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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세계사 만물 사전 - 헤이본샤 편집부 / 남지연 : 별점 1.5점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도감형 사전이지요. 제목 그대로 세계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과 개념을 짧은 설명과 도판으로 소개해 줍니다.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매우 짧은 항목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라 부담 없이 넘겨보기 좋습니다. 한 항목이 대개 도판 하나와 그에 덧붙여진 설명 정도로 끝나는 덕분입니다.
다른 사전이나 도감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특히 바다와 선박 관련 정보가 비교적 풍부한 편으로, 범선의 구조를 보여주는 도판이나 돛을 포함한 요트의 상세한 구성 설명은 꽤 볼만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만화 “해왕기”를 볼 때 참고삼아 보아도 좋겠더라고요.
말과 수레, 썰매에 대한 설명도 충실합니다. 특히 썰매를 도판과 함께 체계적으로 소개한게 눈에 띕니다. 여기에 더해 자물쇠와 열쇠, 촛대, 샹들리에처럼 일상적인 소품들의 상세한 설명도 좋고요. 특정 시기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유용한 정보일 테지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깊이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항목이 도판 하나에 짧은 설명으로 끝나며, 배경이나 역사적 맥락 없이 현상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 탓입니다. 무엇을 왜 그렇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흐름 속에서 발전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차 구성도 아쉽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가와 전쟁에서 바다, 범선, 기선으로 이어지고, 다시 기구와 항공기, 말과 수레, 썰매로의 흐름은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이후에 등장하는 농업과 농민, 의상, 민족, 속옷, 우산, 신발 등은 맥락도 불분명하고 주제 간 레벨 차이도 큽니다. 한 책 안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건축과 유적, 신화와 신을 다룬 부분은 도판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설명 역시 관련 전문 서적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단순해서 실망스럽습니다. 굳이 이 책에서 다뤄야 했을 영역이 아니에요. 무기들도 마찬가지고요. 

도판도 수가 많고 성의가 느껴지며 하나의 일관된 일러스트로 제공된다는건 좋은데, 인쇄 문제인지 전체적으로 품질이 썩 좋지 못합니다. 이는 도감이라는 책의 정체성을 미루어 볼 때, 최악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AK Trivia Book 중에서도 최악 중 하나에요. 추천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2016/05/16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별점 2.5점

문구의 모험 - 6점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우리에게 친숙한(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문구들에 대해 조망하는 잡학 서적입니다. 종이 클립에서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의 문구까지, 모두 14개의 챕터에서 설명해 줍니다. 특정 항목의 소소한 역사를 다루었다는 면에서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주제별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해당 문구가 어떻게 고안되어 일상 속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와 수준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해당 문구의 역사를 조망하는 미시사적 구성도 탁월하고요. 볼펜과 만년필을 다룬 항목을 예로 들자면,

  1. 이집트에서 검댕과 물로 만든 잉크를 갈대 솔로 찍어 파피루스에 글을 남김
  2. 6세기 이후 깃털 펜 등장. 거친 표면의 파피루스보다 부드러운 양피지 등이 발달하자 가는 선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진 것. 이후 19세기까지 사용.
  3. 로마시대부터 금속제 펜촉이 등장하였으나 가공이 힘들고 비쌌음. 이후 19세기에 금속제 펜촉으로 교체.
  4. 19세기 후반 워터맨의 만년필 등장
  5. 1945년 미국에서 최초로 볼펜 판매 시작. 이후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다양한 볼펜들 출시.

의 순서로, 볼펜과 만년필이 발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변곡점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짚어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앞서 '잡학 서적'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련된 잡학도 충실히 풀어내고 요. 워터맨이 만년필을 발명한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진, 워터맨이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할 때 중요한 계약 시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잉크 얼룩이 번져 계약서를 새로 바꾸는 동안 고객이 가 버리고 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주는 식으로요. 이러한 일화, 잡학들 모두 명확한 사료를 통해 검증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인사들이 사용하는 연필들에 대한 소개 - 조지 루카스는 딕슨 타이콘데로가, 스티븐 킹의 "다크 하프" 속 작가 조지 스타크가 쓰는 연필은 베롤 블랙 뷰티, 존 스타인벡이 가장 좋아한 연필은 블랙윙 602(블랙윙의 팬은 많다. 기획자 넬슨 리들 / 작곡가 퀸시 존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에도 등장 / 만화가 척 존스 등) - , 형광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 일본의 호리에 유키오가 사인펜을 만들고, 카터가 파이버팁 사인펜에 형광 잉크를 적용한 '하이-라이터'를 출시하고, 독일의 슈반호이저가 잉크와 디자인을 개선한 '스타빌로 보스'를 출시 - 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제품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볼펜은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개발된 물건인데, 그 중 기존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볼펜이 바로 BIC 크리스털 펜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그 외의 제품으로는 몽블랑 만년필, 몰스킨 노트, 스타빌로 형광펜 등이 있습니다.

허나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최소한 소개된 제품의 도판은 빠지면 안 되었을텐데, 극히 일부 제품만 도판이 선보이거든요. 앞서 예를 든 볼펜과 만년필 항목에서도 소개된 도판은 빅 크리스털 볼펜, 파커 만년필에 불과합니다. 비중있게 소개된 다양한 볼펜들(파커 조터, 피셔 우주펜 등)과 몽블랑 만년필 등은 글로만 설명됩니다. 한마디로 표지에 있는 도판이 거의 전부인 셈이지요. 충실한 도판, 혹은 도해와 함께 보다 상세하게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구성이었다면 훨씬 마음에 들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정보가 소개됨에도 불구하고, 큰 재미를 느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문구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닌 탓이지요. 평범한 일반인이 만년필의 역사나 구조 같은 것에 호기심을 갖기는 힘드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엄청나게 깊이 파고든 점은 확실히 대단하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그런 책입니다.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필독서일테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미 구입해서 읽어보셨겠죠), 그렇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14/06/28

브루넬레스키의 돔 - 로스 킹 / 이희재 : 별점 3점

브루넬레스키의 돔 - 6점
로스 킹 지음, 이희재 옮김/세미콜론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을 완성한 천재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다룬 논픽션. 1418년 진행되던 돔 공사가 부딪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공모전에 참여한 필리포가 내놓은 기상천외하고 대담한 해결책은 중심틀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그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방식이었으며 이 방식이 선정된 뒤, 건축장이 된 필리포가 천재성을 발휘하여 거대한 권양기와 기중기 카스텔로를 만들어 내고 돔을 쌓는 데 있어서도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을 당시 시대 상황 및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한 위인전이라기보다는, 돔 공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룬 일종의 건축 역사서라고 보아야 할 것 같네요.

장점이라면 공사 과정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현학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이 건축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방법으로 건축되었다는건 전혀 몰랐었거든요. 당연히 필리포라는 당대의 천재 역시 들어보지 못했었고요. 이 책에서의 모습만 본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뒤지지 않는 대단한 르네상스의 천재인데, 돔 공사에 올인한 나머지 천재성을 발휘하여 명성을 널리 알릴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좀 안타깝기도 하네요.

다른 발명품 중에서는 침몰해버린 디딜바퀴로 돌아가는 외륜선 일 바달로네, 이웃 도시 루카를 수공으로 위협하려던 댐이 무너져 되려 아군이 피해를 보는 등의 실패 사례가 등장하는데, 이는 현실성을 더 높여줍니다. 다빈치의 스케치도 결국 실제로 제작되었더라도 제대로 성공했을지 장담할 수 없고, 딱히 대단한 위력이나 효용성이 있었으리라 보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까요. 그가 이룩한 돔 공사의 성공에 비교한다면 큰 흠이라 보기도 어렵고요.

그러나 브루넬레스키의 혁신적인 공법, 즉 중심틀을 사용하지 않고 돔을 쌓아나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이 책만 가지고는 알기 어렵다는건 단점입니다. 압력을 버텨낸다는 여러 개의 사슬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식으로 틀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는지 등이 설명되기는 하지만 도판이나 내용만으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보다 종합적인 도판, 즉 건축 순서대로 핵심 포인트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좀 큰 도판 하나가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되네요.
또한, 현재 실려 있는 도판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큽니다. 이런 점에서는 책 보다는 적절하게 이해를 돕는 화면이 삽입된 영상 다큐멘터리가 더욱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그래도 단점은 있으나 재미와 자료적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도판 이외에는 책의 디자인과 편집 모두 미려하여 완성도도 높고요. 무엇보다도 저는 알라딘에서 50% 할인 금액에 구입했기에 도저히 감점할 수가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6/10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 로저 포드 / 김홍래 : 별점 1.5점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 4점 로저 포드 지음, 김홍래 옮김/플래닛미디어

2차 대전에서 사용된 독일의 최첨단 무기들을 다룬 책. 출간된지는 제법 되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살까 말까 고민하던게 수개월. 큰맘먹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실망스럽네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일단 정말 황당무계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무기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비밀무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실전에 투입되었던 무기를 비밀무기라고 하는건 무리가 있죠. 정말 기획안, 테스트 기기로만 존재하는 제품이라면 모를까.

