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3/08/31

옛 추억 전파과학사 문고

갑자기 생각나서 구하게 된 전파과학사의 "과학사의 뒷얘기" 4종 세트. 찾아보니 아직 절판되지 않고 건재하더군요. 제가 여태까지 읽었었던 비슷한 과학야사류의 책 중에서는 단연컨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생각난 김에 4종 세트 전체를 과감하게 질렀습니다.

그런데 배송된 책을 보니 인쇄의 질 등 책의 완성도에 비하면 권당 8천 원이라는 가격이 다소 과한 느낌입니다. 폰트도 옛날 타자기로 친 듯한 뭉개진 글씨라 가독성도 떨어지고, 종이질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책 자체가 20~30여 년 전 세상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랄까요? 심지어 표지는 20~30년 전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되기까지 하고요.

다시 읽어봐도 내용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e-book으로 읽는 게 더 적합한 콘텐츠로 보입니다.

물론 당분간 옛 추억에 빠져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별점을 몇 점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지만, 궁금했던 다른 책들도 사야 할지는 좀 고민되네요. 전파과학사 책에 향수를 가지고 계신 저와 같은 분들이 또 계신지 궁금해집니다.

2013/08/29

너클볼! - 리키 스턴 외 (2012)

"다음에 던질 공이 내 인생 최고의 공이라고 생각하고 던져라"

보스턴의 팀 웨이크필드가 통산 200승을 거두는 이야기를 축으로 여러 너클볼러가 등장하여 너클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야말로 너클볼을 위한 다큐멘터리.

국내에서는 마일영 선수가 잠깐 던져서(근데 사실인가요?) 화제가 되었을 뿐, 실전에서 보기 어려운 구종이지요. 전 LG의 김경태 선수가 던졌다고는 하지만 저는 중계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잘만 익히면 어깨를 그다지 혹사하지 않으므로 롱런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투구 메커니즘과 너무 달라 제대로 익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 다큐에서는 너클볼에 대해 선수들이 일종의 '사기'와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힘든 점이 있다고도 하니,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구종이더군요.

어쨌거나 다큐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타자 유망주였던 팀 웨이크필드가 투수로 전향하여 너클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만, 바로 몰락한 뒤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어 다시 재기하는 과정. R.A 디키가 미국 국가대표로까지 선발되며 승승장구하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팔의 심각한 이상이 발견된 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너클볼을 연마하는 과정.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지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거든요.

중간중간에 좀 지루한 부분이 있고, 팀 웨이크필드와 R.A 디키의 이야기가 다소 두서없이 전개되는 느낌은 있지만, 야구팬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늘 고양 원더스의 허민 구단주가 너클볼을 익혀 미국 독립리그 입단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떴더군요. 뭐, 건투를 빌겠습니다.

2013/08/27

의뢰한 일 - 호시 신이치 / 지식여행 : 별점 2점

의뢰한 일 - 4점
호시 신이치 지음/지식여행

휴가 마지막 날, 짧은 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선택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플라시보 시리즈로 간행된 것 중 한 권입니다.

짧은 시간 읽기에는 적당했는데, 그다지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장점인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은 그대로지만, 단점인 유사한 분위기와 설정의 작품이 너무 많았던 탓입니다. 기대했던 특유의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반전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요. 다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별로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역시 이 작가의 최고작은 "봇코짱"이 맞는 듯싶습니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라면 아래와 같습니다.

"방지대책"

멸종을 막기 위한 거창한 사상과 노력이 설명되더니, 그 노력이 무좀균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기상천외한 반전이 인상적인 소품.

"알리바이"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살인 혐의를 받으나 바로 풀려난다. 이유는 그의 외모를 그가 홀로 방문했던 곳의 모든 낯선 사람들이 기억했기 때문. 행운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얼굴이라면 차라리 형무소에 들어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청년의 고민으로 마무리되는데, 작가 특유의 기발하면서도 서늘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외곽단체"

정부기관이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나쁜 짓은 외곽의 가짜 단체가 저지른 일이라고 발표하며 빠져나간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 이 ‘다크 아스피린 그룹’이라는 가짜 단체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우수한 고급 관료 한 명을 그들의 음모로 인한 자살로 위장해 죽인다는 아이디어로 끝나는데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에요. “추첨을 합시다. 저는 발안자이니 빠지도록 하지요.” 꼭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같은 결말이죠?

