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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오늘도 냠냠냠 1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늘도 냠냠냠 1 - 6점
조경규 지음, 방현선 사진/송송책방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유명한 조경규의 음식점 소개 만화. 한겨례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본인과 아내 등 가족인 점, 소소한 일상 이야기라는건 <<오무라이스 잼잼>>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러나 가족과 일상 이야기, 그리고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 <<오무라이스 잼잼>>과는 다르게, 가게와 주요 요리 소개에 충실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1권에서는 전부 17곳의 음식점이 소개됩니다. 내용은 연재물과 동일하지만, 만화에서 소개되었던 가게와 대표 요리 사진이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고요. 이런 점도 <<오무라이스 잼잼>>스럽네요.
맛집 소개 기준은 4화에 따르면
  • 자주 가는 식당
  • 가만히 있다가 문득 생각나 가곤 하는 집
이라고 합니다. 맛집을 알게 된 경로는
  • 아버지 어머니와 어려서부터 함께 가던 집
  • 친구,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집
  • 책, 잡지, 신문 등 종이에 인쇄된 정보를 통해 특히 20년 이상 오래 된 맛집 가이드북을 좋아함. 지금 없어진 집도 많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으면서 변함없는 음식을 내놓고 있다면 분명한 맛집이기 때문.
  • TV 보다가 못 참고 달려간 집
이고요.

이 기준에 걸맞게 오래된 가게가 대부분입니다. '태극당'과 '명동 교자'는 저도 친숙한 곳이에요. '김진환 제과점'은 학교다닐 때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곳이었는데 소개된걸 보니 반갑더군요 (식빵만 팔 때 가봤음). 여기 갔다가 근처에 있던 헌책방 '숨어 있는 책'에 들리는 코스가 딱이었지요.

안 가본, 모르는 가게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7화의 '무교동 북어국집'은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사골 육수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는 북어국이라니, 너무 맛있을것 같아요. 아래와 같이 밥 반공기에 계란후라이 반숙과 새우젓 조금 넣은 비빔밥도 신기했고요. 무슨 맛일까나.....


8화의 관훈동 솥밥집 '조금'은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서 전시를 관람했을 때 가 볼걸 그랬네요. 다음에 가족들과 꼭 찾아가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아쉬웠던건 저자가 자주가는 노포 위주라 주로 서울 강북 - 마포, 종로, 중구, 서대문구 등 - 에 위치한 가게가 많다는 점입니다. 다른 장소에 있는 가게는 압구정과 화곡동 두 곳 뿐이더라고요. 또 냉면집, 만두집과 탕국집이 많은 것(대략 10곳)도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쉬웠고요.
오무라이스 잼잼처럼, 인터넷 연재물로 접한 독자가 책을 따로 구입해서 읽을만한 가치도 찾기 힘듭니다. 고작 한, 두 페이지 추가된 사진만으로는 부족했어요. 16,000원에 180페이지에 불과한 가성비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좋은 정보들을 특유의 푸근한 만화로 알려주는건 좋았지만,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합니다.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6/18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 최혁곤 : 별점 2점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 4점
최혁곤 지음/시공사

서울 서촌에 자리한 서울 경찰청 내 '미수반'은 이미 일선에서는 물러난지 한참 된 동철수 반장이 이끌고 있는 조직으로, 미제 사건 수사반이 아니라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이라는 뜻이었다.
동철수 반장은 현장에는 거의 나가보지 못했지만 타고난 운과 인맥으로 지방경찰청장까지 무사히 마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경찰청 넘버 2인 경찰청장의 요청으로 기자 출신으로 특채 경찰이 된 박희윤, 경찰이었던 남편이 총격으로 사망한 뒤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바리 두 명의 부하만 이끌고 미수반 반장을 맡아 여러가지 사건 수사에 나서는데...


“문제없다네. 그래서 뭔가? 범인은 여럿인가? 명섭 군 알리바이를 깼는가? 그리고 나 말일세,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말이 있다네. 그 긴 세월을 경찰로 보내면서도 못 해봤던.”
"무슨?"
“범인은 이 안에 있다!"


국내 작가 중에서도 꾸준히 완성도높은 작품을 발표해 왔던 최혁곤의 신작. 제목의 동철수의 반장을 중심으로 '미수반'의 활약을 그려낸 연작 단편집입니다. 제가 접했던 작가의 전작은 심각한 범죄 스릴러 <<B컷>>이었는데, 이 작품은 유머가 가득하더군요. 이런 분위기로 시종일관 끝까지 달려주는 솜씨도 괜찮았고요.
무엇보다도 푼수 동철수 캐릭터가 최고였어요. 주위에서 흔히 봄직한 은퇴 직전 직장 상사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작가가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무능력한 상관과 유능하지만 떠벌이 몸종(?) 구도를 가진, 수많은 다른 버디 형사물 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되는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동철수가 능력은 없지만 착하고 의리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한국적인 설정을 제외하고는요.
또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아쉬웠습니다. 주인공들 이름도 동, 탁, 하, 사, 갈 등 희귀한 성을 써서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 목적이 불순하고 탁했던 '탁해서' 처럼 - 있어서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미수반을 만든 경찰의 No.2 이름도 '최태평'인데다가 핵심 주인공 박희윤 이름은 fuck you에서 따온게 분명해서 여러모로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감점 요소로는 그 외에도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거의 없다는 문제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추리적으로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수반' 이라는 조직명에서 <<미궁과 사건부>>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같은 정통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를 기대했는데, 실상은 헐리우드 버디 형사물에 가까운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추리 소설 애호가가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립싱크의 왕>>
가수왕 출신 가수 하필이 죽었다. 췌장암을 비관한 자살로 보였지만, 사망 당일 수상한 사람이 목격되었다는 제보 탓에 미수반이 투입되었다. 박희윤은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동철수의 좌충우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에 집중해서 결국 진상을 밝혀내는데...

