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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5

해적의 역사 - 앵거스 컨스텀 / 이종인 : 별점 3점

해적의 역사 - 6점
앵거스 컨스텀 지음, 이종인 옮김/가람기획

역사서적을 많이 내놓는 “가람기획”에서 발간된 역사명저 시리즈의 열한번째 책.

제목 그대로 인류사의 해적들의 역사를 주로 서양 중심으로 - 저자가 영국인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 서술한 역사서적입니다. 로마시대에서 부터 중세의 바이킹과 바르바리 해적, 오스만 제국의 울루지 알리라는 해적출신 황제와 몰타 기사단의 해적질, 이후의 스페인과 영국의 재해권을 놓은 싸움의 주역인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과 존 호킨스 경, 스페인의 페드로 데 메넨데스 데 아빌레스 같은 인물들과 이른바 “해적의 황금시대” 시대의 해적들, 그리고 이후의 인도양과 미국의 마지막 해적들, 중국의 해적들까지 고금의 해적들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죠.
관심이 갔던 것은 유명한 키드 선장과 블랙 비어드 같은 해적의 황금시대 인물들에 대한 정보인데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들이 많더군요. 키드 선장은 사실은 단 한번의 해적질 항해 후 체포되어 처형된 것이라던가, 신사이고 부유한 농장주였지만 모험을 동경해서 해적이 된 스티드 보넷이라는 사나이의 이야기라던가, 노획물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냈던 헨리 에버리 같은 성공한 해적들의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인도의 해적왕조 앙그리아 가문이나 중국 해적 정성공과 정을, 삽응차이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이러한 이야기 외에도 해적들의 기지였던 여러 섬이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등함의 최고봉이었던 해적 규약,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 등으로 미화된 해적 행위의 낭만적 추억들과 더불어 해적선들의 모습이라던가 당시의 관련 삽화 등 도판까지 충실하기에 그야말로 해적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역사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는 재미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가람 기획의 다른 역사명저 시리즈도 기대하게 만드네요. 다만 “이종인”씨라는 상당한 수준의 번역가가 번역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15,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감점합니다.

2008/08/11

813의 비밀 - 모리스 르블랑 / 성귀수 : 별점 2점

813의 비밀 - 4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대부호 케셀바흐의 호텔방에 뤼뺑이 침입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케셀바흐가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한 정보였다. 뤼뺑은 케셀바흐의 비밀금고에서 관련 문서를 입수한 뒤 철수했는데, 다음날 케셀바흐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청의 르노르망은 살인은 뤼뺑이 행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추리를 펼쳐 살인범 L.M에 대한 단서를 잡지만 주요 증인들이 연이어 살해당했고, 르노르망도 범인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한편 세르닌 공작으로 자칭한 뤼뺑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유럽의 판도를 뒤바꿀 비밀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L.M의 음모에 빠져 샹떼-팰리스에 수감되는데...

너무 더워서 책 읽기가 힘드네요. 독서도 힘든 날씨에 여러모로 지친 머리를 식히고자 고른 책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기암성 이후 4년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뤼뺑의 모험을 그린, 500여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장편이지요. 뤼뺑 시리즈 중 가장 길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거대한 스케일, 즉 유럽의 판세를 놓고 벌이는 뤼뺑과 악당 L.M의 한판 승부가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20세기 초반 당시의 유럽 현황, 실제 있었던 역사 속에서 뤼뺑은 배후의 큰손으로 흡사 진나라의 여불위를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거대 음모를 가능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황제의 편지"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기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 내내 뤼뺑과 박빙의 대결을 펼치는 정체불명의 악당 L.M 이 다른 라이벌인 홈즈와 가니마르와는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추리물다운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뤼뺑 시리즈는 괴도가 등장하는 범죄소설이기도 하지만 황금시대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완성도 높은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인데, 이 작품은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그러한 트릭 없이 모험물에 가까운 분위기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거든요. 813이라는 숫자와 "APOON"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일종의 암호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APOON의 경우 억지에 가까운,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수준의 간단한 장치일 뿐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의문에 가까운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성공한 것 같지 않네요. 마지막의 반전, 그리고 범인 L.M의 정체 역시 지금 읽기에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결말이었습니다.

뤼뺑의 다양한 변장과 이중생활, 사생활(특히 딸까지 등장합니다!) 등이 디테일한 심리묘사 등을 통해 보여지는 것과 유럽을 대상으로 한 뤼뺑의 두뇌게임은 매력적이지만 길이에 비한다면 알맹이는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야기는 분명 재미있지만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모험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단지 모험물로만 본다면 괜찮기도 하지만 추리 애호가로서 평가했기에 별점이 좀 낮군요. 어쨌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2009/08/24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외 / 한동훈 : 별점 1.5점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4점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하늘연못
하아.... 오랫만에 추리소설 포스팅입니다. 최근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도 통 책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이 책도 읽는데 1주일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를 시작할께요.

일단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골든에이지" 가 과연 어떤 시기인지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는 단편 중심의 추리소설의 시대인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여명기를 지나 1913년 벤틀리가 "트렌트 마지막 사건" 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이든 필포츠의"빨간머리 레드메인즈". 메이슨의 "독화살의 집", 버클리의 "독초콜릿 사건" 등 장편 추리소설 명작들이 속속 발표되고 곧바로 크리스티, 반다인, 엘러리 퀸, 딕슨 카, 크로포츠 등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들이 데뷰를 하기 시작한 시기, 즉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거장들의 데뷰가 이어지고 본격 추리소설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황금시대 (골든에이지)"라고 하는 것이죠.

때문에 1차대전 이전의 소설만 담고있는 이 책의 "골든에이지"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책 소갯글을 보면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다섯 작가의 소설을 담은 책" 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갯글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문장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개척기에 활동한..." 이라고 설명되는 것이 더욱 적당한, "개척기 (여명기) 미스터리 중편선" 이 더 합당한 표현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못된 제목이라면 과장광고를 넘어서서 거의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제대로 목차나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제가 죽일 놈이지만요.

그래서인지 사실 책 내용은 기대와는 많이 달라서 실망이 컸습니다. 이 "골든에이지"라는 시기에 나온 작품들을 제가 워낙 좋아라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흥미진진한 본격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이 책에 실린 중편들은 실제 추리물로 보기에는 힘든, 추리물 성향을 띈 드라마들로 단지 오래되었다라는 가치 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5편의 작품들 중 한작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 을 다룬 것이 아닌 일종의 "창작극"이나 "자작극" 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몰입하기도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이럴바에야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나 번역해 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아노 탐정 중단편이 하나 실려있긴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작품도 별로였고요.

물론 역사적인 의미는 크고 책 자체의 번역이나 장정, 디자인도 훌륭한 편이라 과장된 제목으로 현혹만 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물론 그랬더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솔직히 1점 주려다 책 자체의 가치를 생각해서 참습니다.).

3층 살인사건 / 프랭크 보스퍼 

런던 블룸즈베리의 한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하숙집 3층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몇몇 인물들만 등장하여 주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연극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배우 출신인 탓이 크겠죠.

그러나... 제목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과는 달리 추리소설로 보기는 애매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되지도 않았고 특히나 퍼즐 미스터리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때에 쓰여진 작품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물로 정의하기는 확실히 무리였어요. 가장 중요한 목격자의 증언이 범인의 변장을 통해 유도된 것이라던가 하는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유치한 수준의 트릭이며, 경찰의 수사 역시 너무 대충이고 전개도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등 범죄와 관련된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약했거든요. 더군다나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추리소설이나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가 묻어나는 것 역시 조금은 불쾌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추리소설 초창기의 추리물의 성격을 띈 소설이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네요. 영국 하숙집과 거주민들의 생생한 묘사,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요란한 대사들은 재미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뻔하기도 하고요.

