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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8

눈물점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점

눈물점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에도물미시마야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권 부터는 전작에서 시집간 오치카를 대신해서 도미지로가 괴담을 듣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전작에서부터 예견된 이 교체는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결과물은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냥 괴담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한량이라서, 괴담 이야기를 듣는 진지한 목적이 사라져 버린 탓입니다. 괴담 이야기에 대한 별다른 책임감도 느낄 수 없었고요. 그 외에도 전작들에 비하면 괴담들의 섬찟함이나 무서움이 훨씬 덜한 편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대작인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이 특히 지루했던 점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도미지로로의 주역 교체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된 만큼, 이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눈물점" 

도미지로에게 어린 시절 소꿉친구였던 하치타로가 찾아왔다. 그는 과거 자신의 집이었던 두부가게 '마메겐' 일가족을 파괴했던 눈물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과거 마메겐에서는 형수들과 누나가 남자 가족을 잇달아 유혹했었다. 마지막에 큰 누나가 아버지를 유혹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큰 누나의 '눈물점'을 잡아 뜯어 잘근잘근 씹어버렸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가출한 뒤 죽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악령이 눈물점 형태로 여자에게 씌워지면, 남자를 유혹하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인데다가, 악령이 '마메겐' 여자들에게 씌워져 가문을 박살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아버지가 사과했다던가, 가출했다던가 하는걸 미루어보면 뭔가 여자에게 원한을 산 듯 한데, 암시만 줄 뿐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재수없게 귀신에게 씌웠다라고 한다면, 아버지가 가출해서 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창피해서? 그렇다면 눈물점의 여자가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 귀신으로 나타날 이유는 없지요. 어머니가 가족이 흩어지는걸 허락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하치타로의 부인은 얼굴이 점투성이었다는 결말과, 어린아이답지 않게 똑똑했던 막내 누나 치이 캐릭터는 괜찮았습니다. 치이는 눈물점이 수상하다는건 알지만, 이를 방관하는걸로 그려지는데, 차이가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아무래도 단점이 더 많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어머니의 무덤" 

꽃놀이 철, 비단 장사집 노부인 오하나가 찾아와 고향 벚꽃 마을에서 있었던 무서운 과거를 이야기해주었다. 마을에는 묘지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오하나의 집 가가리야의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가가리야 증조 할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다가 자살한 뒤 가가리야 여자들은 꽃놀이 때 묘지 언덕에 오르면 죽는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가가리야에 며느리 오케이가 들어온 뒤, 당찬 그녀의 주도로 가가리야 여자들은 묘지 언덕 청소를 위해 꽃놀이 전날 묘지 언덕에 올라갔다. 그 때 무언가에 씌인 어머니가 며느리를 죽였고, 그 뒤 행복했던 가족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과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내렸다는 저주에 대한 괴담. 미야베 미유키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 꾼인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꽃놀이 묘사에서 시작해서 평화로왔던 벛꽃 마을 묘사, 말괄량이 며느리 등 저주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내용을 재미있게 묘사하다가, 과거 증조 할머니의 저주와 그 저주의 재림이 이어지는 클라이막스까지 달려가는 전개가 절묘하고, 호흡과 긴장감도 최고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의 "눈물점"처럼 저주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지 않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증조할머니가 비정상적으로 며느리를 미워해서 생겨난 것으로 설명되고 있거든요. 물론 왜 미워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며느리 뱃속 아기까지 죽인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심지어 그 저주가 미워하는 대상인 며느리가 죽고 나서도 몇 대를 이어서 내려올 까닭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정도라도 설명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괴담이나 퇴마물에서 저주는 어쨌건 이유가 명확해야 이야기가 성립되니까요.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 혹은 저주 때문에 죽거나 피해를 받더라도 이유를 알아야 하는 탓이지요.

그러나 이 괴담이 현실화된 과정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벚꽃 마을 사람들 행동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마을의 유력자인 가가리야 가문 며느리가 꽃놀이 때 저주로 비참하게 죽었다면 꽃놀이를 계속 그 곳에서 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최소한 위험한 묘지 언덕을 오르는 계단은 보수했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저주로 인한 죽음을 그냥 가만히 기다린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너무 설득력이 없어요. 

마지막에 도미지로가 오하나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어깨의 손자욱은 밀기 위함이 아니라 안아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한 것도 멋지기는 하지만 도미지로가 말해서 별로 어울리지 않더군요. 결혼도 안 했고, 당연히 아이도 없으며 여자도 아니고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고 아픈 경험도 딱히 겪어본 적 없는 도미지로가 한참 어른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하나에게 할 말은 아닌 듯 싶었거든요.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는 역할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제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만든 결말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괴담으로의 재미는 확실했고, 미시마야 시리즈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감점합니다.

"동행이인"

이번에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미시마야를 찾아온 건 나이 쉰 살의 파발꾼 출신 지배인 가메이치였다. 그는 파발을 위해 달리던 어느날 들러붙었던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귀신이 그에게 들러 붙었던 이유는, 귀신 간키치처럼 가메이치도 당시 처자식을 잃고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장, 단점이 완전히 반대인 작품입니다. 장점이자 차이점이라면, 귀신 및 기타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 완벽하다는 점이에요. 가메이치에게 귀신이 달라붙은 이유는 줄거리 소개와 같고, 간키치가 귀신이 되어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난건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기 위함이고 (얼굴이 없으므로), 얼굴없이 가메이치를 뒤 쫓을 때 고개를 계속 끄덕이던건 울고 있어서였습니다. 아버지 찻집에 벼락이 떨어진건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이고요. 물론 여관 부뚜막에서 화재를 일으킨 이유는 애매합니다만, 이 정도면 귀신에 관련된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해 준 셈이지요. 

파발꾼 이야기답게, 당시 에도에서 도카이도를 통해 가는 지방과 길에 대한 풍부한 묘사도 특징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시대물이지만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전해주네요. 파발꾼과 파발 업무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좋았고요.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는 단점은 큽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감동 계열의 이야기인 탓입니다. 솔직히 이게 괴담인가? 싶을 정도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괴담이라면 일단 무섭고 봐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정체 불명의 저택에 여섯 명의 사람이 모였다. 괴저택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아 신처럼 그들을 가지고 놀 속셈이었다. 과거 예수교를 믿었었지만, 기도에 보답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일을 겼었던 저택 주인의 분노와 원념 탓이었다. 올곧은 무사 긴에몬이 지휘했지만 여섯 명은 차례대로 비참하게 죽어갔고, 결국 긴에몬, 진자부로, 오아키 3명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최후의 힘을 모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저택의 심장부인 불타는 화산 장지문을 뚫고 나갔다. 그 때 긴에몬은 저택 주인인 검은 무사와 싸운 뒤 용암에 삼켜졌지만 진자부로와 오야키는 살아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저택에서의 일로 건강을 해친 진자부로는 죽기 전 이 경험을 도미지로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한 편의 장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인 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는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을 연상케 합니다. 제가 명명한 명칭인데 (원조!), 이 장르는 보통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살아남는 방식, 또는 갇힌 공간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탈출하는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을 따릅니다. 특정한 룰을 따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고요. 

이 작품에서의 룰은 "6명 중 5명이 죽어야 탈출할 수 있다", 즉 최후의 한 사람만 탈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택은 초반에 이를 노골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첫 번째 방식, 즉 사람들간의 아귀다툼과 생존경쟁으로 진행되나 싶었어요. 그러나 의외로 이야기 전개는 두 번째 방식이더군요. 서로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이는 인격자이자 참 리더인 긴에몬의 존재 덕분입니다. 하긴, 한 명만 살아남는다면 검술에 능한 무사를 하녀와 부잣집 마나님, 도박에 미친 한량과 주정뱅이 목수, 약국집 후계자가 이길 수 있을 턱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문제는 탈출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밝혀낸다는, 이러한 전개의 핵심 재미요소를 간과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저택에 갇히고, 죽을 위기에 처한건 모두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며, 제령이나 퇴마의 방법도 합리적이지 못한 탓입니다. 애초에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없으니, 없애는 방법이 합리적일리 없지요. 마지막 탈출도 모 아니면 도 방식으로 우격다짐에 불과했고요. 

또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다보니 별로 무섭지도 않다는 점도 단점이에요. 차라리 첫 번째 방식으로 서로 살아남고자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식으로 전개하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건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호러물에 꽤 잘 아울리는 방식이니까요. 미시먀야 시리즈 초반에 비슷한 이야기가 몇 편 있었지요. 이 시리즈도 점점 인간미,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걸 알려주는 이야기가 많아지는걸 보면, 미야베 미유키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네요. 아울러 이런 전개로 반전이라면 반전인, "진자부로는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것도 유감스러웠습니다.

이야기도 다른 작품들에 비교하면 지루합입니다. 저택이 악의를 드러내는 과정까지가 너무 긴 탓입니다. 우선 오아키가 한텐을 보내어 에둘러 이야기거리가 있다고 요청하는 시작부터 진자부로의 이야기까지의 분량 낭비가 심하거든요. 괴저택의 기묘한 디테일도 어린아이들 동화같은 내용과 분위기라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내용에서 불거지는 "예수교" 설정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분량 낭비였습니다. 저택 주인의 원한과 분노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설득력있게 그려지지도 못했어요. 꽤 괜찮은 설정이었는데, 불필요한 정보로 낭비된 느낌이 들어 아깝더군요. 화자인 진자부로도 등장 인물들 중 가장 호감가지 않는 인물이라 읽는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가진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고, 별다른 계획도 없으면서 일행 마사키치를 질투하는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진자부로가 도박에 미쳤다는 묘사도 지나치게 많고요. 엄연히 진자부로가 도미지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이니만큼, 이런 쓸데없는 묘사들은 좀 걷어내는게 좋았을거에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도미지로가 최악이라는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교 관련 천조각이 들어간 한텐을 한 번 만났던 골동품 가게에 맡기는 행동 때문입니다. 여러 명의 목숨이 걸려 있을 물건인데, 굉장히 무책임했어요. 이야기 때 무슨 과자를 먹을지 정도의 고민도 하지 않은 듯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래서야 오야키가 '미시마야의 괴담회는 단순한 놀이일 뿐'이라고 일갈해도 할 말이 없겠지요. 제 생각도 오야키와 같습니다.

그래도 저택이 악의를 드러낸 뒤, 이노스케가 딸을 사창가에 팔아먹은 죄를 고백하고 검은 무사에게 참살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생존자들이 탈출할 때까지 달려주는 부분만큼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괴현상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묘사가 탁월하고, 괴저택과 그 안의 괴이 현상에 대한 상상력도 빼어난 덕분이지요. 에도 시대에 대한 디테일도 역시나 최고 수준으로, 특히 예수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교라는 말만 듣고도 도미지로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예수교를 얼마나 배척했는지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작품은 이전에 본 적도 없네요. 신불을 믿는 사람이 예수교 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그럴듯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현재와 사뭇 다른 당대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마사키치가 이노스케가 죽은 뒤 충격으로 미쳐버렸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온갖 자극에 익숙해진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로는 정신이 무너지지 않겠지요.

이렇게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무섭지도 않았고, 설명도 부족하며, 도미지로의 부족함이 두드러진 작품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4/17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안주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에도 간다에 있는 미시마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주머니 가게로 멋스러운 주머니 외에도,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주인 이헤에가 최근에 재미를 붙인 특별한 도락으로, 실제로 있었던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이야기를 듣는 건 이헤에의 조카딸 오치카로, 그녀는 약혼자를 소꿉친구에게 잃은 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숙부가 운영하는 주머니 가게에 '예절 견습'이라는 명목으로 맡겨진 소녀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한 두어권 읽기는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게 전작이 있는 이야기더군요. 오치카가 겪었던 이전 사건이 계속 인용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이야기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다행히 따로 읽어도 무방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고는 조금 달랐습니다. 별로 무섭지는 않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괴담'이 '무서운 이야기'라고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사실 '괴담'의 '괴 (怪)'는 괴이하다는 뜻이지요. 괴담도 '괴상한 이야기'라는 뜻이고요. 등장하는 이야기들 모두 괴이하다는 점에서 괴담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모든 여성 이름들 앞에 '오'가 붙어서 혼란스러운 것과는 별개로요. 또 "으르렁거리는 부처" 외에는 모두 지나치게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는 해요. "달아나는 물"은 심지어 뻔하기까지 했고요.

그래도 괴이함이 에도라는 공간과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로 결합되어 뿜어내는 독특함은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편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각 수록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달아나는 물" 

오래전 마을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받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 허물어지는 신사에 봉인되었던 뱀신 오히데리는 우연히 만난 마을 소년 헤이타의 도움으로 봉인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헤이타에게 씌워져 마을에 돌아온 뒤, 마을 물을 마르게 하는 복수를 벌였다. 마을 고노기의 쇼야 (마을 사무를 맡아보는, 일종의 면장 직무)는 소년을 에도로 보내 버렸지만, 에도에서도 마찬가지 소동을 일으켰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 오치카가 살뜰히 보살펴 에도에 무사히 적응한 헤이타는 물을 좋아하는 오히데리를 위해 소년은 뱃사공이 될 결심을 한다.

오래된 무언가에 깃든 요괴가 속박에서 해방되어, 누군가에게 씌워진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알라딘" 부터가 그런 이야기지요. 천진난만하면서도 의리있는 주인공 소년, 본체는 뱀이지만 귀여운 소녀인 요괴라는 조합도 전형적인 소년 만화스러운 설정이고요. 훈훈한 전개와 결말 역시 소년 만화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아동용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뱀 요괴가 신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 이유에 대한 설정은 탄탄하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에도라는 시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 

미시마야 이웃인 바늘상 스미요시가에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혼인하지 못한 고명딸 오우메가 있었다. 그녀가 시집을 간 뒤, 그녀가 왜 시집을 늦게까지 가지 못했으며 결혼식날 있었던 이런저런 기묘한 일들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그녀의 어머니 오미치가 이야기해 주기 위해 '흑백의 방'을 찾아온다.

