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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0

기억 속의 유괴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5점

저자의 "붉은 박물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집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작을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않아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습니다. 단편다운 기발하고 신선한 부분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록작 전부가 빼어나지는 않고, '설녀' 히이로 사에코 관장의 만화적인 설정은 여전히 별로지만 이 정도면 한 번 읽어볼 만은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고생 추락사 사건"

1991년 2월, 기타구 도립 니시가하라 고등학교에서 2학년 여학생 후지카와 유리코가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후두부를 화단 모서리에 강하게 부딪친 것이 사인이었고, 사건 당시 아래층에서 일하던 작업자는 옥상에서 한 소녀가 "이제 곧 작별이네요. 저는 선배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유리코가 선배에게 고백했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여겨졌고, 같은 미술부 3학년 남학생 세 명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고 공소시효까지 만료되었습니다.

'붉은 박물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있던 사건의 전제를 뒤집어 버립니다. 당시 고백한 사람은 유리코가 아니라 그녀의 후배인 1학년 여학생이었고, "이제 곧 작별"이라는 말 역시 죽음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 전학을 뜻하는 말이었다고요. 그래서 당시 1학년생 가운데 전학을 간 학생을 추적해, 그 학생이 진범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는 맛이 잘 살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연쇄 방화 사건"

1990년, 후추, 고쿠분지, 구니타치, 다치카와 일대에서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피해자들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기 때문에 보험금을 노린 자작극이나 교환 방화설은 설득력을 잃었고, 여러 건 가운데 한 건만 진짜 목적이고 나머지는 위장이라는 해석도 방화 횟수가 너무 많아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범인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는 사건의 실마리가, 범인을 신고하려다 살해당한 가타노 사치에의 전화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은 '야채 장수 오시치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확인된 유일한 공통점은 방화 대상이 된 집들이 모두 24~25년 전에 지어졌다는 점뿐이었습니다.

사에코는 우선 소거법을 이용해 범인이 찾고 싶어 했던 대상들을 추려냅니다. 소방관은 다른 사람이 출동할 수 있어서 제외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동시에 특정한 조건을 가진 집들을 계속 태웠다는 점을 연결해 사건의 목적을 밝혀냅니다.

그렇게 해서 추리해 낸 진상은 현장검증 책임자 벳쇼가 진범이며, 그는 연쇄 방화가 일어나면 동일한 수사 인력이 반복적으로 현장에 투입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특정 시기에 지어진 집들 가운데 한 곳의 바닥 밑에 묻혀 있을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 안의 사람들은 미리 대피시켰습니다. 시신이 훼손되거나 혼동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오시치 사건이라는 아이디어도 좋고, 연쇄 방화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통해 범인의 목적과 정체를 밝혀 나가는 추리도 빼어납니다. 어머니의 사체를 찾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치고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단점이 조금 거슬리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토막 사체 사건"

1999년 3월 23일, 아라카와 하천 부지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머리와 몸통, 양팔의 위아래 부분, 양다리의 위아래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부위가 관절을 중심으로 절단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보통 토막 사체는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관절 부위를 추가로 정교하게 잘라낸 목적이 무엇인가를 두고 흥미로운 추리를 펼쳐 보입니다.

사에코는 범인이 "가동 범위가 큰 관절"을 의도적으로 제거했다고 보고, 이것이 시신의 마지막 자세를 숨기기 위한 행위였다고 추리합니다. 피해자는 죽은 뒤 사후 경직이 일어나 특정 자세로 굳었을 것이고, 그 자세만 보면 범행 현장이나 범인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이지요.
또 범인은 경직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굳은 자세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시신을 관절 위주로 절단해 유기했다는 점을 통해 사에코가 지목한 범인은 피해자의 지인 쓰카모토 가즈오였습니다.

피해자는 가즈오의 중고차 가게에서 차를 타며 자주 놀았는데, 차에 앉아 있던 피해자를 살해한 뒤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피해자가 운전하는 자세로 굳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즈오는 피해자의 아내 오리에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남편 호소다의 성으로 장례를 치르는 상황을 막고 싶어서 시신이 빨리 발견되도록 유기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처럼 사후 경직으로 범행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관절'을 제거했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네요. 정말 획기적입니다. 단편 특성상 용의자가 몇 명 등장하지 않아서 범인이 빠르게 짐작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회사원 살해 사건"

1990년 3월 14일, 미나미시나가와에서 회사원 후지시로가 살해당했습니다. 후지시로는 주변 동료들에게 거액의 채무를 지게 만들고, 그런 상황을 즐기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원망하는 사람은 많았고, 사건 역시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수사가 전개되었지만 유력한 용의자에게 알리바이가 있어서 결국 미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평균 이하였던 졸작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에코는 후지시로가 속한 재료과 멤버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좁혀 가는데, 그 전제부터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협박이나 금전적 압박이 특정 부서 사람들에게만 향했을 리 없으니까요.
또 후지시로의 집에 있던 의자의 위치를 보고 그가 어깨를 다쳤다고 추리하는 부분까지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사건 해결의 핵심 근거가 되는 과정은 억지스럽습니다. 실제로 의자를 무엇에 썼는지는 피해자가 죽었으니 밝힐 수 없기도 하고요. 청소하느라 빼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여기에 더해 진범 사와모토가 구보데라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을 빼앗았다는 반전은 최악입니다. 앞서 구보데라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고 제시해 놓고, 나중에 사실은 그 인물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었다고 뒤집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를 납득하게 할 만한 사전 단서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억 속의 유괴"

26년 전, 다섯 살이던 토다 나오토가 유괴당했습니다. 당시 범인은 몸값을 요구했지만, 결국 별다른 이유 없이 나오토를 풀어주었다.

친모가 나오토와 동반 자살을 할 목적으로 납치했지만 양부모에 의해 살해당한 뒤, 양부모는 친모의 사체를 유기하고 나오토가 납치당한 기억을 왜곡시키기 위해 유괴 사건을 자작했다는 것이 진상입니다.

양부모가 매년 어디론가 참배를 갔던 점, 범인의 이상했던 당시 몸값 요구 같은 단서는 있지만 친모의 정체 등 독자에게 공유되지 않는 정보가 많아서 좋은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납치와 유괴,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가 등장하지만 이상하게 소품 느낌을 준다는 점도 별로였고요. 납치와 살인은 우발적이고, 유괴가 작위적인 연극인 탓이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2/21

잔혹한 여로 - 야마무라 미사 : 별점 2점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거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인연이 있는데,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일본 여성 추리작가 야마무라 미사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설 연휴 때 원서로 읽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의외였던건, 수록작 중 세 편은 트릭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통파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특히 "공포의 연하장"이 아주 괜찮습니다. 트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겨진 유류품을 통해 피해자는 당첨된 연하장을 상품인 우표와 오전 9시 이후에 교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인 거래 증권회사 직원 가사하라는 오전 8시 40분에 출근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보냈지만, 사전에 당첨 유무를 아는건 불가능해서 미리 알리바이를 만들 수도 없고요.
다카기 경부는 연하장에 소인이 없는 점(연하장은 12월 22일까지 접수분은 1월 1일 도착 보장이라 소인이 찍히지 않음)에 주목해서, 빌견된 당첨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사건 당시에 가지고 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당첨 연하장을 가사하라가 미리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증권회사가 직원에게 연속 번호의 연하장 500장을 주는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연하장 추첨에서 최하등 우표는 100장당 반드시 3장 당첨되므로, 가사하라는 보내지 않고 남겨 둔 100장의 연속 번호 연하장만 있어도 반드시 당첨 엽서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즉 가사하라는 당첨 번호 발표 후 보관 중이던 연하장 중 당첨된 것을 고른 뒤, 사건 당일 피해자 집에 들고 가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집에 있던 자기가 보낸 진짜 연하장과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상품은 따로 교환해서 시체를 발견하러 갔을 때 몰래 피해자 주머니에 넣었고요.

이렇게 일본의 연하장 풍습과 증권 회사의 전통 등을 잘 결합하여 만들어 낸,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멋진 트릭입니다. 완벽한 알리바이였지만, 가사하라가 원래 피해자에게 보냈던 연하장이 드러나면서 범행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피해자와 가사하라의 육체 관계와 같은 불필요한 설정과 진짜 연하장이 발견되는건 순전히 운이었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별점 4점도 충분한 수준입니다.

"검은 테두리의 사진"은 오사카로 출장간 범인이 전날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방송이 오사카에서는 그날 방송된다는걸 알고난 뒤, 전날 찍었던 사진을 알리바이에 이용한다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실 트릭이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연과 운이 지나치게 많이 좌우되는 전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같은 방송이라도 방송하는 채널이 다른데, 경찰이 이를 눈치채고 체포한다는 결말도 설득력이 약했고요. 앞서 범인 오사와는 '화면만 사진에 담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채널 다이얼이 어떻게 보였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호텔 종업원이 오사와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언을 했다고 증언했다니, 사진 따위는 아무런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어줄 수도 있으니, 애초에 그리 탄탄한 증거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래도 TV를 찍은 사진을 알리바이에 사용한다는 설정만큼은 독특해서 눈길이 갑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날로그 방식인 덕분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했지만, 시대상을 잘 반영한건 분명합니다.