애시당초 이 작품 하나밖에 작품이 없는 작가를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라고 선전하는 출판사 행태가 더욱 문제겠죠.

데드 얼라이브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영국인 변호사가 미국의 외딴 농장에 휴양차 체류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네요. 피해자가 사실은 살아있었다... 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법정 장면에서의 증거를 둘러싼 공방과 감형을 위한 거래로 거짓된 자백이 속출하는 등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나 추리물은 아닙니다. 사건이 결국 범인(?)의 자백으로 해결된다던가 - 아니 애시당초 사건 자체가 없었지만 - 주요 증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신문 광고를 통한 제보에 의지한다던가 등으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추리라는 발상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초창기 법정 드라마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역사적 가치 이외의 재미를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안개속에서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초면인 사람들도 친구가 되는 영국의 한 클럽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용인데, 등장인물들의 "증언 (목격담 / 경험담)" 으로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미국인이 간밤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러시아 공주를 자칭하는 여자도둑과의 인연을 다른 회원이 이야기하고, 살인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귀족의 변호사가 살인사건의 다른 진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식으로 증언과 증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거든요.

결국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건에 관심을 보인 클럽회원 준남작이 하원에서의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약간의 반전이 밝혀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앞선 두 작품에 비하면 확실히 추리라는 과정이 묘사된, 때문에 그나마 "추리 소설" 로는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두 번째 다이아몬드 사건 이야기는 내용에 별반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추리의 과정은 있지만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지는 뻔한 추리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쓰여진 시대를 생각하면 너무 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죠?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입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의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이유를 통 모르겠네요.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은 아닌듯 싶은데...

버클 핸드백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나선계단의 비밀"로 유명한 서스펜스 소설의 대모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작품입니다. 시리즈 캐릭터이기도 한 간호사 "힐더 애덤스" 시리즈의 한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번역된 시리즈 같네요. 작가의 간호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별명에 걸맞는 서스펜스, 스릴의 묘사가 일품인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고 결말도 합당해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너무 급작스럽게 사건이 해결되는 점, 주요 등장인물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이 좋았으니까 말이죠. 이 책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습니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 /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독화살의 집"에 등장했던 명탐정 아노 탐정의 중단편입니다. 상당히 좋아하는 캐릭터라 기대가 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 별로네요. 본격물스러운 맛이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의 핵심인 여주인공이 우연히 본 범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아노 탐정의 캐릭터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등 실망스러운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초반부 마약을 발견하는 과정과 추리가 여러 단계로 발전하는 부분, 그리고 범인의 이상한(?) 행동과 장물을 숨겨놓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함량 미달입니다. 다른 중단편들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05/02/16

밀랍 인형 (Wax Work) - 피터 러브시 : 별점 4점

밀랍인형 - 8점
피터 러브제이 지음/뉴라이프스타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립 식물원이 있는 고급 주택가 큐 스트리트의 고급 사진 스튜디오에서 사진사 하워드 클로우머의 조수 퍼시벌이 독살당했다. 경찰은 그가 사진사의 아내 미리엄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미리엄을 기소했다. 그녀는 피해자가 즐겨 마시던 와인 디캔터에 사진관에서 쓰던 청산가리를 넣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자술서를 제출했고,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며칠 안 남은 어느날, 형사부장 크리브에게 이 사건에 대한 엄중 조사 명령이 하달되었다. 사실은 독약을 꺼낼 수 있는 금고의 열쇠는 피해자 퍼시벌과 남편 하워드만이 가지고 있었고, 미리엄은 열쇠를 손댈 수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사건 수사에 나선 크리브는 미리엄 주변에 비슷한 형태의 자살-독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하워드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하워드가 종적을 감춘 탓에, 크리브는 법으로 엄중히 금지되어 있는 사형수 미리엄과의 면회를 통해 진상을 밝힐것을 결심하는데.... 

"마지막 형사"와 "가짜경감 듀"로 접했던 영국작가 피터 러브시의 작품. 작가에 대해 호감도 있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다른 여러분들의 호평을 인터넷 상에서 익히 접해왔기에 헌책방에서 눈에 띄었을때 주저없이 구입하였습니다.

고전 황금 시대인 19세기 후반의 영국이 무대입니다. 손에 잡힐 듯한 시대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작가의 시대 묘사는 특출합니다. 3편의 장편 모두 다른 시대가 배경인데도 말이지요. 현대가 무대인 "마지막 형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20세기 초엽의 "가짜경감 듀"나 이 작품 모두 창문 밖 거리를 보고 쓴 듯한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압권이거든요. 특히나 이 19세기 후반의 영국이라는 무대는 "적당히 수사와 재판 등의 조직이 살아 있으면서도 무언가 2% 부족한 듯한" 고전 추리소설적인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대인데 작품과도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고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작품 속 탐정역의 크리브 형사 부장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데, 상사에게 치여살며 만년 형사부장에 머물러 있는 궁상맞은 현실적인 모습과 함께 자존심도 있고 행동력, 추리력이 탁월한 능력있는 탐정의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홈즈를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당시 경찰에도 레스트레이드같은 무능한 인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설정은(출세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어요. 뭐 레스트레이드도 우직하고 성실하다는 점에서는 능력있는 인물이겠지만요.

하지만 이 크리브 형사 부장보다 이 작품을 빛내는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미리엄이라는 영국 스타일 "팜므파탈"입니다. 주로 "몸"으로 승부하는 경향이 짙은 미국식 팜므파탈에 비교해서 상류계급의 귀부인이라는 사고방식, 엄숙하고도 단정하면서도 곧은 행동거지로 무장하고 약점과 눈물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고 독사같은 면모를 갖춘 독특한 악녀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뽐냅니다.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움 역시 갖추고 있고요.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은 굳은 마음과 치밀함도 큰 무기입니다. 비록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하며 무너지긴 했지만,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였습니다. 이야기도 스토리텔러로서의 피터 러브시의 진가를 잘 보여줍니다. 크리브 형사부장이 서서히 사건을 파헤치며 드러나는 과거의 또 다른 자살 사건, 그리고 과거 사건과의 이해할 수 없는 연관성에서 비롯된 추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승부! 결국 마지막에 "일사부재리 원칙"이라는 결정적 법 조항으로 밝혀지는 진범의 정체와 반전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독자를 서서히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서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드러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대가다왔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형집행인과 타소 밀랍 인형관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다 긴장감을 자아내면서도,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는 연출 역시 발군이고요.

하지만 작 중에서 가장 큰 의문인 "도대체 그 여자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마지막 승부에서 크리브 형사부장이 이끌어내는 부분은 약간 치밀함이 부족했고(물론 이 사건에서는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나름대로의 전제조건이 있어서 좀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해답이 급작스럽게 돌출된다는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트릭으로 지적 흥분과 재미를 가져다 준다는건 분명합니다. 중편 정도의 부담없는 분량도 매력적이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만한 매력적인 팜므파탈이 등장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PS : 그나저나 "마지막 형사"와 "가짜경감 듀"는 물론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좀 길었다고 느껴졌었는데 이 책은 깔끔하네요. 아무래도 이 정도 길이가 저한테는 딱 맞는 것 같습니다.