2013/08/26

일본의 검은 안개 (하)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난 : 별점 3점

일본의 검은 안개 - 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상권을 읽었으니 하권을 안 읽을 수는 없죠. 반쯤은 의무감으로 읽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상권과 마찬가지로 반세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 이국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제국은행 사건"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은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도 6.25에 대해 다룬 "그들의 이상한 전쟁"은 우리에게도 확 와닿는 주제며 내용이기에 상권보다는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결론내리자면 전체 별점은 3점. "그들의 이상한 전쟁" 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수록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7장 열여섯 잔의 독배 - 제국은행 사건의 수수께끼

괴한이 은행 직원들에게 전염병 예방약이라고 속이고 독약을 먹인 뒤 현금을 가지고 사라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지요. 저자는 범인으로 발표된 화가는 단지 희생양일 뿐, 진범은 세균부대 출신으로 GHQ에 속한 인물일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근거도 탄탄하여 설득력이 높고요. 전체적인 전개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느껴져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추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것에 불과했다는건 좀 맥이 빠집니다. 이 논픽션의 가장 큰 테마인 미군정의 모략으로 인한 사건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현실적이지만, 현실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8장 소설가인가 스파이인가 - 가지 와타루 사건

소설가 가지 와타루가 미군정에 납치되어 1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을 다룹니다. 결국 누군가의 모함이 원인이었고, 목숨을 건진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내용인데 현실적이기는 하나, 재미는 없었습니다. 수십 년간의 독재정권을 거친 우리가 보기에는 별다를 것 없는,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내용일 뿐이었으니까요.

허나 반세기 전 일본에서조차 이런 일이 큰 사건이 되었는데, 지금 우리 현실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네요.

10장 다이아몬드를 사랑한 사람들 - 정복자와 다이아몬드

전쟁 당시 일본이 모았던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가 사라진 경위를 파헤치는 내용.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서 약 62만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확보했지만 전쟁 후 남은 것은 16만 캐럿에 불과했다는 사건의 진상을 추적합니다. 점령군인 미군과 일본의 정치 권력 쪽으로 은닉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결말로 이어지고요.

사실 일본의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구전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고종의 독립운동을 위한 황금"도 이와 비슷하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중간에 언급되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슈가 독립운동 자금을 가지고 소련으로 향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보슈의 트렁크 사건도 흥미로웠고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논픽션을 써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이쯤 되면 완벽한 본말전도네요...

12장 그들의 이상한 전쟁 - 모략 한국전쟁

6.25에 대한 이야기. 일단 서두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여 위기에 처한 이승만 정부의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부터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돌직구를 날리는 책은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전쟁의 진행 과정을 묘사하면서, 북한군의 뛰어난 유격 전투 능력과 실제 남한 주민의 협조를 언급하며 "이 전쟁은 미군이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방조한 것"이라는 식으로 서술합니다.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의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 되었다"라고 말한 미군 사령관 밴 플리트의 말이 진실의 모든 것이겠지요.

전쟁이 확대된 것은 남한군의 무능과 북한군의 실력 탓이었다는 점, 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북한군의 전과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을 중심으로 한 극동 아시아의 세력 관계라든가, 맥아더의 중국 진출론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고요.

한마디로 추천작. 이 책이 아니라 논픽션 전체를 놓고 보아도 손에 꼽을 만한, 그야말로 논픽션의 명편입니다.

2013/08/25

싱글즈 8월호. 기사 등장

여름밤, 추리소설 부둥켜안고

8월호로 이제 과월호가 되었고 웹에도 공개되었기에 소개드립니다.

여름 특집 추리소설 추천작 모음인데, 쟁쟁한 추리 전문가 여러분들의 틈바구니에 제 짤막한 글도, 창피하지만 실려 있는 기사예요.