하필의 돈을 노렸던 매니저, 부동산 문제가 있어서 거짓 제보를 한 동네 경찰 - 하필이 자택을 사후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해서 이를 막기 위해 - 등이 차례로 등장하여 사건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범인은 초반부터 등장했던 예능 프로 <<복면전설>>과 관련된 인물이었습니다. 하필 모창자로 잘 나가던 짝퉁가수 하필 3호는, 하필이 죽으면 저작권이 회수되어 먹고 살 길이 막힐걸 걱정한 탓에 그를 찾아갔다가 갑작스럽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하필 3호가 범인이라는게 정교하게 짜여진 전개를 통해 드러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필이 하필 3호를 만날 때 직접 커피를 대접하는 식으로 정성을 다했으며, 칼에 찔린 뒤 하필 3호를 위해 어떻게든 자살로 현장을 만들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첫 작품답게 설정과 캐릭터 소개가 많은데,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동네 영감같은 동철수와 진짜 실력자(?) 박희윤 컴비의 티격태격 좌충우돌이 재미나게 묘사되어 이어질 시리즈 후속작들에 대한 기대도 높여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새로운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한 여름 밤의 해혼식>>
박희윤은 주말에 동철수 친구 탁해서가 유명 시인인 아내 사채원과 이혼한다는 '해혼식' 참석차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 탁해서는 170만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주인으로 원래 대지주의 아들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80년대 이후 가문이 몰락했던 상태여서 고향에서 유일하게 남은 거처 혜화당과 갈대밭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해혼식을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해혼식 피로연 다음날, 탁해서는 노천탕에서 중상을 입은채 발견되었다. 실수로 미끄러 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박희윤은 현장에 탁해서의 가운이 없었던 이유를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해혼식 참석자들이 전날 밤 저수지 건너편에서 이상한 불빛을 보았다는게 밝혀지는데...


'해혼식' 이라는 소재가 돋보였던 작품. 대형 유튜버가 자신의 구독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땅을 이혼의 명소로 만들려고 했다는건 정말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추리적으로도 노천탕에 당연히 있어야 했을 '가운'이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는건 괜찮은 발상이었으며. 수상쩍은 용의자들로 군수 등을 등장시킨 것도 좋았습니다. 탁해서와 군수의 검은 거래라던가, 군수의 새 여자 친구 등 복잡한 인간 관계는 읽는 재미는 물론이고 동기로서도 충분히 설득력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외의 추리할 여지는 거의 없다시피하며, 진범의 정체 역시 당황스러웠어요. 진범은 탁해서가 혜화당을 올 때 탔던 택시 기사였습니다. 그는 탁해서가 유명 유튜버라는걸 모르고 택시에 태웠다가, 자기 얼굴이 유튜브에 업로드 될까봐 카메라를 훔치려 했다가 사건이 일어났던 겁니다. 기사는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범죄로 도주 중이었던 사기범이었거든요. 문제는 이런 내용을 독자는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다른 용의자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동기가 있다손쳐도 곧 선거를 앞둔 군수가 직접, 그것도 여러 명이 머무는 숙소에서 범행을 저지를 리는 없습니다. 군수의 새 여자 친구인 약사가 얼굴 노출을 꺼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명 유튜버 해혼식에 참석한만큼 설득력없는 설정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실버타운, 하드보일드 파티>>
동철수가 휴대 전화까지 두고 휴가를 떠난 뒤 복귀하지 않아서 애를 태우던 박희윤은 경찰청장 의 부름을 받았다. 알고보니 동철수의 휴가는 청장의 지시에 의한 잠입 수사였었다. 유명 정치인 차진구가 백세그룹이 만든 고급 실버타운 힐링 힐에서 연달아 괴한의 습격을 받았던 사건 때문이었다...

반골 성향으로 정치계에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스스로가 더러운 밀약과 검은 돈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차진구 캐릭터를 그려낸 묘사만큼은 좋았던 작품. 스스로만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먹은 꼰대의 전형인데다가, 그 꼰대가 나름대로 힘까지 갖추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외에 건질만한 요소는 없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으로는 완전 꽝이에요. 진상은 첫 번째 습격은 차진구가 과거 받았던 불법 자금건을 뒤집어 쓰고 죽었던 보좌관의 아들의 복수였고, 두 번째 습격은 차진구의 자해였다는 건데, 이를 보좌관이 독특한 성이었다는 것으로 알아낸다는건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를 경찰, 그리고 보좌관 아들의 취업을 도운 백세그룹이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물론 CCTV에 찍혔던 '맨발 축제' 참석자들을 통해 CCTV가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아냈다는건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문제는 이건 독자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다는 겁니다. 때문에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억지로 추리물을 만들기 위해 삽입된 단서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어요. 두 번째 습격이 차진구의 자해였다는 것 역시 전개를 통해 너무 뻔하게 드러났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서촌 냉면집 살인사건>>
서촌의 유명 냉면집 <행복 면옥> 사장이 목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요리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거액을 투자했던 레스토랑을 말아먹어 가족 사업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는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들은 오히려 미수반에 아버지가 가끔 밤마다 만나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 손님 정체를 알아내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아마도 세계 최초일, 냉면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추리 단편.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그것 뿐입니다.
전개부터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흥신소도 아니고, 아들의 부탁을 받아줄 까닭이 없잖아요? 냉면을 좋아하는 대통령이 밤에 몰래 가게를 찾아 왔을거라는 기대를 품고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는 아들 생각 역시 설득력이 낮아요. 배달을 안하기 때문에 냉면집에 몰래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데, 이보다는 대통령을 위해 몰래 배달을 했다는게 더 말이 되니까요. 라이벌이었던 이웃 <효자 면옥> 사장이 도와준 자살이었다는 진상도 너무 허무했습니다.

맛집에 대해 비판하는 아들의 독설은 나름 와 닿는게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봤자 집안 돈을 날리고 아버지까지 죽게만든 기생충의 변명에 불과해서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식당 주인이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게 손님과 소문 탓을 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차라리 경찰한테까지 반말이나 해 대던 아들놈의 비참한 말로가 잘 그려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나비 클럽, 미로 게임>>
미스테리아 5호에 수록되었던 단편을 이 작품 설정에 맞추어 개작한 작품.

