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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최후의 증인 - 유즈키 유코 / 한성례 : 별점 2.5점

최후의 증인 - 6점
유즈키 유코 지음, 한성례 옮김/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 사가타 사다토는 요네사키 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재판에서 검사 마오와 대결을 벌였다. 마오는 피고가 불륜 관계였던 피해자를 살해했다는걸 공판 과정 내내 여러 증인과 증거를 통해 착실히 밝혀나갔지만 사가타는 공판 마지막 날, 전직 형사 마루아먀를 증인으로 불러 놀라운 진상을 밝혔다. 피해자 미쓰코는 8년 전, 피고 시마즈의 음주 신호 위반 사고로 외동아들 스구루를 잃은 뒤 복수를 위해 사건을 계획했던 것이었다...

“최후의 증인”은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유즈키 유코의 법정 스릴러이자 복수극입니다. 제7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변호사(검사) 사가타 사다토 시리즈 중 한 권이라고 하네요.  “고독한 늑대의 피”는 하드보일드였는데 이런 작품도 잘 쓰는군요. 

작품은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에서 시작해 복수, 법정 공방, 그리고 8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까지 세 개의 큰 흐름이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자면, 타카세 코지와 미쓰코 부부의 외동아들 스구루는 신호를 위반한 음주운전자 시마즈의 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시마즈는 자신의 부와 '공안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사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지요. 그리고 8년 후, 미쓰코의 시한부 판정을 계기로 부부는 교묘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시마즈는 미쓰코의 의도된 유혹에 빠져들었다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고 말지요. 이 사건의 변호를 받은 사가타와 마오가 법정에서 대결을 펼치고요. 
이를 풀어가는 전개는 깔끔하고, 인물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주요 악역 시마즈는 독자들이 분노를 느낄 만큼 적절히 그려졌습니다. 그의 특권과 오만함, 그리고 본의는 아닌 사악함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상상 가능한 캐릭터로, 독자들이 작품 속 세계에 몰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쓰코의 복수극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자살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시마즈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이 수단이 마지막 순간까지 감춰져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일종의 서술 트릭적인 재미를 제공합니다. 공판 3일째에 피고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까지는, 피고인이 미쓰코라고 생각하도록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전개 상 감추기 쉽지 않은 부분인데, 고민을 참 많이했구나 싶었어요.

법정물로도 볼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변호사 사가타가 검사 마오의 논리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예컨대, 시마즈가 사건 직후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도망친 행위는 오히려 범죄와 무관하다는 논리로 반박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불륜 상대로부터 공격받은 뒤 도주하는 상황이라면 사람 많은 호텔 로비를 지나 택시를 탄게 당연하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럴리 없다는 논리인데 그럴싸합니다.
시마즈가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나, 결국 8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처벌받게 된다는 점도 통쾌함을 안겨주고요.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미쓰코의 복수 계획은 서술 트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치밀하지 못합니다. 특히 시마즈가 미쓰코의 단순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했어요.
또 마지막 공판에서 등장하는 마루야마 형사의 증언도 지나치게 극적이고 억지스럽습니다. 그의 증언이 없더라도 8년 전 사건이 복수극의 동기였다는건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사가타와 마오 검사에게 부여된 설정도 다소 진부하고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가타가 검사직을 떠나게 된 계기, 마오 검사의 아버지가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희생당했다는 서사는 작품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사가타가 '어떤 식으로든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지만, 지은 죄는 반드시 죗값을 치루게 만드는' 변호사라는 설정을 끌고가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깔끔한 전개와 강렬한 악역 묘사, 그리고 법정 스릴러의 묘미를 잘 살렸지만 추리적으로 다소 아쉬우며, 작위적이고 진부한 부분도 많아 감점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1/29

십계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점

십계 - 4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대 입시생 리에와 그녀의 아버지 오무로는 오랫만에 큰아버지 슈조의 소유였던 에다우치지마섬을 찾았다. 슈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리조트 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일행은 개발회사, 부동산 업자, 건축가 등을 포함해 모두 9명이었다.
그런데 섬에서 대량의 폭탄 재료들이 발견되었고, 그날 밤 부동산 업자 오사나이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열가지 규칙('십계')를 남긴 뒤, 앞으로 사흘 동안 생존자들에게 섬을 떠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일행은 십계를 지키며 사흘을 버티려고 했지만, 슈조의 친구였던 야노구치, 부동산 업자 후지와라가 차례로 살해당하고 마는데...

유키 하루오의 장편 소설 "십계"는 그의 전작 "방주"와 같은 클로즈드 서클물로, 특유의 반전 매력을 내세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장점 중 하나는 짧은 분량입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길이로, 빠르게 읽고 즐기기 좋은 점이 매력적입니다. 또한, 전작 "방주"보다는 설득력 있는 무대 설정이 돋보입니다. 부유한 개인의 취미 생활이었던 무인도라는 설정은 현실성은 물론이고,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충실히 전해줍니다.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단서가(그런대로) 독자에게 공정히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범인은 왜 자신의 발자국이 아니라 야노구치의 발자국만 지웠을까?'라는 핵심 단서를 통해 결말로 이어지는 추리가 좋았습니다. 야노구치가 범인의 신발을 착각해서 신었기 때문이며, 이렇게 착각할만한 신발은 후지와라의 신발밖에 없어서 범인은 후지와라이다!라는 건데, 아주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주"와 달리 사건의 템포가 느리며,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방주"에서는 제한 시간 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어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반면, "십계"는 제한 시간 내에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 조건만 지키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이라 긴장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범인이 약속을 어기고 모두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독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작가가 애써 제시한 '십계'라는 공정한 룰이 깨지면, 본격물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해칠테니까요.

또 아야카와가 진범임을 반전처럼 밝히는 마지막 장면은 추리물로서는 불공정합니다. 애초에 아야카와는 리에와 오사나이가 살해당한 밤에 같은 방을 썼기에 알리바이가 성립되었었고, 심지어 리에는 주요 화자로 등장하여 아야카와의 알리바이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리에도 그녀가 범인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설명하는건 반칙입니다. 차라리 아예 몰랐다고 했더라면 모를까요.
아울러 리에가 아야카와의 범행을 숨긴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점도 독자에게 혼란을 줍니다. 최소한 아야카와가 범행 이유- 폭탄을 만든 일당이 그들을 죽이려 해서 먼저 죽였다! -를 설명하고 같은 편이 되기를 설득했다는 설정은 필요했습니다.