그나마 좀 재미있게라도 썼으면 괜찮았을텐데 재미도 너무 없습니다. 그냥 상세한 무기 설명서처럼 서술되어 있는 탓입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혹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수준의 전쟁, 무기 애호가에게는 어렵고 불필요한 정보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잠정적인 해법인 주익 앞전은 뒤로 후퇴하는 형태를 취하되, 뒷전은 직선을 유지하는 가변적 익현을 만드는 것이었다'는 식의 설명입니다. 주익 앞전을 뒤로 후퇴하게 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이건 뭐 어떻게 이해하라는건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또 도판이 많다고 홍보하고 있고 실제로도 많기는 한데, 적절하게 실려있지 못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익 앞전이 뭔지 같은 것에 대한 그림 설명은 커녕, 본문에서 언급된 주요 기체들의 도판이 없다던가 - 포케-불프 Ta 183, 메서슈미트 P.1101 등등등... - 아니면 본문에서는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다른 무기의 도판이 실려있는 식으로 - 대표적인 것은 게래트 041을 설명하는 페이지에 실려있는 도판은 게레트 040 인 것 - 외려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에 비하면 동일 무기의 코드네임을 본문에서 혼용하여 혼란을 가져다 준다던가, 미터법과 피트 / 인치를 혼용하여 혼란을 가져다 주는 정도의 실수는 애교라고 보여질 정도에요.

아울러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에요.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라던가, V2와 같은 로켓 무기, 거대전차 마우스 등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나오는 것들이죠. 예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에서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네이버캐스트 남도현의 '무기의 세계', 아니면 '유용원의 군사세계'와 같은 인터넷 자료와 비교해도 크게 우위에 있지 못합니다. 동일한 주제를 다루어 직접 비교대상이 되는 기간트 수송기, 열차포, 칼 자주박격포 모두 '무기의 세계' 쪽이 내용도 깔끔하고 해당 무기의 유래와 활약, 결과까지 알러주어 더 괜찮습니다. 도판도 큰 차이는 없고, 무엇보다 공짜니까요

25,000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1점을 줘도 시원치 않지만, 그래도 미사일 관련 이야기나 잠수함 관련 이야기 등 그런대로 재미있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잖아 있기에 0.5점 덧붙입니다.

2025/02/16

아틀라스 마이오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도책 - 강민지 : 별점 2.5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아틀라스 마이오르"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도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유럽 최고의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결과물로, 단순한 지도책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틀라스 마이오르"가 어떻게 제작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려줍니다.

지도책을 단순한 지리학적 도구가 아니라, 인문학적,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예술, 인문학 서적이자 문화사, 미시사 서적 이라는 성격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도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좋은 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무역국이었으며, 높은 문해율과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적과 인쇄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지도책은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지식을 과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 도서 지관을 꾸려 장서를 자랑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크기가 크고 값비싼 지도책이 인기를 끌었고, 이는 곧 출판 시장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로 성장했습니다.'는 것이지요.

지도책 본연의 모습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를 중심으로 지도 제작의 발전 과정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텔리우스(상업 지도책의 선구자), 메르카토르(현재도 사용되는 평면 도법의 창시자), 블라외 가문(아틀라스 마이오르 제작 명문 가문), 혼디우스 가문(블라외 가문의 라이벌) 등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들과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지도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지도 제작과 출판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 권의 지도책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지도 제작에 사용된 도판과 인쇄 기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에 대한 방대한 양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을 묘사한 지도가 포함된건 반가왔고요. 또한, 인쇄 방식과 채색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데, 컬러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채색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단순한 흑백 인쇄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 기여했으니,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지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울러 지도책을 단순한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도 연구 분석하는데, 그 깊이가 대단합니다. 지도 제작에 사용된 물감을 단순히 색채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의 유행과 연결해 설명하며, 지도 속 도상(알레고리) 분석을 통해 지도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식이거든요. 특히 지도에 등장하는 문양과 장식 요소를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시대적 사고와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요소로 분석하는 과정은 지도책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틀라스 마이오르" 외의 불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은 구성은 아쉽습니다. 지도책의 유행 이유나 지도 제작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필수적인 정보지만, 당대 경쟁 지도 제작자의 지도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문화까지 지나치게 깊이 파고드는건 과했습니다. 특히 60페이지에 걸친 '도상(알레고리)' 설명은 지나쳤습니다. 지도책에 문양이 들어갔다고 해서, 문양의 구성 요소와 의미, 디자인 규칙까지 세세하게 독자가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도판도 풍성하지만, 내용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작은 도판이 많은건 단점입니다. 주요한 도판은 접어 넣는 방식으로라도 보다 크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자의 가벼운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최신 트렌드를 인용한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책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표현은 어느 정도는 교열 과정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도책을 다룬 미시사, 예술사적인 측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결과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허나 지도책을 벗어난 이야기도 많기에 감점합니다. 

2023/05/06

무관의 국보 - 배한철 : 별점 2.5점

무관의 국보 - 6점
배한철 지음/매일경제신문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의미있고 빼어난 문화 유산을 소개해 주는 책.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않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유물들을 도판과 함께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총 8부 35편 구성 중 4부까지가 '국보급이지만 국보로 지정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유물' 정의에 가깝습니다. 소개하는 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석굴암을 경성으로 옮겨오려다 실패한 데라우치가 대신 가져왔던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굴암 대신'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그 완성도가 빼어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개관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진열품으로 활용하려고 가져왔던 서산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은 크기면에서 압도하는 측면이 강하고요. 겸재 화첩도 걸작이지만 임대 형식으로 들여온거라 국보 지정이 불가할 뿐입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철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예술적 성취가 높은 유물이며, 반쯤 걸터앉은 자세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지금 보아도 자연스럽다 싶은 자세가 아주 매력적입니다.
또 김명국의 달마도가 아직 국보나 보물이 아니라는건 신기했습니다. 김명국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그려주었던 그림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국립중앙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게 다행입니다. 여튼 완성도, 지명도 뭐 하나 빠질데가 없고, 당대 제일가는 화가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심지어 그의 작품은 현재 30점도 채 남지 않았다니 희소성마저도 있어서 국보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 왜 국보나 보물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과서에 흔히 실렸던 조선 전기 회화의 걸작이자 중국 명대 초가 화풍이 수용되는 과정을 알려주기도 하는 등 역사적 의미도 큰데 말이죠.
이런걸 보면, 국보 선정 기준이 뭘까? 궁금해집니다.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완성도 모두를 따지는 것인지, 다른 의미도 있어야하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아 국보가 아닌 석불, 우리 소유가 아니라서 국보가 아닌 유물이야 그렇다 쳐도,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유뮬들은 충분히 국보로서 자격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런 멋진 유물 소개와 더불어, 유물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소개하며, '비로봉'이라는 지명은 비로자나불에서 유래했다는 정보에서 시작하여 부처의 종류에 대해 설명해주는 식으로요. 비로자나는 태양이라는 뜻의 범어 '바이로차나'의 음역으로 밀교의 부처이기도 합니다. 밀교에서 대일여래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공작왕>>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은 구분이 쉬운데, 그 자세 때문입니다. 다리는 가부좌, 수인은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왼손 검지를 오른 손이 감싸는 지권인 형태를 하고 있거든요. 오른손은 부처의 세계, 왼손은 중생계를 의미합니다. 


이 비로자나불은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의 영향으로 신라 하대 크게 유행했습니다. 사회적 불안이 커지며 지방 토착 호족 세력이 부상했는데, 그들이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 교리에 반응하여 불교를 후원하며 불교의 탈중앙화가 급속도로 전개된 것이지요. 자기들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상과 맞닿아 있었던 탓이겠죠?
<<지존의 삶. 절대 군주의 자취>>에서는 선조와 인조가 명필이었다며 어필을 중점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는데, 명필들은 정치적으로는 영 아니었다는게 재미있네요. 하긴, 이완용도 당대 명필이었다며, 글씨에 인품이 묻어난다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철종 어필도 상당한 수준인데, 일자무식 강화도령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딱히 인상적인 유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화성능행도나 팔준도 등 여러 그림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있을 수야 있겠지만 딱히 국보급 유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아래 팔준도 중 추풍오 그림을 한 번 보시죠. 재치있기는 한데, 솔직히 잘 그렸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심사임당의 초충도 역시 유명세에 비하면 국보급이라 느껴지지 않았고요. <<음식디미방>>은 언급되는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리고 도판 수록 순서가 뒤죽박죽이며 누락된 도판이 많다는 단점도 눈에 뜨입니다. 소개하고 있는 유물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기는 한데, 현재 글 위치가 아니라 이전이나 다음 페이지에 수록된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고 국보 지정 유물과 비교하는 내용이 많은데, 국보 유물의 도판 수록에는 인색해서 어떤 점이 비교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세조 어진처럼 전체가 한 작품만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문제없지만, 많은 유물들이 언급되고 또 비교되는 글에서는 문제가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고, 눈도 즐거운 독서였지만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 유물들이 엄선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국보냐 아니냐가 그리 중요한 기준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국보냐 아니냐보다는, 보다 명확하게 주제를 정하고 소개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명작순례>>처럼 말이죠.

