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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3

비숍 살인 사건 - S.S. 밴 다인 / 최인자 : 별점 1.5점

비숍 살인 사건 - 4점
S. S. 밴 다인 지음, 최인자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딜러드 교수 자택에서 조셉 코크레인 로빈이 화살에 찔려 죽었다. 범인이 비숍이라고 서명하여 보낸 마더 구스 동요 편지가 발견된 뒤, 동요대로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마저 살해당했다. 체스 연구가 파디가 자살하여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어린 소녀 매들린 모팻마저 유괴되자 파일로 밴스는 행동에 나서는데....

'마더 구스' 동요에 따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반 다인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추리작가 협회가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9위,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18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밴 다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몇 권 읽어 보기는 했는데, 명성과는 다르게 추리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무려 다섯 번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만, 마더 구스 동요에 맞춰서 일어났다는 특징 외에는 별다른 트릭은 없습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범인이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인 딜러드 교수가 코크 로빈을 살해했을 때 드러커 부인에게 들키지 않은 것, 드러커를 살해할 때 미행하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은 것 모두 운에 불과하니까요.
드러커 부인 앞에서 드러커 살해를 이야기하여 심장마비로 사망케 한 것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도박입니다. 부인이 큰 소리를 질러 교수가 범인이라고 외쳤다면, 아래 층에 있던 요리사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범행 전개 과정도 정교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딜러드 교수는 드러커가 연구하던 노트를 훔치고, 아르네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전기 의자로 보내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젊은 아르네손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코크 로빈과 조니 스프리그는 죽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드러커만 험프티 덤프티라고 해서 죽이고 '비숍' 이라는 서명을 남기면 되니까요. 왜냐하면 비숍이 헨리크 입센이 쓴 "왕위를 노리는 자들" 속 악당 니콜라스 아르네손에서 유래되었다는걸 경찰이 눈치챌 수 있고, 그렇다면 이후 드러커가 쓴 연구 노트를 훔치기 전에 아르네손이 체포되고 사건이 끝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증거가 없어서 풀려나더라도, 경찰이 엄중 감시했을테니 나중에 죄를 뒤집어 씌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같은 이유로 코크 로빈,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 드러커 부인을 살해한 뒤 파디가 자살한걸로 꾸며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범인은 아르네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디가 진범이라고 경찰이 착각했던 탓에 교수는 매들린 모팻을 유괴해서 죽이려는 번잡스러운 추가 범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아르네손에게는 드러커 부인을 비숍이 습격한 날,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동행했던 벨 양이 시계를 보지 않았어도, 연극을 봤다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알리바이를 깨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소거법으로 모든 피해자들 스케쥴과 집 안팎을 꿰고 있는건 범인 딜러드 교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전개도 짜증납니다. 특히 수사, 심문 과정이 그러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제대로 경찰에게 협조하는 인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딜러드 교수, 드러커, 드러커 부인이 모두요. 요리사 비들은 심문도 아니고 단순한 사정 청취에 지독한 반감을 드러낼 정도입니다.
게다가 드러커나 드러커 부인이 한 말은 거짓말 투성이인데, 이를 추궁하지 않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컴 검사와 경찰은 드러커 부인이 불쌍한 여자라며 그냥 수수방관합니다. 그녀가 범인을 목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또 드러커 부인을 살해하려고 온 범인이 비숍 말을 남겨두면 부인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할거라고 여겼다는 추리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매컴 검사가 이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컴 검사는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르는 느낌입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탐정 역을 자처했던 아르네손은 입센의 광팬이라 비숍의 뜻을 처음부터 눈치챘을텐데,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이유처럼요. 파디가 루빈슈타인과 대국을 하던 중에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45분 정도 시간이 빈 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었겠지만, 루빈슈타인이 45분동안 숙고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루빈슈타인이 45분 숙고 시간을 요청했다는 설명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밴스가 인간 정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범죄는 수학자의 범죄라고 추리하는 정도가 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빈약하고 설득력도 낮습니다. '장기간 심하고 지속적인 정신 노동을 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폭발을 낳으며, 아르네손은 균형 유지를 위해 항상 남을 비하하고 비웃는 식으로 감정 표출을 해서 범인이 아니니, 범인은 딜러드 교수일 수 밖에 없다'는게 전부거든요.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학적 본능에 따른 기괴한 범죄를 행한다는건 근거가 없습니다. 수학자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그리고 이 논리라면, 항상 아이들과 놀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드러커도 범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밴스는 드러커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었죠. 자기 추리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이외에도 파일로 밴스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는 묘사도 너무 많고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묘사로만 줄여도 길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이런 현학적 과시가 작품 특징이기는 한데, 저에게는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르네손을 몰래 살해하려던 교수를 술잔 바꿔치기로 대신 살해한 밴스의 행동만큼은 괜찮았어요. 매컴 검사는 "하지만 그건 살인이야!"라고 화를 내지만, 범인이 아르네손인지, 교수인지 증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술은 둘 중 누군가가 먹게 될 테니, 이왕이면 범인이 먹는게 낫겠죠.
그러나 이 정도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절망적인 수준이며 마더 구스 동요를 잘 녹여내었다는 선구적인 아이디어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추리 소설 속 트릭의 비밀"에서 이 작품에 대해 '동요와 살인의 소름돋는 일치가 최대의 스릴이며, 그 절묘한 스릴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가진 대부분의 매력을 잃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그러한 특이점 외에는 매력이 없습니다.

