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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1

정말이야? 1,2 - 안드레아스 슈뢰더 / 이영민 : 별점 3점

정말이야? - 6점
안드레아스 슈뢰더 지음, 이영민 옮김/재승출판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역사속 사기꾼들과 사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총 2권으로 1권에는 17개, 2권에는 11개의 목차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기 중 인상적이었던건 아래와 같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쳐낸 뒤 다수의 위작을 거액으로 수집가들에게 팔아넘긴 '모나리자 절도사건"
진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작을 여러개 만들어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진품을 훔쳐낸다는 발상이 기발했어요.

"역사상 최대의 은행 절도 사건인 프랑스의 스파갸리 사건"
1억달러 이상의 금과 지폐, 귀중품 등을 지하 금고실에서 대대적인 작전을 통해 훔쳐낸다는 스케일도 크죠. 그러나 더욱더 인상적인 것인 의외로 금방 체포된 주범 스파갸리가 판사 집무실에서 전직 낙하산병다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탈출한 뒤 사라져 버렸다라는 후일담이었습니다.

"100만달러의 현금을 탈취한 D.B 쿠퍼 사건"
"프리즌 브레이크"로도 친숙한 D.B 쿠퍼 사건입니다. 미국에서 거의 최초로 비행기 폭파 협박으로 100만달러의 현금을 갈취한 뒤 낙하산으로 도망간 사건이죠.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다시 감옥에 수감된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행복하게 살다가 80년대 후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어쨌건 담대한 싸나이의 '인생은 한방' 철학에 충실한 모험담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돈을 마음껏 농락한 여상 마르트 하나우 사건"
1920년대에 이미 매체를 통한 주가조작이라는 첨단 사기방법을 보여준 여성 마르트 하나우가 등장합니다. 아예 공식적으로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전국 규모의 매체조작으로 주가를 상승시키는 대담함이 돋보이네요.

"미국의 황제 노턴 1세"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자신을 황제라 칭했던 정신병자 노턴 1세의 이야기입니다. 자칭 황제인 정신병자가 정말로 황제로 대접받으며 근사한 말년을 보냈다는 내용인데 이러한 사기 정도는 유머와 여유로 받아주던 19세기 후반의 샌프란시스코가 부럽네요. 혹 여행갈 일이 있다면 책에서 언급한 노턴 1세의 자취를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셰라톤 팔레스 호텔의 식당이름이 황제 노턴실임 / 엠페러 항에는 노턴 1세의 얼굴이 세겨짐 / 피어39 쇼핑센터 앞의 황제 마네킹 등)

"최고의 위작가 엘미르 드 호리"
1920년대 유명 후기 인상파 화가 페르낭 레제의 미술학도로 공부하며 후기 인상파에 대해 모든 것을 꿰뚫게 된 엘미르 드 호리가 막대한 위작을 팔아넘긴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잘 나가다가 결국 체포되어 자살했지만, 사기당했다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외려 그의 위작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후일담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위작가로서의 능력이 정말 뛰어났던 것 같네요.

"군대를 손아귀에 넣다"
1차대전 당시 프러시아와 2차대전때의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군복을 입고 지위를 사칭하여 주변을 농락한 이야기입니다. 군국주의 파시스트가 판치던 분위기에서 아주 효과적인 사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풍자의 의미가 컸던 탓인지 두 사건 모두 주인공들이 나름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는게 이채롭기도 하군요.

"인류에게 에너지를!"
에테르 엔진을 개발한 미국 발명가 존 킬리, 물에다가 자신이 개발한 약간의 약품을 첨가하면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엔리히 이야기 2편이 등장합니다. 존 킬리 사건은 너무나 전형적인 장치 설비 사기라서 좀 허탈하기도 하네요. 엔리히 이야기는 결국 그 물질이 뭐였을까?에 대한 답은 없이 끝나는데 뒷날 조사 결과로는 '에탄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독일의 원격조종 강도 다고베르트 사건"
90년대 독일을 휩쓸었던 지능범 다고베르트 사건입니다. 직접 개발한 원격 조종 장치 박스안에 현금을 넣고 기차에 부착하라고 지시한 뒤 원격으로 기차에서 떨어지게 조작한다던가, 하수구 뚜껑 위에 직접 만든 모래상자를 놓고 밑에서 현금을 빼낸다던가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하수구 뚜껑 위의 장치는 영화 "스피드"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어쨌건 오랜 기간동안 경찰을 농락하다가 결국 체포되기는 했지만 독일에서 굉장한 화제를 모으고 영화 이야기도 여럿 나왔다고 하니 다고베르트 역시 앞날은 걱정없겠네요.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이외의 사건들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이라 읽으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왜 2권으로 분책했냐는 거죠. 조금 두꺼워지더라도 활자 크기를 조정해서 1권으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쿠로사기"와 같은 사기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사기의 원점을 둘러보는 의미에서 볼 만 하니까요.

2023/09/24

붉은 집 살인사건 - 도진기 : 별점 2점

붉은 집 살인사건 - 4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진은 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오빠 남성룡의 유산 상속에 대해 의뢰한 남광자를 만나러 우면동 붉은 집에 방문했다. 붉은 집 1층에는 서씨 가문, 2층에는 남씨 가문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진은 1순위 상속자인 남성룡의 딸 남진희가 모든걸 상속받기에 상속은 오빠와의 협의가 전부라며 자리를 뜨려 했지만, 과거 있었던 2건의 사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과거 서씨 가문의 가장 서판곤이 남씨 가문의 모친 이분희와 재혼 후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백솔 사체로 발견되었던 사건과 서판곤의 아들이자 현재 서씨 가문의 가장 서태황의 아내 박은순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던 사건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며, 뒤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날거라 여겼던 고진의 직감대로 6개월 뒤 남진희가 실족사라는 형태로 사망했다. 고진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모의 맹인 남진희에게 매료되었던 탓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을 결심하고 친구이자 우면동관할서의 반장 이유현과 함께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데....

과거 판사였던 도진기 씨의 데뷰작이자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첫 작품. 제목이 달라져서 몰랐는데, 10여년 전에 읽었던 <<어둠의 변호사>>와 같은 작품이더군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바뀐 제목에 낚여서 다시 완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요 트릭과 진상은 대충 잊어버렸던 터라 새롭게 읽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트릭과 두뇌 싸움, 복선이 가득하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크게는 아래와 같이 서형일이 만든 트릭 세 가지, 그리고 남성룡의 계획 두 가지가 눈에 뜨입니다.

서형일의 트릭
  1. 박은순 살해 당시 알리바이 트릭
  2. 남진희 사건을 일으킨 원격 조종 트릭
  3. 남진희 사건 당시 알리바이 트릭
남성룡의 계획
  1. 서형일의 다아잉 메시지를 이용하여 서태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던 계획
  2. 서형일을 움직여 남진희를 살해하도록 만든 계획

서형일의 첫 번째 알리바이 트릭은 유럽 여행 중 살인을 위해 이미 한국에 들어왔지만, 유럽에 남아있던 지인애게 당일 한국 날씨를 확인하여 엽서를 보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단순히 '서형일의 필적'이 근거라는건 증거로 삼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한국 날씨 예보 종류는 몇 개 없기에 날씨에 대해서만 여러가지로 다르게 기입한 엽서를 준비해서 - 같은 내용으로 "맑음", "흐림", "비" 등으로 만들어 놓는 식으로 - 해당 날짜 예보에 맞는 엽서를 골라 보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인어공주 동상에 돼지 피를 뿌린 것도 서형일의 공범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현장에서 체포되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최대한 몸조심하면서 숨어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조작까지 해 가면서 엽서를 만들어 보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남진희 침실 구조를 이용하였습니다. 남진희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침대 위치를 정 반대, 대각선 위치로 옮겨놓았던 겁니다. 원래 위치에서 문을 열면 거실로 나갈 수 있지만, 바뀐 위치에서 문을 열면 계단으로 추락하도록요. 수면제, 방의 구조 등 여러가지 단서와 상황을 잘 조합한 멋진 트릭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침대 위치를 옮기는 조작을 위해 사고 전날 부산으로 이동할 때 알리바이를 만든 트릭입니다. 상, 하행선 고속도로 휴게소를 오갔다는 다소 간단한 내용이지만 실행이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었어요.
 
남성룡의 첫 번째 계획은 서형일이 남긴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되었다는걸 알고 녹음기를 그대로 두었던 겁니다. 자신이 서형일의 친부라는건 아무도 모르니, 서형일의 양부 서태황이 죄를 뒤집어 쓸 거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사건의 진상과 동기 를 밝히는 핵심 소재가 된다는 정메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조종하기 위해 유언장 정보를 흘려 살의를 부추켰다는건 뻔했지만, 언제나 설득력을 보장하는 동기인건 분명하고요.

하지만 확실히 처음 읽었을 때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일단 '잘 쓴' 작품은 아닙니다. 묘사가 튀는 부분이 많고, 고진과 이유현의 추리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진이 중심을 잡고 사건을 끌고가는 맛이 부족해요.
인물 설정과 묘사도 별로입니다. 일본 변격물을 연상케하는 엽기 범죄가 명문가 - 서울대학교 교수와 2성 장군 집안이니... - 에서 이어진다던가, 맹인과 트랜스젠더가 혼재하는 복잡한 가족 설정들 모두가 비현실적이었거든요. 거의 마지막까지 서태황과 서두리를 악역으로 묘사하는건 '얘네들이 범인일거야! 그렇겠지?'라는 작가의 의도가 심하게 드러났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자의 피는 유전된다는 이론을 작품 전체의 밑바탕에 깔고 있는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루할 뿐더러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전혀 찬동할 수 없어요.
그리고 본격 추리물을 추구한 작풍 탓이겠지만, 작 중에서 주요 정보를 노골적으로 알려주어서 추리하기 쉬웠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뭔가 상세한 묘사가 있거나 하면 금새 이게 단서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남진희가 추락사한 침실 현장에 대한 극도로 상세한 묘사, 그리고 박은순 사건 당시 서형일의 알리바이에 관련된 묘사들이 대표적입니다. 남진희 사건은 묘사만 보아도 트릭은 잘 몰라도 수면제로 깊이 잠든 남진희와 방의 구조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형일의 알리바이도 신문 기사를 통해 곧바로 가짜라는게 드러나고요. 날씨에 대해서 어떻게 조작했는지는 몰라도, 범인이 서형일이라는건 금방 알 수 있어요.
남진희 사건 때 서형일이 톨게이트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것도 알리바이 조작일거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작품 발표 시기는 2000년대 이후인데, 이 때 고속도로 CCTV가 없었을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무슨 차를 탔는지를 알면 고속도로를 이용한 서형일의 알리바이는 금방 깨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이외에도 경찰 수사를 거의 없다시피 묘사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서형일은 유럽 여행에서의 알리바이, 고속도로 휴게소 알리바이 모두 협력자가 필요했습니다. 주변 인물과 연락 내용만 살폈어도 협력자를 알아내어 범행을 밝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그런 수사는 벌였어야 했는데 수사에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살해하고 그 죄를 서태황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된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 다이잉 메시지(?)만 없었어도, 남성룡 역시 용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살의가 넘쳤다 한들, 이렇게 무모하게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0여년 전 보다 감점하여 2점입니다. 데뷰작인 탓에 여러모로 욕심을 부린 티가 많이 납니다. 서형일의 억지스러운 알리바이 트릭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 빼고, 남성룡이 남진희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 - 아내가 떠나면서 자기 딸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 - 와 괜찮았던 남진희 원격 살해 트릭만 가지고 짧고 깔끔하게 다듬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25/04/26

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2점

엘리펀트 헤드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 병원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배우인 아내 기키, 대학생이자 가수인 큰 딸 마후유, 고등학생 둘째 딸 아야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가족의 행복이 쉽게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아픈 기억 탓이었다. 그래서 기사야마는 가족의 행복을 망치려는 원흉을 사전에 제거해 왔고, 최근에는 딸을 취재 목적으로 스토킹하던 방송인 이즈미를 살해했다. 그러나 마후유가 애인 하루를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는 날, 하루가 기사야마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가졌다는걸 폭로해서 가족은 붕괴되고 말았다. 자포자기한 기사야마는 마약상 에덴으로부터 건네받은 '시스마'를 주사했다. 그런데 시스마가 이상한 효과를 일으켜 시간을 역행한 기사야마는, 하루를 습격해서 입을 막고 가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시간 역행이 아니라 시간 분기였다. 결국 두 개의 시스마를 사용해 사태를 해결한 행운아, 한 번 실패해서 시간 역행 효과만 확인한 복원자와 공격받아 입원한 산송장, 모두 실패한 도망자라는 다중 시간축이 생겨났다. 기사야마들은 어느 시간 축에서라도 사람이 죽으면(기사야마가 살해하면), 모든 시간 축 사람이 죽는다는걸 알아내고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살인을 막으려 했지만, 마후유와 기키, 아야카가 차례대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신예 작가 중 '추리'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최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추리하는 구성이 특징인데, 이번에는 각기 다른 시간축(멀티버스)에 존재하는 동일 인물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다중 시간축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시간축이 달라도 죽음의 순간은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설정에서 일종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탐정역을 소화하는 기사야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방해물로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소시오패스거든요. 아내의 스토커를 잡아다가 능욕하고, 딸 스토커는 살해하는 초반부 단계를 지나 후반부로 갈 수록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어마무시합니다. 