오미치 말에 따르면, 오우에가 시집을 늦게 간 건 그녀의 쌍둥이 자매 오하나가 병사한 뒤. 쌍둥이를 싫어했던 할머니의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오우메 혼자서 무언가를 누리게 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죽은 오하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돌보았고, 그래도 오우메가 혼자 이득을 얻는게 있다면 오하나 인형에 바늘이 꽂히고, 오우에는 지독한 습진을 앓는 식으로요. 그런데 결혼은 혼자서 이득을 얻으니,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저주라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핵심인 '상인은 예로부터 쌍둥이를 싫어한다'라는 말부터 이해 불가였어요. 친할머니가 이 말 때문에 쌍둥이와 며느리를 저주했다는 것 역시도 납득할 수 없었고요. 에도 시대 일본 정서가 이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형에 바늘을 꽂은건 사람이었다는 진상도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에요. 친딸이지만 강제로 동생 집에 딸을 보내고, 자기들은 인형과 함께 살며 재산까지 나눈 다에몬 부부, 친딸처럼 키워 온 양녀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센에몬 부부 사이에 알력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오하나 인형에 바늘을 꽂는 형태로 표출했다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또 두 형제가 집을 합치려고 할 때 처음으로 저주가 발생했으니, 바늘을 꽂은 건 둘째 부부여야 말이 됩니다. 양녀를 잃기 싫었다면요. 그렇다면 합치지 않기로 한 뒤에 바늘이 꽂힌건 설명이 되지 않지요.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풀어내지 말고, 정말 오우메를 증오한 누군가가 있다는걸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바늘이 꽂힌 뒤 실제로 오우메가 습진을 앓았다던가, 할머니가 모든 가족들 꿈에 나타나 저주를 했다던가, 오카쓰가 대신 저주를 뒤집어 쓰는 역할을 한 뒤 모든 저주가 사라졌다는 등 이야기 속 주요 설정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나타난 오하나 유령이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대사 하나는 조금 섬찟했고, '인형'과 같았다는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던 이유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안쥬"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우는, 지금은 폐허가 된 무가 저택에서 불이 나 3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아들 나오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의 사촌인 야채상 야오노에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불안해 하던 차에, 미시마야 하인으로 습자소 친구인 신타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뒤 나오를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습자소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가 나오 아버지가 죽은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입니다. 읽기 전에는 술안주 할 때의 안주라 생각했었는데, '暗獸'의 일본어 발음이더군요. 

특징은 추리물 성향이 짙다는 겁니다.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죽은 화재 사고에 대한 진상을 괴담을 통해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아오노 리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수국 저택에는 아오노 리이치로의 스승 부부가 은퇴 후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 주인 아내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집 값이 쌌던 덕분이었지요. 그 곳에서 부부는 저택의 염 '구로스케'를 만나 친해지지만, 구로스케가 사람 때문에 약해진다는걸 알게 된 뒤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나 주인 때문에 도망갈 생각이었던 옆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과 하녀, 그리고 이 둘을 도와주던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마침 빈 수국 저택에서 계획을 모의할 때 주인이 덮쳤고, 이를 막으려던 구로스케를 본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다가 죽은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추리물 애호가로서 이러한 작풍도 마음에 들었지만, 스승 부부와 구로스케가 보냈던 날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아주 좋았습니다. 노래라던가 공놀이를 가르쳐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아주 훈훈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와 같이 구로스케의 '귀여움'도 폭발하고요.

판타지물에서 슬라임과 교분을 나누는 노학자 부부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사람과 가까워지면 질 수록 약해진다는 설정도 좋았어요.

하지만 결국 사람이 3명이나 죽은건 분명하고, 원인을 제공했던 관리 나마즈히게가 딱히 대단한 응징을 받지 않았다는 결말은 개운치는 못했습니다. 이는 구로스케의 귀여움, 사랑스러움과는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인 탓도 큽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괴이한 이형은 결국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에도 시대에 그렇게 높은 관직도 아닌데 하인과 고용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다는 것도 조금 놀랐습니다. 하인이야 그렇다쳐도, 요헤이는 엄연한 고용인인데 말이지요. 나오가 양자로 간 야오노 가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모습 등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으르렁거리는 부처" 

아오노 리이치로의 지인인 괴승 교넨보가 미시마야를 찾아와서 과거 깊은 산 속 '다테나리'라는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오치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테나리는 고신지라는 절의 스님 가쿠넨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는데, 도미이치라는 주민이 마을의 풍요에 대한 소문을 내려다 '반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도미이치의 아내와 갓난아기는 굶어죽었고, 광인이 된 도미이치는 장작에 불상을 새기는데 그 불상이 신통력을 발휘해 마을에 내분이 생겨 붕괴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을 관습, 또는 집단 이기주의로 피해를 받았던 누군가가 복수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편입니다. 하지만 다테나리 마을과 '반작'이라는 설정은 탄탄하고, 수록작 중 제가 기대했던 '괴담'의 정의에 가장 충실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넨보가 겪었던 다테나리에서의 체험은 섬찟하면서도 이야기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도미이치가 마을을 붕괴시키는 전개는 정말로 설득력이 넘치거든요. 혼자서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일종의 '초능력(?)'으로 가쿠넨 스님의 지배력을 무너트리는 과정이 아주 생생하면서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도적단이 미시마야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왜 등장시켰을까요? 억지스럽고, 이야기에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말이죠. 아오노 리이치로와 오치카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둘의 관계도 급발진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영상물로 만든다면 아주 볼 만 할 거라는 확신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형'이 된 도미이치가 "이 세상에 부처 따위는 없다!"고 외치는 장면이 말이죠. 조금 찾아보니 전작은 TV 드라마화가 된 것 같은데, 이 작품도 드라마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2026/01/16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2점

영화까지 발표되었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작가 세스지의 신작입니다.

전작은 여러 형식의 기록들을 이어붙인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괴이 현상의 실감을 높였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릅니다. 때문에 형식은 유사하지만 별로 실감나지는 않았어요. 여러 기록들도 작중에서는 모두 심령 현상이 일어난 해당 장소와 관련된 괴담을 '날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괴이한 심령 현상들도 복수라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윤회'라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깔끔한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개별 서사도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고, 주어진 떡밥들 역시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섬찟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전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상세한 괴담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태 오두막

유튜버 이케다와 팬북을 출간을 진행 중이던 고바야시는 재생 횟수가 많았던 동영상에 그럴싸한 괴담을 날조해서 꾸며 넣기로 했다. 출판사가 혹하게 만들이 위해서였다. 첫 번째 대상은 '변태 오두막' 촬영 영상으로, 산 속의 이른바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 도촬한 듯한 사진이 널려있는 기묘한 곳이었다.
날조에도 리얼리티가 필요하다는 고바야시의 주장으로, 이케다는 '변태 오두막'처럼 '인형'을 버린 폐가를 취재했던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고바야시는 '변태 오두막' 속에서 발견된 사진에 대한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데..

괴담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를 저주하려는 사람들이 저주의 대상 사진을 집어 넣는 곳이었습니다. 유키에는 불륜 상대의 아내 료코가 이혼해 주지 않아서 그녀를 저주하려고 오두막에 사진을 집어 넣었고, 이후 료코는 자살했습니다. 자살 후 유키에의 딸 유카에게 료코가 윤회하여 빙의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료코 사진이 '정화' 의식 때에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는 묘사는 확실히 섬찟했고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찾아낸 정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현실감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인터뷰,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드러내는건 전작과 비슷했지만 전작보다는 더 소설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진상을 유키에의 독백으로 마무리한건 문제입니다. 유카가 마지막에 말한건 맥락 상 "용서 못해"일텐데, 이를 표현하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네요. 이 진상은 맥락적으로도 이상해요. 변태 오두막의 저주가 통해 료코가 죽었다면, 료코의 영혼 역시 저주로 죽는게 맞지 않을까요?

유키에의 독백말고 그냥 그녀가 딸을 방치하여 죽였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후일담 기사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천국 병원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괴담 작가 호조가 '천국 병원'에 대한 괴담을 찾아냈다. 폐암으로 연명 치료 중이던 할머니가 그만 편해지기를 바랬다는 한 소설가의 고교 시절 추억담으로, 이후 소설가는 자살했다...

앞부분 소설가의 회고는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담담한 이야기로 실망스럽지만, 뒤이은 청년들이 병원에서 벌인 담력 시험 체험기는 오싹합니다. 천국 병원의 막혀있던 병동에서 '괴이'를 마주쳤다가 쫓기는 과정의 서스펜스, 그리고 일행을 쫓던 머리가 커지던 괴이가 들고 있던 친구 휴대전화 번호로 아직도 전화가 걸려 온다는 후일담까지 완벽했던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소설가의 회고를 틀어서 진상, 즉 소설가는 할머니가 미워했던 양녀였고, 소설가는 사신과 거래하여 할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병원이 '제로 자기장'에 위치해서 괴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합리적이거나 설득력이 높지는 않지만, 단순 괴담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니까요.

그러나 소설가가 할머니를 저주로 죽게 만든게 그리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문제입니다. 할머니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 탓에, 그냥 보면 정의구현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소설가가 저주의 역풍을 맞은 듯한 현실은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어리석은 세 사람

등장인물들의 과거 - 이케다는 과거에 호감을 품었던 유코를 저주로 죽게 만들어서 유령을 쫓는 유튜버를 하게 되었다, 호조가 유령을 볼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다가 교생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등 -가 펼쳐집니다. 책 전체로 보면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뒤에 이 과거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냥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윤회 러브 호텔

러브 호텔에 그려진 괴상한 벽화와 여러 소문에 대해 논의하는게 대부분인데, 대체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마무리하는게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스토커 피해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죽은 여성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지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한데, 스스로 스토커 게이이치에게 뭔가 잘못했다고 여기는 묘사는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에요.

불확실한 괴이

앞서 날조를 위해 만들었던 이야기들 모두 고바야시의 음모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유령을 믿지 않는 이케다가 유령에 홀리게 만드는게 목적이었지요. 이케다에게 뭔가 괴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책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세사람"처럼 각자의 사정과 과거가 펼쳐지는 징검다리 이야기입니다.

한낱 패밀리 레스토랑

이케다에게 달력 일정에 유코의 기일이 기입되었고, 기분 나쁜 장난 전화가 걸려왔고, 움직일리 없는 유튜브 동영상 속에 괴이한 여성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자주 보던 버튜버의 화면이 기이하게 바뀌는 등의 괴이 현상이 일어났다...

이케다의 괴이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앞서 선택되었던 괴담들 모두가 일종의 '윤회'를 다룬, 괴이가 다시 태어난다는 괴담이었다는게 설명되기 때문에, 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부분이지요.

한낱 옛날 이야기

세 명 모두 누군가를 죽였었다, 그리고 죽였던 여자들이 유령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유령에 홀렸던 이케다가 신관인 호조 아버지의 도움으로 벗어나고, 책은 출간이 결정된다는 결말입니다. 앞서 그들이 각자 보았던 괴이들은 각자가 죽였던 피해자들이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윤회에 관련된 로쿠부 살해 괴담을 이방인의 피가 필요했다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만큼은 참신했는데 회수가 안 된 떡밥이 너무 많고 - 이케다는 유코를 죽이지 않았는데 무엇에 홀린건가? 호조의 교생 선생은 어떻게 죽었는가? 윤회는 모든 저주의 대상에 해당하는가? 등 -, 등장인물들의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결말은 허무합니다. 최소한 고바야시는 이케다를 괴이에 홀리게 만들려는 악의가 있었던게 분명하니, 이 작자만큼은 벌을 받으면 했는데 말이지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2015/04/06

사상학 탐정 1 - 미쓰다 신조 / 이연승 : 별점 3점

사상학 탐정 1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을 보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쓰루야 슌이치로가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날, 사야카라는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청년 IT 재벌 아키라와 약혼했지만, 약혼자가 급작스럽게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한 후 자신의 주변에 떠도는 죽음에 이유가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아무런 사상도 보지 못한 쓰루야는 의뢰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가 약혼자의 본가인 이리야가에 함께 살게 된 후,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고 그녀는 다시 쓰루야를 찾았다. 쓰루야는 그녀를 뒤덮은 섬뜩한 사상을 확인한 뒤 사건의 조사를 위해 이리야가를 방문했다. 그러나 기이한 사건은 멈추지 않고 아키라의 이복형 나쓰키부터 한 명씩, 차례대로 가족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을 볼 수 있다는 특수 능력의 소유자가 주인공으로, 주인공 쓰루야 슌이치로는 탐정이라는 직함을 걸고 있지만 별다른 추리력은 없습니다. 자신의 특수 능력과 일본 최고의 무녀인 할머니 아이젠에게서 배운 지식과 경험에 의존할 뿐입니다. 사건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주술’의 영역에서 벌어지고요. 이런 점에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일본식 퇴마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만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퇴마 배틀물은 아닙니다. 쓰루야의 능력은 사상을 보는게 전부로 다른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백귀야행"의 리쓰가 탐정 사무소를 열었다고 해도 될 정도에요. 쓰루야와 리쓰는 능력치도 거의 비슷하니까요. 실제 스물스물 움직이는 저주의 실체를 보고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거든요. 주술, 저주가 정말 일상 속에 있을 법한 것으로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 역시 "백귀야행"스럽습니다. 이렇게 설득력 넘치는 괴이 묘사는 민속 탐정 시리즈를 써왔던 미쓰다 신조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백귀야행"과는 다른 섬뜩한 묘사들도 볼거리이고요.