"죽은 자의 손바닥"에서는 셀로판지를 이용하여 이미 죽은 사람의 손바닥 도장을 찍는 트릭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의 두 편 보다는 별로에요. 범죄물, 수사물, 추리물의 모든 측면에서 기대 이하거든요. 경찰의 추리는 근거없는 첫인상에 기반하고 있고, 범행 방법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런데 위의 세 작품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은 모두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내용도 그냥저냥합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간략하게 소개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잔혹한 여로"는 일종의 범죄 반전물입니다. 진범이 드러난 뒤 진범마저 개미지옥에 빠진다는 마지막 부분은 꽤 그럴 듯 합니다. "50퍼센트의 행복"은 오래 전 친자 감정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볼만했던 치정 드라마이고요.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지금 시점에 읽기에는 너무 뻔합니다. 결말도 안이하고요.

"고독한 증언"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를 떠오르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가사이 나오미의 증언을 회사측, 유족측이 제각각 제멋대로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는 내용이지요.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나오미의 고뇌를 심도깊게 다루지도 못했고, 밝혀진 진상 - 폭탄 테러 - 도 설득력이 약하며, 가사이 나오미가 결국 자고 있었다며 입을 다무는 결말도 영 아닌 탓에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살의의 축제"는 오래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소 시효가 지난 뒤, 돈으로 진범을 날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동기가 되는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은 가족마저도 영원히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일본의 분위기 묘사, 그리고 당시 범인과 유족 측 인물들이 당시 상황을 복잡하게 밝히는 결말은 꽤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걸 읽은 바람에 다소 김이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만, 잘 모르는 작가의 진면모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공포의 연하장"만큼은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25/02/07

붉은 박물관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점

붉은 박물관 - 4점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사 1과의 데라다 사토시 경사는 수사 중 실수를 저질러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일정 기간 경과 후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와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여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곳이었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수집된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데라다에게 직접 수사를 맡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정통 본격 추리 단편집. '붉은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기존 수사 기록과 데라다를 시켜 모은 정보로 미해결 사건을 추리해 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정도로 인기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래 전 미해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부서에서 사건을 추리한다는 설정은 로이 비커즈의 "미궁과 사건부"와 똑같습니다. 딕슨 카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과도 비슷하고요.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장르 성격도 동일합니다. 수록작들 모두 어느 정도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탐정이 독자들과 똑같이 단서를 제공받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인 덕분입니다. 덕분에 독자도 탐정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급해드린 고전 명작 수준은 아닙니다. 대부분 작품 속 트릭이나 범행 동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억지스러운게 많은 탓이 큽니다. 트릭도 5편 중 한 편("죽음에 이르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A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아니었다.'같은 사람 바꿔치기일 뿐이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작위적이거나 우연에 기반한게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캐릭터들도 영 별로입니다. 탐정역인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일본 컨텐츠에 나오는 쿨 뷰티 안경녀의 전형으로, 생생함을 느끼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열혈도 아니고, 사명감도 딱히 없어 보이는 미지근한 초식남 데라다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을 다시 불러온 의욕은 좋았지만, 완성도는 고전 걸작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빵의 몸값

1998년 2월 일어났던 나카지마 제빵 사장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은 빵에 바늘을 집어넣은 범인에게 1억엔을 건네주려다 살해당했다. 밖에서 숨어있던 경찰들은, 현장인 저택 내부 방공호의 존재를 몰라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인 폐허로 들어갔던건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차 안에 숨어있던 경찰 도리이였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차고에서 가발과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여 사장으로 변장했고, 차 안에서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장으로 폐가에 들어간 뒤, 변장을 풀고 수사관인척 나타났고요.
사장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의 알리바이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케 했는데, 함께 있던 야스다가 자수하려고 해서 죽이려고 했던거지요. 하지만 사장은 야스다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버렸고, 이 사실을 들은 도리이는 사장인 척 연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 경부가 바뀌었다는 트릭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 - 협박범에게 돈을 건네주기 위해 이동하던 - 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뺑소니 사망 사고를 일으킨걸 숨기려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공범자 중 한 명을 죽이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려 1억엔의 돈이 걸린 협박 사건을 꾸며냈다? 알리바이는 경찰인 도리이 경부가 거짓말로라도 증명해주면 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요.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허무맹랑한 설정 놀음일 뿐입니다.

트릭도 운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저택 안에 방공호가 없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야스다가 자살같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면요? 여러모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일기

데라다 사토시는 1993년 9월 하치오지시 살인 사건 범인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를 읽었다. '헤어졌던 애인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나는 몇 가지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오쿠무라 교수라고 추리했고, 교수와 담판을 짓던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은 도둑맞았었는데 도둑이 경찰에 신고했고, 다카미는 출동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히이로 사에코는 일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뒤, 데라다 사토시에게 재수사를 명령했다. 데라다는 명령대로 마이코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오쿠무라 교수 살해 당시 알리바이를 물었다...

히이로 사에코가 일기에서 포착했던 '이상한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꽤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음에도 흉기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의 페이퍼 나이프를 쓴건 확실히 이상했어요. 에어컨을 껐다는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체가 일기 내용대로 범행 뒤 무더위 속에 방치되었던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 놓여 있었다면 사망 시각은 훨씬 이전이 될 테지요. 

결론적으로, 오쿠무라 교수는 일기보다 이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오쿠무라가 일기를 조작하여 경찰에 보내면서까지 진범을 자처했던건, 진범이 마이코였기 때문이고요. 이틀의 시차를 둔 건, 마이코의 알리바이(이미 사망했음)를 확실하게 만들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야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90년대 과학 수사가 무려 이틀 이상의 사망 시각 차이를 밝혀내지 못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이코 자살 사체가 발견되기 전, 다카미가 마이코의 집을 방문했다는걸 아무도 몰랐고, 하숙집에서 가짜 도둑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들키지 않았고, 오쿠무라 집의 에어컨 조작을 들키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에어컨 조작의 경우, 전기 사용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데라다 사토시는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피해자 도모베 요시오가 사망하기 직전에, 25년 전 교환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들었다. 조사해보니 실제로 25년 전,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확실하여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흔한데("낯선 승객"), 데라다 사토시에게 죄를 고백한 도모베 요시오는 가짜였고, 도모베 마사요시 살인 사건의 진짜 청부인도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아내 마키코였다는 바꿔치기 트릭이 합쳐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코는 가짜 도모베 요시오인 사이토 아키히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범행을 모의했습니다. 마키코는 2년 전 도모베 요시오를 살해한 뒤, 사이토 아키히코를 대역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데라다가 들은건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사이토 아키히코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25년 전 사건 조사를 할 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고요.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 과정도 매끄럽고, 단서 제공도 가짜 도모베 요시오의 면허 취득 기간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운전 실력, 폐업 후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 근육질인 마키코의 체형(그래서 25년 전 여성 한 명을 살해하기 용이했다) 등 과할 정도로 제공됩니다. 

때마침 데라다 앞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마침 피해자가 경찰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상황은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

사진작가 에미리는 21년 전 부모와 이모를 잃었다. 세 명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했고, 집과 사체는 범인이 지른 불로 전소해버렸다. 이모의 연인이라는 남자 소행으로 보였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글을 잡지에서 읽은 히이로 사에코는 데라다에게 에미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 

에미리의 친모 도모코는 친모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동생 아키코가 불륜을 저질러 에미리가 태어났지요. 그런데 둘 사이에 또 애가 생기자 복수심에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입니다. 에미리를 임신했을 때와 겹쳤던 아키코의 유학 및 실종 기간, 아키코의 애인 이야기는 도모코의 말 뿐이었다는 것, 도모코는 연장 보육 제도 이용도 고려했다는 등의 단서 및 이를 통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사건의 동기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범행 동기와 과정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말이 되는 추리를 추가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추리 퀴즈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26년 전 발견되었던 피살체와 똑같은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26년 전 사건의 피해자와 연령이 같았고, 사망 추정 시각 및 사체 유기 현장도 똑같았으며 심지어 흉기마저 일치했다. 이번에도 피해자 스웨터 소매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수사 1과는 동일범의 소행이라 여겨 자료관에서 26년 전 자료를 가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관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감사팀의 지시를 받아 데라다는 홀로 사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기자 후지노 준코였습니다. 그녀는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후쿠다 도미오를 살해했습니다. 후쿠다 도미오 소매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였습니다. 준코를 학대하던 아버지는 후쿠다를 끌어들였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입을 다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26년 후,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매의 피는 DNA 조사를 할 테고,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드러날걸 노렸던 겁니다. 