그러나 참신함, 독특함은 설정에 국한될 뿐, 정작 추리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명의 기사야마가 가족의 죽음을 놓고 펼치는 대부분의 추리는 결국 ‘추리를 위한 추리’에 불과해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아야카가 폭발한 이유가 알약에 숨겨진 소형 폭탄 때문이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이 산산조각이 나고, 신체 조각이 날아갈 정도라면 알약 크기 폭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요. 다중 시간축에 있던 복수의 가족들이 동시에 죽었는데, 죽은 상태가 서로 극과 극이라 사망한 원인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저절로 폭발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 자체는 그럴싸한데, 상황이 너무 말도 안돼요. 추운 차를 운전하다가 동사하고, 두꺼운 탈을 쓰고 공연하다가 열사병에 걸려 죽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여러 명이 추리를 펼쳐봤자 다 억지스럽고 말이 안된다면, 이건 그냥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류의 대표 걸작 "독 초콜릿 사건"처럼, 모든 추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 또한 억지스럽습니다. 기사야마들은 가족들이 죽는 순간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범인 기사야마는 피해자가 죽는 순간에는 손을 대지 않는 '시한 장치 트릭' 더하기 '원격 조종 트릭'을 사용했는데, 상황을 극단적으로 정교하게 맞춰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후유는 '행운아'가 죽였습니다. '행운아'는 마후유가 하루와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는걸 알게된 뒤, '산송장'의 손을 빌어 하루를 죽게 만듭니다. '산송장'의 시간축에서 하루가 죽자, '행운아'의 시간축 하루도 죽는데 마침 운전 중이라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되고요. 사고로 차밖으로 튕겨나간 마후유는 공교롭게 지나가던 차량에 머리가 으깨져 죽습니다. 즉, 이 모든건 말 그대로 ‘기적의 타이밍’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던 마후유가 왜 튕겨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야카 폭사에 대한 진상은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도망자' 기사야마가 그녀를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태아를 불법으로 적출해 폭사시키고, 임신을 유지하던 '두더지' 시간대의 아야카의 뱃 속 아기가 폭발하자 다른 시간축의 아야카들 모두 폭사했다는건데, 이건 추리의 수준을 떠나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렇게 반인륜적인 이야기를 트릭으로 포장한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추리물로는 치명적입니다. 행운아는 마후유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행운아의 시간축에서는 마후유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소시오패스라서,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서 죽였다? 정신병자의 과대망상이 동기인 작품이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이게 동기라면, 행운아가 마후유를 살해했다는걸 숨길 이유는 없어요. 약속대로 다른 시간 축의 기사야마들이 가족을 죽이면, 손 안대고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설정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입니다. 죽음만 동일하게 적용될 뿐, 상처 등은 시간축에서 공유되지 않는다는게 대표적이에요. 상식적으로는 상처도 동기화되어야지요. 산송장이 중상을 입었을 때, 다른 시간축의 기사야마들도 모두 동일한 상처를 입고 쓰러졌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더지가 도망자를 죽이려고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에필로그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도망자를 죽이려면 그냥 자살하면 됩니다. 시간축에 있는 모든 기사야마가 동일한 운명을 맞을테니까요. 또 에필로그에서처럼 한 시간축에서 터진 폭탄이 다른 모든 시간축에 영향을 미친다면, 앞서의 현란하고 복잡했던 시한 장치 및 원격 조종 트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루와 마후유가 탔던 차에 폭탄을 설치하면 되잖아요?

기사야마에 대한 묘사도 이상해요. 기사야마들은 시간축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축마다 별개의 인격을 가진듯 보이는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아야카 폭사 때 두더지는 도망자의 부탁을 받아 아야카의 아이를 살려주기까지 하는데, 이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시스마를 잔뜩 맞은 탓에 시간축을 오가는 절대자가 된 우라시마도 사건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탐정역이 필요해서, 기사야마를 뛰어넘는 절대자가 필요해서 등장시킨 듯 한데, 인물 설정이나 등장 과정, 묘사 모두가 과장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스마를 맞은 복원자가 첫 번째 시스마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축을 한 번 더 분기시켜 ‘두더지’가 생겨났다는 설정은 참신했습니다. 이즈미 사키와 페페코 등 단순한 희생양으로 보였던 인물들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시간 이동을 착각하게 만든 디테일도 눈에 띄었고요. 여러 시간축의 기사야마들이 추리를 펼칠 때, 사이렌 소리와 기키와의 과거사 등을 근거로 산송장이 사실은 아파서 누워있는 척 했다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참신한 설정과 캐릭터 구도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비윤리적인 트릭과 없다시피한 동기, 개연성 부족의 삼박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전에 보았던 한 추천 리스트에서 언급했듯, 재미는 있지만 최악이에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2025/05/02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이노우에 마기 / 이연승 : 별점 2점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4점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론 사업 벤처기업 탈랄리아 직원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 형의 사고사를 방조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다카기는 최첨단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의 3세대 모델인 SVR-3가 채택된 지하도시 WANOKUNI 개막식에 참석하는데, 마침 그날 지진이 일어났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붕괴와 침수가 계속되는 지하 5층에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 생존자가 헬렌 켈러처럼 시각, 청각, 언어 모두에 장애가 있는 나카가와 히로미라는 점이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뿐으로, 다카기는 동료들과 함께 유일하게 지하에 접근할 수 있는 드론 아리아드네를 원격 조종해 생존자 수색과 구조에 나서는데....

일본 작가 이노우에 마기가 쓴 재난 구조 SF 소설입니다. 구조라는 테마에 첨단기술과 장애인이라는 소재를 결합한 매우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존 재난소설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탈출극 추천'이라는 리스트에서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 과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드론'을 활용하여 헬렌 켈러와 똑같이 시력, 청력 및 대화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지하 도시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론'은 '촉각'과 '후각' 만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해서 아리아드네는 향수를 내뿜어 도착을 알리고, 점자 카드가 포함된 구호 물품을 투척하며, 장착된 하네스(유도용 와이어)를 잡게하여 경로를 안내합니다. 또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한 SF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구조 과정의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작품의 배경인 지하도시 WANOKUNI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에너지 보존과 탄소 배출 감소, 지진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하 건설의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드론을 활용한 물류 시스템, 개인 맞춤형 서비스, 광덕트를 통한 자연광 유입 등 매력적인 기술들이 상세하게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통신망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드론 조종이 가능했던 원리, 드론의 무선 충전 방식 등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구조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WANOKUNI가 정치적인 이유로 활성 단층 위에 건설되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재난 구조 소설답게 구조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들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진으로 인해 구조용 드론이 추락하고, 지하 4층 스파 구역에서 발생하는 누전, 폭주하는 지게차들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들, 그리고 다카기가 폭로 유튜버의 드론에 맞아 아리아드네의 통제권을 놓치는 장면까지, 하나하나의 위기들이 정교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울러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히로미가 조명 스위치를 작동시키거나, 쥐떼를 감지하고, 돌진하는 지게차를 스스로 피하는 등, 의아한 행동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정말 시각을 잃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 수수께끼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상 - 히로미가 사실은 도시에 추락했던 다른 장애인 미도리를 업고 있었고, 모든 기이한 행동들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반전 - 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요. 아울러 이 진상은 광덕트 붕괴와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진 이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낭의 열기 등 여러 복선들과도 절묘하게 맞물려 있어서 정교함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재난 생존물로서 치명적인 약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구조 대상자인 히로미가 아니라 드론 조종자인 다카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물의 긴박감을 그리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카기는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원거리에서 드론을 조작하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래서야 일종의 1인칭 슈팅게임과 별다를게 없지요.

또한, 서사의 일부 전개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예컨대, WANOKUNI 입주식 날 하필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듯 합니다.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진이 발생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구조 활동 중에 온갖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다카기, 그리고 계속해서 민폐를 끼치는 니라사와의 모습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동생을 계속 잃어버리는 니라사와의 행동은 짜증을 유발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애인을 구조하는 독특한 설정과 드론 기술의 활용,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반전은 매력적이지만, 긴박감을 살리지 못한 시점 선택과 작위적인 전개는 아쉽습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1/05

검은 황무지 - S.A. 코스비 / 윤미선 : 별점 3점

검은 황무지 - 6점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러가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 등 급전이 필요해서 로니의 보석상 다이아몬드 강탈에 참여했다. 로니와 콴의 실수로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보러가드의 빼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다이아몬드는 훔쳐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뒷세계 거물 레이지의 것이었고, 레이지는 강도단을 붙잡아서 경쟁자 셰이드의 플래티넘 코일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다. 보러가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코일을 성공적으로 탈취해 왔지만, 로니가 배신해서 코일을 빼돌렸고 보러가드의 사촌 켈빈마저 살해했다.
배신을 알게 된 레이지는 보러가드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고, 이에 보러가드는 로니와 레지 형제를 죽이고 코일을 되찾은 뒤, 가족을 지키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을 통해 읽게 된 작품. 두뇌파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가 세운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여러가지 범죄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피카레스크 하이스트 스릴러, 쉬운 말로는 악당 범죄 활극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인 버젼의 "악당 파커"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물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보러가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당이기는한데,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건 모두 가족 때문이며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킹핀처럼 '내 가족에게는 따뜻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악당도 있지만 '보러가드'는 삶에 찌든 소시민으로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한 묘사는 이런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요. 반면 '버그'로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하는 복수는 처절합니다. 이렇게 악당 '버그'와 좋은 아버지 '보러가드'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상하지 않게 잘 그려낸 솜씨가 탁월했니다.

범죄물로서도 평균 이상입니다. 일단 스릴러로서의 전개가 발군입니다. 보러가드에게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데 정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연재물이었다면 다음 호를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 같을 정도였어요.
'하이스트' 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코일 탈취 사건, 그리고 마지막 레이지와의 결전이라는 세 개의 큰 작전 모두 계획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두 보러가드의 운전 실력이 핵심이라는 독특함도 좋았습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에서 고가도로로 도주한 뒤 뛰어내린다던가, 코일을 탈취할 때 코일이 실렸던 트럭을 더 큰 트럭 안으로 몰아 넣어 숨기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레이지를 끝장내기 위해 애차 더스터를 몰고 카 체이스를 벌이고요.
보러가드의 정비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때에는 이산화질소식 촉매 시스템을 엔진에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냈으며, 강철판을 용접하여 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코일 탈취 때에는 달리면서 밴이 트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럭 꽁무니에서 경사로가 나오도록 개조했고요. 레이지에게 준 벤에는 원격 조종 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범행 과정에서 반전처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주며, 설명도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차는 차종에 대해 무조건 언급해줄 정도인데, 작가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유물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더스터'는 무슨 차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는데, "Plymouth Duster"로 1970년대 생산된 자동차더군요.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 입니다. 보러가드, 아니 버그와 참 잘 어울리네요. 가족에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지만, 복수를 끝낸 뒤 폐차시킨다는 결말까지도 뭔가 미국적이고 마초적이었고요.