2013/08/01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이종호 : 별점 3점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 6점 이종호 지음/인물과사상사

유명한 역사적 발굴과 발굴 대상에 대해 다룬 책.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장] 발굴의 황금시대를 열다 - 거대한 무덤 건축물의 상징이 된 마우솔레움
  • [2장] 알렉산드로스의 청을 거절한 자존심 - 고대인의 마지막 도피처, 아르테미스 신전
  • [3장] 고고학 발굴사의 기념비를 세운 슐리만 - 트로이 목마의 진실은 무엇인가?
  • [4장]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곳 -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서
  • [5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 니네베의 점토판에서 발견한 길가메시와 노아
  • [6장] 무와탈리와 람세스 2세 - 카데시 전투에 대한 두 가지 기억
  • [7장] 또 다른 메시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 사해문서와 기독교인들의 딜레마
  • [8장] 세계사를 움직인 공포 - 황금의 제국, 스키타이
  • [9장] 제국의 영원한 지배자를 꿈꾼다 - 지금도 시황제의 명령을 기다리는 병마용
  • [10장] 오빌의 전설과 인간의 탐욕 - 밀림 너머의 낯선 풍광, 대짐바브웨

목차만 보아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빠져들 수밖에 없겠죠? 이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아틀란티스와 크레타 섬의 유적, 스키타이 유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우솔레움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지만 피라미드, 로도스의 거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죠.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고, 그동안은 뭐 딱히 대단할 게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왠걸! 피라미드와 비교할 만한 거대한 건축물로, 이름 자체가 거대 무덤 건축물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건축에 대한 역사와 발굴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출토된 유물들의 수준이 정말로 대단해서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더군요. 제가 보아왔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중에서도 최고급이더라고요. 이 거대 유적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요새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무식한 야만인 십자군 기사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데, 뭐 대부분 천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의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잘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산의 상징 같아 보이는 여신상 등 유물들은 물론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고요. '이교도'의 유적이라 하수도나 건축 보강 자재로 쓰였다는 운명이 안타까운데, 제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을 소개하며 아틀란티스 전설에서 시작하여 그에 얽힌 다양한 이론들을 펼쳐내는 부분은 이런 류의 가상 역사물(?)을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모든 문명의 기원이 아틀란티스일 것이라는 대담한 견해 등이 펼쳐지니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자료에서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크레타 섬의 유적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직접 크레타 섬에 가서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크레타 섬의 멸망이 이웃 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마지막 결말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키타이 이야기도 마우솔레움, 아르테미스 신전 이야기와 같이 잘 모르던 것을 알려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이래저래 많이 들어봤지만 실체는 잘 몰랐던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 그 뒤를 이은 사르마트족은 아마존의 후손으로 알려졌다는 내용 등 여러 가지 설명이 가득하거든요. 이른바 황금의 민족이라는 스키타이의 유물 소개 역시 충실하고요. 사실 유물은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유사성을 다룬 내용도 괜찮았어요. 아라라트산 방주 유적으로 끝맺는 마무리는 좀 뜬금없긴 했지만 말이죠.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너무 잘 알려진, 또는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슐리만과 트로이, 미케네 제국 발굴 일화와 병마용갱은 이 책에 수록될만한 비중 있는 발굴이라는 것은 동의하나, 새로운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병마용갱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웨난의 "부활하는 군단"을 이미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어요. 각종 다큐 등에서 많이 접했던 사해문서 이야기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 중반 이후에는 유적과 역사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고 있어서 제목에서의 "발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대짐바브웨 유적에 대한 것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폐단 이외에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별게 없어서 이 책에 실릴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었고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 고대 문명, 유물, 유적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도판도 무척이나 충실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영상물로 접하는 게 훨씬 나은 콘텐츠라 생각되는데, 다큐멘터리로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8/10/16

재미있는 검객 이야기 : 일본편 - 유재주 : 별점 3점

집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책으로 아주 예전에 읽었었지만 엊그제 우연찮게 최근 다시 읽게 되었네요. 소설가이자 검도관 관장이기도 한 역자가 15세기 후반, 막부 시대 부터 막부 말기 까지의 일본 검술가를 인물별, 사건별로 짤막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시대만 해도 400여년, 인물만 해도 수십여명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기에 대충대충 요약하여 지나가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일본 검술계의 유명 인물들과 실제 사건들을 일별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등장하는 검객들의 현란한 문파 이름 및 수많은 명대사(?)도 볼거리였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주요 사건과 검술가들의 행적에서도 그다지 진검승부가 많지 않았고 생각만큼 화려한 검술쇼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뭐 이리 도망다니는 놈들이 많은지 그 찌질함에 정말이지 기가 찰 정도였어요.

이렇듯 재미도 있지만 자료로서 더욱 가치가 있는 책으로 대충 앞부분 목차만 적어보아도 "검성 쓰가하라 보쿠덴, 천류의 개안 사이토 덴기보, 일도류의 개조 이토 잇도사이, 이토 잇도사이의 제자 오노 다다아키, 애꾸는 검객 야마모도 간스케, 무검 가미스미 노부쓰나, 소도의 명수 도미다 세이겡, 사제간의 의리를 지킨 이와마 고쿠마노스케, 마정염류 창시자 히구치 데이지, 야규가의 황금시대, 창술의 달인 보장원 승려 잉에이, 검법가의 후예 요시오카 나오시게, 일본 최고의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 진심류 창시자 가미야 덴신사이, 실전검술의 명인 도고 시게가다, 비극적 종말을 맞은 미야케 겐방..." 등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또 각 검객들의 주무기(?)와 주무기의 길이, 필살기, 실제 행했던 수많은 시합들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고요.

어쨌건 요약하자면 취향은 많이 탈 것 같고 출간된지 10년이 지나 절판된지도 오래지만 "베가본드" 나 "신센구미" 등 일본 검술을 다룬 컨텐츠의 팬이라면 자료 삼아서라도 구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들이 워낙 짤막해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단 그만큼 깊이는 없습니다만...

그런데 분명 "편역" 이라고 되어 있는 책인데 책의 어디를 보아도 원저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줄도 없군요. 약간 씁쓸합니다.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05/09/27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2 - 정태원 편역 : 별점 3점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2 - 6점
정태원 엮음/명지사

아주 예전에 사긴 했지만 분실한 듯 해서 외근차 광화문에 나갔다가 우연찮게 들린 교보문고에서 발견, 구입한 책입니다. 예전에는 만원 이하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사니 만 오천원이나 되더라구요? 아까와라....  다시 읽다보니 기억나는 작품이 너무 많아 더 돈이 아까왔습니다...

그러나 책 자체만 놓고보면, 역시나 충실합니다. 다만 트릭보다 드라마와 극적 구조에 더 비중과 가치를 두는 경향이 서서히 보이는, 고전 황금시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활을 하는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같은 고전 퍼즐 트릭 본격 추리물 팬에게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이만한 수준의 단편을 한권에 모아놓은 앤솔러지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간략한 수록작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중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거장 로열드 달의 "여주인", 간단하지만 이채로운 에드워드 D 호크의 "직사각형의 방", 단편의 교과서적인 작품인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 역사추리물에 가까운 유머러스한 단편인 워너 로우의 "세계를 속인 남자"의 네 편을 꼽습니다. 모두 별점 4점입니다.



윌리암 오파렐의 "그쪽은 어둠"
오해로 비롯된 비극을 다룬 소품. 그닥 특이한 점은 없지만 서늘한 느낌이 드는 도회적인 분위기가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

로얄드 달의 "여주인"
아토다 다카시의 "나폴레옹 광"이 연상되는, 로얄드 달 특유의 기묘한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많이 수록되어 있는 걸작. 별점은 4점입니다.