작위적인 전개도 눈에 띕니다. 오사나이의 살해 이후 야노구치와 후지와라가 차례로 아야카와의 꾀임에 빠져 홀로 행동하다 살해당했다는 설정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본인이 유력한 다음 희생자라는 점이 명확한 상황에서, 알리바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야카와를 쉽게 믿고 행동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섬에 폭탄 재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점 역시 작 중에서는 실수로 설명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작보다는 낫다고 해도 비현실적인 요소 역시 여전합니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 엄청난 양의 폭탄이 있다는 설정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폭탄을 만든 인물들이 왜 그것을 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중요한 연결고리가 끊겨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캐릭터 역시 평면적입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다른 작품에서 자주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탐정이자 천재 범죄자인 아야카와는 흥미롭기보다는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결말에서 리에에게 반 협박식으로 건네는 마지막 인사도 영 별로였고요. 다른 인물들도 건축사 노무라 씨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한 묘사가 없어서 그들이 처한 위급한 상황이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작만큼의 화제를 불러오지 못했는데, 읽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전작을 정 반대로 비틀기는 했는데, 단점은 거의 그대로이고 좋았던 장점마저 희석되고 말았네요.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11/24

하승진의 유튜브 콘텐츠 "턴오버" : 시즌 1 완결 - 별점 3점

하승진의 "턴오버"는 프로 농구 선수를 꿈꾸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재도전의 장을 열어주는 취지로 진행한 유튜브 컨텐츠입니다. 작년 9월부터 거의 1년여 진행했는데 얼마 전 시즌 1이 완결되었습니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KBL 드래프트를 목표로 훈련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것으로, 훈련 뿐 아니라 재활, 연습 경기 및 개인 브이로그까지 다양한 종류의 컨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기에 보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진정한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을 열정 하나로 넘어서려는 선수들의 모습은 큰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열정, 울림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성 덕분에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선수 개개인에게도 포커스를 맞추는 장면과 컨텐츠가 많은 덕분이지요. 팀원이 10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보다 밀도있는 이야기를 가능케 해 주었고요. 이런 류의, 프로 도전에 실패했던 청춘들의 재도전을 담은 "청춘 FC"도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그보다는 훨씬 마이크로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최강 야구"에서 프로 지명 선수가 나왔을 때 느꼈던 감동을 또 느껴보고 싶었는데, 확실히 현실의 벽은 너무 높더군요. 유튜브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장점도  분명 있지만, 방송사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자본력의 부족함도 느껴졌고요. 이게 방송사에서 방영된 컨텐츠였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정희현 선수가 일본 B3 리그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요. 최소한 이승구 선수는 선발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3점. 하태 컴비가 시즌 2를 언급하던데,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시즌 2는 조금 더 자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곳에서 했으면 합니다. 

2024/11/23

ChatGPT의 정철원, 전민재 - 김민석, 추재현, 최우인 선수 트레이드 분석


엊그제 놀라운 트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저연차 신인급 선수이기는 하지만, 신인왕과 1라운드 지명 야수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 팀의 구멍 - 두산은 젊은 야수진 (특히 외야수), 롯데는 중간계투 -를 메워주는 나름 윈-윈 트레이드라고 생각은 하는데, 간단하게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 ChatGPT에게 물어본 결과를 공유드립니다.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트레이드 분석

더 이득을 본 팀: 두산 베어스

이유:

WAR 지표와 선수 가치 측면에서의 우위:

  • 정철원은 과거에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시즌(2024) 성적에서 WAR이 -0.11로 하락하며 부진했습니다. 이는 즉시 전력감으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 반면 두산이 영입한 김민석은 유망주로서 발전 가능성이 높고, 외야 수비와 주루 능력에서 팀에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인 시절부터 평균 이상의 wRC+를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기적 전력 강화:

  • 두산은 이번 트레이드에서 즉시 전력(추재현)미래 자원(김민석, 최우인)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 특히 김민석은 장기적으로 팀 외야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으며, 최우인은 투수 뎁스를 보강할 자원으로 평가됩니다.

롯데의 리스크:

  • 롯데가 영입한 정철원은 통산 성적에서는 평균 이상을 기록했으나, 최근의 하락세를 극복할지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WHIP(2.01)와 평균자책점(6.40)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이며, 불펜 투수 특성상 성적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 전민재는 내야진 뎁스를 강화할 수 있지만, 스타급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두산 베어스는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단기적으로 외야진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팀의 전력을 보강할 핵심 자원을 확보했습니다. 롯데는 즉시 전력 강화를 노렸지만, 정철원의 최근 부진과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리스크가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2024/11/22

호저의 축제(湖底のまつり)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1.5점

湖底のまつ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4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리코는 시시코 협곡에서 급류에 휩쓸렸다가 하니다 코지에게 구조된 뒤,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코지가 참석할 예정이라는 '오마케상 축제'에 따라갔지만, 끝내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코지가 한 달 전 이미 독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편, 코지 독살 사건을 담당한 칸자키 형사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학생 오기 쇼코를 주목한다. 쇼코의 일기에는 그녀가 'P'라고 부른 누군가에게 실연당한 뒤,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황상 'P'는 코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칸자키 형사가 마을을 찾은 뒤 쇼코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사건 수사는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마을과 사건 현장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고 만다. 그러나 댐은 붕괴되었고, 덕분에 칸자키 형사는 쥬키치 바위 밑에서 실종되었던 쇼코의 시체를 끝내 발견하는데...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작가 아와사카 쓰마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11장의 트럼프"도 재미있었고, 아야츠지 유키토가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기도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댐 건설로 수몰을 앞둔 일본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지방의 댐 건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회파 추리 소설을 연상시집니다. 전통 축제인 '오마케상'에 대한 자세하게 설명은 재미를 더해주고요.
무엇보다도 아와사카 쓰마오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사회파 치정 미스터리물이라는 엄청난 특징이 돋보입니다. 수준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쓴게 아닐까?하는 느낌을 줄 만큼 강렬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달 전에 살해된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수수께끼도 단순한 서스펜스를 넘어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당기며, 댐 건설과 지방 마을의 수몰이라는 사회적인 주제도 신선한 편이에요.

