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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3). - 아야츠지 유키토

### 4. '금단의 계곡'의 젊은이들
같은 8월 1일 오후. 장소는 바뀌어, 여기는 M** 마을 사람들이 '금단의 계곡'이라 부르는, 돈돈산의 서쪽이다.
돈돈다리에서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파이프 바위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쳐서 좀 더 남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꺾이는 샛길이 있다. 경사는 동쪽에 비해 훨씬 완만하고, 발밑 상태도 좋다.
자세한 위치 관계는 첨부된 지도(27페이지 "현장 부근 약도")를 참조해 주시고, 이 길을 내려가 만나는 계곡의 한 구석에 어제 저녁부터 두 개의 빨간 텐트가 쳐져 있었다. 포우가 말한 "사악한 마음을 가진 외지인들"의 일행이었다.


"요우지. 유키토는 어디 갔어?"
물길에서 돌아온 반 다이스케가 나무 그늘에 앉아 계곡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던 아사노 요우지에게 말을 걸었다. 요우지는 스케치북에서 눈을 들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글쎄"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까지 저기 있었는데. 사키를 또 괴롭혀서 혼내줬더니, 혀를 내밀고 도망갔어."
다이스케는 한숨을 쉬었다.
항상 그렇듯, 유키토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머리도 나쁘고 난폭하며, 성격도 전혀 귀엽지 않았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나이에 맞는 분별력도 전혀 없다. 저 아이가 내 친동생이라니, 정말 한심하고 어쩔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다이스케는 H**대학 이학부 2학년으로, 이번 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산을 좋아해, 틈만 나면 이렇게 가까운 산으로 캠프를 오곤 했다.
이번 일행은 다이스케를 포함해 다섯 명이다.
중학교 때부터 산행을 함께했던, 소꿉친구인 아사노 요우지. 같은 H**대학 문학부 2학년. 취미로 그림을 그리며, 대학에서도 미술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그의 여동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인 사키.
요우지의 미술 동아리 후배로, 사키의 남자친구이기도 한 사이토 사카에.
그리고, 다이스케의 동생 유키토.
캠프 계획은 다이스케와 요우지가 세웠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사키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가 본래 목적이었고, 사이토 사카에를 초대한 것은 요우지였다.
처음에는 네 명이 갈 예정이었지만, 유키토가 자기도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너는 아직 초등학생이라며 거절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울부짖는다. 엄하게 꾸짖으면 엄청난 소리로 운다. 부모님도 늦둥이로 태어난 유키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그래서 결국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키토는 골칫덩어리다.
최근 초등학생 치고는 작고, 겉모습은 얌전해 보이지만, 제멋대로 자라서인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자아(super-ego)의 발달이 현저히 늦어졌다. 열두 살이 되어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구별을 거의 내면화하지 못한 상태이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싸움을 하고 수업을 빼먹는 문제아였다. 아직 잡힌 적은 없지만, 도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이웃집 고양이를 모닥불에 던져 죽인 일도 다행히 들키지 않았지만, 유키토의 소행이었다. 새해 첫 참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데려가면, 주차된 차의 타이어에 못을 박거나, 커터칼로 다른 사람의 옷을 찢는 등, 범죄에 가까운 나쁜 장난을 일삼았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언젠가 경찰 신세를 지게 될 게 뻔했다. 문제는 무엇보다도, 유키토가 그런 행동이 "나쁜 일"이라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미 삼아 하는 것이다. 어딘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학교 성적은 당연히 좋지 않다. 특히 국어와 사회는 최악이라, 이 점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한탄했다. IQ는 그렇게 낮지 않고, 오히려 우수한 편이라지만…….
"꺄!"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텐트 안에서였다. 바로 아사노 사키가 뛰쳐나와 오빠 요우지에게 눈물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거 봐요, 오빠. 내 배낭 안에……"
투명한 비닐봉지를 바닥에 던졌다. 그 안에는 토막 난 뱀의 사체가 들어 있었다.
"또 그 애 장난이야."
"정말 미안해, 사키."
다이스케는 황급히 사과했다.
"나중에 잘 말해둘게."
"유키토를 데려온 건 정말 실수였어."
라고 요우지가 말했다.
"정말이야! 이제 지긋지긋해."
사키는 상당히 히스테릭해졌다. 아까는 스치면서 유키토에게 가슴을 만졌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유키토는 최근 여성의 몸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앞날이 걱정되어 다이스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말하긴 그렇지만, 그 애는 정상 아니야. 분명 어딘가 이상해. 어제도 내 엉덩이를 만지고, 나중에 바지를 보니 빨간 손자국이 있었어. 아마 피였을 거야. 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해."
다이스케는 그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이토 사카에가 능선길 쪽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혼자 산책이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사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또 유키토야? 뭐, 뭐.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상대는 아이잖아."
사카에는 아주 느긋한 태도였다.
"사이토 군. 유키토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위쪽에서 봤어요. 저쪽 다리 쪽으로 걸어가더군요.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더니, 혀를 내밀었어요."
"다리라면, 막다른 곳에 있는 출렁다리?"
"네."
위험하다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아무리 문제아라도, 역시 동생은 동생이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유키토에게 관대한 것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이스케도 마찬가지였다.
"흥. 저런 녀석, 계곡 아래로 떨어져 버리면 좋겠어."
사키는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 5. 유키토의 수난
반 유키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누가 좀! 도와줘!"
아까부터 목이 쉬도록 소리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넓은 산 속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그들의 캠프까지는 닿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라고 유키토는 생각했다. 다리 앞에 있던 그 더러운 표지판. 거기에 적혀 있던 것은 어떤 경고였을까?
"노후화로 위험"—그 글자는 국어를 잘 못하는 유키토는 읽을 수 없었다.
현수교를 건너는 것은 그야말로 스릴이 넘쳤다. 양손으로 로프를 더듬듯이 잡으며, 군데군데 큰 틈이 난 판자 위를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씩 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삐걱거리고 흔들렸는데, 그것이 참을 수 없이 재미있었다. 점점 흥분한 나머지, 마지막 5미터 정도를 뛰어갔는데, 그 순간이었다. 유난히 큰 삐걱거림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다리의 형태가 무너졌다. 다리를 지탱하던 로프가 마침내 끊어진 것이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유키토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계곡 바닥을 내려다보며, 천하의 악동 유키토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건너편까지는 20미터 가까이 된다. 남아 있는 것은 간신히 끊어지지 않은 로프 한 줄과 거기에 매달린 몇 장의 판자뿐이었다. 강한 바람에 휘말려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로프에 손을 대보았지만, 크게 흔들리더니 남아 있던 판자가 계곡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것으로는 도저히 유키토의 체중을 견딜 수 없다. 이쪽 길은 절벽 때문에 2미터 정도만 가면 막힌다. 주위는 모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한 절벽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는 유키토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다. 작은 그늘도 없는 천연 발코니였다. 이대로 2, 3시간만 이 뜨거운 햇볕 아래 있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 유키토는 간절히, 매주 보고 있는 TV 속 변신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빌었다.
"도와줘…"
이제는 외치는 것도 지쳐갔다. 이제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고 반쯤 포기하려던 그때,
"유키토!"
능선 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다이스케의 목소리였다.
"형!"
유키토는 손을 흔들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부서진 현수교 건너편에 다이스케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야, 형. 도와줘."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
다이스케가 큰 소리로 답했다.
"기다려. 지금 모두를 데리고 올 테니까. 알겠지? 거기서 움직이지 마. 무리하지 마!"
"—알았어."
"괜찮아. 금방 돌아와서 도와줄 테니까. 아무튼 가만히 있어."
그리고 다이스케는 몸을 돌려 능선 길로 돌아갔다. 오후 2시 반의 일이었다.

### 6. 다가오는 그림자
다이스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유키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쏟아지는 햇볕의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평소에 말썽꾸러기인 유키토도 이 상황에서는 형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오지 말 걸, 그런 짓을 하지 말 걸...'이라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후회하면서 유키토는 그대로의 자세로 다이스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의를 품은 어떤 존재의 그림자가 다리 건너편에 나타났을 때도, 유키토는 전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M** 마을의 오후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숲이 끊긴 곳에 생긴 광장에 모여, 모두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옷을 벗고 건강하게 뛰노는 아이들, 나무 그늘에서 바느질을 하는 젊은 여자들… '수염의 노사' 포우는 광장 한쪽에 있는 노천 온천에 어깨까지 몸을 담그고, 그런 마을의 풍경을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희미하게, 무언가 이상한 외침이 들려왔다.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지금 그 소리는?'
중얼거리며 포우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흰머리가 섞인 눈썹을 찌푸렸다.
'출렁다리 쪽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오후 2시 40분의 일이었다.


다이스케가 캠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50분이었다. 능선길을 따라 곧장 달려와, [샛길 C](지도를 참조할 것)를 뛰어 내려왔다.
나무 그늘에 깔린 그라운드 시트 위에 사키가 누워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텐트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사키, 사키야!"
"응?"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사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다이스케를 보고,
"무슨 일이에요, 반 씨? 그렇게 급하게."
"큰일났어. 요우지와 사이토 군은 어디 있어?"
"무슨 큰일이죠?"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요우지가 텐트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다이스케는 서둘러 사정을 설명했다. 요우지는 팔짱을 끼고 불만스럽게 아랫입술을 내밀었고, 사키는 "꼴 좋다"는 듯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다.
"흠. 그거 우리만으로는 어쩔 수 없겠네."
요우지가 말했다.
"어쨌든 빨리 돈돈 마을로 달려가서 구원을 요청해야겠어."
"부탁해. 나는 다리로 돌아갈게. 사이토 군은 어디에 있어?"
"낚시하러 계곡으로 내려갔어."
라고 사키가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사키는 여기서 대기하고, 그가 돌아오면 함께 다리 쪽으로 와줄래?"
말을 끝내자마자, 다이스케는 뒤돌아섰다.

### 7. 유키토의 최후
다이스케가 돈돈 다리로 돌아온 것은 오후 3시 반이었다. 같은 경로를 거쳐 올라왔지만, 능선까지는 오르막길이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서두르지 말자,' 라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 다리의 상태를 생각하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키토를 진정시키고,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 다행히 날씨가 나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다리 앞에 도착했다.“노후화로 인해 위험”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붙잡고 체중을 지탱하며, 헐떡이는 숨을 고르면서 동생의 무사함을 확인하려고 다리 너머를 보았다. 그때――.
다이스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유키토가 없었다.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비록 20미터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시야는 탁 트여 있었고, 다이스케의 시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부서진 다리의 모습도 아까와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곧이어 다이스케는 다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졌다. 다리 중앙에 도착하자, 그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다이스케는 유키토의 작은 몸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은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움직임이 없었다.
다이스케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과 절망을 억누르며 다리 밑으로 내려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해야 유키토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곧 알게 되었다. 유키토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물을 참으며 다이스케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유키토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유키토의 마지막 순간을 느끼며, 다이스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사이토 사카에는 캠프를 떠나 혼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고생을 했지만, 결국 본류의 돈돈 강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가에 서서 사카에는 오른손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돈돈 다리라는 현수교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다리가 부서져 있었다. 양쪽 절벽에는 끊어진 로프가 늘어져 있었고, 강가에는 다리의 잔해로 보이는 나무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카에는 조심스럽게 다리 쪽으로 다가갔다. 몇 걸음 나아가다 문득, 건너편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키토?"
그는 소리쳤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강물은 불어나고 흐름도 거셌다. 어디서든 건너갈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을까 하고, 사카에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몇 미터쯤 위쪽으로 가보니, 여기저기 바위가 드러나 있는 곳이 있었다. 저 바위를 따라 건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카에는 낚싯대 등이 들어있는 배낭을 강가에 던져두었다.
여러 번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질 뻔했지만,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달려가 보니, 쓰러져 있는 것은 역시 유키토였다.
"이봐, 괜찮아?"
소리치자, 그에 답하듯 소년의 입에서 "으으" 하는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신 차려. 이봐."
"……으으"
사카에는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이 위에서 떨어진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봐, 유키토. 이봐."
등을 받치고 여러 번 불러보았다. 유키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들여다보니, 갈라진 머리에서 흐르는 피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으……으……"
어쩐지 희미하게 의식이 있는 듯했다. 유키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당했다……"
"뭐라고?"
"……밀……쳐……졌……"
소년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당했다" "밀쳐졌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는 바로 다잉 메시지였다. 그리고——.
"사……사……아……"
그렇게 결국, 악동 유키토는 숨을 거두었다.