존 더람의 "호랑이"
일종의 청소년 범죄극이라 할 수 있는데, 60년대 당시 미국 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는 점 외에는 별로더군요. 추리물로 보기도 좀 어렵고요. 에드가상을 어떻게 수상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에이브람 데이비슨의 "라호아 병영 사건"
과거 라호아 병영에서 있었던 사건을 추억하는 한 노인의 회고담. 좋은 소재에 내용도 흥미진진하나 반전이 예상 가능한 것이라 막판에 힘이 좀 달린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단편으로서의 미덕은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데이빗 엘리의 "요트 클럽"
스텐리 엘린 분위기도 좀 나는 서늘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른 앤솔러지에도 수록되어 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서늘한 반전을 위한 앞부분의 묘사가 좀 지루한 편입니다. 보다 짧게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패트릭 퀜틴의 "운없는 남자"
그야말로 "미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아내를 죽이고 새 출발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반전도 제법 괜찮습니다.
약간 뻔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유머러스한 맛과 전개는 확실히 고전 시대와 다른 분위기를 전해 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로렌스 트리트의 "살인의 H"
정통 경찰 수사 - 형사물로 사건과 전개는 흥미진진한데 사건이 밝혀지는 것이 순전히 우연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는데 트릭면에서 아쉬움을 주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
좋은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에 인간의 잔인한 내면을 투영한 캐릭터가 압권으로 이 작품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생각되네요. 시골마을이 배경인 잔잔한 소품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단편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리스 데이브스의 "선택된 것"
일종의 범죄물인데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한 남자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따라가는 과정같은 것은 루스 렌들의 "내눈에 비친 악마"와 비슷한데 내용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편입니다. 시점변화가 많은 독특한 스타일때문이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의 "직사각형의 방"
불가능 미스테리의 대가 에드워드 D 호크의 불가능 미스테리가 아닌 심리물로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입니다. 좀 썰렁하긴 하지만 인상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이죠. 단편의 대가다운 호흡 조절을 엿볼 수 있는, 짧지만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워너 로우의 "세계를 속인 남자"
가상 역사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갱과 서머셋 모옴 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여 좌충우돌하는 유머스러움이 잘 살아 있는 유쾌한 작품으로 마지막 반전까지 숨쉴틈 없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니 고갱 작품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별점은 4점입니다.

조 고어즈의 "잘 있거라 고향아"
드라마로 특이한 맛은 없습니다. 범죄물이긴 한데 에드가상을 탈 만한 이유를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M.F 브라운의 "리가 숲의 짐승은 더 난폭하다"
"몽환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정신사나운 이야기로 심리 묘사와 두서없는 내용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어수선한 작품. 60년대 히피문화의 하나인 "마약"에 의한 의식 흐름을 다룬 작품들과 유사한 스타일로 핵심 뼈대 자체는 날이 잘 서 있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5/11

우리 미술 이야기 2 : 영원한 현재 - 고려 - 최경원 : 별점 2.5점


우리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 그리고 알아두면 좋을 이런저런 내용을 소개해 주는 책. 저자의 "한류 미학 1"을 재미있게 읽어서 뒤이어 읽게 된 후속 권입니다. 절판 후 재출간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네요.

2권은 고려 청자 중심으로 고려 문화 예술만 소개하고 있는데, '고려의 청자를 비롯한 문화 예술품은 '대량 생산'되었기에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장인이 모든 것을 다하는게 '공예', 산업 혁명 이후 기계적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품 형태를 고안하는 일이 '디자인'인데, 국가 주도로 대량 생산된 청자는 '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표준화' 경향으로 증명된다며 대체로 유사한 청자의 형태 등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꽤 그럴듯 했습니다. 디자인에 의한 대량 생산품의 우수함은 문화의 우수함을 증명한다는 주장도 아주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다양한 청자를 가지고 청자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설명해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도입부의 '청자의 색' 설명부터 눈길을 끕니다. 고려 청자의 다소 칙칙한 색이 찬양되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고려청자는 '옥'의 색을 겨냥해 만들어진, '비취' 색이었기 때문입니. 옥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보석 중의 보석으로, 송나라에서 처음으로 옥의 색과 질감을 유사하게 재현했었지만 고려 청자가 진짜 비취색을 구현해서 당대의 명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명품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여러가지 발견과 정보도 볼 만 했습니다.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를 통해 그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도판도 매력적이고요. 아래와같이 돋을새김 상감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사진으로는 그 형태를 온전히 보기 어려운데, 스케치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는 3차원적 형태에 잘 어울리도록 그려지고, 이어진 형태로 감상해야 하는 그림이 많아서 전체를 돌려가며 보아야 된다는 착안도 좋았습니다. 이런건 박물관에서도 전시 시에 활용해주면 참 좋을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천천히 돌려서 전시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자만의 주장도 눈길을 끄는게 많은데, 그 중 두 가지가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는 황금 비례는 수학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시대의 정신적 습관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특정한 하나의 양식이자 독특한 미적 가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황금 비례가 많이 사용되는건 사람의 눈의 구조가 똑같고, 보편적인 감정이 있어서 대체로 2:3이나 3:4 정도의 비례를 좋다고 느끼기에 그런 조형 결과물들이 많은 것 뿐이라서 특별히 대단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청자를 만들 수 없었던 조선은 문화가 낙후된게 아니라는 일련의 주장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을 문화 퇴행기로 보는 건 일제 강점기 시기 총독부 소속의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들은 삼강오륜을 앞세운 근엄한 도덕적 생활을 해서 정서가 발달하지 못했고, 경제력도 보잘것 없어서 미술이나 미적 감각을 발전시킬 힘과 여유가 없었다는 김원룡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악의적 편견인 것이지요. 저자는 조선의 경향은 조형 예술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추상'이라는 개념의 경향일 뿐이라며, 이를 맨 마지막에 소개된 '은진미륵'을 통해 설명해줍니다. 은진미륵은 세계에 관한 관심이 달라진 데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미적 감각의 표현으로, 인자한 보살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킨 조형으로 특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걸 여러가지 분석으로 알려주거든요. 이러한 경향이 조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일테고요. 또한 청자가 만들어지지 않은건 옥의 모조품이라는 목표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재미는 있는데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황금비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이론화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은진미륵에서도 추상성에 따른 아름다움은 솔직히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예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유물을 보는건 좋았지만 청자가 대부분이고, 내용도 비슷한게 많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청자의 형태가 유기적으로 이는 최신 디자인 경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탓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문헌, 사료적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문헌을 분석하는 것 보다 유물 자체를 관찰하고 추론하는게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추론을 문헌을 통해 뒷받침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 주는게 보기가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 중심으로 분량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2009/07/11

홈즈 시리즈의 parody와 pastiche의 역사

일본 추리관련 사이트에서 읽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 번역해 올립니다. 수많은 의역이 있지만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참고로, 글을 올리는 요지는 "경성탐정록"은 결코 parody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섭니다.^^ 차라리 pastiche나 오마주에 가깝죠. 과연 설홍주와 왕도손 이름이 달랐다면, 홍진호와 광수였더라도 패러디라는 말을 들었을까요? 홈즈 형태의 추리물 (명탐정과 화자이자 조수가 등장하는 형태의 본격추리 장 / 단편) 자체가 하나의 장르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유사품이나 팬픽으로 평가절하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일본 미스터리 / 추리소설 데이터베이스 aga-search로 부터>