하지만 걸작 하이스트 소설로 보기에는 작전은 평이한 편입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로 그렇게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대단한 세력을 지닌 듯한 악당 레이지의 조직이 보러가드 한 명에 의해 괴멸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여기에서야 말로 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을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는데, 단지 '폭탄'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건 지나치게 시시했거든요. 악당 조직이 이 때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설정도 억지스럽고요. 최소한 보스 레이지가 직접 나서서 트럭을 찾으러 갈 이유는 없잖아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범죄 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보러가드가 흑인이지만 인종 차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떤 가치관, 사상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오락물이거든요.

2012/02/05

저녁싸리 정사 - 렌조 미키히코 / 정미영 : 별점 3점

저녁싸리 정사 - 6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시공사

"회귀천 정사"에서 이어지는, 꽃을 주제로 한 연작 미스터리입니다. 메이지~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꽃 미스터리 단편 세 편과, 가벼운 현대물 유머 미스터리인 "양지바른과 사건부" 시리즈 세 편이 실려 있습니다.

꽃 미스터리 시리즈는 꽃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표면적인 사건과는 다른 진상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전작과 동일하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 처지는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작은 "도라지꽃 피는 집"과 "회귀천 정사"라는 확실한 투톱 에이스가 중심을 잡아준 반면, 이번에는 "국화의 먼지" 한 편만이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죠. "양지바른과 사건부" 시리즈는 유쾌하고 즐겁기는 했으나, 추리적인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별점은 3점. 전체적으로 평범하지만 "국화의 먼지" 한 편이 압도적인 완성도를 보여 점수를 많이 끌어올렸습니다. 이 작품 한 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붉은 꽃 글자"

"내 몸 안에 동백꽃이 떨어진 거야.... 떨어진 채 빨간, 새빨간 피 같은 색으로 피어 있어...."

자신의 친구와의 가슴 아픈 사랑 후 죽어간 여동생을 위한 복수극… 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철저한 계획살인이었다는 의외의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진짜 동기가 뒤에 숨어 있는 구조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친상간의 감정마저 보이는 캐릭터들을 꽃잎으로 대표되는 탐미적인 묘사로 넘칠 듯이 그려낸 전개가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진짜 악당인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 탐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심리묘사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반전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악당다운 모습을 더 보여주었더라면, 반전이 더욱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또한, 복수를 위해 동기(미즈사와와 미쓰의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이 과연 생각대로 가능했을까 하는 점도 다소 미심쩍었습니다.

그래도 "정사" 시리즈의 이름값에는 준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녁싸리 정사"

유명한 정사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의 일기를 토대로, 어린 시절 우연히 정사 사건을 목격했던 주인공이 감추어졌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세간에 아름답게 알려진 사랑 이야기와는 다른 진상이 있었다는 점, 그 와중에 몇몇 본격물스러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회귀천 정사"의 판박이입니다.

그러나 "회귀천 정사"에 비하면 확실히 처집니다. 정사 사건에 감춰진 진상, 즉 몰락한 사족의 후예인 신노스케가 가진 사회주의자로서의 야망과, 그를 이용해 오히려 사회주의자를 말살하려 한 다지마의 계획은 정사 사건과 어울리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졌어요. 화자의 어린 시절 짧은 기억에 의지하는 부분은 논리적 비약이 심했고요.

무엇보다도, 신노스케가 다카미 내무대신을 살해한다면 다지마가 굳이 유우와 함께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지 않더라도 진신샤를 타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진신샤의 암살이라고 공표된 후, 신노스케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다지마 유우의 장지문을 이용한 그림자 트릭을 신노스케가 고심 끝에 알아내 살인에 이용한다는 설정도 억지스러웠으며, 신노스케의 이름과 싸리꽃의 발음이 같다는 점을 이용한 증언 역시 일본어 말장난에 가까워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와닿지 않았어요..

서정적인 묘사는 여전히 뛰어나지만, "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국화의 먼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날을 배경으로 한 단편입니다. 그날 자살한 전 육군 기병연대 장교의 죽음에 우연히 관련된 "나"가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인데,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짧지만,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묘사와 "나"의 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 방식이 훌륭하고, 적절한 "원격조종" 트릭을 활용한 정통 추리물로서의 가치 역시 뛰어납니다. 무엇보다도 막부가 몰락하고, 막부를 따르던 무사 가문의 후예들과 천황을 추종하는 군인이라는 인물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등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십분 활용하여 역사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이 시대가 아니면 그려내기 힘든 트릭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별점은 5점. 이 단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양지바른과 사건부 제 1화 하얀 밀고"

다이토 신문사의 잔반처리과인 신문 자료부 제2과는 ‘양지바른과’라고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놀림받는 신세였다. 그러한 양지바른과에 다이토 신문사 기자 살인사건의 범인이 신문사 직원 "시즈타"라고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사원 아이코가 그 이야기를 사회부에 전한 얼마 뒤, 같은 목소리로 269명에 대해 추가로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다른,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 연작입니다. 결함 있는 사원들만 모여 있는 독특한 집단 ‘양지바른과’의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상당히 유쾌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었습니다. 너무 만화 같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과장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이 바닥 고전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니 감안해야겠죠. 덧붙여, 작가의 묘사력은 감출 수가 없는지 "범인의 목소리가 하얗다"라는 아이코의 느낌에서 ‘하얀 밀고’라는 단어를 이끌어내는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아이코와 타로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 또한 귀여웠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단 협박 전화를 건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부족하며, 이러한 협박 전화를 걸면 결국 범인이 신문사 모든 직원을 알고 있는 내부 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뿐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또, 사건의 발단이 된 아이코가 이름을 잘못 알아듣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요. 게다가, 과정이야 어쨌든 범인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도 시마다 과장이 왜 욕을 먹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유머 미스터리를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감탄스럽네요. 역시 재능이라는 것이겠죠.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에 만족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 2화 네잎 클로버"

1화의 5개월 뒤, 양지바른과 멤버인 오가와가 학예부로 이동하는 송별회에서 아이코는 다시 타로와 재회했다. 재회의 장소는 타로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좁디좁은 라면집이었다...

오가와가 인터뷰를 맡은 인기 혼성 듀엣 ‘라라와 루루’의 라라가 살해된 사건을 다룬 단편입니다. 라라가 쌍둥이였다는 가십이 터진 후, 사라진 라라의 쌍둥이가 용의자로 급부상하는 이야기인데, 루루의 독특한(?) 취미 등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라라의 성형수술 등 불필요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부족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나마 전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아이코와 타로의 밀당과, 아이코의 복잡미묘하지만 순진하고 귀여운 심리 묘사가 더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유머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미스터리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웠달까요.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 3화 새는 발소리도 없이"

"증발 중인 부인이 돌아왔다 뭐 그런 거요."
"그 여잔 앞으로도 당분간 기체로 지낼 걸."

로쿠스케에게 정체불명의 여자가 접근하여, 수배 중인 테러범 "철뇌조"의 거처에 대해 밀고하게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로쿠스케의 가출한 아내 이야기, 아이코와 타로의 여전한 사랑 이야기가 곁가지로 펼쳐집니다.

앞선 두 편과는 달리 폭탄 테러범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장난스러운 밀고 전화를 중심으로 한 일상계 추리물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일상계 미스터리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머와 재기 발랄한 대사,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죠. 전작들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력 범죄가 등장해 조화가 깨진 느낌도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는 일상계 느낌이 아주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추리적으로 너무나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사건성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유쾌한 캐릭터들의 소동은 읽는 내내 즐거웠고, 완벽한 해피엔딩 역시 귀여운 작품에 걸맞은 마무리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거장이 그린 소품으로는 아주 적절했어요. 귀여운 이야기를 계속 접하고 싶은데, 시리즈 후속작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2010/08/17

소년탐정 김전일 Season2 9, 10 : 별점 1.5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9 - 2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0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이제는 정말이지 관성으로 보는 김전일 시리즈 Season2 9~10권입니다. 중편 길이의 "켄모치 경부의 살인"과 중학생 김전일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2편 - "다이빙 수영장의 악몽", "캠핑장의 괴사건" - 이 실려있습니다.

이 중 마지막 작품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망작에 가깝습니다. 정통 본격 추리 만화에서 일상계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것부터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만드네요. 정통 본격물로 공정한 트릭과 독자와의 두뇌싸움,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9권은 별점 1점, 그래도 장점이 조금 더 많은 10권은 별점 2점입니다. 

좋은 기억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건만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쌈지돈을 털어가는 기둥서방같은 느낌인데, 이럴거라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켄모치 경부의 살인" 

3년 전 여고생 사체 유기 사건의 소년범 3명이 차례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켄모치 경부가 지목되었다. 켄모치 경부는 마지막 소년범 부스지마의 살해 현장이었던 완벽한 밀실 안에서 체포되고 마는데...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된 현재의 연쇄 살인, 가슴 아픈 진상이라는 김전일의 뻔하디 뻔한 테마가 재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까지 발전과 변화없이 시리즈가 이어진다는게 놀라울 뿐입니다. 힘없는 일반인에게 '지옥의 광대' 타카토 요이치가 지혜를 빌려준다는 범죄 코디네이팅 설정까지 그대로고요. 

아무리 지혜를 빌려줬다손 치더라도, 일반인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범인이 현역 경관을 납치하여 혼수 상태로 구금한 뒤 총을 빼앗는다던가, 원격 조종 폭탄을 만드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범인이 마지막에 죽을 각오였다면 그냥 2명을 총이나 칼로 죽여버리면 됐을텐데, 왜 이렇게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설명도 전무하고요. 그나마 좀 짧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길기는 또 왜 이렇게 긴 걸까요... 

딱 한 가지, '바움쿠헨'에서 실마리를 잡는 마지막 부스지마 사건의 트릭 하나만큼은 건질만했습니다. 이 트릭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다이빙 수영장의 악몽" 

중학생 김전일이 등장하는 일종의 외전입니다. 중학생 김전일이 우연히 목격한 사건 - 다이빙하다가 착수 실패의 충격으로 사망한 미츠요 사건 - 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름만 중학생일 뿐 고교생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중학생이라고 이야기를 꾸몄는지 알 수가 없네요. 차라리 긴다이치 후미를 등장시키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트릭 역시 평범한 학생이 꾸미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장치 트릭이라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짧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캠핑장의 괴사건" 

중학생 김전일이 친구들과 간 캠핑장에서 미유키의 시계와 팬티를 훔쳐간 범인을 찾아낸다는 지극히 일상계스럽고 유머스러운 작품입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괜찮습니다. 충분히 있음직한 사건에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릭, 그리고 마지막 팬티의 은닉 장소도 만화의 내용과 잘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7/28

신라 탐정 용담 - 이문영 : 별점 2.5점

신라 탐정 용담 - 6점
이문영 지음/웃는돌고래

통일 신라를 무대로 황룡사의 사미승 용담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역사 추리 소설로 총 세 편의(앞서 용담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인트로격 짤막한 이야기 한편이 있긴 합니다만)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블로그 지인인 초록불님의 저서인데, 초록불님의 도움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선물받았는데 리뷰가 많이 늦었네요. 이 자리를 빌어 사과와 감사의 말 전해드립니다.