### 8. M** 마을의 소동
돈돈 다리의 북쪽 절벽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정보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정찰을 다녀온 엘러리가 전해주었다. 죽은 사람은 유키토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어제부터 '금단의 계곡'에 머물던 외지인들 중 한 명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유키토는 문제의 절벽 위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밀쳐졌다"고 했다.
포우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며, 좋아하는 도토리를 씹어 먹으면서 모두의 반응을 살폈다.
"엘러리,"
마침내 포우는 엄숙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는 젊은 리더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일을 나에게 맡겨보는 게 어떻겠느냐?"
"맡기죠,"
엘러리는 대답했다. 포우는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며, 모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좋다, 우리 중에 이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금기를 어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 '금단의 계곡'에 간 카도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우리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해된 소년의 동료들 중에 있을 수도 있다만..."
"잠깐 기다려 주세요, 포우,"
엘러리가 끼어들었다.
"그 소년은, 하지만..."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살인은 살인, '금기를 어기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더럽혀진 땅'에 온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인간을 죽였다는 것은, 이중의 '더러움'이 아니겠느냐.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엘러리는 반론하지 않았다. 포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다리 쪽에서 그 비명 소리가 들려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광장에 있었다. 그때 여기에 없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중에 살인을 저지른 자, 여기서는 가칭 X라고 부르자, 그 X가 있다면, 당연히 그때 이 광장에 없었던 자일 것이다..."
모두에게 물어본 결과, 문제의 시간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은 엘러리와 그의 아내 아가사, 엘러리의 두 번째 아내 올츠이, 그리고 엘러리와 아가사의 아들 카, 이 네 명 뿐이었다. 이 중 카는 어제 다친 이후로 여전히 누워 있었다.
"아가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포우의 질문에 중간 키의 아름다운 여자가 일어섰다. 아가사였다. 그녀는 작년 봄, 숲에서 곰에게 공격받아 오른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지만, 그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났다.
"저는 계속 카의 곁에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중환자 상태인 자신의 아이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그녀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웠다.
"올츠이는? 어떻게 했느냐?"
올츠이는 아가사보다 한참 작은 젊은 여자였고,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포우의 질문에 그녀는, 오후 내내 광장에서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몸을 쉬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엘러리, 너는 어떻게 했느냐?"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은 엘러리는 현재 리더로서의 권위를 주장하듯 강한 앞니를 드러내며 다소 무뚝뚝한 어조로,
"혼자서 숲 속에 있었습니다."
라고 답했다.
"저도 그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포우."
"흠."
고개를 끄덕이며 포우는, 그 비명 소리를 들은 후 잠시 지나 엘러리가 광장에 나타났던 것을 떠올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두자. 돈돈 다리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다. 그리고 포우가 광장에서 엘러리를 본 시간은 정확히 25분 후인 오후 3시 5분이었다.

### 9. '신'에 의한 데이터 제공
이번 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은 "고뇌하는 자유업자" 린타로이다. 린타로가 그의 애견 타케마루와 함께 파이프 바위까지 와서,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또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곳에서 약 세 시간, 즉 오후 4시가 조금 넘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즉,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M** 마을에서 능선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그 통나무 다리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소설에서 '신의 시점'을 취하는 작가가 지문에서 이렇게 명시하고 있으니, 그 사실은 틀림없다.
작가의 인터뷰에 응한 린타로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 통나무 다리는 그 시간 동안 항상 제 시야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리를 건넌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놓쳤을 가능성은 없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 알아챘을 것입니다."
다만――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 시간 동안 두 번 정도, 그의 발치에 있던 타케마루가 심하게 짖었다는 것이다. 타케마루는 겁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풀숲에서 뱀이라도 보고 놀랐을 것이라고 린타로는 이야기했다.


### 9. '신'에 의한 데이터 제공
문제의 실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서 두세 가지 설명을 추가하겠다.
M** 마을 및 ‘금단의 계곡’의 캠프지에서 돈돈다리로 가는 길은, 첨부된 지도에 표시된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예를 들어, 포우 일행만이 아는 비밀의 지름길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범람한 동쪽 지류에 대해서도, 그림에 표시된 것처럼, 적어도 파이프 바위 부근보다 하류 부분에 대해서는, 그 통나무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꾸로 말하면, 더 상류로 돌아가면 바위를 타고 건널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가령 포우가 말하는 X가 M** 마을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마을에서 돈돈다리까지 가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 루트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1.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횡도 B]에서 능선길로 올라 돈돈다리로.
2. 일단 [지류 A]의 상류로 돌아가서 강을 건너고, [횡도 D]에서 능선길로 올라 돈돈다리로.
각 루트의 소요 시간을 기록해두자면, 1번 루트는 가는 데 35분, 돌아오는 데 20분, 2번 루트는 가는 데 1시간 반, 돌아오는 데 50분이 걸린다. 이것은 생각할 수 있는 최단 소요 시간이다.
가능성을 논하자면 물론, 이 두 가지 외에도 돈돈다리까지 가는 루트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횡도 D]에서 한 번 능선길로 나온 뒤 [횡도 C]를 내려가거나, [지류 B]를 따라 계곡을 내려간 뒤 [횡도 A]를 올라 다시 능선길로 나오는 등의 극단적인 우회로도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정규 “길”을 통하지 않고 능선까지의 경사를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앞서 언급한 1번과 2번 루트에 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분명하다.
추가로,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의 경우, 엘러리의 알리바이는 오후 3시 5분 이후 완전히 성립한다. 아가사와 올츠이에 대해서는 모두 오후 3시 40분까지의 알리바이가 전혀 없다. 아가사는 계속 카의 곁에 있었다고 하지만, 위독한 상태였던 카는 그녀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한편 캠프의 네 명은, M**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들은 오후 2시 40분 시점에서는 모두 단독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각자의 증언에 따르면――
- 다이스케: 모두에게 유키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능선길을 되돌아가던 중이었다.
- 사키: 캠프의 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었다.
- 요우지: 텐트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었다.
- 사카에: 낚시를 하기 위해 [지류 B]를 내려가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사건의 핵심을 다루는 것이다, 오후 2시 40분에 포우 일행이 들은 문제의 비명은 확실히, 유키토가 돈돈다리 북쪽 절벽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밀쳐졌을 때 외친 목소리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인 작가가 지문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절대 틀림없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
○ 문제 1
반 유키토를 죽인 X의 이름을 맞춰주세요. X는 단독범으로,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 제3자의 범행도 아닙니다.
○ 문제 2
범행 방법은? X는 어떻게 유키토를 죽였는가, 라는 것입니다.
주의할 점으로는, 연, 행글라이더, 낙하산, 기구, 괴인20면상이 애용하는 미니 헬리콥터 등 작품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특수한 도구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초능력이나 우주인, 이공간통로 등 초자연적인 존재나 개념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퍼즐 미스터리의 규칙에 따라, 본문에는 전혀 거짓된 기술이 없음을 여기에 명시합니다. 또한, 논리가 무의미하게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문제"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에도 동일한 규칙을 설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X 이외의 것들의 대사에는 거짓말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위 조건을 바탕으로 답을 제출해 주세요.
건투를 빕니다.


2024/07/29

07.23~07.28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키움 - SSG 홈 - 원정 6연전
성적 : 2승 4패

좋았던 점
  • 괜찮았던 선발진 (최준호 11이닝 4실점, 곽빈 6이닝 2실점, 발라조빅 6이닝 4실점, 최원준 6이닝 1실점)
  • 이영하, 김택연 선수의 휴식
  • 최승용 선수의 복귀

나빴던 점
  • 절망적인 타선, 총체적 난국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 예상대로 2승 4패를 거두었는데, 문제는 SSG에게 스윕을 당했다는 겁니다. 세 경기 전부 합쳐 4점을 내고, 13점을 실점하니 이길 수가 없지요. 
하지만 시라카와 등판 경기 외에는 선발진은 제 몫을 했습니다. 발라조빅 선수도 홈런 하나 때문에 4실점 패배하기는 했지만, 탈삼진은 11개나 잡으며 6이닝을 버텨주었으니까요. 문제는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자멸한 타선입니다. 대표적인게 토요일(27일) 경기입니다. 안타 8개에 볼넷은 10개나 얻었는데 3득점이라니? 병살 2개와 기묘한 주루사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건 2할 5푼대 타격도 간당간당한 중심타자 양석환, 김재환 듀오입니다. 제발 퓨처스에서 홍성호 선수라도 올려보면 좋겠네요.

그래도 이 경기는 선발 투수 최원준 선수의 쾌투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7회 이유를 알 수 없는 계투진 운영으로 역전당하며 게임을 그르쳤는데 이건 확실히 감독 탓입니다. 두 점차 박빙 상황에서 좌타자들이 이어질 때 이병헌 선수를 등판시킨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른손 타자로 계속 교체하는데 투수를 바꾸지 않은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홍건희 선수를 바로 등판시켰다면, 최소한 역전은 당하지 않았을겁니다. 당구를 배울 때, 이기려면 '짤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야구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시즌 성적을 기록하려면,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이겨야지.

차주는 선두 기아와의 원정 3연전과 키움과의 홈 3연전이 이어집니다. 기아전은 콱-시-발로 이어지는 1,2,3 선발진이 투입되지만 기대가 안되네요. 스윕을 예상하는데, 이왕 질거라면 곽빈 선수에게 한 번 정도 휴식을 주는게 좋아 보입니다. 최원준, 최준호, 곽빈 선수가 투입될 키움전에 최선을 다해서 위닝을 기대하기 위해서요. 타선은 백약이 무효인데, 위에서 썼듯이 새로운 선수라도 가용해보면 좋겠고요. 새로운 외국인 타자는 언제 오려는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추락 중인데, 이제는 기대치가 5위인 것 같습니다. 5위로 뭘 하는건 불가능하니, 무리하지 말고 리빌딩 시즌을 만들어 가는게 팀을 위해서도 훨씬 좋을 것 같네요. 그럴려면 신인급 타자 최소 두 명은 키워야 합니다. 투수가 부족한 컨텐더 팀(기아나 LG?) 대상으로 최원준 선수나 이영하 선수골자의 트레이드도 추진해 볼 만 하고요. 정말이지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대는 안하지만 부상만 없길 바라며, 이번 주에도 허슬~ 두!!

2024/07/28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2). - 아야츠지 유키토

1. 돈돈 다리
곳은 일본, 혼슈의 어느 산속.
깊은 계곡이 있고, 거기에 긴 현수교가 걸려 있다. 계곡 바닥에는 '돈돈 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으며, 현수교는 '돈돈 다리'라고 불린다.
보기에도 오래된 다리이다.
길이는 20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 나무로 만든 도리를 로프로 매단 단순한 구조로, 강한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삐걱거림을 내며 흔들린다. 예를 들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2'의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다리를 떠올리면 된다. 다리 앞에는 '노후화로 인해 위험'이라고 쓰인 팻말이 서 있지만, 굳이 경고를 하지 않아도, 보통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세 걸음 내디디고 곧 돌아갈 것이다. 그 정도로 보기에도 위태로운 모습이다.
다리에서 계곡 바닥까지의 거리는 30미터는 될까. 계곡 양쪽은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다. 부서지기 쉬운 듯한 적갈색 바위 표면에는 발 디딜 곳도 없고, 덩굴조차 자라지 않는다.
무엇이든, 자일 같은 도구 없이 이 절벽을 오르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해 두겠다. 아니, '도구 없이'라는 조건도 여기서는 불필요할지 모른다. 설령 암벽 등반의 천재라 하더라도, 이 절벽을 정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나비나 새처럼 날개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다리는 길을 남북으로 잇고 있다. 남쪽 길은 '돈돈 산'을 종주하는 능선길로 이어진다. 한편, 다리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길이 없다. 곧바로 막다른 곳이 된다. 한 달 전에 일어난 대규모 산사태가 그 원인이었다. 계곡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던 길이 십수 미터나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산속 깊은 곳이라 복구의 전망도 전혀 서지 않은 채, 오늘까지 계속 방치되어 있다. 막다른 길 앞에는 마치 계곡으로 돌출된 발코니처럼 약간의 지면이 남아 있지만, 이것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에도 오르내릴 수 없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 이제부터.
돈돈 다리 북쪽의 고립된 이 돌출 부위가, 본편의 '문제'의 초점이다. 즉 이곳이, 지금부터 서술할 어느 살인 사건의 범행 현장이 된다.

