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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9

츠쿠모고미 - panpanya: 별점 2.5점

애정하는 작가 panpanya의 신간입니다. 올해 4월에 출간되었는데, e-book 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구매하였습니다. 모두 17편의 짧은 에피소드를 수록한 단편집입니다. 일상적인 소재에 기묘한 상상과 설정을 더하는 panpanya의 기존 작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Home Vacation", "파인애플을 모르신다", "철새의 계절", "우리는 일본 보도교 주식회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Home Vacation"은 집 자체를 물에 띄워 휴가를 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떠나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집 자체와 함께 움직인다는 단순하면서도 엉뚱한 발상이 재미있습니다.

"파인애플을 모르신다"에서는 파인애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탐구하다가 pineapple이라는 이름 그대로 솔방울과 사과를 합쳐 새로운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실제 상황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기발해요. 파인애플은 코스타리카에서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기밀이며, 주인공이 만든 '푸르츠 솔방울'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결말도 좋았고요.

"철새의 계절"은 어릴 때에는 새들이 거대했지만 성장한 뒤에는 평범한 크기로 보인다는 내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차이를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일본 보도교 주식회사"는 육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가를 도입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수고'가 든다는 단점을 회피하기 위해 육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발상이 아주 그럴듯해요. 아래와 같은 상업 시설의 추가는 어렵더라도, 자판기와 간단한 휴식 공간 정도는 충분히 말이 됩니다. 아예 극단적으로 높이를 높인 전망대 형식도 그렇고요.

여유로운 분위기와 부드러운 그림도 여전히 좋습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처럼 그려내는 방식도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반면 전체적으로는 전작들보다 기발함이 부족한 편입니다. 특히 panpanya의 작품을 계속 읽어 왔다면 새롭거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어요. "게에게 홀려서 2", "decoy 23, 봄", "여긴 어디일까요? 여행" 등 기존부터 이어져 온 시리즈가 수록된 탓이 큽니다. 익숙한 설정과 소재가 반복되다 보니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약해요.

비교적 긴 이야기인 "승리의 짜임새", "동물의 분수", 표제작 "츠쿠모고미"도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별로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기보다 기존 작품의 설정과 분위기를 다시 활용한다는 인상이 강해 자가 복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panpanya 특유의 상상력과 분위기, 그림은 여전히 즐길 만하고 몇몇 단편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서는 처지는 편입니다.

2026/07/17

소소한 미식 생활 - 이다 치아키 / 장하린 : 별점 3점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장르입니다. 관심이 가는 책은 꾸준히 구입했고, 지금도 유심히 찾아보고 있는 장르이지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치아키의 이 책도 이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식 장르는 '단편 에세이 만화'이지만, 수록된 그림이 워낙 뛰어난 덕분입니다.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붓 터치와 풍부한 색감으로 그려낸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즐겁고, 식기와 주방용품, 집 안의 소품들까지 하나의 일러스트처럼 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요리와 음식, 식기와 생활 소품, 그리고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 특별한 사건 없는 잔잔함도 매력적입니다. 또 음식을 소재로 한 에세이 만화는 많이 봤지만, 식기와 식탁이나 생활 소품을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룬 작품은 처음이라 신선했습니다. 각각의 물건에 담긴 고민과 추억을 풀어내는 과정에서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잘 드러나고요. 정말 요리와 음식,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어느 작가가 젓가락 받침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휴일에 집에서 여유롭게 하이볼 한 잔을 즐기는 모습은 공감이 팍팍 갔습니다.

반면 드라마로서의 재미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읽었기에 단점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요. 그러나 책의 성격 상 e-book으로 출간되는게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확대해가면서 그림들 디테일을 더 잘 보고 싶거든요. 너무 작게 인쇄된 글자들을 읽기도 힘들고요.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나, 잔잔한 힐링 에세이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e-book으로 출간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2025/04/12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 - 미카게 에이지 / 제이노블 : 별점 2점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권 - 4점
EIJI MIKAGE/테츠오/제이노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호시노 카즈키)는 엄청난 미모를 갖춘 전학생 오토나시 아야를 보자마자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아야는 '오늘 모기 카스미의 팬티 색깔은 하늘색이야'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종례를 앞두고, 아야는 반 친구들에게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어디서 나온지도 모를 '마리아'라는 이름을 써 주었고, 아야는 그런 나를 붙잡고 자신이 끝없이 3월 2일을 반복하고 있다는걸 알려주는데...

라이트 노벨로, 원제는 『空ろの箱と零のマリア』입니다. 일본에서는 2009년 전격문고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국내에는 대원씨아이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7권으로 완간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는데 최근 e-book으로 재출간되었더군요. 라이트 노벨은 평소 전혀 읽지 않지만, '걸작 시간 미스터리'물로 선정된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간 미스터리'답게, 의도하지 않게 특정 시간을 반복한다는 타임 루프물입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로 대표되는 설정이지요. 소설로도 "일곱 번 죽은 남자" 등에서 활용되었고요. 다른 작품들처럼 무한 시간 반복을 없애려면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특징도 분명합니다. 우선, 시간을 반복하는건 화자이자 주인공 호시노가 아닙니다. 호시노는 이 사실을 전학생 오토나시 아야에 의해서 나중에야 깨닫게 되거든요. 

그리고 작 중 '거절하는 교실'의 시간 반복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 소원을 빈 '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는게 조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종의 '후더닛' 류의 추리물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이를 밝히는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상자의 주인인 모기 카스미는 시간을 수없이 반복한 탓에, 자기 자신을 꾸밀 이유가 없어져서 화장품을 가지고 다니지만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걸 통해 알아채거든요. 호시노 카즈키의 친구 하루아키가 상자의 주인 제로였다는 걸 알아채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모기 카스미가 상자에 갇힌 뒤, 다시 시간 반복이 일어났는데 모기를 아이가 대체했다는 상황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아키는 '모기가 굉장히 예뻐졌다'는 식으로 이걸 알아챈 말을 했기 때문에 정체가 발각되고 말지요. 독자에게 주는 단서로도 공정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모기가 상자의 주인이 되어 빈 소원이 지극히 청춘 연애물스러운 동기였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모기는 카즈키를 좋아해서, 고백이 거절당한 뒤 고백한 날을 반복했습니다. 수만번의 반복 끝에 카즈키가 고백을 받아주는건 물론, 카즈키가 되려 고백을 하게끔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매 번 새로운 날이 또 시작되었고 카즈키는 고백했다는걸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거지요. 사춘기 소녀라면 할 법한 귀여운 생각이었는데, 그 단순한 소망을 상자가 뒤틀린 형태로 이루어주었다는게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주지만 그걸 치명적인 방식으로 왜곡한다는건 고전 걸작 "원숭이 손"을 비롯해서, "펫샵 오브 호러즈" 등에서 자주 보아온 장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소망 자체가 귀여운 만큼, 반전의 잔혹성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유치한 인물 설정과 대사, 그리고 라이트 노벨 특유의 감정 과잉 묘사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대사로 모든걸 표현하려고 해서, 소설보다는 만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설정 면에서도 몇몇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모기가 상자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시간이 반복될수록 상자에서 거절당한(모기가 죽인)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모기만 남게 되니까요. 즉, 대단한 추리 없이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오토나시 아야는 이미 이전에 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어 모기와 대결한 적이 있었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다시 시간이 반복되자 이를 잊어버렸다는건, 설정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카즈키에 대해서는 기억이 남아있었으니까요. 물론 상자의 주인 제로나 상자의 능력이 개입하여  아야의 기억을 조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상자의 주인은 결국 반복 속에서 당연히 드러날 터라 구태여 조작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또, 모기가 죽어서 상자에 갇힌 상황에서도 시간의 반복이 깨지지 않았다는 설정 역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조금 답답했고요.

물론 이런 설정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제가 읽은 1권 외, 전 7권에 이르는 나머지 분량에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읽을 의욕이 생기지 않는군요. 재미가 없는건 아니고, 설정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지만, 캐릭터성과 연출 방식이 라이트 노벨 특유의 유치함에 갇혀 있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는 무슨무슨 리스트에서 추천하는 작품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읽는건 지양해야 겠습니다.

2024/03/18

중고 만화, 정말로 돈이 되나?

예전에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돈이 되는 중고책의 대표로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가 해당된다고 했었는데, 그런걸 증명하는 듯한 쇼핑몰을 발견했습니다. 안양에 위치한 헌책방 글모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인데, 도서 분류에 "희귀"라는 카테고리에 고가의 중고 만화들이 다수 업로드되어 있네요. 알라딘 중고 서적에서는 취급하지 않았을 해적판도 엄연한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국내 작가 작품보다는 일본 번역본이 많다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그런데 고가인 희귀본들 중 납득이 안되는 책들이 꽤 많더군요. '한 놈만 걸려라' 마인드로 중고책에 황당한 가격을 붙여 팔던 알라딘 셀러보다는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갖춘 전문 사업자가 분류하여 가격을 책정했다는 점에서 보다 믿을만은 하겠지만, 정말로 저 가격에 팔리는걸까요? 몇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령 하숙생 1~5" : 1,340,000원!
아로 히로시의 "유우 앤 미이"의 해적판. 지금은 잊혀졌지만, 80년대 잠깐이나마 '파천황 캐릭터 개그'를 대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연재 당시 거의 실시간으로 접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해적판으로 출간되었는지는 몰랐네요. 굉장히 좋아했고, 즐거웠던 추억이 있는 작품이지만 정식 출간본도 아닌 책에 이 가격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은 '만화도서관 Z'에서 원본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 말이지요. 전 8권인데 왜 5권까지인지도 모르겠고요.