이를 드러내는 '26년 전 피가 묻었던 소매와 지금 피가 묻은 소매의 위치가 다르다'는 단서도 좋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어느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 범인은 이를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 생각대로 수사팀 관계자가 범인이었다면, 26년 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위치를 틀렸을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범인은? 피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입수할 수 있는건 보도 관계자일테고, 관련되어 질문을 하는 관계자가 범인일거라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보도 관계자가 범인일 수는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널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DNA 분석 요원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자회견을 맡는 수사관이 아닌 경찰 직원이라던가... 기자 회견장에서 후지노 준코가 DNA 조사를 물어본 것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추리 과정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동기와 범행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DNA가 범행 당시 핏자욱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수하고 그 증거로 혈흔이 아버지 것이라는걸 증명하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정통 본격 추리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망작입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23/09/08

살인을 예고합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이은선 : 별점 2.5점

살인을 예고합니다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의 온갖 가십이 실리는 신문 「가제트」에 기묘한 광고가 떴다. 이웃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약속이나 한듯 정해진 시각에 리틀 패덕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6시 30분에 방안의 불이 꺼지고 누군가 침입했다! 곧이어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은 쓰러진 침입자를 보았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 블랙록 양을 쏜 뒤, 스스로에게 총을 쏴 사망한 듯 했다. 하지만 크래독 경위 등 경찰 관계자들은 미심쩍음을 느꼈고, 마을을 방문한 미스 마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블랙록 양의 친구이자 동거인 버너 양의 독살, 마을 주민 머거트로이드 양의 교살 사건이 이어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중 두 번째로 읽은 작품. 미스 마플 시리즈인데, 세인트 메리 미드가 아닌, 또 다른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이 무대입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를 실으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어요. 이에 대한 설명 - 좀도둑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도짓을 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 도 꽤 그럴싸했고요. 경찰 관계자들이 미심쩍어 하지만 않았어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 번에 털려고 했던 창의적인 강도가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죽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전후 식량과 의류가 배급제로 이루어지고, 때문에 마을 내에서 물물교환이 버젓이 이루어지던 시대 배경도 흥미로왔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 누구나 리틀 패덕스에 드나들 수 있어서 다들 용의자가 되어 버리고 말거든요. 힘들었던 시대에 있었던 일까지 작품에 효과적으로 반영시키는건 정말이지 거장다운 솜씨라 할 수 있겠지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본격 추리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줄 만합니다. 블랙록 양이 사건을 꾸몄다는걸 처음 마을 주민들이 리틀 패덕스에 모일 때의 대사로 명확하게 알려주는 덕분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틀 패덕스에 모인 마을 주민들 모두가 석탄 배급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난방을 돌린걸 언급하는데, 벽난로 불을 때면 간접 조명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던 블랙록 양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난방을 돌렸던 겁니다! 불을 꺼지게 만든 장치도 가구에 남은 담뱃자욱, 바뀐 조명등, 물이 없어 말라버린 제비꽃 등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며, 레티셔 블랙록과 샬럿 블랙록 신분이 뒤 바뀌어 있다는 것도 도라의 말실수 - 어떨 때는 레티, 어떨 때는 로티라고 부르는 - 를 비롯하여 스위스에서의 수술, 항상 목에 거는 가짜 티 나는 진주 목걸이 등의 여러가지 단서로 알려줍니다. (레티와 로티는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유용한 단서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핍과 에마의 정체가 이란성 쌍둥이지만 둘 다 여자아이였다는 사소하지만 나름대로의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헛점이 많은 편입니다. 범인 블랙록 양의 계획부터 안이했습니다. 경찰들이 엄연한 강도 살인 사건을 이렇게 쉽게 덮을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기발했던 '살인 광고'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했습니다. 경찰들도 지적하듯이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봤자 강도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다른 곳에 모이기를 기도하고 빈 집을 털 생각을 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동네 이웃 집을 방문하는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나 거액의 현금을 들고갈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모인 탓에, 블랙록 양이 총소리가 났을 때 자리에 없었다는걸 머거트로이드 양이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좀 바보같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빠릿빠릿한, 아니 보통 수준의 지적 능력만 갖추고 있었더라도 초반부 머거트로이드 양 증언으로 블랙록 양의 계획은 실패하고 체포되었을 거에요. 
한마디로 말해 살인 광고는 증인만 늘린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광고없이 셰르츠를 집으로 오라고 속이고 살해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어요. 증인이야 버너 양, 가정부 미치면 차고 넘쳤을테니까요. 동거하는 조카들도 있고.

또 사건을 꾸밀 때 블랙록 양을 향해 총을 쏜 걸로 위장한건 너무나도 큰 실수였어요. 수사하다보면, 그녀가 벨 괴들러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는게 드러날테고, 그렇다면 용의자로 유산을 노리는 벨 괴들러 동생의 자녀들 - 핍과 에마 - 이 떠오르는게 당연했습니다. 흉기인 권총도 마을 주민 이스터브룩 대령의 소장품을 훔쳤다는게 밝혀졌다면, 죽은 강도 세르츠가 그 총이 있다는걸 알고 훔쳤을리가 없으니 - 불가능한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겠지요 - 용의자는 마을 주민으로 더욱 좁혀졌을테고요. 그냥 아무데나 총을 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자기한테 총을 쏜 것처럼 꾸몄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범행 자체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셰르츠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기전에, 괴들러의 유산을 받을 때 까지만이라도 버티는게 상식적이니까요. 실제로 협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많습니다. 특히 블랙록 양의 가정부 미치는 타고난 거짓말장이에 과대 피해 망상증 소지자로 등장할 때마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라서, 빨리 피해자가 되기를 바랄 정도였어요. 제가 블랙록 양이라면 리틀 패덕스에 강도가 든 걸로 꾸밀 때, 미치를 죽이고 셰르츠가 실수로 죽인걸로 위장했을 겁니다....

그래도 동기에 대한 설명만큼은 확실하고, 공정함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완전 공략>>에서는 따분하다는 이유로 별점 2점을 주었던데,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2점은 다소 가혹해 보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2/04

철벽의 알리바이로 완전범죄 성립!? '교환 살인'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4편입니다. 저도 두 편 밖에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교환 살인'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살해 대상을 교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에 철벽의 알리바이를 준비해서 혐의에서 벗어나는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교환 살인이 트러블, 변심이나 배반 등으로 생각대로 잘 흘러가지 않고 그 와중에 드라마가 발생하는건 추리 소설에서 기본적인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교환 살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4중의 교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범인과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의 활약을 그린 미스터리. 범인 측 시점은 일종의 도서 미스터리로,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 시점은 본격 미스터리물로 즐길 수 있다. 또 교환 살인으로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 대한 후더닛 요소도 더해져 있는, 헛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한 플롯이 빛나는 본격 요소가 가득 담겨있는 작품.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히가시가와 도쿠야

사립탐정 파트, 탐정의 제자 파트, 형사 파트가 순서대로 그려지며 교환 살인물로는 드물게 도서 미스터리 스타일이 아닌 채로 진행된다. 제목에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교환 살인인지 궁금해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문장에 혹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속셈에 빠져들고 마는 본격 미스터리.

<<도망자>> 오리하라 이치

교환 살인을 저질렀지만 배신당해서 한 번 체포되었지만 탈주한 뒤 도망자 신세가 된 도모타케 지에코. 그녀와 그녀를 쫓는 형사와 남편, 그리고 인터뷰로 구성되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도피 행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노골적이며 의미심장한 표현들은 서술 트릭의 대가인 저자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준다. 실재로 있었던 사건이 모델인 미스터리 작품.

<<스트레이트 체이서>> 니시자와 야스히코 (국내 미출간)

린지는 바에서 취했을 때 3중 교환 살인 약속을 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자신이 지목했던 살해 대상이었던 상사의 집에서 타살 사체가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는데..... 저자가 SF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들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품. 수수께끼 아이템이 등장해서 이번에도 SF 설정이구나 싶은 점도 흥미로운 점. 꼭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어보시길.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교환 살인이 주제인 작품들 중 선구자적인 존재인 이 작품은 히치콕 감독에 의한 영화도 유명하다. 우연히 같은 전철에서 만난 가이와 브루노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브루노가 가이에게 교환 살인을 제안한다는 내용으로 편집광적인 스토커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는 심리 서스펜스물.

정보는 모두 당신 손 안에! <<독자에의 도전장>>을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 작품들

2022/11/05

마안갑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점

 

마안갑의 살인 - 4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와 히루코는 마다라메 기관의 자취를 쫓다가 이전 기관의 연구소였던 '마안갑'을 찾았다. 그곳에는 기관에서 연구하던 예언자 사키미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11월 마지막 이틀 동안 그곳에서 남녀 각각 2명 씩 죽을거라는 사키미의 예언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이 마안갑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다리에 불을 지른 탓에, 둘은 예지 능력이 있는 여고생 도이로, 기자 라이타, 여행자 오즈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마안갑에 갇혀 버렸다.
뒤이어 예언대로 기자 라이타는 산사태에 휩쓸리고, 사키미 독살 미수에 이어 도이로가 처참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시리즈 제 2작. 비현실적인 소재에 의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유사합니다. 전작에서의 좀비가, 이 작품에서는 '진짜' 예언자가 등장하니까요. 고전적인 정통 본격물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부에서 경찰이나 구조대가 오면 남아있는 사람들 중 범인이 있을게 뻔하니 클로즈드 서클에서의 범행은 불합리한데, 이 범행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풀어낸게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범인 오즈가 범행을 실행한 이유는 바로, 사키미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클로즈드 서클이건 뭐건간에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 자기가 죽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죽였던 거지요. 와 정말이지 제가 여태까지 읽어보았던 추리 소설 중에서도 동기의 참신함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완전 범죄를 위해 오즈와 도키노가 서로 다른 성별을 한 명씩 죽이는 교환 살인을 계획했는데, 오즈가 도이로를 살해한 뒤 공범 도키노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서 생겨나는 딜레마도 흥미로왔습니다. 도이로가 살해당한 뒤 히루코마저 죽은 것으로 가장하자 도키노는 죽음의 예언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사람을 죽이려 할 리 없지요. 하지만 기껏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여전히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오즈는 필사적일 수 밖에 없고요.