그런데 아예 빼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동철수 반장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작으로서의 가치는 한없이 낮은 탓입니다. 차라리 박희윤이 경찰이 되기 전 일화였다고 소개하며 수록했다면 개작하는 수고는 덜었을텐데 말이지요.
개작된 결과물도 좋다고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박희윤은 경찰인데 왜 갈호태가 나서서 예전 인맥을 이용해야 했을까요? 괜한 억지만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만, 1.5점에 더 가깝습니다.

<<녹슨 총알이 지나간 자리>>
주바리 선배 남편 사건 수사를 부탁받은 박희윤은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고 경장에게 신분을 속이고 접촉했다. 고 경장은 유력한 증거라는 필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숨졌고, 필름을 가지고 도주하던 박희윤도 위기에 처하는데...

이십여년 전 사건에서 주바리 선배 남편이 총에 맞아 죽었던 사건 진상은 현재의 신아그룹 이사장이자 당시 여덟살이었던 아이가 떨어진 총을 들어 경찰을 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장 가족을 협박하던 운전사를 경찰이 사살했는데, 아이는 운전사 아저씨가 착한 사람인줄 알고 있어서 공격한 경찰을 총으로 쏴버렸던 거지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뭐 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이야기 속 핵심 단서인 고 경장이 가지고 있던 필름 속 사진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단지 총을 들고 있는게 찍혀있는 것에 불과한데, 이게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게 현장 사진인지, 당시 사진인지도 입증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건 물론이고, 아이가 총을 쐈다는걸 밝히는건 불가능했을겁니다. 또 신아 그룹이 당시에도 경찰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일거에요. 필름이 조작되었다고 얼마든지 우길 수 있어요.
앞서 해혼식에 등장했던 동철수의 친구 탁해서가 자신의 170만 유튜버 채널을 통해 진상을 공개했다고는 하는데, 이 역시 신아 그룹에서 충분히 무마할 수 있어 보였고요.
무엇보다도 여덟살짜리 아이가 친했던 운전 기사 아저씨가 총에 맞아 쓰러진 뒤, 총을 주워 복수했다는게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될까요? 고작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신아 그룹의 하수인들이 필름을 확보하기 위해 박희윤과 총격전, 그리고 차가 뒤집히기도 하는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다는게 더 말이 안되지요. 그것도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은 <<다이하드>> 세계관이라면 모를까, 뉴욕에서도 있기 힘든 일일겁니다. 작가가 지나치게 영상화를 신경쓴 듯 한데, 과욕이었습니다.

박희윤이 경찰을 그만두고 사립 탐정이 되며, 동철수가 그 사무소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를 꿈꾼다는 에필로그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05/07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10)

 

남자의 면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츠치야마 시게루 화백의 먹부림 만화. 면과 라쿠고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업맨 이케다 멘타로가 이런저런 면 요리들을 먹으며 겪는 일화들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소바와 우동, 냉면과 오키나와 소바, 나고야면 (기시면, 녹말소스 스파게티, 타이완 라면, 된장곰탕 우동), 라면, 야키소바 등 평범한 면들이 소개되며 에피소드들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마주칠 법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용도 모든 면은 다 맛있다! 류의 만만세 해피엔딩이 대부분이고요. 대기업 츠카모토 전기 회장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지만, <<맛의 달인>>처럼 면 요리로 모두가 하나된다는 결말입니다.
조금 주목할만했던 건, 주인공이 이케다 멘타로이기는 한데,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체는 면 요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케다 멘타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건 초반의 두, 세 개 정도이며, 다른 이야기들은 전부 그냥 면 요리를 먹으면서 이야기가 생겨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인 정신이 지나친 라면 가게를 '진검 승부' 하는 집이라며 마음에 들어해서 좋아하는 여직원을 데리고 갔지만, 즐겁게 먹는게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처럼요.

하지만 역시나, 다른 요리, 먹부림 만화와 확실히 구분되는 무언가를 찾기 힘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편의 에피소드만 남기고 사라졌겠지요. 면 요리 만큼은 정말로 맛있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 넘쳐나는 먹부림 만화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을겁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식가 탐정 료지 1,2>>
블랙 잭을 닮은 요리사 아지사와 료헤이가 등장하는 만화 '더 쉐프' 시리즈의 작가 카토 타다시의 작품. 만화 도서관 Z에서 무료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뭐 볼게 없나 하고 뒤져보다가 제목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그런데 내용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음식과 추리가 결합된, <<절대미각 식탐정>> 류의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추리의 비중이 극히 낮은 탓이에요. 등장하는 탐정 소재 이야기 중 볼만했던건 부사장파와 전무파가 세력 다툼을 하는 회사에서 전무파의 핵심 인물인 개발부부장 뒷조사를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해서 PC를 열어보는 에피소드 뿐이었으니까요. 이를 통해 부장이 컬트 (사이비) 교단 핵심 관계자였다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북해도 출신 가출 소녀를 찾을 때, 사투리를 무심코 대답하게 만드는 작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는 탐정 업무로 볼 만했던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불륜 조사로 미행 후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정도이며, 그 외에는 아들 결혼 상대에 대한 상세 조사, 데릴 사위에 대한 탐문 조사 등이 전부입니다.

