미키 할러 자신이 증명해 버립니다. 경찰이 이 증언으로 보강 수사를 벌일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유력한 용의자였던 지저스가 사법 거래를 통해 이미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걸 자백해버렸는데, 경찰이 다시 수사에 나설만큼 한가할리도 없고, 심지어 담당 형사는 미키 할러를 미워하기까지 하는데 왜 다시 수사를 벌일까요?
루이스의 범죄 행각도 왜 진작에 체포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대충이었습니다. 루이스는 CCTV에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히 피해자를 찾아가거든요.

그나마 전자 발찌로 모든 행적이 추적당하는 루이스가 어떻게 라울을 살해했는지? 에 대한 트릭은 하나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가 대신 범행을 저질렀다는 거지요. 상당히 설득력이 높을 뿐더러, 라울이 죽기 전 손가락으로 남긴 다이잉 메시지 - W, 즉 여자가 범인이다! 라는 것 - 와 연결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들이 더 많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영상화가 되었으니, 소설보다는 영상화된 버젼을 보는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2024/08/07

키스 더 걸 (1997) - 게리 플레더 : 별점 1.5점

알렉스 크로스의 조카 나오미가 납치되었다. 범인은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있는 여성들을 연달아 납치하는 '카사노바'였다. 알렉스 크로스는 '카사노바'를 잡기 위해 관할이 아닌 노스캐롤라나 더램으로 향해 수사팀에 합류했다. '카사노바'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한 여의사 케이트의 도움이 수사에 큰 힘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1997년도 영화.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한 편을 영화하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군요. 리뷰도 올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처음 보는 작품처럼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의 제임스 패터슨 작품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입니다. "양들의 침묵" 이후 대 유행했던 천재 연쇄 살인마와 수사관의 대결이 뻔하게 펼쳐집니다.
그래도 몇 가지 차이점을 두어 변주를 꽤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 '카사노바'가 연쇄 '살인마'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여 여성을 납치하는 연쇄 '납치마'라는 점입니다. 이게 꽤 중요합니다. 납치한 여성들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경찰이 알아내지 못해서, 알렉스 크로스를 비롯한 경찰이 용의자를 추격할 때 쉽게 총격을 가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혹여 죽기라도 하면, 납치된 여성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서부(LA)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쇄 살인마 '젠틀맨'과 '카사노바'는 동일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명이라는 진상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헐겁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FBI에게 알리지 않고 케이트와 루돌프 검거에 나서 그를 놓친다던가, '카사노바'의 은신처에 대한 단서를 얻은 뒤 둘이서만 찾아나서는 것처럼 알렉스 크로스와 케이트 컴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비합리적인 전개도 많습니다. 루돌프가 범인이라는걸 케이트가 확신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루돌프는 범인의 지인이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카사노바가 은신처를 손에 넣은 방법도 모르겠고요.
'카사노바'가 생각보다 별로 뛰어난 범죄자가 아니며(증거를 계속 남김), 하는 짓도 뻔하기 그지없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덕분에 대결 구도는 초반부를 지나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합니다. 액션이 별볼일없는데 두뇌 싸움도 없으니, 영화가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요.
경찰이 '카사노바'였다는 반전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범죄도시 3"에서도 써먹을 정도로 널리 퍼진 설정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앞서 별다른 비중도 없던 인물이 갑자기 범인이라고 등장하는건 뜬금없었습니다.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성을 결여한 결과랄까요.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모건 프리먼은 알렉스 크로스와 별로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포르쉐를 타고다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사이자 형사인 인물에는 좀 더 섹시(?)한 배우가 나았을 겁니다. 애슐리 쥬드가 연기한 케이트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요. 영화에서는 거의 부녀 관계처럼 보이더라고요.

건질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케이트에게 투여된 약물의 출처를 조사하여 LA의 의사 루돌프가 수상하다는걸 알아내는 장면, 마지막에 경찰 서명과 카사노바 서명을 비교하여 정체를 알아채는 장면은 추리적으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역시 저는 제임스 패터슨과는 안 맞는 듯 합니다.

2026/05/09

정점 APEX (2026) - 발타사르 코르마우퀴르 : 별점 2점

사샤는 파트너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졌다. 그녀가 무리하게 암벽 등반을 진행했던 탓이었다. 사샤는 슬픔을 잊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오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인마 벤을 만나 쫓기게 되는데...