"노만 1~3" : 620,000원
데즈카 오사무 작품. 책 상태가 미개봉 소장품이라 가격이 올라간 측면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이미 e-book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반 독자는 저 가격을 주고 살 이유가 없는 셈이지요. 저 금액으로 구입하는게 누구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캔디 캔디"는 이 애장판 외에도 여러 버젼이 '희귀' 카테고리에 등록되어 상당한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이 4권짜리 애장판은 저도 소장하고 있는거라 가격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서점 안에서만 "캔디 캔디"를 5~6 질은 보았는데 정말 '희귀'가 맞는걸까요? 우리나라의 "캔디캔디" 대부분이 이 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이 가격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8권 : 150,000원
완결까지 전 시리즈를 갖춘 것도 아닌데 150,000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한, 두 권 정도만 빠진 셋트를 가지고 있는 수집가를 위한 듯 한데, 과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 외에도 대체로 이런 식이라 가격 책정이 무슨 기준인지 정말 알고 싶어졌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사이트 한 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대지옥전진광대왕"은 얼마에 팔릴지 물어보고 싶어지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가까운 시일에 한 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2023/12/13

파리타임 - 서귤 : 별점 2점

파리타임 - 4점
서귤/이후진프레스

"환불 불가 여행"에 이은 서귤의 여행 에세이 2탄. e-book으로 저렴하게 출간되어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회사 출장으로 떠난 파리에서 보낸 몇 일간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그야말로 전형적인 서귤 만화 에세이입니다. 단선으로만 이루어진, 대충 그린 듯한 그림이 독특한 시각의 세상 보기와 기발한 유머와 결합되어 있거든요. 한 에피소드 당 최소 두 컷 ~ 최대일곱 컷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극소심하고 두려움많고 귀도 얇은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미술관에 가서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어구스테 레노르라고 읽는 등의 허세도 웃겼고요.

그러나 20화도 안되는 이 정도 분량으로 책 한 권을 채워서 파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네요.  5,000원이라는 가격도 비쌉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책 보다는 인스타 연재물 정도로 보는게 딱 맞는 결과물로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서귤의 만화를 읽은 것도 벌써 5년이 넘어가는데, 작품을 보니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더군요. 만화 뿐 아니라 소설도 출간하는 등 활발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던데 왜 아직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개인에게는 개인의 사정이 있겠지만....

2023/11/05

오래된 책들 (12) - 시미즈 레이코 단편 걸작선 (9) MAGIC


올릴 글이 없을 때 간혹 올리곤 하는 오래된 책 소개입니다. 열 두번째로 소개드리는건 시미즈 레이코의 단편 걸작선 마지막 권인 "MAGIC"입니다. 표제작 외 "SILENT"라는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어떤 영화 감독이 영화화를 하고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작품인데, 지금은 그 존재마저도 많이 잊혀져 버렸네요. 그래도 시미즈 레이코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재간되었고, e-book으로도 구입할 수 있으니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재간 버젼은 "빠삐용"에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구입했던건 1997년이니 이미 20년을 훌쩍 넘었는데, 과연 언제까지 소장하고 있게 될지도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2023/08/30

플라네테스 1~4 - 유키무라 마코토 : 별점 2점

[고화질 세트] 플라네테스 (총4권/완결) - 4점
Makoto Yukimura/학산문화사(만화)

한 20여년전 발표 당시에는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던 인기작. 오프닝 곡이었던 "Dive in the Sky"는 좋아해서 당시에 자주 듣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버린지 오래되었었는데,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하니 형이 발굴해두었다고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 4권의 짤막한 분량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더군요.

작품은 데브리(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하치로타가 꿈 - 자신의 우주선을 가지고 우주를 돌아다니는 것 - 을 이루기 위한, 그리고 '왜 우주를 향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핵심은 명성과 거액이 보장되는,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폰 브라운' 호의 승무원이 되는 것이고요. 하치로타는 승무원 선발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고군분투, 그리고 승무원이 된 후의 경험들로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여러가지 단편 에피소드들과 잘 섞어서 깔끔하게 마무리한게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우주에 관련된 탄탄한 설정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특히 데브리가 생성되는 과정이라던가, 선외 활동, 승무원 선발 과정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걸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를 표현하는 작화력도 대단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던가 "사랑이 중요하다"는걸 핵심인 결말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작 이 정도 이야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치로타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탓에, 오글거리는 80년대 팝송 가사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또 이 내용은 하치로타와 아이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3권에서 이미 마무리 되었습니다. 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4권과 목성 우주선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우주 방위 전선의 테러는 비중에 비하면 결말이 황당할 정도로 시시했고요. 이런걸 보면 작가가 갈팡질팡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과연 결말이 작가가 원했던게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럴 바에야 초반부 '토이박스 호' 승무원들과 함께 벌이는 데브리 수거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성 강한 SF 일상 드라마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4컷 만화처럼 말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찾아보니 e-book으로 다시 출간되었던데,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1/30

고쿠 1~6 - 테라사와 부이치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고쿠 (총6권/완결) - 4점
테라사와 부이치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걸작 "우주해적 코브라"로 스페이스 판타지의 신기원을 연 작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또다른 대표작입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1987년에는 비교적 먼 미래로 느껴졌을, 2014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액션 스릴러로, 우리나라에는 e-book으로만 소개되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 후린지 고쿠입니다. 맨 몸에 쟈켓을 입고 목에 넥타이를 메는 다소 충격적인 패션 센스를 가진 남자지요.

고쿠는 첫 번째 사건에서 악당의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실명하는데, 누군가 그 왼쪽 눈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장착된 '의안'을 설치해 줍니다. 그 의안은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물론, 인공위성까지도 연결하여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고쿠는 이른바 '신의 눈'이라고도 하는 이 의안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누군가가 전해 준 또다른 장비 여의봉(?)을 무기로 악당들과 싸워나갑니다.

여러 면에서 작가의 출세작 "코브라"가 떠오릅니다. 미인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기본 전개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로 엄청난 마초인데다가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유머 넘치는 대사를 내뱉는 고쿠 캐릭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갖추고 있는 피지컬만으로도 세계관 최강자인데다가, 강력한 무기 '싸이코 건' 까지 소유한 코브라와는 다르게 고쿠는 비교적 평범한 인간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이도 전능하다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왼쪽 눈의 의안 덕분에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의안으로 왠만한 적들은 쉽게 무력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단순한 자가복제 아류작은 아닙니다. '신의 눈'이라는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모든 단말에 접속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소한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것입니다. 인공 위성으로부터 현재의 GPS, 카 네비게이션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추격에 활용하는 장면 등은 미래를 보고 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인공 위성과 각종 단말을 조작하여, 악당 하크류 겐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을 건물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장면은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선보여준 명장면이었고요.

정보를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에도 잘 어울렸어요. Private Eye가 Midnight Eye를 갖게 되니, 금상첨화인 셈이지요.

탐정물답게 놀라운 진상과 반전을 갖춘 이야기들도 꽤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류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중화제를 투약하지 않으면 미치광이 살인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여동생 요시코는 고쿠에게 류를 죽여달라고 의뢰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류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복제인간으로 창조된지 고작 30일에 불과했던 생명체였습니다. 젠조는 자기 몸에 보호막을 설치하기 위해 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수정체를 만든 건 여동생인줄 알았던 요시코였고요. "차이나타운"이 떠오르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막장 관계를 인공수정, 급속 성장, 기억 이식 등 미래 기술에 녹여낸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슈퍼 스타 시노즈카 레이라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며 죽이려고 하는 지하 록의 여왕 야마가미 리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꽤나 놀라운 진상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4권(일본 기준)으로 끝나버린 이유도 분명합니다. 뒷 부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선녀" 편에서 귀신 '천동녀'의 정체는 쿠키 일족의 정신을 넣은 인공두뇌로 구현된, 일종 에너지 덩어리였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사라만다 설정과 똑같죠.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오토바이 레이서 보니의 문신 속에 마이크로 필름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우주해적 코브라"와 유사했고요. 유령 유전자 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카산드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실험 덕분에 생물 진화의 최종 단계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건 바로 악마였다는건 재미있는 발상입니다만 이는 "코브라"에서 화성의 최종 병기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악마가 고작 금괴를 노린다던가, 그 최후가 녹아버린 뜨거운 금을 뒤집어 쓰는 것에 불과했다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 완성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요. 

후반부 에피소드들에서는 '신의 눈'의 능력도 잘 선보이지도 못합니다. 모든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본 설정만 답습할 뿐입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에게 자신의 경고를 날린다던가, 공장에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든다던가 하는 초반부 에피소드들같은 새로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악당들과 육탄 액션을 펼친다는 설정도 별로였고요. 

또 한국어판 e-book은 에피소드별 제목이 제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등 편집이 그닥이며, 마지막 권에 '지금 밝혀지는 고쿠의 비밀'이라는 저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데 정작 수록되어 있지 않은 등 문제가 많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던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유튜브를 뒤지면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수작인 초반부 에피소드를 영상화한 만큼 애니메이션만 찾아서 보시는게 낫습니다.

2021/08/28

문 나이트 Vol. 1 : 광기 - 제퍼 르미어, 그렉 스몰우드, 조디 벨레어 / 임태현 : 별점 2.5점

문 나이트 Vol. 1 : 광기 - 6점
제프 르미어 지음, 그렉 스몰우드.조디 벨레어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문 나이트'라는 히어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최근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 정도만 접했을 뿐이죠. 하지만 이 단행행본 에피소드는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추천하셨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알라딘 e-book 쿠폰이 생겨서 겸사겸사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본 결과는 조금 미묘하네요. 이야기 자체는 꽤 그럴듯합니다. 마크 스펙터가 진짜 문나이트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환상과 현실이 겹쳐지는 전개, 그가 진짜 문나이트일 수도 있다는걸 서서히, 기묘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전개 모두 짜임새 있고요. 마크에게 환각처럼 나타나 악신 세트에 맞서 떨쳐 일어날걸 강요했던 콘슈가 사실은 마크의 육신을 빼앗으려는 악신이었고, 이를 거부한 마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뒤, 성공하고 행복한 영화배우 스티븐으로 다시 눈을 뜨는 결말도 뻔했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 모든게 꿈인지, 정신병자의 환각인지 끝까지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문제는 결말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호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마크 스펙터가 히어로 '문 나이트'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거든요. 마크는 힘을 잃고 정신병원에 갇힌 히어로 문 나이트일 수도 있지만, 이집트 신 콘슈에 대한 환각을 보다가 이를 주변 다른 정신병자들에게도 전염시켜(?) 탈출을 감행하는 위험한 정신병자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이는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별다른 슈퍼 파워 없이, 그냥 맨손 격투로 일관하는 액션 역시 이런 모호함을 가중시키고요. 