제 원문을 잘 요약해 주시기는 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가 작성할 때 있었던 제목이 빠진 점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별로였지만 원작은 아주아주 괜찮았던" 그런 작품들을 추천하려는 것이 의도이자 테마였는데, 제목이 빠지니 그게 잘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추천하신 작품 중 미처 읽지 못한 작품도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2013/08/23

최후의 일구 - 시마다 소지 / 현정수 : 별점 2점

최후의 일구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블루엘리펀트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타라이는 한 청년으로부터 어머니의 자살기도 이유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였다. 조사 결과, 청년의 어머니 요시코는 전남편의 연대보증 탓에 도토쿠론이라는 악덕 금융업체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타라이도 어쩔 수 없어 단지 자살 방지를 위해 가짜 부적을 그려줄 뿐이었다. 그런데 요시코가 다음날 미타라이를 찾아와 감사를 표한다. 이유는 대부업체 빌딩 옥상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은 미타라이는 화재 현장 조사에 나서는데...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야구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선택해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미타라이가 한 미용사의 어머니 자살 소동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는 약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의 초반부, 악덕 금융 사기업체 도토쿠론에서 일어난 의문의 방화를 다룬 중반부, 그리고 청년의 1인칭 수기로 이루어진 후반부로요.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케타니 료지의 수기를 통해 전개되는 야구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도토쿠론의 사기 행각으로 아버지가 자살한 뒤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고등학교까지 선수로 버티지만,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프로 지명도 받지 못한 뒤 사회인 야구팀에서 뛰게 되고, 야구팀의 해체 이후 천재 다케치 덕분에 요코하마 매리너스에 입단하여 다케치의 배팅볼 투수로 살아가다가 다케치의 야구도박 파문 이후 야구를 그만두기까지의 이야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한 편의 그럴듯한 야구 소설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일단 다케치가 야구도박에 응해 승부 조작을 벌이는 동기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타격 3관왕을 바라보는 프로 2년 차 천재 신인이, 고작 1억 엔 정도의 금액 때문에, 그것도 사기로 떠안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승부 조작을 벌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공론화하거나, 아니면 FA가 될 때까지 버티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이잖아요.

트릭이 스포일러라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뻔하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작위적인 것이라는 점도 불만입니다. 아무도 없는 밀실 같은 옥상에서 일어난 화재,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안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경구,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꽃병... 이들을 조합하면 화재의 방법이야 모르더라도 상황을 추리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니까요.

20미터 떨어진 곳의 작은 꽃병을 야구공으로 던져 맞춘다는 것의 설득력이야 그렇다 쳐도, 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모를 꽃병에서 뿌려진 물이 생석회에 반응해서 화재를 일으킨다는 것도 별로 있음직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석회가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었나? 차라리 생수병 몇 개를 사다가 던지는 게 더 효율적이고 빨랐을 텐데, 다케치가 왜 총질을 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꽤 효과적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카빈 → 카빙(꽃병)’은 그냥 말장난에 불과했고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솔직히 미타라이의 등장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야구와 추리의 결합도 그다지 효과적이라 보기 어려운 평범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야구소설로 읽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네요.

덧붙이자면, 구속이 140을 넘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력을 갖췄다는 다케타니의 묘사는 일본에서는 2군 배팅볼 투수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오면 충분히 중간 계투로 한몫할 수 있는 능력자로 보이더군요. 제 응원팀인 두산에 온다면 필승조도 너끈할지도...

2013/08/22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 슈테판 하르보르트 / 김희상 : 별점 3점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 6점
슈테판 하르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알마

