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2/02/05

저녁싸리 정사 - 렌조 미키히코 / 정미영 : 별점 3점

저녁싸리 정사 - 6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시공사

<회귀천 정사>에 이어지는 꽃을 주제로 한 연작 미스터리. 메이지 - 쇼와 시대를 무대로 한 서정적인 꽃 미스터리 단편 세편에 가벼운 현대물 유머 미스터리인 <양지바른과 사건부> 시리즈 3편이 실려 있습니다.

꽃 미스터리 시리즈는 꽃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표면적인 사건과는 다른 진상이 숨어있다는 점에서 전작과 동일하나 전작에 비하면 좀 처지는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작은 <도라지꽃 피는 집>과 <회귀천 정사>라는 투톱 에이스가 확실히 중심을 잡아준 반면 이번에는 <국화의 먼지> 한편만이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죠. <양지바른과 사건부>는 유쾌하고 즐겁기는 하나 추리적인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별점은 3점. 전체적으로 평범하지만 <국화의 먼지> 한편이 압도적이라 점수를 많이 끌어올렸습니다. 이 작품 한편만큼은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붉은 꽃 글자>
"내 몸 안에 동백꽃이 떨어진 거야.... 떨어진 채 빨간, 새빨간 피 같은 색으로 피어 있어...."

자신의 친구와의 가슴아픈 사랑 후 죽어간 여동생을 위한 복수극... 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철저한 계획살인이었다는 의외의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진짜 동기가 뒤에 숨어 있는 구조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친상간의 감정마저 보이는 캐릭터들을 꽃잎으로 대표되는 탐미적인 묘사로 넘칠듯이 그려낸 전개가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진짜 악당인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 탐미적으로 묘사되다보니 심리묘사가 너무 아름다운 쪽에만 치우친 느낌이 드는건 아쉽네요. 반전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악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반전이 더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또 복수를 위해서 동기 - 미즈사와와 미쓰의 관계 - 를 만드는 과정이 과연 생각대로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 좀 미심쩍기는 하고요.
그래도 "정사" 시리즈 이름값에는 준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녁싸리 정사>
유명한 정사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의 일기를 토대로 어린시절 우연히 정사사건을 목격했던 주인공이 감추어졌었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 실제로 세간에 아름답게 알려진 사랑 이야기와는 다른 진상이 있었다는 점과 그 와중에 몇몇 본격물스러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회귀천 정사>의 판박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회귀천 정사>에 비하면 확실히 처집니다. 정사사건에 감추어진 진상, 즉 몰락한 사족의 후예인 신노스케가 가진 사회주의자로서의 야망과 그를 이용하여 되려 사회주의자를 말살하려 한 다지마의 계획은 정사사건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지며 화자의 어린 시절 짤막한 기억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논리의 비약이 심해보였거든요.
무엇보다도 신노스케가 다카미 내무대신 살인을 저지른다면 다지마가 구태여 유우와 함께 알리바이 트릭을 만들지 않더라도 진신샤를 타도하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리라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 생각되네요. 실제로 진신샤의 암살이라고 공표된 후에도 신노스케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다지마 유우의 장지문을 이용한 그림자 트릭을 신노스케가 고심끝에 알아내어 살인에 이용한다는 발상도 억지스러웠고 신노스케의 이름과 싸리꽃의 발음이 같다는 점을 이용한 증언 역시 일본어 말장난에 가까와서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은 등 트릭의 사용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정적인 묘사야 명불허전이지만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국화의 먼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날을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 그날 자살한 전 육군 기병연대 장교의 죽음에 우연히 관련된 "나"가 사건에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인데 걸작입니다.
짤막하지만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묘사와 "나"의 일기가 교차되어 보여지는 전개도 좋지만 적절한 "원격조종" 트릭이 선보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가치 역시 높거든요. 무엇보다도 막부가 몰락하고 막부를 따르던 무사가문의 후예들과 천황을 추종하는 군인이라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등 20세기 초엽이라는 시대배경에 딱 맞는 요소들을 이용하여 제대로 그려낸 역사 추리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가 아니면 그려내기 힘든 트릭이라는 점에서 더 가치가 있어보여요.
별점은 5점. 이 단편만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양지바른과 사건부 제 1화 하얀 밀고>
다이토 신문사의 잔반처리과인 신문 자료부 제 2과는 양지바른과라고 다른 과 사람들에게 놀림받는 신세. 그러한 양지바른과에 다이토 신문사 기자 살인사건의 범인은 신문사 직원 "시즈타"라고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여사원 아이코가 그 이야기를 사회부에 전한 얼마 뒤, 같은 목소리로 269명에 대해 추가로 밀고하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상상도 못한 현대를 무대로 한 코믹 미스터리 연작으로 결함있는 사원들만 모여있는 독특한 집단인 "양지바른과"의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상당히 유쾌한 작품이에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개성강한 캐릭터들이었습니다. 너무 만화같지않나 싶을 정도로 과장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 바닥 고전인 마크 트웨인 작품도 그러하니 감안해야죠. 덧붙여 작가의 묘사력은 감출 수가 없는지 "범인의 목소리가 하얗다"라는 아이코의 느낌에서 하얀 밀고, 즉 고백이라는 말을 이끌어내는 단어의 연금술도 빛나는 부분이었고 아이코와 타로의 밀고당기는 사랑 이야기도 귀여웠어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합니다. 일단 협박전화를 건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없고 이러한 협박전화를 걸려면 결국 범인이 신문사 모든 직원을 알고있는 신문사 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뿐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못하거든요. 또 사건의 발단이 된 아이코가 이름을 잘못 알아듣는 것도 역시나 현실성이 없어 보였고요. 또 과정이야 어쨌건 범인을 체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시마다 과장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 자존심을 그다지 건드린 것 같지도 않은데....