2. 린타로와 타케마루
돈돈 다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한참 가다 보면, 동쪽으로 갈라지는 작은 길이 있다. 일반 등산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좁고 험난한 길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 내려가다 보면, 길은 어느새 돈돈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중 하나에 닿는다.

그날, 8월 1일 오후, 이 계류 옆에 한 남자와 한 마리의 개가 있었다. 남자는 스물여섯 살, 이름은 린타로였다. 개는 타케마루, 수컷 시바견이다.
린타로는 돈돈 산 기슭에 있는 '돈돈 마을' 출신으로, 지금은 고향을 떠나 혼자 도시에 살고 있다. 어느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년이 채 안 되어 그만두었다. 현재의 직업은 "자유업"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린타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설명하기 시작하면 몇 장을 써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고민은 그만큼 복잡했다.
어쨌든 린타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에 지친 그는 당장의 일을 내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 년 만의 귀향이었다. 부모님은 크게 환영해 주었고, 고등학생 때부터 키우던 사랑스러운 타케마루도 재회에 기뻐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린타로가 타케마루를 데리고 돈돈 산으로 향한 것은, 말하자면 최후의 결심이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고민해 보자고 결심한 한편,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고민은 심각했다.

그들이 그 강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얼마 동안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오늘은 화창했다.
그곳은 한때 린타로가 좋아하던 장소였다. 마을에서 상당히 걸어야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찾아오곤 했다. '파이프 바위'라고 그가 마음대로 이름 붙인, 말 그대로 파이프처럼 생긴 길쭉한 큰 바위가 강 앞에 있었고, 이를 벤치 삼아 혼자 사색에 잠기는 것이 그 시절 그의 고독한 취미였다.
"오랜만이네, 여기 오는 것도."
옛날처럼 파이프 바위 끝에 앉아, 린타로는 발밑에 웅크리고 있는 타케마루에게 말했다.
"가끔 너도 데리고 왔었지. 기억나니?"
타케마루도 이제 만 열한 살,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은 나이다. 오랜 시간 산길을 걸어와서인지, 지친 듯 혀를 길게 내밀고 눈도 뜨지 않았다.
린타로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고뇌로 가득한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맑게 갠 여름 하늘은 한 점 흐림 없이 파랬다. 시선을 돌리면 나무들의 선명한 초록색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을 스쳐 가는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에 상쾌하게 느껴졌다.
눈앞을 가로지르는 강물의 흐름이 유난히 거세었다. 엊그제까지 내리던 비 때문일 것이다. 평소보다 두 배나 강폭이 넓어지고, 물의 양도 늘었다.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단번에 물살에 휩쓸려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린타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타케마루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호소하듯, 꼬리로 땅을 두드리며 앞발로 얼굴을 문질렀다.
"좋겠다, 너는."
린타로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좋겠어. 아무런 고민도 없으니까."
타케마루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왈" 하고 대답했다. 린타로는 고민했다. 왜 여기서 타케마루가 "왈" 하고 짖는지, 그런 문제조차 그의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 속에 새롭게 포함되어 갔다.

이렇게 해서...
그 후 약 세 시간, 오후 4시가 넘을 때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후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3. M** 마을의 규율
린타로와 타케마루가 있는 파이프 바위 주변에서 길은 계곡에 스며들 듯, 끊겨버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강의 폭이 약간 좁아진 부분에 원목 다리(라고 해도, 쓰러진 나무가 우연히 양쪽 강둑을 연결한 자연의 다리다)가 놓여 있어, 이를 건너면 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이 점점 더 가늘어지며 원시림이라고 부를 만한 깊은 숲 속으로 이어진다.
이 숲에는 산의 지리에 밝은 현지인들도 좀처럼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것에는 약간의 이유가 있다. 사실 오래전, 이 깊은 곳으로 패망한 헤이케의 무사들이 도망쳐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 중 한 명이 강력한 주술적 능력을 가진 자(영능자,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면 된다)였고, 추격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특수한 결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도 부주의하게 접근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근처 마을들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기이한 패망 무사 전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이 숲 속 깊은 곳에는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한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가칭으로, 그것을 [M** 마을]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좋아, 얘들아."
포우는 둘러싼 작은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함부로 생명을 죽여서는 안 돼.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는 이 산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하니까. 뱀이든 토끼든, 아무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규율'이다. 알겠느냐?"
포우는 M** 마을의 '장로'라 불러야 할 존재였다. 나이를 먹고 '장'의 자리를 젊은 엘러리에게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이곳에 머물며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일단 권력을 내려놓은 자는 집단을 떠나는 것이 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땅에 털썩 주저앉은 채, 포우는 다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은 그를 그의 흰 턱수염을 따서 '수염의 노사'라고 부른다.
"강을 건너, 능선을 넘은 저쪽 계곡으로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 그곳은 '더럽혀진 땅'이다. '금단의 계곡'이다. 사악한 마음을 가진 외지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과 교류하는 것, 이것도 역시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다."
"왜 그런 거예요, 포우?"
라고 질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루루우라는 이름의 작은 남자아이였다.
"그냥 그런 것이다."
포우는 단호히 대답했다.
"'더러움'은 '더러움', '금단'은 '금단'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악을 가져오는 것.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 그 증거로 어제 저녁, 금기를 어기고 그곳에 갔던 카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루루우,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카는 루루우의 사촌이자 마을의 젊은 장 엘러리의 아들이다.
"좋아, 얘들아"
포우는 다시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큰 부상을 입고 지금도 위독한 상태가 계속되는 어린 생명을 생각하며, 작은 노인의 눈에 깊은 우수가 가득 차올랐다.


2024/07/27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1). - 아야츠지 유키토


여름을 맞아 오랫만에 번역글을 올립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돈돈 다리, 떨어졌다."입니다.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제목부터 유명 동요인 "London bridge falling down"의 패러디일 정도로 패러디, 인용이 많은게 눈에 띕니다.
번역에는 Chat GPT의 도움을 얻었으며, 문맥에 맞게 가다듬은게 전부입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추리 소설이니까요.

1991년 12월 31일 밤, 기묘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12월 31일이라 하면 대개 온천이라도 가서 한가로이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법이지만, 마감이 다가온 장편 소설의 원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 밤에도 작업실로 쓰는 맨션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보고 싶지도 않은 연말 방송을 보며 마음만 초조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만 초 바쁜' 상태였고, 솔직히 말해 이는 몸과 마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다.
시각은 오후 10시 전. 새해 전야의 이 시간에 방문 판매원이 올 리 없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가냘픈 몸에 두꺼운 가죽 점퍼를 입은, 피부가 하얀 청년이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대략 20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야츠지 씨."
병약해 보이는 차분한 얼굴에, 머리는 옛 포크 가수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볼에 하얀 입김을 내뿜는 그 얼굴은 분명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였더라? 이름이나 나와의 관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크림색에 녹색 줄무늬가 들어간 풀페이스 헬멧을 작은 겨드랑이에 끼고, 손에는 가죽 장갑, 검은색 데이팩을 메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이다.
"저기, 당신은..."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말을 더듬었다. 역시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음..."
"오랜만입니다. U입니다. 잊어버리셨나요?"
"아... 아니 아니. U군, 맞아,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내심 당황했다.
'U'라는 이름은 확실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왠지 매우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명확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의 한 부분에 반투명 커튼을 드리운 것 같은,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네요. 일이 힘드신가 보죠?"
U군은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 시간 내실 수 있을까요? 폐가 되나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바쁘다고 해도 무례하게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 나의 성격이었다.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첫 만남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아마도 대학 후배일 거라고 어렴풋이 납득하고, 나는 그를 방으로 들였다.
거실의 소파에 앉자, U군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딱 좋은 시간입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데이팩에서 한 권의 노트를 꺼내들었다.
"사실은, 아야츠지 씨에게 오늘 꼭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보통 노트가 아니라, 원고지를 묶어 만든 책이었다. 표지에는 '돈돈 다리, 떨어졌다'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뭐지?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U군은 머리를 쓸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좀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건방진 부탁이지만, 오늘 밤 꼭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미스터리인가?"
탐색하듯 물어보자, "물론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이 U군, 대학 후배였던 것 같다.
학생 시절, 나는 '추리 소설 연구회'라는 학내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미스터리 작가로 만들었고, 지금도 가끔 서클 모임에 얼굴을 비추곤 한다. 젊은 학생들과의 접촉이 나름대로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기묘한 감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기억력이 떨어진다 해도, 왜 그의 존재를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일까? 얼굴도 알고 이름도 익숙하다. 분명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짧은 거라서, 가능하면 지금 바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만."
U군이 말했다. 나는 원고를 손에 들고,
"어떤 유형의 작품인가?"
전문 작가인 듯한 어조로 질문했다. U군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본격 퍼즐 미스터리로 '독자에의 도전'이 붙은..."
:범인 맞추기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범인 맞추기 소설'이란 즉 '범인 맞추기 게임'의 통칭이다. 출제자가 먼저 '문제편'을 낭독하고, "단서는 모두 나왔다. 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도전이 삽입된다. 참가자들의 답을 모은 후 '해답편'이 제시되고, 정답자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옛날, 일본 탐정 작가 클럽 '토요회'의 신년회에서 이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 모교의 미스터리 연구회에서도 발족 이후 현재까지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모임에서 발표했나?"
내가 묻자, U군은 "아니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자신작인가?"
"절대 맞힐 수 없는 것을 쓰겠다는 각오로 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자신이 있습니다."
"흠, 대단하네."
담배를 피우며 U군의 표정을 살폈다. 창백한 뺨에 불가사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겠다. 과거 시마다 소우지에게 '범인 맞추기 게임의 명수'라고 칭송받았던 이 나에게, 그는 문자 그대로 도전하려는 것이구나.
"문제 자체는 매우 단순합니다. 복잡하게 만들어 독자를 속이려는 얄팍한 수는 쓰지 않았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으로 돌아가 썼습니다. 물론, 페어플레이 규칙은 엄격히 지켰습니다. '독자에의 도전'에도 명기했지만, 삼인칭 서술에서 거짓된 묘사는 일체 없습니다. 복잡한 기계 트릭이나 의문의 중국인도 등장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그런 설명을 덧붙이고 나서, U군은 다시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그러니, 우선 읽어보시겠습니까?"
"정답일 경우의 상은?"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자, U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만약 정확히 맞히면, 앞으로 저를 노예라고 불러 주세요."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이는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좋아." 기운을 내서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2024/07/26

여름맞이, 최고의 호러 컨텐츠 소개 : BRUTUS 2023년 9월 호러 특집

주제 한 가지를 정해 집중 탐구하는 일본 잡지 BRUTUS의 2023년 9월 주제가 '호러' 였었습니다. 여러 기사가 실려 있는데, 메인을 장식한 기사가 호러 순위였고요. 14명의 호러 매니아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괴담, 소설, 만화, 게임, 유튜브에 심지어 폐가까지 호러 컨텐츠 전 분야에 걸쳐 모두 444펀을 선정한 뒤, 1.0점부터 5.0점까지 41단계로 판정하여 순위를 매겼습니다. 이 중 최고점인 별점 5점을 받은 작품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런데 영화 몇 편 빼고는 거의 모르겠네요. 만화의 경우는 굉장히 마이너한 단편 작품만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호러 매니아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라는 과시욕이 느껴져서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는게 좋겠습니다.

영화 :
  • 노로이(ノロイノロイ) - 시라이시 코지 / 2005년
  • 다크 앤드 더 위키드 (The Dark and the Wicked) - 브라이언 베르티노 / 2020년
  • 먼고 호수 (lake mungo) - 죠엘 앤더슨 / 2008년
  • 링 - 나카다 히데오 / 1998년
  • 새 - 알프레드 히치콕 / 1963년
  • 텍사스 전기톱 학살 - 토브 후퍼 / 1974년

소설 :
  • 잔예 - 오노 후유미 / 2012년 : 작가인 주인공이 도쿄 교외 맨션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을 쫓는 페이크 다큐 형식의 소설.