이러한 설득력 넘치며 섬뜩한 분위기에 더해 작가의 명성과 "탐정"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추리적인 부분도 나름 볼 만 합니다. 비과학적인 영역이기는 하지만, 주술과 저주에 적용된 일종의 법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덕분입니다. 부제 그대로 '13'에 관련된 법칙인데, 정교하게 짜인 복선과 함께 쓰루야의 메모를 중심으로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여 두뇌 싸움을 벌이게 만드는 솜씨가 돋보입니다. 이리야가 전 당주 및 가족들의 취미와 엮은 자잘한 설정들도 흥미로웠고요.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는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지루할 틈 없이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만듭니다. 사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고작 두 권 읽은 게 전부지만, 어렵고 복잡한 일본 민속 관련 지식을 고풍스럽고 무겁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읽고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흡사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젊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젊은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 운운하며 누벨바그 운동(장 뤽 고다르로 대표되는)이 일어났을 때, 거장 르네 끌레망이 정말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태양은 가득히"를 발표한 일화가 떠올랐어요.

이렇듯 독특함과 재미를 모두 갖춘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13'에 관련된 법칙이 재미는 있지만, 합리적인 구조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설정에 맞춰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숫자만 들어가면 무엇이든 되기 때문에 단서들의 비약이 심하고, 억지스러운 전개도 제법 있고요. 작중에서도 언급되듯 나이 든 사람들만, 그것도 일본이라는 환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쉽게 공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입니다. 사야카가 쓰루야에게 단서를 전해주려 애쓴다는 설정도 쓰루야의 무능함만 돋보이며, 혹 쓰루야가 정말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울러 동기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작품에서처럼 사야카가 모든 저주의 흑막이라면, 그녀는 아키라 재산의 60%로 왜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설령 아키라의 배다른 형제를 모두 죽였다 치더라도 60%가 80%가 될 뿐 - 20%는 죽이고 싶지 않았던 아키라의 어머니 도시코의 몫이기에 - , 예를 들어 유산이 한 40억이라고 한다면 24억이 32억이된다... 본인까지 저주를 걸 정도로 의미가 있는 금액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설령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방법적으로 무리수가 너무 많습니다. 저 같으면 그냥 형제들에게 저주를 걸고 어디 외국이라도 가 있었을겁니다. 사인이야 어차피 급성 심부전이니 수상하기는 해도, 증거는 없었을테니까요. 구태여 같이 저주에 걸려가며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과 동거할 이유는 없습니다.
쓰루야에게 사건을 의뢰한 이유도 사건이 언젠가 쓰루야나 아이젠 귀에 들어갈까봐 의뢰했다는 것인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설령 귀에 들어갔다손 치더라도, 주인공이나 주인공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리야 가문의 설정, 판에 박은 의붓형제 캐릭터인 나쓰키, 하루미 등은 고민이 부족해 보여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자 미쓰다 시존의 새로운 모습을 알리는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몰입해서 읽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에스프레소라면 달달한 카푸치노같은, 아주 무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작품이니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궁금하신 입문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3/05/26

청동 램프의 저주 - 존 딕슨 카 / hansang(?) : 2.5점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자 길레이 교수가 전갈에 물려 죽은 뒤, '무덤의 저주'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고인이 세반 백작과 팀을 이루어 이집트에서 헬리홀 무덤 발굴을 진행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백작의 딸 헬렌 로린은 이집트에서 귀국하던 중, 점술사 림베이로부터 램프를 돌려주지 않으면 먼지처럼 사라지고 말거라는 예언을 받았다. 청동 램프는 출토 유물 중 하나로 그녀가 이집트 정부로부터 선물로 받았던 물건이었다.

귀국 후 헬렌은 연인 키트, 친구 오드리와 함께 저택에 도착한 뒤, 램프를 장식하겠다며 혼자서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헨리 메리벨 경은 마스터스 경감과 함께 수사에 착수했고, 그날 함께 사라졌던 전 백작부인 초상화 행방을 쫓다가 헬렌이 초상화를 가지고 골동품상 맨스필드 부인의 가게에 방문했다는걸 알아냈다.
H.M 등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저택으로 돌아온다던 세반 백작마저도 저택 안에서 사라졌다. 백작의 외투 등이 남아있던 자리에는 저주의 청동 램프가 놓여 있었다.

연이은 인간 소실로 당혹해하던 키트 앞에 헬렌이 나타나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지만, 뒤이어 들어딕친 경찰 앞에서 다시 사라졌다. 경찰은 건축가까지 불러와 은신처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벌였지만 실패했다.

다음 날, 헨리 메리벨 경은 모든 관계자들을 저택에 소집했다. 그리고 진상을 밝히는 추리쇼를 펼쳤다. 헬렌은 은신처에 숨어있던게 아니라, 집사 벤슨의 도움으로 하녀로 위장하고 있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존 딕슨 카의 장편. 1945년 발표작입니다. 일본 아오조라 추리문고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오래 걸렸네요.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오컬트와 본격 추리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그동안의 오컬트 소재는 중세 전설에 관련된게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이른바 '미이라의 저주', 그리고 저주로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는 인간 소실 트릭이 함께 엮여 전개됩니다. 폐쇄된 대저택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상황이니, '밀실의 대가'로서의 실력도 발휘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기대보다는 많이 지루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헬렌의 소실이,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고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못한 탓이 가장 큽니다. 헬렌은 차에서 내린 후, 저택 자기 방 벽난로 윗 선반에 램프를 장식해 놓겠다고 먼저 들어갔습니다. 키트와 오드리는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요. 그런데 집사 벤슨을 포함한 저택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헬렌을 보지 못했고, 저택 밖에서 일하던 수 많은 사람들도 헬렌이 나가는걸 보지 못했다고 했죠. 
그런데 아무도 문을 감시하거나 헬렌의 모습을 쫓고 있었던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라졌다"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아요. 특히 저택 밖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이었다면, 누군가 나가는건 충분히 놓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의 눈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세반 관에 살고 있는 헬렌이라면 어디로 몰래 나갈 수 있는지, 아니면 어디서 몸을 숨기고 있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을테고요. 그래서 여러모로 대단한 사건으로 생각되지 않았어요. 
뒤이어 벌어진 세반 백작 소실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작이 들어온걸 실제로 본 사람은 없고, 특별한 감시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만들어진 상황일 가능성이 높지요. 실제로도 샌디 로버트슨이 백작의 차를 몰고 들어온 뒤, 옷가지를 서재에 던져두었을 뿐이었죠.

다행히 헬렌이 키트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두 번째 소실부터 재미있어지기 시작합니다. 마스터스 경감의 지시로 경찰이 모든 통로를 막은 상태에서, 철저하게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헬렌을 찾아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 소실이 일어난 것이지요.
여기서 사용된 트릭은 헬렌이 하녀로 변장하고 있었다는겁니다. 현실적이라는 점은 좋아요. 
이 작품보다 10년은 앞서 발표되었던 여사님 작품에서도 비슷한 트릭이 활용된게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처럼 "인간 소실"용으로 사용된건 아니었으니, 나름 신선한 느낌을 전해 주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를 위한 단서들도 모두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헬렌이 저택으로 들어올 때 차에서 떨어트린 담배를 짚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이유는? 이미 고용인들에게 하인으로 소개되었던 헬렌을 관리인이 알아볼까봐였습니다. 헬렌이 다시 나타났을 때 비옷을 입고 단추도 모두 채웠던 이유는? 속에 하녀복을 입고 있어서였습니다. 헬렌이 도착하는 날, 모두가 바쁜 와중에 휴가를 낸 하녀도 한 명 있었고요. 그 외에 이런저런 단서와 복선들로 트릭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초상화가 없어진 사건도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헬렌이 선대 백작 부인과 꼭 닮았기에, 그 초상화를 치워버릴 필요가 있었던겁니다.
공범(?) 벤슨이 이를 도왔다는걸 알려주는 단서들도 꼼꼼히 삽입되어 있습니다. 헬렌이 언제 도착하는줄 몰랐다는 벤슨이 마침 딱 맞춰서 꽃으로 화병을 장식했던 것 처럼 말이지요. 불가능 범죄 추리물의 대가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적이며 공정할 뿐, 높은 점수를 줄 트릭은 아닙니다.  H.M.의 말대로 모든 신문에서 저주에 대해 떠들며 헬렌의 사진을 실었는데, 하녀로 변장한 헬렌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단점이 치명적인 탓입니다. '헬렌은 사진과 실물이 굉장히 다르다!'는걸 이유로 내세우는데, 헬렌을 사진으로만 보았던 쥴리아 맨스필드가 헬렌을 알아보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키트나 오드리 등 실제로 헬렌을 보아왔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까지 숨어있기도 쉽지 않았테고요.
게다가 세반 백작 소실 사건은 앞서 말했듯 딱히 트릭은 없습니다. 경찰이 출입구를 감시하지 않아서 가능했을 뿐입니다.

헬렌이 사라졌던건 '저주'라는 뜬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한 연극이었다는 동기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인간 소실 사건을 언론에서 크게 다루게 한 뒤, 나타나서 '이건 모두 연극이고 저주 따위는 헛소리다!' 라고 말할 셈이었다는데, 이럴거라면 주변 인물들이나 저택 사람들에게 트릭을 써 가면서까지 몸을 숨길 필요는 없었습니다. 진상이 공개되어 봤자, 일반 대중들은 저택 사람들이 한통속이었다고 생각할게 뻔하잖아요? 게다가 잘못된 소문과 정보를 진실로 바꾸는건 굉장힌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초에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그냥 연극따위 벌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샌디 로버트슨이 백작을 죽이려 했다는 동기와 상황도 별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샌디는 헬렌이 사라졌을 때 카이로에 있었으니, 백작이 사라져도 자기가 의심받지 않을 거라 여겼다는데 말도 안됩니다. 두 사건을 함께 엮어서 볼 이유는 없을 뿐더러, 당시 백작 옆에 있었던 사람은 샌디 뿐이라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샌디가 빼돌린 유물 문제는 관련자들 수사만 해도 금방 알 수 있었을테고요. 분명 살인 미수범인 샌디를 백작이 그냥 놓아 보내준다는 것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국내 미발표 소개작을 완독했다는 기쁨은 크지만, 대표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처집니다. 번역을 시도해 볼 까 했는데, 그럴 수고를 들일 가치는 없네요.

2023/07/21

우중괴담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점

우중괴담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미쓰다 신조가 직접 듣고 기록했다는 다섯 편의 괴담이 수록된 단편집. 다 그런건 아니지만, ' 이 이야기는 <<노조키메>> 1부의 바탕이 되었던 체험담을 이야기 해 주었던 작가가 해 주었던 이야기다'라는 식으로 설명되어 조금 더 현실감을 부여해 주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전해들은 괴담'인 탓에 이야기의 설명이 부족하고, 기승전결도 애매한게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완성된 단편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소설'로 완성하기는 시간이 걸리니, 괴담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간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드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찾아온다는 것도 그간의 미쓰다 신조 과담들과 비슷해서 식상했고요. 무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은거의 집>>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골의 외딴 집에 맡겨졌었다. 할머니 홀로 밭을 돌보며 생활하던 집은 주변에 기묘한 결계같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주일을 머물며 일곱살이 되는걸 기다려야만 했다. 울타리 밖을 나가면 안되고, 본명이 아니라 '도리쓰바사'라 불리우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누군가와 절대 이야기를 나누어선 안되고, 휘파람을 불면 안되는 등의 몇가지 규칙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었던 '나'는 집을 찾아온 아이와 친해졌다. 아이의 필사적인 요청으로 '나'는 울타리를 넘어 아이를 따라갔다가 무언가에 잡힐 뻔했다. 할머니가 주었던 부적을 잃어버린 탓이 컸지만, 입고있던 기모노의 힘으로 겨우 탈출했다. 그러나 집 안에 '무언가'가 함께 따라 들어왔고, 결국 할머니마저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나'는 일곱살이 되는 날 아침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왜 일곱살이 될 때까지 이상한 규칙을 따르며 결계 안에 있어야 하는지, '무언가'의 정체는 무엇인지 , 할머니는 누구였고 어떻게 되었는지 등 핵심 설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그런 체험을 했다는게 전부입니다.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던 '나'가 미쓰다 신조에게, 자기 손자가 곧 일곱살이 되는데 밤마다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 즉 손자에게도 똑같은게 찾아올거라는 의미 - 로 마무리되는 일종의 에필로그도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괴담치고 별로 무섭지도 않아요. '무언가'가 집 안에 들어와 와글와글하며 휘파람을 부는 장면, '나'를 밤새 지켜주던 할머니가 '무언가'에 사로잡힌 뒤 결계인 모기장 밖에서 나에게 얼굴을 쓱 들이미는 장면 등은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는데 밋밋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휘파람을 분다던가, '무언가'의 실체를 좀 더 그려주었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지요. 
설정도 어디선가 본 듯해서 신선하지도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예고화>>
미쓰다 신조는 아이들의 사망사고에 있어서, 아이들이 생전에 그린 그림들 중 사고사를 암시하는 그림 '예고화'에 관심을 가지던 중, 초등학교 교사 구보타 나오트의 체험담을 듣게 되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는데, 다쓰토라는 학생이 그린 그림이 미래의 사고를 예지한다는걸 알아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다쓰토의 그림은 구보타 나오토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전 그림과는 다르게, 나오토의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은 명백한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그림 수업을 중지하는 식으로 저항했지만, 나오토가 개인적으로 그리는 그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오토는 살아남기 위해 온수풀 수업에서 다쓰토를 익사시킨 뒤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단순한 괴담은 아니고, 하나의 완성된 호러 단편입니다. 저주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기승전결도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 저주의 방법 - 다쓰토의 그림
  • 저주의 대상 - 다쓰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 : 통학로에서 사납게 짖는 개, 자기를 귀찮게 하는 반장, 어머니를 독차지하는 아픈 할머니, 그리고 구보타 나오토
  • 해결방법 - 그림을 고쳐서 대상자를 바꾼다
덕분에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대충 넘기는 괴담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가 체험담 속 몇몇 단어와 변화 포인트를 짚어내어 다쓰토의 어머니와 구보타 나오토가 불륜관계라는걸 밝히는 부분은 추리 소설같은 느낌도 전해주고요.
'예고화'라는, 실재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그림으로 저주를 내린다는 발상, 그리고 피해자 시점으로 그려졌던 그림에 다쓰토를 그려넣어 저주의 대상을 바꾸었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쓰토가 죽은 뒤에도 나오토가 저주를 다시 겪었다는 일종의 에필로그는 불필요했습니다. 첫 번째 저주 - 물에 빠지는 것 - 는 다쓰토가 피해자가 되어 끝난 저주인데, 이게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설명이 부족했어요. 나오토는 저주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차라리 그림으로 싫은 사람을 없애게 되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데스노트? 하지만 그림은 사람을 그려넣는게 제한적이니...) 이렇게되면 단편 분량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겠지만요.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센바는 신인상 수상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창작에 매진하기 위해 야간 경비원을 하게 된 센바는 종교시설 광배회의 야간 경비를 맡게 되었다. 기묘한 공원같은 '십계원' 순찰을 하다가 괴이한게 따라오는 체험을 한 뒤, 이에 대해 광배회 관계자와 이야기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십계원'에서 연달아 자살 사건이 일어나서 출입 금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경비의 목적은 야간 경비들이 체험했던 괴현상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센바에게 정식 임금 외 사례금까지 제안했고, 센바는 창작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5일 째 순찰날, 센바는 '십계원'에 나타난게 경비원 연수 때 동기인 이사코라는걸 알게되는데...

