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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명작 의자 유래 사전 - 니시카와 다카아키, 사카구치 와카코 / 박유미 : 별점 2.5점

명작 의자 유래 사전 - 6점
니시카와 다카아키 지음, 사카구치 와카코 그림, 박유미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역사 속 대표적인 의자 350가지를 선정한 뒤, 큰 판형을 잘 활용한 상세한 일러스트와 디자이너 정보와 함께 시대순,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하는 디자인 역사서입니다.

의자 디자인에 대한 책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의자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제품 디자인'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의자 디자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지를 잘 알려주는데, 책에 따르면 의자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오늘날 의자의 형태가 이 때 거의 완성되었거든요.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자인 헤테프헤레스 1세의 황금 안락 의자, 그리고 좌석, 등판, 팔걸이, 4개의 다리, 하인방의 부재 (4개의 다리를 엮어 지탱하는 구조물)로 구성되어 오늘날의 의자 기본 구조와 거의 동일한 투탕카멘의 옥좌 등의 발굴로 증명되고요. 개인용 목제의자는 현대의 스툴 개념과 동일합니다.

그 다음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없지만 그림으로 확인 가능한 고대 그리스의 의자 클리스모스, 고대 로마의 카데드라를 거쳐 중세 유럽으로 넘어가는데, 중세 유럽은 문화와 건축 양식에 따라 구분됩니다.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의 세가지 양식으로요.
이러한 문화와 양식 측면의 구분은 다음 시대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으로 이어지며 해당 시기마다 그 양식을 대표하는 의자들이 소개됩니다. 로코코부터는 나라별로 신고전주의 (루이 16세 양식), 퀸 앤 양식 (영국 앤 여왕 제위 시대 양식) 등으로 더 상세하게 구분한게 특징입니다. 이 때부터 특정 문화와 양식에 종속되어 유행을 따라가지 않은 디자이너 -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토마스 치펀데일 - 가 등장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 뒤는 특이하게 특정 '의자'의 소개로 넘어갑니다. 영국의 윈저 체어, 미국의 셰이커 체어, 토넷의 곡목 의자입니다. 한 시대를 거의 평정하다시피하며, 지금도 사랑받는, 일종의 '양식'과 '형태'를 만든 명작 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는 다시 양식으로 구분되는데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 아르누보와 20세기 전반 모던 양식 등으로 이어지고, 20세기부터는 현대 의자라고 해도 무방한 의자들과 유명 디자이너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친숙한 이름이 많아서 반가운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매킨토시와 힐 하우스 래더백 체어, 해릿 토마스 릿펠트의 레드&블루 체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야콥센의 스완 체어와 더 에그 체어, 베르너 팬톤의 팬톤 체어, 핀란드의 영웅 알바르 알토와 그의 의자들, 미국의 천재 찰스 임스와 그의 의자들, 그리고 현대의 아론 체어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20세기부터의 소개는 조금 아쉽습니다. 19세기까지의 소개는 크게 특정 시기를 묶어서 의자의 발전사를 시대순으로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었는데, 그냥 유명한 의자들을 닥치는대로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책의 소개만으로 특정 양식이나 흐름 등을 알아차리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나열식으로 의자와 디자이너를 소개하면, 이전에 읽었던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와 같은 책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아니, 흑백 일러스트로 소개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못합니다. 큰 판형을 살리지도 못하고 대부분 작은 사이즈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뒤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형태, 계통도로 정리해 놓기는 했는데 실제 본문과 연결해 보기는 어려운 만큼, 차라리 이 형태와 계통도를 맨 앞에 목차처럼 수록하고, 의자들의 소개도 계통도대로 명확하게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목 그대로 '유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아울러, 일본이 제품 디자인 강국이기는 하나 '명작 의자 유래 사전'이라는 책에 한 꼭지를 할애하여 역사를 소개하고, 주요 디자이너와 의자를 소개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본에서 나온 책이라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뭔가 공평한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19세기까지는 별점 5점을 주어도 괜찮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감점합니다. 의자 디자인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뒤의 부록과 같은 형태, 계통도만 참고하면 좋을 듯 합니다.

2025/02/07

붉은 박물관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점

붉은 박물관 - 4점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사 1과의 데라다 사토시 경사는 수사 중 실수를 저질러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일정 기간 경과 후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와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여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곳이었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수집된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데라다에게 직접 수사를 맡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정통 본격 추리 단편집. '붉은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기존 수사 기록과 데라다를 시켜 모은 정보로 미해결 사건을 추리해 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정도로 인기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래 전 미해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부서에서 사건을 추리한다는 설정은 로이 비커즈의 "미궁과 사건부"와 똑같습니다. 딕슨 카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과도 비슷하고요.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장르 성격도 동일합니다. 수록작들 모두 어느 정도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탐정이 독자들과 똑같이 단서를 제공받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인 덕분입니다. 덕분에 독자도 탐정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급해드린 고전 명작 수준은 아닙니다. 대부분 작품 속 트릭이나 범행 동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억지스러운게 많은 탓이 큽니다. 트릭도 5편 중 한 편("죽음에 이르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A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아니었다.'같은 사람 바꿔치기일 뿐이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작위적이거나 우연에 기반한게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캐릭터들도 영 별로입니다. 탐정역인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일본 컨텐츠에 나오는 쿨 뷰티 안경녀의 전형으로, 생생함을 느끼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열혈도 아니고, 사명감도 딱히 없어 보이는 미지근한 초식남 데라다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을 다시 불러온 의욕은 좋았지만, 완성도는 고전 걸작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빵의 몸값

1998년 2월 일어났던 나카지마 제빵 사장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은 빵에 바늘을 집어넣은 범인에게 1억엔을 건네주려다 살해당했다. 밖에서 숨어있던 경찰들은, 현장인 저택 내부 방공호의 존재를 몰라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인 폐허로 들어갔던건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차 안에 숨어있던 경찰 도리이였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차고에서 가발과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여 사장으로 변장했고, 차 안에서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장으로 폐가에 들어간 뒤, 변장을 풀고 수사관인척 나타났고요.
사장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의 알리바이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케 했는데, 함께 있던 야스다가 자수하려고 해서 죽이려고 했던거지요. 하지만 사장은 야스다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버렸고, 이 사실을 들은 도리이는 사장인 척 연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 경부가 바뀌었다는 트릭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 - 협박범에게 돈을 건네주기 위해 이동하던 - 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뺑소니 사망 사고를 일으킨걸 숨기려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공범자 중 한 명을 죽이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려 1억엔의 돈이 걸린 협박 사건을 꾸며냈다? 알리바이는 경찰인 도리이 경부가 거짓말로라도 증명해주면 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요.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허무맹랑한 설정 놀음일 뿐입니다.

트릭도 운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저택 안에 방공호가 없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야스다가 자살같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면요? 여러모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일기

데라다 사토시는 1993년 9월 하치오지시 살인 사건 범인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를 읽었다. '헤어졌던 애인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나는 몇 가지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오쿠무라 교수라고 추리했고, 교수와 담판을 짓던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은 도둑맞았었는데 도둑이 경찰에 신고했고, 다카미는 출동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히이로 사에코는 일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뒤, 데라다 사토시에게 재수사를 명령했다. 데라다는 명령대로 마이코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오쿠무라 교수 살해 당시 알리바이를 물었다...

히이로 사에코가 일기에서 포착했던 '이상한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꽤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음에도 흉기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의 페이퍼 나이프를 쓴건 확실히 이상했어요. 에어컨을 껐다는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체가 일기 내용대로 범행 뒤 무더위 속에 방치되었던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 놓여 있었다면 사망 시각은 훨씬 이전이 될 테지요. 

결론적으로, 오쿠무라 교수는 일기보다 이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오쿠무라가 일기를 조작하여 경찰에 보내면서까지 진범을 자처했던건, 진범이 마이코였기 때문이고요. 이틀의 시차를 둔 건, 마이코의 알리바이(이미 사망했음)를 확실하게 만들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야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90년대 과학 수사가 무려 이틀 이상의 사망 시각 차이를 밝혀내지 못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이코 자살 사체가 발견되기 전, 다카미가 마이코의 집을 방문했다는걸 아무도 몰랐고, 하숙집에서 가짜 도둑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들키지 않았고, 오쿠무라 집의 에어컨 조작을 들키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에어컨 조작의 경우, 전기 사용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데라다 사토시는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피해자 도모베 요시오가 사망하기 직전에, 25년 전 교환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들었다. 조사해보니 실제로 25년 전,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확실하여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흔한데("낯선 승객"), 데라다 사토시에게 죄를 고백한 도모베 요시오는 가짜였고, 도모베 마사요시 살인 사건의 진짜 청부인도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아내 마키코였다는 바꿔치기 트릭이 합쳐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코는 가짜 도모베 요시오인 사이토 아키히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범행을 모의했습니다. 마키코는 2년 전 도모베 요시오를 살해한 뒤, 사이토 아키히코를 대역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데라다가 들은건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사이토 아키히코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25년 전 사건 조사를 할 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고요.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 과정도 매끄럽고, 단서 제공도 가짜 도모베 요시오의 면허 취득 기간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운전 실력, 폐업 후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 근육질인 마키코의 체형(그래서 25년 전 여성 한 명을 살해하기 용이했다) 등 과할 정도로 제공됩니다. 

때마침 데라다 앞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마침 피해자가 경찰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상황은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

사진작가 에미리는 21년 전 부모와 이모를 잃었다. 세 명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했고, 집과 사체는 범인이 지른 불로 전소해버렸다. 이모의 연인이라는 남자 소행으로 보였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글을 잡지에서 읽은 히이로 사에코는 데라다에게 에미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 

에미리의 친모 도모코는 친모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동생 아키코가 불륜을 저질러 에미리가 태어났지요. 그런데 둘 사이에 또 애가 생기자 복수심에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입니다. 에미리를 임신했을 때와 겹쳤던 아키코의 유학 및 실종 기간, 아키코의 애인 이야기는 도모코의 말 뿐이었다는 것, 도모코는 연장 보육 제도 이용도 고려했다는 등의 단서 및 이를 통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사건의 동기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범행 동기와 과정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말이 되는 추리를 추가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추리 퀴즈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26년 전 발견되었던 피살체와 똑같은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26년 전 사건의 피해자와 연령이 같았고, 사망 추정 시각 및 사체 유기 현장도 똑같았으며 심지어 흉기마저 일치했다. 이번에도 피해자 스웨터 소매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수사 1과는 동일범의 소행이라 여겨 자료관에서 26년 전 자료를 가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관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감사팀의 지시를 받아 데라다는 홀로 사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기자 후지노 준코였습니다. 그녀는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후쿠다 도미오를 살해했습니다. 후쿠다 도미오 소매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였습니다. 준코를 학대하던 아버지는 후쿠다를 끌어들였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입을 다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26년 후,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매의 피는 DNA 조사를 할 테고,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드러날걸 노렸던 겁니다. 

이를 드러내는 '26년 전 피가 묻었던 소매와 지금 피가 묻은 소매의 위치가 다르다'는 단서도 좋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어느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 범인은 이를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 생각대로 수사팀 관계자가 범인이었다면, 26년 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위치를 틀렸을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범인은? 피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입수할 수 있는건 보도 관계자일테고, 관련되어 질문을 하는 관계자가 범인일거라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보도 관계자가 범인일 수는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널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DNA 분석 요원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자회견을 맡는 수사관이 아닌 경찰 직원이라던가... 기자 회견장에서 후지노 준코가 DNA 조사를 물어본 것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추리 과정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동기와 범행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DNA가 범행 당시 핏자욱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수하고 그 증거로 혈흔이 아버지 것이라는걸 증명하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정통 본격 추리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망작입니다.

2013/06/11

꽃 아래 봄에 죽기를 - 기타모리 고 / 박정임 : 별점 3점

꽃 아래 봄에 죽기를 - 6점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산겐자야역 상점가 좁은 골목에 위치한 바 "가나리야"는 주인인 구도가 주방장을 겸해 운영하는 작은 바입니다. 도수별 4단계로 나뉘어진 필스너 생맥주와 맛있는 요리가 강점인 곳이지요. 이 곳을 찾은 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구도가 자신의 추리를 들려 준다는 안락의자 탐정물 형식의 단편집입니다.

그러나 뻔한 트릭풀이물은 아닙니다. 뛰어난 문학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덕분입니다. 묘사력과 서정적인 전개가 좋아서 읽는 재미와 함께 애잔한 여운을 남겨줍니다. 일상계 성격이 강한 내용도 매력적이고요.

덧붙이자면 맛있는 요리가 각 단편마다 디테일하게 삽입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뛰어난 묘사력으로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생각됩니다. 몇몇 요리는 재현해보거나 찾아가서 먹고 싶을 정도였어요. 책의 모양새와 장정도 아주 좋았고요.