2012/03/12

워 사이언티스트 - 토머스.J.크로웰 / 이경아 : 별점 3점

워 사이언티스트 - 6점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이경아 옮김/플래닛미디어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전쟁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다룬 미시사 서적. 기원전부터 현대에 걸친 기간 동안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25개의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하늘이 내린 무기 - 칼리니쿠스의 액화
  • 투석기, 갈고랑쇠, 살인 광선 - 아르키메데스의 기이한 전쟁 무기
  • 최초의 생물학 무기 - 한니발의 독사 항아리
  • 하늘을 날며 춤추는 화약 - 위백양의 진천뢰
  • 신에 맞선 행위 - 제갈량이 개량한 연발 석궁
  • 르네상스 시대의 만물 수선공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관총
  • 결집된 화력 - 마랭 르 부르주아의 부싯돌식 방아쇠
  • 천재의 노력 - 데이비드 부시넬의 잠수함
  • 매우 부도덕한 행위 - 윌리엄 콩그리브의 로켓
  • 안전하고 영양 많은 - 니콜라 아페르의 통조림 식품
  • 권총 - 새뮤얼 콜트와 서부를 이긴 리볼버
  • 죽음의 상인 -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 군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 리처드 개틀링의 기관총
  • 느리지만 효과적인 -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 석류를 닮은 - 수류탄을 완성한 윌리엄 밀스
  • 화학을 악용하다 -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 불타는 관 -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군용기
  • 캐터필러 이동 요새 - 랜슬롯 드 몰의 탱크
  • 전염병 지역 -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 과학자들
  • 세계의 파괴자 -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 구조 임무 -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 이고르 시코르스키
  • 반향을 기다리며 -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
  • 달을 향하여 - 베르너 폰 브라운의 V-2 로켓
  • 가장 도덕적인 무기 - 새뮤얼 코언의 중성자탄
  • 총알 잡기 - 스테파니 크월렉의 방탄 섬유

이런 류의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워낙 잘 알려진 무기들 - 예컨대 다빈치의 무기들이나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원자폭탄 등 - 도 포함되어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존재하나, 무기보다는 발명자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면서 다른 유사 도서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신상과 개인사, 말년과 후일담까지 소개해주는 꼼꼼함도 좋았어요.

25개의 병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칼리니쿠스의 액화", 즉 그리스의 불에 대한 이야기와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윌리엄 밀스의 수류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다른 문서 등을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비밀무기와 그 제조법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런 비밀은 보통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딱 한 가지, 공기와 접하면 자연발화하는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그렇다면 과학을 넘어 마법의 영역이겠죠?) 따로 불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공격하는 쪽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방법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해결사"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그리고 새뮤얼 콜트는 이른바 "육혈포" 발명 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수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뢰의 발명자 로버트 화이트헤드가 특허권을 팔지 않고 발명의 비밀을 독점하였으며, 그의 발명을 모방한 경쟁자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다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비밀 설계도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손녀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 함장 폰 트라프와 결혼하여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사망한 뒤, 폰 트라프가 견습 수녀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후일담(?)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류탄 이야기에서는 수류탄 자체보다는 "척탄병"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습니다. 손으로 폭탄을 던진다는 한자어 그 자체에 충실한 명칭이라니...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 스토크시티의 가공할 드로잉 능력을 갖춘 인간 기중기 로리 델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전쟁 때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척탄병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야구선수들이 더 적당할려나요?

이렇듯 재미있는 기획이고, 세세한 정리와 소개는 정말이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이언티스트로 포장하여 소개한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은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대의 예가 특히 많은데, 제갈량이나 한니발 같은 경우겠죠.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등장한 발명품들이 전쟁의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기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입니다. 많기는 한데 정작 중요한 무기 도판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석궁(쇠뇌), 화승총, 로켓, 수류탄 등 기본적인 도판 몇 장이 구조나 원리를 더욱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무기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무기 중 제대로 된 도판이 등장하는 무기는 부시넬의 잠수함, 개틀링의 기관총, 화이트헤드의 어뢰,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도판만 조금 더 충실했더라도 별점은 1점 정도 더 높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전쟁이나 병기 관련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22/03/19

기억의 의자 - 이지은 : 별점 3.5점

기억의 의자 - 8점
이지은 지음/모요사

이전에 "액자"를 읽고 꼭 구입하기로 했던 사물들의 미술사 두 번째 책입니다. 제목대로 의자를 다루고 있고요.

의자는 제품 디자인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재라서, 의자 디자인에 대해 다룬 책은 저도 그동안 많이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 속 의미있는 의자에 대해 다룬 미술사 책이라기보다는, 특정 의자를 주제로 하여 그 의자가 있었을 때의 사회상을 조망하는 문화사에 가까운 책입니다. 의자의 디자인은 상세하게 소개되지만, 의자가 주인공은 아니에요. 

책에서 의자와 함께 다루고 있는 시대는 다섯 개입니다. 첫 번째는 중세 시대입니다. 대성당의 의자 스탈의 안장을 접으면 나오는 미제리코드 조각으로 당시 사회 분위기를 설명해줍니다. 두 번째는 루이 14세의 옥좌에서 시작해서 '위대한 은공예품'과 당시 아유타와 왕국 사절단 이야기 등으로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17세기 후반 프랑스에 대해 알려주고요. 세 번째는 등받이가 없는 스툴 형식 의자 '타부레'에 앉을 수 있는 권한이 따로 있었다는, 이른바 '타부레' 권한을 통해 부르봉 왕조 시기 프랑스의 귀족 서열과 예법들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네 번째는 폴란드 왕 스타니스와프의 주문으로 만드는 루이 들라누아의 의자 제작 과정으로 18세기 가구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고, 마지막은 전통적인 가구 제작 방식을 뛰어넘어 대량 생산으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18세기 후반의 토머스 치펀데일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도 많았고, 재미도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우선 '미제리코드'가 무엇인지는 처음 알았네요. 엄격한 종교 기반의 사회였지만, 대성당 안 의자 속 미제리코드는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조각이 가능했다는 것도요.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갑니다. 도판도 풍부해서 자유분방했던 당시 목수의 솜씨도 충분히 잘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루이 14세 옥좌에서 시작되지만, 이는 '은'이라는 소재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게 특징입니다. 위대한 은제품과 왕의 권위 과시가 반드시 필요했던 시대를 다루기 위해서였지요. '위대한 은' 세공품들이 지금도 남아있더라면 아주 좋았을테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도판과 기록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알게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타부레'는 당시 왕실 서열과 예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할 뿐입니다. 그런데 왕의 친척인 친왕들조차 함부로 의자에 앉지도 못했던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의 베르사이유 궁전 모습이 아주 재미있더군요. 이를 둘러싸고 왕의 정부와 왕의 제수씨의 기싸움 등 세세한 볼거리가 가득했던 덕분입니다. 당시를 다루었던 수많은 컨텐츠들에서 미처 접하지 못했던 디테일이기도 했고요. 저자도 당시 그림에서 이 예법을 지키지 않은 등장인물을 알려주고 있는데, 저도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찾아보면서 고증을 되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 왕권의 대명사같은 루이 14세와는 사뭇 달랐던 루이 16세 시대에는 14세 때 만큼이나 엄격하지는 않았겠지만요. 

네 번째 이야기는 폴란드 왕이 루이 들라누와에게 의자를 주문하는 과정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압권입니다. 의자 디자인을 어떻게 고르는지와 같은 고객 입장에서의 디테일은 물론, 장인이 되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여러가지 비용들, 장인간 협력 관계 등 장인 입장에서의 정보들도 살뜰히 챙겨 알려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 모든게 실제 사료 기반이라는 것도 대단하고요. 

마지막 치펀데일 이야기는 그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설명의 핵심은 치펀데일의 카탈로그였고요. 고객들은 조립식 가구 처럼 카탈로그를 보며 다양한 조합을 고를 수 있었고, 치펀데일도 유행하는 스타일을 모두 갖춰 제공했다는데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마케팅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책에서 말해준 대로 18세기의 이케아였던 거지요.

