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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카레 도감 - 가큐 쇼타로, 오카타 오카 / 김영진 : 별점 1.5점

카레 도감 - 4점
가쿠 쇼타로 감수, 오카타 오카 그림, 김영진 옮김/성안당

올해 들어 이상하게도 카레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네요. 이 책은 카레에 대해 여러가지 짤막한 정보들을 관련 그림과 함께 가나다 순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처럼 '도감'이라고 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림들은 재미를 더해주기는 하지만 정보 측면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단순한 일러스트에 불과한게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자유분방하면서도 과감한 선과 색의 조합이 제 취향이었으니까요.

수록된 정보도 중구난방으로 전혀 정리도 되지 않고,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인도에서는 버섯이 인기가 없다던가, 카레가 아침에 먹으면 좋은 이유(향신료가 건강에 좋고,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등) 와 같은 쓰잘데 없는 내용 등 다루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좀 기묘하면서도 황당한 재미는 있습니다. 실제 요리와 재료를 비롯하여 만화 "요리인 아지헤이"에 등장하는 '블랙 카레', 2011년 벨기에에서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성자들의 식탁", 심지어 '스푼'까지 한 꼭지 있을 정도니까요.
실존 인물들 소개도 많습니다. 주로 요리사나 카레와 관련된 유명 연예인이 많은데,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가 카레 매니아로 유명하다며 소개되고 있는게 좀 특이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카레맨' 항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아는 카레맨은 도쿄 시모키타자와 카레 페스티발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프로레슬러 크리스토퍼 다니엘즈의 또다른 기믹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싶다 Fallen angel!

다루고 있는 소재의 특성 상 당연히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많습니다. 이 중 다시 국물로 지은 밥에 버터를 섞은 버터 라이스는 카레와 찰떡궁합이라는데 한 번 시도해봐야겠어요.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로 보이거든요. 감자와 콜리플라워, 카레를 섞어서 물기없이 볶는 알루 고비도 조금 자세하게 레시피를 찾아보고 싶고요. 맛이 없을 수가 없을테니까요. 인도의 레모네이드라는 '잘지라'도 맛이 궁금합니다. 커민과 생강, 블랙 페퍼, 레몬, 소금을 차가운 물과 섞었다는데, 아마도 어른의 맛이겠죠. 인도 남부지방이 원조라는 '치킨 65'라는 요리는 우리나라 양념 통닭과 너무나 비슷해서 놀라운데, 역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게 아닐까 싶었고요. 마지막으로 네팔의 술 퉁바도 소개에 따르면 카레와 전혀 관계는 없지만, 마시면서 뜨거운 물을 계속 붓는 음주법과 덕분에 마실 수록 맛이 좋아진다니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흥미거리가 없지는 않지만, 극소수의 볼거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도감, 즉 사전으로서의 깊이도 부족하고, 지나치게 일본에 편중된 정보들일 뿐 아니라, 어떤 항목들은 카레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야마현 이미즈시'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고, '카슈미르 카레'는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같은게 대표적이죠. 우리나라도 따지면 '이태원동 이태원로' 가 사전에 한 꼭지 있는 셈입니다. 인도 카레 맛집이 있다는 이유로요.
그나마 이건 약과로 '츄오센 (일본 전철 노선)'에 맛있고 개성적인 카레 전문점이 많다고 소개하는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츄오센'에 맛있는 스시집, 장어집, 프랑스 요리집도 있을텐데 말이죠. 심지어 아예 '카레'라는 단어도 소개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도 다수입니다. 저는 '에그타르트'가 카레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커피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콜럼버스' 입니다. 콜럼버스가 카레와 약간이나마 관련이 있는건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났다는 정도인데, 정작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항목의 핵심은 계란을 깨서 세웠다는 '콜럼버스의 계란' 이야기거든요. 이 쯤 되면 '카레 사전' 이 아니라 그냥 작가가 쓰고 싶은 토막 정보들을 대충 모아놓은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에요. 1998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독극물 카레 사건' 에 사용된 독극물이 비소라는 이유로 비소가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스트리트 파이터의 '달심'이 소개되는건 오히려 당연해 보입니다. 달심은 카레를 좋아하며, 부인 '사리'가 만들었다는 취지의 카레가 실제 시판된 적도 있다고 하니까요.