물론 '실제 사건, 진상과는 동떨어진 추리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단점이 눈에 조금 뜨이기는 합니다. 이러한 안락의자 탐정물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하지만, 수록된 몇몇 이야기에서는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추리는 추리에 불과할 뿐이라는게 좀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허나 단점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회귀천 정사"가 연상되는 좋은 단편집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꽃아래 봄에 죽기를"

하이쿠 동호인 가타오카 소교가 병사한 뒤, 소교는 주민등록이 없는 무적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던 나나오는 그가 고향을 버린 이유를 조사하고, 유골을 보리사에 묻을 계획으로 조후로 향했다. 

요리바 "가나리야"와 탐정역인 마스터 구도가 첫 등장하는 표제작.

소교가 왜 고향을 버려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실제 조후에서 있었던 대화제와 연결하여 가상 역사 소설처럼 꾸민 솜씨가 탁월합니다. 여성 장애인 살인 사건과 소교가 마지막 남긴 습작노트에서의 '벚꽃이 피었다'를 연결시켜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도 높고요. "하이쿠 동호인"들이 등장하는 작품답게 멋드러진 하이쿠들이 적절하게 삽입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와카타케 나나미와 심포 유이치의 장점만을 섞은 느낌입니다. 묘한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가족사진"

지하철 역 시민 기증 서가의 추리소설들에서 발견된 흑백 가족사진에 대한 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

정말로 가볍고도 가벼운 일상계 작품으로, 구도가 제시한 수수께끼에 대해서 가나리야의 단골손님들이 각자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한다는게 특징입니다. 일종의 역발상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극중 주인공인 노다의 역할이 굉장히 작으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거처"

사진작가 쓰마키는 "마지막 거처"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자신의 작품전 포스터 도난사건으로 고민하다가, 구도에게 상담을 요청한 뒤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는데...

역시나 전형적인 일상계. 그러나 포스터 도난에 대한 진상은 별로 설득력이 높지 않습니다. 구도의 추리는 볼만했지만 새롭거나 의외성 있지도 않고요. 그래도 등장하는 요리인 '가지 겨자 절임'이 꽤 임팩트 있게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살인자의 빨간 손"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현장 주변에서는 빨간 손의 악마가 초등학생을 노린다는 괴담까지 퍼졌다. 괴담과 사건을 조합하여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1편의 주인공 나나오와 단골손님들이 등장하는 작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사구치 히즈루의 과거사를 비롯해서 경찰 모모세 겐지의 존재까지 추리에 가담시키는 복잡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작품부터 실제 진상을 속 시원하게 밝혀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시작될 뿐더러 실제 빨간 손이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해 추리하는 마지막 부분은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힌 것으로 보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오토바이나 자전거 배달원은 모두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

회전 초밥가게에서 참치만 일곱 접시를 먹은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수께끼 풀이를 던지는 단골 히가시야마의 이야기.

기이한 일상을 소재로 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회전 초밥가게 메뉴 리스트를 이용한 독특한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신선한 요소는 많습니다. 

그러나 진상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도 않으며 모든 것은 추론에 불과해서 좀 맥이 빠집니다. 구도의 말대로, 쓸데없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말장난에 불과한 작품으로 보이거든요. 그리고 추리가 어찌 되었건 참치를 일곱 접시나 먹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특이한 행동인데, 그러한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불륜을 저지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수수께끼를 위한 수수께끼에 불과해서, 이 작품집의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물고기의 교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나오가 다시 등장하여 가타오카 소교에 얽힌 과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내용입니다. 중간에 나나오에게 프로포즈를 한 다카쓰카의 폭행사건 증인 찾기가 끼어들고 있어서 내용적으로는 풍성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모든 것은 추론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별로입니다. 소교가 장님 행세를 했다는 핵심 트릭에 대한 진위가 밝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무엇보다도 기누에가 자살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 게 아쉬웠습니다. 여운을 남기는 맛은 좋지만 보다 친절했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묘사도 좋고 상상력도 뛰어나며 등장하는 하이쿠도 아름다우나, 추리적으로는 부족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

2011/07/23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 히가시가와 도쿠야 / 현정수 : 별점 2.5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 6점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호 호쇼 가문의 딸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형사로 근무하는 레이코가 자신이 맡게 된 괴상한 사건을 집사 가게야마에게 털어놓으면 – 제목 그대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 가게야마가 그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전통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읽기 편하고 유머러스한 전개, 그리고 정통 안락의자 탐정물에 걸맞은 추리적인 재미와 공정한 단서 제공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재미는 상식을 뛰어넘는 괴이한 사건 현장이 굉장히 상식적인 이유로 그러한 결과가 빚어졌다는 점을 밝혀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은 정통 본격물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요. 단편으로 구성된 점 역시 고전물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고, 트릭들도 꼼꼼하고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캐릭터와 배경 설정 때문에 작품을 읽는 내내 소설보다는 만화나 드라마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호 형사와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명탐정 집사 가게야마라는 캐릭터의 설정과 성격은 재미는 있지만,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에게는 다소 가벼워 보이거든요. 물론 모든 추리소설의 명탐정들이 팍팍하게 살아가는 알코올 중독 독신남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현실성은 유지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트릭이 꼼꼼히 배치된 것은 맞지만 다소 작위적이며, 몇몇 트릭은 추리 퀴즈 수준이라 더더욱 만화나 드라마로 완성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밝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유머러스한 전개와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이라 추리소설 입문자에게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살인 현장에서는 구두를 벗어주십시오.

부잣집 아들 형사, 재벌가 아가씨 형사 컴비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집사 캐릭터가 소개되는 단편집의 도입부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입니다. 집 안에서 부츠까지 신은 채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의 치밀한 수사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목격 증언의 맹점을 찌르는 전개와 시체 상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리가 잘 결합된 소품으로 범인에 대한 추리까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 도입부로는 적절했어요.

독이 든 와인은 어떠십니까.

자살로 보이는 동물병원 원장의 죽음이 사실은 타살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풀어내는 작품으로, 밀폐된 와인병에 독을 주입하는 트릭과 한밤중 촛불 같은 불빛에 의지해 범행의 뒷처리를 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두 가지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죠. 추리 퀴즈 수준의 내용이라 다소 아쉬웠어요. 꼼꼼한 묘사가 필요 없는 만화라면 더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장미에는 살의가 있습니다.

장미 덤불 안에서 미녀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고양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추리의 과정이나 논리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기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설득력은 있었고요. 

그러나 시체를 옮긴 방법이 독자에게 단서를 제공하기 위한 설정일 뿐, 실제로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장미 덤불에 시체를 옮겨 놓은 이유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고 말이죠. 본격물다운 공정함에 너무 신경 쓴 탓일까요?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신부는 밀실 안에 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미수 사건을 다룬 소품입니다. 트릭은 뻔하지만,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을 이용해 진상을 밝혀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일상계 추리물로는 상급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재벌가의 결혼식이라는 과장된 설정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약점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을 전개에 녹여냈다는 점에서는 플러스 요소가 될 수도 있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양다리는 주의하십시오.

자신의 집에서 알몸 상태로 발견된 키 작은 남자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현대인의 필수 소품이라 할 수 있는 '키높이 깔창'을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그러나 범인이 무려 두 명이나 되는 목격자에게 목격된 상황에서 단순히 키 차이만으로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인상착의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점도 아쉬웠고요. 또한, 키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허리를 삐끗한 환자를 등장시킨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불가사의한 현장을 일상적인 트릭과 결합한 구성은 좋았지만, 전개가 아쉬웠달까요. 그래도 여러모로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 별점은 3점입니다.

죽은 자의 전언을 받으시지요.

사설 금융업체 여사장 살해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대단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지워진 다이잉 메시지와 창문으로 던져진 흉기 등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깔끔했습니다. 또, 가게야마가 액션을 펼치며 대활약하는 등 팬서비스적인 요소도 확실히 느껴졌어요. 무리수가 좀 보이긴 했지만, 평균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5/29

어려운 문제가 가득한 레스토랑 - 유키 신이치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진상을 말씀드립니다"의 작가 유키 신이치로의 공유 주방을 배경으로 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다양한 음식점 수십 개를 등록해 우버 이츠로부터 배달 주문을 받는 공유 주방의 점장이, 외부 활동을 하는 배달원들이 모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를 펼치는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설정은 꽤 좋습니다. 점장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미남이지만, 정의감 넘치는 명탐정이라기보다는 적절한 가격에 추리 결과를 제공하는 냉정한 장사꾼에 가깝습니다. 의뢰인만 알고 지불할 수 있는 거액의 요리를 시스템에 등록해 거래하는 방식도 합리적이고요. 배달 앱과 공유 주방이라는 현대적인 시스템을 추리소설의 장치로 활용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깊은 연구도 돋보이고요.

사건 역시 일상계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묵직한 살인까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앞부분 수록작들은 설정도 좋고, 추리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은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배달원이 사건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니고, 점장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구조도 안정적입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설정이 애매해지고, 추리적으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점장의 정체를 실체적으로 밝혀내려는 시도가 등장하는 점은 영 별로였습니다. 이런 인물은 판타지로 남아 있을 때 더 매력적입니다. 굳이 현실적인 설명을 붙이려는 순간, 앞에서 쌓아둔 쿨하고 냉정한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앞의 수록작 두 편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작가의 전작이 영 아니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자기만의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로서 성장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체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공유 주방과 배달 앱을 결합한 안락의자 탐정물이라는 설정, 그리고 앞부분 수록작들의 추리적 재미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있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넘어져도 빈손으로는 일어서지 않는 완두콩 싹 달걀 수프 사건

맨션에서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화재가 일어난 방의 입주민이었던 대학생 가지와라 료마는 팬티 바람으로 입주민들을 깨워 도망치게 하여 대참사를 막았다. 그러나 전소한 료마의 방에서 료마의 전 여자친구 유즈키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유즈키가 헐렁한 옷을 입고 화재 현장에 나타나 ‘당해봐라’라는 복수에 가까운 말을 내뱉은 뒤,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에 자기 발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연에 따른 극단적 선택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점장의 추리는 다릅니다. 료마는 유즈키를 미리 죽여 자기 방에 놓아둔 뒤, 불을 지르고 유즈키의 옷을 입고 나와 유즈키인 척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다가 다시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유즈키가 스스로 불길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꾸몄던 겁니다.

근거는 배달원의 조사입니다. 료마가 여성스러운 외모와 체구의 소유자이며, 심한 근시라 잘 때는 렌즈를 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료마는 팬티 바람으로 밖에 나와 있을 때 현장에 있던 현재 여자친구를 알아봤습니다. 이 증언을 통해 점장은 료마가 렌즈를 끼고 있었고, 따라서 자다가 급히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시리즈의 설정과 분위기를 알려주는 첫 작품으로는 꽤 좋습니다. 사건 자체도 나쁘지 않고, 여장 트릭과 시력 단서를 결합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결말입니다. 사건을 의뢰해던 료마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진상을 알고 싶어 한게 아닙니다. 그 진상을 가지고 아내를 협박하려 했지요. 점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추리를 들려줍니다. 점장은 음식점의 셰프로서 고객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면 충분하다는 식이거든요. 정의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 추리가 진짜라고 보장하지도 않고요. 이 부분에서 의뢰와 돈에만 충실한 추리를 펼친다는, 이 시리즈만의 독특함이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첫 작품으로서 세계관 소개도 잘하고, 추리적으로도 준수합니다. 무엇보다 점장의 냉정한 캐릭터가 확실하게 각인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잉꼬부부의 갈릭 버터 치킨 수프 사건

남편 다이시로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아내는 처음으로 남편의 왼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이시로는 왜 손가락이 절단된 것을 숨겼을까? 그리고 아내는 왜 몇 개월 동안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가?

설정부터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손가락이 절단된 남편, 그 사실을 몇 개월 동안이나 모른 아내라는 출발점만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배달을 맡은 배달원의 가정사와 연결되며 부부 사이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데, 이 드라마가 특히 좋습니다. 배달원은 자기 손가락이 잘렸을 경우, 아내가 그걸 알아챌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 불안과 의심이 마지막 식사 장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이 작품의 백미이고요. 사건의 수수께끼와 배달원의 개인사가 따로 놀지 않고, 부부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소통 부족이라는 사회파스러운 문제 제기까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남편의 아내가 엄청난 악처로, 결혼반지에 대해 히스테리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는 증언이 핵심 단서입니다. 점장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남편이 그것을 숨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절단했다고 추리합니다. 극단적인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이는 앞서 쌓아온 부부 관계의 드라마와 맞물리면서 충분한 설득력을 얻습니다. 추리에 대한 근거 - 구급차 대신 택시를 탔고, 절단된 손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도 합리적이고요.

반지를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추리도 좋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호스티스 리리카를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내의 이름을 말했을 리 없지요. 그런데 리리카는 아내 요리코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반지 안쪽에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반지를 가져간 사람은 리리카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단순하지만 논리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추리였습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악처의 잔소리가 싫었다 하더라도 손가락을 절단한다는건 너무 극단적이지요. 베란다에 대한 조사 역시 조금 과하게 작위적입니다. 그러나 단점들은 사소합니다. 설정과 전개, 드라마, 추리가 모두 잘 맞물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작입니다.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의 양파 토마토 수프 사건

나는 전직 패션모델 출신 싱글맘으로 아들 하루토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유일한 위안은 수시로 X에 올리는 글에 대한 반응이었다.