아서 코난 도일이 탄생시킨 셜록 홈즈 작품은 성전이라고도 하는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이 있지만, 이외에 여러 작가들이 홈즈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크게 나누어 parody와 pastiche로 구분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parody는 특정 작품과 명탐정을 희화화하고 풍자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것을 가르키며, pastiche는 원작 자체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홈즈의 첫번째 parody가 등장한 것은 단편 "보헤미아의 스캔들"이 발표된 이듬해인 1892 년, <아이들러 매거진> 5 월호에서였습니다. 발표한 사람은 영국 최초의 외국인 탐정 유진 발몽의 창조자이자 도일의 친구이기도 했던 "로버트 바" 로, ""Detective Stories Gone Wrong : The Adventures of Sheroaw Kombs (세로우 콤즈의 모험, 훗날 베그럼의 괴사건으로 제목 변경) "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도일의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지금에도 이러한 parody와 pastiche가 계속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은 홈즈의 인기를 말해 준다고도 할 수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특히 중요한 3편의 작품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할 작품은, 도일이 1927년 5월에 "쇼스콤 올드 플레이스"를 발표한 뒤 홈즈 시리즈의 집필을 중단했던 이듬해, 1928년에 발표된 미국 작가 오거스트 덜레이의 작품으로, 홈즈를 꼭 닮게 묘사한 캐릭터 "솔라 폰즈" 가 활약하는 시리즈입니다. 현재 장단편 합쳐 전부 70편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 작품은 1952년부터 "코리어즈" 지에 연재되었던 12편으로, 도일의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본격황금기 시대의 거장 존 딕슨 카가 합작한 단편집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1954년)입니다. 이 작품들은 홈즈의 작품 중에서 이름만 등장했던, 소위 "언급되지 않은 사건" 12편을 그리고 있습니다.
딕슨 카는 이전에 유족들이 공인한 코난 도일의 전기인 "코난 도일"을 발표했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도일의 아들 에이드리언과 알게되어 함께 이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현대 추리소설계에서 단편의 명수로 알려져 있는 미국 작가 로버트 L 피쉬 Robert L. Fish)가 창조한 "슈록 홈즈" 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사후 미국 탐정작가 클럽 (MWA)에서 그 해에 발표된 최우수 처녀 단편을 선정하여 수여하는 "피쉬 상"이 창설될 정도로 뛰어난 단편작가였던 피쉬가 쓴 이 parody 시리즈는 1960년에 "EQMM (엘러리 퀸즈 미스테리 매거진)"에 "애스콧 타이 사건 (The Adventure of the Ascot Tie)"이 발표된 이래, 사망하는 1981년까지 전부 32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외에 장편으로는 홈즈가 은퇴한 뒤의 사건을 그린 H.F 하드 (H F Heard)의 "꿀맛 (A Taste for Honey)"과 홈즈 parody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니콜라스 메이어의 "7퍼센트 용액 (The Seven-Per-Cent Solution)"이 유명합니다.

단편으로는 열렬한 셜록키언으로 알려진 추리 작가이자 평론가인 빈센트 스타렛트의 "진본 <햄릿> 사건"과 발표 당시에는 코난 도일 명의로 발표되었던 "지명수배남" , 그리고 미국 본격 황금 시대의 거장 엘러리 퀸이 편찬한 선집 "셜록 홈즈의 재난 "에 수록된 단편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단편집에는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안토니 버클리, 스튜어트 파머, 안토니 바우처 등 쟁쟁한 멤버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근에는 본격 작가로 유명한 여류 작가 쥰 톰슨 (June Thomson)이 발표한 일련의 pastiche들이 셜록키언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4편의 단편집이 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홈즈 parody와 pastiche 외에도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포트가 활약하는 작품들, 홈즈의 숙적 천재범죄자 모리어티교수가 활역하는 존 가드너의 "범죄왕 모리어티의 생환", "범죄왕 모리어티의 복수", 심지어 홈즈의 자손이 활약하는 작품들까지 있기에 이 모든 작품들을 통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홈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열의가 전해져 오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셜록키언이라는 것이겠죠.^^

2008/12/31

경성탐정록 - 한동진

오프라인에는 아직 안 깔렸지만 온라인 서점에는 정보가 뜨는군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포스팅합니다.


이 책은 제가 아이디어와 몇가지 트릭, 시놉을 제공했고 저희 형이 쓴 작품으로, 1930년대 초반의 경성을 무대로 하여 탐정 설홍주와 그의 친구인 한의사 왕도손 컴비가 등장하는 추리 중단편집입니다. 한국 추리문학사에 최초의 시리즈 탐정이 등장하는 단편집이라고 감히 말해 봅니다.

중편 분량인 "광화사", 그리고 단편인 "운수좋은 날"과 "황금사각형", "천변풍경", "소나기"까지 총 5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중 "광화사"와 "운수좋은 날"은 이미 파우스트 지면을 통해 소개된 작품이고 다른 3편 중 2편은 온라인에 발표했던 작품입니다. "소나기" 는 미발표 신작 단편이고요.

정교한 트릭이 넘치는 퍼즐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과거 황금시대의 단편에 충실한 아날로그 스타일의 유쾌한 작품이라 생각하기에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첫 공개의 장이었던 "하우미스터리" 사이트와 운영진 여러분, 많은 추리 매니아 여러분, 학산 출판사 관계자 및 기타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07/30

"46번째 밀실"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에 대하여

얼마전 읽은 "46번째 밀실"에 언급된 미국 작가 댈리 킹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입니다. (사실 원본 텍스트파일이나마 구할 수 없을까 하는 속셈도 있었는데 역시나 없네요)

46번째 밀실이 9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의 일본 내 번역 출간이 2000년이더군요. 번역 출간에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영향도 컸던 거 아닌가 싶네요. 이런 책까지 번역 출간된 일본 추리문학계가 참으로 부럽기 짝이 없지만 국내에서도 46번째 밀실이 잘 팔려준다면 이 책이 번역될지도 모르니... 희망을 가져봐야겠지요.

어쨌건, 트레비스 타란트는 본격 황금 시대 후기에 활약한 미국작가 C.데일리 킹이 창작한 불가능범죄를 주로 다루는 아마츄어 탐정입니다. 단편집이 1935년에 발표되었더군요. 단편들은 뉴욕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타란트에게 화자인 친구 제리가 방문하여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형태로 되어있다고 하며, 그 외의 제리의 아내 발레리와 여동생 메어리가 중요 캐릭터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각 단편 사이의 연관성이 강해서 연작단편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네요. 특히 타란트의 집사로 일본인 "가토" 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일본에서 나름 환영받는 요인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린 호네츠인가?

아무튼 전 12편의 단편에서 활약하는 타란트의 유일한 출판물인 단편집 "타란트 씨의 사건부"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4번째 작품이 46번째 밀실에서 언급된 "트멘트 4세호 에피소드" 입니다. 원제는 The Episode of the "Torment IV" 로 일본어 제목은 "제 4의 고문" 이네요. 일본어 제목보다는 46번째 밀실의 제목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제목 그대로 "토멘트 4세호"라는 배에서 일어난 불가능범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일본어 제목만 보면 고문 중심의 호러영화 "호스텔"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약간 호러적인 취향도 가미된 단편이라고 하네요.

작품의 줄거리는,
타란트가 배 안에서 사람이 돌연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친구가 가까운 호수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그 사건은 호수에서 가족 3명이 타고 있던 배 "토멘트 4세호"가 좌초하고 즉시 구조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배 안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사건이죠. 이후 양친의 시체가 호수에서 발견되고, 그들이 배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뛰어내린 이유는 전혀 없는 상태...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직후, 타란트와 친구들의 눈 앞에서 이 배를 인수한 부자가 똑같은 방법으로 배에서 호수로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라는 이야기인데 정말 궁금하고 읽고 싶어집니다. 줄거리만 봐도 흥미진진해요. 과연 어떤 트릭이었을까요? 배 밑에서 유령 소리를 내는 장치같은 걸 사용한 시한장치 + 기계장치 트릭? 아니면 독가스 같은 것을 연출하는 장치 트릭? 아... 정말이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빨리 번역되기만을 바래야겠어요.

2011/09/14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레이 브래드버리 / 장성주 : 별점 3점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6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장르문학계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SF 환상문학 단편선. "SF 대장"에도 당당히 실려 있는 작품으로, 개별 단편들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모든 이야기가 '문신을 새긴 사나이'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장편으로 출간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던 것 같더군요.