또 이 작품을 통해 '문 나이트'라는 히어로에 대해 알아가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독립된 작품으로 친다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시리즈를 의식한 듯한 모호한 결말 대신, 마크는 정신병자였고, 미쳐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죽였다는걸 깨닫는 결말이 더 나았을겁니다. 미쳤을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작화는 빼어납니다. 그러나 환상이 뒤섞일 때 여러 작가들 화풍으로 다른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은 식상했고, 과연 이런 방식이 필요했을지도 의문이 남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화풍이 정해져 있던 걸까요? 그랬다면 나름 좋은 아이디어지만, 독립된 작품으로는 완성되었다고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목에 "Vol.1"이 있는 만큼, 후속작을 읽으면 평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는 잘 달려가다가 어정쩡하게 끝난 느낌입니다. 문 나이트 입문작으로는 돌직구 히어로 액션물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1/06/19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상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여러 단편들에서 엄선했다는 좀비 관련 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여름에는 좀비물이지요. 원래 책으로는 무려 서른 네 편, 모두 합치면 천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지만, 상, 중, 하로 분권된 e-book으로 읽었습니다. 한 번에 읽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양이니까요.

상권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 댄 시먼스, 제프리 포드 정도가 제가 아는 작가인데, 다른 작가들도 소갯글만 보면 모두 나름대로 유명 작가들로 보입니다. 좀비라면 바로 떠오를 고어와 액션이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좀비 아포칼립스물을 비롯하여, SF, 범죄 드라마, 풍자, 블랙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들이 수록되어 있고요. 덕분에 풍성하기는 한데, 작품들 편차는 큽니다. "올해의 학급 사진"과 같은, 기존 좀비물 팬을 만족시키는 걸작도 있지만 한 편의 이야기로 성립하지 않거나, 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작품들도 존재하거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정 분만" 

스티븐 킹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 1"을 통해 이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출산을 앞둔 임산부 시점에서 그려낸 작품이지요. 

그런데 이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는 좀비의 기원까지 설명되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번역 문제였는지 뭔가 누락된 탓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여튼, 보통은 주인공이 도와주는 역할은 임산부가 주인공이며, 무대가 섬마을이라서 한 개 뿐인 묘지만 사수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상황이 독특했습니다. 버티는 와중에 죽은 남편을 한번 더 죽이는 처절함,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도 인상적이었고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물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인공과 무대 설정의 독특함을 더해 스티븐 킹의 필력으로 써 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입니다. 어설픈 변화구 보다는, 그냥 한가운데 직구 승부가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심지어 그 공을 던지는게 스티븐 킹이라면 더더욱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슴은 무덤까지 가져간다" 

재벌들이 과시용으로 데리고 사는 '트로피 와이프'가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뒤 벌어진 일들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좀비로 돌아온 트로피 와이프는 이성은 그대로 갖추고 있고, 사람을 뜯어먹거나 하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를 부활시켰는지를 찾아 헤멜 뿐이지요. 이런 설정은 독특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영 재미가 없더군요.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가 발생하지 않는 탓이에요. 시체가 되살아난건 충분히 드라마틱한 사건인데, 이를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묘사는 탓입니다. 마지막에 그녀를 부활시켰다는 여동생이 찾아 오는건 아주 뜬금없었고요.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야경'을 감상하고 싶다는 말로 끝맺는 마지막 장면은 외모, 돈과 사치품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알려주는가 싶은데, 자동차 한 대 값을 들였다는 실리콘 가슴만 쳐지지 않고 영원이 남았다는 묘사에서 '적절한 투자는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도 해서, 뭐가 맞는지는 좀 혼란스럽더라고요. 재미만 놓고 보자면 후자 쪽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만.

하여튼 좀비물로 보기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고, 쟝르도 모호하며 이야기도 딱히 볼만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올해의 학급 사진" 

노년의 가이스 선생은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 혼자 살아남았다. 그녀는 포획한 좀비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노력하는데...

좀비 설정에 뭔가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혀 없어요. 그냥 좀비 때문에 세상이 망한 뒤를 그리고 있거든요.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물입니다. "가정 분만"과 같이, 뻔한 설정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더 급진적입니다. 하지만 '교육' 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꽤 잘 그려내고 있기도 하고요. 좀비가 되었지만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는 결말은 깊은 울림을 가져다 주네요. 단지 치킨 너겟 때문에 돌아왔을 수도 있지만, 뭐 그것도 학습이라면 학습이니까요.

"칼리의 노래", "테러호의 악몽" 등의 공포 소설로 유명한 댄 시먼스다운 필력도 돋보였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디테일이 특히 압권이에요. 좀비 아이들을 포획하고, 이들을 교실에 묶어 놓은 뒤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과 학교를 요새처럼 만든 상황에 대한 묘사들이 아주 빼어난 덕분입니다. 좀비물로서의 기본 재미도 놓치지 않습니다. 학교로 수백명의 좀비가 몰려오고, 이를 가솔린 해자와 레밍턴 소총, 권총으로 처단하는 가이스 선생의 활약이 그려지는 클라이막스는 아주 화끈합니다.

뻔하지만 독특한 설정에 더해, 재미도 기본 이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역시나 작가적 명성은 허투루 얻어진게 아니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유령의 춤" 

커스터 기병대가 좀비로 되살아나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사건을 추격하던 FBI 요원 에드거는 좀비의 습격에 대한 모든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쓰레기 백인 경찰관이 인디언을 몰래 학살하다가 되살아난 좀비 커스터 기병대에게 잡아 먹힌다는 도입부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그냥 에드거 요원이 좀비 기병대의 잔학한 행동을 모두 알게되는 신기한 능력을 얻었다가 전부인 뒷부분은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는 것도, 그렇다고 열린 결말도 아니니까요. 군대식 명령으로 좀비떼를 제어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걸로 좀비떼를 격퇴했다던가 하는 결말도 아니고요. 한 마디로 말해서, 제 기준으로 이 작품은 완성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시체" 

아프리카 수용소를 통해 좀비를 대량 생산하여 유통시킬 계획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던 도널드는 좀비 격투가를 보고 생각을 바꾼다. 그러나 바로 그 날, 좀비 매춘부를 만난 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이에요. AI,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된 이후,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현재 한참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들과 별다를게 없거든요. 하지만 AI를 좀비로 바꾼 아이디어가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사람의 생명 가치가 폭락하고, 심지어 성적인 노리개로 이용되는 상황에 대해서 더 큰 충격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평이했지만 이 아이디어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죽음과 선거권" 

시체가 되살아나 투표를 하기 시작해서, 대통령 선거는 다시 진행되게 되었다. 버튼 후보의 보자관 롭은 지고있던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총기 사고로 희생되었던 소녀 데이나 맥과이어가 되살아나 좀비가 된 모습을 광고로 만들어 방영했고, 버튼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시체가 되살아난 이유는 정의가 이루어지는걸 보기 위해서라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주인공 롭이 어린 시절 저질렀던 총기 오발 사고와 가족의 죽음이 함께 펼쳐질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솔직히 혼란스러웠거든요. 시체들이 되살아난게 롭 때문인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고요. 또 정의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버튼이 대통령이 되는게 왜 정의인걸까요? 좀비물이나 호러물적인 속성이 전무한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대초원" 

모종의 탐험대가 대륙 횡단을 하면서 괴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항해 시기 쯤, 그러니까 탐험가들이 신대륙을 찾아왔을 때를 무대로 하고 있는 듯 합니다. 탐험대가 굶주림과 초현실적인 존재와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아주 약간 댄 시먼즈의 "테리호의 악몽"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탐험대는 시체들과 산 사람들을 학살하고 식인까지 저지르는 악당들이라는 차이는 큽니다. 화자인 '나' 조차도 대륙 횡단에만 골몰해서 학살, 식인을 꺼리지 않는 정신병자라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펼쳐지지 못합니다. 디테일도 사뭇 부족하고요. 왜 시체가 되살아나 배회하는지, 시체를 되살린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결말도 모호해서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잔혹하기만 할 뿐입니다.

"세 번째 시체"

매춘부를 유혹한 뒤 살해하는 연쇄살인마 리치의 희생자였던 '나'가 되살아나서 리치를 찾아간다는 내용으로 복수극으로 보이기도 하고, 멜로물로도 보이기도 하고, 범죄 드라마로도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런데 별로 의외성이 없고, 리치가 경찰에 체포되는 결말도 밋밋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무엇보다도 무섭지도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밤처럼 아름다운" 

성인 모델들 촬영으로 거부가 된 네이선 그라임스는 좀비 사태 발발 후 카리브 해의 섬 요새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모델들과 좀비 사태가 진정될 때 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좀비 사태가 끝나면 아름다운 모델 수요가 폭증할 걸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했고, 모델들은 좀비가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이성이 남아있는 듯 네이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네이선도 생존자를 가장했던 좀비에게 물려 서서히 좀비가 되어 가는데...

플레이보이의 창업자 휴 헤프너를 떠오르게 만드는 주인공과 성인지 모델들이 좀비가 되고, 좀비들이 생전의 목표를 그대로 가지고 행동한다는 설정이 독특합니다. 하지만 전개는 뻔했고, 애매한 결말도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독특한 설정을 잘 살리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처럼 죽어봐"

좀비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그리고 있습니다. 좀비가 살아있는 사람을 어떻게 습격하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생각을 하지 않으니 소리나 냄새, 체온 등에 반응한다는게 말이 안되지요. 이 작품에서는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비 떼 속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네요. 단순하게 배고플 때 먹고, 피곤할 때 자고, 추울 때 따뜻한 곳을 찾는 정도의 행동만 하면요. 실제로 주인공은 그렇게 좀비 떼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와중에 같은 삶을 살아가는 수지를 만나 섹스를 하는 설정도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말 모르겠습니다. 삶 자체가 의지인 상황인데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게 말이 될까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설명은 부족합니다. 가족도 모두 죽어버린 상황이니까요.

