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전복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전복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0/08/02

2020년 8월의 신라호텔 팔선 디너 코스

온 가족이 오랫만에 모여, 좋은 식사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의미있는 자리라 아버님께 의견을 여쭈었는데, 중국 요리를 선택하시더군요. 그래서 신라호텔 팔선에 디너 코스를 예약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선택한 코스는 아래의 '여의' 코스였습니다. 코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았더니, 불교 용어이기도 하고 '마음 먹은대로 된다' 는 뜻인데, 왜 이런 단어를 썼는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네요.
1. 제철 정선 전채
장어와 문어, 찌고 튀긴 듯 크리스피한 삼겹살과 버섯의 구성입니다. 단짠단짠인데 맛이 강하지 않고, 한 입에 먹기 좋아서 그야말로 전채라는 느낌이 드는 메뉴였어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2. 캐비아 망태버섯 제비집.
제비집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식감이 재미있더라고요. 맛은 담백,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망태버섯과 캐비아의 존재감은 무척 약합니다. 맛에 있어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였어요. 제가 둔감한 탓이겠지만요.
3. 홍소소스 청새리 상어 지느러미 찜.
이거 진짜배기 상어 지느러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도 어느정도 있고,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은 신기한 식감에 소스도 부담없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4. 고법 불도장
도가니, 전복, 오골계 등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불도장. 그러나 고명들보다도 묵직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은근하게 간을 맞춘 국물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코스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5. 어향소스 길품 전복과 오룡해삼
코스의 마지막 요리인데 전복의 크기는 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소스맛도 특출나지 않고 전복의 맛도 크기에 비하면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어향 소스는 어향 가지로 아주 친숙하며, 오룡 해삼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신선함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리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6. 식사.
저는 짬뽕을 선택했습니다. 짜장, 짬뽕, 기스면, 볶음밥, 중국식 냉면 등이 가능합니다. 고명, 건더기 등 전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료 외에는 일반 중식당 짬뽕과 구분되는 맛은 아니었어요.
7. 디저트
멜론 반통, 그리고 가운데 씨를 파낸 곳에 감으로 만든 소스를 채워 넣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대단한 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손이 간 그런 디저트를 기대했거든요.
이렇게 코스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가격에 비하면 맛이 만족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네요. 제가 이 코스를 또 먹을 일은 아마도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가족 모임이라는 자리에는 아주 잘 어울렸으며, 어른들께서 좋아하셨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서비스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고, 룸 상태나 이런저런 디테일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혹시라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코스 요리를 먹어볼 생각입니다.

2018/01/04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황선도 : 별점 3점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6점
황선도 지음/서해문집

2018년 첫 리뷰네요. 한국 어류학자 황선도가 한국 해산물에 대해 전문적 지식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16종의 어패류 및 우리 바다 환경에 대한 글들이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관련된 도판도 충실합니다.

바다에 관련된 전문 지식의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제목과 연관된, "먹거리" 관련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오분자기는 원래 지천에 널렸었고 국물 맛이 전복보다 좋아 해물 뚝배기에 많이 썼는데 지금은 씨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처럼요. 지금의 오분자기 뚝배기는 작은 전복을 쓴다는군요.
조선 정조 대 문인 이옥의 "백운필" '석화' 편에 "석화의 쓰임은 회가 최고이고, 무치는 것이 다음이고, 젓갈로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죽을 만드는 것이 또 그 다음이고, 전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국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못하다"고 적혀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이 당시에는 튀김이 들어오기 전이었겠죠? 튀김이 있었다면 회하고 좋은 승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사투를 벌여 잡은 물고기가 "대서양 녹새치"라는 주장도 재미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새치를 주문한 이사무를 주위 사람들이 비웃는 에피소드도 떠오르네요. 새치가 "노인과 바다" 속 사투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를 이사무가 알았더라면 비웃던 사람들에게 "새치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입니다. 여러분들도 문학의 향기를 좀 느껴 보시죠!"라고 한 방 날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래서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참돔이 양식이 되는 탓에 양식이 안되는 감성돔이 고급 어종으로 부상했다는 등 좋아하고 즐겨 먹는 돔, 방어나 참치, 연어, 소라, 꼬막, 키조개 등 친숙한 해산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리고 황폐화된 바다 자원을 재생하기 위한 노력 사례가 수록된 마지막 부분은 책의 화룡정점입니다. 남획 등으로 사막처럼 변한 마안도 재생을 위한 수중림 조성이 가장 돋보이는데,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위도와 마안도 등은 한 번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저자의 전공 분야인 어패류 관련 지식 외의 각종 정보들의 수준도 높습니다. 특히 "어원"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인상적입니다. "스키다시"의 어원은 "붙이다"라는 뜻의 일본어 스케루에서 온 것으로 우리말로는 "곁들이", 즉 사이드 디시를 의미한다, 중국의 '남삼여포'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해삼,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는 뜻이다, 멍게는 방언으로 원래 표준어는 "우렁쉥이" 였는데 방언이 더 널리 쓰이게 되어 표준어가 되었다, "진상"은 "진상품 부역"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에서 비롯된 말이다라는 것들입니다.
갯벌, 갯뻘, 개펄 중 뭐가 맞는 표현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줍니다. 개(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갯벌"이 맞으며 갯벌에 있는 흙이 "개펄" 이라고 하네요. 과학자도 글을 쓰려면 이 정도까지 공부하는구나 싶어서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료로 고증해 주는 우리 어패류에 관련 역사들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도루묵" 이야기에 나오는 왕은 선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 함경도, 경상북도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데 선조는 임진강, 평양, 의주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이랍니다. 고려시대 왕들도 동해안 쪽으로 피난 간 왕이 없다니 과연 "도루 묵이라 불러라"고 한 왕은 누구였을까요? 궁금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조선의 전복 진주가 명산품으로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새로왔고요.