배달원의 일상이 사건과 연결된다는 전개 방식은 직전 작품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배달원이 SNS, 정확히는 X에 중독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폐해를 직접 알거나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 역시 같은 상황에서 비롯되고요.

수수께끼는 빈집털이범의 기묘한 행동입니다. 범인은 빈집을 털러 들어왔는데, 그 안에서 무언가에 놀란 듯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빈집 안에서 갑자기 핸드폰을 확인했을까요?

정답은 빈집털이범이 집을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빈집털이범은 배달원으로 일하며 배달품 안에 집집마다 다른 감사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감사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X에 글을 올리면, 범인은 어느 집인지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람이 X에 집을 비운다는 글을 남기면 그때 빈집을 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범인은 그 집을 유명 인플루언서 마루미 짱의 집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는 모두 마루미 짱의 계획이었습니다. 마루미 짱은 자기 고교 동창이자 친구인 고토미의 집을 털게 하려고 일부러 고토미의 집에 놀러 가서 배달을 시킨 뒤, X에 감사 메시지를 올렸지요. 이유는 자신에게 악플을 달던 악플러의 정체가 고토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복수하려 한 것이지요.

동기는 좋고, 추리도 깔끔합니다. SNS를 활용하는 범죄 수법도 재미있습니다. X에 중독된 배달원이 X 때문에 개인 사생활이 드러나고,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 할수록 오히려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을 사건과 결합한 부분도 괜찮아요. 소재와 주제가 잘 맞물린 편입니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감사 메시지를 보낸 배달원이 반드시 빈집털이범이라는 전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마루미 짱은 빈집털이범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고토미 집에 놀러 가서 배달을 시킬 생각이었을까요? 이 부분은 뭔가 설득력 있는 설정이 추가로 필요했습니다. 마루미 짱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점장의 추리는 재미있지만, 지금의 내용만으로는 범행 계획이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또 하나 불만이었던 건 점장의 태도입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점장은 사건의 진상이 몰고 올 파장과 무관하게 순수히 돈과 주문에만 추구했습니다. 그게 특징이자 멋있는 점이었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배달원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을 남겨서 점장만의 카리스마가 깨져버립니다. 때문에 캐릭터의 일관성이 이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SNS와 배달 시스템을 이용한 범죄라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건의 설득력과 점장 캐릭터 운용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수치가 이상한 수준의 건더기 가득한 육개장 수프 사건

작가인 배달원이 점장에게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한 여성에게 열 번이나 똑같은 배달원이 음식을 배달했고, 마지막 배달 때에는 밀봉된 배달 음식 봉투 안에 머플러가 들어 있었다는 사건이었다. 마침 그녀가 머플러를 잃어버린 직후였기 때문에,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상황인데...

점장은 음식을 가져다준 사람이 배달원이 아니라, 잘못 배달된 음식을 받은 다른 건물 입주민이었다고 추리합니다. 오래된 맨션의 1호와 2호가 나란히 서 있어서 배달원이 착각했고, 그 잘못 배달된 음식을 받은 남자가 다시 여성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지요. 마침 그는 여성에게 호감이 있었고, 여성을 관찰하다가 머플러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뒤 선물로 머플러를 넣었습니다. 이는 가게 포장지가 기성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배달 온 포장을 뜯은 뒤, 기성 포장지로 머플러와 함께 다시 포장해서 배달품을 가져다준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더 좋았던 건 이 표면상의 추리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작가가 점장의 정체를 캐내려고 이런 사건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추리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장은 작가에게 실제 배달 경로로 배달을 시킨 뒤, 그 동선을 확인해서 오배송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장의 정체를 캐내려는 작가 설정은 영 별로였습니다. 물론 이런 수수께끼의 가게와 점장에 대해 궁금해하고, 어떻게든 그 실체를 밝혀내려고 애쓰는 인물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어설프다는 겁니다. 미행도 그렇고, 사건을 의뢰하는 방식도 와 닿지 않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고 해서 점장의 정체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도 애매하고요.

게다가 작가가 점장의 손에 의해 죽고 만다는 결말은 완전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점장은 만화적이고 판타지 같은 인물이지만, 배달원이 현실을 붙잡고 있는 덕분에 그럭저럭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판타지 속 인물처럼 보였던 점장이 현실에 있는 배달원에게 직접 손을 대는 순간, 그 실감은 완전히 깨져버리고 맙니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아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과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점장의 정체를 파고드는 방향과 결말시리즈의 매력을 깎아먹었기에 감점합니다.

악령 퇴치 닭봉 삼계탕풍 수프 사건

분명히 비어 있는 이웃집에 계속해서 물건 배달이 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의뢰가 접수되었다. 

진상은 빈집의 옆집 여자, 정확히는 의뢰인 집 기준으로 옆옆집에 사는 여자가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허술한 맨션 방범 체계를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집 앞으로 계속 물건이 배달되는 상황을 만들면, 관리인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CCTV를 설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사건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비어 있는 집으로 계속 배달이 온다는 수수께끼는 일상계 미스터리지만 나름대로 기묘함을 전해줍니다. 다른 수록작들보다 범죄의 무게가 덜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진상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맨션의 방범을 강화하고 싶었다면 이런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직접 CCTV를 사서 맨션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만두 배달만 한가득 시켰는데, 최소한 몇십만 원은 들었을 테니까요. 그 돈과 수고를 생각하면 범행 동기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맨션 관리인이 진상 주민을 내쫓기 위해 다른 층에서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다른 층에서는 장기 출장 간 집 앞으로 배달이 계속되어 그 이웃집 진상이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정작 기분 나쁜 건 배달이 온 집 주민이지 이웃집 주민은 아닐 겁니다. 유명한 진상 세입자가 이 정도 일로 꿈쩍이나 할까 싶기도 하고요.

시리즈의 매력인 배달원의 일상과 사건의 연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배달원은 인기 없는 개그맨입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자기 개그 소재로 쓰는 것이 전부이고, 본인의 드라마와 사건이 깊게 엮이지는 않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배달원의 개인사가 사건의 주제와 맞물렸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약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수께끼의 출발점은 괜찮았지만, 진상과 동기, 배달원 캐릭터 활용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인 완탕 고추장 수프 사건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나(가지와라)’는 죽기 전에 범인의 정체를 확신했다...

첫 번째 사건의 배달원이 점장에게 인간 소실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첫 번째 사건의 의뢰인이었던 가지와라 씨가 실종되고, 그의 자택에서는 강한 루미놀 반응이 발견된 사건이었다.

마지막 수록작인데 연작 단편집의 마무리로는 괜찮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앞선 단편들의 배달원들이 모두 등장하고, 첫 번째 사건 의뢰인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지막 작품으로 돌아오는 방식은 일종의 수미쌍관으로, 확실히 연작 단편집이구나!라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가지와라가 배달을 시켰을 때, 범인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배달원보다 먼저 찾아가 살해했는지가 핵심입니다. 진상은 특정 상품을 주문하면 안건 상담 비용을 할인해준다는 쿠폰에 있었습니다. 범인은 가지와라에게 그 쿠폰을 전달해두었고, 가지와라가 특정 상품을 주문하자 상담 의뢰가 들어온 것을 알고 배달원보다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해한 뒤, 큰 우버 이츠 가방에 시체를 넣어 옮겼던 겁니다. 이는 특정 상품이 상담과 관련되어 있다는 앞선 설정과도 잘 연결되고, 쿠폰 전달 같은 소소한 정보도 비교적 공정하게 제공되어 마음에 듭니다. 

배달 앱과 공유 주방 시스템을 이용한 시리즈 특유의 장치도 마지막까지 살아 있고, 모든 추리는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점장의 철학도 잘 드러나서 시리즈 작품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이 범인이었다는 결말은 뜬금없었습니다. 가지와라의 전처, 그러니까 가지와라 료마의 어머니로부터 암살 의뢰를 받았다고 해서 실제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전개는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쌓아온 세계관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직접적인 살인 실행까지 가는 것은 과했습니다.

배달원들이 합심해서 진상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는 설정도 생각만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연작의 마무리로 여러 인물을 다시 모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인물들의 감정이나 관계가 충분히 쌓여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지막에 점장의 추리 철학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긴 것도 단점입니다.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 자체는 이 시리즈와 잘 맞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철학을 길게 풀어 설명하다 보니, 사건의 긴장감보다 작가의 설명 의식이 더 강하게 느껴진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3/12/03

구석의 노인 사건집 - 에마 오르치 / 이경아 : 별점 2.5점

구석의 노인 사건집 - 6점
에마 오르치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이 책마저도 새롭게 출간되고... 확인해보니 전 3권 총 37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일부 내용만 가려 뽑은 단편선집(短篇選集)입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동서판 "구석의 노인"과 거의 겹치지 않는 다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네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도 몇 편 수록되어 있긴 합니다만 역시 겹치지 않고요.

그러나 책 자체는 좀 미묘합니다. 황금기 단편에 걸맞는 트릭이 수록된 정통 추리물로, 거의 모든 사건에서 안락의자 스타일의 멋진 추리를 보여주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황금기 단편에서 기대하는 추리적인 재미가 부족한 탓이 가장 큽니다. 비슷한 트릭이 너무 많이 쓰였거든요. 예를 들어 범인이 피해자를 가장하여 알리바이를 만드는 변장 트릭은 무려 5편의 작품 - "펜처치 스트리트 수수께끼", "리슨 그로브 수수께끼",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 "폴턴 가든스 수수께끼", "황무지 사건" - 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3편 중 5편이니 40%에 달하는 상당한 비중이지요. 두어 편 읽다보니 트릭과 전개가 대충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황무지 사건"은 변장에 더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등과 유사한, 전형적인 시체 바꿔치기 트릭이기도 하고요.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처음에 기소된 유력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다'는 식이며, 소거법에 의하면 결국 범인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아서 정교한 추리적 재미를 느끼기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안락의자 스타일을 너무 남용합니다. 구석의 노인은 기자 메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줄 뿐입니다. 추리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지요. 이러한 형태는 작가가 손쉽게 마무리할 수는 있지만, 독자에게는 불친절하며 안일한 스타일이라 생각됩니다. 기자 메리도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요. 구석의 노인이 스스로 사건에 대해 모조리 이야기하고, 추리까지 이야기하는 구성이라면 그녀가 등장할 필요조차 없지요.

그래도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꼼꼼하게 그려진 작품도 많습니다. 특히 두 작품, "앵그르 수수께끼"와 "진주 목걸이 사건"은 마음에 들었어요. 이유는 두 작품 모두 기이한 범행에 대한 동기, 이유를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앵그르 수수께끼"는 앞서 짤막하게 소개한 공작부인의 재능을 복선으로 범행을 설득력 있게 해석하고 있는데다가, 결말까지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진주 목걸이 사건"은 범행을 이용하여 협박범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는 발상의 역전이 돋보였고요. 앞서 말했듯 뻔한 변장 트릭이지만, "리슨 그로브 수수께끼"도 나름 복잡한 변장, 치밀한 작전에 더해 현대물에서나 봄직한 끔찍한 범행까지 벌어지는게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아울러 선정된 단편들이 구석의 노인이 사라지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20년 뒤의 재회를 그리는 등 시간적인 경과를 느낄 수 있게끔 실려 있는 것도 괜찮더군요. 솔직히 수록된 작품의 평균 수준은 동서 쪽이 더 나은 것 같긴 하지만, 이러한 디테일 면에서는 확실히 엘릭시르 판본이 앞섭니다.

그 외에도 유명한 변호사라는 아서 잉글우드의 활약 등으로 유력한 용의자가 전부 풀려나는 식의 전개로 당시 영국의 판결 제도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명확한 증거 없이는 기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 통용되었다는 것인데 역시나 영국이 선진국은 선진국였네요.

또 "엘릭시르" 레이블을 달고 나온 책들이 모두 장정과 디자인이 예뻐서 소장 가치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입니다. 특히, 각 단편 뒤에 소개된 다양한 토막 상식 정보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메리와 구석의 노인이 만나는 "ABC 찻집"이 실존하는 카페 체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여기서 커피 한잔 먹고 싶어지네요. 아직 있을까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좋았던 시절의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났죠. 정확하게 10년 전에 읽었던 동서판본은 별점이 4점이었는데 10년 사이 1.5점이 깎였네요. 동서판본을 다시 읽고 지금의 별점은 몇 점일지 다시 체크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작품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에, 또 몇몇 작품은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는 만큼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7/06/06

タック&タカチの事件簿 6つの箱の死体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오하시 카오루 : 별점 3점

추리소설가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원작을 오하시 카오루가 만화로 옮긴 두번째 작품. 아키타 서점의 본격 미스테리 시리즈로 출간된 시리즈 중 하나로 간만에 간 북오프에서 건졌습니다.