물론 자기가 인간임을 드러내고 죽어봤자 좀비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나름 와 닿기는 합니다만, 그렇다해도 저라면 진작에 자살을 택했을 것 같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맬더시안의 좀비" 

이웃 노인 맬더시안은 어느날 나에게 자신이 뇌 수슬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좀비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맬더시안이 급작스럽게 사망한 뒤, 나는 그가 숨겨두었던 좀비를 떠맡아서 변화를 관찰하게 되는데...

기존의 '좀비', 즉 부두교 주술로 조종하는 사람이라는 정의에 잘 들어맞는 좀비가 등장합니다. 

뇌 수술처럼 뭔가 있어보이는 장황한 설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환상 소설에 가깝게 풀어나가는 점이 특징입니다. 전개와 묘사 모두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기보다는, 환상적이고 뭔가 애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탓입니다.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이라는 환상 소설을 쓴 작가 작품다왔달까요. 결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점 까지 말이지요. 좀비가 등장해서 급격하게 노화한 뒤, 맬더시안이 되었다는게 결말인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멜더시안이 심장마비로 죽은건 명백한 사실인데, 그가 어떻게 젊은 좀비가 되었고, 다시 급격하게 노화해서 멜더시안이 된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목적이 환생이라면 젊은 육체로 있는게 맞을텐데, 이런 일을 벌인 동기도 잘 모르겠고요. 

주인공도 이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는다고 끝맺는데, 작가로서 무책임한 태도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한데, 그런 평가가 가능한 작품은 아니었어요.

2021/04/18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 - 토마스 윙글레스키 / 21세기북스 : 별점 1.5점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 - 4점
토마스 윙글레스키/21세기북스

제목 그대로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입니다. 만화라고는 해도 일러스트에 가깝습니다. 만화적인 이야기 전개가 있다기 보다는 3~4컷 정도로 발명품 소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대한 재미있게, 요약해서 정보를 알려주려고 하는 노력은 돋보입니다. 몇 가지 소개된,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왔습니다. '유리불기'는 지금도 기원전 페니키아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던가, '요요'가 필리핀어라는 이야기, 손전등이 '플래시 (깜빡이)'라고 불리게 된 건 첫 손전등이 배터리 문제로 5분밖에 켜 놓지를 못해서 껐다 켰다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블루진의 어원이 프랑스어 '블루 드 제네 (제네바의 우울)' 이라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림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도 정보의 깊이도 얕습니다. 저렴한 e-book으로 읽었는데도 가성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클 정도로요. 정말로 읽을게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구태여 집어들 이유가 없는 책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03/06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 제임스 노우드 프랫 / 문기영 : 별점 3점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 6점
제임스 노우드 프랫 지음, 문기영 옮김/글항아리

서양의 많은 애호가에게 바이블처럼 읽힌다는 차에 대한 전문서이자 문화사 서적입니다.

1부에서는 차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차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역사, 그리고 홍차 인기가 주춤했던 뒤 다시 인기를 끌게 된 현재 시점까지를 상세하게 서술하여 알려줍니다. 특징이라면 '기원' 부터 상세하게 통사적으로 서술해서 알려준다는 점이고요. 특히 미국인 저자에게는 불리했을 중국차 역사가 비교적 정확하다는 데에서 공부의 깊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신농 황제가 차에 관심을 보였고, 기원전 1066년 윈난 성에서 생산된 차가 황제에게 공물로 바쳐졌다는 등 중국 고대사에서 시작하여 당나라 육우의 "다경"이후 송나라 채양의 "다록", 명나라에서 이전과 다른 녹차 가공법이 등장했다는 역사 소개가 상세하며, 심지어 "고문진보" 속 차에 대한 명시 '칠완다가'까지 번역하여 소개할 정도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차 전래가 불교 전파와 관련이 있다는 여러가지 설들과 그에 대한 해석도 재미있었습니다. 첫번째 설은 승려 감로가 1세기 경 인도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차를 들여왔다는 설로, 그가 심었다는 전설의 차나무 일곱 그루는 아직도 쓰촨성 멍딘 산에 남아 있다네요. 두번째 설은 달마 선사 눈꺼풀에서 차나무가 자라났다는 설인데, 달마 선사가 인도 출신이니 이 역시 차나무 인도 기원설을 의미하지요. 야생 차나무의 고향은 윈난성과, 인간이 차나무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알려진 쓰촨 성 모두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 불교에서 명상과 술을 대신하기 위한 이유로 차를 이용했고, 그래서 승려들이 차나무 재배와 차 가공법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꽤나 타당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당나라에서 육우 선사가 "다경"을 쓴 배경 역시 마찬가지 이유일테고요. 

'차 茶'라는 문자가 등장한 시기와 그 발음 및 일본 다도 문화의 역사, 그리고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센노 리큐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주로 오카쿠라 가쿠조의 "차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 많은데, 놀랍게도 국내에 e-book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네요. 이 책에 일본이 가루차를 거품내는 송나라 방식을 쓰는건, 자기들이 몽골 침략을 물리쳐서 차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던 거라는 해석이 나오는 모양인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센노 리큐 이후 센차 방식을 발전시킨 바이사오에 대한 설명도 빼 놓지 않고 있고요.

다음은 중국차가 유럽에 전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1610년 네덜란드가 최초로 차를 들여오면서 유럽에서 차가 확산되게 됩니다. 이후 17세기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전쟁을 벌일 때 프랑스와 네덜란드 교역 단절로 프랑스는 차 공급이 끊어졌고, 반대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커피 수입이 단절된게 국가적 선호가 갈리게 된 이유라고 하네요. 그리고 영국에서 찰스 2세와 왕비에서부터 시작된 엄청난 차 유행과 이 때문에 벌어진 영국 동인도 회사, 존 컴퍼니와 중국 무역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원래 중국차를 성공적으로 수입해서 유럽에 유통시킨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였는데, 네덜란드는 중국 차의 미래를 과소평가해서 인도네시아 자와섬을 통한 중계 무역만 하다가 수요 폭증 때 중국과 직거래하던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고요. 그리고 보스턴 티 파티, 제국주의의 선봉장이었던 동인도 회사의 추악한 행위들과 아편 전쟁, 영국이 패권을 쥔 뒤 민싱 레인에서의 차 거래와 차 운반선들이 레이스를 펼치던 영광의 시대, 인도 아삼 지방에서의 차 재배 성공, 토머스 립턴과 실론 티의 성공 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기존 제국주의 사고방식과 다른 전통들이 모두 파괴된 뒤 그 자리를 값싼 '티백'이 차지하였고, 회사마다 가격 경쟁이 시작되어 고급 차들이 모두 시장에서 사라져버린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 시대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고요. 다행히 지금 고급 차 시장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고 언급하며 차 역사 설명은 마무리됩니다. 그 외에는 차와 관련된 여러 유명인들, 그리고 '본차이나'로 대표되는 다기 제조에 대한 역사 등을 함께 소개해주고 있는데, 모두 재미있었어요.

반면 2부의 나라별 주요 차 소개는 특별히 와 닿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고, 인터넷 등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강희제가 '벽라춘'이라고 이름붙인 차 이름의 유래는 찻잎이 우러나는 동안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저자 개인적인 견해는 괜찮았지만요. 그 밖에는 프랑스가 1825년 베트남에 최초의 차나무를 심었다고 자랑하지만, 옛날부터 차나무는 베트남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었으며, 차는 이미 1,000년 전 부터 인도차이나 문화 일부였다며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정도만이 눈에 뜨였습니다. 프랑스가 뭘 새롭게 한 건 없고, 오히려 창피해 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로, 비교적 공정한 견해라 할 수 있겠죠. 

그래도 2부 마지막에 실린 블렌딩과 차 브랜드 설명은 그런대로 유용했습니다 . 브랜드별 대표 차 명칭, 어떻게 블렌드되어 있고 어떤 맛인지를 대략적이나마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 그레이의 기원과 레시피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3부는 50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분량인데다가 차를 어떻게 마시는게 좋은지 차 마시는 방법이 전부입니다. 도판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다른 책들에 비해 더 나은 점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도판이 없다면 최소한 유튜브 동영상 링크라도 포함해 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2부와 3부는 그닥이었지만, 1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최소한 1부만이라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11/08

나선계단의 비밀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 판도라books : 별점 2점

나선계단의 비밀 (개정판) : 국내 최초 완역판 - 4점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지음/판도라books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신 여성 레이첼 이네스는 조카 2명과 함께 써니싸이드 저택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하여 현지에서 집사 토마스 존슨을 채용했는데, 그로부터 저택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도 없는 밤에 이상한 현상(문 소리가 나고, 창문이 닫히는 등)이 일어났다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레이첼 이네스와 하녀 리디는 그 이상한 현상과 맞닥뜨렸다. 다행히 다음날에 조카 핼시와 커트루드, 핼시의 친구 베일리가 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날 새벽에 저택 주인의 아들 아놀드 암스트롱이 살해되고, 핼시와 존 베일리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레이첼 이네스는 기묘한 현상과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관 중 한 명인 제이미슨과 손을 잡는데...

100여년전 발표된 서스펜스 스릴러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작품입니다. 다양한 추천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고 있지요.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서는 40위네요. 무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보다도 순위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개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30년 전, 아동용 팬더 추리 걸작선이 마지막이었어요. 절판된지도 오래되었고요. 그런데 찾아보니 e-book으로 번역, 소개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작권료가 필요없는 퍼블릭 도메인이 된 덕분이겠지요.