히루코의 추리쇼를 거쳐, 마지막에 사키미가 진짜가 아니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녀는 진짜 사키미를 연구하던 도이로 할아버지의 조수였던 오카자키였습니다. 사키미와 도이로가 도주할 때 대역으로 남겨졌다가 예언자 역할을 떠맡게 되었던 거지요. 다행히 사키미가 예언을 기록한 노트가 있어서, 예언자 행세를 할 수 있었고요. 예언이 다 떨어지자, 자살해서 예언도 맞추고 자신의 신화도 유지하려 했지만 자살에 실패한 뒤 원수와도 같은 도이로 - 자기를 버린 박사와 사키미의 손녀 - 를 죽이도록 상황을 조작했다는 진상도 꽤 그럴싸했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작보다 못합니다. 앞서 "'클로즈드 서클'에서 범행을 저지른 동기" 만큼은 말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범행은 정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죽은 네 명 중 라이타 기자와 구키자와의 사인은 사고로 살해당한건 도이로와 도키노 둘 뿐입니다. 그런데 도이로 사건은 공범 둘이 저질렀다는게 전부입니다. 별다른 트릭은 없어요. 이 정도라면 경찰이나 구조대가 오면 바로 범인이 밝혀졌을겁니다. 아무래도 어린 초등학생 아들이 포함된 시시다 부자나 도이로의 숭배자 구키자와가 범인일 가능성은 낮으니 단순 소거법에 의해서도 오즈와 도키노가 공범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셈이고요. 물론 다른 방에 둘만 있었다는 사키미와 핫토리가 공범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요. 하지만 핫토리는 작중에서 건물이나 가구 정도의 비중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녀가 범인이라는건, 추리 소설로는 반칙일 수 밖에 없지요.
도이로 사건의 단서로 제공되는 박살난 시계 역시 공정한 단서는 아닙니다. 독자는 왜 시계를 부쉈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시계 바늘 두 개가 모두 비슷한 위치에서 부서져 있었다' 정도의 묘사만으로 두 바늘이 겹쳐진 시간에 범행이 일어났다는걸 추리해내는건 어렵습니다. 방음이 철저한 방과 같은 작위적인 무대 설정도 거슬렸고요.

도키노 사건에서 창을 든 도키노(로 보였던 흰 천을 뒤집어 쓴 누군가)가 달아나면서 젖은 수건을 밟아 발자욱을 남겼는데, 젖은 발자욱은 이전에 찍어 놓았고 범인은 맨발로 자기 방으로 이동했다는 트릭은 너무 간단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창은 벽지를 말아 만든 소품이었다는 것도 예전 <<미스터리 탐정 야쿠모>>에서 접했던 트릭이고요. 한마디로 말해 추리 퀴즈 수준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트릭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 범행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범인 오즈는 앞서 발생한 딜레마 - 도키노는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 - 로 도키노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그녀를 빈사상태에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범행을 저질렀다는데, 도키노를 괴한으로 몰아봤자 도이로를 살해하려면 공범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도이로를 살해할 수 없었던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도키노를 범인으로 몰아봤자 그녀가 깨어난 뒤 사실을 증언하면 오즈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니 도키노를 죽일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유치한 조작을 벌일 필요는 반대로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차라리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더 나으니까요. 아니면 생존자들을 다 죽이던가....

그 외에도 헛점은 곳곳에서 눈에 뜨입니다. 사키미 자살 미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살 실패 후, 도이로를 죽이기 위해 꽃을 흩뿌렸다는 설정부터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도이로가 그녀의 죽음을 예지한다는 보장이 일단 없거든요. 모든 사건을 예지하고 그림을 그리는건 아닐테니까요. 사키미가 죽은건 아니니 그림을 안 그릴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림에 꽃까지 그린다는건 더더욱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또 오즈가 사키미 방 밖에 꽃을 뿌려 놓은 것 역시 시간대를 겨우 맞춰서 발생한 우연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가지 장치와 단서, 복선으로 정교함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다소 무리한 설정들도 눈에 뜨이고요. 시리즈를 계속 읽을 필요가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2022/09/18

조커게임 - 야나기 코지 / 한성례 : 별점 2점

조커게임 - 4점
야나기 코지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어딘가의 랭킹에서 트릭이 뛰어난 작품이라며 추천하고 있어서 구해 읽었습니다.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과 전혀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랭킹 탓에 특별한 게임과 관련된 본격 미스터리 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구 일본 제국 시대를 무대로 한 스파이물인데다가 심지어 단편 시리즈였기 때문입니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하는 몇가지 트릭은 분명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대 상황을 잘 살리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커 게임>>에서 헌병대가 외국 스파이의 집을 철저하게 뒤졌지만 마이크로 필름을 찾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스파이는 마이크로 필름을 천황의 사진 뒤에 숨겨 놓았던 것이지요. 일본 헌병대는 불경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사진을 만져보지도 못했던 겁니다.
<<로빈슨>>에서 완벽하게 암호를 전달했지만 본국이 가짜라는걸 알아채게 만든 트릭은 일정 간격으로 오타를 입력해야 되는 것이었고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저 정도의 트릭으로 '빼어나다' 고 말하기는 힘들고요. 무엇보다도 작품 속 특수 정보 기관인 D기관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유치하고 진부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왕' 유키 중령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모든 D기관원들 모두가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슈퍼 스파이 - 스파이 패밀리 같은 - 로 그려지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봐도 만화 속 등장인물에 가까와서 현실감을 느끼기는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애니메이션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데, 여러모로 애니메이션으로 보는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만큼 만화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후속작을 따로 책으로 읽어볼 계획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커 게임>>
육군에 유키 대령 지휘 하에 스파이 양성 학교가 세워졌다. 훈련생들이 군인이 아닌 일반 대학 졸업생이었고, 전통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무사도에 반하는 행위라 생각하여 이 학교와 조직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육군은 사쿠마 중위를 파견했다. 사쿠마 중위의 임무는 유키 대령 조직의 실수와 헛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사쿠마는 학교 훈련생들의 기상천외한 입학 시험과 훈련 과정, 그리고 천황제를 부정하는 듯한 사고 방식에 경악하던 차에, 미국인 기술자 고든의 스파이 행위 증거를 찾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는데...

표제작이자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사쿠마 중위의 시점으로 첩보 기관 D기관에 대한 설정과 '마왕' 유키 대령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을 가장 잘 드러내는게 제목이기도 한 '조커 게임' 입니다. D 기관 훈련생들이 식당에서 여흥으로 즐기는 포커 게임으로 보이지만, 사실 식당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스파이 게임이지요. 누구나 누군가의 카드를 보고 정보를 줄 수 있는데, 그 정보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규칙입니다. 누구나 스파이가 될 수 있고, 누구도 믿으면 안된다는 D 기관의 룰을 잘 드러내는 게임이에요.

이러한 D 기관 설명이 중심이고, 고든이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증거물을 찾는 과정은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이 과정에 약간의 트릭이 사용되고 있으며, D 기관원들이 천황제 부정 발언을 했던게 트릭과 연결되고 있어서 전개 구조 자체는 잘 짜여져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쿠마가 주도한 수색 자체가 육군의 음모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초 수색을 지시했던 무토 중령은 필름을 발견하지 못했고, 고든의 부당한 수사에 대한 항의로 궁지에 몰렸던 상태였지요. 그래서 D 기관을 시켜 두 번째 수사에 나선 것입니다. D 기관도 수색에 실패하면 모든걸 뒤집어씌워 조.직을 와해시키고, 자기 실수를 덮으려는 목적으로요. 사쿠마는 무토 중령의 음모를 위한 버림돌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러나 반전이 드러나는 과정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헛점도 많습니다. 무토 중령이 술집 게이샤에게 용의자 집 수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고든 본인이 사쿠마 중위에게 지금이 두 번째 수사라고 말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지 모르겠거든요. 유키 중령이 변장하고 무토 중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는 등 작위적인 요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유령>>
영국 총영사 그레이엄은 일본인 양복점 점원 가모와 체스로 친해졌다. 그러나 가모는 D 기관 조직원이었다. 그의 임무는 폭탄 테러 계획의 유력한 용의자 그레이엄 총영사에 대한 혐의를 확정하기 위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가모는 체스를 통해 총영사는 심증으로는 죄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총영사 관저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종이가 테러범 접선 장소에서 발견되었기에, 결정적 증거를 잡고자 철저히 미행했지만 별다른걸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새벽에 영사관에 잡입하게 되는데....


영사는 지령문을 옮기는 수단에 불과했다는게 진상입니다. 테러 조직은 영사의 우산 속 빈 공간을 활용해서 접선 장소에서 몰래 지령문을 전달받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영사가 테러 조직의 접선 장소와 동선이 겹쳤고요.