제목대로 대학 동기이자 친구이상, 애인이하 관계인 탁과 타카치가 탐정으로 활약하는데, 탁이 안락의자 탐정역을 소화하고 있고 타카치는 좋은 조언자이자 동료로 등장합니다. 이 책은 표제작을 포함해서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막 살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게 특징이고요.

한 권에 여섯 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탓에 표현이 빈약해져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품이 몇 개 있는건 사실이지만 "추리만화" 로의 완성도는 충분합니다. 오하시 카오루의 여전한 그림도 좋았고요. 주인공 커플 탁과 타카치를 비롯한 보안 선배와 우사코 등 명랑쾌활한 음주 추리 동아리(?) 멤버들 역시 마음에 드네요(등장인물들은 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만화로는 충분히 즐길만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니시자와 야스히코와 오하시 카오루 컴비)의 첫번째 작품도 구해보고 싶어집니다. 이외에도 책 뒷 커버를 보니 이 시리즈, 즉 아키다 서점의 본격 미스테리 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작품, 니카이도 레이토 원작 작품, 우타노 쇼고 원작 작품등 네임벨류가 상당하던데 이들도 역시나 전부 말이지요.

수록작별 간단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작품인 "해체수호"는 한 행복한 가정에서 벌어진 "곰인형 토막 사건" 의 진상을 파헤치는 소박하고 잔잔한 작품으로 꽤 그럴싸하고 합리적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두번째 작품 "맥주집의 문제"는 탁과 타카치의 선배인 보안 선배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로 꽤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의 비약이 좀 심했습니다. 누군가가 대량의 맥주 주문을 받았다는 짤막한 사실에서 끌어내는 진상이 너무 장황해서 짧은 단편 만화 하나로 소화하기에는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내용 자체는 꽤 재미있는 편이었으니 만족.

세번째 작품이자 표제작 "6개 상자의 사체"는 탁이 골칫덩이 숙모가 부탁한 딸의 결혼 문제로 찾아간 집에서 살인 사건과 조우한다는 내용의 작품으로 내용적으로 상당히 완성도 있는, 표제작이 될만한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토막 살인 사건의 이유도 나름 합당했고 범인과 트릭 역시 그럴싸 했거든요.

네번째 작품 "해체 양도"는 토막 살인 사건과 한 중년여성이 에로 잡지를 다량으로 구매해 간 것을 연관시키는 이야기인데 두번째 작품과 비슷한 단점, 즉 추론의 단초가 되는 사실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의 설득력이 빈약하다는 문제가 있더군요. 또 에로 잡지를 사 가야만 했던 이유가 부실한 만큼 그다지 완성도가 높은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섯번째 작품 "사라진 실내화의 문제"는 보안 선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벌어진 실내화 분실 사건과 한 여학생의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단서도 공정하고 추론도 합당한, 잘 짜여진 단편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라 할 만 합니다. 나름 메시지도 전해주고요. 번역이 욕심날 정도로 괜찮은 이야기였습니다.

여섯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은 "해체 신속". 제목대로 역시나 토막 살인을 다루고 있는데 10년전의 사건을 신문으로 읽고 추리하는 전형적 안락의자 탐정물이었습니다. 트릭도 나름 기발한 편인데 다만 만화의 한계인지 동기부분의 표현이 좀 약해서 확 와닿는 맛은 없더군요. 그래도 단서와 그것을 통한 추론 하나는 볼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2015/06/22

13.67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점

13.67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100여페이지 정도 분량의 중단편 6편이 수록된 연작 중단편집. 제목의 13.67은 2013년에서 시작하여 1967년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적 배경을 의미하고 있죠. 탐정역의 관전둬가 전편에 등장할 뿐더러, 뤄 샤오밍이나 탕 아저씨, 범죄자 스씨 형제 등 등장인물들이 여러개의 작품에 등장하는 등 연작, 시리즈 느낌이 강합니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인데, 단지 이색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추리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중국 추리소설 수준도 정말 높구나 싶어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탐정역인 '천리안' 관전둬의 뛰어난 추리력과 사소해보이던 단서들의 조합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성도 좋지만, 진상이 놀랍기 때문에 흡사 반전 스릴러를 읽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해준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추리소설이기에 선보이는 중국 - 홍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볼거리에요. 특이한 계급명과 CIB를 비롯한 중안조, 반흑조, 특별 직무대, 비호대와 같은 다양한 부서명에 1호 (경찰 최고위인 경무청장의 속칭), 장작 (제복 문양)같은 중국 - 홍콩 경찰 관련 용어 및 은어들, 탁가, 고혹자, 파파라치, 다취안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범죄자), 도사 (마약중독자), 일루일봉 (홍콩 특유의 매춘업소) 과 같은 범죄 관련 은어, 호루라기를 분다 (동원 가능한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한다)나 책에 들어간다 (감옥에 간다), 저수지를 경비한다 (한직으로 밀려난다)와 같은 홍콩 속어, 은어로 탄산수를 "네덜란드 음료수"라고 부른다거나 광둥어로 농땡이부리는 사람을 사왕이라고 한다는 등의 묘사가 그러합니다.

실존하는 맥퍼슨 스타디움, 퀸 메리 병원, 프린스 에드워드 서로, 퉁초이가 (여인가) 등 몽콕의 거리, 그레이엄가 시장, 카오룽 거리와 같은 이국적 풍광 역시 가득하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탐정인 관전둬의 캐릭터가 큰 매력이 없다는 점이 그러해요. "천리안" 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능한 경찰로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발자국만 봐도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다는 천재이지만 사생활에서는 구두쇠 수준으로 알뜰하고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라는 식으로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한 묘사는 제법 되기는 하나 특별히 와 닿지도 않고,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또 몇몇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죄수의 도의" 편이 대표적이죠.

허나 단점은 사소할 뿐, 부담되는 분량임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여러모로 자극도 많이 되었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새로운 추리 소설을 읽기 원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저와같이 80~90년대 홍콩영화 최 전성기 팬이시라면 더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책 소갯글을 보니 영화가 나온다고 하는데 꼭 보고 싶어집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흑과 백 사이의 진실"

펑하이 그룹의 총수 위안원빈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담당인 뤄 독찰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사부 관전뒤의 병실로 사건 관계자들을 소집하는 것. 이유는 관전둬가 사건해결 100%를 자랑하는 명탐정이지만 간암말기로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으로 병원에서 뇌파를 읽는 특수한 장비를 이용하여 관계자들에게 사건에 대해 듣고 그 자리에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관전둬의 추리를 통해 단순 강도사건인줄 알았던 사건이 위씨 가문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것, 그리고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 - 테이프, 다이잉 메시지가 없는 이유, 흉기인 작살에 대한 이상한 사실 등 - 을 통해 아들 위용렌이 범인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뤄 독찰은 위용렌 뒤에 고용인 탕 아저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체포한다. 탕은 경찰서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가설임을 전제로 사건의 진짜 동기와 위용렌을 조종한 방법 등을 낱낱이 밝힌다. 그를 옭아맬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 그러나 뤄 독찰은 탕이 관전둬를 살해하는 현장을 촬영하여 그를 관전둬 살해범으로 체포하게 된다.

2013년을 무대로 한 첫 이야기. 그동안은 링컨 라임이 안락의자 탐정의 최고봉이라 생각했는데 그를 뛰어넘는 존재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아예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탐정이거든요.

이런 설정은 좀 작위적이고 웃기지만 추리의 흐름은 괜찮습니다. 바닥이 어질러져있지만 침입한 흔적은 없다는 단순한 사실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초반부, 위씨 가문의 무남독녀 위첸러우에 관련된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는 중반부, 테이프와 작살총, 다이잉메시지가 없는 상황 등을 통해 범인을 확정하는 후반부까지 모두 합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안락의자 탐정물이기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공정한 편이고요.

무엇보다도 탕 아저씨가 진정한 흑막이며 사건의 핵심 동기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어요. 위용롄의 설득력없는 동기에 비해, 설득력은 물론 드라마까지 갖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위용롄을 조종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고요. 아울러 뤄독찰이 모든 것을 꾸민 것이었다는 것도 앞서 말한 작위적인 설정을 잘 포장하고 있어서 꽤 괜찮았어요.

그러나 탕이 관전둬를 살해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이 영 별로네요. 그가 직접 나서서 관전둬를 살해할 이유가 없거든요. 본인 스스로 말했듯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인데 뭐하러 추가 범행, 그것도 경찰을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러 가며 뒷처리를 해야 했을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직접 죽이지 않아도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고 그의 추리도 결국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가설이자 추론에 불과할텐데 말이죠.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사족만 없었어도 별점 3점이상은 충분했을텐데 아쉽습니다.

"죄수의 도의"

잘 나가는 엔터회사 사장이지만 실상은 흑사회 보스인 줘한창을 검거하려는 뤄샤오밍은 실패만 거듭한다. 그러던 중 줘한창 회사에 소속된 신인가수 탕린이 괴한에게 습격당하고 살해당하는 동영상이 배포되는데....

줘한창을 잡아넣기 위해 암흑가 도의를 굳게 지키는 경쟁 조직 보스 런더러의 입을 열게 만든다는 작전이 그려지는 작품.

솔직히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특히 죄수의 딜레마가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영 모르겠어요. 죄수의 딜레마가 소용이 없는 암흑가 도의가 관련된 특수 상황에 대한 것은 알겠지만 런더러가 입을 여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죠. 또 탕린이 사실 줘한창에게 복수를 다짐한 전 정보원의 딸이라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과거 가쉽으로 접해보았던, 암흑가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홍콩 연예계의 이면을 그린 점은 괜찮았지만 평작 이상의 작품은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가장 긴 하루"

최고의 지능범인 스번톈의 탈옥 사건과 시장 대상의 무차별 산성액 투척사건이 한꺼번에 벌어진 날, 모든 사건을 꿰뚫어 본 관전둬는 한번에 사건을 해결한다.

스번톈이 저우샹관과 바꿔치기 되어 있다는 진상도 기발하지만, 이를 밝혀내는 추리도 합리적입니다. 스번톈 탈옥에 징교원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리는 쉽지만, 작중 등장하는 번호표가 뜯겨진 죄수복,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산성액 투척 사건이 벌어진 시간과 저우샹관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상황, 응급처치에 대한 증언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가 중요한 추리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스번톈과 대면한 관전둬가 그를 옭아매는 장면도 아주 통쾌했고요.

무엇보다도 '인구밀집형 도시가 무대인 탓에 설득력이 생기는' 작품의 대표적인 예라 더 주목할만 합니다. 탈옥 해 봤자 더 큰 감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누군가 죽었을 때 누구라도 조그만 의심을 품으면 법망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홍콩만의 상황을 기본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홍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이지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홍콩 추리문학계의 높은 수준을 짐작케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작으로 꼽겠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스케일이 큰 만큼 영화화에도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영화로도 보고 싶네요.

"테미스의 천칭"

흉악범 스씨 헝제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은 스번성이 머무는 은신처 주위에 잠복한다. 그러나 일당이 도주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잠복 중이던 TT가 이끄는 경찰들이 그들을 체포하려 나서고, 총격전 끝에 범인은 모두 사살하지만 인질이 된 시민이 모두 죽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후 경찰내 내통자가 있을 것이라는 단서가 발견되고 사건을 지휘하던 가오랑산이 TT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소문이 퍼지는데...

홍콩 영화에서 봤던 악당과의 총격전이 유감없이 펼쳐지는 작품. 봉쇄된 주상복합(?) 건물에서의 활극 묘사는 일품이었어요

추리적으로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TT가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라는 진상도 놀랍지만 동기가 합리적으로 그것을 끌어내는 추론 역시 타당하거든요. 몇몇 사소해보이는 대사에서 단서를 끌어내는 관전둬의 활약이 빛을 발하거든요. 아울러 전작의 스번톈과 필적하는 강적 TT와의 두뇌 싸움도 돋보였습니다. 무선 발신 시간과 총격전 시간을 조종하는 트릭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고요.

그러나 문제도 명확합니다. 관전둬의 추리에 증거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때문에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벌이는 관전둬의 협박(?)이 그리 와닿지 않기도 합니다. TT가 총탄이 바꿔치기 당했다고 우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빌려온 공간"

염정공서에 근무하는 영국인 그레이엄 아들 유괴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염정공서가 홍콩 경찰의 부정부패를 캐고 있었기에 경찰 조직과의 마찰이 있다는 당시 홍콩의 시대적 배경을 작품 전편에 깔고 있습니다.

유괴물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지금 보아도 흥미진진한 몸값 전달 방법이 그 백미입니다. 지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금괴로 바꾸라는 지시를 하는 것, 혹시 모를 탐지기를 무효화하기 위해 수영장 잠수를 지시하는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작중 시대에 적합했던 수사 현실을 반영한 완전 범죄 계획이라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범인이 몸값 회수에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인 주머니의 지퍼 고장 역시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홍콩에 실존하는 여러가지 공간을 활용하여 현장감이 높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아서, 관전둬가 사간의 진상을 깨우치는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될 뿐더러 반전도 괜찮습니다. 유괴는 조작된 것이었고 실제로는 집 금고를 열고 서류를 훔쳐내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는 것인데,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린 좋은 동기였습니다.