읽어보니 명성을 얻고, 걸작의 지위를 굳힌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합리적인 설정을 고딕 호러와 잘 결합한 아이디어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밤마다 특정 장소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고, 누군가 저택에 계속 침입하려고 한다는건 괴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건 '저택 안에 무언가 있고, 몰래 이를 손에 넣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에요! 나름 합리적이지요.
이를 피해자 아놀드의 부친인 트레이더즈 은행 회장 폴 암스트롱의 급작스러운 병사, 거금 횡령에 따른 트레이더즈 은행의 파산, 뭔가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 집사 토마스 사건 등과 엮은 전개도 합리적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트레이더즈 은행에서 거금을 횡령한건 폴 암스트롱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걸로 위장하여 횡령한 돈을 가지고 도망칠 속셈이었지요. 그러나 아내가 써니싸이드를 임대한걸 모르고 써니싸이드에 돈을 숨겨 놓았던 탓에 집에 몰래 숨어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겁니다. 집에 돈을 숨기려면, 원래 주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 그럴듯하지요? 집사 토마스는 죽었다고 한 옛 주인을 보고 놀라서 죽었고요. 이 역시 앞서 토마스가 유령을 무서워하는 묘사가 나오는 등 복선을 쌓아 올린 덕에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런 류의 설정을 정통파 고딕 호러와 결합한 아이디어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로서 역사적 가치도 높고요. 사실 '몰래 숨어들려는 사람' 쪽에서 바라 본 이야기가 많은데 ("경찰서를 털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집)주인' 쪽 시각에서 본 이야기라 독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명확히 알겠더군요. 그만큼 문제도 많아요. 가장 큰 문제는 아놀드 암스트롱 살인 사건입니다. 범인이 작 중에서 행적과 과거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가정부 왓슨 부인이기 때문이에요. 뜬금없기 그지없죠. 이건 아무리 봐도 반칙입니다.
사건 속 우연도 지나칩니다. 아놀드가 핼시와 잭 베일리가 저택을 떠난 직후 살해된 것, 왓슨 부인이 거트루드 방에서 핼시의 총을 손에 넣어 살해했다는 것 모두가 우연이었으니까요. 이럴 바에야 아놀드 살인 사건은 빼고, 폴 암스트롱이 저택을 침입하려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중요한 순간을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며, 중요한 정보를 사람들이 감추는 식의 옛스러운 전개도 굉장히 지루합나다. 또 모든 사건은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결국 범인인 폴 암스트롱이 사고로 사망하는 식으로 해결되고요. 추리 요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 지루했던 것 같네요. 

짜증나는 등장 인물들도 지루함을 유발하는 요소입니다. 조카 핼시와 거트루드가 대표적입니다. 핼시의 친구이자 거트루드의 연인 잭 베일리는 누가봐도 수상했어요. 거액 횡령에도 연루되어 있고,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새벽 3시에 달아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둘은 이유는 말하지도 않고, 그저 믿어달라고 징징대기만 합니다. 거트루드는 어느 때 보다 고모가 필요할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절규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레이첼 이네스가 말한게 맞습니다. "증명이 되어야 나는 믿을 거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이네스 가문은 그렇다." 이 작품 속 거의 유일한 '상식인' 이 주인공이라는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레이첼 이네스 역시 가문 운운하는 식으로 드러내는 봉건 귀족스러운 사고 방식의 소유자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별다를게 없어요. 시대를 반영하는 흑인 비하 대사도 거슬렸고요.
의미없는 캐릭터들도 많습니다. 왓슨 부인이 아놀드 암스트롱을 살해한 동기를 위해 등장시킨 루시앤, 폴 암스트롱의 협력자 워커 박사, 협박범 니나 캐링턴이 대표적입니다. 본 이야기와 관계없는 곁가지로 분량 늘이기에 불과해 지루함을 더해줄 뿐입니다. 작위적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레이첼 이네스 가족이 저택에서 휴가를 끝내기를 범인 폴 암스트롱이 기다리지 못한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정말로 죽은게 아니라는걸 밝혀내지 못하는 한, 시간은 폴 암스트롱의 편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있지만, 지루하고 짜증나는 요소도 많은 탓에 감점합니다.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들어내고 속도감있게, 그리고 더 고딕 호러 느낌으로 전개했다면 진짜 걸작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언급한 문제에는 번역 탓도 있습니다. 문장들이 매끄럽지 않고, 직역도 많으며, 교정도 제대로 보지 않은걸로 보이거든요. 주요 인물인 잭 베일리는 중반까지 '존' 베일리라고 등장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좋은 번역으로 제대로 읽으면 제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020/09/19

남은 날은 전부 휴가 - 이사카 고타로 / 김소영 : 별점 3점

남은 날은 전부 휴가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이사카 고타로단편집입니다. 그다지 많이 읽어 본 작가는 아닌데, e-book 대여가 가능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편집인데 구성이 특이합니다. 수록작 모두 화자도 다르고, 시점도 다르고, 주요 등장인물들도 모두 다르지만, 돈만 주면 뭐든 하는 해결사 미조구치-오카다 컴비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연작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성만 특이한게 아니라, 작품들도 독특한 발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백수가 된 오카다가 이제 인생의 남은 날은 모두 휴가, 바캉스다라는 의미의 제목부터가 그러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 보다 훨씬 와 닿는 멋진 제목이라 할 수 있어요. 작품 속에서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이라는 영화 속 대사라고 하는데 참 적절하게 잘 써 먹었다 싶더군요.

물론 수록작 중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불길한 횡재"는 그 자체만으로 완성된 작품은 아닙니다. 설정에 대한 소개, 수록작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 뿐이지요.

그래도 나름의 재미도 분명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 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아빠의 불륜으로 이혼하게 된 가족의 마지막 날, 아빠에게 친구가 되자는 전화 메시지가 날아왔고, 가족은 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메시지를 보낸건 해결사 오카다였다. 상사 미조구치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면 전화 메시지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가족의 고교생 딸 사키로, 미조구치와 오카다 및 주요 설정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격 작품입니다. 문제는 사키 가족과 드라이브와 식사를 즐긴 오카다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미조구치 씨 일당에게 끌려간 뒤, 세 가족만 차에 남는 결말이라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는 거지요. 사실 여기서 다른 사건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사키 등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아서 당황스럽더라고요.

가족이 친구가 되는 과정, 오카다의 여러모로 독특한 시각 등은 볼거리이지만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유다이라는 가정 폭력 피해 아동을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유다이를 구해주기 위해 오카다는 기묘한 작전을 구상하는데...

오카다가 자신이 협박하던 불륜남 곤도와 함께 유다이의 아빠 사카모토가 폭력에서 손 떼도록 만드는 귀여운 작전이 펼쳐지는 일상계 추리, 범죄, 사기극입니다.

사실 오카다의 작전은 유치합니다. 성인이 된 유다이가 미래에서 사카모토를 찾아와, 유다이 폭행을 그만두지 않으면 성인이 된 유다이 때문에 지옥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연극이 전부거든요.

그러나 이 연극을 위해 터미네이터, 타키온 입자 등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사카모토에게 주입시키는 과정, 그리고 문 닫은 슈퍼마켓을 엉망으로 만드는 다른 의뢰를 활용하고 유다이와 이미지가 비슷한 곤도에게 연기를 시키는 등의 디테일은 빼어납니다. 혹시라도 사카모토가 유다이를 죽일 수 있어서 미리 그에 대해서도 확실히 선을 긋는 등 계획도 나름 정교하고요.

덕분에 뻔하고 유치하더라도 설득력은 있는 편이에요. 유치하지만 맘 먹고 이렇게 속이겠다고 덤비면 저라도 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한 횡재"

'나'는 미조구치와 오타라는 남자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들이 훔친 차로 이동하던 중, 다나카 중의원이 칼에 찔린 탓에 시작된 검문에 걸렸지만 미조구치는 훔친 차의 번호를 외워 말하는 노하우로 검문을 빠져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트렁크에는 거액이 있었고, 차 번호도 잘못 외웠었다. 경찰은 왜 미조구치 일당을 놓아준걸까?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이에 대해 미조구치 등은 검문하던 경찰이 차에 돈을 숨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아주고 몰래 숨겨둔 휴대폰 GPS로 위치를 추적하여 돈을 회수할 생각이었다고 추리하지요. 그러나 사실로 밝혀지는건 없습니다. 고작해야 돈이 든 가방 속 휴대폰 정도만이 근거가 될 뿐이고요.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완성된 이야기로 볼 수는 없어요.

결말도 석연치 않습니다. 미조구치와 오타가 GPS 추격을 피해 거액을 나누어 달아나는건 그렇다쳐도, '나'도 놓아준다는건 말이 안되거든요. 의뢰인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거라는(죽었을테니) 그녀의 말만 듣고 놓아준다는건 프로로서는 있을 수 없을 일이잖아요. 최소한 보스인 부스지마의 허락은 받았어야 합니다. 

또 그녀의 납치는 다나카 중의원의 의뢰였고, 이유는 그녀가 불륜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나카 중의원 암살 계획의 일부로, 흉기를 은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실제 습격한 사람, 흉기를 숨기는 사람 등 여러 명이 역할 분담을 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아이디어만큼은 나쁘지 않았지만, 예전 "소년탐정 김전일" 등 다른 작품에서 접했던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연작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용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초등학교 4학년 생인 '나'는 해외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 중인 아빠와 통화 중에 아빠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빠가 유미코 짱이 위험하다, 학교에 페인트 낙서가 되어 있지 않냐고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아빠에게 말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미코 짱이 담임인 유미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나'는 페인트 낙서를 한 오카다에게 이러한 내용을 물어보았고, 오카다는 유미코 선생님이 정말로 위험하다고 말해주는데...

오카다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던 사건을 그린 나름 본격 추리물입니다. 화자는 오카다의 친구 '나'이고요. 아빠가 '나'를 몰래 감시하는 것과, 유미코 선생님 스토커 이야기의 조합이 절묘하며, 이야기 앞 뒤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오카다가 페인트 낙서를 한 이유는 유미코 선생님의 욕이 적혀 있었기 때문, 아빠가 이 사실을 알았던 건 그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던 등산이 취소되었기 때문인 등 앞선 기묘한 행동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참고로, 아빠는 불륜으로 이혼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스파이라고 꾸몄던 겁니다. '나'를 보기 위해 쌍안경으로 몰래 관찰했고, 그래서 유미코 선생님 욕이 쓰여져 있는걸 알게 되었던 거지요. '나'를 관찰하던 아빠를 오카다와 '나'는 스토커로 착각했고요.
아빠가 주변 사물을 무기로 이용한다고 스파이인척을 할 때 했던 말을, 나중에 오카다가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등 - 칼로 위협하던 스토커를 향해 거울로 햇볕을 반사시켜 눈을 부시게 만듬 - 복선 활용도 완벽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연작 단편집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게 문제네요. 자체만으로도 완벽할 뿐더러 오카다 외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미조구치의 부하 오타가 영화감독이 된 '나'를 찾아가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는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추가된건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이 단편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오타 후임으로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된 다카다는, 뒷 차를 고의적으로 충돌하게 만들었다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미조구치 문병을 갔다. 미조구치는 뒷 차를 협박하다가 뒷 트렁크에서 권총을 발견했고, 피해자가 달아나다가 여파로 다른 차에 치였었다. 조직의 보스 부스지마 빌라에 총격이 가해졌고, 뒷 차 운전수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게 된 조직은 미조구치와 다카다에게 용의자 색출을 지시하는데...