그러나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점이 너무 많은 탓입니다. 우선 성애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불편함을 줄 정도로요.
사건의 진상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합니다. 노리코가 만난 남자가 사실은 하니다 코지가 아니라 그의 아내 히사에였다는건데, 충격을 준다기보다는 헛웃음을 자아냅니다. 일단 히사에가 자신을 코지라고 위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상당한 미인으로 묘사되는 히사에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 흉내를 냈다고 노리코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역시 무리라 생각됩니다. 남자로 착각하는데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성행위 시 사용한 도구(일종의 딜도?)는 그야말로 어이를 상실케했고요. 이건 뭐 포르노도 아니고... 이런 설정(남자인줄 알았는데 여자였다! 또는 그 반대)을 트릭에 이용할거였다면 나쓰키 시즈코의 "흑백의 여로"에서의 성전환 수술같은 설득력있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딜도보다는 말이지요.
히사에가 축제 현장에서 사라질 수 있었던건 여성인 '오마케상'으로 등장했기 때문인데, 이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노리코가 오마케상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봤다면 아무리 화장을 했다 한들, 오마케상이 코지(히사에)라는걸 충분히 알아챘어야 합니다. 

독살 사건에서 히사에가 쇼코와 코지와 함께 독을 마셨으나, 독을 토해낸 히사에만 살아남았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편의적인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요. 상식적으로 보다 건장했을 남자 코지가 여러모로 더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작위적인 요소도 너무 많습니다. 1년 전 물에 빠진 히사에를 구한 코지와의 관계가, 1년 후 노리코와 히사에 사이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작품에서 사용된 'P'와 'N'이라는 별명이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와 '네리샤'에서 유래했다는 점 등도 그리 와 닿지 않았고요.

결말도 억지스럽습니다. 댐이 붕괴되며 쇼코의 사체가 발견된 덕에 사건이 종결되는데, 상황도 과장되어 있지만 쇼코의 자살로 충분히 설명되는 상황에서 히사에가 굳이 의심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건 말이 안됩니다. 설령 의심을 받는다 해도 독약을 구한 증거는 쇼코의 일기로 확인되므로, 사건은 그냥 마무리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 칸자키 형사와 히사에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고 하다가, 히사에가 다시 만난 노리코와 연결된다는 마지막 장면은 혼란의 극치에요.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서사를 흐트러뜨리기만 합니다.

캐릭터들도 시시합니다. 히사에에 집착하는 쇼코는 흔해빠진 스토커 캐릭터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댐 건설 이권에 대한 유착에 관련된 시모스지 의원, 이누이시 촌장, 코지의 동창 카나미 등은 그냥 지나가는 인물에 불과하고요. 중요한 인물로 보였던 칸자키 형사의 딸 아구리는 한술 더 뜹니다. 비중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하는게 없는 탓입니다. 아빠가 벽에 부딪힌 사건을 추리해내는 진짜 명탐정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카라즈카' 팬이라는 설정을 통해 사건이 남장 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은근슬쩍 드러내는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모리무라 세이이치로 대표되는, 당대 추리물의 탈을 쓴 치정극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쓴 졸작입니다. 읽으면서 "흑마술의 여자"가 떠올랐는데, 문제는 그 정도 수준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극찬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번역하면서 읽은 시간만 아까울 따름입니다.

2024/11/20

이자카야 신칸센 (2021) - 별점 2.5점

"이자카야 신칸센"은 2021년부터 방영된 일본 드라마로, 보험회사 직원 타카미야 스스무가 출장 후 신칸센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현지의 음식과 술을 테이크아웃하여 기차 안에서 즐기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제츠메시 로드"와 마찬가지로 티빙을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향토 요리를 소개하며, 신칸센이 마치 이동하는 이자카야로 변신하는 독특한 설정이 특징으로 신칸센 안에서 현지 음식을 즐긴다는 발상은 기존의 음식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며, 신칸센과 음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합니다. 또한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과 술, 향토 요리를 상세히 소개하여 음식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짧은 러닝타임도 강점입니다. 약 23분 내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간단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드라마라는게 거의 없으며 매 에피소드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청자에 따라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라고는 원하는 음식과 술을 구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긴다거나 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 '이자카야 신칸센'을 주인공 타카야마 스스무에게 전수해준 선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정도만 신선했을 따름입니다.
신칸센 내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배경의 변화가 적어 시각적 다양성도 부족합니다. 게다가 신칸센으로 오가는 지역 역시 우츠노미야 역, 신아오모리 역, 센다이 역 등 비슷한 장소가 반복해서 등장해 단조롭습니다.
음식과 술 역시 촬영도 좋고, 거의 다 맛있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구해 먹기 힘든게 대부분이라는 점도 좀 아쉬웠습니다. 맛 설명도 부족한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카야 신칸센"의 설정만큼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로 현지화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선술집 KTX"라는 이름으로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의 여정을 다룬다면 어떨까요? KTX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각 역별로 구성된 음식, 술, 디저트를 즐기는 내용으로요. 부산역에서 출발해 테이크아웃할 메뉴를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합이 떠오릅니다.

  • 술: 부산역에서 프리미엄 막걸리 '복순도가'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산역 매장에서만 파는 상품이 있으니, 술 좋아하는 분이라면 놓치면 안됩니다.
  • 음식: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삼진어묵 매장이 부산역 근처에 있지요. 바삭한 어묵 고로케, 쫄깃한 치즈 어묵, 고소한 맛의 야채 어묵이 특히 추천할 만합니다.
  • 디저트: 부산의 유명 빵집인 '비엔씨 도넛 부산역점'에서 판매하는 파이 만주가 유명합니다.