허나 경찰이 연류되어 있었다면 더 현실적이고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운과 우연에 많이 기댄 계획이니까요. 특히 리즈는 상근 유모이기에 열쇠를 복제할 기회는 찾다보면 분명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사건을 키운건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와 같은 이국(異國) 독자들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아울러 관전둬가 직접 서류를 훔쳐낸 뒤 벌이는 공작 역시도 이해는 잘 되지 않더군요. 차라리 유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밝히고 주모자를 체포해 나가는게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유괴 자체는 굉장히 잘 그린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빌려온 시간"

1967년, 영국 정부와 홍콩인의 충돌 및 좌익 인사들의 테러 등이 벌어지던 시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사는 화자인 "나"는 "아칠"이라는 순경과 함께 좌익 테러리스트들의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한 모험에 뛰어드는데...

1편의 악당 탕 아저씨가 화자로, 관전둬가 아칠이라는 순경으로 등장하는 작품. 화자인 "나"의 추리력과 활약이 비상해서 이 친구가 관전둬인지 알았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여튼, "1번"이라는 말 자체에 주목하여 '페리선에서 영국인이 타지 않았다'는 답변을 통해 1번 차만 페리로 옮기며 운전사는 중국인이었다는 상황 설정이 돋보입니다. 당시 홍콩 거리를 차와 오토바이를 활용하여 질주하는 묘사 등에서 스케일 큰 모험 활극 느낌이 들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크게 눈여겨 볼 부분이 없고, 시대 상황에 따른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딱히 감흥은 없었던 평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10/18

악마의 증명 - 도진기 : 별점 2점

악마의 증명 - 6점
도진기 지음/비채

소설쓰는 판사에서 소설쓰는 변호사가 되신 도진기 작가의 신작 단편집입니다.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 뒤 소갯글에 따르면 주로 초기작들입니다.

익히 알려진 작가의 이력만 보면 한국의 존 그리샴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작품들도 재판 과정이 핵심이거나, 아니면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법의 맹점을 파고 드는 이야기가 많고요. 그런데 이 단편집 수록작들에서는 "정신자살"에서는 보여주었던 변격물적 취향이 많이 엿보입니다. 몇몇 작품은 김내성의 직계 후예라 해도 좋을 정도에요. 김내성의 본격물이 아니라 "비밀의 문"에 수록되었던 범죄 추리 소설, 또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작품들 말이지요.

물론 작가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한국 추리 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퍼즐러로서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본격 추리물이 없지는 않습니다. 검사이자 변호사인 호연정 시리즈 2편, 그리고 "구석의 노인"이 그러합니다. 작품들 모두 법정 미스터리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도 괜찮고요. "킬러퀸의 킬러"도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 4 작품은 김내성의 범죄 추리, 환상 소설과 유사하거나, 장르를 특정짓기 어려운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변격물적인 취향은 영 아니다 싶었어요. 몇몇 작품은 습작 수준이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을 전문가적인 지식을 더하여 써 낸다는 측면에서 항상 응원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시작과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만, 전체 수록작의 평균 완성도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그래도 일부 작품은 괜찮은 만큼,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악마의 증명"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철은 부대찌게 집을 털려다 우발적으로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경찰에 순순히 체포된 그는 검사 호연정에게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 모든 것을 뒤집는데... 

모 드라마에서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었던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범인이 쌍동이이고,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을 따라갔다면 표절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진기 작가 정도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만큼 설득력있게 그려내기가 힘든 소재니까요. 물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법리적인 이론을 바탕에 둔 아이디어라 표절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게 문제겠지만요. 여튼, 표절 시비가 있을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호연정 검사가 박철 기소에 성공하는 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을 피해가기 위해서 첫번째 사건 기소를 허위로 작성했다는게 핵심인데, 일반 독자가 볼 때 무리수였던 탓입니다. 박철이 법정에서 자백을 뒤집을 것이라는건 호연정 검사의 막연한 추측일 뿐, 명확한 것이 아니니까요.
꼭 이렇게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가져가야 했을지도 의문입니다. 법대생 박철을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결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데뷰작으로 이후 활약을 짐작케하는 좋은 소품이지만, 억지스러운 마무리는 아쉽습니다.

"정글의 꿈" 

노인 전문 요양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광수 노인은 오래전 경험을 토대로 밀림, 타잔 조각상을 만든 후 자신이 타잔이 된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광수 노인의 환상 묘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는 의학적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씁쓸한 결말인데 의학적 실험에 대해 깊이 파고든 것도 아니고, 딱히 특별한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미묘한 소품입니다. 습작 수준의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택"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호연정에게, 한 할머니가 딸의 죽음에 대한 보험금 수취를 의뢰했다. 딸 백해령은 손녀 현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손목을 메스로 그어 피가 전부 빠져나갔기에 보험사는 자살임을 주장하는 중이었다...

보험사에서 자살로 판단하여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호연정 변호사의 끈질긴 수사와 추리가 돋보입니다. 특히 작 중 중요하게 언급되는 '동기' - 살인이든 자살이든 물리 법칙에 맞는 설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동기'다. 동기라는 인과를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다. - 를 드러내는 과정만큼은 정말 괜찮았어요.

하지만 진상의 설득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차가 절벽에 걸린 상태에서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짜낸다는 극한의 모성애가 진상으로, 일종의 시소와 같이 무게 중심이 뒤로 이동하도록 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되는데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았거든요. 전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목을 메스로 그을 정도라면 최후의 순간까지 뭔가 다른 수를 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김전일"의 한 대사처럼(아마도 "비련호?"), 어떻게든 둘이서 함께 살아날 방법을 찾는게 최선이니까요. 결국 둘 다 죽어버렸다는 결말이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결말이라 씁쓸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일종의 불가능한 상황을 추리로 밝혀내는 작가의 특기는 잘 나타나있지만, 진상의 설득력이 약해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호연정 변호사 캐릭터는 마음에 든 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활약해 주기를 바랍니다.

"외딴집에서" 

백수로 미제 사건을 추적하는 취미가 있는 "나"는 우연히 가평군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을 목격하고 추격했지만, 그에게 되려 습격당해 정신을 잃고 마는데...

10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짤막한 꽁트로 1인칭 시점으로 연쇄 토막 살인 현장에 대해 자세하게, 잔혹하게 설명하는 것이 내용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흔해빠진 공포 영화와 다를바 없는 상상력에 기반한 묘사도 진부하지만, 마지막에 화자는 이미 죽어 목이 잘린 상태라는 것이 드러나는 반전은 뜬금없기 그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줄 여지가 거의 없는 습작으로, 이 단편집 수록작 중 단연코 워스트입니다.

구석의 노인 

개업한지 2년차 변호사 성호는 한 살인 사건을 수임하였다. 국밥집을 남편과 운영하던 강은심 여인이 남편을 죽인 스토커 장만녕을 살해한 살인 사건으로, 성호는 정당 방위임을 확신하고 변호를 진행했다. 강은심 여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의욕이 없었지만, 성호의 노력으로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성호는 사건을 방청한 '구석의 노인' 김옥선으로부터 의외의 진상을 전해 듣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법정 미스터리와 안락의자 탐정물이 결합된 이색작입니다. 강은심 여인이 정당 방위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성호의 활약으로 증명되는 부분이 법정 미스터리이고, 김옥선 노인을 통해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김옥선 노인 추리의 근거가 되는 단서들은 대체로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어서 본격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장만녕이 스토커로 오해받게 된 이유 - 공중 전화로 자기를 숨기고 연락을 했다는 등 - 가 사실은 둘이 몰래 사랑하는 사이었다는 추리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주 괜찮았어요. 재판 과정의 디테일이라던가, 정당 방위와 오상 방위의 차이점이 중요하게 언급되는 등 작가의 법률 지식이 돋보인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강은심 여인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법정이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전혀 언급되지 않는게 대표적입니다. 오로지 김옥선 여사의 관찰로 얻은 정보이며, 최후의 추리에서 소개되기에 독자는 이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하거든요. "형부에게 그렇게나 구박받고 살아왔지만.." 하는 식으로 사건을 의뢰한 강은심 여인 동생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게 보다 공정했을 겁니다.
추리도 비약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어요. 마침 사건 당일 반지를 선물받았다는 것은 작위적이며, 이 반지로 강은심 여인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었다는건 아무리 보아도 무리입니다.

아울러 장만녕, 강은심 커플의 계획 살인도 어설프기 그지 없습니다. CCTV 필름을 사건 후 회수할 생각이었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사건의 핵심 증거물이 될 CCTV 필름이 사라진걸 경찰이 과연 허투루 넘겼을까요? 이렇게 대충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지요. 차라리 가게 안이 아니라 입구 쪽에서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형식으로 재미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단, 추리적으로는 보완이 필요해 보여 감점합니다.

참고로 "미스테리아 1호"에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별점을 1.5점 주었었네요.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뫼비우스"

기차 여행 중인 민경에게 옆자리에 앉았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마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과거 108번에 걸친 기나긴 시간 여행에 대해 털어놓는데...

이색적인 환상 소설로 타임 슬립을 다룹니다. 의식만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타임 슬립 SF와는 차별화되고요. 주인공 정영한이 108번에 걸친 인생 반복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구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정영한이 타임 슬립을 하며 두 가지의 미련, 자신을 파멸시킨 악한 김광련과 이철환에 대한 원한과 자신의 실수로 헤어진 첫사랑 채희에 대한 회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게 결말이니까요.
"풍뎅이"로 상징되는 타임 슬립 이론도 꽤 괜찮습니다. 머리 속에 영상으로 그려질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뒷받침되어 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108번을 살아온 사람다운 독특한 의견이 눈길을 끕니다. 그건 바로 청춘의 방황이라면 차라리 발산하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가서는 지나고 보면 후회밖에 남지 않는다, 책 천 권을 읽으면서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여자 백 명을 만나며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지나고 보면 같고, 그 깨달음의 깊이도 다르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카사노바와 칸트가 같은 레벨이라는 뜻인데, 동의는 못하겠지만 특이하긴 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딱히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타임 슬립 자체가 아니라 정영한에 집중한 이야기 구조는 좀 단순합니다. 108번이나 인생을 되돌아 살아왔던 사람에게 남은게 첫 사랑에 대한 회환과 원수에 대한 복수 뿐이라면 좀 시시하잖아요. 복수를 포기하는 것도 딱히 설명되지 않고요. 저 같으면 복수를 하고, 마지막 기차를 타서 인생을 바꾸려고 했을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민경의 역할도 애매합니다. 정영한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풀어내려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왜 민경이라는 역할을 등장시켰을까요? 화자도 아니고, 딱히 이야기에 도움을 주는 역할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 끝에 영한이 정말로 사라져버렸다면, 이렇게 담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사람이 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이야기 완성도면에서 조금 아쉽네요.

"킬러퀸의 킬러" 

헤어디자이너 성희는 킬러퀸이라는 바에서 펀드매니저라는 피터 최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이후 장안일보 윤주현 기자가 살해당했고, 유력한 용의자로 피터 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윤주현 기자에게 발송된 메시지를 보낸 휴대폰 추적 결과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사건은 답보 상태에 놓이고, 윤주현의 로커룸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현금 다발이 발견되는 등 꼬여만 갔고, 결국 추리 소설을 쓰는 그의 아내 송지원이 직접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호구의 영원한 유행어,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를 뱉고 마는 성희였다.

이 단편집에서 재판이나 법조계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정통 추리물인 이색작입니다. 수준도 높습니다. 송지원이 입수한 정보는 모두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추리 역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덕분입니다. 남편과 동명이인인 리틀 윤주현에 얽힌 해프닝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단점이라면 윤주현이 사실은 아내도 모를 정도의 이중 생활을 수년간 벌였다는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꼬리가 밟혀도 진작에 밟혔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경찰이 "피터 최"의 행적을 제대로 쫓았다면, 결국 그가 윤주현 기자와 동일인물이라는 것도 밝혀졌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가끔 추리 소설을 읽다가 드는 생각인데, 작가들이 경찰력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본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미스테리아" 5에 수록되었던 단편입니다. 그 당시에도 리뷰를 작성했으며, 제 감상평은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링크만 겁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3/04/16

안락 탐정 - 고바야시 야스미 / 주자덕 : 별점 1.5점

안락 탐정 - 4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연작 단편집. 제목 그대로 의뢰인의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탐정이 등장합니다.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설정과 뒷 표지 소개가 그럴듯해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특기라 할 수 있는 기발한 설정은 여전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소거법>>이 대표적이에요. 왕따를 당하던 회사원 토코가 탐정에게 자기가 초능력자라고 밝힙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사라져"라고 하면 그 사람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사라진다면서요. 그래서 회사의 적(?)들을 없애나가다가 같은 능력을 가진 사원 야마히를 만나서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하는 상황에 빠진 뒤 탐정을 찾게 된 것이지요. 이를 여러가지 '인간 소거' 일화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는 의뢰인이 엄청 말랐을 거라는 분위기를 풍기지만 알고보니 200kg 정도의 뚱보였다는 반전이 꽤 좋았어요. 의뢰인에 대한 단서가 전무한데, 마른 사람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전개가 절묘한 덕분입니다. 다이어트 식품인줄 알고 먹었던게 알고보니 냉동 피자였다는 진상도 유쾌했고요.