만화 :
  • "저주의 초상화 (呪いの肖像画)" - 아오키 토모코 青木智子/ 1996년 : 『학교에 전해지는 무서운 소문 3』 수록작. 미술부 선배를 짝사랑하는 소녀가 사고로 죽고, 그 영혼이 자신이 그린 초상화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림에 다가간 후배의 몸에 초상화가 감겨 소녀가 빙의한다.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일념으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가 진정한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무섭다.
  • 'get lost' - 이노우에 유미いのうえゆみ / 1988년 : 『마이코믹스 호러 오컬트 공모대전 HELP 5』 수록작.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의 충격적인 작품. 아이와 떨어질 수 없는 아버지와 딸의 코믹한 교감이 그려지는 도입부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망상이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기적을 목격해 보길 바란다.
  • "TVO" 오챠즈케노리 (御茶漬海苔) / 1989년 : 심야에 갑자기 시작되는 「공포의 TVO」. 거기에 비춰지는 것은 인간의 어둠. 인간의 날카로워진 어둠이 깊고 담담하게 그려진 사이코 호러의 걸작.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 표현이 특히 뛰어나서 화면이 고요한데도 소름이 돋는다. 읽으면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라는 촌철살인의 문구가 빛을 발한다. (*1권은 무료로 읽을 수 있네요. 그렇게 무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괴담 :
  • '가엾은 웃음' - 梨 / 2022년. 책 : 괴담 중심으로 활약하는 신세대 괴담 작가 梨의 첫 번째 단독 저서. 자신이 그동안 인터넷에서 수집한 괴담을 바탕으로 쓴 '독자 참여형' 호러큐멘터리로, 작품 속에는 출처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있는 등 독자를 현실적인 공포 체험에 참여시킨다. "괴담에서 가장 귀를 막고 싶은 주제인 '사람의 악의'를 현대 독자들이 가장 체감하기 쉬운 형태로 소설화했다. 발명이라고 해도 좋다. 책 자체에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 「1㎜의 여인」 / DVD 『사쿠라금조의 TV에서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이야기』 수록 : 무단결근한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사쿠라 씨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그가 가리키는 다다미의 뒷면을 들여다보니 벽과 벽 사이의 불과 1, 2mm 틈새에 여자가 있었다. 사쿠라 씨는 탄탄한 괴담의 명수. 이야기꾼이기에 가능한 이상한 세계 이야기. 이것은 영상화 불가능.
  • 이나가와 준지 「살아있는 인형」 / YouTube에서 시청 가능 (youtub e.com/watch?v=7Bmlfx8iEQo). 18:09경 : 어느 날 밤, 이나가와 씨는 택시 안에서 소녀 같은 인물을 본다. 나중에 좌장으로 임명된 인형극에서 사용할 인형이 소녀와 똑같았다. 관련자들은 연이어 불행을 겪게 된다 ....... 지금도 계속되는 전설의 열여덟 번째.

게임 :
  • 'MADiSON' Steam, Xbox, PS4 PS5 외 / 2022년 / BLOODIOUS GAMES : 16세 소년을 조종해 저택에서 계속되는 사악한 의식을 끝내기 위해 탐험하는 서바이벌 호러.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만큼 공포도 일품이다. 어두운 복도를 카메라 스트로브를 비추며 걷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5무의 최강의 공포 작품.

다큐멘터리 :
  • '어둠의 동영상' 감독: 코다마 와다마 감독/토/일/2012년~/프롬노트 : 심령과 오컬트에서 그로테스크한 묘사까지, 온갖 금기에 과감히 도전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축축하고 습한 습도 높은 공포의 영상.

귀신의 집 :
  • '다이바 괴기학교 나고야교' 메이커스피아/아이치현 나고야/평일 휴무/도쿄 다이바 : '다이바 괴기학교'의 계열점. 학교의 참극에서 비롯된 전개는 본교와 같지만, 이쪽이 더 넓고, 더 오래 공포를 즐길 수 있다. 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무섭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의 연속으로 공간, 이야기, 연출에 있어 가장 무서운 귀신의 집.

유튜브 :
  • "페이크 다큐멘터리 'Q' 제작: 미나구치 다이치, 테라 우치 야스타로 외 / 일 / 2022년 : 봉인된 프로그램 녹화 데이터 등 단편 공포 다큐멘터리 영상을 올리는 채널. "영상에 허구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 무서운 점입니다. 사색에 잠기게 하는 장치도 곳곳에 숨겨져 있어 보면 볼수록 매력과 공포가 더해집니다."

2024/07/24

2024년 7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중식당 남풍 코스

신라 호텔에서 코스를 즐겼던게 엊그제같은데, 다시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일이 생겼네요. 이번에는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부산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부산은 잘 모르지만, 부산 어르신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식당이 파라다이스 호텔 중식당 남풍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약 후 지난 일요일 점심에 코스 요리를 즐겼습니다.
저희 가족이 고른건 Steve Jun 코스였습니다. 디저트까지 모두 8개의 요리와 식사가 이어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Steve Jun 스페셜 냉채 :
랍스터 회, 찐 전복, 해파리 냉채, 멘보샤(?), 닭 조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료도 좋지만 회부터 튀김, 조림까지 다양한 구성에 간도 적당하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2. 남풍 시그니처 딤섬 3종 : 
하가우, 샤오마이, 구채하 3종. 새우와 부추가 섞인 구채하가 제일 좋았습니다. 다른 2종은 비교적 흔하게 먹을 수 있기도 하니까요.
3. 최고급 통 상어지느러미 찜 :
크기로 압도하네요. 4년 전 신라호텔에서 먹은 것 보다 소스가 훨씬 묵직하고 진한데, 크기가 커서 그런지 잘 어울렸습니다. 고급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전해 주고요.
4. 남풍 서해산 어자 해삼 활전복 :
'어자'는 소스 이름인 듯 합니다. 재료가 좋아서 맛있게 먹었지만, 간은 다소 심심했습니다. 조금 더 짭짤한게 좋았습니다. 
5. 북경 오리 1마리 :
셰프님이 직접 와서 손질해 주시고 말아주셨지만, 가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배가 부르기 시작해서 양이 적고 조금 자극적인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북경 오리를 뺀 조금 더 저렴한 코스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홍삼 고법 불도장 :
불도장은 제가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맛있었습니다. 재료도 좋았고요. 하지만 역시 뭔가 좀 심심하다는게 아쉬웠어요.
그리고 식사로는 랍스터 짬뽕, 마지막으로 다과로 구성된 디저트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식사와 디저트는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두 개 모두 별로였습니다. 랍스터 짬뽕은 랍스터는 질겼고 간도 애매했으며, 디저트도 가격에 걸맞는 퀄리티로 여겨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신라 호텔과 비교해본다면, 신라 호텔 쪽이 압승입니다. 맛이 없는건 아닌데, 남풍의 간이 전반적으로 제 입맛과는 잘 맞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많이 심심했는데, 이런 간이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한 좋은 식사였기에 만족합니다. 서비스도 좋았고요. 다름에 방문하게 된다면, 맛있게 즐겼던 요리 단품으로 몇 가지 시킬 생각입니다.

2024/07/22

07.16~07.21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롯데 - LG 원정 6연전 (우취 1경기)
성적 : 1승 4패

좋았던 점
  • 괜찮았던 국내 선발진 (최원준 11이닝 3실점, 최준호 6이닝 무실점, 곽빈 7이닝 2실점)

나빴던 점
  • 타선, 총체적 난국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두 시리즈 연속 루징으로 1승 4패를 거두었습니다. 그래도 선발진은 대체로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타선입니다. LG전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3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타순도 바꿔보고, 이런 저런 선수를 기용해보지만 백약이 무효네요. 당연히 해 줘야 하는 선수들이 해 주지 못하는 탓입니다. 100억이 넘는 연봉을 주고 있는데, 주전 라인업에 3할 타자가 3명 뿐이고(양의지, 허경민, 라모스 선수), 이 중 두 명은 뛰지도 못하는게 말이나 됩니까. 올스타 브레이크 효과도 없고, 새롭게 올라올 선수도 없고, 솔직히 기대할 부분이 없네요.
그래도 투수진의 힘으로 비벼는 보았지만, 10개 구단 중 가장 등판이 잦은 계투진도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모양새로 경기를 내 주고 말았습니다. '콱-시-발'이라는 새로운 1~3선발 중 '시-발'은 말 그대로 시발이었고, 라이벌인 LG전의 볼썽사나운 패배도 열받는 장면이었고요.

차주는 키움과의 홈 3연전과 SSG와의 원정 3연전이 이어집니다. 두 팀 모두 두산보다 순위는 낮지만, 지금 두산은 어느 팀을 만나도 이길것 같지가 않네요. 때문에 2승 4패로 스윕만을 면하기를 바라봅니다.
아울러 중간 계투진을 갈아넣어 버티느니, 차라리 싹 갈아없고 새 판을 짰으면 합니다. 애초에 우승할 전력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나마 풍족한 우완 파이어볼러 계투진 중 몇 명을 트레이드에 활용하여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영하, 김강률 선수라면 괜찮은 카드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런트의 절묘한 운영, 그리고 이승엽 감독의 합리적인 선택과 경기 운영을 바랍니다. 허슬~ 두!!

2024/07/21

모래그릇 (砂の器) (1974) - 노무라 요시타로 : 별점 4점


마츠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을 1974년도에 영화화한 작품. 원작을 읽기는 했었는데 수십년 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아서 더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굉장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연기, 촬영은 물론 음악까지 모두 빼어납니다. 특히 히데오의 아버지가 나병에 걸린 뒤 부자는 정처없는 떠돌이가 되었는데, 카메다케 마을 순사 미키 켄이치의 설득으로 아버지는 히데오의 장래를 위해 수용소 행을 택했고, 결국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역으로 히데오가 달려오는 장면과 음악가가 된 와가 에이료(히데오)의 신곡 '숙명(사다메)'이 발표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클라이막스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정적인 촬영과 장엄한 음악이 잘 어우러진 명장면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음악에 가장 많은 돈(300만엔)을 쓴 작품이었다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리 영화로도 괜찮습니다. 이마니시와 요시무라 형사가 살해된 피해자의 사투리와 했던 말을 토대로 행적을 추적하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입고 있었던 옷과 한 여성이 잘게 자른 종이 조각을 흩뿌렸다는 신문 기사를 연결하여 기차 선로 주변을 뒤져 종이 조각이 아닌 '옷' 조각을 찾아내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있다는걸 밝혀내는 등의 뚝심있는, 발로 뛰는 수사를 잘 묘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장된 연기 방식 등 다소 낡은 티가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지만, 구로사와 아키라가 건재했던 일본 영화계 전성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7/20

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 문승준 : 별점 3.5점

I의 비극 - 8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 인구 6만을 유지하고 있는 난하카마시에는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센터로 떠난 후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 ‘미노이시’가 있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업무를 전담할 ‘소생과’를 신설하며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 공무원 만간지는 소생과로의 전보를 일종의 좌천이라고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집. I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는 서장에 이어, I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이주한 이주민들에게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6편의 단편이 이어지고, 결국 I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종장으로 마무리됩니다.
각 단편별 소개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장 : 가벼운 비"
이주민 구노는 약 30m 떨어진 이웃 아쿠쓰 집이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면서 큰 음악을 틀어 힘들어했다. 그런 구노는 어느날 만간지 등을 초대하여 저녁 시사를 대접했고, 구노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아내가 크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아쿠쓰 집 2층 커튼에 불이 붙는 화재가 일어났다.