번역, 책의 완성도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오타도 많고, 잘못 구성된 페이지가 제법 눈에 뜨이거든요. '암추르'는 책 안에서도 '암츄르'라는 말과 혼돈되어 표기되는데, 이래서야 사전으로서는 낙제점이죠. 더군다나 '파키스탄' 소개 항목의 그림은 깨져있기까지 합니다.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은게 명백하다는 증거지요. 풀컬러에 꽤 두꺼운, 묵직한 종이를 써서 인쇄한 2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책이 16,000원이라는건 비교적 양심적인 가격이기는 한데,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카레에 대한 책은 이제 좀 그만 읽어야겠습니다.

2020/01/23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카레라이스의 모험 - 6점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눌와

카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저자가 카레의 정체를 탐구하고, 뒤이어 일본식 카레와 카레라이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사적입니다.

읽으면서 "맛의 달인" 24권의 '카레 승부' 편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카레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도까지 가서 카레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영국으로 찾아가 카레 가루의 원형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 구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의 형성 과정을 깊숙히 파고든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 스리랑카는 카레에 몰디브 피쉬라는 가다랑어 종류 건어물을 사용한다, 카레의 맛이 부족하면 한방약을 털어서 섞어 먹으면 좋다는 등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뒤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맛의 달인" 24권이 출간된건 1990년이며, 이 책이 언제 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카레 서적을 발표하며 '카레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저자이니, 이 책에 등장했던 전개와 이야기들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당연히 책이기 때문에 "맛의 달인" 보다 카레에 대한 정보 제공은 훨씬 자세하며 정보의 폭도 넓고 깊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도 돋보이고요. 일본에서 시판되는 카레를 조리해서 인도인에게 먹여본다는 도입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인도인들도 꽤 맛있어 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인도의 여러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요리를 '카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맛의 달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카레'의 어원은 타밀어에서 무언가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에서 왔거나, 힌디어로 향이 강하고 맛있는걸 뜻하는 '터카리'라는 말에서 왔거나, 아니면 옛 인도 북부의 요리 이름인 카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재미있었습니다. '캥거루' 어원에 대한 전설처럼, 영국 지배 시기에 영국 관리가 인도인들에게 먹는 요리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맛있다고 한 '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던 설은 거짓말이라는 디테일까지 완벽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시기의 이야기라면 18세기 이후 이야기인데, 커리가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건 1598년이기 때문이라네요.
그 외에도 인도인들도 카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던가 - 등장하는 요리사인 쟈인 씨는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요리는 모두 카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 매운 맛의 기본은 특별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추와 후추가 중심이며 인도에서 카레를 만들 때 양파를 카라멜라이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카레의 정체에 대한 탐구 뒤 펼쳐지는 일본식 카레의 형성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화권에 완전히 이질적인 요리가 도입되어 국민 요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의 달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우선 소개되는건 일본 카레의 기원입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카레 조리법인 "서양요리지남" 속 카레는 개구리! 카레였으며, 야채로 파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식 카레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양파, 감자, 당근이 생소한 채소였기 때문입니다. 1879년 간행된 "서양과채조리법" 속 파는 “오니언”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다른 책에는 “아니언”이라는 표기도 있었으며 “뿌리를 식용으로 하며, 겉의 껍질을 벗기고 잘 씻는다”라고 주석이 달린걸 보면 파 역시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재료가 아니었을테고요. 이러한 개구리 카레 스타일의 카레 요리법이 1900년대 초반까지 퍼지게 되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카레 가루를 넣은 소스로 고기를 익힌 요리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인도식과는 다르게 카레 가루를 쓰고,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었다는게 특징이지요.
지금과 유사한 카레 요리법인 걸쭉한 카레 루에 고기와 함께 양파,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볶고 끓여 만드는 방식은 다이쇼 시대 이후 확립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레시피로 카레를 조리하여 배식한게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역사와 함께 저자는 카레가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우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가를 개조하던 와중에 육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 요리인 규나베가 널리 퍼진 뒤, 카레가 일본인에게 서양 요리의 입문격 요리로 알려지고요. 이유는 이미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고기도 규나베처럼 작게 썰어 넣어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그 뒤 '1. 레스토랑, 식당 등의 메뉴에 등장한다. -> 2. 잡지, 서적(현재라면 TV)과 같은 미디어에서 요리법 또는 '요즘 이런 요리가 유행'이라는 말 등이 소개된다. -> 3.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된다.' 라는 외부 요리 수용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초기의 소스형에서 스튜형으로 조리법도 바뀌고요. 소스형 카레는 주재료가 고기지만, 가정 요리로는 요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도록 고기는 적게, 그리고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는 식의 음식으로 발상을 전환한게 그 이유입니다.
그 결과가 본래의 서양 요리와는 다른 일본풍의 양식 '카레라이스'인 것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 가루 제조와 카레 루의 판매, 인스턴트화 등을 거친게 현재의 일본 국민 요리 카레라이스입니다.