주인공인 탐정역 용담 외에도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중 용담과 짝을 이루는 또 다른 주인공 격 인물은 고구려계 화랑인 연문덕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건에 주요 인물로 휩쓸리는 사건 관계자이지요. 추리적으로는 "증인 1" 정도의 비중이지만, 고구려 계라는 특징으로 대부분 사건의 동기인 신라계와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효과적인 동기 외에도 역사학자이신 초록불님의 저서답게 역사에 충실한 디테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룡사 살인사건" 에서의 신라의 골품 제도를 비롯한 화랑들의 구분 및 오래전 소실된 황룡사 9층 목탑에 대한 상세한 소개, "흑의장창말보당주 살인 사건"에서의 '흑의 장창 말보당주'와 신라의 부대 운영 체제, "발해 공주 실종 사건"에서 소개되는 당시 신라와 발해의 관계 및 전편에서 보여지는 신라의 부대 운영 체제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디테일이 배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사건, 트릭, 동기에 잘 녹여져 있어서 재미를 더합니다. "황룡사 살인사건" 에서는 당대 신라의 다도 문화를 소개하면서 이를 독살의 핵심 트릭에 응용하고 있으며 "흑의장창말보당주 살인 사건"에서는 고구려의 신기인 동명성왕의 활이 동기이고, "발해 공주 실종 사건" 에서는 당대 쇠뇌 구조를 소개하며 이를 원격 조종하는 트릭이 등장하는 식이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추리물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세 편 모두 독자도 범인을 쉽게 추리할 수 있을만큼 범인과 트릭이 빨리 드러나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사 추리물을 표방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추리적인 부분에서는 정통 추리물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는 합니다. 거장 존 딕슨 카조차 어쩔 수 없었던 점이고요. 아무래도 사건과 추리에 분량을 할애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역사적인 설명과 소재 묘사에 많은 비중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탓이겠지요. 장편이라면 그나마 이런 배경 묘사가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책 수록작은 단편들이라서 이러한 단점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급작스러운 해결과 마무리라는 단점 역시 단편이었기 때문에 보인 한계였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제가 읽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작품이기도 했고요. 허나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통일 신라 무대의 '역사 추리물' 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최소한 '역사' 부분 만큼은 잘 설명되어 있는 작품인 만큼, 어린 학생들이 한 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황룡사 살인 사건"의 다도를 이용한 트릭, "발해 공주 실종 사건"의 쉽지만 맹점을 찌른 인간 소실 트릭은 괜찮았는데, 차라리 "황룡사 살인 사건"만 보다 충실하게 추리적인 서사를 덧붙여 성인 취향의 장편으로 발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15/11/11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1.5점

마술은 속삭인다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마모루는 공무원이었지만 거금을 횡령하고 사라진 아버지 때문에 고향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살아왔다. 어머니 사후 이모댁에 얹혀 살며 잠시 평화로운 시기롤 보냈지만, 택시 운전을 하던 이모부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고 말았다. 이모 가족을 돕기 위해 특기인 열쇠 따기 기술로 피해자 요코의 방에 잠입한 마모루는 그녀의 죽음에 수상한 흑막이 있음을 눈치채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1989년작 장편소설. 도입부부터 중반 전개까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녀들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재미나거든요. 특히나 책 뒤 해설에서도 잠깐 언급되듯, 마모루가 이 사건에 얽히게 되는 계기가 마모루가 얹혀 사는 이모부의 택시에 요코가 추돌한 사고사라는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사건이 만나 마모루가 사건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될 뿐더러, 이 추돌사고로 마모루의 뒤를 봐 주는 요시타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중반부까지의 흡입력 있던 전개는 뒤로 가면 갈수록 힘을 잃고 맙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 트릭이 하라사와 노인이 구사하는 최면술인 탓입니다. 간단한 암시만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몇 마디 걸어서 최면을 걸게 만들다니! 누가 봐도 수상합니다. 더군다나 쫓기는 입장이거나 뒤가 켕긴다면 더더욱 말려들지 않으려 할 텐데 당치도 않지요. 어떻게 죽은 여자들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울러 작중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암시에 의한 서브리미널 효과도 최근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아니, 뭐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 속 내용처럼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 삽입된 영상을 보고 폭주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마디로 - 본 작품의 영상물을 감상하셨다는 각시수련님 말을 빌어 - 요약하자면 "트릭을 양념으로 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 정도 최면술이면 이미 추리가 아니라 SF라 생각됩니다.

전개 역시도 마모루 시점이라 약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코의 죽음 이후, 왜 그녀의 가족은 응답 메시지 테이프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 번 듣고 평범한 중학생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으니, 가족들 역시 간단하게 그녀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간단하게 원격 조종 살인을 범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구태여 남긴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최면술사일 뿐인 하라사와가 다카기 가즈코가 숨은 곳을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대충 쓴 느낌이에요.

또 진짜 사건의 원흉인 다카기 가즈코가 살아남은 뒤 구원을 얻는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으며, 마모루의 열쇠 따기 능력이 몇몇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합니다만 필살기가 아닌 잔재주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쉽습니다. 마술사와의 한판 승부에서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기 정도에 그치니까요.

아울러 마모루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하고 바람을 피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수를 했느냐, 도망을 쳤느냐가 가정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기다림이 헛되었다는 것 때문에 마모루가 분노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매장당해도 싼 인물이이라서 딱히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어떻게든 마모루를 돌봐주려는 요시타케와 비교하면, 요시타케를 매도하는 하라사와 노인이야말로 사악한 연쇄 살인마인데 뭐 잘났다고 훈계를 늘어놓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복수해야 할 대상인 다카기 가즈코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취재를 한 것에 불과한 하시모토까지 죽인, 용서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잖아요? 그가 말하는 정의나 마모루에 대한 충고 모두가 와닿을 리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모루와 미야시타 요이치의 왕따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성장기 스타일의 일본 소설들은 왕따 이야기를 빼면 쓸 수가 없는걸까요? 이 정도 시련을 겪지 못하면 어른이 못 된다는 뜻인가? 여튼,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중반부 전개는 나쁘지 않고 흡입력도 제법입니다. 그러나 엉성한 설정 탓에 잘 짜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은 최면 이론을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작품을 쓴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에테르 세계관 시절에 쓰여진 SF가 떠오르고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피하시길 바랍니다.
1989년 일본 추리 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인데, 최면술에 대해서 무지했던 시대였나봅니다.

2017/09/17

그 무렵 누군가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1.5점

그 무렵 누군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주말을 보내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단편집입니다. 그간 읽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그래도 무난한 수준들이었기에 이번에도 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후지 TV 드라마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즈"의 원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 책 뒤 소갯글에 낚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폭탄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모두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본적인 완성도를 갖춘건 "수수께끼가 가득", "레이코와 레이코", "재생 마술의 여인" 세 편 뿐이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너무할 정도로 수준이 낮거나 다른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2011년 일본에서, 그리고 2014년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과 내용이기에 조금 조사해보니, 실제로는 20여년 전 일본 버블 경제 시기에 발표되었던 단편들이더라고요. 대 인기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묻혀있다가 20여년 만에 발표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동안은 너무할 정도로 수준이 낮아서 책을 내 봤자 망할거라고 생각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작가 이름값이 높아진 덕분에 겨우 출간되었고요. 그 정도로 한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작가의 수많은 책 중에서도 최 하급을 차치할 유력 후보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딱히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좋은 책들도 많으니까요.

수록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수께끼가 가득" 

야요이의 애인 다카노리가 살해당한 후, 야요이는 다카노리의 친구라 자칭하는 기타자와라는 남자 등으로부터 사건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카노리가 거부 나카세 고지로 사장의 유언장을 훔쳐 은닉하였다는 것이었다...

페라리와 베엠베, 고층 고급 빌라, 회원제 스포츠 센터 등 버블 시대의 환영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버블에 대해 정색을 하며 비판하던 기요미가 진범이라는 결말은 독자를 허탈하게 만듭니다. 야요이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이 돈만 쫓는 속물이라는 결말이니까요. 물론 어차피 진지한 버블 비판이 담긴 사 회파 작품은 아닌 만큼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작 중 등장하는 트릭은 두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마법사의 손"이라는 기타자와의 대사, 다른 한 가지는 다이잉 메시지 "A"입니다. "마법사의 손"은 "선인장"을 암시하는 말인데, 이미 작중에서 기타자와가 온실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트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작에 조사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죠.
"A"라는 다이잉 메시지는 최악입니다. 범인을 나타내는 말도 아니고, 유언장의 트릭을 밝혀내는 키워드에 불과해서 죽기 직전에 쓸 말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탓입니다. 게다가 이를 가지고 기요미가 범인이라고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이라 이를 활용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든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TV에서 영상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TV로 보는게 훨씬 낫겠습니다. 

"레이코와 레이코" 

변호사 요코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 레이코를 거두어 돌봐주었다. 그러나 레이코는 마에무라라는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인데...

"수수께끼가 가득" 처럼 버블의 환영이 가득하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청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다니는 젊은 여성 변호사, 아르마니 양복과 롤렉스 시계로 치장하고 현금은 20만엔 씩 들고 다니며, 차량은 6백만엔짜리 청색 세르시오라는 29살의 증권 회사 직원 등이 등장하니까요. 이 정도면 여고생 지갑이 구치인 것은 굉장히 소박해 보입니다.

그래도 트릭 한 가지는 꽤 괜찮습니다. 레이코가 사나에의 결혼 상대에게 살의를 품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 마에무라의 아내가 그녀를 살해에 이용한다는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인데, 꽤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과거 성폭행을 당한 탓에 정신 이상이 생긴 레이코의 상태를 전편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도 이 트릭에 설득력을 더해주고요.
또 레이코는 다중 인격자이며, 현재의 상냥한 레이코는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흉폭한 레이코에 대해 모든 것을 잊은 기억 상실 상태라는 결말에서, 사실 이 모든 것은 흉폭한 레이코의 '연기'일 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반전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상당히 서늘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이렇게 소모되는게 아깝다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중 인격이라는 설정은 분명 진부한 설정이고, 너무 극단적인 이상 심리 상태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긴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재생 마술의 여인" 

네기시 부부는 어렵게 아이를 입양했다. 아내를 먼저 돌려보낸 네기시 미네카즈에게 입양 센터의 책임자 나카오 아키요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과거의 범죄, 그리고 현재의 충격적인 진상과 뒤이어 반전으로 끝나는 전개도 무척 좋고요.

그러나 핵심 설정, 즉 '이미 사망한 피해자의 몸 속에 남아 있던 정액을 보관했다가 이를 7년 후에 체외 수정하여 아이를 만든다'는 걸 미네카즈가 믿는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20여년 전 이야기라고 해도 설득력이 부족해요. 이 정도 기술력이 있다면 정액의 DNA를 분석하여 범인을 찾아내는게 훨씬 빨랐을테니까요. 네기시 미네카즈가 공부만 좀 했더라면 별 일 없이 끝났을겁니다. 혹 공부와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작가의 큰 뜻이 담긴 것일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핵심 설정이 말이 안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아빠 안녕" 

"비밀"의 원전입니다. 그러나 단편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에요. 사고로 딸 가나에의 몸 속에 엄마 요코의 영혼이 들어오고, 곧바로 딸이 결혼하면서 끝나버리거든요. "비밀"에서처럼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부부, 부녀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그리지 않아서 영 볼게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여러모로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무리인데, "비밀"을 쓰기 전 편집자에게 건네준 요약본이 아닐까 싶네요.

"명탐정의 퇴장" 

본격 고전 퍼즐 미스터리를 패러디하는, "명탐정의 규칙"의 원전격 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패러디 외에는 별다른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패러디가 이어지더라도 결국 트릭과 진상이 존재하는, 그런 작품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여자도 호랑이도"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를 연상케하는 초단편으로 사형수가 문을 세 개 열 수 있는데, 한 개는 여자, 또 한 개는 굶주린 호랑이, 마지막 한 개는 뭔지 모른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어요. 결국 또 다른 한 개는 여자이자 굶주린 호랑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여자가 '여자의 문' 속 여자인지, '제 3의 문' 속 무언가였는지 밝혀지지 않는 것은 좀 답답했습니다. 이게 핵심이라서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동경하던 야마사키 유카리와 데이트한 직후, 정신이 든 '나'는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이유를 추리하는데...

'나'가 이 상황에 처한 이유를 처음부터 되짚어 하나씩 밝혀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야마사키 유카리의 완전 범죄 계획도 그럴듯하고요.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목격자 증언을 활용한다는 것과, 간단한 바꿔치기 트릭이 핵심인데 간단한만큼 설득력도 높습니다.

그러나 과학 수사 시대에 맞는 트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가 탄 것으로 추정된 택시의 지문 조사만 해도 경찰이 상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요. 택시에 대한 상세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와 유카리의 남자가 동일 인물이 아닌 것이 증명될 방법은 많고요. 

