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 스캔들 -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
어떻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복제와 판매가 허락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문화사 - 미시사 책입니다. 깊이 있는 다양한 정보를 소개해 주시는 네이버 블로거 "반거들충이 한무릎공부" 님의 소개 글을 읽고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은 18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대형 서점주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해적판' 출판업자 도널드슨 간의 법정 소송 대결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이란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훑어보며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에 더해, 탐욕스러운 서점주에 맞선 도널드슨의 치밀한 작전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영국의 대법관이 영구 카피라이트를 인정하자, 도널드슨은 일부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뒤 재판을 스코틀랜드로 옮겨 승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원에 대법관부의 오심을 제소하는 방식).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법정 공방은 마치 잘 짜인 법정 추리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또한, 자료적인 가치도 가히 독보적입니다. 저작권의 역사를 다룬 책 자체가 거의 없는 데다, 비록 영국에 한정된 내용이지만, 실제로도 저작권의 초기 역사는 이 책에 등장한 '앤 여왕법'과 이후의 재판이 거의 전부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주장—"저작권은 분명 필요하지만 특정 개인에게 영구히 소유되는 권리라면 대중이 책을 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수정과 개정을 통한 발전도 늦어질 것이다. 문화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도 논지가 확실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제법 많습니다. 일단 배경 설명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나 등장 인물들의 후일담까지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고, 예를 들면 당시 스코틀랜드 문예를 상징하는 앨런 램지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저작권에 대한 관습법상의 해석이 가장 중요한 이슈인데,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 점도 아쉬웠습니다. 상세한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기는 하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수준은 아니었거든요. 저자의 권리와 서점의 권리(출판권)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여 설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인 작가가 쓴 책을 번역한 탓에 일본의 저작권법을 예로 들거나 일본 자료를 인용하는 부분이 많은데, 최소한 국내 저작권법 정도는 조사해서 함께 실어주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지만, 누구에게나 권할 책은 아닙니다. 저작권법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지만, 현재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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