남편 구노의 취미는 무선 조정 헬리콥터로 소개되기에, 누가 보아도 구노 씨가 저지른 범죄임이 분명했습니다. 아내의 연주는 헬리콥터 조작 소리를 감추려했던게 뻔하고요. 다만, 헬리콥터에 발화성 물질을 매달아서 2층 커튼에 불을 붙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창고에 쌓여있던 왕겨를 헬리콥터 풍압을 이용해 날렸다는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공무원들 앞에서 이웃집이 위험하다는 걸 알리는 의도였다면 이게 더 좋네요. 단서들이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전개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것만 생각하는 무능력해 보이던 과장이 탐정 역을 수행하면서 멋진 추리쇼를 선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통쾌했으며, 아쿠쓰 씨가 음악을 틀었던 이유는 구노 씨 헬리콥터 소음 탓이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층간 소음 보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네요.
I턴 프로젝트의 문제가 거의 다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도 연작 단편집의 서두를 열기에 적합했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장 : 얕은 저수지"
젊은 이주민 마키노 씨는 마을에서 잉어 양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물을 둘러쳐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양식장 속 잉어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양식장 덮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들이 잉어를 가져갔던 것이지요. 만간지가 출장을 간게(그래서 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도움을 주지 못하게 만든 것) 과장의 진짜 의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마키노씨가 현장만 지켜보았어도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물보다는 일종의 일상계 코미디, 시트콤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 : 무거운 책"
이웃 책 아저씨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한 아이 하야토가 실종되었다. 책 아저씨 구보데라 씨는 나고야 출장 중이었다.

구보데라 씨 집에 이전에 살던 주민이 대전 당시 홀로 방공호를 만들었고, 아이가 방공호로 숨어든 탓에 실종되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방공호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는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마을 사람들이 방공호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는건 이상했어요. 아이가 실종된 시점에서 대형 사고가 될 수 있으므로 빠른 조치가 필요했는데, 만간지가 방공호에 대해 추리하고 현장 수색에 나설 때까지 과장 등이 방관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억지가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장 : 검은 석쇠"
유미코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가지 갈등을 야기하고 있었다. 불합리한 논리로 아마추어 무선이 취미인 이웃 게이토의 안테나 철거를 요청했고, 휘발유에 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집 앞 자동차 통행을 막았으며. 다른 이웃 이치로에게 이상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을 축제에서 독버섯을 먹고 실려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버섯을 따왔던건 게이토 씨였다. 하지만 구운 버섯은 모두가 함께 먹어서, 그녀에게만 독버섯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몸에 안 좋다는건 무엇이든 피하는 유미코 씨의 습관을 이용한 범행이었습니다. 탄 음식이 좋지 않다는걸 알려준 뒤, 탄 자국이 있는 구운 버섯 사이에 찐 버섯을 섞어두어 그걸 먹게 했던 것이지요. 트릭은 아주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비합리적인 습관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억지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이 습관과 버섯 요리, 동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앞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에 꽤 설득력있게 전개됩니다. 일상계 본격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 손색없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5장 : 깊은 늪"
사건이 아닌, 이주 정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고령화, 인구 감소로 사라져 가는 지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서 심심하며, 딱히 점수를 주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종장에서 밝혀지는 프로젝트 실패 계획의 동기라는 점에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6장 : 흰 불상"
나가쓰카 씨는 유명 행각승 연구의 불상이 있는 와카타 부부를 설득하여 불상을 보거나 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노이시 시의 장래에 도움이 될거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와카타 부부는 거절했다. 빌려주었을 때 입을 손상과, 불상이 놓여진 곳에서 옮겨지는걸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불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며 와카타 씨가 원래 놓여져 있던 위치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에 만간지와 간잔이 응했다. 그러나 불상이 놓여져 있던 별채에서 만간지는 영문을 모른 채 갇혔고, 불상도 가짜로 바꿔치기 당했다. 범인은 나가쓰카 씨였다.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작품. 간잔이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와서 기화시켜 실내 기압이 증가되었고, 넓은 문에 압력이 가해졌던 탓에 왠만한 힘으로는 열리지 않았던 겁니다. 미닫이 창문은 기압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아 쉽게 열렸고, 창문을 열 때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준 것은 밀려나가는 실내 공기였습니다. 만간지에게 쏟아졌던 비정상적인 졸음이 증거입니다. 실내 산소가 부족해졌다는 뜻이니까요. 트릭 자체는 꽤 기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유를 알기 어려운 괴현상을 일으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경찰 수사를 하는게 이주민 퇴거 목적에는 더 부합했으리라 보입니다. 바뀌치기된 불상은 과장이 나가쓰카 씨에게 전해준 것이라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테고요.
간잔이 집 근처에 화재가 발생했다는걸 만간지에게 알린 것도 잘못입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탓에, 우연이었지만 만간지가 산소 부족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트릭을 이야기가 뒷받침하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래된 일본 가옥들이 추운 이유는 방습 기능을 우선했기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기밀성이 낮은 탓이라네요. 그런데 기밀성이 맞으면, 기압 변화도 일으키기 힘든거 아닐까요?

"종장 : I의 희극"
마지막 남았던 이주민 마루야마 씨가 전출 신청을 하러 찾아왔다. 과장과 만간지, 간잔은 마지막으로 미노이시를 찾아 상태를 점검했다. 그 곳에서 만간지는 과장과 간잔이 이주민들을 떠나도록 강제하였다는 추리를 밝힌다. 방화의 증거는 간잔이 찾아냈고, 잉어는 공무원들 방문이 늦어 전멸했다. 방공호 입구 위치는 니시노 과장이 알고 있었다. 탄 음식에 발암 성분이 있다고 한 것은 간잔이다. 엔쿠불 복제품은 니시노 과장이 건넸다.
이유는 시장 공약으로 I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지만, 난하카마 시에는 미노이 시를 유지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장과 간잔이 흑막이라는 추리의 근거와 과장과 간잔의 동기, 즉 시의 비용 문제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찾아오는데도 수십 분이 걸리고, 초등학교가 없어서 교통편도 마련되어야 하고, 눈이 오면 제설하기 위한 비용도 새로 편성되어야 한다는 등 모두가 앞서의 단편에서 설명됩니다.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으로 연작의 마무리로서도 좋았지만,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강력합니다. 시골 마을이 없어지고,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등은 모두 우리나라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서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네요.

물론 과장과 간잔의 계획대로 잘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마지막 남았던 마루아먀 씨가 전출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제설 비용은 그대로 들었겠지요. 전출은 완결을 위한 다소 편의적이었던 마무리인 셈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종장으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의 전체 별점은 3점입니다. 보기드문 '일상계' 사회파 추리물 수작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7/19

미야자키 월드 - 수전 네이피어 / 하인해 : 별점 2.5점

미야자키 월드 - 6점
수전 네이피어 지음, 하인해 옮김/비잉(Being)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하여, "바람이 분다"까지의 일생과 각종 일화들을 주요 작품 평론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평전과 평론이 합쳐진 구성이지요. 이 책을 통해 애니메이션 거장으로서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조부와 부친 덕분에 유복했지만, 결국 패배한 전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이런저런 자료와 책에서 이미 접했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터가 될 것을 결심하고 토에이 스튜디오에 입사한 뒤부터가 재미있었습니다. "걸리버의 우주여행" 마지막 장면을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안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로봇 공주가 쪼개지며 인간 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미야자키 월드를 상징하는 장면과도 같다는데,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떠나 당시 일개 동화가 신분으로 강력하게 수정을 제안했고, 그게 반영되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이런저런 일화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그 중 말괄량이 삐삐 장편 애니메이션을 위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러 갔지만 거절당했는데, 이 때 미야자키가 스케치를 준비했었고 후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책 제목은 "환영의 삐삐 롱 스타킹"이라니 구해봐야겠습니다. 삐삐와 초창기 미야자키는 너무 잘 어울렸을거라고 생각되거든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대체 왜 거절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인 "무시무시한 해일" 소개도 반가왔습니다. 원작 내용이 어떠하며 얼마나 각색했는지가 항상 궁금했었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는 코난이 초반부에 공장 노예로 인더스트리아에 끌려오지만, 새와 대화할 수 있는 소녀 라나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뉴오더를 탈출해 하이하버에 도착해서 또 한 번 거대한 지진이 닥치기 직전 친구들과 함께 쓰나미에서 사람들을 구해낸다고 하네요. 라나의 비중이 작고, 자연 재해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소년 모험물인 미야자키 작품과는 아예 달라 보이네요.

상세한 작품별 평론들도 볼만합니다. 외국인이라 가질 수 있는 시각도 있고, 미야자키의 생애와 작품을 연결하여 내놓는 해석들도 참신하게 많은 덕분입니다. "칼리오스트로의 성" 속 루팡이 금욕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라는 해석이 대표적입니다. "붉은 돼지"는 "카사블랑카"의 판타지적 재해석이라는 것도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되고요.
"라퓨타"가 개봉 당시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던가 하는 기타 정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판할 요소도 적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2차 대전에서 받은 영향으로 작품에서 '인내를 통해 상실 앞에서 행동하고, 부족함 앞에서도 주변을 돌보고, 파멸 앞에서 다시 일어나라고 말한다'는건 실망스러웠습니다.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이런 파멸에 놓였다는걸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요? 인내, 극복보다는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된 이유도 아버지 카츠지가 허풍이 심한 데다 무책임하며 방탕했고, 윤리 의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라는데, 당시 그렇지 않은 아버지가 과연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전쟁 통에 유복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 준 점에 대해 고마와했어야 합니다. 이 역시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평론별로도 비슷한 이야기가 많아서 지루합니다. 유럽에 대한 동경, 강한 여성상 등은 평론마다 계속 반복됩니다. 동의하기도 어려워요. 일본인들이 동경한 꿈의 낙원으로서의 유럽을 보여주는건, 당시 '빠른 속도로 현대화하는 일본과 달리 전통과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을 유토피아로 여긴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든건 단지 비쥬얼적인 면에서 줄거리, 세계관과 어울린다는 이유가 가장 컸을텐데, 왜 이런 심층 심리(?)를 분석해서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책 치고는 도판이 부실한 것도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좋은 면만 보려는 등 다소 편향된 느낌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팬이시라면 볼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24/07/17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2023) - 케네스 브래너 : 별점 3점

명탐정 에르큘 푸아로는 은퇴 후 베니스에서 조용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푸아로의 친구이자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가 찾아와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에 대해 검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로윈 날, 교령회가 열리던 로웨나 드리에크의 저택을 방문한 푸아로 앞에서 조이스는 죽은 로웨나의 딸 알리시아의 목소리로 "나는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고 말한 직후 살해당하고 말았다.
마침 몰아친 폭풍우로 저택마저 고립되었고, 푸아로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맞서 싸우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였다. 그 와중에 로웨나 집안의 주치의 레슬리마저도 잠긴 방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딸아이 때문에 가입한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입니다. 캐네스 브래너의 푸아로 시리즈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은 원작도 원작이지만, 영화 버전으로도 이미 감상했기에, 아무리 추리 애호가라지만 별로 볼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원작 "핼로윈 파티"를 읽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목부터 "A Haunting in Venice"인 것처럼, 전통적인 '저주받은 저택' 소재의 호러물과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이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저택에 유령이 많다는 설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초반부 교령회에서부터 시작해 푸아로가 세면대에서 유령을 보는 장면 등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들이 많거든요. 주로 탐정과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로 전개되고, 액션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며, 범행이 일어나는 장면도 대체로 숨겨져 있어서 - 범인이 드러나면 안되므로 -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없는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을 텐데,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촬영과 미술도 뛰어납니다. 인물들은 물론 무대가 되는 저택 곳곳의 디테일도 좋고, 모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습니다. 푸아로가 유령을 보고 느낀 이유가 약물에 중독된 탓이며, 이를 통해 과거 알리시아의 죽음이 약물로 인해 벌어진 사고였다는 추리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도 합리적이고, 약물이 들어있는 '꿀'에 대한 묘사가 곳곳에 등장하는 식으로 단서도 공정히 제공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엄마 로웨나였다는 진상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살아남은 등장인물들 앞에서 펼치는 추리쇼도 고전적이면서도 멋있었습니다.

물론 관객이 약물에 대해 알아채는 건 다소 한계가 있고, 로웨나가 오랜 시간 동안 '꿀'을 없애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푸아로가 은퇴하여 은거하고 있던 중이라는 설정도 구태여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고요. 일부 지루한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고전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잘 만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7/14

Q.E.D iff 증명종료 24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24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언제나처럼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편은 일상계, 다른 한 편에는 강력 범죄가 등장한다는 것도 언제나와 같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했고, 설명과 설득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Q.E.D의 또다른 특징인 정보 전달 측면으로는, '내시 균형'은 잘 설명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점수를 주는 부분 등 설명이 완벽하지는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권이 워낙 좋아 기대가 컸는데 아쉽습니다. 요새 몇몇 추리 만화 신예들이 눈에 뜨이는데, 이대로 괜찮을까요? 모쪼록 다음 권에서는 폼을 좀 회복해 주기를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시 균형과 구기대회"
사키사카 고교에서 반 대항 구기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운동부 연습과 겹쳐 혼란이 일어났다. 그 뒤 운동부 비품을 누군가 망가트리고, 구기대회 실행위원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수수께끼의 가면을 쓴 괴인은 마지막 순간에 가나 등의 앞에서 허공으로 사라져버리고 마는데....