다른 지역은 제가 내려보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구성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1/17

걷는 망자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걷는 망자"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단편집으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입니다. 괴이 민속학 연구실 '괴민연'을 배경으로 영능력 소녀 도쇼 아이와 도조 겐야의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각종 괴담의 진상을 추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섯 개의 단편은 각각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며 기묘한 괴담과 이를 해결하는 추리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던 길고 장황한 민속학적 설명이 전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게 괴이 현상과 그 진상에 대한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괴이 현상과 추리의 결합도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괴담을 이야기하는 영능력 소녀 아이와 이를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덴큐 마히토 컴비의 매력은 떨어집니다. 아이의 영능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덴큐 마히토는 도조 겐야의 조수격임에도 괴담을 무서워한다는 유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 탓입니다. 이 둘이 "사상학 탐정"슌이치로의 조부모가 된다는 '미쓰다 신조 월드' 설정도 억지스러워서 별로였습니다.

총평하자면, "걷는 망자"는 개별 단편마다 흥미로운 설정과 논리적 추리를 선보이지만, 일부 이야기는 완성도가 아쉽고 설정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담, 민속적 분위기와 참신한 트릭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 트릭 등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걷는 망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망자길'에서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남자 구지라다니 쇼지를 목격했던 도쇼 아이의 경험담에서 시작됩니다. 쇼지는 산책 후 귀가했지만 곧바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수사하며 요시코라는 여성과의 밀회에 주목하지만, 아이가 목격한 쇼지의 존재와 가정부의 증언이 요시코를 범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사건의 진상은 덴큐 마히토의 추리를 통해 밝혀지는데, 범인은 요시코가 맞았습니다. 그러나 쇼지의 머리를 잘라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 '망자길'을 통해 귀가한 척한 요시코의 동생 무쓰코 덕분에 알리바이가 생겨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망자'라는 괴이와 알리바이 트릭을 논리적으로 엮은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무쓰코의 키와 마을 여성들의 특이한 풍습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치밀하게 연결된 점도 인상적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어린 시절 가즈히라가 목격한 '가슴은 크지만 머리가 없고 닭 같은 다리를 가진 여자'라는 괴이에서 출발한 사건은, 가즈히라의 친구 다케루의 집에서 이 괴이를 목격한 가정부 다도코로 스에가 습격당하며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덴큐 마히토는 머리 없는 여자가 다케루의 변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물구나무를 섰기 때문에 가슴이 크고 다리 관절이 반대로 보였던 것이지요. 다케루는 이 괴이를 통해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려 했습니다. 스에 습격 사건에서는 사당 장지문 둘레에 금줄을 둘렀다는 일종의 원격 조작 장치 트릭이 사용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3.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소인'이 살고 있어서 집이 작았으며, 더 작아진 이유는 '소인'에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괴이 현상의 진상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소인이 피해자 아이들 배를 갈랐다는 진상 역시 마찬가지고요.
폐쇄적인 마을과 몰락한 지배 가문이라는 배경 설정은 식상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식 발음을 이용한 트릭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영역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괴담 연구회 회원들이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여관방을 봉인까지 해 가며 철통같이 지켰지만, 다카코 회장이 습격당하고 말았다는 괴이 사건이 등장합니다.
진상은 여관 주인의 동생이 여관을 방문한 여대생을 공격해서 괴이 현상을 가장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힙니다. 핵심 밀실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2층에서 자던 마사요를 옮긴 뒤 그 밑의 다다미를 들어올려 1층에 있던 다카코의 목을 졸랐다는 건데, 모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걸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건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서 있는 쿠치바온나

이 단편에서는 민속학자(도조 겐야 선생)이 고갯길에서 입이 초생달처럼 찢어진 여성 '쿠치바온나'와 만났던 것, 그리고 마을 장례 행렬을 미행하다가 우연찮게 관에서 시신이 빠져나오는걸 보았다는 두 가지 괴이현상을 다룹니다.
쿠치바온나는 밤길에서 남성을 만난 젊은 여성이 긴 머리를 입에 물고 변장한 모습이었으며, 관에서 빠져나온 시신은 마을 사람들이 학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폐쇄적인 마을이었다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덕분에 연극을 벌인 이유도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두 괴이 현상이 마을의 이상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1/15

11장의 트럼프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3.5점

11枚のとらんぷ - 6점
아와사카 쓰마오/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주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즈타 시마코가 살해당했다. 그녀가 소속된 마지키 클럽의 마술 공연 중이었다. 시신 주변에는 부서진 여러 가지 물건들이 널려 있었는데, 이는 클럽 회원인 카가와 슌페이가 쓴 "11장의 트럼프"라는 마술 트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품들이었다.

사건 직후 마지키 클럽의 회원들은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마술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프랑스 마술사 프랑수아 란슬롯의 카드 마술을 보게 된다. 이를 본 카가와 슌페이는 미즈타 시마코 살인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되고, 회원들 앞에서 범인이 클럽 회원 중 한 명인 마츠오 쇼이치로임을 밝힌다. 이후 마츠오는 사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건 시마코의 조상인 마술사 호큐사이의 유품때문이었다.

"아아이이치로 시리즈""복잡한 기계장치" 등으로 유명한 아와사카 쓰마오의 또다른 대표작 장편입니다. 여러 리스트(이거라던가, 이거 등)에 높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는 작품이지요. 명성만 보면 왜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는지 의아합니다. 항상 읽고 싶었었는데, 이번 기회에 도전하여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원서라 그런지 완독하는데 거의 1주일이 넘어 걸렸네요.

이 작품의 제일 큰 장점은 마술과 트릭의 절묘한 결합입니다. 특히 마츠오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활용한 트릭이 대표적이에요.
마츠오가 공민관 무대에서 펼쳤던 카드 마술은 관객이 고른 카드를 정확히 맞추는 마술이었는데, 마지키 클럽 회원들은 공연 당시 조명을 조작하던 시마코가 카드를 확인한 뒤 특정 위치에 조명을 비추어 맞추도록 한 트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마코가 그때까지 살아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지요. 사실은 이미 살해된 후였는데도요. 마츠오가 카드를 맞출 수 있었던건 시마코의 도움이 아니라, 관객의 핸드백 금속 장식을 사용했던겁니다("타짜"의 지포라이터같은거지요). 또 이건 카가와가 프랑수아 란슬롯의 카드 마술을 보고 깨닫게 되는 핵심 요소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란슬롯의 책을 열심히 읽었던 추종자 마츠오가 란슬롯의 말대로 관객이 카드를 정말 자기 의지로 선택하게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츠오의 공연 직후 이어진 오타니 난잔이 벌인 '주머니 속의 미녀' 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원래는 시마코가 미치코의 대역을 맡는 마술이었으나, 마츠오가 1인 2역을 소화하면서 시마코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착각을 관객들에게 심어줬던 거지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11장의 트럼프"라는 소설도 흥미롭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마술 트릭들이 소개되어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중요한 단서로 활용되기도 하거든요. 특히, 카가와는 시마코가 살해된 현장에서 가스 밸브가 열린 것을 범인이 알아채지 못한 점에 착안하여 범인이 후각을 상실한 사람일 거라 추리합니다. 그리고 누가 후각이 없는지는 "11장의 트럼프"를 통해서 밝혀내게 됩니다.