이렇게 재미도 있고, 담겨있는 정보도 충실한 좋은 인문학 서적입니다. 전문성을 찾기에는 조금 가벼운 에세이 느낌이 강하다는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장점이 더 많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역시, 믿고보는 서해문집이네요.

2019/11/03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윤덕노 : 별점 2.5점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6점
윤덕노 지음/깊은나무

음식 관련 저서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작가인 윤덕노의 2017년 발표작입니다. 전작들은 특정 요리, 음식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많았었는데, 이 책은 부제인 "같은 재료 다른 요리 한중일 음식 문화사" 처럼 특정 재료나 요리가 '한중일' 3개국에서 어떻게 다르게 조리해서 먹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고찰하여 설명해준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두 여섯 개의 파트, 2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전복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 모두에서 최고의 귀한 재료로 인정받은 거의 유일한 재료라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위해 전복 200개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조선에서도 영조를 비롯하여 세종과 문종 등 왕들의 수라 단골 손님이었고요.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쓰일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군요. 전쟁을 떠나는 무사들이 신에게 바치는 세 가지 음식 - 얇게 편 전복, 말린 밤, 다시마 - 일 정도로 말이지요. 

밥을 지을 때 생길 수 밖에 없는 누룽지 역시 한중일 3개국에서 흔히 먹은 식재료입니다. 이 중 한국의 숭늉은 소화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숭늉이라는 말이 한자어 숙냉 (熟冷)에서 비롯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일종의 부산물로 생각하고 음식 재료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누룽지탕'이라는 요리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주로 과자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중국인들의 요리에 대한 집념이 새삼 느껴집니다.

조기는 한국과 중국에서는 자주 먹는 생선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어'라고 부르는데 황금이 들어온다는 의미가 되어서 맛 이외에도 행운을 바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많이 쓰인다네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묵 재료로나 쓰는 잡어라니 좀 신기합니다. 온갖 해산물에 대해 최고의 맛을 끌어내도록 처리하여 만든다는 '에도마에' 전통이 왜 조기에는 해당되지 않았을지 의문이에요.

그 외에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귀한 채소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신라시대부터 재배해서 풍부했던 탓이라는 설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외래종 산물은 중국을 통해 전해지는게 일반적인데 인도에서 신라로 바로 전해진 뒤, 다시 중국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을 다양한 사료로 증명하고 있거든요.

재료들 관련 이야기말고 조리된 음식을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점심과 딤섬과 같은 식문화 자체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요. 이 중 송편과 월병, 츠키미당고의 관계가 재미있었습니다. 추석, 즉 보름을 기념하는 음식답게 월병과 츠키미당고는 모두 동그랗고 이름에도 달이 들어가는데 송편만 이질적이지요. 둥그렇지도 않고 이름도 소나무를 의미하니까요. 이건 송편은 추석 고유의 명절 음식이 아니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또 솔잎으로 찌는 이유는 향 때문이 아니라 보관성을 높이기 때문이라네요.

합격을 기원하며 선물하는 엿, 찹쌀떡 이야기에서 이런 습관의 유래는 당나라부터였다는 설도 인상적입니다. 과거 제도는 수나라 때 부터 있었으니 그 이후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며 당나라 때로 확인된다는 거지요. 당시 합격 기원 음식은 돼지족발이었다고 하고요. 이유는 장원급제한 사람을 알리는 대자보는 붉은 글씨로 제목을 써서 주제 (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쭈티'입니다. 그런데 이게 돼지족발 발음과 같다는군요. 재미있죠? 그러나 중국에서도 지금은 찹쌀떡의 일종인 장원떡을 먹는다는군요. 합격죽도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맛의 달인"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글에서 많이 본 이야기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런 류의 책을 열 권이 넘게 썼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짜장면이나 다꾸앙, 스키야키와 승기악탕 등의 이야기는 그만큼 많이 보아왔던 내용들이에요.
3개국은 무리였는지 한일, 한중과의 관계만 쓰여있는 소재들도 더러 있습니다. 신선로와 스키야키, 어묵과 오뎅, 한국식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그러합니다. 어쩔 수는 없겠지만 약간은 반칙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이럴 바에야 주제를 줄여서 더 깊게 접근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누룽지'는 자포니카 종으로 밥을 하는 나라에서만 생기는 부산물이니 만큼, 그런 쌀로 밥을 만들게 된 이유라던가 전파 경로 등을 함께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게 더 깊이있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또 무리수를 둔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건 아귀가 우리나라, 중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나름 고급 음식 재료로 꼽힌 이유입니다. 적당히,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이론인데,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아요? 차라리 많이 잡히지 않아서 귀하게 대접받았다면 모를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윤덕노의 다른 저작들처럼 부족한 도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조금 읽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이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재미와 함께 나름 현학적인 욕심도 만족시키는 괜찮은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한중일 요리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7/24