이렇게 일본 카레라이스에 대해서만 연구한 결과물이라는건 아쉽지만, 카레가 아니라 그 어떤 요리라도 다른 문화권에 흡수될 때에는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레왕께서 추천한 참고 도서인 "카레의 지구사"도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책입니다.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이지요.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다,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현재 영어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식으로요.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이고요.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합니다.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지요.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26/06/2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8) 카레가 건너 온 추리 소설

카레는 친숙한 요리입니다. 한국군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요. 우리와 교류가 적었던 인도의 전통 요리가 이렇게 친숙해진 건,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 식민지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이 현지에서 고용했던 요리사들과 함께 귀국하면서 여러 인도 요리가 영국에 들어왔지요. 이후 이 음식들은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밀가루를 넣은 스튜 형태로 변형되었고, 때마침 영국 회사 C&B에서 인도 향신료를 배합한 가정용 분말을 출시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은 걸쭉한 스튜처럼 조리하되, 시판 향신료 분말로 이국적인 맛과 향을 더한 음식. 영국인들은 이를 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에서 따와 ‘커리’라고 불렀습니다. 정작 인도에는 없는,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요리인 셈입니다. 참고로 커리라는 명칭은 카릴, 혹은 카리라고 불리던 매콤한 남부 인도 요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 속에 커리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주마 은점박이" 사건에서 마방 조교사 집의 저녁 식사로 양고기 카레가 등장하니까요. 범인은 마굿간 청년들에게 맛이 강한 아편 분말을 섞어 먹이기 위해 이 요리를 택했습니다. 커리의 강렬한 맛이라면 웬만한 약을 숨기기에 적절했을 테니, 범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지요.