제목에서처럼 '내시 균형'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운동부와 학교(구기 대회)측 대립을 내시 균형으로 풀어내는건 재미있었습니다.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학교는 구기 대회를 실행하고, 운동부는 연습장을 넘겨주는 상황에서 내시 균형이 출현한다.
  • 학교는 수고와 트러블이 늘고 운동부는 연습장을 쓰지 못해 양쪽 모두에게 손해이다.
이와는 별개로, 토마의 농구 시합 출전에 대한 내시 균형의 이득 행렬 설명을 통해, 사람의 감정은 계산할 수 없다는걸 드러내는 묘사도 좋았습니다.
가면을 쓴 괴인이 사라지게 한 간단한 트릭도 괜찮았어요. 만화적이기는 한데, 한 번 정도는 잘 써먹을 수 있었다 싶거든요. 현장의 자전거 바퀴 자국같은 증거도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토마의 추리는 비약이 심합니다. 양쪽 모두 손해인데 왜 구기 대회를 실행했는지에 대해서 갑자기 야구부 감독이 술에 취해 이야기했을거라는건 근거가 부족합니다. 연습장 사용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진 장면에서 토마는 함께 있지도 않았고요. 감독이 이때다 싶어 안 쓰는 비품을 부수고 예산을 타낸건 분명한 범죄인데, 가볍게 넘어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번역 문제인지 운동부와 학교 측 이득 행렬 부분이 조금 어렵게 설명되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점수 배정이 토마 마음대로라 공정하지 못한데, 이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7개의 사실"
A건설은 지체되고 있는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컨설턴트 마루모리 유나를 고용했다. 그녀는 거물 의원에게 5천만엔을 몰래 준다는 계획을 내 놓았다. 그러나 비자금이 신문지로 바꿔치기된 후, A건설 사원 미야지는 살해당했다. 또 다른 사원 쥬몬지도 공격받아 결박된 상태였다.
계획의 핵심 인물 미노 부장과 장서 거래로 엮인 토마와 가나는 사장의 부탁으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

토마가 사건의 핵심인 7개의 사실을 나열한 뒤, 이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며 선보이는 추리쇼는 깔끔했습니다.

하지만 전개 과정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처음에 유나가 쥬몬지를 만나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 이유부터 석연치 않습니다. 계획이 탄로나면 누군가 감옥에 가야 하는데, 좋은 대학을 나온 쥬몬지가 적합했다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유나의 신분을 알고 쥬몬지가 먼저 접근했다는 것도 방법이나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고요. 어리숙해보였던 쥬몬지 캐릭터가 갑자기 돈을 훔치고 동료를 죽이는 흉악범으로 돌변한 이유도 석연치 않습니다.
쥬몬지가 미야지를 살해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쥬몬지가 돈을 훔친걸 알아서 협박했기 때문에 죽였다? 어차피 비자금이니 돈을 주고 공범으로 만드는게 이상한 살인극을 벌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사건 당시, 미노 부장의 차가 딱 맞게 도착해서, 그 앞에 뛰어들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유나는 창고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수상하게 여겨 오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장이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온다는 보장은 없어요. 만약 부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토마의 추리가 맞다고 한들, 증거가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미야지가 죽은걸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리 알고 소리쳤다는건 정황 증거에 불과합니다. 불려나간 창고에서 미야지가 먼저 공격받은걸 보았다고 주장했다면, 범행을 입증하는건 불가능했을 거에요.

마지막으로 수학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대신 특이하게도 존 스타인벡의 작품인 "생쥐와 인간"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건과도 별 관계가 없고요. 쥬몬지 캐릭터를 본다면 "생쥐와 인간"이 아니라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 쪽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7/13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 송태욱 : 별점 4점

눈의 황홀 - 6점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송태욱 옮김/바다출판사

'많은 발상가들이 생각의 도구로 사용한 ‘개념’이나 ‘형태’, ‘방법’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을 탐색한 책이다. 다양한 ‘개념’, ‘형태’, ‘방법’ 중에서도 쌍[對]이라는 관념, 속도, 원근법, 나선, 추상 표현, 스트라이프, 콜라주, 레디메이드, 데포르메, 오브제 등 인간의 눈을 현혹해 온 18가지 테마의 기원과 변천을 묻는다. 이 과정에서 마쓰다 유키마사는 비주얼 문화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인류 가치관의 변천이 갖고 있는 놀라운 반전들을 보여 준다.'는 책 소갯글에 혹해서 구입했습니다. 

이러한 개념, 형태, 방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이 강하기는 하지만, 뒷받침되는 근거들이 방대하고 역사적인 깊이도 느껴졌습니다. 자기 주장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데 굉장히 능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궁금했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는 주장들이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가 동서 종교관의 차이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서양의 일신교는 수직 지향이며, 이를 통해 수직선 끝에 한 사람의 신이 있는 소실점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요약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도판, 사료가 많아서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추상 표현을 기차의 도입과 연결시킨 발상도 기발했습니다. 늘 보던 풍경이 기차의 속도로 왜곡되어 보였고, 이를 차창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으로 잘라낸게 추상파의 뿌리일 수 있다는건 생각도 못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크 로스코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디자인 전공자라 '폰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이런 책을 읽었었지요), 폰트와 타이포크라피의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구텐베르크의 좁고 날카로우며 새까만 블랙 레터체(고딕체)는 성서에 위엄과 무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에서는 이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 경멸했던 고트인의 문자(고딕체)라서 거부했고, 고대 로마 서체야말로 로마인에게 어울린다며 '로마체'를 부활시켜 사용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프랑스에서 사용된게 올드 로마체를 대표하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가라몽체' 였고요. 그리고 서체, 타이포그라피 요소만으로 아름다운 지면을 만들어내려 했던 영국의 존 바스커빌이 18세기 모던 로마체를 도입했고, 뒤이어 이탈리아의 보도니가 완성하여 산업 혁명에 적합한, 공업 제품으로서의 활자를 만들어 냈다는군요. 이러한 주장과 함께 문자 레이아웃 디자인의 발전사도 설명해주는데, 지금 보아도 기발한 시도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청각을 시각화한 것의 대표는 '악보'이다, 토기로 끓이는 요리 때문에 주기성-시간 관념-과 재분배에 의한 문명이 생겨났다는 등 한 번 읽어볼만한 주장이 가득하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판도 많아서 시각적 재미와 함께 자료적 가치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최초의 자동판매기 설명과 도판은 이런 책이 아니면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든 자료일테니까요.

대부분 일본 중심으로 동양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는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전문가가 나와주면 좋겠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7/12

교도관의 눈 - 요코야마 히데오 / 허하나 : 별점 2.5점

교도관의 눈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폭스코너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교도관이 주인공인 범죄 추리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종신검시관"처럼요.
그러나 교도관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추리물보다는 일상계 범죄물이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살인이라는 강력 범죄가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가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답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교도관의 눈"
야마테초에서 주부 구타니 에미코를 살해하고 시신을 없앤 혐의로 불륜남 야마노이 가즈마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정황 증거 뿐 물증을 찾지 못해 석방되었다. 그 순간 에미코의 남편 구타니 이치로가 가즈마를 살해하려고 덮쳤지만, 반대로 그가 죽고 말았다. 검찰청은 가즈마를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교도관 곤도는 가즈마가 수상하다는걸 느끼고 조사에 나섰고, 현경 기관지 편집자 에쓰코는 곤도를 만나러왔다가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리는데...

사람을 죽인 범인은 이글대다가도 씻겨 사라지지만, 곤도가 본 야마노이 가즈마는 날이 갈수록 이글거렸습니다. 이를 통해 곤도는 가즈마가 아무도 안 죽였지만, 유치장을 나가서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던걸로 추리했습니다. 에미코는 공범으로, 에미코는 살해된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감췄고요. 그리고 가즈마는 에미코를 폭행하던 남편 이치로를 정당방위로 위장하여 살해했던 겁니다. 가즈마가 날이면 날마다 체력 단련에 열중했던 것도 이 추리를 뒷받침해 줍니다.
비록 이치로가 '식칼'을 들고 덤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던건 - 그리고 그랬다해도 죽일 수 있었으리라 보장할 수 없었던건 - 단점이지만, 추리는 꽤 기발했습니다. 이를 은퇴를 앞둔 교도관이 꿰뚫어 보았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서의 단점으로 이치로를 죽이는데 실패했더라도, 최소한 에미코는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나름 성공한 계획인건 분명하고요.
결국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그리고 이를 젊은 여성인 에미코 시선으로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다만 캐릭터 묘사는 다소 아쉽습니다. 젊은 편집자 에미코와 붙임성없는 나이든 꼰대 곤도 묘사는 전형적이라 식상했기 때문입니다. 에미코에 대한 이런저런 설정도 불필요하다 싶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자서전"
팔리지 않는 방송작가 다다노는 운 좋게 '효도전기'의 회장 효도 고자부로의 자서전 대필을 맡게 되었다. 무려 300만엔짜리 일이었다. 그런데 효도는 자신이 젊었을 때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다다노는 효도가 불륜 관계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여기고 효도를 협박하는데...

알고보니 어머니를 살해한건 아버지였다는 결말입니다.
그런데 효도가 다다노를 챙겨줄까?라고 생각하고 과거의 단편을 살짝 알려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자신 탓에 연인이 죽고 자식이 불행에 빠졌다면, 자식에게는 나중에 금전적 보상을 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가지고 놀 이유는 없어요.
'원망의 말은 합격, 협박은 불합격'이라는 기준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다다노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진실이라 여기고 협박(?)하려 했던건 상식적입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효도는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니까요. 복수를 하지 않으면 뭐라도 얻어내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협박했다고 아웃이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말버릇"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일하는 세키네 유키에는 이번 이혼 조정 신청 당사자인 기쿠타 요시미가 과거 고등학교 시절, 딸 나쓰코의 등교 거부 원인이었던 동급생이었다는걸 알아챘다. 유키에는 과거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요시미의 경멸하던 눈빛, 그리고 나쓰코가 소중히 모았던 저금통이 사라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요시미를 까칠하게 대했다. 그러나 유키에의 말버릇으로 그녀가 누군지 알아챈 요시미에게서 충격적인 진상을 듣게 되었다...

'악의'가 내포된 드라마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특히 여성 내면 심리와 일상 속에서의 복잡한 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쿠다 미쓰요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이 떠오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 특유의 명확한 반전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요시미와 이혼 조정 중인 남편 기쿠타는 고등학교 때부터 커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쓰코가 기쿠타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졌었고, 그 탓에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한 나쓰코는 모든 돈을 긁어모아 중절 수술을 했고, 그 뒤 등교를 거부했었던 것이지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지만, 앞서 단서를 모두 제공해주고 있어서 잘 짜여진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혼 조정 과정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왔고요.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있는 심리 묘사도 돋보입니다.

그러나 요시미가 이미 다른 남자와 불륜 관계인 듯 보이는데 이렇게 당당한건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 상 나쓰코의 시점에서의 묘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
정보관리과 경부 다치하라가 관리하던 S현 경찰 홈페이지가 해킹당했다. 다치하라는 서둘러 페이지를 내리고 복구한 뒤, 방문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입막음을 하러 나섰다. 해고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리 보존을 위해 사건을 없던 것으로 덮으려했지만, 경찰관의 본분과 자신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는다는 작품. 해킹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아 범죄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해커가 올려놓았던 프랑스어 문장을 통해 범인을 알아내는 부분은 추리물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한국인 독자가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단서여서 애매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범죄 수사 과정보다는 주인공의 내면 변화와 성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조용한 집"
현민신보의 기자 출신 편집자 다카나시는 오보를 사과하기 위해 사진작가 스가이를 찾아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해 연락처만 남겼는데, 그날 저녁에 스가이는 전화를 걸어와 정정 기사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열흘 뒤, 스가이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다카나시도 주요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카나시는 그날 자신에게 전화를 건게 스가이가 맞는지 생각해 보는데...