2024년 7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중식당 남풍 코스

신라 호텔에서 코스를 즐겼던게 엊그제같은데, 다시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일이 생겼네요. 이번에는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부산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부산은 잘 모르지만, 부산 어르신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식당이 파라다이스 호텔 중식당 남풍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약 후 지난 일요일 점심에 코스 요리를 즐겼습니다.
저희 가족이 고른건 Steve Jun 코스였습니다. 디저트까지 모두 8개의 요리와 식사가 이어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Steve Jun 스페셜 냉채 :
랍스터 회, 찐 전복, 해파리 냉채, 멘보샤(?), 닭 조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료도 좋지만 회부터 튀김, 조림까지 다양한 구성에 간도 적당하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2. 남풍 시그니처 딤섬 3종 : 
하가우, 샤오마이, 구채하 3종. 새우와 부추가 섞인 구채하가 제일 좋았습니다. 다른 2종은 비교적 흔하게 먹을 수 있기도 하니까요.
3. 최고급 통 상어지느러미 찜 :
크기로 압도하네요. 4년 전 신라호텔에서 먹은 것 보다 소스가 훨씬 묵직하고 진한데, 크기가 커서 그런지 잘 어울렸습니다. 고급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전해 주고요.
4. 남풍 서해산 어자 해삼 활전복 :
'어자'는 소스 이름인 듯 합니다. 재료가 좋아서 맛있게 먹었지만, 간은 다소 심심했습니다. 조금 더 짭짤한게 좋았습니다. 
5. 북경 오리 1마리 :
셰프님이 직접 와서 손질해 주시고 말아주셨지만, 가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배가 부르기 시작해서 양이 적고 조금 자극적인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북경 오리를 뺀 조금 더 저렴한 코스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홍삼 고법 불도장 :
불도장은 제가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맛있었습니다. 재료도 좋았고요. 하지만 역시 뭔가 좀 심심하다는게 아쉬웠어요.
그리고 식사로는 랍스터 짬뽕, 마지막으로 다과로 구성된 디저트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식사와 디저트는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두 개 모두 별로였습니다. 랍스터 짬뽕은 랍스터는 질겼고 간도 애매했으며, 디저트도 가격에 걸맞는 퀄리티로 여겨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신라 호텔과 비교해본다면, 신라 호텔 쪽이 압승입니다. 맛이 없는건 아닌데, 남풍의 간이 전반적으로 제 입맛과는 잘 맞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많이 심심했는데, 이런 간이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한 좋은 식사였기에 만족합니다. 서비스도 좋았고요. 다름에 방문하게 된다면, 맛있게 즐겼던 요리 단품으로 몇 가지 시킬 생각입니다.

2014/03/31

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 별점 3.5점

식탁 위의 한국사 - 8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다양한 음식을 통해 그 음식 및 관련된 역사를 알려주는 미시사,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음식과 문화사 관련 서적을 많이 집필한 주영하 씨의 저서입니다. 무려 5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작이지요.

목차는 크게 다음의 5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개항기" – 다양한 외래음식이 전래된 시기와 그 메뉴들을 다룸
  2. "국밥집" – 설렁탕, 추어탕 등 국밥에서 시작해 비빔밥, 냉면, 만두, 배추 등을 소개
  3. "조선 요리옥" – 유명 요릿집과 고급 요리인 신선로, 탕평채, 전복 등을 다룸
  4. "대폿집" – 서민들의 안식처였던 대폿집, 선술집에서 먹었던 술과 안주 이야기
  5. "해방 이후, 음식의 혼정과 음식접의 글로벌화" – 해방 이후 변화된 음식 문화를 다룸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없을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소개된 요리들에 대해서는 기원과 역사, 당대의 레시피, 시조나 소설·영화 속 인용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동안 몰랐던 에피소드들도 풍부하게 담겨 있고요.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일제강점기 당시까지 전복이 굉장히 많이 잡혔다는 것, 편육이 원래 소고기 편육을 의미했다는 것, 전주의 명물인 탁백이국이 콩나물로만 만든 음식이었다는 것, 갈비구이가 원래는 대폿집의 저렴한 메뉴였다는 것, 빈대떡의 어원,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의 관계 등입니다. 간략하게라도 소개하고 싶지만,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자세하여 요약해서 인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실제 역사와의 직접적 연계 구성이 아니라는 점, 도판의 부실함, 몇몇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예: "탁백이국", "빈대떡") 때문에 조금 감점하지만, 재미는 물론이고 자료적인 가치도 최상급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한국 음식 문화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참고서 같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3/12/15

이퀄리브리엄 - 별점 2.5점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천 베일 주연 SF영화입니다.

미래 세계, 엄격한 통제에 의해 전쟁은 없어지고 감정은 억누르게 된다. 책과 예술 그리고 음악은 엄하게 금지되고 있고 감정이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존 프레스톤(크리스챤 베일)은 이런 법규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처치하는 최고의 정부 요원이다. 감정을 억제하는 세뇌약 프로지움의 복용을 놓치게 되자 엄격한 법률의 집행자로 훈련 받아온 프레스톤은 갑자기 그것을 오히려 전복시키는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영화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구조로 전개됩니다. 3차대전 이후 독재에 의해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는 도시국가나 감정을 조절하는 약 프로지움, 무술과 권총액션을 결합한 "건카터"라는 설정들과, 막판에 졸개들을 해치우고 보스와 대결하는 대결구도까지 많이 보아왔던 일본 작품들의 설정과 형식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중반부까지는 설정과 캐릭터, 그리고 위기를 벗어나는 프레스톤의 기지 등으로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지만 막판에 너무 쉽게, 한번에 끝내버린 것은 아쉽네요. 조금 더 클라이막스를 신경써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는 전체적으로 한번 지나가기에는 비쥬얼적으로 신경쓴 재미있는 요소도 많고 화려한 액션도 볼만한 그런저런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 매트릭스보다 낫다, 철학적 요소가 있다 등등 이야기가 많은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뭐 매트릭스 아류작임에는 분명하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7/18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윤덕노 : 별점 3점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6점
윤덕노 지음/청보리