이렇게 새롭고, 재미난 내용이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미제리코드 부분은 관련 사진 설명 뿐이라 좀 지루했습니다. 종교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지만, 그걸 입증할 근거도 애매하고요. 그렇게까지 도발적인 풍자가 많다는 인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의자' 보다는 관련된 역사, 문화적 배경을 고찰한다는 책 컨셉도 마음에 들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의자는 단지 소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도 약간 아쉬웠던 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의자를 억지로 엮은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단점은 책의 판형입니다. 작은 판형은 저자의 의도였다고는 합니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쉽게 볼 수 있도록요. 그러나 도판이 너무 작게 들어가서 식별이 어렵다는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그림 속에 있는 의자를 설명하는 도판들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해당 부분만 확대해 주거나, 접이식으로 크게 삽입했어야 했습니다. 나름 비싼 책이고, 도판 수준도 우수한데 이런 세세한 고려가 뒷받침 되지 않은건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워낙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문화사, 미시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4/26

우연한 걸작 - 마이클 키멜만 / 박상미 : 별점 2.5점

우연한 걸작 - 6점
마이클 키멜만 지음, 박상미 옮김/세미콜론

여러 예술가들의 걸작들을 전부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왜 그 작품이 걸작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책으로 예술에 대해 깊이있는 식견을 바탕으로 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하지만 전혀 쉽지는 않아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는 느낌이거든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요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가지 기록해 볼 만 한 내용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보나르의 작품들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현대 인상파'라 부를 수 있는 좋은 그림이기 때문에 걸작이라는군요. 도판만 보았을 때에는 인상파라기 보다는 좀 더 괴기 쪽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요.
아마츄어리즘은 적은 노력으로 큰 만족을 얻는 쪽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밥 로스와 일맥상통하기에 밥 로스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츄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프로와 별 다를게 없다는 이유이기도 한데,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지요. 게다가 별다른 목적없이 그리거나 찍은 작품이 '우연과 실수'라는 측면에서 초현실주의와 연결되어 걸작으로 인정받게 된다는군요. 이유는, 이 책에 쓰여진대로라면 그 작품에서 무언가 놀랍거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걸작이라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특히 현대 미술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과정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해 보여요.
문제는 그런 평을 전문 비평가가 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는 진정한 아마추어리즘과는 좀 분리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드네요. 철학자이자 미술 평론가 아서 딘토는 아름다움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했는데, 이 노력에 대한 설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수준이 판가름날 테니까요. 제가 '이게 걸작이야!'라고 제 딸 아이 그림을 평가해도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결국 다 평론가들 놀음이라는 점에서는 입맛이 좀 씁니다.

또 시대에 따라 경험이 변해서, 아름다움의 정의가 변한다는 것도 와 닿았습니다. 명확한 사실이니까요. 현대에 사는 우리가. 여러가지 매체에서 수없이 보았을 '모나리자'를 보고 놀라움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지요. '놀라움' 을 느낄 여지가 적어졌다는 점에서, 현대는 정말 예술을 하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존 케이지의 음악처럼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도 못할 기괴한 발상이 난무하고 있죠.
그래도 재미있는 작품과 발상들이 몇 가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저자의 친구 알렉스의 서재가 대표적입니다. 알렉스는 원룸 집 벽에 나무 책장을 들여 놓았는데, 책으로 가득차 책 한 권을 더 꽂으려면, 그 두께만큼 다른 책을 빼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재는 자츰 진화하고, 가꾸는 물건이 되었으며 결국 알렉스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죠. 여기에 더해 가차없으면서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기에 이는 예술이며 작품이 되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합니다!
존 레넌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존 레넌을 유혹하는데 성공한 외국 여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깊이를 가진 여성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동성'을 표현했다는 그녀의 여러가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수집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집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감식안과 더불어 일종의 상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인데, 이유보다도 앨버트 C. 반스의 수집품이라는 실례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의 독특한 진열 방식으로 수집품이 진열되었는데, 덕분에 그림을 새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오노 요코 외에도 새로 알게된 사실은 많아요. 화가들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던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루이스 캐럴은 변태가 아니었다는 것, 보나르의 아내 마르트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 말이지요. 특히 보나르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옛 연인 르네를 그린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보나르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마르트가 잘 보이지도 않게 등장해서, 화면 중앙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르네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보나르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만, 르네야말로 그의 마음 속 천사였고, 마르트는 그를 뒤에서 지배하는 움울한 지박령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르네가 마르트와 눈이 마주친건, 결국 지박령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암울한 그림이라 할 수 있고요. 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니 이런게 예술인거겠죠?

몇가지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굉장히 흥미로와서 인터넷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은 유대인 아가씨 샬로트가 죽기 직전까지 몰두하여 만들었다는, 1300쪽에 이르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인생? 혹은 연극?"이 대표적입니다. 그게 뭐든, 양이 많으면 일단 독보적인 무언가가 되는 듯 합니다.
자수로 프로야구 선수들 초상화를 만든 죄수 출신 작가 레이 매터슨의 작품들, 초창기 남극 탐험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으로 불멸의 이름을 남긴 프랭크 헐리의 기록 사진들도 찾아볼 만 하더군요. 저자가 작품 창작 과정을 직접 관찰한 화가 펄스타인의 작품들 역시 괜찮았습니다. 한 점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거대 작품, 해당 작품이 놓인 장소로 여행을 떠나야지만 볼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이상했습니다. 감상 순간의 주변 환경이 중요한 장소 특정적 예술이라는게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대의 이런 작품들은 그냥 크기로 승부하는, 크기로 놀라움을 주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었어요. 거대 기념비와 별 다를게 없는데 이게 과연 예술인가요? 화가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큰 돌덩어리가 예술이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이에 비하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샤르댕이나 티보의 작품들이 훨씬 예술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도판이 부실한건 굉장히 아쉽네요. 컬러로 수록된 도판도 부족할 뿐더러, 그나마 수록된 도판들도 저자가 설명하는 작품들을 전부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궁금한건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수록된 도판도 흑백이 많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고, 예술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독서임에는 분명합니다. 단지 제 취향과 맞지 않았을 뿐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11/12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 하라 켄야 / 이정환 : 별점 2.5점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 6점
하라 켄야 지음, 이정환 옮김/안그라픽스

"디자인의 디자인"을 통해 접해 보았던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짤막한 수필 모음집입니다. 하라 켄야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해 일상생활 속 디테일을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는 이야기들로, 주제별로 적합한 예를 드는 구성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미의식과 표면장력을 연결하며 노구치 이사무의 조각 "Water Stone"을 인용한다든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자인의 디테일을 이야기하면서 식탁에 오를 때에는 마요네즈 용기의 구멍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언급하는 식입니다. 디자이너가 의도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에서는 사각형 두루마리 휴지를 예로 들고요. 이렇게 각각의 예시가 명확하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예만 들지 말고 도판도 함께 수록해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완독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분량인 110여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풀컬러로 도판이 수록되어 있는데도 이 책과 가격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분명히 재미있고 일상생활 속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도 탁월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도판 없이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는 기획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책 뒤에 몰아서 도판을 수록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2017/01/15

아틀라스 세계 항공전사 - 알렉산더 스완스턴, 맬컴 스완스턴 / 홍성표 외 : 별점 2.5점

아틀라스 세계 항공전사 - 6점
알렉산더 스완스턴.맬컴 스완스턴 지음, 홍성표 외 옮김/플래닛미디어

항공기가 무기로 사용된 이후 주요 공중전투를 상세한 지도,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전쟁사 - 미시사 서적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주제로 출간된 "아틀라스 전차전"과 흡사합니다. 장, 단점 모두요.
우선 장점이라면 화려하고 치밀한 도판입니다. 전쟁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도 외에도 다양한 시각 자료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갖가지 비행 기술에 관련된 도판들이 눈에 띕니다. 유리한 고도에서 태양을 등지고 목표물을 향해 속도를 높여 급강하해 치고 올라오며 기총 공격한 후, 다시 수직에 가깝게 급상승해 유리한 고도를 확보한다는 이벨만 기동과 같은 초기 비행 기술들을 도판과 함께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독일군의 '서커스' 집단 편대 비행이나 영국의 6기 편대 비행 항목 등도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특유의 소개는 후반부 아랍 - 이스라엘 전쟁 당시 선보인 각종 기동 방법 - 공격적 분리 기동, 하이스피드 요요, 가위 기동, 바렐 롤 공격 - 소개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눈이 즐거운' 책입니다! 

또 잘 알지 못했던, 기구를 활용한 정찰전, 1차 대전 때의 그라프 제펠린으로 대표되는 비행선과 복엽기의 활약을 소개한 초반부도 확실히 이 책만의 강점이에요.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정보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이후 소개된 전투들 역시 풍성한 볼륨을 자랑하는건 같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아틀라스 전차전"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재미 요소라 할 수 있는 전투기들과 에이스들의 소개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큽니다. 소개되는 몇몇 에이스, 기체도 주로 1차 대전까지 내용에 집중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후 비중있게 소개된 기체는 B-29 정도 밖에는 없어요.

또 몰타, 진주만, 산호해, 미드웨이, 스탈린그라드, 과달카날 등 2차 대전 이후 등장 전투들은 이런저런 매체에서 너무나 많이 다루어진 이야기들이라 흥미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잘 그려진 지도와 각종 도판은 훌륭하지만 식상한 이야기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과연 이 전투들 모두가 '항공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그나마 2차 대전까지는 나름 '항공전'에 걸맞는 이야기였지만 이후 전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전, 중동전, 베트남, 포클랜드에 이라크 전쟁 등에서 전투기를 활용한 교전은 보조적, 혹은 전략적 목적이 강하니까요. 

그래도 "아틀라스 전차전"보다는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4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추천드리기는 조금 어렵군요. 어차피 절판되었으니 구해보시기도 쉽지 않으시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보다 볼륨을 두껍게 하여 책을 나누더라도 또다른 흥미요소인 기체, 에이스 소개를 해 주는 것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 책의 성격이 좀 이상해졌을라나요?

