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로드 던세이니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로드 던세이니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2/08/04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로드 던세이니 / 정보라 : 별점 2.5점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 6점
로드 던세이니 지음, 정보라 옮김, 이승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바다출판사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18번째 작품으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게렉터님 블로그 리뷰를 접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로드 던세이니는 고전 "두병의 소오스"로 접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차에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 대부분이 전형적인 "판타지" 문학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제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반전이 빼어나고 촌철살인의 맛이 있는 "쇼트쇼트" 같은 작품을 기대했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몇몇 작품은 당최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불행교환상회"나 "어느 여인숙의 하룻밤" 같은 기대에 걸맞은 작품도 실려 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정통 판타지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곳"

영혼이 갈 데가 없어 버려진 존재들 속에서 기거하게 된 운명에 처한 남자가 최후에 구원받는다는 초단편. 철학적이면서 "불새 - 우주편"이 떠오르기도 하는 등 아이디어는 괜찮지만, 너무 짧은 탓에 재미만 놓고 보면 그닥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들판"

들판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에 관한 이야기. 솔직히 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

"칼과 우상"

철기와 종교의 도입 시기에 벌어졌음직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 결국 종교가 승리한다는 결말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상당한 수작이었습니다. 지금의 세태에 대한 풍자적 의미도 담겨 있는 듯 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르카손"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카르카손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떠나는 정복자 일행에 대한 서사시. "원탁의 기사" 등이 연상되는 고전 느낌의 정통 판타지 문학입니다. 고전 느낌 그대로라서 의외성이 하나도 없다는건 단점이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런데, 보드게임 "카르카손"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좀 궁금합니다.

"거지들"

이상한 예언을 하는 거지들과 맞닥뜨린 주인공이 버스 경적 소리로 환영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 "들판"처럼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별점은 1점.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표제작.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주인공이 얀 강가를 중심으로 한 이국적인 도시들을 여행하며 경험한 것에 대한 기행문 성격의 작품입니다. 문체와 분위기, 설정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국적인 독특함이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카페 알파" 등이 떠오르는데, 좀 더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되네요. 혹 후속작이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행교환상회"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해 주는 상점에 관한 이야기로, "환상특급"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결말이 예상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런 작품이 좀 더 많이 실렸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별점은 3점입니다.

"어느 여인숙의 하룻밤"

짤막한 희곡. 많은 모험소설에서 접했던 "이교도 유적에 있는 신상의 보석 눈을 훔친 도둑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반까지는 일당의 브레인 '멋쟁이' 활약 중심의 모험-범죄물이었다면, 마지막 반전 이후 결말은 "기묘한 맛" 장르에 가깝습니다.   

반전이 굉장히 뛰어나서 전편을 통틀어 가장 기대에 값했던 작품이에요. 실제 연극도 보고 싶어지더군요. "두병의 소오스"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07/04/10

세계추리명작단편선 - 하서출판사 : 별점 4점

하서출판사에서 70년대에 간행된 세계 추리 명작 전집 중 한권으로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 초창기 작품들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재미와 수준이 아주 뛰어난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어요. 지금은 좀 구하기 힘들어진 작가들의 비중이 높은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소개된 초유명 작품들 몇편도 실려있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걸작들이니 납득할만 합니다. 오래된 낡은 책이기에 수반되는 편집, 장정, 번역 문제를 제외하고 수록작품들의 퀄리티만 따진다면 별점 5점은 충분하겠죠. 어쨌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순수한 희소성 측면에서 최고 작품은 로버트 바의 "건망증 있는 사람들"과 윌키 콜린즈의 "사람이 오만하면", 그리고 로드 던세이니의 "두병의 소오스"를 꼽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희귀 고전 걸작을 새로 간행하면 어떨까 싶어서 저만의 리스트를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혹 출판사 관계자가 보신다면 한번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FTA 체결로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후 50년 이상이면 저작권이 풀리는 당장의 국내 현실에 맞춰본 것이죠. 이 단편집 위주이긴 하지만 몇몇 작품은 다른 작품에서 뽑아와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번역은 다시 해야겠지만요.
-추리소설의 여명기 걸작선-
토마스 버크 (1886~1945) "오터모울씨의 손"
로버트 바 (1850~1912)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윌키 콜린즈 (1824~1889) "사람이 오만하면"

-기묘한 맛, 추리소설의 색다른 재미-
로드 던세이니 (1878~1956) "두병의 소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893~1957) "의혹"

-셜록홈즈의 라이벌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머 (1869~1942) "연립주택의 참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또는 그외 (브룩밴드 장의 비극)
멜빈 데이비드 포스트 (1871~1930) "둠도프 사건" "나보테의 포도원" (서부개척시대 탐정 엉클 애브너) 또는 그외
로널드 A. 녹스(1888~1957) "밀실의 수행자" (비밀탐정 마일즈 브랜든)
체스터튼 (1874~1936) "날개달린 단검" (브라운 신부 시리즈) 또는 그외
오르치 백작부인 (1865~1945)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또는 그외
잭 푸트렐 (1875~1912) "정보누설" (사고기계 반 두젠 시리즈) 또는 그외 (13호 독방의 문제)
아더 모리슨 (1863~1945) "렌턴관 도난 사건" (사립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크리스티 여사의 "야앵장"
한 여성의 의혹과 생존을 위한 속임수를 다룬 소품. 심리묘사가 정말로 흥미진진한 걸작입니다.
 