다수의 음식 관련 서적을 발표한 윤덕노 작가의 책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음식 관련 속설이나 상식에 대해 풀어주고, 짚어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했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제목이 대표적인 예로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준 이유는 닭은 양기가 넘치며, 씨암탉은 알을 낳으니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고사상에 돼지 머리를 놓는 이유는 고사 자체가 돼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인간의 재물과 영화를 담당하는 신이며, 높은 신에게 사람의 소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군요.
냉면에 무가 들어가있고, 중국 면 요리는 단무지가 반찬인 등 국수와 무를 같이 먹는 이유는 옛 사람들은 밀이나 메밀에 몸에 좋지 않은 맥독이 있다고 믿어서 이를 중화시키기 위함이고요. "동의보감"에도 무는 체한 것을 빨리 내려주고 메밀 국수의 독을 풀어준다고 적혀 있지요. 무에 소화 효소가 풍부해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의 "고려도경"에 왕족, 귀족만 양과 돼지를 먹고 가난한 백성들은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을 잘 먹는다고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지금과 반대니까요. 미국에서도 오래 전에는 랍스터가 가장 싸구려 음식 재료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네요.

과거 복날에는 보신탕, 육개장, 팥죽, 연계백숙, 닭찜을 먹었다는데 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어야 하며, 음식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성질, 즉 귀신을 몰아내고 질병을 예방하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야 했거든요. 개고기를 복날에 먹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은 모두 경일로 쇠에 해당하는 날이라 개는 불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불은 쇠를 달구고 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닭은 흙의 성질을 지닌 탓에 더위를 물리칠 수 없어서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인삼을 더한게 복날에 먹는 삼계탕의 유래인 것이고요. 귀신을 몰아내거나 하는 속성이 없는 소고기로 만든 육개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시뻘겋게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계탕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음식이며, 고춧가루의 전래도 그리 이른 시기는 아닌 만큼, 여름과 복날에 삼계탕, 육개장을 먹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테니 다 나중에 끼워 맞춘게 아닌가 싶군요.

숙주 나물의 숙주라는 이름 유래는 저도 신숙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속설이며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콩을 '숙두'라고 하였기 때문에, 콩에서 나오는 싹은 숙두나물이 되었답니다. 그럴듯하네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순수 우리말인 신체의 일부를 나타내는 '도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도 꽤 합리적이에요.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습니다. '생선회'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즐겼다는 주장처럼요. 현존하는 문헌 중 생선회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며, 동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도 생선회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일본 문헌에 '사시미'가 처음 등장한 1399년보다 최소 150년 이상 앞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하지만, 한 번 생각해볼만한 내용으로는 보입니다. 그 외에도 밥 짓는건 조선 사람이 최고라던가, 조선은 두부 왕국이었다는 등의 재미난 기록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재미있지만, 다양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초기작인 덕분에 온갖 재미있을만한 아이디어를 가득 채워넣은게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7/20

도쿄의 뮤지엄을 어슬렁거리다 - 오타가키 세이코 / 민성원 : 별점 2.5점

만화가 오타가키 세이코가 도쿄 시내뿐 아니라 요코하마, 하코네, 유가와라, 사이타마 등 도쿄 근교를 포함한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직접 방문한 뒤, 그 경험을 일러스트와 함께 풀어낸 에세이집입니다. 저자의 시선과 감상이 담긴 일러스트가 좋아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느낌을 전해 줍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곳을 소개해드리자면, 도쿄 국립박물관은 저도 첫 일본 여행 당시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반가왔습니다. 저는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기나 모자이크 타일 벽 같은 세세한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는 덕분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은 파울 클레를 비롯해 히가시야마 가이이 같은 일본 국민 화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장소일 것 같고요.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열렸던 동서양의 교류를 주제로 한 기획전 소개도 좋았습니다. 판화가 하세가와 기요시, 설치미술가 스가 기시오, 그리고 달리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당시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스미다구의 호쿠사이 미술관에서는 '가나가와오키의 큰 파도' 같은 대표작을 상설 전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애호가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도쿄 근교 하코네에 위치한 랄리크 미술관은 아르누보 유리공예의 대가 르네 랄리크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공간으로, 오리엔트 특급 열차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팬이라면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질 만한 장소입니다.
사이타마 국립 현대 미술관의 의자 컬렉션도 흥미로운데, 전시된 의자에 직접 앉아볼 수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경험일 것입니다. 입장료가 단돈 200엔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가성비 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곳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뮤지엄 공간과 건축의 아름다움을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사쿠라 조소관은 '동양의 로댕'이라 불리는 아사쿠라 후미오가 설계한 공간으로, 붉은 마노를 갈아 벽에 바르고, 외벽에는 전복 껍질을 가루 내어 덧칠했다는 설명만으로도 그 정성과 고집이 전해집니다. 단게 겐조의 작품이라는 요코하마 미술관, 유서깊은 료칸을 개축했다는 유가와라 미술관, 구로카와 기쇼가 설계한 국립신미술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는 국립서양미술관 역시 건축물만 보아도 좋을 것 같고요. 특히 국립서양미술관은 일본의 유명했던 미술품 수집가 마쓰카타가 수집했던 컬렉션 중심인데 밀레, 마네, 모네, 고흐 등 유명 작가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있다니 빼 놓기 어렵지요. 이 정도 전시품에 입장료 500엔은 너무 싼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간단한 주위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어 도쿄 현대미술관이 있는 기요스미시라카와는 커피 애호가들에게도 잘 알려진 동네라고 합니다. 미술 감상과 함께 거리 산책, 카페 탐방까지 더해진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입니다.

컵 누들 뮤지엄이나 에비스 맥주 기념관 같은 공간들도 저자 특유의 호기심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요코하마에 위치한 컵 누들 뮤지엄은 음식에 대한 책을 발간한 경험이 있는 제 입장에서 더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 없네요. 마침 관련 책도 읽어본 적이 있고요. 에비스 맥주 기념관도 첫 일본 여행 당시 방문했던 곳인데, 또 가 보고 싶어집니다.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처럼 기차역 안에 위치한 미술관도 새로운 발견처럼 다가왔고요.