그런데 역시나,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추리의 결과가 얼토당토하지 않아서 화가 날 정도입니다. 앞서 흥미진진하다고 소개해드렸던 <<소거법>>이 대표적입니다. 알고보니 토코는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는게 진상입니다. 회사 사람들 모두가 합심해서 장난을 쳤다는 거지요. 회사 밖에서 사라지라고 한 사람들은 모두 무시하거나 화를 냈다던가, 토코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는걸 알려주는 등 몇 가지 단서가 있기는 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진상의 설득력이 생기지는 않아요. 이런 장난을 합심해서 칠 정도로 한가한 회사가 있을리 없으니까요. 게다가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명이 없어져 업무가 늘어나고 심지어 조직까지 변경되는 상황에 처하면서까지, 심지어 여러 명 - 도코, 야마히 - 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합심해서 장난을 친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초능력이 실재할 수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긴 했어야 했겠지만, 그 답이 '장난이었다'니 맥이 다 빠집니다. 이래서야 제목이 무색할 정도죠.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기묘한 헛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이야기 <<모리아티>>에서 탐정이 알고보니 사기꾼이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건 역대급 최악의 결말을 다툴만 합니다.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지만 추리해내는건 척 했으며, 헛점들은 모두 탐정이 미리 알고 추리하는 척 했기에 생긴 오류들이었다는건데, 소설의 기본 설정 - 안락의자 탐정물 - 을 흔들 뿐더러, 설득력도 한없이 낮은 탓입니다.
일단 탐정이 이 모든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는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홈즈가 명탐정이 된 건 그가 사실은 범죄계의 나폴레옹 모리어티였기 때문이라는게 거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탐정이 추리한 사건은 그라비아 아이돌 스토킹 사건, 특정 회사에서 벌어진 장난, 다이어트 블로거에게 가짜 식품 배달 사건 등 거리의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모리어티가 저질렀거나 관여했음진한 큰 도난 사건같은 중범죄가 아니에요. 의뢰인들은 간판을 보고 찾아온 사람도 있는 등, 사전에 탐정을 알지도 못하고요. 심지어 경찰에 신고도 되지 않은 사건도 많습니다. 이를 모두 탐정이 뒤에서 조종했다? 턱도 없는 주장입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위해 일부러 탐정의 추리에 헛점을 만든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탐정의 추리에도 헛점이 있고, 이를 설명하는 추리도 설득력이 전무하니 양 쪽 모두 점수를 줄 수 없는 괴작이 탄생하고 말았네요. 이런 에필로그 형태의 결말보다는 처음부터 탄탄하게 이야기를 완성하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기발하다는 측면에서는 볼 만한 부분이 약간 있습니다만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18/06/03

스무고개 - 윤은조 : 별점 2점

삼촌의 집 관리와 포토샵 알바로 연명하는 백수 양여준에게 십년 전 '스무고개'로 연을 맺었던 PC 통신 동호회 당시 지인 '로매(로케이션 매니저)' 가 갑작스럽게 연락해왔다. 이유는 그에게 보내진 협박성 메세지 때문이었다. 과거 동호회에서 '총무' 라고 불리었던 양여준은 로매와 함께 동호회 경험을 되살려 사건 해결에 뛰어들었지만, 살인 사건과 로매의 실종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여준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아는 최고의 추리력을 지닌 동호회의 창조자이자 리더 '여고' 형 김남중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국내 최대,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 사이트 '하우미 (Howmystery.com)' 의 운영자이신 decca님이 집필하여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장편보다는 중편 길이의 작품으로 1, 2부 구성입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 전문가가 쓴 작품답게 현대물이지만 여러모로 고전 본격물 느낌이 강한게 특징으로, 단서들이 대체로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1부 관찰 놀이" 은 양여준의 설명으로 여고형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과 동일한 방식입니다. 모든 정보가 탐정과 독자에게 거의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음은 물론이고요. "2부 탐정 놀이" 는 양여준과 로매가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흐름에 맞춰 함께 추리를 하는 방식이라 조금 다르지만, 공정성 측면에서는 비슷합니다.

이렇게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를 기쁘게 만드는 내용 외에도 오래 전 PC 통신 시대를 무대로 한 핵심 설정과 인간 관계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어 반갑더군요. 특히나 작 중 PC 통신 동호회의 주요 활동이었던 '관찰 게임' 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의뢰인 분석을 현대적으로 변주했다는 점에서 고전 본격물의 향취가 한껏 느껴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놀이에 가까운 여흥으로 가능한, 설득력넘치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입니다. 이 관찰 게임만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어도 참 좋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이야기 자체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고 작위적이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1부 "관찰 놀이" 부터 이야기하자면, 양여준의 삼촌이 유명한 추리 소설 수집가로 모든건 그의 집에서 희귀본을 훔치기 위해 로매가 벌인 연극이라는게 진상의 설득력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집의 번호를 카메라를 설치하여 알아낸다? 차라리 총무의 행동을 관찰하여 집을 비울 때 잠입하여 책을 훔치는 게 상식적입니다. 양여준이 경찰에 신고만 하면 그 집이 로매의 여친 김미영의 집이라는게 밝혀질테고, 그렇다면 로매가 엮여 있다는게 바로 드러날테니까요. 그리고 삼촌이 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더라도 유력한 용의자가 로매가 될 게 뻔하다는 것도 문제에요. 아무리 동떨어진 사건이라도 두 사건을 엮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범인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까지 드러내고 무언가 하려고 한다는건 사실 이해하기 힘들어요.

2부 격인 "탐정 놀이" 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과거 여고형의 실종에 대한 진상은 설득력이 빵점인 탓입니다. 우선 아파트 밖에 나간다고 하고 실제로는 밖에 나가지 않고 사라졌다면 아파트 안에 있으리라 생각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왜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어차피 윗 층으로 가서 범행을 저지를거라면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면 되지 왜 줄사다리를 썼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CCTV 때문에? 그렇다면 올라가 사다리를 설치한 여고형의 누님은 찍혔을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 범행을 위해 로매와 총무를 끌어들인 것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관찰 놀이" 와 마찬가지로 경찰에 신고했다면 큰 일이 났을테고, 설렁 그렇지 않아도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이상한 사람에 대해 행방을 묻고 다녔나는 증언을 경찰이 접수하면 역시나 검거는 시간 문제였을 겁니다. 살인까지 저지르려는 인간이 이러한 위험 요소를 구태여 외부에서 불러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가 않습니다.

유괴 사건에 대한 복수라고 하는 동기도 어설픕니다. 일단 범인이 유괴로 소소하게 먹고 살았다는 설정부터 문제에요. 유괴 사건은 대서특필하고 범인을 검거하고야 마는, 미제 사건일 경우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다양한 매체에서 기억에서 잊혀질 때 쯤 다시 드러내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빵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피해 아동 한명이 사망까지 한 범행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차라리 체포된 후 십 수년의 징역을 마치고 나온 범인에게 복수했다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설득력은 더 높았겠죠. 아니면 이 때 범인이 문을 열었을 때 기절 시키고 그의 어린 아들을 유괴하여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고형과 그 누나가 키우고 있었다던가요. "1부 관찰놀이" 에서 총무가 고등학생 아들을 보고 놀라는 식으로요.

이렇게 정작 추리물로서는 조금 미흡하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판타지나 무협 등 타 장르와 이종 교배한 괴이한 추리물이 범람하는 현 시점에서 보기 드문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고 추리 애호가로서 충분히 즐길거리도 많다는건 분명하니 추리물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지금은 네이버에서 무료로 읽으실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냥 PC 통신 시절, '관찰 놀이' 으로 소소한 추리를 즐기던 멤버들이 나이가 들어 또다시 뭉쳐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가벼운 일상계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관찰 놀이 아이디어가 그만큼 괜찮았기 때문인데, 작가님이 이 IP를 활용한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고 하니 후속작을 기대해 봅니다.

2006/10/08

4개의 시계 (The Closcks) - 애거서 크리스티 / 황해선 : 별점 2.5점

4개의 시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셰일라 웨브는 캐븐디시 비서용역 사무실에서 일하는 속기 타이피스트. 어느날 손님의 요청으로 윌브러햄 크레슨트가 19번지라는 낯선 주소로 출장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해양 생물학자이지만 영국 정보원으로 비밀리에 일하는 콜린 램은 크레슨트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주의 조직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 뒤, 사건을 맡은 하드캐슬 경부의 조력자로 사건에 뛰어들지만 집 주인이 장님인 맹아학교 교사라는 것, 피해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밝혀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한시간 빨리 가도록 조작된 4개의 시계 등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신의 친구인 에르큘 포와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은 묘하게 크리스티 여사님 책만 열심히 읽게 되네요. 이 작품은 여사님의 54번째 추리 장편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화자로 "콜린 램"이라는 배틀 총경의 아들을 내세워 완전한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콜린 램 혼자 행동하고 관찰하여 수집한 정보를 포와로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서 포와로는 그의 말 그대로 "안락의자 탐정" 역할만 수행하고 있으며, 독자 역시도 포와로와 똑같이 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에 진정한 독자와의 추리 대결이 가능한 방식인 것이죠. 그야말로 정통파 고전 미스테리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나 할까요? 트릭 역시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초보자도 쉽게 수긍하고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그렇지만 정교한 여러 장치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제일 중요한 첫 사건 이후에도 관련된 살인사건이 2건이나 더 발생하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가 계속 유지되며 콜린 램의 정보요원으로서의 활약도 약간이나마 사건과 교차하여 벌어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도 뛰어난 편이고요.

그러나 제목이기도 한 "4개의 시계"가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은 큰 맹점이라 생각되네요. 셰일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과정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까웠기에 더더욱 불필요한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또 트릭 자체도 분명 괜찮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상황묘사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진상을 결론에서 터트리는 방식이라서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면 질 수록 단서를 숨기기는 쉬웠겠지만 여사님 내공이라면 보다 이야기를 압축하면서도 핵심만 짚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는 길어서 늘어지는 감이 있었거든요. 별반 중요치 않은 "비밀 정보요원" 콜린 램의 활약을 부각시킨 탓도 크겠지만.

그래도 역시 고수의 범작은 범인의 걸작과 맞먹는 법이죠.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닐 뿐더러 몇몇 단점들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와 정교한 트릭이 곁들여진 두뇌싸움이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12/05

Q.E.D - 38 / 3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 2점

Q.E.D 큐이디 38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허몽

영화 제작자 쿠세 살인사건에 언제나 그렇듯 우연찮게 발을 들여놓게 된 토마와 가나 커플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영사기를 이용한 트릭이 사용되지만, 작중에서 언급되는 대로 돈 한 푼 투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신선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실적이지 못한 탓입니다. 영사기를 이용하여 영상을 창문에 투영하는 것, 그리고 조명에 의한 일종의 거울 현상을 이용한다는 것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세세한 부분에서 설명을 좀 더 해 주었더라면(예를 들면 창문에 시트지를 발라놓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좋았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토마가 용의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각자 처한 현실에서 동기를 추리해 범인을 알아낸다는 착상은 괜찮았고, 망한 영화에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심리 묘사가 그럴듯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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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입니다. 18세기 초 일본 에도의 아이사라는 소녀가 일본에서 가우스, 갈루아보다 먼저 대수에 대한 이론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현재 시점에서 토마는 아이사가 남긴 사당의 수수께끼를 풀어냅니다. 당연하겠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알아냈을지도 모른다"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지요.

재미는 있고, 특히 앞부분의 수학(화산) 문제도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정작 핵심 내용은 100%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제가 수학에 약한 탓입니다.

수학 쪽에 많이 치우쳐 있는 이야기라 평가하기가 좀 난감한데, 별점은 3점입니다. 가상 역사물, 수학 학습물, 추리물 어느 쪽으로 보아도 평균 이상은 되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현학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하고요.

Q.E.D 큐이디 39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어번힐즈 6호실 사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낡고 별 볼 일 없는 맨션 어번힐즈의 관리인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경찰은 사인을 자살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이후 관리인의 손녀와 친구인 가나가 토마를 끌어들여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애초에 시체가 발견된 6호실이 밀실도 아니고, 맨션 안을 돌아다닌 것은 토치키밖에 없는 정황이라 범인이 너무 뻔합니다. 그런데 예상 가능한 전개를 뒤집어 희한한 일상계 미스터리로 탈바꿈시킨 작가의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동기와 진상의 의외성이 확실히 존재하는 기발함이 좋았어요.