수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야 20년 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확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나'가 진상을 깨닫고, 자신이 수면제를 먹고 손이 묶인 채 목을 메달기 직전이라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탓입니다. 다른 장편이라면 도입부에 불과한 내용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느낌이거든요.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복수를 하던가 해야 하는데,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니까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 강한데, 이어지는 속편이나 후속 이야기가 없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20"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남편 데루히코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내 아사코는 그를 미행하는데...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히가시노 게이고스러웠던 작품입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 아사코가 남편 데루히코가 지닌 비밀이 무엇일까?를 파헤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평범한 대학생 등이 주인공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탠드 얼론 작품들과 유사하지요.

하지만 데루히코의 비밀이 너무 별게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어린 시절 유괴되어 살해된 니시노 하루미와 나비를 잡으러 가기로 하고 가지 않은 탓에 그녀가 죽었다는 자책을 안고 살아간다는건데, 이 사건과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진상 자체를 이미 시미즈 부부가 알고 있던지 오래되었다는 허무한 결말은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좀 더 충격적이고 설득력 있는 과거 사건이 드러났더라면 아주 괜찮았겠지만 이대로는 아닙니다. 하기사, 그랬더라면 여기 수록된 단편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죠.

2008/10/04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이 책은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테리 운영진여러분과 도서출판 두드림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전단편집 1편인 본격추리 1과 동일한 포맷과 기획의, 초기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기괴환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단편만 골라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부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인 "공기사나이"와 "악령" 2편이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는 것은 이 기획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모두를 소개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더라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붉은 방"과 "인간의자", 그리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3편은 에도가와 란포가 후기에서도 직접 언급하듯이 "여태까지 이야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며 빠져나가는" 류의 작품으로 설정이나 전개는 좋았지만 결말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이외의 작품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베스트는 기괴하고 음울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 걸작 "고구마벌레" 를 꼽고 싶네요. 전쟁 직후의 참혹한 상황과 인간의 잔인함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마음껏 펼쳐 묘사한 작품이거든요.
시대를 앞서간 비쥬얼적 감각을 보여주는 "백일몽"과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도 좋은 작품으로 광기어린 상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적나라한 것이 란포 월드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추리소설가 김래성씨의 단편집 "비밀의 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고요.
추리적 성향이 가득 묻어나는 "쌍생아", "메라 박사"와 "벌레"도 추리소설가로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메라박사"의 기발한 원격조종트릭은 다소 환상적인 성향에 기대고 있지만 "쌍생아"의 지문 트릭은 그럴듯 해서 정통 추리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좀 섬뜩하고 기괴한 이러한 작품군이 취향은 아니었으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에 걸맞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후기도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고요. 약간의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점 3점은 충분한 고전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고구마벌레"와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벌레"라는 기괴한 상상력의 극단을 달리는 4작품을 모아 "란포지옥"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모양인데 영화에 정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2022/10/02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권일영 : 별점 3점

미로관의 살인 - 6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가 환갑을 맞았다. 그는 자신의 저택 '미로관'에 제자 작가 4명과 평론가, 담당 편집자, 친한 추리소설 애호가를 초대했다.

미로관에 모인 그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요타로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개된 유언장에는 4명의 제자 중 한 명에게 거액의 유산을 줄 생각인데, 그 한 명은 앞으로 닷새 동안 미로관에서 그들이 각각 쓴 추리 소설을 함께 참석한 편집자, 평론가, 애호가들의 심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기는 했지만, 워낙 거액이 걸려있는 탓에 작가들과 심사 위원들은 요타로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작가 중 한 명인 스자키가 살해당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 모두는 미로관에 갇혔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사라진건 비서 이노였다. 작가 중 한 명인 기요무라는 이노가 범인이라며, 유언에 따른 추리 소설 창작 대결을 속행할 것을 주장하는데....

신본격의 탄생을 알렸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나름대로는 비교적 빠르게 국내에 소개되었던 편입니다. 1997년에 학산 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되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판은 더 빨랐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정보가 전달되고 소개되는게 많이 늦었던 탓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던 것 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인터넷 서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절판 이후 인기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지요. 덕분에 중고책 가격도 꽤나 올라가게 되었었고요. 이렇게 '1. 국내 출간 -> 2. 광속 절판 -> 3. 인터넷 등으로 유명세, 가치 상승 -> 4. 중고가 상승'이라는 과정을 거친 책들은 1990년대 후반에 꽤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점성술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지요.

그래도 저는 절판 직후 연이 닿아서, 2000년대 초반에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그리고 "인형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대체로 기억나고요. 그런데"미로관의 살인" 만큼은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 추리 소설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한 랭킹에서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빼어난 작품으로 "미로관의 살인"을 꼽고 있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도 생겼고,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도 느낄 겸 해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 오래 전에 읽지 않았던 작품이 맞더군요. 모든 내용이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당초에 왜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이야기는 '시마다'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작가의 "미로관의 살인"을 선물받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로관의 살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로관의 살인"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미로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시마다 기요시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로관의 주인이자 추리 소설계의 거장인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살하면서, 4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유산을 넘겨줄 생각으로 그들을 미로관에 불러 모았다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이들을 닷새 동안 미로관에 가두고 작품을 쓰게한 뒤, 같이 초대했던 평론가와 편집자,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심사 위원 역할을 맡길 셈이었다는 계획은 꽤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뛰어난 신진기예 작가들의 실력을 극한으로, 하지만 공정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공정함을 위해 현장에서 동일한 주제 - 무대는 미로관이며 피해자는 작가 본인으로 할 것 - 를 주기는 했지만, 작가 중 누구라도 자기가 쓰려고 했던 다른 작품에서의 획기적 트릭을 유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실제로 다이잉 메시지를 쓰려고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는 장소와 피해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트릭이니까요 - 아주 공정했다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이후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작업했던 작품에서처럼 살해당한다는 전개도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피해자들이 살해당한 현장 등 여러가지 단서들과 정보들 모두가 화자격인 우타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진상 역시 합리적이고요. 조금 상세히 설명드리자면,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스자키는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목 부분에는 소 머리 박제가 놓여 있었고요. 하지만 왜 머리를 아예 잘라 놓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박제 머리를 올려놓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현장을 만들었을까요?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는 범인이 현장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피로 덮기 위해서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고요. 

마찬가지로 하야시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까지 쳐 놓았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는데, 왜 범인을 쉽게 방 안으로 들여 보냈는지? 그리고 후나오카가 살해당한 방은 빗장까지 걸린 완벽한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어떻게 도주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은, 미로관의 각 방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하야시가 남겼던 다이잉 메시지, 후나오카가 죽기 직전 거울을 가리켰던 행위로 비밀 통로의 존재는 밝혀지고, 이로써 진범은 죽은 줄 알았던 미야가키 요타로였다는게 드러나고요. 그는 살인이 하고 싶어서 4명의 제자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기묘한 현장 조작과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 등이 함께 펼쳐져 추리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추리적으로, 그리고 반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드프로세서의 키보드 배치 문제, S가 하나 더 표기된 MINOSS 왕의 철자, 지속적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축물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며 시마다 기요시가 비밀 통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는 등 다이잉 메시지와 비밀 통로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주어지고 있어서 아주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비밀 통로'는 트릭으로서는 작품 내에서도 언급되듯 반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요무라를 살해한 트릭을 제외하고는 '미로관'이라는 말 그대로 미로를 이용한 트릭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기요무라 살해 트릭도 우타야마의 입을 통해 '통로에서의 위화감'이 계속 언급되고 있어서 특별히 대단한 추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아울러 기요무라가 가면이 아니라 평면도를 통해 이동해서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등 상세한 내용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과 또다른 진상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사메지마가 여자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이로써 스자키의 목을 잘랐던건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가 맞았다는게 판명됩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도 출혈을 일으킬만한 상처가 없어서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사메지마가 갑자기 생리가 터졌던게 출혈의 원인이라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녀와 미야가키의 오래된 인연,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이 등 사건의 동기 역시 모두 공정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자살을 위장해서 미야가키 요타로만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미야가키 요타로가 만들려고 했던 추리상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는건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만든 추리상을 받고 싶은 작가는 없을테니까요. 

액자 소설 형태를 취했던 이유도 알고보니 이 서술 트릭을 위해서였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고 있어서 완성도도 높습니다. 서술 트릭물답게 성별은 물론, 여성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끔 사메지마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알고보면 억지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이는 에필로그의 대화를 통해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작가의 말로 재치있게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의 무대인 미로관과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에 벌어지는 추리 소설 창작 대결 등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는 등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라나 신본격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가의 당시 대표작다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기본 이상은 해 주며 그리 길지 않다는 미덕도 크고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2/18

에르큘 포아로의 모험 (포와로 수사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천두병 : 별점 2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을 읽고 충동적으로 읽기 시작한 여사님의 포와로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공략" 에서 언급한 수많은 걸작들보다 이 책을 먼저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가입한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읽은 탓에 기억도 없고 리뷰도 남아있지 않아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문제는 "동서 추리 문고" 판본인데 원서 대비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등 여러 작품이 빠져있고, "요리사를 찾아라" 라는 다른 단편집 수록작이 실려 있으며, 뒤에는 장편 "구름 속의 죽음"이 합본되어 있는 엉망진창 구성이라는 겁니다.

하여튼,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느껴집니다. 첫 번째는 "연극" 이라는 요소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공략" 에서 언급한 걸작들처럼 작품 전체가 한 편의 연극으로 다의적인 내용을 품도록 쓰여진 건 아닙니다. 단지 작 중 벌어지는 사건을 한 편의 연극처럼 재구성하여 보여주거나, 사건 해결을 위한 연극을 꾸미는 식 정도로만 쓰입니다. 즉 작품 속 연극을 독자가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바라보는 정도에 그칩니다. 연극이라는 요소의 외연 확장 없이 단순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덕분에 작품들이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모로 초기작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공략"에서 언급한 대로, 홈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내용의 수준도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좀 유치합니다. "공략" 에서 말하는대로 트릭의 완성도가 낮은 탓도 크며, 전개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수상하게 묘사하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도 눈에 많이 뜨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여사님 작품 치고는 높은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고전의 향취가 강하며 짤막하게 읽기 쉽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고전 본격 추리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입문자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전승 무도회 사건" 

크론쇼 백작이 전승무도회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10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와 교제 중이던 여배우 코코도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전통적인 홈즈와 왓슨 구도로 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 단편입니다. 사건을 의뢰할 뿐 아니라 해결에 도움을 주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인 재프 경감은 레스트레이드 경감 포지션이라 할 수 있고요.

하지만 고전적인 설정에 비하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핵심 트릭이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탓입니다. 작중 묘사만으로는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된다고 할 수 없어요. 전개와 설정도 작위적입니다. 코코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아무리 프로 배우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하는건 위험 부담이 컸을텐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지요. 또 전개에서 자신만이 진상을 안다며 정보를 툭툭 던지는 포와로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홈즈가 연상되어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공략" 에서 설명되었던 여사님의 특기, 즉 "연극을 글로 옮긴" 작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 하나는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추리쇼가 연극이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작위적이기만 할 뿐, 완성도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본격적인 여사님 스타일로 진화하기 직전의 습작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데이빗 서쳇 주연의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작품입니다.

"머스든 저택의 비극"

시골 장원에서 사망한 노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공략" 에서 베스트로 꼽았던 작품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입 속에서 총을 발사하여 총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핵심 트릭부터가 기대 이하에요. 검시한 의사가 내출혈로 오진했을 뿐이라서, 의사가 실력만 있었어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안을 빼고 총을 쏜 후 의안을 다시 집어 넣은" 식으로 총상을 위장했던 "엉클 애브너" 작품 트릭 정도라면 모를까요.
전개도 블랙 대위의 우연한 방문이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지나친 연극조 분위기도 감점 요소입니다.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야말로 '연극'이 펼쳐지는데 지금 읽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유치했어요. 발표 당시에 읽었더라면 고딕 호러 느낌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영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을 "공략" 에서 높이 평가한 이유는 딱 한가지, 푸아로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살인자의 냉혹함을 부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 베스트로 꼽기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게다가 "공략" 에서 지적한 장점인 '뛰어난 단편소설만이 지니는, 최소한의 글자 수로 최대한의 충격을 선사하는 순발력의 미학' 을 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포와로의 수다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백만 달러 공채"

일종의 밀실이라 할 수 있는 항해 중인 여객선에서 백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도난당했다. 항구에서 완벽에 가까운 수색이 이루어지지만 발견되지 않았고, 채권은 여봐란 듯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밀실에서의 소실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트릭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채권의 실체는 아무도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채권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대담한 발상이 인상적인 덕분입니다.
일종의 연극 무대와 소품처럼 설명하는 묘사는 단편집 수록작 전체에 공통적인 연극적인 구성을 답습하고 있는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 만큼은 적절한 수준이에요. 여객선이라는 공간이 연극 무대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는 단점은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클럽의 킹" 

미모의 발레리나를 협박하던 매니저가 살해당했다. 발레리나는 도주 끝에 한 가정집에 구조되는데...