사건의 동기도 독창적입니다. 시마코가 물려받은 일본 초기 마술사 호큐사이의 마술 비법이 동기라는 설정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복잡한 기계 장치"의 '가라쿠리'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게 일본 초기 마술의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덕분입니다.

또한, 마지키 클럽의 마술 공연에서 벌어지는 소동도 유쾌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주머니 속의 미녀' 마술에서 미치코가 탈출해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다, 입장권이 없어서 접수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아주 기발했어요. "아아이이치로" 시리즈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으로는 여러 가지 설정과 캐릭터들의 반응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가 벌어졌음에도 주요 인물들이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이질적이었어요. 피해자가 함께 활동하던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가볍게 대응하는 듯한 모습은 영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클럽 회원인 게이코와 다른 인물들이 범인인 마츠오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범행 동기였던 호큐사이의 마술 비법을 함께 이용하려는 속셈이 엿보이는 결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범인이 현장을 "11장의 트럼프" 속 물건들로 꾸미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호큐사이의 마술에 대해 누군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세간의 이목을 끌고자 했다는 의도가 앞뒤가 맞지 않는 탓입니다. 호큐사이의 마술을 아는 사람이 사건을 접했다 하더라도, '시마코는 호큐사이의 마술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주장할리가 없잖아요. 더군다나, "11장의 트럼프"라는 소설은 거의 판매되지 않아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요. 사건을 일부러 극적으로 연출하려 했다면, 시체의 목을 자르는 등 보다 직설적인 방법이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사건 현장에서 ‘가스 밸브가 열린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단서 역시 비약이 심합니다. 이를 근거로 범인이 후각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추리였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마술과 본격 추리 소설을 잘 결합하고 있으며, 독자에게 모든 단서를 공정하게 제공하며 추리의 재미를 충실히 전달해 줍니다. 마술 트릭과 사건의 연결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으며,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도 좋고요.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한 설정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며, 마술 트릭을 활용한 본격 추리 소설로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마술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 중(이 작품이나 이 작품, 이 시리즈...)에서는 가히 최고를 다툰다 할 수 있으니까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024/11/09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아사쿠라 아키나리 / 남소현 : 별점 3.5점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8점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남소현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서는 트릭과 진범이 누구인지가 모두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타노, 시마, 쿠가, 하카마다, 야시로, 모리쿠보의 명문대 졸업을 앞둔 취준생 6명은 가장 잘 나가는 신생기업 스피라링크스 최종 전형까지 살아남았다. 한 달 동안 6명은 마지막 관문인 그룹 토론을 준비하여 모두 함께 합격하자며 친해졌는데, 그룹 토론은 그들 중 딱 한 명만 투표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토론장에서 여섯 명은 각각이 수신인인 수상한 봉투를 발견했고, 그 안에 각자의 과거 치부가 증거와 함께 들어있다는게 밝혀졌다. 이를 통해 투표는 순식간에 요동쳐서 원래 앞서가던 쿠가 등이 봉투 속 내용물로 뒤쳐지고, 하타노가 1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봉투를 가져다 놓은게 하타노라는게 드러나 결국 시마가 1위로 스피라링크스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후, 하타노는 지병으로 사망했고 시마는 유품을 건네받았다. 유품은 시마가 진범이라는 일종의 고발이었다. 범인이 아니었던 시마는 충격을 받고, 과거 그룹 토론 멤버들과 다시 연락하여 사건에 대해 재조사에 나섰다. 이는 하타노가 끝까지 숨겼던 자신의 치부가 담겨있던 봉투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두려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들의 극심한 경쟁을 사회파 범죄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 신입사원 공채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니 사회파 소설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지요.
얼마전 올렸던 추리 소설 추천 리스트에 있었는데 번역되어 있는지 몰랐습니다.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일단 독자를 흡입시키는 전개가 아주 탁월하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1부는 화자 하타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그가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범인으로 몰려 추락하는 상황이 긴장감있게 그려집니다. 또 그룹 토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매우 흥미로우며, 특히 입사가 어려워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눈부십니다. 단순한 그룹 토론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이와 함께, 치열한 입사 경쟁이라는 현실도 강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2부에서의 입사에 성공한 시마의 시점으로 그녀의 조사를 통해 하타노의 결백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도 무척 흥미롭고요.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캐릭터의 진실을 탐구하는 재미를 더합니다.
작품 속 여섯 명의 취준생 캐릭터들도 처음에는 능력있고 선한 사람들로만 보였지만 이후 그룹 토론과 시마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약점(?)이 하나, 둘 씩 독자에게 제공되면서 마지막에 복합적인 인물들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그동안 보아왔던 평면적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함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작 중 언급된대로 '달은 지구에서는 표면밖에 보이지 않지만, '뒷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걸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누가 비밀을 폭로하는 봉투를 준비했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본격 추리물처럼 단서를 제공하고 범인을 빵 터트리는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단서로 '하타노가 음주를 하던 사진에서 '스미노프 보드카'가 술이라는걸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 범인이다'는걸 독자에게도 알려주고, 이를 통해 술을 못하는 쿠가가 범인이라는걸 드러내는건 본격 추리물 못지 않았습니다. 
하타노가 유언처럼 남긴 파일의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수신인이 '범인 시마 이오리에게'가 아니라 '범인과 시마 이오리에게'라는 뜻이었다는 착안도 괜찮았고요. 하타노가 파일에 걸어놓은 암호도 범인이 쿠가이므로 '페어'였었죠.