독일 여성 살인범에 대한 논픽션으로, 여러 여성 살인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녀들이 저지른 범죄에서부터 재판 과정과 그 결과, 범죄를 저지른 이유까지 모두 분석하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건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침묵, 그리고 살인"에서 다루고 있는, 아이 아홉 명을 낳자마자 죽인 수잔네 헤흐트 사건입니다. 아홉 명이나 죽일 때까지 주위 사람들이 몰랐다는(또는 모른 척했다는) 내용도 충격적이나, 분석한 살인의 동기 또한 충격적이에요. 가장 큰 동기는 원치 않은 첫째의 임신이었습니다. 임신을 꼭꼭 담아두고 삭히다가 어른들이 알아차리고 나서야 수습되었으며, 이런 경험은 자신이 실패한 것의 책임을 늘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주변 환경을 탓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됩니다.
왜 피임을 하지 않았으며 왜 낙태를 하지 않았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위의 이유로 무작정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기다렸다고 해석하네요. 만약 원했던 도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죽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배 속에 품고 산 아이에게 어떻게 모성애가 없을 수가 있냐는 당연한 의문에는, 모성애는 출산 이후 만들어지는 것이 크다고 답합니다. 출산 후의 기쁨과 아이 키우기의 고통이라는 부정적 효과 중, 부정적 효과는 원치 않는 아기를 낳았을 때 생기며 자기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미숙한 인격에 살가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여성에게 원치 않는 아기는 처분과 처치의 대상일 뿐이라고 하네요.
몇 년 전 서래마을 냉동실에서 발견된 영아 사체를 둘러싼 사건이 떠오르기도 해서 더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여성 살인범의 전형이라는 "블루베리 마리", 간호사 연쇄살인을 다룬 "죽음의 천사" 등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3점. 분석이 많고 조금 지루하다는 단점으로 감점하였으나, 이런 류의 논픽션을 좋아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단, 동기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는 부분은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네요.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인지가 더 관심거리인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제게는 "호" 쪽이었습니다만...

그나저나 독일은 유달리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 듯한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2013/08/21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시마다 소지 / 이연승 : 별점 2.5점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이연승 옮김/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즈코라는 여성이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사에 의해, 살해 추정 시각 이후에, 지즈코는 도쿄에서 출발하는 침대특급 하야부사에서 목격되고 사진까지 찍혔다는게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하는 요시키 형사는 일본을 종단하며 사건의 해결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지즈코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 알아내는데...

그간 격조했네요. 이번 회사에 입사한 이후 가장 긴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 작품은 미타라이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시리즈 캐릭터 요시키 형사 시리즈입니다. 딱히 취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작가인데, 제목을 볼 때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물로 생각되어 휴가 중 읽을거리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이 장르,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읽어보니 단순한 알리바이 트릭물은 아니더군요. 9시 37분에 나고야에 도착하는 하야부사가 겨우 6분의 차이로 마지막 상경 신칸센을 도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게다가 승객의 대다수가 슬슬 잠자리에 드는 시각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1인 침대 객실까지 달린 블루트레인이라는 것을 이용한 전형적인 알리바이 트릭으로 시작하지만, 알리바이를 계획한 지즈코가 되려 살해당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마다 소지의 야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마츠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이치, 니시무라 교타로 같은 선배들과는 다른, 뻔한 기차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러나 야심은 컸으나 문제도 역시 큽니다. 먼저 지즈코의 동기는 딱히 와닿지 않아요. 어머니와 두 자매를 모두 농락한 소메야는 죽어도 싼 놈이기는 하나, 이렇게 복잡한 트릭까지 써가며 살인을 계획하느니 공론화시켜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게 일반적인 방향이겠죠.

게다가 이후 소메야의 행동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즈코의 얼굴 피부를 벗긴 이유입니다. 시체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 행위로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덕분에 쌍둥이설 같은 곁가지 추리만 난무하며 작품만 쓸데없이 길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소메야가 정말로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지즈코의 알리바이 트릭을 한 번에 간파했다면, 그래서 준코를 이용하여 지즈코의 행적을 남길 의도였다면, 본인의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한 다음에 지즈코의 시체를 철저하게 은닉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행 중 실종,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높잖아요?

마지막의 진상과 약간의 반전은 그야말로 작위적인 추리쇼에 불과해서 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쇼를 벌인 이유가 철저하게 집을 수색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였고 말이죠.

그래도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철도 시간표를 철저하게 연구한 알리바이 트릭은 교과서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입니다. 이후의 작위적인 전개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고요.