발상의 전환이기는 한데, 구태여 영사를 이용해야 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D 기관원 가모가 영어에 능통하고, 체스는 물론 미행과 잠입, 그리고 금고 털기에도 숙달된 슈퍼 스파이라는 묘사도 과장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가모가 영사가 소싯적 저질렀던 악행을 고백한 일기를 읽은 뒤, 이걸로 영사를 협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은 최악이었습니다. 촬영도 않고 다른 증거도 없는데, 단지 악행을 기억하고 있다는걸로 영사를 협박하는게 가능했을까요? 심지어 상대는 적국의 스파이인데 말이지요. 이게 통하려면 뭔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가모가 신분을 세탁하여 영사와 친분을 맺는 과정, 그리고 가모가 미행할 때 영사가 팁을 주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정보 교환 방법이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 정도는 볼 만 했는데, 그 외에는 건질게 별로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로빈슨>>
D 기관원 이자와는 영국 런던에 잠입했지만 영국 첩보기관에 체포되었고, 자백 유도제를 맞아 비밀 암호 등을 털어놓고 말았다. 영국은 유키 대령에게 배반당했다는 이자와를 이용하여, 일본에 가짜 정보를 전달하여 혼란을 주려 했지만 이자와는 의식의심층 구조에 숨겨진 진짜 중요한 비밀은 털어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D 기관은 이자와의 정보가 가짜라는걸 알아채는데...

앞서 소개해드렸던 , 암호가 가짜라는걸 알게된 이유는 꽤 괜찮았습니다. 스파이는 일본 남아의 사고 방식과는 다르다, 무조건 살아남아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유키 대령의 사고 방식도 스파이다워서 좋았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과장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특히 자백제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방법이 말이 안됩니다. 의식의 표층과 심층을 구분하여 표층 정보만 입에 올리도록 훈련했다는데, 전혀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지 못했습니다. 훈련 과정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긴, 자백제라는 비과학적인 약도 마찬가지긴 하네요.
이자와 탈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프라이데이'의 존재도 이전에 설명 한 번 없어서 뜬금없었습니다. 이자와가 임무를 떠날 때 유키 대령이 <<로빈슨 크루소>> 책 한권을 선물로 주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위기에 처했던 이자와가 동그라미에 십자가 기호가 그려진 암호를 보고 프라이데이의 존재를 깨닫는다는건 솔직히 가관이었습니다. 이 암호는 연금술에서 '미의 여신'을 뜻하고, 미의 여신 비너스는 천문학에서는 금성이며, 이는 일주일 중 제 6일, 즉 '프라이데이'를 가리킨다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국가 정보 기관들의 두뇌 싸움은 볼 만 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마의 도시>>
상하이에 파견된 헌병 중사 혼마 에이지는 상사 오이카와 대위로부터 헌병대 내부 내통자 색출을 지시 받는다. 헌병대의 미야타 중사가 살해당했기 때문이어다.
그 직후, 오이카와 대위의 자택이 폭탄 테러를 당했고 혼마는 본국 '특고' 시절 안면을 텄던 신문기자 시오즈카로부터 제보를 전달받았다. 옛 동급생이자 D 기관원인 대학 동창 구사나기를 상하이에서 목격했다는 제보였다....


D 기관원이나 기관의 작전이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 이색작. 헌병대 중사 혼마의 수사와 추리가 이야기의 핵심인 탓입니다.
특별한 트릭은 없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가 돋보였습니다. 오이카와 대위는 아편을 빼돌리다가 미야타 중사에게 들켰고, 그래서 중사를 살해한 뒤 증거 은폐 목적으로 자택을 테러로 위장해 폭발시켰던 겁니다. D 기관은 시오즈카로 변장시킨 조직원을 시켜 혼마가 이 수사를 하게끔 유도했고요.

하지만 혼마의 추리는 증거가 없다는 문제가 큽니다. 오이카와가 도박장을 드나들었고, 빚이 있었다는 정도로 미야타 중사 살인사건 및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으로 몰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이카와가 혼마의 질책 정도로 패배를 쉽게 수긍하는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뒤 요시노 상병에게 총을 맞고 죽는 장면도 뜬금없었습니다. 요시노 상병은 오이카와에게 지시를 받고 움직이다가 폭발 때 죽고 만 게이 소년의 연인이었다는 설정인데, 설명이 부족했어요.

혼란스러웠던 상하이 분위기와 이런저런 묘사는 그럴싸했고 재미도 있었지만, 결말이 별로였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더블 크로스>>
독일인 카를 슈나이더가 소련과 독일 양쪽에 정보를 제공하는 이중 스파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D 기관은 졸업 시험을 겸해 도비사키에게 임무를 맡겼다. 도비사키는 슈나이더가 어떻게 암호를 발송했는지 등을 밝혀냈고, 신병을 확보하기 직전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애인의 집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음독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범인은 사건 현장을 발견했던 슈나이더의 애인 노가미 유리코였습니다.
사건 당일 그녀의 알리바이는 완벽했습니다. 수 km 떨어진 극단 연습장에서 한창 연극 리허설 중이었고 그녀는 주역이라 연습장을 5분 이상 비우는건 불가능했는데, 차로 집을 왕복하는데는 최소 10분은 걸리는데다가, 슈나이더에게 유서를 쓰게하고 독이 든 와인을 마시게 하는데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알리바이 트릭물 처럼 보였던 설정과 전개에 비해 진상은 보잘것 없습니다. 슈나이더는 미리 독을 넣어둔 와인을 마시고 죽었던 겁니다. 바로 직전에 읽고 소개해드렸던 <<흑마술의 여자>> 트릭과 똑같네요. 유서는 전화를 통해 연극 대사로 위장해 쓰게 했다는, 추리 퀴즈 수준의 트릭이었고요. 노가미 유리코가 자택에 설치해두었던 전화 대신, 사람을 시켜 경찰을 부른 이유 - 유서를 옮겨 놓으려고 - 정도에 대해서만 약간의 추리가 등장할 뿐입니다.
유서(?)에 작게 쓰여져 있던 '더블 크로스'도 슈나이더의 즉흥적인 낙서에 불과하다는게 진상이라 허무했습니다. 그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의미였다는데, 그냥 맥거핀에 불과했어요.

오히려 본편 사건보다는 도비사키의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등을 버리며 홀로 살아가는 스파이가 될 수 없다는 도비사키의 결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결심은 급작스럽게 등장합니다. 이 작품이 장편이었다면, 그래서 그가 노가미 유리코를 심문하면서 애정이 싹텄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갔다면 괜찮았을텐데 중간 과정 없이 결심만 등장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수록작 중 워스트로 추리물, 스파이물 양쪽 모두 별 가치가 없는 작품입니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22/02/06

디오게네스 변주곡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5점

디오게네스 변주곡 - 8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중화권 추리 소설의 대표작가 찬호께이의 단편집입니다. 본격적인 작가 데뷰 초창기에서부터 최근작까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했던 결과물을 모아 놓았는데 본격 추리는 물론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어서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책 뒤에 실려있는 작가의 작품별 후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썼는지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습작 1,2,3"가 쓰여진 방법이 아주 대박이었습니다. 임의로 키워드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가서 다섯 개의 단어를 얻은 뒤, 그 키워드를 순서대로 연결해서 아주 짤막한 엽편 소설을 쓴 결과물이라고 하거든요. 읽을 때는 이런걸 뭐하러 실어 놓았나? 싶었는데, 쓰여진 방법을 알고나니 달라 보이더라고요. 특히 "습작 1"이 놀라와요. 이런 키워드로 어떻게든 말이 되는, 그것도 반전까지 있음직한 엽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과연 잘 나가는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은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어지네요.

전체적으로 작품들 수준이 고르지는 않지만, 장르문학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범인, 진상 등을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란유웨이는 겉보기에는 유능하고, 사회성 좋은 청년이지만, '삼람소옥'이라는 블로그를 엿보며, 다크 웹에 접속하는 은밀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삼람소옥'의 운영자 샤오란의 가족 관계, 거주지, 체형, 취미 등 모든걸 알아낸 그는, 결국 샤오란의 집에 침입하여 여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초기작으로 제 7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 결선작입니다. 고작 사흘 걸려서 썼다는데, 그렇게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란유웨이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시작부터 상세하게 설명되는 도서 추리물로도 뛰어나지만, 란유웨이가 살해한게 샤오란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린치칭이라는 반전의 서술 트릭물이라는 복잡한 구성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린치칭이 샤오란을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위장해서 죽였다는 설정인데, 이러한 반전이 다크 웹에서의 회원들 사이 의견 교환, 삼람소옥의 글 들을 통해 교묘하게 등장해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삼람소옥 글만으로 사용자를 추리해내고, 감시하는 과정은 "망내인"을 연상케하는 점도 작가의 팬이라면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고요.

린치칭이 연쇄 살인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등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금융 위기로 전재산을 잃은 테일러는 가족을 떠나 노숙자가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른 노숙자 샘을 만나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이브날, 산타의 집에 산타클로스를 살해하겠다는 살인 예고 편지가 날아온 뒤 산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추리물로 제 역할을 다 합니다. 존의 짤막한 이야기의 몇몇 디테일을 통해 펼치는 테일러의 추리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그는 썰매 위에 흰 수염이 흩어져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피아노줄로 목을 잘리게 만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러나 죽은 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타클로스가 대역이 살해당한 걸로 꾸미고 숨었다는 진상을 밝혀냅니다. 존이 산타클로스였고, 일련의 이야기는 테일러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길이를 조금 더 줄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정도도 아주 좋았던,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소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왜 무대가 미국 뉴욕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 후기를 보니 '존'이라는 이름을 '존 도'에서 따 왔다는 복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정수리" 

아홍은 어느날부터 사람들 정수리 위에 떠 있는 '그것'을 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머리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모두가 똑같은걸 보지만 못 본채 해 왔던 것이었다! 지친 아홍이 결국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하자 아홍의 머리 위 천 뭉치가 열리고 도마뱀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2018년에 발표된 비교적 최신작입니다. 한 매체로부터 '귀신'이라는 주제로 단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합니다. 쓰여진 이유답게 판타지 일상계 호러물로 볼 수 있습니다. "환상특급"에 나오면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획일화되고,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관련된 언급은 없네요.

