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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1

실험부부 (炎の女) - 다카기 아키미쯔 / 홍영의 : 별점 3.5점

정치가 가네꼬 센죠와 시오다 고헤이는 서로 앙숙으로 가문도 원수같이 지내는 상황. 가네꼬의 딸 하츠에와 시오다의 아들 쇼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헤어져야만 했고 하츠에는 앙갚음의 심정으로 쇼지의 회사 상사 모리 나오키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뒤 모양새만 갖춘 부부로 지내게 된다.

이러한 하츠에를 견디지 못한 모리는 정부 리츠코와 공모하여 알리바이를 만들고 하츠에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나 알리바이를 위해 리츠코가 하츠에로 변장한 직후 화재사고로 화상을 입어 하츠에의 신분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리츠코가 입원한 이후부터 시오다 가문의 주변에 연쇄살인이 발생하고 모든 살인 사건 현장에 하츠에를 암시하는 향수에 적신 손수건이 발견되는데...


다카키 아키미쯔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 제목이 너무나도 황당한데 원제도 "불꽃(같은) 여자"라는 조금은 낡은 듯한 제목이네요. 제목과 너무나도 형편없는 책 디자인에 비해 번역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밀고자" 이후의 작품으로 시리즈의 다섯번째 장편이라고 합니다. 발표년도는 1967년이군요.

전작들처럼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가 여러 단서를 모아 조합하여 추리하는 전개인데, 정통물에 가깝게 모든 정황과 사건에 관한 증거들이 독자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되기 때문에 지적인 만족감을 느끼면서 즐길 수 있는 정교한 작품입니다. 여전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그리고 평범한 인물에 가까운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라는 캐릭터도 그다지 튀지는 않지만 사건들을 차분히 이해하고 평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한마디로 해설자와 탐정을 결합한 또다른 형태의 탐정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고요.
그간 읽었던 2편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와는 다르게 4명이나 살해당하는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연쇄살인극은 사건이 많으므로 단서도 많이 제공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용의자가 점점 줄어들어 막판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쉬워진다는 약점이 존재하나 이 작품은 치밀한 전개와 기발한 트릭으로 이러한 약점을 끝까지 잘 커버하고 있습니다.
또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를 제외하고 주 화자로 등장하는 리츠코의 심리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해서 사건마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과 공포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도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되면서도 돋보이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작인 "야망의 덫 (밀고자)"와 비슷한 전개라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약간 (정말 아주 약간~) 식상할 수도 있는 트릭이라는 점,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증거보다는 일종의 함정수사를 펼친다는 점은 반칙으로 느껴졌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결정적인 증거 자체가 없다는 점은 정통파로서는 큰 약점이라 생각되고요.
그리고 범인이 막판에 사건을 "미궁"으로 모는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결정적인 범인역의 희생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도 천재적 발상의 범죄에 비해 조금 부족해 보여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전작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게 발전된 구조로 전개되기 때문에 읽기전에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의 작품에서도 상당히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의 작품이라 그런지 시대적으로 낡은 티도 적으며 즐길거리도 많거든요. 무엇보다도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와 천재적이고 악마적인 범인과의 두뇌 게임 하나만으로도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범인이 "거의" 성공할 뻔 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죠. 구하실 수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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