전설적인 작가의 단편집이기에 기대가 컸는데, 솔직한 감상은 "그저 그랬다"입니다.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읽을 때와 비슷한데, 아무래도 작품들이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겠죠. 동서냉전과 인종차별, 매카시즘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1951년 당시에는 유효했을 설정들이 지금 기준에서는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졌고요. 젤라즈니 같은 작가처럼 세련된 문체나 심오한 대사로 아이디어를 포장했다면 덜 시대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브래드버리는 단편의 제왕다운 직설적인 문체로 정면 승부하는 스타일이라 이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한, 종교적인 설정을 SF에 녹여낸 점은 흥미롭긴 했지만, 저 같은 무신론자가 공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성의 불덩어리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건 없건 그게 무슨 상관인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18편이나 되는 작품이 실려 있는 만큼, 명성에 걸맞은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아이들 놀이방을 소재로 독특한 반전을 보여주는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는 지금 읽어도 신선한 작품이었고, 끝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을 무대로 한 재난 모험물 "기나긴 비"도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너무나 평온한 세상의 마지막 밤을 다룬 "세상의 마지막 밤"은 명백한 걸작이었죠. 환상특급 느낌이 물씬 나는 "마리오네트 주식회사""스텝포드 와이프"의 원형처럼 보이는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가 돋보였고요.

개인적으로는, 우주공간에서 사고를 당한 우주비행사들이 각자 끝없이 추락하며 나누는 대화와 사색을 담은 "만화경처럼"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다룬 심리 드라마이자, 동시에 SF적인 요소를 결합한 복합적인 장르의 작품인데, 겨우 12페이지 분량으로 이런 깊이를 담아냈다는 점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이 작품만큼은 단편의 제왕다운 솜씨를 보여준 멋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문신을 새긴 사나이"의 이야기도 나름의 반전과 함께 마무리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지금 읽기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느낌이지만, 60여 년 전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을 당시의 독자들은 부럽습니다.

2022/09/04

대단한 밀실 트릭! 신비로운 고전 걸작 5편 소개 (from 'honto')

일본의 전자책 서점 honto에는 책 전문가인 북 큐레이터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선정하여 소개해주는 서비스 '북트리'가 있습니다. 그 중 밀실 트릭 고전 걸작 소개입니다. '고전 걸작'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고전이면서도 트릭면에서 나무랄데없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류의 추천치고는 일본 작품 비중이 비교적 낮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해 보아야겠네요.

소개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모르그 거리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밀실에서 일어난 범행이라는 수수께끼, 홈즈의 원형이라고 불리우는 명탐정 듀팽, 논리적인 해결, 의외의 범인 등의 요소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막을 연 작품.

2.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원작자로도 유명한 저자가 그려낸 '완벽한 밀실'인 노란 방에서의 범행, 거기에 두 개의 인간 소실 수수께끼까지 더해져 있다. 고전 모험 활극의 향기도 느껴지고, 밀실 추리물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올 타임 베스트에 단골 선정되는 명작.

3.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크리스티 여사님과 함께 황금 시대 (골든 에이지) 삼대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딕슨 카의 작품. 밀실의 거장이라고도 불리운 카의 작품답게 밀실 살인과 법정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있다. 밀실에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를 명탐정인 법정 변호사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하는 내용으로, 아주 유명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트릭을 알아채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

4.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명탐정의 대명사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뷰작. 열쇠도 없고, 장지문으로 만들어져 밀실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본 가옥을 무대로 한 최초의 밀실 추리물로도 유명한 불후의 명작.

5.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다카기 아키미츠의 데뷔작으로 명탐정 카미즈 교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유명 문신가의 문신을 한 3자매 중 한 명이 토막난 사체로 밀실에서 발견된다. 쌍둥이 자매, 토막난 시체, 욕실이라는 밀실에서의 살인이라는 본격 추리물의 재료가 가득한 작품. 트릭도 훌륭하다.

2017/06/16

어둠 속의 일격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점

어둠 속의 일격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9년 전, 일곱 건의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얼음 송곳 살인마 피넬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피넬은 바버라 에팅거 사건 만큼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바버라 에팅거의 아버지 찰스 런던은 은퇴한 전직 경찰 매튜 스커더에게 이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 달라고 부탁하는데...

간만에 읽은 로렌스 블록매튜 스커더 시리즈 장편입니다. 그런데 매튜 스커더가 술독에 빠져 있는게 특이합니다. 그냥 마시는 커피조차 버번을 타서 먹을 정도이지요. 중반에는 술에 떡이 되는 묘사까지 등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리즈 후기작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800만가지 죽는 방법" 바로 직전인 1981년 작품이더군요. 세상 다 산것 같은 관록을 보여주는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자식들이 손자들을 낳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 (21p) - 의외로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콜 중독 조각가 재니스가 알콜 중독자 갱생회에 간다고 통보하는데, 그 때문에 금주를 결심한게 아닐까 싶네요.
매튜 스커더 시리즈 치고는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260 페이지 정도밖에는 안되니까요.

하지만 짤막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묘사는 여전히 근사합니다. 특히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떤 사물이나 소재를 빗대는 글들이 눈에 띱니다. 이혼한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오래 키운 반려견이 안락사된다는 것을 듣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결혼 생활도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드러내거든요.
작품 내내 선보이는 매튜 스커더의 그야말로 고전적인, 발로 뛰는 수사 역시 인상적입니다. 사건 관계자들을 우직하게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수사의 전부인데 그것도 아날로그 시대, 즉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는 시대가 무대라 공중전화, 전화번호부 및 기억력에 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느끼게 해 줍니다.

다만 추리적으로는 별로입니다. 진범 버튼 하버메이어를 밝혀낸 과정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단지 자신이 살던 집 주소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건 잘못이지요. 자식이 없다고 거짓말 한게 드러나는 장면은 괜찮았지만, 이 역시 증거로는 부족했어요.
더 큰 문제는 동기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버튼이 아내를 죽음을 가장하여 살해하기 위해 예행 연습을 했다는게 진상인데, 왜 이혼을 하기 힘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밉다 하더라도 이혼을 하기 힘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직 경찰 신분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는 손쉽게 이혼을 한 것으로 볼 때 더욱 설득력이 낮습니다. 게다가 버튼의 말 대로 매튜 스커더는 경찰도 아니고 어차피 증거도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를 체포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양심을 건드리며 자수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이건 버튼이 착해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마지막 버튼 아내에 대한 반전도 놀랍기는 하지만 솔직히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사소한 점들을 모으고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들을 흡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이 마음속에 팍 떠오르죠."라는 매튜 스커더의 추리법이 설명되는 것 정도는 이채로왔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직감'에 의존하는 방식인데, 전직 형사로 발로 뛰는 수사가 특기라 탐문과 끈기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경찰이라 생각했는데 일종의 천재형이라는게 의외였거든요.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한 추리법도 괜찮습니다. "의사의 아내가 살해됐을 땐. 남편이 범인이에요. 증거는 상관없어요. 항상 의사가 범인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울러 얼음 송곳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어요. 80년대지만 모두들 냉장고를 가지고 있고, 얼음 장수가 배달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니 얼음 송곳은 살인 말고는 쓸데가 없다!는 논리로 실제로 하나 구입하러 가서 아주 가끔 하나 씩 팔릴 뿐이라는 증언을 듣는게 요지입니다. 이는 사건이 발생했던 9년전 철물점, 잡화점에서 얼음 송곳을 사간 사람을 탐문했어야 하는 논리로 귀결되는데 아주 그럴 듯 했어요. 본 편과는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짧다는 점과 묘사는 좋지만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보기에는 애매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고요. 시리즈의 대표작도 아니니 딱히 읽어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04/01/24

찰리 챈, 커튼 뒤의 비밀 - 얼 데어 비거스 / 김문유 : 별점 2.5점

찰리 챈, 커튼 뒤의 비밀 - 6점 얼 데어 비거스 지음, 김문유 옮김/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이 책은 찰리 챈 시리즈의 3번째 장편입니다.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되어 나온 것 같네요.