반면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인공 탐정 렌죠 료지부터가 일류 요리집 쥬가와의 주인 토가와의 아들로 요리에 굉장히 박식하고 능숙하다는 설정이거든요. 초반부는 그가 조사 및 탐문 과정에서 우연히 먹게 된 요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한 마디 했다가 결국 그 요리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는 전개가 많고요.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억지의 극치죠. 탐정이 이런 일을 해 줄 이유가 없잖아요?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았는지 뒤로 갈 수록, 탐정업 보다는 요리에 집중합니다. 요리 승부가 계속 펼쳐지는 식으로요. 흥미를 돋우는 효과는 있지만 문제는 작품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욱 하는 성격으로 승부를 한다고 해도 한 두번이지, 세 편 연속 요리 승부는 지나쳤고요.
아울러 렌죠 료지와 그의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는 <<맛의 달인>>과 흡사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렌죠 료지가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발끈하며 비판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목표가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는 등 캐릭터 설정도 <<맛의 달인>>과 거의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추리, 요리 만화 붐에 편승해서 이런저런 인기있는 소재를 가져다 썼지만 결과물은 영 신통치 않았던 망작입니다. 유일한 장점은 공짜로 볼 수 있었다는게 전부였어요.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9)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20/08/02

2020년 8월의 신라호텔 팔선 디너 코스

온 가족이 오랫만에 모여, 좋은 식사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의미있는 자리라 아버님께 의견을 여쭈었는데, 중국 요리를 선택하시더군요. 그래서 신라호텔 팔선에 디너 코스를 예약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선택한 코스는 아래의 '여의' 코스였습니다. 코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았더니, 불교 용어이기도 하고 '마음 먹은대로 된다' 는 뜻인데, 왜 이런 단어를 썼는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네요.
1. 제철 정선 전채
장어와 문어, 찌고 튀긴 듯 크리스피한 삼겹살과 버섯의 구성입니다. 단짠단짠인데 맛이 강하지 않고, 한 입에 먹기 좋아서 그야말로 전채라는 느낌이 드는 메뉴였어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2. 캐비아 망태버섯 제비집.
제비집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식감이 재미있더라고요. 맛은 담백,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망태버섯과 캐비아의 존재감은 무척 약합니다. 맛에 있어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였어요. 제가 둔감한 탓이겠지만요.
3. 홍소소스 청새리 상어 지느러미 찜.
이거 진짜배기 상어 지느러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도 어느정도 있고,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은 신기한 식감에 소스도 부담없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4. 고법 불도장
도가니, 전복, 오골계 등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불도장. 그러나 고명들보다도 묵직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은근하게 간을 맞춘 국물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코스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5. 어향소스 길품 전복과 오룡해삼
코스의 마지막 요리인데 전복의 크기는 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소스맛도 특출나지 않고 전복의 맛도 크기에 비하면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어향 소스는 어향 가지로 아주 친숙하며, 오룡 해삼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신선함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리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6. 식사.
저는 짬뽕을 선택했습니다. 짜장, 짬뽕, 기스면, 볶음밥, 중국식 냉면 등이 가능합니다. 고명, 건더기 등 전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료 외에는 일반 중식당 짬뽕과 구분되는 맛은 아니었어요.
7. 디저트
멜론 반통, 그리고 가운데 씨를 파낸 곳에 감으로 만든 소스를 채워 넣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대단한 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손이 간 그런 디저트를 기대했거든요.
이렇게 코스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가격에 비하면 맛이 만족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네요. 제가 이 코스를 또 먹을 일은 아마도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가족 모임이라는 자리에는 아주 잘 어울렸으며, 어른들께서 좋아하셨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서비스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고, 룸 상태나 이런저런 디테일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혹시라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코스 요리를 먹어볼 생각입니다.

2020/07/18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윤덕노 : 별점 3점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6점
윤덕노 지음/청보리

다수의 음식 관련 서적을 발표한 윤덕노 작가의 책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음식 관련 속설이나 상식에 대해 풀어주고, 짚어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했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제목이 대표적인 예로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준 이유는 닭은 양기가 넘치며, 씨암탉은 알을 낳으니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고사상에 돼지 머리를 놓는 이유는 고사 자체가 돼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인간의 재물과 영화를 담당하는 신이며, 높은 신에게 사람의 소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군요.
냉면에 무가 들어가있고, 중국 면 요리는 단무지가 반찬인 등 국수와 무를 같이 먹는 이유는 옛 사람들은 밀이나 메밀에 몸에 좋지 않은 맥독이 있다고 믿어서 이를 중화시키기 위함이고요. "동의보감"에도 무는 체한 것을 빨리 내려주고 메밀 국수의 독을 풀어준다고 적혀 있지요. 무에 소화 효소가 풍부해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의 "고려도경"에 왕족, 귀족만 양과 돼지를 먹고 가난한 백성들은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을 잘 먹는다고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지금과 반대니까요. 미국에서도 오래 전에는 랍스터가 가장 싸구려 음식 재료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네요.

과거 복날에는 보신탕, 육개장, 팥죽, 연계백숙, 닭찜을 먹었다는데 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어야 하며, 음식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성질, 즉 귀신을 몰아내고 질병을 예방하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야 했거든요. 개고기를 복날에 먹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은 모두 경일로 쇠에 해당하는 날이라 개는 불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불은 쇠를 달구고 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닭은 흙의 성질을 지닌 탓에 더위를 물리칠 수 없어서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인삼을 더한게 복날에 먹는 삼계탕의 유래인 것이고요. 귀신을 몰아내거나 하는 속성이 없는 소고기로 만든 육개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시뻘겋게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계탕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음식이며, 고춧가루의 전래도 그리 이른 시기는 아닌 만큼, 여름과 복날에 삼계탕, 육개장을 먹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테니 다 나중에 끼워 맞춘게 아닌가 싶군요.

