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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박물관 보는 법 - 황윤 : 별점 3점

박물관 보는 법 - 6점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유유

부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입니다. 간략한 책 소개와 부제를 보고, 다양한 박물관에 대해 어떤걸 관람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실용서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우리나라 박물관과 유물 수집가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을 정도로요.

책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도굴꾼이 창궐했다는 1909년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에서 시작합니다. 다행히 1908년 왕립 이왕가 박물관이 세워진 이후, 시장에 나도는 유물들을 웃돈을 얹어 구매함으로써 유물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1908~1917년까지 왕실이 수집한 유물의 규모는 무려 1만 122점, 구입비만 21만원이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1원이 5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100억원 정도 쓴 거니까요. 특히나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핵심 유물인 "금동반가사유상"을 1912년 2,600원이라는 거금에 구입한 것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 일본인 고미술상은 경주 남산 기슭에 있는 어느 절에서 찾아낸 이 유물을 40원이라는 금액에 사들였다고 하니 정말 남는 장사 했네요. 천벌이나 받아라! 여튼 이왕가 박물관 덕에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으며 지금 보험 평가액만 500억원 수준이라는게 다행일 뿐입니다.

다음에 설립된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입니다. 식민 통치의 일환인데 총독부의 권력을 앞세워 1930년대 말에는 1만 4천점이 넘는 막대한 전시품을 유치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본국 총리로 임명되어 귀국할 때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기증했는데 여기 포함된 것이 또 다른 금동반가사유상이었습니다! 본인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그나마 좋은 일을 해 준 것은 고맙네요.

그 뒤에는 유물 수집가와 그들이 수집한 유물들 이야기입니다. 간송 전형필 이야기는 너무 많이 접해보아서 조금은 식상했습니다만, 이외의 인물들도 소상하게 소개해 줍니다. 악명 높은 유물 반출범 오구라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조선 최상류층의 친일파 의사 박창훈과 서민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산 성모 병원을 세운 박병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박창훈은 치부의 대상으로 유물을 수집했고, 1940~41년 사이 소장품 전부를 경성미술구락부에 모두 팔았습니다. 거의 600점 가까운 소장품을 4000~7000원 사이의 고액에 매각했다니 어마어마한 돈이죠.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했다는 후일담은 입맛을 씁쓸하게 만드네요. 반면 박병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백자 중심의 수집을 이어간 뒤 후일 소장품 전부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서 유물 카드에 '수정 (박병래의 호)'가 적힌 유물은 관심 있게 봐 두어야겠어요.

또한 출신 대학이 아니라면 쉽게 가보지 못할 대학 박물관에 대한 상세한 정리도 눈길을 끕니다. 친일파로 유명한 김활란이 이화여대 박물관을 위해서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는 일화가 특히 재미납니다. 박물관의 상징인 국보 백화철화포도문 항아리를 1960년대 1,500만원 (현재 시세로 30억 이상)에 구입한 것이 그것인데, 이 항아리는 장택상의 소유로 그가 야당 지도자로 활동할 때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놓았다는건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어서 사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이 소개됩니다. 미국의 게티 미술관을 소개하며 진정한 문화재단의 역할을 알려주는데, 한국 기업 휘하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겠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호림 박물관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제 공부가 부족한 탓에 호림 박물관은 가본 적이 없는데 근시일 내에 꼭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은 근대 미술 및 천안의 씨킴과 아라리오 프로젝트, 아라리오 뮤지엄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한눈에, 책 한 권을 통해 읽게 되니 뭔가 통사적인 흐름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이러한 미시사적 이야기는 물론, 박물관별로 주요 소장품도 함께 소개됩니다. 주요 소장품이야말로 관람할 때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테니 소개되는건 당연합니다. 이 부분은 책에 대해 가졌던 원래의 제 생각과 비슷하네요. 부록으로 국립 중앙박물관의 경우, 간략한 약도와 최적의 동선도 수록되어 있고요.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황윤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애정만큼은 깊이 느껴지는 글들도 좋았습니다. 230여 페이지라는 적절한 분량, 책날개도 없는 오래전 문고본 형태의 심플한 디자인에 적절히 삽입된 정밀한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고요.

단 불필요한 장식, 군더더기를 덜어내어(심지어 표지조차 2도 인쇄에 불과합니다) 보급형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9,000원이라는 정가가 적합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더 저렴하던가, 아니면 조금만 가격을 올려서 표지 정도라도 딴딴하게 (?)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박물관을 좋아하시고 우리 유물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번 보실 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박물관별 꼭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요약하며 글을 마칩니다.

  • 국립 중앙 박물관 - 금동반가사유상, 2층 기증 전시실의 수정 박병래가 기증한 백자들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 호암미술관 - 15~16세기 초기 청화백자, "수월관음도" 등
  • 플라토 미술관 - 로댕의 "지옥의 문", "깔레의 시민"
  • 부암동 서울 미술관 - 이중섭의 "황소" 외 근현대 작품

2023/05/06

무관의 국보 - 배한철 : 별점 2.5점

무관의 국보 - 6점
배한철 지음/매일경제신문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의미있고 빼어난 문화 유산을 소개해 주는 책.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유물들을 도판과 함께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총 8부 35편 구성 중 4부까지가 '국보급이지만 국보로 지정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유물' 정의에 가깝습니다. 소개하는 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석굴암을 경성으로 옮겨오려다 실패한 데라우치가 대신 가져왔던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굴암 대신'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그 완성도가 빼어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개관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진열품으로 활용하려고 가져왔던 서산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크기면에서 압도하는 측면이 강하고요. 겸재 화첩도 걸작이지만 임대 형식으로 들여온거라 국보 지정이 불가할 뿐입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철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예술적 성취가 높은 유물이며, 반쯤 걸터앉은 자세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지금 보아도 자연스럽다 싶은 자세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또 김명국의 달마도가 아직 국보나 보물이 아니라는건 신기했습니다. 김명국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그려주었던 그림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게 다행입니다. 여튼 완성도, 지명도 뭐 하나 빠질데가 없고, 당대 제일가는 화가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심지어 그의 작품은 현재 30점도 채 남지 않았다니 희소성마저도 있어서 국보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 왜 국보나 보물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과서에 흔히 실렸던 조선 전기 회화의 걸작이자 중국 명대 초가 화풍이 수용되는 과정을 알려주기도 하는 등 역사적 의미도 큰데 말이죠.
이런걸 보면, 국보 선정 기준이 뭘까? 궁금해집니다.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완성도 모두를 따지는 것인지, 다른 의미도 있어야하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아 국보가 아닌 석불, 우리 소유가 아니라서 국보가 아닌 유물이야 그렇다 쳐도,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유뮬들은 충분히 국보로서 자격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런 멋진 유물 소개와 더불어, 유물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소개하며, '비로봉'이라는 지명은 비로자나불에서 유래했다는 정보에서 시작하여 부처의 종류에 대해 설명해주는 식으로요. 비로자나는 태양이라는 뜻의 범어 '바이로차나'의 음역으로 밀교의 부처이기도 합니다. 밀교에서 대일여래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공작왕>>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은 구분이 쉬운데, 그 자세 때문입니다. 다리는 가부좌, 수인은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왼손 검지를 오른 손이 감싸는 지권인 형태를 하고 있거든요. 오른손은 부처의 세계, 왼손은 중생계를 의미합니다. 