찰리 챈은 세계 명탐정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탐정입니다. 특징과 개성이 남다른 고전 황금기 명탐정답게 “중국계”라는 남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소설속에서도 중국 격언과 속담을 남발하며 추리를 펼치죠.

그러나 첫번째 장편 “열쇠없는 집”이나 두번째 장편 “중국 앵무새”는 사실 기대에 미치지는 못 했었습니다. 그래도 정통 황금시대 명탐정이 뭔가 보여주겠지.. 하는 마음에 구입했는데 다행히 전작들보다는 낫더군요.

어느날 저녁, 전 런던 경찰청 수사과장 프레더릭경이 젊은 부호 배리 커크의 파티 중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가 남긴 자료에서 드러나는 미해결 사건들의 실체! 15년 전 인도 페샤와르에서 실종된 18세 여인, 11년 전 니스 극장에서 사라진 여배우, 7년 전 발생한 뉴욕의 유명 여모델 실종사건까지, 이 잇따른 여성 실종사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우연히 사건에 뛰어들게 된 찰리 챈은 11번째로 태어난 아들을 보기 위한 귀가를 뒤로 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일단 전 영국 런던 경찰청 수사과장 프레더릭경의 살인사건에 관련하여 과거의 여러 미해결 사건들과 수많은 등장인물이 얽히는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와요.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도 뜻밖이나 이유와 추론이 꽤 합리적인 편이고요. 덕분에 재미 하나만큼은 상당하여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한번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허나 추리적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대강의 스토리만 보아도 15년전, 11년전, 7년전 행방불명 된 여자가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필이 팍팍 오거든요….
그것을 풀어나가는 추리 역시도 별다른 논증이나 추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증언에 유지하는 원초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뿐이고요. 이런 점들만 놓고 봐도 동시대의 경쟁자들보다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해요.
아울러 정작 사건 해결에는 전~혀 불필요한 묘사가 상당히 많은 것도 거슬리는 점이었습니다. 커크와 모로우 양의 로맨스같은 찰리 챈 시리즈에 빠지지 않는 “로맨스” 부분이 그러하죠. 뭐 이런게 찰리 챈 시리즈의 특징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재미만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값어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뒷 커버를 보니 찰리 챈 시리즈 중에서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데 최소한 제가 읽은 작품들 중에서는 제일 괜찮았어요. (그래봤자 3작품이지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곧 미국에서도 루시 리우를 찰리 챈의 손녀로 기용하여 새로운 영화작품이 발표된다는데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기대해 봅니다.

2023/09/08

살인을 예고합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이은선 : 별점 2.5점

살인을 예고합니다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의 온갖 가십이 실리는 신문 「가제트」에 기묘한 광고가 떴다. 이웃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약속이나 한듯 정해진 시각에 리틀 패덕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6시 30분에 방안의 불이 꺼지고 누군가 침입했다! 곧이어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은 쓰러진 침입자를 보았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 블랙록 양을 쏜 뒤, 스스로에게 총을 쏴 사망한 듯 했다. 하지만 크래독 경위 등 경찰 관계자들은 미심쩍음을 느꼈고, 마을을 방문한 미스 마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블랙록 양의 친구이자 동거인 버너 양의 독살, 마을 주민 머거트로이드 양의 교살 사건이 이어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중 두 번째로 읽은 작품. 미스 마플 시리즈인데, 세인트 메리 미드가 아닌, 또 다른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이 무대입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를 실으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어요. 이에 대한 설명 - 좀도둑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도짓을 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 도 꽤 그럴싸했고요. 경찰 관계자들이 미심쩍어 하지만 않았어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 번에 털려고 했던 창의적인 강도가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죽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전후 식량과 의류가 배급제로 이루어지고, 때문에 마을 내에서 물물교환이 버젓이 이루어지던 시대 배경도 흥미로왔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 누구나 리틀 패덕스에 드나들 수 있어서 다들 용의자가 되어 버리고 말거든요. 힘들었던 시대에 있었던 일까지 작품에 효과적으로 반영시키는건 정말이지 거장다운 솜씨라 할 수 있겠지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본격 추리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줄 만합니다. 블랙록 양이 사건을 꾸몄다는걸 처음 마을 주민들이 리틀 패덕스에 모일 때의 대사로 명확하게 알려주는 덕분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틀 패덕스에 모인 마을 주민들 모두가 석탄 배급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난방을 돌린걸 언급하는데, 벽난로 불을 때면 간접 조명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던 블랙록 양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난방을 돌렸던 겁니다! 불을 꺼지게 만든 장치도 가구에 남은 담뱃자욱, 바뀐 조명등, 물이 없어 말라버린 제비꽃 등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며, 레티셔 블랙록과 샬럿 블랙록 신분이 뒤 바뀌어 있다는 것도 도라의 말실수 - 어떨 때는 레티, 어떨 때는 로티라고 부르는 - 를 비롯하여 스위스에서의 수술, 항상 목에 거는 가짜 티 나는 진주 목걸이 등의 여러가지 단서로 알려줍니다. (레티와 로티는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유용한 단서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핍과 에마의 정체가 이란성 쌍둥이지만 둘 다 여자아이였다는 사소하지만 나름대로의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헛점이 많은 편입니다. 범인 블랙록 양의 계획부터 안이했습니다. 경찰들이 엄연한 강도 살인 사건을 이렇게 쉽게 덮을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기발했던 '살인 광고'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했습니다. 경찰들도 지적하듯이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봤자 강도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다른 곳에 모이기를 기도하고 빈 집을 털 생각을 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동네 이웃 집을 방문하는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나 거액의 현금을 들고갈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모인 탓에, 블랙록 양이 총소리가 났을 때 자리에 없었다는걸 머거트로이드 양이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좀 바보같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빠릿빠릿한, 아니 보통 수준의 지적 능력만 갖추고 있었더라도 초반부 머거트로이드 양 증언으로 블랙록 양의 계획은 실패하고 체포되었을 거에요. 
한마디로 말해 살인 광고는 증인만 늘린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광고없이 셰르츠를 집으로 오라고 속이고 살해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어요. 증인이야 버너 양, 가정부 미치면 차고 넘쳤을테니까요. 동거하는 조카들도 있고.

또 사건을 꾸밀 때 블랙록 양을 향해 총을 쏜 걸로 위장한건 너무나도 큰 실수였어요. 수사하다보면, 그녀가 벨 괴들러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는게 드러날테고, 그렇다면 용의자로 유산을 노리는 벨 괴들러 동생의 자녀들 - 핍과 에마 - 이 떠오르는게 당연했습니다. 흉기인 권총도 마을 주민 이스터브룩 대령의 소장품을 훔쳤다는게 밝혀졌다면, 죽은 강도 세르츠가 그 총이 있다는걸 알고 훔쳤을리가 없으니 - 불가능한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겠지요 - 용의자는 마을 주민으로 더욱 좁혀졌을테고요. 그냥 아무데나 총을 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자기한테 총을 쏜 것처럼 꾸몄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범행 자체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셰르츠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기전에, 괴들러의 유산을 받을 때 까지만이라도 버티는게 상식적이니까요. 실제로 협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많습니다. 특히 블랙록 양의 가정부 미치는 타고난 거짓말장이에 과대 피해 망상증 소지자로 등장할 때마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라서, 빨리 피해자가 되기를 바랄 정도였어요. 제가 블랙록 양이라면 리틀 패덕스에 강도가 든 걸로 꾸밀 때, 미치를 죽이고 셰르츠가 실수로 죽인걸로 위장했을 겁니다....