2015/12/29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이지은 : 별점 4점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8점
이지은 지음/지안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의 후속작입니다. 제목 그대로 귀족 이후 시대라 할 수 있는 1800년대 후반 ~ 1900년대 초반에 걸친 부르주아 계급의 문화와 유행을 다루고 있는 문화 – "미시사" 서적이지요.

구도시에서 도시 계획에 의거, 근대도시 파리로 진화하는 ‘현대 도시의 발명 - 모던 라이프’에서 시작하여 총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제를 대표하는 당대의 그림으로 시작해서 자세한 자료, 도판과 함께 설명해 주는 구성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전작은 유명 그림과 그림 속 소품 설명에서 출발하는데, 이번에는 주제가 훨씬 광범위하다는 점입니다. 단순 소품이나 골동품이 아니라 ‘문화’와 ‘시대’ 그 자체 – 파리의 도시 계획에 근거한 정비 사업, 기차 시대의 도래, 백화점의 탄생 등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역동적인 변화 – 에 대해 소개해 주기 때문입니다. 왕과 귀족 중심의 예술과 문화가 일반인까지 확대된 시점을 다루며, 그들이 ‘유행’을 만들고 ‘시대’를 중세와 근대에서 점차 현대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요.

물론 저자의 주특기 분야인 디테일한 소품들 소개도 빠지지 않습니다. 도시 계획에 의해 탄생한 새로운 거주 문화와 함께 당대 유행했던 가구들을 소개하고, 백화점을 설명하면서 당시 백화점 팜플렛 등을 통해 당시 생활 풍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식으로요. ‘자포니즘’ 항목이 대표적인데 대관절 어떤 경위로 일본 물품이 유행했으며 당대 문화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여러 가지 그림, 소품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공작새의 방’ 설명이 개중 백미에요. 유명 수집가 레이 랜드의 의뢰로 당대의 유명 화가 휘슬러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방으로, 둘 사이가 틀어진 뒤 지금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 후일담까지 모두 재미있었어요. 도판만 보아도 아주 근사하던데 꼭 한번 실물을 보고 싶어집니다.

또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림들이 대거 등장하여 설명을 돕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르느와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이라든가 "라 그르누이에르"가 기차 시대의 개막과 엮여 소개되는 식으로요. 주말 휴양지에서의 여흥은 기차가 개통되어 파리 외곽이 유원지로 개발된 시대상과 맞물린다는 것인데, 이러한 내용을 이만큼 잘 알려주는 도판이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거든요. 교과서에 도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여성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마네, 드가, 로트렉의 작품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 ‘인상파 여자를 그리다’ 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들이 친숙해서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일 뿐더러, 당대의 섹스 심벌이라 불렸던 메리 로랑의 일대기나 "나나"의 모델 발테스 드 라 비뉴 등의 일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말 그대로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칠 정도였어요.

그 외 식당 문화 소개 부분에서는 어떻게 현대 프랑스 요리가 탄생했는지, 당시 어떤 요리가 서비스되었는지, 식문화는 어땠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으며, 백화점, 만국박람회는 그야말로 소개 정도에 그치지만 소재가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백화점 여직원들의 가혹한 근무환경, 만국박람회의 한국관 같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책의 편집도 아주아주 마음에 듭니다. 근거가 되는 참고 도판이 글의 설명과 분리되지 않고 어떻게든 한 장에 구성되어 있거든요.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됩니다.

프랑스 중심으로만 서술된 근대 역사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할 테고, 마지막 항목인 ‘19세기의 종언 카몽도’는 드라마로서는 재미있지만, 책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내용이기는 합니다. 일부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난 책임에는 분명해요. 미시사 서적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책을 소장해야지, 안 그러면 무슨 책을 소장하겠습니까.

2023/02/11

닌자의 세계 - 야마키타 아쓰시 / 송명규 : 별점 2.5점

닌자의 세계 - 6점
야마키타 아쓰시 지음, 송명규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제목 그대로 닌자에 대한 모든걸 정리하여 알려주는 책. 구성은 몇 권 읽어보았던 다른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한 개의 주제에 한페이지 설명과 한 페이지 도표,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은 닌자의 역사에 대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닌자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거든요. 전국시대 당시 첩보를 하는 인간들은 분명 존재했다고 설명해 줍니다. 이들을 모두 '시노비'라고 부르게 되었던건 도쿠가와 막부가 고용했던 이가 사람들이 시노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닌자라는 말은 2차대전 이후 야마다 후타로가 쓴 인법장 시리즈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답니다. 당연히 만화 등에 나오는 화려한 인법보다는 첩보, 정찰 업무가 주였고, 인술비전서 최고의 인술로도 '모략'이 소개되고 있다는군요. 원래도 대단치않은 기술을 보유했었고, 전국 통일 후에는 대부분 평범한 하급 무사가 되었버려서 그나마의 인술도 잊혀졌지만, 이가에서만 이가를 맡았던 다카토라에 의해 기술을 발전시킬 '무족인' 제도가 도입되어 기술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막부 말기 이른바 최후의 닌자로 이가의 무족인이었던 '사와무라 진자부로' 가 페리 함대에 잠입해서 조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고요. 뭐, 이것도 인술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첩보 활동이었다고는 하지만요. 이가만큼이나 유명했던 코가 닌자는 무족인과 같은 특권을 받지 못해 결국 멸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에도시대에 예능이 성행하면서 시노비의 기술이 기예로 인기를 끌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닌자 캐릭터는 일종의 광대극 캐릭터인 셈입니다.
이 뒤에는 닌자의 기원에 대한 이론, 유명한 이가와 코가 닌자의 유래와 그 관계, 핫토리 한조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막부 시대 밀정은 닌자는 아닙니다만, 후계자라면 후계자라면 할 수 있겠지요. 에도 시대 호조 가문의 시노비였던 후마 코타로가 도적이 되었고, 그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카이의 시노비 코사카 진나이도 결국 잡혀 죽었다는건 역사적 사실로 보여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도구, 기술 설명 부분도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옷이 검은색으로 알려진건 에도 시대 무대 공연 때문일 뿐, 실제로는 저렴하게 물들일 수 있는 감즙색 옷이 많았다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도 좋았고, 시노비 두건 쓰는 법, 닌자의 속옷, 수리검이라고 불린 차검의 다양한 형태와 봉수리검과의 차이, 항아리 뗏목, 소형톱 시코로 등위 도구와 자사구리, 츠리가타나, 사게오칠술 등의 인술처럼 도판이 효과를 발휘하는 항목도 많아서 마음에 들았습니다.
닌자는 가난하다는 기본 상식을 가지고 도구 이야기를 풀어내니 얼마나 창작물이 허구인지도 잘 알 수 있었어요. 한번 쓰고 버릴 수리검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지요. 줄에 가로대를 달고 끝에 갈고리를 붙여 올라가는 사다리 카기시바고는 잘 알려져 있기는 한데, 걸 때 소리가 나서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겠지요. 이렇게 실제로는 무의미했을 창작품은 그 외에도 물 위를 걷는 신발 미즈구모(실제로는 두께가30cm이상 되었어야 함) 등이 있다네요.
인술비전서도 당연히 후대의 창작품이지만 그 중 <<만천집해>>는 그래도 상당한 연구가 겻들여진 수작이라는걸 알려줍니다. 도판도 곁들여져 있다하니까요.

인술이 나름 효과있는 술법이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습니다. 급박한 전투에서는 간단하고 실용적이며 빠르게 쓸 수 있는 술법이 사용된게 당연하지요. 한 번 성공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으니 비밀도 지켜지고요. 이런건 후대 닌자 만화 설정과 비슷하네요. 당연한 일을 좀처럼 할 수 없는게 인간이라 일부러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으로 보이지만요. 물론 설명되는 인술은 무슨무슨술....처럼 이름은 거창하지만 뻔하고 어이없는 것들도 많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고양이 눈으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찰천술은 기억에 남네요. 죽은 시체의 동공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는 클락성 살인사건의 추리가 떠올랐거든요. 정원 한복판에서 등을 둥글게하고 머리를 숨기며 가만히 있는 메추라기 은신술도 나름대로 그럴듯했고요.
참고로 여우 은신술은 물 속에 숨는 술법인데 만화에서처럼 대나무로 호흡하지는 않았다네요. 굵은 나무가 튀어나와 있으면 이상하니까요. 원래는 얼굴에 나뭇잎 등을 붙이고 얼굴째 내밀어 호흡했다고 합니다. 삼베 뛰어넘기 훈련법은 삼베가 아니라 모시풀이었을거라는 추정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은 창작물 속 닌자들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타츠카와 문고의 사루토비 사스케, 야마다 후타로의 인법첩 시리즈 특징과 주요 대결구도,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만화 시리즈 소개, 지라이야 소개 등. 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서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건 신선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닌자의 체술이 바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예 마법같은 것 보아야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었겠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설명 도판이 아쉬웠습니다.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 부분을 실제 만화 이미지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지라이야의 유래가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도적으로, 도둑질 한 곳에 아래야라는 메모를 담겨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마지막 100번째 항목은 실존하는 무술 Ninjutsu입니다. 해외에서는 유명하지요. UFC 초창기(시즌 2)에 닌쥬츠 고수가 나왔던 시합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닌자 역사에 대한 설명 중 야규 일족, 마미야 린조 등 암살, 밀정 활동을 한 실존 인물을 닌자처럼 설명하는건 와 닿지 않았고, 사이고 다카모리까지 언급하는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시카와 고에몬도 닌자였을 수 있다는건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비슷한 기술을 지니고 있있으니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둑이 된 닌자가 많았을거라는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마츠오 바쇼 닌자설도 마찬가지, 많이 걸었다는 것과 여비를 누구도 주었는지로 닌자일 수 있다는건 억지입니다.
다른 트리비아북 시리즈에는 파워포인트스러운 도표가 대부분인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일러스트를 통한 설명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리 깊이있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없고 가성비도 좋나고 보기 어려우나 실제 역사와 근거에 기반한 설명과 시리즈 취지에 걸맞는 잡다한 정보가 많은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닌자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2015/02/24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로버트 템플 / 과학세대 : 별점 3점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6점
로버트 템플 지음, 조지프 니덤 서문, 과학세대 옮김/까치글방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저본으로 하여, 중국이 3,000년 동안 세계 최초로 이룩한 발명과 발견을 200여 점의 도판과 함께 농업, 공학, 수학, 의학, 음악, 물리학, 수송, 전쟁기술 등 100가지 항목으로 편집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 소개 인용)