하지만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참 대단해요. 이러한 유머 미스터리를 자기 식으로 쓸 수 있다니... 이게 재능이라는 것이겠죠.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에 만족스러웠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 2화 네잎 클로버>
1화의 5개월 뒤, 양지바른과 멤버인 오가와가 학예부로 이동하는 송별회에서 다시 타로와 재회한 아이코. 재회의 장소는 타로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좁디좁은 라면집이었다...

오가와가 인터뷰를 맡은 인기 혼성 듀엣 라라와 루루의 라라가 살해된 사건을 다룬 단편. 라라가 쌍동이였나?라는 주간지 가쉽이 터진 뒤에 일어난 사건이라 사라진 라라의 쌍동이가 용의자로 급부상하는 내용인데 루루의 독특한(?) 취미 등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라라의 성형수술 등 불필요한 이야기들도 너무 많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그닥... 이었어요.

그나마 전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아이코와 타로의 밀땅과 아이코의 복잡미묘하지만 순진하고 귀여운 심리묘사가 더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유머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미스터리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였달까요.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별점은 2점입니다.

<제 3화 새는 발소리도 없이>
"증발 중인 부인이 돌아왔다 뭐 그런거요"
"그 여잔 앞으로도 당분간 기체로 지낼 걸

로쿠스케에게 정체불명의 여자가 접근하여 수배중인 테러범 "철뇌조"의 거처에 대해 밀고하게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 여기에 더해 로쿠스케의 가출한 아내 이야기, 아이코와 타로의 여전한 사랑이야기가 곁가지로 펼쳐집니다.
앞선 두편과는 달리 폭탄테러범 등이 등장하기는 하나 장난스러운 밀고전화를 중심으로한 일상계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는 일상계 미스터리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머와 재기발랄한 대사,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죠. 전작들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력범죄가 등장해서 조화가 깨진 느낌도 드는데 이 에피소드는 역시나 일상계 느낌이 아주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딱 한가지 유일한 단점은 추리적으로 너무나 별볼일 없다는 것이죠. 예상가능한 이야기였을 뿐더러 애당초 사건성도 별로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유쾌한 캐릭터들의 소동은 읽는 내내 즐거웠고 완벽한 해피엔딩 역시 귀여운 작품에 걸맞는 마무리였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거장이 그린 소품으로는 아주 적절했어요. 귀여운 이야기를 계속 접하고 싶은데 시리즈 후속작이 있나 궁금해집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