전 편이 본격 추리물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본격물의 한 갈래인 암살물입니다. 화자는 미조구치의 새 파트너 다카다로, 부스지마를 암살하려고 하는건 미조구치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독립하려던 오카다가 처단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지요.

부스지마는 병원 별실에서 휴양 차 입원 중인데, 음식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부하가 받아 시식 후 전달하며, 방문자는 2~3명의 경호원으로 부터 몸 수색을 받는 철통의 보안에 놓여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미조구치가 이러한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부스지마를 습격하기 위한 작전이 상세하게 펼쳐지고요.

어설프지만, 한 번 정도는 먹힐 만한 작전이 상당히 볼거리입니다. 작전은 이전 뒷차 추돌 사고 때 부터 시작되었었습니다. 빌라 총격을 사주하여, 미조구치가 범인을 알고 있다고 조직이 생각하게 만든 뒤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미조구치와 친한 입원환자 '선생님'이 암살범이라고 생각하도록 함정을 팝니다. 협박장에 붙어있는 파슬리 스티커의 의미를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다카다의 조사로 파슬리의 꽃말 중 하나가 '죽음의 전조'라는게 밝혀지며, 이를 통해 협박과 꽃말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선생님' 병상에서 의사로 변장하기 위한 가운을 발견하며, 동기로 선생님'의 아들 부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우연찮게 들려오고요. 그래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암살범으로 오해한다는 건데, 읽으면서는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었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싸 했을 것 같습니다. 앞 뒤가 척척 잘 맞아 떨어지니까요.
이를 통해 다른 경호원들이 '선생님'을 잡으러 떠난 사이, 부스지마 병실에 남아있게 된 미조구치는 음식 전용 엘리베이터로 권총을 반입하는데 성공하지요. 

마지막 작품 답게, 앞서의 이야기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음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좋았어요. 미조구치가 오카다를 찾아다녔던 것, 단 것을 좋아하는 미조구치가 자주 찾는 맛집 블로그, 부스지마 암살 계획에 여러명이 관련되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 등은 모두 앞서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내용들인 덕분입니다. 미조구치의 작전에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범인으로 착각하게 만든 수법 중 하나는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에서 오카다가 쓴 방법과 같고요.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무심결에 듣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2년 전 처음 만나기 전 부터 미조구치와 오카다가 알고 있었다는 설정은, 미조구치가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에 등장했던 애드벌룬 감시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고보니 "조만간 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 거라고 하지만 그런건 꿈이지 현실감이 없다. 전화를 가지고 다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할 바에야 직접 만나러 가는게 낫다. 꿈을 꾸기보다 주위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애드벌룬 감시인의 장광설은 그 파격적인 발상과 강한 자기 주장이 미조구치와 꼭 닮아있기는 하지요.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죽기 직전 부스지마는 오카다가 살아있다며, 맛집 블로그인 '사키의 블로그' 운영자가 오카다라고 알려 주거든요.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블로그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한 뒤, 3분 내 답이 오지 않으면 총으로 부스지마를 쏴 죽이겠다고 하는데 3분 뒤 다카다의 폰이 울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오카다일까요? 아니면 계속 날라오던 스펨 메일일까요? 열린 결말인데,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미조구치가 8분과 10분에 대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던가 하는 독특한 발상과 묘사도 많은데, '단지 나는게 걷는거보다 낫다'가 아니라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남자가 하늘을 날아와서 '네가 좋아!'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다니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만 합니다.

마무리로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오카다 - 오타 - 다카다로 바뀌는데 일부러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채용한건지 궁금해집니다.

2020/07/09

오래된 책들 (9) - JOKER

딱히 포스팅꺼리가 없을 때 업로드하려고 모아놓은 오래된 책들 이야기 아홉 번째 글입니다. 

이 작품은 "은하영웅전설"의 만화판 작가로 유명한 미치하라 카츠미의 SF 추리물입니다. 소설가 마키 유우의 글을 만화화한 작품이지요.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아 보이지만, SF와 추리 양쪽 모두에서 나쁘지 않은 구성을 보여주었던 작품입니다. 특히 "특무사법관"으로 초법적인 활동을 펼치는 은빛 눈동자의 자웅동체(?) 합성인간 Joker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범죄자를 처단할 때에는 그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는 냉혹함과, 린 앞에서는 어린 소녀처럼 변하는 성격의 차이를 남성 - 여성을 자유롭게 오가는 변형과 함께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거든요.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잔재미도 잘 살아있고요. 다양한 특수능력 등의 설정도 잘 짜여져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조사하다가 몰랐던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국내판은 전 7권인데 일본판은 전 8권으로 진작에 완결되었다는 겁니다. 8권이 7권 출간 후 무려 7년 후인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국내 출간을 진행하던 세주 문화사가 이 때 폐업했기 때문에 완결되지 못한거지요. 어찌보면 세주 폐업의 피해작인데, 출판사를 옮겨 완결될만큼 인기를 얻지도 못하긴 했습니다. 저도 구하느라 고생 좀 했을 정도로 팔린 물량 자체가 적거든요. 국내에서 재출간될 가능성도 없으니, 일본어 e-book으로 8권만 구입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런 비인기 작품까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니 확실히 80~90년대 초반은 OVA 전성시대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OVA는 원작의 장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블레이드 러너"의 설정을 차용한 망작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80년대 테이스트가 과하고, 완성도도 낮아서 도저히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에요. 남, 녀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주인공 린을 농락하는 Joker의 매력 정도만이 눈에 뜨일 뿐이지요. 하지만 만화책은 절판된지 오래된 탓에 특수사법관 Joker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이 애니메이션밖에는 없는게 현실입니다. 특수사법관 Joker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업로드 동영상은 저작권 문제로 언제 내려갈지 모르니까요.

2020/05/01

머드맨 1, 2 - 모로호시 다이지로 / 김동욱 : 별점 3점

머드맨 1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머드맨 2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판타지 만화입니다. 일본 전통 설화를 현대로 끌고온 "요괴 헌터"와 비슷하게 전설을 현대 무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류학자의 딸 나미코는 아버지가 뉴기니에서 데리고 온 원주민 소년 코도와와 함께 살게 되는데, 코도와는 사실 학자가 원주민 여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학문적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일부러 오지 마을 촌장에게 양자로 보낸 뒤, 코도와 몸에 새겨진 문신의 비밀을 밝혀내려 한 거죠. 그러나 억지로 문신의 비밀을 알아내려 한 교수의 행동은 정령 머드맨에 의해 들통납니다. 이후 코도와가 응 바기를 불러 그를 응징하며 자신이 뉴기니의 성스러운 숲을 지키는 후계자라는걸 드러내는게 1화입니다.
이어지는 2~3화는 문명을 거부하고 뉴기니의 전통 신앙을 지키려는 코도와가 슈퍼 히어로처럼 활약하는 독립적인 이야기입니다. 2화는 뉴기니는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이후, 시간의 흐름이 멈춘 상태의 세계라는 신화적인 내용이며 3화는 뉴기니를 전염병으로 초토화시킨 문명 탐사대에 대한 복수극이거든요. 복수극은 별다른 내용이 없는, 일종의 중간 다리 역할에 지나지 않지만 파푸아 뉴기니가 '노아의 방주'가 도달한 장소로 덕분에 독특한 생태계가 이루어졌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4화부터는 완결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파푸아 뉴기니 전설인 카우나기, 나미테 이야기가 핵심이지요. 전설 속에서 둘은 위대한 가면의 비호를 잃고 숲에서 달아나고, 옹고로의 바위 안에 숨겨져 있던 악령인 아엔의 가면이 그 둘을 쫓습니다. 겨우 탈출한 둘은 위대한 자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유한한 삶을 살게 되지만, 카우나기의 몸에 새긴 문신 덕분에 자손은 숲과 정령의 가호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신을 새기다 피가 판다누스 나뭇잎에 튀고, 이 나뭇잎은 자라서 무엇이든 먹는 나라모로 성장해서 카우나기와 나미테를 위협합니다. 전설에서는 나미테가 죽은 뒤, 그 몸에서 먹을게 자라났다게 결말입니다. 덕분에 나라모도 먹을게 생긴 것이죠.
카우나기와 나미테가 다시 부활한게 코도와와 나미코라는 설정으로, 둘은 전설 속 둘의 모험과 똑같은 경험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러나 코도와와 나미코는 전설대로의 결말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야기 속에 비행기가 신의 선물을 가지고 와서 모두를 풍요롭게 해 준다는 '카고 컬트'를 이야기에 잘 녹여낸 부분도 흥미롭지만, 다시 부활하여 사람들을 위협하던 나라모가 "반드시 다시 돌아와 숲도, 산도 모두 먹어치울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일본의 야마비시 상사가 전설 속 숲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발견하여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고, 야마비시 상사의 로고가 나라모 문양과 같았다는 후일담도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네요. 지금 보기에는 좀 낡은 환경 보호 메시지이기는 해도, 전설과 합쳐서 좋은 시너지를 내거든요.
코도와와 나미코가 죽지 않은 만큼, 코도와가 나미코와 결합하여 후손들을 낳아 문명에 대항하여 위대한 숲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도 좋았어요.