"해군 조약"에서는 의뢰인 펠프스와 함께하는 식사 메뉴 중 하나로 닭고기 커리가 나옵니다. 허드슨 부인의 특기처럼 소개되는데, 이렇게 평범한 저녁 메뉴로 등장할 정도라면 당시 영국에서 커리는 우리나라의 김치찌개 정도 위치의 음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영국에서 커리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1년, 영국 외무부 장관 로빈 쿡은 인도 카레라이스의 일종인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니까요. 2015년에 발표된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도 정통 인도 커리인 치킨 코르마가 자주 먹는 요리로 소개됩니다. 코르마는 주 향신료인 마살라에 버터와 크림, 요거트 등을 넣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커리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단골집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치킨 코르마에 견과류를 갈아 넣습니다.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연인 에릭을 살해하기 위해서요. 에릭은 예상대로 치킨 코르마를 먹은 뒤 발작을 일으키고, 릴리가 치료제를 숨긴 탓에 결국 질식사합니다. 약을 섞지도 않은, 그야말로 완전범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영국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커리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레는 단순한 서양식 요리를 넘어, 밥과 함께 먹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일본에는 1870년대 국비유학생 야마가와 겐지로가 최초로 영국식 커리를 전래했습니다. 이때 일본식 발음으로 ‘카레’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당시 일본에 여러 서양 요리가 전파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레는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해군이 영국군을 따라 카레를 장병들에게 보급했던 덕이 컸습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이 주요했지요. 고기도 작게 썰어 넣어, 육고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대 일본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이쇼 시대에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가는 현대적인 레시피가 정착합니다. 영국 C&B 카레 가루를 국산화한 카레 가루 제조사도 등장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카레라이스’가 가정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3분 카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즉석 카레 역시 1968년 일본 오츠카식품이 레토르트 파우치에 카레를 넣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일본은 카레에 정말 진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카레의 인기는 밥과 함께 먹는다는 개념을 넘어, 여러 음식으로 확장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카레빵이 대표적입니다. 이름 그대로 속에 카레를 넣은 빵이지요. 도쿄 명화당이 1927년 특허 등록한 양식 빵이 원조라고 합니다. 라쿠고가 엔시 씨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소설 "가을꽃"에서 맛있게 빵을 먹는 삼원칙 이야기가 나올 때도 언급되었지요.

카레 우동은 1909년 와세다대학 옆의 오래된 소바집 ‘산초안’에서 개발한, 메밀국수 위에 카레와 파를 얹은 카레 남만이 발전한 음식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도입부에서 낯선 여학우가 무슨 메뉴를 주문할지를 두고 아케치와 하무라가 추리 대결을 펼칠 때, 아케치가 선택한 메뉴이기도 합니다. 일본 전통 요리와 카레가 결합된 음식이라는 점에서, 좀비물과 본격 추리물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런 나라니 당연히 카레 전문점도 많습니다. ‘아비꼬’나 ‘코코이찌방야’ 같은 일본 카레 전문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영업 중이지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에는 ‘파라다이 로스트’라는 카레 가게가 등장합니다. 이 가게는 미나코가 중학생 때 교회 부설 고아원인 ‘성모의 정원’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뒤 시작한 곳입니다. 그녀의 아들 분지는 정신지체아로, 성장한 뒤 가게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미나코는 성모의 정원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수녀들은 더럽다는 이유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서 실종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카레를 제공했을 때뿐이었지요.
그 뒤 죽어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기를 거절당한 미나코를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분지는 먼저 어린아이를 유괴합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미나코의 사체로 만든 카레를 제공합니다. 고기의 특성을 지울 수 있는 카레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태어나 일본의 생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카레는, 카레는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컸을 것입니다.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도 경성지방법원에 호송된 뒤 법원 구내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김치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는 후쿠신즈케가 곁들여지지 않은 것은 카레라이스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에게 김치도 한 번 권해 주고 싶네요.

하지만 카레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슴 따뜻한 드라마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알려주듯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 균형이 좋은 음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향신료 요리는 영국에서 스튜가 되었고, 일본에서 밥과 만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치와 함께 먹는 일상식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점만은 같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카레가 어떠신가요? 기왕 먹을 것이라면, ‘컨트리 캡틴 치킨’을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요리는 1849년 출간된 책에 실린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레시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허드슨 부인이 홈즈를 위해 만들었던 닭고기 커리도 이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로버트 플라워 리델, "인도 가정과 요리책", 1849

  1. 닭고기를 잘게 썬다. 
  2. 양파는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3. 닭고기에 소금과 커리 가루를 뿌리고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4. 스튜 냄비에 수프 1파인트와 재료를 함께 넣는다. 
  5. 국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뭉근히 끓인 다음 밥과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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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해 두기는 했는데,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의 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볼까 하여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처럼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해서도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도 수록되어 있고요.
참고로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4/03/17

돈까스를 쫓는 모험 - 이건우 : 별점 2.5점

돈까스를 쫓는 모험 - 6점
이건우 지음/푸른숲

돈까스에 진심인 저자가 우리나라의 유명 돈까스집의 돈까스를 먹고 평가하는 식도락 먹부림 에세이. 개인의 기호와 철학에 따라 주제를 정해 맛집들을 깊숙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는 조영권 씨의 "중국집"과 "경양식집에서"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돈까스라는 주제에 더 깊숙이 집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까스 자체는 물론 관련된 요리와 음식에 대한 정보와 특징들이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래와 같이요.