이 비로자나불은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의 영향으로 신라 하대 크게 유행했습니다. 사회적 불안이 커지며 지방 토착 호족 세력이 부상했는데, 그들이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 교리에 반응하여 불교를 후원하며 불교의 탈중앙화가 급속도로 전개된 것이지요. 자기들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상과 맞닿아 있었던 탓이겠죠?
<<지존의 삶. 절대 군주의 자취>>에서는 선조와 인조가 명필이었다며 어필을 중점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는데, 명필들은 정치적으로는 영 아니었다는게 재미있네요. 하긴, 이완용도 당대 명필이었다며, 글씨에 인품이 묻어난다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철종 어필도 상당한 수준인데, 일자무식 강화도령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딱히 인상적인 유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화성능행도나 팔준도 등 여러 그림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있을 수야 있겠지만 딱히 국보급 유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아래 팔준도 중 추풍오 그림을 한 번 보시죠. 재치있기는 한데, 솔직히 잘 그렸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심사임당의 초충도 역시 유명세에 비하면 국보급이라 느껴지지 않았고요. <<음식디미방>>은 언급되는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리고 도판 수록 순서가 뒤죽박죽이며 누락된 도판이 많다는 단점도 눈에 뜨입니다. 소개하고 있는 유물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기는 한데, 현재 글 위치가 아니라 이전이나 다음 페이지에 수록된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고 국보 지정 유물과 비교하는 내용이 많은데, 국보 유물의 도판 수록에는 인색해서 어떤 점이 비교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세조 어진처럼 전체가 한 작품만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문제없지만, 많은 유물들이 언급되고 또 비교되는 글에서는 문제가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고, 눈도 즐거운 독서였지만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 유물들이 엄선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국보냐 아니냐가 그리 중요한 기준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국보냐 아니냐보다는, 보다 명확하게 주제를 정하고 소개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명작순례>>처럼 말이죠.

2015/07/27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 닐 맥그리거 / 강미경 : 별점 4점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 8점
닐 맥그리거 지음, 강미경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최근 산 책 중 가장 두껍고 무거운 책입니다. 대영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중 인류의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꿰뚫는 대표적인 유물 100개를 엄선한 뒤, 해당 유물로 알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인류학적 정보를 전해줍니다. 인류가 처음 등장하여, 처음으로 도구를 만들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목축을 시작하고, 문명이 생기고, 조직이 커져 나라가 되고, 종교가 등장하는 등의 과정을 그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주는 식이지요. 매일 자기 전 몇 개씩 읽었는데 드디어 완독하게 되었네요.

유물 하나당 길지 않은 분량(5장 안팎)으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처음 보는 신기한 유물도 많고 분량에 비하면 담고 있는 내용과 시각이 새롭고 독특한 것이 많아 좋았습니다. 석기를 가지고 농경 생활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지역에 따라 2차 가공이 필요한 곡물을 재배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바로 "가공"의 필요성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경쟁을 할 필요가 적다는 점 때문이라는데 무릎을 칠 만 했어요. 당시 인류는 거의 헐벗은 상태로 별다른 도구도 없었을 테니, 웬만한 초식동물과 경쟁하기도 힘겨웠을 테니까요.
다기 세트를 가지고 당시 영국을 분석하는 발상도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차가 맥주를 제치고 국민 음료로 부상하면서 영국이 바뀌어 갔던 그 시점을 다기 세트로 설명해주는데, 예를 들면 다기세트 중에 우유 단지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도시 거주자가 우유를 마셨기 때문이며 이는 교외 철도망이 등장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는 식입니다.
그리고 17세기 시아파 이란의 아바스 1세는 보기 드문 정치적 식견, 종교적 실용주의를 지닌 대단한 통치자였더군요! 자신의 영지에 기독교 성당까지 지어주다니! 게다가 지금 서방과 날선 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이란 헌법에서도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있다는 것 역시 처음 알았네요. 놀랐습니다.

그 외에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 가지 더 꼽아보면, 18세기 경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북을 우선 꼽고 싶습니다. 가슴 아픈 과거의 유물로 아프리카 노예가 유럽인의 배를 타고 영국령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뒤, 고향을 추억하는 유일한 물건으로 애지중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흥미롭게도 북을 덮고 있는 재료는 북아메리카산 사슴 가죽으로 원주민, 즉 인디언과의 거래를 통해 입수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은 18세기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 흑인과 원주민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증명한다고 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결혼을 비롯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고 하거든요. 흑인 노예가 영국 땅에서 인디언과 결혼했다니까 뭔가 대하 서사극 배경 설명 같습니다. 그냥 드라마가 한 편 그려질 정도에요.
쿡 선장이 선물로 받았다는 하와이의 깃털 투구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와이에서는 깃털이 가장 귀한 원료였고 새 한 마리당 네 개만 구할 수 있는 깃털이 1만 개 가까이 필요하다니, 대체 이게 돈으로는 얼마나 할지 감도 안 잡히네요.
호쿠사이의 작품인 "거대한 파도"가 독일에서 개발된 합성안료로 제작되었다는 것, 즉 일본인들이 외세의 위험을 인식하지만 작품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외세의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이 제국으로 변모한 과정에 대한 어떤 시사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영국에서 발견된 황금 망토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착용한 인물이 나이가 어리거나 여성이었을 것이다라는 것을 크기, 그리고 청동기 시대 당시에는 평균 수명이 25살도 안 되었을 것이기에 그것을 착용할 만한 리더도 어렸던 것이 확실하다!고 해석하는 부분에서 추리적인 발상이 엿보여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계열의 유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반대로 "세계"라는 시각에서 볼 때에 딱히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없을 영국 출토 유물은 되려 눈에 띄인다는건 아쉽습니다. 대영 박물관 기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지만요.
또 고대에서 중세, 근대, 현대로 올수록 책의 재미가 점점 떨어집니다. 뒤로 갈수록 별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크게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제가 고대를 더 좋아하는 취향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책의 컨셉과 지적인 흥분을 안겨다주는 내용 및 만든 완성도 모두 뛰어난 책입니다. 도판도 최고 수준이고요. 원작이라 할 수 있는 BBC의 다큐멘터리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23/03/25

삼성퇴의 청동문명 1, 2 - 웨난 / 심규호 : 별점 2점

삼성퇴의 청동문명 1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삼성퇴의 청동문명 2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중국 촉 지방에서 발견되어서 고대 문명 중 하나로 유명한 삼성퇴 문명의 발굴에 대한 이야기. 
고대 유물 발굴에 대한 괜찮은 논픽션을 많이 발표했던 웨난의 저작입니다. 제가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논픽션들 모두 기본 이상은 했기에 이 책도 진작부터 읽고 싶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절판된 탓에 구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서야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드리자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제 기대와 많이 달랐던 탓이에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삼성퇴 문명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이 유물들을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두 권 분량의 책에 가득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했지요. 화려한 도판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정작 책에는 삼성퇴의 문명 발굴에 대한 에피소드만 넘쳐날 뿐입니다. 게다가 그 설명도 무척이나 장황합니다. 처음 삼성퇴에서 의미있는 유물을 발굴했다는 연도성의 일화만 보아도 그러해요. 연도성이 청나라 시기 지방 관직을 맡았지만 이후 민국이 되면서 자리를 잃었다는 설명이 3~4페이지 씩이나 길게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설명보다는 실제 발굴이 진행되었던 삼성퇴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도와 도판이 추가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연도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후 연씨 일가가 보물을 하나씩 풀면서 그 정보가 학계에 알려지는 과정, 2차 대전과 문화혁명을 거친 뒤 삼성퇴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벽돌 공장이 세워져 유적 일대가 훼손되지만, 학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결국 1호갱, 2호갱이라는 두 차례의 큰 발굴 성과를 내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너무 길어요. 저는 삼성퇴 문명의 수수께끼가 궁금했을 뿐, 이런 발굴 이야기가 궁금했던건 아닙니다. 성과 현에서 출토된 유물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는 반복이 지나쳐서 짜증이 날 정도였고요. 
물론 이런 발굴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길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에요. 그나마 한가지 웃겼던건 성 고고연구소에서 현과의 협상을 위해 진덕안을 보낼 때 두 청장이 삼국지 고사를 인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진덕안을 파견하여 삼성퇴에 주둔하도록 했고, 현에서 변화가 있을 때 그가 나가서 단기필마로 응대한다, 그 뒤 우리와 같은 대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지원한다고 말하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고고학 연구원들이라 이런 인용이 자연스러운건지, 아니면 중국인 특유의 허풍인지 감이 오지 않네요. 