2023/09/01

본격 미스터리의 진수를 만끽! 흉내내기 (따라하기) 살인을 테마로 한 걸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모두 국내 소개된 작품입니다.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고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본 추리 소설 소개가 많은게 아쉽네요. <<옥문도>>나 <<묵시록의 여름>>은 소개되어도 무방한 수작이지만, <<명탐정에게 장미를>>은 참고 보기 어려운 졸작이었거든요. 이보다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 대신 선정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흉내내기 살인'은 동요나 시, 전설이나 이야기에 빗대어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 현장에 장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범인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동기와 목적이 핵심이며,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와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흉내내기 살인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 소설의 명작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절해의 외딴섬이라는 폐쇄된 서클, 서로를 모르는 초대 손님들, 만찬 자리에서 밝혀지는 범죄, 마더구스의 가사대로 죽어가는 살인, 줄어드는 인형들.... 이 책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는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을 확립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금자탑 같은 작품이다.

"비숍 살인사건" - 반 다인
'누가 코크 로빈을 죽였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마더구스 동요에 빗대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탐정 파일로 밴스가 도전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보다 먼저 발표되어 동요 살인, 흉내내기 살인의 효시로도 유명.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걸작으로 항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가 미디어에 소개된 뒤, 이를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만으로도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지만, 2부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2부부터가 메인이다. 기억에 남는 한 권이 될 것이 분명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옥문도" - 요코미조 세이시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비숍 살인사건>>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답게 '병풍에 쓰여진 하이쿠'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추리 미스터리. 명탐정 긴다이치 고스케가 옥문도라는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작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밀실 살인, 비보 전설 등 다양한 미스터리 요소가 산재되어 있는 현상학 탐정 야부키 카케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에 빗댄 살인이 벌어진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포함한 독특한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어서 본격 미스터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리즈 1편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2005/08/22

대통령의 미스터리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정태원 : 별점 1.5점

대통령의 미스터리 - 2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외 지음, 정태원 옮김/산다슬

짐 블레이크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엄청난 재산가로 러시아 배우에게 반해 결혼하나 그녀가 사랑한건 그가 아닌 돈이었다. 이후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짐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혼을 하기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배신자인 아내에게 보기 좋게 복수를 해줄까? 하지만 이 또한 그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실종’을 선택한다. 나는 살아 있으되, 나를 죽인다.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전혀 새로운 존재로의 완벽한 변신이 시작된다...