복잡한 인간 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공략" 에서 언급했던 여사님 작풍의 특징의 편린이 엿보입니다. 브릿지를 하는데 킹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솜씨도 그럴듯 하고요. 우리나라 버젼이라면, "도둑 잡기" 를 하는데 조커가 없었다 정도의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사건 자체가 범인과 공범들의 연극이라서, 이 쯤 되니 연극 사랑이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동기 및 설정도 작위적이기 짝이 없고요. 무엇보다도 이 정도 상황이라면 경찰이 충분히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 

당대 유명했을 투탄카멘의 저주를 추리물로 변주한 작품입니다.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우연한 사고를 발단으로 원격 조종 살인 등 연쇄 살인을 일으키면서 진짜 의도했던 살인을 그 사이에 감춘다는, "ABC 살인사건"의 원형같은 아이디어가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역시나 과장된 추리쇼 연극이 동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연극 없이도 범인을 잡아내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보석 도난 사건"

석유 부호의 아내가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를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작위적이고 유치합니다. 이유는 이 책 전체를 지배하는 연극조 구성 때문입니다. 불쌍한 프랑스 하녀의 자리비움 시연도 그렇고, 포와로가 카드에 대해 묻는 척 하며 지문을 입수하는 전개, 그리고 진범이 두 명의 유명한 보석 도둑으로 변장한 상태였다는 점 모두가 그러합니다. 현장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도 연극 무대 느낌이 물씬 나고요. 

이야기라도 설득력있게 묘사되었면 모르겠지만 트릭을 알아내는 장면부터 작위적이고,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 용의자도 특정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트릭마저도 유치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게다가 남편과 보험을 연결시켜 용의자를 흐리게 하는 묘사도 노골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야말로 초기작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상속권" 

고전 추리 걸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단편입니다. 한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 저주를 이용한 냉혹한 살인이라는 설정은 브라운 신부 단편이 떠오르고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가 살인자를 덮치는 장면은 셜록 홈즈 시리즈(그 중에서도 "얼룩끈")가 떠오르죠.

그런데 전설이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에서처럼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저주나 전설은 지금 시작되었으니까 가능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은 후대의 사람이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과거에 실제로 저주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도 마지막 포와로의 대사 하나로 평범 이하의 소품에서 작품의 가치가 확 뛰어오릅니다. 저주의 발단이 된 아내의 외도와 자식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의심이 후대에 구현되어 가문과 재산이 넘어갔다는 점에서는 살짝 오싹하기도 하네요. 의처증으로 아내와 아들을 죽인 미치광이에게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사를 찾아라"

홈즈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요리사가 사라진 사건이 상류층에게 있는 강력 사건보다 못할게 없다는 가정 주부의 의뢰에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실종된 요리사와 거액을 지닌 채 도주한 은행원을 연결시키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그런데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낡은 트렁크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며, 부인이 의뢰를 취소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는 겁니다.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면 구태여 의뢰를 취소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웨스턴 스타"

사라진 보석 "웨스턴 스타"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로 지나친 억측이 가득한 작위적인 작품이라는, 이 대부분의 단편집 수록작들이 갖춘 단점을 아주 정확하게 갖춘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이며, 핵심 트릭이 연극이라는 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네요. 

그나마 앞서 다른 작품에서 말씀드렸듯 연극적이라도 설득력있게만 전개되었다면 조금 괜찮았겠지만 이 작품 속 연극은 각본이 너무 부실합니다. '수수께끼의 중국인' 이라니! 변장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한마디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구름 속의 죽음" 

이전에 리뷰를 남겼던 작품이죠.

** 그리고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다른 "포와로 사건집" 수록작들 리뷰를 덧붙입니다. 별도로 구해 읽었습니다만,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베일을 쓴 여인", "사라진 광산", "초콜릿 상자" 는 아직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으면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납치된 총리" 

영국 총리가 실종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세계 정세를 소재로 꽤나 거대한 음모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바꿔치기 트릭이 등장하는데 지극히 억지스럽거든요. 조작이 너무 쉽다는 맹점도 있고요. 총리가 저격당하는 등의 사고가 있었는데 조치도 너무 대충인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냥꾼 별장의 모험" 

헤이스팅스가 현장에서 발로 뛰고, 포와로는 간단한 정보만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전형적인 홈즈, 왓슨 컴비 단편이 떠오릅니다. 설정부터가 "바스커빌 가의 개"와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완성도는 홈즈 시리즈에 미치지 못합니다. 진범이 원래 배우 출신으로, 1인 2역 연기를 했다는 것인데 경찰의 수준(더불어 헤이스팅스까지)이 의심되는 유치한 트릭에다가, 정점에 달한 연극 사랑도 너무한 수준입니다. 범인들이 구태여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고전 향취 물씬 풍기는 도입부와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데이븐하임 씨 실종 사건" 

저명한 은행가의 실종 사건 해결을 걸고 재프 경감과 내기를 한다는 이야기로, 재프 경감의 끈기있는 수사보다 자신의 추리가 더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눈 같은걸 쓰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게 더 낫다"는 말로 대표되는, 자존감이 극히 높은 자부심 덩어리 포와로 캐릭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전개도 일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인 "입술 비뚤어진 사나이" 와 별다르지 않은 진상은 대단치 않고, 트릭도 변장 트릭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크지만 전개하면서 드러내는 정보들을 통해 이를 설득력있게 꾸며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가장 완벽하게 실종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고요.

데이븐하임 씨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잘 알려져있는데 지나치게 변장을 맹신해서 설득력이 낮아진건 아쉽지만 가벼운 소품으로 읽을만은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유언장 사건" 

돌아가신 큰아버지와 거액의 유산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바이올렛 마쉬양의 의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내용과 다른, 뒤에 쓰여진 유언장을 찾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인데,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모호한 말에서 찾아내야 하는게 유언장이라는걸 짚어내는 첫 과정부터 애매하고, 유언장을 찾아내는 과정의 설득력도 지극히 낮은 탓입니다. 불에 가져다 대어야 보이는 잉크라는 단서는 아무데도 없다는 점에서는 추리가 아니라 초능력의 영역이 아닐까 싶고요. 게다가 헤이스팅스도 지적했지만, 둘만의 승부에 포와로가 끼어든 자체도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단점만 도드라지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이탈리아 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사냥꾼 별장의 모험" 과 같은 개념, 트릭의 작품입니다. 목격자가 범인으로 위증을 했다는게 진상이니까요.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변장보다는 그래도 공들인 연출이 들어가 있으며, 진상을 알게 만드는 "수플레" 라는 단서도 나름 공정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언급만 빼고 말이죠(커피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라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이 미리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이런 사실도 간과하고 엉터리 알리바이 공작을 꾸민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발표 시점에는 신고 전화의 출처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던걸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쁘지도 않지만 단점도 명확한 평작입니다.

2022/01/07

샘 호손 박사의 두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2점

샘 호손 박사의 두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GCBooks(GC북스)

안녕하세요. 2022년 첫 리뷰네요. 먼저 새해 인사 드립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노스몬트에서 일하는 시골 의사 샘 호손이 명탐정으로 등장해서, 온갖 불가능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 스타일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입니다. 1권에 이어 2권도 읽게 되었네요. 

수록작은 무려 열 다섯 편이며,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던가, 대도시 보스턴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전편보다는 별로입니다. 모두 일종의 밀실 상황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알고보니 밀실이 아닌 상황이 많은 탓입니다. 대략 네 작품은 명백하게 밀실이 아니었어요. 트릭도 무려 여섯 작품에서 변장이 사용되고 있고요. 그리고 절반이 넘는 무려 여덟 작품에서 불가능 범죄를 만들 이유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버리는 억지를 보여주는데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범행 동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설득력이 없어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몇몇 작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술한 이유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범인을 모두 알려주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입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무려 열 다섯 편의 리뷰를 상세하게 올리니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 다음부터는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추려서 올리는걸 고려해야 겠습니다.

"치유하는 천막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어린 아들을 치료사로 내세워 시골 환자들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기꾼 조지 예스터의 공연을 찾아갔다가 그와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자기 환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 뒤 나가려고 잠깐 뒤를 돈 순간, 조지 예스터가 가슴을 칼로 깊게 찔려 살해당했다. 천막 안에는 예스터와 샘 호손밖에 없었고, 잠깐 사이에 샘 호손의 눈을 피해 현장에서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다...

짧은 순간에 범인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 소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인데, 범인인 매지가 동상으로 변장하고 있었다는게 트릭이라서 굉장히 허무했습니다. 동상과 사람이 몸에 페인트 칠을 한 건 명백히 달랐을 텐데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정말 동상처럼 보이게끔 하는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동상이 그녀를 모델로 만든거라는 일종의 복선도 제공되기는 하고요. 때문에 짧은 시간, 제한된 조건에서라면 먹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지 혼자 거대한 동상을 천막 밖으로 잠깐 치워 놓았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등신대 금속 조각상이라면 무게가 아무리 적어도 백 킬로그램은 되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동상으로 변장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샘 호손(아니면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트릭을 사용했다? 말도 안됩니다. 샘 호손,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날 조지밖에 없는 천막으로 찾아와 다툴 거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걸 예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설령 다툼을 예상했더라도, 천막 안이 아니라 천막 밖에서 다퉜을 수도 있고요. 

즉, 살해하려면 그냥 천막에 숨어있다가 죽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동상의 존재를 은근슬쩍 묻고 지나가는 전개가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독자와의 두뇌 싸움을 펼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속여넘기려는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또 트릭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학 시절 사진을 훔쳐내기 위해 매클로플린 교수를 습격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예스터의 공연에 찾아가기로 한 건 매지가 샘 호손과 함께 있었을 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사진을 회수했으면 됩니다.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를 필요 없이요. 매지가 토비 예스터의 엄마였었다는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는 상황 말고는 건질게 없었던 졸작이었습니다.

"속삭이는 집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유령사냥꾼 태디어스 슬론과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비밀의 방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브라이어 가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둘은 한 밤중에 당장 나가라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뒤, 누군가 저택에 들어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나도 남자가 나오지 않아서 둘은 비밀문을 열어보는데, 남자는 죽어 있었고 방 안에는 다른 사람, 다른 출구도 없었다. 샘 호손은 피해자가 최소 15시간 전에 살해당했다는걸 알아챘는데, 수사를 이어가던 샘 호손의 차가 누군가가 설치한 조잡한 폭탄에 의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비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건, 그 방에 다른 비밀 출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출구만 찾으면 될 일이라, 이걸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도 너무 뻔합니다. 상황을 아는건 초반에 샘의 치료를 받는 빌리밖에는 없으니까요. 빌리는 어린 시절 유령 집에서 자주 놀았으며 치료를 받을 때 샘과 슬론이 그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시체가 들고 있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있었는데 빌리가 샘 호손의 치료를 받은 이유는 쇠스랑에 발을 관통당했다는 것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상한 불가능 상황으로 만드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방이었다면, 그 안에 시체를 숨겨놓고 가만히 있었으면 될 일이잖아요? 구태여 샘과 슬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사건을 키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건을 기획한 빌리의 모친이 사후경직을 통한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하다는걸 몰라서 벌인 것이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은 아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나마 샘 호손의 애차 피어스 랜스 어바웃이 7년만에 불에 타 버리고, 새로운 차를 구입한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보스턴 공원의 수수께끼" 

샘 호손이 의학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보스턴애 도착한 날, 보스턴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쿠라레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되었으며, 이전에도 3명이나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했었다. 하지만 공원은 숨어서 총을 쏘거나, 대롱을 부는게 불가능했다. 심지어 세 번째 사건 때부터는 공원에 형사가 가득했고, 네 번째 피해자는 죽을 때 까지 경찰이 예의 주시하며 미행행하기까지 했었다. 범인은 어떻게 독이 묻은 화살을 피해자들에게 쏠 수 있었을까?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에 의해 사건이 벌어진다는 일종의 '투명 인간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범인이 기차 차장이나 레스토랑 웨이터 등이었다는 류의 트릭으로 이 작품에서는 호텔 도어맨이 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호텔 도어맨이라 눈에 뜨이지 않았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건 마음에 듭니다. 핵심은 샘 호손이 쿠라레에 대해 조사하여 밝혀낸대로, 공원 안이 아니라 공원 입구, 즉 호텔 근처에서 화살에 맞았다는 겁니다. 쿠라레는 즉효성이지만 맞고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서 피해자들은 공원 안에 들어가서 이동하다가 죽었던 거지요. 도어맨은 호루라기를 부는게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라서 호루라기를 부는 척 하고 불특정 다수인 공원 이용자에게 독화살을 쏘았고요. 