파푸아 뉴기니의 전통 설화가 일본 전통 설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과감한 아이디어도 눈길을 끕니다. 코도와 몸의 문신이 일본 죠몬 토기와 이어지는 초반부 설정도 흥미로우며, 신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옹고로'는 일본 전설의 섬 '오고로노지마'이며 카우나기와 나미테는 이자나기, 이자나미와 같다, 즉 세계의 근원은 하나라는 결말도 굉장히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품과는 다른 큰 특징도 있습니다. 바로 '코도와'가 상당한 수준의 능력을 지닌 일종의 히어로라는 점입니다. 전설 속 수호령 머드맨을 부리며 숲길을 열어 빠르게 이동하고, 뛰어난 활 솜씨로 악당들을 처단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덕분에 아엔의 가면과의 사투 등에서는 다른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품에서 보기 힘든 액션씬이 가득 펼쳐지는게 좀 신기했습니다.

솔직히 일본 전통 설화와의 연결은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고, 아무리 좋았다하더라도 카고 컬트, 일본의 종합 상사 등의 소재가 녹아들기에는 분량이 좀 부족했습니다. 더욱 긴 장편으로, 아니면 차라리 코도와가 뉴기니 주술로 문명과 싸우는 옴니버스 단편으로 구성된 액션 시리즈로 그려내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매력은 잘 느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각 권말에 각 3 ~ 4편씩 수록된 단편들도 다른 곳에서 접한게 많지만 1권의 "유니콘 사냥꾼"과 2권의 "인간 대 통조림", "왕의 죽음"은 모로호시 다이지로 월드를 상징한다고 해도 부족함 없는 멋진 단편들이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가격도 어마어마한데 e-book으로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2020/03/27

잠자는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김윤정 : 별점 2.5점

잠자는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국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영국으로 온 그웬더는 남편 자일스가 오기 전, 보금자리로 힐사이드 저택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 대해 알아갈 수록, 자신이 그 집에 대해 이미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웬더는 남편이 없는 동안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남편의 사촌인 유명 소설가 레이먼드 웨스트 부부를 찾았다가 미스 마플을 만났다. 그리고 유령에 대한 연극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미스 마플에게 급작스럽게 떠오른 자신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전 힐사이드에서 헬렌의 시체를 보았던 기억이었다.

미스 마플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인터넷 도서관에서 e-book으로 대여해 읽었죠.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에서의 별점은 3.5점입니다. "공략"에서 이야기하듯, 미스 마플의 존재감이 상당히 희미하다는게 특징입니다. 실제로 사건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건 그웬다와 자일스 부부거든요. 그웬다가 떠올린 과거의 기억에 대한 진상을 둘이 함께 파헤친다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미스 마플의 비중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재미있고 쑥쑥 읽힙니다. 특히 초반부, 그웬다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 묘사가 왠만한 호러물 저리가라 할 정도인 덕분입니다. 그래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겨자색 침실 벽을 '새빨갛고 작은 개양귀비꽃과 수레국화가 번갈아 피어 있는 무늬의 벽지'로 바꾸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뒤, 침실에 있는 오랫동안 열지 않은 붙박이 장을 열고 난 뒤의 묘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붙박이장 안 쪽만 겨자색으로 덧칠이 되지 않고 '새빨갛고 작은 개양귀비꽃과 수레국화가 번갈아 피어 있는 무늬의 벽지' 상태로 남아있었거든요. 아, 이건 정말 영상으로 봤다면 아주 기가 막혔을거 같아요.

미스 마플도 비중에 비하면 활약은 확실해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명탐정으로서의 역할부터 제대로에요.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추리는 물론, 세세한 추리들 모두 돋보입니다. 그웬더가 기억하는, 선장이 2명이었다는 말을 통해 두 번의 긴 항해가 있었다고 추리하고, 난간 위가 아니라 난간 사이로 홀을 내려다 보았다는 말을 통해 그녀가 어린아이였을 때의 기억이라고 추리하는 식인데 모두 합리적이에요.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웬더를 죽이려는 케네디 박사를 층계참으로 뛰어 올라와 비눗물을 뿌려서 퇴치한다는 액션까지 선보입니다. 할머니 특유의 친화력과 풍부한 휴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추리물로서도 꽤 볼만한 편입니다. 대단치는 않아도 설득력 넘치는 트릭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헬렌의 메모가 진짜인지 필적 감정을 할 때, 케네디 박사가 제공한 편지와 필적 견본 모두 본인이 써서 제공한다는게 첫 번째 트릭입니다. 덕분에 메모는 진짜인걸로 일단 판명나죠. 간단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트릭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듭니다.
릴리가 왜 케네디 박사가 알려준 열차가 아니라 한 시간 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서, 케네디 박사가 알려준 역 전의 역에서 내렸는지에 사용된 두 번째 트릭도 괜찮습니다. 진상은 박사가 살인을 저지른 뒤, 원래 주었던 편지를 없애고 수정된 시간과 장소가 적힌 편지를 남겨놓았을 뿐입니다. 덕분에 경찰은 이 상황을 릴리가 박사를 만나기 전, 누군가를 협박하러 갔다고 오판합니다. 그럴듯하죠?
헬렌이 옷을 가져갔지만, 드레스는 가져갔지만 드레스와 셋트인 벨트와 슬립은 두고 가는 등 조합이 안 맞는다는걸 드러내는, 여성 특유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장면도 좋습니다. 미스 마플의 추리는 아니고 하녀 릴리가 알아낸 것이지만요.

아울러 살인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충고도 돋보였어요.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라면, 지역 토박이인 정원사 등이 몰랐을리 없다. 즉, 모두에게 숨긴 완전범죄였기 때문에, 지금 그 사건을 파헤치는건 현명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크리스티 여사의 또다른 작품인 "누명"이 연상되는 충고죠. 모두가 잊기를 원하고 잊혀졌다면, 그대로 놔 두는게 맞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잠자는 살인이라는 멋드러진 제목은 이 충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래전 살인 사건인데, 아무도 모르고 있는 잠자는 살인으로, 자게 내버려 두는게 낫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 이야기와 별 상관은 없지만 딜머스에 가기 위해 주치의 닥터 헤이독에게 바닷가 휴양을 조언해 달라고 우길 때의 티격태격도 재미있었습니다. 미스 마플이 과거의 살인을 파헤치러 가기 위해 "딜머스에서 2, 3주일 지내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겠죠?"라고 물어보자 "당신의 임종이 가까워 올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인데, 닥터 헤이독이 이렇게 기지가 넘치고 위트있는 인물인지는 몰랐네요.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읽기에는 쉽다는 문제가 좀 큽니다. 부부가 미스 마플의 충고를 무시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새어머니 헬렌의 오빠 케네디 박사를 만나는 초반부에서 모든 진상이 드러나는 탓입니다.
케네디 박사는 새어머니 헬렌은 다른 남자와 도주했으며, 아버지 핼러데이는 급격히 건강이 좋지 않아져서 요양소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독자들은, 이런 증언은 피해자는 새어머니이며, 켈빈 핼리데이 소령이 아내를 살해한 뒤 시체를 처리하고 도망갔다고 오해하기 만들기 위함이라는걸 금방 눈치챌 겁니다. 그래서 소령이 범인이 아니라면, 소령이 케네디 박사에게 찾아가 살인을 고백하고 함께 돌아왔을 때 시체는 어디갔을까요? 또 헬렌이 다른 남자와 떠났다고 믿게끔 짐을 챙기고 그에 대한 메모를 남긴건 누구일까요? 그리고 헬렌이 살아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 몇 개월 뒤 전해졌다는 편지는 누가 보냈을까요? 이 조작을 한 인물은 동일 인물일겁니다. 자일스의 말처럼 핼리데이가 범행을 저질렀지만 은폐할 속셈이었다면, 케네디 박사를 찾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핼리데이는 살인을 했을지언정, 은폐 시도와 관련된 조작을 하지는 않았다는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케네디 박사일 수 밖에 없죠. 현장에 있었고, 현장 조작 및 시체 은닉, 핼리데이의 증언 위조 등이 가능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동기는 이 단계에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여동생에 대한 집착 같은 이유였겠지요. 헬렌이 남자와 떠난다는 메모는 나중에라도 준비할 수 있으니, 시체를 어떻게 없앴는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이건 아마 변경된 집의 구조와 관련이 있는게 뻔하며, 결국 기묘한 정원 계단을 파헤치면서 사실로 밝혀집니다.

이렇게 초반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진상은 모두 추리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케네디 박사 등장 이후에는 부부가 헬렌과 관련되었던 3명의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혐의를 씌우는 쪽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초반에 던져준 정보가 너무 확실하며, 이 세 명 중에서도 살인을 실제로 저지를만한 인물은 월터 페인밖에 없어서 눈길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어스킨 소령이 헬렌과 사랑에 빠졌다 한들 그는 유부남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재키 애플릭은 사랑을 훼방놓은 케네디 박사와 월터 페인을 살해하면 모를까, 헬렌을 살해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또 지역 내 명사인 의사와 변호사 월터 페인은 그렇다쳐도, 어스킨 소령과 재키 애플릭, 어스킨 소령 부인은 밤에 무덤을 파는게 레어니에게 발각되었다면 빠져나기가 쉽지 않았을거에요. 심지어 재키는 식사에 초대도 받지 못할 정도의 불청객이었죠.
이렇게 범인 후보를 늘리기 위해 월터 페인을 거미에 비유하고, 그가 어린 시절 장난감을 망가트린 형을 거의 죽일 뻔 했다는 등의 묘사를 덧붙인다던가, 어스킨 소령 부인의 극렬한 질투심을 표현하는 등으로 수상쩍게 만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억지스러운 묘사는 오히려 범인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만들더군요. 제가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긴 많이 읽었나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의자를 늘리는 전개 탓에 일관성도 좀 없어요. 예를 들면, 미스 마플은 한 사람의 증언만 들으면 안되고,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야 한다는데 그 말에 따르면 헬렌은 문란한게 맞습니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문란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마지막에 그녀는 그냥 호기심 많은 처녀였을 뿐이라고 얼버무리는건 여러모로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시대를 초월할만큼 좋은 작품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발표된지 80여년 정도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미스 마플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사님의 다른 걸작들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여사님이 직접 뽑은 본인 작품 베스트 10이 더 좋은 선택일거에요.