그러나 흥미로왔던 도입부를 지나 뒤로 갈 수록 재미를 찾기는 힘듭니다. '왜'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탓입니다. 결국 머리 위 이상한 물체들에 대한 묘사 외에는 건질게 없었어요. 작가 후기를 보니 의도적으로 논리나 추리 요소보다는 황당무계한 현실이 주는 스릴에 집중했다는데, 이래서야 고어 포르노와 크게 다를바 없는 셈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간이 곧 금" 

리원은 시간 거래 센터를 방문하여 자기 시간을 팔게 되었다. 고통을 잊고, 돈과 성공을 빠르게 누리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으로 이 역시 "환상특급"이 떠오르는 단편입니다. 

제일 재미있던건 시간 거래에 대한 설정입니다. 시간을 팔면, 해당 시간이 곧바로 지나가고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남지만 현실감은 사라집니다. 시간을 사면 시간이 길어졌다고 느끼게 되고요. 돈 벌이, 그리고 힘든 기억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적극적으로 판 리원, 그리고 필요한 시간을 조금씩 사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연적 아리의 대비가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아리가 시간을 샀다는걸 마지막에 반전처럼 등장시켜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아리의 말대로 인생에 고통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극단적으로 팔거나 살 필요는 없고, 적당히 사고 팔면서 인생을 사는게 합리적일테니까요. 예를 들어, 군대에 가게되면 이 시간은 당연히 파는게 낫잖아요? 좋은 설정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유명 편집장이 작품을 가져온 신인 작가에게 사람을 죽여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신인 작가는 등단을 위해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을 죽일 결심을 했다. 그녀가 추리 소설, 특히 밀실 살인을 비난했기 때문에, 완벽한 밀실 트릭을 만들어 살해하는데... 

초반의 편집자의 주장은 아주 와 닿았습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고민해야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거라는 취지는 공감하거든요. 주인공 신인 작가의 범행도 그래서 설득력있었습니다. 신인 작가라면 혹할만한 주장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밀실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지만 창이 있었는데, 이 창을 통해서 끈만 집어넣어 피해자를 교살했다는 트릭이 특히 좋아요. 피해자가 직접 목을 집어 넣어야 하기에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피해자가 참가했던 연극 연습을 위해 스스로 밧줄 안에 목을 집어 넣었다는걸 꽤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학 수사를 통해 경찰이 진상을 밝힌다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이런 밀실 트릭이 21세기에 먹힌다는건 사실 말도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모든걸 뒤집는 반전이 놀랍습니다. 편집장은 가짜였고, 유명 작가가 신인 작가를 부추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후, 진상을 듣고 자기가 사건을 해결한 것 처럼 꾸며 경찰에 제보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반전이 너무 많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수작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필요한 침묵" 

지옥의 수용소에 처 넣어진지 10년만에, '나'는 친구 라오왕이 죽은 뒤 과거에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킬러였다는 짤막한 꽁트.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설명도 너무 부족하고요. 작가 후기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품 내용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화 "언디스퓨디드" 시리즈처럼 화끈하게 풀어내는게 더 재미있었을겁니다. 별점을 따로 줄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가라 행성 제 9호 사건" 

가라 행성에서 아홉번째 (제 9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전의 사고들을 일으켰던 316형 중력 붕괴 엔진의 문제를 해결한 신형 317형 엔진을 탑재한 카로카호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그러나 3명의 승무원은 상륙정으로 가라 행성에 상륙했다가,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사고 당시, 장거리 통신 시스템만 분해되어 상륙정에 실려 있었다. 

사건 조사 중 승무원이 최후를 맞는 동영상에서,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을 위해 통제와 소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파의 거두 모모코 사령관이 범인임을 암시하는 파우스타 함장의 발언이 녹화되어 있다는게 밝혀지자, 조사 위원회는 탐정 두핀핀을 불렀다. 맥켄넨 총독은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SF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단순하지 않고, 반전과 함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우선 함장의 발언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승무원들을 매수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추리가 먼저 선보입니다. 모든 주민 행동을 녹화하는 시스템 '눈'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통신병을 만났다는게 증거고요.

그러나 사건은 맥켄넨 총독이 일으켰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는 선체 엔진이 316형 엔진인 것 처럼 조작했던 겁니다. 함장은 폭발할까봐 카로카호를 버리고 탈출했고요.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상륙 후 본성과의 통신을 위해 떼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사고로 승무원들 모두가 사망했고, 총독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 두핀핀 탐정을 불러 이 모든걸 밝히끔 유도했다고 설명됩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오로지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만 경주하는 발전파도 '탐정'이라는 쓸데없는 직업의 도움을 받은 셈이라 보수파도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요. 추리와 전개 모두 합리적이며,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세운 설정 중심이라 추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작가 후기를 통해 드러난 작가의 의도가 놀라왔습니다. '후기 문제'로 인한 본격 추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본격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는데 그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거든요. 후기 퀸 문제는, 소설 속 탐정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이고 자기의 결론이 유일무이한 진실인지 여부를 작품 속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즉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정함은 탐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도 후기작에서는 독자에의 도전을 없앴다지요. 찬호께이는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단서는 '눈' 시스템에 기록된 내용을 기준으로 합니다. 두핀핀 탐정은 아예 사건과 무관한 탐정으로 이 기록만 가지고 추리를 진행하며, 무엇보다도 탐정 스스로가 '사건의 이유'가 되기까지 합니다! 

SF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특히 가라 성 거주 생명체 바보우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인간에 비하면 극도로 짧은데, 이렇게 모든건 서로 상대적이라는걸 지구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재해를 빗대는 부분이 특히요.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제대로 된 하드 SF를 써도 좋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루한 설정만 참는다면, 그 이상의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내 사랑 엘리" 

나는 처제 수와 그 남편 토니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아내 엘리는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은 2층에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수와 토니 앞에서 만드는 '나'의 작전이 먼저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알리바이 트릭의 핵심은 시체를 끈을 당겨 움직이게 만드는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괜찮았어요. 수를 죽인게 토니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엘리와 토니가 불륜 관계였다는걸 입증하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둘이 불륜 관계로 함께 도망갔다고 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말이지요. 단순 실종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뒤집힐 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점에서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습작 2" 

고독을 주제로 한 짤막한 꽁트. 전염병 숙주인 남자 혼자 세상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그다지 의외성도 없고 너무 짧아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커피와 담배" 

시사 잡지 포커스의 기자인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8분에 모르는 공원 벤치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난 수요일 이후 기억은 잃은 상태였다. 몸은 간절히 커피를 원했고, 커피를 마시고자 편의점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나는 지금 세상은 담배가 합법이고 커피가 불법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결국 몰래 커피를 판다는 약국에서 커피를 입수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나는 난동을 부리다가 기절해 버리고 마는데.... 

모든건 흡연자였단 '나'의 금연 치료를 위해 루 박사가 행했던 IC 금연 치료 실험 탓에 벌어진 착각이었다는게 진상인 이야기입니다. 측두엽, 후두엽, 전두엽 간 관계 문제로 '나'는 담배를 커피로 인지했고, 이를 언어로 구성할 때는 '마약'으로 말했던 겁니다. 루 박사의 시계를 붕대로 착각하고 있어서, '나'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기묘한 상황을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이는 독특한 SF이자 판타지로, 이 작품도 "환상특급"에 사용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자매" 

'나'는 여자친구 아쉐가 기생충인 언니 아신을 죽여서 시체를 숨길 계획을 세웠다. 우선 중고 냉장고를 구입하여 아쉐 집으로 옮긴 뒤, 원래 집에 있던 냉장고에 아신의 시체를 담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화물차 안에서 시체를 꺼냈고 냉장고는 버렸다. 아신으로 변장한 아쉐가 경비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외출하도록 시켰고, 아신의 시체는 밤에 바다에 버렸다... 

시체를 바다에 버리는 범행 과정만큼은 그럴싸하게 그려진 범죄물입니다. 그런데 '나'가 아쉐와 결혼할 경우. 600만 홍콩 달러에 달하는 집 명의자에 추가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예 상속자가 되어버려 아신은 집 상속권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아신이 먼저 아쉐를 죽일 계획을 꾸몄었고, 이를 알아챈 '나'가 아신을 죽였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던,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마당 본부에서 간부 감자 괴인이 머리가 으깬 감자가 되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우두머리 바다 대왕과 살아남은 간부인 양파, 사마귀, 해삼 괴인 앞에서 코작 참모는 사건이 감자 괴인의 자작극이라는 추리를 펼치는데... 