샤를리즈 테론과 태런 에저튼이 주연을 맡았고, 호주의 거친 오지를 배경으로 인간 사냥의 표적이 된 주인공과 사냥꾼의 추격전을 그린 최신 서바이벌 액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태런 에저튼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두 배우 모두 뻔한 캐릭터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거든요. 덕분에 사냥감과 사냥꾼이라는 단순한 관계가 그런대로 볼 만해집니다. 추격전도 나름대로 두뇌를 쓰는 부분은 괜찮습니다. 초반부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샤를 낚는 장면처럼요.

호주 오지의 풍광을 활용한 장면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인간의 체력과 판단력이 한계까지 시험받는데, 워낙 대자연이 압도적으로 묘사되어 화면상으로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중반부까지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느끼며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오지에 사람을 사냥하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있고, 주인공이 그에게 쫓기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설정이 지나치게 뻔한 탓이 큽니다. 사샤가 등산과 서바이벌에 능한 전문가라는 설정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는데, 영화는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단순한 도주와 추격으로 채울 뿐입니다. 사샤가 지형과 등반 기술을 이용해 벤과 치열하게 맞서는 장면이 더 많았어야 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도 떨어집니다. 초반에는 압도적인 자연환경과 인간 사냥이라는 설정이 결합하면서 어느 정도 몰입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지며 액션도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결정적 도주 장면의 설득력이 너무 부족해요. 귀를 물어뜯어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기대에 비해 너무 시시했습니다.

게다가 이어지는 결말은 아쉬움의 '정점'을 찍습니다. 다리를 다친 벤이 자기 목숨을 순순히 사샤에게 거는 듯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지금까지 사람을 사냥해온 인물이라면 더 집요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마지막 승부를 걸었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찌질한 악당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여기에는 살인마 벤에게서 미친 사냥꾼의 압도적 카리스마를 느끼기 힘들다는 이유도 한몫 단단히 합니다. 벤 역을 맡은 태런 에저튼의 연기가 아무리 좋아도, 어린아이 같은 인상과 왜소해 보이는 체격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이 역으로 마동석이 할리우드 데뷔를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고, 시작 부분의 등반 장면과 호주 오지의 풍광을 살린 서바이벌 장면들은 중반부까지 볼 만합니다. 하지만 설정이 뻔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며, 사샤의 전문가적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비슷한 장르를 많이 본 관객에게는 새롭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기 어려운 그냥저냥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예요. 굳이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2017/10/28

엔드 오브 왓치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엔드 오브 왓치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컴비 홀리와 함께 사설업체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던 빌 호지스는 의사로부터 췌장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드 하츠필드는 재핏이라는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이동하여 조종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고, 이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과 빌 호지스에게 복수하려 했다. 
재핏 게임기와 관련된 기묘한 자살 사건, 특히 제롬의 여동생 바브라에게 닥친 자실 미수 등을 접하며 빌 호지스는 사건의 이면에 브래디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브래디는 담당 의사 배비노의 몸을 빼앗아 도주해 버렸다.
빌 호지스는 브래디의 음모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에 나서는데...

스티븐 킹빌 호지스 3부작(요새 말로 트릴로지) 마지막 편입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신비한 능력을 얹은 1편의 살인마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하츠필드가 재등장하여 빌 호지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결말은 "끝"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고요. 시리즈는 정말 확실하게 끝납니다.

재미만큼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 그런데 다른 시리즈와 확실한 다른건,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1편은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답게 분명 추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정교하지는 못했지만요. 2편은 빌 호지스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뿐 범죄물로는 괜찮았고요. 허나 이번 편은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장르도 "싸이킥 호러 스릴러"라고 해야 합니다. 브래드가 손에 넣은 특별한 능력 - 염력과 재핏 게임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 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물론 빌 호지스가 브래디의 능력을 알아내는 과정은 수사 비스무레한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브래디의 능력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것만 문제지 그의 행방과 음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몇가지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브레디의 담당 의사가 수상하다! 녀석을 쫓아가자! 그냥 이게 전부거든요.

그래도 브래디의 능력은 설득력 있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을 있음직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특기가 잘 발휘되어 있지요. 단지 능력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재핏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계획도 볼거리입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후 게임기를 확산시켜 자살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준다는 음모인데, 희대의 IT 전문가이자 정신병자 살인마인 브래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리는 설득력 높은 설정이었어요.