이렇게 저자의 시선을 따라 읽다 보면, 책 속의 여러 미술관을 메모해 두고 언젠가 직접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단 책의 상당수가 기획전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이미 끝났을 전시에 대한 내용은 독자 입장에서 실용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상설 전시나 소장품 중심의 소개가 더 많았더라면, 아니면 뮤지엄 주변의 관광 정보가 더 곁들여지는게 보다 활용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박물관들을 지역별로 묶어서 지도와 함께 코스를 소개하는 방식이었더라면 여행자에게 훨씬 더 유익했을 텐데, 저자 주관적인 구성으로 묶여 있는 탓에 실용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흥미도를 찾기 어려운는 뮤지엄들이 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담배와 소금 박물관, 도라상 기념관 등은 개성은 있으나, 일부 독자에게는 굳이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공간일 수 밖에 없지요. 또 모든 주석을 책 뒷부분 미주 형식으로 처리한 것도 읽는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본문 하단에 각주를 바로 넣는 방식이었으면 훨씬 읽기 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 또는 근교 여행을 계획 중인 분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된 뮤지엄 중 한두 곳을 골라 직접 둘러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어슬렁거림을 실제 여행으로 확장해 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여, 혹시 도쿄에 여행간다면 하루 정도 뮤지엄 둘러보는 코스가 무엇이 좋을지, 제 기억에 남은 뮤지엄 중심으로 ChatGPT에게 물어보았는데 아래 코스를 추천하네요. 우에노 미술관 트리오 코스는 다음 여행에 참고해야겠습니다.1~2년 안에 꼭 가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코스 1: 우에노(Ueno) 미술관 트리오

도쿄 국립 박물관 (Tokyo National Museum) → 국립서양미술관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 도쿄도 현대미술관 (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장점: 모두 우에노 공원 내 도보권. 이동 시간 최소화, 하루에 세 곳 방문 가능

코스 흐름: 도쿄 국립 박물관 (추천 관람 2h) – 일본·아시아 전통·불교미술과 국보 컬렉션이 압도적 → 도보 5분 → 국립서양미술관 (추천 관람 1.5h) – 피카소, 고흐, 폴록 등 서양미술 정수 → 도보 5분 → 도쿄도 현대미술관 (추천 관람 1.5h) – 국제전시와 현대미술 대규모 기획전

총 소요 시간: 관람 5h + 이동 10분 + 휴식/점심 포함 약 6시간 → 오전 9시 시작 시 오후 3~4시 일정 종료 가능

코스 2: 도쿄 북·서쪽 모던 아트 여정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MOMAT) → 아오야마 네즈 미술관, 또는 스미다구 호쿠사이 미술관

장점: 일본 근대·현대 미술 → 전통 장식 미술 순으로 다양한 감상 가능

코스 흐름: MOMAT (Takebashi 역) – 2~3시간 → 이동: 지하철 도자이선 → 오모테산도역 환승 → 긴자선 → 아오야마 네즈 미술관 (1520분) 관람 1.52시간 또는 지하철 이동 → 스미다구 호쿠사이 미술관 (약 20~30분 이동, 1–1.5시간 관람) 

총 소요: 관람 3.55h + 이동 4060분 → 여유 있게 오후 일정 종료 가능

2012/10/23

야수는 죽어야 한다 - 오오야부 하루히코 : 별점 1.5점

야수는 죽어야 한다 - 4점
오오야부 하루히코/고려원(고려원미디어)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다테 구니히코는 해방 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본으로 귀항했다. 성장하면서 성공, 그리고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게 된 다테가 가장 빠른 성공을 위해 택한 것은 "범죄"였다...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전설적인 데뷔작. 다테 구니히코라는 희대의 안티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하드보일드 활극입니다.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당대 대히트작이기도 하죠. 대학교 입학금 강탈이 필생의 목표로 그려지는 100여 페이지 분량의 1부와 아버지, 여동생의 원수인 게이큐 재벌의 총수 야지마 가문에게 복수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참신했을 테고 다양한 장르물에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나, 무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별달리 새로울 것 없는 흔해빠진 안티히어로 액션 모험물일 뿐이라 실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일단 설정부터가 오버스러워요. 키 180cm에 복싱으로 다져진 몸매, 뛰어난 사격 실력과 운전 실력, 수려한 외모, 하버드 유학 경험까지 있는 영문학자라는 설정을 갖춘 내추럴 본 킬러 다테 구니히코라는 캐릭터는 남성 판타지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만화적인, 현실성 제로의 인물이죠. "아이거 빙벽"의 조너던 헴록은 이놈에 비하면 옆집 아저씨 수준이에요.

범행들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현실성 측면에서는 1부가 조금 낫기는 합니다. 대학교 입학금 강탈 작전은 1,600만 엔 정도로 끝나서 그러려니 할 수 있으니까요. 허나 2부에서의 은행 습격 시 강탈한 돈은 무려 87억 엔으로 묘사되는 등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라 뭐라 언급하기도 난감하네요. 이 정도면 거의 국가 전복, 쿠데타 수준이 아닐까요?

캐릭터의 강한 마초적 매력과 함께 디테일한 총기류와 범행에 대한 묘사, 빠른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 재미는 충분하나, 설득력 측면에서는 빵점에 가까운 전형적인 펄프 픽션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 당대 독자에게 어필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일부 있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것이 정답인 듯합니다. 그래도 마쓰다 유사쿠 주연의 80년도 영화 작품은 한 번 보고 싶네요.