미쓰다 신조가 작가 센바 아츠오에게 들은 전형적인 괴담으로, 센바 아츠오가 겪은 끔찍한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괴담답게 십계원 괴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사코가 왜 십계원을 떠도는 괴이가 되었는지 등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괴상한 오브제로 가득차있는 십계원의 묘사와 센바의 체험담도 박진감이 넘쳐서 읽는 재미는 있지만, 설명이 없으니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이전에 십계원 경비를 맡았던 경비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사코처럼 사라져버린 경비들이 있었다면 소문이 나지 않는게 불가능하니까요.
 
센바가 이사코를 처음 인지했던게 '보살계'였고, 뒷걸음질치다가 '불계'까지 들어왔다는게 뭔가 중요한 포인트처럼 묘사되는데 이것도 좀 이상했어요. 십계원의 끝이 '불계'라서, 괴이 이사코가 십계원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불계도 엄연히 십계원 내부이니, 여기서 쉽게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다른 '계'에 있어도 가능했겠지요. 물론 센바가 있었던 경비실이 불계 내부에 있어서, 괴이가 경비실을 들어오려고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비실만 십계원 밖에 설치하면 경비원 보호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울러 광배회가 사례금까지 지불하면서 야간 경비를 맡겼다면, 왜 2인 1조로 경비를 돌게 하지 않았을지?도 의문입니다. 괴현상 수집이 목적이었다면 괴현상을 수집하는 이유도 설명되었어야 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공간 덕분에 읽는 재미는 제법 괜찮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부르러 오는 것>>
대학생 아이다 나나오는 매년 오봉 때 할머니가 홀로 다녀왔던, 나메라의 오이노쇼 씨 집에 향전 바치는 행사를 맡게 되었다. 할머니가 아팠던 탓이었다.
기차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의 대저택에 찾아간 나나오는, 향전만 바치고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창고를 찾아가 2층에 있는 사람을 불러달라는 한 노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뒤, 오봉마다 나나오의 집에 '무언가'가 찾아와 나나오를 불렀고, 나나오가 없자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어머니를 잃은 나나오는 결혼한 뒤 성이 바뀐 덕분에 더 이상 '무언가'의 부름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는 경찰 간부 출신으로 유령 따위는 없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 올렸다.
지역 유지 아마노가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교사 부부가 이사를 간다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부인만 홀로 집에 있을 때, 기분 나쁜 초인종 소리와 함께 누군가 찾아오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벨을 누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척을 하자 부엌문을 노크하기 시작해서...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였다.


본편인 아이다 나나오 이야기는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나나오가 겪은 체험이 전부에요.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시골 마을에서 모시던 무언가에 씌워져서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읽은 비슷한 이야기만해도 열 편은 넘을거에요.

그러나 아버지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답게 논리적인 추리를 내 놓거든요. 부인만 혼자 집에 있을 때 유령이 아니라 집주인 아마노 영감이 찾아왔다는 거지요. 그걸 피하려고 집에 없는 척을 하니 아예 문까지 두드리게 되었고요. 그래서 남편과 의논했지만, 집주인이고 지역 유지라 험담을 할 수도 없으니 이사를 하면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트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아주 그럴듯하지요? 
이런 식으로 '현실주의자 경찰이 괴담을 파헤친다!'는 이야기였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중괴담>>
미쓰다 신조는 예전에 알았던 장정가 마쓰오로부터 괴담을 들었다. 그는 장정을 맡은 교정지를 산책로에 있는 정자에서 읽곤 했는데, 그곳에서 비오는 날 한 노인으로부터 괴담을 듣게 되었다. 노인의 어렸을 때 이야기로, 당시 그는 사냥꾼 할아버지가 두고 간 도시락을 전해주러 사냥 오두막에 갔다가, 폭우가 쏟아질 때 오두막 밖에서 들여보내달라는 한 여인의 부탁을 받았었다. 여인이 들어오기 직전, 위기의 순간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구해주었지만, 그 뒤 할아버지는 사냥꾼 오두막에서 혀가 뽑힌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쓰오는 또다시 비오는 정자에서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마쓰오에게 한 이야기는 아빠와의 그림자 놀이였다.
그 뒤는 아이 아빠가 학교 선생으로 학교 숙직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흰 형체를 쫓느라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숙직실에 돌아가니 아내가 와 있었고, 아내와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숙직실로 집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고 그 뒤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차례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마쓰오는, 다음날 가족과 관계된 누군가가 실제로 해를 입었다고 했다....

표제작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여러 명으로 부터 들은 괴담을 마쓰오가 겪은 체험과 합쳐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단순 괴담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담이 중심이라는건 다른 이야기들과 다를게 없지만, 다른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이야기를 해 준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주기는 합니다. 마쓰오의 가족 구성이 노인의 가족 구성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원래는 마쓰오 가족이 해를 당했어야 했지요. 그런데 마쓰오가 별거 중이라 홀로 나와 살고 있던 탓에 마쓰오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를 입게 된 겁니다.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준 이유도 그가 이미 괴이 쪽에 속해있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마쓰오 사무실의 책들이 전부 낡은 것이었다는 단서로 이를 알아내는 미쓰다 신조의 추리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마쓰오 가족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 이유는 설명이 없습니다. 누군가 마쓰오 가족에게 원한을 품고 저주를 내렸던 걸까요?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요. 이 논리대로라면 미쓰다 신조 주변의 누군가도 해를 입었어야 했는데 (괴담을 들었으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마쓰오가 언제 괴이 쪽에 속하게 되었는지, 이후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이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순 괴담보다는 낫지만, 뭔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었습니다.

2025/08/22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핫한 모큐멘터리 형식의 호러 장편입니다. 과거 기사와 취재 기록, 독자 투고, 인터뷰, 인터넷 게시글 등 서로 결이 다른 텍스트를 이어 붙여 실존하는 괴이 현상을 추적한다는 실감을 한껏 느끼게 해 줍니다. 한마디로 다큐멘터리와 괴담집이 섞인 느낌이에요.

여러 형식으로 펼쳐지는 작품 속 괴담들은 짧지만 강렬한게 많습니다. 저주받은 아파트에 살던 어머니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다린건 ‘누군가가 투신하는 순간’이었다는 고백, 그리고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가 점프를 반복하는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 특히 섬뜩합니다. 빨간 여자는 자살한 아키라의 어머니였는데, 생전에 나무에 목을 맨 아들을 내려달라며 펄쩍 뛰던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는 설명이지요.
묘사도 발군입니다. 특히 ‘저주 스티커’는 굉장합니다. 기괴한 디자인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저기에 붙이고 다니는 이상 행동이 그야말로 섬찟함을 자아내는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형식으로 괴담과 괴이현상이 소개되기 때문에 신선한 발상도 많습니다. 동영상 때문에 귀신에 씌운 대학원생의 에피소드에서의 공포물 반응을 실험하려고 여러 공포 체험 영상을 짜깁기했다는 설정처럼요.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는 실험 결과도 재미있었어요. 인터넷 실황으로 심령 스팟 돌입을 생중계하는 등 새로운 형식도 선보이고요. 이런 독특한 형식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더 소름돋게 만들어 줍니다. 확실히 영화화 되는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이 제법 많아요. 

이렇게 호러물로서 충분한 완성도를 지닌 개별 괴담들이 기사, 인터뷰, 인터넷 글, 독자 투고 등 서로 다른 형식으로 선보이다가, 이야기 전체가 하나로 묶여 완결에 이르는 과정도 꽤 깔끔합니다. 괴담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끝내버리는(원래 있었던 괴이 취급을 하며) 미쓰다 신조 스타일과는 다르게, 어쨌건 괴담, 괴이 현상의 정체는 결말에서 밝혀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제가 파악한 정체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긴키 지방 산속에서 여성을 꾀는 존재 : 과거 노총각 마사루의 원념입니다. 노모를 모시느라 결혼도 못 한 채 인형과 감을 애지중지하던 그는 한 여성을 돌로 때려죽인 뒤 스스로 그 돌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그 뒤 여자들에 돌에 머리를 박고 죽는 사건이 반복되자 돌은 신사에 모셔졌습니다. 사람들은 인형과 감을 공양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잊혀져버리자, 다시 나쁜 짓 - 여자를 꾀어 데려오는 - 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빨간 코트의 여자 : 아키라의 어머니입니다. 아키라는 마사루의 원념이 원하던 ‘여자’의 대역으로 희생되었었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뒤 마사루의 돌을 훔쳐 아들을 닮은 무언가를 되살렸습니다. 아울러 아이 유령 목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건, 목을 메다가 부러졌기 때문이겠지요...
  3. 저주 스티커 : 아키라의 어머니가 아들의 ‘먹이’를 찾기 위해 퍼뜨린 장치였습니다. 스티커를 통해 저주에 걸린 사람의 혼은 아키라의 먹이가 되고, 남은 껍데기는 자살처럼 위장된 시체로 발견됩니다. 이 때문에 긴키 지방의 아파트와 댐에서는 자살 사건이 잇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몇몇 괴담은 반복 패턴이라 신선도가 떨어지고, 서로 다른 형식이 뒤섞인 서술은 때로는 산만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괴담과 괴이 현상의 핵심 정체는 밝혀주지만, 상세한 모든걸 밝혀주지는 않습니다. 편집자는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저주에 씌워진 희생자들이 외우는 기묘한 주문은 무엇인지, 스티커의 의미와 스티커를 눈에 띄는 전면에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궁금한게 많은데 모두 그냥 '저주'로 퉁치고 마는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급작스러웠던 마지막 진상 고백은 다소 아쉽습니다. 앞서의 이야기에서 쌓아올렸던 장치들과 무관한, 빨간 코트의 여자 독백 한, 두페이지로 끝나버리는 탓입니다. 이는 이야기의 완성도를 다소 떨어트립니다. 비유하자면 "링"의 사다코가 TV에서 기어나와 자신의 원한을 한, 두 페이지 독백으로 마무리하는 결말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매체 텍스트들을 하나의 서사로 묶어내는 방식이 능숙하고, 섬찟함을 유지하는 기술도 좋습니다. 호러 소설, 그중에서도 괴담을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즐기실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서사적 완결성보다는 순간순간 장면의 섬뜩함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2005/05/09

두 사람이다 - 강경옥 : 별점 1.5점

조선시대 우의정 한씨 가문에서 액땜을 위해 치성을 드리던 중 한 스님의 말을 듣고 우환을 막기 위해 이무기를 잡았다. 그러나 승천을 하루 남기고 죽은 이무기는 한씨 가문에 저주를 걸었다. 한씨 가문 자자손손 그 대(代)의 한 명은 주위의 친지 중 2명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저주였다.
세월은 흘러 1999년, 한씨 가문의 자손 지나가 그 세대에서 희생자로 지목되었다. 지나는 같은 세대 사촌인 명현과 명현의 친구인 영능력자 유진, 친구 세희 등의 도움으로 저주와 맞서 싸우려 했지만 어머니와 명현, 2명이 목숨을 노린 직후 세희까지 자신의 목숨을 노리자 좌절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자신이 새로 사귄 남자 친구 재석이 아버지와 원수인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데...

강경옥이라는 작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편 옴니버스에 가까운 "라비헴 폴리스" 정도만 괜찮다 생각하고 있었고 이외의 작품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영화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헌책방 골목에서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터리 심리극"이라는 저 제목의 카피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저주로 인해 주위 사람중 누군가 두 명이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데,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른다는 설정은 아주 좋습니다. 더군다나 생명을 노리는 사람이 두 명이 아니라 하나 둘 더 늘어나며, 실질적인 저주의 근원과 그 배경을 파헤쳐 나간다는 전개는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나름의 반전과 재미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이 정도라면 영화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괜찮아요.