  • "샐러드 하면 자연스레 이탈리아가 떠오르고 거기에 시저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로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황제 샐러드 혹은 시저가 먹었던 샐러드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저 샐러드는 탄생한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음식이다. 20세기 초,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저 카르디니(Ceasar Cardini)가 어느 날 가게에 몰려든 손님에게 낼 음식이 떨어지자 기지를 발휘해 남은 식재료로 샐러드를 만들어냈는데, 이게 바로 시저 샐러드의 기원이라고 한다."
  • "일본 돈까스의 시초 '렌가테이(煉瓦亭)'에서는 뭉텅뭉텅 썬 양배추를 육수에 데쳐서 돈까스와 함께 냈다. 그런데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성 직원이 징용되어 일손이 부족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데치지 않은 양배추를 그대로 내기로 했다."
  • "히레는 안심을 뜻하는 필레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다."
  • "멘치는 무엇인가? 갈아놓은 고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민스(mince)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멘치까스는 고기와 양파를 갈아 뭉친 반죽을 튀겨서 만든다. 이런 음식,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맞다, 크로켓. 흔히 '고로케'라고 부르는 음식이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멘치까스는 멘치고로케라고 부르기도 한다."
  • "코르동 블뢰는 음식 이름이기도 하다. 치즈를 햄으로 감싸 튀긴 음식으로, 스위스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졌고 다시 우리나라로 넘어오며 흔히 아는 치즈돈까스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 "일본 나고야의 대표 요리인 히쓰마부시(장어덮밥) 전문점에 가면 먹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먼저 밥주걱으로 4등분하여 처음에는 밥과 장어 본연의 맛을 즐긴 다음 파와 김, 와사비 등을 곁들여 먹는다. 그 후에 찻물을 부어 말아 먹고, 마지막에는 가장 맛있었던 방법으로 마무리하는게 정석이다. 꼭 시키는 대로 먹을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가게에서 하는 제안이니 따라 해 보는게 좋다."
  • "후쿠진즈케는 무, 순무, 오이, 우엉, 작두콩, 연근, 차조기 등 일곱 가지 채소로 만든 장아찌로 일본에서는 카레 가게에서 단골 반찬으로 볼 수 있는 반면, 그 외에는 반찬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카레와 후쿠진즈케를 함께 내는 전통은 의외로 역사가 깊어 1900년대 초반, 일본 최대 해운 회사인 NYK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우선주식회사(日本郵船株式会社)의 유럽 항로에서 1등석 식사로 카레와 함께 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 한편 우리나라에도 후쿠진즈케와 아주 비슷한 반찬이 있는데 오복채라고 부른다. 후쿠진즈케가 일곱 가지 채소로 만들기에 칠복신을 뜻하는 시치후쿠진(七福神)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오복채 역시 이름이나 형태로 봤을 때 같은 뿌리를 갖는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오복채는 무, 연근, 오이, 다시마, 우엉, 이렇게 다섯 가지 채소로 만든다(재료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가게 이름 끝에 붙은 ‘안(庵)’은 대개 소바 전문점을 의미한다. 안이라는 한자는 우리식으로는 암자(庵子)를 뜻하는 암으로 읽는다. 그런데 하필 안이라는 글자가 소바집을 뜻하게 되었을까? 언급했듯, 안이라는 글자 자체가 암자, 즉 사찰 내에 승려가 머무는 작은 집을 뜻하는데, 이는 결국 절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소바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기본적으로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사찰음식은 철저히 채식일 수밖에 없다. 메밀가루로 만드는 소바는 이런 식단에 꼭 들어맞는다. 또한 면이라는 음식은 일단 만들어두기만 하면 끓는 물에 데쳐 빠르게 대량 조리하여 낼 수 있어서 신도를 비롯해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절에서 간편하게 대접하기 좋은 음식이다. 마지막으로 깊은 산속에 있는 암자는 종종 피난처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보존성이 우수하다는 장점도 있다. 실용적인 장점 외에도 메밀은 승려들이 수행 중에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는 곡물이기도 하다. 일본 천태종에는 승려가 수행 중에 쌀, 보리, 조, 기장, 콩 이렇게 다섯 가지 곡물을 먹지 않는 특정한 기간이 있는데, 메밀은 금식해야 할 곡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식재료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소바라는 음식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사찰 및 승려와 함께 발전해왔다."
  • "소바집을 뜻하는 ‘안’ 자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에도 시대 아사쿠사에 도코안(道光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여기에 기거하던 주인이 이른바 소바 명인이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소바가 오죽 맛있었으면 사찰 내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어 결국 주지스님이 소바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에도의 소바집들이 하나둘씩 이름 뒤에 안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소바집에 안을 붙이는 유래라고도 전해진다."
  • "타레는 우리가 익히 아는 소스와 거의 흡사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스는 주로 양식풍 요리에 쓰며 조리 중에 넣거나 혹은 완성된 요리 위에 뿌리는 액체를 말한다. 타레는 양식 외의 요리에 쓰며 조리 중에 넣거나 혹은 완성된 요리를 찍어 먹는 액체를 말한다."
  • "썰’로 나도는 싸만코의 진정한 유래, 서머(summer)를 일본어식으로 발음한 사마(サマー)와 팥을 뜻하는 앙코(あんこ)가 합쳐져 싸만코가 탄생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개인적인 돈까스를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아래와 같이 상세합니다.