또 괜찮은 서술 트릭물이기도 합니다. 시마의 인터뷰와 하타노, 시마 1인칭 시점으로만 다른 인물들을 묘사하여 야시로가 선뜻 장애인 석에 앉았고, 쿠가가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하카마다가 야구를 하던 어린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며 혼을 냈다는걸 드러내며 그들을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하고 얄팍한 인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야시로와 쿠가는 장애가 있는 시마를 배려했던거고 하카마다도 할머니가 공에 맞을 뻔 해서 아이들을 혼냈고 나중에는 잘 타일렀다는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독자를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진상을 드러내는건 전형적인 서술 트릭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깜빡 속았네요.

취준생들이 겪는 압박과 고통, 힘든 취업 과정에 대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읽다가 얼마전 제가 근무하는 부서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합격 소식을 듣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기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취준생 들의 심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신입 공채에 대해서도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잘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사측 입장이 아니라 취준생들도 거짓말쟁이라는걸 밝히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고요. 물론 사측 문제가 더 커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타노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의 유품으로 시마의 진상 추적이 시작되는 2부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 시험의 정당성에 의심을 품고 일부러 사건을 일으켰다는 동기가 불공정한 탓이 큽니다. 쿠가의 뛰어난 친구가 스피라링크스 2차에서 떨어졌는데 쿠가 본인은 최종 전형까지 합격한게 불만이라는 동기는 처음에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뛰어난 친구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동기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동기 자체의 설득력도 없어요. 쿠가의 말 그대로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철없는 아이의 장난과 다를바 없는 사건이라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아붙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겁니다. 쿠가가 신입 공채를 망치고 싶었다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최후의 1인이 되든 상관없이 그룹 토론이 엉망이었다는것만 스피라링크스 인사팀이 확인하면 되었으니까요. 각자의 치부를 담은 봉투 안에 작은 협박문을 넣어서 알리바이를 조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리쿠보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사진이 이상하다는걸 들먹이면서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여 하타노가 범인일 수 있다는 식으로 끌고간 까닭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술자리에서 술을 못하는 시마에게 술을 강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쿠가가 시마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큰 잘못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 자리에 하타노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또 시마가 확인한 그룹 토론 당시 동영상을 통해 모리쿠보와 야시로가 협박당했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이 당시에는 모두 취직이 급했으니 비밀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은 통했을겁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나 모두 사회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이 시절 협박당했다는걸 드러내지 않은건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하타노의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협박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하타노가 범인으로 몰리는걸 방조한 잘못이 있기도 하고요. 모리쿠보는 시마를 의심했고, 쿠가는 진범이었으니 그렇다쳐도 최소한 야시로는 시마를 만났을 때 그 사실을 충분히 밝혔어야 했습니다. 이 점은 이들 모두 알고보면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반전을 약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시마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는 좀 작위적이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시마의 장애가 1부에서 아예 설명되지 않은 것도 탐탁치 않고요. 약간은 노리고 속인 느낌이 드니까요.

신입 공채에 대한 비판도 다소 과장되어 있습니다. 스피라링크스의 인사부장이 말한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서류 전형과 면접, 여러가지 시험 등을 통해 나름 공정하게 사원을 선발하는게 당연합니다. 6명의 최종 입사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그룹 토론해서 1명을 뽑아라? 이건 말도 안되요. 갑자기 성장한 회사라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는 변명이 실제로 통할리 만무합니다. 작가가 직장 생활은 해 보지 않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건 분명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입 사원 공채를 소재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는데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쿠가가 하타노를 범인으로 몰지만 않았어도 별점 4점 이상은 충분했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보통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는 믿지 않는 편인데,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추천은 믿음이 생기네요. 다른 작품도 번역이 되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당연하게도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곧 개봉이라는데, 서술 트릭 쪽을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궁금합니다. 



2024/11/08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猫の舌に釘をうて) - 츠즈키 미치오 : 별점 2점

猫の舌に釘をうて (德間文庫) - 4점
쓰즈키 미치오/德間書店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참고하세요.

3류 추리 작가 아와지는 사랑하던 유키코와 결혼한 쓰카모토에게 살의를 품었다. 정말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단골 카페 손님 고토의 커피잔에 유키코에게 받은 감기약을 몰래 타는 정도로 살의를 달래려 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신 고토는 정말로 죽고 말았다.
아와지는 자신이 범인인데다가, 유키코의 감기약에 독이 들어있었기에 누가 독을 넣어 유키코를 죽이려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탐정 역할을 자처한다. 이를 진범이 알게되면 아와지를 살해할 수 있어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행동이었다.
아와지는 경찰과도 협력하며 수수께끼의 남자 고토의 뒤를 캐면서 사건을 수사해나갔으나, 유키코마저 자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런 리스트, 이런 리스트 등에 작품이 선정될 정도로 꽤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츠즈키 미치오의 장편 소설. 이 리스트에서는 무려 59위에 선정될 정도로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샤라쿠 살인사건"보다도 순위가 높네요. 원서를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번역에 ChatGPT의 도움을 크게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원서인 탓에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 주 한 주는 이 책만 읽었네요.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답게 재미있는 구석이 제법 있습니다. 우선 아와지가 연습삼아 죽이려 했던 고토가 실제로 죽어버리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유키코가 살해당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와지가 쓰는 수기와 그의 실제 행동을 번갈아 보여주는 독특한 전개 방식도 독자들에게 큰 몰입감을 주고요. 아와지가 '범인이자 탐정이며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설정도 좋아요.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키거든요. 
그리고 도입부의 설정이 결말에서 동일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일종의 수미쌍관식 구성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진상은,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했지만 고토의 죽음과는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토를 죽인 진범은 협박을 당하던 고토의 동생 쓰카모토였고, 아와지는 진범을 밝혀내는 탐정 역할이자, 이 진실을 덮으려는 쓰카모토 일당에게 살해될 수 있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지요. 이렇게 이야기는 치밀하게 얽힙니다. "신데렐라의 함정"도 떠올랐는데, 유명세는 "신데렐라의 함정" 쪽이 더 크지만, 설정을 더 정교하게 다듬은건 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대부분의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특히 유키코 사건의 진상 규명은 돋보이는데, 유키코를 끔찍이 아끼던 아와지가 그녀가 외설적인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는건 확실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고토와 쓰카모토가 형제라는 설정, 오노기와 고바야카와가 형제라는 사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독자에게 설명됩니다.