일본을 거의 종단하다시피하면서 사건을 추적하는 요시키의 모습에서, 니시무라 교타로의 아사미 미츠히코로 대표되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많이 나는 것도 괜찮았어요. 도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여정 미스터리가 되는 과정이 신기한데,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각 지역의 형사들과 연계하여 단서를 얻어가며 수사하는 장면에서의 고전적인 형사물 분위기 역시 좋았고요.

덧붙이자면, 비인간적으로 여겨지는 미타라이보다는 출중한 외모 외에는 평범한 형사로 보이는 요시키 형사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작위적인 부분은 아쉬우나 읽는 재미는 충분했어요. 더운 여름 읽을거리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추리물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08/14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구마 겐고 외 / 권은희 : 별점 2.5점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6점
구마 겐고 외 지음, 권은희 옮김/까치

건물 하나당 한 장 분량의 짤막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전편에 이어지는 건축물 관련 서적. 몰랐는데 아사히 신문 연재 컬럼이라고 하네요.

이 책의 장점은 아주 확실합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진이 굉장히 멋지다는 점이죠. 글들은 4명의 작가가 나누어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나 기묘함만을 설명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그 건축물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보는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일본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이 제법 있다는 정보는 솔깃했고요. 여행 갔을 때 좀 알고 돌아볼걸...

그러나 건축물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 전편보다 참신함과 재미가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정보 부족의 경우, 이 책을 사진과 함께 하는 일종의 건축물에 대한 감상 중심의 에세이로 규정한다면 단점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두 번째 단점은 심각합니다. 에펠탑이나 런던의 유리 달걀 같은 관광지화된 유명 유적에다가 가우디, 르 코르뷔지에, 반 데어 로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의 대표작들은 이런저런 다른 매체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것들로, 이 책의 제목인 "불가사의한"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아트북 같은 책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만 전편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에 든 건축물들을 몇 개 꼽아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카이딘 황릉

베트남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 바로 직전의 황제인 카이딘 황제의 능. 철근 콘크리트와 가우디 취향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지만 슬프고 품위가 없는 분위기라는 기묘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긴타이쿄

그야말로 우키요에의 풍경 그림 같은 독특한 다리.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번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르세 미술관

1970년대 초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1968년 5월 혁명 후 이의가 제기되어 보존이 결정되고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건물.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대한 이의제기가 관광 명소 만들기에 불과했다는 씁쓸한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이탈리아의 몬테마르티니 박물관

히틀러의 전체주의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는 미래파를 후원하는 등 디자인 선진국다운 미의식의 소산이 보였다죠. 그래서인지 다른 국가의 오래된 건물을 박물관화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오르세 미술관처럼 역사적 건물 안에 근현대 미술품을 전시한 의외성이 특징이나, 이 미술관은 고대 조각을 수용했다는 독특함이 돋보입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것이 영원한 디자인 대국다운 면모라고 하네요.

스트로베리힐 빌라

고딕 호러 오트란트 성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이 자신의 고딕 취미를 반영하여 건축한 자택. 당시 기준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잔뜩 집어넣으려 노력한 것 같은데 사진만 보면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느껴집니다. 시대가 많이 변한 탓이겠죠.

긴자 라이온

1934년에 개업한 맥주 마니아의 성지. 건축적인 의미보다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더군요. 사진만 보면 뭐... 그냥 강남 지하에 있는 맥주집 같긴 하지만요. 참고로 이 "긴자 라이온"은 대일본맥주의 직영 맥주홀로 1934년 개장하였으며, 연중무휴로 생맥주 한 잔은 25전이었다고 합니다.

2013/08/13

스시 장인: 지로의 꿈 - 데이빗 겔브 : 별점 3점

스시 장인: 지로의 꿈 - 6점 데이빗 겔브 감독, 오노 지로 외 출연/아트서비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긴자의 최고급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의 주인인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인 80대 지로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요시카즈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이기에 대단한 재미는 없습니다. 전해주는 메시지도 항상 위를 올려다보고 끝없이 노력하라는 구태의연한 것이고요.

그래도 이 메시지를 75년간 한 우물만 판 장인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촬영과 음악이 아주 뛰어나서 몰입하기는 좋았습니다. 특히나 백미는 지로의 코스를 교향곡 3악장에 비유하며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담아낸 장면이에요.