요사이 추리소설에 많이 집중하고 있는 기특한 출판사 산다슬에서 발간된 책입니다. 실제로 미스터리 매니아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플롯과 기본 아이디어를 유명 작가 6명이 나누어 집필한 소설이라고 하네요. 릴레이 연재 소설로 연재 작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 1장 : Rupert Hughes
  • 제 2장 : Samuel Hopkins Adams
  • 제 3장 : Anthony Abbot
  • 제 4장 : Rita Weiman
  • 제 5장 : S. S. Van Dine
  • 제 6장 : John Erskine
  • 제 7장 : E. S. Gardner

그러나 읽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별로!" 였습니다. 한 인물이 복수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완벽하게 자신을 바꾼다는 아이디어는 너무 진부하고 뻔한, 그야말로 대통령이라는 신분만 아니었다면 작가들이 절대 써주지 않았을 구태의연한 아이디어와 플롯에 불과하잖아요. 단편이었다면 그래도 괜찮을 수 있었는데 중편 이상의 길이로 써 준 것은 작가들의 과잉 충성일 뿐이었어요.

그나마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놓기 위한 프로 작가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돋보이기는 합니다. 예를 들면 짐이 신분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의 디테일, 짐의 사체로 위장한 시체에서 발견된 총알이라는 변수와 약간의 반전이 있기는 하거든요. 그러나 이후의 해결 방법이 너무나 기대 이하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애견의 충성심으로 확인한다니.... 설득력은 제로에 가까워요.
팬이라면 파일로 밴스 시리즈의 마컴 지방검사의 등장, 페리 메이슨의 등장 정도는 반갑게 보일 수 있지만 그 활약은 지극히 미미할 뿐이며, 페리 메이슨의 등장은 정말 억지스러워서 뭐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책에 자신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광고를 시도하는 진정한 프로 얼 스탠리 가드너의 진면목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정도가 수확이죠.
두께나 분량도 많지 않아 1시간이면 별 생각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러기에는 책 값도 만만치 않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그냥 이런 책이 있다..라는 정도로만 훝어보고 넘어가면 딱 좋은 수준입니다.

2006/04/05

모자 수집광 사건 - 존 딕슨 카 / 김우종 : 별점 2.5점

모자수집광사건 - 4점 존 딕슨 카 지음, 김우종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런던에 출몰한 "모자 수집광"이라는 기상 천외한 도둑을 쫓던 기자 필립 드리스콜이 런던탑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발견될 당시 삼촌인 윌리엄경이 모자수집광에게 도난당한 실크햇을 쓰고 있었던 상태. 기디온 펠 박사는 윌리엄경이 도난당한 에드거 앨런 포우의 미발표 원고에 대한 사건과 모자 수집광에 대한 사건을 런던 경시청의 해드리 경감에게 의뢰받았다가 우연찮게 살인 사건에 개입하게 되어 사건 해결을 위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존 딕슨 카의 작품입니다. 정말이지 오랫만에 추리소설을 한권 읽었네요. 사실 오래전에 읽은 작품이긴 하지만 나이탓인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고 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기분전환이나 할 겸 다시 옛날 세로줄 동서 추리문고를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실망스럽네요. 수많은 딕슨 카 작품들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인데 유명세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 작품이었어요.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딕슨 카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진상은 모름지기 명탐정의 추리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왕도인데 이 작품에서는 범인의 고백으로 이야기가 종결되어 버리거든요. 앞부분에서 묘사된 여러 복선과 단서들이 범인의 자백에 등장하고, 펠 박사도 그때마다 차분히 지적해 주기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조는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반칙과 같다 생각되네요.
또 가장 중요한 살인사건 트릭 자체도 문제입니다. 시간차 알리바이에 근거한 순간이동 트릭으로 약간은 밀실 트릭스럽기도 한데... 우연에 기인한 요소와 군더더기가 많아서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 트릭보다는 오히려 포의 작품이 어떻게 도난당하는지에 대한 트릭이 훨씬 좋았어요. 훨씬 카 답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마지막 장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미해결"이라니! 장난치는거냐!

마지막으로 캐릭터도 별로에요. 저명하신 펠 박사님은 "파일로 밴스" 스타일의 말많고 잘난척 덩어리라는 스테레오 타입 명탐정으로 지루함이 앞서며 해드리 경감은 나름 괜찮은 조역이지만 랜포울이라는 조수역 캐릭터는 왜 등장했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서 그나마 부족한 캐릭터성을 많이 떨어트리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전 펠 박사 시리즈에 등장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리즈의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유일한 등장 이유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미스 마플의 조카 같은 존재?)