다만, 왜 주위에 더 싼 집을 물어볼 때 6호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는지, 구태여 6호실을 통해 시체를 끌어올려 자살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점이 문제입니다. 웬만한 경우에는 자살이 아니라 단순히 시체만 발견되어도 집값은 떨어질 텐데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조금 더 설득력 있는 단서를 보강했더라면 정말 괜찮은 일상계 미스터리 수작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다소 아쉽습니다.

그랜드 투어

NASA에서 보이저호를 개발했던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이오 교수가 은퇴 기념 파티를 열고 제자였던 토마와 로키 일행을 초대한 뒤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 굉장히 묵직한 내용으로, 보이저호 발사에 필요했던 "그랜드 투어"와 "스윙바이 항법"이 전개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Q.E.D 특유의 학습 + 본격 추리물입니다.

35년 전 이오 교수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인 추리적인 부분은 당시 인물들의 증언에만 의존하는 안락의자 탐정물 스타일인데 제법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비약이 심한 점이 있지만, 큰 흠은 아니에요.

그러나 드라마 부분은 문제입니다. 교수 아내의 불륜은 가정을 돌보지 않은 교수에게도 책임이 있고, 교수의 자살 소동과 복수를 다루는 전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쇼를 벌이는 이유 자체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토마 일행을 불러모은 이유도 합리적이지 않고요. "자살"을 증명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토마 일행이 없더라도 친구들과 목격자 증언만으로 충분히 자살로 성립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확실히 약했던 에피소드인데, 후속작에서는 좀 더 힘을 내 주었으면 합니다.

2016/08/03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10 - 이시구로 마사카즈 : 별점 3점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0 - 6점 이시구로 마사카즈 지음/서울문화사(만화)

"탐정 훈령 하나! 사람을 보이는 걸로 판단하는 녀석은 탐정 실격이다!"

아 더워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더운 날씨네요. 책이 손에 잘 안 잡힐 정도로요. 그러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몰아쳐 본 만화입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정발이 띄엄띄엄이라 중간에 흥미를 잃었었지요.

그런데 읽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단순히 일상계 개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추리물'의 성격도 강하고 수준 또한 높은 덕분입니다. 확실히 "외천루"의 센스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더라고요. 온천 여행을 갔다가 술 취한 호토리와 타츠노 방에 갇힌 사나다의 탈출 작전, 사나다의 추억 속 국수 찾기, 설녀가 찾는 남자의 정체, 호토리의 외가댁에서 일어난 수로가 넘친 이유 등 일상 속에 추리 속성을 녹인 일상계 에피소드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그냥 보면 별거 아닌데 묘하게 추리를 포함시키는 전개는 이게 바로 궁극의 일상계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물찾기 이야기, 학교 불가사의 탐험이라든가 호토리가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전통적인 추리물도 좋습니다.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의 작품들도 괜찮고요.

다른 장르문학 속성(호러, SF 등) 작품들도 기본 이상이며, 의외로 진지한 이야기들도 상당합니다. "사람은 추억이 뭉쳐진 거다. 추억이란 엄청 크다. 그렇게 커다란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가끔 추억이 늘어가는 것이 벅차다."라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작가의 스펙트럼이 정말 광범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네요.

그 외에도 미스터리 마니아인 호토리가 새 책을 읽기 전 하는 행동들 - 추천문에 선입관을 갖지 않도록 띠지를 벗기고, 스토리의 흐름을 인식할 수 없게 차례를 건너뛰고 표지로 감싼다 - 라든가, 추리 작가 '카도이시 우메카즈'이기도 한 시즈카 언니가 호토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고자 한다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입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창작자로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던 것 같네요.

아울러 이를 뒷받침하는 꼼꼼한 작화 역시 볼거리입니다. "외천루"보다 디테일한 묘사들을 선보이는데 실력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대로 완결되지 않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너무 뻔한 청춘물 스타일의 이야기들로 조금 감점하지만 장점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국내 시장에서 잘 먹힐만한 내용은 아니에요. 일상계 학원 개그물로는 그럭저럭한 수준이지만 그 외의 에피소드들은 그 쪽 분야의 소양이 없다면 완벽하게 즐기기 어려운, 조금 매니아 취향의 이야기들이 많은 탓입니다. 물론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적극 추천하기는 여러모로 애매하네요. 이왕지사 잘 팔리지 않는다면 추리 에피소드만 뽑아서 별도의 애장판으로 재발매해주면 어떨까요? 아예 추리물로 홍보하면서 말이죠. 아니, 제발 그래주면 좋겠습니다!

2006/11/23

A 사이즈 살인사건 - 아토다 다카시 : 별점 3점

북오프에서 구입한 책. 저자 아토다 다카시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죠. 약간 로얄드 달 분위기도 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도 상당히 유명하나 국내에 소개된 것은 없어서 아쉽던 차였는데 우연찮게 북오프에서 발견하여 서슴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일어 원서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잡은지 1주일만에 겨우 대충이나마 다 읽게 되어 포스팅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탐정역의 캐릭터로 탐정이 "묘법사"라는 절의 주지승입니다. 즉, 스님 탐정이죠.(만화 "잇큐"도 있지만 워낙 허접한 만화라...) 작중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시체 때문에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것은 형사- 스님이 똑같다라는 점이 와닿기도 하네요. 어쩐지 "브라운 신부"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단지 직업이 독특한 것에 그치지않고 작품이 진행되어 나가면서 하나씩 성격과 매력이 드러나는데 세속의 여러 풍습과 문화에 굉장히 밝고 술과 고기도 즐기는 괴승으로 주인공 형사와 바둑을 두며 선문답 형식으로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는 설정이 이색적이고 새로왔습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살아있는,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성격 역시 딱 제 스타일이더군요. 한마디로 이런 독특한 탐정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이 스님이 바둑친구이자 형사인 사사무라가 미해결 사건을 들고오면 사건 이야기를 듣고 추리하며 바둑을 둔다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 추리물로 추리가 잘 풀리면 바둑이 강해진다는 디테일도 좋고 연재 당시의 계절과 세월의 흐름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또한 트릭들 역시 본격에 가까운 정통적인 퍼즐 미스터리라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트릭에 큰 무리가 없으며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재구성도 꽤나 합리적이었고요.

물론 스님이 던지는 질문과 그것을 통해 추리를 이어나가는 과정의 설득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리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선문답으로 추리를 진행한다는 설정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용의자 중 이과대학 출신의 인물은?" 이라는 질문을 "용의자 중 가장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이라고 물어보는 식이니까요. 너무 추리물에 어울리게 빙빙 꼬아 놓았다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대체로 작품 모두가 단편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이야기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결론내리자면 아토다 다카시라는 작가의 재발견이랄까요? 기존에 많이 접했던 섬뜩한 느낌의, 또는 기발한 상상력의 중단편보다 저는 이 추리 단편들이 훨씬 마1음에 들었습니다. 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제 허접스러운 일본어 실력으로도 독해가 가능할 정도로 짤막짤막한 대사들로 구성된, 짤막하게 압축된 작품들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의 베스트는 트릭이 절묘한 표제작 "A 사이즈 살인사건", 그리고 기묘한 상황과 설득력 있는 트릭이 잘 부합하는 "2LDK 개미지옥" 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 번역해보고 싶네요.

그런데 문예춘추사 문고본인데 한자에 독음이 달려 있지 않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을 잘 알아보기 힘들더군요. 아쉽...

PS : 무려 24년전에 발간된 책이긴 하지만 단돈 2천원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북오프 만세!)


1. A 사이즈 살인사건 :
호텔 뒷편 저수조에서 젊은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인적이 뜸한 곳이며 동기 등을 본다면 여자가 속해 있던 학생 오케스트라 멤버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과도 같은 상태.
표제작으로 사사무라가 묘법사에 바둑을 빙자한 사건 의뢰를 하는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관련된 설명이 조금 길게 실려 있긴 하나 무리없이 깔끔하게 흘러갑니다. 무엇보다도 트릭이 상당한 수준이며 정통적인 방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단, 제목이 내용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트릭과 별 상관없는 것이라 약간 맥이 빠지긴 합니다.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원제였던 "A 컵 살인사건" 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 어쨌건 좋은 작품. 별점은 3.5점입니다.

2. 2LDK 개미지옥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 돌아오는데 모르는 남자가 알몸으로 욕조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남자는 신혼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인물.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 되었는가?
모르는 남자가 집 욕조 안에서 죽어 있다...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하나 사건 자체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인 작품. 트릭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이 남자를 살해하는 과정의 재구성이 정말 딱딱 들어맞거든요. 딱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경찰 수사로도 충분한 내용이었다는 것인데 사사무라가 너무 스님에 의존하는 것 같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3. 구두와 미약과 3인의 여자
한 남자가 독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결혼했지만 3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플레이보이. 3명의 여성을 조사하지만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동기도 명확하지 않다. 스님은 그 남자의 넥타이와 구두에 주목하는데...
독살 이야기인데 깔끔하게 전개되고 스님의 선문답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진상이 정말 의표를 찌르는 것이라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좀 시시한 편이라 약간 소품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4. 이중 인격의 죽음
한 기업 기숙사의 가장파티에 손님으로 참석했던 남자가 창고에서 목을 매단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로 보이지만 사사무라 형사는 자살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이 아닐까 생각하나 유력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 그는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묘법사로 찾아온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살인의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이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이 작품은 그러한 맹점을 잘 파고들은 괜찮은 단편입니다. "가장파티"라는 특정 상황을 이용한 효과적인 트릭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5. 맨발로 천국에
한 남자가 맨션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러나 사사무라는 죽은 남자가 구두를 정돈하지 않고 엉망으로 해 놓은 점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투신 자살할 때 왜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해 놓는가? 라는 것을 주제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이 명제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 트릭이 약간 비현실적이고 스님의 선문답 물음의 하나인 "비와호" 관련 질문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아 아쉽더군요. 너무 문답을 어렵게 만들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인달까요? 그래도 작품은 하나의 단편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고물취향의 사체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한량 대학원생이 자기 방에서 화약으로 머리 반쪽이 날아간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폭발을 일으킨 흉기는 없는 상태. 용의자도 애매한 상황에서 사사무라는 다시 묘법사로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문의하게 된다.
이 단편은 일종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장치의 조잡함은 둘째치고서라도 우연(?)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흉기를 숨기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좋았지만 사소한 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많이 처져 보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7. 벛꽃잎의 미로
황실과 친척관계인 명문집안에 협박장이 날아온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긴장한 경찰은 사사무라를 비롯한 형사들을 수사에 투입한다. 그러나 협박 자체 부터가 애매할 뿐더러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사사무라는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털어놓고 추리를 부탁한다.
소품입니다. 몇통의 협박장만 가지고 이야기가 이루어지거든요.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소재이기에 공감이 많이 가더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8. 하프-문 살인사건
초등학교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나 형편없는 실력으로 학부모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독신 여성. 사사무라는 결정적 단서가 포착되지 않자 다시 묘법사로 찾아간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트릭이 쓰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별로 전해주진 않고 오히려 주지스님이 본사로 영전하게 되어 작품이 마무리 되는 시리즈의 최종장적인 설명이 더 중심인 듯 싶네요. 그래도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고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깔끔하며 합리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5/22

요리장이 너무 많다 - 렉스 스타우트 / 김우탁 : 별점 3점

요리장이 너무 많다 - 6점
렉스 스타우트 지음, 김우탁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국내에 소개된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는 딱 3편이 있습니다. "독사", "챔피언 시저의 죽음", 그리고 이 "요리장이 너무 많다"죠. 예전에 읽었었지만 옛 기억을 되살릴 겸 다시 손에 들고 읽게 된 작품입니다.

스토리는 무척 간단합니다. "전설의 요리사 15명"이 주최하는 모임에 네로 울프가 옛 친구인 요리사 마르코 뷰크식에 의해 초대되어 "카노와 수퍼"라는 휴양지 (여긴 대체 어디?)로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정기모임에서 요리사 13명 (2명은 사망하여 공석인 상태) 은 2명의 새로운 멤버도 선발하고 서로간의 친목을 다지는 그런 행사가 될 예정이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리사 중 한명인 필립 래스지오가 살해된 것이죠!
이 래스지오라는 인물은 경쟁자의 제자를 빼앗고, 아내를 빼앗고, 직장을 빼앗은 요리계의 무법자? 공적? 뭐 하여간 그런 존재였기 때문에 죽어 마땅한 그런 작자로, 앞서 말한 강력한 동기를 지닌 3명의 요리사 중 한명인 헬로메 벨린이 유력한 용의자로 곧바로 체포됩니다. 그 다음에 이기주의자 네로 울프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그러나.... 네로 울프 시리즈의 대표작이긴 한데 추리적으로 높이 평가하기는 좀 어려운 작품이긴 합니다. 일단 사건이 딱 하나뿐이라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끌어나가는데에는 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기도 하고요. 또한 중간에 몇개의 증언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들의 혐의가 거의 대부분 벗겨질 뿐 아니라, 실제 범인을 확정하는 마지막의 추리쇼도 결국 "추리"가 아니라 "수사에 의한 단서"를 통해 범인을 잡아내기 때문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범인의 정체가 아주 비합리적인건 아니지만 조금 반칙으로 보였던 것도 아쉬웠고요.
즉, 단서의 제공은 공정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 자체는 드러나지 않기에 정당한 트릭물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이라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네로 울프의 독무대이기에 무시할 수 없는 재미가 넘칩니다. 이기적인 모습은 물론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지구가 자기를 위해 돈다고 믿는 네로 울프의 캐릭터가 곳곳에서 작렬하니까요. 헬로메 벨린의 걸작 요리인 "소시스 미뉴이"의 레시피를 탐내는 네로 울프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결과까지 이어지는 과정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네로 울프의 모습은 정말이지 굉장히 웃깁니다. 또한 조수인 아치 굿윈의 톡톡튀는 재담과 둘 사이의 만담과 같은 네로 울프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전개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수 있습니다. 왓슨 역의 신기원을 이룬 뻰질뺀질하고 느물느물한 조수 아치 굿윈의 캐릭터는 정말이지 읽을때마다 재미있단 말이죠^^

그리고 수사과정과 증언이 중요하게 쓰이는 전개, 팜므파탈과 같은 여인이 등장한다는 것 등이 하드보일드를 많이 연상시키는데, 주인공이 안락의자 탐정의 대명사인 네로 울프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기발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블랙 코미디같은 매력도 더 잘 살아나는 것 같고요.