숙주 나물의 숙주라는 이름 유래는 저도 신숙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속설이며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콩을 '숙두'라고 하였기 때문에, 콩에서 나오는 싹은 숙두나물이 되었답니다. 그럴듯하네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순수 우리말인 신체의 일부를 나타내는 '도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도 꽤 합리적이에요.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습니다. '생선회'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즐겼다는 주장처럼요. 현존하는 문헌 중 생선회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며, 동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도 생선회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일본 문헌에 '사시미'가 처음 등장한 1399년보다 최소 150년 이상 앞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하지만, 한 번 생각해볼만한 내용으로는 보입니다. 그 외에도 밥 짓는건 조선 사람이 최고라던가, 조선은 두부 왕국이었다는 등의 재미난 기록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재미있지만, 다양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초기작인 덕분에 온갖 재미있을만한 아이디어를 가득 채워넣은게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1/12

중국요리 백과사전 - 신디킴, 임선영 : 별점 2.5점

중국요리 백과사전 - 6점
신디킴.임선영 지음/상상출판

부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으로, 중국요리의 정석이라고 하는 8대 요리 - 루차이 (산둥요리), 촨차이 (쓰촨요리), 웨차이 (광둥요리), 쑤차이 (장쑤요리), 저차이 (저장요리), 민차이 (푸젠요리), 샹차이 (후난요리), 후이차이 (후이저우요리) -와 기타 지역별으로 대 분류를 나눈 뒤, 각 분류별 주요 요리를 3~4페이지씩 할애하여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90개가 넘는 요리에 여러가지 기타 정보가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각 요리별 소개는 말씀드린대로 3~4 페이지 분량에 불과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로 그 맛과 유래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어서 불필요한 설명도 별로 없고요.
또 8대 요리에 대한 설명이 요리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루차이, 즉 산둥 요리의 핵심은 육수로 "군인의 창, 요리사의 탕"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쓰촨의 매운 맛은 화자오와 고추가 조화된 '마라'의 맛이며, 광둥 요리는 제철 음식과 식재료의 궁합을 중하게 생각한다. 장쑤 화이양 요리에서는 칼을 절묘하게 쓰는 요리가 많다. 저장 요리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식입니다.

'딤섬'을 소개하며 그 종류 - 빠오, 자오, 까오, 펀, 퇀, 쑤 등 - 를 알려주는 것처럼 음식의 종류는 물론, 중국 4대 민물고기는 '황하의 잉어, 송강의 농어, 흥개호의 대백어, 송화강의 쏘가리'이며 저장 요리의 3대 보물은 '룽징차, 사오싱 황주, 진화햄'이라는 등 재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샤오롱빠오는 워낙에 존엄하기에 초간장에 적신 생강채를 만두에 가져가는게 원칙이라는 식문화 관련 내용 등 관련되어 소개되는 정보가 실로 깊고 범위 또한 넓으며,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배추의 탄생이 천여년 전 중국 장강 이남에서 즐겨 먹던 채소 숭차이가 북방에 전해졌는데, 추운 날씨에서 잘 자라지 않자 북방에서도 잘 자라는 순무 우징과 교배시킨게 유래라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전세계에 퍼진 화교의 요리가 주로 푸젠과 광둥 요리인 이유도 그럴듯 했어요. 중원지역 한족들이 청나라의 침략 때문에 푸젠 지방으로 피난을 간 뒤,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개방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간게 계기라고 하네요. 나가사키 짬뽕을 만들어 낸 천핑순도 푸젠 사람이었죠.

오래된 문헌과 자료에만 의지하는게 아니라 최신 정보에 기반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쓰촨요리 푸치페이펜이 '2017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올해의 애피타이저 상을 수상하였는데, 영문이름은 Mr and Mrs Smith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치는 부부, 페이펜은 허파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허파가 아니라 여러가지 소 내장을 재료로 쓴다는군요. 데친 뒤 썰어낸 소 내장을 고추기름, 화자오, 깨, 참기름, 간장 등으로 양념하는 요리라는데 차가운 곱창볶음 비슷해 보입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상세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맛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레시피가 수록된 것도 마음에 듭니다. 불과 웍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 하는 요리들이 많아서 집에서 해 먹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건 아쉽지만요. 이 중에서는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레시피들이 인상적입니다. 대표적인게 궈바오러우에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찹쌀 탕수육'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찹쌀은 중요하지 않고, Double Cooked Pork Slices라는 영어 이름처럼 두 번 나누어 튀기는게 핵심이라는군요. 1차로 고기를 약불에 오래 튀겨 익히고, 2차로 센 불에 빠르게 퀴겨 색을 입히는게 비결이라나요.

이렇게 많은 요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먹고 싶었던걸 한 가지 꼽으라면 당나귀 고기 화덕 빵 샌드위치인 뤼러우훠사오를 꼽겠습니다. '천상에는 용 고기, 지상에는 당나귀 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당나귀 고기를 육식 중 최고로 꼽는다니 그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고기를 12시간 정도 끓여내는 동안 맛을 살리기 위해 제가 질색하는 중국 향신료도 거의 쓰지 않는다니 왠지 제 입맛에 딱 맞을 것 같고요. 당 현종이 제위 전 허베이성 허지엔에 들어 이 음식을 먹고 갔다는 등 유서까지 깊으니 호기심이 무척 동합니다.

또 이미 접했었던 요리가 소개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동파육, 궁바오지딩, 마파두부, 샤오롱빠오, 훠궈, 탄탄멘 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체인점으로 접했던 '꺼우부리빠오주 (구불리 만두)', 남경 출장 때 접했었던 차가운 오리 요리 '옌수이야', 옛날 구로동 중국인 거리에서 처음 먹어보았던 맵디 매웠던 닭볶음 '라즈지' 등은 나름대로 추억도 떠오르고, 그 맛도 떠올라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흐뭇했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여럿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선정되어 소개되는 요리들이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저자가 알고 있는 요리라서 소개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해당 지역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인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북경 오리는 물론 거지닭, 불도장, 빠바오판, 딤섬, 동파육, 띠산센, 마라롱샤, 마라탕, 마파두부 등 몇몇 요리들은 그 유명세가 익히 국내에도 알려져 소개가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요리들은 왜 그게 대표 요리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길 냉면이 여기 수록될 정도의 중국요리라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연길 냉면이 중국 10대 면 요리에 선정되었다는게 이유라면, 다른 10대 면 요리는 왜 다 소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도 불명확하고요. 심지어 마카오 에그타르트가 소개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또 중국 발음과 중국어 한자를 그대로 쓴 표기 방식은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발음이야 그렇다쳐도 원래 이름을 간체가 아닌 일반 한자체로 표시해주었다면 그래도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초보자 수준의 짐작에 그칠 뿐이라 답답했거든요. 레시피도 가지된장볶음 장체즈 항목에서처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다', '오늘 당장 해 먹어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확한 분량과 그 방법을 소개하지 않은 건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실제로 소개 자체가 간단해 보여서 양념 분량만 정확하게 알려주었더라면 도전해 보았을텐데 말이죠. 그 밖에도, 대분류별로 분량이 일정치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도판도 좋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자료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여서 감점합니다. 재판이 나온다면 분류와 요리 선정에 있어서 학술적인 근거가 좀 더 뒷받침된다면 좋겠습니다.