더불어 아와지의 입을 빌려 츠즈키 미치오와 그의 작품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를 작품 속에 삽입한 재치도 눈에 띕니다. 아와지가 욕을 하면서도 가지고 있던 츠즈키 미치오의 책이 그의 범행 기록을 담은 일지를 숨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반전 역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어요.

이 책이 발표된 1961년 당시의 도쿄를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눈에 띕니다. 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도시 문화, 히로뽕 중독에 대한 설명, 그 와중에 현재를 떠올리게 하는 지명과 거리 분위기 등 당시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묘사되어 있거든요. 이는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 줍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 아주 높은 평가를 하기는 무리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와지 본인이 언급했듯, 범행 동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한 이유는그녀가 고바야카와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유키코가 여러 남자와 만났다는 묘사가 이미 존재하는 탓입니다. 고바야카와와의 관계만을 살인 동기로 삼는 것은 비합리적이에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수기에서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건 반칙이고요.
또한 아와지가 고토를 살인 리허설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순간에, 그가 진짜로 살해당했다는건 지나칠 정도로 우연이 겹친 상황이라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기와 실제 사건을 뒤섞은 전개도 문제입니다. 아와지 1인칭 시점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가 유키코를 살해한 진범이라는걸 독자에게 속이기 위한 목적은 달성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탓입니다. 아와지가 범인일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오노기가 갑자기 탐정으로 등장해 진상을 밝히는 부분,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짤막한 분량의 결말도 급작스럽고 뜬금없었습니다. 그나마 아와지 집도 몇 번 찾아오곤 했던 무라코시 경부보가 사건을 해결하는게 차라리 나았을거에요.

마지막에 아와지가 정말로 피해자가 되어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결말도 이상합니다. 고토와 유키코를 살해한게 아와지라는게 드러난 이상, 쓰카모토가 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정통 추리 소설과 치정 범죄극을 섞은 결과물은 재미로만 본다면 꽤 괜찮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과 설득력, 그리고 결말 부분에 문제가 있어 감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설령 소개된다고 해도 특별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11/03

경제 시그널 -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 별점 3점

경제 시그널 - 6점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음/흐름출판

유튜브 채널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에서 운영하는 경제 분석팀이 집필한 책입니다. 이 책은 현대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10가지 핵심 신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호를 통해 독자가 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개인의 경제적 판단과 투자를 보다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각각의 신호는 금리, 인플레이션, 부동산 시장, 노동 시장 등의 요소를 다루며 각 장 별로 해당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신호가 나타나기까지의 배경과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무엇인지와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에 대한 통찰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장점이라면 우선 복잡한 경제 개념을 대중적인 언어로 쉽게 풀어낸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고 미래의 변화를 읽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도 활용되고 있고요.
기존의 경제적 상식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의 기본 개념으로 알려진 '보이지 않는 손'의 문제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작은 정부 이론의 부적절성을 비판하며 정부의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 인구 감소에 대한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인구 감소를 단순히 경제 악화의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과잉 인구밀도의 해소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은 기업이 더 크게 느낀다는데 -소비 인구가 줄어들고, 인간의 가치가 올라가므로- 와 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분석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파트 가격 상승은 내야 하는 돈 6종 세트와 보유하거나 팔 때 내야 하는 3종 세트를 따져볼 때 결코 순수한 이득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 그리고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주거 형태 변화를 해외 사례를 통해 알려주는 부분인데 가까운 미래에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일본 등의 다양한 공동 주택 정책을 보니, 충분히 우리나라에도 먹힐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AI 도입 이후 변화할 직업 형태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어요. 단순 반복 업무가 사라지고 창의적이거나 의미 있는 일이 남을 것이라는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공감 능력이 중요한 직업들을 강조하면서 상세히 알려주는 덕분입니다. 미래 직업 선택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유익한 정보라 할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직업 상위권을 보면 공통적으로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레크리에이션 지도사나 사회 복지사처럼요. 제 딸에게도 꼭 이야기해 주어야겠네요.

통계와 숫자를 이용한 오류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습니다. 2003년, 국내 언론이 “이혼율 세계 1위 눈앞”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해당 연도의 결혼 부부 수를 이혼 부부 수로 단순히 나눈 결과로서 누적 계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잘못된 통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짧은 치마의 유행과 주가의 관계를 주장하는 마브리 박사의 연구도 여러 해석의 오류를 드러내고요.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수치와 인과관계에 대해 의심하고, 기준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걸 저자 중 한 명인 기자의 실수로 잘 알려줍니다. 어떤 수영 선수가 하루에 140.8킬로미터를 수영했다고 주장했지만, 간단한 계산을 통해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던 실수였습니다. 스마트폰 계산기만 사용해도 오류가 쉽게 밝혀질 수 있었지만, 이를 귀찮아하여 검증하지 않아서 오보를 냈던 것이지요. 이렇게 주의하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에 속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외, 새롭게 알게된 정보들도 많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폭스 팩터’는, 유명 대학 교수의 권위와 복잡한 숫자 앞에서 전문가들조차 쉽게 신뢰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의 뇌가 복잡한 계산을 피하고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노후 대비 상품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든든한 금융상품은 국민연금이고 그 다음에 주택 연금이다, 각종 연금이 좋다는건 금융사의 홍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주장도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금융사가 복지 활동을 해 줄리가 없으니...
투자 방법에 대한 역사적 고찰도 해 주는데, 1926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의 우량 주식 수익률은 배당금을 포함해 연평균 10퍼센트였다고 합니다. 9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안하면 굉장히 우수한 성적이지요. 같은 기간 미국 국채와 금은 연간 5퍼센트, 부동산은 4퍼센트, 정기 예금은 3퍼센트의 수익률을 거두는 데 그쳤고요. 게다가 주식의 경우, 매년 7퍼센트의 우수한 실질 수익률을 90년간 지속했습니다. 반면 안정적이라고 인식되는 국채와 금은 정기 예금 금리에 그쳤으며, 부동산과 현금자산은 가지고 있어봤자 큰 재미를 못봤습니다. 즉, 부자가 되려면 주식에 장기 투자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특정 계층, 특히 20~30대 청년들만을 주로 대상으로 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저자가 담고 있는 정보와 조언들도 그 연령대에 맞춰져 있어, 다른 연령층의 독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은 탓입니다. 이는 이 책이 팟캐스트에서 출발한 만큼, 주 청취자들의 관심사와 니즈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다. 대표적인게 부동산과 주식입니다. 저도 통계를 찾아본건 아니지만, 경험만 놓고 보아도 최근 10년간은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수익률이 주식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우리나라 주식은 솔직히 믿을만한 시장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기존 상식을 깨는 새로운 시각과 실용적인 정책 제안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특정 계층을 주로 겨냥한 내용은 아쉽습니다.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과 약간은 시대가 지나간 감도 있고, 무엇보다도 제목처럼 10개의 핵심 신호라는건 잘 와 닿지 않아서 조금 감점합니다.