또 여러모로 열세였던 빌 호지스가 브레디의 최면 침투를 이겨내고 반격을 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앞부분에 사용되었던 커다란 벨소리라는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명장면입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엔딩이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통증 때문에 침투에 걸리지 않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이를 위한 기지국 복선 역시 적절했고요.

다만 브래드의 음모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문제 투성이이기는 합니다. 왜 최면에 게임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지가 가장 의문이에요.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고 탭하는 것으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유도하는게 훨씬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잖아요? 사이트 뿐 아니라 앱 형태로 뿌리면 갯수 제한이 있는 게임기보다 훨씬 넓게, 멀리 확산시킬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라는 특정 조건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설명되지도 못한 탓도 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아울러 브레디의 자살 전염, 전파 계획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좀 허무합니다. 대량 학살을 저지르려 했던 살인마가 개개의 사람들 마음 속 빈틈을 파고들어 자살을 유도 한다는게 너무 소박해 보였던 탓입니다. 피해자들이 주변인들을 죽이게끔 하는 장치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피해자가 고작 서너명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제롬의 비중이 등장이 적다는 것도 별로였어요. 이럴바에야 등장하지 않고 그냥 홀리와 빌 컴비의 활약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특히 이번 편에서 빌 캐릭터가 너무나 멋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통도 참아가며, 심지어 마지막에 오줌까지 싸 가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친구와 선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지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정말 멋진 올드 히어로거든요. 지금은 멸종해버린 서부영화 주인공인 셈으로, 죤 웨인이 늙어서 형사 역할을 맡는다면 이련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여튼, 늙은 죤 웨인의 최후의 활약을 뒤로하고 젊고 잘생긴 신예가 마무리를 짓는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교하지도 않고, 추리물로써의 가치는 낮지만 스티븐 킹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킬링타임용 책을 찾으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타임슬립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덧붙이자면, 빌 호지스 캐릭터가 정말로 멋지게 그려진 만큼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그린 프리퀄이 나와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4/12/15

반가운 살인자 - 서미애 : 별점 2점

반가운 살인자 - 4점
서미애 지음/노블마인

한국의 여성 추리 작가인 서미애의 단편선입니다. 일상계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들로 총 1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제작이 영화화되기도 해서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이야기들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정이입이 힘들었던 탓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심리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아울러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모르겠어요. 정통파 본격 추리물도 아니고, 기묘한 맛의 반전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범죄가 테마인 드라마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묘사력이나 깊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집처럼 최소한 한두 작품이라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물이나 스릴러 애호가분들께 상기의 이유로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살인자"

보험금 때문에 사고로 죽어야 하는 가장이 자신을 죽여줄 연쇄살인자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지요.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연구하는 게 당연합니다. 연쇄살인마가 어디서 나올 줄 알고 헤매고 다닙니까? 그거 쫓아다니면 오히려 운동이 되어서 더 오래 살겠네요. 아울러 재미를 위해서라면 연쇄살인자의 정체라던가, 이야기의 흐름에서 반전이 한번 정도 나와줬어야 합니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해서 잠깐 조사해보았는데, 사뭇 다른 각색으로 제작된 것 같더군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연쇄살인마를 찾아다니는 백수가 연쇄살인마로 몰린다는 영화의 설정이 더 나아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남편을 죽이는 방법에 골몰하던 주부가 실제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당황하다가, 완전범죄 이야기로 넘어가는 작품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주인공의 관계가 드러나면 꼬리가 밟힐게 뻔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이 있다는 점도 괜찮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냄새 없애는 방법"

냄새에 민감한 여주인공이 이웃집의 개 때문에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런데 주인공부터 정상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거의 초능력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이럴 거면 슈퍼히어로물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공동주택에 살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며, 단지 6개월치 월세를 선불로 주었다고 이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냄새를 지우는 방법을 알게 된 204호 남자가 덕분에 연쇄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대단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하나, 남자의 이름이 "유영철"이라고 밝혀지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살인 협주곡"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앞서 이야기한 천편일률적인 심리묘사가 이어져서 지루합니다. 서로 미워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왜 이혼 같은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읽었던 "완벽한 부부"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완전범죄를 계획하다가 둘 다 죽는다는 걸작 단편과 굉장히 유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던 해당 작품과 비교할 때 완성도도 더 낮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글에는 악마가 산다"

파파라치로 돈을 벌려는 찌질이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을 다룹니다.