이런 발굴 에피소드들 중심의 1권보다는 2권은 그래도 삼성퇴 문명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많이 있어서 좀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론을 엄선하여, 요약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론을 정제하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어서 다소 복잡했습니다. 대충 제가 판단한 바로는, 고대 사천 지역에 여러 개의 부족 국가(마을)가 있었고, 이 마을의 왕들이 잠총, 백관, 어부, 두우, 개명 등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즉 파국이 고대 기록에서처럼 수도가 사방으로 천도했던게 아니라 애초에 나라가 여러개 있었던 겁니다. 시초라 할 수 있는 잠총 부족은 이유가 무엇이었건 중원에서 남하하여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고요. 이후 두우 시기에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별령이 치수 기술을 활용하여 민심을 장악한 뒤 스스로 왕이 되어 개명 왕조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왕조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진나라에 제압당하고 '촉군'이 되고 말았고요. 이후 청동기 문명이었던 촉도 철기 문명인 진나라에 융합된게 간략한 이 지역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퇴의 1호갱, 2호갱에 보물들이 부장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단순 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근거는 갱내 기물이 모두 불에 탔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화장한 왕의 유골이 없다는 점에서 화장묘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재사갱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토 유물이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이고, 불에 탔다는건 불을 이용한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논리죠. 그런데 출토된 유물의 양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낮아요. 한 나라의 재력을 모두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물들이라서, 제사에 한 번 쓰고 버리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삼성퇴 유적은 어부 왕조 당시 수도로 두우 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 마지막 제사를 벌이고 전멸한 흔적이다, 거대한 홍수 탓이었다는 등의 이론들이 발표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쟁으로 전멸하고 남은 유산이라는 설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승리한 국가가 망한 국가의 신묘에 있는 제사용 보기들을 훼손하여 묻어버리는건 충분히 있음직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이 책에서도 이른바 '망국 보기 매장갱' 과 '상서롭지 못한 보기 매장갱' 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고요. 
그리고 주요 출토 유물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설명, 다른 국가 유물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특유의 안구 형태와 대담한 문양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앞서 말씀드렸듯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게 가장 큰 감점 요소입니다. 기이할 정도로 잡다한 주변 이야기가 많은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웨난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요. 2권 내용을 보다 결론 중심적으로 요약 정리하고, 1권 내용은 에피소드 중 중요한 것만 짧게 인용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9/03/09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서동인, 김병근 : 별점 3점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6점
서동인.김병근 지음/주류성

국내 고고학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신안 보물선의 발굴 물품을 통해 당대 역사를 설명해주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신안선에 실려 있었던 유물들을 종류별로 상세하게 분석하여 당시 어떤 문화가 융성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무역선의 항해 경로를 통해 당시 무역을 통한 문화 교류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 신안선이 침몰했던 시기의 원나라와 고려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당시 시대 정황과 정세는 어때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유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신안선에 가득 실려있던 당대의 고급 목재 자단목에 대해 '힌두어 찬단을 음역한 전단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이후 자단이라는 말로 바뀌었으며, 기원전 5세기 전후부터 사용한 고급 목재로 그 향도 귀중하게 여겨졌다'는 식으로 그 유래와 용도를 알려주는게 좋은 예입니다. 출토된 향로와 화분, 다완 (찻잔)과 주전자 등을 통해 분향, 꽃꽂이, 다도 문화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해주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금만 보완되면 온전히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손색없다 싶을 정도였거든요.
그 외에도 유물을 통해 소개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주 많습니다. 도자기, 동전과 같은 명확한 유물말고도 목패와 같은 기록물과 게다, 숯돌과 같은 생활 용품 등 워낙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컬러 도판과 지도, 다른 관련 유물에 대한 정보와 소개를 통해 이해를 돕는 구성도 좋습니다. 특히 도판 측면에서는 정말이지 나무랄데 없어요.

발굴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소소하니 재미있습니다. 신안선 발굴로 당시 도자기가 엄청나게 출토되어 우리나라가 당시 도자기 최대 보유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당연히 중국을 제외하고겠죠?) 국제 시장에서 해당 시기 도자기 가격이 폭락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눈길을 끕니다. 도자기만 무려 2만점이 넘게 출토되었다니 폭락할만도 하네요.
또 신안 보물선 덕분에 우리나라가 현재 중국 동전 최다 보유국이라는군요. 한과 후한에서부터 시작하여 신, 당, 북송, 남송, 요, 금, 원과 서하까지 아우루는 28톤, 8백만개에 이를 정도의 양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동전은 일본에서 대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될 예정으로 보고 있는데, 만약 신안선이 침몰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에 가마쿠라 대불과 같은 불상이 한 개 더 생겼을거라고도 하고요. 일본으로서는 아쉽겠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 많지만 주석이 모두 책 말미에 수록된 점은 아쉽습니다. 페이지 하단에 주석을 소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또 책의 목차가 두서 없는데, 신안 보물선 발굴에 대한 상세한 설명 뒤에 항해 경로를 설명하며 당대 무역, 그리고 주변국들의 상황을 알려준 후 유물 하나하나를 통해 관련된 문화를 차례대로 소개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발견과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좀 더 미시적인 접근이 가능했을테니까요. 지금은 이런 내용이 약간 뒤섞여져 있는 편입니다. 문체도 읽기 편하지 않고요.
그리고 제가 이 쪽 공부가 부족하여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싶은 부분도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 고려 개성 상인의 송도부기가 서양에 전해진 후 이게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기를 영어로 북 키핑 (Book Keeping) 이라고 하는게 '부기'의 발음을 베껴낸 표현이라는걸 증거로 제시하는데 좀 아니다 싶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르네상스 운운하는건 지나쳤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책 자체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이 조금 쎈 편이기는 하지만 분량과 전 페이지가 풀 컬러라는 점에서는 납득할 만한 수준입니다. 고려 시대 문화와 문화 교류사, 미시사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05/10/11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 조유전 / 이기환 : 별점 3점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6점
조유전 이기환 지음/황금부엉이