2020/03/11

너무 예쁜 소녀 1~3 - 얀 제거스 / 송경은 : 별점 1점

[세트] 너무 예쁜 소녀 (전3권) - 2점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한경비피

인적이 드문 프랑스의 한 마을에 어느 날 숨이 막힐 정도로 예쁜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마농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를 돌봐주던 미망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마농은 마을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 때마침, 총각 파티를 떠나던 세 명의 남자들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차에 태워 주었다.

장면이 바뀌어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프랑크푸르트. 미국대통령의 방문으로 도시 전체가 삼엄한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 도시 숲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사건 현장 근처 호수에서 물에 빠진 자동차가 발견된다. 트렁크에서 또 다른 남자의 시체가 나오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트렁크 안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옷에서 주유소 영수증을 찾아내고, 그 일행이 주유소 주인의 조카는 자동차에 남자 세 명과 유난히 눈에 띄게 예쁜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증언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작가의 추리 소설 데뷰작이자 로버트 마탈러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네요. 코로나 사태로 방콕하는 와중에 도서관 e-book 대여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럽 추리 소설은 딱히 취향이 아니지만, 이전에 분명 어디선가 소갯글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기 때문이죠. 제목에서 왠지모를 호기심도 느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선택은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끔찍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을 뒤쫓는 형사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함량 미달인 탓입니다. 주인공인 로버트 마탈러 형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오랫동안 형사로 일하고, 지금은 팀장이라는데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기 때문이에요. 피해자 가족에게 피해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기를 지극히 꺼려할 정도로요. 독일 형사라면 기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 같지만, 연락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린다거나,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잔 실수도 많습니다. 추격전과 같이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 몇 명 만났다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을 보면 영 신뢰하기 어렵고요. 여기에 먹는걸 좋아하고, 15년 전 사망한 아내를 잊지 못하면서도 단골 카페의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테레사를 유혹하는 모습을 더하면, 이게 무슨 독일인이가 싶습니다. 이탈리아 인에 더 가까운거 아닐까요? 수사 외에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 쪽에 대한 취미도 피력하는데 이는 완전한 사족이었습니다. 운전을 싫어하고, 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모습 정도의 독특함만 가져가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다른 경찰들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탈러의 부하들은 도주 중인 플뢰거에게 습격당해 총을 빼앗기고, 플뢰거에게 사로잡혀 끌려다니는데다가, 마리 루이제가 있는 쇼핑몰 봉쇄에 실패하고, 심지어 유력 용의자인 마리 루이제를 호송 중에 놓치기까지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유력한 용의자를 놓친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너무 예쁜 소녀' 마농, 마리 루이즈의 존재도 별거 아닙니다. 누구나 반할만큼 대단한 외모를 소유했다고 묘사는 되지만, 그 미모 탓에 사건이 벌어진다고는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모 때문에 가족이 파멸하고, 그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소악당 3명의 차에 얻어탄 뒤 성폭행 당한건 미모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외모가 평균 수준만 되었어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범죄였으니까요. 로만을 유혹한 뒤 살해하는 범행에는 명백히 미모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마농의 모든 행동은 뒤떨어져 보이는 지능 등으로 모두 즉흥적, 수동적으로 묘사됩니다. 미모를 사용하려는 의지가 아예 없어요. 미모를 활용한 어린 팜므파탈을 기대했었지만,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내용에서도 스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당연히 없고요. 시체가 발견된 뒤, 목격자들의 증언과 이런저런 증거를 모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요. 마농이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 플뢰거가 탄 차에 동승한 뒤 숲 속에서 플뢰거를 제외한 사람들끼리 성관계가 있었고, 일행 중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가 난도질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범인이 제 3의 인물이 아니라면 플뢰거나 마농,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인건 뻔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여자인 마농보다는 플뢰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봐야겠죠. 마농 혼자 남자 2명을 살해하고, 그 중 한 명을 차 트렁크에 실어 호수에 버릴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마농이 범행을 저지르는 와중에 플뢰거 혼자 도주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하지만 이 가설은 사건 뒤 마농이 우연히 만나 유혹한 로만을 난도질해서 살해한 것 때문에 부정됩니다. 그녀는 정말 살인마였던거죠, 그렇다면 플뢰거는 왜 마농과 따로 도주한 뒤 경찰에 쫓기다가 투신자살했을까요? 범행의 공범이었다 하더라도 직접 실행범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이유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공범이었다면, 애초에 자기 친구 두 명 살해와 시체 유기에 가담한 이유와 요헨 힐셔의 시체를 은닉한 뒤 마농이 플뢰거를 살해하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남자만 죽인다는게 이유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정말로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걸까요? 그리고 로만과는 몇일간 함께 지내며 관계를 맺었는데 왜 바로 살해하지 않은걸까요?
이렇게 떡밥을 던진건 많은데 제대로 회수되는건 별로 없어요. 범행 동기도 도무지 알 수 없고요. 게다가 모든 수수께끼는 결말에서 마농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그랬다, 즉 심신 미약 상태에서 일으킨 불가항력적인 범행이었다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됩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기억 상실급에 비교할 만한 최악의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설명되지 못한 부분은 많습니다. 애초에 왜 마농의 아버지 페터가 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했는지, 가족 동반 자살 사건에서 마농 혼자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살아남은 뒤 왜 정상적인 사고를 갖추지 못하게 되었는지, 마농이 체포되고 난 후 장 루크 지로가 죄를 뒤집어 쓰기 위해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 등 많은 부분이 모호합니다. 장 루크 지로는 마농에게 홀딱 반한 멍청이라서 그렇다지만, 딱히 납득이 되는 설명은 아니었어요.
그나마 추리가 등장하는건, 페터 가이슬러가 좌절하여 일가족 동반 자살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익명의 투서를 누가 썼느냐를 밝혀내는 정도에 그치며, 이 역시 사건 후 페터의 주변 동료 중 한 명이 자주 쓰지 않는 단어를 진술서에 썼는데 이 단어가 투서에도 쓰였다는게 이유라서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모두 뭐 하나 건질게 없었던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걸 알게된게 유일한 수확이에요. 로버트 마탈러가 팀장으로 근무하는 독일의 치안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든 도트문더는 정직하게 게임을 해서 240달러 정도를 땄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했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부탁했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이었다.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하는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답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했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앨런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겨 왔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데...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났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두는데...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했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파티를 가지게 된 렉시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12/10

Q.E.D. iff 2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2 - 4점
MOTOHIRO KATOU/학산문화사

C.M.B 도 좋지만, 저는 Q.E.D 를 훨씬 좋아하는 편입니다. Q.E.D의 season 2라고 할 수 있는 iff 시리즈도 이제 e-book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2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추리적으로 대단치 않고, 이야기도 여러모로 헛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편 모두 내용에 비하면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요.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 수학적인 정보의 제공도 그리 대단치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음 권은 조금 더 분발해주면 좋겠네요.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토마와 가나의 동급생 유바리 미츠키의 오빠 유우키는 인기없는 만담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담아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희극 각본을 썼다. 이를 1인극으로 공연한 뒤 연예계를 은퇴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선배 개그맨 스즈카와 매니저 아카시의 농간으로 각본을 빼앗기고, 주역 자리에서 밀려나 고생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마는데...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계약 관계를 둘러싼 비즈니스 물입니다. 토마의 계략으로 아카시는 유우키가 스즈카의 회사에 고용되었다는 계약서를 작성한게 반격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즈카의 회사는 모회사인 이시즈치 흥업과는 무관하지만, 유우키가 쓰러진 뒤 벌어진 인터넷 상에서의 코멘트와 크라우드 펀딩이 이시즈치 흥업 소속 연예인들이 얽히게 되어서 약점을 잡히게 되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더라고요.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 문제가 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건 처음에 스즈카 산타가 유우키의 대본을 훔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잘한 트릭 뿐이지만 개그에 가까운, 그야말로 개그맨이 생각해 낼 법한 트릭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Q.E.D 특유의 학습만화스러운 재미도 전무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이렇게 길게 끌고갈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살인의 모양"

지중해 몰타 섬에서 수학자 알프 레츠의 아내 카밀라가 열쇠로 잠겨진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강도 소행으로 결론내렸지만, 반발한 알프는 무려 4개월 동안 개인적인 조사를 이어갔다. 유력한 용의자는 알프의 친구 데릭과 그의 아내 플라니로, 이유는 카밀라가 데릭에게 추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타섬을 무대로 로키까지 등장하는 제법 긴 이야기인데, 핵심 트릭은 단순합니다. 호텔 방의 디자인을 이용하여 깨진 유리창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에 불과하거든요. 물론 간단한 트릭이 현실성 높은건 당연하니 단점은 아닙니다.
또 알프가 데릭을 범인으로 옭아매기 위해 세운 계획 역시 상당히 합리적이에요. 호텔의 열쇠는 모두 똑같이 생겨서 충분히 바꿔칠 수 있었고, 플라니의 알리바이가 없어서 이를 데릭이 함께 위증한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경찰이 강도의 범행으로 단정지었기 때문에, 플라니의 위증을 증명할 증인을 찾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는거죠. 그 와중에 토마가 나타나 진상을 파헤쳐버렸고요.

범인의 계획대로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못한 탓에 범행이 드러난다는건 꽤 신선한 발상인데, 문제는 너무 쉽게 마무리되는 결말입니다. 알프가 진범이며, 그 증거는 달의 방 창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깨진 것이다라는 토마의 추리가 과연 데릭이 진범이라는 알프의 작전과 비교했을 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유리창은 언제든 깨질 수 있지만, 플라니와 데릭이 위증을 한건 엄연한 사실이잖아요?

게다가 알프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낸건 데릭 부부 둘 중 누가 체포되어도 상관없게 된 것이라는 알프의 말 때문이라는데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게 누구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되었다면 충분히 할 법한 말 가지고 말꼬리를 잡은 거에 불과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말의 비약이 심해서 감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