2016/03/26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유키 쇼지 / 김선영 : 별점 2.5점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6점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나"는 사이공으로 파견된 니치난 무역 사원으로 직무와 함께 도쿄 복귀 예정이었던 전임자 가토리의 실종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아낼 의무까지 지게 되었다. 나는 가토리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훈, 그리고 임시 거처 양양관의 수상쩍은 이웃들인 득, 토 등과 얽히며 복잡한 베트남의 정치적 세력들의 암투가 벌어지는 싸움의 한복판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일본 추리 문학사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스파이 소설의 고전.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서 무려 19위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는 분명합니다. 베트남 전쟁 직전의 남베트남을 무대로 평범한 일본 파견 주재원인 주인공이 목숨이 위태로운 첩보전의 세계에 휘말려 들어가는 과정을 꽤나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반면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 볼만한 정교한 작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모리가키의 덫에 걸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우연이기는 하지만 사택을 빠져나와 양양관에 머물게 된 시점부터요. 주인공이 한 일이라곤 모리가키의 부탁으로 옆방 토에게 서류를 전해준 게 전부고요.
물론 주인공이 우편배달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토리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두 세력 - 응오딘지엠 정부 전복을 노리는 세력과 베트콩 세력 - 모두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목이기도 한 "고메스의 이름은..." 이라는 말을 살해당한 "초"로부터 들은 이후는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여러 사건이 벌어져서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 직전의 베트남에 대한 묘사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당시 베트남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정된 자료로 썼다는데, 그런 것 치고는 사이공과 여러 유명 장소에 대한 묘사 모두 괜찮았어요. 저도 가보지도 못하고 당시를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럴듯하다는걸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명 식당과 클럽, 주인공이 휘말린 양대 조직과 조직원들의 묘사 모두 말이죠.

또 잔류 일본군을 소재의 하나로 사용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고메스를 자칭한 전화를 일본어로 한 이유는, 베트남어와 프랑스어로 주인공과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약간의 트릭처럼 사용되기도 하는데 작품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오히려 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예요.

하지만 과연 이게 스파이 소설인가? 하는 의문은 생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주인공은 스파이가 아니고 별다른 작전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스파이의 사전적 의미는 "수단을 써서 적이나 또는 경쟁 상대의 정보를 탐지하여 자기편에 통보하는 사람"인데, 주인공은 그냥 봉투 전해주는 운반책일 뿐입니다. 그것도 끝까지요. 이런 류의 소설에서는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결국 특정 조직을 위해 싸워나가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즉,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험물이나 재난물(?)일 수는 있지만 스파이 소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과 가토리를 진짜 스파이 모리가키가 끌어들인 이유 역시 불분명합니다. 몰래 봉투를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양양관에 거주하게만 해도 충분했을 거예요. 같은 일본인이라 반가운 마음에 자주 방문한다, 정도의 핑계를 대고 방문한 후 돌아갈 때 직접 옆집 문 앞에 봉투를 던져 놓는 정도로도 가능했을 일이니까요.

게다가 결말이 시시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메스가 누구였는지 중요치 않다는 건 정말 문제예요. 고메스는 그냥 고메스로, 어차피 주인공과는 별 관계없는 베트콩 조직 내 암호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게 뭔가 싶더군요. 최소한 "부머랭 살인사건"에서의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라던가 "39계단"의 "39계단" 정도의 의미와 용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는 식으로요. 허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수사와 미행을 통해 사건에 개입하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말은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 소재를 낭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그나마 조직에서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긴박감이 넘치지만 이 역시 모리가키의 변덕에 불과할 뿐더러 운이 많이 좌우하기에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묘사도 매력적이고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위의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고전으로 일상계 스파이물이라는 독특함은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슈퍼 스파이들이 난무하는 지금 시점에 먹힐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딱히 고전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6/06/13

검의 대가 (Maestro de esgrima, El)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열린책들

마드리드에서 혼자 살고 있는 쉰 여섯의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한때는 화려한 시기를 보냈지만, 점차 그 유행과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검술을 가르치며 연명하는 검술 교사이다. 

1868년 여름, 이사벨 2세 여왕 정부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정권을 전복시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며 어수선하던 어느 날 돈 하이메에게 아델라 데 오테로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돈을 두 배로 주겠다며 돈 하이메가 직접 창안한 '2백 에스쿠도' 검법이라 불리는 공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끈질긴 간청으로 약간의 시험을 거친 뒤 그녀가 뛰어난 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검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점차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레베르테의 대표작이라는 "검의 대가"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 작가 작품은 네 번째로 읽어보는데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이며 제가 읽은 것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이네요.

특징이라면 초기작이지만 다른 작품들 처럼 역시 작가의 뛰어난 자료 조사 능력이 돋보이는 현학적 재미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뒤마 클럽"이 고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 체스라면 이 작품은 "알라트리스테"와 비슷하게 스페인의 근대사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검술 (펜싱)" 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해 줍니다. 19세기 후반의 스페인을 무대로 당시의 격동적인 사회상을 소설 내용에 그대로 반영한 전개는 역시나 레베르테 답다는 탄성이 나오게 할 만큼 잘 짜여져 있고요. 