노스몬트가 이닌 대도시 보스턴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것도 처음에는 그냥 재미 요소라 생각했는데, 트릭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큰 공원, 그리고 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큰 호텔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시골 소도시 노스몬트보다는 큰, 보스턴같은 대도시를 무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범인의 동기가 애매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을 무대로 한 작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된 건 작위적이기는 했습니다. 샘 호손이 스스로 미끼기 되는 장면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잡화점의 수수께끼" 

노스몬트에 미모의 중년 여성 매기 머피가 이사와서 맥스 하크너 잡화점 옆에 부동산을 열었다. 그녀는 자주 잡화점에서 여성 인권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에 마을 남자들이 싫어했지만, 워낙 미인이라 내색은 크게 하지 않았다. 존 클레이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날, 맥스의 잡화점에서 일했던 프랭크가 샘 호손을 찾아와 자신이 맥스의 아내 어밀리아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털어 놓았고, 그 직후 맥스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잡화점 안에는 시체와 함께 기절했다는 매기 머피밖에 없었는데, 잡화점 문과 창문은 안쪽에서 모두 잠겨 있었다...

밀실물처럼 소개되지만 환풍기 날개 사이로 총을 집어넣어 쏘았다는게 진상이라서, 이게 밀실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현장에서 발견된 맥스의 총은 더블 배럴이라 환풍기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없었지만, 밖에 있었던 존 클레인 노인의 총은 싱글 배럴이라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있었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니고요. 부실한 현장 조사에 더해 흉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생겨난 실수일 뿐입니다.존 클레이 노인의 범행 동기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범인이 살인 때문에 놀라서 죽었다는 등 내용도 전반적으로 억지스럽습니다. 

복잡하고 억지스러운 장치 트릭보다야 현실적인 발상입니다만,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법원 가고일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조스트로 살인 사건의 배심원을 맡게 되었다. 피고 애런 플레이버는 조스트로의 고용인으로, 그는 실수로 총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조스트로 부인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베일리 판사가 마시던 물 잔 속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당했다. 판사가 죽기 전 '가고일'이라는 말을 남겨서 범원 가고일 상을 조사해보니, 베일리 판사가 메이틀랜드 판사와 함께 밀주 밀매점에 투자했다는 문서가 들어있었다. 샘 호손은 이런 저런 단서들을 확인한 뒤, 사건 현장을 재현해서 추리쇼를 펼쳐보이는데...

애런 플레이버가 자살하려고 조스트로 부인에게서 건네받은 청산가리를 잔에 부어 놓았는데, 판사가 착각해서 먹고 죽은 거라는 진상부터가 말도 안됩니다.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직접 입에 털어 넣었어야죠. 

독약을 애런이 손에 넣은 방법에 대한 설명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재판 중에 조스트로 부인이 껌을 계속 씹고 있었다는 증언을 통해, 그녀가 껌으로 독약병을 증인석에 붙여 놓았다고 추리하는건 일견 그럴싸했지만 이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추리에요. 아무리 20세기 초반이라고 해도, 재판을 받는 피고가 흉기를 손쉽게 손에 넣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했을리가 없잖아요. 가능했다해도 총이나 칼을 손에 넣는게 나았을거에요. 

억지스러운 설정, 부실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최악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수록장 중 최악입니다.

"청교도 풍차의 수수께끼" 

'청교도 풍차'라 불리우는 네덜란드 풍차가 보존되어 있던 부지에 청교도 기념 병원이 신설되었다. 노스몬트 최초의 흑인 의사 링컨의 근무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오고 있었던 중, 부지를 병원에 기증했던 랜디 콜린스가 풍차에서 몸에 불이 붙어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사건 당시 "루시퍼"라는 말을 겨우 남겼었고, 의식을 회복하여 풍차 안에 악마의 불덩이가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샘 호손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아이작 밴 도런이 풍차 안으로 걸어 들어간 뒤, 풍차와 함께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링컨 존스는 검시 결과 밴 도런의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첫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자 랜디 콜린스가 풍선을 이용하여 풍차 날개 4개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풍선이 터져 화상을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성냥을 부르는 명칭으로,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고 악마 어쩌구로 말을 바꾼거지요. 

두 번째 사건은 랜디에게 휘발유를 팔았던 주유소 주인 밴 도런이 진상을 눈치채고 협박해서, 랜디가 그에게 풍차 윗쪽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알려주었던 겁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확인해보라면서요. 그리고 이 말을 따른 밴 도런은 풍차 윗 쪽으로 날려보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버린 탓에 처참하게 죽었고요. 다리는 위에서 떨어질 때 부러졌던 것이었지요. 

랜디의 동기는 인종차별을 하기 위했던 것으로, 인종차별이 뒤의 범죄들과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매끄럽습니다. 사회파 느낌도 살짝 나서 괜찮았고요. 첫 번째 사건은 일종의 실수라 특별할 건 없지만, 두 번째 사건에 사용된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부분들은 문제가 많아요. 제일 먼저, 풍차를 십자가 형태로 불태우기 위해 풍선을 이용하려 했다는 발상이 억지스러웠어요. 이게 사건의 핵심인 탓에 이야기 전개도 다소 헐거운 편입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풍차 윗쪽을 확인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손전등도 있는 시대인데다가, 이렇게 한다고 불이 그렇게 쉽게 붙었을지도 의문이며, 설령 불이 붙었다 해도 밴 도런이 죽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아울러 랜디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걸 보다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건 공정해 보이지 않았어요. 단서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티가 물씬 나서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은 나쁘지 않았는데 관련된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낮아서 감점합니다. 체스터튼 소설같은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는데,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강빵 하우스보트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근처 체스터 호수는 마을 주민들의 여름 휴양지였다. 샘 호손은 여름 휴가를 왔던 미란다 그레이와 사랑에 빠졌다. 미란다의 삼촌인 제이슨, 기티 그레이 부부와 그 이웃 별장의 레이, 그레텔 하우저 부부와도 친해졌는데 어느날, 샘과 미란다 눈 앞에서 하우저 부부의 화려한 하우스 보트를 타고 놀던 두 부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메리 셀레스트호 괴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만, 특별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보트에는 레이 하우저와 키티 그레이만 타고 있었고, 그레텔 하우저와 제이슨 그레이는 이미 살해당해서 별장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레이와 키티는 보트를 출발시킨 후, 별장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 나왔고, 보트는 폭파시키려고 다이너마이트를 셋팅했는데 그게 불발했던거지요. 보트를 조사해서 다이너마이트를 찾아내면, 배 주인인 레이 하우저가 범인이라는게 뻔하니 후더닛 물로 볼 수도 없고요. 

설령 레이 하우저의 계획대로 폭파되었더라도 문제에요. 그는 배가 폭파된 후 그레텔과 제이슨의 시체를 떠내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익사하지 않았다는건 부검으로 밝혀졌을테니까요. 함께 배를 타고 있던 네 명 중 두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익사가 아니라면, 다른 두 명이 범인이라는건 당연하잖아요? 

아울러 이렇게 무거운 강력 범죄 이야기로 끌고가지 않고, 두 부부가 장난으로 이 일을 벌였다는 일상계 물이었다 한 들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샘 호손과 미란다 눈에 보이지 않게 배 반대쪽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간게 전부인 탓입니다. 즉,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 범죄가 아니었어요. 차라리 장난에 가깝죠.

부실 수사와 부실한 계획이 합쳐진 망작입니다. 샘 호손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는게 독특했을 뿐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분홍색 우체국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간호사 에이프릴과 노스몬트 우체국을 방문했다. 개장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장 베라는 우체국을 분홍색으로 칠해놓았다. 분홍색 페인트가 값이 쌌던 덕분으로, 한 쪽 벽에 마저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흄 백스터를 불렀다. 흄이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을 때, 은행장 앤슨 워터스가 주식 대공황을 알리며 1만 달러어치 무기명 채권의 특별 배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봉투가 사라지고 마는데....

샘 호손이 미란다와 파국을 맞지만, 렌즈 보안관이 베라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애정 전선이 크게 움직이는 에피소드.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어요. 샘 호손이 봉투 행방에 대해 우체국 현장에서 펼쳐보이는 여러가지 추리들도 그럴싸했지만,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흄 백스터가 주워서, 벽에 붙인채 페인트 칠을 해 버렸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거든요. 페인트가 마르면 바로 들통날테니 그날 밤 봉투를 회수하러 올 것이라는 마무리 추리까지 깔끔했고요.

물론 당장 봉투를 찾지 못했더라도,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렌즈 보안관의 무능이 드러나기는 합니다. 제일 수상한건 흄 백스터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 수준이 워낙에 별로라 이 정도면 충분히 선녀급이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팔각형 방의 수수께끼" 

렌즈 보안관은 베라와 에덴 하우스의 팔각형 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팔각형 방은 거대한 서재로, 네 귀퉁이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거울이 달린 수납장을 설치하여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방문이 열리지 않아서 잠긴 문을 부수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눈에 뜨이는 건 문 손잡이에 묶여 있던 끈 한 줄이었다. 끈으로 빗장을 잠글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끈은 너무 짧았고, 방문은 끈 한 올 통과할 틈이 없었다.

문 손잡이에 끈이 묶여 있었으니 이를 밀실물로 보기는 애매합니다. 이 끈으로 밀실을 만든게 당연하니까요. 진상도 예상 그대로입니다. 범인은 문 바로 맞은편 창문 걸쇠에 끈을 묶고, 이걸 빗장에도 묶은 뒤 창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문을 부술 때 끈이 당겨져 창문 걸쇠가 잠긴 것이지요. 

이렇게해서 창문이 잘 잠겼을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끈 조각이 남은 탓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대로 잠긴걸 확인하지 않아서 밀실로 착각했을 뿐, 실제로는 밀실이 아니었다는 문제도 크고요.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만드느니, 문을 열어두고 한 패에게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꾸미는게 상식적입니다.