고고학자 조유전 선생님의 발굴, 그리고 발굴된 유물과 유적에 대한 책입니다. 
그동안 역사책으로만 접해왔던 여러 내용들을 유물과 유적을 근거로 발굴 당시의 여러 상황과 이후 이야기까지 곁들여 재미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발굴 당시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에서는 예전에 읽었던 "부활하는 군단"이 연상되더군요.
하지만 "부활하는 군단"과 비교해 볼때 이 책이 보다 다양한 유물과 유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더 좋았습니다. "부활하는 군단"쪽은 발굴 이야기와 유물에 대한 내용이 훨씬 상세한 것은 좋았지만 별 필요 없는 내용도 제법 되는 만큼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는데, 이 책은 짤막짤막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다 보니 재미와 호흡 면에서는 훨씬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접해보았던, 친숙한 내용이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원래 경향 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목차만 보더라도 무려 22개나 되는 많은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난개발 공사판에서 발견한 풍납토성의 발굴과 역사적인 고찰, 특히 발굴의 주역이었던 이형구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유물 중에서도 유명한 신라의 금관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소문과 책으로만 접했었던 청해진 본영의 발굴을 통해 해석된 청해진의 규모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삼국시대 이야기가 반 이상인데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백제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는 시도도 엿보이는데 이것도 좋은 기획이라 생각됩니다. 도굴에 대한 여러 증거들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목들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석기시대에서 조선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인데 목차 정도는 연대별로 배열해 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고, 도판도 컬러 인쇄이긴 하지만 보다 다양하고 많은 사진을 담고 있었더라면, 그리고 연표 정도는 같이 실어 주는 것이 어땠을 까 하는 아쉬움이 약간 있긴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역사를 기록에만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실제 유물과 유적과 병행하여 접하니 왠지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들더군요. 거기에 여러 발굴 이야기들도 굉장히 현장감이 넘치면서도 흥미진진하니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4/12

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 최경원 : 별점 3점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박하지만은 않다는걸 여러가지 문화재, 유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
설명을 위해 유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제품' 관점에서 분석하여, 해당 유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제품'인지를 알려준다는건데 꽤 그럴싸한 접근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재의 갤럭시나 아이폰을 먼 미래 박물관 같은데서 본다고 상상한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두 제품은 생긴 것만으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차이를 느끼려면 아이폰이 가져온 혁신을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이 아닐까 싶거든요. 확실히 디자인 전문가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답게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 유물도 있는데 이 중에서는 삼한 시대의 오리모양 토기의 형태에 주목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 토기들과 다르게 사실성,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수준높은 추상조형은 이를 소비하는 지배층의 인식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배경의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습니다. 굉장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삼한 시대 토기 역시 마찬가지고요.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은 실제 쓰임새(양력 등을 활용하여 보다 멀리 쏠 수 있도록) 때문에 발전된 형태라는 글도 흥미로왔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연구할 여지가 많은데 중간에 끝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왜 후대에 계승되어 더 발전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화살촉보다 분명한 장점 - 사거리 - 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상쇄할만큼 단점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까요? 아, 궁금합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린 스케치로 이루어진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알려주는 대부분의 글들 도판들이 특히 빼어난데, 아래의 용봉문 투조 금동장식 속 봉황 등의 조형이라던가, 통일신라 말 발걸이에 그려진 말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스케치가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을터라 무척 고마운 도판이었어요.
몇몇 유물의 경우는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의 제품들과의 비교도 시도하는데 이 역시 괜찮았어요. 답을 정해 놓고 끼워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한국형 비파형 청동검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작품으로 고조선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 국가였다는걸 증명해 준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신라의 누금세공 귀걸이도 저 큰걸 귀에 어떻게 걸지? 싶었었는데, 명주실을 꿰어 귀나 모자에 걸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찾아보니 기사도 있네요).

하지만 다소 억지섞인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쌍용총 속 벽화의 무인의 패션이 샤넬, 아르마니의 컨셉과 일치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무채색이라는 것 정도로는 논거가 부족합니다. 아래의 백제 허리띠처럼 실제로 꽤 감각적이고 멋드러진 형태라는걸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어요.
누구나 최고의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금동대향로가 소개되는건 노력의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의견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 증빙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커 보였습니다.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하거든요.

그래도 디자이너가 유뮬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책의 컨셉은 확실히 빼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04/12/11

부활하는 군단 1,2 - 웨난 / 유소영 외 : 별점 4점

부활하는 군단 1 - 8점
웨난 지음, 유소영 외 옮김/일빛
부활하는 군단 2 - 8점
웨난 지음, 유소영 외 옮김/일빛

"진시황이 즉위하여 여산에 치산 공사를 벌였다... 지하수를 세번 지날 만큼 땅을 깊이 파고, 녹인 구리를 부어 "곽"에 이르게 했다... 장인들로 하여금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계 장치가 된 쇠뇌를 만들게 하여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발사되도록 했다. 수은으로 온갖 하천과 강, 바다를 만들고, 기계를 이용해 수은이 흐르게 했다. 인어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했다... (사마천, 사기)"

중국의 최초의 진정한 황제라 할 수 있는건 시황제죠. 이 책은 진시황의 병마용갱을 발굴하며 얻어진 고고학적 성과를 자세히 고찰하면서도 당시 시대상황과 중국 고고학계에 던지는 메시지까지 담겨있는 저서입니다.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은 병마용갱의 발견과 발굴에 이르는 숨가쁜 상황과 발견된 유물들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각종 사료들, 발굴된 유물에서 유추한 당시 무기들과 군대 편제, 진법, 그리고 춘추 전국 시대와 진 왕조의 사회 구조와 법령 등 역사적 사실까지 고찰하고 유사 유물들과의 비교를 통한 해석을 덧붙여 책의 충실도를 높이고 있죠.

2권은 병마용갱의 또 다른 대 발견이었던 "동거마" 발굴에 관련된 일화와 동마에 관한 자세한 고고학적 연구 및 고찰이 전반부의 주요 내용입니다. 1권에 못지 않을 정도로 자료적 가치가 상당합니다.
중반부에는 병마용을 찾아왔던 각국 유명인사들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레이건과 닉슨 등), 후반부에는 2번에 걸쳐 발생했던 "장군용두"도난 사건과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던 관계자들의 증언, 그리고 도굴과 문화재 밀반출이 심할 뿐 아니라 기껏 발굴한 유물도 도난과 관리 소홀로 인한 문제점 등의 중국 고고학의 현실과 병마용의 현실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도굴및 유물 보존에 대한 문제점은 유흥준 교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적한대로 국내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지만 하나 부러운 것은 용두 도난사건의 범인들에게 이례없는 중형 (사형, 무기징역 등) 을 선고한 중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중형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시황릉 지하궁에 대한 각종 사료 조사 및 향후 발굴 계획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항우가 진시황릉을 불태우고 유물을 약탈한 등 여태까지의 사료에서 밝힌 도굴에 관한 것이 역사적, 과학적으로 볼때 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직 발굴 계획은 없다고는 하나 사료적으로 밝혀진 여러 내용만으로도 지하궁에 대한 기대를 높여줍니다.

비록 2권 중반부의 방문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나 도굴에 대해 지나치게 길게 서술한 점, 너무 공산당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후반 묘사는 분명 거슬리고 불필요한 부분이며 권당 12,8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되는건 사실이에요.

허나 역사와 고고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가진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역사 관련 서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거의 독보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세한 도판과 해설이 곁들여져 지적 만족감을 충실하게 해 준다는 것 만큼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 하죠. 저자의 문장력도 상당한 편이라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까지 주기도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책만 출판해도 출판사가 버틸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국내에 조성되기 위해서라도 저자의 다른 책 "마왕퇴의 귀부인"도 구입해 봐야 겠습니다.