"내가 일본식 등심 돈까스를 먹는 방식을 설명해보자면, 일단 가운데에서 한 조각을 있는 그대로 먹어본다. 밑간이 훌륭하다면 양끝 조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레몬 즙만 뿌려서 먹는다. 밑간이 약하다면 먼저 소금을 찍어 먹고 양끝에 가서야 비로소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순정’보다는 소금, 소금보다는 소스 맛이 강하기 때문에, 마치 회나 초밥을 먹을 때 담백한 부위에서 점점 기름진 부위로 옮겨가듯 맛의 농담(濃淡)에 신경 써서 먹는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음식의 군사"가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방법은 다르지만 발상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자의 글 솜씨도 좋습니다. 유쾌하게,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록된 거의 모든 가게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생활권이 아닌 강북(마포 등)에 위치한 가게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이나 지방보다는 접근성이 뛰어나니 언젠가는 한 번 가 볼 기회가 있겠지요.

그런데 무시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은 그건 바로 디자인입니다. 구입 의욕을 사라지게 만드는 표지에서 시작해서, 소개하는 가게 및 돈까스의 사진이 너무 볼품이 없어요. 돈까스가 핵심이면 돈까스 사진이라도 다양하게 올려줬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수록된 사진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사진과 도판이 풍성했더라면 별 4점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지금 결과물은 별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제 기억에 남아있든 돈까스 가게는 '허수아비 돈까스' 본점입니다. 두툼한 고기에 바삭한 튀김옷이 어우러진 일본식 돈까스였는데 당시(약 30년 전)에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음식이었지요. 처음 먹었을 때 정말이지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체인점 사업으로 이어진 것까지는 아는데, 십 수년간 가 본 적이 없네요. 마침 생각난 김에 찾아봤더니 아직은 건재한 듯 하니, 근처에 가 볼일이 있다면 추억삼아 한 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2025/06/14