물론 범인인 조시의 아내 엘렌이 창문을 부수는걸 반대했던 장면같은 복선이라던가, 언제나 이야기를 듣는 화자가 아니라 범인이었던 엘렌이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거라는 나름의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그녀가 남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모든걸 잃었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부실했고, 상황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집시 야영지의 수수께끼" 

청교도 기념 병원을 찾은 샘 호손이 병원 경영의 전권을 맡은 에이블 프레이터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 집시 에도 몬타나가 들어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 뒤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집시들은 무리의 지도자 루돌프의 저주 탓이라 여겼지만, 부검 결과 몬타나는 심장에 총을 맞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러나 몬타나의 가슴과 등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렌즈 보안관은 저주의 원인이 된 몬타나의 부인 테레즈를 구금하려 했지만 집시 스티브의 공격으로 실패했고, 철저한 수사를 위해 집시 무리를 하룻밤 동안 감시했는데 집시들은 스무 대의 마차, 말과 함께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불가능 범죄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범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슴과 등에 상처가 없었다면 누군가 가슴을 연 뒤 심장에 총을 쏜 것이고, 부검 자리에는 샘 호손과 에이블 프레이터밖에 없었으니 범인은 에이블인게 당연하지요. 집시들이 머물던 해스킨스 농장의 상속 문제라는 동기도 이야기에서 거의 곧바로 드러나고요. 애초에 왜 가슴을 열기 전에 총을 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구태여 기묘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집시들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린 두 번째 트릭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말과 마차모양 판지를 세워놓아 눈을 속인 뒤, 판지를 태우고 사람들만 몰래 빠져나갔다는건데, 보안관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속아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저 판지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을지 의문인 등 세세한 점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주업자 자동차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밀주업자 래리 스피어스의 동료들에게 납치되었다. 총에 맞았다는 래리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래리는 중상이 아니었다. 동료 중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며 아픈 척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래리는 토니 배럴과의 거래 완료 때까지는 샘 호손을 풀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났을 때, 실수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차에 탔던 토니 배럴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래리 스피어스가 다친 척 위장해서 토니 배럴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뒤 살해했던 겁니다. 집 밖으로 나가 차에 탔던 건 래리가 매수한 토니의 부하 스쿠프였고요. 스쿠프는 래리가 뚱보로 변장할 때 썼던 완충재를 몸에 두르고, 수염을 붙인 뒤 웅얼거리며 토니인 척 나가서 차에 탔습니다. 그리고 변장을 풀고 바로 운전석으로 넘어가 차를 몰고 떠나려고 했던 거지요. 잘 됐더라면 완전 범죄가 됐을텐데, 하필이면 총격전이 벌어진 탓에 스쿠프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불가해한 실종 사건이 생겨났던 겁니다. 이렇게 불가능 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래리가 술통 값을 낼 수 없는데 술통이 필요했다는 동기도 설득력 있었고, 토니 배럴의 차가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던가 (방탄을 위해서), 스쿠프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등의 복선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갱들과 목숨을 걸고 담판을 지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샘 호손의 모습도 독특했고요.

이렇게 이야기 완성도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트릭의 설득력이지요. 과연 저 정도의 변장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속아넘어갔을까?는 잘 설명되지 못하거든요. 이번 권은 변장을 전가의 보도로 쓰고 있는 트릭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깡통 거위의 수수께끼" 

잠겨져 있던 비행기 조종석에 있던 조종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핵심은 조종석 안에 범인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샘 호손의 눈을 피해 숨어있다가 몰래 문 밖으로 나갔던 거지요. 밀실이라고 볼 수는 없는 셈입니다. 왜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되지 못하고요. 

그래도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비행기 곡예단 동료를 자기처럼 변장시켜 공연을 했다는 트릭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평작 수준은 될 듯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꾼 오두막의 수수께끼" 

샘의 아버지 해리 호손이 아내와 함께 노스몬트에 방문했다. 그는 편지 왕래로 친해진 대지주 라이더 색스턴으로부터 사냥 초대를 받고, 샘도 함께 사냥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슴 사냥을 하던 중 혼자 사냥꾼 오두막에 있었던 라이더 색스턴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두막으로 들어온 발자욱은 색스턴 것 뿐이었고, 흉기는 저택 안의 무기 컬렉션에 있던 곤봉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건 오래된 깃털 뿐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발자욱없이 곤봉을 가지고 들어와 색스턴을 죽였을까?

범인은 사냥꾼 오두막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한 호스 자국 위로 이동하여 발자욱을 남기지 않았던 겁니다. 호스의 폭은 3cm에 불과했지만, 이 위를 '자전거'로 지나갔던 거지요. 상황을 잘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색스턴이 오두막으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호스를 연결했다가 떼는 장면이 상당히 오래 묘사되고 있어서, 작가가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잘 전해주고요. 자전거를 닭장 안에 두었었기 때문에 현장에 닭털을 흘렸고, 이 탓에 트릭이 들통나는 과정도 괜찮았어요.

왜 불가능 상황을 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건 아쉽지만, 트릭만큼은 정말 괜찮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건초 더미 속 시체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수의사 밥 위더스가 농부 펠릭스 베넷의 아내 세라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한 후, 펠릭스의 권유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가석방 중 펠릭스의 신세를 지다가 사고를 쳐서 펠릭스가 다시 교도소로 돌려 보냈던 로슨이 만기 출소했다며 나타나 펠릭스를 협박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곰 사냥을 위해 렌즈 보안관을 비롯한 여러 명이 농장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펠릭스가 샘 호손에게 전화 한 통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중에 그는 방수포로 덮은 건초 더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보안관은 펠릭스가 건초 더미를 쌓고 방수포를 치는걸 자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방수포 안에 시체를 넣는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데...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해결했다는 사건. 범인은 펠릭스 농장의 소작농 핼 패리였습니다. 그는 펠릭스의 상징과도 같은 큰 밀짚모자를 쓰고 건초 더미 뒤에 있던 펠릭스를 죽인 뒤, 자기가 펠릭스인 척 시체를 건초 더미에 넣고 그 위에 방수포를 쳤던 겁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변장 트릭이 사용되어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만 독립적으로 놓고 보면 괜찮은 본격 추리물인건 분명합니다. 일단 다른 작품들보다는 변장의 설득력이 높거든요. 밀짚 모자에 대해서, 그리고 펠릭스와 핼 패리의 키가 비슷했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이지요. 유력한 용의자 로슨의 콧수염에 대한 언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몰래 시체를 숲에다 가져다 버릴 생각이었는데, 곰이 나타나는 바람에 기묘한 불가능 범죄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도 합리적이었어요.

곰이 시체를 뒤지는 전개는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노스몬트라는 시골 마을이라는 무대 특성 상 그렇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의 등대 수수께끼"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산타의 등대'를 우연히 방문하여 해리와 리사 남매와 친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 등대 꼭대기 전망대에 있던 해리가 칼에 찔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침 리사와 함께 있던 샘 호손 바로 앞에 시체가 떨어졌는데, 둘을 지나치지 않고 범인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샘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수감 중인 남매의 아버지 로널드를 찾아갔다. 로널드는 등대에서 밀주 밀수를 했으며, 해산물 레스토랑 주인인 폴 레인과 거래를 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샘 호손은 처음에는 산타의 등대를 관광차 방문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었다고 추리했습니다. 난쟁이 킬러가 아이로 변장했다면서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헛점이 많은 추리였어요. 가족 요금이 더 싼데 아이들만 등대에 들여보낸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부터가 근거로는 터무니없이 빈약했으니까요. 아이들끼리 친하고 잘 노는데다가, 아이들을 돌봐줄 해리와 리사가 있는데 부모가 뭐하러 함께 들어간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이들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시설인데 아이들이 몇 명 들어가서 몇 명 나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수십명도 아니고, 고작 4~5명을 확인하지 못했을리가 없잖아요. 이 정도면 아이들 이름까지 외울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리사가 범인으로, 그녀는 오빠를 죽인 뒤 등대 전망대에 낚싯줄로 묶어 고정했던 거라는 진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난쟁이 킬러보다야 나을 뿐,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딱히 좋아보이는 트릭도 아닐 뿐더러, 샘 호손이 있을 때 시체를 떨어트린건 납득하기 어려웠거든요. 자기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한 들, 살인범이 등대로 들어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딱히 유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오빠를 일어서 떨어트리고 사고로 위장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게 오빠라서 죽였다는 동기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지만,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2025/10/04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멤버 중 한 명이 불가능 범죄를 저지르면, 나머지가 그 트릭을 추리한다는 설정의 단편 연작집입니다. 예전에 이 시리즈 두 번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는데, 13년 만에 후속권을 읽었네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반 두젠 교수를 흉내 낸 반도젠, 제이슨 마스크를 쓴 aXe, 다스베이더 마스크의 두광인, 늑대거북을 대신하는 쟌갸, 흐릿한 형체만 보이는 O44APD까지 다섯 명이 모여 게임을 진행합니다. 이 가운데 aXe, 두광인, 반도젠이 차례로 사건을 일으키고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멤버들의 추리 대결을 위한 퀴즈를 만들어내려고 억지로 짜낸 트릭들이 대부분인 탓입니다. 때문에 실제로 가능할 만한 건 거의 없습니다. 도어 로커가 걸린 완전 밀실에서 피해자가 뒤통수를 맞고 죽었는데, aXe에게는 사건 당시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는 첫 번째 사건 정도만 퍼즐적인 재미가 있었을 뿐입니다.
정답은 방 안에 둔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해 문을 잠그고, 피해자를 책 더미 위에 올려놓은 뒤 멀리서 전화를 걸어 억지로 깨워서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게 만든 것이었지요.

그런데 ‘와, 이런 아이디어도 있구나’ 싶은 정도이지 현실적으로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피해자가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범인조차도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누군지는 상관없이 아무에게나 시도할 생각이었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동기가 없어져 버리니까요. 무차별 살인과 다를게 없어요.

두광인이 저지른 사건부터는 아예 엉망입니다. 두광인은 자신의 범행에 ‘투명 망토’를 썼다고 주장하거든요.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진짜 트릭은 끝내 공개되지도 않고요. 트릭을 끝까지 숨긴 것보다 더 나쁜 추리 소설이 있을까요? 

반도젠이 벌인 마지막 사건에서는 이 모든 게 반도젠이 짜낸 연극이었다는 반전이 등장합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가짜였고, 반도젠이 각본을 짜서 연기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중간중간 단서가 있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aXe가 차를 몰던 장면에서 반도젠과 두광인이 동시에 없었다든가, 가끔 캐릭터들이 다른 말투를 보였다든가 하는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성 부족한 억지 반전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목적도 불분명하고, 동기도 별다른게 없는 탓입니다. 유명해진 밀실살인게임을 따라했다는게 전부거든요. 뭔가 의미가 있음직한 마지막 글을 남기긴 했지만 뻘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 퍼즐 게임만 남기고 추리 소설의 다른 재미는 거의 내다버린 수준이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그나마의 트릭도 완전치가 않고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0/07/05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이방의 기사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기수 중 한 명인 시마다 소지의 장편으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시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첫 작품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발표가 늦어졌을 뿐, 실질적인 데뷰작이라고 하네요.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가장 긴 첫 번째 부분은 화자인 "나" 가 기억상실 상태로 발견된 뒤, 료코라는 여성과 우연찮게 동거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나"가 운전면허증을 토대로 과거를 알아가는 내용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친구가 된 점성술사 미타라이 기요시가 "나"에 관련된 사건을 추리하여 진상을 알려줍니다. 기억을 잃기 전, 아내와 아이가 죽은 사건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것으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이 과거조차 조작된 것이라는게 핵심 트릭이고요. 일종의 원격 살인을 위한 거창한 장치였던 것이지요.
문제는 핵심 트릭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전혀 기대에 값하지 못했어요. 우선, 찾는 가족도 없고, 기억도 완벽하게 없으며, 당분간 기억이 돌아올 일도 없어야 한다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기억상실 환자를 찾는다는 것부터 문제이니까요. 이런 환자를 운 좋게 찾았다 치더라도, 그를 마음먹은대로 조종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설령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아서 사건이 원하는대로 흘러갔다고 칩시다. 그래도 경찰에 체포되면 바로 끝입니다. 사건을 은폐하는건 불가능한 탓입니다. 
이외에도 곳곳에 헛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범인 슈지가 과연 작중 묘사되는 것 만큼의 천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세부적인 디테일도 억지가 많습니다. 자기 얼굴을 보기를 아무리 싫어해도 그렇지, 자신의 얼굴을 착각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필적을 쉽게 위조할 수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정도 부족합니다. 산탄총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물론 신본격 작가의 데뷰작답게 추리의 과정 자체는 상당히 괜찮기는 합니다. 정말로 사소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잡는다는 구성도 좋고요. 
미타라이의 캐릭터 역시 가장 좋았던 시절, 즉 "점성술 살인사건" 시절의 가난뱅이 점성술사이기는 한데, 음악에 몰두하여 대단한 기타 솜씨와 오토바이 운전 솜씨를 뽐내는 등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위적이기는 하나 중반의 일기부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는 확실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미타라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컴비 이시오카의 첫 등장 작품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줍니다. 시마다 소지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일본 본격 - 신본격 추리소설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덧붙이자면, 미타라이의 추리는 마지막 순간이 닥치기 훨씬 전에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절박한 친구 사정을 모른척하다가 누가 죽어나갈 정도가 되니까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이시오카도 이런 비정한 친구보다는 보다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