2019/09/29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점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뒤늦게 찾아 읽어본 요네자와 호노부일상계고전부 시리즈 근간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 시리즈 타 작품에 비해 많이 처지는 탓입니다. 대표적인게 이바라가 주인공인 "우리 전설의 책" 입니다. 학교 동아리 만연에서 일어난 분란에 휘말린 이바라의 이야기가 전부에요. 3학년 고치 선배의 충고로 이바라가 프로를 목표로 매진할걸 다짐하며 만연을 그만둔다는 내용은 "바쿠만"을 떠오르게 만들 뿐, 별다른 추리도 없으며 오레키 역시 거의 출연하지 않아서 별로였어요. 

그나마 이야기 서두에 소개되는, "달려라 메로스"에 대한 오레키의 색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독후감은 괜찮지만 전개면에서 무리였습니다. 독후감은 독후감으로 두는게 좋았을텐데 이바라의 상황을 독후감에 빗대는 전개가 억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메로스를 죽이는건 왕에게는 손해이다, 그러므로 메로스를 죽이려는건 왕의 적일테니 이바라의 만화 노트를 훔친건 만연의 '만화 읽는 파'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추론은 그런대로 볼 만하지만 설득력은 낮습니다. 고치 선배가 이바라에게 연락하면 안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그냥 인간 관계와 갈등을 그린 드라마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요.

추리물인 첫 에피소드 "상자 속의 결락"도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한데 굉장히 시시합니다. 학교 투표함 갯수를 속여 회장 선거를 망치려고 했다는 음모부터가 별 볼일 없지요. 차라리 정말 일상에 맞닿은 이야기라면 괜찮았을텐데, 학생회장 선거와 학교 선거관리 위원회 등이 등장하는 탓에 일상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고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해 회상하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도 지극히 간단한 조사로 진상이 드러나는 소품이라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은 거의 없으며, 이 단편집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는 이미 오래전 "미스테리아"를 통해 접했던 작품이라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오랜 팬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오레키 호타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작품이 많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에서부터 의외의 행동력이 드러나거든요. 사토시가 '너 오레키 호타로지? 외계인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거 아니지?'라고 물어볼 정도로 당황스러운 변화입니다. 아마 불필요한 행동에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는, '안 해도 될 일은 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오레키도 지탄다 등을 만나며 조금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겁니다. 아마 본인은 모르는 지탄다에 대한 마음이 기폭제가 되었겠지만요.
오레키 호타로가 왜 이런 삶의 모토를 세웠는지 알려주는 "긴 휴일" 속 에피소드도 꽤 그럴듯합니다. 초등학생이던 오레키가 자신이 불평을 하지 않아 주위로부터 이용당했다는걸 깨닫고, 아무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긴 휴일'을 맞이한다는 내용인데 차분히 쌓아올린 단서들이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라진 지탄다를 찾아 여름방학에 직접 집을 나서기까지 하니 대단한 발전입니다. 과연 이바라가 사라졌다고 해도 찾아 나섰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고로 이 "이제와서 날개라 해도" 이야기에서 지탄다도 굴레를 벗어 던지기에 둘 사이도 진전이 있으리라 짐작되네요. 

또 조금 의외였던건 오레키 호타로의 요리 솜씨입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이런저런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왠만한 가정주부 못지 않은 솜씨를 선보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중화면이 있다고 집에서 중국식 냉면을 만든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 외에도 야키소바라던가 베이컨 채소 볶음, 계란말이 등 이런저런 요리들이 소개됩니다. 이 정도 솜씨라면 "쿠드랴프카의 차례" 속 축제의 요리 승부에 대표로 참석했어도 좋았을 뻔 했어요.

하지만 팬심 외에 추리적 요소는 여러모로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을 위한 선물에 그치미 말고, 추리적인 부분도 다음 권에서 좀 만회해 주면 좋겠습니다.

2017/07/29

라멘의 사회생활 - 하야미즈 겐로 / 김현욱, 박현아 : 별점 3점

라멘의 사회생활 - 6점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따비

라멘이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식문화서이자 미시사-사회사 서적입니다.

뻔한 라멘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라멘의 발전을 주변 환경 및 사회의 흐름과 함께 엮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이치에 합당한건 물론이고요.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대세가 된 이유로 전후 극심한 식량난을 든다던가(쌀 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발전), 전쟁 전부터 있었던 '지나 소바', '주카 소바' 등의 명칭이 '라멘'으로 통일된 것은 닛신 식품의 텔레비전 광고 덕분이라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삿포로 미소 라멘이나 규슈 돈코츠 라멘은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한 음식이지만 이 모든게 '라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된건 역시나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며 이러한 지역적 특산물 라멘은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관광지화 되면서 그 지역의 유명 라멘이 순식간에 퍼져 굳어진 것이라는 등 새로운 분석이 가득합니다.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포드의 T형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하는 공업 제품으로 접근하여 성공했다는 시각도 독특했어요.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그것과 유사한 '데밍'의 피드백 방법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이런 내용을 "사자에 상", 마쓰모토 레이지의 최초 소년지 장기 연재 출세작 "사나이 오이동",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 "아사마 산장 사건"와 같은 당대 유명 사건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사자에 상"의 경우는 무려 1948년 연재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설명할 정도라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흔하게 접했던 라멘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름의 '고급' 정보들도 눈에 띕니다. 메이지 시대 중기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 '난킹 소바'로 일본에 들어온 후, 도쿄 아사쿠사의 중화요리 식당 '라이라이켄'에서 지나 소바를 처음으로 내 놓았으며, 이 때 아사쿠사 말고 다른 지역에서 지나 소바의 침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동식 포장마차 "차루메라"라고 소개하면서 에도가와 란포가 이동식 포장마차를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의외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대한 설명이 그 중 인상적이었어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리에 시게타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종전 직후에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가 처음 머물렀던 요코하마의 호텔 뉴그랜드의 셰프였습니다. 그가 미군 병사가 가져온, 스파게티에 토마토 케첩을 뿌렸을 뿐인 간이 전투 식량에 피망과 햄을 넣어 이 요리를 발명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것이 미군 점령기를 지나 미국 것을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문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부대찌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 라멘" 이야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없는 음식으로, 관광지로 해당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삽시간에 유명해졌을 뿐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진주 냉면'과 같은 동일, 유사 사례가 많지요.