모자수집광이라는 기발한 설정과 런던탑을 무대로 한 음침한 딕슨 카 특유의 호러스러운 느낌, 그리고 유쾌한 펠 박사라는 캐릭터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괜찮은 초이스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실망이 더 컸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음에는 펠 박사 시리즈의 걸작이라는 "세개의 관"에 도전해 봐야 겠습니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를 전해 주는 "밤에 걷다"나 "해골성"같은 방코랑 시리즈가 더 제 취향인 것 같네요.

PS : 그런데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동서 문고 옛날 판본이 크기면에서 훨씬 마음에 듭니다. 왜 요새는 저렇게 나오지 않을까요?

2013/06/17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 장경현 : 별점 2.5점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6점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컬트 신봉자 세자르 사바트 박사가 완벽한 밀실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 등 유력한 용의자들은 모두 마술사였다. 개비건 경감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마술사 그레이트 멀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로만 들었던 클레이튼 로슨의 마술사 멀리니 시리즈 대표작. 출간은 작년에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멀리니가 영 별로였습니다. '괴도 키드'와 같은 후배들의 원조답게 굉장히 개성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직업만 특이할 뿐 고전 황금기 시대의 다른 명탐정들과 딱히 구분되는 점이 없는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스테레오 타입 형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 많은 천재형’이며, 그중에서도 최악인,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말만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알려주지 않는 타입(초기의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타입)이라 더 화가 나더라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면 증거나 단서를 잡기 전에 행동부터 좀 하란 말이죠! 하여간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비건 경감이 어떻게 참고 있는지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트릭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걸작’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마술사라는 점에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게 문제에요. 예를 들자면, 첫 번째 사건에서의 손수건 바꿔치기,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같은 건데,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라 일반적인 상황과 상식에서는 구현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마술에 의지한다는 점 때문에 독자와의 두뇌게임 역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최면술 같은 것을 사전에 단서로 공유해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이유는 멀리니도 말하듯 증거가 너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인계획을 짤 생각이었다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라, 범인으로 옭아맬 희생양도 필요했을 텐데 그냥 불가능 범죄를 연출했을 뿐이라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들인 공에 비하면 별로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럴거라면 애초에 왜 밀실을 만들었을까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가 말했지만, 가장 완벽한 밀실 살인은 자살이어야 합니다. 그게 살인으로 밝혀지면 범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이유는 경찰력의 무능함을 극대화시킨 전개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5만 달러나 되는 큰돈이라는 유력한 동기를 간과하고 멀리니에게만 기댄다?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전 황금기 시대 이름을 날린 작품다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술의 미스디렉션을 살인의 기법과 연결시키는 발상 하나만큼은 높이 쳐주고 싶고, 초반의 타로가 사라지는 간단한 마술 트릭이라든가 첫 번째 사건에서의 바꿔치기 트릭 하나만큼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연 추리 소설사에 이름을 남길 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딕슨 카의 밀실 추리 이론 등 다양한 작품과 이론에 대한 소개 역시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저의 컸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더 컸다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 출간 자체는 반갑지만, 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어요. 멀리니의 장광설만 좀 줄이고,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트릭 하나만 보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멀리니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08/04/27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 김민영 : 별점 3점

세 개의 관 - 6점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수수께끼의 남자가 나타난 뒤 방 안에서 연기와 같이 사라진 그리모 교수 살인 사건과 거리 한복판에서 유령과 같은 목소리와 함께 살해된 카리오스트로 거리의 마술사 살인 사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기디온 펠 박사가 나섰고, 의외의 진상을 밝혀낸다.

존 딕슨 카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작품입니다. 번역된지는 꽤 되었지만,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는 취향이 아닌 탓에 통 손이 가지 않아서,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명탐정이긴 하지만 기디온 펠 박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잘난척하는 캐릭터와 장황한 언변으로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같은 짜증 계열 탐정으로 저한테는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방코랑 탐정이 개인적으로는 더 취향이에요.