하지만 충분히 괜찮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표현하고 전개해 나가는 만화 자체는 지극히 실망스럽습니다. 강경옥씨의 단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에요.
일단, 데뷰 때부터 거의 늘지 않은 작화 탓이 큽니다. 이 정도 중견 작가가 컷마다, 각도마다 캐릭터 얼굴 선이 틀려 보인다는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캐릭터 자체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에요. 심지어 표지와 속표지와 작품 내용의 주인공 캐릭터 얼굴도 달라보입니다!
거기에다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이 오히려 이야기 전개에 혼선을 가져옵니다. 기본 등장인물들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 전개가 가능했는데 말이지요. 목숨을 노릴 만한 원한을 억지로라도 집어넣어서 범인(?)의 다양화를 꾀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본편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개념없는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져서 보는데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해피 엔딩은 작품과는 어울리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 큰 문제는 희생자로 밝혀지려면 누군가가 생명을 노린 다음에야 그것을 알 수 있다는 설정상의 대 전제입니다. 이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작품에서는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착란을 일으켜 지나가 습격당하는 묘사로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이후 이야기는 급격하게 힘을 잃고 맙니다. "나일지도 모른다"라는 불특정 다수를 지배하는 공포심이 계속 깔려 있어야 했는데, 그러한 공포심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럴거라면 차라리 가문을 지배하는 공포심으로 인해 집단 광기로 발전하는 전개, 예를 들자면 옆의 친척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피해 망상으로 피가 피를 부르는 방향으로 진행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야기가 후반부에 급속하게 힘을 잃고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으로 전개될 필요도 없었을겁니다. 이무기의 저주가 그렇게 쉽게 풀리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도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설정은 탁월하지만 만화로는 전혀 살리지 못해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보다 "공포"스럽게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영상화 작업이 진행된다면 많은 부분의 각색과 보강을 통해 보다 가슴 서늘한 공포를 안겨주어야 할 겁니다.

PS : 관심있으시다면 네이버에서 유료 만화 서비스로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총 4권이니 1,200원에 다 볼 수 있습니다.

2021/09/25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 정진영 : 별점 2.5점

좀비 연대기 - 6점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책세상

근대 시기 유명 장르 소설가의 좀비 관련 중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작가들의 명성과 장르 문학치고는 고전급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성격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강했던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는 다르게, "지옥에서 온 비둘기"라던가 "좀비 감염 지대"같은 시대 초월 명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좀비'라는 말을 만들고, 아이티 부두교 좀비 설정을 확립했다는 "마법의 섬"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도 눈여겨 볼 만 하고요. 크리쳐 호러물 외에도 저주받은 저택, 호러 모험 액션, 판타지에 SF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 스펙트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편의 수록작 중 수준 이하 졸작도 제법 됩니다. 발표된지 100여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리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우리가 지금 '좀비'라고 하면 떠올릴 몬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도 없습니다. 아이티 등 열대 섬나라에서 부두교 주술 등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 노예처럼 부렸다는 초기 좀비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설정을 그대로 반복한 판박이같은 작품이 많다는거지요.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클래식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그런 앤솔러지였습니다. 좀비라는 크리쳐의 창작 초기 설정과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옥에서 온 비둘기" 

그리스웰과 존 브래너는 비둘기 떼가 날아가버린 폐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 공포스러운 휘파람 소리에 잠을 깬 그리스웰은 2층으로 올라간 뒤, 도끼에 맞아죽은 브래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던 그리스웰을 구해준 보안관 버크너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수수께끼와 브래너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늙은 부두교 주술사를 찾아갔지만, 주술사도 뱀에 물려 죽었다.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버크너와 그리스웰은 흉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지만, 그날 밤 그리스웰은 악령에게 홀려 2층으로 향하는데...

좀비물이라기 보다는, 저주받은 저택 장르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죽은 브래너의 습격, 마찬가지로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실비아 블래슨빌 모두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복수를 위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한게 원인이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 저주물에 더 가깝고요.

저주받은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악령에게 습격받는 초반부 묘사는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고 심심했지만, 버크너 보안관 등장 이후부터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버크너가 브래너의 시체를 발견한 뒤의 전개는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해서 독특했습니다. 상황은 그리스웰이 범인일 수 밖에 없어요. 둘만 있던 흉가에서 한 명이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버크너는 그리스웰의 옷에 피가 전혀 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리스웰이 범인이라면 죽은 버크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했을리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를 벌입니다. 그리고 핏자욱을 따라 2층의 사건 발생 현장으로 이동한 뒤,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단서를 통한 추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밀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3명의 가족이 목을 메고 죽어 있었다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진상도 오싹했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던 괴물 '주벰비'가 실비아 블래슨빌을 원망했던 혼혈 하녀 조안이 아니라, 실비아 블래슨빌이었다는 반전도 충격적이었고요. 조안은 주벰비가 되는 검은 술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인에게 몰래 먹였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네요.

믿음직하고 용감한 보안관 버크너와 겁 많은 애송이 그리스웰의 조합도 반 헬싱 교수와 조나단 하커 관계와 좀 비슷한데, 전형적이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딱 맞는 조합이더군요.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겁쟁이와 사건을 해결하고 악령을 응징하는 용감한 보안관이 조합되니, 두려움과 공포, 액션과 정의의 응징을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너무 옛스럽게 쓰여졌다는 건 좀 아쉽습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여러모로 부족한 묘사가 특히 거슬렸어요. 오래된 폐가, 몰락한 가문, 뱀으로 상징되는 저주의 주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 도망쳤던 생존자가 남긴 일기 등 모든 면에서 미쓰다 신조의 "흉가"가 떠오르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묘사와 전개는 전혀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쓰다 신조가 같은 작품을 썼다면 훨씬 무섭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방식으로 영상화하면 훨씬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검은 카난" 

커비 버크너는 고향 카난에서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귀향하다가 혼혈인 마녀의 유혹을 받았다. 최면에 걸렸던 버크너는 운 좋게 정신을 차리고 습격한 거구의 흑인 세 명을 물리쳤다. 마을에 도착한 버크너는 마을 흑인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통해 늪지대에 사는 괴인 솔 스타크가 배후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조사 중 버크너는 마녀의 최면에 걸려 솔 스타크의 본거지로 본의 아니게 끌려가게 되었고, 친구 브랙스턴이 그를 돕기 위해 따라가는데....

부두교 주술사가 카난이라는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마을 지도자 버크너가 이를 물리친다는 호러 액션 활극입니다. 마녀의 최면, 주술로 만든 물고기 인간같은 공포스러운 요소가 등장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버크너 시점의 심리 묘사만 있는 탓이 큽니다. 버크너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쾌남 영웅 스타일이라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묘사도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마녀와 괴물들이 총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과, 최면술말고는 주인공을 크게 위협하지 못한다는 것도 작품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고요.

그래도 모험 활극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버크너는 전작의 버크너 보안관의 선조, 혹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버크너 유니버스도 한 번 제대로 소개되면 좋겠네요.

"천 번의 죽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와 그 부하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도 물에 빠져 죽었었지만 아버지의 연구 덕분에 살아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고 되살리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하는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SF 호러 범죄물을 잭 런던이 썼다는건 특이했지만, 내용은 평이합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건 "프랑켄슈타인" 에서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설정이니까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섬에 틀어박혀 생체 실험을 한다는건 "닥터 모로의 섬"과 똑같고요. 물론 생체 실험의 대상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로, 그가 반복적인 죽음과 소생을 거듭한다는 설정으로 확실히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 신체 장기에 아무런 훼손이 없는 죽음은 단지 생명의 보류 상태'라며 죽음과 소생을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점도 독특했어요.

하지만 차별화 요소를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독약, 질식 등으로 수차례 죽음을 맞는 고통이 잘 그려내지 못한 탓입입니다. 생체 실험의 고통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면 호러물로 충분히 값했을텐데 말이지요. 과학적인 설명도 그럴듯해 보일 뿐, 실상 알맹이 없는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갖은 노력 끝에 물질을 원소 상태로 되돌리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그 부하들을 없애고 탈출한다는 결말은 최악이네요. 아버지의 흑인 부하들이 자기 방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올 때 마다 없애고, 마지막에는 방에 들어선 아버지를 없앴다는데, 이럴 바에야 그냥 방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칼로 찌르는게 빨랐을겁니다. 특별한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피해자들도 한 명씩 들어와 사라질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데 왜 진작에 탈출하지 않은건지도 이유를 모르겠고요. SF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보였던 아버지의 최후라기에는 너무 허무했고요.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러물로는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했고,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아이티 호텔에서 머물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노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과 호텔 직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과거 아이티 독립 전쟁 당시 '소금을 먹지 마라'는 금기를 어겼다가 시체가 된 연인 트레생에 대해 말해 주는데...

뒤에 수록된 "좀비와 함께 걷다"를 읽어야 설정이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좀비와 함께 걷다"에 따르면,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자신이 죽었다는걸 깨닫고, 무덤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트래생은 물론 마리도 진작에 죽었던 좀비였다는 뜻이고요. 트래생이 흑인 해방 등의 의식을 가질 정도로 똑똑했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노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다른 좀비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이 설정 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마리도 좀비였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고요. 죽었다는걸 깨달은 좀비들이 무덤으로 폭주하는 장면 묘사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귀환자들의 마을" 

좀비 전설이 있는 열대 섬마을에 어느날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혹당한 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괴담 소설로 유명한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인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좀비와 다른, 열대 섬나라 좀비에 대한 설명과 파파가 관련된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진행되어 혼란스럽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탓입니다. 섬마을의 여러 풍광에 대한 관능적이면서도 상세한 묘사를 걷어내고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한, 두페이지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입니다. 수록작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나트에서의 마법" 

조티크 대륙의 절반이 사막인 나라 지라의 왕자 아다르는 노예 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된 약혼녀 달리리를 찾아 여러 왕국을 헤멨다. 그러다 그녀가 향했다는 요로스 왕국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지만 항해 중 폭풍에 휘말렸고, 상선은 사악한 섬 나트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달릴리의 구조로 홀로 살아남은 아다르는 나트의 마법사 우두머리 바카른을 만나, 그녀는 바카른이 되살려낸 익사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코난 더 바바리안"을 연상케 하는 작품. 존재하지 않는 고대 왕국을 무대로 마법사와 영웅이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는 고대 판타지라는 점에서요. 그런데 결말이 예상 외라 놀랐습니다. 영웅 포지션인 아다르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바카른의 두 아들 음모에 가담하여 바카른을 죽이려다고 되려 찔려 죽고 말거든요. 그리고 바카른의 아들에 의해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는게 끝입니다. 달릴리와 뭔가 관계가 이루어진다던가, 정의가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던 족제비 괴물은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런 이유로 방대한 설정으로 이루어진 긴 서사물의 일부만 수록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아다르와 달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아이티 공화국 헌법에 좀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아이티에 진짜 좀비가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같은, 페이크 논픽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고, 좀비가 소금 맛을 보면 죽었다는걸 깨닫고 열일 제쳐놓고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정에 기반한 경험담이 이어질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화이트 좀비" 

아프리카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 제프리 에일럿은, 어느날부터 느껴지는 악취 탓에 겁에 질렸다. 안개 자욱한 어느날, 결국 에일럿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돌봐준 신부는 과거 에일럿과 함께 했던 전우 싱클레어의 미망인이 수상하다고 말했고, 에일럿은 탐문과 잠복 끝에 그녀가 부두교 주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부대로 부두교 주술이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서술은 장황하지만, 정작 내용은 에일럿이 잠복해서 부두교 좀비 축제?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싱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부두교 주술솨를 쏴 죽인다는게 전부입니다. 악취라던가 불길한 안개 등의 설정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부의 존재도 불필요했어요.

게다가 좀비 사건의 원인,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싱클레어 부인이 부두교 주술에 빠져 시체를 되살렸는지는 아프리카의 심장 운운하며 농장 관리 목적이었다고 소개되지만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를 되살릴 이유도 없었고요. 에일럿이 악취를 느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딱히 아프리카일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묘사만으로 작 중 무대가 아프리카처럼 느껴지지도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할로 맨" 

한 남자가 아프리카로부터 15년만에 영국으로 찾아왔다. 그는 부두 거리를 헤메다 모모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모는 자신이 15년 전에 죽여 매장했던 고팍이 자기 식당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고팍은 표범 인간이 자신을 깨웠다며, 자기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모모가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식당에 고팍이 머문 뒤, 식당은 서서히 망해갔고, 딸 버블스마저 고팍에게 홀려 생기를 빼앗기자 모모는 고팍을 또 다시 한 번 죽일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자가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운 포인트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단 모모 시점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요. 과거에 저지른 죄로, 손을 씻고 가족과 열심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게 지옥문이 열린 상황인데, 고팍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묘사에서는 절박함이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표범 인간이 고팍을 되살렸는지, 고팍이 영국에는 어떻게 왔는지 등이 모두 드러나지 않아요. 버블스의 생기를 빼았는다는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고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고팍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걸로 마무리되는데, 이럴 거였다면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여러모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나는 농부 폴리니스로부터 아이티 지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들었다. 다른건 유럽과 흡사했지만, 이 지역에만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좀비였다. 나는 좀비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좀비"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작품으로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단단한 대리석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묘를 만들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나 도로변에 무덤이 많은 이유로 좀비를 설명하는 등, 좀비를 실존하는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티 형법을 증거로 내미는 장면도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폴리니스가 해 준 늙은 추장 조제프가 데려온 좀비 이야기는 이 책에 앞서 수록되어 있는 다른 아이티 좀비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좀비가 소금기를 접한 뒤 다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최후까지요. 좀비가 되었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조제프에게 복수를 했다는 결말 정도만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원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무서운 이야기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다른 유사 작품들보다 앞서 수록하지 않은 이 책의 문제가 너무 커 보입니다. 지금 책의 구성은, 후대의 아류작으로 원조의 가치가 퇴색되는 셈이거든요.

하여튼, 원조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해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투셀의 창백한 신부" 

흑인 부자 마티외 투셀은 스무살은 어린 혼혈 아가씨 카미유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투셀은 카미유를 시체와 함께 하는 파티에 초대했고, 카미유는 미쳐버리는데....