일본 현지 간식 대백과 - 일본 추억의 대백과 시리즈 편집부 / 수키 : 별점 2.5점

일본 각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간식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관련된 시리즈 중 한 권이지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먹고 싶다', '한 번 맛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절로 생켜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그중에서도 꼭 먹어보고 싶은 것들과, 어딘가에서 본 듯해서 반갑거나 기억이 나는 간식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맛이 궁금하거나 꼭 먹어보고 싶은 과자들을 보자면, 우선은 나가사키의 럭키체리마메가 있습니다. 좋은 지하수를 사용해 바삭하게 튀긴 콩을 설탕과 생강, 물엿으로 만든 시럽에 조려낸 간식이라는데, 정성과 기술과 함께 맛이 느껴지는 조합이라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나가사키에 가면 카스테라 말고 이 과자도 꼭 사 봐야겠어요. 같은 지역의 아지카레도 흥미롭습니다. 전문가 단 한 사람만이 제조법을 안다는 소개에서 왠지 전설의 비밀 레시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거든요. 향신료를 직접 제조한다는 점도 전문 카레점 느낌이라 인상 깊었고요.
오키나와에서는 두 가지 간식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는 단나화쿠루라는 이름의 과자인데, 류큐 왕조 시대 궁정에서 먹던 군펜의 대용품으로 흑당, 밀가루, 달걀 등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니 검고 진한 계란 과자 느낌인데, 제가 계란 과자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꼭 한번 맛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 궁정에서 먹었다니 호기심도 자극하고요. 또 하나는 시콰사아메라는 캔디입니다. 시큼하고 상큼하면서도 약간 쓴맛이 느껴진다는게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홋카이도 기타미의 핫카아메는 박하를 원재료로 만든 사탕입니다.기타미가 한때 세계 최대 박하 생산지였다른건 처음 알았네요.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은 어른에게 어울릴것 같아 선물로 제격이라 생각됩니다.
시즈오카에서는 말차를 넣은 양갱인 오차요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배스킨라빈스에서도 그린티만 찾는 터라 이건 무조건 제 취향일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단맛보다 은은한 차향이 감도는 과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좋아할 같습니다.

후쿠이현 가메야제과의 유키가와는 처음엔 약간 괴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구운 다시마에 설탕을 묻힌 과자라니, 조합만 보면 어색한데 실제로는 꽤 인기 있다고 하네요. ‘기왓장 위에 눈이 내린 모습’이라는 말 그대로의 형태도 흥미롭고요.
미에현의 나마 아라레는 굽기 전 상태로 판매되는 생과자로, 집에서 전자레인지나 토스터로 간단히 조리해 갓 구운 상태로 먹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밀키트보다도 간편해 보있는데 우리 제과업체에서도 시도해보면 좋겠네요.
고치현의 다마아라레는 점주가 수작업으로 만드는 과자로 직접 고치에 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는게 인상적입니다.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나서 반가웠던 과자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스즈키 제과의 믹스 젤리의 경우는, 옛날에 먹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식감과 모양이더군요. 젤리와 양갱 사이쯤 되는 촉촉한 식감, 그리고 스즈키가 발명했다는 젤리를 싸는 전분으로 만든 오블라투까지도 예전에 분명 먹어본 기억이 있어요. 왜 이런 젤리 캔디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지 살짝 궁금해지네요.
난부센베이도 어디선가 본 적이 확실히 있습니다. 후쿠이현 에가와의 미즈요칸도요. 사타안다기 역시 이름은 물론, 만화 속 묘사로 익히 들어왔습니다. "아즈망가 대왕"에서 제 기억으로는 튀긴 어묵이라고 소개되었었는데, 사실은 밀가루, 설탕 등으로 튀겨낸 도넛의 일종이라서 조금 놀랐네요. 다카기 나오코의 먹부림 만화에서 봤던 돈돈야키, 젤리프라이, 라디오야키도 책 속에서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만들어졌다는 에히메의 타르트 역시 만화나 방송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 전통 과자인데 롤케잌 형태라는 점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쿠라 다이콘은 막과자 만화 "다카시카시"에 등장했었지요. 절임 막과자라는 정체는 만화 속에서 보고도 믿기 어려웠는데, 실제 사진으로 보니 더 놀라웠습니다. 무절임이 과자가 된다는 개념 자체가 워낙 생소해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한입쯤 먹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단촛물에 절인 무라니, 치킨무와 비슷한 맛이겠지요?