앞서 이야기한 단점이 약간 있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독사" 보다는 낫고, "챔피언 시저의 죽음" 보다는 못한데, "독사"의 경우는 번역 문제가 더 큰 만큼 평균적인 재미는 보장한다고 할 수 있겠죠.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특히 네로 울프의 매력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덧붙여, 요리사와 요리가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쓰이기에 미식가인 네로 울프의 모습이 굉장히 잘 드러날 뿐 아니라 요리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도 수준급이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혹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레시피 소스의 "네로 울프 식 요리들" 을 한번 참고해 보셔도 좋겠네요. 저는 포기했습니다.... 미식가인 네로 울프가 절찬하여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궁금한 "소시스 미뉴이" 레시피가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원서와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책에는 조리법이 나와있다는데 아직 못찾았습니다. "소시스 미뉴이"의 스펠링이 뭘까요?

PS : 네로 울프에 대해 궁금하시면 여기를 참조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2009/12/07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해외편 - 본격물 목차 소개

이전에 읽었던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 일본편" 에 이은 해외편입니다. 형이 구입했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죠^^ (땡쓰~)

무려 100편이나 되는 작품이 총 7편의 큰 주제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본격물, 두번째가 하드보일드, 세번째가 경찰소설, 네번째가 법정 미스터리, 다섯번째가 서스펜스 스릴러, 여섯번째가 모험 & 스파이물, 일곱번째가 괴기환상 & 패러디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리뷰 전에 이 중 본격물부터 먼저 간략하게 정리해서 목차만이라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읽은 것은 적색 (그중 리뷰가 있는 것은 링크), 번역 자체가 안된 것은 녹색, 번역되었지만 땡기지 않거나 절판 등의 이유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파란색입니다. 총 30편 중 6편이 번역되지 않았고, 남은 24편 중 4편을 읽지 않았으니 84% 독파니까 나름 선방한 편이군요. 나머지도 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미스터리라고 한다면 본격물! 저릿저릿한 무서움을 만끽해라!
1.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에드가 알란 포우 - 모르그가의 살인
2. 영국 미스터리의 기념비적 대작 - 월장석

3.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홈즈 시리즈, 그 중 최고봉은 "바스커빌가의 개"
4. 준비된 의외의 비장의 카드! 실속이 빛나는 "구석의 노인"
5. "심리적 밀실" 스타일을 창출한 불후의 명저 "노란방의 비밀"
6. 소년의 꿈. 괴도 뤼뺑의 진면목이 떠오르는 "813"
7.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의 동심"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가짜다!
8.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킨 추리소설중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9. 크리스티와 인기를 양분했던 도로시 세이어스의 "나인 테일러스"
10. 일본의 여정 미스터리 붐에 불을 당긴 F.W 크로포츠의 "통"
11. 미국 미스터리 중흥의 시조. 회심의 역작 "그린 살인사건"

12. 30년간 베스트 원의 자리를 독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13. "세개의 관"으로 불가능범죄를 풀어나가는 놀라운 쾌감을!
14. 개성파탐정의 필두는 "독사"로 데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15. 변호사물의 원조 "기막힌 살인사건"은 최고의 유머 미스터리.
16. "본격단편"에 반드시 꼽히는 실력파 "9마일은 너무 멀다"
17. 안락의자 탐정의 고독한 자리를 지키는 브롱크스의 "엄마는 뭐든지 알고 있다"
18. 현재의 쥴리안 소렐이 더욱 숙달시킨 완전범죄.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
19. 전통과 참신한 모험소설의 융합이 호평받은 "사이먼은 누구?"
20. 사상 최저의 무능한 탐정이 책 속으로! "도버 4 / 절단"
21. 순도높은 영국 본격파의 맛. 레지널드 힐의 "뼈와 침묵"
22. 중후하고 고귀한 향기. P.D 제임스 "욕망과 음모"
23. 수많은 상을 모두 획득! 루스 랜들 "장미의 살의"
24. SF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펼쳐놓는 고도의 수수께끼 "흑거미 클럽 1"
25. 아 이런 방법이 아직 있었다니! 본격 팬들이 감탄한 "호그 연속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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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7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 - 토모이 히츠지 / 김선숙 : 별점 2점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 - 4점
토모이 히츠지 지음, 김선숙 옮김/꼼지락

수프가게 시즈쿠의 점장 아사노가 아는 사람만 아는 아침 영업시간에 방문한 손님들의 고민, 수수께끼를 풀어준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일상계답게 추리적으로는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큰 사건이나 수수께끼가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에피소드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에요. 그래서 설득력은 높지만 대체로 시시합니다.

추리보다는 시즈쿠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수프에 대한 묘사가 더 볼거리입니다. 뭐 하나 빼 놓기 어려울 정도로 맛있는 수프들이 연이어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묘사도 빼어나서 군침을 돌게 만들고요. 단순한 배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추리와 연관되어 등장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비너스는 알고 있다"에 등장하는 클램차우더가 대표적입니다. 작 중 시아니의 연인 호시노는 뉴욕에 유학했으며 토마토를 좋아하는 여성인데, 그녀가 본고장의 맛이라고 만들어 준 클램차우더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토마토를 넣어 만든 맨해튼 식이 아니라 크림을 넣은 보스턴 식이었습니다. 이 사소한 실수는 호시노의 거짓말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프들은 그냥 배경 묘사에 그칩니다. 조금 과하다 싶은 만화적인 설정들도 - 천상의 맛을 선사하는 훈남이자 탐정 쉐프와 인형같은 딸이라니! - 감점 요소고요. 아울러 추리적으로는 평균 이하인 탓에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후속권이 출간되면 읽어볼 생각입니다. 수프 묘사는 그만큼 독보적이니까요. 제가 수프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고 수프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거짓말쟁이 본 팜므"

광고 회사 무료 책자 제작 부서에서 일하는 리에는 어느날 명품 화장품 파우치를 회사에서 분실하고 말았다. 동료 누군가가 가져간게 확실하지만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가 파우치를 리에의 자리에 되돌려 놓은 뒤, 회사의 후배 하세베 이요로부터 까닭모를 미움을 받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아침 영업시간이 있는 수프가게 시즈쿠의 아사노 점장과 딸 츠유, 종업원 신야 군, 그리고 무료 책자 제작 부서의 리에와 상사 콘노 후미코, 동료 이노 가츠오, 신입사원 하세베 이요라는 주요 등장인물과 주요 설정이 소개되는 첫 작품입니다. 회사에서의 갈등, 그로 인한 위통에 시달리는 리에의 고민을 아사노 점장이 해결해주는 내용이지요.

추리적으로는 공정합니다. 아사노 점장에게 주어지는 단서는 독자와 동일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안락의자 탐정물인 셈입니다. 나이가 많은 후미코 편집장과 리에의 동료 이노가 연인 사이였다는 추리도 과감하면서도 그럴듯 하고요. 

아울러 추리의 시발점이 되는게 프랑스 요리인 '혀가자미 본 팜므'라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본 팜므의 뜻인 '좋은 여성, 좋은 아내'라는 말 때문에, 나이가 많은 후미코가 부담을 느끼고 결별을 통보한게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지요. 그 뒤 이노는 리에의 파우치를 후미코의 것으로 착각하고 가져갔다가 돌려 놓았는데, 돌려 놓는 모습을 본 하세베 이요가 리에를 질투하여 미워했던 - 이요는 이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 겁니다.
이 모든 건 독자에게도 이미 공개된 여러가지 정보와 단서 - 후미코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 후미코가 리에의 파우치에 관심을 가졌다 등 -를 통해 뒷받침되고요.

이 정도면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 기대와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너스는 알고 있다"

하세베 이요는 대학 시절 동경했던 선배 시이나의 실연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에게 수프가게 시즈쿠를 소개해 주었다. 시이나는 연인 호시노가 급작스럽게 종적을 감춘 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실의에 빠진 상태였다. 이요는 어떻게든 시이나의 기력을 되찾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데...

전편에서 등장했던 리에의 후배 하세베 이요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습니다. 시이나의 결벽증에 가까운 여성관에 캬바쿠라에서 일한 과거가 있는 듯한 호시노 묘사가 덧붙여지면 진상이 너무 뻔하니까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단서의 제공도 지나치게 정직합니다. 

앞서 요약 소개에서 말씀드렸던 클램차우더 수프와 호시노의 정체를 연결하는 전개는 좋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은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후쿠짱의 다이어트 분투기"

하세베 이요의 친척 후쿠짱 미츠바의 다이어트 과정이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후쿠짱의 몸이 이상하다는건 독자들 모두 알 수 있어서 추리적인 매력은 거의 없습니다. 섭식장애로 38kg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반전은 꽤 충격적이기는 한데, 이를 화장실 냄새(구토 탓)와 구토 시 위산으로 노래진 치아라는 단서만으로 설명하는건 역부족이었어요. 손등에 난 상처는 단서라고 할 수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아사노는 미츠바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독자는 이를 확인할 수 없기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후쿠 짱에게 계속 음식을 선물하는 지인들과 후쿠짱의 가족, 특히 동생 가나코와의 갈등에 대한 반전도 딱히 새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려"

리에는 시즈쿠에서 아침을 먹다가 반지 도둑으로 몰렸다. 결혼 전 밤새 놀고 가게를 방문한 3인조 중 반지의 주인 린이 화장실을 사용한 직후 화장실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범은 린의 친구 유리노였다. 

범인 유리노가 원추리 꽃에 반지를 숨겼다는 건 너무 뻔해서 추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기도 불분명하고요. 

그래도 딱 한가지, 유리노의 신발에 라유가 튄 게 단서가 된다는건 볼만했습니다. 그녀가 신발을 닦기위해 허리를 굽혔으며, 덕분에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는데 상당히 설득력있었거든요.

그러나 반지를 숨긴 동기를 행복해 보이는 친구를 질투했다는 정도로 설명한건 영 별로에요. 사건 직전에 세 명의 친구들이 만나서 밤새 놀았다는 설정이 있으니까요. 보통 이런 경우, 함께 놀더라도 밤을 세울 리는 없잖아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를 못 본채 하지마"

현재 : 리에는 쇼핑 중 츠유가 엄마를 만나는걸 목격하고 뒤를 쫓았다. 츠유의 엄마는 죽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츠유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휴대폰으로 누군가 통화하는 걸 보고, 시즈쿠를 찾아 아사노 점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과거 : 순경 아사노 시즈쿠는 아름다운 소녀와 그녀의 엄마라는 유즈키 아사코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소녀가 여러모로 위태위태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현재와 과거의 아사노 가족에 대한 두 편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됩니다. 현재는 아사노의 딸 츠유가 왜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와 함께 다니는지에 대한 이야기, 과거는 아사노 순경과 한 소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첫번째 이야기가 볼만합니다. 츠유가 만난건 엄마가 아닌데, 그 여자는 츠유의 엄마인 척 한다는 수수께끼를 정말 몇 안되는 주어진 단서로 풀어내는게 꽤 그럴듯한 덕분입니다. 그녀는 츠유의 친구 렌카의 엄마였다는게 진상이고요. 렌카를 꼬드겨 현금카드를 빼돌릴려고 했던건데, 정작 자기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일이 언제인지,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모두 까먹었다는 내용으로 실제로 있음직하다 싶어서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아사노 점장의 과거를 다룬 과거 이야기는 별로입니다. 소녀가 사실은 소년이었다는 반전은 기발하기는 하지만 새롭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 관계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아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어 보여요.
게다가 소년 아키라가 아사노 순경과 10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다는 전개는 진짜 난데없더군요. 제일 첫 에피소드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과 연결되기는 하는데 그렇게 공감가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이 이야기는 빼고 리에가 아사노에게 품은 연심을 확인한다는 정도로 끝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