편집부에서 벌어지는 다카나시의 좌충우돌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신문사 내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흥미롭습니다. 여러모로 잔혹한 신문의 세계가 인상적이었어요.
추리물로도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트릭이 많이 허술해 보인다는 겁니다. 스가이의 불륜 상대 남편이 그를 살해한 뒤, 집을 찾아온 다카나시가 남겼던 명함으로 스가이인척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열흘 전 사건이라면 사망시간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알리바이라고 하기는 무리입니다. 경찰이 범인을 특정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요.

그래도 복선과 단서의 배치는 나쁘지 않고, 완성도도 준수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서과의 남자"
지사의 신임을 받는 비서과장 구라우치는 지사의 신뢰가 갑자기 떨어진걸 느꼈다. 새롭게 발탁된 젊은 피 가쓰라기의 수작이라 생각했다. 구라우치는 자신에게 돈을 빌리러 온 뒤 자살했던 무카이의 아내를 만나, 무카이의 동생이 무카이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풀려 투서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질투로 인해 비롯된 일상 속 악의와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말버릇"과 비슷합니다. 차이라면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며, 현재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결말이 훨씬 좋네요.
구라우치에 대한 투서를 올린게 하스네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질투와 악의를 그려내는데 이만한 진상도 또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의 핵심인 무카이와 구라우치의 관계입니다. 구라우치 입장으로는 무카이는 잠깐의 대화밖에는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20만엔'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은 분명 선행입니다. 무카이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이를 다른 사람이 비하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때문에 지사가 '사람을 잘못봤다'며 구라우치를 내치려 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투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약간 부족함이 느껴져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7/10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2) - 이노우에 다케히코 : 별점 3.5점

2022년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였지요. BTS 공연 영상을 보고 싶어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한 김에 감상했습니다.

원작에서도 클라이맥스였던 산왕전과 함께 송태섭이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원작에서는 북산 5인방 중 송태섭 개인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원작자이자 각본, 감독을 맡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의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대신할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었을 겁니다.

산왕전 경기 묘사는 최고였습니다. 속도감, 박진감도 잘 살아있고, 원작의 명장면, 명대사들도 잘 표현되었거든요. 농구 경기 자체에 대한 해석도 탁월했습니다. 송태섭에 대한 전면 압박 수비를 무너트리는 안 선생님의 전략, 채치수의 스크린을 받은 뒤 3점을 쏘는 정대만의 모습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정대만의 4점 플레이도 빼놓을 수 없고요.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스포츠 쟝르물은 경기 장면이 약점이곤 했었는데, 그런 점에서 많은 비교가 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영화를 위해서 새롭게 추가된 송태섭의 서사는 대체로 별로였습니다. 엇나가던 태섭이 죽은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착실한 농구선수로 거듭나며 신왕에 대한 전의를 불태운다는 전개는 너무나 진부했으니까요.
또 원작 팬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도 있습니다. 이 영화만 보는 관객은 멤버들이 누구인지, 이 경기가 무슨 경기이며 왜 중요한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관객 대부분이 원작 팬일테고, 영화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는건 불가능했을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요. 하지만 송태섭 비중이 커지면서 다른 멤버들 비중이 턱없이 줄어든건 원작 팬으로서도 불만스럽습니다. 특히 서태웅의 비중과 묘사는 형편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정대만보다도 활약이 적어서 북산 에이스로 보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마찬가지로 원작 팬을 위해서라면 마지막 서태웅, 강백호의 하이파이브 명장면은 데자키 오사무 스타일로 원작 만화의 한 컷처럼 보여주는게 더 좋았을 테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디즈니 플러스의 사운드 문제였습니다. 때때로 대사가 잘 안 들리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건 좀 개선되면 좋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만족스러울 결과물일이라는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024/07/08

2024 두산 베어스 전반기 감상평

두산 베어스는 지난 주, 우천 취소 1경기를 제외한 롯데와의 2연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았습니다.
첫 경기는 알칸타라 선수가 퇴출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며 초반에 무너졌지만, 상대 선발 박세웅 선수를 공략하며 한 경기 무려 두 개의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대승을 거두었고, 두 번째 경기는 기회에 비하면 득점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의지, 양석환 선수의 홈런으로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곽빈 선수의 투구도 큰 역할을 했지만, 두산 베어스는 중심 타선이 터져야 이길 수 있는 팀입니다. 감상평에서 계속 언급하듯 말이지요.

이후 경기는 휴식기로 갖지 않았으므로 전반기 감상평, 후반기 예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전반기 감상 :
전반기를 요약하자면, "예상보다는 좋았지만, 힘들었다. 더 좋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입니다. 가장 아쉬웠던건 '24년 전망'글에서 안정적이라 예상했던, 외국인 투수 두 명의 이탈이었습니다. 특히 알칸타라 선수는 실적에도 불구하고 빠른 퇴출이 결정될 정도로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새 외국인 타자 라모스 선수 역시 다른 팀 외국인 타자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였고요. 이들만 정상 가동되었더라면, 더 나은 순위에 위치했겠지요.

그래도 다행히 외국인 투수들을 제외한 투수들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곽빈 선수가 투수진 중에서는 전반기 수훈 선수입니다. 국대 선발다운 모습을 보이며 로테이션을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병헌, 최지강, 김택연 선수의 필승조도 좋았습니다. 이영하 선수의 마당쇠 투구도 고마왔고요. 박정수, 김명신, 김강률, 홍건희, 정철원 선수 등도 제 역할을 해 준 편입니다. 신예 최준호, 김동주 선수도 고생했습니다. 이들이 두산을 3위에 자리잡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타선은 좋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거액 FA 계약자들인 양의지, 김재환, 양석환 선수의 중심 타선은 눈에 보이는 성적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투자한 돈에 비하면 성에 차는 성적은 아닙니다. 양의지 선수는 장타가, 양석환 선수는 타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김재환 선수는 정말이지 이도저도 아니고요. 시즌 중반으로 갈 수록 체력 문제인지 성적도 점점 떨어져 가는 상황입니다. 유격수 포지션은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외야 주전으로 자주 나섰던 조수행 선수는 도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WAR가 음수를 기록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생산성있는 타격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초반 강승호, 허경민 선수의 분전은 돋보였습니다.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기는 하지만요. FA로이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강승호 선수가 특히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야수 중에서는 전반기 최고의 선수로 꼽겠습니다. 거의 전경기를 출장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두산 베어스의 후반기 예상, 기대 :
후반기가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데, 새 외국인 투수 발라조빅과 브랜든 선수의 대체 선수(시라카와?)가 투입될 예정이라는건 다행입니다. 이를 통해 선발진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고, 불펜진 운용도 다소 숨통이 트일겁니다. 최승용 선수도 실전 투입 된다니, 지금보다는 나빠질 수 없을테지요. 외국인 투수 두 명이 퀄리티 스타터로서의 역할만 해 준다면, 계투진이 건재하니 더 나은 순위도 꿈은 아닙니다.

다만 후반기에도 타선 문제는 여전할 겁니다. 중심 타선이 터져주지 않는다면요. 특히 최근 장타가 실종된 김재환 선수가 키 플레이어라 생각됩니다. 양의지 선수는 어쨌건 타점은 생산하고 있고, 양석환 선수는 확 터지는 경기가 있는 반면 김재환 선수의 침묵은 너무 오래가고 있는데, 후반기에도 이런 모습이라면 선발 투입도 재고해야 합니다. 더 이상 2군에서는 보여줄게 없는 홍성호 선수를 투입해 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전반기에 내야에 전민재, 외야의 전다민 선수와 같은 새 얼굴을 계속 발굴해가는건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타선을 극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만한 선수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쟁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법입니다.

김재환 선수가 살아난다면, 아니면 다른 선수들이 조금 더 힘을 내 준다면 2위까지는 기대해 봅직합니다. 물론 3위를 유지하는게 현실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순위가 어떻게 되건, 부상 선수없이 무리하지말고, 가을까지 잘 달려주기만을 바랍니다. 

그럼 후반기에도 화이팅! 허슬~두!

2024/07/07

이브의 대관람차 - 유우야 토시오 / 김진환 : 별점 1.5점

이브의 대관람차 - 4점
유우야 토시오 지음, 김진환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직 경찰관 나카야마 히데오는 이혼 후 전처가 키우던 딸 린과 오랫만에 만났다. 화제가 되고 있는 대관람차인 '드림아이' 탑승권이 당첨되어 함께 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드림아이는 '난장이'라는 괴한에게 통제권을 탈취당했고, 탑승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난장이는 나카야마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경찰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나카야마는 드림아이 테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카이자키와 연락을 시작했다. 사실 나카야마와 카이자키는 경찰학교 동기이자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으로 멀어진 사이였다.
곤돌라가 연이어 떨어지고, 범인의 8엔억 요구 등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지면 결국 드림아이 통제권을 회수하여 남은 승객들을 구출하고 범인을 체포했다. 범인은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 때문에 이 테러 사건을 계획했었다....


일본 신인 작가의 데뷰작품. 버티고 레이블에서 일본 작품으로 소개되는 첫 번째 작품이라 호기심을 자아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천재적(?)인 범인이 장교하게 설계한 범죄에 맞서, 탐정역의 주인공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걸고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두뇌 배틀 장르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르물이 성공하려면 범인의 도전적인 계획과 이를 막기 위한 주인공의 두뇌 싸움이 탄탄하게 연결돼야 합니다. 또한 범인의 동기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과정도 타당성 있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범인이 그런 행동을 취한 이유도 제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영화 "스피드"를 보자면 범인은 버스 속도계와 연동된 폭탄으로 거액을 요구합니다. 구출 시도는 CCTV로 감시하며 대응하고요. 범인의 정체는 FBI 수사로 나름 그럴듯하게 밝혀집니다. 동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런 요소들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드림아이의 장악과 곤돌라를 떨어트린 범행부터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드림아이의 제어권을 아르바이트생이 훔친 카드키 입력만으로 빼앗을 수 있는 점부터 이상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복수의 관리자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곤돌라를 어떻게 떨어트렸는지, 통신망에 어떻게 장애를 일으켰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범인 중 한 명인 타키구치가 공대생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범인들의 몸값 요구도 매우 이상합니다. 후카가 죽은건 제국부동산 비자금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범인 카나모리가 체포되지 않은건, 제국부동산으로부터 돈을 받은 카이자키가 증거 인멸을 하며 그를 보호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범인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진범이 카나모리라는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설명이 없고요. 만약  이들 모두를 알고 있다면, 대관람차로 다른 피해자들을 불러모을 까닭도 없습니다. 핵심 원흉과 범인에게는 손도 대지 않고 단순 방관자들에게만 지옥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또 범인들이 제국부동산의 비자금을 폭로할 이유, 비자금 관리자 미야우치를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야우치는 후카 사건과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인물이었으니까요. 범인들은 그냥 무작정 살인을 저질렀다는건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비자금 위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조부모와 언니가 동생의 죽음으로 이런 거대한 테러를 벌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고, 조부모가 언니를 끌어들인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죽은 손녀를 위한 복수로 산 손녀를 살인범으로 만든다는게 말이 될리가 없잖아요?

카이자키가 후카 사건에서 정액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남겼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증거를 인멸하려면 시신을 불태워버렸어야죠. 어설픈 처리로 시간만 낭비한데다가, 제국 부동산 비자금을 맡았던 카츠라기가 누명을 쓰고 죽게 만들었고, 카츠라기가 나카야마에게 했던 증언으로 꼬리마저 밟히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허술함은 작 중 냉정하고 뱀같이 묘사되는 카이자키 분위기와도 맞지 않습니다.
후카 살인 사건의 진범이 카나모리라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 아무런 단서를 제공해주지 않는 탓입니다. 너무 뜬금없어서 황당할 지경이었어요.