이렇게 맛있어보이는 다양한 일본 지역별 현지 간식 소개에 이어 책의 말미에는 지역별 간식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해두었는데, 이게 참 마음에 듭니다. 일본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 페이지만 펼쳐두면 그대로 현지에서 먹어볼만한 간식 리스트가 될 정도로 실용적인 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빵 같은 항목은 이전의 대백과 시리즈와 중복되는 내용이라서 불필요했다고 여겨집니다. 목차와 분류도 종류보다는 지역별로 묶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고요.
간식들의 포장지를 소개하는 부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진과 함께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재미있는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4/18

오이시이 빵 - 판토타마네기 / 황세정 : 별점 2.5점

오이시이 빵 - 6점
판토타마네기 지음, 황세정 옮김, 오기야마 가즈야 감수/시그마북스

빵을 사랑하는 저자가 직접 그리고 쓴 개인적인 빵 사전입니다. 직접 먹어보고, 찾아보고, 조사해 본 범위 내에서의 여러가지 빵과 빵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가나다순서대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이 전부라 깊이는 없고, 빵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도 부족합니다. 저자가 빵을 사랑하는 일반인일 뿐이며, 관련 정보를 접한 참고 서적이나 출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이게 정말 맞는 내용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도넛 이름의 유래가 반죽 (Dough)에 견과류 (Nuts)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영 미심쩍습니다. 빵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도 적지는 않은 편이고요. 그리고 중간중간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이 있는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불편했었습니다. 일본어 원서도 이렇게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을지 조금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이런저런 빵의 이름을 확실히 알게된건 수확입니다. '바타르'는 바게트보다 길이가 짧은, '중간'이라는 뜻의 이름이라던가, 치아바타는 슬리퍼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던가('치아바타'는 이탈리아어로 슬리퍼라는 뜻), 파운드 케이크는 밀가루와 설탕, 버터, 달걀이 각각 1 파운드 씩 들어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의 이야기들 덕분이지요.
또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특산물' 빵에 대한 소개도 이 책만의 강점입니다. 직접 전국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로 보이는데, 이런저런 재미난 빵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후쿠오카의 '긴초코', 초콜릿 빵 '맨해튼'. '멘타이 프랑스'. '소문의 빵'(후쿠오카 출신이라 그런지 후쿠오카 빵과 빵집 소개가 많습니다), 삿포로의 '지쿠와 빵', 도야마 현의 '비취 빵', 시가 현의 샐러드 빵, 기타큐슈 어묵집의 '카나페', 키타큐슈의 '킹 빵" 등은 소개만 보아도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보이고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비취 빵, 야키소바 빵과 메론 빵, 카레 빵, 크림 빵의 유래, 크로크 마담과 크로크 무슈의 차이 등 토막 상식같은 정보들도 값집니다. 

중간에 등장한, 세라믹이 붙어 있는 그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척 탐나네요. 숯불 위에서 빵을 굽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왜 저는 몰랐을까요? 조금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카모메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더라고요. "카모메 식당"에서 연어 구을 때 썼다나 뭐라나. 지금 집은 인덕션 구조라 당장 구입할 생각은 없지만, 이사가게 되면 구입을 고려해봐야 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글들과 함께하는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그냥 일러스트만 보아도 높은 수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사오 하루밍 느낌도 살짝 나는, 간단하면서도 선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그림입니다. 이 정도면 그림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작업은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약간 의아합니다.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책 곳곳에서 빵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후쿠오카에 살다가 빵 소비량이 일본 수위를 다투는 교토로 이사가서 수년 동안 살고, 빵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서 교토에서 빵에 대한 무가지를 직접 만들어 24호까지 배포하고, 생계 유지는 빵집 아르바이트, 여행은 빵집 위주로 다닌다는 덕력이 책 전체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덕후의 덕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보다는 일상계 에세이 만화에 가까운 느낌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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