라멘이 지금과 같은,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장인이 요리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누벨 퀴진 및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누벨 퀴진의 특징은 현대 라멘집과 정말 딱 들어맞더군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며 지방의 서민적 음식 문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요.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것과 전통보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중시하고 그 지방의 제철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장인 세리자와의 "라면 세류보"가 바로 떠오릅니다. 오너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말린 은어의 풍미를 살린 담백한 맛, 진한 맛 라면이 대표 요리라는 점에서요.

중간에 장인 정신으로 무기를 만든 탓에 미국의 생산성에 뒤져서 전쟁에 졌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는 황당했고 '라면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에 비하면 알맹이는 별로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 도판이 극히 드문 편임에도 가격이 16,000원이라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습니다. 재미있는 정보, 새로운 시각이 가득 담겨 재미있게 읽었어요. 라면, 아니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2/09

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이한 : 별점 3점

요리하는 조선 남자 - 6점
이한 지음/청아출판사

주로 조선 시대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들로 구성된 요리 관련 미시사 서적입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는 남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꽤나 뿌리깊은데 제목이 그러한 상식을 깨고 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교가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 과연 남자가?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제에 걸맞을 만큼 조선 남자들이 요리를 했다거나,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나 편지, 일기와 기타 저서에 음식 이야기가 조금 등장한다고 요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지요. 그나마도 "오늘 뭘 먹었다.." 정도에 그치고요. 

게다가 주로 등장하는 일화들은 정약용을 필두로, 귀양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귀양가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대 선비들은 대체로 먹을 것을 논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물론 스스로 개고기 레시피를 만들 정도로 먹보였다는 초정 박제가, 맛있는 회를 먹고 시를 한수 지은 목은 이색,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 등 귀양과는 무관한 몇몇 선비들의 일화도 수록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비중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무척 작습니다. 

때문에 제목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실제로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이래서야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 즉 '조선시대에는 남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라는 상식을 뒤집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제목에 대한 기대는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다행히 음식 관련된 미시사 책으로는 꽤 볼만 합니다. 음식별로 유래나 기원, 당시 레시피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레시피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자면, 당대 불고기라 할 수 있는 '설하멱적'의 양념은 간장과 참기름으로 고기를 숯불로 굽다가 끓어오르면 찬물에 집어 넣고, 다시 숯불로 굽는 것을 3번 반복했다, 앞서 소개했던 초정 박제가의 개고기 조리법, 조선 시대의 생선회 만드는 법 - 물고기 꼬리와 내장, 껍질을 제거하고 얇게 저며서 종이 위에 살짝 말렸다가 실처럼 가늘게 썰고, 무를 얇게 다져 베에 짜서 곱게 만든 뒤 생채를 회와 섞어 접시에 놓고, 여기에 겨자와 고추, 식초를 뿌린다 -, 냉면의 역사와 다양한 레시피들, 쌍화점 찐빵 '상화'의 레시피 등이 그러합니다. 이 중 상화는 정말로 손이 많이 가서 놀랐습니다. 돈 주고 사먹는게 당연했겠어요. 

음식들의 유래, 기원도 볼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수나라 사람들이 고려 사신에게 아주 비싸게 돈을 주고 사들인 채소라 '천금채'라 불리었다는 채소가 바로 상추라는 것, 조선 시대 초기에는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고 도소주와 엿을 먹었다는 것 등등 다양한 일화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책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떡국 떡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썰다가 지금처럼 어슷썰기로 한 이유는 더 적은 횟수만 썰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맛있는 떡이라는 뜻의 "임씨의 절미"라는 말이 "인절미"가 되었다는 전설처럼 "변씨 만두"도 조선 시대 궁중요리 중 하나였던 병시, 즉 물만두가 민가에 전해지며 병시라는 이름이 변씨로 바뀌어 "변씨 만두"가 되었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인절미 어원에 대한 전설은 저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인용되었었죠) 허구라니 좀 의외였어요.

이렇게 음식 관련 미시사 서적으로의 가치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제목에서 불러 일으킨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책의 디자인이 조금 아쉽기에 감점하지만,  한국 음식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5/05/18

어이없게도 국수 - 강종희 : 별점 2점

어이없게도 국수 - 4점
강종희 지음/비아북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임원까지 될 정도로 잘나가는 워킹맘이었다가 집에 눌러 앉은 저자가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들에 대해 한토막씩 써 내려간 음식 관련 수필집.