토마스 버크 "오터모울씨의 손"
추리소설 초창기 최고 걸작 중 하나. 이유는 아주 획기적인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이후 여러 후대 작품들에 인용된 걸작 트릭이죠.

로버트 바아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유머 미스테리. 은화 위조단 추적으로 비롯된 사건이 기발한 사기 사건으로 연결되는 구조도 신선하고 트릭과 전개 역시 유쾌하고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너 "브룩밴드 장의 비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시리즈. 시리즈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과학적이고도 신선한 트릭이 등장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단, 맥스 캐러더스가 장님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설정상 감점요소가 좀 있고 결말이 좀 개운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하여간 이 작가는 전개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로드 던세이니 "두병의 소오스"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류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 지금 읽어도 굉장히 충격적이고 기발한 결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화자를 통해 전개하는 작품의 스토리텔링이 무척이나 빼어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멜빈 데이비슨 포스트 "둠도프 사건"
서부개척 탐정 엉클 애브너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은 동서 문고 시리즈로도 접할 수 있죠. 하나님 어쩌구 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전개는 짜증나지만 기발한 트릭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G.K 체스터튼 "기묘한 발소리"
브라운 신부 시리즈. 지금은 정식 간행되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리즈 최고작이라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좋은 작품이죠.

로널드 K 녹스 "밀실의 신비주의자"
밀실 트릭의 새로운 지평을 열은 단편. "김전일" 시리즈 중 한편인 <이진간촌 살인사건>의 서브트릭으로 사용될 정도로 추리 소설계에 유명한 트릭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죠. 지금 읽는다면 트릭이 좀 뻔해보이기도 합니다만...

휴 월폴 "은가면"
착한 부인이 자신의 선행에 의해 파멸해 나가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그린 독특한 작품. 이색적이고 좀 서늘한 유머가 있는 작품입니다.

윌키 콜린즈 "사람이 오만하면"
전체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진행에 추리소설로 나무랄데 없는 전개를 가진 걸작입니다. 유머러스한 문체까지 곁들여진 초기 영국 추리 문학계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죠.

E.B 오르치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역시 동서문고로 간행되어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최고 걸작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발상의 역전이 기발한 작품으로 당대의 명탐정의 반열에 오른 구석의 노인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A.모리슨 "렌턴관 도난사건"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역시나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만한 멋진 트릭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 트릭을 풀어내기 위한 단서도 굉장히 합리적이라 단편 추리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덧붙이자면 아주 오래전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등장했던 바로 그 트릭입니다. 전개가 조금 밋밋한 것이 약간 아쉽네요.

도로시 L 세이어즈 "의혹"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걸작.

2013/11/29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마이클 더다 / 김용언 : 별점 2.5점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6점
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을유문화사

퓰리처 상을 받은 평론가 마이클 더다가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창조자 코난 도일에 대한 일종의 헌사 에세이집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다가 어린 시절 "바스커빌가의 개"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 "계림문고"로 처음 홈즈의 단편 시리즈들을 접했던 제 기억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홈즈의 단편을 하나씩 작은 소책자 형태로 낸 시리즈였는데, 정말이지 아껴가며, 두근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자아이들이 모험, 공포, 추리물에 열광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세계"로 대표되는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높이 평가한다던가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을 고이 보관하고 있다는 등, 저와 취향이 비슷한 점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면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개인적 경험담과 함께 여러가지 도일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러한 소개글도 최고 수준입니다. 오랫동안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서평을 담당했고, 퓰리처상도 받은 전문 리뷰어인 덕분이지요. 서평으로 밥먹고 사려면 이정도는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서 리뷰 중심의 블로거로서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도 또 이 책의 리뷰는 이 모양이니...). 하여튼, 이 책에서 추천하며 소개하는 여러가지 작품들은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네요. 이런 류의 소갯글 멘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여러분들이 부럽다"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말 다했지요. 