2013/08/01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이종호 : 별점 3점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6점 이종호 지음/인물과사상사

유명한 역사적 발굴과 발굴 대상에 대해 다룬 책.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장] 발굴의 황금시대를 열다 - 거대한 무덤 건축물의 상징이 된 마우솔레움
  • [2장] 알렉산드로스의 청을 거절한 자존심 - 고대인의 마지막 도피처, 아르테미스 신전
  • [3장] 고고학 발굴사의 기념비를 세운 슐리만 - 트로이 목마의 진실은 무엇인가?
  • [4장]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곳 -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서
  • [5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 니네베의 점토판에서 발견한 길가메시와 노아
  • [6장] 무와탈리와 람세스 2세 - 카데시 전투에 대한 두 가지 기억
  • [7장] 또 다른 메시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 사해문서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
  • [8장] 세계사를 움직인 공포 - 황금의 제국, 스키타이
  • [9장] 제국의 영원한 지배자를 꿈꾼다 - 지금도 시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마용
  • [10장] 오빌의 전설과 인간의 탐욕 - 밀림 너머의 낯선 풍광, 대짐바브웨

목차만 보아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빠져들 수밖에 없겠죠? 이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아틀란티스와 크레타 섬의 유적, 스키타이 유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우솔레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지만 피라미드, 로도스의 거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죠.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고, 그동안은 뭐 딱히 대단할 게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왠걸! 피라미드와 비교할 만한 거대한 건축물로, 이름 자체가 거대 무덤 건축물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건축에 대한 역사와 발굴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출토된 유물들의 수준이 정말로 대단해서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더군요. 제가 보아왔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중에서도 최고급이더라고요. 이 거대 유적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무식한 야만인 십자군 기사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데, 뭐 대부분 천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의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산의 상징 같아 보이는 여신상 등 유물들은 물론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교도'의 유적이라 하수도나 건축 보강 자재로 쓰였다는 운명이 안타까운데, 제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을 소개하며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시작하여 그에 얽힌 다양한 이론들을 펼쳐내는 부분은 이런 류의 가상 역사물(?)을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모든 문명의 기원이 아틀란티스일 것이라는 대담한 견해 등이 펼쳐지니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자료에서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크레타 섬의 유적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직접 크레타 섬에 가서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크레타 섬의 멸망이 이웃 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마지막 결말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키타이 이야기도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이야기와 같이 잘 모르던 것을 알려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래저래 많이 들어봤지만 실체는 잘 몰랐던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 그 뒤를 이은 사르마트족은 아마존의 후손으로 알려졌다는 내용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득하거든요. 이른바 황금의 민족이라는 스키타이의 유물 소개 역시 충실하고요. 사실 유물은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유사성을 다룬 내용도 괜찮았어요. 아라라트산 방주 유적으로 끝맺는 마무리는 좀 뜬금없긴 했지만 말이죠.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너무 잘 알려진, 또는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슐리만과 트로이, 미케네 제국 발굴 일화와 병마용갱은 이 책에 수록될만한 비중 있는 발굴이라는 것은 동의하나, 새로운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병마용갱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웨난의 "부활하는 군단"을 이미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어요. 각종 다큐 등에서 많이 접했던 사해문서 이야기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중반 이후에는 유적과 역사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어서 제목에서의 "발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대짐바브웨 유적에 대한 것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폐단 이외에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별게 없어서 이 책에 실릴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었고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 고대 문명, 유물, 유적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도판도 무척이나 충실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영상물로 접하는 게 훨씬 나은 콘텐츠라 생각되는데, 다큐멘터리로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4/03/25

로마문화 왕국, 신라 - 요시미즈 츠네오 / 오근영 : 별점 3점

로마문화 왕국, 신라 - 6점
요시미즈 츠네오 지음, 오근영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간만에 맘잡고 읽은 제법 두꺼운 분량의 역사 서적.

그동안 가벼운 독서를 주로 한 탓에 쉽게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신라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문화다!"라는 놀라우면서도 재미있는 주장을 다양하고 신라의 수목형 왕관과 황금보검, 미소짓는 상감옥, 기타 다양한 유물들에 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자료들로 설명하고 있는 덕에 생각보다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 문화의 증거라고 하는 것들 중 특히 유리 -상감옥- 를 근거로 하여 영향을 준 로마 문화권을 흑해 서쪽 해안의 어떤 곳이라는 추정까지 전개해 나가는 과정도 상당히 흥미진진하고요. 삼국 중 신라에서만 볼 수 있었던 형태의 여러 유물들을 관련 로마 유물과 체계적으로 비교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당시의 세계 정세와 역사관도 자료로 제시하는 등, 관련 사료와 문헌에 대한 연구자료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말대로 "황금과 보물의 왕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인 신라의 다채로운 황금 유물들과 각종 보물들의 사진 감상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도 모르는 신라 유물이 정말 너무도! 너무도 많더군요.

딱 아쉬운 것은 일본인 저자가 쓴 책이라서, 그래서 "일본서기"를 주요 문헌 중 하나로 인용함으로써 한국 정통 사학에 반하는 내용도 제법 섞여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올컬러인 탓에 책 값이 18,500원이라는 고액이라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그래도 국내에 나와 있던 천편일률적인 역사서들보다는 읽는 재미와 지적 흥분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책입니다. 그간 알고 있었던 역사적 상식을 깨는 놀라움은 감탄스러울 정도에요. 저자가 30여년 동안 연구한 결과라고 하는데 이런 끈기와 노력이라는 부분은 본받아야 할 것 같군요. 물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런 류의 역사서적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4/10/06

세계 7대 불가사의 - 피터 A. 클레이턴 외 / 김훈 : 별점 2점

세계 7대 불가사의 - 4점
피터 A. 클레이턴 외 지음, 김훈 옮김/가람기획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건축물들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진위 여부 및 상세한 설명을 해 주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낮은 탓입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발음도 부정확하며(예: 쿠푸왕이라고 표기하고 배는 "케오프스(쿠푸)의 배"라고 표기), 여러 가지 단위를 현재의 단위로 변환하지 않은 것도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도판들의 인쇄 상태도 영 아니고요. 가람기획의 책들은 대체로 내용에 비해 완성도가 많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나 심했어요.
내용도 익히 알려진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전부라, 생각만큼 흥미롭지 않았고요.

그래도 각 항목별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해 보자면,

"피라미드"
피라미드 근처에서 완벽한 형태의 배(케오프스의 배)가 출토된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려 5,000여 년 전의 배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다니! 이집트는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 정보까지 접하니 더 가고 싶어지네요.