최근 이슈인 수원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 사건과 약간 겹쳐지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 신기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장기 밀매를 하는 범인들이 시체를 서툴게 처리한 이유, 주인공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할 때 무방비로 접근하는 이유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고요. 채팅 프로그램이 트리거가 된다는 아이디어 하나만 신선했을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숟가락 두 개"

평생 중 교도소 생활이 더 길었던 전과자와 벙어리 아가씨가 가족이 된 뒤 벌어진 가혹한 현실을 다룬 일종의 드라마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이 떠올랐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감동 외에는 별다른 반전이나 극적 요소가 없어서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뻔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녀만의 테크닉"

친구가 자기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여인의 납치극으로 시작되어, 다중인격 백합물로 끝나는 이색작입니다. 아무런 복선 없이 급작스럽게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광기 묘사도 별로 새롭지 않았고요. 차라리 완벽한 서술트릭물로 꼼꼼하게 작업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비밀을 묻다"

불륜 관계였던 친구 남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이야기. 촬영 테이프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과 친구의 지인은 별로 중요한 단서로 생각되지 않으며,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아내의 친구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설명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경계선"

왕따와 원조교제 소녀의 기이한 교제와 학교 일진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핸드폰을 숨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원조교제 소녀는 당췌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콩가루 집안의 설정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가족관계의 회복을 그린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미디어믹스를 노린 티도 너무 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거울 보는 남자"

살인자의 관상이 따로 있다는 뻔한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교수의 분노나 주인공의 범죄가 딱히 설득력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요. 좀 더 짧고 임팩트 있게, 서늘하게 써야 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6/01/26

미스터 메르세데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미스터 메르세데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은퇴 형사 빌 호지스는 홀로 외로이 TV에 빠져 살다가 자살까지 꿈꾼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가 형사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시티 센터에서 8명을 살해하고 도주했던 싸이코 살인마 "메르세데스 살인마"가 보낸 편지였다. 그의 목적은 호지스의 자살 유도였다. 그러나 이를 도발로 받아들인 호지스는 새롭게 삶의 의미를 다지고, 그를 자기 손으로 체포하기 위해 다시 수사에 나서는데....

호러의 거장 스티븐 킹이 발표한, 은퇴한 형사 호지스와 '미스터 메르세데스'라고 불리는 싸이코 살인마 브래디 하츠필드의 대결을 그린 600페이지의 대장편 하드보일드입니다.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관심 가던 차에 늦게나마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장단점 모두 기존 스티븐 킹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우선 첫 번째 장점으로는 읽는 재미가 최고 수준이라는 겁니다. 브래디가 빌 호지스를 자살로 몰아넣기 위해 편지를 보내는 도입부에서 시작해서, 오히려 삶의 의욕을 되찾은 빌 호지스가 범인이 지정한 채팅 사이트 '데비스 블루 엄브렐라'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며 범인에게 접근해 나가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한 덕분입니다. 차를 도난당한 올리비아 트릴로니의 증언을 믿지 않았던게 큰 실수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범죄물로도 괜찮은 편이에요. 브래디가 자동차를 훔친 방법,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호지스 등을 염탐한 방법, 본인의 범행을 위해 이런저런 발명을 하는 부분 등이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그러해요. 은퇴 형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피터 러브시의 "다이아몬드 형사" 시리즈 등 상당히 많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은퇴한 전직 특수 요원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영화들도 비슷한 류일 테고요. 허나 본작의 주인공 빌 호지스는 제가 읽었던 유사 작품 주인공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현실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묘사도 아주 좋고요. 초반의 자살을 기도하는 모습, 브래디를 잡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는 과정 모두 자연스러우며 체중 등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을 신경 쓰는 묘사 역시 한몫 단단히 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제이니가 폭사한 직후 모습은 정말 압권이에요. 연인이 산산조각이 되어 팔 하나만 나뒹구는 상태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데, 속된 말로 '간지 폭풍'이었습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한 에피소드에서 도미니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코브라의 대사가 떠오르더군요('안녕 도미니크 다음에 만날 때에는 지옥이겠지').
악당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역시 나름의 존재감을 뽐냅니다. 어머니와 근친상간 관계에 동생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는 등의 가족사는 진부했지만, 일반인보다 약간 똑똑한 미친놈이라는 설정을 인상적으로 잘 그려낸 덕입니다. 항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성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주 설득력 높았어요. 사람 마음(빌 호지스)을 갖고 놀려다가 실패하는 과정의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다른 인물들도 독특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사이드킥 제롬은 엘리트 흑인 집안의 아들인 우등생이라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설정인데, 작중 언급되는 버락 오바마와 더불어 달라진 미국 흑인의 지위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다만 또 다른 조력자 홀리는 컴퓨터 천재지만 심한 우울증을 앓는 기묘한 노처녀라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했지만요.