2024/11/02

무협소설 주인공 및 별호, 무공이름을 챗 GPT로 만들어 보자.

아주 오래 전, 무협 소설을 쓰다가 별호 등을 만드는 벽에 부딪혔을 때 자동 별호 생성기를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제가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무협 소설도 더 이상 쓰지 않아서 ver0.01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는데, 챗 GPT를 알고나서 이걸 손쉽게 구현할 수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전 아이디어를 지침삼아 이런저런 학습도 시켜서 무협소설 별호 및 무공, 초식 이름 생성봇을 만들었습니다.

테스트 삼아서 아래 인물의 별호, 주요 무공과 무공 초식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시켜보았습니다.

"안양에 거주하는 50대 남성, 비교적 키가 크고 마른 편으로 검은 머리. 긴 팔과 손가락을 이용한 빠른 키보드 입력이 특기."

바로 접니다. 제가 무협지에서는 어떤 별호와 무공을 사용하는 인물이 되었을까요?

별호 : 유운비객(幽雲飛客)
유운(幽雲): 은근하고 신비로운 매력,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을 상징.
비객(飛客): 재빠른 손놀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속도와 정확성을 함께 담음

무공 : 운쇄천영수(雲鎖千影手)
운쇄(雲鎖): 구름이 움직이듯 자유롭게 흐르며 상대를 속박하는 손놀림을 의미하여 유연한 움직임과 신비한 이미지를 강조.
천영수(千影手): 수많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상징하며, 다채롭고 민첩한 무공의 특징을 표현.
1초식 운영락화(雲影落花)
운영(雲影): 구름의 그림자처럼 가볍게 접근하여 상대를 교란.
락화(落花): 흩날리는 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손동작으로 상대의 약점을 타격.
2초식 천쇄풍진(天鎖風陣)
천쇄(天鎖):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름의 고리를 형상화하여 상대를 속박.
풍진(風陣): 바람처럼 재빠르게 몰아치는 연속 공격으로 상대를 공략.
3초식 운무흩영(雲霧佚影)
운무(雲霧): 안개처럼 빠르게 다가가 상대를 혼란에 빠뜨림.
흩영(佚影): 그림자가 흩어지듯, 다양한 각도로 공격하여 상대가 방어할 틈을 주지 않음.
4초식 영월쇄진(影月鎖進)
영월(影月): 달의 그림자가 스며들 듯 부드럽게 타격의 흐름을 이어감.
쇄진(鎖進): 속박을 강화하며 한층 더 깊은 타격을 가함으로써 상대의 체력을 서서히 소모.

괜찮지 않나요? 저는 마음에 듭니다. 이제 무협 소설만 쓰면 되겠습니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요...

2024/11/01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 - 사쿠라이 미나 / 박선영 : 별점 1.5점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 - 4점
사쿠라이 미나 지음, 박선영 옮김/시옷북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사이카 고등학교의 인기 교사 오쿠사와가 학생들 앞에서 자살했다. 오쿠사와는 이상한 동영상이 SNS로 퍼져, 성범죄자 교사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오쿠사와가 담임이었던 반 칠판에는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여러 학생들 시점에서 자살 전 상황을 되돌아보니, 오쿠사와의 죽음에는 다른 원인이 있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발적인 제목에 흥미가 생겨 읽어본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빠른 전개와 사건의 구조적 완성도입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오쿠사와 선생이 정말로 파렴치한 성범죄자였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학교의 입시 비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결말까지 이어지거든요.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라는 고백이 실제로는 오쿠사와 선생이 나가쓰카 선생을 죽였다는 반전이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도 꽤 신선했고요.
또한,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해 부정하게 대학에 추천 입학시키는 비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점도 좋았습니다. 오쿠사와가 사명감을 갖고 비리를 파헤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 부정의 첫 시작점 —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요청으로 나가쓰카가 추천 입학하게 도와주었음 — 이라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설정도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오쿠사와에게 닥친 비극성을 강화하며, 결국 나가쓰카를 죽이고 스스로는 자살을 선택하는 결말의 설득력을 더해주니까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시각 전환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각 인물의 시점이 서로 보완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많습니다. 도입부라 할 수 있는 도베 시점 이야기는 사건 전개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구로다와 고미나토의 이야기는 추천 입학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점에서 서로 겹치는 이야기입니다. 구로다와 동영상 피해자인 모모세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서술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모모세가 진실을 고백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오쿠사와가 자숙을 핑계로 그동안 이루어졌던 학교의 성적 조작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입막음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오쿠사와에 대한 애정으로 바닥이었던 영어 성적을 학년 톱으로 끌어올린 모모세의 성격과 행동을 고려할 때 순순히 입을 닫고 있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에필로그에서 큰 사건 이후 학생들과 남은 선생들이 우정과 용기를 이야기하는 결말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야기의 무게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오쿠사와의 죽음과 학생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빠른 전개와 일종의 반전, 학교 내 입시 비리 문제를 다루며 긴장감과 흥미를 선사하지만 시점 전환의 효과가 미흡하고, 여러 설정이 설득력을 잃은 점,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 등으로 감점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