"바빌론의 공중정원"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바빌론 유적에서는 관련된 유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직도 그런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제우스상"
남겨진 기록들을 통해 실제 제우스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게 좋았습니다. 높이 13m 정도의 거대한 조각상은 현대에도 볼 만한 것들이 많지만, 이 신상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축조 방식이 나무로 틀을 만든 후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이라는 설명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요. 이후 신상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뒤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책에 쓰인 대로 황폐해지더라도 그냥 올림피아에 남아 있었더라면 뼈대 정도는 전해져 현대인들이 그 위용에 감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실제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장황할 뿐 핵심적인 내용은 부족했습니다. 기둥의 수가 너무 많아 '기둥숲'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구조물이었다는 건 알겠는데, 실물이 사라져 버렸으니...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유물인데, 이번에도 역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십자군들이 성벽을 만들기 위해 훼손하고 파괴한 것도 많지만, 최초 붕괴 당시 토사에 묻혀 운 좋게 살아남은 거대 조각들(특히 지붕의 전차상 일부)의 위용은 대단하더군요. 그것이 발견된 위치를 토대로 높이를 추산하고, 남은 유물들과 사료를 통해 재현해보는 고고학적 과정은 마치 추리물을 보는 듯한 재미도 있었고요. 그런데 왜 이러한 유물들이 대영박물관에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네요.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에서 언급된 우리 문화재도 떠오르는데,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로도스의 거상"
이 거상이 세워진 과정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사후 도시국가 로도스가 프톨레마이오스 편을 들었다가 적대 세력인 안티고노스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이겨낸 기념으로 세워졌다고 하네요. 공사비는 적이 남기고 간 공성 장비들을 팔아서 마련했다고 하니, 진정한 전승 기념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두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간다는 형태는 허구이며, 하나의 통 형태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신뢰가 갔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상세한 사료가 많이 남겨진 유적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다른 항목들이 미터 단위로만 설명되어 있다면, 이 책은 센티미터 단위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크다는 것 외에는 왜 이 건축물이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본문에 언급되었던 인근 바다에서 인양된 10m에 이르는 이시스 석조 조각상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고, 그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건진 내용도 제법 되네요. 허나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08/12/08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 류동현 : 별점 3점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 6점
류동현 지음/루비박스

최근에 국내외적 문제와 직장문제, 개인적 사생활 문제로 인하여 독서에 힘을 쏟지 못하던 와중에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입수한 책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던 차에 하늘의 선물이라 여기고 곧바로 읽어버린 책이죠.

책은 크게 영화 시리즈 4편을 중심으로, 각 편마다 등장하는 유물과 그 유물에 관련된 역사를 다루고 있는 구성으로, 솔직히 신청할때는 훨씬 두껍고 전문적인 책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받고보니 그야말로 "핸드북" 이더군요. 덕분에 쉽게쉽게 빠르게 읽히는 맛은 있었고 인디아나 존스의 팬이라는 저자의 팬심은 적나라하게 느껴졌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전문적"인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한마디로,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내용을 살펴보자면, 첫번째 편 "레이더스"에서의 성궤 이야기는 그런대로 한 줄기를 잡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는 있지만 (과연 성궤는 언제, 어디서 없어졌으며 지금 어디있을까?) 작가의 말대로 그레이엄 행콕의 "신의 암호"를 지나치게 인용한 마무리가 좀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디 시리즈 중 제일 재미없게 보았었던 두번째 편 "저주의 사원"은 "상카라 스톤"이라는 등장 유물과 그 배경이 너무 허구인지라 고고학과는 좀 동떨어진 주제로 보였습니다. 세번째 편인 "최후의 십자군"의 성배 이야기는 "다빈치 코드" 덕분에 수없이 많은 자료가 넘쳐나는 이야기라 신선함이 떨어졌고요. 네번째 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영화 개봉 이전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인지 "크리스탈 해골"에 대한 간략한 서술과 마야, 아즈텍 등 중앙 아프리카 고대 문명에 대한 개략만 훝는 정도로 끝나서 좀 더 깊이있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뭔가 읽다보면 흥미롭긴 한데 그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갈증만 더하는 꼴이었어요. 그 외에 영화 서두에 등장하는 짤막한 유물들과 TV시리즈 등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고 있으며 부록으로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싣고 있는데, 영화에 대한 정보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고요.

요약하자면 좀 저연령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수준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한 학습도서에 가깝다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타겟을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책의 주제는 마음에 들기에 좀 더 흥미롭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과적으로 내용이 별반 깊은 수준을 다루고 있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레이엄 행콕의 "신의 지문"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기회 마련해 주신 이글루스와 도서출판 루비박스 관계자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06/27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 배한철 : 별점 4점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 8점
배한철 지음/매일경제신문사

국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놓은 역사서입니다. 역사적인 가치와 담고 있는 의미는 물론 국보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화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가야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 이병철 회장이 구입했던 고령 가야 금관이 도굴품이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12개국이나 되는 나라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듯 'OO가야'가 아니라 가락국, 가라국, 아라국과 같은 이름이었다. 임나는 실제로 존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문무왕릉비 설명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비에 따르면 신라 김씨 왕조는 흉노 왕손의 후예라는 것 처럼요. 비 외에도 거대 무덤, 북방 민족이 신성시하는 나무와 사슴뿔로 꾸며진 금관, 왕의 명칭이 '칸'과 비슷한 '마립간'이라는 등의 다른 근거들도 꽤나 그럴듯합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신라 무덤은 적석목곽분으로 평지에 목곽을 만들어 그 안에 관을 넣은 뒤봉분을 올리는데, 이게 바로 카자흐스탄 양식이랍니다. 동시기 고구려와 백제 무덤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 정상부에 시신을 안치하는 적석총인데 말이죠. 금관도 왕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뀔 때 등장하며, 아프카니스탄 북부 틸리야 테페 무덤 유물과도 흡사합니다. 또 이러한 거대 무덤과 금관은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함으로, 후대 법률왕 무덤은 규모가 작은, 돌로 무덤방을 만든 횡혈식석실분이며 부장품들도 주로 투기류였다는 것을 통해 왕권이 강화되고 법치 체계가 확립되었다는걸 알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결말은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정말 북방에서 내려온 민족은 아니고, 단지 통치 이데올로기를 수용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데, 근거가 없어서 당황스러웠어요. 

화엄사 석탑 설명에서 소개되는 여러가지 국보 탑 소개도 재미있었고, 조선왕조실록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수차례 수정되었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불상의 명칭과 뜻을 알려주는 부분도 좋습니다. 석가모니는 '샤카족 (인도 종족)의 성인' 이라는 의미, 비로자나불은 지혜와 진리의 부처를 부르는 칭호로 태양이라는 뜻의 범어 '바이로차나'의 음역이라는 것, 아미타불은 '무한한 수명의 것'이라는 범어 '아미타우스'에서 유래, 미륵은 석가모니 제자 중 한 명으로 사후 부처로 신격화 보살은 부처처럼 깨달았지만 중생 구제를 위해 부처가 되기를 거부한 존재라는 등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에밀레 종의 유명한 인신공양 설화는 일제 강점기 자료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조선 후기 유림 세력이 강했던 경주에서 불교를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공한 설화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어요.

그 외에 처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습니다. 우선 관촉사 은진미륵이 이름처럼 미륵상이 아니라 관음상이라는데 놀랐습니다. 생긴 걸로는 영 믿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관촉사 관음전에는 관음보살상이 따로 없고, 법당 벽 창으로 야외 불상이 보이도록 만들었다는데, 다음에 관촉사에 가면 확인해봐야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일본이 계속 노렸었고, 심지어 '구변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사칭하면서까지 달라고 했다는 것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이 때 조선은 유교 국가라서 딱히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태종과 세종 모두 주려고 했지만, 예조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데 천만다행입니다. 

난중일기가 국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여기서 왜 난중일기가 국보인지에 대한 설명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쓴 귀중한 '기록 유산'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뿐 아니라 전략과 전술, 일반 백성 모습까지 고스란히 알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누군가의 일기도 내용에 따라서는 국가 1급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인데, 저도 일기를 열심히 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선조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었다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과연 '충'무공이다 싶더군요. 