허나 역시나 스티븐 킹 작품의 단점도 그대로입니다. 첫 번째는 '탐정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나온 것 치고는 '추리물'로 볼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빌 호지스부터가 은퇴한 형사라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단서를 전해주는건 범인 브래디의 역할이거든요. 호지스는 던져주는 단서를 받아 먹을 뿐입니다. 그나마 범인과의 두뇌싸움이라든가, 범인이 보낸 편지와 채팅에서 입수한 것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한 결과는 상당히 정확하지만 호지스 스스로의 입으로 이야기하듯 '감'에 의지한 것이라 그닥 정교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급작스러운 억지 전개가 많다는게 두 번째 단점입니다. 올리비아의 동생 제이니 패터슨과 사귀게 되어 잠자리를 같이하는 관계까지 발전하고, 마지막에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서 폭탄을 터뜨리려는 브래디의 계획을 홀리와 제롬이 저지한다는 결말이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좀 가관이었달까요. 하긴, 이건 스티븐 킹 소설이니까...

마지막으로 호지스의 실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예요. 대표적인 것이 제이니의 죽음이죠. 작중에서 계속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어떻게 차를 훔쳤는지까지 알아내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호지스의 실수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그녀의 죽음은 독자가 브래디가 처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지만, 주인공의 무능력함을 돋보이게 하니 과연 적절한 장치였나 의구심이 생깁니다.
호지스가 월권에 가까운 단독 수사를 고집하는 것도 석연치 않아요. 애초에 올리비아 컴퓨터에 심어진 수상한 파일에 대해 알게 된 시점에서 경찰에 모든 자료를 넘겼다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 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정통 하드보일드는 절대로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공통적으로 탐정 스토리의 모습을 취하며,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는데, 이 작품은 추리물이지만 무미건조한 묘사는 아니니까요. 과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정 묘사는 풍성합니다. 그렇다고 폭력이 난무하는 마초물도 아닙니다. 호지스 캐릭터만 놓고 보면 정 많고 정의감 넘치는 동네 아저씨거든요.
물론 호지스와 브래디 둘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전개에서 브래디 시점 묘사는 고전 하드보일드 느낌이 살짝 나기는 합니다. 스티븐 킹이 서두에 '제임스 M 케인을 그리며'라고 했는데 제임스 M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누른다"가 떠오를 정도로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모로 하드보일드보다는 전통적인 서부극에 가깝습니다. 캐릭터와 서사 구조 모두요. 은퇴한 총잡이에게 신세대 총잡이가 도전하고, 도전을 피하는 늙은이를 도발하기 위해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 결국 대결이 벌어지며, 이 와중에 은퇴한 총잡이가 새로운 삶의 보람을 깨우친다는 내용이니 당연하지요.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단점이 더 컸고, 제 취향도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이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특히나 저처럼 '하드보일드'라는 말에 낚이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앞서 말씀드렸듯 에드거상은 물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선정한 2015 최고의 장르소설 베스트 10에도 당당히 선정되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제 취향의 문제일까요?

2019/04/21

초크맨 - C. J. 튜더 / 이은선 : 별점 1.5점

초크맨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디는 열두 살 어린 시절 개브, 니키, 호포, 미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키의 형의 죽음, 니키 아버지의 폭행 사건 등을 겪으며 친구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던 중, 그들은 그들만의 장난인 분필 낙서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난 사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에디와 친구들은 목을 매단 막대인간의 그림과 흰색 분필 조각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에디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친구들을 만나 댄싱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추적해 나가는데.... 

스티븐 킹이 추천했다는 띠지의 소개에 혹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스티븐 킹의 "그것"과 "스탠 바이 미"의 저열한 모방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구도와 전반적인 전개는 "그것"을, 어린아이들이 시체를 찾아 나선다는 테마는 "스탠 바이 미" 그대로에요.