다른 설정과 전개도 이해가 되지 않는게 많습니다. 나카야마가 카츠라기의 증언을 숨기고 경찰을 떠나고 이혼까지 했다는 과거가 대표적입니다. 나카야마가 의심을 받아서 그만 두었나?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약간 수상하다는 것만 묘사될 뿐입니다. 별도의 조사나 수사도 받지 않았고요. 내사를 받은건 후카 사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카이지키를 범인이라고 고발해서 경찰 내 공공의 적이 되었나? 아닙니다. 카이자키는 용의선상에 오른 적도 없습니다. 나카야마가 당시 카이자키를 봤을 때 몸이 젖어 있었다(긴 시간 동안 증거를 인멸하느라)는 정도로는 고발도 불가능했을테고요. 
관할 내 친했던 소녀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에 가책을 느껴 경찰을 그만 두었다는 정도가 말이 되는 설명인데, 이 정도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이혼까지 하는건 말이 안되지요. 카이자키가 지속적으로 나카야마를 범인으로 몰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요.
나카야마가 사건을 미리 예지한다던가, 편집증같이 계획을 짜는데 몰입한다는 등의 설정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름이 '나카야마 히데오'라는게 좀 재미있었던 정도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에서 따왔겠지요?

괜찮은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대관람차를 탈취한다는 설정은 꽤 기발했고, 놀이공원을 찾은 손님들이 관객이 되어 피해자들을 바라보게 한 이유가 동기와 연결되는 - 후카를 방조한 피해자들 - 건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범인 난쟁이가 드림아이 곤돌라 중 하나에 탑승했다는걸 밝혀내는건 좋았어요. 곤돌라 승객들은 핸드폰을 버리게 한 탓에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시계탑 시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쟁이가 정해진 시간보다 전화를 늦게 걸어서 위치가 탄로나게 됩니다. 경찰이 시계탑 시계를 늦춰 놓있기 때문입니다. 범인 시계가 망가진 이유도 복선으로 제시해 주고 있고요.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인기있을만한 소재만 잔뜩 끌어와서 어설프게 조립한 치기어린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7/06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재판 이야기 - 장보람 : 별점 2.5점


딸아이 논술용 교재인 청소년용 법 관련 미시사 서적. 제목 그대로 어떤 식으로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12개의 재판에 대해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재판 및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크라테스의 재판 : 다수결이 과연 옳은 것인지?
  2. 토머스 모어의 재판 : 현행 법과 어긋나더라도, 옳은 양심을 처벌할 수 있는가?
  3. 세일럼 마녀 재판 :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타인을 비방하는 것에 대한 문제
  4. 드레퓌스 재판 : 억울한 상황에서는 여론의 힘도 중요하다
  5. 2차 대전 전범 재판 : 전쟁에서 일어났던 범죄를 어떻게, 그리고 왜 처벌해야 하는가?
  6. 로자 파크스 재판 : 인종 차별 악법 없애기
  7. 미란다 재판 : 법에서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8. 제인 로 재판 : 낙태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9. 워터게이트 재판 : 대통령도 탄핵될 수 있다
  10. 카렌 앤 퀸란 재판 :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
  11.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 : 부도덕한 기업과 싸우는 방법
  12. 벌링턴 산업 재판 : 성희롱은 기업도 책임져야 한다.
주요 쟁점들 모두 한 번 생각해볼만한 것들이며, 과거 사례를 현대에 빗대어 현대 재판 설명도 곁들여 주고 있는게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형사 소송과 민사 소송의 차이라던가 3심 재판의 기능 및 조건, 중재 등 여러가지 현대 법률 용어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란다 재판 이야기에서처럼 국내 판례를 예시로 들어주는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고 강제 연행하여 음주 측정을 한 결과는 위법한 수사이므로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를 통해 '공권력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는걸 알려주는데, 범죄임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이런 한계를 두는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생기네요.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을 통해 중재 절차에 대해 알게된 것도 수확입니다. 법원의 판결 없이 당사자들끼리 합의하여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걸 그동안은 잘 몰랐었거든요. 이런 방식은 크게 조정과 중재가 있는데 조정은 당사자 한쪽 또는 양쪽이 요청해 제3자를 조정자로 선임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 중재는 반드시 '쌍방이 요청'한 후 중재인이 판정하면 양 당사자 동의 없이 바로 받아들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나라도 민사 조정 신청 절차가 별도로 있고, 소송 비용도 1/10이라고 하니 필요하다면 적극 고려해봐야 겠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재판보다는 재판 관련 상황에 더 촛점이 맞추어진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대표적인게 드레퓌스 재판입니다. 이는 누명을 쓰게된 상황, 판결을 받은 뒤 벌어진 일련의 과정 등이 재판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재판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워요. '인종 차별', '낙태권', '존엄사' 등도 해당 이슈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재판'이라는 수단으로 설명할 뿐입니다. 
또한 절반 이상의 내용이 현대가 무대라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역사'를 바꾼 재판이라면 과거 이야기부터 소급해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현대 재판을 가지고 설명하더라도, 미국 사건만 가지고 온 것도 불만스럽고요. 재판들도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주었어야 했습니다. '벌링턴 산업 재판'이 여기 사건들과 어깨를 나란히할만한 사건인지는 솔직히 갸우뚱합니다.
소크라테스 재판 이야기에서 '다수결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답이 없이 다른 법적 이론 - 시민 불복종, 저항권 - 을 설명하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저런 이슈를 한번 쯤 고민해봐야 하는 청소년이라면 모를까, 제 기대에는 별로 값하지 못했습니다.

2024/07/05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정재승 : 별점 3.5점

일상과 과학 이론을 연결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학에 관련된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수학은 물론, 작가의 전공 분야인 물리학에다가 심리학, 건축학 등 많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예시와 쉬운 설명을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게 해 준다는 특징도 있고요. 토스트를 떨어트렸을 때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떨어지는건 토스트가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운터에 줄을 섰을 때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드는 이유는 1/n이므로 어떤 줄을 선택하든 다른 줄 중 하나가 먼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으로 머피의 범칙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건 재수의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지프의 법칙과 파레토의 법칙을 통해 실제 우리 생활에 멱법칙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인간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는데 꽤 그럴듯했어요. '진부하다는건 남들도 많이 썼다는 뜻인데, 남들이 많이 썼다는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는 제가 일하는 바닥(?) 격언과도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추리 애호가로서는 O.J.심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피해자 측이 평소 O.J. 심슨이 아내를 때리고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자, 심슨의 변호사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 남편에 의해 살해된 경우는 0.1퍼센트도 안된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심슨이 아내를 때린건 아내를 살해했을 가능성과 별 관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심슨 사건에서는 실제로 아내가 죽었습니다. 매 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평소 그녀를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은 80%가 넘고요. 전형적인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건축과 인간 심리를 연결하여 파헤친 쇼핑의 과학이라던가, 소음과 뇌파에 대한 이야기들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천장이 높은 건물에서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이론도 기억해 둘 만 하겠더라고요. 천장이 끝없이 높게 만들어진 오래전 교회 건축물에서 영적 체험이 잦은 이유도 비슷한 이유가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내용 모두가 이해하기 쉬웠던건 아니었으며,  몬티홀 문제,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정교한 자연의 패턴(카오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이야기 등은 다른 책들에서 많이 다뤄진 내용들이라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걸까?"와 똑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프랙털 음악으로 히트곡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QR코드를 활용하여 직접 샘플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장기간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 해외에 번역 출간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07/03

테라코타 전사들의 수수께끼 (2024) : 별점 4점

넷플릭스에 올라온 신작 다큐멘터리. 관련 책도 몇 권 읽어보았을 정도로 진시황릉을 다룬 이야기는 좋아하기에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청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미국인들의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거리 발굴에 그치는게 아닐까?', 진시황릉에 집중한 관광 홍보물같은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진시황릉 자체보다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진시황릉 주변 발굴 결과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우선 황릉과 그 주변 조사를 통해 심각한 인위적 훼손이 있었다는걸 알려줍니다. '테라코타 전사들'이 모두 부서지고 흩어진채 강한 불길에 휩싸였었고, 주변 건축물들 위치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너지고 불탄 흔적들이 발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클라이막스는 황릉 근처에서 발굴된, 크고 제대로 된 무덤의 주인이 누구냐는 조사입니다. 진시황 사후 1년 남짓한 기간에 매장되었는데 과연 누구였을까요? 호해를 제외한 황족들은 대부분 참살당했고, 유명한 장군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이런 점에서 이 다큐는 역사 추리물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여기에 더해 당시를 충실히 재현한 드라마가 함께 펼쳐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호해와 조고는 다른 관련 그 어떤 영상물보다도 잘 어울려보였어요.
다큐스러운 부분도 놓치지는 않습니다. 황릉 주변에서 발굴된 유골로 당시 후궁들이 사체가 토막난 잔혹한 형태로 순장당했다는 것, 왕자와 공주들도 떼죽음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식으로요.

하지만 다큐로서의 한계도 명백한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 그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인 황릉을 덮친 인위적인 재해가 무엇이었는지?부터 본다면, 이는 당연히 항우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의 파괴 행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란군에게 수도가 점령당한 뒤 3개월 동안 불탔다는 역사적인 기록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큐에서는 가능성 정도만 언급하며, 명확한 답은 피하고 있습니다.
황릉 근처 무덤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큐에서는 "사기"에서 언급되었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황릉 근처 매장을 허락받은 '고 황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합니다. 발굴된 치아로 주인공이 20대 청년임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고요. 그러나 다큐에서는 훼손이 심해 복원과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릴 관을 통째로 연구실로 옮기는 장면으로 마무리될 뿐입니다. 추후 관에서 인장같은 증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속 시원하게 답을 내 주지는 않아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깊은 흥미를 자아내는 좋은 시청 경험이었습니다.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7/02

알라딘 25주년 기념 당신의 기록 영수증

알라딘이 25주년을 맞아 영수증 형태로 이용 기록을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번 해 보니, 그동안의 기록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처음 구입했던 책, 여태까지 산 책, 결제했던 총 금액 등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의외였던건 처음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한게 2002년 7월 30일이라는 겁니다. 알라딘 서비스가 시작된 2001년부터 이용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여튼, 알라딘 이용자시라면 놓치지말고 진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4/07/01

06.25 ~ 06.30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한화 - SSG 원정 / 홈 6연전
성적 : 2승 4패

좋았던 점
  • 돌아온 곽빈 선수
  • 두 게임 9와 1/3 이닝 5실점, 최원준 선수는 선녀였다.

나빴던 점
  • 타선, 그 중에서도 먹튀의 길로 가는 중인 중심 타선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두 시리즈 연속 루징으로 2승 4패라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외국인 투수 두 명 모두 부상과 부진으로 없다시피한 상황이라 불리했지만, 상대 팀들도 에이스가 등판하지는 않았습니다. 최준호, 김동주 두 대체 선발이 초반부터 대량 실점한 두 경기를 빼면 박빙의 승부를 펼치기도 했고요.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곽빈 선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중간 계투진들도 실점은 했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며 초반 홈런 등으로 6실점했음에도, 7이닝 완투(우천으로 인한)를 보여준 김동주 선수도 빛났습니다. 부진했어도 투수진은 욕하기 힘듭니다. (알칸타라 선수 제외)

그러나 타선은 긍정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중심 타선 타자들의 부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진 경기만 따지면 양의지 선수는 12타수 2안타, 김재환 14타수 4안타, 양석환 13타수 4안타, 라모스 선수 8타수 1안타, 강승호 선수 14타수 2안타 등이고, 장타를 치지도 못하니 도저히 게임을 이길 수가 없네요. 대체 자원도 마땅치 않습니다. 반짝했던 이유찬, 전민재, 조수행 선수 등의 타격감도 땅을 뚫고 내려가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우천 취소라도 되어서 재정비할 시간이라도 벌었어야 했는데, 교묘하게 비를 피해가며 6경기 모두를 소화한 것도 불운입니다. 올 시즌 최다 경기 팀 답습니다.

다행히 차주는 롯데와의 홈 3연전 이후 올스타 브레이크입니다. 재정비할 시간은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선 롯데와의 3연전을 잘 넘겨야 하는데, 전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롯데는 주말 우천 취소로 선수들이 휴식을 취했고, 최근 상승세도 무섭습니다. 두산은 아마도 알칸타라, 최준호, 곽빈 선수의 선발진이 나서겠지만 이들 모두 최근 모습으로는 상수로 보기 힘듭니다. 타선은 위에서 설명드렸듯 최악이며, 갑자기 튀어나올 만한 선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1승 2패로 스윕만을 면하기를 바라봅니다. 장마가 예정되어 있는데, 차라리 우천 취소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비야 내려라! 허슬~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