방대한 소개 작품 중 우선 읽고 싶은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
  • 나폴레옹 시대 군인의 회고담이라는 "준장 제라르의 위업"과 "제라르의 모험"
  • 1922년에 도일이 잡다한 단편을 모아 출간했다는 총 6권짜리 "코난 도일 작품선"
  • 가장 궁금했던 "코르스코의 비극". "그들은 기독교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갑자기, 답을 찾기도 전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나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결말을 찾아봐야겠어요.
  • 도일이 높이 평가했다는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죠. 도일에게 세계 최고의 단편이었다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래 언덕 위의 별장"
  • 열정적으로 추천했다는 러디야드 키플링의 "연대의 북 치는 소년들", "왕이 되려한 사나이"
  • 최고의 유령 이야기라고 극찬했다는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귀신 들린 집과 유령들"
  • 로드 던세이니의 "조켄스 시리즈" 소개도 멋드러집니다.

약간 우려되는건 소개된 작품 중 "아서 코난 도일, 미스터리 걸작선"에 실려있는 "사라진 특별열차"와 "시계를 많이 가진 남자"는 소개글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역시나 좀 입에 발린 소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렇겠지요.

코난 도일의 글솜씨가 좋았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확실히 시대를 초월한 거장에게는 남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번역본으로 접하면 그런걸 알기는 어러운데, 도일의 문체와 스타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에세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특정 주제는 재미도 없고 별다른 흥미도 자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더다가 "베이커 가 특공대"에 초대된 뒤, 가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그가 특공대에 가입하면서 '랭데일 파이크'라는 호칭을 받은 뒤, 랭데일 파이크에 대한 디테일한 가공의 약력을 창작하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별 관심도 없는 인물인데다가, 창작한 약력이 너무 픽션과 현실을 오가고 억지스러운 인용도 많으며 당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즉 셜로키언이 아니라면 딱히 즐길거리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부제가 "셜록 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이라서 약간은 작법서에 가까운 정보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거의 그렇지 않다는 것도 역시나 단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홈즈와 도일의 팬이거나 장르문학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에세이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추천하기도 애매하네요. 단점도 명확하니까요. 코난 도일의 작법과 셜록 홈즈 작품들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다던가, 국내 미발표 작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2026/05/31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5) 사람먹는 장르 문학

추리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에는 식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식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먹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사람이 평범한 먹잇감으로 취급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좀비물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식육 열차", 그러니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 속 빌런인 푸주한 마호가니가 깊은 밤 지하철 승객들을 도살해 인육으로 만드는 이유는 직접 먹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미지의 절대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이’가 아니라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전에 소개드렸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계보를 잇는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인육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끔찍하지만, 장르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먹이로 삼는 경우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다시 재료의 정체를 숨기고 먹느냐, 대놓고 먹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대표작은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작품 속 “소일렌트 그린”은 인구 폭발과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사라져가는 미래 세계에 등장한 먹거리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지만 그 정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대사 “Soylent Green is people!”로 밝혀집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 대놓고 사람을 먹는 작품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서바이버 타입"을 끝판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먹어버린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킹답게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묘하게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두 번째는 범죄 목적으로 식인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증거 인멸을 위한 식인일 것입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은 한 남자가 거처를 떠나지 않은 채, 함께 살던 동거녀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든 사건을 다룹니다.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작 패기라는 적절한 운동, 그리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두 개의 양념병’뿐이었다는 내용이지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호러 "오메가의 성찬"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시체를 ‘먹어서’ 폐기하는 괴인이 등장하니까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 목적과 식인이라는 혐오 소재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범죄 목적은 복수입니다. “원수의 간을 씹어 먹는다”는 옛말처럼, 식인은 복수심의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카니발리즘 소론"에 등장하는 식인이 바로 이런 목적에 가깝습니다. 다만 시각은 조금 독특합니다. 범인이 동거녀를 죽이고 먹은 이유가, 그녀를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니까요.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발상입니다.

세 번째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속설이 구전되어 왔고, 실제 사건도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경성 죽첨정 단두여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간질병의 특효약이 아이의 뇌수라는 속설을 믿은 범인이,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의 사체에서 뇌수를 긁어낸 사건이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혁의 단편 "손가락"은 ‘문둥이가 아이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여자친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낙태한 태아의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극한에 이른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치료라기보다는 병적인 해소에 가깝지만, 몸과 질병, 치유에 대한 왜곡된 믿음이 식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식인을 특별한 의미 없이, 캐릭터 형성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식인만큼 ‘광기’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사실 한니발의 식인 행위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이 평범한 인간의 윤리와 감각을 초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저는 아직도 “내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가야 하거든”이라는 한니발의 대사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잔혹하게, 동시에 절대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문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식인이 캐릭터의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장르 문학 속 식인은 여러 목적과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먹이, 미식, 생존, 증거 인멸, 복수, 의학적 속설, 캐릭터의 광기까지.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더 새로운 설정이나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처럼, 제 분류로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도입된 작품이 발표되는 걸 보면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도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인육을 먹었다는 살인마 부부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네요. 과연 실화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 시리즈 전체 보기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