물론 "그것"의 '악동 클럽' 멤버들이 초자연적인 크리쳐가 아니라 실제 살아 숨쉬는 살인마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를 그리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 소재라 보다 높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완벽한 실패작입니다. "그것"의 광대귀신 페니와이즈는 악동 클럽 멤버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 속 아이들과 범죄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탓입니다. 살인마와 아이들의 접점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분필과 분필 낙서에 불과해요. 어차피 살인 사건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 살인 뿐이기도 하고요.
그 외로 펼쳐지는 다양한 아이들과 관련된 사건들 - 에디를 잔혹하게 괴롭히던 미키의 형 션이 강물에 빠져죽고, 호포의 애견 머피가 독살당하고, 니키의 아빠 마틴 목사가 잔혹하게 폭행당하는 등 - 은 결국 아이들과는 거의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위험에 처하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분필 낙서 때문에 살인마는 아이들 주변 인물, 혹은 아이들 중 한명인가? 하는 수수께끼는 발생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합니다. 에디 시점에서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 - 션 쿠퍼의 유령 같은 - 가 얽혀있는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다가, 결국 에디가 낙서를 했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공정하지도 않고요. 이럴거라면 어린 시절 추억담 맨 뒤로 진상은 빼 놓더라도 혼란스러운 묘사 따위는 집어 치우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에디와 친구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지나치게 길고 지루합니다. "그것"과 너무 비스무레한 것도 문제고요. 동네 깡패 일당과의 대립이라던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홍일점 니키 등은 그냥 표절 수준이에요. 그 중에서도 니키는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에디의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기 위함도 아니고, 마틴 목사의 폭력성을 스스로 증명하지도 않고, 심지어 성인 시점에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부분도 없으니까요. "그것"을 충실하게 베끼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 예를 들어 에디 아버지의 치매에 대한 묘사 등도 지나쳤어요.

하긴 이런 단점은 진범의 정체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진범이 마틴 목사라는 결말은 뜬금없기 그지 없어요. 크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채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몰래 빠져나와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까지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뭐 당시 영국 시골 병원의 보안과 환자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 칩시다. 하지만 이후 무려 30년의 세월동안 요양소에서 반 송장처럼 지내면서 주위 사람들을 속여왔다는건 도무지 납득이 안됩니다. 그 전에 미치거나, 퇴원하거나 했어야지요. 일라이저 사건의 범인이 핼러런 선생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정신이상, 산 송장 상태로 버티는 상황부터가 말도 안되고요. 설령 그걸 몰랐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날때까지만 버티면 되잖아요?
수십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는데 불구하고 젊은 처녀인 클로이와 장년의 성인 남성인 에디와 호포를 제압한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와 닿기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끼를 들고 습격하기야 했지만 뭔가 어설퍼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더라고요. 그리고 애초에 습격할 이유 자체도 없습니다. 증거도 없을 뿐 아니라 앞서 말했듯 공소시효도 이미 끝난지 오래니까요. 찾아온 에디와 친구들을 만나 그냥 정신 이상을 가장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 했어도 아무 탈이 없었을겁니다. 정신 이상으로 일어나서 과거의 망령들을 습격했다? 그렇다면 진작에 일어나서 날뛰지 않은게 설명되지 않지요. 이 모든 걸 엮는 단서라는게 댄싱걸과 클로이가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는 정도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요. 

그 외에 추리적인 부분은 모두 함량 미달입니다. 초크맨 낙서를 보낸건 에디였다던가, 미키를 죽인건 호포였다던가 하는 이야기 모두 뜬금없으며 공정하지 못한건 마찬가지거든요. 마틴 목사를 폭행한건 토머스 순경과 친구들이라는 것도 역시나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인물 설정과 묘사는 스티븐 킹의 표절인데다가 추리적인 부분은 비합리적인데다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고, 심지어 공정하지도 못합니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는 최악이고요. 그 어떤 점으로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그냥 소설로 성립은 한다는 점 정도만 괜찮네요. 절대로 읽어보시지 마시길. 스티븐 킹이 호평했다는건 자신의 충실한 모방작을 만난 탓에 한 실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09/11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피터 스완슨 / 노진선 : 별점 1.5점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4점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푸른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조울증 환자인 판화가 헨은 남편 로이드와 함께 교외 전원 주택으로 이사했다. 친해진 이웃 부부의 저녁 초대를 받은 날, 헨은 이웃집 서재에서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던 펜싱 트로피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이웃집 남편 매슈라는걸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헨이 정신병 때문에 저질렀던 과거 이력 탓에 경찰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매슈는 진범이 맞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잔인하게 학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여성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해 왔었다. 그는 헨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밴드 보컬 스콧을 살해했고, 그 현장을 헨에게 들키고 마는데...