그래도 동기에 대한 설명만큼은 확실하고, 공정함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완전 공략>>에서는 따분하다는 이유로 별점 2점을 주었던데,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2점은 다소 가혹해 보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1/05

명작 의자 유래 사전 - 니시카와 다카아키, 사카구치 와카코 / 박유미 : 별점 2.5점

명작 의자 유래 사전 - 6점
니시카와 다카아키 지음, 사카구치 와카코 그림, 박유미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역사 속 대표적인 의자 350가지를 선정한 뒤, 큰 판형을 잘 활용한 상세한 일러스트와 디자이너 정보와 함께 시대순, 지역별로 구분하여 소개하는 디자인 역사서입니다.

의자 디자인에 대한 책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의자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제품 디자인'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의자 디자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고 깊은지를 잘 알려주는데, 책에 따르면 의자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오늘날 의자의 형태가 이 때 거의 완성되었거든요.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자인 헤테프헤레스 1세의 황금 안락 의자, 그리고 좌석, 등판, 팔걸이, 4개의 다리, 하인방의 부재 (4개의 다리를 엮어 지탱하는 구조물)로 구성되어 오늘날의 의자 기본 구조와 거의 동일한 투탕카멘의 옥좌 등의 발굴로 증명되고요. 개인용 목제의자는 현대의 스툴 개념과 동일합니다.

그 다음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없지만 그림으로 확인 가능한 고대 그리스의 의자 클리스모스, 고대 로마의 카데드라를 거쳐 중세 유럽으로 넘어가는데, 중세 유럽은 문화와 건축 양식에 따라 구분됩니다.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의 세가지 양식으로요.
이러한 문화와 양식 측면의 구분은 다음 시대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으로 이어지며 해당 시기마다 그 양식을 대표하는 의자들이 소개됩니다. 로코코부터는 나라별로 신고전주의 (루이 16세 양식), 퀸 앤 양식 (영국 앤 여왕 제위 시대 양식) 등으로 더 상세하게 구분한게 특징입니다. 이 때부터 특정 문화와 양식에 종속되어 유행을 따라가지 않은 디자이너 -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토마스 치펀데일 - 가 등장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 뒤는 특이하게 특정 '의자'의 소개로 넘어갑니다. 영국의 윈저 체어, 미국의 셰이커 체어, 토넷의 곡목 의자입니다. 한 시대를 거의 평정하다시피하며, 지금도 사랑받는, 일종의 '양식'과 '형태'를 만든 명작 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는 다시 양식으로 구분되는데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 아르누보와 20세기 전반 모던 양식 등으로 이어지고, 20세기부터는 현대 의자라고 해도 무방한 의자들과 유명 디자이너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친숙한 이름이 많아서 반가운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매킨토시와 힐 하우스 래더백 체어, 해릿 토마스 릿펠트의 레드&블루 체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야콥센의 스완 체어와 더 에그 체어, 베르너 팬톤의 팬톤 체어, 핀란드의 영웅 알바르 알토와 그의 의자들, 미국의 천재 찰스 임스와 그의 의자들, 그리고 현대의 아론 체어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20세기부터의 소개는 조금 아쉽습니다. 19세기까지의 소개는 크게 특정 시기를 묶어서 의자의 발전사를 시대순으로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었는데, 그냥 유명한 의자들을 닥치는대로 소개한 것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책의 소개만으로 특정 양식이나 흐름 등을 알아차리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나열식으로 의자와 디자이너를 소개하면, 이전에 읽었던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와 같은 책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아니, 흑백 일러스트로 소개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못합니다. 큰 판형을 살리지도 못하고 대부분 작은 사이즈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뒤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형태, 계통도로 정리해 놓기는 했는데 실제 본문과 연결해 보기는 어려운 만큼, 차라리 이 형태와 계통도를 맨 앞에 목차처럼 수록하고, 의자들의 소개도 계통도대로 명확하게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목 그대로 '유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아울러, 일본이 제품 디자인 강국이기는 하나 '명작 의자 유래 사전'이라는 책에 한 꼭지를 할애하여 역사를 소개하고, 주요 디자이너와 의자를 소개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본에서 나온 책이라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뭔가 공평한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19세기까지는 별점 5점을 주어도 괜찮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감점합니다. 의자 디자인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뒤의 부록과 같은 형태, 계통도만 참고하면 좋을 듯 합니다.

2020/02/21

미스터리는 풀렸다! - 박광규 : 별점 2.5점

미스터리는 풀렸다! - 6점
박광규 지음, 어희경 그림/눌민

주간 경향에 연재되었던,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이셨던 박광규씨의 컬럼을 모은 책으로 추리 소설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재 당시에 대부분 읽은 터라 별도의 단행본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헌책방에 올라와있기에 구입했습니다.

사실 저도 추리 소설이라면 남 못지 않게 읽은 탓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웹 사이트가 아니라 책으로 진득하게 읽으니 이전에 놓쳤던 세세한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클라이브 커슬러의 시리즈 주인공 더크 피트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생환하는지, "스트라이크 살인"탐정역이었던 프로야구 선수 하비는 후속작에서 아예 사립탐정으로 전직했다던지, 제닛 에바노비치기리노 나쓰오가 원래는 로맨스 소설 작가였다던지, 요코미조 세이시는 편집자 시절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빌린 대필 작품을 발표했다던지, 체스터튼은 194cm에 135kg의 거구였다던지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쉽게 알 수 없는 정보들은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주고요. 펠레, 나브라틸로바, 찰스 바클리가 추리 소설을 발표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읽기는 어려울겁니다. 공저라고는 합니다만.
다카키 아키미쓰"문신 살인사건"을 쓰게 된 이유가 점술사의 권유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점술사가 대가에게 원고를 보내라고 해서 에도가와 란포에게 보낸 뒤 출간과 성공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보면, 점이라는게 그냥 미신으로 치부할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시콜콜한 추리소설 관련 뒷 이야기 외에도 '헌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와 소설 속 화폐가치를 현재 가치로 치환하여 알려주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했던 동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제목이 바뀐 작품들의 이유를 알려주는 등의 좋은 분석 자료들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추리 소설 정보서에서 보기 드물게 국내 작품 소개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저도 꽤나 애호가라고 생각하지만 황세연이 1998년 발표한 단편 "떠도는 시체"같은 작품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박광규씨의 내공의 깊이, 그리고 연륜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요.

또 이런 류의 책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읽지 않고 잘 몰랐던 작품들 소개도 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스포일러 등 핵심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면서 작품을 소개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핵심 내용이 빠진채 소개되는 작품들도, 그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니까요. 스티븐 킹의 "죽음의 지대", 딘 쿤츠의 "어둠의 소리", 구라치 준의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등은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소개 이후 진상이 너무나 궁금하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백은의 잭"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줄거리 요약은 저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일단은 작품들이 고르게 소개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겠죠. 소개되는 작품은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의 황금시대 (골든에이지)와 1990년대 후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추리 소설 강국이기는 하지만 비중만 놓고 보면 영, 미에 비하기 어려운 일본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도 같은 이유로 문제고요.

억지스럽게 가져다 붙인 소재들도 약간은 거슬렸습니다. 무주택자 탐정을 소개하면서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의 지장 스님을 예로 드는게 대표적입니다. 행각승이 집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에 따른게 아니라, 단지 직업 탓에 집이 없는걸 특이하다고 설명하는건 억지죠. 예로 든 바와 같이 진짜 집이 없는 주인공은 잭 리처 정도면 족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요리를 즐긴다는 것도 딱히 와 닿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처럼 요리가 직업인 탐정을 예로 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큰 문제인데 연재 때에는 풍성했던 여러가지 자료 도판이 전무하다는건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유명 작가들의 아들, 딸 관련 글에서 작가들 가족 사진같은건 꽤 인상적이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처럼 연재 당시에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또 읽어보실 필요는 없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가볍게 읽을거리로 추천드립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즐길거리가 많은건 분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