아울러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 등 여러 요리 만화에서 보아왔던 것이 얼마나 구라인지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미하라는 담배를 핀 요리사 료지를 쫓아냈었는데,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 지로는 담배를 피웠고 끊은 이유도 단지 건강 문제였다는 사실. 한 번에 적절한 초밥의 양을 덜어내고, 일수법 같은 묘기까지 동원해서 재료가 손에 닿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만화 속 이론과 달리,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은 스시는 양손을 이용하여 여러 번 뒤집어 가며 만들어내더라라는 것 등입니다.

만화 같은 부분은 손님의 성향을 파악해서 왼손잡이면 반대편에 스시를 놓는다든가, 남녀에 따라 초밥 크기를 다르게 해서 먹는 시간을 똑같이 한다는 정도밖에는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도 한 가지, 예전에 지로에게서 수행했던 요리사가 요시카즈가 가게를 이어받는 것에 대해 "아버지와 같은 수준이라도 고객은 떨어져나갈 것이다.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데, "맛의 달인"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더군요. 유명 요리집의 후계자가 아버지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지만 단골들이 아직 멀었다고 질책하는 에피소드였죠. 해답은 메인디시가 아니라 다른 부분을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기억되는데, 요시카즈도 한 번쯤 고려해보면 좋겠네요.

어쨌거나 결론은 추천작. 재미보다는 요리를 좋아하고 스시를 좋아한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단, 스시가 강하게 땡긴다는 후유증은 염두에 두시기 바래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제일 저렴한 코스가 3만 엔부터라고 하고, 한 코스를 먹는 데 15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제가 평생 먹어볼 일은 없겠죠? 어차피 후쿠시마 이후 일본 스시를 먹을 생각 자체가 사라져버리기도 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후쿠시마 이후 일본 스시계에 위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요시카즈가 소고기 스시 같은 걸 개발하면 먹힐지도?

2013/08/12

언더그라운드 슈퍼스타 -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 별점 2점

언더그라운드 슈퍼스타 - 4점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 엮음/동녘

비주류, 저항적이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성을 거진 인물. 또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등장하는 인물은 아래의 5명입니다.

  • 이재유 -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혁명의 별이 되다
  • 최제우 - 진흙 같은 세상 속에 연꽃처럼 피어난 동학
  • 박문수 -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전설
  • 망이·망소이 - 신분의 굴레 속에서 터져 나온 반란의 목소리
  • 원효 - 누구도 부처가 아닌 자가 없다

이 중 개인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못한 이재유의 일대기가 가장 재미있더군요. 책 앞머리에 서술하듯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성"이 좀 떨어지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탈옥 후 도망다니면서 꾸준히 활약한 부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 그 자체였어요. 관련하여 소개된 조선공산당의 주요 인물 및 시대별 주요 사건들도 흥미롭게 읽었고요.

이어지는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일대기는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그간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괜찮았습니다. 그닥 재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머지 3명의 이야기는 그냥저냥이었습니다. 암행어사의 대명사 박문수 이야기는 기대가 컸는데, 실제로는 모범적 벼슬아치로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는 내용 뿐이었던 탓입니다.  차라리 잠깐 언급되는 암행어사 관련 야담이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망이·망소이는 무신정권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더 비중있게 설명되고, 주인공인 두 명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에 별로 어울리는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명학소의 난도 난의 배경과 과정에 집중할 뿐, 결국 망이·망소이에 대해서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마지막 원효 대사야 뭐... 솔직히 새로운 게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책의 모양새도 예쁘고 주제도 확실하며, 내용도 꽤 충실하긴 하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2013/08/07

황금보검의 비밀 - 이종호 : 별점 3점

황금보검의 비밀 - 6점
이종호 지음/북카라반

저자의 이전 저서인 "한국 7대 불가사의"에 언급되었던 이야기의 개정 증보판인 역사서입니다. 신라의 유물 황금보검이 로마 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흥미로우면서도 대담한 가설이 등장합니다. 가설에 따른, 흉노를 중심으로 한 당대 각 국가와 만족의 흥망성쇠를 함께 그리고 있고요.