화자가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쓴 글 형태로, 화자의 말대로 '흐지부지되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결말이 없거든요. 투셀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셀이 파티가 연 의도가 무엇인지, 시체들은 누구였는지, 아내에게 1년간 비밀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체 파티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문제가 많았던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비" 

그랜빌리 씨는 1차 대전에서 폐를 다친 뒤, 서인도 제도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섬에서 친해진 제프리 다 실바와 럼주 칵테일을 함께 하던 어느날, 그랜빌리 씨는 '점비'에 대해 물었고 다 실바는 자기가 젊었을 때 목격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온 집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던 작품. 이런 이력이라면 좀비가 실제 있는 것 처럼 묘사되는 작품은 쓰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러나 작품은 작가 이력만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다 실바가 친구 이베르센이 죽은 날, 이베르센의 유령을 만나고, 밤길에서 공중에 떠 있는 점비를 목격하고, 이베르센 집에서 개 인간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이어질 뿐으로, "내가 했던 무서운 체험" 류의 기승전결없는 괴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점비'나 개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고요.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래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 감염 지대" 

고든 파넘 박사는 아발론 섬에서 불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혈청을 개발했다. 마침 섬에 닥친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사는 혈청을 이용하여 그들을 되살릴 생각을 하는데...

부두교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닌, 과학의 힘으로 되살린 좀비가 등장하는SF 호러물입니다. 앞서 잭 런던의 단편과 비슷한 소재이지만, 되살리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게 큰 차이점이자 볼거리입니다. 특히 인체는 기계와 같다는 등의 고든 파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주 재미있고 풍성했어요. 이 이론과 박사가 여러 동물로 진행하는 실험으로 이야기 여러 개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 '불멸성을 부여받은 실험체들이 번식을 통해 불멸성 유전을 증명했지만, 태어난 실험체들이 태어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으로 꾸며도 재미있겠더라고요.

시체가 되살아나지만, 영혼과 두뇌가 없이 본능만 남은 상태라 야수로 돌변한다는 발상도 아주 좋았어요. 이들이 죽지 않는 상태로 군대, 경찰을 휩쓸어버리고, 잘려진 손발이 꿈틀대며 잘린 조각들이 엉망으로 붙어 괴물이 되어버리는 묘사도 일품이었고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합니다. 스케일이 정말 남달라요.

물론 화산 폭발을 사람이 제어한다는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기에,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 정도 허풍은 충분히 허용범위 안쪽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아니 시대를 초월한 끔찍한 아비규환을 그려낸 SF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영화로 나와도 아주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6/08/19

저주받은 자, 딜비쉬 (Dilvish, The Damned) - 로저 젤라즈니 / 김상훈 : 별점 2.5점

저주받은 자, 딜비쉬 - 6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너머

고귀한 자의 후예 해방자 딜비쉬는 서방과의 전쟁에서 포타로이를 해방시킨 전쟁 영웅으로, 어느날 어둠의 의식을 거행하던 마법사 젤레락을 방해한 뒤 젤레락의 저주를 받아 200년을 지옥의 나락으로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파괴의 주문과 친구 블랙을 얻어 현세로 돌아온 딜비쉬는 젤레락을 찾기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형이 사둔지는 꽤 되었지만 그닥 손이 가지 않다가 얼마전 읽게된 책입니다. 일단 손이 가지 않은 이유는 형의 혹평도 많이 작용했기에 아무리 젤라즈니 선생의 책이지만 그동안은 좀 멀리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읽고 나니 생각보다는 재미있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딜비쉬와 그 친구인 블랙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딜비쉬는 이 바닥에서는 좀 뻔한 설정의 재반복이긴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귀한 자의 후예로 용병 생활을 통해 해방자로 거듭나는 사연이나 타고난 강함, 냉정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 모두 이런 영웅담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된 이야기이긴 하죠. 그러나 저주받아 떨어졌던 지옥에서 익힌 주문과 보이지 않는 검과 엘프의 선물이라는 녹색장화 (발자국이 남지 않고 어딘가에서 떨어지거나 할 때 발부터 떨어지게 됨) 라는 아이템 등 디테일이 특이하고 젤라즈니 선생 특유의 묘사가 좋아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인상적인 캐릭터로 창조된 것 같습니다.
또한 강철로 된 말같은 형상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 블랙의 설정은 그야말로 왔다!입니다. 판타지의 기본이 되는 아이템인 "말" 그 자체를 주인공의 하나로 만드는 발상이 기발하기도 하지만 이 말이 강철로 된 몸을 지녀 거의 무적에 가깝고 마법까지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말(言)도 하는데 이 블랙이 지껄이는 대사가 시니컬하면서도 꽤나 유머스러운 것이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여자가 길을 지나는 딜비쉬를 붙잡고 애인을 구해달라고 통사정 할 때 하는 말입니다. "이건 고전적이다 못해 해묵은 수법 아니오. 저 여자 뒤를 따라가면 매복하고 있던 무장한 사내 두어명이 당신을 덮칠거요. 그자들을 처치하면 여자는 뒤에서 당신 등을 찌를 거고. 이런 것을 소재로 한 발라드까지 나와 있지 않소"

하지만 이러한 멋진 설정도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이 책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딜비쉬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셀린데의 노래"를 제외한다면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셈이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스케일이 큰 전쟁 이야기 보다는 적은 규모의 무대와 인물들을 바탕으로 색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메라이사의 기사" 와 "악마와 무희",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저주받은 자 딜비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이건 순전히 제 개인 취향이니 다른 분들은 다른 편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취향이든 아니든 대부분 본격적인 영웅담을 한번 써 보고 싶어서 손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맛이 잘 살아 있어서 쭉쭉 읽는 재미 하나는 확실합니다.

뭐 젤라즈니 선생 수준에 걸맞지 않는 단순하고 뻔한, 그냥 무협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맹이가 없긴 하지만 젤라즈니 선생도 심심풀이로 쓰고 싶은 책도 있을 테니까요. 작품의 수준을 논하지 않고 젤라즈니의 작품에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수준으로 보면 적당할 것 같네요. 작가 이름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5/08/06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1 - 제프리 디버 엮음 / 홍현숙 : 별점 2점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1 엘러리 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황금가지

여름 맞이 특별 구입한 책 중 첫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제프리 디버가 직접 선정한 앤솔로지로 총 3권 시리즈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실린 작품은 연대와 장르, 작가별로 꽤 공정한 편이라 마음에 듭니다. 작가도 유명한 작가는 엘러리 퀸 한명 뿐으로 나머지 작가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들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수록 작품들 모두 국내 초역된 작품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개인적인 베스트는 리사 스코토라인의 "숨겨 갖고 들어가다"와 얀윌렘 반 드 비터링의 "힐러리 여사" 였습니다. 두 작품 모두 추리적으로 우월하다기보다는 외적인 재미와 독특함, 신선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라 추천할만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나 수준은 기대 이하였어요. 기대가 큰 탓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장르와 주제를 가지고 작품들을 선정하다 보니 오히려 한 곳에 집중한 결과물 보다 깊이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이런저런 수상작 모음 앤솔로지, 아니면 특정 작가의 대표작을 모아 놓은 앤솔로지들보다는 뒤떨어지는 기획이었다 생각됩니다.
번역에도 약간 문제가 있어서 쉽게 읽히지 않으며 직역에 가까운 느낌도 드네요. 심각한 오류는 없지만 서문에서 에드워드 D 호크를 "호치"라고 번역한 것 같은 것 같은 작은 실수도 눈에 좀 띄고요.

물론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취지와 가치는 변함이 없고 제프리 디버의 취향이 제 취향이 아니었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울러 330여 페이지라면 웬만한 장편 한편 분량인데 너무 두꺼운 종이의 선택, 그리고 큼직한 본문의 행간 탓에 다른 책들보다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정도 두께면 종이만 잘 선택한다면 3권으로 출간될 분량을 2권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에드가상 수상 단편집 시리즈와 비교해 본다면 페이지수는 비슷하지만 에드가상 수상 단편집은 두께는 이 책의 2/3 정도이고 실린 작품은 최소 9편에서 최대 13편까지 실려 있는데 이 작품은 달랑 8편만 실려있을 뿐입니다.
종합적인 면에서 황금가지에서 책을 시리즈로 여러권 출판하려는 얄팍한 상술로 밖에는 보이니 않아 씁쓸합니다.

수록 작품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황태자 인형의 모험 - 엘러리 퀸
크리스마스 이브, 입슨양의 유언으로 전시하게 된 인형 컬렉션 중 딸려있는 다이아몬드로 인해 제일의 가치를 지니는 황태자 인형을 유명한 도둑 코모스가 훔쳐가겠다는 예고장을 보내온다. 퀸 경감과 엘러리는 코모스를 막기 위해 직접 전시장을 지키지만 전시회가 끝날때 인형이 가짜로 바꿔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엘러리 퀸 작품에서 괴도가 나오는 것은 처음 접해본 것 같습니다. 김전일과 괴도신사의 대결 같은 작품이네요. 제목만 본다면 "모험" 시리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내용은 어떻게 훔쳤는지, 그리고 방법을 밝혀낸 직후 범인이 누구인지까지 알아내는 전개인데 훔치는 방법이 좀 더 기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읽기에는 약간 시시한 방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범인을 짐작하기가 쉬웠던 점이 좀 아쉽네요.

사라진 13쪽 - 안나 카타린 그린
저주받은 저택으로 유명한 밴 브루클린 저택에서 중요한 서류가 없어지고 다음날 결혼하게 되는 코넬이라는 인물이 유일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다.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져는 서류가 없어지게 된 방법을 알아내고 저택의 저주받은 방을 지나가 서류를 되찾아 오지만 이 과정에서 저주받은 방에서 일어난 과거의 비극적 사건의 진상까지 알아낸다.
추리소설의 어머니라고 불리운다는 안나 카타린 그린의 작품입니다. 국내에 거의 처음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내용면으로는 그다지 기발하거나 신선한 부분은 없습니다. 전혀 다른 2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단편으로 엮어 놓은 시도는 좋았지만 작품이 전반부는 서류 도난 사건, 후반부는 밴 브루클린의 저주에 대한 진상으로 확연히 나뉘고 있어서 하나로 융합되지도 못했고요. 소품에 가까운 작은 사건인 서류 도난 사건보다는 괴담 분위기의 저주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것만 가지고 보다 보강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딕슨 카 스러운 작품이 하나 나왔을텐데...

숨겨갖고 들어가다 - 리사 스코토라인
변호사 톰은 중요한 사건 재판이 있는 날 아내에게서 쌍동이 딸 중 한명인 브리타니를 억지로 떠안게 되고 여러가지 사건이 겹쳐 딸을 몰래 숨긴채로 재판까지 참석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 저의 베스트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인데 빠르면서도 긴박한 전개에 유머까지 곁들인 센스가 아주 뛰어납니다. 법정 재판 장면에서의 역전극도 통쾌하고요. 읽는 내내 시종일관 웃음을 놓치지 않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배트맨의 협력자들 - 로렌스 블록
매트 스쿠더는 동료들과 함께 시내 불법 노점상에서 허가받지 않은 불법 복제된 배트맨 상품을 압수하는 일에 투입된다...
매트 스쿠더 (스커더)가 등장하는 로렌스 블록의 단편인데 저는 아무리봐도 추리물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사회 비판 의식이 들어있긴 한데 서스펜스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왜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주말 여행객 - 제프리 디버
잭과 토스는 드러그 스토어를 강도질 하다가 실수로 총기를 난사해서 경찰을 비롯한 여러명을 죽인 뒤 인질을 한명 잡아 도주하게 된다. 인질은 웰러라는 세일즈 맨으로 토스까지 죽인 잭을 설득시켜 일종의 게임을 제안하는데...
편집자인 제프리 디버의 단편입니다. 납치범 잭의 심리 묘사는 탁월하나 반전이 좀 시시해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 여자는 죽었어 - 프레데릭 브라운
부유한 사회학 석사 출신의 하위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LA에 정착한 상태. 그는 접시닦이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매춘부인 여자친구 빌리와 더불어 나름 행복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빌리의 위층에 사는 메이미라는 여성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프레데릭 브라운의 독특한 작품으로 그간의 작풍과는 무척 달라 보이네요. 대작가답게 단편이지만 캐릭터 설정 및 묘사, 그리고 복선이 확실한 편이며 이야기도 제법 탄탄합니다. 하지만 내용 전개가 우연에 기인하는 것이 많고 정통파 추리작품은 아니라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원칙의 문제 - 맥스 알런 콜린스
전직 킬러로 지금은 은퇴한 쿼리는 파라다이스 호 주변에서 운둔하며 지내지만 우연히 야식을 사러 갔다가 해리라는 전직 범죄자 친구를 알아보고 그를 미행해서 해리와 루이스 컴비가 시카고 언론 재벌의 상속녀를 유괴한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의 카리스마 있는 묘사가 압권인 단편입니다. 내용은 평이하고 반전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주인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네요.

힐러리 여사 -얀윌렘 반 드 비터링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이고 추장인 주인공이 자신의 동생이 강간 살해당한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파푸아 뉴기니의 추장인 떠벌이 화자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두서없이 떠드는 것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무지하게 독특하고 신선했습니다. 현대 미국을 풍자하는 듯한 묘사도 재미나지만 파푸아 뉴기니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한 것이 묻어나는 현지색깔 넘치는 배경 역시 좋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떠벌이는 듯한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솜씨가 놀랍네요. 작가는 처음 보는 작가지만 다른 작품도 기대를 갖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베스트로 꼽을 만 합니다.

2018/02/18

에르큘 포아로의 모험 (포와로 수사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천두병 : 별점 2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을 읽고 충동적으로 읽기 시작한 여사님의 포와로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공략" 에서 언급한 수많은 걸작들보다 이 책을 먼저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가입한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읽은 탓에 기억도 없고 리뷰도 남아있지 않아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문제는 "동서 추리 문고" 판본인데 원서 대비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등 여러 작품이 빠져있고, "요리사를 찾아라" 라는 다른 단편집 수록작이 실려 있으며, 뒤에는 장편 "구름 속의 죽음"이 합본되어 있는 엉망진창 구성이라는 겁니다.