이전에 읽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저자 피터 스완슨의 신작 범죄 스릴러입니다. 

"나는 범인을 알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상황을 이용한 작품은 많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 재미요소는, 주인공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져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과정,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자신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는 범인과의 고독한 싸움이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이 범인을 알게 된 뒤, 범인과 주인공이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는 획기적인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새로운 발상이 성공적인 건 아닙니다. 헨이 매슈에게 죽을리 없다는게 밝혀진 순간,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잦을 수 없게 되니까요. 서로간의 비밀을 공유하는, 정신병자 남녀의 기묘한 우정 드라마로 변해 버립니다. 게다가 이를 피하기 위해 작가가 매슈의 동생 리처드를 살인마로 등장시킨 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원래 A는 B와의 관계로 위협을 받는게 정상인데, A와 B가 사이가 좋아져버리니 C가 등장하는 꼴이지요. 긴 머리 소녀와 단발 머리 소녀 두 명을 동시에 사귀는 일로 괴로워하다가(명백하게 "오렌지로드"의 카스가 쿄우스케!), 새로운 사랑인 안경 소녀를 찾는다는 오래전 "호에로 펜!" 이야기와 똑같지요. 문제는 이건 개그만화였다는거.... 

여자를 괴롭히는 악당 남자만 죽이는 매슈와는 다르게, 리처드는 남자들을 유혹하곤 하는 여자들을 죽이는 살인마라는 설정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 리처드는 사실 매슈의 이중인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비슷한 작품을 워낙에 많이 접해보아서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어요. 이중인격은 이제 옛날 기억상실처럼 마구 가져다 쓰는 설정인 탓입니다. 

그나마 반전이 설득력있게 제공되지도 못합니다 애초부터 이중인격이었다면, 왜 매슈가 이전에 범행을 저질렀을 때에는 남자를 죽이지 않았던 걸까요? 이전에는 남자를 죽인 뒤 매슈에게 꼬리쳤던 여자가 없었다? 말이 안됩니다. 매슈는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던 미라의 전 남자친구를 죽인 뒤, 미라와 교제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꼬리치는 여자를 죽인다면 이 때 미라를 죽였어야 했어요.

매슈가 이중인격 연쇄 살인마가 된 이유가 형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혹하게 학대했었기 때문이라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뻔할 뿐더러 가정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정신병자 살인범이 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느낌이라서요. 

헨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설정도 식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이런 류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걸까요? 헨이 친구를 의심했던 탓에 사고를 일으켜 전과가 생겼다는 과거 역시 그녀의 정신병을 드러내서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걸 당연하게 만드려는 장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범죄 스릴러치고는 정교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매슈가 스콧을 살해한 범행이 대표적이에요. 매슈는 헨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경찰의 방문 조사를 받은 직후 스콧을 살해합니다. 당장 죽였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범행 역시도 이런저런 도구와 준비를 갖추기는 하나, 결국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딱히 정교한 완전범죄로 볼 여지가 없어요. 실제로 헨이 범행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리처드의 범행은 더 엉망입니다. 미셸을 죽이고 헨을 죽이러 왔을 때 모두 범죄를 숨기려는 노력이 전무하거든요. 이중인격이 된다고 해서 바보가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여러모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나마 재미있었던건, 헨의 남편 로이드가 바람을 피웠다는 매슈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는 부분 정도였습니다. 헨이 로이드 옷의 냄새를 확인한 뒤, 친구에게 교묘하게 정보를 빼내어 바람 피운걸 증명하는 과정은 괜찮은 일상계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매슈의 말은 그냥 넘겨짚었던 것에 불과했고, 그 이유도 '모든 남자는 다른 여자랑 자지 못해 안달난 짐승들이다'는 매슈의 개인적인 지론 하나 뿐이라는건, 결국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나 바람둥이, 아니면 살인자로 바라보는 사고 방식이라 영 별로지만요. 하긴,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건 이런 작가의 개인적인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탓도 큽니다. 남자는 대체로 악하고, 여자들은 대체로 마음이 병들어 있고, 가정 폭력이 있는 집 아이는 마음이 병든다는 그런 뻔한 논리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 주인공인 양산형 여성 시점 스릴러물로 재미도 없고, 새로운 맛도 없으며 범행도 전혀 중요하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차별화할 만한 독특한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그런 요소들 모두 부정적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이 작가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