가설은 한나라에게 밀린 흉노가 네 번에 걸쳐 "서천"과 "동천"을 하였고, 서천을 한 흉노족이 "훈족"으로 알려진 강력한 세력이 되는데, 이 훈족의 왕이었던 아틸라가 동방으로 사신을 보낸 결과가 황금보검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이 아니라 신라로 사신을 보낸 이유는, "동천"을 한 흉노족이 신라에 정착하여 지배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요. 아틸라는 같은 흉노족끼리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이지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로마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문무왕 능비 등 각종 비문을 통해 가야 김씨의 시조가 흉노 휴저왕의 태자 김일제일 것이라는 것 등을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김일제가 바로 우리에게 알려진 김알지이며, "알지"라는 이름은 알타이어에서 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타이어의 "알트", "알튼", "알타이"가 "아르치", "알지"로 변한 것이라고 추정하고요.

그 외에도 훈족과 신라의 유사성을 동제용기라든가 기마인물상, 동복의 문양, 몽골리안 반점, 활과 화살의 존재, 그리고 편두 등을 통해 보여주며, 황금보검의 삼태극 문양도 선물받는 신라왕을 위해 주문 제작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한나라와 흉노의 기나긴 전쟁과 그에 따른 흉노의 서천으로 촉발된 게르만족의 이동과 로마 제국의 멸망, 그리고 흉노가 아틸라를 통해 유럽 전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전투 민족 훈족으로 거듭나나, 아틸라의 죽음으로 쇠락하는 흥망성쇠가 디테일하게 설명되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아틸라와 아에티우스가 로마를 놓고 벌이는 대결 부분은 한 편의 장대한 서사극을 읽는 재미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 로마 제국의 분열과 멸망, 훈족의 급부상을 다루면서 황금보검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흉노족 이야기도 어느새 사라져버리는건 단점입니다. 난데없는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이 들거든요. 마지막 부분에서 훈족과 신라의 연결고리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보다 매끄럽게 전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또 증거라고 든 것들이 빈약해서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대담하고 흥미로운 것은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런 류의 역사서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대담한 가설을 여러 가지 증거로 설명하고 그에 따른 지적 흥분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일본 작가 이자와 모토히코의 "역설의 일본사"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덧붙이자면 저자인 이종호 씨는 공학박사로 각종 역사서, 과학서 등 많은 저술을 하고 계신데 저서를 몇 권 읽어보았지만(얼마 전에도 한 권 읽었죠) 그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훌륭합니다.

2013/08/05

아틀라스 전차전 - 스티븐 하트 외 / 김홍래 : 별점 2.5점

아틀라스 전차전 - 6점
스티븐 하트 외 지음, 맬컴 스완스턴 그림, 김홍래 옮김/플래닛미디어

세계 최초의 장갑차량과 전차, 그리고 1차 대전에서 벌어졌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차전에서 시작해서 현대까지 벌어졌던 거의 모든 전차전을 망라하여 상세하게 소개해 주는 책.

"전차전"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요 전차전으로 목차가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전차전이 벌어진 역사적, 전술적 배경과 함께 상세한 지도 및 다양한 도판을 통해 전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차전의 결과 및 그에 따른 전략, 전술, 역사적 결과까지 상세하게 실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전차가 최초로 개발, 투입되었던 1차 대전의 전차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참호 돌파를 위한 목적과 초기 전차의 형태, 독일 육군과 맞붙은 최초의 전차전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왜 다포탑에서 하나의 회전포탑으로 진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고요. (포 한 개로 전방위 공격 가능!)