요리사도 아니고 음식 전문가도 아닌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국수별로 짤막하게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라던가 관련된 자신만의 일화를 써 내려간 글들이에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음식 관련 내용 대신에 조경규 일화가 중심인 만화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국수 삽화도 조경규씨가 그렸네요. 인연이라면 인연이랄까. 몇몇 글들은 - 대표적으로는 짜장면, 구포 국수, 니신 소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관련된 시까지 인용하는 등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데, 비중으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과 국수를 엮은 구성이나 저자의 글솜씨가 나쁘지는 않아 재미있게 읽히며, 무엇보다도 누구나 떠올릴법한 평범한 국수들이기에 해당 국수에 대해 저만의 경험과 추억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아주 좋았어요. 마침 생각나는대로 저만의 국수 일대기를 몇개 적어본다면,

  1. 시원한 국물하면 - 안양 관양동 바지락 칼국수.
  2. 더운 여름은 냉면이 최고지. 딸아이가 좋아하는 - 산본 투데이몰 지하 "후원" 물냉면과 육수.
  3. 아버지 학생 시절부터도 유명했다는, 하지만 별 맛은 없더라 - 부산 보수동 완탕.
  4. 밤에 아내와 야식으로 먹는 시원한 국물에 계란 하나 깨넣은 라면.
  5. 아내가 딸아이를 위해 만드는 -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6. 돈내고 먹는거보다 뛰어난, 회사 식당 진리 메뉴 - 해장에는 얼큰 백짬뽕.
  7. 예전 회사 앞 중국집에서 점심마다 먹었더랬지 - 사천탕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꽤 재미난 주제이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그냥 바쁜 직장 생활 관련 이야기라면 모를까, 어린 시절이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같이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워킹맘의 비애가 저한테 와 닿을리 없는건 당연하지요. 직장 생활 이야기도 잡지사 기자나 마케터라는 전문성이 필요한 특이한 업종에서 근무했던 탓에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없었고요.

또 국수들에 대해 설명들도 거의 대부분이 유명 서적에 의존하고 있어서 새롭거나 인상적이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진주냉면 이야기처럼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정보나, 접해보지 못한 서적을 바탕으로 한 글들도 몇편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인 경험 위주의 일기, 신변잡기류의 글들이라서 저자의 명성이나 경력에 많이 기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가 굴짬뽕을 먹은 경험에 대한 수필을 각각 썼을 때 일반 대중 독자들이 어떤 글을 선택할지도 자명하잖아요? 글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빼어난 글로 보이지도 않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벼운 읽을거리, 소일거리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수 관련, 아니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 같은 다른 음식 관련 수필과 비교해 볼 때 국수 관련 컨텐츠면 무엇이든 찾아보는 매니아가 아니라면 구태여 선택할만한 가치나 재미는 없습니다.

덧 : "구포 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소개되고 있더군요! 아버님 고향이자 현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곳인데 전혀 몰랐네요. 다음에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2014/03/31

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 별점 3.5점

식탁 위의 한국사 - 8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다양한 음식을 통해 그 음식 및 관련된 역사를 알려주는 미시사,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음식과 문화사 관련 서적을 많이 집필한 주영하 씨의 저서입니다. 무려 5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작이지요.

목차는 크게 다음의 5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개항기" – 다양한 외래음식이 전래된 시기와 그 메뉴들을 다룸
  2. "국밥집" – 설렁탕, 추어탕 등 국밥에서 시작해 비빔밥, 냉면, 만두, 배추 등을 소개
  3. "조선 요리옥" – 유명 요릿집과 고급 요리인 신선로, 탕평채, 전복 등을 다룸
  4. "대폿집" – 서민들의 안식처였던 대폿집, 선술집에서 먹었던 술과 안주 이야기
  5. "해방 이후, 음식의 혼정과 음식접의 글로벌화" – 해방 이후 변화된 음식 문화를 다룸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없을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소개된 요리들에 대해서는 기원과 역사, 당대의 레시피, 시조나 소설·영화 속 인용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동안 몰랐던 에피소드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고요.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일제강점기 당시까지 전복이 굉장히 많이 잡혔다는 것, 편육이 원래 소고기 편육을 의미했다는 것, 전주의 명물인 탁백이국이 콩나물로만 만든 음식이었다는 것, 갈비구이가 원래는 대폿집의 저렴한 메뉴였다는 것, 빈대떡의 어원,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의 관계 등입니다. 간략하게라도 소개하고 싶지만,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자세하여 요약해서 인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실제 역사와의 직접적 연계 구성이 아니라는 점, 도판의 부실함, 몇몇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예: "탁백이국", "빈대떡") 때문에 조금 감점하지만, 재미는 물론이고 자료적인 가치도 최상급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한국 음식 문화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참고서 같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2012/03/08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김찬별 : 별점 3.5점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 8점
김찬별 지음/로크미디어

이글루스의 유명 블로거 김찬별 님이 쓴, 여러 가지 우리 음식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요리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어서 더 과감하게 쓸 수 있었다고 저자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듯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가끔 식당 벽에 붙어 있는 "기원전", 혹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음식"이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죠. 물론 이 책에서처럼 대부분의 음식이 정말 일제강점기 이후 자리 잡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식당 벽의 설명문보다는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부터의 역사는 비교적 디테일하고 치밀해서 자료적 가치도 높은 편입니다. 당시의 요리를 다룬 자료가 풍부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에서처럼 화려한 전개는 아니지만, 저자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문체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실려 있는 음식 대부분이 지금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매우 평범한 음식들이기에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가 예상과 달리 생소한 음식 위주로 다뤄져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찬과 분식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빠지지 않는 짜장면, 김치, 불고기, 커피 같은 주제뿐만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 제육볶음, 감자탕, 호떡, 삼겹살, 떡볶이, 냉면, 된장찌개까지 다루고 있어 정말 생활 밀착형 요리 미시사 서적이라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후라이팬의 역사와 동일할 것이라 추정한 튀김의 역사, 일제강점기 대유행했다는 호떡 이야기, 지금의 삼겹살구이는 1980년대 이후 정착했다는 견해, 조선시대부터 존재했지만 재료와 조리법이 크게 변한 생선회 이야기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신문 연재물이었던 "주영하의 음식 100년"과 유사한 부분이 많고, "돈가스의 탄생", "모던의 유혹",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등 익숙한 도서의 인용이 많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만의 견해를 덧붙여 새롭게 구성한 창작 요리 같은 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식과 대중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특수성도 돋보이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