일본 전대물 설정을 본격 추리물에 끌어들였는데, 의외로 수준이 높아서 깜짝 놀랐던 작품입니다. 감자 괴인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건 사마귀 괴인과 가면전사 1호의 무기였다는 단서가 앞 부분에 제공되고, 코작 참모의 기묘한 행동을 통해 코작 참모가 가면전사 1호였다는게 드러나는 반전이 아주 일품인 덕분입니다. 코작 참모가 이를 가자 괴인 자작극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설득력 높은 추리였고요. 재미와 추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영혼을 보는 눈"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이 잘나갔던 영매였지만, 30년 전 사건으로 몰락했다며 그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프로그래머 A씨 아내가 몸을 열 번 넘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던 사건이었다. 아내의 영혼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A씨 지문이 묻은 흉기를 찾는 것도 도왔기에 결국 A씨는 사형당했다. 그러나 다른 사건이 벌어졌고, 진범은 시체를 발견했던 가정부였다는게 밝혀졌다. A씨 아내 영혼은 A씨가 불륜녀와 행복하게 살 까봐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잡지 요청으로 귀신을 주제로 썼다는 점은 "정수리"와 비슷하네요. 하지만 공포 자체에 집중했던 "정수리"보다 못했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영혼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처음 접했는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킬러였으며 노인은 방금 죽인 타겟의 영혼이 '나'의 뒤에 있는걸 보았다는 결말도 진부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숨어있는 X" '

나'는 강의 후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 탓에 옆 강의실의 '추리소설의 감상, 창작, 그리고 분석'이라는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다. 강의 시작 후, 학생들과 대화를 하던 교수 '수염남'은 학생들에게 추리 게임을 제안했다. 지금 강의실에 조교가 학생인 척 숨어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이유와 증거를 제시해 보라는 게임이었다. 정답을 맞춘 한 명에게 무조건 A학점을 주겠다는 말에, 강의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게 되는데.... 

찬호께이는 후더닛물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클리셰를 벗어날 수 없고(아마 가장 수상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그런걸 의미하는 말 같습니다), 독자가 직감으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후더닛물의 변주를 고민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창작 의도에 걸맞게 클리셰는 먹히기 힘듭니다. 애초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각자의 별명. 그리고 생김새와 성격 묘사만 있을 뿐이니까요. 이 정도 단서로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기에 벅차지요. 범죄도 아니기에 동기나 범행 수법으로 당사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목받은 사람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야 하고, 지목에 실패한 사람은 탈락한다는 게임의 기본 룰과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수수께끼는 풀리며, 교수인 줄 알았던 수염남이 조교였고 학생인 줄 알았던 '코다 쿠미'가 교수였다는 진상도 깜짝 놀랄만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화자이자 주인공 '냉커피'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수여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반전섞인 결말도 아주 깔끔했고요. 눈으로 고립된 산장에 초대받아 방문한 서로를 모르는 투숙객들 중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을 찾아내는 정통 추리물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완성도높게 구현한 수작이에요.

물론 게임이 이렇게 강의 시간안에 딱 맞게 잘 끝났을지는 사실 의문이에요. 교수가 수수께끼를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의도가 더 많았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무조건 차례대로 한 명씩 지목하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생기고 그 사람이 진상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결정적 약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게임'이 작위적이라고 감점하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8/04/29

매스커레이드 이브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매스커레이드 이브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한국 한정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몇 년 전 전편을 읽고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 단편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평을 남겼는데,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요? 이번에는 전편 시점에서 수년 전을 무대로 하고 있는 중, 단편집입니다. 전부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와 강력 사건이 적당히 섞여 있는 구성으로 모든 이야기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주제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은 좋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루키 형사의 등장" 편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든,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시리즈보다는 못한 범작입니다. 작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면도 제각각"

신참 호텔리어 야마가시 나오미는 업무 때문에 투숙한 옛 연인 미야하라의 급작스러운 부탁으로, 그의 불륜 상대인 니시무라 미에코를 찾아 나서는데...

전편의 주역 중 한 명인 나오미가 신참 호텔리어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과거사, 신참으로서 호텔리어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 전반적으로 젊음이 한껏 느껴집니다.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결말도 괜찮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미야하라의 보스인 전 프로야구 스타 "대장" *오야마가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내는 장면은 그럴듯 했지만, 미에코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부분은 나오미가 우연히 본 룸서비스 주문 내용을 통한 것으로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탓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루키 형사의 등장"

전편에 나오미가 등장하니 이번에는 당연히 닛타 형사가 등장할 차례죠? 닛타가 신참 형사일 때 맡았단 요식업자 거부 다도코로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실제 사건만 놓고 보면 범인이 운이 좋아서 당장 체포되지 않은 것 뿐, 경찰 수사가 조금만 더 이루어졌더라면 금방 체포되었으리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도코로 미치요의 요리 학원 수강생들에 대해 수사만 진행했어도 요코모리 히토시를 유력 용의자로 끄집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범행 현장의 특수성에 따라 범인이 자전거를 탔다고 추리한다던가, 현장의 담배 꽁초는 위장이고 어딘가에서 입수한 것이라는 추리는 꽤 그럴듯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도코로 미치요가 남편 살해를 사주한 진짜 악녀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이 아주 괜찮았어요. "입술 틈새로 분홍빛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 표정은 사냥감을 노리는 뱀을 연상하게 했다"는 일본식 팜므파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묘사, 남자를 조종하여 완전 범죄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한 편의 등장으로 그치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도코로 미치요 캐릭터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면과 복면"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에 유명 신인 복면 작가 다치바나 사쿠라가 작업 때문에 투숙하자,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오타쿠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핵심 수수께끼인 다치바나 사쿠라의 정체가 중년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의 딸이라는걸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문제는 큽니다. 때문에 두 명이 투숙한 상황이라는 진상을 쉽게 눈치챌 수 있고, 중년 아저씨의 외근과 편집자와의 통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의 소소한 수수께끼 역시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품으로 쉬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호텔 퀸시" 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매스커레이드 이브"

닛타는 공대 교수 오카지마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교통과에서 지원나온 젊은 여경 호즈미 리사와 팀을 꾸렸다. 유력한 용의자는 특허 사용에 따른 거대 이권이 얽힌 준교수 난바라인데, 그는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핑계와 함께 정작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는 제시하지 못했다. 사건 당일 난바라가 투숙한 호텔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수사를 나온 호즈미 리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핵심인 1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중편입니다. 하지만 대미를 담당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비하면 분량도 너무 길고요. 

우선, 범인이 난바라라는게 너무 명확한데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교환 살인" 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 특별한 아이디어도 아닐 뿐더러, 난바라와 함께 투숙한 여성이 하타케야마 레이코라는 게 밝혀지면 구태여 교환 살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내부 DB에 남아 있지 않을리가 없잖아요? 경찰 내부에서 레이코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무라 유리 사건만 짚어내면 이 사건을 난바라와 엮어 생각하는 건 추리도 뭐도 아닙니다.
레이코 일당이 왜 약속한 날이 아니라 그 전날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이럴거면 차를 옮겨 하루의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두었더라면 호즈미 리사의 말대로 지갑을 가져간 강도의 소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난바라가 투숙했던 오사카 호텔에서 근무하던 나오미가 난바라와 레이코를 엮어서 생각하게 되는 향수 이야기는 작위적이기 짝이 없어요. 짙은 향수 냄새로 두 명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는 설정이야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타월을 무심코 가지고 나가다가 돌려준다는 건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닛타 형사와 함께 짝을 이룬 명랑하고 단순하면서도 의욕 넘치는 호즈미 리사 캐릭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문제라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 (오다 유지)와 별로 다를게 없는, 수사 본부에 지원 나온 교통 경찰 캐릭터라는 겁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에 읽다보니 식상해 지더라고요. 차라리 호즈미 리사의 단순한 추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이래서야 '캐리어'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패배 의식만 심어줄 뿐입니다.

이렇게 단점이 더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오미 - 닛타 컴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억지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5/01/06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워싱턴 어빙 외 / 한동훈 : 별점 3점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6점 워싱턴 어빙 지음, 한동훈 옮김/태동출판사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는 아마도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고전 본격 황금기, 클래식 미스터리는 사족을 못 쓰는 애호가입니다. 이런저런 고전들은 많이 읽은 편인데 평균적으로 괜찮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다 저의 취향 때문이죠.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읽었었던 예전에 읽었던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이 심하게 기대 이하라서 나름의 기준점을 최소한 19세기 말 이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지금 읽기에는 심하게 낡았다고 여겼거든요. 이 책 역시 대부분 작품이 19세기 후반 발표된, 기준점 통과가 간당간당해서 그동안 읽지 않았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완전 대박입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놀라움이 가득했어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과 견줄만한,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탐정들 -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의뢰인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과학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 시리즈 단편들은 완성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반가웠을 뿐더러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이라는 "걸작"이라 칭해도 부족함없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된 볼륨도 마음에 들고요. 발표된 시기를 감안할 때 지금 읽기에는 낡아버리거나 시대착오적인 작품도 있고, 고전적 작법으로 쓰여져 지금 기준의 완성도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작품도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고전을 읽을 때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세금과도 같은 것이죠. 가이 포크스나 보르시치와 같은 고유명사를 잘못 번역한 옥의 티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도 무난한 편입니다.

그래서 수록 작품 평균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본격물 미스터리 애호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책인데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도 최소한 걸작이라 말씀드린 저 세작품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서는 절판되었으나 e-book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울버트 웨버, 혹은 황금의 꿈" 

"슬리피 할로우" 등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라는 워싱턴 어빙의 작품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평범한 네덜란드 출신 배추농부 울버트 웨버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내용인데, 떠벌이가 지껄이는 듯한 구전문학같은 묘사가 볼거리입니다. 울버트의 보물을 찾기 위한 헛된 노력이 해적들의 은밀한 행동과 결합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전개, 블랙코미디 느낌도 많이 전해주는 유쾌함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울버트가 부동산 재벌이 된다는 난데없는 결말과 같은 두서없는 전개, 구전문학스러운 묘사 등은 너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호러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기도 하고요. 최소한 "미스터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부동산이 최고라는 교훈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차라리 시사풍자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길쭉한 궤짝"

에드거 엘런 포우의 단편. 친구가 애지중지 돌보는 궤짝 안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낡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나 흥미로왔어요. 