그러나 기대했던 전차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건 아쉽네요. 1차 대전, 2차 대전 초까지의 전차 외에는 순수 전차전 설명에 집중하고 있는 탓입니다. 일러스트나 도해가 아닌 사진 자료가 대부분인 것도 제 생각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편이었어요. "전차 메커니즘 도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표 전차는 공격 범위 이외의 도해가 조금 있었으면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2차 대전의 전차전들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들이 많아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북아프리카 전투, 쿠르스크 전차전, 발지 전투가 대표적인 예인데, 2차 대전을 다룬 책 치고 이 전투를 다루지 않은 책은 거의 없을 정도잖아요? 다른 책들에 비해 지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결론은 2.5점. 다른 곳에서 접하기 쉬운 내용이 많고 기대했던 전차 관련 정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가격이 너무 쎄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전차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아주아주 좋은 자료임에는 분명한 만큼, 전사(戰史)에 관심 많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3/08/01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이종호 : 별점 3점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6점 이종호 지음/인물과사상사

유명한 역사적 발굴과 발굴 대상에 대해 다룬 책.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장] 발굴의 황금시대를 열다 - 거대한 무덤 건축물의 상징이 된 마우솔레움
  • [2장] 알렉산드로스의 청을 거절한 자존심 - 고대인의 마지막 도피처, 아르테미스 신전
  • [3장] 고고학 발굴사의 기념비를 세운 슐리만 - 트로이 목마의 진실은 무엇인가?
  • [4장]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곳 -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서
  • [5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 니네베의 점토판에서 발견한 길가메시와 노아
  • [6장] 무와탈리와 람세스 2세 - 카데시 전투에 대한 두 가지 기억
  • [7장] 또 다른 메시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 사해문서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
  • [8장] 세계사를 움직인 공포 - 황금의 제국, 스키타이
  • [9장] 제국의 영원한 지배자를 꿈꾼다 - 지금도 시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마용
  • [10장] 오빌의 전설과 인간의 탐욕 - 밀림 너머의 낯선 풍광, 대짐바브웨

목차만 보아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빠져들 수밖에 없겠죠? 이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아틀란티스와 크레타 섬의 유적, 스키타이 유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우솔레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지만 피라미드, 로도스의 거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죠.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고, 그동안은 뭐 딱히 대단할 게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왠걸! 피라미드와 비교할 만한 거대한 건축물로, 이름 자체가 거대 무덤 건축물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건축에 대한 역사와 발굴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출토된 유물들의 수준이 정말로 대단해서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더군요. 제가 보아왔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중에서도 최고급이더라고요. 이 거대 유적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무식한 야만인 십자군 기사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데, 뭐 대부분 천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의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산의 상징 같아 보이는 여신상 등 유물들은 물론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교도'의 유적이라 하수도나 건축 보강 자재로 쓰였다는 운명이 안타까운데, 제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을 소개하며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시작하여 그에 얽힌 다양한 이론들을 펼쳐내는 부분은 이런 류의 가상 역사물(?)을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모든 문명의 기원이 아틀란티스일 것이라는 대담한 견해 등이 펼쳐지니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자료에서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크레타 섬의 유적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직접 크레타 섬에 가서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크레타 섬의 멸망이 이웃 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마지막 결말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키타이 이야기도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이야기와 같이 잘 모르던 것을 알려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래저래 많이 들어봤지만 실체는 잘 몰랐던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 그 뒤를 이은 사르마트족은 아마존의 후손으로 알려졌다는 내용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득하거든요. 이른바 황금의 민족이라는 스키타이의 유물 소개 역시 충실하고요. 사실 유물은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유사성을 다룬 내용도 괜찮았어요. 아라라트산 방주 유적으로 끝맺는 마무리는 좀 뜬금없긴 했지만 말이죠.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너무 잘 알려진, 또는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슐리만과 트로이, 미케네 제국 발굴 일화와 병마용갱은 이 책에 수록될만한 비중 있는 발굴이라는 것은 동의하나, 새로운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병마용갱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웨난의 "부활하는 군단"을 이미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어요. 각종 다큐 등에서 많이 접했던 사해문서 이야기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중반 이후에는 유적과 역사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어서 제목에서의 "발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대짐바브웨 유적에 대한 것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폐단 이외에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별게 없어서 이 책에 실릴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었고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 고대 문명, 유물, 유적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도판도 무척이나 충실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영상물로 접하는 게 훨씬 나은 콘텐츠라 생각되는데, 다큐멘터리로 나와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