중국 고대 발명품과 발견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 이런 류의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인데, 이 책도 기본적인 재미는 물론 설득력을 높여주는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 항목도 100가지나 되어 내용도 풍부했고요.

내용이 많다 보니 요약은 어렵고,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 복동식 피스톤 풀무 :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계같은 느낌의 이름인데 피스톤을 밀고 당길때 모두 바람이 나오게 하는 것이 전부인 일종의 자동 밸브. 그러나 이 단순한 발명품이 기원전 4~5세기 (!)에 등장한 덕분에 중국의 모든 산업 (특히 제철과 같은 야금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니 허투루 볼건 아닙니다.
  • 크랭크 핸들 : 지금도 이런 저런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레바퀴 측면에 막대기를 끼워 손잡이로 삼아 돌리게 만든 발명품. 비슷한 것을 서양에서 생각해 내기까지는 무려 1,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단순한 것인데... 의외였어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을까요?
  • 천연 가스 채굴 :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천연 가스를 채굴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순전히 인력으로 평균 900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팠다는 것 (주로 소금 채굴을 위해), 여기서 나오는 가스를 잘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고안 역시 대단했습니다. 잘만 활용했더라면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스팀 펑크 스타일 SF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대나무에 저장한 천연가스를 활용한 동력원!
  • 칠 : 옻칠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재인데 일종의 니스로 플라스틱과 같다고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태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특유의 보존력, 강도, 내구성을 볼 때 그렇구나 싶기도 했어요.
  • 성냥 : 여태 서양의 누군가 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초는 북제 왕조의 여관들이 유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 성 호르몬 추출 : 소변에서 성 호르몬을 추출했다는 것이 기원전 125년전의 회남왕의 서적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불을 이용한 승화, 강제 증발 이외에도 증류수를 넣은 뒤 태양열로 자연 증발시켜 얻었다고 하네요. 아울러 남녀 소변을 구별하여 제조하고 싶은 호르몬 종류에 따라 소변 혼합 비율을 바꾸었기 때문에 결과물인 "추석"은 어느 경우는 안드로겐 (남성 호르몬)이 많았고 어느 경우는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 지리 식물학 : '특정 광물질이 많아 다른 식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토양에서도 번성하는 식물들을 가지고 탐광하는 것'으로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부터 처음 안 사실입니다.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근거이며, 이후 1421년의 "경신옥책"에서는 금은 순무에, 은은 수양버들에, 동은 인도산 괭이밥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학문으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광물의 미량원소가 실제로 특정 식물에 존재하며 거기서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 참고로 예전에 전파과학사 문고 "과학사의 뒷얘기"에 실려있던, 토마스 챌러너 경이 요크셔에서 명반석 광상을 발견한 것이 유럽 최초의 지리식물학적 탐광 사례라고 합니다. 1600년 경의 일이죠.
  • 지진계 : "갤러리 페이크"에도 나왔던, 용 입의 구슬이 두꺼비로 떨어지는 기계로 도판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실제 어떻게 동작했는지까지 알려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지진"과 "단순 진동"을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지진계 옆에서 아이가 뛰어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인쇄 : 중국에서 인쇄는 대단히 활발했다고 하는데 10세기 어느 불교도 문집은 지금도 40만부 이상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얼마나 찍었을지 상상도 안되네요. 40만부 이상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인쇄에 관련된 상세한 설명 - 인쇄에는 유실수를 사용한다. 침엽수에 포함된 수지는 먹이 균일하게 칠해지는데 방해 작용을 하기 때문 등 - 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으로 "대나무"가 서양에서는 나지 않아서 중국의 획기적인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시각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속이 비어있어서 가벼운 재료가 없었기 때문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선박의 "활대"를 들고 있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은 재미없는 부분은 너무 재미없다는 것, 그리고 조지프 니덤의 원저를 베이스로 새롭게 추가하고 엮은 내용이라고 하는데 억측이 상당히 많아서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해당 기술이나 발견의 시기를 단어나 문장 몇마디 가지고 굉장히 오래전 것으로 정의한다던가, 유럽에서의 발견도 중국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추측하는 식입니다. 대표적인 것인 사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가 중국인이 먼저 개발했던 석궁을 보고 도시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중국에서 "대진"이라고 불리운 시리아와 교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대는 정도인데 이 정도는 증거도 뭐도 아니죠. 지리 식물학 이야기에서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된게 근거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거치고는 많이 약해요. 실제 혜당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말이죠. "문자"에 쓰여진, "옥이 묻힌 곳에는 나뭇가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글이 단순 지리 식물학이 아니라 식물의 생리적 상태까지 간파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고요. 이런 억측은 우리에게는 동북공정과 같이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이네요. 이 책에 따르면 불국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중국에서는 자기들 유물이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울러 내용에서 단순 년도만 표기하지 말고 해당 시기 중국의 왕조는 무엇이었을지 정도만이라도 함께 써주는 배려가 없는 것도 아쉬웠으며, 번역도 괜찮은 편이지만 장기 이야기에서 "포"를 "로켓 소년"이라고 번역한 것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국어로 재 번역할 때 당연히 걸러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을까요? 중국 장기는 뭐가 조금 다른건지...

그래도 관련된 사료도 충실하고 도판도 만족스러운 수준일 뿐더러 첫 발견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기에 아주 폄하하기는 어렵군요.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50% 할인 가격에 구입했기에 더 만족감도 크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책보다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보는게 더 낫지 싶긴 하네요.