다만 선장의 말을 빌어서 마무리하지 말고, 마지막 침몰 직전 상황에서 진상이 드러나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예를 들자면 관 뚜껑이 열리고 아내의 시체가 등장하는 "어셔가의 몰락"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걸작 단편입입니다. 무허가 3류 도박장에서 주인공이 도박으로 거금을 딴 뒤 술에 취하고 몽롱한 채로 도박장 방 하나를 빌려 잠을 자다가 침대 천장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주인공이 술에 취하는 과정의 생생한 묘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침대 지붕이 내려오는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에요. 잠이 오지 않아 세밀하게 관찰했던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깃털 유무에서 모골송연한 범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과정도 매끄럽고요. 짧은 글이지만 정교하게 복선이 짜여져 있는 덕분이지요. 

한마디로, 이 작품을 읽은 것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집을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거장의 작품다왔달까요. 별점은 5점입니다.

"꿈속의 여인"

조금 흔해빠진 괴담이랄까...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 여인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품고 살아가는 마부 아이작의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극적 반전도 없고 여인의 정체도 알려주지 않는 등 불친절한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앞선 작품은 걸작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거장이라고 항상 걸작만 쓰는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아이작의 과거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우며 꿈과 현실을 잇는 과정의 묘사만큼은 볼만했던 만큼 별점은 2.5점입니다.

"공주의 복수"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에 "문간의 검은 가방"이라는 단편이 소개되었던 시리즈이지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루시에 쿠니에르라는 아가씨의 실종 사건을 그리는데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어요. 러브데이의 추리가 불완전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집사가 드루스 소령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지나친 억측입니다.
뭐 이 부분은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는 무림 고수와 같은 재주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 쳐도, 사건 관계자들이 모인 상황에 난입하여 "모자 가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의 비약입니다. 그녀를 빼돌린 드루스 부인과 그윈 부인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모자를 쳐다보았다? 이게 모자 가게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냥 눈둘데가 없는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그 모자 가게에서 산 모자인지도 확실치 않으니까요.

주로 관찰을 통해 추리하는 러브데이 브룩과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위 남자들을 매료시키는 루시에 캐릭터, 셜록 홈즈의 라이벌치고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쓰여진 점 등은 특이하지만 추리적으로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천국의 물가에서"

아주아주 약간 고딕 호러 분위기가 나기는 하는데 실상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 주인공 케언공이 라마스 양에게 청혼할 때의 대사는 재미난데 그 외에는 별다른게 없는 고전 할리퀸 로맨스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목사 서재의 피웅덩이"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시리즈 단편입니다. 목사관 서재에 피웅덩이를 남긴채 목사가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충격적이면서도 기발한 인간 소실 트릭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상은 트릭이고 뭐고 없이 서재에서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지하실에 숨겼다는게 결론이라서 맥이 빠집니다. 이래서야 명탐정이 딱히 등장할 필요도 없죠. 자세한 현장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피가 응고하였더라도 아무런 흔적없이 시체를 옮기는 작업을 성공했을리는 없으니까요.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가 순전한 우연 - 범인이 시체를 옮길 때 우연히 팽이가 떨어져 그것을 돌리게 된 것 - 이라 추리적인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양치기 캐릭터는 전혀 등장할 필요가 없었고요. 

셜록 홈즈처럼 현장을 아주 철저하게 조사한 뒤 단서를 찾아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뮬러의 활약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홈즈 시대 추리소설의 단점만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어요.

"범죄구성 사실"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도 유명한 멜빈 데이비스 포스트의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사교계의 총아인 사무엘 월콧이 사실은 리차드 워렌이라는 인물로, 월콧의 아내와 공모하여 그를 죽인 뒤 신분을 가로챈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월콧 (워렌)이 아내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계획을 돕는다'는 나름 충격적인 설정으로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랜돌프 메이슨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페리 메이슨의 선구자적인 캐릭터죠.

또 완벽하게 시체를 없앨 경우 범죄 사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사망 사실과 그 사망을 가능케 한 폭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당시에 소설로 발표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이 법의 헛점이 많이 알려진 덕인지 이런저런 정황 증거를 통해 범죄 사실이 입증된다면 유죄를 선고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시체를 없애는 과정의 디테일도 좋아요. 황산을 이용하여 시체를 녹여 없애는 방법인데 소설처럼 깔끔하게 모든 흔적을 단시간내에 없애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묘사가 잔혹하면서도 생생해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부족함이 없지는 않으나,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쌍벽의 탐정"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으로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서사,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범죄 및 트릭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좀 처집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치 스틸맨이 어머니를 버리고 모욕한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와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재능(냄새 맡기)을 어필하는 전반부와 호프 캐넌의 은광 부락에서 벌어진 폭사사고를 다룬 후반부로 나뉘는데, 두 이야기가 잘 결합되지도 않을 뿐더러 지루한 탓입니다. 

특히 전반부 이야기는 설득력도 낮고 이렇게 길게 설명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장황해요. 후반부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플린트 버크너에게 살의를 품은 노예와 같은 영국 소년 페트락 존스가 범행을 결심하는 과정, 거기에 아치 스틸맨이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실종된 아기를 찾아내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플린트 폭사사건 이후 페트락의 친척 아저씨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단서를 이용하여 범인을 지목하고 아치 스틸맨과 추리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난잡하게 전개됩니다. 

마크 트웨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정교한 과학적 트릭 - 초가 타는 시간을 이용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알리바이를 만듬 - 이 등장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아치 스틸맨이 현장 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완전 범죄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아요.

물론 셜록 홈즈의 패러디물을 쓰기도 했던 작가의 작품답게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지없이 망가지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그 외에도 셜록 홈즈 스타일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 예를 들어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탐정 곁에서 일을 꾸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은 인상적이고 재미있긴 했습니다. 미국적인 정취와 무식함 (집단 린치를 포함하여)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작품이라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더 짧게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블랙 핸드"

제목을 한글로 풀이하면 "흑수단". 제목 그대로의 범죄단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과학 탐정"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느껴지는데 1인칭 화자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기묘한 사건의 의뢰, 독자가 그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장치의 등장,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홈즈 시리즈를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별게 없습니다. 유괴 사건에서 아이를 은닉한 장소를 도청 장치를 통해 듣고 경찰에게 알려준다는 방법이 전부니 말이죠.

그런대로 잘 쓰여지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탁상시계"

"독화살의 집"이라는 멋진 본격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는데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내용이라 기대와 영 달랐습니다. 장르 구분을 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왔달까요. 시간을 불특정하게 14분간 멈추는 능력이 있는 탁상시계로 벌인 완전범죄 이야기로 시간이여 멈춰라! 류의 내용이라 추리적으로는 건질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전도 없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만년 2인자의 질투심이라는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있기는 하고,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인지도 궁금하긴 한데, 상술한 이유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결산"

퍼시벌 와일드의 단막극. 극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단편집 두 권밖에 없지요. 때문에 자료로서도 귀중한데 작품의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딱 두명의 등장인물이 이발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빚어지는 극도의 서스펜스가 놀라울 정도에요. 이발사 킬번이 과연 그의 딸을 농락하고 버린 손님 존의 멱을 딸 것인가?와 존이 시간제한이 있는, 전 재산이 걸린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가?라는 두가지 드라마를 긴장감넘치게 선보이면서도 킬번이 존을 12년 동안 뒤쫓고 지금의 찬스를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솜씨도 탁월한 덕분입니다.

아울러 마지막 반전 - 존이 이야기한 경매시간과 이발소 시계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대한 대사 - 까지 확실하고요. 이런 작품이 1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니 고개가 숙여질 뿐이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위험천만한 게임"

프로 사냥꾼 레인스포드는 우연히 조난당하여 러시아 출신 부호 자로프 장군의 섬에 표류하였다. 자로프 장군은 사냥에 미친 인물로 극도의 긴장감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도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건 게임에 참여하는데..... 

어딘가의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던 걸작입니다. 인간 사냥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제 사냥 게임에 대한 설정 - 3일이라는 시간 제한 및 자로프 장군이 사거리 짧은 피스톨을 장비했다는 핸디캡 등 - 이 탁월할 뿐 아니라 두 명의 대결에 대한 묘사가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도 기가 막혀요. 바다로 뛰어든 레인스포드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성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인데 예상을 깨는 맛이 있었거든요. 별점은 5점입니다. 

한 남자가 협박 때문에 생명을 건 모험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협박자를 응징한다는 내용은 스티븐 킹의 단편 "벼랑 끝에 선 사나이"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새 출발"

잘 모르는 작가의 종말 이후를 그린 SF로 문명이 모두 사라진 뒤, 이전 문명의 기억을 지닌 자가 미개집단의 종교인과 충돌한다는 설정의 작품입니다. 

설정부터 많이 접해보았던 것으로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네요. 종교인이 믿는 신의 존재가 식기세척기였다는 반전은 있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여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고요.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진부했어요. 시대가 너무 흐른 탓이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