1968년과 70년, 중국에서 발굴되기 전까지 중국 한나라의 가장 중요했던 유물이 나온 곳이 우리나라였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1910년대, 일본 학자의 낙랑 고분군 발굴에서 수습된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인데, 손바닥만한 크기인데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정말 엄청나더군요. 중요한 유물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러한 국보들의 입수, 보존 경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라면 간송 전형필 관련 일화를 빼 놓을 수 없는데, 그 중에서 특히 훈민정음 혜레본을 입수한 경위가 인상적이었어요.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지하 조직원이 활동 자금 마련을 위해 가보를 판 것이라고 하거든요. 이 항목에서 훈민정음은 오롯이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사실을 여러가지 근거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도 나왔었던 승려 신미 창제설의 경우, 신미는 산스크리트어의 자음, 모음 설명에 그쳤다는 사료를 근거로 제시하는 식입니다. 훗날 문종이 된 세자와 정의 공주의 도움이 오히려 컸다는데, 특히 정의 공주 관련 사료들을 보면 공주는 정말 똑똑했었나 보더라고요. 신미보다는 정의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오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이와는 반대인 문화재 훼손과 도난 등의 이야기도 눈여겨 볼 내용이 많았습니다. 훼손의 경우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억지로 복원해서 망가진 문화재들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석굴암이야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미륵사지 석탑을 콘크리트 떡칠을 해서 복원에 십 수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던가, 부석사 무량수전의 해체 복원 때 철물을 사용하여 건물을 망쳐놓았고 해체 시 자료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내용은 화가 날 정도였어요. 물론 불국사 복원 같이 광복 후 복원도 엉망인건 사실입니다. 개발 독재 시대 성과 주의에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습성이 결합된 아쉬운 결과물들이지요. 지금이라도 다시 잘 복원하기를 바랍니다. 제 생전에 제대로 복원된 유물을 볼 수 있도록요.

국보 도난 사건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 2019년 말 기준으로 도난 피해를 입은 국가지정문화재는 2,438점이었고 이 중 1,552점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니 놀랍습니다. 문화재 도둑들에게는 제발 천벌이 내리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200명이나 되는 괴한을 동원하여 해체 후 도쿄로 빼내려던 다나카 미쓰아키의 계획이 실패했던 사건, 해방 후 미국에 국보급 백자를 팔아먹으려는 시도를 막아내었다는 국립박물관 미술과장 최순우의 활약 등은 다행이지만,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국내로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일은 안타깝더군요. 이런 일은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쉽고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으며, 도판도 좋습니다. 단순한 국보 사진이야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긴 한데, 일제 강점기 등 오래전에 찍은 사진들이 많이 수록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시 문화재가 어떻게 방치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에요. 수학여행 때 첨성대를 둘러싸고, 올라거서 찍은 사진을 보면, 이래서야 도굴만 문제는 아니었겠구나 싶더군요.

책 초반부를 장식하는 무령왕릉 발굴과 유물에 대한 이야기, 반구대 암각화 관련 이야기, 백제 금동 대향로 이야기 등 다른 자료를 통해 많이 접했던 이야기가 제법 많다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재미와 가치,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좋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국보와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24/05/11

우리 미술 이야기 2 : 영원한 현재 - 고려 - 최경원 : 별점 2.5점


우리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 그리고 알아두면 좋을 이런저런 내용을 소개해 주는 책. 저자의 "한류 미학 1"을 재미있게 읽어서 뒤이어 읽게 된 후속 권입니다. 절판 후 재출간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네요.

2권은 고려 청자 중심으로 고려 문화 예술만 소개하고 있는데, '고려의 청자를 비롯한 문화 예술품은 '대량 생산'되었기에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장인이 모든 것을 다하는게 '공예', 산업 혁명 이후 기계적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품 형태를 고안하는 일이 '디자인'인데, 국가 주도로 대량 생산된 청자는 '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표준화' 경향으로 증명된다며 대체로 유사한 청자의 형태 등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꽤 그럴듯 했습니다. 디자인에 의한 대량 생산품의 우수함은 문화의 우수함을 증명한다는 주장도 아주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다양한 청자를 가지고 청자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설명해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도입부의 '청자의 색' 설명부터 눈길을 끕니다. 고려 청자의 다소 칙칙한 색이 찬양되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고려청자는 '옥'의 색을 겨냥해 만들어진, '비취' 색이었기 때문입니. 옥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보석 중의 보석으로, 송나라에서 처음으로 옥의 색과 질감을 유사하게 재현했었지만 고려 청자가 진짜 비취색을 구현해서 당대의 명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명품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여러가지 발견과 정보도 볼 만 했습니다.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를 통해 그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도판도 매력적이고요. 아래와같이 돋을새김 상감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사진으로는 그 형태를 온전히 보기 어려운데, 스케치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는 3차원적 형태에 잘 어울리도록 그려지고, 이어진 형태로 감상해야 하는 그림이 많아서 전체를 돌려가며 보아야 된다는 착안도 좋았습니다. 이런건 박물관에서도 전시 시에 활용해주면 참 좋을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천천히 돌려서 전시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자만의 주장도 눈길을 끄는게 많은데, 그 중 두 가지가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는 황금 비례는 수학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시대의 정신적 습관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특정한 하나의 양식이자 독특한 미적 가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황금 비례가 많이 사용되는건 사람의 눈의 구조가 똑같고, 보편적인 감정이 있어서 대체로 2:3이나 3:4 정도의 비례를 좋다고 느끼기에 그런 조형 결과물들이 많은 것 뿐이라서 특별히 대단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청자를 만들 수 없었던 조선은 문화가 낙후된게 아니라는 일련의 주장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을 문화 퇴행기로 보는 건 일제 강점기 시기 총독부 소속의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들은 삼강오륜을 앞세운 근엄한 도덕적 생활을 해서 정서가 발달하지 못했고, 경제력도 보잘것 없어서 미술이나 미적 감각을 발전시킬 힘과 여유가 없었다는 김원룡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악의적 편견인 것이지요. 저자는 조선의 경향은 조형 예술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추상'이라는 개념의 경향일 뿐이라며, 이를 맨 마지막에 소개된 '은진미륵'을 통해 설명해줍니다. 은진미륵은 세계에 관한 관심이 달라진 데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미적 감각의 표현으로, 인자한 보살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킨 조형으로 특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걸 여러가지 분석으로 알려주거든요. 이러한 경향이 조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일테고요. 또한 청자가 만들어지지 않은건 옥의 모조품이라는 목표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재미는 있는데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황금비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이론화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은진미륵에서도 추상성에 따른 아름다움은 솔직히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예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유물을 보는건 좋았지만 청자가 대부분이고, 내용도 비슷한게 많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청자의 형태가 유기적으로 이는 최신 디자인 경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탓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문헌, 사료적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문헌을 분석하는 것 보다 유물 자체를 관찰하고 추론하는게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추론을 문헌을 통해 뒷받침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 주는게 보기가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 중심으로 분량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2009/01/05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존 딕슨 카 / 권일영 : 별점 3점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6점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존 딕슨 카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코난 도일 경의 막내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추리 소설가 존 딕슨 카가 손을 잡고 발표한 셜록 홈즈 단편집. 이른바 "안작" 또는 "파스티쉬", 또는 "아포크리파" 등으로 불리우는 작품군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유는 도일 가문의 이름과 딕슨 카의 명성이 합쳐져 원작 수준의 명성을 획득한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총 12편의 단편 중 실제 공저작은 앞의 6편 뿐이며, 뒤의 6편은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단독작으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공저작 쪽 수준이 훨씬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볼때 에이드리언 도일의 글솜씨는 그닥으로 판단됩니다. 다른 작품이 전해지지 않은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명성만큼의 작품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원전을 의식한 구성 탓에 지루한 면도 있고, 기대했던 트릭의 귀재 딕슨 카의 맛이 거의 살아있지 못한 탓입니다. 홈즈 시리즈 자체가 이미 한세기를 훌쩍 넘긴 과거의 유물인 탓에 좀 낡아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딕슨 카라는 거장의 느낌도 나지 않는다는건 팬으로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코난 도일 경의 원작 그대로의 느낌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좀 미묘하게 다르거든요. 확실한 원작과의 차이도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홈즈 등 주요 캐릭터의 성격이 약간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에피소드에 미녀 의뢰인이나 미녀 용의자, 미녀 악당이 등장한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이런 캐릭터적인 잔재미보다는 추리적인 곳에서 솜씨를 발휘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홈즈물로서만 바라본다면, "검은 준남작의 모험" 과 "애버스 루비의 모험" 이라는 두작품은 과거 전성기 홈즈 단편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홈즈물로의 가치와 재미, 수준을 갖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검은 준남작의 모험"은 역사적인 유물과 연계된 색다른 기계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딕슨 카의 느낌도 살짝 전해주면서 시작부터 결말까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으며, "애버스 루비의 모험"은 트릭 자체는 굉장히 쉽고 단순하지만 정통 홈즈물스러운 추리의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두 작품이 저의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입니다. 한편만 꼽으라면 "검은 준남작의 모험" 이고요.
그 외에도 전보를 가지고 부인의 정체를 추론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수염을 이용한 트릭도 괜찮았던 "하이게이트 기적의 모험", 시계에 대한 공포를 가진 신사가 등장하는 "일곱 시계의 모험", 그야말로 홈즈물 스러운 "폭스 래스 저택의 모험" 도 추천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공포의 데트퍼드의 모험" 같은 얼룩끈의 치졸한 아류에 불과한 쓰레기같은 작품도 실려 있긴 하지만요.