하여튼,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느껴집니다. 첫 번째는 "연극" 이라는 요소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공략" 에서 언급한 걸작들처럼 작품 전체가 한 편의 연극으로 다의적인 내용을 품도록 쓰여진 건 아닙니다. 단지 작 중 벌어지는 사건을 한 편의 연극처럼 재구성하여 보여주거나, 사건 해결을 위한 연극을 꾸미는 식 정도로만 쓰입니다. 즉 작품 속 연극을 독자가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바라보는 정도에 그칩니다. 연극이라는 요소의 외연 확장 없이 단순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덕분에 작품들이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모로 초기작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공략"에서 언급한 대로, 홈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내용의 수준도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좀 유치합니다. "공략" 에서 말하는대로 트릭의 완성도가 낮은 탓도 크며, 전개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수상하게 묘사하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도 눈에 많이 뜨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여사님 작품 치고는 높은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고전의 향취가 강하며 짤막하게 읽기 쉽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고전 본격 추리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입문자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전승 무도회 사건" 

크론쇼 백작이 전승무도회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10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와 교제 중이던 여배우 코코도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전통적인 홈즈와 왓슨 구도로 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 단편입니다. 사건을 의뢰할 뿐 아니라 해결에 도움을 주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인 재프 경감은 레스트레이드 경감 포지션이라 할 수 있고요.

하지만 고전적인 설정에 비하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핵심 트릭이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탓입니다. 작중 묘사만으로는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된다고 할 수 없어요. 전개와 설정도 작위적입니다. 코코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아무리 프로 배우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하는건 위험 부담이 컸을텐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지요. 또 전개에서 자신만이 진상을 안다며 정보를 툭툭 던지는 포와로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홈즈가 연상되어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공략" 에서 설명되었던 여사님의 특기, 즉 "연극을 글로 옮긴" 작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 하나는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추리쇼가 연극이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작위적이기만 할 뿐, 완성도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본격적인 여사님 스타일로 진화하기 직전의 습작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데이빗 서쳇 주연의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작품입니다.

"머스든 저택의 비극"

시골 장원에서 사망한 노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공략" 에서 베스트로 꼽았던 작품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입 속에서 총을 발사하여 총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핵심 트릭부터가 기대 이하에요. 검시한 의사가 내출혈로 오진했을 뿐이라서, 의사가 실력만 있었어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안을 빼고 총을 쏜 후 의안을 다시 집어 넣은" 식으로 총상을 위장했던 "엉클 애브너" 작품 트릭 정도라면 모를까요.
전개도 블랙 대위의 우연한 방문이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지나친 연극조 분위기도 감점 요소입니다.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야말로 '연극'이 펼쳐지는데 지금 읽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유치했어요. 발표 당시에 읽었더라면 고딕 호러 느낌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영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을 "공략" 에서 높이 평가한 이유는 딱 한가지, 푸아로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살인자의 냉혹함을 부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 베스트로 꼽기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게다가 "공략" 에서 지적한 장점인 '뛰어난 단편소설만이 지니는, 최소한의 글자 수로 최대한의 충격을 선사하는 순발력의 미학' 을 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포와로의 수다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백만 달러 공채"

일종의 밀실이라 할 수 있는 항해 중인 여객선에서 백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도난당했다. 항구에서 완벽에 가까운 수색이 이루어지지만 발견되지 않았고, 채권은 여봐란 듯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밀실에서의 소실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트릭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채권의 실체는 아무도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채권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대담한 발상이 인상적인 덕분입니다.
일종의 연극 무대와 소품처럼 설명하는 묘사는 단편집 수록작 전체에 공통적인 연극적인 구성을 답습하고 있는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 만큼은 적절한 수준이에요. 여객선이라는 공간이 연극 무대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는 단점은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클럽의 킹" 

미모의 발레리나를 협박하던 매니저가 살해당했다. 발레리나는 도주 끝에 한 가정집에 구조되는데...

복잡한 인간 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공략" 에서 언급했던 여사님 작풍의 특징의 편린이 엿보입니다. 브릿지를 하는데 킹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솜씨도 그럴듯 하고요. 우리나라 버젼이라면, "도둑 잡기" 를 하는데 조커가 없었다 정도의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사건 자체가 범인과 공범들의 연극이라서, 이 쯤 되니 연극 사랑이 지나치지 않나 싶습니다. 동기 및 설정도 작위적이기 짝이 없고요. 무엇보다도 이 정도 상황이라면 경찰이 충분히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 

당대 유명했을 투탄카멘의 저주를 추리물로 변주한 작품입니다.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우연한 사고를 발단으로 원격 조종 살인 등 연쇄 살인을 일으키면서 진짜 의도했던 살인을 그 사이에 감춘다는, "ABC 살인사건"의 원형같은 아이디어가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역시나 과장된 추리쇼 연극이 동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연극 없이도 범인을 잡아내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보석 도난 사건"

석유 부호의 아내가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를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작위적이고 유치합니다. 이유는 이 책 전체를 지배하는 연극조 구성 때문입니다. 불쌍한 프랑스 하녀의 자리비움 시연도 그렇고, 포와로가 카드에 대해 묻는 척 하며 지문을 입수하는 전개, 그리고 진범이 두 명의 유명한 보석 도둑으로 변장한 상태였다는 점 모두가 그러합니다. 현장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도 연극 무대 느낌이 물씬 나고요. 

이야기라도 설득력있게 묘사되었면 모르겠지만 트릭을 알아내는 장면부터 작위적이고,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 용의자도 특정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트릭마저도 유치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게다가 남편과 보험을 연결시켜 용의자를 흐리게 하는 묘사도 노골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야말로 초기작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상속권" 

고전 추리 걸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단편입니다. 한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 저주를 이용한 냉혹한 살인이라는 설정은 브라운 신부 단편이 떠오르고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가 살인자를 덮치는 장면은 셜록 홈즈 시리즈(그 중에서도 "얼룩끈")가 떠오르죠.

그런데 전설이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에서처럼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저주나 전설은 지금 시작되었으니까 가능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은 후대의 사람이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과거에 실제로 저주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도 마지막 포와로의 대사 하나로 평범 이하의 소품에서 작품의 가치가 확 뛰어오릅니다. 저주의 발단이 된 아내의 외도와 자식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의심이 후대에 구현되어 가문과 재산이 넘어갔다는 점에서는 살짝 오싹하기도 하네요. 의처증으로 아내와 아들을 죽인 미치광이에게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사를 찾아라"

홈즈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요리사가 사라진 사건이 상류층에게 있는 강력 사건보다 못할게 없다는 가정 주부의 의뢰에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실종된 요리사와 거액을 지닌 채 도주한 은행원을 연결시키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그런데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낡은 트렁크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며, 부인이 의뢰를 취소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는 겁니다.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면 구태여 의뢰를 취소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웨스턴 스타"

사라진 보석 "웨스턴 스타"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로 지나친 억측이 가득한 작위적인 작품이라는, 이 대부분의 단편집 수록작들이 갖춘 단점을 아주 정확하게 갖춘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이며, 핵심 트릭이 연극이라는 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네요. 

그나마 앞서 다른 작품에서 말씀드렸듯 연극적이라도 설득력있게만 전개되었다면 조금 괜찮았겠지만 이 작품 속 연극은 각본이 너무 부실합니다. '수수께끼의 중국인' 이라니! 변장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한마디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구름 속의 죽음" 

이전에 리뷰를 남겼던 작품이죠.

** 그리고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다른 "포와로 사건집" 수록작들 리뷰를 덧붙입니다. 별도로 구해 읽었습니다만,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베일을 쓴 여인", "사라진 광산", "초콜릿 상자" 는 아직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으면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납치된 총리" 

영국 총리가 실종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세계 정세를 소재로 꽤나 거대한 음모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바꿔치기 트릭이 등장하는데 지극히 억지스럽거든요. 조작이 너무 쉽다는 맹점도 있고요. 총리가 저격당하는 등의 사고가 있었는데 조치도 너무 대충인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냥꾼 별장의 모험" 

헤이스팅스가 현장에서 발로 뛰고, 포와로는 간단한 정보만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전형적인 홈즈, 왓슨 컴비 단편이 떠오릅니다. 설정부터가 "바스커빌 가의 개"와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완성도는 홈즈 시리즈에 미치지 못합니다. 진범이 원래 배우 출신으로, 1인 2역 연기를 했다는 것인데 경찰의 수준(더불어 헤이스팅스까지)이 의심되는 유치한 트릭에다가, 정점에 달한 연극 사랑도 너무한 수준입니다. 범인들이 구태여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고전 향취 물씬 풍기는 도입부와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데이븐하임 씨 실종 사건" 

저명한 은행가의 실종 사건 해결을 걸고 재프 경감과 내기를 한다는 이야기로, 재프 경감의 끈기있는 수사보다 자신의 추리가 더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눈 같은걸 쓰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게 더 낫다"는 말로 대표되는, 자존감이 극히 높은 자부심 덩어리 포와로 캐릭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전개도 일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인 "입술 비뚤어진 사나이" 와 별다르지 않은 진상은 대단치 않고, 트릭도 변장 트릭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크지만 전개하면서 드러내는 정보들을 통해 이를 설득력있게 꾸며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가장 완벽하게 실종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고요.

데이븐하임 씨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잘 알려져있는데 지나치게 변장을 맹신해서 설득력이 낮아진건 아쉽지만 가벼운 소품으로 읽을만은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유언장 사건" 

돌아가신 큰아버지와 거액의 유산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바이올렛 마쉬양의 의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내용과 다른, 뒤에 쓰여진 유언장을 찾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인데,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모호한 말에서 찾아내야 하는게 유언장이라는걸 짚어내는 첫 과정부터 애매하고, 유언장을 찾아내는 과정의 설득력도 지극히 낮은 탓입니다. 불에 가져다 대어야 보이는 잉크라는 단서는 아무데도 없다는 점에서는 추리가 아니라 초능력의 영역이 아닐까 싶고요. 게다가 헤이스팅스도 지적했지만, 둘만의 승부에 포와로가 끼어든 자체도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단점만 도드라지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이탈리아 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사냥꾼 별장의 모험" 과 같은 개념, 트릭의 작품입니다. 목격자가 범인으로 위증을 했다는게 진상이니까요.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변장보다는 그래도 공들인 연출이 들어가 있으며, 진상을 알게 만드는 "수플레" 라는 단서도 나름 공정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언급만 빼고 말이죠(커피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라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이 미리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이런 사실도 간과하고 엉터리 알리바이 공작을 꾸민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발표 시점에는 신고 전화의 출처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던걸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쁘지도 않지만 단점도 명확한 평작입니다.

2016/01/08

테두리 없는 거울 - 츠지무라 미즈키 / 박현미 : 별점 2점

테두리 없는 거울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arte(아르테)

'감성 호러'라는 마케팅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읽게 된 작품. 대체 호러가 어떻게 감성적일 수 있을까 아주 궁금했거든요.

허나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습니다. 소녀 취향 감성은 넘쳐나지만 호러의 비중은 지나치게 낮은 탓입니다. 전혀 무섭지 않아요. 때문에 볼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호러 소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도 "계단의 하나코" 외에는 범죄물이나 일상계에 가까와서 호러로 보기 어렵고요.

또 수록작 5편 중 2편이나 내용 파악이 어렵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대부분 같은 의견이더군요) =.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답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계단의 하나코"

  • 첫 번째.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 산다.
  • 두 번째.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 세 번째.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다.
  • 네 번째. 하나코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 다섯 번째. 하나코가 상자를 줘도 받으면 안 된다.
  • 여섯 번째. 하나코에게 부탁할 때는 하나코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일곱 번째. 하나코가 내리는 벌은 계단에 갇히는 무한 계단의 형벌.

학교의 왕따 사유리 자살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로 일본 괴담의 메이저 중 메이저인 하나코가 등장합니다. 화장실이 아니라 계단에서 나타나는 하나코를 그리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굳이 '하나코'였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네요.

하여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하나코에 얽힌 일곱 가지 불가사의를 엮어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아이카와의 후배 지사코로 변장한 하나코가 나타난 후,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아이카와가 간절히 계단을 청소한 덕분(핏자욱을 지우기 위해)이며,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데 다행히 아이카와는 지사코가 선물한 케잌과 사탕을 먹지 않아서 운 좋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결국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에 걸려서 무한 계단 지옥에 갇히게 되지요. 이러한 과정의 긴박감은 일품입니다. 아이카와의 심리 묘사 역시 발군이고요. 마더 구즈 동요에 맞추어 살인극이 벌어지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라면 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부분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코는 부탁을 들어 주는 역할도 있는 듯한데 여기서는 벌만 내린다는 점입니다. 좀 의아했어요.
아이카와 앞에 하나코가 나타난 게 사유리의 죽기 직전 부탁이 아니라 아이카와의 간절한 소망때문이라면, 사유리의 죽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복수자 역할을 수행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죽기 직전 사유리가 계단에서 "살려줘!"라고 외쳤다는 묘사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아이카와의 범행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독자 상상에 기대는 부분과 사유리를 왕따시킨 학교 아이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결말도 답답하고 찜찜했습니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네를 타는 다리"

애니메이션 하이디의 그네 속도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왕따 이야기와 분신사바를 엮는 과정과 '큐피트님'이라는 유령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인기없던 미노리가 인기 있는 가오리 그룹에 들기 위해 분신사바 놀이를 하다가 유령을 화나게 했다... 그런데 그 유령 때문에 미노리가 죽었다? 유령의 정체도 모호하고, 아카네의 상상이 미노리와 겹치는 마지막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려면 최소한 유령의 정체, 혹은 죽음의 이유는 명확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아빠, 시체가 있어요"

쓰쓰지와 엄마, 아빠가 치매가 있는 시골 할머니 집 청소를 나섰다가 집안 곳곳에서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시체가 왜 나왔으며 시간이 지나면 쓰쓰지를 제외한 사람들은 왜 모른 척을 하는지, 연달아 시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에필로그는 누구의 제사 장면인지 등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대체로 제 감상과 동일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잠깐 고민해 본 결과로는, 앞서 청소 시작 전 아버지가 5월 내내 청소해야 된다는 말을 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의 일력은 5월 5일이라는 것이 핵심인 듯 합니다. 즉, 에필로그는 사실 청소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것이지요. 앞서 2주에 걸쳐 시체를 치우고 집배원까지 죽인 뒤, 방문 간병인이 오게 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한 달은 걸렸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앞서 묘사된 청소와 시체 은닉은 모두 쓰쓰지의 상상이 아닐까요? 집에서 발견한 것은 시체가 아니라 쓰쓰지의 오래된 나쁜 기억, 예를 들자면 과거 이 집에서 죽은 것으로 묘사된 주민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당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매주 어머니, 아버지가 시체에 대해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설명이 되고요. 아니면 히로후미의 수건이 놓여져 있는 제사상을 볼 때 히로후미가 죽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가족 모두가 관계되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진상은 도무지 알 길이 없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블랙코미디스러운 전개는 그럴듯했지만 내용도 모를 글에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테두리 없는 거울"

표제작입니다. 거울에서 본 미래(아이)가 악몽으로 구체화되고, 이 미래를 죽이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저주를 다중인격 범죄와 엮은 작품이지요.