또한 "뒤마 클럽"이 재미와는 상관없이 고서사냥꾼 코르소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잘 묘사한 것 처럼 이 작품에서도 돈 하이메라는 정말 "검의 대가"같은 그럴싸한 캐릭터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어떻게 보면 나이든 알라트리스테와 느낌인데 진중한 멋이 느껴지는 멋진 캐릭터라 무척 호감이 갔습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는 체스의 고수 캐릭터가 약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두 작품의 장점만 섞어 놓았달까요? 기본 설정과 캐릭터, 묘사에서 일단 먹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펜싱에 대한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고 당시 사회상에 대한 묘사, 돈 하이메의 과거사 등에 대한 설명이 과해서 지루한 측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현학적인 과시욕 때문이었을까요? 움베르토 에코의 여러 작품들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2/3 정도로 분량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메인 스토리 자체는 다른 웅장한 설정이나 묘사에 비하면 많이 약하기 때문에 분량 면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또한 마지막의 대결 장면은 아무리 진검과 연습용 검의 차이는 있지만 "검의 대가"인 돈 하이메의 캐릭터 때문에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 긴장감이 덜한 것 역시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우연찮게 케이블 TV에서 방영했던 영화를 먼저 감상했었기 때문에 결과를 미리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책에 등장한 다양한 펜싱의 자세를 약간의 도해로나마 표현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가 스스로는 "200 에스쿠도"를 눈이 휭휭 돌아갈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고 있는데 머리로는 그 검법이 전혀 그려지지 않거든요. 책 자체는 이쁘게 잘 나왔는데 약간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로 먼저 보기는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소설을 보니 확실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드네요. 돈 하이메 캐릭터를 잘 살렸던 영화나 다시 구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 근데... 이게 "추리물" 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2024/05/08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1 - 아라키 히로히코 : 별점 2.5점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1 - 6점
아라키 히로히코 지음/문학동네

애니메이션을 보고 뒤늦게 찾아본 원작.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3작품 - "고해소", "무츠카베자카", "부호촌" - 외에 "밀어해안"과 아주 짤막한 소품인 "키시베 로한 구찌에 가다"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밀어해안"은 전복을 밀어하다가 생명을 잃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몰리는 이야기입니다. 캐릭터와 잘 어울렸어요. 특유의 작화도 좋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야기에서 위기 상황을 모두 '헤븐스 도어'를 활용해서 간단하게 빠져나가는건 시시했습니다. 공들인 설정에 비하면 지나치게 쉽게 간 느낌이에요. '헤븐스 도어'가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까지 한다는건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키시베 로한'이나 '스탠드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과 출판물을 비교해서 생각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만화 버젼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시각 테러에 가까웠던 색감의 애니메이션보다는, 흑백의 만화 작화가 작품에 더 잘 어울렸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패션과 헤어스타일도 만화에서는 크게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물론 각종 음향 효과와 성우들의 연기 덕분에 서스펜스, 스릴은 애니메이션 쪽이 더 나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무츠카베자카"에서 시체를 숨기는 장면이라던가, "부호촌"에서 예절 승부를 펼치는 장면은 확실히 애니메이션이 괜찮았어요. 애니메이션도 흑백으로, 아예 거친 펜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작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후속작은 그렇게 제작되기를 기원합니다.

2019/11/16

역사를 바꾼 총 AK47 - 마쓰모토 진이치 / 이정환 : 별점 2점

역사를 바꾼 총 AK47 - 4점
마쓰모토 진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민음인

일본 르포라이터 마쓰모토 진이치의 르포입니다. 

책에 대해 전혀 모른 상태에서 AK 47의 등장과 주요 전장, 활약을 다룬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정부가 기능하지 않는 무법 천지에서 총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고발하고 알려주는 르포이기 때문입니다.

시에라리온이나 소말리아와 같은 위험 지역의 현재 상황을 직접 발로 뛴 정보를 통해 알려준다는 점은 좋습니다. 세계의 위험지역을 누비며 취재하는, "용오"와 같은 일본 만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르포라이터가 실재로 존재한다는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요.
 또 아직 살아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영국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직접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저런 새로운 사실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전쟁의 개들"이 실제로 진행되었던 용병을 고용한 국가 전복 작전을 토대로 창작된 이야기로, 이 작전에 포사이스가 출자(?) 했다는 소문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역시, 진짜같은 픽션을 쓰려면 이 정도의 깊숙한 개입은 필요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AK 47의 신뢰성 높은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AK 47에 대한 정보도 괜찮은 편이고요.

하지만 비참한 상황을 고발하는 인터뷰와 현지 취재를 제외하면, 결론은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쉽게 요약됩니다. 실패한 국가는 경찰, 병사, 교사의 급료를 지불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입니다. 경찰과 병사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지키는, 최소한의 의무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교사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이래서야 누구나 아는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긴 분량을 할애한 셈입니다.
또 AK 47이 특유의 단순함, 신뢰성으로 이러한 무법 천지에서 사랑받는다는건 잘 알겠지만, 제목처럼 AK 47이 역사를 바꾸었다는건 어폐가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AK 47이 아니라 M16이건, K-2이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이 정도라면 제목 사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그나마 "각료들 절반 이상이 자제를 유럽이나 미국의 학교에 보낸다거나 자신의 가족은 국외에서 생활하게 하고 있는 나라, 그런 나라 역시 실패한 국가"라는 멋진 말이 마지막에 등장해서 최악은 면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동의하는 바에요. 부득이한 이유 - 예를 들어 해당 국가에서 태어났다거나, 해당 국가 국민과 결혼 등으로 국적을 취득했다던가, 정말로 그 국가에서만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유학을 갔다던가 등 - 을 제외한다면,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은 모두 국내에서 거주하며 생활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자식을 둔 인물을 주요 공직에 임명하는 것도 불가한 일입니다.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가를 맡긴다는건 가당치도 않죠.
그 뒤 안정된 국가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소말리랜드의 상황을 현지 취재로 알려주며, 제대로 된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으며 책이 마무리 되는 구성도 괜찮아요. 앞서의 비참한 다른 국가들의 상황과 대비되어 더 잘 와 닿더라고요. 고위 공직자들의 양심적이면서 성실한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와 예상과는 백만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주장하는 메세지 중 일부는 공감할 만 했습니다. 그러나 총기 AK 47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 역시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었던 책이라는 뜻이지요...