총평하자면, 홈즈 팬으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작에서 띄엄띄엄 제목만 소개되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쓰여졌다는 점은 원작팬으로서 점수를 안 줄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전에 읽었던 "베이커가의 살인" 과 비교한다면 훨씬 원작에 가까운 풍모를 보이고요. 앞서 말했던 몇가지 단점과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 등은 감점 요인이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솔직히 명성에 비한다면 2.5점 수준이지만 전 관대하니까요.

아울러 북스피어는 좋은 책들은 많이 내 주지만, 디자인과 번역에 좀 더 신경써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표지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폰트와 일러스트 모두 지저분하고 난잡한 느낌만 가득 전해주는데 앞으로는 보완 좀 해주시길.

2014/09/13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혜문 : 별점 2.5점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6점
혜문 지음/작은숲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 여러 가지 문화재에 대해 쓴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크게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망각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 쉽게 잊은 과거의 비극과 그 유물에 대해 알려주며, 두 번째 "환국의 그림자"는 우리가 되찾은 문화재의 허와 실을 다룹니다. 마지막 "빼앗긴 문화재의 꿈"에서는 꼭 되찾아야 할 문화재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요.

읽기 전에는 부제인 "다보탑의 돌사자는 어디로 갔을까?"처럼 문화재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종의 탐정 소설 느낌의 논픽션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은 앞서 말해드린 챕터별 주제에 대한 에세이라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다보탑 돌사자 이야기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87년 10원짜리 동전 속 애기불상 루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결국 어디로 갔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는 결론이라서 실망스러웠고요.

그래도 문화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책의 핵심이자 중심이 되는 세 번째 챕터 대부분이 그런 성격인데, 예를 들어 오쿠라 호텔의 사설 박물관인 오쿠라 슈코칸에 우리의 석탑 등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과 도쿄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도굴왕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내용은 평범한 독자에게도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이 미 국무부 직원에게 뇌물을 바치는 장면과 실존 인물인 그레고리 헨더슨의 헨더슨 컬렉션에 대한 소개는 정말 가슴 아픈 근현대사의 장면이었고요. 더불어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반환 언급이 금지되었다는 대목에서는 얼마나 매국적인 협상이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그나마 반환받은 문화재들도 국보급이 아니라 짚신이나 막도장 같은 어이없는 물품이 많았다는 점도 황당하더군요.

아울러 제가 기대했던 문화재 탐정류의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방향은 달랐지만 기이한 유물이나 문화재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의 유래나 현재까지 그 칼이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고, 한때 유명했던 '명성황후의 표범 카펫' 이야기를 다시 알게 된 것도 반가웠습니다.

그 외에도 혜문 스님과 관계자들이 백방으로 노력해 환수받은 조선왕조실록에 숟가락만 얹고 언론 플레이만 열을 올리는 서울대의 행태, 다양한 질문에 무성의하게 답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 규장각 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했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책이라 점수를 매기기엔 애매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고, 기대했던 자료적인 가치가 높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우리 문화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09/11/09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 이동진 : 별점 3.5점

별의 계승자 - 6점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오멜라스(웅진)

달에서 5만년이 경과된 것으로 보이는 우주비행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우주복 안의 유골은 인류와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찰리"라고 불리우게 된 이 유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일전에 "해물파전" 님이 댓글로 추천해주신 책인데 이제서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해물파전님의 추천 그대로 엄청난 하드 SF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SF라는 쟝르에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 예체능과 출신입니다^^)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더군요! SF는 원래 취향이 아닌지라 해물파전님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작품과 같이 인류는 어떻게 유래되고 진화되었는가? 라던가, 진화상의 미싱링크의 이유는? 과 같은 인류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죠.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있어서 외계인이 개입했다는 아이디어 역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21세기 달에서 발견된 5만년전 유골이 우주복을 갖춰입은 현생 인류와 동일한 호모사피엔스라는 이야기의 발단부터 무척 흥미진진하며 이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 과정이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내용도 대담하고 스케일이 무척 커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로 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전개가 맞물려져 있기에 추리 애호가로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마지막의 반전도 좋았습니다. 유물 발굴에 대한 사족은 없는게 나았겠지만...^^;;

또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찰리가 남긴 유물(?)들을 토대로 제기되는 다양한 단서들, 예를 들면 "달력"과 지형지표, 각종 서류들에 대한 디테일한 언급과 그에 따르는 여러 묘사들 - 찰리의 유체를 토대로 인체에 미친 조석간만의 차를 연구해서 하루의 시간을 알아내어 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혀내려 한다던가, 언어를 파악하기 위하여 달력으로 보이는 문서와 개인 서류를 조사하여 공통된 단어를 찾아낸다던가 - 은 하드 SF답게 많은 이론들이 전개되지만 이 역시 추리적인 재미가 곁들여져 있었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70년대 쓰여졌지만 낡아보이지 않는 상상력 역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고 말이죠.

이러한 대단한 전개와 비교한다면 캐릭터가 너무 매력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물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큰 흠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취향을 좀 타기야 하겠지만 SF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일반 대중들을 만족시킬만한 재미가 있는 매력적인 작품임이 분명하기에 적극! 추천합니다.

PS : 책의 표지 디자인은 지나치게 전위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소한 제목은 좀 잘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울러 표지가 너무 구김이 많이 가는 소재로 제작된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