2016/06/21

해상시계 - 데이바 소벨, 윌리엄 앤드류스 / 김진준 : 별점 3점

해상시계 - 6점
데이바 소벨. 윌리엄 앤드류스 지음, 김진준 옮김/생각의나무
경도 이야기 - 6점
데이바 소벨 지음, 김진준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항해 중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펼쳤던 다양한 노력들을 설명해주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딱히 관심이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형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왜 경도 측정이 중요한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항해 시대, 배의 현재 위치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경도를 제대로 모르면 엄청난 피해를 입기 십상이었으니까요. 이를 실제 영국 전함들의 난파 등의 사례로 설명해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통행이 안전한 좁은 항로만 선택해서 특정 장소에서(카리브해?) 해적 선단이 기승을 부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설명을 통해 위도는 모든 항해사들이 낮의 길이나 수평선 위의 태양, 알려진 별의 높이 등을 통해 쉽게 잴 수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그래서 1714년 영국에 경도법 발표와 함께 심사원단인 경도 위원회가 생겼습니다. 2만 파운드(현재의 1백만 파운드)의 상금을 걸고요. 명확한 기준을 두고 경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상금을 수여하려는 목적이었지요. 이 상을 수상한건 시골에서 독학으로 시계 제작법을 배운 영국의 시계 기술자 존 해리슨였습니다. 그의 시계 H1에서 최후의 작품 H5의 개발까지 4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노력과 투쟁의 결과로요. 책에서는 해리슨의 각 시계별 특징은 물론, 개발에 쏟은 열정과 노력을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시계 기술자가 상을 탄 이유도 알 수 있는데, 경도 측정은 시간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경도 자오선들은 시간에 의해 측정되니까요. 예를 들어 지구가 360도 한바퀴를 도는 데 24시간이 걸리므로, 한 시간은 360도 회전의 1/24인 15도를 가리킵니다. 항해 중인 배와 측정을 시작하는 지점 사이의 매 시간 시각 차이는 동쪽이나 서쪽으로 경도 15도의 차이를 의미하고요. 즉, 바다에서 매일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 때 배의 시간을 정오로 맞추고, 본국 항구의 시간을 참고로 하여 매 시간 차이를 계산하면 경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해 과정에서 기온의 변화나 지구 인력의 미세한 차이 등으로 시간을 정확히 잴 수 없었던 탓에, 다른 대안들이 등장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천문 관측법이었습니다. 16세기 초반 요하네스 베르너가 착안한 달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오가 시작한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경도 위원회를 이끄는 천문학자 매스켈린이 해리슨과 그의 성공을 폄하했고요. 완벽한 시계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식한(?) 천문학자 탓에 성과를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니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물론 매스켈린 역시 그냥 딴지만 건 것은 아닙니다. 정교한 월표의 발표 등을 통해 관측을 통한 경도 측정의 신세계를 연 것은 사실이거든요. 이른바 '달 거리 측정법'으로 항해사가 달까지의 거리를 재고 난 후, 달과 수많은 별 사이의 각거리를 기록한 표를 참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측자가 사분의, 또는 육분의로 달과 별 사이의 각거리를 관측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각거리란 문자 그대로 관측자를 기준으로 한, 두 물체 사이의 시선 각도를 뜻하고요. 매스켈린의 방대한 관측의 집대성인 월표는 이러한 관측결과 - 예를 들어 관측자가 특정 지점에서 달이 특정 별로부터 30도만큼 떨어져 있는 것을 관측했다고 하면 -를 관측자가 파리나 런던에서 그와 동일한 거리를 유지할 때의 시점과 비교할 때 사용합니다. 관찰자의 관측 시점이 새벽 1시이고 관측 시점과 동일한 각거리가 런던에서는 새벽 4시에 발생한다면, 배의 시간은 런던을 경도 0으로 보았을 때 서쪽으로 45도의 경도상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렇듯 두 명의 거인이 각자의 비법을 가지고 진검 승부를 펼쳤다는 점에서는 테슬라와 에디슨의 대결 느낌도 살짝 나네요. 다행히 테슬라와는 다르게, 해리슨은 결국 인정받았지만요. 이유는 달 거리 측정 시 달의 시차 문제 등 여러가지 요인들로 정확한 거리 측정을 위해서는 보정 계산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계산에는 상당한 수학적 능력을 필요로 했다는 점, 해와 달이 근접하면(매달 약 6일 정도) 어떤 방법으로도 달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기상이 악화되면 관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매스켈린마저 해리슨의 후계자 중 한명인 언쇼의 해상 시계를 인정하고, 이후 동인도 회사와 영국 해군의 선장들이 크로노미터를 경쟁적으로 구입하며 달 거리 측정법은 사라져 버립니다. 1860년 영국 해군은 2백척이 안되는 군함을 보유했지만, 크로노미터는 무려 8백개 가까이 소유하고 있었다는걸 통해 시계의 시대가 왔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크로노그래프를 대중화 시킨 해리슨의 후계자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지는데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널드와 언쇼, 두명의 경쟁자가 크로노미터의 주요 부품인 용수철 멈춤쇠 탈진 장치에 대한 특허 싸움을 벌였다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경도 측정의 역사를 일종의 대결 구도로 풀어낸 내용도 재미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저자 데이바 소벨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딱딱하고 어려울 법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어요. 데이바 소벨은 이러한 과학사 관련 서적을 많이 출간한 작가라는데 다른 책도 기대가 됩니다. 200페이지 정도 남짓한 분량도 적절했고요.

단, 제가 읽은 책은 형에게 빌린, 20년전 자작나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절판본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의 장정, 디자인 모두 지금 기준으로는 수준 이하입니다. 게다가 해리슨의 독특한 시계들에 대해 설명만 있지 아무런 도판이 없는 것도 아쉬웠고요. 생긴 것 부터 독특하다고 해서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책으로 확인할 길이 없어 난감하더라고요. 심지어 H1의 경우는 저자 스스로 '영화의 성지 헐리우드에서도 최고의 천재들이 온갖 구상을 다 했지만 아직까지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어떤 화려한 영화도 이것처럼 설득력있는 타임머신을 내놓지 못했다."고 언급할 만큼 기묘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말이죠. 또한 해리슨의 아이디어가 빛난 다양한 부품들 역시 글로는 짐작이 어렵기에 도판이 필요했는데 왜 수록되지 않았는지 영문을 알기 어렵습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찾아보기는 했지만 책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지금은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되었는데 다른 판본으로는 도판이 충실하게 실려있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과학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여러가지 다양한 지식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장정 및 도판 등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내용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정도는 아닙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간된 판본으로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2024/04/12

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 최경원 : 별점 3점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박하지만은 않다는걸 여러가지 문화재, 유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
설명을 위해 유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제품' 관점에서 분석하여, 해당 유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제품'인지를 알려준다는건데 꽤 그럴싸한 접근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재의 갤럭시나 아이폰을 먼 미래 박물관 같은데서 본다고 상상한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두 제품은 생긴 것만으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차이를 느끼려면 아이폰이 가져온 혁신을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이 아닐까 싶거든요. 확실히 디자인 전문가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답게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 유물도 있는데 이 중에서는 삼한 시대의 오리모양 토기의 형태에 주목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 토기들과 다르게 사실성,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수준높은 추상조형은 이를 소비하는 지배층의 인식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배경의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습니다. 굉장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삼한 시대 토기 역시 마찬가지고요.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은 실제 쓰임새(양력 등을 활용하여 보다 멀리 쏠 수 있도록) 때문에 발전된 형태라는 글도 흥미로왔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연구할 여지가 많은데 중간에 끝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왜 후대에 계승되어 더 발전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화살촉보다 분명한 장점 - 사거리 - 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상쇄할만큼 단점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까요? 아, 궁금합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린 스케치로 이루어진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알려주는 대부분의 글들 도판들이 특히 빼어난데, 아래의 용봉문 투조 금동장식 속 봉황 등의 조형이라던가, 통일신라 말 발걸이에 그려진 말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스케치가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을터라 무척 고마운 도판이었어요.
몇몇 유물의 경우는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의 제품들과의 비교도 시도하는데 이 역시 괜찮았어요. 답을 정해 놓고 끼워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한국형 비파형 청동검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작품으로 고조선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 국가였다는걸 증명해 준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신라의 누금세공 귀걸이도 저 큰걸 귀에 어떻게 걸지? 싶었었는데, 명주실을 꿰어 귀나 모자에 걸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찾아보니 기사도 있네요).

하지만 다소 억지섞인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쌍용총 속 벽화의 무인의 패션이 샤넬, 아르마니의 컨셉과 일치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무채색이라는 것 정도로는 논거가 부족합니다. 아래의 백제 허리띠처럼 실제로 꽤 감각적이고 멋드러진 형태라는걸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어요.
누구나 최고의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금동대향로가 소개되는건 노력의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의견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 증빙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커 보였습니다.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하거든요.

그래도 디자이너가 유뮬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책의 컨셉은 확실히 빼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2/26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3점

오래된 디자인 - 6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디자이너 출신 공무원 박현택이 쓴 디자인 관련 컬럼 모음집. 몇 년 전에 읽고 리뷰도 남겼었는데, 기억에서 아예 지워져버린터라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것에서 찾은 위대한 디자인, 오래가는 디자인,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진 것 이라는, 디자이너라면 한 번 되새겨 생각해볼만한 주제로 각각 8편, 모두 합쳐 24편의 컬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묵직하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인데, 이를 평범한 사람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저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는 이야기가 많아서 특히 좋았는데요, 대표적인게 추사의 서예 작품에 대한 컬럼이었습니다. 추사체가 왜 좋은지, 서예 작품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추사의 '대팽고회'를 통해 뜻과 형태의 완벽한 결합을 설명해 주고 있어서 확 와 닿았거든요. 촌 늙은이 최고의 음식은 두부라는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린 졸박한 서체로 완결하여 완성했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나전칠기 X-box를 통해 단순히 나전칠기 기법이나 문양을 현대 기기에 사용하는게 과연 전통의 계승이나 디자인 혁신인지 되묻는 부분도 디자이너로서 반성하게 해 주었어요. 전통을 단순히 현대에 되살리는건 디자이너가 할 일이 아니고, 계승자가 할 일이니까요. 그 외에도 디자이너라면 한 번 쯤 돌이켜 생각할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컬럼마다 소개하고 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에 대한 도판 수록도 확실하여 이해를 돕습니다. 디자인의 연관성과 흐름을 보여주는 도판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석기시대 주먹도끼와 다이아몬드, 선비의 책상과 이슬람 코란 독서대의 비교는 도판만으로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거든요.
안그라픽스 책 답게 편집과 책 완성도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두께와 퀄리티에 비하면, 그리고 요새 물가를 생각해본다면 15,000원이라는 가격은 놀랍기만 할 정도입니다. 무려 300페이지가 넘는데 말이죠!

하지만 다른 컬럼들이나 기사를 통해 익히 접했던 내용도 많고, 단순히 특정 사물에 대한 기록과 소개, 그리고 여행 등을 통해 잡했던 개인 경험담에 그치는 컬럼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차 비틀 컬럼이 대표적이고, 두 번째는 루이비통 컬럼, 마지막은 계영배 컬럼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5만원 짜리 지폐나 한옥 마을에 대한 비판은 깊이보다는 보여지는 형태에 주로 집중되어 있어서 아쉬웠고요.