2016/02/03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 별점 2.5점

윤덕노 씨의 음식 문화사 책으로 저자의 구작들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들을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의 박식함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주례"와 같이 유명 서적도 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 예를 들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는 임유원의 "임하필기" 등을 인용하는 식이니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고문서 중 음식 관련 이야기만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저자만의 DB가 있는 것일까요? 여튼, 덕분에 자료적인 가치는 빼어납니다.

하지만 저자의 구작들 대비 재미는 조금 처집니다. 이야기가 딱딱하고 그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인 탓입니다. 이전 저서들은 음식 관련 '잡학'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미시사' 서적에 가깝다는 형식적인 부분도 지루함에 한 몫하고요.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한성 김치 광고는 정말 깼습니다. 돈 주고 산 독자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게 한두 푼짜리 책도 아니고 왜 독자가 광고지가 포함된 책을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한 장밖에는 안 되지만 충분히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금 더 사료적인 것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단순히 사료 기반이 아니라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덧붙여, 무려 100개나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건 아래와 같습니다.

배춧국. 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예전 무교동의 배춧국은 청진동 선짓국 못지않게 서울의 한량들에게 해장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중 유명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조선 팔도의 별미 중 하나로 꼽은 효종갱이라는 배춧국이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 된 이 배춧국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배춧국을 끓여 항아리에 담아서 밤새 한양으로 올려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북촌의 양반집에 도착하였다고 해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동죽지"에 있는 설명대로의 재료와 레시피는 '배추속대인 노란 고갱이를 주재료로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양지머리, 해삼과 전복을 넣고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인다.'

보신탕. 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에 따르면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남자아이는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여자아이는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생태찌개. 장작더미보다 흔했던 명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임유원의 "임하필기"라는 문집에는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침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은 셈. 신기하다.

준치. 준치를 맛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가짜

"썩어도 준치"의 준치.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로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름은 물고기 어 변에 때 시자를 쓰는 "시어"로 제철이 명확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는 바로 "물속의 서시"라고 한 것.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농어회. 역사상 가장 맛있는 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일 듯.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 -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던 장한 - 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 수나라 양제가 순시 여행 중 쑤저우 근처에서 먹은 요리.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인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던 요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횟감이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김치. 왜 하필 '파김치가 됐다'고 했을까?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빳빳한데 김치가 되면 축 늘어지기 때문. 고문헌을 찾아보면 늦어도 18세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보인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에 빗대어 묘사한 표현이 보인다. 18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권상하의 문집 "한수재집"에도 파김치라는 표현이 수록되어 있다.

오이. 과년한 딸과 오이의 상관관계

'과년한 딸자식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과過년'으로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과년(瓜年)한 딸'로 한창 나이, 결혼 적령기의 딸이라는 뜻이다. 과는 오이라는 한자인데 오이와 여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과년을 결혼 적령기라고 한 것일까?

오이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칼로 자르듯 반을 자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성춘향이 이도령과 사랑을 속삭인 때와 동일하다.

2020/02/29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 김병희 : 별점 2점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 4점
김병희 지음/살림

살림 지식 총서 501입니다. 제목 그대로 근대 신문 광고 분석을 통해 당시 문화를 조망해 본다는 취지의 문화사, 미시사 서적이지요.

살림 지식 총서치고는 두꺼운, 14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도 좋지만 다방 광고를 통해 당시 (1911년) 다방에서는 소라와 전복까지 팔았다는 소소한 정보를 비롯하여, 미술관이나 도장 가게의 광고는 현재와 사뭇 다르기도 하면서도, 시대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습니다. 권번 기생 연합이 봉사료를 신문에 광고로 개제한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당시에는 기생이 당당한 직업이었다는 뜻이니까요.
신문 광고를 통한 사기극 역시 흥미로왔습니다. 10원을 투자하면 월 100원을 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30전을 보내면 알려주마!라는 광고로 이런 사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과연 얼마나 현혹되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 외에도 '순수한 처녀의 피 (?)'라는 놀라운 카피의 포트 와인 광고나 콘돔 광고 등도 인상적이었으며, 미국 의학박사로 한국에 와서 간호사 양유식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죽음 후 순애보를 이어갔다는 '어을 빈'의 이야기는 더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도판과 출처, 번역도 꼼꼼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광고를 기반으로 문화를 조망한다는 취지의 다른 책들에 비해 더 나은 점이 많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자의 의견이 많이 개입된 탓이 큽니다. 그것도 당대 문화에 대한 의견보다는 현대 세태 등에 대한 개인 의견들이 많아요. 이래서야 책 취지에는 영 걸맞지 않지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러한 개인 의견 추가가 많아지는데, 특히나 해방 이후가 심합니다. 고려교향악단 정기연주회 광고를 통해 타악기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원자력 책 광고를 소개하면서 지금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을 논한다는 식으로요. 이래서야 역사서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겠죠.
어머니와 아이의 일러스트를 크게 선 보인 광고를 소개하며, 지금의 '미니미 룩' 같다는 언급은 억지스러웠으며 저자의 말장난같은 글도 지나칩니다.

또 다른 유사 도서들과는 다르게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춘다던가, 재미있는 카피나 광고 문구에 주목하는건 좋지만, 이러한 내용이 별다른 카테고리 분류없이 단순 시대 흐름대로 두서없이 등장하는 건 아쉬웠어요. 차라리 '재미있는 광고 문구들',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 등과 같이 명확히 주제 구분을 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살림 지식 총서 대부분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치는데, 앞으로는 구해 읽어보지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