하여튼, 이 작품은 고딕 호러물과 추리물의 결합이 특기인 딕슨 카의 작품답게 "트란실배니아의 흡혈귀 전설"이라는 호러적인 소재를 도입하고 있으며. 흡혈귀 전설에서 유래한 관, 그리고 관에서 살아나온 시체라는 설정을 "불가능 살인"의 기묘함과 잘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범인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혈귀나 마술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니까요.

또한 이러한 불가능 살인 사건이 무려! 두 건이나 벌어지며 - 모두 밀실 살인 사건으로 한 건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그리모 교수 사건이고, 또 하나는 눈이 쌓인 거리 한 복판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마술사 프레이 사건입니다 -   두 건 모두 의외의 진상을 보여주는 덕분에 추리적인 재미는 상당합니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두개가 낫지요.

하지만 그리모 교수 사건은 완벽한 트릭과 장치에 의한 정교한 밀실 살인 사건인 반면, 프레이 사건은 우연과 특수한 상황이 결합된 돌발 상황일 뿐이라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범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과 우연이 여러 개 겹친 상황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리고 첫번째 사건도 아주 정교하고 공들인 장치와 트릭이 어우러진 밀실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명성에 값하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범인의 "체력"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건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때문에 트릭 면에서는 알려진 것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흡혈귀 전설에서 시작해서 마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작품과 트릭에 녹여내는 솜씨 하나만은 과연 대단합니다. 트란실배니아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또 기디온 펠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장황한 강의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해드리 경감과 랜폴 등 시리즈 캐릭터의 등장도 반가왔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 기디온 펠 박사는 여전히 짜증 계열 타입이기는 하지만 재미, 작품의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겨 볼 때 별 세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PS : 그리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출간된 딕슨 카 작품 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네요.

작품목록 : 연속살인사건 (고성의 괴사건) / 해골성 / 황재의 코담배갑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 세개의 관 / 화형법정 / 모자수집광사건 / 감미로운 초대 (밤에 걷다)

이 중 딱 세 작품만 꼽아 본다면 저의 영원한 베스트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정통 추리와 고딕 호러의 완벽한 결합체인 "해골성", "화형법정" 을 꼽겠습니다.

2010/02/03

하우미스터리선정,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news&no=215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사이트인 하우미에서 총 36명의 사이트 방문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리스트입니다. 표본수가 적긴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자료라 생각되네요. 1, 2위를 모두 읽지 않았는데 더 늦기 전에 챙겨봐야겠군요. 어쨌건 <경성탐정록>이 쟁쟁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당당 4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상세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집계기간 : 2009년 12월 08일 - 2010년 1월 31일
참여자 수 : 36
방식 : 1인 3권 추천


1위 총 15표 <차일드44>, 톰 롭 스미스, 노블마인

2위 총 9표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도서출판 비채

3위 총 8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시공사

공동 4위 총 6표
<고백>, 미나토 가나에, 도서출판 비채
<경성탐정록>, 한동진, 북홀릭

공동 6위 총 5표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도서출판 비채
* 제가 읽은 건 구판입니다.
<마인>, 김내성

공동 8위 총 4표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시작
<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고려원북스

공동 11위 3표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 자음과 모음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공동 13위 총 2표
<파일로 밴스의 정의>, S.S.반 다인, 북스피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시공사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은폐수사>, 곤노 빈, 시작
<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시인>,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1표 획득작
<경관의 피>(상하), 사사키 조
<검은 화집>(상중하), 마쓰모토 세이초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와카타케 나나미
<두 번째 총성>, 안소니 버클리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오사키 고즈에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에도가와 란포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덤으로 향하다>, 로렌스 블록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유대인 경찰 연합>(2권), 마이클 셰이본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 - 우수, 당혹>(2권), 쓰하라 야스미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레전드>, 로버트 리텔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방해자>(3권), 오쿠다 히데오
<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위철리 가의 여인>, 로스 맥도널드
<악몽의 관람차>, 기노시타 한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권, 아서 코난 도일-레슬리 S. 클링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