사건의 원인과 동기,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약간 추리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좋았고요. 가나코 시점에서 다카하타 도야 - 다카하타 유이치로를 뒤섞는 심리 묘사는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보아도 무방하고요. 트릭이 약간 반칙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8월의 천재지변"

신지는 병약한 친구 교스케와 더불어 왕따를 당하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공의 친구 "유짱"을 창조하여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 밝혀지고,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 때 "유짱"이 나타나났다...

거짓말이 현실이 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가 핵심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 비밀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지가 유짱의 정체가 사실은 매미가 아닐까 고민하는 과정, 교스케가 진료소에서 친구를 사귀었다는 복선과 함께 밝혀지는 마지막 결말도 아주 괜찮았어요.

하지만 이 작가 스타일일까요? 결국 유짱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 불명확한 게 옥의 티입니다.. 초등학교에서의 왕따가 주요 동기로 계속 등장하는 것도 지루한 요소였고요.

그래도 평작 이상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떠올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름을 무대로 초등학생들이 등장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건 설정이 반대라는 점입니다. 유짱이 매미의 화신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알고보니 실존 인물이라는 결말이거든요. "해바라기..."는 죽은 친구가 거미로 환생하는데 알고 보니 주인공의 환상이었다는 것이니 완벽하게 반대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2022/02/04

금요일의 괴담회 - 전건우 : 별점 1.5점

금요일의 괴담회 - 4점
전건우 지음/북오션

한국 작가의 괴담 모음집입니다. 금요일에 리뷰 올리기 좋은 제목이네요. 모두 열 일곱 편의 괴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작 대부분은 괴담답게 기승전결보다는 괴이현상, 섬찟함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여우고개", "열세 번째 계단"의 두 편은 아주 좋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범죄, 사건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 평균, 수준 이하입니다. 괴담치고는 별로 무섭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큽니다. 지나치게 짧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설명도 부족할 뿐더러, 설정 등에서 아무런 밀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미쓰다 신조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도록 기본 바탕은 깔아주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체로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할 뿐입니다. 최소한의 반전, 아니면 최소한의 새로움이라도 더해 주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겠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살리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러모로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집"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다 독감에 걸려버린 규선에게 그 집에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은 노인의 가족이 찾아와 노제를 하고 떠났다. 그래도 이상한 꿈을 꾸는 등 괴현상이 계속되자, 규선은 빈 집을 찍울 수 있도록 핸드폰을 셋팅하고 외출했다. 나중에 확인한 핸드폰 영상에는 소리를 지르는 시커먼 형체가 찍혀 있었다... 

노망에 걸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의 원혼이 집에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낮습니다. 일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이 왜 집에 집착하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규선이 저주를 받을 이유도 딱히 없고요. 또 노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노제를 했다면 원혼이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게 아니라면 구태여 노제는 전개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혼이 규선을 덮치는 결말도 예상 가능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우고개" 

할머니는 어린 시절, 색연필을 훔쳤던 자기를 쫓아온 여우 '매구'를 매실의 힘을 이용하여 자기 대신 친구를 잡아가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에 걸려있던 빨간 카디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카디건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른 동료 할머니 3명이 카디건을 숨겼다고 오해하고 그들에게 농약 사이다를 먹이고 마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곤 했던 '농약 사이다' 사건을 '매구'라는 요물 여우가 배후에 있다는 괴담 형태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작품 속 매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게 만든다는 설정인데, 이를 정신이 나간듯한 할머니 시점의 끔찍한 묘사들과 잘 섞어서 설득력있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이에요. 한국식 사회파 호러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매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명확하게 하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 친구가 실종된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할머니가 죽였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식이었다면 말이 됐을테니까요. 지금처럼 매구가 있는지 없는지, 카디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호한 상태로 끝나버리면 할머니가 나쁜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런 마무리는 호러물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거든요. 깔끔한 느낌도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여름의 흉가" 

여름 한 철, 나는 호러 가이드로 일하면서 어머니처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강원도 흉가 체험을 한 어느날, 열정적으로 살라는 투어 멤버의 조언을 듣는데... 

손님을 가장하여 투어에 참가한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게 된다는, 성장물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 명 더 있던 손님, 죽은 어머니의 영혼과 사진의 존재 등 전형적인 괴담 클리셰를 모아서 만든 이야기로 뻔한 내용에 주인공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살하는 캐릭터" 

신작 게임 블라인드 테스트 중, 이상한 NPC가 발견되었다. 그 NPC를 참혹하게 죽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알고보니 개발팀에서 폭언을 듣고 자살한 신입 개발자 은정이가 NPC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 뒤 개발팀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은정이가 게임에서 죽은 방식대로 죽어갔다... 

저주를 게임의 NPC를 통해 풀어낸건 참신했지만, 그 외에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품입니다. NPC 목을 베어 죽였던 주인공 목에 금이 간다는 결말까지 뻔했습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던가, 저주의 실체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파고들었다면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의 엘리베이터" 

여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배달원과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곧 정상 가동되었지만, 찜찜함을 느낀 여자는 중간에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배달원이 여자를 쫓고 있었다는 결말인데, 너무 뜬금없을 뿐더러 흔해빠진 이야기라 반전의 묘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수십년 전에 보았던 영화 "캠퍼스 레전드" 도입부가 바로 떠올랐거든요. 한 여자가 주유소였나? 어딘가에 잠깐 들렀는데, 굉장히 수상해보이는 주인이 갑자기 쫓아오기 시작해서 부리나케 도망을 칩니다. 그러자 주인은 뒤에서 "차 뒷 자리에 누군가 숨어있단 말이야!"라고 소리친다는건데, 거의 똑같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캠퍼스 레전드"쪽이 훨씬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양복입은 남자의 존재가 제도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이 더 많은 탓입니다.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인형 뽑기" 

회식에서도 팀장에게 시달리던 세호는 우연히 인형 뽑기 기계를 마주쳤다. 기계에는 인형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붙이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세호는 뽑은 인형에 팀장의 이름을 붙인 뒤 눈, 코, 입을 그리고 인형을 패대기쳤다. 다음날, 세호는 팀장이 사고로 인형과 똑같은 부분에 큰 부상을 입고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호가 인형을 뽑아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들에게 복수하지만, 세호도 부하 직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라는건 장점이지만 그 외는 그닥입니다. 진부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숲" 

미스터리 사이트에 무서운 숲 사진을 올리고, 그 곳에서 캠핑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회색 숲은 음기가 강하고 귀신이 많으니 도망치라는 글을 올렸지만 처음 글쓴이는 캠핑을 감행했고, 뒤이어 이상한 현상에 대한 글을 계속 올리기 시작하는데... 

미스터리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파운드 푸티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선보이고 있는 호러 영화 장르물을 글로 옮기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저는 이 장르를 싫어합니다. '현실감'을 주는데 치중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위치"가 대표적이지요. 이야기 결말도 보통 주인공이 사라지는 형태로 애매모호하게 끝나곤 했었지요. 이 작품 역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에 글쓴이, 구해주러 갔던 직업 군인, 숲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 박수무당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똑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싫어하는 점을 답습했을 뿐더러, 새로운 아이디어도 딱히 찾아보기 힘들어서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화분" 

선미는 시장에서 빨간 색 꽃이 핀 화분을 사 왔다. 그리고 꽃에게 자기 소원을 이야기한 다음날, 소원이 이루어져 연적인 이 대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선미가 생기, 젊음을 댓가로 김 대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상한 꽃에게 소원을 빌지만, 마지막에 소원을 빈 목적이었던 김 대리마저 죽게 만든 뒤, 자기에게 꽃을 팔았던 할머니처럼 선미도 시장에서 화분을 팔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저주받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서 변별력을 가질 만큼의 새로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는 않네요. 김 대리가 죽고 만다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그 외는 평이했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본인도 불행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결말도 뻔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열세 번째 계단" 

한 계단 씩 올라갈 때마다 피를 한 방울 흘리면, 열세 번째 계단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볼 때 서 있을 여자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주면 뭐든지 들어줄 것이다. 

전교 1등을 죽이면 자기가 전교 1등이 될 거라는 괴담의 파생형입니다. 여기에 성적 때문에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고요. 

짧은 분량 안에서 할 이야기는 다 하고 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습니다. 1등 원석이가 계단에 소원을 빈 게 아니라, 노는 척 하면서 죽을만큼 공부했다는 진상이 특히 와 닿네요. 괴담을 현실로 만드는데 정말로 적절한 소재였다 생각되거든요. 부모를 죽이고, 원석이의 장난까지 알아버리자 완전히 미쳐버려 계단에서 여자 아이를 보게 된 주인공의 시점 변화도 탁월했고요.

주인공의 부모의 비정상적인 집착이 좀 더 묘사되었더라면, 그리고 부모를 죽인 주인공이 부모로부터 피를 받아 왔을텐데, 그 이야기를 더 무섭게 푸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부모 머리를 잘라왔다는 식이었다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좀 은근하게, 지나치게 흉칙하지 않게 묘사하는게 이 책 수록작들의 특징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만큼은 보다 엽기적인 묘사를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차피 범죄 자체가 극단적인 패륜 범죄이니까요.

그래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위" 

주인공 혜미가 가위에 눌린 이야기가 전부인 소품.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괴담으로 보기에도 너무 알멩이가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외로운 아이 부르기" 

중학교 2학년 친구들 세 명이 몰래 학교에 숨어들었다.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좀 있어보였지만, 알고보니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는 '분신사바'와 거의 똑같더군요. 불러낸 외로운 아이가 질문을 잘못한 탓에 화가 나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는게 전부인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자유로 귀신" 

헌팅한 여자가 파주로 가자는 말에 남자는 차를 몰고 자유로를 탔다. 여자는 '자유로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했더니, 음주 운전 차량에 희생된 여자가 원혼이 되어 자유로를 음주 운전으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렇게 완성도 높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어요. 별로 무섭지도 않고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더 무서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음주 운전자는 죽어도 싸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약간의 점수를 더합니다. 모든 음주 운전자가 이런 귀신을 만나서 천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유괴" 

지수는 아영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갔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자기가 미래를 볼 줄 안다면서, 아이 앞날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수는 유괴범이었고, 아영이를 놀이 공원에 데리고 온 건 몸값을 받으러 왔던 거라는 진상이 반전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범죄가 등장하는 범죄물로 유괴범 시점으로 바라본 유괴극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독특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할머니의 존재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지수의 정체가 유괴범이라는걸 알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래를 본다는 능력과 별 상관도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아영이를 지수 몰래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하니까요. 

별로 무섭지도 않았고,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요소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더블"

진수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두 번째 본 뒤, 옛 군대 선임인 박수무당 영우를 찾아갔다. 영우는 산 사람한테 붙어 영혼을 빨아먹는 악랄한 홉혼귀라며 부적을 한 장 써 주었다. 한 번 더 홉혼귀를 보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세 번째로 홉혼귀를 마주치자, 영우는 분노에 휩싸여 그를 죽이고 마는데... 

자기와 똑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품고 죽였는데, 죽이고나니 하나도 안 닮았더라... 는 이야기. 홉혼귀다, 도플갱어다 하면서 뭔가 설정을 깔기는 하는데 그런게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어요. 진수를 홉혼귀가 쫓아다니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1킬로미터" 

한수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따라가 어플을 하나 깔았다. 깔고나니 일종의 매칭 어플이었다. 한수는 어플에서 이상형인 박수희를 발견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데... 

어플을 통해 젊은 남자를 납치한 뒤 고깃배에 태우는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건장한 남자를 폭행 후 납치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마지막에 GPS로 위치를 확인하여 한수의 집까지 침입한다는 결말은 어이를 상실케 했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화장실" 

데이트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았는데, 옆 칸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 안에 붙어있는 장기 매매 스티커 번호를 물어보았다... 

장기가 적출되는건 나였고, 이건 여자 친구의 음모였다는 이야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화장실 장기 매매 스티커를 이야기 전개에 활용한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그 외 모든 내용과 과정은 뻔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목소리" 

윤미 일행은 도심 근교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울증 약을 건너 뛴 윤미는 남자친구 동민과 친구 영화가 윤미를 몽키 스패너로 처리할거라는 음모를 엿들었다...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윤미가 남자친구, 자기 친구와 그 남자친구까지 모조리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로 보였던 여주인공이 알고보니 가해자였다는건 많이 보아왔던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윤미에게 우울증이 있다는게 밝혀지자마자 곧바로 살인으로 이어져버리니까요. 이런 급발진 전개 덕분에 아무런 복선이나 반전도 없어서 시시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