그래도 디자이너로서는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컬럼이자 에세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직속 선배님이시기도 하신데,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4/07/13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 송태욱 : 별점 4점

눈의 황홀 - 6점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송태욱 옮김/바다출판사

'많은 발상가들이 생각의 도구로 사용한 ‘개념’이나 ‘형태’, ‘방법’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을 탐색한 책이다. 다양한 ‘개념’, ‘형태’, ‘방법’ 중에서도 쌍[對]이라는 관념, 속도, 원근법, 나선, 추상 표현, 스트라이프, 콜라주, 레디메이드, 데포르메, 오브제 등 인간의 눈을 현혹해 온 18가지 테마의 기원과 변천을 묻는다. 이 과정에서 마쓰다 유키마사는 비주얼 문화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인류 가치관의 변천이 갖고 있는 놀라운 반전들을 보여 준다.'는 책 소갯글에 혹해서 구입했습니다. 

이러한 개념, 형태, 방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이 강하기는 하지만, 뒷받침되는 근거들이 방대하고 역사적인 깊이도 느껴졌습니다. 자기 주장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데 굉장히 능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궁금했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는 주장들이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가 동서 종교관의 차이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서양의 일신교는 수직 지향이며, 이를 통해 수직선 끝에 한 사람의 신이 있는 소실점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요약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도판, 사료가 많아서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추상 표현을 기차의 도입과 연결시킨 발상도 기발했습니다. 늘 보던 풍경이 기차의 속도로 왜곡되어 보였고, 이를 차창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으로 잘라낸게 추상파의 뿌리일 수 있다는건 생각도 못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크 로스코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디자인 전공자라 '폰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이런 책을 읽었었지요), 폰트와 타이포크라피의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구텐베르크의 좁고 날카로우며 새까만 블랙 레터체(고딕체)는 성서에 위엄과 무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에서는 이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 경멸했던 고트인의 문자(고딕체)라서 거부했고, 고대 로마 서체야말로 로마인에게 어울린다며 '로마체'를 부활시켜 사용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프랑스에서 사용된게 올드 로마체를 대표하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가라몽체' 였고요. 그리고 서체, 타이포그라피 요소만으로 아름다운 지면을 만들어내려 했던 영국의 존 바스커빌이 18세기 모던 로마체를 도입했고, 뒤이어 이탈리아의 보도니가 완성하여 산업 혁명에 적합한, 공업 제품으로서의 활자를 만들어 냈다는군요. 이러한 주장과 함께 문자 레이아웃 디자인의 발전사도 설명해주는데, 지금 보아도 기발한 시도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청각을 시각화한 것의 대표는 '악보'이다, 토기로 끓이는 요리 때문에 주기성-시간 관념-과 재분배에 의한 문명이 생겨났다는 등 한 번 읽어볼만한 주장이 가득하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판도 많아서 시각적 재미와 함께 자료적 가치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최초의 자동판매기 설명과 도판은 이런 책이 아니면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든 자료일테니까요.

대부분 일본 중심으로 동양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는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전문가가 나와주면 좋겠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1/09/12

간송미술 36 : 회화 - 백인산 : 별점 2.5점

간송미술 36 : 회화 - 6점
백인산 지음/컬처그라퍼

간송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보급 서화 중 36점을 엄선하여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저자 개인의 의견이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저자가 간송 미술관장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신력은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겠지요.

선정한 서화에 대한 상세한 도판과 서화에 대한 소개가 어우러지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그 서화를 왜 선정했는지와 그 서화를 창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습니다. "유홍준의 국보순례"와 비슷한 구성인데, 이런 책이 다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간송이 작품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알려주는 몇몇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다른 책들과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데 적합한 작품을 선정했다는 기준에 따라, 단순히 창작자의 이름값이나 서화 자체의 유명세에 기대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차이점이고요. 

이런 선정 기준답게, 당시의 풍속화라던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그림들이 꽤 많이 선정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는 특히요. 이름도 잘 몰랐지만 당대에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삼재'라고 불리었다는 관아재 조영석의 "현이도" 가 대표적입니다. 장기를 두는 선비들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에요. '현이도'는 공자가 마음 쓸 곳이 없으면 차라리 바둑이나 장기라도 두어라라는 말에서 유래한 제목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 말을 선비들이 장기 두는 그림의 제목으로 삼다니, 완전 자기 멋대로의 해석인 셈입니다. 

그 외에도 거하게 취한 선비를 그린 "대쾌도", 윤용의 "협롱채춘", 김홍도의 "마상청앵", 김득신의 "야묘도추", 신윤복의 "미인도"와 "이부탐춘"이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풍속화들입니다. 36점 중 7점이니 무려 20%의 비중이네요. 물론 풍속화는 일부일 뿐이며, 신사임당에서 시작해서, 진경 산수의 거장 겸재 정선, 진경 산수에 중국 남종화풍을 합쳐 조선만종화풍을 만들어낸 심사정, 풍속화의 거장 김홍도와 신윤복, 이념미를 추구하는 청대 문인화를 조선으로 끌어들였던 김정희의 작품들이 엄선되어 소개되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은 물론, 조선 시대 화풍의 변화를 잘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여러모로 완성도보다는 시대를 대표하느냐가 더 중요한 선정 기준이었던걸로 보입니다. 윤두서의 "심산지록"이 그러해요. 작품의 평가보다는 공재 윤두서의 현실과 시기적으로 조선 중기, 후기 화풍이 교차하던 당시 상황을 잘 반영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소개되고 있으니까요. 

허나 문제는, 당대 화풍을 대표한다는 등의 설명 외에 미학적으로 "왜 이 작품이 뛰어난지?"가 잘 설명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의 "고사소요"를 설명하면서, 고도의 기교로 그려진 그림이다, 화의와 묘법 모두 추사의 지향과 이상이 잘 구현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잘 못 그린, 집에 걸어 두라면, 별로 걸어두고 싶지 않은 그림이었거든요. 이렇게 설명할 거라면, 고도의 기교는 물론 추사의 화의와 묘법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이러저러해서 추사의 문인화를 대표한다고 자세히 알려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세한도"처럼 명확하게 미학적 가치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또 이정과 심사정, 김홍도의 작품은 각 세 점 씩, 겸재 정선의 작품은 무려 다섯 점이나 소개되는 등 중복이 심하며, 도판도 완벽한 수준이지만, 실물 사이즈로 보아야 잘 알 수 있는 느낌을 받기는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대형 작품의 경우 실제 사이즈 크기 도판을 접어서 제공한다던가, 아예 부록으로 제공하는 책들도 있었는데,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요. 설령 그렇게 제공했다 치더라도 "촉산도권"같은 7미터가 넘어가는 대작 느낌을 제대로 알려주기는 턱없이 부족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쉽게 대중이 접하기 힘든 간송 미술관 서화의 정점을 집에 비스무레하게나마 소장하여 꺼내볼 수 있는, 도록으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관련된 정보의 전달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해서 감점합니다.

2005/11/11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Bodies of Evidence) - 브라리언 이니스 / 이경식 : 별점 3점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 6점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증거 수집의 방법에서부터 독극물, 뼈, 벌레, 지문, 피, DNA, 머리카락 및 섬유조직, 총알, 화재와 폭발, 파편과 증거, 목소리, 범인 식별 및 법의학 장비와 모든 조사방법에 대해 자세한 도판, 사례와 함께 잘 요약해 놓은 법의학 및 과학 수사 개론서.

3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책의 판형도 크고 빳빳한 종이의 올 칼라로 구성되어 가격도 만만치 않고 책도 묵직합니다. 
그러나 분량, 가격에 걸맞게 다양한 법의학과 과학 수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자세한 도판과 함께 담고 있고, 수사 방법의 소개로 그치지 않고 각종 범죄에 대해 실제 법의학 및 과학 수사가 적용된 사례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어서 쉬운 내용 전달은 물론 읽는 재미도 더해줍니다.
사례들로는 보스턴 교살자나 강간범 "폭스", 새디스트 네빌 히스, 비소 마녀 마리 라파즈, 영 포이즈너 그레이엄 영, 팻 맨 존 웨인 게이시, 핸섬가이 테드 번디, 유너바머, O.J 심슨 등 유명한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이 19세기 부터 소급하여 수십 건 요약되어 실려있는데 이 사례들만 따로 모아서 읽어도 될 정도로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단점이라면 요약 및 개괄에 가까운 입문 형식의 책이라는 점이겠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상세한 분야의 연구서들이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읽은 몇권의 책들 ("파리가 잡은 범인"이나 "FBI 심리 분석관") 등 도 같이 읽어 주면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뭐니뭐니 해도 C.S.I랑 같이 보는게 최고겠죠. 이 책 자체가 국내에는 C.S.I의 영향으로 출간된 것이 분명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사진 도판이 적나라한 것이 몇개 있어서 지하철에서 읽기에 약간 걸리는 부분도 조금 있더군요.

그래도 책 자체는 괜찮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으면 앞으로 점점 범죄자를 잡기가 어려워 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약간 무섭네요. 책의 취지는 "어떻게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가 남는다"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범죄자들이 알면 알 수록 빠져나갈 구멍은 더욱 커 보이거든요....